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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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4-04-27~2024-05-27
종교50%
문학/출판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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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7%
문화 일반3%
  • 파나마 교도소 [횡설수설/이진구]

    러시아 오렌부르크주에 있는 ‘블랙 돌핀’ 교도소는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곳이다. 연쇄 살인범 등 종신형을 받은 흉악범이 수감되는데 죽은 뒤에는 교도소 내 공동묘지에 묻힌다. 음식은 빵과 수프가 전부고, 이동할 때도 90도로 허리를 굽혀 걷게 해 평생 하늘을 보기 어렵다고 한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한 교도소에선 수년 전 사기 혐의로 수감된 한국인 사업가가 1년 만에 사망했는데 사인은 영양실조였다. ▷21년간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 파나마 공항에서 붙잡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 씨가 22일 국내로 압송됐다. 스페인어를 써가며 한국인임을 부인하던 정 씨가 마음을 바꾼 것은 “파나마는 교도소 관리가 불안하다”는 우리 대사관 직원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위조여권으로 입국할 경우 해당국 법으로 처벌되기 때문이다. ▷파나마를 비롯한 중남미 교도소는 재소자들이 목숨을 걸고 수형생활을 한다. 파나마 교도소에서는 분기당 30여 명이 살인 에이즈 등으로 사망한다. 브라질 카란디루 교도소에서는 40여 년간 1500여 명이 살해됐는데 마약과 총, 수류탄까지 자유롭게 유입되고 동성 강간으로 에이즈도 만연해 있다. 워낙 악명이 높아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3의 무대가 된 파나마 교도소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온두라스 코마야과 교도소에서는 2012년 재소자의 방화로 358명이 사망했다. ▷국내 교도소·구치소는 중남미 교도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생활 여건이다. 곳곳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교도관이 24시간 순찰을 돌며 재소자 간의 폭행을 막는다. 새로 지은 수용시설에는 각 층마다 샤워실이 있다. 아프다고만 하면 언제든 의무실에 갈 수 있고 당뇨병 같은 지병이 있는 수용자에게는 교도관이 매일 시간 맞춰 약을 챙겨준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수백 통의 진정서를 보내고, 구치소를 상대로 엄청난 양의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재소자도 많다. 수감시설 주변에는 무료한 재소자들을 위해 만화책을 빌려주는 책방도 있다. ▷미결수들이 수용되는 구치소는 무죄 추정의 원칙 때문에 노역도 없고, 하루 종일 TV나 책만 보고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재소자들은 교도소보다 구치소 생활을 더 견디기 힘들어한다. 툭하면 불러내는 검찰, 늘어지기 일쑤인 공판 일정 등으로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기 때문이란다. 정 씨가 정말 파나마 교도소가 두려워 한국행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잡힐지 모르는 21년간의 도피가 마음이 편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더 고통스러운 감옥 밖 생활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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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구]열 살 된 5만 원권

    유럽중앙은행은 최고액권인 500유로(약 68만5000원)권 발행을 올 초부터 중단했다. 탈세 돈세탁 등에 악용되는 일이 많은 데다 실생활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2010년 영국 강력조직범죄연구소는 영국에서 500유로권의 90%가 범죄 조직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2009년 6월 23일 5만 원권 첫 발행 당시 지하경제가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한 온라인 쇼핑몰의 5만 원권 발행 전 개인금고 판매량은 월평균 30대 정도였는데, 발행 5년 후인 2014년에는 월평균 1500대로 늘었다. 발행 10년간 5만 원권의 누적 환수율도 50%에 그친다. 두 장 중 한 장은 어딘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2011년 4월에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110억 원어치 5만 원권 돈 뭉치가 발견되기도 했다. ▷5만 원권은 첫 발행 당일에만 1조3000억 원이 인출됐고, 백화점업계가 화장품 의류 등 5만 원짜리 상품만 따로 모은 ‘5만 원 마케팅’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할 일련번호 1∼100번을 제외한 2만 번까지를 인터넷 경매로 팔 정도였다. 그 인기는 여전해 지난달 기준으로 5만 원권은 국내 시중 유통 금액의 84.6%(98조3000억 원), 장수로는 36.9%(19억7000만 장)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폐다. ▷현재 쓰이는 지폐 중 가장 먼저 발행된 건 5000원권(1972년)이다. 1만 원권은 1973년, 1000원권은 1975년 발행됐다. 5000원권과 1만 원권은 1972년 함께 발행하려 했으나 당초 1만 원권에 도안된 석굴암과 불국사를 지금의 세종대왕으로 변경하면서 한 해 늦어졌다. 1970년 라면 1봉지가 20원이던 시절에 1000원권보다 5000원권이 왜 먼저 나왔는지는 미스터리다. 한국은행 발권국은 “기록이 없어 잘 모른다”고 했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이 3만∼4만 원이던 1970년대, 당시 최고액권이던 1만 원짜리 한 장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연인과 영화 보고, 밥 먹고, 차를 마시고도 많이 남았다. 하지만 5만 원권이 나오면서 씀씀이 심리도 크게 바뀌었다. 특히 5만 원권은 경조사비를 올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5만 원권 사용처는 경조금, 헌금, 세뱃돈 또는 용돈 등 개인 간 거래가 50.7%로 가장 많았다. 최근엔 10만 원권을 발행하자는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지만 선진국은 고액권을 없애는 추세다, 신용카드, 전자결제 등으로 인해 지하경제를 제외하곤 고액권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를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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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피해자 40여 명중 단 한명만 신고… 이게 성범죄 현실이에요”

