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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미화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해 물의를 일으킨 경희대 재학생이 미화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 경희대와 경희대 총학생회는 “20일 저녁 해당 여학생이 미화원을 만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미화원께서 사과를 받아주셨다”고 21일 밝혔다. 경희대와 학생회 측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학생처 관계자와 학생회 관계자가 함께 참석해 사과를 주선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일단 해당 학생을 상대로 진상 조사를 한 뒤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미화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한 부분이 충분히 고려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린 미화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도 다시 글을 올려 “어머니가 학생을 만나 사과를 받았는데 학생이 많이 반성하는 모습이었다”며 “어머니가 처음부터 원한 것은 사과였으니 이제 사건을 종결짓고자 한다. 더 이상의 관심과 질타는 접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3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청운관 화장실과 여학생휴게실에서 한 여학생이 학내미화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했고, 미화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이 같은 사실을 담은 글을 올려 ‘패륜녀’ 파문이 일었다. 파문이 커지자 학교 측은 진상 조사에 나서 20일 해당 학생의 신원을 확인했고, 이 학생의 부모도 미화원을 찾아가 사과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학내 미화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해 물의를 일으킨 경희대 재학생이 미화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 경희대와 경희대 총학생회는 "20일 저녁 해당 여학생이 미화원을 만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미화원께서 사과를 받아주셨다"고 21일 밝혔다. 경희대와 학생회 측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학생처 관계자와 학생회 관계자가 함께 참석해 사과를 주선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일단 해당 학생을 상대로 진상 조사를 한 뒤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결정 하겠다"며 "미화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한 부분이 충분히 고려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포털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린 미화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도 다시 글을 올려 "어머니가 학생을 만나 사과를 받았는데 학생이 많이 반성하는 모습이었다"며 "어머니가 처음부터 원한 것은 사과였으니 이제 사건을 종결짓고자 한다. 더 이상의 관심과 질타는 접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달 13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청운관 화장실과 여학생 휴게실에서 한 여학생이 학내미화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했고, 미화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이 같은 사실을 담은 글을 올려 '패륜녀' 파문이 일었다. 파문이 커지자 학교 측은 진상 조사에 나서 20일 해당 학생의 신원을 확인했고, 앞서 이 학생의 부모도 미화원을 찾아가 사과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대부분의 군사·선박 전문가들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타격돼 침몰했다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신영식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70)는 “천안함을 타격한 어뢰를 발견했고 이 어뢰가 북한 것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오늘 결과로 ‘좌초설’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과 교수(45)도 “나라마다 철을 만드는 기술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북한 어뢰와 이번에 발견된 어뢰의 금속성분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도 결정적 증거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나정열 한양대 해양환경과학과 명예교수(67)는 “일부에서 각종 의혹을 제기하지만 조사단이 제시한 증거는 수중 폭파가 일어나 함체가 두 동강 나는 과정이 정확히 설명된다”고 밝혔다. 김태준 한반도문제연구소장(54·전 공주함 함장)도 “미국 영국 등 해외조사단까지 조사 결과에 동의했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라는 것을 뒷받침한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보고서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역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이만큼 증명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 등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도 이번 조사 결과를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46)는 “유엔에서 이번 문제가 논의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입장을 배려해 기권할 수는 있겠지만 북한을 두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북한 잠수함의 이동 경로 등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43)는 “타격을 가한 어뢰에 대한 증거는 상당 부분 제시가 됐지만 북한 잠수함이 이동했다 돌아간 대목은 명확한 물증 제시가 없었다”며 “잠수함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추정만 내놓았기 때문에 중국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동영상 = 北어뢰 파편 공개…천안함 침몰 결정적 증거 ▲ 동영상 = 처참한 천안함 절단면…北 중어뢰 공격으로 침몰}

