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유성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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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5~202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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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복이 존경받는 사회]서후원 중사 아버지의 恨

    《故서후원 중사는1980년 11월 28일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경북 상주 상산전자고를 거쳐 대구기능대를 다니며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전산응용가공산업기사, 수치제어밀링기능사 등 자격증을 3개나 땄다. 2001년 8월 6일 해군 부사관 189기로 입대했다. 평생을 사과 과수원에서 농사만 짓던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장기 복무를 신청했다. 입대 전 아버지가 몸져눕자 과수원 농사도 혼자 지었다. 효심이 소문나 고교 졸업 때는 ‘타인에게 모범을 보이는 학생’이라며 상주시장 표창도 대표로 받았다. 부사관으로 첫 월급을 탔을 때는 동생 국원 씨(28)에게 ‘워크맨’을 사줬다. 국원 씨는 “그때 당시 가격으로 20만 원이 넘는 고가였다”며 “장난삼아 갖고 싶다고 말했는데 진짜로 사줄 줄은 몰랐다”고 기억했다. 서 중사는 매달 월급을 부모님께 부쳐드리고 용돈을 타 쓸 정도로 알뜰했다.》 “저희에게 죄가 있다면 자식 낳아서 군대에 보낸 거 하납니다. 대통령께서도 아버지로서 저희들 입장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어떻게 이렇게 외면하시는지요….” 분위기는 금세 싸늘해졌다. 2007년 5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청와대는 사전에 질문을 받은 뒤 지정된 사람만 발언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 씨(57)는 “대통령께 질문이 있다”며 예정에 없던 말을 했다. 대통령은 끝까지 침묵만 지켰다.○ 한 방이 가슴을 관통 소백산맥 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산길이 이어졌다. 길을 따라 늘어선 과수원에는 따스한 햇살을 받은 하얀 사과꽃이 피었다. 한 과수원 입구에 다다르자 낡은 민가 하나가 보였다. ‘본인 서영석. 처 김정숙. 자 서후원.’ 12일 경북 의성군 옥산면 자택에서 만난 서 씨는 제2연평해전 발생 두 달여 전 발급받은 주민등록등본을 보여줬다. “후원이 이름이 남아 있는 유일한 등본이오….” 코팅까지 해둔 등본은 새것처럼 깨끗했다.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닦았기 때문이다. 제2연평해전 발발 다음 날인 2002년 6월 30일 오전 1시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영안실. 서 중사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왼쪽 가슴에 직경 3cm 크기의 상처가 보였다. 다른 곳은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네 형 맞나?” 서 씨는 두 눈을 의심했다. “맞아요. 아부지….” 작은아들 국원 씨(28)가 답했다. 아버지는 눈을 비벼봤다. 틀림없는 아들이었다. 몸을 돌려봤다. 등에도 직경 10cm의 구멍이 있었다. 총탄이 가슴을 관통해 남긴 상처였다. “아이구, 우리 아들이 죽었구나….” 내연사(기관장)였던 서 중사(당시 22세)는 제2연평해전 때 참수리 357호정 기관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그는 M60 기관총이 설치된 거치대로 뛰어가 방아쇠를 당겼다. 정신없이 싸우던 중 적이 발포한 총탄 한 발이 서 중사의 가슴 왼쪽을 관통하면서 서 중사는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거치대 주변에는 마땅한 엄폐물도 없었다.○ “다들 열중쉬어 한 채 뒷짐만” 2002년 7월 1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전사자 영결식. 서 씨는 “우리 아들을 이렇게 허름하게 보낼 수는 없소! 대통령, 국무총리는 어디 있는 거요”라고 외치며 영구차를 막아섰다. 해군 관계자가 “예우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만류했다. 서 씨의 오열을 뒤로한 채 영구차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떠났다. 서 씨는 아들을 외면한 대한민국이 지독히도 미웠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싶었지만 법을 몰랐다. 여러 시민단체에 전화를 걸어 “도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진보적인 변호사단체라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뒷짐만 지고 있는데 속이 터지더구먼. ‘노력하겠다’ ‘기다리라’는 말은 다 거짓이더라고….” 서 씨의 뺨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인 김정숙 씨(55)도 “우리를 챙겨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서운해했다. 서 중사가 전사하고 3년 동안 서 씨 부부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아들을 잃은 허탈함에 부부는 평생 일궈오던 사과 과수원도 방치했다. 수확량은 3분의 1로 줄었고, 대인기피증도 왔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던 서 씨는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냈다. 부부는 국원 씨와 큰딸 귀선 씨(32)가 결혼해 손자들을 낳은 뒤에야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밥숟가락 하나 간신히 뜨는 거지. 후원이 명예가 회복되기 전에 달라질 건 없어….”○ 모두가 ‘6·29’를 기억하는 그날까지 서 씨 집 안방에는 낡은 잠바가 하나 걸려 있다. 부부는 아침마다 잠바를 보며 아들을 추억한다. “우리 아들이 착한 ‘과외 선생’이었더라고….” 1996년 경북 상주시 상산전자고에 입학한 서 중사는 3년 내내 자취를 했다. 그의 자취방은 ‘공부방’으로 유명했다. 모범생이던 서 중사가 성적이 낮은 친구들을 데려와 공부를 가르친 것. 그때 한 친구의 어머니가 “고맙다”며 서 중사에게 잠바를 선물했다. “영웅? 그까짓 것 필요 없어. 후원이가 마음씨 착한 놈이었다는 거. 그래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는 거. 이것만 알아주면 여한이 없겠어.” 부부는 모든 국민이 6·25처럼 제2연평해전을 ‘6·29’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서 씨는 전사자 가족모임에서 총무를 맡아 매년 정기모임을 주선하고 있다. 다른 유가족들이 힘겨워 할 때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각오로 정부와 국민들에게 아들들의 업적을 알려야 한다”며 북돋우고 있다. “우리도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과수원까지 내팽개칠 만큼 힘들었지만 힘을 더 내야죠. 모두가 ‘6·29’를 기억하는 날까지 두 눈 부릅뜨고 살 겁니다.”의성=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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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인신고 위조 60대女 법원이 선처한 사연