    《1시간만 지나도 포털 사이트에 줄줄이 올라오는 각종 성범죄 뉴스들. 최근에는 한 남성이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 집에 침입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일명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이 공개되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통계상의 성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는데, 그 빙산은 얼마나 크고 심각한 걸까. 여성범죄 전문이자 ‘미친놈들에게 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의 저자인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이회림(필명·39·여) 형사는 “신림동 사건 같은 일은 아주 흔하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6세 때 동네 화장실에서 낯선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한 그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경찰이 됐다. 이후 일선 경찰서에서 성범죄 수사 전담 요원 등 여성범죄를 전담해 왔다. 》 ―신림동 사건 CCTV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는데 흔한 일이라니…. “암수범죄(暗數犯罪)나 피해자가 사건화를 거부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성범죄 통계는 빙산의 일각이다. 신림동 사건도 신고하지 않았다면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게 된다.” (성폭행은 친고죄가 아닌데, 경찰이 알면서도 수사를 못 한다니?) “법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피해 여성이 울며불며 하지 말아 달라는데 무시하기는 어렵다. 가족들이 받을 충격 때문에 그러기도 하고…. 그런 경우가 너무 많다.” 암수범죄는 범죄가 발생했으나 경찰이 모르거나, 알아도 용의자의 신원 파악 등이 안 돼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범죄다. 2017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강간 강제추행 등 성범죄는 모두 2만4100건이며 이 중 강간은 5223건이다. 이보다 훨씬 많은 범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 빙산이 도대체 얼마나 큰 건가. “통계를 낼 수 없으니…. 클럽에서 만난 여성들을 건드린 남자가 잡혔는데 피해자가 40여 명이나 됐다. 어떻게 알았냐면, 휴대전화에 어떤 식으로 했는지 적어 놨더라. 누구는 강간, 누구는 키스 이런 식으로…. 그중 신고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대부분 잊고 싶으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성병까지 옮았는데 신고를 안 한 경우도 있다. 이해가 안 가겠지만… 사실이다.” ―그 정도로 신고를 꺼리나. “원룸에서 함께 살던 두 여대생이 집에 침입한 한 남성에게 차례로 강간당한 사건이 있었다. 신고는 안 됐는데 다른 곳에서 잡힌 범인의 여죄를 추궁하다 알게 됐다. 피해자들에게 확인하니까 ‘맞다’고 하더라. 경찰서에 와서 진술해 달라고 했더니 ‘잊고 살고 싶다’며 안 나왔다. 이 때문에 두 여대생 사건은 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다.” ―신고가 적으면 실제 저지른 범죄만큼 처벌을 할 수가 없지 않나. “앞서 말한 40여 명을 건드린 범인은 5년을 살았다.” (40여 명에 고작 5년?) “한 명만 신고해 법정에서 진술했으니까…. 수사보고서에는 40여 명이 다 적혀 있지만 다른 피해자들이 나서지 않으니 판사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40여 명이 모두 신고했으면 5년만 나올 수가 있겠나. 법정에서 그놈 표정을 봤는데 엄청 반성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라. 가증스럽게…. 그놈이 출소 후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냐고….” (연락처를 저장한 것도 아닐 텐데 그놈인지 어떻게 알았나) “밑에 자기 이름을 적었으니까….” ―좀 소름이 돋는데… 그런 경우가 잦은가. “어두운 쪽 사람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이상한 문자나 전화는 자주 온다. ‘여보세요’ 하면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툭 끊는데…. 누군지는 모른다. 사건 관련자들일 수도 있고…. 그래서 연말쯤 이름과 전화번호를 바꿀 생각이다. 받아 놓은 이름이 있다.” ―책까지 썼는데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유가 그 때문인가. “워낙 다양하고 이상한 범죄자들을 많이 보니까…. 성범죄를 다루는 여경이라는 점에 자극돼 범행 대상으로 삼을 범죄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에서 가족들을 보호하고도 싶고, 얼굴이 알려지면 범인 검거에 지장도 있고. 죄송한데 양해해 줬으면 한다.”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할 때 제대로 저항을 못 한다고 하던데…. “‘긴장성 부동화’인데, 극도의 공포로 몸이 굳는 현상이다. 피해자 중 상당수가 저항하기보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더 든다고 하더라. 그래서 몸이 저항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경찰이 되면서 유도의 손목 빼기 기술을 배웠는데 순간 울컥했다. 이것만 알았어도 그렇게 맞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맞다니?) “대학생 때 남자친구가 엄청 때려서 경찰에 두 번이나 신고했다. 나쁜 놈….” ―필사적으로 저항하라고 했는데, 그러다 더 큰 피해를 입는 것 아닌가. “가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는 여성을 자기 손에 놓고 마음대로 하는 게 굉장히 짜릿하다는 것이다. 