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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올림픽의 양궁과 겨울올림픽의 쇼트트랙 선수들에게 태극마크는 무한한 영광인 동시에 큰 부담이다. 흔히 두 종목에서는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 되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 은메달을 따고도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외국 사람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만한 장면이다. 이들이 느끼는 금메달 강박증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24일 막을 내린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금메달은커녕 동메달 한 개도 목에 걸지 못했다. 선수들의 아픔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회 전부터 이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29)의 그늘에 가렸다. 안현수가 한국 빙상계 파벌 싸움의 희생양으로 귀화했다는 오해가 널리 퍼지면서 그 화살이 애꿎은 한국 선수들에게 향했다.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대표선발전을 통과했지만 이들은 역대 국민들의 성원을 가장 받지 못하는 국가대표였다. 대회 기간에 안현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승승장구하자 이들의 상처는 더 깊어졌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고, 조급함은 무리한 플레이를 낳았다. 실격과 실수가 잇따랐다. 오죽했으면 안현수가 “후배 선수들이 무슨 죄가 있나. 다들 열심히 한 선수들이다. 내 성적과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맞물려 비교되는 게 나도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을까. 안현수가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힌 귀화 이유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2008년 무릎 부상 이후 안현수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그의 재기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였다. 한국은 기다리지 못했고 러시아는 기다렸다. 그 결과 안현수는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따내며 러시아의 종합 1위에 기여했다. 한국 쇼트트랙이 ‘세계 최강’이던 시대는 지났다. 많은 한국인 지도자가 외국에 진출하면서 한국만의 노하우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힘 좋고 체격 좋은 외국 선수들은 한국 지도자들을 통해 한국만 갖고 있던 장점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안현수의 경우처럼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도 기다림이다. 옆에서 지켜본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정말 눈물겨울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땀을 흘렸다. 이들에 대한 비난은 ‘제2의 안현수’를 낳을 수 있다. 이들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그간의 노력에 대해서는 따뜻한 격려를 받아야 한다. 25일 이들은 선수단 본진과 함께 입국한다. 메달리스트들의 뒤에 가려 있을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박수다.소치=이헌재·스포츠부 uni@donga.com}

“경기장에서 항상 당당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을 이끈 김재열 단장(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은 폐막식을 앞둔 23일 러시아 소치 시내 코리아하우스에서 대회 결산 기자회견을 가졌다.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 8개의 메달을 딴 한국은 종합 1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다음은 김 단장과의 일문일답. ―대회를 총평하자면…. “금메달 4개로 톱10에 진입하겠다는 목표 달성에 실패해 밤낮으로 열심히 응원해 주신 국민께 죄송하다. 하지만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항상 당당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비활성화 종목에서 가능성을 보인 것도 고무적이다. 올림픽에 처음 나선 컬링은 3승(6패)을 거뒀고, 스켈리턴의 윤성빈은 입문 2년 만에 16위에 올랐다. 모굴스키의 최재우는 한국 스키 역사상 처음으로 12명이 겨루는 본선에 진출했다.” ―가장 인상적인 경기와 아쉬웠던 경기를 꼽자면…. “단장으로서 모든 경기가 중요했고 인상적이었다. 최재우는 본선에서 스타트가 좋았는데 약간 실수가 나온 게 아쉬웠다. 어린 선수니까 토비 도슨 코치와 4년간 열심히 준비하면 평창에서는 시상대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컬링은 정말 흥미로웠고 한국인이 잘할 수 있는 경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쇼트트랙 박승희에게는 감동했다. 500m 경기에서 선두로 달리다가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동메달에 그쳐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걸었더니 ‘지나간 것 가지고 얘기해 뭐하겠느냐. 다 잊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겠다’고 하더라.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대회 기간 빙상연맹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았다. “연맹 회장으로서 소통을 잘못한 부분이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충분히 있었다. 선수 선발의 공정성 제고 등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빙상 강국의 위상을 회복할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김연아의 판정 논란과 관련해 빨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도 있다. “우선 김연아 선수가 자랑스럽다. 은메달을 받고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 ‘괜히 김연아가 아니구나’ 싶었다. 이의 제기와 관련해서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규정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했다. 앞으로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 이의 제기에 관한 ISU 규정이 까다롭다. 충분히 이에 대해 숙지해 왔고 적합한 대응을 해나갈 것이다.” ―평창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느낀 점을 말해 달라. “경기력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쇼트트랙 강국의 위상을 지키고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에서 선전할 수 있다고 느꼈다. 이번에 스피드스케이팅을 네덜란드가 독식했다. 예전부터 잘했던 장거리뿐 아니라 단거리도 석권했다. 이번에 네덜란드 빙상연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우리가 강한 쇼트트랙과 네덜란드가 강한 스피드스케이팅을 서로 교류할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소치 올림픽은 막을 내리지만 동시에 평창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육성해야 할 종목의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에게 계속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드린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14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편파 판정에 대해 전 세계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23일(현지 시간) 김연아(24)와 비밀 회동을 가졌다. 특히 이날 회동은 IOC 위원장의 요청으로 극비리에 이뤄진 만남이어서 회동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IOC 관계자 등에 따르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독일)은 23일 소치 올림픽 기간 동안 자신을 포함해 IOC 위원들의 숙소와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래디슨블루호텔에서 김연아와 20분간 비밀 회동을 가졌다. 국제 스포츠계의 최고 권력자인 IOC 위원장이 선수 개인을 초청해 따로 만남을 가진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선수들은 IOC 위원장은 고사하고 IOC 위원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국제 스포츠계의 현실이다.