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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부순환도로에서 50여 일 사이에 3건의 차량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해 도로를 관리하는 서울시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2차례의 사고에서 전문가들이 도로의 구조적 문제점을 들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는데도 이를 고치지 않아 또다시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19일 오전 2시경 서대문구 연희동 내부순환로 성산대교에서 홍은램프 방향으로 달리던 김모 씨(41·영어강사)의 체어맨 차량이 연희램프 화단 연석에 충돌한 뒤 방음벽을 들이받은 다음 25m 아래 연가교 부근 홍제천변으로 추락했다.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는 3개 차로인 내부순환로 중 진입 차량을 위해 4차로로 확대한 구간에서 발생했다. 경찰이 공개한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면 김 씨 차량은 앞차를 피해 빨리 가려는 듯 1차로에서 3차로까지 빠른 속도로 가로질러 가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연희램프에서 올라오는 차량을 위해 짧게 만들어진 4차로 끝까지 질주했다. 그러다 차로 끝에서 화단 연석과 방음벽을 잇달아 들이받고 추락했다. 지난해 11월 두 건의 사고도 같은 도로 구조에서 발생했다. 11월 28일에는 성산에서 정릉 방향으로 달리던 1.2t 트럭이 홍은램프에 들어서다 도로가 좁아지는 구간을 알지 못하고 충돌한 뒤 추락했다. 이틀 뒤에는 반대 방향인 정릉에서 성산 방향으로 달리던 1t 냉동탑차가 홍제램프로 올라 4차로로 달리다 3차로로 들어서지 못한 채 계속 직진했고 결국 같은 방식으로 추락했다. 19일 사고가 일어난 연희램프는 첫 번째 사고가 일어난 홍제램프와 두 번째 사고가 일어난 홍은램프에서 각각 불과 2km, 4km 떨어져 있다. 또 3건의 사고 모두 통행량이 많지 않은 새벽 시간대에 발생했다. 서울시는 “2월까지 이번에 뚫린 방음벽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방호벽 앞에 60cm 높이의 고정식 철근 콘크리트 방호구조물을 설치해 사고를 막겠다”고 밝혔다. 안전표지와 노면표지를 설치하고 제한속도를 현행 70∼80km에서 70km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3건의 사고에서 차량이 모두 화단 연석을 ‘도약대’ 삼아 방호벽 위 방음벽까지 튀어 오른 뒤 방음벽을 부수고 추락한 만큼 추락만이라도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김도경 교수는 “세 건의 사고 모두 차량이 화단의 연석을 타고 올라 방음벽 쪽으로 질주한 것”이라며 “이를 막으려면 차가 아무리 공중에 뜨더라도 방음벽을 들이받을 수 없게 방호벽 높이를 최대한 높이는 한편 방호벽 역시 더 강도 높은 콘크리트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술 마시고 나와 보니 차가 없어졌어요. 소중한 내 차가….”소극단 연극배우 노모 씨(28)는 지난해 10월 5일 오전 3시 반경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없어졌다는 차는 버스를 들이받아 완파된 채 발견됐다. 노 씨는 “어떤 ××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절규해 경찰마저 안타깝게 만들었다.경찰은 범인을 찾기 위해 차량 핸들의 지문을 조사했지만 노 씨 것만 발견돼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신고 당시 그가 만취 상태였던 것도 의심스러웠다. 경찰은 노 씨가 차를 도난당한 뒤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2개월간의 추적 끝에 택시운전사 김모 씨(48)를 찾아냈다. 김 씨는 “노 씨가 택시 안에서 ‘친구가 뺑소니 사고를 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반복했다”고 진술했다.경찰 조사 결과 노 씨는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뒤 차를 두고 도망쳤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무마하려고 허위 신고를 하며 ‘명연기’를 펼친 것. 경찰 관계자는 “연극배우답게 연기가 워낙 탁월해 처음엔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다”며 “증거와 목격자 진술이 나온 지금도 ‘나는 도난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사고 신고로 보험금까지 타낸 노 씨를 보험사기와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제 욕을 마구 올리면서 저를 왕따시켰어요. 중학생인 지금도 계속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왕따 탈출’을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중학교 2학년 A 양(15)은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이 같은 질문을 올렸다가 한 마술학원 관계자에게서 “학원에 등록해보라”는 답글을 받았다. 마술학원에 등록하기만 하면 자신감이 생겨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마술을 펼치면 주변인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왕따에서 벗어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이 학원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인터넷 게시글에 일일이 학원 광고 댓글을 달며 이른바 ‘왕따 마케팅’을 하고 있다.대구 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학교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집단괴롭힘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되자 일부 학원과 병원은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이런 방식의 영업을 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왕따를 벗어나 일진까지 될 수 있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해병대 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업체는 “캠프에 참가하기만 하면 학교에서 아무도 못 건드린다. 일진 학생이 돈을 빼앗으려 할 때 방어하는 법도 가르쳐주기 때문에 왕따를 당할 염려가 전혀 없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업체는 “우리 캠프에는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일진들도 많이 참가하는데 왕따를 당하는 친구들도 일진들에게서 많은 걸 배워서 돌아간다. 캠프 참가로 일진들을 많이 알아둘 수 있다”고까지 홍보한다. 이 업체가 진행하는 4박 5일 일정의 캠프에 참가하는 데는 45만 원, 6박 7일에는 60만 원가량이 들지만 캠프 참가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는 게 캠프 측의 설명이다.일부 성형외과는 초등학생에게 간접적으로 성형수술을 유도하는 듯한 글까지 올리고 있다. 한 학생이 인터넷 게시판에 “얼굴이 못생겨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예뻐질 수 있을까요”라는 글을 올리자 “전화를 주면 수술비용과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주겠다”는 내용의 쪽지 등을 건넸다. 부산의 한 웅변학원 역시 최근 홍보 전단에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해서 걱정이 많으셨나요? 