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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여 년 목회 사역을 하는 가운데 언제나 마음을 뜨겁게 한 것은 “교회는 영광스럽다”라는 진리다. 교회에 관해서 교리적으로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영광은 비록 교회의 구성원이 잘못하는 순간에도 조금도 훼손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가 이 땅에서 생명을 구하는 복음 사역과 더불어 빛과 소금으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으뜸으로 가져야 할 정체성이다. 삶의 자리가 사명의 자리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때에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 44년 전 강원도 예수원에서 R. A. 토레이(대천덕·1918~2002) 원장님이 대학부 여름수양회에서 주신 요한복음 14장 12절 말씀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어떻게 우리가 주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를 크게 놀라게 했던 충격적인 말씀이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께서 승천하시며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실 때 우리가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환경을 보고 사회적인 상황을 보면 모든 것이 넘지 못할 큰 산처럼 보이는 지금, 한국교회가 믿음으로 붙들어야 할 말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국교회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사역이다. 어떻게 하면 말씀의 능력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유효화되고 실체화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일어나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목사로서 네덜란드 수상을 역임하였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통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선언문이 있다. “만물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인류가 존재하는 모든 삶의 영역들 중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영역은 단 한 평도 없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엄청난 우주 속에 하나님이 통치하지 않으시는 곳은, 즉 우주 속의 단 한 치도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에서 벗어나는 곳은 없다는 뜻이다. 카이퍼는 인간이 숨 쉬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을 변혁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명이 목숨보다 중요한 이유 교회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어떡해서든 일상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공간을 어떻게 내어 드리고, 그분께 집중하며 마음을 모을 수 있는가? 한국교회가 다음 일곱 가지의 토대를 철저하게 구축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둘째, 성경의 절대적 권위, 셋째, 성령의 능력과 주권, 넷째, 거룩한 공교회의 중요성, 다섯째, 세계선교의 긴급성과 절박성, 여섯째, 평신도 사역의 소중성, 일곱째, 가정의 가치와 믿음의 세대 계승이다.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가치를 붙잡을 때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살아있는 네트워킹에 접속하라 사랑의교회는 9~14일 해외 현지 교회와 전국에서 매일 1만여 명이 이른 새벽에 현장과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특별새벽부흥예배를 드리고 있다. 경쟁과 편견의 시대에 맞서 새로운 차원의 비전과 사명을 바라보며, 지역과 인종과 언어와 나라를 초월하여 이 땅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다. 교회의 미래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얼마나 소용돌이치든 관계없이,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고 실행하는 진정한 사명자가 얼마나 있느냐로 결정된다. 목회자로서, 사역자로서, 성도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명의 심장’이 뛰는 것이다. 교회의 미래와 관련한 정교한 시나리오는 그 다음에 나올 화제다. 사명의 심장이 반드시 현장 속에서 펄떡여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최고의 예배, 최고의 헌신을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받은 사명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고, 그것을 위해서 전력투구할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교회의 미래는 교회의 현장에서 사명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고, ‘살아서는 충성, 죽어서는 영광’이라는 목양적 리얼리티 실천에 달려 있다. 2020년의 끝자락을 향하고 있는 때에, 이제는 좁은 마음의 명분론에서 벗어나 선지후행(先知後行)의 분열적인 신앙을 넘어, 영적 지행합일(知行合一)과 거룩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역을 통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세상의 소리를 압도하는 교회의 영광이 드러나고 선포되기를 소원한다.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는 팬데믹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 ‘창조적 분리’로 나아간다는 복음적 명제를 실천하고 있다. 교회는 생명을 구하는 복음 사역에 매진하고 빛과 소금으로서 사명을 다하는 교회의 정체성을 우선시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교회가 지난 9일부터 진행 중인 ‘제18차 특별새벽부흥예배(이하 특새)’에는 매일 1만 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특새는 사랑의교회 예배당과 실시간 온라인으로 해외와 전국 교회에서 진행 중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선한 영향력을 선포하는 기도의 대장정이라는 게 교계의 평가다. 특새는 오정현 목사가 사랑의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한 뒤 시작해 올해로 18년째다. 이번 특새는 오 목사가 14일 메시지를 전하는 마지막 일정을 남겨 놓고 있다. 앞서 릭 워렌 목사(새들백교회),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빌리그래함전도협회),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김회권 목사(숭실대), 브라이언 박 목사(CTS콜링갓) 등 국내외 주요 기독교 지도자들이 강사로 나서 지구촌과 대한민국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사랑의교회는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던 2월 나라와 민족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사랑 투게더 정오기도회’를 시작했다. 이 기도회는 평일 정오에 유튜브 채널(SaRang On)과 사랑의교회 홈페이지(www.sarang.org)를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된다.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와 로렌스 통 목사(OM국제선교회) 등 국내외 각계 지도자들이 참여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Rang Global Academy:SaGA)’의 행보도 주목된다. 