김연아는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판정에) 억울하거나 속상한 마음은 없다"고 밝혔는데 이날도 같은 취지의 의견을 바흐 위원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남에서 바흐 IOC 위원장은 김연아에게 유스올림픽 홍보대사를 맡아 줄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아는 2011년 제1회 겨울 유스올림픽을 앞두고 홍보대사를 지낸 적이 있다. 그러나 선수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았던 당시와 달리 김연아는 소치 겨울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을 은퇴하고 스포츠 행정가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유스올림픽 홍보대사는 김연아에게 매력적인 카드다.특히 IOC 선수위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김연아에게 바흐 IOC 위원장은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다. IOC 선수위원은 당해 연도 올림픽이나 직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동료 선수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김연아는 2018년 평창 올림픽 때 IOC 선수위원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 그런데 IOC 위원장은 지역과 성별, 종목 배려를 위해 최대 7명까지 IOC 선수위원을 지명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바흐 IOC 위원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김연아를 IOC 선수위원으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바흐 IOC 위원장은 첫 선수 출신 IOC 위원장이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예전에 파벌이란 게 있긴 했지만 러시아 귀화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러시아에 온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 문제로 더이상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치 겨울올림픽 대회 중반인 13일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에 대해 “안 선수의 귀화가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한 가운데 당사자인 안현수가 스스로 답을 내놨다. 22일(한국 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500m와 5000m 계주를 석권한 직후였다. 안현수는 15일 1000m에서 딴 금메달을 합쳐 이번 대회 3관왕에 올랐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안현수는 그간의 논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심경을 밝혔다. 한국 쇼트트랙 내의 파벌 싸움이 그를 귀화로 내몰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버지(안기원 씨)가 내가 실제로 하지 않은 얘기까지 너무 많이 말씀하셨다. 그 때문에 나와는 의견충돌까지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아끼는 마음에 그러셨겠지만 그런 말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기원 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안현수의 귀화는 한국 빙상계의 파벌 싸움 때문이었고, 안현수는 제대로 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안현수는 그 말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을 당했고 그 후 1년간 4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2009년 대표선발전에 한 달밖에 운동을 못하고 나갔다. 하지만 내게만 특혜를 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에 온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림픽 들어 한국 선수들과 부딪치는 기사들이 많이 나가는 상황이 굉장히 아쉬웠다. 내 성적과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맞물리는 게 내게도 많이 힘들었다. 후배 선수들이 무슨 죄가 있나. 다들 열심히 한 선수들이다. 후배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러시아 귀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털어놨다. 그는 “2008년에 좋은 대우를 받고 성남시청에 입단했다. 그런데 입단 한 달 후 바로 부상을 당하게 되는 바람에 저를 영입한 성남시청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성남시청은 저와의 계약이 끝나는 해에 해체됐다. 한국 내 다른 팀에 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올림픽을 다시 한 번 뛰고 싶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처음 러시아에 올 때는 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귀화를 결정하게 된 것에는 저를 믿어준 것에 대한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처음 와서 1, 2년간은 정말 힘들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적응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러시아가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줬기에 러시아 귀화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회 내내 연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우나리 씨(30)에 대해서는 “저희는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부부관계다. 한국에서 혼인 신고도 했다. 그래서 더욱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한 결정 때문에 그 사람이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예전에 파벌이란 게 있긴 했지만 러시아 귀화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러시아에 온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 문제로 더 이상 한국에서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치 겨울올림픽 대회 중반인 13일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에 대해 "안 선수의 귀화가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한 가운데 당사자인 안현수가 스스로 답을 내놨다. 2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500m와 5000m 계주를 석권한 직후였다. 안현수는 15일 1000m에서 딴 금메달을 합쳐 이번 대회 3관왕에 올랐다. 그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안현수는 그 간의 논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심경을 밝혔다. 한국 쇼트트랙 내의 파벌 싸움이 그를 귀화로 내몰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버지(안기원 씨)가 내가 실제로 하지 않은 얘기까지 너무 많이 말씀하셨다. 그 때문에 나와는 의견충돌까지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아끼는 마음에 그러셨겠지만 그런 말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기원 씨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안현수의 귀화는 한국 빙상계의 파벌 싸움 때문이었고, 안현수는 제대로 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안현수는 그 말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을 당했고 그 후 1년 간 4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2009년 대표선발전에 한 달 밖에 운동을 못하고 나갔다. 하지만 내게만 특혜를 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에 온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림픽 들어 한국 선수들과 부딪치는 기사들이 많이 나가는 상황이 굉장히 아쉬웠다. 내 성적과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맞물리는 게 내게도 많이 힘들었다. 후배 선수들이 무슨 죄가 있나. 다들 열심히 한 선수들이다. 후배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러시아 귀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털어놨다. 그는 "2008년에 좋은 대우를 받고 성남시청에 입단했다. 그런데 입단 한 달 후 바로 부상을 당하게 되는 바람에 저를 영입한 성남시청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성남시청은 저와의 계약이 끝나는 해에 해체됐다. 