왕따 아이의 사회성을 키워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해 왕따 불안에 시달리는 학부모들에게서 많은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공교육이 부실하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최미숙 상임대표(53·여)는 “학교나 교사들이 왕따 문제를 제도권 안에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믿음을 심어줬더라면 학부모나 학생들이 ‘왕따 불안 마케팅’에 지금처럼 쉽게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시장 질서를 유지해야 할 남대문시장관리회사(이하 관리회사) 임직원들이 할머니 노점상들에게서 수억 원을 뜯어오다 무더기로 적발됐다. 적발된 임원은 총 47명으로 관리회사 임원 51명의 92%에 이른다. 관리회사의 자회사격인 시장 내 본동상가운영회(이하 본동상가) 임원도 9명 전원이 형사 입건됐다. 관리회사 임직원의 거의 전부가 ‘갈취꾼’이었던 셈이다.관리회사는 1954년 시장과 상가 내 청소 및 관리, 소비자 보호, 시장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운영비는 상가에 입점한 상인들에게 걷어 충당하고 있다.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는 할머니 노점상들에게 “장사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해 16억여 원을 뜯어낸 혐의로 본동상가 상무 정모 씨(67) 등 4명을 구속하고 관리회사 회장 김모 씨(73) 등 85명을 불구속하는 등 임직원과 경비원 89명을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조사 결과 관리회사 직원 10명은 각각의 구역을 정해 노점상에게 매일 4000원씩 또는 매월 40만∼50만 원을 걷는 등 2005년 1월부터 6년간 57명에게서 청소비, 자릿세 등의 명목으로 6억8000만 원을 갈취해 이 돈을 김 회장 등 임원들에게 상납했다. 수금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할머니들은 빵과 우유로 식사를 대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소속 경비 19명도 자신이 맡은 상가 앞에서 장사를 하는 노점을 상대로 6년간 5200여만 원을 갈취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이들은 회장 김 씨가 외출할 때면 노점이 눈에 거슬린다며 할머니들에게 판매하던 물건을 들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 30분 동안 숨어 있게 하는 등 매일 1∼3차례, 5년 동안 5000여 차례에 걸쳐 ‘노점 정리’를 실시해 영업도 방해했다.경찰 관계자는 “수십 년간 이런 일을 당한 할머니들은 멀찌감치 이들이 보이기만 해도 빠르게 짐을 싸 골목으로 도망가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며 “보복이 두려워 대부분 진술을 거부해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범서방파’ 두목 출신인 김태촌 씨(63·사진)가 가명을 이용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이 동아일보 보도(10일자 A1·12면 참조)로 알려지자 서울대병원이 김 씨의 병실과 특실 병동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했다. 삼엄한 통제 가운데서도 김 씨는 이날 오후 4시 30분경 병실로 기자들을 불러 “1989년에 받은 폐암 수술 후유증이 악화돼 입원한 것이며 경찰 조사를 피하기 위해 입원했다는 보도는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인 협박 혐의에 대해서도 “욕설을 한 기억은 어렴풋이 나지만 협박하거나 위협적인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최양석’이라는 가명으로 입원한 것에 대해서는 “간호사가 와서 ‘특실 병동에는 고위층 인사들이 많아 기자들이 찾아와 피곤하게 한다’며 가명을 쓰겠냐고 물어봐 그러겠다고 한 것이지 도피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이어 “경찰이 소환 요청을 하면 아프지 않는 한 출두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한편 김 씨는 최근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 폭력계에 “경찰서 출석이 불가능하다”는 내용과 함께 진단서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대병원에서 발급한 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진단서에는 김 씨의 병명과 ‘2월 22일까지 안정가료를 요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대구=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

《 지난해 12월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20여 분 떨어진 톤도 파롤라 마을. 폭 1m 남짓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판잣집 수만 채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김숙향 씨(53·여)가 나타나자 주민들은 집에서 뛰어나와 반가운 목소리로 그의 영어 이름인 ‘샤론’을 외쳤다. 김 씨는 만나는 주민마다 유창하게 필리핀 현지어인 타갈로그어로 일일이 안부를 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하나인 톤도 안에 형성된 이 마을에는 판자나 양철판 몇 개를 아무렇게나 덧대 곧 무너질 것 같은 7∼13m²(약 2∼4평)의 좁은 집이 3만여 채나 있다. 골목 안에 있는 집에서 손을 뻗으면 앞집 문에 닿는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강력범죄가 발생해 봉사자 대부분이 활동을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이 지역에서 김 씨는 12년째 일하고 있다. 마을 외곽에 세운 ‘톤도센터’에서 초등학생과 하이스쿨(중고교를 합친 개념)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고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헌신하고 있다. 》○ 공부 포기하고 필리핀 땅 밟아광산을 3개나 소유한 집안의 외동딸이었던 김 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던 해 집안의 사업이 망했고 뒤이어 아버지가 타계하며 시련이 이어졌다. 혼자 5남매를 교육시키기 위해 ‘황소’라는 별명을 얻어가며 식당일을 하던 어머니도 1987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우울증에 빠져 세상을 탓하던 시절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800년대 영국에서 고아 수천 명을 거두어 교육시켰던 영국인 사회사업가 조지 뮬러에 관한 책이었다. 김 씨는 “어떤 이는 남의 불행을 어떻게 행복으로 바꿔 놓을지 고민하며 삶을 바쳤는데 나는 내 불행만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1990년 1월 신학대 교수를 꿈꾸던 그는 공부를 포기하고 31세에 홀로 필리핀으로 향했다.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오빠만 믿고 떠난 길이었다. 현지 보육원에서 청소와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하며 3년을 지냈다.○ 어느 날 다가온 전(前) 사형수34세, 뒤늦게 사랑이 찾아왔다.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오던 필리핀인 목사가 사랑을 고백했다. 김 씨는 거절했다. 그는 폭력조직 두목 출신에다 살인교사 혐의 등 전과 34범이었다. 교도소에 복역할 때는 교도관 살인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복역 중 과거를 반성하고 특별 사면된 뒤 종교에 귀의해 목사가 됐다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과거였다.게다가 김 씨는 독신으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고백이 이어지고 보육원 아이들과 아이처럼 순수하게 어울리며 묵묵히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에 반한 김 씨는 수백 번 고민한 끝에 1993년 그와 결혼했다.