《‘신한금융 상담원 이○○입니다. 고객님은 최저금리로 당일 1000만 원 송금 가능한 고객입니다….’ 직장인 김모 씨(36)는 최근 이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때마침 급히 돈이 필요했던 김 씨는 자신이 자주 거래하던 은행이 보낸 거라 믿고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과 통화를 하던 중 이상해서 “제가 거래하는 은행이 맞나요?”라고 물었다. 상담원은 그제야 ‘대부 알선업체’라고 실토했다. 김 씨는 “전화를 바로 끊었지만 그 뒤에도 비슷한 스팸 메시지가 계속 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미래에셋 연상 ‘미래’ 쓰는곳 서울서만 109곳수수료 선입금 사기도… 명칭 규제 마땅찮아유명 금융회사와 비슷한 이름을 내걸고 광고를 하는 사설 대부업체에 속는 피해자가 늘고 있다. 이런 대부업체들은 신한, 우리, 하나 등 유명 금융회사의 이름을 업체 이름에 포함시키는 수법으로 광고를 한 뒤 전화를 걸도록 유도한다. 특히 유명 금융회사라고 끝까지 믿고 대출을 받거나 대출 사기를 당하는 피해자들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에 사는 20대 여성 이모 씨는 지난해 10월 급히 500만 원이 필요했다. 이 씨는 때마침 자신이 주로 거래하던 은행과 이름이 비슷한 ‘하나금융’에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하나금융’이 ‘하나은행’이라 굳게 믿은 이 씨는 전화를 건 뒤 상담원의 요구에 따라 수수료 50만 원을 먼저 입금했다. 그러나 그 뒤로 아무 연락을 받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신고했지만 미등록 불법업체라 추적도 쉽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법 업체들은 점조직과 대포폰을 활용하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에 정식 등록된 일부 대부업체도 유명 금융회사의 이름을 교묘하게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동아일보가 서울시로부터 ‘서울시 대부업체 등록 현황’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올해 4월 말까지 등록된 대부업체 6500여 개 가운데 국내의 대표적인 금융그룹 ‘미래에셋’을 연상케 하는 ‘미래’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109개나 됐다. 노골적으로 ‘미래에셋’이란 단어를 업체 이름에 포함시킨 대부업체도 두 곳 있었다. ‘우리’를 내세운 업체는 85개, ‘국민’은 19개,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은 각각 12개, 11개였다. 특히 지난해 9월 미소금융 확대 방안이 발표된 이후 미소금융을 떠올리게 하는 ‘미소’를 이름으로 쓰는 업체도 5개 있었다. 그러나 관련 법규는 대부업체들의 이런 ‘눈속임 광고’를 확실히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은 대부업체가 허위 과장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은행, 저축은행, 종합금융 등의 명칭만 사용하지 않으면 유명 금융회사의 이름을 일부 포함해 자유롭게 지을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4월부터는 대부업체가 등록할 때는 ‘대부’라는 단어를 상호에 꼭 넣도록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대부업체가 이를 어기면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내야 한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은 미소금융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휴면예금관리재단법률 개정안을 이달 4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업체는 3년마다 재등록을 하기 때문에 법률 개정 전 이미 등록된 업체들은 남은 기간 기존 이름을 계속 쓸 수 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서류 심사 때 적발되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영업 취소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라는 단어를 포함하더라도 교묘하게 이름을 바꾸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3월 말 서울 혜화경찰서에 장모 양(16) 등 10대 여성 청소년 5명이 잡혀왔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성들에게 “10만 원을 주면 성관계를 하겠다”고 제안해 모텔로 유인한 뒤 지갑을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일단 이들이 진술한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조사를 하고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청에 지문조회를 의뢰했다. 미성년자라 주민등록증이 없었기 때문. 경찰은 조회 결과가 나오기 전 주범 장 양을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20여 일 뒤 경찰과 검찰은 깜짝 놀랐다. 장 양의 지문이 절도 전과와 함께 경찰청에 등록돼 있었고, 신원을 확인한 결과 남자였던 것. 장 양은 그때서야 자신의 정체가 최모 군(16)이라고 털어놨다. 남자임을 밝히기 싫었던 최 군은 경찰 조사에서 친구 장 양의 주민등록번호를 댔다. 어릴 때부터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최 군은 여장을 하고 다니며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최 군과 같이 범행을 저지른 친구들도 “남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청치마를 입고, 여성 속옷까지 살짝 드러내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구치소에서 여성 수감자들과 함께 있던 최 군은 지난달 30일 남자 수용동으로 이감됐다. 검찰도 피의자 인적사항과 성별 등 공소장 내용을 정정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유일한 남자라 그런지 가끔 교탁 위에 케이크나 캔디가 놓여 있더라고요.” 1966년 처음 문을 연 뒤 44년 동안 여성 교수만 있던 경희대 생활과학대에 올해부터 남성 교수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주거환경학과 김준하 교수(38·사진). 2001년 미국 미네소타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그는 조지아공대에서 시설 관리(Facility Management)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올해 3월 경희대 생활과학대 사상 첫 남자 교수로 임용됐다. 