한국 내 다른 팀에 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올림픽을 다시 한 번 뛰고 싶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처음 러시아에 올 때는 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귀화를 결정하게 된 것에는 저를 믿어준 것에 대한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처음 와서 1, 2년 간은 정말 힘들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적응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러시아가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줬기에 러시아 귀화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회 내내 연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우나리 씨(30)에 대해서는 "저희는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부부관계다. 한국에서 혼인 신고도 했다. 그래서 더욱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한 결정 때문에 그 사람이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열린 20일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최악의 연기로 16위에 그쳤던 아사다 마오(24·일본)는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주무기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는 등 올 시즌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142.71점을 받은 아사다는 연기를 마친 뒤 감격에 겨워 빙판에서 눈물을 쏟았다. 같은 시간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김연아(24)는 그 광경을 TV로 지켜봤다. 21일 소치 시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연아는 “아사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사다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했다”고 말했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평생의 라이벌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10년간 치열한 경쟁을 펼쳐 왔다. 언젠가 김연아가 “참 징한 인연이다. 아사다도 아마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니어 시절만 해도 아사다가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2008∼2009시즌부터 김연아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그 시즌 첫 맞대결이었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에 밀려 2위를 한 김연아는 4대륙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피겨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그 정점이었다. 아사다는 무려 3차례나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켰지만 우승은 세계기록(228.56점)을 작성한 김연아의 차지였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라이벌이었다. 아사다는 “김연아가 없었다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의의 경쟁이 나에게 자극이 됐다”고 했다. 김연아도 “아사다가 없었으면 나도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소치 올림픽은 10년간의 라이벌전을 마무리 짓는 무대였다. 김연아는 은메달을 차지했고, 쇼트프로그램에서 부진했던 아사다는 6위(198.22점)에 올랐다. 김연아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아사다와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비교당하면서 경쟁을 했다. 피겨 역사상 우리 둘만큼 그렇게 꾸준히 경쟁했던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아사다가 그동안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전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지나던 아사다에게도 김연아와의 오랜 대결이 끝나는 감회를 물었더니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서로의 존재가 있었기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김연아 선수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김연아와 달리 아사다는 세계선수권까지 출전한 뒤 향후 진로를 결정할 예정이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완벽하게 마친 뒤 김연아(24)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평생의 꿈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에 다가섰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소치 겨울올림픽 프리스케이팅이 열린 20일(현지 시간). ‘아디오스 노니노’의 탱고 선율에 맞춰 김연아는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를 펼쳤다. 또 한 번의 클린(무결점) 연기였다. 이번에는 눈물 대신 미소를 지었다. 모든 사람이 완벽한 연기를 펼친 ‘여왕’의 금메달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전광판에 뜬 점수는 144.19점이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과 합쳐 219.11점. 은메달이었다. 그런데도 김연아는 웃었다. 믹스트 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도, 플라워 세리머니에서도 웃음을 지었다. 가슴 시린 웃음이었다. 하지만 선수 라커룸으로 돌아가던 중 김연아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김연아가 남몰래 우는 모습은 미국의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 카메라에 잡혔다. 아쉬움과 후련함, 자랑스러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경기 이튿날인 21일 소치 시내 코리아하우스 기자회견에 나타난 김연아는 다시 웃는 얼굴이었다. 초연한 모습이 오히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연아는 “일단 모든 게 끝이 나서 너무 홀가분하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둘 다 큰 실수 없이 마쳤다. 그동안 고생한 만큼 팬 여러분께 다 보여드린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 그리고 피겨 전설들이 판정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김연아 자신은 담담했다. 그는 “점수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피겨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여야 한다. 금메달을 따러 온 게 아니다. 출전 자체에 의의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엄마와도 카톡으로 ‘너무 열 받지 말자고, 다 끝났으니까 자유를 즐기자’ 그런 얘기를 했다. ‘하늘이 저보다 더 간절한 사람한테 금메달 줬다고 생각하자’고 얘기했다”고도 했다. 김연아는 “(나에게)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간의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낸 스스로에 대한 칭찬이었다. 김연아는 또 “밴쿠버 대회 때는 금메달을 준다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간절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는 그런 목표의식이 없었다. 동기 부여가 없었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김연아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김연아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일단 모든 게 잘 끝났기 때문에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다. 놀고 있기만 할 것 같진 않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바쁜 일이 생길 것 같다. 여유를 갖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대해서도 앞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언젠가는 그를 넘어설 스타가 나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의 환상적인 연기를 직접 볼 수 있었던 우리는 그래서 행복했다. 2014년 2월 21일(한국 시간). ‘피겨 여왕’은 러시아 소치의 궁전(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을 마지막으로 링크를 떠났다. 그리고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2000년대 세계 여자 피겨는 ‘여왕’ 김연아(24)의 시대였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기록한 78.50점과 프리스케이팅 점수 150.06, 합계 점수 228.56점은 4년이 지난 요즘도 여전히 세계 신기록이다. 김연아의 경쟁자는 자신뿐이었다.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합계 점수 207.71점을 기록하며 여자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200점을 돌파했다. 