물론 납치돼 결박됐거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차분하게 기회를 노릴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장소에서는 깨물기라도 하면서 저항해야 도망치거나 살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태권도나 합기도를 배운다고 여성이 성폭행범을 제압할 수 있나. “잠깐 배운다고 그게 되겠나. 무술을 숙달해서 이기라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잡혀온 가해자들이 ‘못된 애들은 건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는 말을 자주 한다.” (못된 애들이라니?) “손을 대려는데 저항하고 거부하는 여성들을 그렇게 표현한다. 얼마 전 한 지인이 겪은 일인데, 버스정류장에서 취한 남성이 옆에 앉아 슬쩍 만지려고 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더니 ‘아이, 씨’ 이러면서 일어나 멀쩡하게 갔다는 것이다. 무술이나 운동을 하면 왜 이걸 하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이 위험한 순간이 왔을 때 몸이 굳어지는 속에서도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을 낳게 하는 것이다. ―홍익대 누드모델 몰래카메라 사건의 경우 성대결 양상까지 벌어졌다. “피해자가 남자라 경찰이 빨리 잡아줬고, 가해자가 여성이라 구속됐다는 건데…. 그 사건은 용의자가 교수와 학생들, 모델 당사자로 제한된, 아주 빨리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늦게 잡으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인데….” ―수사하는 입장에서 애로점이 뭔가. “경찰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순찰 경찰관에게 거의 어벤저스를 기대한다. 스웨덴 여행 중 친구가 카페에서 가방을 도난당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경찰이 아무리 빨라도 1시간 뒤에나 온다는 것이다.” (카페 주인이 그러던가?) “아니, 112에서. 스웨덴도 우리처럼 112다. 바로 신고 접수도 안 되고 연결에 연결을 해 간신히 통화가 됐는데 바빠서 그런 범죄는 빨라야 1시간 뒤에 도착한다더라. CCTV를 빨리 확인하고 싶으면 가까운 경찰서로 직접 가라며…. 나도 혼자 살아서 국내에서 신고를 많이 하는 편인데, 우리처럼 잘하는 곳은 드물다.” ―신림동 사건에서는 경찰의 안이한 대응이 문제가 되지 않았나(출동한 경찰은 피해자가 사는 건물 6층은 확인하지 않고 철수했다). “피해자도 만나고 좀 더 철저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신고 시간이 오전 6시 반쯤이던데… 그 시간이 밤을 새우고 퇴근을 두어 시간 남긴, 제일 피곤한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신고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라 좀 방심한 게 아닌가 싶다. 안타까운 건 그런 사건이 숱하게 벌어지는데도 시스템은 변한 게 없다는 점이다.” ―변한 게 없다니…. “프로파일링(범죄유형분석법)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거창한 말도 필요 없이 신림동은 대학생들이 많고 집들이 밀집한 지역 특성이 분명한 곳이다. 성범죄도 신림동 사건처럼 남자가 여성을 뒤따라가다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지역 특성에 맞는 범죄 예방 모델이 적용됐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나도 혼자 살아봤지만 밤에 철커덕 철커덕 하면서 문손잡이 흔드는 소리를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2007년 이전에 만든 전자키(디지털 도어록)는 건전지 두 개로 전기충격을 주면 잠금이 풀린다. 내가 직접 봤다. 얼마나 놀랐는지. 혼자 사는 여성들은 꼭 확인해 바꿔야 한다.” ―피해자 주변 사람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나. “가족이나 지인, 경찰 등 관계자들은 ‘왜 기억 못 하냐’ ‘시간 장소를 특정해야 하는데…’ 이런 말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진술이 정확해야 범인을 잡을 수 있으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지만,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그 순간 얼어붙기 때문에 100% 정확하게 기억할 수가 없다. 그런 말이 피해자를 더 위축시켜 진술을 흔들리게 한다. 진술이 흔들리면 수사가 제대로 되기 어렵다. 피해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들도 ‘잘 생각해 봐. 이거 아니었어?’ 이런 말을 해선 안 된다. 피해자들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에 빨리 잊고만 싶어 한다. 여기에 자기 진술도 확신이 없고, 수사 절차도 복잡하고 그러다 보면 중간에 포기한다. 진술 도중 ‘너무 힘들다. 신고 안 한 걸로 해 달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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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 얼굴이… 많이 어두워졌더라고…”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완벽한 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애정 어린 쓴소리가 필요하지만, 같은 편은 무조건 감싸고 반대편은 나쁘게만 보는 게 우리 정치현실이다. 정적(政敵)이라도 공정하게 대하고, 같은 편이지만 엄격하게 대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멘토’라고 불리는 송기인 신부(81)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2005년 사목(司牧) 일선에서 은퇴한 그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의 꽃향기가 좋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다. 그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두 사람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고, 노 전 대통령에게는 세례를 줬다. 》 ―문 대통령의 멘토라고 불리는데 당선되고 어떤 당부를 하셨습니까. “멘토는 무슨…, 그냥 친구고 동지지요. 당선 직후에 전화가 왔는데 그냥 끊었습니다.” (당선자 전화를 끊었다고요?) “문 대통령 번호를 내가 알잖아요. 번호가 뜨기에 받지 않고 그냥 끊었지요. 다시 걸진 않더군요.” (덕담이라도 해주시죠.) “그런 말 안 해도 이해할 만하니까…. 나한테 전화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얼마나 바쁠 텐데. 일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게 가장 위해주는 거죠. 