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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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4-04-07~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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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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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3%
  • 방배동 모자의 비극[횡설수설/이진구]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반지하에서 세를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어머니와 큰딸은 병으로 일을 할 수 없었고, 작은딸은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신용불량 상태였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카드 빚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모녀가 남긴 편지 봉투에는 “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안에는 7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선택을 하면서도 집주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미안해한 ‘선함’에 가슴 저미는 듯한 아픔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많이 나섰지만 여전히 많은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자발적으로 복지 사각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자식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장례까지 떠넘기는 게 미안해 나 홀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자식의 가난을 증명해야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걸 알고 스스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포기한 노인들도 있다. 한 노부부는 “재산 한 푼 물려준 것도 없고, 벌이도 적은 애에게 재산·소득 증명서를 떼 달라고 하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느냐”고 신청 포기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둘 중 하나만 남으면 오히려 자식들에게 짐이 될 거라며 어버이날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60대 부부도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여성이 숨진 지 약 반년 만에 발견됐다. 발달장애가 있는 30대 아들은 숨진 어머니 곁을 지키다 전기·가스 등이 끊기자 집을 나왔다고 한다. 노숙을 하던 아들은 몇 달 만에 자신을 돌봐준 사회복지사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알렸다. 숨진 여성은 얇은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있었는데 아들은 “파리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고 한다. ▷숨진 여성은 무려 100개월 치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고, 전기·가스 요금도 올봄부터 밀렸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런 내용을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올렸지만 해당 구청은 알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입력된 정보를 토대로 지자체에 취약가구를 통보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으면 제외하기 때문이다. 복지 시스템이 되레 사각을 만든 셈이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1인 가구, 고령화도 느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 커졌다.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혹시나 어느 집 가스, 수도를 끊을 때 누군가 한 번만이라도 ‘그런데 밥은 어떻게 먹고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어땠을까. 끊더라도 직접 만나 알려줬다면 거창한 이름을 가진 시스템도 필요 없었을 텐데…. 안 그래도 힘든 시기에 답답하고 안타까워 든 생각이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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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 운동 정권 손에 민주주의가 파괴될 줄이야…”[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민·주·화. 목이 터져라 외쳤던 그 이름을 30여 년이 지나 다시 외칠 줄 누가 알았을까. 다른 의견을 말하면 처벌하고(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 처벌법), 북한 인권을 위해 전단을 날리면 잡아가는(대북전단금지법) 세상. 자신들은 우상화(민주유공자 예우법)하고, 미운 놈은 출마도 막으려는(윤석열 출마금지법) 정권. 민경우 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55)은 9일 “민주화 운동 출신 정권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현 정권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주류인데 왜 비민주적인 모습이 많은 건가. “우리가 보통 아는 민주주의는 상대를 인정하는 거다. 그래야 대화든, 토론이든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학생 운동 시절 우리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고 배우지도 못했다. 상대는 그냥 적이고 타도의 대상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구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들어왔는데 쉽게 말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거짓 민주주의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더 완성된 형태의 진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조직을 만들고, 권력을 접수하고, 저항하는 자는 분쇄하라는 방법론까지 들어왔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정말 위험한 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주장과 행동을 민주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이 어떤 점에서 닮았다는 건가. “상대(윤석열 검찰총장)를 잡더라도 민주적 절차는 지켜야 하는데 지금 보는 대로 그런 게 없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은 형식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를 구분한다. 1980, 90년대 운동권에서 썼던 표현이다. 민주주의를 두 단계로 구분하면, 내용적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어떤 행동도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정당화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과거 운동권적 행태에 기반을 둔 권력욕으로 사회를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 윤 총장 찍어내기의 경우 수사권 없는 법무부가 수색을 지휘했고, 감찰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결과를 발표하고 징계를 청구했다. 감찰 시 의무규정이던 법무부 감찰위원회 자문은 임의규정으로 바꿨다. 이런 부당함에 대한 비판은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으로 몰고 있다. ―룰이 도움이 안 되면 바꾸거나 없애고, 없으면 만들고 있기는 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운동권 출신들에게는 넘어선 안 되는 선 같은 심리적 저지선이 없다. 선을 마구 넘나들며 운동했던 습관이 있어서…. 예를 들어 문과대 학생회장은 문과대 학생들의 총의로 뽑혀야 하지 않나.”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지 않았다. 지도부를 장악하기 위해 선거에 아주 깊숙이 개입했다. 누구를 밀고, 누구를 컷오프 시킬지 등등. 선거를 관리 감독하는 측조차 투표율이 낮아 우리 편이 질 것 같으면 전화를 해서 투표를 시켰다. 유권자 명부를 갖고 있으니 연락처는 물론이고 누가 투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아니까. 이런 일이 과거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 선거에서 무진장 벌어졌다. 우리 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룰도 우습게 여기는 사고방식과 행태들이 그때 집단적으로 만들어진 거다. 그런데 20대 학생 때도 아니고 이제 나이가 들어 국회의원 정도 되고 사회 지도층이 되면 자기의 과거 모습을 바꿔야 하는데 달라지지 않고 똑같다.” (금태섭 전 의원을 징계하고 재심 청구조차 안 받아줘 탈당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거다. 소속 지자체장이 물의를 빚어 생긴 재·보궐선거에는 후보를 안 내겠다고 당헌에 명기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한 태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정권이 이렇게 과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현 정권에서 굉장히 두드러진 모습인데… 학생운동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굉장히 과격해졌다. 생전 돌 한 번 안 던져본 친구들이 마치 민족과 정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막 나선다. 데모는 무섭다. 맞는 건 물론이고 잡히면 구속도 되니까. 그러다 보니 제대로 운동을 한 사람들은 데모를 할 때 이리저리 따져보고 신중하게 한다. 앞에서는 돌을 던져도 뒤로는 협상을 한다.” (시위 중에 협상을 한다고?) “학교 측과 경찰의 진입 수위도 논의하고, 단식 농성도 경찰과 적당한 선을 조율한다. 그런데 데모를 뒤나 안전한 곳에서 한 친구들은 쓸데없이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투쟁 수위가 정해져 있는데 그런 과격한 주장이 갑자기 세지면 수습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운동권 내부에 어떤 불문율이 있냐면… 쓸데없이 과격한 투쟁을 주장하는 애들은 눈여겨봤다가 배제한다. 그런 친구들은 아주 순수할 정도로 바보거나 아니면 프락치다.” (오히려 투쟁을 망치는?) “지금 정권은 과격한 행동을 통제·조율하는 기능이 마비됐다. 배제돼야 할 바보들이 집단화돼서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집단 전체가 과격해졌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댓글은 양념’이라며 부추겼고…. 제대로 운동을 안 한 친구들이 앞에 나서면 돈도 많이 깨진다.” (돈은 왜?) “시위가 과격해지면 많이 다치니까. 병원비와 변호사비가 많이 든다. 이래저래 도움이 안 된다.” ※ 문 대통령은 2017년 3월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후 경쟁 후보에 대한 ‘문파’들의 비방 댓글과 문자폭탄을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고 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던 젊음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그 뜨거운 맹세는 어디에 갔나. 민주투사들 손에 파괴되는 민주주의. 지금 입에 문 고깃덩어리 때문이라면… 너무 추하지 않은가. ―현 정권 실세라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은 학생운동을 세게 한 편인가. “평가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이 총학생회장을 한 1987∼89년은 이미 군사정권의 기가 꺾인 때였다. 92년 전국연합 할 때 그 친구들을 봤는데 당시는 김일성이 분단 50주년이 되는 1995년을 통일 원년으로 삼자고 해 운동권 모두가 총궐기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핵심을 차지하는 운동권 출신들은 적당한 지위까지만 하고 다들 이 그룹에서 빠져나갔다.” ※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은 민족민주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1990년대 한국 최대의 재야운동단체다. ―주사파 논란까지 있는데 빠져나갔다고? “1980, 90년대 학생운동은 거의 다 민족해방(NL)이라고 보면 되고, NL은 혁명이 목표였다. 당시 학생 운동 상층부는 김일성을 수령으로 하고 북한에 흡수 통일되길 바란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나도 그랬고.” (군사독재 정권의 조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주사파였으니까. 그런데 좀 온도 차이는 있다. 옛날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처럼 실제로 그런 사상을 신념화한 집단도 있지만 우리 정도는 대학생들의 겉멋으로 보면 된다.” (구별이 되나?) “쉽게 말해 법정 최후진술 때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보면 된다. 그 말에 따라 형량이 크게 차이가 나니까. 비전향 장기수들이 그런 사람들이지. 우리 정도는 그렇게 말 못 한다. 그리고 지금 일본과의 마찰도 NL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일본과의 마찰에 NL의 사상적 배경이 있다는 건가. “혹시 김일성의 ‘갓 끈 전술’을 들어본 적이 있나? 갓은 한쪽 끈만 끊어져도 떨어져 날아간다. NL은 일본을 미국과 한국을 엮는 고리로 보는데 일본을 끊으면 미국도 끊을 수 있다는 전술이다. 내가 2000년 통일운동을 할 때 실제로 그런 논리를 염두에 많이 뒀다. 일본 공격이 반일이 목표가 아니라 반미를 위한 우회 전략인 셈이다. 우리 국민의 반일 정서가 뿌리 깊다 보니 이용하기도 좋고. NL은 이런 걸 이용하는 데 아주 능하다. 그런데 지금 양국 간에 마찰을 빚는 사안 한두 건을 해결한다고 풀릴까?”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정 문제가 터졌을 때 집권세력에서 ‘친일 세력의 최후 공세’라고 했는데 연관이 있나.) “위안부 문제는 여성들의 인권 문제와 민족의 수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런데 NL은 철저하게 후자다. 그들이 피해 할머니들의 돌봄이 아니라 반일 감정을 증폭시키는 사회운동에 비중을 두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 그 운동의 상징인 윤미향을 공격하는 것은 뒤에 뭔가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좀 흐지부지된 것 같은데 검찰이 윤미향 사태를 더 파고들면 난리가 날 거다. 자금 흐름이 아주 불투명하니까….”민경우는…학생운동이 하고 싶어 서울대 의대를 자퇴하고 1984년 국사학과에 입학.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과 10년간 이적단체인 범민련 사무처장을 지냈다. 민족해방(NL)의 핵심 이론가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총 4년여간 복역했고,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운동을 했다. 2012년부터는 운동을 접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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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피스러운 장관들[횡설수설/이진구]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실력과 품격을 겸비한 여장부였지만 브로치 하나로 국가 정책의 의중을 담는 섬세함도 가졌다. 2000년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녀의 브로치를 통해 당신네 의중을 파악한다”고 했는데, 그날 그녀는 ‘악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뜻으로 세 마리 원숭이 브로치를 달았다. 러시아의 체첸 사태 부인을 꼬집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장관들이 국민의 자랑은 고사하고 창피함의 대상이 된다면 말이 될까. 2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회의 내내 인사말도 못 하고 발언권을 박탈당하는 초유의 수모를 겪었다. 성추행 피해자를 돌봐야 할 여가부 수장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놓고 “국민이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학습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해 상임위가 파행됐는데, 여야가 장관이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개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날 회의는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도, 장관의 설명도 없이 진행됐다. ▷같은 날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서울 중저가 지역으로 매수 심리 진정세가 주춤한 양상’이란 말도 비웃음을 샀다. 시장이 진정되고 있다는 뜻인지, 다시 끓어오른다는 건지 언뜻 이해하기 힘든 화법이기 때문이다. 집값은 잡고 싶은데 통계는 반대이다 보니 오죽하면 그런 말이 튀어나왔겠냐는 동정론까지 나왔다. 명색이 법무부 수장인데 법도 절차도 아랑곳없는 추미애 장관, 언제는 공급이 충분하다더니 이제는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도록 찍어내고 싶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지난달 ‘부동산 산업의 날’ 장관 표창을 안 받겠다고 했을까. ▷인터넷에는 이정옥 장관 외에도 국회 출석 때마다 국민의 화를 돋우는 다른 장관들도 묵언 조치해 달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장관의 국회 발언은 그 자체가 정책에 준할 정도로 중요하다. 주무 장관의 말은 기관과 정책의 신뢰성을 더하거나 훼손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들의 입을 막아 달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친다면 없는 게 더 낫다는 뜻일 것이다. ▷‘장관 발언 금지’는 사실 망신 주기에 가깝고, 국회의 품격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대통령 눈치만 보며 현실을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은 장관들 스스로가 초래한 면이 크다. 입을 열 때마다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칠까’ 걱정이 되고, 듣고 나면 딴 나라에 알려질까 창피하니 왜 부끄러움은 늘 국민의 몫인가.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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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당이 예타 면제법 먼저 발의… 대안은커녕 위기감도 부족해”[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올 6월 1일 국민의힘 김종인 지도부가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보수만 말하는 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다” “쇄신에 불만이 있어도 시비 걸지 말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로부터 6개월. 