이후 자신의 기록을 여러 차례 넘긴 것을 포함해 세계 기록을 11차례나 경신했다. 여자 선수로는 최초의 그랜드슬램(겨울올림픽, 세계선수권, 4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달성했다. 2006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의 우승을 시작으로 2009년 2월 4대륙선수권 우승, 2009년 3월 세계선수권 우승, 2010년 2월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까지 4년 만에 이룬 대기록이다. ▼ 행복했다 연아야, 고마웠다 연아야 ▼김연아가 펼친 기술들은 전 세계 피겨 선수들의 기준이 됐다. ‘점프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김연아의 점프는 러시아, 미국 등에서 어린 선수들을 위한 교본이 됐다. 심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국제심판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가 바로 김연아다. 한 국제심판은 “언젠가 심판들이 모여 김연아의 점프를 만점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결론 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게 쉽지는 않았다. 피겨 강국들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보이지 않게 김연아를 견제했다. 국제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석연찮은 판정을 받아온 것도 그런 이유다. 2008년 11월 중국에서 열린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김연아는 완벽한 점프를 뛰었지만 심판들은 두 개의 점프에 이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는 편파 판정 탓에 기권까지 생각했다. 밴쿠버 올림픽 때는 김연아가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메달 색깔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럴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김연아는 무결점 연기를 펼쳐야 했다. 그리고 김연아는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를 통해 자신의 완벽을 증명했다.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전설적인 피겨 선수로 올림픽 3연패를 이룩한 여자 싱글의 소냐 헤니(노르웨이), 페어의 이리나 로드니나(러시아)와 함께 김연아를 꼽았다. 김연아는 유일한 현역 선수였다. ○ 변화의 아이콘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김연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김연아가 나타난 이후 피겨는 한국의 국민 스포츠가 됐다. 온 국민의 김연아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지금도 인근 빙상장에 가면 ‘제2의 김연아’를 꿈꾸며 얼음판을 지치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두 김연아가 바꿔 놓은 풍경이다. 피겨스케이팅만이 아니다. 비인기 종목 선수에게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라고 물으면 많은 선수들은 “김연아 같은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나이, 성별, 종목과 관계없다. 한국 사이클의 전설인 조호성(40·서울시청)은 언젠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보다 16세 어린 김연아를 롤 모델로 꼽았다. 그는 “피겨스케이팅처럼 사이클이 국민들에게 힘을 주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을 향해 조호성은 불혹을 넘긴 요즘도 페달을 밟고 있다. 손연재(20·연세대)도 리듬체조의 김연아를 꿈꿨다. 손연재는 중학생 시절 인터뷰에서 “연아 언니처럼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많은 사람들에게 ‘리듬체조도 정말 재미있는 종목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손연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을 땄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인 5위를 기록하며 스타가 됐다. 손연재를 통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리듬체조를 좋아하게 됐다. 이 모든 게 김연아로부터 시작된 즐겁고 놀라운 변화다.○ 용기와 희망의 아이콘 대한민국에서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온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김연아는 마음 놓고 훈련할 빙상장이 없어 하루에도 2∼3곳을 돌아다니며 훈련을 해야 했다. 그나마 낮은 일반 대관 시간이라 훈련을 하려면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 해야 했다. 열악한 환경을 이겨낸 것은 타고난 신체와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한창 건강할 10대 중반부터 김연아는 발과 허리, 등에 부상을 안고 살았다. 너무 많은 점프를 하느라 특히 오른발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른 발등 부상으로 예정됐던 그랑프리 시리즈에도 나가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김연아는 단순히 한 명의 운동선수가 아니다. 김연아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피겨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피겨의 꽃을 피운 김연아를 보면서 국민들은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TV 앞에 모여앉아 김연아를 응원하는 것은 그를 통해 무한한 기쁨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그 하이라이트였다. 그해 2월 26일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프리스케이팅에 나선 김연아는 관객은 물론 심판들까지 매료시켰다. 연기가 끝난 직후 그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시상대 위에 올라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그는 다시 끝없는 눈물을 흘렸다. TV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함께 웃다가 울었다. 그런 김연아가 이제 스케이트화를 벗는다. 마지막 올림픽의 메달 색깔은 이미 중요한 게 아니다. 김연아가 우리 국민들에게 준 기쁨과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김연아와 동시대를 살아서 행복했다”고. 안녕 김연아, 고마웠다 김연아.소치=이헌재 uni@donga.com / 김동욱 기자※프리스케이팅 경기 결과는 dongA.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김연아(24)의 미소를 기억하시나요.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24·일본)의 바로 뒤 순서였습니다.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며 73.78이란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기쁨에 겨워 방방 뛰는 아사다를 향해 김연아는 씨익∼미소를 지었지요. 당당하게 빙판으로 나간 김연아는 78.50점의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김연아는 ‘강심장’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김연아를 ‘천하의 강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9일(현지 시간)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온 김연아의 눈 아래는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로 감추려 해도 긴장과 피로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김연아는 “오늘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경기 직전 워밍업(몸 풀기) 시간에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연습 때 편하게 뛴 점프가 하나도 없었다.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실전에 들어갈 때까지 갖가지 생각과 걱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종합선수권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오전에 링크에서 연습을 하는 김연아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김연아는 당황했고, 관계자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 들어가자 김연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왕의 위엄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면 극도의 긴장 속에서 김연아는 어떻게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을까요. “연습 때는 늘 쇼트프로그램에서 클린(무결점 연기)을 했다. ‘연습에서 잘했는데 실전에서 못할 건 또 뭐냐, 몸에 맡기자’고 생각했다. 