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교정에서 만난 김 교수는 “면접 때 ‘혼자 남성인데 잘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유학시절 지도교수도 여자분이었고, 워낙 여성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생활과학대에는 아동가족학과, 주거환경학과, 의상학과, 식품영양학과 등의 학과가 있다. 21명의 교수 가운데 김 교수를 제외한 20명이 여성이고, 재학생 741명 중 여학생이 633명이다. 김 교수는 “남성이 많은 조직보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쿨’한 인품을 갖춘 교수가 많아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술자리가 많지 않은 것도 장점”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소수인 남학생들이 약간 패기가 부족하고 위축돼 있는 것 같다”며 “남학생들의 자신감을 북돋우는 것도 나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건축학과 경영학이 접목된 시설 관리 전공은 건축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분야를 집중 육성하려던 대학 측은 CNN 등에서 시설관리 경험까지 갖춘 김 교수를 적임자로 낙점했다. 이영순 학장(62·여)은 “교수사회에 다양한 소통을 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3월 말 서울 혜화경찰서에 장모 양(16) 등 10대 여성 청소년 5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남성들에게 "10만 원을 주면 성관계를 하겠다"고 제안해 모텔로 유인한 뒤 지갑을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일단 이들이 진술한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조사를 하고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청에 지문조회를 의뢰했다. 미성년자라 주민등록증이 없었기 때문. 경찰은 조회 결과가 나오기 전에 주범 장 양을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20여일 뒤 경찰과 검찰은 깜짝 놀랐다. 장 양의 지문이 절도 전과와 함께 경찰청에 등록돼 있었고, 신원을 확인한 결과 남자였던 것. 장 양은 그제야 자신의 정체가 최모 군(16)이라고 털어놨다. 남자임을 밝히기 싫었던 최 군은 경찰 조사에서 친구 장 양의 주민등록번호를 댔다. 어릴 때부터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최 군은 여장을 하고 다니며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최 군과 같이 범행을 한 친구들도 "남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청치마를 입고, 여성 속옷까지 살짝 드러내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구치소에서 여성 수감자들과 함께 있던 최 군은 지난달 30일 남자 수용동으로 이감됐다. 검찰 역시 피의자 인적사항과 성별 등 공소장 내용을 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사건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성매매 단속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현직 경찰관이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18일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1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서울 남대문경찰서 소속 나모 경장(3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나 경장은 16일 오전 3시경 인터넷 채팅을 하다 만난 김모 양(17·고교 중퇴)에게 “30만 원을 줄 테니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며 성 매수를 제안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나 경장은 김 양과 세 차례에 걸쳐 통화하며 만날 장소를 정하다 이날 오전 4시 반경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한 모텔로 이동해 함께 투숙했다. 나 경장은 객실로 들어가자마자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김 양을 협박했다. 나 경장은 “사실 나는 경찰인데 너는 지금 성매매를 하려다가 적발된 것이다”며 “지금 바로 나와 성관계를 갖지 않으면 성매매 현행범으로 경찰서로 데려가 처벌하고, 부모에게도 알리겠다”고 협박한 뒤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 경장과 헤어져 모텔을 나온 김 양은 바로 경찰에 “성폭행을 당했는데 가해자가 경찰인 것 같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김 양의 통화 기록에서 나 경장의 번호를 확인한 다음 17일 오후 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던 나 경장을 긴급체포했다. 나 경장은 지난달까지 청소년 선도활동과 성매매 단속을 주로 하는 여성청소년계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양은 나 경장이 진짜 경찰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성관계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로 데려간다는 협박이 두려워 큰 저항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나 경장은 경찰에서 “잘못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연아가 점프할 때는 내 마음도 ‘트리플 러츠’를 뛰었고, 연아가 울 땐 같이 울었다.”온 국민이 김연아(20)의 손끝 하나에 숨을 죽였다. 경기에 나선 김연아가 점프 준비를 하면 모두가 같이 허리를 오므렸다. 김연아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자 시민들도 같이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26일 사상 최고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대한민국을 온통 뒤흔들어 놨다.시민들은 이날 낮부터 TV가 있는 곳마다 수백 명씩 모여들었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경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800여 명이 한데 모여 김연아를 기다렸다. 조동혁 씨(27)는 “고향인 전남 목포에 가야 하는데 경기를 보고 가려고 오후 늦게 예매했다. 너무 긴장되고 떨린다”며 양손을 꼭 잡았다. 