국민의힘 안팎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왜 그렇게밖에 못 하느냐”다. 박진호 김포갑 당협위원장(31·전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총선 패배 후 당을 안정시키는 데 더 주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당 원내대표실 부실장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11월 직을 걸고 인적 쇄신을 요구한 6인의 원외 당협위원장 중 한 명이다.》 ―다시 묻고 싶은데… 국민의힘이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말을 하는데… 총선 패배 이후 흔들리는 당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김종인 위원장이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고, 경제3법을 지지하는 등 기존의 당 입장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 지금 당무감사가 진행 중인데 나도 지금까지 받아본 것 중 가장 힘들게 치렀다. 결과가 나오면 아마 그동안 준비한 쇄신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김 위원장은 8월 19일 광주를 방문해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참여,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당내 일부 인사들의 망언에 대해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그러나 개인 차원이지 당 차원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김 위원장이 민주당에 있을 때는 이해찬 정청래 의원을 공천 탈락시키는 칼을 들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때와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과거에 수시로 발생하던 망언이나 실수가 줄기는 했지만 당 차원의 과감한 내부 개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쉬운 게, 야당의 힘은 결국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야당이 아무리 정부여당을 공격한들 힘이 붙을 리가 없지 않나. 청와대와 여당이 우리를 무시하는 것도 우리 뒤에 국민이 없다는 걸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실정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못 한 사과와 반성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지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사과와 자성에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당내에 있지 않나. “자성, 혁신 단어만 나오면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아군 등에 칼 꽂는다, 적 앞에서 우리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 왜 이제 와서 생뚱맞게 그러느냐 등등. 늘 나오는 말인데 거의 100% 먹힌다. 쇄신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분열로 선거에 졌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조금 외치다 만다. 올 총선만 해도 조국 사태 등 정부여당의 실정으로 야당 바람이 불 줄 알았다. 나도 그런 말을 하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분명히 있지만 그 민심이 우리를 지지하는 데까지는 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분명한 거고.” ―비대위가 혁신 차원에서 정강정책에 4선 연임 금지를 넣겠다고 초안을 발표했는데 당내 반발로 철회했다. “그랬다. 언론에서 잘해 보라고 사설까지 써주며 호평을 했는데…. 사실 3선이든 4선이든 지금 의원들은 모두 초선으로 간주해주는 안이었다. 그래서 다음 총선이 아니라 12년 후인 2032년부터 적용되는 거다. 그마저도 정강정책을 의결하는 상임전국위원회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반발이 심해서. 전부 그 이상 하고 싶은 거지.” (김 위원장은 왜 밀어붙이지 않은 건가.) “그런 게 좀 아쉽다. 국민 앞에서 초안 발표까지 했다면 좀 독단을 부려도 될 텐데….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지금 당 안에서 ‘위기감’을 보기 어렵다. 비대위가 아니라 평상시 최고위원회 같은….” (평상시 최고위원회?) “당 대표부터 각 위원이 쭉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던 거. 나름 고민하고 하는 말이겠지만 한가한 내용이 많다. 명색이 비대위고, 더욱이 9명 중에 3명이 30대 청년인데 당에 쓴소리는 별로 없다. 정치적 커리어 쌓기로 여기는 게 아닌지….”※ 지난 한 달간 비대위 모두발언에서 이들 30대 위원들이 한 말은 피트니스계 불법 약물, 보유세, 조두순, 스토킹방지법, 이건희 리더십 등 일반적인 사안들이다. 발언 내용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대위’ 상태라는 걸 생각하면 좀 한가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른 위원들도 마찬가지다. 한 비대위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섹스 스캔들 발언으로 두 달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혁신이 어렵다면 현실 대응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꼼꼼히 따지기는커녕 앞장서서 특별법을 냈다. “개별 의원들의 입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집권할 때 김해신공항으로 결정한 거다. 그걸 뒤집는다면 정책의 일관성은 어떻게 하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검증 과정도 온통 의혹투성이다. 그러면 진상조사위를 만들고 상임위를 열어 검증 과정을 짚고, 국정조사를 요구해야 하지 않나. 더 심하면 검찰 수사도 의뢰하고.” (그런 말이 안 나오나?) “안 나온다. 오히려 알다시피 당내 부산 의원들 전원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도 면제해주는 특별법을 여당보다도 먼저 발의했다. 여당 술수에 말린 건데, 이렇게 계속 말리면 내년 보궐선거 끝나고 5번째 비대위가 서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난해 정부가 24조 원 규모의 국책사업에 예타를 면제하자 자유한국당은 ‘총선을 겨냥한 매표행위’ ‘역사는 문재인 대통령을 국가 재정을 파탄시킨 주범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특별법을 발의한 의원들을 강하게 질책했다고는 하지만 법안을 철회시키지도 않고 있다. “애매하게 저쪽 술수에 말린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가덕도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그 열매를 우리가 먹을까? 민주당이 가져가지. 그리고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게… 선거 이슈가 성추행이 아니라 공항 건설로 바뀔 우려도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동안의 모든 우리의 잘못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서울 부산 보궐선거에 후보를 안 내는 건 어떨까 싶다.” (미쳤다고 펄쩍 뛸 것 같은데.) “그럴 거다. 그런데 넓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20대 총선 막장 공천, 탄핵, 이후에 벌어진 숱한 망언,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 등등 지난 4년간 우리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공식적으로 사과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워낙 오랫동안 안 하다 보니 이제는 사과하자고 하면 ‘왜 이제 와 뜬금없이?’ ‘문재인은 더 잘못하고 있다’ ‘여당에 공격의 빌미를 준다’고 한다. 우리가 덮으면 뭐 하나? 국민이 기억하는데. 사과도 말로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국민이 볼 때 정말 참회했다는 각인이 들 정도로 어려운 행동을 해야지. 그동안의 모든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지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후보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을까.” ―그 정도 생각을 받아들일 정도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서울 부산 지면 대선도 없다고 하는데, 보궐선거만 이기면 대선까지 바로 이길 것처럼 여기는 건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이 보기에 국민의힘이 크게 변했다, 드디어 정신 차렸구나 하는 행동을 해야지. 저쪽은 당헌까지 바꿔 가며 아득바득 시장 자리를 탐하는 정당. 우리는 그동안 저지른 많은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선거 포기라는 쓴 약을 마다하지 않는 정당. 그렇게 크게 반성하고 변해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당하게 이기는 게 낫지 않을까. 불과 1년 차이인데…. 그리고 솔직히, 달라진 것 없이 반사이익으로 정권을 잡아도 걱정이다.” ―도로 새누리당이 될까 봐 그런가. “지금 우리 당도 그렇고 보수 지지층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잘해 점수 따서가 아니라 오직 반사이익으로만 집권을 하면,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정권의 비리를 파헤칠 거고, 잘못한 건 전부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릴 거다.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를 더 매도할 거고. 지금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상황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거고…. 그러고 나면 저쪽도 다시 이를 물겠지. 그리고 또 반사이익으로 정권이 바뀌면 10년, 15년 앞으로 내내 복수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리가 변해서, 차악이 아니라 최선이라 선택받는다면 극렬 지지층에 끌려다니지도 않을 테고, 굳이 상대를 매도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당했다고 문 대통령도 감방에 넣어야 하나? 그다음은? 현 정권의 폭정이 도를 넘고 있는데 그다음에 들어선 집권세력이 하나도 안 변한 도로 새누리당이라면 너무하지 않나.”동네 공항 놔준다니 감시는 고사하고 앞장서 예타 면제 특별법을 발의해준 제1야당 의원들. 얼마나 오래하고 싶기에 국민에게 천명한 4선 연임 금지 혁신안도 무산시키나. 혁신은 고사하고 이해관계에는 여당 못지않은 사람들.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만났는데, 쓰레기차에 다시 치이면 억울해서 어찌 살까. 국민의 짐을 덜어주진 못할망정 근심만 끼치니… 국민의 짐이 너무 무겁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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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두순 치료 효과 의문… 법무부, 할 일은 안하고 윤석열만 조져”[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다음 달 13일 출소하는 조두순(68)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법무부는 조두순이 150시간의 집중심리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지만 치료 전후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올 5월부터 시작한 6개월 단기인 데다 구체적인 내용도 공개하지 않아 급조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신의진 교수는 “성인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치료는 나조차도 포기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고 말했다.》 ―치료가 어려운 이유가 뭔가. “2006년 경기 안양교도소에서 두 번 이상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정밀 조사한 적이 있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어 이를 성인으로 확대해 보려는 취지였다. 그런데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으니까.” (어떤 벽에….) “인지행동치료를 하려면 가장 먼저 환자가 질문을 이해하고 자기 상태를 최대한 정확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그게 치료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모양 맞추기 같은 비언어성(동작성) 아이큐는 거의 정상인데 언어성 아이큐는 70점이 안 됐다. 질문을 잘 이해하지도, 설명도 못하는 거다.” ―자기 상태를 설명하지 못하면 치료 방향과 방법을 어떻게 잡나. “그러니까, 성범죄자들은 굉장히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다. 소아성애자도 있고, 다른 범죄를 저지르면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범행에 이르는 과정도 성에 대한 통념이 잘못돼서인지, 충동억제가 안 돼서인지 다 다르다. 더욱이 성 변태처럼 요상한 요인들이 있는 경우에는 치료가 더 어렵다. 이런 걸 아주 정밀하게 체크해야 제대로 된 치료 방향과 방법이 나오는데 말이 안 되니…. 치료를 해도 얼마나 나아진 건지 전후 비교도 안 되고. 그래서 우리끼리 언어치료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신 교수팀이 조사한 아동성범죄자들의 평균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조두순은 초졸이다.―그런 사실을 2006년에야 알았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그런 연구를 한 게 우리가 처음이었으니까. 지금도 국내에 성범죄자 치료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다. 당시에는 더더욱. 2000년 성범죄 사건 때문에 국회에 갔는데 모 국회의원이 ‘신성한 국회에서 감히 성폭력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느냐’고 소리 칠 정도로 인식도 낮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중에서도 이 분야를 연구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개업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그래서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관련 연구도 지원하고 이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생각이 없다.” ―당신이 한 연구는 이후 어떻게 됐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의뢰로 한 건데… 사장됐다. 그 연구는 이후에 없어진 것 같다. 14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면 지금쯤은 괜찮은 대책이 나올 수 있었을 거다. 관련 연구도 적은데 그나마도 활용을 안 하니…. 깜깜이 정책이 그래서 나오는 거 아닌가. 캐나다가 이런 분야의 연구가 잘돼 있는데….” (캐나다에 성범죄가 많나?) “그건 아니고 성범죄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나 심리학자들이 이 분야 연구를 많이 하도록 펀드가 발달돼 있다. 이런 게 진짜 공공의료다. 이런 현실에서 조두순에 대한 특별집중치료 프로그램이 있다고? 솔직히 나는 믿지 않는다. 조두순이 어떤 상태인지 기초조사조차 제대로 안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출소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설마…. “법무부가 공개를 안 하니 누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치료를 하려면 심리학자가 많이 필요한데 대부분 여자들이다.” (여자가 하면 안 되나.) “가해자가 남자니까. 성적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데 여성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성범죄자들이 여자 치료사에게는 다 털어놓고 말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우리도 남자 치료사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 애를 많이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료가 효과가 있으려면 본인 의지가 강해야 한다. 조두순이 그럴까?” ―법무부는 이 목차 외에는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중요한 건 치료의 질이다. 여기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항목이 있는데… 우리는 성폭행으로 인한 유산 장면을 보여줄 때 의사들이 아이를 가위로 자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러면 청소년 성범죄자들은 울면서 괴로워한다. 자신들의 행위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 몰랐던 거지. 그냥 성범죄 피해자가 나온 영화 하나 보여주고 ‘죄송합니다’ 말 한마디 듣고 넘어가면 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치료가 아니다. 그냥 성교육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고리를 끊는 것인데… 이 고리를 찾았는지도 의문이다.” (고리가 뭔가.) “어떻게 해서 성범죄까지 이르게 됐는지 그 지점을 찾는 것이다. 범죄자마다 다른데 외로울 때마다 술을 마시다가 성범죄에 이르렀다면 술이 고리다. 술 대신 다른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마시는 시간을 조절해서 성범죄로 진행하지 않도록 하는 거다. 성범죄자를 치료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근본적인 노력은 아무것도 안 했다.” ―추미애 장관은 방지책을 세우겠다는데…. “폐쇄회로(CC)TV만 늘리는 게 무슨 대책인가. 사건이 벌어진 게 12년 전이다. 조두순처럼 인지능력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져 분석 자체가 안 되는 성범죄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미 대책이 나와 있어야 했다. 연구가 부족하다면 예산을 투입해 했어야 하고, 인력이 없다면 키웠어야 했다. 법무부가 성범죄 대응 주무부처 아닌가. 만약 제대로 검사했다면 조두순은 심리치료가 안 먹히기 때문에 성충동억제 약물을 써야 하는 걸로 나올지도 모른다. 할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윤석열(검찰총장)만 조지고 있으니….” ―법무부가 조두순 출소 이후를 대비해 조언을 구한 적이 있나. 당신만큼 피해자 상황을 잘 아는 사람도 없는데…. “없다.” (응?) “나뿐만 아니라 피해자 아버지에게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안산시장도 희한한 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두순 격리법 만들어 달라고 국민청원을 넣을 정도면 피해자 가족에게 괜찮은지,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는 게 상식 아닌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피해자 가족이 속상해하는 게 그런 거다. 대책이랍시고 만든 것에 피해자 의견은 빠져 있다고.” (조두순 대책을 세운다면서 피해자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우리 행정이 그렇다. 10여년 전 배변 주머니 때문에 아이가 재수술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수술이 비보험이라 굉장히 비싸 피해자 가족이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지원하게 해달라고 여성가족부에 부탁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 보통 의료비로 300만 원을 지원하는데 특별한 경우에 이사회가 승인하면 더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담당 국장이 한사코 안 된다는 거다. 