여기서 못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는 말에 답이 있습니다. 연기를 했다기보다는 몸이 먼저 알아서 반응을 했다는 것입니다. 야구에서 타격이나 투구는 재능을 타고나야 합니다. 이에 비해 수비는 꾸준한 연습으로 어느 정도는 수준급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한한 반복 연습이 이뤄져야 하지요. 언제 어떤 상황이건 김연아가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한 노력에 대한 보답인 것입니다. 이날 김연아는 두 번 미소를 지었습니다. 프로그램 후반 마지막 점프인 더블 악셀을 뛰고 난 뒤 미소를 한 번 지었고, 프로그램을 끝낸 뒤 안도 섞인 미소를 또 한 번 지었습니다. 자신의 걱정과는 달리 저절로 움직여 준 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몸을 만든 건 김연아 자신이었습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저는 아직까지 용서가 안 되는데 현수는 이제 아무도 원망하지 말자고 하네요. 이제 제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의 아버지 안기원 씨(사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안 씨는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를 소치 현지에서 지켜봤다. 개인 사정으로 19일 귀국한 안 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제 다들 알고 계실 거다. 한국에서 여건만 맞았으면 한국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땄을 거다. 하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팬들과 국민들에게 자기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 현수가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고 했다. 한국 빙상계에 대해 꽁꽁 닫혀 있던 안 씨의 마음을 녹인 것은 안현수가 보낸 문자 한 통이었다. 금메달을 딴 직후 보낸 문자에서 안현수는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던 거 다 이렇게 보상받았으니까 아빠도 저도 이제 마음 편히 놓고 한국연맹에 대해선 얘기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이 기회에 모든 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제 아빠도 좀 편하게 지켜보셔도 될 거 같아요”라고 썼다. 안 씨는 “올림픽이 끝난 후 현수가 다 말하겠다고 했으니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한국 빙상계가 선수들이 편하게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된다는 것만은 말씀드리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셨으니 잘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안 씨는 아들의 여자친구 우나리 씨(30)에게도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현수가 결혼하겠다고 하더라. 내가 데리고 살 것도 아니고 현수가 좋아하는데 말릴 수가 있나. 자식이 좋다는데 그냥 해야지. 현수가 러시아에서 혼자 외로울 때 도움을 많이 준 친구다. 러시아에서 둘이 잘 살면 된다”고 했다. 그는 또 “현수가 러시아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계속 거기서 살 것 같다. 나야 아들 얼굴을 자주 못 봐 섭섭하지만 본인 의사가 중요하다. 자기가 알아서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조 추첨이 열린 19일(현지 시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내 기자회견장. ‘김연아와 아이들’은 일찌감치 입장해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가운데에 김연아가 앉았고 그 좌우에는 17세 동갑내기 김해진(과천고)과 박소연(신목고)이 자리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김연아가 가장 먼저 추첨을 했다. 결과는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순번인 24번. 김해진은 9번을 뽑았고, 박소연은 1번. 셋은 추첨 결과에 대해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이번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의 처음과 끝은 한국 선수들이 장식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20일 프리스케이팅을 마지막으로 김연아가 은퇴해 아이들만 남았기 때문이다. 4년 뒤 평창 올림픽에서는 이들이 한국 여자 피겨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 첫 올림픽이지만 김해진과 박소연은 상위 24명이 나가는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하는 수확을 거뒀다. 김해진은 첫 점프 과제인 트리플 러츠에서 약간 주춤했지만 나머지 연기를 무난히 마치며 54.37점으로 18위에 올랐다. 박소연 역시 주무기인 트리플 살코-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싱글 살코로 처리하는 큰 실수를 범했지만 이후 안정감을 되찾고 연기를 무사히 마쳤다. 49.14점으로 23위였다. 김해진은 “연아 언니와 함께 빙판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고 했다. 박소연도 “연아 언니가 가끔 던지는 칭찬과 조언이 큰 힘과 격려가 됐다”고 말했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을 앞두고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러시아의 ‘신성’ 율리야 리프니츠카야(16)가 실수를 하지 않는 한 금메달을 딴다는 것이었다. 자국에서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심판들이 그에게 홈 어드밴티지를 줄 수밖에 없다는 게 근거다. 또 리프니츠카야를 총애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그를 금메달리스트로 만들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한다는 얘기도 퍼져 있었다. 실제로 리프니츠카야는 대회 초반 열린 피겨 단체전에서 기대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각각 72.90점과 141.51점을 기록했다. 합계 214.41점은 올 시즌 공식대회 최고점이다. 특별대우도 받았다. 피겨 단체전이 끝난 뒤 그는 혼자 모스크바로 날아가 전용 경기장에서 훈련했다. 언론의 취재는 엄격히 통제됐다. 김연아(24)와 같은 훈련 조에 배정을 받았지만 소치에는 대회 이틀 전에야 돌아왔다. 그래서 김연아와 같은 링크에서 훈련한 것은 한 번도 없다. 당돌한 이미지의 그는 김연아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준비를 해 왔다. 결과는 심판들이 말해줄 것”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얼굴에는 자신감과 도도함이 가득 묻어났다. 하지만 ‘여왕’과의 대면은 그에게도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3조에서 연기한 김연아가 쇼트프로그램에서 74.92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은 게 큰 영향을 끼쳤다. 긴장된 얼굴로 빙판에 올라선 그는 세 번째 점프 과제인 트리플 플립을 뛰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소치 올림픽 들어 연습 때든 실전에서든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던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던 리프니츠카야는 65.23점이란 저조한 점수로 5위에 그치며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그는 경기 후 “준비는 완벽했고 긴장을 하지는 않았다.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실수에 대해서 이유를 대거나 변명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소치에서는 요즘 티켓 구하기 전쟁이 한창입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출전하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이 전쟁터입니다. 김연아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합니다. ‘10년 라이벌’ 아사다 마오(24·일본)에게도 마지막 올림픽입니다. 개최국 러시아의 ‘신성’ 율리야 리프니츠카야(16)는 우승 후보 중 한 명으로 떠올랐습니다. ‘겨울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 여자 싱글은 안 그래도 인기가 많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사연 많고, 볼거리까지 많으니 더욱 성황입니다. 티켓 전쟁은 기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종목은 하이 디맨드(입장권 수요가 아주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나 경기) 이벤트라 기자들도 표가 있어야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대회 조직위는 18일 대한체육회를 통해 한국 미디어를 위한 티켓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턱도 없이 적은 수입니다. 중계권을 갖고 있는 지상파를 제외하고 소치 현지에 취재를 온 신문, 통신사는 모두 24개입니다. 