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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해 한글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이자 현대시조 개척자인 가람 이병기 선생(1891∼1968·사진)을 기리는 강의실이 서울대에 만들어진다. 서울대 인문대는 12일 인문대학 14동 105호에 ‘가람 이병기 기념실’을 연다고 6일 밝혔다. 보통 학교 강의실이나 건물은 기부자 및 기업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는 많으나 선배 학자를 기리며 이름을 딴 강의실을 만드는 것은 이례적이다. 인문대 관계자는 “대학에 선배 학자와 학문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 한평생 한글과 국문학, 우리 역사를 위해 살다 가신 가람 선생을 기리는 기념실을 만들기로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인문대는 기념실을 강의실로 활용하며 학생들이 편하게 쉬고 책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벽 한편에는 가람이 지은 시조 ‘별’, 서울대 교가, 가람 선생의 약력이 쓰인 알림판이 설치된다. 가람 선생은 일제강점기 국문학 연구의 기틀을 다진 학자로 1921년 권덕규 임경재 등과 함께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해 우리말과 글의 연구 보급에 앞장섰다. 1930년 조선어철자법 제정위원으로 일하며 우리말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에 깊이 간여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6년부터 4년간 서울대 교수로 활동했고 6·25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전북대에서 강의하다 1956년 퇴임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의대에서 기초의학을 지망하면 ‘천연기념물’이라 불린다. 비싼 학비 내며 죽어라 공부했는데 결국 굶어 죽을 게 눈에 뻔하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서울 소재 의대 재학생 전모 씨(22)는 원래 기초의학을 공부해 난치병 치료법을 개발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의대 입학 후 상황을 파악해 보니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씨는 “기초의학을 하면 기본적으로 보수가 짜다. 대학 동기들과 똑같이 공부하며 고생했으니 억울해서라도 그냥 돈이나 많이 벌며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과 본보 기획팀이 톰슨로이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의학 분야 연구력에서 한국 유수 대학들의 위치는 30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2014년 기준으로 국내 1위인 울산대는 세계 랭킹 346위에 그쳤다. 국내 2위인 서울대는 358위, 3위인 연세대는 460위였다. 국내 최상위권 수재들이 몰리는 한국 의대가 내놓은 충격적인 성적이다.○ 최고 수재들만 갔는데 왜? 국내 최고 수재들을 모아 가르치는 국내 의과대학 교육의 현주소는 사실상 주입식 암기와 단순 손기술 전수를 통해 ‘의학 기술자’를 만드는 과정으로 전락했다. 서울대 의대의 경우 매년 150명 안팎이 졸업하지만 기초의학을 진로로 택하는 학생은 2, 3명 정도에 그친다. 처음 입학한 예과 학생들은 적지 않은 수가 기초의학 분야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6년 뒤엔 대부분 소신을 접고 성형외과를 비롯해 고수입이 보장되는 분야의 의사로 진로를 택하고 있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가 8월 발표한 2013년 전국 의대생·의학전문대학원생의 전공 선호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초의학 전공을 선호한다고 답한 학생은 단 2%에 그쳤다. 나머지 98%는 임상의학을 택했다. 이런 현상은 결국 돈 때문이다. 기초의학을 전공해 연구자가 되면 연구 환경도 좋지 않은 데다 기본 수입이 의사의 3분의 1 수준이다. 의대에서는 “뛰어난 두뇌, 고고한 소신, 무엇보다 부모님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기초의학을 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민호 서울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는 “졸업생 중 기초의학 연구를 하고 싶어도 연구 환경을 보고 포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입시 결과 최상위 학과에서 비롯된 자부심도 경제적 여건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수도, 전공 학생도 없는 악순환 의대생의 기초의학 기피 현상은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후배들을 가르칠 교육인력의 ‘구인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법의학교실은 자타가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하지만 의대 졸업생은 1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실정이다. 기생충학 미생물학 등 다른 기초의학 분야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이렇다 보니 기초의학 분야 교수진에는 의학이 아닌 생명과학 등을 전공한 교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의학적 시야를 갖고 있는 교수들이 줄어들면 기초의학 교육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업시간에도 은근히 “기초의학교실 교수가 되면 어떻겠느냐”는 식으로 홍보를 하지만 의대생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의대생 임모 씨(24)는 “예방의학 병리의학 등 기초의학 교수님들이 수업시간에 은근히 학생을 모집하는 발언을 한다. ‘지원자가 없는데 오면 잘해주겠다. 거의 교수직이 보장된다’고 하시지만 우리는 임상의학을 해서 의사가 되는 것보다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 과학자’ 양성해야 물론 한국 의학은 심장과 위, 뇌 분야 등 임상 의술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새로운 첨단 의료기술은 기초의학의 토대 위에서 발전하기 때문에 능력 있는 기초의학자를 양성하는 것은 선진 의료국가로 가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전문가들은 기초의학 연구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연구 중심 의학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대학별로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미국 의과대학은 진료 위주 의사 교육과 연구 중심 의학자 교육으로 미션과 학제가 특화 운영된다. 이에 따른 예산과 인력 투입도 다르다. 한 국공립대 의대 교수는 전국의 의대를 진료 중심 의대와 세계적 수준의 창의적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 중심 의대’로 분류해 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구 중심 의대는 의무적으로 신입생의 일정 비율을 의사과학자로 양성하도록 해야 한국 의학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낮은 수입도 문제지만 기초의학 연구자에 대한 장기적 투자와 연구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인재들이 기초의학에 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을 제고하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다. 김기수 울산대 의무부총장은 “의대생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의사가 되는 것보다 연구 업적을 내는 의사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 인프라 - 평판은 빼고 논문만 비교… 순수 연구실력 첫 평가 한국연구재단과 본보의 분석은 학교의 인프라나 국제적 평판이 중심이 되는 기존 대학평가들과 달리 논문 피인용 현황만을 활용해 순수하게 연구자·연구기관의 연구력을 평가한 것이다. 세계적 연구에 기여도가 높은 논문을 분석해 한국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위치를 평가한 첫 분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본 자료는 세계적인 학술정보 제공 기관인 톰슨로이터가 학술적 기여도가 높은 논문만 엄선한 ‘WoS CC(Web of Science Core Collection)’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2009∼2014년 발행 논문 중 피인용 횟수가 많은 상위 10% 논문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순위를 매길 때는 단순히 발행한 논문이 많거나 인용이 많이 된 것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피인용 횟수를 논문 수로 나눠 ‘연구력’에 초점을 맞췄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전주영 기자}
