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소설가 김숨 씨(37·사진)가 소설집 ‘간과 쓸개’(문학과지성사)를 냈다. 2007년 ‘침대’ 이후 4년 만의 소설집이다. 아홉 편의 단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힘없고 병든 사람들의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간다. 애써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천불을 꾹꾹 누르고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이다. 단편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에는 35년간 버스정류장 간이매표소에서 껌이나 우유를 팔던 엄마 얘기가 나온다. 위를 반 정도 잘라내 아주 조금밖에 먹지 않고, 배설할 때만 밖에 나올 정도로 운동량이 적어 두 다리가 홍학처럼 가늘어진 엄마다. ‘간과 쓸개’에서는 간암을 앓는 아버지가 투병하는 모습이 쓸쓸하게 그려진다. 김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질병이 우리 가까이에 있듯 죽음도 그런 것 같다. 고요한 듯하지만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응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지방에 살면서 서울을 오가며 치료받는 간암에 걸린 노인, 뱀장어 식당에서 뱀장어 손질하는 일을 하는 왜소한 할아버지 등 작가가 그려낸 노년 세대는 그 우울한 숨소리가 들릴 듯 생생하다. 30대 중반인 작가가 어떻게 그려낸 걸까. “저는 또래보다 어르신들하고 대화가 더 잘돼요. 동네 할머니들하고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시장 가서도 어르신들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듣는데 소설보다 재미있어요.” 아픈 얘기를 건조하고 무덤덤하게 단문으로 끊어 쓰는 스타일은 여전하다. 가장 인상 깊은 한 구절을 꼽아 달라고 했더니 ‘간과 쓸개’의 한 부분을 들려줬다. ‘죽은 귀뚜라미들 속에서 저 홀로 악착같이 살아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살아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구차스럽고 징글징글하기만 하였다.’ 죽음을 앞에 둔 간암 환자가 죽은 동료들 틈에서 버둥거리는 귀뚜라미를 보며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대목이다. 묘사는 세세하지만 결말은 대개 미완으로 종결된다. 아픔은 파멸이나 치유, 그 어느 쪽에도 안착하지 않는다. “워낙에 삶 자체가 부조리하고 모호하고 결국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소설의 결말도 자유롭게 남겨두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49·여)가 제자 폭행 혐의로 지난달 28일 학교에서 파면되면서 불합리한 음대 교육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만난 음대생과 음대 졸업생들은 “교수의 폭행은 흔한 일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음대생이 레슨비와 졸업 논문비 요구, 연주회 표 강매 등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몹시 힘들어한다”고 증언했다. 음대생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로는 레슨비가 꼽힌다. 수업 중에 받는 레슨은 등록금에 포함돼 있지만 교수들이 ‘별도의 레슨이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잦다고 학생들은 호소했다. 유학이나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요청하는 형식으로 별도 레슨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교수가 “레슨 나오라”고 하면 사실상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학생들은 설명했다. 》이화여대 음대 대학원 졸업생 A 씨는 “레슨은 주로 방학 중에 이뤄지는데 교수가 오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 담당 교수가 ‘너는 실력이 미흡하니 더 배워야 한다’는데 거부할 수 있는 학생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추가 레슨비는 시간당 15만∼30만 원 선. A 씨는 “20만 원을 봉투에 넣어드리면 (적다고) 돌려주는 교수도 있다. 어떤 교수는 ‘너 뭔가 잘못 알고 있다. 레슨비 이 정도 아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교수들은 현금으로 레슨비를 받지만 세무 당국에 이를 신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연스럽게 탈세까지 이뤄지는 셈이다.교수들에게 주는 고가의 선물도 대다수 음대에서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고 학생들은 말했다. 중앙대 음대생 B 씨는 “선물은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것만 세 번이다. 지도교수님 생신, 스승의 날, 교수님 연주회다. 클래스가 10명이어서 5만 원씩 걷어 해외 명품 머플러를 해드렸더니 교수님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연세대 음대생 C 씨는 “5만 원짜리 상품권을 드렸더니 ‘조카 세뱃돈으로도 15만 원을 준다’라며 기분 나빠한 교수도 있었다”고 전했다.선물 외에 학부모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목돈을 내기도 한다. 서울대 음대 졸업생 D 씨는 “(교수의) 라인을 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돈을 걷어서 교수 방의 소파, 에어컨을 바꿔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교수가 논문심사를 하며 학생에게 수십만 원씩 돈을 받는 경우도 흔한 사례로 꼽혔다. 일부 대학에서 공식적인 논문심사비를 받기도 하지만, 이와는 별도의 개인적인 ‘심사 수고비’다. A 씨는 “돈을 주지 않으면 논문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데 차라리 돈을 주는 게 낫다. 주로 케이크를 준비해 돈 봉투를 넣는다”고 전했다.자신의 공연 티켓을 학생에게 대량으로 파는 경우도 관례로 통했다. 한양대 음대 대학원생 E 씨는 “공연 티켓의 경우 교수가 ‘몇 장 필요해’라고 물으면 (필요 없는데도) ‘5장 이상 주세요’라고 말한다. 독주회는 표 값이 1만∼2만 원이지만 여러 명이 출연하는 콘서트의 경우 10만 원까지 해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교수 방을 청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톨릭대 음대생 F 씨는 “주로 저학년들이 조를 짜서 한다. 음대 기강도 바로잡고, 교수님 편의도 봐드리는 일이다. 불합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학교 문화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음대생들이 이처럼 교수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음대 특유의 폐쇄된 교육시스템이 꼽힌다. 음대는 입학과 동시에 지도교수가 정해지면 졸업까지 4년 내내 한 교수의 지도를 받는다. 교수는 학생의 학점뿐만 아니라 콩쿠르, 유학, 취업 등 학생의 장래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학생은 지도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불이익을 당할까 봐 내색할 수 없다. 한 음대생은 “교수는 음대생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거역할 경우 음악계를 떠나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음대생도 “교수의 인격이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도교수를 바꾸겠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완전히 ‘찍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잘 보여야 하고, 힘들어도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들은 바 없는데…” 대학당국은 뒷짐만 ▼개인간 레슨 파악 어렵고 금품수수 처벌 규정도 없어음대생들이 교수들에게 원하지 않는 레슨을 받으며 금품을 바치거나 개인적 시중을 들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는 데는 음대와 대학 당국도 책임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취재에 응한 음대와 대학 모두 이 같은 현실에 대한 기본적 실태 파악조차 외면하고 있었다.