시민들은 “우승은 당연하다”면서도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초조해했다.오후 1시 20분경 드디어 김연아의 경기가 시작됐다. 같은 시간 늘 붐비던 서울 도심 전체는 쥐 죽은 듯 숨을 죽였다. 서울역에서 바삐 오가던 시민들도 걸음을 멈췄다. 휴가를 나온 군인들도 고대하던 귀향을 잠시 미뤘다. 김연아가 점프를 성공해 나가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지만 “심장이 약해 도저히 못 보겠다”며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는 이도 있었다. “옳지!” “잘한다!” 김연아가 환상적인 스핀으로 경기를 마무리하자 열화와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연아의 점수가 세계신기록(총점 228.56)으로 나오자 모두들 “전율이 느껴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뒤이어 나선 아사다 마오(20·일본)가 김연아보다 낮은 점수를 받자 축제 분위기가 됐다. 두 손을 꼭 잡고 경기를 지켜보던 박슬기 씨(24·여)는 “연아가 우니까 나도 눈물을 참을 수 없다. 너무 장하다”며 울먹였다.이날 서울 도심 식당가들은 ‘김연아 특수’를 맞았다. 식당들은 ‘김연아 경기 생중계’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손님들을 받았다. 점심시간을 맞아 식당을 가득 메운 회사원들은 숟가락을 드는 것도 까먹은 채 경기를 지켜봤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복숙 씨(48·여)는 “며칠 전부터 손님들이 보여 달라고 난리여서 아예 대형 스크린으로 설치했다”며 웃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회사원들은 “오늘은 조금 늦게 회사에 들어가도 괜찮다”며 귀사를 미룬 채 재방송을 계속 지켜보기도 했다.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의료원 환자들도 이날만큼은 ‘건강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평소 5곳을 운영하던 수납 창구는 직원들이 TV 시청을 하느라 2개로 줄었지만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연아의 경기가 끝나자 “게임 끝이다. 아사다의 경기는 보지 않아도 된다”며 환자들이 병동으로 돌아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국진 씨(74)는 “병원에 있으면 정말 무료한데 오늘은 김연아 덕분에 너무 즐겁다”며 “몸도 훨씬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온라인도 하루 종일 뜨겁게 달궈졌다. 김연아의 공식 홈페이지(www.yunakim.com)는 접속자가 폭주해 오후 내내 다운됐다. 미니홈피는 밤늦게야 복구됐다. 누리꾼들은 “소녀 연아가 드디어 오늘 여왕으로 등극하셨다” “시상식이 아니라 ‘대관식’이다”라며 우승을 자축하는 댓글을 쏟아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다시보기 = 김연아, 완벽한 연기…전국민이 펄쩍}
일제가 총동원령을 내린 1939년부터 3년여간 한국인 노무자 5800여 명이 사이판 등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일대(남양군도)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대부분 희생당한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국무총리 직속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2006년부터 3년 동안 조사를 벌여 이 같은 내용을 규명했다고 25일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38년 당시 남양군도의 한국인은 704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에 불과했으나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수가 급증해 1941년에는 58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인들을 이곳에 대거 데려와 군사시설을 짓고, 태평양전쟁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1942년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 8월까지는 더 많은 사람이 강제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았다.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은 비행장 건설과 사탕수수 재배 등에 동원돼 혹사당했다. 진상규명위는 일제가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 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아 60% 정도가 폭격과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상당수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로 돌아온 피해자 가운데 현재 생존한 사람도 50여 명에 불과하다. 진상규명위 김명환 조사팀장은 “남양군도 한인 강제동원과 관련해 아직도 많은 부분이 공백상태로 남아 있고 진상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 많다”며 “정부가 당시 상황을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남양군도는 1914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의 통치를 받은 곳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은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환자들이 우리를 헷갈려 할까봐 동생이 머리를 잘랐어요.” 25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는 다섯 번이나 같은 졸업식에 선 자매가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로 이날 고려대 간호학과를 함께 졸업한 언니 최보람 씨(23)와 동생 최아람 씨(23)가 그 주인공. 1분 간격으로 태어난 이들은 강릉 뽀뽀뽀유치원을 시작으로 초당초교, 경포여중, 강릉여고도 같이 졸업했다. 다음 달부터는 고려대 의료원 간호사로 ‘입사 동기’가 된다. 자매는 늘 붙어 다녔다. 대학교에서도 4년 내내 모든 전공수업을 같이 들었다. 매일 옆에 앉아 함께 수업을 듣던 이들에게 교수들은 “지겹지도 않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남자친구까지 같은 영어회화 동아리에서 만났다. 지난해 7월 고려대의료원 입사면접을 볼 때도 같은 조가 돼 면접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자매는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친구였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다. 어머니 황정남 씨(50)는 “시험을 보고 오면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며 경쟁을 펼쳤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언니가 동생보다 딱 한 문제 더 맞았다. 