국내 최고의 인재가 모인 한국 의학계가 논문의 질적 수준에서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본보와 한국연구재단이 세계적인 학술정보 제공 기관인 톰슨로이터의 논문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논문 피인용 횟수와 발표 건수를 분석한 결과 국내 의대는 모두 300위권 밖으로 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기준으로 국내 의대 중 1위인 울산대 의대가 세계 346위, 2위인 서울대는 358위에 그쳤다. 본보와 한국연구재단은 의학과 약학, 화학, 재료공학(물리학 포함) 등 4개 기초과학 분야에서 피인용 횟수가 많은 세계 상위 10% 논문을 분석했다. 이들 4개 분야는 과학 분야 노벨상이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인 점을 감안해 선정했다. 피인용 상위 10%의 논문에 인용된 논문 수가 많은 연구자일수록 세계적인 우수 연구에 기여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논문 피인용 횟수를 활용해 연구자의 순수 연구력만을 평가한 것은 국내 최초다. 의학을 제외한 나머지 3개 분야에서 국내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2014년 기준 세 분야 모두 국내 1위는 서울대였다. 서울대는 재료공학 세계 15위, 화학 28위, 약학 62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 의대는 성적 상위 0.4% 최고 수재들이 진학하는 곳이다. 이런 의대가 연구 능력에서는 후진국 수준에 머무르며 나머지 과학 분야의 성적보다 뒤지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나오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의술은 최고로 평가되지만 기초의학은 그에 비해 한참 뒤져 있다는 게 이번 분석으로 드러났다. 이번 기회에 기초의학의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 범부처 중장기 정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일부터 2016년 각 부문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이어진다. 해마다 노벨상 과학 분야 수상자를 예측해 온 톰슨로이터가 최근 발표한 올 노벨상 후보 명단에는 여전히 한국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화학 등 일부 기초학문 분야와 달리 의학에서는 지금과 같이 기초의학을 도외시하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향후 몇십 년이 지나도 요원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전주영 aimhigh@donga.com·서형석·차길호 기자}
분석 결과 재료공학과 화학 분야에서는 서울대와 KAIST가 두드러졌다. 재료공학에서 국내 1위인 서울대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에서 10∼20위를 유지했다. 2010년부터 18위, 13위, 12위, 13위를 거쳐 2014년에는 15위에 올랐다. 특히 재료공학에서는 세계 100위 내 국내 대학은 총 8곳으로 나머지 세 분야보다 연구력에 있어 강세를 보였다. 2014년을 기준으로 국내 2위인 KAIST는 28위였다. 연세대(61위), 한양대(66위), 고려대(67위), 성균관대(75위), 포스텍(95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100위)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KAIST는 39위(2009년)에서 28위(2014년)로 올랐다. 연세대와 한양대도 2009년에는 각각 83위, 94위였지만 2014년 20여 계단 상승했다. 화학 분야의 경우 서울대와 KAIST 등 2곳이 세계 100위 내에 있었다. 서울대는 2009년 33위에서 2014년 28위로 올랐고 KAIST는 85위(2009년)에서 57위(2014년)로 자리 잡았다. 약학은 서울대(62위)만 100위 내에 있었다. 국내 2위인 연세대는 204위(2014년)로 국내 1, 2위의 격차가 컸다. 분야별 세계 랭킹에선 하버드대가 의학과 약학 분야에서, 중국과학원이 화학과 재료 분야에서 6년간 꾸준히 1위를 유지했다. 한국연구재단은 이번 분석을 계기로 톰슨로이터와 협약을 맺고 KCI(Korea Citation Index·한국판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논문에서 인용한 SCI 논문을 링크해 접근이 제한된 해외 논문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전주영기자 aimhigh@donga.com}

흔히 ‘연구자’라 하면 소극적인 성격에 두툼한 검은색 뿔테 안경, 책상에 앉아 몇 시간씩 골몰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의학과 약학, 화학, 재료공학 분야 논문 피인용에서 국내 최상위권에 오른 30대 신진 연구자들은 선배들과는 달랐다. 기존 위계질서에 위축되지 않고 풍부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뚝심 있게 추진하는 당돌함. 미래 한국의 과학계를 이끌 30대 신진 연구자들이 동아일보에 소개한 자신들의 연구 방법이다. 지방대에서 꾸준히 연구해 분야별 글로벌 논문 피인용 랭킹에서 국내 1등을 차지한 연구자도 눈에 띄었다.○ 신진 연구자들의 ‘당돌한 연구 문화’ 이재현 하버드대 연구원(37)은 20대 시절부터 모르는 게 생기면 지도교수에게 찾아가 꼬치꼬치 묻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을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다. 스승과 제자 간, 선후배 간 서열을 중시하는 전통과는 많이 달랐지만 이 연구원은 이런 자세 덕분에 연구 업적을 낼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는 “학부 시절에도 논문을 읽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무작정 선배를 찾아가 묻곤 했다”며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동료로서 선배와의 교류 또한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나노화학 분야 중 하나인 고체무기화학에 관해 쓴 논문 5건이 글로벌 연구 논문에 2053차례 인용돼 약학 분야에서 30대 신진 연구자 중 국내 1위에 올랐다. 과거의 도제식, 상명하복(上命下服)식 관계에서 벗어나 후배가 먼저 선배들에게 다가가는 도전적인 자세는 신진 연구자들의 새로운 경향이다. 수직적인 문화가 불편한 신진 연구자들이 이를 깨부수며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30대 국내 연구자 가운데 화학 분야 1위를 차지한 김기강 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교수(38)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해당 분야에서 권위를 쌓은 선배 연구자가 신진 연구자를 이끄는 문화가 있어 한 분야를 두고 수십 년의 연구가 이어질 수 있었다”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연구했던 경험을 전했다. 그는 “‘신진 연구자는 알아서 커야 한다’는 국내 학계의 인식은 우리 연구자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최소한의 연구비 지원을 바탕으로 선배의 기반을 후배가 물려받아 더 크게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화학 분야 1위, 재료 분야 2위인 박성진 인하대 화학과 교수(40)는 “요즘 30대 연구자들은 도전적이고 연구 트렌드에 민감하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연구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좋은 성과를 낼 역량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언어 장벽 없어 세계가 무대 30대 신진 연구자들은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연구원 생활까지 마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언어 장벽이 없으니 더 넓은 세계에서 풍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혜영 서울대 의학과 교수(38·여)는 미국 하버드대 의대 보스턴어린이병원에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수학한 뒤 이듬해 서울대에 임용됐다. 