서울대 음대 행정실장은 “교수가 다른 학교에 가서 강의할 때는 학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을 정규수업 외에 가르치는 것에는 별도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시간에 교수가 실기 지도를 하는 일은 있지만 별도의 돈을 받고 수업 외 레슨을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이화여대 음대 행정실 측도 “과에서 전공 실기 향상을 목적으로 교수와 학생이 MT식으로 레슨을 가는 일은 있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이 (개인적으로) 별도 레슨을 하는 것에 대해서 학교 측이 신경 쓰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레슨은 교수와 학생 사이에 개인적으로 이뤄지고, 시기 또한 주로 방학에 집중되기 때문에 학교 측이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음대에 만연한 레슨비나 선물 등에 대해 별도 규정이나 실태 파악이 없어 문제가 불거진 다음에야 사태 수습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서울대가 이번에 파면한 김인혜 교수에게 적용한 규정도 학교 전체나 음대의 별도 기준이 아닌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청렴의무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품위유지의무 등 국가공무원법 위반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 교수는 “서울대나 한예종 등 국립대는 국가공무원법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다른 사립 음대의 경우 처벌이 가능할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는 학교로부터 월급을 받기 때문에 학생이 수업 외에 배운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대가 없이 가르치는 게 맞다. 선물이나 레슨으로 학생을 노예처럼 부리는 교수들의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교수들 스스로도 (불합리한 음대 현실에 대한) 양심 선언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업문 넓은 외국선 ‘교수독재’ 상상못해 ▼한국 특유 ‘연줄-간판문화’ 한몫유럽과 미국 같은 예술 선진국도 음악인을 양성하는 교육제도 자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합대학에 음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음악전문교육기관(콘서버토리)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교수가 지위를 악용해 학생에게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횡포를 부리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게 유학생들의 전언이다.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 많은 음악인은 음대생들의 진로가 한정돼 지도교수에게 온전히 장래를 맡길 수밖에 없는 한국 특유의 구조를 꼽았다. 유럽이나 북미의 경우 사회 음악교육이 발달했고 이는 대부분 초중고교나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진행돼 수많은 음악교육인을 필요로 한다.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극장이 있어 실력에 따라 단원으로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제한된 수의 교직이나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진로가 한정돼 있고 채용 경로도 교수들의 학맥과 인맥에 의지하기 때문에 교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독일에 유학 중인 30대 음악인 M 씨는 “유럽에서는 지자체나 학교에서 이뤄질 수준의 음악교육도 한국에서는 사적인 레슨 형태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학생이 어릴 때는 갓 음대를 졸업한 이른바 ‘새끼선생’이 레슨을 하다 이후 학맥으로 엮인 강사급 음악인에게 인계하고, 고등학교 때는 같은 학맥의 교수에게 ‘넘기다’ 보니 그 학교 파벌에서 찍히면 레슨조차 쉽지 않다는 것. M 씨는 “한국에서는 오케스트라 등의 오디션도 형식적이고 실제로는 학맥 위주로 뽑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한국의 치열한 입시경쟁도 이유로 꼽혔다. 한국에서 음대를 가는 학생은 대부분 부모의 뜻에 따라 어릴 때부터 레슨을 받는다. 대입을 앞두고는 시험곡만 집중적으로 연습한다. 결국 연주 실력은 비슷비슷해지고 심사위원의 주관이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 학부모로서는 그 학교 교수에게 불법적인 과외라도 받게 해 합격의 가능성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학생이 교수에 종속된다.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한 40대 초반의 음악인 K 씨는 “불법 레슨의 가격을 올려놓고 교수에게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식을 더 유리하게 만들고 싶은 부모”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류원식 기자 news@donga.com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2004년 6월 취재차 길상사에 갔다가 큰 인상을 받았어요. 요정이던 곳이 김영한 씨의 기부로 절로 변하고, 그곳에서 스님과 불자들이 공양하는 모습을 봤죠. ‘나눔의 요체’인 길상사의 모습을 앵글에 담고 싶었습니다.” 법정 스님 1주기(28일)를 맞아 이번 헌정 사진집을 낸 저자(본명 이종승)는 길상사와 법정 스님을 찍게 된 연유를 이렇게 밝혔다.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으로 근무 중인 저자는 취재 이후 매일 길상사를 찾아 108배를 한 뒤 스님과 불자들을 찍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오전 5∼6시에 길상사에 들렀고 일요일이면 거의 하루 종일 머물렀다. 2008년 2월까지 이 생활을 반복했고, 업무상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틈이 날 때마다 들렀다. 당시 길상사 주지였던 덕조 스님은 저자에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와 사진을 찍는 것 같다”며 ‘일여(一如)’라는 불명(佛名)을 주기도 했다. 저자의 블로그(www.urisesang.co.kr)에는 길상사의 사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가 찍은 길상사와 법정스님 사진은 수만 장에 달한다. “매번 다르게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게 고민이었죠. 하지만 3, 4년쯤 지나자 예전에 보지 못하던 법정 스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뒷짐을 지고 손가락을 튕기는 버릇이 있던 거친 손, 풀을 먹여 빳빳하게 날을 세운 행전(종아리에 차는 헝겊) 등 법정 스님의 모습은 한참 뒤에야 앵글에 담을 수 있었다. 사진집에는 고르고 고른 법정 스님 관련 사진 18점이 동영상 DVD와 함께 들어있다. 판매수익금은 법정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활동하는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에 기부하기로 했다. 3월 2∼8일 ‘법정 스님 입적 1주기 사진 전시회’를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02-734-7555)에서 연다. “법정 스님의 모습을 담으려는 여러 사진기자가 있었지만 스님은 ‘사진을 찍지 마라’고 제지하기도 하셨어요. 