그런데 20일 열리는 쇼트프로그램은 15장, 프리스케이팅은 13장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치까지 온 마당에 누구인들 이 경기를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결국 추첨으로 티켓을 나누기로 합니다. 각 회사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통에 넣고 한 장씩 뽑는 방식입니다. 한 회사 한 회사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립니다. 쇼트프로그램 때는 운이 좋았습니다. 앞 순서에서 뽑혔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더 적은 프리스케이팅에서는 회사 이름이 호명되지 않습니다. 한 장 한 장 표가 줄어들 때마다 피가 바짝바짝 마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두 장. 마침내 기자단 간사 입에서 ‘동아일보’란 소리가 나옵니다. 구사일생입니다. 대한민국 만세입니다. 어렵사리 구한 티켓은 테이블이 없는 ‘논 테이블’석입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그냥 경기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입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회사는 경기 시작 3시간 전 하이 디맨드 오피스 앞에서 기다렸다가 남는 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최후의 수단이 있긴 합니다. 웹사이트를 통해 재판매되는 티켓을 웃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입니다. 물론 수십만 원이 들겠지만요. 이헌재 기자·스포츠부 uni@donga.com}

18일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우승을 이끈 심석희(17·세화여고)는 두 얼굴을 가진 선수다. 빙판 밖의 심석희는 수줍음 많은 평범한 여고생이다. 초록색을 좋아해 그가 사용하는 스케이트, 이어폰, 안경에는 모두 초록색이 들어가 있다. 휴식일에는 함께 운동하는 동생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다닌다. 서울 목동 빙상장 2층의 떡볶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군것질거리 중 하나다. 올림픽이 끝난 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을 사서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다. 그런 심석희가 빙판에만 서면 달라진다. 3000m 계주에서도 그랬다. 마지막 주자로 나서 이를 악물고 상대 선수를 추월할 때의 모습에서는 소녀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었다. 냉철한 승부사만 있었다. ○ 타고난 천재 윤재명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은 심석희에 대해 ‘타고난 선수’라고 평가한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에 비해 훨씬 키가 컸던 그는 긴 다리를 잘 활용해 주니어 무대를 휩쓸었다. 시니어 데뷔 무대였던 2012∼2013시즌 월드컵 대회에서는 6대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전 열린 2013∼2014시즌 4차례의 월드컵에서도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대개 키가 큰 선수들은 순발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덩치 큰 유럽 선수들이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다. 소치 올림픽 공식 프로필에 심석희의 키는 174cm로 되어 있는데 지난해 자료다. 현재 그의 키는 177cm까지 자랐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수준급의 순발력을 지니고 있다. 윤 감독은 “순발력이 큰 키를 이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석희는 순발력뿐 아니라 지구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타고난 몸이다”라고 했다.○ 노력하는 천재 심석희가 자칫 핸디캡이 될 수 있는 큰 키를 극복하고 있는 것은 노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쇼트트랙 훈련은 대표팀 내에서도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가장 노력하는 선수 중 한 명인 심석희는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서 채우는 스타일이다. 심석희는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혼자 남아 얼음을 지치곤 했다.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 호랑이로 악명 높은 최광복 대표팀 코치는 “누군들 훈련이 괴롭지 않겠나. 그런데 석희는 스스로 고통을 감내한다. 부족한 게 있으면 될 때까지 훈련한다. 천재성을 타고난 선수가 성실함까지 갖췄기에 그를 당해낼 선수가 없다”고 했다. 남들이 다 인정해도 그는 스스로를 “여전히 많이 부족한 선수”라고 평가한다. 경기 운영 능력, 단거리 능력, 순발력 보완 등 그는 스스로를 여전히 채찍질한다. ○ “Never give up” 대개 순발력이 좋은 선수는 500m를 잘 탄다. 이번 올림픽 여자 500m 동메달리스트 박승희(22·화성시청)가 대표적이다. 지구력이 뛰어난 김아랑(19·전주제일고) 같은 선수는 1500m가 주 종목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인 1000m는 순발력과 지구력을 고루 요하는 종목이다. 두 가지를 고루 갖춘 심석희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쇼트트랙은 기록경기가 아니라 순위 경기이긴 하지만 세계 기록을 집계한다. 이 종목 세계 기록은 2012년 10월 22일 심석희가 세운 1분26초661이다. 21일 열리는 여자 1000m에 출전하는 심석희에게 또 하나의 낭보를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한국 쇼트트랙은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심석희의 좌우명이 빛을 발할 때다.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춘천 가족 중에 저만 ‘한국인’입니다” ▼귀화인 첫 金, 화교 3세 쇼트트랙 공상정 “대만 대표 제의 거절… 평창서도 애국가”18일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결선이 끝난 뒤 한동안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단어는 ‘공상정’이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공상정(18·유봉여고·사진)은 여자 3000m 준결선에서 3번 주자로 나서 한국의 결선 진출에 힘을 보탰다. 공상정은 대만 출신 화교 3세다. 최근 러시아로 귀화해 금메달을 목에 건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와 반대로 한국에 귀화해 금메달을 땄다. 그는 최초의 귀화 한국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전까지는 탁구의 당예서(33)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단체전에서 따낸 동메달이 최고 성적이었다. 공상정은 2011년 체육 우수 인재에 대한 복수 국적 취득의 길을 열어준 개정 국적법에 따라 특별 귀화했다. 공상정은 다섯 살 때 “너는 대만 사람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내가 왜 대만 사람이냐. 난 한국 사람이다’라며 따진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에 사는 공상정의 어머니 진신리 씨(47)는 딸이 태어나 첫 말문을 열었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진 씨는 “언니와 동생은 모두 태어나 처음 말한 것이 중국어였다. 하지만 상정이는 한국어로 처음 말문을 열었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해외여행 때도 한국 음식이 없으면 끼니도 거를 정도다. 가족 중 국적이 한국인 사람도 공상정이 유일하다. 언니와 동생, 부모님 모두 대만 국적이다. 진 씨는 “해외여행 때 출입국 수속을 가족과 떨어져서 공상정 혼자 받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라며 웃었다. 공상정이 귀화를 결심한 것은 2010년 첫 태극마크를 달고부터다.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국적 문제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출전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공상정은 “어차피 대표를 달아도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애꿎은 다른 선수만 떨어졌다고 욕하는 분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당시 대만빙상경기연맹은 공상정을 찾아와 국가대표를 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상정은 한국 대표로 뛰고 싶은 마음에 제의를 거절했다. 귀화를 결심한 뒤에도 가족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진 씨는 “가족 중 누구도 한국으로 귀화하지 않았는데 혼자만 한다고 해 처음에는 반대했다. 하지만 상정이의 한국 국가대표에 대한 꿈을 꺾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공상정은 태극마크를 달고 다시 올림픽에 나가는 게 목표다. 