    주부 최모 씨(62)는 국가유공자 김모 씨(2005년 당시 79세)와 1988년부터 17년 동안 함께 살았다. 사실혼 관계였지만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다. 김 씨가 국가로부터 받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임대주택에서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지냈다. 2005년 3월 갑자기 김 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회복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김 씨는 사별한 전처의 사망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최 씨는 남편이 죽으면 임대주택 등의 혜택을 이어받지 못하게 될 것이 두려웠다. 최 씨는 남편의 도장을 가지고 구청 민원과로 갔다. 남편 도장으로 전처의 사망신고를 하고, 자신과의 혼인신고 서류를 위조해 제출했다. 김 씨는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고 최 씨는 김 씨가 받던 혜택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최 씨의 '완전 범죄'는 2007년 김 씨의 전처 가족들이 혼인무효소송을 내면서 무산됐다. 혼인신고 당시 남편이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류 위조 사실도 함께 드러난 것. 서울북부지법 형사6단독 김병찬 판사는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 씨에게 "17년간 사실혼 관계에 있었고 잘못을 뉘우치는 등 정상을 참작했다"며 벌금 100만 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사실혼 관계라도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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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복이 존경받는 사회]2002년 당시 2함대사령관 정병칠 제독, 지난해 암으로 사망

    “사령관님…. 저 좀… 살려… 주세요….” 희미하게 눈이 깜박였다. “걱정 말거라. 꼭 낫게 해 주마.” 정병칠 제독(提督·당시 50세·소장 전역·사진)은 박동혁 병장(당시 21세)의 손을 꼭 잡았다. 제2연평해전에서 다쳐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박 병장이 간신히 의식을 회복했던 2002년 8월 말의 일이었다. 정 제독은 제2연평해전 당시 해군 2함대사령관이었다. 박 병장은 그해 9월 20일 결국 숨을 거뒀다. “6월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 이때부터 정 제독은 버릇처럼 되뇌었다.○ 7년간의 괴로움 “아버지. 뉴스에서 또 나오네요.” 지난해 6월 정 제독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7년 전 박 병장처럼 죽음과 사투를 벌였다. 정 제독의 옆은 큰아들 정치현 씨(32)가 지켰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전투 장면이 TV에서 나왔다. 병상에 누운 정 제독은 몸을 돌렸다. ‘그날’ 이후 정 제독은 이런 뉴스만 보면 고개를 돌렸다. 사랑하는 부하 6명과 참수리 357호를 잃은 죄책감 탓이었다. 지난해 5월 3일 정 제독은 기침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5일 뒤 폐암 말기 진단이 나왔다. 담배를 가끔 한 대씩 피우긴 했지만 운동장 10바퀴를 돌아도 끄떡없던 그였다. 의사는 “비흡연자나 여성들에게 주로 발병하는 ‘선암(腺癌)’”이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급속히 악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암 선고 한 달여 만인 6월 19일. 정 제독은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의리를 지키며 살아라”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19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자택에서 만난 치현 씨는 연방 눈물을 흘렸다. 치현 씨는 해병대(877기), 동생 치윤 씨(29)는 해군병(462기)으로 복무했다. 정 제독은 아버지이자 상관이었다. 제2연평해전 이후 두 달을 부대에서 지내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쉬거나 자꾸 혼잣말을 했다. 전사자 가족들을 만나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한철용 전 대북감청부대장 등 당시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2년 7월 10일 국방부는 정 사령관의 보직을 해임했다가 군 내부의 반발로 하루 만에 철회했다. 그러나 그는 7년 동안 침묵을 지켰다. 부하들에 대한 예우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전 소장은 “정 제독은 교전규칙대로 전투를 지휘했지만 ‘격파 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윗선에서 내려왔다”며 “합참과 해군은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 게임’을 벌였고, 그는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겠다’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해군사관학교 28기였던 정 제독은 이후 합참 전략기획부장, 해군 군수사령관을 거쳤지만 중장 진급을 못하고 2007년 4월 예비역 소장으로 전역했다. “당시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됐잖아요. 정부 입장과 유가족들 사이에서 겪은 괴로움을 속으로만 삭이셨던 거죠. 아버지가 암에 걸릴 정도인 줄은 전혀 몰랐어요….” 치현 씨는 인터뷰 내내 ‘해군2함대 사령관 소장 정병칠’이라고 적힌 명패와 액자에 담은 사진을 어루만졌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부하들을 더 아끼는 ‘의리 있는 군인’으로 살려고 하셨어요.” 정 제독이 남긴 유언은 “의리를 지키며 살아라”였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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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지통]“미화원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학내 미화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해 물의를 일으킨 경희대 재학생이 미화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 경희대와 경희대 총학생회는 “20일 저녁 해당 여학생이 미화원을 만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미화원께서 사과를 받아주셨다”고 21일 밝혔다. 경희대와 학생회 측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학생처 관계자와 학생회 관계자가 함께 참석해 사과를 주선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일단 해당 학생을 상대로 진상 조사를 한 뒤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미화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한 부분이 충분히 고려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린 미화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도 다시 글을 올려 “어머니가 학생을 만나 사과를 받았는데 학생이 많이 반성하는 모습이었다”며 “어머니가 처음부터 원한 것은 사과였으니 이제 사건을 종결짓고자 한다. 더 이상의 관심과 질타는 접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3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청운관 화장실과 여학생휴게실에서 한 여학생이 학내미화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했고, 미화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이 같은 사실을 담은 글을 올려 ‘패륜녀’ 파문이 일었다. 파문이 커지자 학교 측은 진상 조사에 나서 20일 해당 학생의 신원을 확인했고, 이 학생의 부모도 미화원을 찾아가 사과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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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21일 올해 첫 오존주의보

