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살이 찌면 남의 말이 안들려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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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운사 주지 주석 스님
함양 깊은 산속에 절이 있다보니 사람들이 못 찾아와 절이 도시로
2010년 달맞이고개에 불교학당, 차-공연 즐기는 ‘쿠무다’로 이어져
前조계종 총무원장 석주 스님이 이름 뒤집어 주석으로 법명 지어줘

부산 대운사 주지이자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이사장인 주석 스님은 “한 수행자가 수행을 철저히 잘하면 그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쿠무다에서 일하던 두 명의 바리스타도 출가했다고 한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부산 대운사 주지이자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이사장인 주석 스님은 “한 수행자가 수행을 철저히 잘하면 그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쿠무다에서 일하던 두 명의 바리스타도 출가했다고 한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배우 이영애가 한 영화 속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금은 거슬리는 말… 가슴에 일렁이는 시시비비의 목소리를 잠시 접어두고 가만히 읊조린다. ‘제가 잘하겠습니다.”

부산 해운대구 대운사 주지이자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이사장인 주석 스님(50)이 최근 출간한 산문집 ‘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사진)의 일부다. 20일 쿠무다에서 만난 스님은 불교방송 ‘주석 스님의 마음대로 라디오’ 진행자이자 파티시에, 바리스타다.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이라는 뜻의 쿠무다는 2013년 설립돼 차와 디저트를 맛보면서 전시와 작은 음악회를 즐길 수 있는 지역 명소가 됐다.

―책 제목이 인상적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자신의 발밑을 잘 보라고 하지 않았나.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앞일을 걱정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책이 사람들에게 단 한 줄이라도 위안과 힘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의 살’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다가온다.

“마음의 살이 쪄 있을 때가 있다. 마음에 다른 것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그러면 다른 사람 말이 들어오지 않고 상대방의 결함만을 보려고 한다.”

스님은 10대 후반인 1988년 법주사 수정암에서 승일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주석(珠昔)이란 흔치 않은 법명에는 사연이 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이끌려 사찰에 다니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중앙승가대 초대 학장 등을 지낸 석주(昔珠) 스님과 인연이 닿았다. 그때 석주 스님은 “나중에 출가하면 법명을 석주의 앞뒤를 바꿔 쓰면 어떻겠냐”고 했고, 그대로 법명이 됐다.

―은사 승일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은사는 냉철한 선객이었다. 하얀 고무신을 씻어드리면 ‘네 손이 닳고, 수세미와 물, 비누가 닳는다’며 정색을 하셨다. 세제를 쓰면 3000배 참회의 절까지 했다. 은사는 ‘촌음을 아껴 수행하고 공부하는 데 써라, 행색을 꾸미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고 하셨다.”

―책에는 반성문처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2009년 경남 함양군에 대운사를 중창했다. 힘들게 진행했지만 산중 사찰이어서 사람들이 오기가 힘들고 활용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2010년 부산 달맞이고개에 대운사 부산불교학당을 만들어 차와 음식, 문화, 강좌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운영했다. 그 씨앗이 쿠무다로 이어졌다.”

―도심으로 나온 지 10년, 몇 점이나 줄 수 있나.

“70점. 쿠무다가 문화전법(文化傳法)을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만든 것 같다.”

―내년 3월 지하 2층, 지상 8층의 ‘쿠무다 명상 빌리지’(가칭)를 개관한다. 이제 ‘쿠무다 그룹’인가.

“최대 주주는 지분 80% 이상을 가진 ○○은행이다(웃음). ‘1, 2년 하다 포기하겠지’ 하며 지켜보던 어른 스님들과 기업인들이 지원해 준 덕분이다. 지하는 클래식 공연장, 1∼2층은 커피와 차, 강좌가 있는 복합문화공간, 3∼4층은 사찰음식을 포함한 식문화공간, 6∼8층은 휴식까지 가능한 명상 빌리지로 운영할 계획이다.”

―파티시에, 바리스타에 쿠무다 운영까지 일이 많아 수행자의 삶이 방해받지는 않을까.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곳곳에 부처님이 있고, 세상사가 부처님 일 아닌 것이 없다. 기도와 수행이라는 기본만 지킨다면 부처님 일에서 벗어날 리가 없다.”

―코로나19 시대 마음 수련을 위한 조언을 달라.

“고통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다. 슬픔을 생각하면 슬픔, 기쁨을 생각하면 기쁨이 찾아온다. 새로운 세상과 나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필요하다. 지금의 아픔에만 매몰되지 말고 담담하게 다음 단계로 건너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대운사#주지#주석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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