진 씨는 “상정이가 이제 정말 한국인으로 고국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도 나가 애국가를 다시 한 번 듣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이를 악문 한국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을 바탕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부진한 성적,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의 선전, 빙상경기연맹의 파벌과 선수 선발 공정성 논란 등이 겹치며 침울해 있던 한국 선수단에 여자 쇼트트랙팀이 애타게 기다리던 금메달을 안겼다. 조해리(28·고양시청) 박승희(22·화성시청) 김아랑(19·전주제일고) 심석희(17·세화여고)가 이어달린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18일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4분09초498의 기록으로 1위로 골인하며 눈물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결선에서 세계기록을 세우고도 억울한 실격패를 당했던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4년 만에 완벽한 복수전을 펼쳤다. 4년 전 한국의 실격패를 유도했던 중국이 이번엔 실격을 당했다. 중국은 한국에 이어 2위로 골인했지만 실격을 당해 메달도 빼앗겼다. 경기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레이스였다. 초반 선두로 치고 나간 한국은 중반에 중국에 잠시 역전을 당하며 끌려갔다. 하지만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나선 심석희의 역주가 빛났다.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은 심석희는 마지막 코너를 돌면서 리젠러우(중국)를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위는 한국보다 1초 이상 늦게 들어온 캐나다(4분10초641)가 차지했다. 동메달은 4분14초014로 골인한 이탈리아가 받았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대회까지 이 종목에서 4연패를 이룬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4년 전 밴쿠버 대회에서 빼앗겼던 정상 자리도 되찾았다. 심석희 박승희 김아랑은 이날 3000m 계주에 앞서 열린 여자 1000m 예선에서도 나란히 준준결선에 올라 21일 열리는 결선에서 또 한 번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박세영과 이한빈도 남자 500m 예선을 통과해 21일 결선에서 첫 메달에 도전한다. 한편 이승훈(26·대한항공)은 19일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에서 13분11초68로 4위에 오르며 아깝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전 세계 피겨 팬이라면 눈에 새겨 두고 싶은 경기가 있다. 소치 겨울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는 ‘피겨 여왕’ 김연아(24)의 마지막 무대다. 김연아가 출전하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하이 디맨드(입장권 수요가 아주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나 경기) 이벤트다. 입장권은 매진된 지 오래고,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암표도 구하기가 어렵다. 소치 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취재 아이디카드를 발급받은 각 나라 취재진도 입장권이 있어야 경기장 입장이 가능하다. 러시아의 쌍둥이 변호사 크리스티나-이아니나 트로우치 자매(30)는 여왕의 마지막 무대를 함께할 방법을 찾아냈다. 김연아의 경기가 열리는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의 자원봉사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자매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국제관세법 관련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소치 올림픽 자원봉사자 모집공고가 뜨자 이들은 곧바로 지원서를 냈다. 조건은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일하겠다는 거였다. 회사에 휴가를 낸 뒤 지난달 27일부터 소치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쇼트프로그램이 열리기 하루 전인 18일 경기장에서 만난 자매는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데 대해 무척 들뜬 표정이었다. 언니 크리스티나 씨는 “김연아는 굉장히 우아한 선수다. 점프나 스핀을 하지 않고 그냥 빙판 위에 있는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동생 이아니나 씨도 “김연아는 수준이 다른 연기를 한다. 다른 선수와는 비교할 수 없다. ‘퀸(Queen)’ 연아를 눈앞에서 보는 것은 믿기 힘든 광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김연아와 러시아의 ‘신성’ 율리야 리프니츠카야 중 누구를 응원할까. 이아니나 씨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마음이 두 조각이 나 있는 것 같다. 올림픽 금메달이 한 개밖에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고 답했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제발∼ 석희 찡(대표팀 언니 오빠들이 심석희를 부르는 애칭), 귀여운 척 좀 하지 말아줘. 손발이 오글거린단 말이야.”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3000m 계주 경기가 열린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경기 전 전광판에는 ‘빙속 여제’ 이상화(24·서울시청)의 응원 모습이 떠올랐다. 옆에는 이상화의 선수촌 룸메이트이자 이날 경기에 출전한 박승희의 친언니인 박승주(24·단국대)가 자리했다. 6번째 올림픽인 이번 소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살아있는 전설’ 이규혁(36·서울시청)의 모습도 보였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2연패에 성공한 이상화는 이날 손수 플래카드를 만들어 와 뜨거운 응원을 펼쳤다. 플래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금메달 아니어도 괜찮아. 다치지만 말아줘. 이미 당신들은 최고. 달려라! 조해리 박승희 공상정 김아랑 심석희.’ 가볍게 몸을 풀며 껑충껑충 뛰고 있는 심석희는 이를 보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신다운(21·서울시청) 이호석(28·고양시청) 김윤재(24·성남시청) 등 함께 응원을 와 있던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타박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막내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애정이 담뿍 들어 있었다. 박승희는 경기 후 “언니들이 응원을 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심금을 울리는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와 너무 감동했다. 나뿐 아니라 우리 계주 선수들 모두가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15일 여자 1500m 경기 때는 자신의 경기를 앞둔 ‘피겨 여왕’ 김연아가 이상화와 나란히 응원을 하기도 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언젠가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에이스란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가녀린 두 어깨 위에는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이 무거운 짐처럼 얹혀 있었다. 15일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1500m에서 은메달을 따고 난 뒤 심석희(17·세화여고)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치 못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첫 올림픽 출전에서 값진 은메달을 땄지만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18일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막내이자 에이스인 그는 마지막 주자라는 또 하나의 짐을 져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심석희는 “언니들이 부담을 안 느끼도록, 아니 아예 느낄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을 많이 해 줬다”고 했다. 부담을 떨쳐 버린 그는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특히 마지막 2바퀴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후 보여준 혼신의 힘을 다한 역주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레이스 막판 교체 타이밍에서 박승희가 심석희의 등을 밀어줄 때 심석희는 잠시 균형을 잃으면서 중국에 역전을 허용했다. 이대로 끝인가 싶었다. 하지만 심석희는 포기하지 않고 무섭게 중국 선수를 추격했다. 그리고 반 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마지막 코너 때 아웃코스로 돌면서 리젠러우(중국)를 제쳐 대역전극을 마무리했다. 