아이 셋을 낳은 뒤 2000년부터는 빈민촌으로 집을 옮겼다.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 쪽방에 방치되는 빈민촌 아이들을 위해 살기로 한 것. 마을 외곽에 있는 건물 일부를 빌려 아이 100명을 교육시키고 밥을 먹이며 본격적인 교육봉사를 시작했다.그런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다. 부부는 센터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닐라 북부의 농장을 빌려 메추리 수만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2008년 남편은 메추리알을 거두러 가야 한다며 새벽부터 차를 타고 농장으로 달려가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한 몸처럼 함께 봉사하던 남편이 떠나자 모든 걸 잃은 듯 좌절했지만 그는 곧 일어났다. 남편 몫까지 다해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정신을 놓을 틈이 없다는 생각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2008년 기아대책의 후원이 시작됐다.○ 470명의 아이들과 함께한 행복지인들에게 어렵게 돈을 빌려 티셔츠 공장을 하던 건물을 인수했다. 그곳에서 아이 470명을 가르치고 있다. 센터 초기 “당신이 뭔데 우리 아이를 오라 가라 하느냐”며 욕하던 부모들은 이제 센터에서 식사 제공 및 청소봉사를 하며 그를 돕고 있다. 빈민촌에서 자라 자존감이 없던 아이들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 구석에서 기름등을 켜고 공부하는 모습에 부모들도 변하기 시작했다.센터 출신 중 일부는 필리핀 최고 명문대인 국립필리핀대(UP)에 진학하고 정부 장학생으로 뽑혀 한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등 빈민촌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31세에 필리핀 땅을 밟아 어느새 53세가 된 ‘샤론’은 자신의 열렬한 팬이 된 학부모들과 학생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빈민촌 사람들과 함께한 12년을 두고 “삶을 정말 잘 선택한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그러나 특유의 초승달 모양 눈웃음 속에도 근심이 있었다. 이 마을 가구당 자녀가 4∼6명에 달하지만 후원자가 부족해 센터에 다니고 싶어 하는 아이를 모두 받을 수 없다. 아이들은 센터 앞을 서성이며 공부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김 씨는 “센터에서 누군가가 밥 한 끼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 표정은 밝게 변한다”며 “단돈 3만 원으로 한 아이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쓰레기로 다져진 땅… 정부 “보기 싫다” 장벽 세워 ▼■ ‘최악의 슬럼’ 파롤라 마을초등학교 오전반인 여자아이 에리카 알리호(8)는 낮 12시면 집에 돌아와 나무 손잡이가 달린 칼을 들고 엄마와 하루 종일 마늘을 깐다. 이렇게 버는 돈은 하루 50페소(약 1300원). 이마저도 수도와 전기가 없는 탓에 기름등에 넣을 하루치 기름과 물을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알리호를 포함한 이 집 아이 네 명은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만 먹는 날이 많다.이 가족은 A∼F구역으로 나뉜 파롤라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C구역에 산다. 마을에 새로 유입된 빈민들은 집을 지을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먼저 정착한 주민들이 수십 년간 내다버려 단단하게 쌓인 쓰레기 위에 집을 지었다. 폭우로 마을 옆 파시그 강이 범람하면 쓰레기 바닥이 물에 불고 약해져 온 동네가 ‘쓰레기 강’이 된다.아이들은 톤도 인근 부촌에 사는 중국인들이 마을에 하청을 주는 마늘 까기를 하거나 벌레가 우글거리는 쓰레기 바닥에서 맨발로 뛰놀며 하루를 보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좁은 집은 대낮에도 암흑 상태여서 공부를 할 수 없다. 7∼13m²(약 2∼4평) 남짓한 집에 보통 한 가족 6, 7명이 거주하는 탓에 집에 들어가면 앉아 있기도 힘들다.현재 이 마을 인구는 10만 명을 훌쩍 넘어선다. 많은 인구가 자물쇠조차 없는 판잣집, 양철판 집을 빽빽이 지어놓고 모여 사는 탓에 절도사건도 빈번하다. 필리핀 정부는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며 외부에서 빈민촌이 보이지 않도록 장벽을 세워 가릴 뿐 사실상 마을을 방치하고 있다. 김숙향 씨는 “부모들은 살아가는 일이 막막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동원해 돈을 벌거나 이들을 그냥 버려둔다”며 “아이들은 바깥세상이 어떤지 알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마을에 갇혀 빈곤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고 말했다.마닐라=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고통받는 지구촌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세요 ::동아일보가 기아 대책과 함께 지구촌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한 공동모금을 벌입니다. 한 달에 3만 원이면 아이들에게 식량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기아대책은 세계 82개국에서 구호 및 개발사업을 통해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입니다.후원계좌 하나은행 353-933047-53337(예금주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ARS 후원 060-700-0770(통화당 2000원), 후원 신청 02-544-9544,}
경희대 총동문회는 12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2012 신년교례회’를 열고 ‘2012년 자랑스러운 경희인상’을 시상한다고 9일 밝혔다. 수상 예정자는 서정섭 동신관유리공업 회장, 김성호 제양항공해운 회장, 문재인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폭력조직 ‘범서방파’ 두목 출신인 김태촌 씨(63·사진)가 ‘최양석’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경찰은 김 씨가 기업인을 협박한 혐의로 최근 경찰 조사를 받을 처지가 되자 소환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입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9일 서울대병원 및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12월 11일경 휠체어를 타고 부하로 보이는 한 남성과 함께 병원에 나타나 검사를 받은 뒤 이 병원 12층 특실에 입원했다. 갑상샘 치료를 받기 위해 내원한 김 씨는 병원 측에 스스로 입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취재 결과 통상 병실 앞에는 이름이나 이름 중 한 글자를 빼고 적은 이름표가 붙어 있지만 김 씨가 입원한 병실 앞에는 이름표가 아예 없었다. 이 병원에는 환자가 원하면 병실 문 앞에 붙은 이름표나 침대 머리에 붙은 이름표 등을 가명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이 있다. 병원 측은 입원 여부 등 병원 내부 전산망에 기록된 김 씨에 관한 환자 정보에 주치의 등 극소수의 의료진만이 접근할 수 있게끔 보안 수준을 가장 높은 단계로 올려놓았다. 김 씨가 입원해 있는 병실도 병원 전산망에는 비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 이름 묻자 “나는 최양석”… 특실서 조직원 2명이 경호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전산망에 올라온 환자 정보에 주치의 등 의료진 극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는 단계까지 보안등급을 강화하는 데는 환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게 반영된다. 