말도 못하게 싸웠다. 하다하다 안 돼서 정부와 실랑이하는 사이에 애가 죽을 것 같아서 국민모금으로 수술비를 마련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났는데 이사 비용을 또 국민모금으로 했으니….”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에 피해자 주거 지원이 명기돼 있지 않나. 왜 그걸 활용하지 않고…. “피해자 가족이 불안에 떤다고 그렇게 보도가 되고, 숱한 사람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뭔가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석 달이 채 안 남았는데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거다. 행정 절차를 밟으면 과거 수술비 때처럼 속만 터지다가 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로 또 정부와 싸우는 걸 아이가 알면 어떤 심정이겠나. 그래서 나중에 절차를 밟더라도 일단 먼저 이사부터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9월 말부터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를 통해 국민모금을 시작했다. 계속 전셋값이 오르는 것도 걱정이 되고…. 다행히 국민들이 도와줘서 며칠 전 모 경찰서 근처 보안이 잘된 아파트를 가계약할 수 있었다. 근데 한 달 전보다 1억5000만 원이나 올랐더라.” (부동산 정책 탓인가.) “그런 것 같다.”※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은 상담, 의료 제공, 취업 관련 지원, 주거지원 및 보호시설의 설치·운영 등에 기금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수술 직후 아이는 배변 주머니를 찬 채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그런 아이를 부르고 카메라 조작법도 몰라 네 번이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반복 진술하게 한 검찰. 오죽하면 법원이 국가가 13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을까. 한사코 수술비 지원은 안 된다고 한 여성가족부. 12년간 관심도 없다가 이제와 CCTV와 보호관찰 강화로 넘어가려는 법무부. 그사이 피해자 가족은 국민의 온정으로 수술비와 이사 비용을 마련했다. 나라가 안 도와줘 국민이 나서다니…. 관군(官軍)은 어디가고, 의병(義兵)만 나부끼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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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운동 보상? 나 좋아 한 건데… 줘도 안 받습니다”[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국가에 헌신한 분들에게 뭘 해준들 아까울까마는 그걸 스스로 달라 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셀프·중복 수혜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미 2000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 제정으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았는데, 추가로 취업 교육 대출 등의 혜택도 주자는 게 골자이기 때문이다. 발의자 중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사기, 횡령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윤미향 의원도 끼어 있다.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75)은 “민주화운동의 변방에 있던 사람들이 콤플렉스 때문에 자꾸 자신들을 포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현 집권세력이 가장 내세우는게 민주화운동인데 콤플렉스라니요. “제대로 투쟁한 사람들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지요. 하지만 변방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굉장한 민주화운동가로 보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요. 그래서 상대는 과도하게 독재세력으로 몰고, 자신은 투사로 포장하는 거지요. 사실 징역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문 받고 두들겨 맞는 게 힘들지. 포대 자루에 씌워져 맞아본 적 있습니까?” (그냥 맞는 것과 다릅니까?) “보고 때리면 고문자들도 사람이라 엉덩이나 가슴 같은 데를 때리게 됩니다. 그런데 포대 안에 집어넣으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잖아요. 이빨을 부러뜨렸는지, 눈이 터졌는지… 더 잔혹해지는 거죠.” ―“오래전부터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국민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만….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대접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지 않습니까. 소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나니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등 자신들이 비판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고, 또 보상도 많이 받았기 때문이지요. 돈만 보상이 아닙니다. 민주화운동 경력 때문에 국회의원 장관 심지어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국민 입장에서는 ‘예전에 고생한 거 인정하지만 이제는 다 보상받은 거 아니냐, 빚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좋게 말하면 상쇄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민주화운동 경력을 팔아먹은 거죠.” ※그는 올 4월 21대 총선에서 재산이 4억1964만9000원이라고 신고했다. 25평 아파트에 살고, 이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역모기지)에 가입해 월 95만 원을 받고 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보상을 거절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한 덕에 국회의원 3번에 도지사까지 했는데 뭘 더 보상을 타먹느냐”고 했더군요. “그 사람 말이 맞습니다. 김 전 지사도 민주화운동 보상 신청을 안 했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화운동 한 덕분에 얼마나 많은 득을 봤습니까.” (선생님은 별로 드신 게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내가 그 경력이 아니라면 이 사무실(신문명정책연구원)을 어떻게 유지하겠습니까. 말난 김에…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바라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독재에 저항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도 그때 대학생이 아니고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면 아무리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잘못해도 데모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는 대학이라는 해방공간 안에 있었고, 또 함께할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죠. 우리는 정치의식이 높았고, 안 한 사람들은 낮아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만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 게 아니지요. 모든 분야에서, 모든 국민이 함께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보상을 스스로 요구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운동권 출신들이 제 식구만 챙기면 안 된다고 지적하셨습니다만…. “김대중 정부 시절 서울대 교수 출신인 교육부 장관이 80년대 해직교수 60여 명을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선정해 80억 원을 나눠줬습니다. 이 사람들 중 광주와 관련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미 대부분 김영삼 정부 때 복직돼 해직 기간에 못 받은 월급도 전부 돌려받았지요. 그러고 나서도 민주화운동 출신이라고 국회의원, 장관, 대학 총장, 공공기관 이사장 등을 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정말 나쁜 사람들 아닙니까?” (2001년에 그 문제를 직접 지적했는데 큰 반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어서… 문제가 있어도 말을 잘 못 합니다.” ―민주화운동 보상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석을 달리해 무죄 판결을 받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재심 법정을 열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무죄라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 건 역사가 평가하는 겁니다. 그리고 군사독재에 부역한 판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민주화 후에는 민주화세력에 붙더군요. 민주화운동을 유죄라고 했던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니 이제는 민주화운동을 굉장히 위하는 것처럼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고 싶겠습니까.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밝혀야 할 사건들이 있습니다. 억지로 간첩으로 몰렸다거나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는 것 등이죠. 나는 당당하게 민주화운동을 했고 불의한 집단에 의해 유죄를 받았으니 그게 내 명예인데, 그걸 무죄라고 하면 내 명예는 어디로 간 겁니까.”※그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 때도 지역구 공천과 장관직 제의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비례대표 최상위 순번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선생님은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바쳤는데 지금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그 생각을 하면 자괴감이… 어쩌다 이렇게 완전히 거꾸로 된 세상이 됐는지…. 문재인 정권이 군사독재정권에서 파생된 정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을 팔아서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내가 절대로 가만 둘 수가 없습니다.” (이 정부 하는 걸 보면 그러다 다시 감방에 가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영광이지요.” ―오랜 세월 힘들었던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내가 고등학교 교사를 했는데… 나 면회 다니느라 그만둔 뒤에는 집집마다 다니며 아이들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하며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미안하지요. 집사람이 ‘당신은 돈을 안 벌어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돈 벌 생각 자체가 없는 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실례입니다만 보상 금액이 어느 정도나….) “정확히 환산해본 적은 없지만 나보다 훨씬 적게 복역한 사람이 10억 원 정도 받았으니까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고엽제 피해 보상도 신청을 안 해서… 이래저래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하지요.” ―월남전 고엽제 피해를 말하시는 건가요. “67년 입대한 그해 여름 월남전에 차출됐지요. 입대 전에 월남전 파병 반대 데모를 했으니 좀 의아할 겁니다. 주변에서 가지 말라고 엄청나게 말렸죠. 개죽음이라고.” (안 갈 수도 있었습니까?) “그 시절에는 한 3만 원 정도 쓰면 안 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빠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파병 반대 데모까지 하신 분이 왜….) “제가 좀 별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반대했지만 일단 국가정책으로 결정됐으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죽기야 하겠냐는 생각도 있었고. 여섯, 일곱 살 때 6·25전쟁을 겪었는데 그때 주변에서 군대 안 가려고 숨고, ‘빽’ 쓰는 걸 하도 봐서… 난 크면 저러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고엽제 피해 보상 신청은 왜 안 하신 겁니까.) “처음에는 고엽제인지 모르고 옻이 오른 줄 알았지요. 나중에 알았는데… 유전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때 중학생인 아이가 저처럼 가려움증이 있었는데 고엽제 때문이라고 알면 너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지난 총선 때 딸이 지원 유세를 했는데… 듣다보니 아비로서 해준 게 없는데 많이 미안하더군요.” 그의 둘째딸 보원 씨는 당시 유세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 아버지 장기표는 오랜 시간 감옥 도망 고문을 당하고서도 10억 원대의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런 보상금은 우리 같은 일반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민주화운동의 진정성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제 아버지 장기표는 서울대 법대 시절, 남들은 기피하는 병역을 스스로 다 했습니다. 운동권 시절부터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주사파를 질타했습니다. 쉽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변화의 기미가 안 보이는 정당이라는 이유로 마다했고,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공공기관 이사장 자리도 고사하셨습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공공기관이 꼭 필요할 곳에 쓰여야 할 세금을 축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보고 있나 민주당.장기표는…자타가 공인하는 민주화운동의 대부.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5번 수감돼 10년 가까이 복역했고,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등에 연루돼 12년의 수배생활을 보냈다. ‘영원한 재야’로도 불린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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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북 낙인에 조카는 학교도 못 가는데, ‘민폐 가족’이라니…”[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유가족이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서야 할 우리 정부는 미온적이고, 답답한 유가족은 외신기자회견을 열어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을 호소하고 직접 유엔 서울인권사무소에 조사를 요청했다. 피살 한 달이 다 되도록 우리 정부 어떤 곳도 유가족들에게 관련 상황을 설명해 준 적이 없다고 한다. 그사이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유가족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이 사건을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명시한 보고서를 23일 유엔 총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피살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54·사업)는 “내 나라가 아니라 외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한 번도 상황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게 사실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군이나 해경에서 진행 상황이나 관련 내용을 알려준 적이 없다. 뉴스를 통해 듣는 게 전부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23일 뉴스에서 동생의 피살 소식을 듣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통일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등에 전화를 했다. 다들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 근데 아직까지 안 오고 있다.” (꼭 브리핑이 아니더라도 유족들과 연락할 일이 많을 텐데 라인이 없다는 건가.) “없다. 내가 유가족 대표인데…. 반면에 유엔 서울인권사무소는 일주일 새 두 번이나 관련 내용을 조사했다.” ―어떤 내용을 묻던가. “유가족이 보는 사망 경위, 해경에서 어떻게 조사하고 있는지, 실종 수색 과정, 정부가 유가족들에게 어떻게 상황 설명을 하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유엔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하게 이 사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자료를 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9월 26일 미국의소리(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 사건의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샴다시니 대변인도 남북이 협조해 즉각적이고 공정하며 효과적인 수사에 착수하고 결과를 공개하라고 했다. 킨타나 보고관도 한국 정부가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불법적인 살해를 초래한 북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고….” (어디서 받은 자료인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 협조를 부탁하려고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함께 찾아갔더니 줬다. 따로 유엔에서 보고를 받는 것 같았다.” ―동생이 원양어선 선장이었다고 하던데…. “동생과 나는 전남 완도수산고 어업과(현 어선운항관리과)를 나왔다. 동생은 졸업 후 뉴질랜드 근해에서 호키(hoki)라는 남태평양 명태와 오징어를 잡는 원양어선을 탔는데 1등 항해사로 있다가 마지막에는 선장을 하고 그만뒀다. 한번 나가면 보통 2년 정도 있으니까 힘들지…. 나도 배를 탔는데 선장 제의를 받았지만 배 타기 싫어서 그만두고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학교 출신들은 해양경찰이나 해상직 공무원에 경력특채로 많이 뽑힌다. 동생이 늦깎이로 40세에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선장까지 한 사람이 30여 km를 헤엄쳐 가려 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간다. “망망대해에서 빠져본 적 있나?” (있을 리가 있나.) “바다에 빠져 오래 있으면 해풍 때문에 가장 먼저 입술이 마르고, 바닷물을 먹게 돼 갈증이 극심해진다. 낮에는 수면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어 거리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손발이 부르트고 몸에서는 기름기가 다 빠져나가고, 오한과 두통도 온다. 그런데 아무 장비도 없이, 하다 못해 물도 준비하지 않고 달랑 구명조끼 하나에 뭔지 모를 부유물만 붙잡고 뛰어들었다고? 