정보기술(IT) 기기와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30대 신진 연구자들은 기성 연구자들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김혜영 교수는 폐, 천식과 관련한 면역학을 연구하던 중 2010년 발견된 ‘선천성 림프구 세포’에 관한 논문을 인터넷에서 읽고 자신의 연구와 융합을 모색해 선천적 면역세포들을 통한 질병 제어 전략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는 “과거와 달리 인터넷으로 문헌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연구 방법들이 공유돼 연구에 쉽게 접목할 수 있었다”며 “선배 연구자들이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을 뒤지던 시절보다 정보 습득이 원활해지니 연구 주제도 효율적으로 고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현 연구원도 “인터넷으로 세계의 모든 연구자들이 내 동료가 될 수 있다”며 “태블릿PC와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구 결과를 공유할 수 있고 이 덕분에 국내 연구자들이 네이처, 사이언스 등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실적도 높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즉시 실험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지방대 연구자도 약진 화학, 재료 분야에서는 지방대 교수들이 국내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에 편중되어 있는 현상에 일침을 놓았다. 화학 분야 1위인 박성진 교수는 “연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인(in) 서울’은 중요하지 않다. 연구 역량은 대학, 연구소 같은 각 기관의 특성과 개인 연구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라고 강조했다. 재료 분야 1위인 이광희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교수(56)는 올해 6월 고효율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지방대라고 학생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대학의 간판이 아니라 연구 환경”이라며 “연구 시설만 좋다면 학교 간판이 아니라 자신을 육성해줄 수 있는 역량 있는 교수를 따라가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전주영 기자}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30대 때 유명한 이론이 될 만한 논문을 내고, 그 논문이 이후 30여 년간 해당 분야 타 논문들에서 인용된 후 60대에 상을 받는 공통적인 흐름을 볼 수 있다. 연구자에게는 30대가 골든타임인 만큼 신진 연구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번 논문 피인용 횟수 평가에서 상위권에 오른 30대 신진 연구자들은 “단기 실적에 치중하는 연구비 지원 기준이 우리에겐 큰 장벽”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혜영 서울대 의학과 교수는 “제대로 된 연구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연구비를 받으려면 논문 절대 수가 많아야 하기 때문에 실적 마련이 시급한 신진 연구자로서는 시작부터 어려운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연구비를 제공하는 대다수 기관이 연구자의 연령이나 경력과 관계없이 ‘1년간 쓴 논문 수’를 평가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연구에 갓 뛰어든 30대 소장 학자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이다. 상용화 가능 여부부터 따지는 등 연구비 제공 기관들이 ‘돈 되는’ 연구에만 투자하려는 경향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달 23일 연구자들의 인터넷 모임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 홈페이지에는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에 동참한 국내외 연구자 320명은 “미국은 전체 연구개발(R&D) 예산 중 기초분야에 47%를 쏟지만 한국은 정부 주도 사업에 치중하며 기초분야에 대한 지원은 6%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기강 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신진 연구자들은 기초과학, 기초기술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상용화 가능 여부만 따지니 연구비를 받을 수 없다”며 “이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최소의 연구비라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상 수상에 근접한 국내 연구자로 꼽히는 유룡 KAIST 화학과 교수는 “내가 신진 연구자였을 때도 연구비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때 연구비를 더 지원받았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없던 창의적인 연구를 하는 신진 연구자에게는 논문 실적에 상관없이 연구비를 후하게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석민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노벨상은 언제 어느 분야에서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성과만 연구비 지원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 신진 연구자의 가능성을 보는 특별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전주영 aimhigh@donga.com·서형석 기자}

서울 강남 지역에 사는 주부 황모 씨(36)는 10월 이후 스케줄을 텅텅 비웠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 검사 남편을 둔 친구들과의 모임, 초등학생 자녀 학부모 모임, 고교 및 대학 동창 모임 등 다양한 사교 활동을 했지만 28일부터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올스톱시켰다. 황 씨는 “남편의 직업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남편이 검사라… 내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며 “자칫하면 남편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조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네 아줌마 모임도 비상 김영란법으로 ‘동네 아줌마’ 모임에도 비상이 걸렸다. 어느 한쪽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그 배우자까지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법에 따르면 배우자도 직접적인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에게서 금품 등을 받을 수 없다. ‘원활한 직무 수행이나 사교·의례의 목적’일 때에도 ‘3·5·10 원칙’, 즉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 10만 원의 상한액이 적용된다. 남편이 국립대 병원에 다니는 주부 조모 씨(39)는 “동네에서 ‘방귀 좀 뀐다’는 아줌마 모임들이 얼어붙었다. 남편이 김영란법의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주부들은 카페나 레스토랑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것도 괜한 오해를 살까 봐 부담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자녀를 등교시킨 뒤 동네에서, 또 학원에 보낸 뒤 근처 커피숍에서 끼리끼리 모여 다과를 즐기던 아줌마들도 ‘불편한 사이’가 됐다. 서로 마음이 맞는 4∼6명 정도가 모여 자녀의 교육 정보를 공유하고, 더 친해지면 함께 테니스 등 야외 활동도 하고 경조사도 챙겨 주는 끈끈한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이제 쉽지 않게 됐다. 