연결과 공유, 참여와 개방, 협력의 방향성을 지향하는 혁신적 배움터다. 이 아카데미는 ‘21세기 영적 집현전, 영적 NGO’를 표방하며 제자훈련과 예배, 일터선교 등의 학문적 소양을 기르는 것을 기본으로 글로벌 파트너십과 네트워킹을 통한 외연 확대 및 리더십, 문화예술과 상담 그리고 치유 등의 융합형 학습을 추구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994년 총무원장 3선 연임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난무했던 이른바 ‘조계종 사태’로 승단에서 영구 추방됐던 서의현 전 총무원장(84)이 승적 회복에 이어 26년 만에 종단의 최고 법계인 대종사(大宗師)에 오르게 돼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조계종의 국회격인 중앙종회는 12일 정기회를 열어 서 전 원장을 포함한 스님 23명에 대한 대종사 법계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대종사는 수행력과 지도력을 갖춘 승랍 40년 이상, 연령 70세 이상의 스님들에게 종단이 부여하는 최고 지위다. 종단에서 쫓겨나는 멸빈(滅擯·승단에서 영구추방) 징계를 받은 이가 대종사에 오르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앞으로 원로회의 결정이 남아 있지만 최근 종단 내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통과가 어렵지 않다는 분석이다. 서 전 원장은 1994년 총무원장 3선 연임을 시도하다 종단 개혁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시도가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총무원 측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고, 사찰 내 경찰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서 전 원장은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전국승려대회가 그의 멸빈을 결의하는 등 반발이 거세지자 2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종단에서 꾸려진 개혁회의는 승려대회 결의에 따라 서 전 원장을 승적에서 삭제했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서 전 원장이 종단을 움직이는 실세들과 교류하며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2015년 ‘당시 징계 의결서를 받지 못했다’며 돌연 멸빈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종단 안팎에서 재심 결정이 ‘멸빈자는 복권할 수 없다’는 종헌을 위배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서 전 원장은 결국 공권정지 3년으로 감형을 받았다. 서 전 원장의 승적 회복을 추진해온 측에서는 당사자가 80대인 데다 깊이 참회하고 있다는 것을 승적 회복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대종사 품계를 주는 것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교계 단체인 신대승네트워크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1994년 종단 개혁정신에 위배된 서 전 총무원장의 승적 복원과 대종사 법계 품수 추진은 무효”라며 “이는 종단 법계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어른스님과 선지식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밝혔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우리 역사의 뿌리와 건국이념을 되새기고, 이를 나침반으로 21세기 지구촌 인류가 나아갈 상생(相生)의 길을 모색하는 ‘2020 세계 개천(開天)문화대축제’가 15일 열린다. 이 행사는 지구촌에 진출한 재외동포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한류 팬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온택트 빅이벤트’로 기획됐다. 주최는 우리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펼쳐온 (사)대한사랑. 이날 오후2시부터 대전 STB상생방송 메인홀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STB상생방송과 대한사랑의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된다. 행사는 한국과 한국인의 시원과 역사를 밝히고 그 건국이념과 개천정신을 돌아보는 ‘신시개천(神市開天)을 말하다’, 동방의 원형문화와 동학의 정신으로 지구촌의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이제 다시 개천을 선포하라’로 이어진다. 대한사랑 상임고문인 안경전 STB상생방송 이사장의 특별강연과 가수 김연자, 록밴드 크라잉넛, 케이팝 댄스팀의 축하 무대도 예정돼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방역 지침에 따라 행사장에서는 지정좌석제를 실시한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3일 광주광역시 무각사 경내로 들어서니 뜻밖에 석불(石佛)의 향연이 펼쳐졌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4면에 부처를 새긴 사방불(四方佛)의 미소다. 높이 3.5m에 무게만 18t에 이르는 화강암 원석에 동쪽 관세음보살, 서쪽 지장보살, 남쪽 석가모니불, 북쪽 비로자나불을 새겼다. 큰 부처 사이에 중생의 염원을 담은 108개의 작은 부처, 대승불교의 ‘6바라밀 실천’을 상징하는 여섯 부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남쪽과 서쪽에 있는 두 쌍의 손이다. 몇몇 불자는 여기에 자신의 두 손을 맞춰 대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대형 석불 31점을 비롯해 작품 50여 점을 전시하는 ‘돌에 새긴 희망의 염화미소’전이 내년 10월 31일까지 이곳 경내와 로터스갤러리에서 열린다. 작품 수와 전시기간에서 유례가 없는 대규모 석불 전시회다. 석불의 미소가 가득한 무각사에서 주지 청학 스님(67)과 오채현 작가(58)를 만났다. ―사방불이 압도적인 느낌이다. ▽오채현 작가(오)=처음 경주에서 돌을 보는 순간 ‘이 속에 부처님 네 분이 살아 계시다’고 생각했다. 경주가 고향이라 어릴 때부터 자주 본 남산 사방불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작업하다 막히면 돌 주변을 도는 탑돌이를 했다. 작품 완성에 10년 걸렸다. ▽청학 스님(청학)=불국사에 살 때 불상들을 자주 봤다. 경주 남산과 운주사(전남 화순) 석불들은 평범한 사람들, 민중의 얼굴이라 좋다. 이 시대에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 얼굴인데, 그런 부처님을 모시고 싶었다. 형편만 되면 이 부처님들을 계속 여기에 모시고 싶다. 하하. ―두 쌍의 손은 사방불의 미스터리인가. ▽오=무섭고 차갑기보다 따뜻한 부처님 상을 그리고 싶었다. 마음껏 만지면서 기도할 수 있는 부처님이다. ▽청학=작가가 숨겨놓은 신의 한 수다. 처음에 그 손자국을 얘기 안 했다. 나중에 손자국을 발견하고서 ‘바로 이거다’ 하며 손뼉을 쳤다. 석불에 손과 이마를 대는 게 최고의 예불이다. ▽오=요리하는 사람은 거기에 빠져 어떨 때는 맛있는지 모른다. 작가도 그렇다. 스님이 예술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어 내 작품을 꿰뚫어 봤다. ―오래된 석불들의 빛깔이 무각사와 잘 어울린다. ▽오=전시 공간이 도심 사찰이라 좋다. 우리 불교가 갈 방향 아닌가. 좋은 공간에 작품을 모시면 마음이 편하다. 딸을 잘 키워 좋은 곳으로 시집보낸 느낌이다. ▽청학=3년 전 지리산 쌍계사 쪽 토굴에 사는 도반을 찾았는데 거기서 오 작가의 작은 부처님을 우연히 봤다. 예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작가가 누구인지 묻고, 경기 파주시 작업실로 찾아갔다. 세상사가 모두 인연이라는 말이 딱 맞다. ―뒤편의 키가 큰 미륵불도 인상적이다. ▽오=높이 5m, 무게 16t이다. 미륵불은 미래에 오시는 부처님이고 민중의 희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얼굴도 인간적이고 개성도 강하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희망을 담아 부드럽게 표현했다. ▽청학=불교사를 볼 때 백제불교 이후 충청과 호남은 미륵신앙이 강했다. 