그러나 환자가 최고 등급의 보안등급을 요구하더라도 주치의 등 병원 측의 동의가 없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진료기록 등 의무기록이 주치의 등 극소수에게만 공개되는 일이 남발되면 의료진 간 정보 공유가 되지 않아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진료에도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병원은 전직 대통령 등 최고의 예우가 필요한 극소수의 인사에게만 최고 보안등급을 적용한다. 병원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이 입원해도 이 정도까지 높은 수준으로 보안을 걸어 놓지는 않는데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병원 등에 따르면 김 씨는 병실에서 보통 부하 조직원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과 함께 있다. 또 김 씨가 누워 있는 침대 머리에는 ‘최양석·남·63’이라고 적힌 종이가 꽂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병실에서도 신분을 숨기려는 듯 병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침대 머리에 있는 이름을 가리키며 “내 이름은 최양석”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를 직접 봤다는 한 목격자는 “김 씨는 한 달 가까이 입원한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는 건강에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며 “가명을 댔지만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한 김태촌이 분명했다”고 전했다.김 씨는 지난해 4월 대구의 한 중견기업 이사 김모 씨(49)로부터 “투자했던 업체가 어려워져 돈을 못 받게 됐다. 투자금 25억 원을 받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옛 조직원 2명과 함께 김 씨가 투자한 기업 대표 한모 씨(58)를 찾아가 6차례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 폭력계는 최근 공범과 피해자를 불러 조사를 마친 뒤 김 씨를 소환해 조사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8일 김 씨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김 씨는 곧바로 자취를 감춘 뒤 입원했다. 경찰 관계자는 “소환 통보도 하기 전에 김 씨가 언론 보도를 보고 병원에 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피해자와 공범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강제구인을 해서라도 김 씨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범서방파는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와 함께 1980년대 전국 3대 폭력조직으로 꼽혔다. 김 씨는 2006년 영화배우 권상우 씨에게 일본 팬 사인회를 강요하고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진주교도소 복역 시절 전화 사용과 흡연 등의 편의를 봐달라며 교도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같은 해 징역 1년형이 확정돼 2009년 11월 만기 출소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대구=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
폭력조직 ‘서방파’ 부두목 출신인 이모 씨(61)의 대학생 아들 집에서 코카인 엑스터시 등 마약이 다량 발견됐다. 서방파는 1970년대 김태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국적인 폭력조직으로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와 함께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3대 폭력조직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 이태형)는 코카인 24g, 엑스터시 553정, 대마 17g 등을 소지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이 씨의 아들(26)을 지난해 12월 31일 구속해 수사 중이라고 4일 밝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카인과 엑스터시, 대마의 1회 투여량은 각각 0.05g, 1정, 0.5∼1g 정도로 이번에 발견된 마약은 1000명이 한꺼번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74·사진)은 김 고문이 타계한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발인날인 3일까지 끝내 빈소를 찾지 않았다. 경기지방경찰청 공안분실장을 지낸 이 전 경감은 1985년 김 고문이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체포됐을 때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김 고문을 잔인하게 고문해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게 만든 인물이다. 김 고문이 파킨슨병에 걸린 것도 고문 후유증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전 경감이 김 고문에게 마지막 사죄를 하기 위해 빈소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나왔다.동아일보 취재진이 이 전 경감을 만나기 위해 장례기간 5일 내내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는 그의 집 앞을 지키며 주변 지인들을 취재한 결과 이 전 경감은 김 고문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4개월 전부터 연락을 끊었고 성탄절 전후로는 아예 종적을 감췄다. 이 전 경감이 2008년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신학공부를 했던 합동개혁총회신학 정서영 총장은 “6개월 전까지 통화했는데 얼마 전부터 연락이 안 된다”고 전했다. 그가 주로 갔다던 목욕탕 주인도 “한 달 전부터 이 씨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인들은 “이 전 경감 부부는 파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들 부부는 지난해부터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을 내는 13.2m²(약 4평)짜리 허름한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한 파지수거업체 주인은 “매주 이 전 경감의 부인 신모 씨가 파지나 알루미늄 캔을 모아와 한 달 평균 10만 원가량의 돈을 받아갔는데 파지 양이 많을 때는 이 씨가 직접 손수레를 끌고 왔다”며 “신 씨가 인근 빌딩에서 환경미화원 일을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지난해 12월 30일 타계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발인식이 3일 오전 7시 20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발인식은 영정 사진을 든 유족을 뒤따르던 지인 100여 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김 고문과 1980년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50, 60대 참석자들은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다 흐느끼기도 했다. 오전 8시 30분부터는 명동성당 본당에서 1000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미사가 열렸다. 