그런 스님이 왜 저에게만 촬영을 허락하셨는지 아직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자는 요즘 전국을 돌며 사찰을 찍고 있다. “길상사를 보면 ‘나눔’이 떠오르듯 사찰을 통해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싶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가을 밤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띄운다. “당신과의 23년 세월, 세월이 쌓일수록 당신을 아내로 얻었음을 감사하게 되오. 당신도 나를 남편으로 얻었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을까 봐 두렵소.” 소설가 조정래 씨는 아내인 김초혜 시인에게 절절한 연애편지를 띄웠다. 1985년 9월 22일 쓴 편지 말미에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 당신의 남편 정래’라고도 남겼다. 소설가 박범신 씨가 부인 황정원 씨에게 1971년 12월 6일 보낸 편지는 진지하면서도 익살맞다. “그렇다. 우린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은 우리가 백번 겸손해도 좋을 만큼 깊고 뜨겁고 목이 멘다. 목이 멘다.(꾸룩…꼬르룩- 목이 메는 소리)” 농담을 섞어가며 아내를 편안하게 만드는 재치가 눈에 띈다. 책은 문인, 화가 등 예술가들이 쓴 친필 편지 49점을 소개한다. 예술가들의 사랑, 우정 등 작가의 내밀한 생각이 편지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는 “편지는 일인칭으로 쓰인 작가의 육성이고 내면 소리의 직역본(直譯本)”이라고 말한다. 김상옥 시인은 딸에게 “공부도 소중하지만, 몸이 더 소중하니 부디 몸조심하여라”라고 말하고, 김남조 시인은 신달자 시인에게 “아기가 그새 많이 자랐겠지. 산후에 보내준 편지 받고 한번 가보고 싶어서 쉬이 가보리라는 생각으로 답장도 못 썼었어”라고 정감어린 글을 전한다. 지난달 별세한 박완서 소설가가 2005년 11월 12일 이해인 수녀에게 쓴 편지는 너무 솔직해서 아프게 다가온다.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고인은 이해인 수녀의 시집 ‘민들레영토’의 출간 30주년을 맞아 보낸 글에서 1988년 남편과 외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아픔을 솔직히 밝히고 그간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런 저에게 수녀님의 존재, 수녀님의 문학은 제가 이 지상에 속해 있다는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지상에 속했고, 여러 착하고 아름다운 분들과 동행할 수 있는 기쁨을 저에게 가르쳐준 수녀님 감사합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서른 살 전후 젊은 여성 소설가 일곱 명이 비를 주제로 쓴 중·단편 소설을 한데 묶었다. 이들이 본 비의 모습은 무지개처럼 다양하다. 윤이형은 ‘엘로’에서 “더 조그맣고 투명했고, 무엇보다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탱글탱글 맺혀 있었다”며 마법과 같은 비의 모습을 상상해냈고, 김이설은 ‘키즈스타플레이타운’에서 세찬 폭우가 몰아치는 날 아버지가 방 안에서 딸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비의 무섭고 폭력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낮의 햇살은 봄볕처럼 따사로웠다. 정원에는 앵두나무, 박태기나무, 모란, 할미꽃들이 새봄이 오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돌보던 안주인은 뜰에 나서지 않았다. “잡초의 생명력은 대단해. 사시사철 나는 잡초들이 다 달라” 하며 살뜰히 정원을 가꾸던 고(故) 박완서 선생. 고인이 없는 정원은 봄의 기운이 움트는 날에도 허전해 보였다.》 박완서 선생이 생전 살갑게 돌봤던 경기 구리시 아천동 집을 찾았다. 생전에 고인의 도움을 받았던 장애재활기관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이사가 인사차 나선 길에 동행한 것이다. 지난달 22일 고인이 80세의 나이로 타계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아차산 자락의 ‘아치울 마을’로 불리는 주택가에 자리 잡은 노란 2층집은 박 선생이 1998년 새로 지어 13년 동안 살았던 공간이다.“어머니는 집을 지으면서 ‘혼자 살고, 내 맘대로 살겠다’고 하셨죠. 분홍색으로 칠해 달라고 공사를 맡은 이에게 말씀하셨는데, 그쪽이 고집이 있었는지 마음대로 노란색으로 칠했어요.” 고인의 장녀인 수필가 호원숙 씨(57·사진)가 외벽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살다가 맘에 안 드시면 분홍색으로 다시 칠해 주겠다”는 약속을 들었지만 고인은 “노란색도 괜찮다”며 다시 손보지 않았다.정갈한 집안에서 가장 눈에 띈 곳은 1층 현관으로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고인의 작업실. 별 문이 없이 거실 한편에 위치한 작업실은 고인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창이 없는 쪽의 세 벽면을 채운 책장에는 책이 가득했다. 책상 위 데스크톱과 랩톱 컴퓨터, 프린터기와 팩스에 눈길이 갔다. “어머니가 원고지에 글을 쓰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는 데도 뒤처지지 않으셨어요. 외부에 나갈 때 쓰는 작은 랩톱도 따로 있었고, e메일도 초기부터 사용하셨죠.” 호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안 배치를 바꾸지 않아 고인이 생활하던 공간 그대로라고 했다. 달라진 것은 책상 위 벽에 걸린 고인의 영정과 책상 위에 놓인 금관문화훈장, 초와 향뿐이었다. 영정 속에서 고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머니가 평소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내가 참 행복했을 때 사진 같다’고요.” 고인이 30여 년 전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살 때 김종구 사진작가가 찍은 작품으로, 김 작가의 사진전시회에 갔다가 구입했다.평소 고인이 즐겨 마시던 따스한 홍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호 씨와 마주 앉았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어머니는 (임종 직전) 많이 호전됐었어요.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내가 많이 회복돼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죠. ‘봄에 꽃 피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시기도 했어요.”유언은 없다고 했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남은 친필 원고도 없고, 컴퓨터에 저장된 미발표 작품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고인은 10여 년 전부터 일기를 썼다고 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많은 예감을 하신 것 같아요. 일기는 거의 매일 쓰셨는데 (지난해 10월) 병원에 입원한 뒤에는 쓰지 않으시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쓰셨죠.”호 씨는 어머니의 사생활을 밝히기 죄송스럽다며 일기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것을 먹고, 미장원에 가고 그런 일상사였어요. 돌아가시기 이틀 전 일기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셨죠.”고인은 2007년부터 푸르메재단에 매달 기부금을 냈고 신간이 출간되면 목돈도 쾌척했다. 백 이사는 “2006년 일면식도 없던 상태에서 드린 원고 청탁을 흔쾌히 들어주셨고, 먼저 기부 의사까지 밝히셨다”고 말했다. 백 이사는 고인에 대한 글과 그림을 담은 ‘동아일보 스포트라이트’(1월 26일자)를 동판으로 만들어 호 씨에게 건넸다. 5월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들어서는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에 고인의 이름을 딴 ‘박완서 치료실’도 만들 예정이다.