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부패정치… 극심한 빈부차… 이집트를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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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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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비얀 빌딩/알라 알아스와니 지음·김능우 옮김/392쪽·1만3000원·을유문화사

소설 속에는 극명한 빈부 격차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집트 빈민촌 아이들. 동아일보DB(오른쪽)
소설 속에는 극명한 빈부 격차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집트 빈민촌 아이들. 동아일보DB(오른쪽)
올해 2월 이집트 국민의 거센 반정부 민주화 시위 끝에 무함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정권이 3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수만 명이 펼친 평화적인 시위는 이집트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촉발시켰다.

치과의사이자 소설가로 반무바라크 운동에 나섰던 저자는 이 소설에서 무바라크 정권의 부패한 정치 현실, 극심한 빈부·계층 격차에 놓인 이집트 사회를 생생하게 고발한다. 2002년 출간돼 20여 개국에 번역됐고 바슈라힐 아랍 소설상, 독일 코부르거 뤼케르트상 등을 받기도 했다.

소설은 1990년대 초반 카이로 중심가에 위치한 10층짜리 아파트 건물인 야쿠비얀 빌딩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1934년 건축 당시에는 고위 관리나 부유한 상공인들을 위한 아파트였지만 도시 외곽에 신흥 부촌이 들어서자 이 건물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인간 시장’으로 변했다. 건물 안에는 주색잡기에 몰두하는 노신사의 사무실, 성공한 사업가가 마련한 정부(情婦)의 거처 등이 있고 옥상에는 도시 빈민들이 다닥다닥 붙어 산다.

주연 조연을 합해 2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아랍식 이름들이 헷갈린다.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을 병렬로 풀어가는 초반부만 100쪽이 넘는다. 하지만 중반부터 전혀 안면이 없던 사람들이 각종 사건으로 얽히게 되면서 읽는 데 속도감이 생긴다.

작가가 이슬람 혁명을 풀어놓는 중심에는 문지기의 아들 타하가 있다. 그는 수재였고 경찰대학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야쿠비얀 빌딩 문지기의 아들이란 이유로 떨어진다. 격분한 타하는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올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일반 대학에 들어간 그는 반정부 시위를 하는 이슬람주의 집단에 끌리게 되고, 결국 테러 작전 중 목숨을 잃는다.

그의 정신적 스승은 이렇게 설파한다.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상극입니다. 민주주의란 스스로 자신들을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슬람에는 하나님의 통치 외에는 없습니다.”

부자인 노신사 자키 베는 이렇게 말한다. “나라가 몰락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부재하기 때문이야. 이집트의 폐해는 독재 정부야.” 그러나 그는 어떤 정치적인 행동에도 나서지 않으며 여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데 급급해한다.

간간이 이집트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적인 문구들이 나오지만 작품의 매력은 다양한 이집트인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데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사이나는 애인을 버리고 몸을 팔기 시작하며, 동성애자이면서 신문편집장인 하팀 라쉬드는 군인 애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실패한다. 마약을 팔며 큰 부자가 된 핫즈 앗잠은 고위층에 뇌물을 건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아바스카룬, 말라크 형제는 부자를 등쳐 돈을 빼앗을 기회만 노린다. 콧수염을 기른 남자와 히잡을 쓴 여성 등 평면적으로 인식돼 왔던 이집트인들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대부분의 인물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방황하던 부사이나가 노신사인 자키 베의 진정한 사랑에 눈을 떠 결혼식을 올리면서 작품은 끝을 맺는다. 화사한 해피엔딩으로 묘사되지만 다소 수동적인 등장인물들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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