나중에 봤을 때 ‘알았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때 왜 끊었는지 안다고…. 나중에 돈 모으지 말라, 친인척 관리 잘해라, 개혁은 끝까지 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라고 했지요. 선거 때 찍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끌어안으려면 스스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문 대통령은 열려 있다고 보십니까. 최근 들어 직접 발언하는 일이 많은데…. “얼굴이 당선 전보다 많이 어두워졌더라고요. 청와대 일이 많이 고된가 봐요. 답답해서 그럴 수도 있고…. 기다려 봐도 제대로 안되고, 시간은 자꾸 가고…. 간접적으로 그런 건의는 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이나 정기적으로 국민에게 직접 말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지난달 9일 KBS 대담을 하지 않았습니까?) “언론이 묻고 답하거나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을 통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걸 말하는 건데…. 옛날에 미국 대통령 중에 그런 걸 한 사람이 있어요.”※그가 말한 것은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노변정담(爐邊情談·따뜻한 난롯가에서 허물없이 나누는 이야기)이다. 대공황으로 은행 파산 위기가 닥치자 루스벨트는 대규모 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은행 휴업을 선포했다. 그리고 라디오를 통한 첫 노변정담에서 자신을 믿고 은행에 돈을 맡겨달라고 호소했다. 이 호소가 먹혀서 미국 전체 은행의 75%가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는 재임 중 30회에 걸쳐 노변정담을 했다. ―적폐 청산과 열린 정치가 다소 상충되는 면이 있지 않습니까. “잘못을 덮어 놓고 그냥 지나가면 사회가 발전할까요? 단지 제가 아쉬워하는 건 왜 좀 넓히지 못할까 하는 거예요.” (넓히다니요?) “저쪽 사람 생각이라도 좋은 건 채택해야 하는데 딱 금을 그어 놓고…. 예컨대 이명박 전 대통령 쪽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하면… 그런 사람은 일절 안 쓰는 것 같아요. 이 정권이…. 거기도 좋은 사람이 없을 수가 없잖아요. 개방해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서 써야지요. 이건 (기사에) 쓰지 마이소. 마∼ 답답한 얘기 또 한다고 그럴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게 제 마음속에서 참 아쉬워요.” ―문 대통령을 최근에 만나신 게 언제입니까. “노 전 대통령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아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청와대는 가지 않아요. 작년 8월 초 대통령이 경남 진해 해군기지 안에 있는 휴양시설로 휴가를 왔는데 초대하기에… 그냥 하루 저녁만 먹고 왔지요. 문 대통령이 ‘하실 말씀이 많지요’라고 했는데 ‘없다’고 했어요.” (대통령이 듣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글쎄요, 이미 언론에 다 나오고 대통령 자신도 알고 있을 텐데 내가 또 말해봐야 뻔한 얘기를 또 하는 것 아니겠어요? 휴가 온 건데 좀 쉬는 게 낫지 않나 싶었지요.”※당시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드루킹 사건으로 인한 노회찬 전 국회의원의 자살 등 굵직한 이슈가 연이어 터질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많았습니다. “없는 사람들에게 최저임금 만 원 주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이 안 되니까…. 줄 수 있게 정부가 만들었어야지요, 먼저…. 난 그게 참 아쉬워요. 자영업자나 중소영세기업들이 만 원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올려놓고, 그 다음에 올렸으면 어땠을까. 1, 2년 좀 늦어지더라도…. 그런 아쉬움이 있어요.” (대통령 만났을 때 조언을 좀 해주시지요.) “그 애긴 아까 했고….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이루고 싶었던 세상이 공평한 사회인데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단지 집집마다 전부 만 원씩 받는 게 공평사회가 아니지요. 어떤 사람은 더 받고, 어떤 사람은 덜 받아도 공평하게 느끼는 게 중요한 거거든요. 그걸 이루기가… 참 어려운 일인가 봐요.” ―현 정부 들어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가 11명이나 낙마했습니다.(마침 인터뷰 전날인 28일 대통령인사수석, 법제처장 등에 대한 인사가 있었고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전에 다른 데에도 ‘인사가 그렇게밖에 안 되나’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사실 문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죠. 과거 노 전 대통령 때 사람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그러더군요. 결함이 없는 사람이 없는 거죠. 문 대통령한테 누굴 추천해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그런 공직자의 결함이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왜 야당이었을 때는 그렇게 공격했던 겁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꿈같은 생각인데…. 예컨대 보수 쪽이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쓴다면, 그 사람이 진보 정부를 도와주는 것 아닙니까. 보수 정부도 마찬가지겠지요. 자기 사람을 만들어 쓸 생각을 해야 할 건데…. 저쪽 편이어서 안 되고, 이래서 안 되고 그러면….” (우리 정치는 진영 논리가 너무 강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지요. 진영이 달라도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데려오면, 그 다음부터 자기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게 넓어지는 거고. 쉽지는 않겠지만….” ―현 정부가 많이 지적 받는 것 중 하나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불법·폭력집회를 계속하는데도 너무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불법·폭력집회는 확실하게 대응해야지요. 