남편이 서울의 사립대 교수인 오모 씨(40)는 “낮에 만나면 보통 1인당 3만∼5만 원짜리 식사를 하는데 돌아가면서 밥값을 내 왔다. 자녀가 반장이 되거나 남편이 승진하면 크게 한 턱 내는 것도 관례인데 앞으론 무조건 자기 밥은 자기가 계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목 모임이 서로를 감시하는 모임으로 변질될까 우려하는 주부들도 있었다. 남편이 사립학교 교사인 주부 김모 씨(43)는 “괜히 남편을 자랑하거나 사적인 얘기를 나누다 알려질 필요가 없는 사생활이 공개돼 공연히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젠 모이기가 껄끄러워져 당분간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공무원인 이모 씨(55)는 “법 시행 전엔 학부모 모임 엄마들이 농담으로 ‘너랑 밥 먹으면 안 되겠다’고 했는데 실제 시행되니 정말 밥 먹을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우자판(版) 수사 1호 피하자” 남편이 경찰인 이모 씨(38)는 “법 시행 전부터 남편이 ‘주지도, 받지도 마라. 사 주지도, 얻어 먹지도 마라’, ‘모임에서 술은 마시지 말고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라’고 다그쳤다”고 말했다. 남편이 공무원인 주부 최모 씨(40)는 “내가 나가는 모임에 관심도 없던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뭐 하는 모임이냐, 친구들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냐’고 꼬치꼬치 묻는다”며 “잠재적 범죄자가 된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김영란법을 계기로 남편의 잔소리가 유난히 심해졌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법에 따르면 공직자 등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았을 경우 신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해당 공직자는 금품 액수에 따라 과태료를 물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 등은 물론 그 부인들도 당분간 ‘배우자판 수사 대상 1호’라는 불명예를 피하자는 분위기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지난해 11월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25일 끝내 숨진 백남기 씨(69)의 시신 부검을 놓고 유족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경찰이 28일 법원의 부검영장이 발부되자 유족 측에 공문을 보내 협의를 요청했다. 유족은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부검에는 절대 응할 수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고수해 영장 집행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백 씨의 사망에 대해 이렇다 할 사과도 없이 부검을 요구하는 경찰의 태도도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은 영장을 강제집행하지 않고 설득을 통해 최대한 동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유족뿐 아니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 투쟁본부’도 적극 나서 백 씨의 시신 부검에 반대하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투쟁본부에는 위헌정당 해산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간부, 반정부 시위 전문가까지 가담해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투쟁본부 공동대표인 김영호 전국농민총연맹 의장, 조직팀장을 맡고 있는 이종문 한국진보연대 대외협력위원장은 통진당 간부 출신이다. 옛 통진당 출신이 대거 옮겨가 ‘제2의 통진당’이라는 평가를 받는 민중연합당 지도부도 투쟁본부에 참여하고 있다. 또 투쟁본부 공동대표인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세월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등 반정부 집회 때마다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백 씨를 조문하기 위해 충북 충주에서 왔다는 이모 씨(37)는 “어떻게 해서 비극이 일어났는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하겠지만 외부 세력이 백 씨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투쟁본부 관계자는 “우리가 최고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유가족의 뜻”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백 씨가 경찰의 물대포 직사(直射) 때문에 결국 숨졌다는 게 명백한데 가해자(경찰)를 수사해야 할 검찰이 경찰과 함께 고인을 부검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경찰청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가 파행되자 자유발언을 통해 “경찰이 경고살수(撒水)도 없이 처음부터 직사살수만 7차례 했다”며 당시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박 의원의 주장과 달리 시위 당시 물대포를 쏜 차량의 CCTV를 보면 4초간 경고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해명했다.정지영 jjy2011@donga.com·전주영·박훈상 기자}
서울 소재 사립대 경영학과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정모 씨(25)는 요즘 손목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시즌을 맞아 자필로 쓴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요구하는 회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 씨는 최근 KDB산업은행에 낼 1000자 분량의 자소서를 포함해 각각 다른 버전의 자소서 3편을 잉크가 번지지 않고 깔끔하게 써진다는 외제 펜으로 또박또박 직접 썼다. 수정펜을 사용하면 성의 없다는 인상을 줄까봐 한 글자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결국 손목보호대 신세까지 졌다. 주요 회사들이 ‘자필’ 자소서를 요구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이 곤경에 빠졌다. ‘자소설’(소설을 써놓은 자기소개서)을 내거나 ‘복붙’(복사해 붙여넣기) 하는 취업준비생들을 걸러내기 위해 회사들이 내놓은 대안이다. 산업은행, 오뚜기, 신도리코 등은 수기(手記) 자소서를 받고 있다. 지원 동기 등을 직접 펜으로 써 완성한 뒤 스캔을 떠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식이다. 자소서 한 편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 항목을 잘게 나눠 답변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하나의 모범 자소서를 만들어 회사 이름만 바꾼 뒤 ‘복붙’으로 여러 곳에 지원하는 수법을 막기 위해서다. 예컨대 금융감독원은 비슷한 질문들로 10여 개 항목을 만들어 200자씩 작성하도록 했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면접에서 갑자기 자필 자소서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온라인으로 낸 자소서와 비교해 내용이 일치하는지를 판단해 본인이 직접 자소서를 썼는지, ‘자소설’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모 씨(27·여)는 “기업은행은 면접 때 자소서를 펜으로 다시 써보라고 한다는 소문이 있어 미리 써 둔 자소서를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회사들은 “지원자들이 우리 회사의 채용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는지 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한꺼번에 채용이 몰리는 시기라 여기저기 자소서를 써내야 하는 취준생들은 불만이다. 서울의 명문대 재학생 손모 씨(23·여)는 “입사지원서 20편을 내도 모자라는 판에 자필 자소서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다른 기업 지원서 서너 개를 쓸 수 있는 시간과 맞먹는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올해 처음으로 취업을 준비 중인 그는 “필기시험에 대비하기도 벅찬데 자소서의 글씨체부터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해 부담스럽다. 