월북을 작정했다면 최소한 오리발이나 물안경, 비상식량, 물 같은 걸 준비하는 게 상식이지 않나. 실종 지점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곳이 수두룩한데 선장까지 한 사람이 조류가 반대인 것도 상관하지 않고 뛰어들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바다에서 30여 km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감이 오나?” (어느 정도인가.) “아시아의 물개라는 조오련이 대한해협 48km 건너는데 음식도 먹고 쉬기도 하면서 13시간이 걸렸다. 먹지도 쉬지도 않고 ‘쌩’으로 헤엄쳐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1980년 8월 11일 0시 5분 부산 다대포를 출발한 조오련(당시 30세)이 대마도 소자키 등대에 도착하는 데 13시간16분10초가 걸렸다. 그는 체온 저하를 막기 위해 배가 나올 정도로 사전에 지방을 키우고, 횡단 중 1∼2시간마다 영양죽을 먹었다. 비타민 소화제 커피도 수시로 먹었다고 한다.국민이 피살됐는데 억울함을 서구 열강에 호소해야 하는 나라. 헤이그 밀사를 보낸 고종은 힘이 없어 그랬다 쳐도, 지금 이 나라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빠 잃은 아들에게 “나도 마음이 아프다”는 대통령.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월북자로 몰면서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해경은 인위적 노력 없이 발견 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하는데…. “동생이 바다를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건데…. 앞서 말한 대로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 장비도 없이 바다에 뛰어든다는 게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진짜 월북하고 싶었다면 중국 단둥이나 강폭이 뛰어서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두만강 부근이면 쉬운데…. 강화도 주변에도 더 가까운 곳이 널렸고…. 죽을 각오를 하지 않아도 쉬운 방법이 수두룩한데 왜 굳이 30여 km를 헤엄치는 방법을 택하나. 그것도 자기를 증명할 공무원증도, 주민등록증도 다 두고…. 군과 해경은 구명조끼 착용을 보니 미리부터 준비한 거라고 하는데 배 타는 사람이 구명조끼 입은 게 특별한 일인가.” (한강 오리배도 구명조끼 안 입으면 못 탄다.) “기승전은 없고 결론만 있다. 23일 뉴스로 동생의 피살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해경에서 두 번 전화가 왔다. 동생이 평소에 북한을 동경했냐고, 북한에 대해 얘기한 게 있냐고 묻더라.” (그게 방금 동생을 잃은 형에게 할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기가 막힌 게… 내가 21일 오후 동생의 실종 소식을 듣고 다음 날부터 수색에 참여했다. 군 발표대로라면 동생은 22일 오후 3시반경 북한 어선에 발견됐고 같은 날 밤 9시 40분경 사살됐다. 동생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걸 알면서 내가 수색하도록 방치한 거다. 말이 되나? 저쪽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엉뚱한 곳을 수색하도록 내버려두다니.”―동생의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나. “좀 전(13일 오전)에 등기우편으로 왔다. 그런데 작성 날짜가 10월 8일이다.” (당신이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한 게 8일 오후 아닌가?) “오후 3시쯤이었는데… 그래서 시간상 정말 대통령이 편지를 읽어 보기는 했는지, 작성된 답신은 봤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조카 편지와 함께 동생의 장인이 보낸 편지도 함께 전달했는데 답신에 장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니까. 만약 봤다면… 서두에 아버님, 아드님께라고 쓰는 게 보통 아닐까. 그래서 받은 그날 담당공무원이 바로 작성하고 공휴일과 주말은 우체국이 업무를 안 보니까 월요일인 12일 등기로 보낸 게 아닌가 싶다. 의전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와서 위로의 말을 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집배원에게 등기로 전달시키는 건 아닌 것 같다.”※인터뷰는 13일 이 씨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대통령 답신은 14일 공개됐다. 문 대통령의 답신은 ‘아드님께’로만 돼 있고 장인은 언급되지 않았다. ―악성 문자나 댓글 비난이 심하다고 하던데…. “대통령 답신을 내 사무실 주소로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제수씨와 아이들이 사는 곳이 노출되면 안 돼서 내가 받아 보내줬다. 악성 메시지는 정말 엄청나게 온다.” (대깨문 문빠 이런 쪽인가. 뭐라고 하나.) “그런 것 같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만나는 걸 보니 벌써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월북이 자랑이냐, 돈 때문에 동생을 판다, 민폐 가족이다 뭐 그런 거…. 동생은 1남1녀를 뒀는데 정부가 월북 낙인을 찍는 바람에 고등학생인 조카(아들)는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있다. 친구들이 다 알 테니까…. 날이면 날마다 뉴스가 나오는데 모를 수가 없지 않나.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담임선생님 정도만 알고 있다. 친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고…. 아이는 아빠가 해외 간 줄 안다.” ―부모님이 상심이 크실 것 같다. “아버지는 20여 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께는 아직 알리지 않고 있다. 치매 증상이 있으셔서….” (뉴스가 그렇게 많이 났는데 아직 모르시나?) “드라마 정도 외에는 뉴스를 못 보게 하고 있다. 휴대전화도 안 갖고 계시기 때문에 아직은 모르신다. 언제까지 감출 수는 없겠지만 아직은 알리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이번 추석 때는 가족들이 안 모였나.) “우리가 5남 2녀인데 내가 장남이자 첫째고 동생은 넷째다. 전에는 모였는데 올해는 코로나도 있고, 이번 일도 있어서 모이지 말자고 했다. 30여 년 전인 1986년에도 사촌 누나가 완도에서 우리 군 경계병 실수로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때도 가족들의 트라우마가 엄청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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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로 간 내 아들,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 미안해”[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2018년 11월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최현진 일병(당시 22세·고려대 영문과 휴학)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대 내 괴롭힘 의혹이 일었지만 군 검찰은 석 달이 지나도록 기소하지 않았고, 견디다 못한 최 일병의 어머니 송수현 씨(52)가 고소장을 낸 뒤에야 간부 2명을 협박과 직권남용으로 기소했다. 질질 끈 기소와 달리 재판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기소 두 달여 만에 열린 지난해 7월 1심에서 군 법원은 한 명에겐 벌금 200만 원, 다른 한 명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올 4월 항소심에서는 협박 혐의는 빠진 채 1심이 유지됐다. 비슷한 시기, 검찰은 8개월이나 수사를 미루던 한 권력자 아들의 황제휴가 의혹에 대해 한 달 만에 수사를 종결하고 무혐의 처분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어찌 이리 큰 건가.》 …여러분도 추미애가 될 수 있답니다. 군부대에 강하게 항의하고 부모가 난리치면 현재 있는 군부대에서 옮겨주기도 하고 어느 정도 내 자식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아들을 떠나보낸 후에 알게 됐습니다….(9월 6일 송 씨가 인터넷에 올린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 미안해’ 일부)―지난달 초 인터넷에 올린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지금 사는 집(경기 이천시) 근처에 버스터미널이 있어 군인들이 많이 지나다녀요. 그 애들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나서 힘들면서도, 한편으로 저 아이들 중에도 내 아이처럼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억울함에 대한 하소연도 있지만 아들이 복무 중인 모든 어머니가 저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렸어요. 글을 올린 사이트에 40, 50대 어머니 회원이 많거든요. 혹시라도 아들이 힘들다고 하면 저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 말고 꼭 자세히 물으라고. 저는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죽지 못해 살고 있으니까요. 너무 순진했어요.” ―순진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요. “부모가 나서지 않아도 별일 없을 줄 알았어요.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아들이 죽고 나서야… 부모가 부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난리치면 근무지를 옮겨주기도 하고, 관심 있게 살펴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장례식장에 온 분들이 얘기 해줬어요. 자기도 군 복무 중인 아들이 힘들다고 하기에 ‘힘들더라도 참아야지’ 했더니 아들이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치며 하소연을 했대요. 그래서 그 뒤에 부대에 쫓아가 난리를 쳐서 부대를 옮겨줬다고…. 나도 그랬다면 내 아들이 안….” ―많이 힘들다고 하던가요. “한번은 갑자기 휴가가 잘리게 됐다고 부대에 전화 한 통 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엄마니까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런데 무심하게 이제 일병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부모가 그런 것까지 나서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애가 ‘내가 하면 씨도 안 먹힌다’고 하더군요. 그때 얼마나 힘들어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어요.” ―추 장관 아들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여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추 장관 때문에 우리 아들이 그렇게 된 건 아니지요. 하지만 권력기관이 어떻게 그렇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지 견딜 수 없었어요. 해당 부대는 물론이고 공군본부, 국방부까지 너무 무성의했으니까요. 초기에 변호사가 군 쪽에서 기소는 생각도 안 하고 견책 정도로 끝내려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대로 묻히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고, 별도로 고소를 했지요. 안 했다면… 군 검찰이 기소도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정말 문제가 없다면 우리가 고소했어도 기소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결과는 벌금 200만 원이 고작이었어요. 그래서 혹시나 어떤 정의감 있는 국회의원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해서 6월부터 1인 시위를 했지요.”※군은 수사 결과에서 “소속 간부들의 지속적인 질책과 언어폭력, 잦은 야근 강요 등의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소에는 소극적이었는데 유족 변호를 맡은 군 법무관 출신 김정민 변호사에 따르면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군 검찰이 적극적으로 기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흐지부지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유족이 고소하면 처리 결과를 답해 줘야 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는 기소 확률이 높다고 한다. ―정의감 있는 의원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어느 날(7월 27일) 오후 7시쯤인가…, 차 한 대가 나가는데 창문이 열리더니 누가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추미애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 미안해’란 글귀를 새긴 반팔을 입고 있었거든요. 제가 인터넷에 주문해서 만들었는데… 추 장관을 개인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건 아니었어요. 단지 제가 추 장관처럼 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아들에게 그런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에 한 건데… 정작 추 장관을 보니까 순간 겁도 나면서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당시 추 장관 아들 문제로 국회가 시끄러웠는데 어머니가 입은 옷을 보고도 알은체했다는 건가요.) “별다른 말은 안 했는데…. 그날 집에 와서 저녁 뉴스를 보다가 소름이 끼쳤어요. 그날 추 장관이 국회에서 ‘소설 쓰시네’라고 했더라고요. 의원들 앞에서 그 말을 하고 나가다가 저를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한 거죠. 지금도 왜 굳이 창문을 열고 말을 건넸는지 모르겠어요.”※추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했다. ―죄송한데, 그 정도의 일을 겪으면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하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아는 높은 사람이 없어서…. 저는 전화로 보험 상담 일을 했어요. 남편은 자영업자고…. 변호사도 처음에는 제 동생 친구의 딸이 아는 사람을 통해 구했으니까요. 그런데 정당하게 받아야 할 기록조차 ‘빽’이 없는 사람은 못 받는 건가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군 검사에게 수사 기록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부대 방침상 안 된다고 하더군요. 받을 수 있는 자료라는 걸 알고 요구한 건데…. 한 달을 싸워서 간신히 받기는 했지요. 결국 줄 거면서 왜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는지…. 그걸로 싸우다 공황장애까지 왔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려운데 요즘은 추 장관 때문에 더 먹고 있어요. 볼수록 내 아들과 비교되고 억울해서….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전까지는 장례를 치를 수 없을 것 같아요.” (2년 가까이 되지 않았습니까.) “장례식은 치렀지만 아직 시신은 국군수도병원에 있어요. 화장을 못 하고 있죠. 원통함을 풀어줘야 아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것 같아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왜요, 알아봤지요. 거기가 대통령 직속 기구인데…. 그런데 우리 아들에게는 소용이 없었어요. 1948년부터 2018년 8월까지 발생한 군 의문사가 대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아들 일은 그 후에 벌어졌으니까요.” (군에서 알려준 건가요.) “군에서는 그런 기구가 있다는 걸 알려주지도 않아요. 장례식장에 온 군사상유가족협의회 분들이 알려줘서 우연히 알게 됐지요.”※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18년 9월부터 3년 기한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총 1610건이 접수됐는데 그동안 7만여 명이 군에서 숨진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적은 수다. 대부분의 유족이 위원회 존재를 모르기 때문인데, 유족에게 문자나 우편으로 알려주자는 건의가 올라와도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된다고 한다. 법 개정이 되지 않아 지난달 13일까지 신청한 사안에 대해서만 조사를 한다. ―사건 당시에는 지금 이름이 아니던데요. “원래 제 이름은 송덕순이에요. 아들이 그렇게 된 후에 동생이 점을 보러 갔는데 제 이름이 안 좋다고 했대요. 쓸데없는 망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내 이름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군사상유가족협의회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분들 중에 이상하게 ‘순’자를 가진 분이 많은 것도 마음에 걸렸고….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작명소에 가해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가지고 갔지요.” (가해자 이름은 왜….) “아직 법정 싸움이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가해자를 이기는 데 ‘수현’이란 이름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 건 아니겠지요.) “…저라고 왜 모르겠어요. 미신을 믿는다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있겠지요. 이름 바꾼다고 정말 달라지겠어요. 그런데… 그거라도 붙잡고 매달리지 않으면… 아무 힘도, ‘빽’도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저는 추미애가 아니잖아요.” “엄마가 당 대표라 미안해.” 9월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추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송 씨의 글이 화제가 된 지 며칠 안 돼서다. 추 장관은 자식 잃은 엄마가 그 말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해 봤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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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秋)캉스 딜레마[횡설수설/이진구]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요즘 수백 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와인창문(Buchette del Vino)’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벽에 낸 작은 구멍을 통해 술을 파는 것인데,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장사를 하기 위해 고안됐다.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 구멍을 막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재조명되고 있다. 피렌체 구시가지에만 150여 개가 있고, 품목도 술에서 젤라토, 커피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강력한 봉쇄로 5월 이후 하루 평균 확진자가 200여 명으로 감소했지만 여름 휴가철을 맞아 조치를 완화한 뒤 8월부터는 하루 평균 400여 명으로 다시 늘었다. 세레나데가 흐를 것 같은 낭만적인 창문 너머에는 확진자 폭증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눈물이 숨어 있다.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여행을 가는 ‘추캉스’(추석+바캉스) 인파가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호텔 예약률은 94%가 넘고, 제주에는 30만 명이 몰릴 것이라고 한다. 