제가 좀 노조 편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하하하.” (뜻밖입니다.) “며칠 전에 포항에서 노조 쪽 사람들을 만나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현대 같은 대기업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봉급 수준을 생각하면 귀족이잖아요. 그에 걸맞게 노동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얼마나 했고, 실제로 향상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노동자들도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몇 시간 더 일하니까 얼마 더 다오’ 이런 생각으로는 사회가 발전할 수 없지요.” (민노총은 스스로 촛불정부의 공신이라고 합니다만…) “(불법·폭력집회가) 무슨 촛불정신입니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이 다 끝난 뒤에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3년 후면 대통령 또 바뀌잖아요. 그 다음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한 일이 아니니까 좀 부담을 덜 가지고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요.” (형량이 나오는 대로 다 옥살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정치권에는 두 전직 대통령 문제를 내년 총선과 연계한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는데요. “난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거, 저 놀고 있는 국회 좀 없애면 안 되겠어요? 하하하. 저렇게 놀면서 세비는 다 받아 가잖아요? 너무 돈이 아까워….” (민주당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얘기를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민주당 사람들 난 잘 몰라요. 노 전 대통령 추도식도 난 당일은 안 가요. 그 전에 다녀오지.” (문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아십니까.) “전혀 모르고…. 본 적도 없고, 어디 사람인지도 몰라요.” ―꼭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물어보시고 (대답은 할 테니) 쓰지 말아 달라고 하면 안 쓰면 되겠지요, 하하하.” (지금 적폐청산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복수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문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통령은 몰라도 그 아래 사람들에게서는 보이는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는 저도 자신이 없고….” 그는 한참 동안 멈춘 뒤 말을 이었다. “지금 소위 대통령 측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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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구]‘구글 베이비’

    2017년 11월 주네팔 한국대사관 홈페이지 ‘안전여행·생활정보’ 코너에 이례적인 공지가 떴다. 인도에서 대리모 출산이 불법화되면서 일부 한국인이 인도에서 대리모를 구해 배아를 착상시킨 뒤 네팔에서 출산해 네팔 당국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사관 측은 네팔은 대리모 출산을 인신매매와 같은 수위로 처벌하고, 아이는 바로 보육원으로 보낸다고 경고했다. 지난 14년간 이 코너에 오른 공지는 100건에 불과하고, 대부분 지진 고산병주의 등 여행 관련이어서 ‘대리모 주의’ 공지는 더욱 ‘쇼킹’했다. ▷대리모 출산 문제가 국내에서도 불거졌다. 10여 년 전 한 재력가 부부의 아이를 낳은 대리모 A 씨가 출산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하다 공갈,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대학생 시절 대리모 알선 인터넷 카페를 통해 부부를 만난 A 씨는 8000만 원을 받고 출산했지만 이후 돈이 필요할 때마다 협박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대리모 출산은 불법이다. 하지만 A 씨처럼 체외 수정된 부부의 배아를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켜 낳은 경우는 명확한 법 규정이 없어 브로커만 처벌받았다. ▷독일 스페인 등은 대리모가 불법이지만 영국은 비상업적으로 허용하고,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동성 결혼을 한 엘턴 존은 대리모를 통해 아들 둘을 얻었다. 영국의 캐럴 홀록이란 여성은 불임 부부들을 돕고 싶다며 대리모로 13명을 낳았다. 대리모가 허용돼도 최소 10만 달러(약 1억2000만 원)에 달하는 출산비용이 부담인 선진국 부부 중에는 아프리카나 동유럽, 동남아시아 여성을 통해 낳기도 하는데 이를 ‘구글 베이비’라고 부른다. 구글이 본사만 미국에 두고 일은 하청으로 개도국에서 하듯, 아기도 이런 식으로 낳는 것을 빗댄 것이다. 2010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동명의 고발 영화가 출품됐을 정도니 전 세계적으로 이미 심심찮게 벌어지는 현상인 듯하다. ▷인간의 욕망과 급격히 발달하는 기술을 윤리와 제도가 발맞춰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14년 태국 여성을 통해 쌍둥이를 낳은 호주인 부부는 한 아이가 다운증후군에 걸리자 정상 아이만 데리고 출국해 전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한 미국-이탈리아 레즈비언 부부는 기증받은 정자로 올 초 해외에서 각각 아이를 한 명씩 낳았는데 미국 정부가 미국 여성이 낳은 아이에게만 시민권을 줘 현재 소송 중이다. 불임이 많아지는 데다 동성 결혼까지 늘면 대리모 출산도 더 늘어날 수 있다. 아기의 몸은 가볍지만 생명은 절대 가볍지 않다. 너무도 무거운 문제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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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구]에베레스트 교통체증