도대체 기업들이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라고 말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김영란법 위반이라니 난감합니다. 일주일이면 귀국할 환자에게 ‘수술받으려면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할 수도 없고….” 26일 만난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후 외국인 환자 유치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했다. 외국인 환자는 국내 체류 기간이 짧고 중증(重症)인 경우가 많아 병·의원이 각국 대사관 등의 부탁을 받아 진료·수술 예약을 앞당겨 주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국·공립병원이나 사립학교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특정 환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김영란법 위반이다. 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앞두고 법을 지켜야 할 대상인 관가와 교직 사회, 관련 업계의 준비도 각양각색이다. 새로운 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아직까지 고민만 하거나 방관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재치 있게 준비하는 곳도 있다.○ 병원과 대학가도 ‘청탁 주의보’에 혼란 대형 병원과 대학은 아직도 혼란스럽다. 국·공립병원과 사립학교 의료기관은 뒤늦게 ‘외국인 환자’ 고민에 빠졌다.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센터는 ‘외국인 환자는 중증도와 체류 기간을 감안해 진료 예약을 변경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내규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규에 예외 조항을 두면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4학년 2학기에 재학하며 취업을 준비 중인 예비 졸업생들이 가장 큰 혼란에 빠졌다. 전에는 학기 중 기업 면접 일정 등이 잡혀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교수에게 부탁해 출석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영란법 아래에선 이것도 부정 청탁으로 간주된다. 하반기 기업 공채를 준비 중인 서울 지역 사립대 학생 박모 씨(26)는 “면접 등 실무평가 때문에 결석이 불가피한데 김영란법 때문에 취업해도 졸업을 못 한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취업계를 내면 출석을 인정해 주는 것을 학칙에 넣는 것을 고려 중이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의 채용 시기를 방학 때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창조·동면·꼼수형… 각양각색 대응 법적으로 허용되는 방법을 최대한 활용해 법 시행 후 예상되는 변화와 제약을 극복하려는 ‘창조형’이 눈에 띈다. 사법부의 대외 협력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개조한 구내식당을 ‘소통 창구’로 활용하기로 했다. 김영란법이 정한 식사비 한도(3만 원 이하)에 맞는 값싼 식단도 마련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5년간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던 문모 씨(51)는 이달 1일부터 냉면집으로 간판을 바꿨다. 1인당 평균 6만 원대였던 한정식 대신 1만 원대 메뉴로 수익은 확연히 줄었지만 주 고객층인 인근 공무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 홍보팀 직원들도 법 안에서 살길을 찾고 있다. 대기업 홍보 업무 20년 차인 A 부장은 ‘평일엔 식사 대신 티타임과 기념품, 주말엔 골프 대신 출입처 위문이나 취미생활 도우미 활동’처럼 상대방의 빈 시간을 적극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중견 건설사 홍보팀 B 과장은 최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1만 원대 식당을 모아 엮은 ‘한끼 식사의 행복’이란 책을 20여 권 사서 주변에 돌렸다. 그는 “값싼 맛집 정보도 나누고 책 자체가 선물가액 한도(5만 원) 이하라 앞으로도 더 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절대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는 말자”며 눈치를 보는 ‘동면형’이 많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28일 이후 외부 약속은 일절 안 잡았다. 공무원이 적발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 책잡힐 짓은 아예 말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 국책은행 홍보 담당자는 “지금 당장은 ‘안 하고 말지’가 대세지만 연말 인사 후 상견례가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김영란법의 구멍을 노리는 ‘꼼수형’도 있다. 경찰은 일부 단체가 대관(공공기관 상대) 업무용 안가(安家)를 마련해 로비용으로 쓴다는 첩보를 입수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과거 공무원 행동강령 시행 초기 나타났던 식사 참석 인원 부풀리기, 다른 차량 이용, 가명 예약 등 전통적인 회피법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한편 법 시행 전 추석을 치른 유통업계는 벌써 희비가 엇갈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형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추석 전후 30일 동안 선물세트 판매 실적을 조사한 결과 한우 판매액은 작년보다 19.2% 줄었다. 상대적으로 싼 과일 선물세트는 동기 대비 1.6%가 늘었다.전주영 aimhigh@donga.com·조건희·김현수 기자}
서울대 화장실 비상벨이 성폭행을 막았다. 20대 여성 연구원 A 씨는 21일 오후 5시경 서울대 자연과학대 연구동 여자 화장실 부스로 들어서면서 이모 씨(61)로부터 흉기로 위협을 받았다. 위기의 순간 A 씨는 본능적으로 부스 안에 설치된 비상벨을 눌러 경보음을 울렸다. 이 씨는 급하게 달아났지만 경보음을 듣고 달려온 동료 연구원들에게 붙잡혔다. 서울대 자연과학대가 2013년 12월 여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화장실에 설치한 비상벨이 한 여성을 성폭행에서 구한 것이다. 화장실 비상벨은 5월 ‘강남 화장실 묻지 마 살인 사건’ 이후 더욱 필요성이 제기돼 왔고 서울대는 비명 소리에도 경보음이 울리는 ‘스마트 비상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2일 이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서울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연구원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려던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1일 오후 5시경 서울대 자연과학대 연구동 여자 화장실에서 흉기로 20대 여성 A씨를 위협해 성폭행하려 한 혐의(강간미수)로 B씨(61)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B씨는 범행 전부터 여자 화장실에서 숨어 있다가 A씨가 혼자 화장실에 들어서자 갖고 있던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A씨가 화장실 안에 있던 비상 알람벨을 울려 경보음이 울리자 B씨는 급하게 달아났지만 주변에 있던 동료 연구원에게 붙잡혔다. 경찰은 여성 화장실의 비상 알람벨 커버가 여러 개 훼손된 것을 포착하고 B씨가 범행을 위해 일부러 훼손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또 5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과 관련한 모방범죄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범행동기와 범행 전 행적 등을 조사하고 있으며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최근 서울 성동구에서 전세 아파트를 구하던 김모 씨(43)는 거래 직전까지 갔다가 취소되는 낭패를 당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집주인이 세금 체납자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김 씨는 “전에 살던 집에서 주인이 체납한 세금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떼인 적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집주인이 기분 나빠하기 때문에 곤란하다. 