자연휴양림과 캠핑장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추캉스는 본래 대형 호텔업계가 마케팅으로 붙인 이름이다. 짧은 연휴에 해외에서 고생하지 말고 호텔에서 각종 패키지를 이용하며 편안하게 지내라는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추석 연휴에는 추캉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귀성 취소 및 해외여행 차단과 맞물려 추석 연휴에 국내 여행을 떠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휴 특수가 당장은 경기에 도움이 되겠지만 길게 볼 필요도 있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 이후 소비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5월 황금연휴 때도 강원 속초 강릉 등의 숙소 예약률이 97%가 넘었는데, 4월까지 진정세를 보이던 코로나19가 재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7월 초 코로나 봉쇄령이 해제된 영국 남서부의 관광 명소인 데번에서는 저승사자 옷을 입은 주민들이 ‘휴가객을 환영한다’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등 유명 관광지 주민들의 걱정은 크다. ▷지자체들은 준전시 수준의 비상 상황에 들어갔다. 제주도는 체온이 37.5도가 넘으면 무조건 진단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시키기로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증상이 있는데도 오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강원도는 2주간을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하고 주요 관광지에 방역요원을 배치해 점검하기로 했다. 관광지 주민 중에는 방역에 동참하기 위해 고향에도 안 갔는데 정작 자신의 감염 위험은 더 커졌다며 한숨 쉬는 이들도 있다. 관광지 이전에 사람 사는 곳이고, 나는 놀다 가면 그만이지만 바이러스는 남는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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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빠들아, 반박은 팩트와 논리로… 왜 내 얼굴만 까나”[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일명 조국흑서)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교보문고 9월 둘째 주 집계로 1위.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일명 조국백서)은 37위다. 공동 저자인 서민 교수(53)는 “책을 통해 국민들이 현 정권의 치부를 더 많이 알게 된다면 우리가 바라던 정의로운 세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이 굉장히 많이 팔렸다던데요. “7만 부 정도 나갔는데… 저도 이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어요. 하하하.” (출간 후에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옛날 학교 선배들에게 전화가 많이 오더라고요. 이 정권 좀 어떻게 해달라고. 저한테까지 그런 기대를 하는 걸 보고 좀 놀랐지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서문에서 ‘정권을 비판하려면 이전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 때’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썼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우리 편이 응원해줘서 할 만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 우리 편이 다 적이니까요. 오죽하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기사를 못 쓸 정도라고 했겠어요. 친문 사이트인 ‘클리앙’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예요.” (겪어봤습니까?) “두 달 전에 가입했는데… 그 안에도 가끔 멀쩡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60일 중징계를 먹었습니다.” (사유가?) “제 글이 싫은 한 회원이 ‘서민, 이 자식아 나가’라고 해서 ‘너나 나가’라고 했더니 반말했다고 경고…. ‘너 한 달에 8만 원 받고 이런 글 쓰니?’라고 해서 ‘나 건물주에 교수인데 왜 돈을 받니?’ 하니까 위화감 조성이라고 경고…. 그렇게 누적된 거죠. 한 달 버티려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두 달 전에 가입했다면서요.) “클리앙은 50일이 지나야 글 쓸 자격을 줘요. 첫 글 쓴 지 3일 만에 징계 받은 거죠.” ―방송사들이 일대일 토론을 추진했는데 조국백서 측에서 다 거부했다고 하던데요. “좀 놀란 게… 우리 쪽에서 제일 요리하기 좋은 게 저예요. 아는 것도 적고 말도 잘 못하니까. 그런 저조차도 거부하더라고요. 심지어 KBS라디오 쪽에서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이 거부했다는 얘기를 듣고 더 어이가 없었지요.” (왜요?) “그분은 방송가에서 불패의 토론자예요. 남의 말 안 듣고, 자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절대로 안 지거든요.” ―필진 선정에는 기준이 있었습니까. “특별한 건 없고, 현 정권을 지지했다가 비판으로 돌아선 게 조건이죠. 그 덕분에 부부 사이도 좋아지고, 제 성향이 보수라는 것도 알게 됐네요. 하하하.” (현 정부를 비판하지만 보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과 같은 진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이번 기회에 공부를 했는데… 공부할수록 진보로 사는 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동안 우리나라 보수가 너무 후져서 제가 진보처럼 보인 것뿐이죠. 아내는 보수 성향이라 전에는 트러블도 좀 있었는데 지금은 같이 까고 있습니다. 대통령 덕분이죠.” ―극성 친문의 공격이 심합니까. “제가 좀 특이해서… ‘문빠’ ‘대깨문’ 공격을 받으면 아주 짜릿해요. 너무 좋아. 힘든 건 별로 없고… 일일이 댓글에 답을 다는 게 좀 부담인 정도? 칭찬이든 욕이든 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준 것에 답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댓글이 수백 개 아닙니까?) “6000개가 달린 적도 있는데… 거의 다 달아줬습니다. 그런 공격은 별로 안 아픈데… 진짜 안타까운 건 진보 지식인들의 침묵이에요. 존경하는 어떤 분은 ‘문빠들의 공격이 무서워서 말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왜 상처받지 않습니까.) “저를 공격하는 내용이 딱 두 가지인데… 못생겼다는 거와 기생충 연구하더니 기생충이 됐다는 거죠. 논리와 팩트는 없고 얼굴만 까는데… 얼굴은 제가 더 스스로 까고 있고, 저는 기생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것도 상처가 안 되는 거죠.”―스스로 못생겼다고 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남들이 하도 그래서 스스로 규정지은 건데… 그걸 이용해 동정심도 좀 받고 싶고… 저는 지금은 용 됐어요. 방송 잘리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피부 관리도 받거든요.” ―방송에서 잘렸습니까?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인가요. “현 정부에서인데…. MBC ‘전참시’(전지적 참견 시점)에 고정 출연진이 된 적이 있어요. 정규 편성 전 파일럿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반응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2017년 12월 블로그에 쓴 ‘문빠는 미쳤다’는 글 때문에….” (그 글 때문인지는 어떻게 압니까.) “그 글이 많이 보도됐는데 한 열흘쯤 지났나? 제작진이 좀 보자고 하더군요. PD 작가 등 10여 명이 저를 앉혀 놓고 ‘글의 의도가 뭐냐’고 추궁하는데… 2006년에 쓴 ‘차라리 박근혜가 어떨까’라는 칼럼도 보여주면서 ‘너 박사모 아니냐’고도 하고…. 반어법이라고 해명을 하면서도 저 자신이 너무 비굴하고 한심하더라고요.” ―왜 그런 구차한 설명을 한 겁니까. “사실 미련이 있어서….” (미련요?) “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덜 유명한 분들하고 할 때는 서너 시간을 찍어도 나가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근데 이영자 전현무 이런 분들하고 함께하니까 와∼ 두 시간 반 찍고 2회로 나가는 데 감동이더라고요. 별로 말 안 해도 묻어갈 수도 있고… 제가 묻어가는 게 특기거든요. 여기서 좀 더했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비굴해도 참았는데… 집에 와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해명에 만족하는 눈치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이런 분위기에서는 방송하지 않겠다고 문자를 보냈지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개업의 대신 기생충학 전공을 선택했다. 김어준의 딴지일보에 글을 쓰면서 정치 비판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비판도 신랄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박근혜 정부 때 MBC ‘컬투의 베란다쇼’라는 예능 프로에 출연했는데 PD가 ‘당신과 같이 가고 싶은데 자꾸 정권 비판하면 우리가 참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제발 안 쓰면 안 되겠냐고. 아내도 ‘잡혀갈 수 있으니 살살 좀 쓰라’고 하고…. 당시 격주로 신문 칼럼을 썼는데 소재가 너무 많아서 이런 식이면 매주 쓰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매일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책에도 있지만 현 정권 비판이 결국 보수 정당을 도와주는 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논리가 굉장히 많아요.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한 진보매체에 쓰던 칼럼도 올해 그만뒀지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쓸 때마다 트집을 잡아서… 조국 사태 이후 계속 그랬어요. 툭하면 재미도 없고 내용도 후지다고…. 그래서 다시 쓴 적도 많아요. 이번에는 빼고 가자며 안 실린 적도 있고…. 더 이상 못 쓰겠다 싶어서 몇 번이나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말라면서도 글은 계속 트집을 잡더라고요. ‘현 정부 한 번 깠으면 국민의힘도 한 번 까 달라’고 주문하고……” ―집권세력이 억지를 부리고, 그걸 친여 언론이 확산시키다 보니 이제는 ‘혹시 내가 잘못 안 건가’ 하는 착각까지 듭니다. “그걸 노리는 건데… 괴벨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김어준 TBS 뉴스공장 진행자 가방 ‘모찌’(어떤 사람의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나 했을 겁니다.” (서로 안면이 있습니까.) “전에 딴지일보에 글을 좀 썼지요. 그 인연으로 제가 2010년 쓴 ‘대통령과 기생충’이란 소설에 ‘파브르(곤충기) 이후 최고의 엽기 생물 소설이라고 추천 글도 써줬고요.” (그때부터 선동에는 일가견이 있었네요.) “생각해보니 그러네. 파브르 이후 최고의 생물 소설이라니…. 하하하. 그런데 김어준은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전혀 대응하지 않고 고소도 하지 않는데 그건 평가해줄 만해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뻑 하면 고소한다고 SNS에 올리잖아요.” ―조국을 말라리아에 비유했는데 괜찮습니까. “한 인터뷰에서 갑자기 조국을 기생충에 비유하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기생충 중에 말라리아가 가장 비열하거든요. 간에 숨어 있다가 세력이 커지면 우르르 나와 우리 몸을 공격하기 때문이죠. 순발력 있게 대처했다고 혼자 뿌듯해했는데… 문득 조국이 고소왕인 게 떠올랐어요. 은근히 걱정이 돼 아는 변호사에게 물었더니 의견이라 명예훼손은 아니지만 모욕죄는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인데 징역은 아닐 테고… 그분 덕에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으니까 그 정도는 내도 될 것 같아요.” …어진 이를 멀리한 탓에 전임 정권이 무너졌거늘, 전하 주변에도 소인만 그득한 것은 어찌 된 까닭이옵니까. 아무리 옳은 것도 백성이 힘들어하면 되돌아보는 게 군왕이건만 전하는 되레 무리 지어 싸우게 하니 어찌 만백성의 어버이라 하겠사옵니까. 전하, 도둑은 늘 있었지만 도둑이 의금부 개혁을 말한 적은 없었사옵니다. 나라의 법은 사사로운 것이 아님에도 전하 주변에만 치우치니, 정녕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드시려 하시옵니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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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웃집 조두순’[횡설수설/이진구]

    ‘옆집에 악마가 산다’ … 호러 영화 제목 같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상당수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발생한 강간, 강제추행 범죄만 무려 2만3000여 건. 성범죄로 현재 신상공개 중인 사람은 전국에 3671명이나 된다. 한 동(洞)에 신상공개 대상자만 14명이 사는 곳도 있다. ▷2008년 8세 여아를 성폭행해 12년을 복역한 조두순이 12월 만기 출소한다. 그는 복역 중 면담에서 출소 후 원래 살던 경기 안산으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조두순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제는 성인이 된 피해자가 살고 있다. 시는 방범카메라를 확충하고, 경찰도 수시 점검에 나선다고 하지만 두 사람이 길에서 마주칠 가능성까지 대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신상공개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허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거주지는 건물번호까지만 공개되기 때문에 옆집에 성폭행 전력자가 살아도 모르기 쉽다. 인권보호도 필요하지만 ‘너만 알고 조심해’ 식의 공개가 무슨 소용인가. 같은 읍면동에 사는, 미성년자가 있는 가정에는 호수 등 세부정보를 우편으로 알려주는데 시간이 지나 피해자가 성인이 되면 받을 수 없다. 조두순 피해자가 딱 이 경우다. ▷신상공개와 전자발찌 착용 기간도 형량 등에 따라 한정된다. 조두순의 경우 신상공개는 5년, 전자발찌는 7년이다. 그는 법무부 관계자들에게 “죄를 뉘우치고 있다”고 했다지만 믿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필자가 전자발찌 착용의 효용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성범죄 전력자들 가운데는 전자발찌를 액세서리처럼 여기는 이도 있었다. ▷재범 방지를 위해 미국 플로리다는 아동성범죄자 집 앞에 ‘성범죄자(sexual predator)’라는 팻말을 붙인다. 오클라호마에는 신상공개자들의 머그샷(경찰이 범인 식별을 위해 찍는 얼굴 사진)만 게재하는 신문이 있는데 성범죄자는 별도 코너에 싣는다. 첫 발행 때 6000부를 찍었는데 순식간에 팔려 지금은 6만 부를 찍는다. 성범죄는 아니지만 발행인의 아들도 두 번이나 게재됐다고 한다. ▷성도착증 범죄자들의 출소를 영구히 막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호수용제도가 그중 하나인데 성도착증 범죄자들을 치료 목적으로 퇴근 후부터 다음 날 출근 때까지 야간에는 내보내지 않고 특정 시설에서 살게 하자는 것이다. 이제 100일도 안 남았다.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뭐라도 해야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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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수 극우도 눈치 보면서 檢警 장악한 정권과 싸울 수 있나”[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선 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강성극우와 확실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극렬 ‘엽기토끼’들 때문에 안 돌아오는 집토끼가 훨씬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입으로만 들리지도 않게 “우리는 다르다”고 할 뿐. 그런데 최근 서울 부산 인천 경기에서 개혁보수 깃발을 들었던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들이 시도당위원장에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밑바닥 당원부터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든 걸까.》 ―상대가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경욱 전 의원이었는데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표 차이가 커서 솔직히 나도 좀 놀랐다. 민 전 의원이 청와대와 당 대변인도 해 전국적인 인지도가 월등히 높은 데다 작년까지 시당위원장을 연임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내가 3선 의원을 했지만 민 전 의원에 비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싸움도 잘하고. 당원들 사이에서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아주 높기 때문에 민 전 의원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반 국민 투표였나?) “아니, 선거인단은 100% 당원이고 그중에서도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들이다. 당 소속 지방의원과 당직자 등 당연직 대의원과 인천 지역 13개 당협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책임당원들은 일반 당원들보다도 훨씬 더 당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가 높다. 과거와의 차이라면 코로나19 때문에 모바일 경선으로 한 것뿐이다.” ※이 위원장은 413표(58.1%), 민 전 의원은 209표(29.4%)를 얻었다. 선거인단 1000명 중 711명이 투표했다. ―선거인단 성향이 강성우파, TK정서에 가까울 것 같은데…. “흔히 그렇게들 보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경선 결과를 보면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국민의힘 책임당원=극렬 골수우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극렬한 강성극우 인사들이 과잉 대표돼 마치 당원 모두가 그런 것 같은 착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국민은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도….” ―당신은 바른정당에 참여했다 복당했는데… 어려울 때 당을 버린 배신자라는 시각이 있지 않나. “그런 정서가 있는데… 배신자 프레임도 일부의 생각이 과잉 대표된 면이 있는 것 같다. 나 말고도 최근 부산은 하태경 의원, 경기는 최춘식 의원, 서울은 정양석 전 의원이 시도당위원장이 됐는데 모두 바른정당 출신이다. 경선 과정에서 배신자 공격보다는 오히려 ‘당이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지난 총선 경선 때도 배신자 프레임으로 공격받았는데 내가 후보가 됐다. 수도권 당원들 사이에서는 바른정당 참여가 큰 흠이 아니고, 보수 변화의 노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수도권보다 더 보수적인 곳이 강원도인데 이번 총선에서 강릉에서 당선된 권성동 의원은 바른정당 출신인데다 탄핵 때 법사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국회 측 탄핵소추위원단장까지 맡았다. 공천도 못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당원들이 찍지 않았으면 당선될 수 있었을까.” ―인천시당이 8·15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니까. 