운주사 부처님들은 민중불교의 상징이다. ▽오=운주사는 내게 ‘비상금’이나 마찬가지다. 작업이 막힐 때면 찾는다. ▽청학=21세기 오 작가의 손을 통해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혼이 만났다. 오 작가를 빼면 작가로서 불상에 접근하는 분이 거의 없다. ―석불들이 들어온 지난달 20일은 무각사에 말 그대로 ‘부처님 오신 날’인 셈이다. ▽청학=‘경주 남산 부처님(사방불)이 빛고을 광주에 나들이 왔다’는 생각이 스쳤다. 부처님들이 다른 곳에서 온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연이다. ▽오=다음에는 108나한을 소품으로 만들어 무각사에 모시고 싶다. 2년 정도 매주 수행하는 느낌으로 작업할 예정이다. ▽청학=코로나19로 2월부터 법회를 안 하다 9월에 처음 했다. 문 잠그고 기도하면서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 세상에 감사할 게 너무 많더라. 신도들을 한동안 못 보니까 기도가 더 간절해졌다. 의기양양했던 우리 삶을 되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머지 남아 있는 중노릇 동안 반성하며 살아갈 거다.광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29일 경기 김포시의 미래사목연구소. 2층 작은 기도 공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사진들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어머니와 함께 있던 초롱초롱한 눈매의 아이는 나중에 사제가 됐다. 생각에 잠기거나 기도하고, 웃는 차동엽 신부(1958∼2019). 생전 그는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저자이자 특유의 통찰력과 유머로 인생해설가로 불렸다. 평생 그가 전한 희망의 메시지는 가난과 오랜 병과의 싸움, 기도 속에서 체득한 ‘고통의 꽃’이었다. 차 신부 선종 1주기(12일)를 앞두고 그의 체취가 가득한 연구소에서 후임 소장인 김상인 신부(41)를 만났다. 그는 2권의 유고시집에 이어 최근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을 펴냈다. ―책을 쓰는 중 차 신부를 두 차례 꿈에서 만났다는데…. “(김 신부가 날짜가 적힌 휴대전화 메모를 보여주면서) 6월 3일, 그리고 16일 꿈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눈빛으로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준비도 안 된 내게 연구소를 맡기고 당신 책을 쓰고 있어 그런 것 같다. 두 번째는 강복(降福)을 주셔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책을 준비하는 내내 차 신부님과 함께한 느낌이었다.” ―차 신부의 육성과 김 신부의 분석이 어우러진 구성이 흥미롭다. “연대기로 쓸까 생각도 했지만 재미가 떨어졌다. 그런데 신부님이 이미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이라는 교과서를 남겼다. ‘나도 이렇게 써줘. 미리 준비해줬잖아’라고 하는 것 같았다.” ―7가지 선물로 긍정의 힘, 지혜, 귀한 말씨, 희망 등이 나오는데, 무엇이 핵심일까. “신부님 인생의 핵심은 고통,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희망 아닐까 생각한다. 여러 글에서 ‘나는 가난하게 살았고’ ‘나는 고통 속에 살았다’는 표현이 적지 않다. 아마도 어린 시절 가난과 B형 간염에서 시작해 간암으로 발전한 병과의 오랜 싸움 때문인 듯하다. 그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무지개 원리’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으로 힘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쓴 책이었다.” ―차 신부와 어떤 인연이 있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다. 신학생이던 2002년 연구소 ‘알바’생으로 인연을 맺었고 차 신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같은 사목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인천가톨릭대 교수로 있는 것도 그렇다.” 인천교구는 7일 오전 9시 인천가톨릭대 송도국제캠퍼스 카펠라관에서 차 신부의 선종 1주기를 맞아 심포지엄 ‘신앙과 삶’을 개최한다. 1주기 추모 미사는 12일 오후 2시 인천 서구 성직자 묘역에 열린다. ―교구장인 정신철 주교가 심포지엄 기조강연을 맡은 것은 이례적이다. “비슷한 시기 주교님은 프랑스 파리, 차 신부님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하며 교류가 많았다. 신앙과 삶의 괴리는 두 분의 공통된 고민이자 숱한 대화 주제였다. 심포지엄과 연구소 운영에서 주교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이른바 ‘차동엽 정신’은 무엇인가. “희망이다. 신부님은 그 메시지를 신앙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쉬운 언어와 글로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분이다.” ―기억나는 말이 있다면…. “사제들을 많이 사랑했다. ‘그들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고, 그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라고 했다.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전하지 못한 차 신부님의 말이 아직 있어 그 말들을 제대로 전해야 한다. 심포지엄이나 책 출간도 그런 일이 될 것이다. 유품 전시회도 계획 중이다. 무엇보다 차 신부님이 고민했던, ‘이 시대 사목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방향을 잡고 구체화하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큰 과제다.”김포=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성바오로딸수도회(관구장 이금희 수녀)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복합문화공간 ‘바오로딸 혜화나무’를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서원과 카페, 스튜디오, 소극장, 갤러리, 기도실과 경당을 갖췄다. 4층부터 6층까지는 수녀원으로 봉쇄구역이다. 대학로 개관으로 50년 가깝게 이어온 명동시대는 마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17일 이곳에서 열린 축복식에서 “이탈리아어로 ‘큰 나무’라는 뜻을 지닌 창립자 알베리오네 신부의 정신을 다양성이 공존하는 대학로에 심게 됐다”며 “혜화나무가 복음화를 위한 예비 선교의 장으로서 빛의 터전 역할을 다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금희 관구장은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초래된 비대면의 현실에서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의 영적 갈망을 채워주는 위로와 사랑의 샘터가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혜화나무는 콘서트와 연극, 전시회 중심의 다양한 문화활동과 신앙생활을 위한 기도와 영성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이 참여하는 아카데미도 열린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과 개혁 교단의 통합 15년을 기념하는 감사 예배가 열린다. 예장 합동(총회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사진)은 29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예장 합동·개혁 교단합동 15주년 감사 예배’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예배는 오정호(대전 새로남교회) 한기승(광주중앙교회) 목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개신교 최대 교단의 하나인 예장 합동은 1979년 개혁교단이 분리됐다가 2005년 다시 통합했다. 