    최근 에베레스트 정상 모습을 찍은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좌우 수천 m가 넘는 낭떠러지 외길을 등반객 수백 명이 빽빽이 줄을 지어 오르는 모습에 “합성사진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사진은 네팔 산악인 니르말 푸르자가 네팔 쪽 코스에서 정상에 오르기 위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등반객의 모습을 찍은 진짜였다. 전문 산악인들도 평생의 숙원으로 여겼던 에베레스트 등정이 이제는 해마다, 특히 5월이면 일명 ‘데스 존(death zone)’이라 부르는 정상 부근 병목 지점에서 ‘교통체증’을 앓을 정도의 대중적 코스가 됐다. ▷1977년 9월 15일 산악인 고상돈이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뒤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고 한 무선 메시지에 온 국민이 환호했던 감동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요즘은 상업 등반업체들이 일반인도 돈만 내면 ‘어떻게 해서든지’ 정상에 오르게 해준다고 한다. 업체와 고용한 셰르파 수에 따라 다르지만 약 3만5000∼5만 달러를 내면 산소통 식량 등 짐을 다 날라주고, 크레바스에 사다리까지 놔주기 때문에 등반객은 배낭만 메면 된다. 정상까지 이르는 300여 m 외길에는 아예 로프가 설치돼 잡고 오를 수도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날씨가 좋은 날이 매우 적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에 따르면 과거에는 정상의 기상 예측을 감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등반 실패가 많았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도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산 곳곳은 물론이고 정상에도 와이파이 공유기가 설치돼 있어 좋은 날씨가 예측되면 다같이 등반에 나선다는 것이다. ▷올해 에베레스트에서는 10명이 강풍이나 추위, 추락 등이 아닌 이 교통체증으로 사망했다. 병목 지점은 한 사람이 간신히 걸을 폭밖에 안 돼 중간에 누군가 쓰러지거나 주저앉기라도 하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보통 6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게 산소통 2개를 준비하는데, 병목 지점에서 오래 기다리다 보면 고산병과 함께 산소 결핍으로 인한 호흡 곤란을 겪는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 등반을 하려면 최소한 하프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한겨울에 최소 24시간 이상 산행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필요하다. 네팔 정부도 초보자 고령자 장애인 등에 대한 등반 제한을 검토했지만 관광수입 감소 우려로 흐지부지됐다. 마라톤도 출전 자격과 인원수를 제한하는데 해발 8000m급 고지를 오르는 데 아무 제한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말 교통경찰이라도 배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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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플라 알아?” 교통 인프라 ‘세계 최하 수준’ 北지도자의 최신 트렌드

    2015년 7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노동당 제 1비서)은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를 방문해 “한평생 인민행 열차를 타고 험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제1비서 생각이 갈마(번갈아)든다. 좋은 철도에 편히 모셨다면 이다지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밀어 줄 테니, 그 열차에 오르던 위대한 수령님들을 모시는 심정으로 최단기간에 지하전동차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석 달 후인 2015년 10월, 자체 개발한 새 전동차를 보기 위해 다시 찾은 김정은이 갑자기 간부들에게 “오플라(opla)가 뭔지 아나?”고 물었다. 오플라는 넉 달 전인 같은 해 6월 미국 디자이너 파테메흐 바테니가 공개한 1인용 ‘스탠딩 체어’ 이름이다. 선 채로 엉덩이만 살짝 걸치는데다, 앉는 부위가 실리콘이라 미끄러지지 않아 허리에 부담이 적다고 한다. 높이도 3단계(23, 27, 31인치)로 조절할 수 있다. 답변을 하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는 간부들 앞에서 김정은은 오플라가 건강에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듬해 1월 1일, 평양에서 이 신형 지하전동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전에 없던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을 만들고, 자칭 인민 친화적으로 손잡이와 의자를 분홍색으로 칠했지만 당시 북한이 공개한 홍보영상과 지난해 일본 교토통신이 공개한 평양 지하철 영상에 오플라 의자는 없었다. 김정은이 당시 시찰에서 “전동차가 미남자처럼 잘생겼다”며 전체적으로는 만족한 걸 보면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바테니의 오플라는 당시 한국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허리 디스크 등을 예방하는 기능성은 있지만 1인용이라 많은 사람을 대량 수송해야하는 대중교통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간부들이 알았더라도 이미 완성돼 김정은이 시운전 행사까지 참여한 전동차 내부를 다시 뜯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신 트렌드인 ‘오플라’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BBC의 자동차 오락프로그램인 ‘탑 기어’를 즐겨봤고, 수 천만 원짜리 고급술과 명품 시계, 요트 등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다니 그런 트렌드를 접하다 알았을 지도 모른다. ▷철도 사정이 열악한 북한에서는 평양~함경북도 청진(약 700㎞)까지 공식열차 시간표 기준으로 27시간 43분이 걸린다. 의식주도 최빈국 수준이다. 김정은 스스로 “흰 쌀밥에 고깃국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평생 염원”이라고 한 게 불과 두 달여 전이다. 나라는 식량 원조를 받아야 할 처지고 교통 인프라는 세계 최하 수준으로 낙후됐는데, 최고지도자는 최신형 의자 스타일을 꿰면서 이를 강조하니 뭔가 어색하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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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이계안 위원장 “미래차 지원, 현대차에 특혜주는 걸로 여기는 정치인 있어”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노사 간 대립은 함께 죽는 길이다. 