구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MOVIE◆블랙스완순수한 ‘백조’와 치명적인 매력의 ‘흑조’ 역을 연기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 주연으로 선발된 발레리나 니나는 테크닉과 아름다움을 겸비했지만 뭔가 부족하다. 발레단장은 니나에게 내부의 성적 욕망을 끌어내 관객을 유혹할 수 있어야 ‘흑조’역을 소화할 수 있다고 다그친다. 여기에 성적 매력이 넘치는 동료 발레리나 릴리가 흑조 배역을 호시탐탐 노린다. 니나는 흑조가 되기 위해 마약과 술에 손댄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내털리 포트먼, 밀라 쿠니스, 뱅상 카셀 출연. 24일 개봉. 18세 이상.20자평: 아름다움과 광기의 합주곡, 내털리 포트먼의 치명적인 매력만으로도…. ★★★★ (이상용)현대 여성의 욕망을 시리도록 무섭게 드러낸다. ★★★★ (정지욱)◆더 브레이브14세 소녀 매티는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무법자 톰 채니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젊은 시절 악명 높았던 연방보안관 코그번을 고용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술주정뱅이 코그번은 매티를 계속 실망시키고, 여기에 현상금을 노린 텍사스 특수경비대원 라뷔프까지 가세해 무법자 톰 채니를 잡기 위한 위험한 동행에 합류한다. 티격태격하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사람이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숨 막히는 추격전을 펼친다. 이선 코언, 조엘 코언 감독. 맷 데이먼, 제프 브리지스, 해일리 스타인펠드 출연. 24일 개봉. 15세 이상. 20자평: 뻥쟁이 무법자와 간 큰 딸내미의 복수혈전. ★★★ (정지욱)소녀 주인공이 코언 형제의 총명함을 다 가져갔나? ★★☆ (민병선 기자)◆아이엠 넘버 포타 종족을 학살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잔혹한 모가도어인. 침략당한 로리언 행성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9명의 초능력자를 지구로 탈출시킨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지구인 틈에서 조용히 살아왔지만 모가도어인이 지구까지 쫓아와 그들을 순서대로 죽인다. 1, 2, 3번이 세계 곳곳에서 잡혀 제거됐고 이제 4번의 차례.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살아가던 넘버 포 존 스미스는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닥친 걸 알고 자신의 위대한 유산인 초능력으로 운명에 맞서기로 한다. D J 카루소 감독. 알렉스 페티퍼, 티머시 올리펀트, 테레사 파머 출연. 24일 개봉. 12세 이상.20자평: SF 영화를 가장한 청소년 성장 이야기. ★★☆ (정지욱)속편이 뻔히 예상되는 초능력자 시리즈의 무한 반복 ★★ (민병선 기자)◆센티미엔토 : 사랑의 감각어시장 잡부와 킬러, 두 가지 삶을 살아가는 류의 친구는 나이 든 음향기사뿐이다. 음향기사와 류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류의 침묵까지도 특별하게 느끼던 음향기사는 류의 주변 모든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류는 음향기사에게 사랑을 느끼던 어느 날, 새로운 살인 의뢰를 받게 된다. 와인숍을 운영하는 데이비드를 제거하기 위해 가게로 찾아간 류는 계획과는 달리 그와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낸다. 이사벨 코익세트 감독. 기쿠치 린코, 세르히 로페스 출연. 24일 개봉. 18세 이상.20자평: 이사벨 코익세트의 실추된 감각의 영화. ★★ (이상용)특화된 여성성이 돋보이는 격정 로맨스 ★★★ (정지욱)■ CONCERT◆엘비스 코스텔로 내한공연영화 ‘노팅 힐’의 OST ‘She’를 부른 영국 싱어송라이터 엘비스 코스텔로의 첫 내한공연. 록에서 현악4중주단과의 협업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가 네 대의 기타로 어쿠스틱 공연을 선보인다. 5만∼15만 원. 27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577-5266◆나원주 소극장 콘서트 Vol.1‘자화상’ 출신 싱어송라이터 나원주가 소극장에서 팬들과 만난다. 지난해 말 발표한 3집 ‘올 이즈 세임 인 러브’의 곡을 포함해 과거 발표곡과 자신이 작곡해 다른 가수에게 준 곡들을 선보인다. 4만 원. 25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상상마당 라이브홀. 02-747-1252◆이승환 ‘차카게 살자 season2’10년간 진행해 오다 2009년을 끝으로 멈췄던 이승환의 자선콘서트가 다시 시작됐다. 이승환 국카스텐 윤종신 원모어찬스 장재인 등의 아티스트들이 나와 자선바자회를 열고 파티 형식의 공연을 펼친다. 7만7000원. 26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악스홀. 1544-6399◆포플레이 데뷔 20주년 내한공연재즈밴드 포플레이의 다섯 번째 내한공연. 기타리스트가 척 로브로 바뀌었고 깔끔하고 경쾌한 멜로디로 재정비했다. 지난해 말 발표한 앨범 ‘레츠 터치 더 스카이’의 수록곡 등을 선보인다. 7만7000∼13만2000원. 3월 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941-1150■ PERFORMANCE◆사랑은 비를 타고 2009년까지 4000회 상연한 인기 창작 뮤지컬. 동생들을 돌보느라 마흔 넘게 결혼 못한 장남 동욱이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는데…. 오은희 작·연출. 최귀섭 작곡. 김성기 김장섭 임춘길 소유진 출연. 2만∼4만 원. 5월 29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02-764-7858∼9◆민들레 바람 되어2008년 ‘연극열전2’ 작품으로 초연돼 10만 관객을 동원한 창작극. 박춘근 작. 김낙형 연출. 조재현 이광기 이한위 김성미 황영희 출연. 3만5000∼4만5000원. 5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02-766-6007◆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 인기몰이를 한 동명의 TV 드라마를 극화했다. 가진 것 없는 노처녀 김삼순의 러브 스토리. 박은혜 작. 정세혁 연출. 김유진 황선화 김해은 이동하 김익 맹주영 출연. 2만5000원. 4월 24일까지. 서울 대학로 상명아트홀 1관. 02-501-7888◆지젤국립발레단이 2002년 이후 9년 만에 무대에 올리는 낭만주의 발레의 대표작.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수석무용수 라에티시아 퓌졸, 마티외 가니오 씨도 주역으로 무대에 선다. 5000∼10만 원. 2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7-6181■ CLASSICAL◆신춘 가곡의 향연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한데 모여 우리 가곡을 통해 봄소식을 전하는 무대. 소프라노 김금희는 ‘동심초’ ‘행복’을, 메조소프라노 백남옥은 ‘목련화’ ‘비목’을, 테너 박성원은 ‘초혼’ ‘농부가’ 등을 선보인다. 연주는 한국심포니오케스트라. 2만∼8만 원. 3월 2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730-7475◆금난새와 함께하는 실내악 갈라 콘서트지휘자 금난새와 실력파 연주가 11명이 함께 실내악의 정수를 선사한다. 클라리네티스트 마이클 콜린스, 지난해 보르도 국제현악콩쿠르에서 우승한 쳄린스키 현악사중주단 등 출연. 2만∼10만 원. 27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44-1555◆한독 교류음악회 서울그랜드합창단이 독일 캄머필하모니 카메라타 레오폴디나를 초청해 브람스 ‘집시 노래’, 바흐 ‘커피 칸타타’, 슈베르트 ‘G장조 미사’를 선보인다. 소프라노 오주현, 테너 하만택, 바리톤 정건채 등. 2만∼3만 원. 25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로 세종체임버홀. 02-6081-4186◆물-베니스에서 대서양까지 ‘시인 피아니스트’ ‘낭만주의 음악의 대변인’으로 칭송받는 빌리 에디 파리고등음악원 및 리옹고등국립음악원 교수가 물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선보인다. 