그런 요구를 하려면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며 손사래를 쳤다. 건물 임대인이 내지 않은 세금으로 인한 임차인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미납 국세 열람 신청제도’가 이처럼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납 국세 열람 신청제도는 주택·상가 임대인이 납부해야 할 국세를 납부하지 못해 주택·상가가 압류돼 공매처분 되는 경우 국세 징수로 보증금이 추징당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2003년에 도입됐다. 임대인의 동의를 얻고 신분증 사본과 서명을 받아 관할 세무서에서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을’의 위치에 있는 임차인이 ‘갑’인 임대인에게 열람 동의를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부동산 거래 때 고지할 의무가 없다 보니 임대인이 거부할 경우 속수무책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의 세금 체납 사실을 모른 채 전세 계약을 한 뒤 압류가 진행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동구에 전세로 신혼집을 차린 박모 씨(33)는 올해 초 법원으로부터 경매통지서를 받았다. 결국 보증금 2억 원 중 5000만 원만 돌려받은 채 집에서 쫓겨났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 때문이다. 박 씨는 “국세 우선 변제의 원칙이 적용돼 우선순위에서 밀려 집주인의 세금을 대신 내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종합소득세와 상속세 증여세를 비롯한 5억 원 이상 고액·상습 개인체납자는 지난해까지 총 1만1163명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종구 의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미납 국세 열람 건수는 184건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같은 시기 전국 전월세 거래량은 98만3184건. 0.02%의 임차인만 집주인의 미납국세를 열람한 것이다. 강남구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임대인이 미납 국세 열람에 동의하지 않아 잠정적인 임차인을 놓친다고 해도 전세 수요가 많기 때문에 아쉽지 않은 심정”이라며 “요리조리 따져보며 신중하게 전세 계약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해 많이 물어보지만 결국 열람해 보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거래 때 임대인이 중개인에게 미납 국세 확인 동의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후 계약 단계에서 임차인이 요구하면 체납 세액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집주인의 체납 국세 내용만 알아도 억울한 세입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좋은 제도를 갖추고도 전혀 활용하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국세청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노벨 화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 로버트 그럽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74·사진)가 서울대 강단에 선다. 서울대는 최근 인사위원회를 열어 그럽스 교수를 자연대 화학부 교수로 임용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그의 임기는 내년 3월부터 1년이다. 그럽스 교수는 탄소 원자들 사이에서 화학적 결합이 어떻게 붕괴되고 형성되는지에 초점을 맞춘 ‘복분해 반응’을 개발하는 데 공헌해 작고한 이브 쇼뱅 전 프랑스 석유연구소 소장, 리처드 슈록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함께 200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복분해는 두 종류의 화합물이 만나 서로의 성분을 맞교환해 새로운 화합물을 만드는 반응을 말한다. 그럽스 교수는 1992년 루테늄이라는 금속을 사용해 공기와 물에 잘 견디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하고 새로운 약물과 물질 등의 합성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체에 유해한 폐기물을 적게 배출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화학 산업의 현안인 오염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저공해 혁명’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서울대는 이번 인사위원회에서 데이비드 맥밀런 석좌교수의 임기를 내년 8월까지로, 200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아론 치에하노베르 의과대 석좌교수의 임기도 내년 2월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2012년부터 매년 30억 원의 예산을 배정해 10억 원 안팎의 연봉을 주고 노벨상 수상자나 그에 준하는 석학을 초빙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법원이 국민의당 박준영 의원의 4·13 총선 지역구 조직 책임자의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 반정우)는 박 의원의 전남 신안·무안 조직 책임자 정모 씨(58)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박 의원의 측근들이 잇따라 유죄를 선고 받아 박 의원의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가능성도 나온다. 박 의원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3억5000여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법원은 박 의원에게 공천헌금을 준 혐의로 기소된 신민당 전 사무총장 김모 씨(64)에게 징역 1년 6월을, 또 박 의원이 사무총장 김씨에게 돈을 받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비서실장 최모 씨(53)에게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 씨는 박 의원 선거사무실 회계책임자 김모 씨(51·구속기소)와 함께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은 현금을 별도로 관리하며 이 중 2200만 원을 조직 관리 경비로 사용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정 씨는 박 의원의 선거사무장 박모 씨(55)에게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하는 수당·실비 등이 아닌 금품 565만 원을 제공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회계책임자 김 씨의 다이어리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올해 4월 9~14일 홍보 문자메시지 발송, 식대 등의 자금지출 내역이 정리돼 있었다. 재판부는 “정 씨는 적지 않은 돈을 선거사무장에게 제공하거나, 신고 된 계좌를 통하지 않고 선거비용으로 지출해 국회의원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해쳐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징병검사에서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살을 찌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프로야구 연습생이 1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1부(부장 강태훈)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26)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김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해오다 2013년 어깨부상으로 프로 구단에서 방출돼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이후 체중이 불어 신장 171cm에 몸무게 105kg이 돼 2014년 6월 인천지방병무청에서 실시된 징병검사에서 신장·체중 불시측정 대상자로 분류됐다. 