    21일 올해 들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기도 지역에 오존주의보가 발령됐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산하 대기오염정보센터는 이날 오후 2시를 기해 경기도내 시 27곳 전역에 오존주의보를 발령했다. 6월 18일 첫 오존주의보가 발령된 지난해보다 한 달 정도 빨라진 것. 센터 측은 이 지역들의 시간당 오존 평균농도가 최고 0.137ppm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매년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시간당 오존 평균농도가 0.12ppm을 넘으면 오존주의보를, 0.3ppm 이상이면 오존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농촌지역인 연천, 가평, 여주, 양평군은 제외됐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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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퍼스 다문화 바람… ‘외국인 학생회’ 설립 붐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에 재학 중인 옌쯔룽(閻子龍·24)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학생회장’을 지냈다. 이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 400여 명(10개국)과 함께 ‘외국인 학생회’를 설립했던 것. 외국인 학생회는 한국어 교육 등 복지사업과 다양한 다문화 행사를 열며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학교 역시 외국인 학생회가 자리를 잡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옌 씨는 “한국 학생들과 교류가 적고, 학교 행사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 외국인 학생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이런 구상을 했다”며 “권익만 앞세우기보다는 한국 학생들과의 소통에도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 2대 회장에 취임한 장충(張衝·24·중국통상학과) 씨도 “다른 대학에도 확산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국내 대학에도 외국인 유학생이 크게 늘면서 외국인 학생회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대학 내에도 지원센터 같은 기관이 있지만 학생회처럼 학생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 서울대도 1200여 명의 외국인 학생을 대표해 2007년 설립된 ‘SISA(SNU Inter-national Students Association)’가 매년 스포츠 축제, 자원봉사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문화시대를 맞아 학생회도 ‘다문화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 학생들도 외국인 학생회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경희대 무역학과를 다니는 중국인 취거(屈歌·22) 씨는 “외국인 학생모임은 대부분 친목 모임 수준이라 학교 정책에 우리의 요구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외국인 학생회는 외국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아예 ‘외국인학생회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희대의 외국인 유학생은 3500여 명(대학원생 포함)에 이른다. 이들의 구상은 기존의 외국인 학생회와는 조금 다르다. 총학생회 산하 조직이나 친목 모임 수준이 아닌 독립적인 자치 기구로 출범시키겠다는 것. 경희대는 현재 외국인 학생모임이 단과대와 학과별로 산재돼 있는 상황이다. 총학생회는 이들을 한데 묶어 투표를 거친 뒤 자치기구 출범을 유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학생회 측은 외국인 학생들을 집행부 간부로 임용하고, 외국인 학생회실도 마련해 보겠다고 공약했다. 좀 더 밀착된 학생회로 만들기 위해 국가별 학생회를 외국인 학생회 밑에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유승현 총학생회장(25·여)은 “외국인 학생들과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학생회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외국인 학생회가 출범한다면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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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희대 패륜녀, 미화원에 직접 사과