현재 소속 교회는 1만2000여 개로 추산된다. 1부에선 소 목사가 ‘부흥의 불꽃이 화합의 플랫폼 되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합동 교단이 우리나라를 화합하는 영적 플랫폼이 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2부에선 오정현 사랑의교회 목사의 감사 인사,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축사 등이 진행되고, 3부는 특별기도와 축하공연이 이어진다. 예장 합동 측은 “교단합동 15주년 감사 예배를 통해 앞으로 한국교회의 세움과 연합을 다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배우 이영애가 한 영화 속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금은 거슬리는 말… 가슴에 일렁이는 시시비비의 목소리를 잠시 접어두고 가만히 읊조린다. ‘제가 잘하겠습니다.” 부산 해운대구 대운사 주지이자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이사장인 주석 스님(50)이 최근 출간한 산문집 ‘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사진)의 일부다. 20일 쿠무다에서 만난 스님은 불교방송 ‘주석 스님의 마음대로 라디오’ 진행자이자 파티시에, 바리스타다.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이라는 뜻의 쿠무다는 2013년 설립돼 차와 디저트를 맛보면서 전시와 작은 음악회를 즐길 수 있는 지역 명소가 됐다. ―책 제목이 인상적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자신의 발밑을 잘 보라고 하지 않았나.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앞일을 걱정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책이 사람들에게 단 한 줄이라도 위안과 힘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의 살’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다가온다. “마음의 살이 쪄 있을 때가 있다. 마음에 다른 것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그러면 다른 사람 말이 들어오지 않고 상대방의 결함만을 보려고 한다.” 스님은 10대 후반인 1988년 법주사 수정암에서 승일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주석(珠昔)이란 흔치 않은 법명에는 사연이 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이끌려 사찰에 다니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중앙승가대 초대 학장 등을 지낸 석주(昔珠) 스님과 인연이 닿았다. 그때 석주 스님은 “나중에 출가하면 법명을 석주의 앞뒤를 바꿔 쓰면 어떻겠냐”고 했고, 그대로 법명이 됐다. ―은사 승일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은사는 냉철한 선객이었다. 하얀 고무신을 씻어드리면 ‘네 손이 닳고, 수세미와 물, 비누가 닳는다’며 정색을 하셨다. 세제를 쓰면 3000배 참회의 절까지 했다. 은사는 ‘촌음을 아껴 수행하고 공부하는 데 써라, 행색을 꾸미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고 하셨다.” ―책에는 반성문처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2009년 경남 함양군에 대운사를 중창했다. 힘들게 진행했지만 산중 사찰이어서 사람들이 오기가 힘들고 활용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2010년 부산 달맞이고개에 대운사 부산불교학당을 만들어 차와 음식, 문화, 강좌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운영했다. 그 씨앗이 쿠무다로 이어졌다.” ―도심으로 나온 지 10년, 몇 점이나 줄 수 있나. “70점. 쿠무다가 문화전법(文化傳法)을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만든 것 같다.” ―내년 3월 지하 2층, 지상 8층의 ‘쿠무다 명상 빌리지’(가칭)를 개관한다. 이제 ‘쿠무다 그룹’인가. “최대 주주는 지분 80% 이상을 가진 ○○은행이다(웃음). ‘1, 2년 하다 포기하겠지’ 하며 지켜보던 어른 스님들과 기업인들이 지원해 준 덕분이다. 지하는 클래식 공연장, 1∼2층은 커피와 차, 강좌가 있는 복합문화공간, 3∼4층은 사찰음식을 포함한 식문화공간, 6∼8층은 휴식까지 가능한 명상 빌리지로 운영할 계획이다.” ―파티시에, 바리스타에 쿠무다 운영까지 일이 많아 수행자의 삶이 방해받지는 않을까.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곳곳에 부처님이 있고, 세상사가 부처님 일 아닌 것이 없다. 기도와 수행이라는 기본만 지킨다면 부처님 일에서 벗어날 리가 없다.” ―코로나19 시대 마음 수련을 위한 조언을 달라. “고통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다. 슬픔을 생각하면 슬픔, 기쁨을 생각하면 기쁨이 찾아온다. 새로운 세상과 나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필요하다. 지금의 아픔에만 매몰되지 말고 담담하게 다음 단계로 건너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봉암사 수좌(首座·참선 위주로 수행하는 선승)의 삶을 살다가 지난해 입적한 적명 스님의 삶을 회고하는 책 ‘적명을 말하다’(사유수·사진)가 최근 출간됐다.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경북 봉화 축서사 문수선원장 무여 스님, 충북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상임대표 의정 스님 등 16명의 수행자를 ‘산승불회’ ‘진광불휘’ ‘흠모’ 등의 유철주 작가가 인터뷰해 수좌로 살다 수좌로 죽는 게 꿈이었던 적명의 삶과 길을 담아냈다. 깨달음을 주제로 종종 ‘맞짱 토론’을 벌였다는 도법 스님(전북 남원 실상사 회주)의 회고가 흥미롭다. 화두를 들고 참선 위주로 수행하는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하는 적명 스님과 수행 및 일상의 삶,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도법 스님은 만나면 해가 뜨는지 지는지 모를 정도로 토론했다. 후배 도법 스님이 거세게 따졌다. “깨달은 도인이 나와야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몇십 년째 같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스님의 현재 상태는 어떤지 말씀 좀 해보시죠.” 적명 스님은 답했다. “갈 길이 바쁜 주인이 당나귀 코앞에 당근을 매달아 두는 꾀를 부렸지.…코앞의 당근을 먹으려고 죽기 살기로 힘을 더 내는 당나귀가 내 상태야. 조금만 더 하면 금방 당근을 먹을 것 같은데…. 하하.”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그에게는 몇 가지 길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농부를 꿈꿨다. 고교 1학년 때 A.J.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를 읽고 사제의 길을 걷고 싶어 신학교 진학을 원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결정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신부의 조언으로 1983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집안에서는 학자의 삶을 권했지만 군 복무 뒤 그의 길은 더욱 확실해졌다. 1990년 뒤늦게 가톨릭대 신학과에 입학하고 1996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이자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인 김평만 신부(57·세례명 유스티노) 얘기다. 김 신부는 최근 ‘유스티노 신부의 치유의 순례기’를 펴냈다. 보좌신부 시절 인연을 맺은 신자들과 함께한 11일간의 이탈리아 치유 여행을 담았다. ―주임신부도 아닌 보좌신부였는데 20여 년 인연이 이어졌다. “3년간 보좌신부로 있다 6년간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곧바로 의료원으로 왔다. 그러니 본당 주임신부 경험이 없다. 