참석자 중에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뜻을 모르지는 않지만 코로나19와 수해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는데 정치집회를 여는 것은 부적절했다. 일부 강성 목소리가 결코 당 전체의 생각이 아니다. 되레 수도권 지역은 피해를 보고 있다.” (피해라니?) “대다수 국민은 8·15집회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민심을 읽고 광화문 집회 주최 측과 우리를 동일한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있으니까.” ―당 차원의 참여는 없었지만 지도부는 개인의 참여도 막지 않았다. “그런 면이 아쉽기는 하다. 국민이 우리 당을 외면하게 만드는 행위나 사람과는 선을 그어야 하는데…. 용기 있게 그 일을 못했다. 소수의 강성 극우도 눈치 보면서 검경을 장악한 정권과 어떻게 싸우나.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수해도 겹쳐 나라가 발칵 뒤집혔는데 광화문에 나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게 과연 국민의 마음에 들까? 우리 당 참석자들도… 일부러 국민과 당을 괴리시키려고 간 것은 아니라도 실제 그런 결과를 낳은 건 사실 아닌가. 개천절 집회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인천에서는 민경욱 전 의원(연수을)과 유정복 전 인천시장(남동갑)이 참가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차명진 전 의원도 참석했으나 이들은 현재 탈당 상태다.―아스팔트 강성우파와의 결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곧 열리는 당무감사가 극우척결의 시작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아스팔트 우파,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참여한 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 중에 우리 당을 국민으로부터 멀게 만드는 사람들과 행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호하게 선제적으로 선을 긋지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당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야 한다.” (결별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우리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 ‘뺄셈의 정치로는 이길 수 없다’며 덮고 가다보니 지금에 이른 것 아닌가.)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19일간 단식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내가 굶다가 죽어도 저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우리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것으로는 폭주를 멈출 수 없다는 걸. 이유는, 우리 당이 변하지 않아 국민이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의 폭주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당 혁신이라는 건가. “탄핵 이후 우리가 제대로 변했다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올해 총선을 앞두고 조국 사태를 맞았다면, 민주당이 그토록 억지스러운 강변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조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 전에 자진사퇴시켰을 것이다. 선거에서 불리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게 열린우리당 출신들이다. 진심으로 정권의 폭주에 가슴을 치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뼈를 깎는 혁신으로 당 지지율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민주당이 앞장서서 정권의 폭주를 막을 것이다.” (비대위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나.) “김 위원장이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무릎 사죄도 하고 당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뼈를 깎았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당내에 그런 아픔과 진통을 겪은 사람이 없지 않나. 만약 우리가 변하지 못해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을 진다면, 선거를 이기고 지는 문제를 넘어 성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된다.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노 전 대통령은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며 “야당은 대통령 공격이 선거 전략상 유리하고, 여당도 대통령 방어보다 차별화해 거리를 두는 것이 유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그동안에도 쓴소리나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강성극우들의 공격으로 다 묻혔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벌 떼처럼 달려드는데… 소신 발언을 하는 쪽은 다 개인이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앞서 말했지만 적을 앞에 두고 내부 총질한다고 하고, 싫으면 나가라고 하고… 그래서 당 안팎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온건합리중도 보수 지킴이’ 역할을 하려고 한다.” (온건보수 지킴이?) “당에 올바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극렬강성들의 비난과 공격을 혼자 감당하지 않게 해주려고 한다. 지지성명도 내고, 부당한 공격에는 연대해서 같이 싸우는… 외롭지 않게. 여야를 떠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집단을 이뤄서 대응하고 싸우는 걸 잘 못한다. 안 하려고도 하고…. 그러다보니 좌우 극단에 있는 사람들 수가 더 적은데도 이기지를 못한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목소리를 안 내다보니 극단적인 사람들이 마치 양 진영의 대표인 것처럼 과잉 대표된 거지. 온건중도합리적인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세다는 걸 강성들에게 보여줄 작정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기권했다고 민주당 의원들이 금태섭 전 의원을 물어뜯을 때 우리는 그들의 행태를 비난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소수의 올바른 목소리가 나올 때는 지켜준 적이 있었나. 올바른 당내 변화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계파 이익을 위해 저항하는 세력들은 견제하는… 그 싸움을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한다. 아스팔트 우파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이 당의 주류가 온건합리적인 보수로 바뀌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학재(56)…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대선 후보일 때 비서실장을 맡았던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 박 대통령 당선일 다음 날 임명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친박과 거리를 뒀다. 탄핵 이후에는 바른정당·바른미래당에 참여했다 복당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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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원금 88억 원인데… 할머니들은 신발 한 켤레로 버텨”[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11일 민관합동조사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이 할머니들을 학대하고 후원금을 전용했다는 그간의 의혹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5년간 88억 원을 후원받고도 할머니들에게는 ‘연간’ 1인당 30만 원 정도밖에 안 쓴 것. 그런데 나눔의 집이 생긴 지 30년이 다 됐는데 관계기관은 뭘 했기에 이제야 드러난 걸까. 내부고발자인 김대월 학예실장(35)은 “관계기관과의 유착 없이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눔의 집은 1992년에 생겼다. 그동안 숱한 감사가 있었을 텐데. “2017년 이사회 영상을 찾았는데 이런 부분이 있었다. 이사장이 ‘후원금을 방만하게 관리해서 시설이 존폐 위기까지 갔는데 내가 (경기)광주시장도 만나 다 수습했다’는 장면이다. 우리가 국무총리실, 광주시, 경기도,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에 공익제보를 한 게 3월 10일이다. 우리는 제보만 하면 우리 역할은 다 한 거라 생각했다. 담당 공무원들은 난리가 나는 게 당연할 텐데… 3월 말쯤에야 경기도와 광주시 공무원들이 정식 감사는 아니고 제보자 얘기나 한번 들어보겠다며 왔다. 그런데 광주시 공무원은 출근도 안 한 스님에게 월급이 나갔는데, ‘밖에서 일했다면 문제가 없을 거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경기도 공무원은 월급이 적어서 내부고발을 하는 거니 올려주면 해결된다고 하고.”※ 김 학예실장은 2018년 나눔의 집에 입사했다. 내부고발자들은 1년간 안에서 싸웠으나 해결이 안 돼 3월 공익제보를 하게 됐다고 한다. ―공익제보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후 4월 초 광주시가 경기도와 합동이라며 감사를 했는데 후원금 관리 미비로 과태료 350만 원에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번 민관합동조사단 발표를 봤겠지만 과태료 350만 원이면 누가 봐도 솜방망이 처분 아닌가. 그런데 5월 13∼15일 경기도에서 다시 감사를 나왔다. 그 자리에 월급 올려주고 해결하라던 그 경기도 공무원이 있더라.” (광주시와 합동으로 했다면서 경기도가 왜 또 나온 건가.) “5월 7일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 의혹을 폭로하면서 문제가 커질 것 같으니까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어이가 없는 게… 감사 나온 사람들이 ‘조사를 못 할 정도로 관련 서류가 하나도 없는 이런 곳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나눔의 집이 생긴 지 28년인데 무슨 소리인가.) “그래서 내가 당신들 얼굴에 침 뱉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동안 감사를 어떻게 했기에 이 모양이냐고. 경기도 감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두 달 후 왜 또 민관합동조사를 했겠나.” ―여성가족부는 적극적이었나. “제일 아무것도 안 한 게 여가부다. 3월에 제보하고 한 번 와서 할머니들이 폭행당한 적이 있느냐, 여가부 지원금을 건드린 거 있느냐 딱 두 개만 묻고 갔다. 두 달간 소식이 없더니 이용수 할머니가 폭로하니까 다시 와서 할머니들 잘 계신가 보고 갔다. 그런데 이달 들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 행사에 할머니들이 참석할 수 있는지는 수시로 물었다. 화가 나서 3월부터 민원 넣고 수십 번 전화했을 때는 담당자 연결도 안 되다가 이제 와서 행사에 참석해 달라니 당신들은 행사에만 관심 있냐며 싸웠다.” (어느 부서가 담당인가.) “여가부 여성권익정책과다.” (국가인권위 조사는 어떻게 됐나.) “5월 27일 했는데 결과는 아직….” (오늘이 8월 19일인데?) “지금도 조사 중이라고 한다. 7월 초 조사한 민관합동조사단은 이달 11일 발표했는데….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인권위는 뭘 조사했나.) “침대….” (침대를 왜?) “10년 된 침대가 기울어져서 할머니가 주무시다 떨어졌다. 그래서 하나 사자고 했는데 운영진이 낭비라고 못 바꾸게 했다. 그러고는 기울어진 쪽을 돌려서 벽에 붙여 놨다.” ―기울어진 침대에서 주무신다는 건가? 후원금을 88억 원이나 받고? “지금 다섯 분이 계신데… 세 분은 집중치료실에 있다. 그중 두 분은 코 줄로 영양을 공급받고 있고. 인지 능력이 없는 상태인데 말이 집중치료실이지 의료 장비가 하나도 없다. 침대 하나뿐이다. 방에서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곳에 계시는 것뿐이다. 그렇게 계시다가 돌아가시는 건데…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그동안 할머니 스무 분 정도가 이곳에서 돌아가셨는데 나눔의 집에서는 한 번도 기일을 챙긴 적이 없다. 돌아가신 날 남은 가족들과 할머니를 추억하는 분들이 모여 고인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자리… 그런 게 없다. 할머니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할머니들을 이용해서 돈을 모으는 곳이다.” ―치료나 간호는 어떻게 하나. “간호사가 한 분이라 퇴근 후에도, 쉬는 날에도, 휴가 중에도 할머니들이 아프시면 나온다. 심지어는 암 수술을 받아 본인이 요양 중인데도 와서 간호했다. 그런 사람에게 20년간 초과근무수당 한 번 제대로 준 적이 없고 승진도 안 시켜줬다. 그 말을 했더니 우리가 돈과 승진 때문에 내부고발을 했다고 음해하더라.” (왜 한 명뿐인가.) “광주시에서 지원하는 간호사 인건비가 한 명이니까.” (후원금이 적지 않은데 자체 채용하면 되지 않나.) “안 한다. 나라가 지원하는 돈 외에는 할머니들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는다.” (근무 여건이 굉장히 열악한데 어떻게 그분은 20년이나 있는 건가.) “할머니들 걱정 때문에 못 떠난다. 워낙 잘하니까 그분이 없으면 할머니들이 불안해해서….” (그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 “원종선 간호사다.” (의사는 없는 것 같은데.) “이 동네 의사 선생님이 돌봐주시는데 약이나 영양제도 웬만한 건 무료로 준다.” (나눔의 집은 뭘 하는 데 공짜로 받나.) “내가 묻고 싶은 말이…. 의사도 채용하려면 할 수 있는데 돈만 쌓아놓고 안 한다. 그분도 본인이 자원봉사로 해주는 거다.” (성함이….) “퇴촌중앙의원 경명헌 원장님이다.”―할머니들 옷이나 머리는 어떻게 하나. “옷은 사준 적이 없고 후원받은 옷만 입힌다. 더러 가족이 사오는 것도 있다. 신발은… 단화 한 켤레가 전부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어디를 가든 그거 하나로 버틴다.” (할머니들이 신발 한 켤레로 산다고?) “그렇다. 머리는…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해준다. 나라에서 지원금 나오는 항목이 아니면 뭐 하나 나눔의 집에서 해주는 게 없다. 그리고 이런 내부 상황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높은 분들은 선물 쌓아놓고 사진이나 찍고 가지, 정작 할머니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보지 않는다. 2018년에 할머니 한 분이 경복궁이 보고 싶다고 했는데 사무국장이 추워서 안 된다고 하더라. 그때가 10월이었다. 근데 그 다음 달 원행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식에는 세 분을 데리고 가 야외에서 두 시간 동안 떨게 했다.” ―행사에 할머니들을 동원하는 게 심한가. “2018년 여름인데… 소장이 경기 광명시 행사에 할머니 한 분을 모셔가려고 했다. 근데 할머니가 아팠다. 간호사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니까 짜증을 내면서 광명시장 만나야 하는데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더라. 안 되니까 다른 할머니를 준비시키라고 했는데 그분은 치매로 대소변을 못 가린다. 함께 가서 기저귀 갈아드릴 직원이 없다고 해서 결국 못 갔다. 내가 운전해서 소장을 모시고 갔는데 도착해서 광명시장에게 한다는 말이 ‘아이고 시장님, 우리 할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저도 병원에 가야 하는데 (시장님과의) 약속 때문에 왔다’고 하더라. 너무 가증스러웠다.” (할머니는 괜찮으셨나.) “병원에 가보니 대장 천공이었다. 그날 바로 대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할머니들 숙소 수용인원을 20명으로 늘리는 공사를 했는데 혹시 알려지지 않은 피해 할머니들을 더 찾아 모셔오려던 건가. “그럴 리가…. 일반 요양원을 만들려고 한 거다. 나눔의 집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로 알려져 있지만 정관상으로는 ‘무의탁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양로시설 및 무료 전문요양시설, 미혼모 생활시설’로 돼 있다. 지금 계신 다섯 분이 돌아가시면 후원금을 받거나 법인을 유지할 방법이 없으니까 일반 입소자를 받기 위해 시설을 확충한 거다. 그런데 너무 뻔뻔한 게… 지난달 민관합동조사단이 한창 조사하고 있는 와중에 인근 면사무소에 공문을 뿌렸다. 65세 이상 남녀 주민 중 입소 가능자를 추천해 달라고.” (잠깐, 남녀라니? 할머니들이 살아계신데 남자를 받겠다고?) “정신 나간 거지…. 더군다나 공사도 부실해서 작년 증축공사가 끝난 뒤에 콘센트에서 물이 나왔다.” (비가 와서 지붕이 샜나.) “비 안 왔다. 그냥 돼지코 콘센트에서 물이 콸콸 나왔다. 무허가 업체가 했는데 증축공사를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지 않나? 광주시가 몰랐을까?” ―3월에 공익제보를 했는데 6월에 다시 청와대 국민청원을 한 이유가 뭔가. “바뀌긴커녕 더 나빠져서…. 운영진이 내부고발자들의 서버 접근권을 막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업무에서 배제됐고.” (한 명뿐인 간호사가 업무 배제되면 누가 돌보나.) “그래서 얼마 전 퇴원한 할머니 한 분은 간호사 대신 나눔의 집 간부가 데려왔다. 의사와 처방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평소 드시는 약이나 몸 상태를 제일 잘 아는 간호사가 가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할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기 때문에 의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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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횡설수설/이진구]