미사 마지막 순서에는 참석자 전원이 김 고문이 생전 애창하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불렀다. 노래가 절정에 달하자 참석자들은 눈물을 쏟았다. 미사가 끝난 뒤 같은 장소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에는 민주통합당 원혜영 이용선 공동대표와 고인의 경기고·서울대(65학번) 동문인 손학규 상임고문을 비롯해 이해찬 정동영 상임고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통합진보당 이정희 심상정 공동대표와 노회찬 대변인,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종로구 종로5가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다리(버들다리)’에서 10분간 노제를 지낸 뒤 장지로 향했다. 김 고문은 손 고문과 함께 ‘서울대 학생운동 삼총사’로 불렸던 친구 고 조영래 변호사가 잠들어 있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함께 영면한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민주화운동의 대부’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추모미사와 문화제가 영결식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미사를 집전한 김병상 신부는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고통을 감추면서 민주화와 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했다”며 “김 고문이 품었던 희망과 꿈을 공유하자”고 강조했다.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는 “고인은 평화를 위해 살았고 정의를 위해 싸웠다”며 “이런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말했다. 김 고문의 ‘평생동지’인 부인 인재근 여사에 대해서는 “인권 운동을 하실 땐 투사였다”며 “절망 속에서 (투병 중인) 남편에게 끝까지 희망을 심어줬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임종 전날인 지난해 12월 29일 함 신부에게서 병자성사(病者聖事)를 받고 ‘즈카리아’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추모미사에 이어 오후 7시부터는 성당 내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민주통합당 원혜영 공동대표와 손학규 정동영 상임고문 등 정치권 인사를 비롯해 1000명이 넘는 추모객이 참석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을 비롯해 하금열 대통령실장, 김효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이 다녀갔다. 영결식은 3일 오전 8시 명동성당에서 민주사회장으로 진행된다. 김 고문의 시신은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된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

지난해 12월 30일 타계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빈소에는 2011년의 마지막 날이었던 31일과 새해 첫날인 1일에도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일에는 공동장례위원장인 함세웅 신부의 미사 집전과 함께 입관식이 열렸다. 김 고문,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학생운동 삼총사’로 불렸던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일까지 사흘 내내 빈소를 지켰다. 지난해 12월 31일 낮 12시 10분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박 위원장은 “참 깨끗하신 분이었다”며 “나라를 위해 하실 일이 많은데 세상을 떠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31일부터 1일까지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여권 인사들이 대거 조문을 다녀갔다. 손 고문을 비롯한 민주통합당 전현직 의원 100여 명이 빈소를 지켰다. 빈소 한쪽 벽면은 정치권 인사와 시민들이 김 고문에게 남기는 글을 적어 붙여 놓은 메모지 1000여 장으로 가득 찼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장례위원회’는 30일 하루 동안에만 2만여 명이 다녀가는 등 1일 오후 11시 현재까지 총 3만6000여 명이 빈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김 고문과 악연(고문 수사)이 있는 경찰 내부에서도 추모 분위기가 있었다. 김 고문이 과거 고문을 당했던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내 취조실 문 앞에 인권보호센터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이 김 고문을 추모하기 위한 조화(사진)를 갖다놓기도 했다. 경찰청 미래발전과 이준형 경위는 경찰 내부망 등에 인권보호센터에 김 고문의 분향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는 글을 올려 경찰 상당수가 찬성 의사를 보였다. 한나라당 이준석 비상대책위원도 김 고문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지는 않았지만 1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 고문이 고문을 당했던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이 있는) 남영동 일대의 사진과 함께 “이렇게 가까운데 한마디도 못해서 죄송해요. 나중에 받아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하얀 종이 위에 부드럽게 솟은 점자를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점자가 모여 책이 완성될 때는 정말 감동적이죠. 점자책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22일 오전 서울 강서구 강서점자도서관에서는 이상웅 씨(48)가 점자 인쇄기로 장애인 정보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연거푸 걸려 오는 시각장애인들의 전화까지 받느라 분주했다. 법원에 가는데 동행해 달라는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전화를 받자마자 이 씨는 비상이라도 걸린 듯 할머니 집으로 달려갔다가 몇 시간 뒤 돌아오기도 했다. 이 씨는 도서관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있어 관장처럼 보이지만 평범한 은행원이다. 국민은행 전산부 23년차 직원인 그는 지난해 초부터 관장 역할을 하며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야간 근무를 하는 그는 이날도 전날 오후 5시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일을 마친 뒤 바로 도서관에 나왔다. 격일 근무를 하는 탓에 아침에 근무가 끝나면 하루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도서관에 나와 일을 한 뒤 밤에 퇴근해 7시간가량 이틀 치 잠을 몰아 잔다. 아침이면 다시 도서관에 나와 출근시간인 오후 5시 직전까지 봉사 활동을 한다. 점자책 제작, 시각장애인 차량 이동 봉사, 청소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2005년 설립된 점자도서관은 지난해 3월 폐관 위기에 처했었다. 설립자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문을 닫으려 했던 것. 시각장애인들은 설립 당시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던 이 씨에게 “우리가 계속 책을 읽을 수 있게 도서관을 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선뜻 수락했다. 현재 관장은 1급 시각장애인이라 업무 수행에 다소 어려움이 있어 이 씨가 업무의 상당부분을 처리하고 있다. 