자매는 서로 경쟁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4년 내내 장학금을 거르지 않았다. 쌍둥이라서 싫었던 적도 많다. 이들은 “어려서는 엄마가 옷과 머리 모양을 똑같이 해줘 창피했다”고 입을 모았다. 성격은 정반대다. 언니보다 동생이 성격이 더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다. 하지만 꿈은 똑같다. 이들은 “간호사가 되면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간호사와 환자가 더욱 밀착할 수 있어 꼭 근무해 보고 싶다고. 이들은 “고려대의료원은 안암, 구로, 안산 세 곳에 있는데 역시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잘생긴 데다 인기도 좋은 ‘완벽남’이었죠.”이승훈(22·한국체대)이 서울 리라초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교사였던 윤병화 씨(47·여·사진)는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승훈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윤 교사는 이승훈이 2학년, 6학년일 때 두 번 담임을 맡았다. 그는 “스케이트를 정말 좋아하던 승훈이는 이미 입학할 때부터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했다”며 “가끔 학교에 찾아올 때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모습은 언제 보여줄래’라고 농담 삼아 말했는데 정말 감격스럽다”고 말했다.윤 교사가 기억하는 이승훈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아이였다. 얼굴도 하얀 ‘꽃미남’인 데다가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했고 성실했기 때문. 그는 “수업시간에 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집중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스케이팅 연습 때문에 수업을 자주 빠지면서도 숙제만큼은 꼭 해왔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전 과목 성적이 상위권이었고, 매년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던 이승훈에게 공부를 더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 승훈이가 ‘선생님 저는 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게 아직도 떠오른다”며 웃었다. 선생님들의 ‘공부 권유’는 서울 신목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이어졌지만 이승훈은 스케이트가 더 좋았다. 이승훈의 어머니 윤기수 씨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우등상을 매년 탔고, 수업에 빠지면 친구 노트를 빌려 수업을 따라갈 정도였다”고 말했다.1998년 외환위기 무렵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이승훈은 늘 긍정적으로 생활했다. 윤 씨는 “힘든 내색을 거의 하지 않고, 심성이 맑아 많은 선생님이 ‘바른 아이’라고 칭찬했다”며 “훈련이 참 힘들었을 텐데 힘든 티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어른스러웠다”고 기억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박혜림 기자 inourtime@donga.com}
"1만 m 국제경기는 사실상 오늘이 데뷔전이라…." 24일 새벽 4시경 서울 중구 예장동 이승훈(22)의 큰아버지 집. 가족들과 함께 이승훈의 경기를 기다리던 아버지 이수용 씨(52)는 덤덤했다. 이승훈이 스피드스케이팅 1만 m 국제대회에 출전한 것은 지난달 10일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에서 열린 세계 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이 처음이었기 때문. 이 씨와 부인 윤기수 씨(48)는 "유럽 선수들과 1만 m를 경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승훈이 올림픽신기록으로 결승점에 들어왔을 때도 이 씨 부부는 "남은 조 선수들을 더 두고 봐야한다"며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승훈보다 4초 앞섰던 스벤 크라머(24·네덜란드)가 실격 처리되자 가족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씨 부부는 "올림픽 금메달은 정말 하늘이 주는 것"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누나 이연재 씨(24)도 "밴쿠버에 가기 전 승훈이가 '1만 m가 더 자신 있다'고 말했는데 진짜 우승할 지는 몰랐다. 동생이 너무 의젓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1995년 서울 리라초등학교에서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승훈의 열정은 누구도 못 말렸다. 1998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이승훈을 매일 훈련장까지 실어 날랐던 차까지 팔았다. 스케이트를 계속 시키기에는 어려운 형편이었던 것. 이승훈은 "혼자서라도 훈련장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새벽마다 버스를 타는 아들이 안쓰러웠던 아버지는 중고차를 구입해 다시 뒷바라지에 나섰다. 이 씨는 "아들 덕분에 나도 용기를 얻었다"고 회상했다. 쇼트트랙 유망주로 각광받던 이승훈은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위기를 겪었다. 방황하던 이승훈은 갑자기 "스피드스케이팅을 하겠다"고 선언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지난해 7월부터 다시 몸을 만들어 10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불과 넉달 만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 씨 부부는 "늘 '할 수 있다'고 말하던 승훈이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라며 감격해 했다.유성열기자 ryu@donga.com▲ 다시보기 = 빙속 이승훈, 1만m 금메달}