드뷔시의 ‘기쁨의 섬’ 등 8곡을 연주. 2만∼5만 원. 27일 오후 7시 반.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 02-3491-2370■ EXHIBITION◆명명할 수 없는 풍경-손정은 전왜곡된 남성권력과 억압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작가의 송곳 같은 시선을 담은 사진과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 ‘무대: 사라진 비밀’ ‘현장: 너는 젊고 아름답다, 3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 02-737-7650◆보이는 운율에 맞춰 춤추다 전불규칙적으로 배열된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운율과 리듬을 살려 전시를 한 편의 시처럼 엮어냈다. 독립큐레이터 오선영 씨의 기획으로 히맨 청, 최승훈+박선민, 최선아, 조은지 씨 등이 참여했다. 3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02-720-5114◆철학자의 나무-마이클 케나 전‘나무는 내 세상의 중심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말하는 사진작가의 나무가 있는 풍경 사진전. 이탈리아 영국 러시아 프랑스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흑백사진들. 3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근혜갤러리. 02-738-7776◆서울 튜더-리처드 우즈 전전통적 목판 기술을 사용해 영국의 고전 장식패턴을 재해석한 작품들. 영국 시골 정원의 정취를 표현한 튜더 스타일과, 동양을 상징하는 버드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해석한 패턴을 볼 수 있다. 4월 8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트클럽 1563. 02-585-5022}

《“1979년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의 펜톤 역으로 마에스트로 카라얀 앞에서 오디션을 봤을 때였어요. 그는 섬세한 소리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반가워했죠. 노래가 끝나자 그가 무대로 올라와 나를 껴안으며 말했죠. ‘이제 당신은 카라얀 가수야.’”》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생전 아꼈던 멕시코 출신의 테너 프란시스코 아라이자 씨(61)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마에스트로와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아라이자 씨는 까다롭기로 정평 난 카라얀의 음악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1980년대 테너계 신성으로 등극했고 지금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카라얀에 대해 얘기하자면 별도의 인터뷰를 해야 할 정도로 이야기가 많아요. 지금은 간단히 얘기하죠. 카라얀과 작업하는 것은 순수한 마술과 같아요. 우리의 감추어진 능력마저 끄집어내죠. 대단합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일부에 불과합니다.” 2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 아라이자 씨는 동아일보와 한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22일 방한해 인터뷰를 하기로 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입국이 늦어져 그 대신 e메일을 통해 질문에 답해 왔다. 아라이자 씨는 국내 팬들에게 현재 활동하고 있는 테너 가운데 레제로 테너(가장 가볍고 기교 있는 소리를 내는 테너)의 대부(代父)로 알려져 있다. 타고난 고음과 현란한 기교로 듣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게 특기.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분명히 말하자면 전 레제로 테너가 아니에요. 제 목소리는 부드럽고 가벼운 레퍼토리에 적합한 리릭 테너(서정적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테너)입니다. 무겁고 드라마틱한 곡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1974년 유럽 무대에 데뷔했을 때 평론가와 언론으로부터 ‘모차르트 리릭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1966년 36세의 나이에 요절한 당대 최고의 독일 출신 리릭 테너)의 정통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높은 음역에서 그가 선보이는 부드러운 음색은 커리어를 쌓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 3대 테너와 동시대에 활동해 왔지만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 특히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신데렐라’ 등 높은 음역에서의 화려한 기교가 필요한 레퍼토리에서 그는 다른 테너들이 근접하기 힘든 위치를 구축했다. “제 커리어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3대 테너 때문에 실망하거나 서운한 마음을 가진 적은 없어요. 저 자신이 파바로티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고 카레라스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죠.” 모델 뺨치는 외모의 그는 ‘잘생긴 테너’로도 일찌감치 알려졌다. 로시니의 오페라나 공연 실황을 담은 DVD도 특히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외모가 도움이 된 건 맞다고 생각하죠. 영화나 TV의 영향력이 상당한 시대잖아요. 다만 개인적으로 외모보다는 카리스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커뮤니케이션과 연기력도 따라줘야 합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그의 미성은 여전하다. 목 관리는 어떻게 할까. “제 학생들에게 ‘최대한 평범하게 살라’고 가르쳐요.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날씨 변화에 잘 맞춰 옷 입고, 운동도 하고 올바른 발성으로 연습도 하라고요. 무엇보다 최소 하루 8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라고 하죠. 술 담배를 멀리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그는 이번 공연에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잠들지 말라’, 비제의 ‘카르멘’ 중 ‘꽃노래’ 등을 선보인다. 푸치니의 ‘라보엠’ 중 ‘오! 사랑스러운 여인이여’는 그의 제자인 소프라노 정주희 씨와 함께한다. “제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레퍼토리를 짰습니다. 솔로곡은 모두 혼돈에 빠진 주인공들의 노래이고 듀엣 곡들만 행복한 느낌의 곡이죠”라고 그는 설명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초청을 받아왔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한국 팬들은 성악가들에게 ‘진지하면서 열정적인 관객’으로 이름 나 있어요. 벌써부터 흥분됩니다.” 02-6377-1250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인의 시각으로 새로 쓴다기보다는 보편타당한 기준에서 세계철학사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서강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2000년 철학아카데미를 설립하며 일반인을 상대로 한 철학 강의에 힘써 온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52·사진)은 최근 ‘세계철학사’(도서출판 길)를 낸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세계철학사는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됐으며 이번에는 서양철학을 다룬 1권 ‘지중해세계의 철학’이 나왔다. 