그는 “점자를 찬찬히 짚어가며 책을 읽는 시각장애인들을 보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씨의 고민은 늘 돈 문제다. 서울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올해 지원금은 3600만 원에 불과했다. 점자책 한 권을 만드는 데는 일반 책 5배의 비용이 드는 탓에 제작비와 임차료 등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그 바람에 그의 아내가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무보수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제작비가 모자라 의뢰받은 서적을 점자책으로 만들어 주지 못해 안타까웠던 적도 많다. 기자가 도서관을 방문한 이날도 난방기기가 고장 났지만 새로 살 돈이 없어 작은 온풍기 하나로 추위를 이기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렵게 행사 후원금 300만 원을 유치해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재능 콘서트’를 기획했다. 노래 악기 연주 등 예능 방면에서 재능이 뛰어난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그는 행사에 재능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출연시킨 다음 출연료를 지급했다. 예능인을 직업으로 삼아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는 “도서관이 재정적으로 안정되고 시각장애인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될 때까지 도서관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오래전부터 골프를 즐겼던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63·사진)은 10월 중순 경기 파주시의 한 골프장을 찾았지만 올해 첫 라운드이었던 탓에 공이 번번이 빗맞았다. 그러다 세게 휘두른 공이 멀리 빗나가 70m쯤 떨어져 서 있던 캐디(골프경기보조원) 황모 씨(25·여)의 귀에 정확히 맞았다. 유 전 의원은 황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황 씨의 왼쪽 귀는 벌겋게 부어 있었다.골프장 업주는 유 전 의원에게 “관리 책임은 우리에게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해 유 전 의원은 “일단 차비라도 해서 병원에 가라”며 20만 원을 준 뒤 라운드를 이어갔다.그러나 황 씨는 유 전 의원을 16일 과실치상 혐의로 서울 도봉경찰서에 고소했다. 공에 맞아 전치 6주의 상해를 입고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상태인데도 20만 원을 준 것 외에는 모든 책임을 골프장에 떠넘겼다는 것이 황 씨의 주장이다. 경찰은 조만간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유 전 의원은 동아일보의 통화에서 “사고 이후 수차례 황 씨 어머니와 연락하며 혹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지를 논의하고 병의 경과를 묻는 등 책임을 다하려 애썼는데 고소해 당황스럽다”며 “골프장 내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캐디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관리자의 책임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 천으로 가려져 있는 걸 본 순간 ‘북한에 정말 큰일이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박영환 서울신학대 교수) 김 위원장 사망 당시 북한을 방문했다가 돌아온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관계자 10명이 21일 0시 40분경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당시 북한 분위기를 전달했다. 박 교수 등 북민협 관계자들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한 인터뷰에서 “사망 발표가 있던 19일 정오를 전후해 상황이 급변하면서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북민협에 따르면 17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방북한 북민협 관계자 일행은 19일 오전 황해북도 강남군의 소학교와 탁아소를 방문하고 낮 12시경 평양으로 돌아와 점심식사 겸 쇼핑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 들어갔다. 이때만 해도 동행했던 북한 측 안내원 3명은 일행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12시가 지나자 상황이 급변했다. 백화점에 나타난 북한 당국 관계자가 안내 참사들을 데리고 가 이야기를 나눴다. 이 관계자는 곧이어 일행에게 “숙소(보통강호텔)로 가달라”고 했다. 북민협 회원인 안향선 국제기아대책기구 사무총장은 “안내원들은 좀처럼 남한 사람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 눈 주변이 벌겋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일행은 숙소로 도착하자마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호텔 입구 왼쪽 벽면에 걸려있던 김일성 부자의 사진이 연녹색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호텔 곳곳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쏟아졌다. 안내원은 별다른 통보 없이 “호텔 내에만 있어 달라”고 말했다. 방으로 들어간 이들은 TV를 켜보고서야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을 알게 됐다. 박현석 북민협 운영위원장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덜컥 겁이 났다”며 “서울에 있는 가족이 걱정돼 ‘우리는 안전하게 잘 있다’는 내용의 팩스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본 북한 사람들은 12시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며 “북한 주민들까지 다 아는 상황이었다면 우리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 보도 이후 북한 방송에서는 김정일 애도 방송과 함께 ‘김정은 대장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장면이 수차례 교차돼 방송됐다. 박 교수는 “북한 당국이 김정은이 나오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방송해 내부 불안을 서둘러 수습하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북한 주민들은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20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들이 만난 주민들은 출근을 서두르는 등 보통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 관계자는 이들을 배웅하며 “큰일을 치르고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고 한다. 박 운영위원장은 “한 북한 관계자가 ‘우리는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이) 보도되는 걸 원치 않는다. 팩스로 남은 이야기를 나누자’라고 했다”고 전했다.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올해 대한민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을 돌파해 명실상부한 ‘관광대국’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관광공사는 16일 올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당초 목표치인 1000만 명을 아슬아슬하게 달성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808만2500명. 