윈윈(win-win)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근 울산에서 열린 미래차 시대 관련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현대자동차 노조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차 시대가 어떻기에 강성인 현대차 노조 간부까지 ‘상생’을 말하는 걸까. 이계안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미래차 대응 태스크포스(TF)팀 위원장은 “미래차 시대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축복일지 재앙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현대맨 출신인 그는 현대석유화학 상무, 현대건설 부사장, 현대자동차 사장 등을 역임했고, 17대 국회의원(당시 열린우리당)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래차를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와 함께 3대 신성장 기둥이라고 했는데, 미래차란 정확하게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 “하하하. 아직은 잘 모른다. 세계적으로도 ‘이것이 미래차다’라는 정의는 아직 없다. TF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정부가 가진 그림은 있을 것 같아 보여 달라고 했는데 이런저런 개념은 있는데 딱히 ‘이거다’라는 건 없다고 하더라. 자율주행과 전기화, 차량 공유경제 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첨단 자동차 시대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미래차와 함께 격변할 인류의 산업지도와 삶 전체를 포괄해 생각해야 한다.” (설명이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숱한 발명품 중에서 여성 해방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세탁기라고 한다.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줬으니까. 자율주행시대가 오면 사람은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차량 공유경제는 자동차 소비를 크게 줄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 산업과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이런 광대한 변화까지 포괄해야 하다 보니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그런 중장기 고민을 위해 TF를 만들었다는 건가? 보기 드물게 기특한데…. “지난해 말 핫이슈였던 광주형 일자리 문제를 대통령일자리수석이 담당했다. 나도 관여하고 있었고…. 또 경제수석실은 수소연료전지차를 담당했는데 둘 다 결국 현대·기아자동차가 상대였다. 그래서 내가 대학 동기동창인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걸 통합하면 더 포괄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포괄적인 접근이라니?) “광주형 일자리를 단순히 값싼 노동자를 고용해 차를 만드는 걸로 보지 말고, 다가올 미래차 시대에 노사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도적인 모델로 만들자는 것이다. 수소차는 자동차 연료를 바꾸는 것을 넘어 인류의 에너지 공급원이 바뀌는 데까지 확산될 수 있다. 각각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다루지 말고 이런 더 큰 목적과 방향을 갖고 통합해 접근하자는 취지였다.” ―일자리위원회 아래 있는 이유가 자동차 산업 근로자의 구조조정에 대비하기 위해서인 것처럼도 보이는데…. “별도의 총괄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일자리위원회 아래에 있으니까 마치 미래차로 인한 일자리만 다루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대통령이 위원장인 이 위원회를 잘 활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처 간 의견 조정, 자료 요구 등도 대통령 이름으로 하면 훨씬 수월할 테니까.” ―전기차, 자율주행차 이야기는 많이 나왔는데 왜 지금 미래차가 중요해진 건가. “유럽연합(EU)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말 2030년까지 신차(승용차 기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1년 대비 37.5% 감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1년까지 EU에서 파는 모든 신차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km당 95g을 넘으면 안 된다. 그 5년 후는 81g, 또 5년 후는 67g 이하로 낮춰야 한다. 가솔린은 말할 것도 없고, 디젤차로는 도저히 이 기준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된 거다. 그리고 이 전환이 다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독일 폭스바겐은 2026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 개발을 하지 않고, 2040년부터는 내연기관차를 팔지 않겠다고 했다. 다임러와 BMW도 2025년까지 전기차 25종을 출시하겠다고 예고했다. ―더 큰 변화란 에너지 생산 기반의 전환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궁극적으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화석연료를 쓰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는 클린에너지지만 전기 생산과정에서 화력발전은 미세먼지를 발생시킨다. 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수력발전은 비중이 작고 댐을 만들면 또 환경 파괴가 생긴다. 액화천연가스(LNG)는 너무 비싸고…, 결국 미래차 시대는 에너지 기반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신재생 에너지는 안정적 공급이 어렵고, 우리는 국토가 좁아 태양광에 불리하지 않나. “물론 우리나라는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불리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 윗세대는 철도, 기술도 없었지만 포스코(포항제철)를 만들었다. 내가 1988년 현대석유화학에서 공장 만들 때 책임자였는데, 그때 화공과 출신들이 미쳤다고 했다. 원료도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만드느냐고….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것 중 하나가 석유화학 제품이다.” ―전기를 사온다는 건가. “얼마 전 남호주 정부 사람을 만났는데 한국이 전기를 사가면 어떻겠냐고 묻더라. 