    학내 미화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해 물의를 일으킨 경희대 재학생이 미화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 경희대와 경희대 총학생회는 "20일 저녁 해당 여학생이 미화원을 만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미화원께서 사과를 받아주셨다"고 21일 밝혔다. 경희대와 학생회 측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학생처 관계자와 학생회 관계자가 함께 참석해 사과를 주선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일단 해당 학생을 상대로 진상 조사를 한 뒤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결정 하겠다"며 "미화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한 부분이 충분히 고려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포털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린 미화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도 다시 글을 올려 "어머니가 학생을 만나 사과를 받았는데 학생이 많이 반성하는 모습이었다"며 "어머니가 처음부터 원한 것은 사과였으니 이제 사건을 종결짓고자 한다. 더 이상의 관심과 질타는 접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달 13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청운관 화장실과 여학생 휴게실에서 한 여학생이 학내미화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했고, 미화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이 같은 사실을 담은 글을 올려 '패륜녀' 파문이 일었다. 파문이 커지자 학교 측은 진상 조사에 나서 20일 해당 학생의 신원을 확인했고, 앞서 이 학생의 부모도 미화원을 찾아가 사과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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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정열 교수 “수중폭파 →함체 두동강 과정 정확히 설명”

    대부분의 군사·선박 전문가들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타격돼 침몰했다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신영식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70)는 “천안함을 타격한 어뢰를 발견했고 이 어뢰가 북한 것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오늘 결과로 ‘좌초설’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과 교수(45)도 “나라마다 철을 만드는 기술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북한 어뢰와 이번에 발견된 어뢰의 금속성분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도 결정적 증거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나정열 한양대 해양환경과학과 명예교수(67)는 “일부에서 각종 의혹을 제기하지만 조사단이 제시한 증거는 수중 폭파가 일어나 함체가 두 동강 나는 과정이 정확히 설명된다”고 밝혔다. 김태준 한반도문제연구소장(54·전 공주함 함장)도 “미국 영국 등 해외조사단까지 조사 결과에 동의했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라는 것을 뒷받침한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보고서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역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이만큼 증명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 등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도 이번 조사 결과를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46)는 “유엔에서 이번 문제가 논의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입장을 배려해 기권할 수는 있겠지만 북한을 두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북한 잠수함의 이동 경로 등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43)는 “타격을 가한 어뢰에 대한 증거는 상당 부분 제시가 됐지만 북한 잠수함이 이동했다 돌아간 대목은 명확한 물증 제시가 없었다”며 “잠수함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추정만 내놓았기 때문에 중국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동영상 = 北어뢰 파편 공개…천안함 침몰 결정적 증거 ▲ 동영상 = 처참한 천안함 절단면…北 중어뢰 공격으로 침몰}

    • 201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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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입니다” 급전유혹 눈속임광고 조심하세요

    《‘신한금융 상담원 이○○입니다. 고객님은 최저금리로 당일 1000만 원 송금 가능한 고객입니다….’ 직장인 김모 씨(36)는 최근 이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때마침 급히 돈이 필요했던 김 씨는 자신이 자주 거래하던 은행이 보낸 거라 믿고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과 통화를 하던 중 이상해서 “제가 거래하는 은행이 맞나요?”라고 물었다. 상담원은 그제야 ‘대부 알선업체’라고 실토했다. 김 씨는 “전화를 바로 끊었지만 그 뒤에도 비슷한 스팸 메시지가 계속 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미래에셋 연상 ‘미래’ 쓰는곳 서울서만 109곳수수료 선입금 사기도… 명칭 규제 마땅찮아유명 금융회사와 비슷한 이름을 내걸고 광고를 하는 사설 대부업체에 속는 피해자가 늘고 있다. 이런 대부업체들은 신한, 우리, 하나 등 유명 금융회사의 이름을 업체 이름에 포함시키는 수법으로 광고를 한 뒤 전화를 걸도록 유도한다. 특히 유명 금융회사라고 끝까지 믿고 대출을 받거나 대출 사기를 당하는 피해자들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에 사는 20대 여성 이모 씨는 지난해 10월 급히 500만 원이 필요했다. 이 씨는 때마침 자신이 주로 거래하던 은행과 이름이 비슷한 ‘하나금융’에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하나금융’이 ‘하나은행’이라 굳게 믿은 이 씨는 전화를 건 뒤 상담원의 요구에 따라 수수료 50만 원을 먼저 입금했다. 그러나 그 뒤로 아무 연락을 받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신고했지만 미등록 불법업체라 추적도 쉽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법 업체들은 점조직과 대포폰을 활용하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에 정식 등록된 일부 대부업체도 유명 금융회사의 이름을 교묘하게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동아일보가 서울시로부터 ‘서울시 대부업체 등록 현황’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올해 4월 말까지 등록된 대부업체 6500여 개 가운데 국내의 대표적인 금융그룹 ‘미래에셋’을 연상케 하는 ‘미래’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109개나 됐다. 노골적으로 ‘미래에셋’이란 단어를 업체 이름에 포함시킨 대부업체도 두 곳 있었다. ‘우리’를 내세운 업체는 85개, ‘국민’은 19개,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은 각각 12개, 11개였다. 특히 지난해 9월 미소금융 확대 방안이 발표된 이후 미소금융을 떠올리게 하는 ‘미소’를 이름으로 쓰는 업체도 5개 있었다. 그러나 관련 법규는 대부업체들의 이런 ‘눈속임 광고’를 확실히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은 대부업체가 허위 과장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은행, 저축은행, 종합금융 등의 명칭만 사용하지 않으면 유명 금융회사의 이름을 일부 포함해 자유롭게 지을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4월부터는 대부업체가 등록할 때는 ‘대부’라는 단어를 상호에 꼭 넣도록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대부업체가 이를 어기면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내야 한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은 미소금융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휴면예금관리재단법률 개정안을 이달 4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업체는 3년마다 재등록을 하기 때문에 법률 개정 전 이미 등록된 업체들은 남은 기간 기존 이름을 계속 쓸 수 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서류 심사 때 적발되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영업 취소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라는 단어를 포함하더라도 교묘하게 이름을 바꾸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201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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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지통]성매매 유혹 10대 소녀, 알고보니 여장 소년