젊은 시절, 옛 서울 수유동 본당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좋은 기억이 있었는지 본당이 없는 저와 1년에 몇 차례 교류가 이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순례여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올 2월 초 귀국했는데 2주 뒤 팬데믹으로 번졌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만난 분들이 코로나19로 세상을 등져 마음이 아프다.” ―책을 출간한 계기는…. “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귀국하고 개학이 늦어져 6주 정도 여유가 생겨 기록을 정리하게 됐다. 무엇보다 발달장애인 모임(솔봉이)의 어머니들을 돕고 싶었다. ‘자식이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분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 출간도 자활센터 건립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의미가 있다.” ―‘전설의 로마 가이드’였다는데…. “유학 시절 은사가 예수회 후라도 신부님이다. 그분 가르침이 사제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마다 제자들과 로마의 성당, 성지 순례를 했다. 유학 중인 분들이 대부분 언어와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휴식을 원했는데 저는 순례가 적성에 맞았다. 로마 구석구석을 다닌 덕분에 나중에 제가 가이드한 분들로부터 과분한 찬사를 받게 됐다.” ―로마의 정신적 유산은 무엇인가. “로마는 인류사를 대표하는 정신적 유산의 보고다. 자치도시에 있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로마인의 광장. 정치 상업 종교 시설이 밀집된 곳)’는 세상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라틴어 레푸블리카(Republica)에서 유래한 공화정은 시민의 참여로 공적인 일을 하는 정치구조다. 소통과 참여 시스템이야말로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 된 원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세 곳을 꼽는다면…. “먼저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작품으로도 훌륭하지만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한다. 다음으로 2000년간의 로마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클레멘스 성당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흔적이 가득한 아시시다.”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면, 하느님을 우리 영혼에 모시기 위해서는 ‘세속과 거리 두기’ ‘영성적 거리 두기’도 필요하다. 청빈 정결 순명으로 상징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오늘날 환경과 불평등의 문제, 청년과 공동체의 위기가 심각하다. 경제학을 전공해 근대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의 장단점을 두루 접했다. 사제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경제학’을 주제로 책을 낼 계획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음식 작가 임선영 씨가 신작 ‘음식에도 마스크를 씌워야 하나요’(마음의숲·사진)를 펴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식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책이다. 예를 들어 도라지는 가래를 없애고 기침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어 기침약의 원료로 쓰인다. 도라지를 비롯해 마늘과 생강, 무와 순무 등을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는 식재료로 꼽았다. 책은 몸과 음식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탐구해 건강한 다이어트 법과 건강보조제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소비자와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생산자의 긴밀한 유대가 바이러스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셰프의 맛집’ ‘중국요리 백과사전’ 등을 펴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6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지하상가에 있는 이음교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신자들의 발길이 잦아든 이곳에 이음교회 이태훈 목사(40)와 인근 153예인교회 최종철 목사(50), 기쁨의교회 정신일 목사(51)가 모였다. 세 교회는 올 8월부터 온라인 공동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최 목사가 설교를 기획하고 막내격인 이 목사가 촬영과 음향을, 개신교계 출판사를 오래 운영해 온 정 목사가 영상 편집을 담당한다. 설교는 세 목회자가 돌아가며 맡고 있다. 코로나19로 세 교회의 출석 신자는 모두 합해도 50명을 겨우 넘길 정도로 절체절명의 위기다. 소속 교단도 다른 작은 교회 세 목회자의 분투기를 들어 봤다. ―어떻게 온라인 공동 예배를 시작했나. ▽최종철=세 교회가 차로 10∼15분 거리에 있다. 같은 동네의 작은 개척교회라는 공통점이 있어 평소 주일(일요일) 설교를 부탁할 정도로 유대감을 쌓은 게 밑거름이 됐다. ▽이태훈=모두 힘든데 예배를 같이 보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온라인 예배를 하는데 힘을 합해 괜찮은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정신일=촬영에 서너 시간, 편집까지 감안하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 그런데 준비하면서 동병상련의 처지라 내가 힐링(치유)이 됐다(웃음). ―신자들 반응은 어떤가. ▽이=작은 시도인데 주변 목회자는 물론이고 교단에서 어떻게 동영상을 찍고 편집하느냐 같은 문의가 적지 않았다. ▽정=출판사 경험 때문에 편집을 맡고 있는데 온라인 예배를 준비하면서 영상을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신자들이 다른 교회 목사님 설교를 보면서 신선했다며 더 좋아한다. ‘우리 교회’라는 생각은 목회자들의 착각일지 모른다. ―코로나19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정=저부터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고,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신앙적 각성이 들었다. 성경의 신앙대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다. 코로나19로 대면이 어려워지면서 각종 교제가 사라진 것이 너무 아쉽다. ▽이=많은 신자가 교회 건물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신앙의 관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보게 됐다. 아쉽지만 젊은 분들이 교회를 많이 떠났다. 사실 교회 청년들은 영성적인 충전 없이 일만 하는 등 희생이 컸다. ▽최=코로나19 이전에도 어려웠지만, 이번 사태로 작은 교회들이 쓸려나갔다. 지금은 목회자나 신자 모두에게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광야시대가 아닌가 싶다. ―코로나19 이후를 어떻게 전망하나. ▽정=운영하고 있는 개신교 출판사 매출의 80∼90%가 사라졌다. 이 위기와 진통 속에서도 긍정의 희망을 보고 있다. 신자 수는 줄어들지 몰라도 남은 분들은 더 믿음을 갈구할 것이다. ▽최=이 또한 지나가리라. 초대교회를 포함해 개척교회가 쉽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교회가 참 미안합니다’라는 포스터를 붙여놨더니, 누군가 거기에 ‘교회가 미안해하세요’라고 써 놨다. 사회는 논란이 되고 있는 전광훈 목사의 교회와 다른 교회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교회가 교회답게, 목사가 목사답게 되라는 게 세상 사람들의 뜻인 것 같다. ▽이=한국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항상 변화의 선두에 서 있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부정적인 모습이 더 많았다. 