사단법인 아시아인권센터,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 동남아지역사무소와 고려대 국제대학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동아일보와 정암재단이 후원하는 ‘제5회 아시아 인권포럼’이 2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국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신장’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상황을 널리 알리고, 이주노동자를 보내는 ‘송출국’과 받아들이는 ‘목적국’ 간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호마윤 알리자데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동남아지역사무소 대표는 대니얼 스콧 콜린지 인권사무관이 대독한 기조연설을 통해 “각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 비준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앞으로 노동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한국은 특히 이 협약의 비준이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우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문화 민족으로 성장해 왔다”며 “과거 해외 각국으로 일을 하러 떠났던 우리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6년 시작된 이 포럼은 각국 정부와 비정부기구,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제적 인권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해왔다. 24일부터 26일까지는 인권활동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 등 60여 명이 참석하는 ‘제6회 청년인권활동가 워크숍’이 같은 장소에서 이어진다. 일본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워크숍에서는 인권 전문가들로부터 아동, 여성, 장애인, 탈북자, 이주노동자 등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교육을 받고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한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23년 동안 도망 다녔다. 선글라스를 끼거나 모자를 쓰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김모 씨(44)는 20일 오전에도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다. 그는 탈영병이었다. 1987년 12월 1일 육군 복무 중이던 김 씨는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했다. 김 씨는 23년 동안 군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뒀던 주민등록이 말소돼 결혼은커녕 취직도 못했지만 군대에 끌려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하지만 경찰의 검거망을 영원히 피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20일 오전 10시 반경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출구 옆에 서 있던 김 씨를 계속 지켜봤다. 아침부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게 수상했기 때문. 경찰은 김 씨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요구했다. 김 씨는 “지갑이 없다”거나 “주민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경찰은 계속 추궁해 생년월일을 알아낸 뒤 그가 탈영병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붙잡은 김 씨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대로 신병을 넘겼다. 헌병대 관계자는 “군복무 이탈자는 공소시효가 7년이지만 각 군 참모총장이 3년마다 한 번씩 복귀명령을 내리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넘긴 탈영병도 명령위반죄로 군사법원에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씨는 40세가 넘어 군대는 가지 않는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22일 0시 반경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병원에서 구급차 운전자로 근무하는 윤모 씨(41)는 당직실에서 맥주를 들이켰다. 업무가 많지 않아 일찍 잘 생각이었던 것. 그러나 5분 뒤 “성북구 동선동에 30대 여성이 간질 증상을 보이고 있으니 빨리 병원으로 옮겨 달라”는 전화가 왔다. 취기가 약간 올랐지만 윤 씨는 평소처럼 운전대를 잡고 도로로 나갔다. 윤 씨는 0시 40분경 노원구 상계동 영진사거리에 도착했다. 밤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신호등에는 빨간불이 켜졌지만 차가 오지 않는 것 같아 좌회전을 시도했다. 시속 약 30km까지 속력을 올리며 핸들을 틀었다. 왼쪽 차로로 접어들려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직진 신호를 받고 시속 40km로 주행하던 택시가 구급차 왼쪽을 들이받았던 것. 김모 씨(62)가 운전하던 개인택시는 앞 범퍼가 크게 망가졌지만 김 씨와 20대 남녀 승객 2명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상태를 확인한 윤 씨는 안심했지만 술 냄새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신호를 위반한 윤 씨를 수상히 여겨 음주측정기를 갖다 댔다. 윤 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100일간 면허정지 수준인 0.062%였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22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윤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구급차를 요청했던 30대 여성 환자는 다른 구급차를 타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 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당신과 골수유전자(조직적합성항원형)가 일치하는 사람이 백혈병으로 고통 받고 있어요. 당신의 골수(조혈모세포)를 기증받으면 완치될 수 있습니다.” 회사원 장현진 씨(40)는 지난해 6월 미국 조혈모세포은행으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들긴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좋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1988년 서울 대원외국어고 3학년에 다니던 장 씨는 무역업을 하던 부모를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다. 