    3월 말 서울 혜화경찰서에 장모 양(16) 등 10대 여성 청소년 5명이 잡혀왔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성들에게 “10만 원을 주면 성관계를 하겠다”고 제안해 모텔로 유인한 뒤 지갑을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일단 이들이 진술한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조사를 하고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청에 지문조회를 의뢰했다. 미성년자라 주민등록증이 없었기 때문. 경찰은 조회 결과가 나오기 전 주범 장 양을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20여 일 뒤 경찰과 검찰은 깜짝 놀랐다. 장 양의 지문이 절도 전과와 함께 경찰청에 등록돼 있었고, 신원을 확인한 결과 남자였던 것. 장 양은 그때서야 자신의 정체가 최모 군(16)이라고 털어놨다. 남자임을 밝히기 싫었던 최 군은 경찰 조사에서 친구 장 양의 주민등록번호를 댔다. 어릴 때부터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최 군은 여장을 하고 다니며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최 군과 같이 범행을 저지른 친구들도 “남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청치마를 입고, 여성 속옷까지 살짝 드러내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구치소에서 여성 수감자들과 함께 있던 최 군은 지난달 30일 남자 수용동으로 이감됐다. 검찰도 피의자 인적사항과 성별 등 공소장 내용을 정정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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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4년만의 첫 남성교수 “주변과 소통-남학생들 롤모델 힘쓸 것”

    “유일한 남자라 그런지 가끔 교탁 위에 케이크나 캔디가 놓여 있더라고요.” 1966년 처음 문을 연 뒤 44년 동안 여성 교수만 있던 경희대 생활과학대에 올해부터 남성 교수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주거환경학과 김준하 교수(38·사진). 2001년 미국 미네소타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그는 조지아공대에서 시설 관리(Facility Management)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올해 3월 경희대 생활과학대 사상 첫 남자 교수로 임용됐다. 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교정에서 만난 김 교수는 “면접 때 ‘혼자 남성인데 잘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유학시절 지도교수도 여자분이었고, 워낙 여성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생활과학대에는 아동가족학과, 주거환경학과, 의상학과, 식품영양학과 등의 학과가 있다. 21명의 교수 가운데 김 교수를 제외한 20명이 여성이고, 재학생 741명 중 여학생이 633명이다. 김 교수는 “남성이 많은 조직보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쿨’한 인품을 갖춘 교수가 많아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술자리가 많지 않은 것도 장점”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소수인 남학생들이 약간 패기가 부족하고 위축돼 있는 것 같다”며 “남학생들의 자신감을 북돋우는 것도 나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건축학과 경영학이 접목된 시설 관리 전공은 건축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분야를 집중 육성하려던 대학 측은 CNN 등에서 시설관리 경험까지 갖춘 김 교수를 적임자로 낙점했다. 이영순 학장(62·여)은 “교수사회에 다양한 소통을 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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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 원조교제 소녀, 알고보니 남자