교회는 고인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되어야 살아갈 수 있다. 교회는 계속 흘러가야 한다. ▽최=인천시가 운영하는 희망일자리 일을 하면서 신자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분들이 원하는 목회자는 위대한 모세가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동네 목사였다.인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우리는 늘 소통하고 있지만 사실 어떤 감정도 나누고 있지 않다.’ 이처럼 비대면, 비접촉의 요즘 세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도 드물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것을 진실한 감정의 공유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공감과 기술, 소셜미디어 등을 주제로 글을 써온 32세의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자처한다. 무제한 인터넷으로 세계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사무실에서 하루 8시간을 일하고, 하루 평균 4시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SNS에 능숙한 저자의 키워드는 공감이다. 온라인 세계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인종차별, 여성 혐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비난, 특정인에 대한 무책임한 공격이 발생하는 ‘전쟁터’다. 특히 ‘좋아요’와 익명의 가면이 지배하는 온라인 세계에서는 의견이 다른 누군가를 “쓰레기”라고 비난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마주한다면 거의 불가능한 표현이다. 책은 저자가 경험한 사례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온라인 세계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할 방법들을 모색한다. “인간을 정말 인간답게 만드는 것, 즉 공감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디스토피아적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적응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직장 등에서 쓰이는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어떻게 공감을 확산시킬 수 있는지도 흥미롭게 다뤘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형법상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정부는 개정안 마련에 고심을 거듭해왔다. 정부는 지난해 5∼10월 약 6개월 동안 여성계와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 인사를 만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특히 여성계를 중심으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입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전달됐다.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임신 시기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지 말고 낙태죄를 전면 폐지해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낙태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은 지난달 “문재인 정부는 낙태죄 완전 폐지로 후퇴가 아닌 진전을 택하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종교계는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가톨릭 교구 협의체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올 8월 주교단 명의의 성명에서 “낙태죄 폐지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포기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교단은 이 성명에서 “국가가 법을 통해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한다면, 이는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과 약자 보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나아가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도 8월 법무부에 낙태죄 입법 추진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냈고,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천주교 주교단과의 간담회에서도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주교회의 홍보국장인 안봉환 신부는 6일 “정부의 입법 예고에 대한 교회 차원의 공식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태아가 수정된 이후 생명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가톨릭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개신교는 지난해 헌재 결정 당시 단체의 성향에 따라 다른 입장을 보였다. 보수 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은 반대 입장, 진보적 성향의 단체들은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불교계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여성계와 종교계는 입법예고 이후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직접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여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김갑식 문화전문 기자}

“스님, 뭐 하세요?” “보시다시피 커피 내리는 중이죠.” 지난달 24일 전북 고창군 선운교육문화회관 1층의 담마 북카페.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는 ‘민머리 바리스타’의 모습이 낯설다. 앞치마는 화사한 분홍색, 안에는 잿빛 승복, 머리는 반짝 빛난다. 두 차례 선운사 주지를 지낸 법만 스님(59)이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최연소 본사(本寺) 주지를 지낸 스님은 지난해 10월 완공된 회관의 관장을 맡고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언제 땄나. “지난겨울 제자와 함께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녹차나 보이차는 박사 수준이지만 커피도 대접하고 싶었다. 요즘 여건도 힘든데 커피도 만들고, 아니면 설거지라도 해서 힘을 보태고 싶었다.” ―북카페가 널찍하고 분위기도 좋다. “한쪽에는 스님들 전용 드립 바도 있다. 그곳에서 커피뿐 아니라 전통차도 마실 수 있다. 선운사 주변 녹차밭이 33만여 m²(약 10만 평)이다. 여건이 된다면 녹차, 청차, 황차 등 다양한 차도 선보이고 싶다.” ―주지 퇴임 뒤 선방 수행에 전념한다고 들었는데…. “2014년 주지 소임 8년을 마친 뒤 선운사 말사(末寺)인 참당암 선방에서 기도하고 수행하며 살았다. 사람에 시달리지 않고 잘 지냈는데…. 불교환경연대에서 상임대표를 맡아달라고 찾아왔다. 환경 문제만큼은 불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 차마 거절하지 못해 지난해부터 다시 밖으로 나서게 됐다.” ―이곳 관장 직함도 맡고 있다. “내가 주지로 있을 때 부지를 마련했고, 사제이자 선운사 주지인 경우 스님이 건축을 마무리 지었다. 이 지역에 특정 종교를 떠나 육아에서 노후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개관을 준비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생겼는데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에서 관장까지 맡았다.” ―본사 주지와 관장 중 어느 소임이 더 어려운가. “어울리지 않는 감투라 당연히 관장이다(웃음). 