심석희를 밀어주던 상황에 대해 박승희는 “제가 마지막에 추월을 당해 막내에게 큰 부담을 준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경기가 끝나고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심석희는 “제 차례가 되자마자 앞으로 더 치고 나가려고 했다. ‘나갈 수 있다.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골인할 때까지 최대한 집중했다”고 말했다. 경기 후 중국의 실격이 선언되었기 때문에 만약 역전을 하지 못했어도 한국의 금메달이 확정되었겠지만 이날 심석희가 보여준 역주는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이었다.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심석희도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는 오른손을 흔들며 자축했다. 심석희는 “중국 선수를 앞서고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정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소름이 돋았다. 짜릿하다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잠시 기쁨을 표하던 심석희는 곧바로 많은 눈물을 얼음 위에 쏟았다. 그는 “그동안 다 함께 고생한 게 떠올랐다. 그래도 마지막에 함께 웃을 수 있어서 기쁜 마음에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해리도, 박승희도, 김아랑도 같은 말을 했다.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결선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실격을 당했던 박승희는 “이 자리에 없는 (김)민정 언니, (이)은별 언니도 함께 기뻐해줄 것 같다. 금메달을 빼앗겼던 언니들과 같이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쌤(선수들이 선생님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을 위해 꼭 금메달을 따자. 그리고 포상금이 나오면 쌤 팔을 완전히 고쳐 드리자.”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박승희(22·화성시청)와 김아랑(19·전주제일고), 그리고 박승희의 친동생인 남자 대표팀의 박세영(21·단국대) 등 3명은 소치 겨울올림픽에 오기 전 자기들끼리 모여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들이 말한 ‘쌤’은 2002년과 2003년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조남규 코치(29)다. 2012년 초 은퇴한 조 코치는 그해부터 경기 화성시 유앤아이센터 빙상장에서 이들을 가르쳐 왔다. 지도자로 변신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던 그해 5월 초. 조 코치는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팔을 크게 다쳤다.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해야 할 만큼 큰 부상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조 코치는 막막했다. 평생 함께했던 얼음판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조 코치를 일으킨 것은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 받은 아이들의 편지였다. ‘쌤이 열심히 치료 받으실 동안 전 더 열심히 운동하고 있을게요. 그러니깐 저희 염려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 또 집중하세요.’(김아랑) ‘쌤, 얼른 나으셔서 애들이랑 운동도 하시고 축구도 하셔야죠. 금방 오실 거라고 믿고 있을게요. 선수촌에 들어가지만 주말마다 나오니까 쌤 오실 때까지 애들 잘 데리고 있을게요.’(박승희) 그가 지도하던 아이들은 각자의 편지를 큰 종이 위에 붙여서 그에게 가져왔다. 자기들끼리 열심히 훈련하는 사진도 보여줬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바로 뛰어나가 아이들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했다. 한 달 후 퇴원한 그는 성치 않은 몸으로 곧바로 스케이트장으로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박승희는 조 코치가 사고를 당하기 직전인 2012년 봄에 국가대표가 됐고, 김아랑과 박세영은 그의 집중적인 지도를 받고 지난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대표가 된 이들은 태릉선수촌에 입소할 때면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의 지도를 받았지만 개인 훈련을 할 때면 조 코치가 함께했다. 그렇게 이들 3명은 나란히 소치 올림픽에 출전했다. 조 코치는 현재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많이 회복됐다. 하지만 스케이트 날을 갈 때 등 정밀한 작업을 할 때는 아직 어려움이 남아 있다. 박승희와 김아랑, 박세영은 조 코치의 심정을 잘 안다. 아이들은 아직 “선생님 팔을 저희가 완전히 고쳐드릴게요”라는 말을 조 코치에게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조 코치 역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안다. 박승희와 김아랑이 힘을 보태 이날 여자 3000m 계주에서 딴 금메달은 서로의 마음을 합친 결정체였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과 관련해 ‘파란색은 행운을 부른다’란 말이 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선수가 우승한다는 속설이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의 타라 리핀스키(미국)를 시작으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의 세라 휴스(미국), 2006년 토리노 대회의 아라카와 시즈카(일본)가 모두 푸른색 계열의 드레스를 입고 우승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24)도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정상에 올랐다. 당시 김연아를 도왔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캐나다)도 푸른색 넥타이를 맸다. 그렇지만 김연아는 이번 소치 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는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의상을 입는다. 그는 “밴쿠버 때 푸른색을 입은 건 징크스 같은 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미 한 번 했으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밴쿠버 대회 때 간절히 금메달을 원했던 김연아는 항상 손에 끼던 묵주반지의 색깔에도 신경을 썼다. 묵주반지를 한국에 놓고 온 김연아는 캐나다 현지에서 평소 끼던 금색 반지를 구입하려다 오서 코치의 조언에 따라 은색 반지를 샀다. 금메달을 연상케 하는 물건이 부정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소치 올림픽을 앞둔 김연아는 모든 것에 초연한 모습이다.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즐기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휴식일이었던 15일에는 이상화(25·서울시청), 박승희(22·화성시청) 등과 함께 쇼트트랙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했다. 쇼트프로그램 때는 노란빛이 감도는 ‘올리브 그린’ 색상 드레스를 입는다. 반면 밴쿠버 대회 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빨간색 드레스를 입었던 아사다 마오(24)는 이번 올림픽 프리 때는 푸른색 드레스를 입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사다에게는 또 하나의 징크스가 따라다닌다. 역대 여자 싱글에서는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주제곡으로 사용해 우승한 선수가 없다. 그런데 아사다는 밴쿠버 대회에 이어 이번 올림픽에서도 프리스케이팅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선율에 맞춰 연기를 한다. 아사다의 주무기는 트리플 악셀인데 역대로 트리플 악셀을 뛰어서 우승한 선수도 없다. 김연아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러시아의 신성 율리야 리프니츠카야(16)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로 변신한다. 당연히 빨간색 의상이다.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리프니츠카야가 직접 이 곡을 골랐다. 코치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며 반대했지만 리프니츠카야가 끝까지 고집을 부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고 한다. 한편 17일 열린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조 추첨에서 김연아는 3조 5번째에 해당하는 17번을 뽑으며 자신이 싫어하는 조 마지막 순서를 피했다. 김연아는 관계자를 통해 “조 추첨 결과가 나쁘진 않다”라고 전했다. 김연아와 함께 출전하는 박소연(17·신목고)은 1조 두 번째, 김해진(17·과천고)은 2조 다섯 번째를 각각 뽑았다. 아사다는 30번으로 마지막 조의 마지막 순서를 받았다. 리프니츠카야는 5조 첫 번째로 연기한다.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은 한국 시간으로 20일 오전 2시 24분에 시작할 예정이다.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