    3월 말 서울 혜화경찰서에 장모 양(16) 등 10대 여성 청소년 5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남성들에게 "10만 원을 주면 성관계를 하겠다"고 제안해 모텔로 유인한 뒤 지갑을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일단 이들이 진술한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조사를 하고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청에 지문조회를 의뢰했다. 미성년자라 주민등록증이 없었기 때문. 경찰은 조회 결과가 나오기 전에 주범 장 양을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20여일 뒤 경찰과 검찰은 깜짝 놀랐다. 장 양의 지문이 절도 전과와 함께 경찰청에 등록돼 있었고, 신원을 확인한 결과 남자였던 것. 장 양은 그제야 자신의 정체가 최모 군(16)이라고 털어놨다. 남자임을 밝히기 싫었던 최 군은 경찰 조사에서 친구 장 양의 주민등록번호를 댔다. 어릴 때부터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최 군은 여장을 하고 다니며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최 군과 같이 범행을 한 친구들도 "남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청치마를 입고, 여성 속옷까지 살짝 드러내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구치소에서 여성 수감자들과 함께 있던 최 군은 지난달 30일 남자 수용동으로 이감됐다. 검찰 역시 피의자 인적사항과 성별 등 공소장 내용을 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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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직 경관이 10代 성폭행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사건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성매매 단속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현직 경찰관이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18일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1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서울 남대문경찰서 소속 나모 경장(3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나 경장은 16일 오전 3시경 인터넷 채팅을 하다 만난 김모 양(17·고교 중퇴)에게 “30만 원을 줄 테니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며 성 매수를 제안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나 경장은 김 양과 세 차례에 걸쳐 통화하며 만날 장소를 정하다 이날 오전 4시 반경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한 모텔로 이동해 함께 투숙했다. 나 경장은 객실로 들어가자마자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김 양을 협박했다. 나 경장은 “사실 나는 경찰인데 너는 지금 성매매를 하려다가 적발된 것이다”며 “지금 바로 나와 성관계를 갖지 않으면 성매매 현행범으로 경찰서로 데려가 처벌하고, 부모에게도 알리겠다”고 협박한 뒤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 경장과 헤어져 모텔을 나온 김 양은 바로 경찰에 “성폭행을 당했는데 가해자가 경찰인 것 같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김 양의 통화 기록에서 나 경장의 번호를 확인한 다음 17일 오후 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던 나 경장을 긴급체포했다. 나 경장은 지난달까지 청소년 선도활동과 성매매 단속을 주로 하는 여성청소년계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양은 나 경장이 진짜 경찰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성관계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로 데려간다는 협박이 두려워 큰 저항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나 경장은 경찰에서 “잘못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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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걱정마, 연아야” 점프할 때마다 전국민이 함께 펄쩍

    “연아가 점프할 때는 내 마음도 ‘트리플 러츠’를 뛰었고, 연아가 울 땐 같이 울었다.”온 국민이 김연아(20)의 손끝 하나에 숨을 죽였다. 경기에 나선 김연아가 점프 준비를 하면 모두가 같이 허리를 오므렸다. 김연아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자 시민들도 같이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26일 사상 최고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대한민국을 온통 뒤흔들어 놨다.시민들은 이날 낮부터 TV가 있는 곳마다 수백 명씩 모여들었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경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800여 명이 한데 모여 김연아를 기다렸다. 조동혁 씨(27)는 “고향인 전남 목포에 가야 하는데 경기를 보고 가려고 오후 늦게 예매했다. 너무 긴장되고 떨린다”며 양손을 꼭 잡았다. 시민들은 “우승은 당연하다”면서도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초조해했다.오후 1시 20분경 드디어 김연아의 경기가 시작됐다. 같은 시간 늘 붐비던 서울 도심 전체는 쥐 죽은 듯 숨을 죽였다. 서울역에서 바삐 오가던 시민들도 걸음을 멈췄다. 휴가를 나온 군인들도 고대하던 귀향을 잠시 미뤘다. 김연아가 점프를 성공해 나가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지만 “심장이 약해 도저히 못 보겠다”며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는 이도 있었다. “옳지!” “잘한다!” 김연아가 환상적인 스핀으로 경기를 마무리하자 열화와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연아의 점수가 세계신기록(총점 228.56)으로 나오자 모두들 “전율이 느껴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뒤이어 나선 아사다 마오(20·일본)가 김연아보다 낮은 점수를 받자 축제 분위기가 됐다. 두 손을 꼭 잡고 경기를 지켜보던 박슬기 씨(24·여)는 “연아가 우니까 나도 눈물을 참을 수 없다. 너무 장하다”며 울먹였다.이날 서울 도심 식당가들은 ‘김연아 특수’를 맞았다. 식당들은 ‘김연아 경기 생중계’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손님들을 받았다. 점심시간을 맞아 식당을 가득 메운 회사원들은 숟가락을 드는 것도 까먹은 채 경기를 지켜봤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복숙 씨(48·여)는 “며칠 전부터 손님들이 보여 달라고 난리여서 아예 대형 스크린으로 설치했다”며 웃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회사원들은 “오늘은 조금 늦게 회사에 들어가도 괜찮다”며 귀사를 미룬 채 재방송을 계속 지켜보기도 했다.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의료원 환자들도 이날만큼은 ‘건강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평소 5곳을 운영하던 수납 창구는 직원들이 TV 시청을 하느라 2개로 줄었지만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연아의 경기가 끝나자 “게임 끝이다. 아사다의 경기는 보지 않아도 된다”며 환자들이 병동으로 돌아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국진 씨(74)는 “병원에 있으면 정말 무료한데 오늘은 김연아 덕분에 너무 즐겁다”며 “몸도 훨씬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온라인도 하루 종일 뜨겁게 달궈졌다. 김연아의 공식 홈페이지(www.yunakim.com)는 접속자가 폭주해 오후 내내 다운됐다. 미니홈피는 밤늦게야 복구됐다. 누리꾼들은 “소녀 연아가 드디어 오늘 여왕으로 등극하셨다” “시상식이 아니라 ‘대관식’이다”라며 우승을 자축하는 댓글을 쏟아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다시보기 = 김연아, 완벽한 연기…전국민이 펄쩍}