불교 쪽은 오랜 전통에 스님과 신도들의 힘이라는 큰 잠재력이 있다. 반면 여기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발생해 모든 게 버겁다.” 선운교육문화회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명상실인 ‘보리수 아래’를 비롯해 북카페와 갤러리, 시니어클럽과 육아공동나눔터,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로컬푸드 판매를 위한 공간 등이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건축은 물론이고 운영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은데 경우 스님의 원력(願力)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선운사뿐 아니라 말사 70곳의 스님과 신도들도 함께 도와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은 없나. “이곳 문을 열고 나니 자영업 하는 분들의 고통을 그대로 알겠더라. 북카페에서 개관을 기념하는 작은 음악회도 열고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했지만 코로나19 와중에 손님들을 모실 수가 없었다. 상황을 봐서 작가 초청 강연과 작은 음악회 같은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도서관도 문을 열 계획이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삶의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이전까지의 삶이 인간 위주로 소비적이고 전방위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는 자연과의 공생 속에 가족과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작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30여 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친절함은 바뀐 게 없었다.” 최근 서울의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에서 만난 제임스 알 래스번드 장로 (57·사진)의 말이다. 1982∼1983년 선교사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 미국 브리검영대 법학대학원장과 부총장을 지냈다. 그는 북아시아 회장단 3인 중 한 사람으로 한국과 몽골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 교단은 보수를 받는 목회자가 없고 직업을 가진 평신자들이 지도자로 활동한다.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은 어떤가. “미국은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인들은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지금도 거부감이 크다. 지난달 한국에 왔는데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놀랐다. 한국의 신중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인상적이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선교사로 있을 때 연탄을 전달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면 ‘예수님은 관심 없지만 물 한 잔 먹고 가라’고 권하던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 교회의 상황은 어떤가. “신자들이 많은 미국 유타주를 예로 들면 3월부터 7월까지 온라인 예배를 진행했다. 7월 이후 상황이 나아졌지만 50명 이하 참석 규정을 따르고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가정예배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평신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한 경험이 쌓여 있기 때문에 잘 대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장 예배 제한 조치를 둘러싼 갈등도 있다. “우리는 세계에 많은 교회가 있는데 황금룰이 있다. 다른 사람이 네게 해주길 원하는 것처럼 당신이 먼저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세계의 각 교회가 소속된 국가와 지역의 법을 지키고 있다.” ―정치와 종교계의 관계는 어떻게 보나. 독실한 신자인 밋 롬니 상원의원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우리 교회는 매년 선언이나 입장을 통해 정치적으로 중립임을 밝혀왔다. 올해 대선은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 선거와 관련해 ‘6주면 모든 게 다 이뤄진다’는 유머가 있다(웃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알 수 없다.” ―신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넬슨 (세계)회장이 지난해 신자들에게 당부한 말이 있다. ‘우리 교회는 가정이 중심이고 교회가 이를 뒷받침한다. 교회의 목적은 교회 자체를 위한 게 아니라 신자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 영성(靈性)은 교회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의해 드러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현대인들은 대부분 만성적인 업무 스트레스와 휴식 부족을 호소한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주어졌을 때 제대로 못 쉬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책은 휴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를 통계와 고정관념을 깬 주장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작가이자 방송인인 저자는 자신이 진행하는 BBC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이른바 ‘휴식 테스트(Rest Test)’를 실시했다. 135개국 1만8000여 명이 이 조사에 응했다. 뇌과학자와 심리학자, 시인과 작곡가, 역사학자와 지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2년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끝에 ‘가장 휴식이 된다고 여기는 10가지’를 추렸다. 책은 10위 ‘나를 돌보는 명상’을 시작으로 1위까지 역순으로 사례와 함께 저자의 조언을 담았다. 현대인들이 많은 시간을 쓰는 온라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은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상위 5위까지 모두 혼자서 하는 것이었다. TV 시청은 9위에 올랐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보통 사람이 75세가 될 때까지 TV를 보는 데 쓴 시간은 무려 9년이다. TV 시청은 혼자서 즐길 수 있고 상대방과 대화해야 하는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전자 난로’가 됐다는 설명이다. 단, TV를 너무 오래 봤다는 죄책감을 버려야 휴식이 될 수 있다. 놀랍게도 1위는 독서였다. 독서를 통해 걱정거리로부터 해방되거나 반대로 몰입할 수 있고, 육체적 긴장과 이완 등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잘 쉬는 기술의 핵심은 자신만의 ‘휴식 레시피’를 만드는 것. 휴식과 일의 절대적인 구분은 없고 상대적이다. 사람에 따라 운동은 고된 의무가 될 수 있고, 즐거운 휴식이 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사람들과의 적절한 거리였다. 가족과 친구들에게서조차 벗어나 있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라는 것이다. 