공식 수치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달 방문객이 약 92만 명으로 지난달 말 9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반기(7∼12월) 들어 관광객 수 증가 추세가 이어진 만큼 목표 달성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은 5000만 명 이상 관광객을 유치하는 프랑스 미국 스페인 중국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수치다. 하지만 이는 2010년 기준 세계 17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연 경승지나 문화 사적지가 적은 한국이 달성한다면 의미가 매우 깊다.특히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880만 명에서 1년 만에 10% 이상 늘어난 데다 이웃 국가인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860만 명 수준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수치라고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밝혔다.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내년을 ‘한국 관광의 체질 개선 원년’으로 선포했다. 지금까지의 관광이 단순히 수도권 위주로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 그쳤다고 보고 앞으로 관광객 개인이 관심을 가질 테마별로 관광 코스를 묶는 ‘한국의 10대 테마관광 코스’를 선정해 적극 알릴 계획이다.문화부는 이날 10대 테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투어’와 ‘에코투어’ 등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의 도래는 1978년 ‘방한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연 지 33년 만이다. 또 2000년 500만 명을 넘어선 지 11년 만이다.전문가들은 이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우선 한국은 섬나라나 마찬가지로 관광지로서는 매우 불리하다는 점이다. 또 관광대국이 많은 유럽과 달리 ‘경유 여행지’가 되는 경우도 드물다. 이런 난점을 모두 극복하고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케이스라는 것.가장 큰 원동력은 이미지 개선이 꼽히고 있다. 최근 10년간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선박과 반도체를 만드는 ‘산업 국가’에서 K팝과 한식으로 대표되는 ‘문화 국가’로 바뀌었다고 업계 인사들은 입을 모았다. ○ 1000만 명 원동력은 ‘한국 마니아’폭설이 쏟아진 2일 오후 7시. 강원 평창군의 ‘2011 한류위크 콘서트’ 공연장 맨 앞에는 싱가포르에서 온 제이슨 통 씨(42) 가족 7명이 아이돌그룹 애프터스쿨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고 있었다. 통 씨는 “올해만 두 번째 방문으로 총 네 번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며 “딸들로부터 시작된 ‘한류’ 덕분에 온 가족이 한국 마니아가 됐다”며 웃었다. 국내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 명 돌파를 앞둔 것은 통 씨와 같이 몇 번이고 한국을 찾는 ‘한국 마니아’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마니아가 는 것은 한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외국인이 급증했기 때문이다.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을 찾은 관광객 1만2000여 명을 상대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네 차례 이상 찾은 관광객이 전체의 18.6%였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2000년대 이후 향상된 국가 이미지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연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쇼핑과 관광이 ‘1000만 명 쌍끌이’10년 만에 관광객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쇼핑과 관광이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찾은 방문지 1∼3위는 서울 명동,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순이다. 관광객의 쇼핑 욕구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세부 품목은 10년 동안 바뀌었다.16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기타가와 히토미(北川仁美·26·여) 씨는 “오직 화장품을 사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밝혔다. 그가 들고 다닌 화장품 쇼핑 가방만 5개. 실제 2006년까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사는 물품 2위는 김치(24.7%)였지만 지금은 의류(37.2%) 다음으로 화장품(36.9%)의 선호도가 높아졌다.또 세계문화유산에 한국의 사적지가 10개나 등재되는 등 세계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지난해 관광지 방문을 위한 내한은 52.9%로 쇼핑의 60.9%에 약간 못 미쳤다.또 하나의 새로운 현상은 ‘놀거리’를 찾아 한국에 오는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까지 실태조사에서 따로 집계하지 않던 휴양, 유흥 및 오락, 카지노 등의 ‘놀거리’ 항목이 2010년에만 총 27.7%(중복 응답)로 집계됐다. ○ 양에서 질로 관광 패러다임 바꿀 때 전문가들은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정책의 목표를 양에서 질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관광산업의 ‘핵심’인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1인당 지출액은 1106달러로 9년 전인 2001년 1241달러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외국인 관광객의 지갑을 어떻게 열 것인지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가장 큰 당면과제로 꼽히는 것이 지방관광 활성화다. 김현환 문화체육관광부 해외관광과장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인상을 각인시키고 관광 수입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지방 관광 활성화가 매우 중요하다”며 “국내 10대 관광코스를 만드는 것도 그 이유”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평창=고현국 기자 mck@donga.com }