    • 20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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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 5800명 남양군도 강제징용 첫 확인

    일제가 총동원령을 내린 1939년부터 3년여간 한국인 노무자 5800여 명이 사이판 등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일대(남양군도)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대부분 희생당한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국무총리 직속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2006년부터 3년 동안 조사를 벌여 이 같은 내용을 규명했다고 25일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38년 당시 남양군도의 한국인은 704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에 불과했으나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수가 급증해 1941년에는 58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인들을 이곳에 대거 데려와 군사시설을 짓고, 태평양전쟁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1942년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 8월까지는 더 많은 사람이 강제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았다.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은 비행장 건설과 사탕수수 재배 등에 동원돼 혹사당했다. 진상규명위는 일제가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 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아 60% 정도가 폭격과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상당수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로 돌아온 피해자 가운데 현재 생존한 사람도 50여 명에 불과하다. 진상규명위 김명환 조사팀장은 “남양군도 한인 강제동원과 관련해 아직도 많은 부분이 공백상태로 남아 있고 진상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 많다”며 “정부가 당시 상황을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남양군도는 1914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의 통치를 받은 곳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은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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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환자실 간호사’ 꿈도 같은 쌍둥이

    “환자들이 우리를 헷갈려 할까봐 동생이 머리를 잘랐어요.” 25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는 다섯 번이나 같은 졸업식에 선 자매가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로 이날 고려대 간호학과를 함께 졸업한 언니 최보람 씨(23)와 동생 최아람 씨(23)가 그 주인공. 1분 간격으로 태어난 이들은 강릉 뽀뽀뽀유치원을 시작으로 초당초교, 경포여중, 강릉여고도 같이 졸업했다. 다음 달부터는 고려대 의료원 간호사로 ‘입사 동기’가 된다. 자매는 늘 붙어 다녔다. 대학교에서도 4년 내내 모든 전공수업을 같이 들었다. 매일 옆에 앉아 함께 수업을 듣던 이들에게 교수들은 “지겹지도 않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남자친구까지 같은 영어회화 동아리에서 만났다. 지난해 7월 고려대의료원 입사면접을 볼 때도 같은 조가 돼 면접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자매는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친구였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다. 어머니 황정남 씨(50)는 “시험을 보고 오면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며 경쟁을 펼쳤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언니가 동생보다 딱 한 문제 더 맞았다. 자매는 서로 경쟁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4년 내내 장학금을 거르지 않았다. 쌍둥이라서 싫었던 적도 많다. 이들은 “어려서는 엄마가 옷과 머리 모양을 똑같이 해줘 창피했다”고 입을 모았다. 성격은 정반대다. 언니보다 동생이 성격이 더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다. 하지만 꿈은 똑같다. 이들은 “간호사가 되면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간호사와 환자가 더욱 밀착할 수 있어 꼭 근무해 보고 싶다고. 이들은 “고려대의료원은 안암, 구로, 안산 세 곳에 있는데 역시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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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훈, 공부-운동 다 잘하고 잘생기고…심성까지 맑아 인기 최고였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잘생긴 데다 인기도 좋은 ‘완벽남’이었죠.”이승훈(22·한국체대)이 서울 리라초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교사였던 윤병화 씨(47·여·사진)는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승훈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윤 교사는 이승훈이 2학년, 6학년일 때 두 번 담임을 맡았다. 그는 “스케이트를 정말 좋아하던 승훈이는 이미 입학할 때부터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했다”며 “가끔 학교에 찾아올 때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모습은 언제 보여줄래’라고 농담 삼아 말했는데 정말 감격스럽다”고 말했다.윤 교사가 기억하는 이승훈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아이였다. 얼굴도 하얀 ‘꽃미남’인 데다가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했고 성실했기 때문. 그는 “수업시간에 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집중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스케이팅 연습 때문에 수업을 자주 빠지면서도 숙제만큼은 꼭 해왔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전 과목 성적이 상위권이었고, 매년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던 이승훈에게 공부를 더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 승훈이가 ‘선생님 저는 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게 아직도 떠오른다”며 웃었다. 선생님들의 ‘공부 권유’는 서울 신목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이어졌지만 이승훈은 스케이트가 더 좋았다. 이승훈의 어머니 윤기수 씨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우등상을 매년 탔고, 수업에 빠지면 친구 노트를 빌려 수업을 따라갈 정도였다”고 말했다.1998년 외환위기 무렵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이승훈은 늘 긍정적으로 생활했다. 윤 씨는 “힘든 내색을 거의 하지 않고, 심성이 맑아 많은 선생님이 ‘바른 아이’라고 칭찬했다”며 “훈련이 참 힘들었을 텐데 힘든 티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어른스러웠다”고 기억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박혜림 기자 inourtime@donga.com}