김 씨는 그해 7월 불시측정에서 체중이 103kg으로 감소한 결과가 나와 재차 불시측정 대상자로 분류됐다. 같은 해 10월 검사에서는 106kg으로 사회복무요원 대상인 신체등급 4급이 확정됐다. 검찰은 김 씨가 병무청의 체중 측정 과정에서 병역의무를 감면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몸에 살을 찌웠다고 보고 김 씨를 재판에 넘겼다. 특히 김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살 빠져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뻔했다” “군대 뺀다고” “간당간당해 지금, 한 번 더 가야 해” 등의 글을 게시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1심 재판부는 김 씨의 유죄를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김 씨는 체중 불시측정 때 나온 가장 낮은 몸무게였던 103kg도 사회복무요원 판정 기준인 BMI 35를 넘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체중을 늘린 사실이 없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는 첫 번째 징병검사에서 이미 105kg으로 사회복무요원 판정 대상이었기 때문에 김 씨의 체중이 유지·증가한 것이 병무행정 당국을 속이려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글에 대해서도 많은 댓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과장된 내용을 장난으로 올렸다는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하루 종일 긴박하게 움직인 것과 달리 시민들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북한의 핵 도발에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지만 불감증(不感症)이라고 해도 될 만큼 무감각한 것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말을 앞둔 이날 오후 6시경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은 평소처럼 퇴근한 직장인 등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김모 씨(31)는 “크게 걱정 안 한다. 30년 넘게 봐온 북한이고 어차피 위협용이라 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회사원 김주형 씨(40)는 “1월 4차 핵실험 이후 추석이 오기도 전에 또 이러니 이제는 정말 지겹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정모 씨(28·여)는 “이달 말 국정감사 준비 때문에 추석 연휴도 반납할 정도로 바쁘다. 직접 핵탄두가 날아오지 않는다면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 대학생 정희영 씨(24·여)는 “북한 핵실험을 전쟁의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으레 하는 행사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역 1층 맞이방. TV 3대에서 북한 핵실험 관련 뉴스가 계속 흘러나왔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노인 20여 명을 빼고는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거나 카카오톡으로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추석 연휴 전 고향에 다녀오기 위해 서울역에 온 대학교 4학년생 권모 씨(25·여)는 “핵실험 때문에 지진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서울에서 느껴진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회사원 김모 씨(44)는 “김정은이 간부들을 숙청하고 핵실험까지 하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위기의식을 느끼는지 알 것 같다”면서도 “북한이 설마 핵무기 도발까지 하겠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반응도 심각함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았다. ID 9Do*******는 트위터에 ‘오늘 북한 핵실험 했었음? 명절맞이 폭죽놀인가 보지. 걔넨 뭐 기분 좋으면 쏜다며’라며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에 맞춘 핵실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글을 남겼다. 인스타그램 ID yul*****는 ‘북한이 혼나려고 뭔가를 터뜨렸다’라는 글과 함께 어머니가 자녀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우려를 나타내는 시민도 일부 있었다. 직장인 신모 씨(32)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한중 관계가 경색된 틈을 타 북한이 마음 놓고 날뛰는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북핵 해결을 위한 묘안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적어도 5차례 핵실험을 했다는 것은 핵 기술이 실전 배치까지 진보했다고 해석될 수 있어 우리 안보에 크나큰 위협요인으로 대두됐는데 시민들이 무감각하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무엇보다 정부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북 성주군, 김천시 등 사드 배치 거론 지역들은 이날 북한의 5차 핵실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부의 대응을 주시했다. 북한의 도발로 사드 배치가 힘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지만 이곳 주민들은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성주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북한의 계속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강행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투쟁위 관계자는 “북한 핵실험과 관계없이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며 “국민의 생존권을 담보로 하는 전략적 무기를 일방적으로 배치하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사드 배치가 북한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유력한 ‘제3 후보지’와 가까운 김천 주민들도 매일 촛불문화제를 열고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있지만 북한 핵실험에 대해서는 공식 반응을 자제해 성주 지역과 다소 온도 차를 보였다. 사드배치반대 김천투쟁위원회의 한 공동위원장은 “요즘 투쟁위 활동에 관여하고 있지 않아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또 다른 공동위원장도 “몸이 좋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투쟁위 측은 “북한 핵실험 관련 성명 등은 민감한 사안이라 현재로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전주영 aimhigh@donga.com·김동혁 /성주=장영훈 기자}