동북아, 인도 등의 철학을 다룬 2권 ‘아시아세계의 철학’은 내년 가을, 근현대 동서양의 철학이 영향을 주고받는 양상을 담은 3권 ‘근현대세계의 철학’은 후년에 나올 예정이다. 세 권을 합하면 총 3000쪽이 넘는다.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원장은 “한국 철학자의 손으로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철학사를 다룬 국내 책이 많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중국철학사’ ‘서양철학사’ 등 지엽적인 부분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죠. 세계철학사를 다룬 외국 책들도 서양이나 아시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국 철학자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동서를 가로지르는 세계철학사를 낸 것은 처음이라고 자신합니다.” 출간된 1권 중 중세 이슬람 사상계를 정의하는 부분에서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그의 시각이 나타난다. ‘이슬람세계 자체 내에서도 수많은 정권이 들어서서 서로 전쟁을 벌이곤 했다. 따라서 이슬람세계에서 나타난 모든 사상을 이슬람사상으로 단일화해서 이해한다면, 그것은 동북아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문으로 쓰인 책을 보고 무조건 중국 사상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게 된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지는 않았을까. “그런 점도 의식해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집필할 양도 많았지만 세계철학사 가운데 특정 부분을 넣고 빼거나 분량을 배분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이사장 문창극)은 21일 2011년도 상반기 저술·번역 출판지원 대상자로 ‘큰소리를 읽는 한국어’(가제)의 조동오 전 동아방송 아나운서 등 11명을 선정했다.다음은 지원 대상자. 남현호(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 차장대우) 정창교(국민일보 사회2부 인천주재 부장기자) 권경복(조선일보 국제부 차장대우) 이하원(조선일보 정치부 차장대우) 손해용(중앙일보 경제부문 기자) 김효순(한겨레 대기자) 조계완(한겨레 국내편집장) 이대현(한국일보 논설위원) 김지영(매일경제 주간국 시티라이프부 차장) 김기진(부산일보 지역사회부장)}

배우 이영애 씨(사진)가 마흔 살의 나이에 쌍둥이 엄마가 됐다. 이 씨의 소속사 스톰에스컴퍼니는 21일 “이 씨가 전날 오전 10시 반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아들, 딸 이란성 쌍둥이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며 산모와 아기들은 모두 건강하다고 밝혔다. 이 씨는 2009년 8월 미국 하와이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정호영 씨와 결혼했다.}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굉장한 음악적 감수성을 함께 갖췄다. 그의 몸집은 작지만 무대에 선 그의 모습에는 위엄이 넘쳐흐른다.” (다니엘 바렌보임·지휘자) 베이스 연광철 씨(서울대 음대 교수·사진)에 대한 평이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20일자에서 연 씨를 약 9000자 분량의 긴 기사로 소개했다. 연 씨는 24일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 공연하는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 여주인공 루치아의 가정교사 라이몬도 역으로 출연한다. 기사는 2008년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연 씨가 마르케왕 역할을 노래하면서 뉴욕 오페라 팬들이 그의 진가를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연 씨는 당시 ‘키 큰 유럽인’인 명베이스 르네 파페보다 더 훌륭하게 마르케왕 역을 소화했으며 관객들은 커튼콜 때 영웅을 대하듯 환호를 보냈다고 기사는 전했다. 연 씨는 청주대와 불가리아 소피아 음대,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를 졸업했으며 2010년부터 서울대 음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동아일보 시사만화였던 ‘나대로 선생’의 작가 이홍우 화백(62·사진)이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 만화영상과 교수에 임용돼 3월부터 후진을 양성한다. 이 신임 교수는 1967년 서라벌예대 2학년 때 대전 중도일보에 ‘두루미’를 그리면서 시사만화를 시작했고 1973년부터 전남일보에서 ‘미나리 여사’를 그렸다. 1980년 11월 12일 동아일보에 ‘나대로 선생’ 연재를 시작한 후 2007년 12월 26일 마지막 회까지 27년간 8568회를 게재했다. 동아일보 편집위원(국장급),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 등을 지냈으며 저서로 ‘미스앵두’ ‘오리발’ ‘나대로 간다’ 등이 있다. 고바우만화상, 대한언론인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그가 꼽은 나대로 선생의 대표작은 ‘외교 굽신, 경제 망신, 치안 불신, 정책 등신, 날치기 귀신, 국민 배신’이라는 말로 6공화국의 실정을 풍자하며 ‘6공6신’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1991년 11월 29일자. 그는 “권력 감시라는 시사만화의 역할이 여전히 크지만 요즘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풍자만화연구’ 등의 과목을 강의할 이 교수는 “가요계에 ‘서태지’란 가수가 튀어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듯이 감각적이고 역량 있는 시사만화계 후진을 키워내겠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도시의 아파트 속으로 칩거한 뒤 고요의 정수를 쓰고 싶었습니다.” 6년 만에 새 시집 ‘고요로의 초대’(민음사)를 낸 조정권 시인(62)은 “지난번 시집 ‘떠도는 몸들’에서는 떠돌아다니며 예술가의 혼을 찾아다녔는데 이번 시집에는 한 곳에서 맑게 고여 있으려 했다”며 웃었다. 경희사이버대 교수인 그는 강의 등 꼭 나가야 할 일이 아니면 집에만 머물렀다고 한다. 도시 속의 칩거생활이 가능할까 궁금했다. 15일 그를 만난 장소도 서울 노원구 월계동 그의 집 근처였다. ‘저자와 차 한잔’이란 시리즈 제목이 무색하게 인터뷰는 오후 2시 조 시인의 단골 치킨집에서 생맥주 한 잔씩을 곁들여 진행됐다. ‘…/쉬세요 쉬세요 쉬세요 이 집에서는 바람에 날려 온 가랑잎도 손님이랍니다/많은 집에 초대를 해 봤지만 나는/문간에 서 있는 나를/하인(下人)처럼 정중하게 마중 나가는 것이다/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오십시오/그 무거운 머리는 이리 주시고요/그 헐벗은 두 손도’(시 ‘고요로의 초대’에서) 1969년 등단한 조 시인은 1991년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란 구절이 들어 있는 시집 ‘산정묘지’로 김수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그때 “정신의 드높음 속에 있는 깊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시인은 최근 한결 부드러워졌다. “시 중독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무거운 머리, 헐벗은 손 이런 부분은 내가 나를 어루만져 주는 거죠.” 