수원대는 이번 정시모집에서 나군과 다군으로 나눠 신입생을 모집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단과대학이 나군 모집단위에 속하는데, 음대만 다군 모집단위에 들어간다. 선발 인원은 나군이 1290명, 다군이 165명이다. 모든 모집단위에서 논술 및 면접 고사를 따로 치르지 않는다.인문사회계열과 자연계열은 수능 성적 70%, 학생부 성적 30%로 최종합격자를 가린다. 예체능계의 경우 미대는 수능과 학생부 성적 외에 실기 60%를, 무용학과 및 음대는 실기 80%를 각각 반영한다. 수능은 영역별로 3개만 반영한다. 인문사회계열 및 예체능계열은 언어·외국어·탐구영역의 백분위 점수를, 자연계열은 수리·외국어·탐구영역의 백분위 점수를 넣어서 전형한다. 탐구영역은 계열과 상관없이 사회·과학·직업 탐구 영역에서 1개 과목 성적만을 반영(간호학과는 2개 과목 반영)한다. 자연계열 지원자가 수리 가형을 선택할 경우에는 취득 등급 환산 점수의 5%를 가산점으로 주기로 했다.학교생활기록부는 과목별 석차 등급(9등급)을 환산 점수로 조정해서 전형에 반영한다. 인문사회 및 예체능계열에서 전형에 반영하는 교과목은 국어, 영어, 사회 또는 과학 중 하나다. 자연계열의 경우 수학, 영어, 사회 또는 과학중 하나만 넣는다. 학생부 성적은 1학년 30%, 2학년 30%, 3학년 40%로 반영한다. 정시모집에서 수능 성적의 백분위 평균이 일정 수준을 넘는 우수 신입생에게 4년간 전액 장학금 및 학비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수원대는 유럽식의 아파트형 주거공간 개념을 도입한 기숙사를 지었다. 각방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많은 학생이 이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이 기숙사는 최대 900여 명의 학생이 이용할 수 있다. 031-220-2352∼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하며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가 14일로 1000회를 맞는다. 수요집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단일 주제로 2002년 3월 13일 열린 500회 집회가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뒤 매주 기록을 경신하며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집회를 주최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 1000회 집회 당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 제막식을 연다. 또 이날 일본을 포함한 미국, 독일 등 전 세계 9개국 37개 도시에서 연대 집회를 동시에 열어 1000회로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세계가 집중하게 할 계획이다.○ 1000번의 싸움…위안부 존재 알려 첫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열렸다. 정대협 등 여성단체 회원 30여 명이 모여 첫 집회를 연 이후 20년간 수요집회는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려왔다. 수요집회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에서조차 ‘숨겨야 할 문제’로 왜곡돼있던 위안부 문제를 양지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수요집회가 시작되면서 할머니들은 스스로를 ‘말 못하는 피해자’에서 여성 인권 운동의 당당한 주체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요집회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안돼 1992년 1월 24일 ‘정신대문제 실무대책반’을 만들어 관련 증거 자료를 조사하고 ‘정신대 피해자 신고’를 받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초반 한달에 3, 4번씩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집회는 1993년 2월 25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1995년 8월 일본 고베 대지진때 집회를 취소했던 것과 올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추모집회로 대신했던 것을 제외하곤 중단된 적이 없다. 피해 할머니들도 직접 집회 현장에 나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1993년에는 빈 세계인권회의 결의문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됐다. 1998년에는 유엔인권소위원회가 일본에 위안부 문제의 조기해결을 권고하는 맥두걸 특별보고관 최종보고서를 환영한다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07년에는 미국의 마이크 혼다 민주당 의원 등 7명이 위안부 피해자 관련 결의안을 공동 제출해 미 하원 본회의에서 채택됐다. 수요집회는 2002년 3월 500차 집회를 기점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단일 주제의 장기 집회’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정대협 측은 피해 할머니와 시민단체, 어린이, 시민 등을 포함해 연간 집회 참여자를 5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답 없는 일본, 뒷짐 진 한국 정부 정대협은 1차 수요집회 때부터 줄곧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진상규명, 일본 국회 결의를 통한 사죄,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의 7가지 사항을 일관되게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어느 하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 배상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위안부에 대한 개인 청구권도 모두 해결돼 안된다는 자세다. 이 때문에 일본의 공식사과와 피해 배상을 받아내는 일은 1000회 이후에도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윤 대표는 “다시 시작되는 1회(1001회) 집회부터는 국제 연대를 더욱 강화해 일본이 변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관계 악화를 우려해 일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한국 정부가 1000회 이후 달라져야 한다는 게 피해 할머니들의 바람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4명 중 현재까지 169명이 별세했다. 올해만 14명이 세상을 떠났다.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65명에 불과하다. 정대협 관계자는 “생존해 증언해줄 피해자가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 정부가 나서서 공식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헌법재판소가 8월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데 소극적이다. 외교통상부는 헌재 결정 이후‘ 한일청구권 문제 전담팀’을 만들어 일본 외무성에 협정문 해석에 관해 양국 간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공식 응답을 받지 못했다. 윤 대표는 “1000회까지는 정대협 등 민간이 나서서 일본을 압박했다면 이제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 수요집회 1000회의 역사 ::1992년 1월 8일: 1회 수요집회1992년 1월 17일: 일본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총리, 한국 국회 연설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 관여 시인 및 사과 표시1992년 1월 24일: 우리 정부 정신대문제 실무대책반 만들어 관련 증거 자료 조사 및 정신대 피해자 신고 시작1993년 2월 25일: 수요집회 일주일에 한 번 개최로 정기화 1993년 6월: 빈 세계인권회의 결의문에 위안부 문제 포함1998년 8월: 유엔인권소위원회 맥두걸 특별보고관 최종보고서를 통해 일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기해결 권고. 유엔인권소위원회는 보고서 환영 결의문을 만장일치 채택 2002년 3월 13일: 500차 집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단일 주제의 장기 집회로 세계 기네스북 등재2006년 3월 15일: 700차 수요집회. 세계 8개국 14개 도시 연대집회2007년 6월: 마이크 혼다 미국 민주당 의원 등 7명 위안부 피해자 관련 결의안 공동 제출. 미국 하원 본회의 채택2010년 1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관련 일본 내 법 제정 위한 50만 명 서명 운동 시작2010년 11월: 4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일본 정부에 전달 2011년 12월 14일: 1000회 수요집회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