독서와 산책, 목욕, 음악 듣기, 아무것도 안 하기 등 적절한 길이의 고독이 필요한 세상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말린 대추야자 300g에 물 4컵을 붓고 약한 불에서 죽처럼 될 때까지 끓여주세요. 중요한 것은 불 조절입니다.” 17일 평소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는 성바오로딸수도회(서울 성북구 오현로) 한쪽에서는 요리와 촬영이 한창이었다.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윤일마 수녀와 함께하는 성경시대 음식 만들기’ 시즌2의 촬영 현장이다. 이 채널은 지난달 4일 첫 회가 나간 뒤 성경과 음식, 경상도 억양이 남아 있는 윤 수녀의 독특한 개성이 어우러져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시즌2는 10월 20일부터 매주 화요일에 업데이트된다. ―시즌1의 반응은 어땠나. “댓글을 보니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느껴져 안타까웠다. ‘일상에서 먹는 빵과 요구르트가 갑자기 거룩하게 느껴진다’ ‘오늘 올리브 사서 요리해 보겠다’는 글도 있었다.” ―성경을 음식과 연결한 콘셉트가 특이하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 때마다 예수님 행적뿐 아니라 당시 생활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미사나 기도 모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음식을 통해 그 고통을 나누고 위로하고 싶었다. 예수님 시대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우리 힘은 그분’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성경에 구체적인 요리법은 나오지 않는데…. “우리 수도회에서 출간한 ‘성경시대 음식’이란 책을 기본으로 주석서를 참고했다. 복잡한 요리보다는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선택했다.” ―본인의 요리 실력은…. “요리를 좋아하는데 강의가 많아 자주 하지 못한다. 다른 수녀님들이 가지튀김은 맛있다고 하더라.” 성바오로딸수도회는 기독교 최대의 전도자였던 바오로 성인의 삶을 본받아 책과 방송 등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복음을 전파해 왔다. 바오로는 2만 km에 이르는 선교여행과 신약성서 27개의 문서 중 13편에 달하는 서신서를 남겼다. 1999년 종신서원한 윤 수녀는 ‘새로 나는 성경 공부’ ‘예수님! 오늘은 어디 계세요?’ 등의 강연으로 알려져 있다. ―얼굴은 안 나오고 손만 출연하는 ‘통통손’ 캐릭터가 흥미롭다. “그분이 바쁘셔서 시즌2에는 빠졌다. 시즌2에는 음식을 예쁘게 담아주는 ‘예술손’과 재료를 다듬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알뜰손’이 등장한다. 통통손은 시즌3에서 다시 볼 수도 있다.”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수녀님 4명이 한 팀을 이뤄 음악과 촬영, 편집 등에서 수고해 주고 있다. 전문가들이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즌2를 소개한다면…. “대추야자, 렌즈콩과 보리 스튜, 페타치즈 빵, 닭고기 박하 소스, 로마식 호두과자 등이 예정돼 있다. 음식과 함께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코로나19로 어려울수록 그 고통과 기쁨을 가족과 이웃 등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었으면 좋겠다. 올리브는 기쁨의 상징인데 누가 기쁨을 주겠는가. 바로 곁에 있는 가족이 기쁨의 올리브다.” ―팬들이 많다. “수도원에 안 왔으면 개그우먼이 됐을지도 모른다(웃음). 제 바람 중 하나가 연예인들의 지도수녀가 되는 것이다. 그분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선한 기운이 널리 퍼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구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지구, 나아가 우주의 환경은 우리 종(種)의 출현과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문명과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오리진’은 수많은 질문과 답으로 가득한 책이다. 한 번쯤 궁금증을 가졌지만 그림이 너무 커서 부분만 알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문제들이다. 지난해 출간됐으며 원제는 기원(起源)이라는 의미의 ‘Origins’. 영국 웨스터민스터대 교수이자 대중적인 과학 저술과 방송 출연으로 알려진 저자 루이스 다트넬(40)의 답은 명쾌하다.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호모사피엔스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주역이었음을 주장하고 싶을 법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비유한다. “인류의 역사 전체는 사실상 정적인 지도(지구를 다룬 영화에서는 단 한 프레임에 해당하는) 위에서 펼쳐졌다.” 인류는 한 프레임, 또는 그 프레임의 ‘티끌’도 안 되는 역사를 이끌었을지는 몰라도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은 언제나 지구 자체였다는 것이다. 다만 그 디렉션에 맞춘 인류의 놀라운 적응력도 기적이다. 책의 1∼3장은 지구가 빚어낸 인류의 진화와 문명의 탄생, 4∼9장은 암석과 금속, 해류와 바람, 기후, 석탄과 석유 등 지구의 구성 요소를 중심으로 다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서술 방식이다. 주목할 만한 시선은 우리가 흔히 자연현상이라고 말하거나 소비한다고 생각하는 객체의 입장에서 바라봤다는 것이다. 가령 피라미드는 누가 만들었을까.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상식적인 답변이겠지만 저자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쿠푸왕의 대(大)피라미드는 평균 무게가 2.5t인 석회암 블록이 250만 개나 쓰였는데 돌 표면에서 유공충이라는 해양 동물의 화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유공충들이 죽자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동전 모양의 껍데기들이 거대한 더미를 이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이것들이 들러붙어 석회암이 됐다. 문명을 장식하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 재료의 하나는 아주 오래전 지구에서 가장 단순한 생물들이 만든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때로 과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과학 지질학 해양학 고생물학 고고학 역사학 등을 종합하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흥미로운 접근법과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의 블랙벨트(Black Belt)는 앨라배마와 미시시피주를 지나가며 뻗어 있는, 농업생산성이 높은 어두운 색의 퇴적층 띠를 가리킨다. 이 비옥한 토양은 흑인 노예 노동과 결합한 목화 재배에 적합했다. 목화산업이 하락세로 접어들자 흑인들이 이주했지만 상당수는 남아 있었고 이들은 나중에 흑인 민권운동과 민주당 지지의 중심세력이 됐다. 네덜란드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바다에 잠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제방과 풍차를 발전시켰다.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이고 관리하는 데 필요했던 것이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과 중앙은행이었다.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지역이 탄전(炭田) 지역과 거의 일치하는 영국의 ‘정치지도’는 아직도 유효한 분석이다. 지구와 인간의 미래는 어떨까? 에필로그에 실린 저자의 말이다. “지구는 인간의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마련했고, 그 자연 지형과 자원은 계속해서 인류 문명의 나아갈 방향을 이끌고 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