    뉴욕에 살다가 올해 세상을 떠난 고 이춘덕 여사는 생전에 독립운동 유적지와 후손들을 기록하기 위해 찾아온 김동우 사진작가 앞에서 30여 분을 펑펑 울었다. 김 작가가 “독립운동 때문에 왔다”고 하니 나라에서 온 줄 알고 수십 년간 잊혀진 채 살았던 설움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여사의 아버지는 북로군정서 분대장으로 청산리 대첩에 참가한 이우석 애국지사다. 이 여사의 딸은 영정 사진으로 김 작가가 찍은 사진을 썼다.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찾아 그 뜻을 기리고 후손들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찾거나 돌보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해외에서 항일운동을 한 경우에는 더 그렇다. 생활고로 유품 등 자료가 남아 있지 않기도 하고, 세대가 지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후손들도 많기 때문이다. ▷전남대 김재기 교수팀이 최근 멕시코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25명을 찾아냈다. 1905년 이민 간 후 북미지역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지방회를 결성해 3·1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 후원금 모금, 광복군 지원 등에 나선 분들이라고 한다. 김 교수팀은 코로나19로 현지에 가지 못해 당시 이민자 명단,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기사 등의 사료를 페이스북을 통해 300여 명의 멕시코 한인 후손들과 공유하며 찾았다. ▷기막힌 일은 이 중 10명은 이미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는데도 국가보훈처가 서훈을 전달하지 않아 후손들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독립유공자는 후손들이 직접 신청하거나 보훈처가 각종 사료를 통해 찾아내 추서하는데 후자가 90%에 달한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명단만 올려놓고 알려주지 않아 추서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해외에 있는 후손들은 한국말은 물론이고 한국 핏줄이란 걸 모르는 이도 많아 보훈처 홈페이지에 들어갈 일도 거의 없다. 독립유공자 유가족에게는 보상금 등 각종 혜택이 제공되지만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말 그대로 탁상행정이다. ▷김 교수가 해외독립운동가 후손 찾기에 나선 것은 2016년 쿠바에서 겪은 일 때문이라고 한다. 쿠바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13명의 후손을 만났는데 그중 한 명만 서훈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나라가 안 하면 나라도 하자’는 마음에 이들 13명의 활동을 소개하고 쿠바·멕시코 지역의 미서훈자 발굴에 나서고 있다. 모두 사비로 하고 있다. 개인도 찾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을 왜 나라가 못 하는가. 오늘은 제75주년 광복절이다. 그 빛을 있게 해준 분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끄럽고 참담하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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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썩은 내 나는 검찰개혁… 그렇게 장기집권하면 역사가 침 뱉을 것”[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최근 정부의 무리한 검찰개혁과 맞물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대선 문재인 캠프에서 공익제보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64·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추 장관을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unfit(부적합한)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라고 한 것이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깜’이 안 되는 사람이 장관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왜 그런 글을 올렸을까.》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 걸로 아는데…. “지금 벌어지는 검찰개혁이 너무 정도를 벗어났다고 생각돼서… 불편한 심정이 그 중앙점에 있는 사람을 향해 폭발한 것 같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추 장관이 사건을 편향되게 보고, 무모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먼저 검언유착으로 단정하고 (수사팀을) 숨 가쁘게 재촉하지 않았나.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지, 수사도 안 끝났는데 이미 판단이 서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더욱이 국가 사법질서의 한 축을 이끄는 법무부 장관이 그래서는 안 된다. 전례도 없는 일이다.” (unfit이란 말이 상당히 화제가 됐는데 일부러 쓴 건가.) “한글로 ‘부적절한 사람’이라고 쓰면 뭔가 표현이 다 안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지금의 검찰개혁은 본질을 추구하지 못하고, 방향과 내용도 잘못됐다고 했다. “우리 국민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37위로 꼴찌다. 국민이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검찰은 공정한 수사, 법원은 공정한 재판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법원의 경우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지금까지 공정한 재판을 위해 뭘 하겠다고 한 게 없다. 사법의 독립, 재판의 독립만 말할 뿐이다. 법원이든 검찰이든 독립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기관의 독립성은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공정한 결과를 위해서는 기관의 독립성도 중요하지 않나.) “물론 중요하다. 기관의 독립성은 공정한 수사·재판을 위한 한 축이다. 또 한 축은 책임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독립성은 많이 말하지만 책임성은 언급하지 않는다. 독립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필연적으로 부패로 연결된다.” (전관예우 등 끼리끼리 문화의 만연을 말하는 건가.) “전관예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고 고질적인 문제가 수두룩하다. 특히 검찰, 법원을 막론하고 ‘관선변호’의 문제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관선변호? 잘 못 들어본 용어인데…. “국선변호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검찰·법원 내부에서 사건 당사자를 위해 열심히 뛰어주는 상사나 선배를 부르는 은어다. 내가 그 문제를 제기한 게 1992년이다. 그 때문에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지만… 30년 가까이 됐는데 여전히 안 고쳐지고 만연돼 있다.” (어떤 식으로 하나.) “선배 판검사가 놀러온 것처럼 후배 방에 들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근데 이 판사, 뭐 그런 사건 맡았다며? 그런데… 원고가 상당히 억울한 것 같아. 기록 한번 잘 좀 봐줘요’ 이렇게 부탁하는 게 관선변호다. 내부 관계를 이용해서…. 검찰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1이라고 하면 검찰은 10이다. 그만큼 만연됐다. 관선변호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 내에서 힘들어지니까 이 거대한 부정을 모두 침묵하고 있다. 이것이 결국 수사·재판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책임성 강화를 위해 ‘법 왜곡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아주 센 관선변호의 경우 아예 사건 배당 때부터 관여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수사, 재판을 잘못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한 판검사를 처벌하자는 건가. “표현은 거칠지만… 그런 의미다. 물론 판사는 직접 수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판검사가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데 현저한 책임과 과실이 있었다는 게 재심에서 밝혀지면 처벌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춘재 대신 화성 연쇄살인범으로 몰린 윤모 씨는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린 최모 씨는 10년을 살았다. 경찰만 잘못하고 당시 판검사들은 아무 잘못이 없었을까.” (가재는 게 편인데, 검찰과 법원이 그들을 기소하고 처벌해줄까. 특별판사를 만들어야 하나.) “전례는 없지만 못 만들 것도 없다고 본다. 특검은 만들지 않았나. 법관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로 특별재판부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오랜 세월 동안 모든 것을 잃은 사법 피해자들이 피를 토하며 하소연을 해도 누구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문제는 국민 대부분이 이런 문제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한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처음 듣는 말이라고 환호를 하더라.” (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건가.) “판검사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니까…. 그 은밀한 거래를 밖에서 누가 알겠나.” ※독일 형법 제339조는 법왜곡죄라는 이름으로 ‘법관, 기타 공직자 또는 중재인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대통령이 처장을 임명한다. 대통령의 힘을 강화시키는 검찰개혁도 있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검찰 등 국가기관의 잘못이 있을 때는 민주적·시민적 통제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자신들이 하겠다며 검찰을 통제하고 있고, 더 나아가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검찰개혁은 정략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그리고 공수처는 대통령의 가장 좋은 칼이 될 것이다.” (왜 이렇게 폭주하게 됐을까.) “모든 것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권력의 행사는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촛불 시민혁명을 계승했다고 자처하는 정부가… 강골 검사 윤석열만 찍어내면 더 이상 터져 나올 내부 불만도 모두 잠재울 수 있다는 식으로 칼을 휘두르고, 자신들의 부패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진보세력이 장기 집권하면 역사가 침을 뱉을 것이다. 우리는 이걸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태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비판해야 한다.” ―당신은 공수처 찬성자로 알고 있는데…. “나는 공수처를 열렬히 지지해왔다. 법왜곡죄처럼 공수처가 있으면 판검사들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 판사를 징계해달라고 진정을 넣으면 ‘귀하가 진정한 사안은 재판독립에 관한 사안이므로 응답하기가 적절치 않음’이라고 딱 한 줄 온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다. 공수처가 제 역할을 하면 이런 문제는 고칠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공수처라면 없는 게 낫다. 어쩌면… 권력에 대한 수사를 공수처를 통해 다 통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처장 임명 방식을 바꾸면 보완이 될까.) “처장이야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 될 테니 그렇게 노골적으로 안 할 수도 있다. 더 두려운 것은… 중간간부, 수사관 등을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같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의 이념적으로 편향된 사람들로 대거 채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누가 공수처 들어간다고 서초동에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들어가서 공을 세우려고 의욕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란 말이 나온다. “왜 추 장관이 국회에서 윤 총장 아내·장모와 관련된 자료를 읽는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켰겠나. 뻔히 사진 찍힐 줄 알면서. 보라고 한 거지. 공수처가 만들어진 뒤 ‘아내가 한 일을 남편이 모를 수 있느냐. 공모한 것 아니냐’며 소환하면 어떻게 되겠나. 계속 총장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아… 정말 그렇게까지 갈까.) “‘똘똘 말아 넣는다’는 말을 들어봤나. 수사기관이 없는 것도 갖다 붙여서 범인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한동훈 검사장 엮는 것 보지 않았나. 한 검사장은 간신히 벗어났지만… 사람을 억지로 죄인 만들고 형을 살게 하는 게 한두 건이 아니다.” ※지난달 21일 추 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윤 총장 아내·장모와 관련된 자료를 보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노출됐다. 이미 오랫동안 숱한 의원들이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찍힐 줄 몰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는 권고안을 냈다. 총장은 지휘관인데 지휘권을 뺏는 게 개혁안인가. “그들이 원하는 건 (진정한 개혁이 아니라) 검찰의 무력화니까. 목표를 정해놓고 그냥 갖다 붙이는 거다. 윤 총장이 말 잘 듣는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안 했겠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이었으면 되레 강화시켜 줬을 거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 없다. 애당초 이해할 수 없는 거니까.” ―2017년 대선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익제보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을 했다. 유세차 타고 마이크도 잡았는데…. “난 박근혜 정부가 잘못된 정부라고 생각했다. 탄핵 정국에도 어느 정도 일조했고. 당시에는 촛불 시민혁명을 이어받은 지도자가 문 대통령이라고 확신했다.” (지금도 그런가.) “하… 실망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지…. 특히 검찰개혁 분야는 완전히 패착이라고 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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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 재물 아닌 가족[횡설수설/이진구]

    최근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가에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맹견 로트바일러가 산책 중이던 소형 스피츠를 물어 죽인 사고가 발생했다. 스피츠 주인과 행인이 맹견을 떼어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썼지만 당할 수가 없었는데, 스피츠가 숨지는 데는 1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죽은 강아지와 주인은 11년간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 맹견은 3년 전에도 다른 개를 물어 죽였지만 견주는 여전히 입마개는 물론이고 목줄도 잡지 않은 채 주택가에 풀어놨다. 그는 개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 그랬다고 했는데 피해자에게는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고 개는 훈련소에 보냈다고 한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것도 분통이 터지는데 더 기가 막힌 건 재물손괴 외에는 대응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동물을 소유물, 즉 물건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강아지 인형을 훼손하는 것과 산 강아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동일한 셈이다. 그나마도 가해 동물 주인이 이를 유도하거나 방치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적용이 쉽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경기 이천에서는 기르던 개를 동네 다른 개가 죽였지만 법정까지 가서야 구입비 80만 원과 위자료 80만 원만 받고 끝났다. 애견학교처럼 다수의 개를 맡아주는 곳에서는 아예 ‘사망 시 동종의 강아지로 줄 수 있다’는 규정을 계약서에 넣은 곳도 있다. 동물보호법이 있지만 자기가 기르던 동물을 망치로 때려죽여도 처벌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민법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과 물건 사이의 제3의 지위를 부여해 감정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적어도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 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라고 한다. 독일은 연방헌법에도 ‘국가는 동물을 보호한다’고 규정했다. ▷가족같이 소중한 반려동물이 죽은 뒤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펫로스(Pet loss) 증후군이라 부른다. 좀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질병 사고 등 죽음의 원인에 대한 분노, 슬픔으로 인한 우울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심하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가족을 잃었을 때에 버금가는 고통을 느끼기도 하는데,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일 경우에는 특히 증상이 더 심하다고 한다. ▷삶의 의미를 주는 대상이 꼭 사람만은 아니다. 반려(伴侶)동물이란 말이 정착된 지 오래다. 반려자(伴侶者) 외에 이 말을 쓰는 대상이 또 있을까.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반려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인식도, 법적 지위도 바뀌어야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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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탓[횡설수설/이진구]