장 씨는 노스리지 캘리포니아주립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영화사에 취직했다. 1999년 이 회사의 한국지사장으로 발령 받은 후에는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현재 한 대기업 자회사의 간부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골수 기증 시술을 위해 최근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장 씨는 2006년 10월 미국에 들렀다가 골수 기증 봉사활동을 하던 지인으로부터 “미국에는 유독 한국인들의 골수 기증이 적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 그는 미국 조혈모세포은행에 골수기증 의사를 밝혔다. 피를 뽑아야 하는 한국보다 등록 절차도 간단했다. 면봉으로 얼굴과 혀 아래 부분의 세포만 긁어내면 바로 등록이 됐다. 장 씨는 미국에서 골수 기증 의사를 밝힌 지 3년 만에 나타난 이 환자가 당연히 미국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수술도 미국에 가서 받아야 할 거라 여기고 출국 준비도 했다. 그러나 장 씨의 골수를 기증받는 환자가 공교롭게도 한국인이라는 걸 곧 알게 됐다. 기증자와 환자의 신원을 비밀로 하는 규칙상 서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미국 기관을 통해 골수를 주고받게 된 이들이 모두 ‘한국인’인 인연을 맺은 셈이었다. 골수 안에 비정상적인 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해 생기는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린 이 환자는 골수기증자를 찾지 못해 수년간 고통을 겪었다. 이 병은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의 골수를 이식받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골수기증자와 환자의 유전자가 일치할 확률은 2만분의 1에 불과하다. 이 환자는 그동안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를 통해 기증자를 찾아봤지만 유전자가 맞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 대만 등지까지 수소문하다 지난해 미국 조혈모세포은행으로부터 유전자가 일치하는 골수기증자가 있다는 낭보를 들었다. 물론 환자와 미국 은행 측 모두 기증자가 한국인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장 씨는 골수 채취 수술을 받기 위해 최근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실에서 만난 장 씨는 “수술을 받는다고 하면 걱정하실까봐 어머니께는 비밀로 하고 형에게만 알렸다”면서도 “한국인의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돼 오히려 더 잘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나도 잘 안다”고 털어놓았다. 장 씨의 아버지도 난치병을 앓다 지난달 7일 세상을 떠난 것. 아버지를 1년 동안 괴롭힌 병은 신경세포가 서서히 파괴돼 근육을 쓸 수 없게 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었다. 장 씨는 “병이 악화돼 가는 아버지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정말 고통스러웠다”며 “골수를 빨리 기증해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모두 덜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수술에 앞서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술까지 끊었다는 장 씨는 “부디 수술이 잘돼 환자가 새로운 삶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사진작가가 세상에 숨겨진 ‘작은 소리’를 열심히 듣고 있다. “들을 순 없어도 눈으로 나눈다”며 소외계층을 위한 활동에 힘쓰는 청각장애인 김영삼 씨(사진)가 주인공. 장애인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미국과 한국을 수없이 오간다. 그가 아이티 이재민들과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듣고, 나눌 수 있는지 직접 들어봤다. ■ 김무성 “절충안 부결 땐 수정안 찬성”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으로 불려온 김무성 의원은 세종시 문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까. 김 의원이 18일 기자회견에서 독자노선을 선언하며 자신의 세종시 절충안을 내놓자 친박 진영은 술렁이고 있다. 김 의원의 선택이 던지는 파장을 살펴본다. ■ “北붕괴 때 中- 러 공동점령 가능성”북한이 급변사태를 맞아 붕괴에 이를 경우 이미 두 차례 실험을 마친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는 누구의 수중에 들어갈까. 미국 허드슨 연구소의 리처드 와이츠 선임연구원은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군대를 보내 북한을 공동 점령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 막걸리로 쌀소비 늘리려면…우리의 주식인 쌀은 소비 감소로 매년 10만∼20만 t이 남는다. 하지만 국산 쌀로 만들어야 제맛인 막걸리는 비용 때문에 대부분 밀과 수입 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일 열린 막걸리 정책토론회에서는 막걸리 생산으로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구체적 방법들이 제시됐다. ■ ‘위기는 기회’ 실천한 기업들 사례사람들은 겪어 보지 못한 위기 앞에서 몸을 사린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위기를 기회 삼아 미리 ‘위기 이후’를 준비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한 연구소가 한국의 LG전자와 미국의 인텔 등을 ‘위기를 기회 삼아 성장한 기업’으로 지목하고 그 성공의 비결을 분석했다. ■ 버티던 도요타 사장 “美청문회 출석”이틀 전만 해도 미국 의회 청문회에 안 나가겠다고 버티던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19일 “출석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말을 번복한 것은 도요타차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비판 여론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세계적인 기업의 사장도 시장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양이다. ■ 서양철학 프리즘으로 한국 현대시 읽기현대시는 어렵고 현대철학은 더 어렵다. 그런데 이 둘이 만나니, 시 읽기와 철학하기의 새로운 즐거움이 생긴다. 김수영 황지우 기형도 등 한국의 현대시인들의 대표작을 니체, 하이데거, 들뢰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으로 읽어내니 시도 철학도 술술 풀린다. 강신주 씨가 새 책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에서 그런 풀이를 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나쁜 말’도 안 들려 오히려 마음이 순수해지는 것 같아요.” 