그는 원래 서정시 부문인데 그 서정의 갈래 속에서 정신이란 부문을 끄집어낸 새로운 정신주의 시를 추구해 왔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문단에서는 그를 ‘유파로부터 자유로운 1인 종교의 1인 신자’라고 평하기도 한다. “시인은 고독과 외로움에 익숙해야 한다”는 그는 극심한 불면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밤새워 시를 쓰다 새벽 5시에 자리에 눕는,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밤이 주는 휘황찬란한 축복은/불면./불면이야말로 내 안에서 살아왔던 산타클로스./김 추기경도 말년을 불면 속에서 살았듯이/(신은 인간에게 불면을 주셨다)/…’(시 ‘신성스러운 불면’에서) 조 시인은 시 ‘동물에게 진 죄’ ‘빗자루’에서 동물 학대, 식물 유전자 조작을 비판했고, ‘1인 시위’에서는 국회 앞 1인 시위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이번 시집에서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한 편을 뽑아 달라고 했더니 ‘산 채로 캔 칼’을 꼽았다. ‘충남 금산군 서대산 상곡리 산골 비집고 들어갔더니/바람 빠진 농구공 출입구 길 막고/맹추위가 마중 나와 있더군요./골짜기에는 겨울이/산벚꽃 꽃망울을 하늘 깊이 묻어 두었더군요./…’ 지난해 4월 산벚꽃을 보기 위해 서대산을 찾았지만 아직 남은 추위에 꽃은 피지 않고 칼바람만 맞은 것을 그렸다. “결과적으로 허탕을 쳤지만 삶이라는 게 허탕 칠 때도 있어야 하죠. 허탕 칠 것을 알면서도 할 수도 있고. 올봄 산벚꽃을 보러 다시 갈 겁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만화 ‘떠돌이 검둥이’의 이향원 화백(사진)이 17일 별세했다. 향년 67세. 서라벌예대 사진과를 졸업한 고인은 1960년 ‘의남매’로 만화계에 입문한 뒤 1970, 80년대 ‘이겨라 벤’ ‘사랑해 샤샤’ 등 사람과 개의 우정을 따뜻하게 그린 작품들로 사랑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이화여대 목동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9시. 02-2650-2747}

지난해 11월 11일. 역사적인 주요 20개국(G20) 서울회의가 열리는 날에 서울 여의도 증시의 주가는 2.7%나 폭락했다. 이날 장 마감 직전 동시호가 때 한국도이치증권 창구에서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중심으로 1조6000억 원의 매물이 쏟아지면서 급락한 것이다. 종합주가지수가 무려 53.12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날 외국인 순매도, 프로그램 순매도, 코스피200 옵션계약 물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시는 급락했지만 일부 폿옵션 투자자들은 대박을 터뜨렸다. 풋옵션이란 일정기간이 지나 약속한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다. 옵션에 따라 이날 최대 249배까지 수익이 났다. 금융감독원은 그동안 조사를 벌인 결과 23일 증권선물위원회를 열어 한국도이치증권에 6개월 일부 영업정지 조치를 내릴 예정이다.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지면 국내에서 영업하는 국내외 증권사 가운데 본점이 불공정거래를 이유로 정지를 당하는 것은 처음이다. 증권회사나 헤지펀드 같은 투자자들이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을 공략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제는 신흥 시장이 어떻게 당했는지조차 정확히 모르는 채 공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파생상품을 이용한 공격을 사전에 규제하기는커녕 사후에 파악하기도 힘들다. 한국의 금융감독원도 해외 조사에 나섰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의문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이면에도 파생상품이 도사리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집과 직장을 잃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전 세계로 파급되어 많은 나라에서 미국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런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파생상품이 지목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파생상품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금융의 지배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 지배의 수단인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정작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는 30년 이상 금융분야에서 일하면서 파생상품을 직접 거래해본 전문가이다. 그는 이 책에서 파생상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면서도 파생상품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다. 내부 고발서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저자는 한국에서 벌어진 도이치증권 사례에 대해서는 사전에 규제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출판사를 통한 서면 인터뷰에서 4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금융감독원이 해외에서 외국 금융회사를 통제하기 힘들고, 둘째 개방적인 시장을 유지하라는 압력이 강하고, 셋째 금감원이 해외 금융회사를 다룰 기술과 자원이 부족하고, 넷째 법 위반에 대한 처벌이 경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이런 투기적 활동을 인정하고 감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물과 파생상품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당할 정도로 악명 높게 됐다. 마치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와 비슷하다. 잘 쓰면 좋지만 잘못 사용하면 재앙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파생상품의 특징을 이중성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파생상품 게임의 규칙은 “사는 사람이여, 조심하라”는 것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 미술관에 간 CEOMS본사에 그림 6000점 있는 까닭은김창대 지음304쪽·1만5000원·웅진지식하우스마이크로소프트의 미국 시애틀 본사에는 미니멀리즘의 거장 솔 르윗의 작품을 비롯해 80여 개 사무실에 6000여 점의 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애플을 이끄는 스티브 잡스는 회사 외부 벽면 전체를 피카소의 얼굴로 덮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은 해박한 미술 지식을 뽐내고 있고,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GS 허용수 전무는 ‘박물관의 젊은 친구들’이란 문화예술 후원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바쁜 기업가들이 시간을 쪼개 미술관에 가고 예술 활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단순한 기호 때문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소비자들은 이제 필요(need)에 의해서가 아닌 욕망(wants)에 따라 소비하기 때문에 기업이 과거 성공공식에서 벗어나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것. 예술은 이런 창조경영을 하기 위한 훌륭한 교과서가 된다는 조언이다. 책은 예술가들의 사고방식, 창조성, 혁신, 발상전환 등을 8개의 키워드로 제시하며 그에 해당하는 경영 사례들을 소개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기사로 짚어본 경제… 12년 스테디셀러곽해선 지음560쪽·1만6800원·동아일보사경제 기사를 통해 경제 원리와 현실을 알기 쉽게 설명한 실용경제 입문서. 1998년 초판이 출간된 후 12년 넘게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실용경제학 분야의 고전으로, 10번째 개정을 맞아 최근의 경제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내용들을 더했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경제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경제적 사건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며 “어제의 경제 기사로 내일의 경제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사건은 매년 비슷한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사건의 앞뒤를 짚어보는 경험이 쌓일수록 전문가처럼 경제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 전공자에게도 도움이 될 만큼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고르면서도 독자가 이해하고 활용하기 쉽도록 꾸몄다. 