    최초로 아내 탓을 한 남편은 아담이 아닐까. 이브가 나무열매를 줘서 먹었다고 둘러댔는데, 요즘 보통 남자들 세계에서 그렇게 여자 핑계를 대면 찌질한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유독 정치판이나 고위층에서는 그런 장면이 여전히 자주 연출된다. ▷청와대는 김조원 민정수석이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집을 매물로 내놓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얼마에 팔아 달라는 걸 남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팔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높게 부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 핑계로 피해간 것이다. 다주택자인 김 수석은 서울 잠실 갤러리아팰리스 47평형(전용면적 123m²)을 시세보다 2억∼4억 원가량 비싼 22억 원에 내놨다가 논란이 일자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해명이 사실이라면 수십억짜리 집을 얼마에 팔지 상의도 안 하는 부부인 셈이다. 김 수석은 어제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자 “건물 매입은 아내가 한 일”이라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사모펀드 투자가 문제되자 재산관리는 아내가 전담했다고 했다. 2010년 한 경제부처 장관 후보자는 뉴타운 예정지의 쪽방촌 지분을 산 사실이 드러나 투기 의혹이 일자 “아내가 노후대비용으로 한 것 같다”고 말했고 결국 낙마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된 안종범 전 대통령경제수석은 재직 중 업자에게 아내에게 줄 명품 가방을 요구했는데, 재판에서는 아내에게 책임을 돌렸다. 안 전 수석에게 돈과 선물을 준 업자 부부는 특검에서 “청와대 수석치고는 구차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방송인 김구라의 전 부인은 빚이 17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남편 모르게 보증을 섰다가 빚을 떠안게 된 것. 김구라는 아내와 함께 심리치료도 받고 겹치기 출연을 하며 빚을 갚아갔는데 그 과정에서 전 재산 가압류 통보를 받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입원하기도 했다. 결국 2015년 이혼했지만, 김구라는 이후에도 무려 48개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받은 출연료로 전 부인의 빚을 다 갚아줬다고 한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책임을 지는 사람과 어떻게든 면피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가장 꼴불견이 ‘아내 탓’이다. 금품 수수 의혹을 받자 자신은 빠져나가고 아내가 징역을 산 국회의원 같은 ‘찌질이’를 필부(匹夫)들 사이에선 오히려 찾기 힘들다. 공자는 ‘군자는 잘못을 나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고 했다. 고위직에, 군자는 바라지도 않고 미성숙자가 너무 많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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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희룡 “문재인 박근혜가 과거로 퇴행시킨 나라를… 돌려놓고 싶다”[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용(龍)을 꿈꾸는 정치인은 많지만, 자신이 왜 용이 돼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을 왜 꼭 당신이 해야 하나.’ 누구나 아는 간단한 질문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변죽만 울리다 끝난다. 차기 대권 도전을 선언한 원희룡 제주지사는 첫 번째 질문에 “국가의 틀을 바꾸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깜’이 될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미리 질문지를 줬는데…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유가 뭔가. “나는 국가의 틀을 바꾸고 싶다. 국가가 위험에 처한 국민을 지켜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장은 둔화되고 양극화는 고착되는데 집 일자리 교육 등 모든 부담을 전부 개인이 지고 있다. 그 부담이 저출산, 사회 불만, 청년들의 꿈 포기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실업 빈곤 연금 등을 책임지고 개혁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안 하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이유 중 하나가!(책상 쾅) 자신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과 결핍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걸 해결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정치와 국가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말과 이념만 내세우지 책임도 안 지고 일도 안 한다. 그런 면에서….” (말하는 중간에 미안한데 그런 총론적 지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구체적인 정책은 순차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다. 일단 부동산 일자리 교육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고, 더 큰 틀에서 디지털 대전환, 미중 대립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새로운 활력을 찾고 국가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지금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늦지 않은 시간 안에 제시하고 공론화하려고 한다. 커밍 순(Coming soon)!” ―당신이 꼭 해야 하나.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되나. “(나한텐) 제일 중요한 질문인데… 하하하. 우선 문제의식이 투철하다. 지금 정부는 국민의 삶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는 윤석열(검찰총장) 끌어내리기, 과거사 캐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문제의식이 투철하지 않기 때문에 말만 그럴듯할 뿐 엉뚱한 행동이 많은 거다. 나는 문제의식과 상황 판단, 그와 일치하는 해법을 제시할 계획이다. 그간의 정치·행정 경험과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가장 준비를 많이 한 후보가 될 것 같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는 왜 나온 건가.“될 가능성은 적었지만… 당시 이명박(MB) 박근혜 후보가 제시하는 비전이 미래세대는 물론이고 우리 세대에도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과거지향적인… 그래서 내 나름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려고 나갔다.” (그들이 시대와 어떻게 안 맞았다는 건가.) “시대가 변했는데 여전히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그중 하나다.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의 변형이라고 할까. 디지털 대전환, 규제 개혁, 특히 보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우리 경제 모델의 대전환 같은 것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많다.” (MB는 녹색성장을 추진하지 않았나.) “2008년 제시한 녹색성장은 어젠다로는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지속되지 못했다. 전임 정부가 시작해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되고 있는 걸 다음 정권이 적폐로 몰고 뒤엎으면 국가의 자산과 역량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모두 이런 식이다.” ―최근 10여 년간 정치보복이 고질병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선택, 그로 인한 지지층의 트라우마… 이런 것이 문재인 정부에서 고스란히 보복정치로 나오고 있다. 그걸 위해 지지층을 선동하고…. 아니, 선거 때 이쪽저쪽 찍을 수도 있고, (SNS에) 좋아요를 누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걸 전부 들춰내 편을 가르고 계기가 있을 때마다 배제하는 정치를 하면 미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포용국가를 제시했는데 정당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무슨 놈의 포용국가인가. 웃기는 얘기다. 지금 세계적으로 다가오는 위협이 얼마나 큰데 우리는 집권세력이 현충원 묘를 파네 마네, 검찰총장이 뭘 했네 이런 거나 따지고 있으니….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게 나라의 지휘부가 온 역량을 집중해 매달릴 사안인가?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용기가 없는 사람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미래통합당은 다른가. 그 난리를 겪고도 달라진 게 없는데…. “그래서 나는… 지금 40년, 50년 전이란 퇴행의 기운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퇴행의 기운이라니?) “50년 전으로 퇴행시킨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1970년대로 끌고 갔지 않나. 당시 새파란 비서관 하던 사람에게 국가원로로 실권을 주고…. 50년 전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나라를 온통 그쪽으로 몰고 가고…. 통합당이 그 업보를 못 치렀기 때문에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는데!(쾅) 죽지 않으니 좀비 상태로 있는 거다.” (뭘 죽여야 한다는 건가.) “과거의 낡은 사고가 완전히 체질화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보조를 맞추는 행동과 문화다.” ―40년 전으로 퇴행시킨 건 누군가. “집권 운동권 세력들이 사회를 전부 1980년대 사고방식과 행태로 끌고 가지 않나. 대한민국이 반쪽 민주국가밖에 안 된다면서 건국 과정 자체를 리셋해야 정통성이 생긴다는 국가관, 80년대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을 지금도 고수하는 경제관…. 우리가 일군 성장이 어떤 피눈물과 시행착오, 노력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더 발전시키기 위해 뭘 할지는 고민하지 않고 통째로 잘못된 것처럼 몰고 가고 있지 않나. 그런 사람들이 국가를 운영하면서 권력공동체가 돼 온 나라를 편 가르고, 자기편만 챙기고, 같은 편이면 일탈행동도 옹호하며 나라와 국민의 윤리기준까지 마비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화운동의 도덕적 정당성마저 스스로 다 파괴하고 있다.” ―최근 당 모임에서 진보의 아류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당신은 개혁 성향으로 알려졌는데 후보가 되고 싶어서 지지층 눈치를 본 건가. “그게 아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의료보험,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 야당은 스스로 보수야당이라고 불렀다. 정책이 너무 혁신적이었으니까. 용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도 마찬가지지만 보수에게는 시대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담대하게 변화를 주도해온 역사가 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이런 변화를 주도하지도 못했고, 우리끼리는 계파 간에 서로 죽이기만 했다. 지금 불리하다고 민주당 따라 하지 말고 그 담대한 유전자를 되살리자는 뜻이다.” ―민주당 따라 하지 말자면서 제주도 긴급재난지원금은 왜 전 도민에게 주나. “1차는 아니고 2차 지원이 그렇게 됐는데… 나는 더 위급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주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서 1차는 중위소득 100% 이하에게 가구별로 지급했다. 1인 가구 20만 원, 2인 30만 원, 3인 40만 원, 4인 이상은 50만 원이다, 공무원은 빼고. 그런데 2차(1인당 10만 원)는 전 도민에게 줄 수밖에 없게 됐다.” (왜?) “1차는 자체 예산으로 됐는데 2차는 예산을 편성해야 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절대 다수인 도의회가 전 도민에게 주라고 결정했다. 의회 의결을 거부할 방법은 없으니까… 내 소신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됐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효과가 있을 거라 보나. “국민의 신뢰가 없기 때문에 백약이 무효할 것 같다. 부동산 정책은 한 방에 해결할 수 없다. 중요한 건 가격이 폭등하지 않는다고 국민이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정책과 모순되는 것은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 그런데!(쾅) 문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 시정 연설에서 ‘부동산으로 돈 못 벌게 하겠다’고 천명하는 바로 뒤에 강남에 60억 원대 집을 가진 사람이 떡하니 앉아 있었다.” (누구?) “국회의장. 그리고 부동산으로 돈을 못 벌게 하겠다고 하면서 그 얘기를 전부 부동산으로 돈 번 사람들이 하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원래 2주택자로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204m²)와 대전 서구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서울 아파트의 현재 호가는 65억∼75억 원으로 알려졌다. 대전 아파트는 5월 아들에게 증여했다. ―제주 오기 전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살았는데…. “제주 오면서 팔았다. 지금 사는 제주도 집 한 채뿐이다.” (관사가 없나?) “있는데 지방 청와대로 쓰던 거라 너무 커서 어린이도서관으로 바꿨다.” (목동 아파트면 지금 가격이 엄청 뛰었을 것 같은데.) “융자 끼고 4억 원인가에 샀는데 7억5000만 원 정도에 팔았다. 지금은 12억∼13억 원 정도라고 하더라.” (쓰리지 않나.) “하하하. 정치인은 권력만 추구해야 한다. 뒤로 챙길 것 다 챙기면서 명예도 가지려고 하면 되나.” ※올 3월 공직자 재산 신고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20억2500만 원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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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탁기로 ‘지폐 소독’[횡설수설/이진구]

    많은 사람들이 만지는 지폐는 병원균에 취약하다. 2014년 미국 뉴욕대 연구팀은 1달러 지폐에서 무려 3000여 종의 박테리아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는데 여드름을 유발하는 세균이 가장 많았고, 궤양 폐렴 식중독을 유발하는 세균도 나왔다. 맨해튼의 한 은행에서 수집한 지폐 80장을 분석했는데 소량이지만 코뿔소 DNA도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맨해튼까지 오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 손을 거쳤을지 궁금하다. ▷한국은행이 어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제거하겠다며 지폐를 전자레인지에 넣는 행위는 삼가 달라고 당부했다. 효과도 불분명한 데다 전자파가 돈의 홀로그램과 숨은 은선 등 위조 방지 장치에 영향을 끼쳐 불이 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부조금으로 받은 현금 수천만 원을 소독하겠다며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가 찢어지고 떡처럼 된 젖은 종이뭉치를 가져온 사람도 있는데, 이틀간의 수작업 끝에 확인이 불가능한 것을 빼고 새 돈으로 교환받은 금액이 2200만여 원에 달했다. 손상된 지폐는 남은 면적에 따라 교환액이 결정된다. ▷1달러 지폐에 붙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섭씨 22도에서 약 8시간 이상 생존한다고 한다. 최근 미 육군 감염병연구소가 실험했는데 37도에서는 4시간가량으로 떨어졌다. 아직까지 지폐를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됐다는 보고는 없지만, 만약을 대비해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에서 들어온 화폐를 150도 고열로 살균처리하고 소독된 금고에 2주간 보관하고 있다. 시중은행들도 지폐소독기를 운영하고 금고도 방역한다. ▷‘플라세보 효과’와 반대인 ‘노세보 효과’는 부정적인 암시로 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영향을 받는 심리 현상이다. 1950년대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한 포도주 운반선 냉동창고에서 한 선원이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출항 때 동료가 모르고 문을 잠갔기 때문인데, 그는 벽에 자신의 몸이 서서히 얼어붙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적었다. 하지만 냉동창고는 실제론 가동되지 않은 상태였다. 창고 안 온도는 영상 19도였는데도 얼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워낙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니 철저한 예방은 당연하다. 하지만 걱정이 지나친 나머지 우환을 자초해서도 안 되지 않을까. 돈에 묻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마른 천에 소독제를 묻혀 닦고, 그 뒤에 손을 잘 씻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일일이 다 닦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만진다면 의료용 장갑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방심해서는 안 되지만 검증도 안 된 개인 요법으로는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없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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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중고 몰카 전수조사[횡설수설/이진구]

    ‘몰카(몰래카메라)’를 제대로 찾으려면 건물의 모든 전원을 끈 뒤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몰카탐지기는 촬영한 영상을 저장하거나 송신할 때 나오는 전기신호를 탐지하는 방식이 가장 많은데, 비데나 전선에 흐르는 전류에도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중이용 시설물의 모든 전원을 끄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탐지기 반응을 보고, 의심스러운 곳을 점검하는데 천장이나 벽 틈은 파손 시 배상 문제가 있어 웬만큼 확실하지 않으면 뜯어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2018년 8월 ‘몰카 보안관’을 발족한 서울 서초구는 지금까지 누적 9300여 개 건물, 8만6000개의 화장실을 점검했지만 실제 몰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몰카로 사용되는 지름 1mm 초소형카메라의 작동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숨기는 곳은 첩보영화가 무색하게 진화하고 있다. 담뱃갑 단추 라이터 등은 이제 ‘라떼’ 몰카 취급을 받는 고전에 해당한다. 실제 물이 담긴 생수병(500mL) 카메라도 나왔는데 여분의 렌즈 가리기용 상표 스티커와 미개봉된 뚜껑도 준다. 무선공유기 화재경보기 인형 등 종류도 갖가지인데, 선물 받은 곰인형이 밤마다 눈을 돌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교육부가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몰카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지난달 경남 김해와 창녕에서 교사가 학교 여자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것이 적발된 데 따른 조치다. 각 시도교육청 주관으로 이달 16∼31일 긴급 점검하고, 발견되면 수사 의뢰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점검 날짜가 공개됐는데 설치한 몰카를 그냥 놔둘 범인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경남교육청은 2018년부터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장비 대여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장비 대여 학교와 대여 시기가 공개된 공문을 내려보낸다고 한다. 몰카범이 교직원이라면 자신의 학교가 언제 점검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구조다. ▷학교, 특히 초등학교가 몰카 전수 점검의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이다. 숙박업소나 상업시설 화장실처럼 누구나 드나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본 데다, 학생들이 받을 정서적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범죄의 장소로 걱정되고, 아이들이 ‘혹시 우리 선생님이나 교직원이…’라는 의심을 잠깐이라도 하게 되는 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인데, 그런 씁쓸한 현실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교 안마저 몰카 위험지대가 된 불신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이왕 하려면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점검으로는 몰카범은 못 잡고 불신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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