청각장애인 사진작가 김영삼 씨(32·사진)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순간을 포착하느냐”고 묻자 “귀는 안 들려도 눈은 남보다 빠르고 정확하다”고 답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작품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김 씨를 18일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인 서울 강남구 일원동 밀알학교에서 만났다.○ “들을 순 없어도 눈으로 나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어머니 나혜숙 씨(62)는 김 씨를 두고 “귀한 아들”이라고 말했다. 1974년 부산에서 결혼한 뒤 계속 임신에 실패하다 4년 만에 김 씨를 낳았기 때문. 남다른 애정을 쏟았지만 아기는 남들과 달랐다.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태연했다. 누군가 불러도 멀뚱멀뚱 쳐다봤다. 말도 늘지 않았다. 지인들은 “귀한 애라 늦게 배우는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자꾸 마음에 걸려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청각장애 2급이다. 수술로도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나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아기를 한동안 가사도우미에게 맡기고 기도원을 전전하던 나 씨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세 살 때부터 바로 미술을 배우게 했다. 미술로 남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니게 했다. 수화는 가르치지 않았다. 다행히 김 씨는 활발했다. 친구들 틈에서 온몸으로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생일파티에는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청각장애가 있지만 글을 배웠고 불편하지만 띄엄띄엄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남다른 ‘눈’을 가진 김 씨는 미술에도 재능을 보였다. 부산디자인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미국 뉴욕의 유명 예술대학인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에 입학했다. 미술을 전공하던 김 씨는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는다”며 사진예술학과로 전공을 바꿔 졸업한 뒤 현재 미국에서 유명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 씨의 작품은 사진과 그림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을 여러 장 찍은 뒤 컴퓨터로 합성해 새로운 회화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작품은 미국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작가전에는 그의 작품 2점이 백남준 작가의 작품과 함께 초대됐다.○ ‘도시 안의 세계’展 내달 3일까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나를 통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 씨는 2005년부터 미국 뉴저지 밀알재단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장애인들의 목욕을 매주 도와주고 통학버스를 운전해주고 있다.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시회를 개최하고 수익금도 기부한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가 아프리카 케냐 등지에서 벌인 구호활동에도 직접 참여했다. 19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는 아이티 이재민들과 발달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사진전시회를 밀알학교에서 연다. 작품을 팔아 얻는 수익은 모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도시 안의 세계’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사진전에서는 그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만든 작품 15점이 전시된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2시간 동안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 씨는 할 말이 더 남은 듯했다. 어머니가 김 씨의 뜻을 알아채고 마지막 말을 전해줬다. “최고의 사진작가가 돼서 비싼 가격을 받고 작품을 팔아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군요.”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상화는 책임감이 강했고, 태범이는 승부근성이 좋았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21)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21)는 서울 은석초등학교 동창으로 어려서부터 운동을 같이 했다. 17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은석초등학교에서 만난 김한기 교장(57)은 “이들이 10여 년 전 스케이트 명문으로 이름을 날리던 리라초등학교의 아성을 깨뜨린 선봉장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체육부장이던 김 교장은 “태범이는 놀기도 잘 놀았지만 6학년 때 한번 감기에 걸려 결석한 것을 빼고는 개근할 정도로 성실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상화에 대해서도 “많은 과목에서 ‘수’를 맞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고 말했다. 그는 “둘이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같은 코치 밑에서 친남매같이 지냈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은석초등학교가 ‘빙상 명문교’가 된 이유로 1963년 개교 이후 겨울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열린 교내 빙상대회를 꼽았다. 김 교장은 “선배들의 노하우가 교내대회에서 그대로 전수되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며 “승부근성과 스포츠맨십이 자연스레 길러지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스케이트를 즐기도록 1∼3학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빙상반에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