    • 20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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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훈 금메달 따던 순간

    "1만 m 국제경기는 사실상 오늘이 데뷔전이라…." 24일 새벽 4시경 서울 중구 예장동 이승훈(22)의 큰아버지 집. 가족들과 함께 이승훈의 경기를 기다리던 아버지 이수용 씨(52)는 덤덤했다. 이승훈이 스피드스케이팅 1만 m 국제대회에 출전한 것은 지난달 10일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에서 열린 세계 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이 처음이었기 때문. 이 씨와 부인 윤기수 씨(48)는 "유럽 선수들과 1만 m를 경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승훈이 올림픽신기록으로 결승점에 들어왔을 때도 이 씨 부부는 "남은 조 선수들을 더 두고 봐야한다"며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승훈보다 4초 앞섰던 스벤 크라머(24·네덜란드)가 실격 처리되자 가족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씨 부부는 "올림픽 금메달은 정말 하늘이 주는 것"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누나 이연재 씨(24)도 "밴쿠버에 가기 전 승훈이가 '1만 m가 더 자신 있다'고 말했는데 진짜 우승할 지는 몰랐다. 동생이 너무 의젓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1995년 서울 리라초등학교에서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승훈의 열정은 누구도 못 말렸다. 1998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이승훈을 매일 훈련장까지 실어 날랐던 차까지 팔았다. 스케이트를 계속 시키기에는 어려운 형편이었던 것. 이승훈은 "혼자서라도 훈련장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새벽마다 버스를 타는 아들이 안쓰러웠던 아버지는 중고차를 구입해 다시 뒷바라지에 나섰다. 이 씨는 "아들 덕분에 나도 용기를 얻었다"고 회상했다. 쇼트트랙 유망주로 각광받던 이승훈은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위기를 겪었다. 방황하던 이승훈은 갑자기 "스피드스케이팅을 하겠다"고 선언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지난해 7월부터 다시 몸을 만들어 10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불과 넉달 만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 씨 부부는 "늘 '할 수 있다'고 말하던 승훈이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라며 감격해 했다.유성열기자 ryu@donga.com▲ 다시보기 = 빙속 이승훈, 1만m 금메달}

    • 201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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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노동자 보호 협약 비준 서둘러야”

    사단법인 아시아인권센터,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 동남아지역사무소와 고려대 국제대학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동아일보와 정암재단이 후원하는 ‘제5회 아시아 인권포럼’이 2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국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신장’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상황을 널리 알리고, 이주노동자를 보내는 ‘송출국’과 받아들이는 ‘목적국’ 간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호마윤 알리자데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동남아지역사무소 대표는 대니얼 스콧 콜린지 인권사무관이 대독한 기조연설을 통해 “각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 비준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앞으로 노동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한국은 특히 이 협약의 비준이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우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문화 민족으로 성장해 왔다”며 “과거 해외 각국으로 일을 하러 떠났던 우리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6년 시작된 이 포럼은 각국 정부와 비정부기구,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제적 인권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해왔다. 24일부터 26일까지는 인권활동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 등 60여 명이 참석하는 ‘제6회 청년인권활동가 워크숍’이 같은 장소에서 이어진다. 일본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워크숍에서는 인권 전문가들로부터 아동, 여성, 장애인, 탈북자, 이주노동자 등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교육을 받고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한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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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지통]숨던 버릇때문에… 23년만에 잡힌 탈영병

    23년 동안 도망 다녔다. 선글라스를 끼거나 모자를 쓰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김모 씨(44)는 20일 오전에도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다. 그는 탈영병이었다. 1987년 12월 1일 육군 복무 중이던 김 씨는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했다. 김 씨는 23년 동안 군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뒀던 주민등록이 말소돼 결혼은커녕 취직도 못했지만 군대에 끌려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하지만 경찰의 검거망을 영원히 피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20일 오전 10시 반경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출구 옆에 서 있던 김 씨를 계속 지켜봤다. 아침부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게 수상했기 때문. 경찰은 김 씨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요구했다. 김 씨는 “지갑이 없다”거나 “주민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경찰은 계속 추궁해 생년월일을 알아낸 뒤 그가 탈영병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붙잡은 김 씨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대로 신병을 넘겼다. 헌병대 관계자는 “군복무 이탈자는 공소시효가 7년이지만 각 군 참모총장이 3년마다 한 번씩 복귀명령을 내리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넘긴 탈영병도 명령위반죄로 군사법원에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씨는 40세가 넘어 군대는 가지 않는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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