경제에 대한 개괄부터 경기, 물가, 금융, 국제수지, 경제지표 등 각 항목 간의 연관성도 설명하며 경제의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눈을 키워 준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들었어요? 요새 광주가 송두리째 훌렁 둘러빠져서 작살이 났다는데요.” 동료 교수의 말을 들은 임 교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에 딱히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던 그는 ‘시국도 그렇지만 생업에도 워낙 불만이 많아서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기 직전의 예비 망나니’였기 때문이다. 정작 일은 터졌지만 무능한 데다 소심하기까지 한 그는 홀로 전전긍긍할 뿐이다. 책 같은 것도 하찮아 보이고, 괜히 눈앞에 얼쩡거리는 사람들에게 악감정이 치받치고, 연구실 노크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했던 그는 이윽고 고민을 털어낸다. 애창곡의 가사답게 ‘될 대로 되라지’. 작품은 1979년 10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신군부의 집권, 1980년 5월 비상계엄 확대까지의 극심한 혼란기를 배경으로 했다. 은퇴한 임 교수가 후배 교수인 한 교수에게 보내는 회고담 형식의 액자식 구성. 작가의 만연체 글쓰기도, 경상도 사투리를 간간이 곁들인 문장도 맛깔난다. 현대사의 격정기를 보낸 임 교수의 회고담에는 곤봉도 최루탄도, 그 흔한 민주화 구호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민주화 운동에 나설 때 한쪽에 비켜서서 이사장 등 학내 권력에 편 갈라 줄서기를 하거나 아예 사회에 눈을 감아버린 지방 사립대 교수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꼬집는다. ‘싱글모임’도 그런 예다. 여교수로 미국 유학을 하고 온 심 교수의 집에 미혼 기혼 교수들이 남녀 1 대 2의 비율로 모여 음식과 와인을 곁들이며 농담 따먹기를 한다. 화투판과 카드놀이판에서 노름에 열중하고 있는 동료 교수들을 보며 임 교수는 곱씹는다. ‘어떤 위선의 허름한 땟국을 말끔히 걷어내버린 적나라한 모습’이라고. 하지만 정작 임 교수는 심 교수와 우연치 않게(사실 심 교수가 여러 차례 추파를 던졌다) 첫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외도 관계를 이어간다. ‘세상은 한 판의 연극이기도 하지만 연극만도 못하다’거나 ‘자연의 봄은 왔을지언정 정치적 자유와 해방 따위는 오지 않았고 올 리도 없다’고 비판을 내뱉지만 ‘내일 당장 연구실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매일 저녁 다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기는 좀체로 어려웠다’며 연애에 골몰한다. “교수 집단은 시대에 아부하는 부류,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 부류, 배짱대로 살겠다는 부류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1980년 당시에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자층, 소위 먹물들의 위선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창작 배경이다. 중산층의 위선, 타락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온 작가는 3년 만에 발표한 이 장편에서도 그 궤를 같이한다. “중산층은 사회의 중추와도 같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기 위해서 중산층을 두껍게 조명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작품은 회고담의 제1장을 끝낸 임 교수의 회한으로 끝을 맺는다. 40년 동안 열심히 가르쳤지만 사실상 뻔한 지식의 전수에 지나지 않았으며,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을 만한 후학 하나 가르치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글에서 임 교수는 장황한 조언을 이어가지만 이를 읽는 한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솔직한 자기반성보다는 여전히 변명 일관인 식자층의 위선이 다시 떠올랐으므로.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논리학을 통해 완전무결한 수학의 토대를 확립하려 했던 수학자이자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 러셀은 화이트헤드와의 공동 연구로 ‘수학원리’를 집필했지만 그가 일생 동안 천착해 온 무결점의 수학 원리를 도출하는 데 실패한다. 러셀의 내레이션을 기초로 그와 토론을 했던 비트겐슈타인, 폰 노이만, 칸토어 등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펼쳐진다. 100여 년 전 학자들이 논했던 수학 이성 논리 역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정부는 구제역 가축 매몰지 내 침출수를 뽑아내 폐수처리장에서 처리하거나 퇴비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2차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침출수를 비료로 쓰는 것이 가능할까? 또 폐수처리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구제역 바이러스가 확산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봤다. ■ 강남 보금자리 당첨자 발표‘아파트 로또’로까지 불렸던 서울 강남·서초지구 보금자리주택 본청약 당첨자가 발표됐다. 청약저축 납입액 당첨선이 1357만∼2024만 원에 이를 정도로 경쟁이 뜨거웠다. 강남이라는 입지조건에 분양가까지 주변의 절반 수준이었기 때문. 20년 이상 고이 모셔둔 청약통장도 장롱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 中 공자 부활 의미는30여 년 전 문화혁명 당시 ‘공자 타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던 중국 베이징 한복판에 공자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다. 이 동상을 만든 세계적 예술가 우웨이산(吳偉山) 난징(南京)대 교수도 당시 홍위병으로 공자 타도 운동에 참여했다. 무엇이 공자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바꿔 놓았을까? ■ 6년 만에 시집 낸 조정권시인은 사람들이 산으로만 올라가는데, 도시의 아파트 안에서도 칩거가 가능한지 궁금했다고 했다. 강의할 때를 빼고는 집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는 그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고. 6년의 산고 끝에 새 시집을 펴낸 조정권 시인(사진)을 만났다. ■ 배구 ‘대포 서브’ 받아보니키 185cm, 몸무게 85kg인 기자(사진 오른쪽)도 그 앞에서는 덩칫값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서브에 공포감이 몰려왔다. 호기롭던 마음은 어느새 살고 싶다는 본능으로 바뀌었다. 프로배구 최고 용병 가빈 슈미트의 스파이크 서브를 직접 받아봤다.}

성균관장 추대위원회는 18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추대위원회를 열고 최근덕 현 관장(78·사진)을 제29대 관장으로 재추대했다. 최 관장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유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