“F학점은 너무해요, 교수님. D로 올려주시면 안 될까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교수에게 학점 수정을 부탁하던 대학가의 관행이 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 영향권’ 내에 진입한 대학가도 두려움에 떨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점 로비는 법에 규정된 14가지 부정청탁의 유형 중 ‘학교 입학, 성적, 수상 등에서 법령을 어겨 처리 조작하는 것’에 해당된다. 이에 대다수의 대학은 지난달 말 전체 교수회의를 열고 제자들의 부정청탁에 대응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서울의 A 사립대는 법에 따라 제자의 청탁을 받으면 단호히 거절하고, 다시 같은 청탁을 하면 총장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그러지 않고 성적을 올려주면 해당 교수가 형사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된다. 학점을 올려달라고 부탁한 학생은 문제가 없지만 학생의 부탁을 받고 성적을 올려준 교수는 처벌 대상이 된다. 대학생 김모 씨(25·여)는 “성적 욕심에 무심코 전처럼 행동했다가는 총장실에 불려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제자가 지도교수에게 와인을 선물하는 것도 위법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B 대학은 제자가 3만 원이 넘는 와인을 들고 와 교수와 같이 마셨다면 식사비에 해당돼 김영란법 위반이 된다고 내부적으로 잠정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제자와 교수가 나눠 마셨기 때문에 교수에게 귀속되는 금액이 3만 원을 넘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학에서는 제자가 교수 연구실로 찾아가 5만 원 이하의 와인을 선물하는 것은 괜찮다고 보고 있다. 이 학교 C 교수는 “학생들에게 ‘5만 원 이하 와인만 받겠다’고 민망한 공지를 해야 하는지…”라며 난감해했다. 반대로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평가를 잘해 달라”며 햄버거 등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위법이 아닌 것으로 대학들은 보고 있다. 학생들은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공직자 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D대학의 한 교수는 “김영란법은 캠퍼스 내 갑을 관계 등 폐해를 없앨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자칫 사제 관계가 삭막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투자자들을 속여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30)가 구속됐다. 서울남부지법 김선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서봉규)가 이 씨에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이날 발부했다. 범죄사실이 소명됐고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씨와 무인가 투자업체를 운용하며 투자자금을 모은 동생 이희문 씨(28)에게도 같은 날 오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희진 씨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유사투자자문사인 M사 등을 통해 회원들에게 거짓정보를 흘려 150억 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원금을 보장하고 수익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며 올해 2월부터 6개월 간 220억 원을 모은 혐의를 받고 있다. 유사투자자문사는 유료회원제로 운영되는 투자 정보 카페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자 정보를 제공하고 회비 등 대가를 받는다. 개인투자자가 유료회원으로 가입하면 인터넷 방송, 실시간 문자를 통해 투자 종목과 매수, 매도 타이밍 등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증권 관련 케이블 방송에서 주식 전문가로 활동한 이 씨는 M사를 통해 “주식투자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회원들을 등급에 따라 적게는 100만 원에서 최대 1600만 원의 회비를 걷어 관리했다. 이 씨는 M사를 통해 개인투자자들을 모아 2014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1670억 원 규모의 주식을 거래했다. 해당 주식은 이 씨가 악재를 숨긴 본인이 보유했던 물량이거나 특정 기업의 대주주와 결탁한 대주주 보유분이었다. 검찰은 금융감독원의 수사 의뢰를 받아 지난달 23일 이 씨의 자택과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 40명의 피해자가 이 씨를 고소·고발한 상황이다. 유사투자자문사는 금융회사로 분류되지 않아 금감원의 제재와 금융분쟁 조정대상에서도 제외돼 불법 행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에도 유사투자자문사인 A 증권방송에 월 회비 77만 원을 낸 유료회원이 방송 소속 전문가가 말한 거짓 호재성 정보를 믿고 주식을 매수해 4억대의 손해를 본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A 증권방송 등에 “민법상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금감원은 2012년 유사투자자문사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부티크’나 ‘증권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음성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 결국 보류했다. 박학순 금감원 자산운용국 부국장은 “유사투자자문사들의 불법 행위로 인한 투자자들의 민원이 계속 접수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금감원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며 “지속적인 감시를 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고령층이 주로 사는 지방의 ○○의원 앞. 매일 수상한 승합차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실어 나른다. 의사는 자주 바뀌지만 언제나 환자들로 북적인다. 이 병원의 명의는 이 지역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 진료비는 무료에 가깝지만 하지도 않은 물리치료를 한 것으로, 소독도 한 번만 하고 여러 번 한 것으로 기록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급여를 부정하게 타 낸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를 떼먹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경찰과 검찰이 파악한 현장을 재구성한 모습이다. 지역 주민이 주인이 돼 지역 의료복지 서비스를 위해 활동하는 의료생협이 새로운 형태의 ‘사무장 병원’을 양산하는 통로로 변질되고 있다. 사무장 병원이란 사무장이 변호사를 고용해 영업하는 법률사무소처럼 일반인이 고용 의사를 앞세워 세운 불법 병원을 일컫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신자용)는 경기 안산시 A의료생협의 서모 이사장(57)을 의료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 서 씨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비의료인인 사무장들에게서 돈을 받고 의료생협 명의를 빌려 준 뒤 병원 2곳을 개설했다. 그는 의료생협 부설 한의원 2곳도 개설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와 의료급여 7억여 원을 부정 수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민간 보험회사로부터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1000여만 원도 부당하게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생협은 조합원과 지역 주민, 취약 계층에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이다. 의사면허가 없어도 조합원 300명, 출자금 3000만 원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추면 지방자치단체장의 승인을 얻어 설립할 수 있다. 협동조합 명의로 병원을 세우는 것도 가능한데, 2010년 9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 개정안에 ‘100분의 50의 범위에서 비조합원에 대해서도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의료생협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09년 108개에 그쳤던 의료생협은 지난해 577곳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유령 의료생협을 설립하고 사무장 병원을 차린 뒤 환자를 모집하고 허위 진단서를 발행해 건강보험료와 보험금을 편취하는 사건이 계속되자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의료생협 설립 인가 요건을 조합원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리고 출자금은 1억 원 이상으로 높여 설립을 비교적 까다롭게 하는 생협법 개정안이 이달 말부터 시행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