호주는 광활한 땅을 이용해 태양광 전기를 엄청나게 생산한다. 포항제철과 석유화학처럼 전기도 못 할 게 뭔가. 일본은 내년 도쿄 올림픽을 수소에너지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예산과 인프라를 늘리고 있다. 우리는 석유 석탄 우라늄 등 에너지 원료의 97%를 수입하는데 그걸 전기로 바꾸면 안 될 게 뭔가.” ※일본은 올해 수소에너지 사회 구축을 위한 예산을 지난해보다 33% 늘렸다. 2030년까지 수소 가격을 3분의 1로 낮춰 내수시장을 형성하고, 다시 전 세계로 수출한다는 전략이다. ―정부가 미래차를 위해 각종 지원을 하면 결국 현대·기아차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것 아닌가. 더욱이 당신은 현대차 사장 출신인데…. “정부가 그런 지원을 하면 현대·기아차가 가장 크니 결과적으로는 가장 큰 이득을 보긴 할 거다. 하지만 이게 전체 국가를 위한 투자이지 개별 회사에 특혜를 주자는 게 아니지 않나.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주면 현대차가 특혜를 본다는 식인데…. 개별 회사가 그 엄청난 에너지 인프라를 깔고, 전기를 수입할 수는 없지 않나. 일본이나 미국은 자동차 회사가 많으니까 각자 전기차든, 하이브리드차든, 수소차든 맡아서 한다. 그런데 우리는 현대·기아차 혼자 다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권이나 정부에서는 미래차가 신성장 동력이라고 하면서도 ‘현대차 돈만 벌어주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자는 현대차를 위해 국가 예산을 쓴다고도 한다. 더욱이 정치권이든 현대차 사람들이든 두려워하는 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직권남용죄 때문에 나중에 세상이 바뀌면 자신들도 그렇게 될까 봐 몸을 사린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나?) “실제로 있다.” ―당신이 위원장이 된 이유가 뭔가? 현대차 사장 출신이어서인가. “형식적으로는 TF 위원들이 투표 같은 걸 했지만…. 내가 위원들에게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20년 주기로 큰 위기를 맞고 살아난 과정을 이야기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국내 자동차 산업이 구조조정 위기를 맞았을 때, 현대가 반대로 30만 대 생산공장을 지어 성공한 것, 1998∼99년 외환위기 직후 현대도 정리해고를 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지만 역으로 기아차를 인수한 것 등이다. 기아차 인수할 때 내가 현대차 기획조정실장(사장)으로 책임자였고 인수 뒤에는 현대차 사장을 했다. 다시 20년이 지난 2019년 지금도 그때 같은 위기이자 기회인 때가 왔다고 말했는데 위원들이 그럼 그 경험을 살려 당신이 해보라고 하더라. 어떻게 하다 보니 현대에서 오일뱅크 인수에도 관여했고, 현대중공업에서 석유화학 공장 만드는 것도 하다 보니 좀 이것저것 에너지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있고….” ―미래에 전기차, 자율주행차 시대가 올 거라는 건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일 아닌가? 왜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늦었다고 그러는 건가. “사실 늦었다고는 하지만 늦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가 아니고, 기존 시장에 뛰어드는 입장이라 뭘 먼저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렇다.” ―미래차 시대가 축복일지 재앙일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새 기술로 인한 일자리는 물론 생긴다. 좋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이 40% 정도 적다. 여기에 차량 공유경제가 접목되면 차를 안 사는 사람이 많아질 테니 생산량도 줄게 된다. 일자리가 준다는 뜻이다. 부품업체, 하청업체, 카센터, 주차장 등 차와 관련된 분야는 물론이고 건축설계나 관련 제도 등 파생적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축복일지 비극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피해 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는 카풀 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도 재앙이고….”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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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구]고맙다, 이상화

    ‘빙속 여제’ 이상화(30)의 허벅지에는 얼굴처럼 선글라스를 끼울 수 있다. 허벅지 둘레가 약 60cm에 달해 웬만한 마른 여성의 허리둘레 정도 되기 때문이다. 이는 피나는 훈련의 결과물이다. 보통 여자 선수들은 스쾃을 120∼140kg 정도로 하는데 이상화는 170kg가량으로 했다. 폭발적인 스타트 훈련은 초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인 모태범과 함께 했다고 한다. ▷이상화는 애초에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운동을 하고 그만둘 뻔했다. 부모님으로서는 같은 운동을 하던 오빠(이상준)까지 둘을 지원하기 힘들었던 것. 하지만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동생을 위해 상준 씨는 대신 운동을 포기하며 어머니께 “상화 뒷바라지 잘해 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집 지하실에 작업공간을 차려 봉제 일을 하며 딸의 운동을 지원했고, 새벽마다 도시락을 들고 연습장을 찾았다. 밴쿠버, 소치 겨울올림픽 500m 2연패, 평창 겨울올림픽 500m 은메달, 그리고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2013년 월드컵 2차전에서 세운 500m 세계신기록(36초36)…. ‘살아 있는 전설’ 이상화의 기록은 이처럼 피나는 노력과 가족들의 헌신적인 배려로 만들어졌다. ▷이상화가 16일 은퇴식을 갖고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화려한 영광 뒤엔 일반인은 상상도 하기 힘든 중압감이 있었다. 경기도 하기 전에 모두 금메달로 정해 버려 밤새 잠도 못 자고 벌벌 떨어야 했고, ‘반짝 금메달’이란 말을 듣기 싫어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다음 올림픽까지 내리 4년간 훈련만 해야 했다. 특히 지난해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었다. 고질적인 무릎·종아리 부상에 시달렸고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기도 했다. “마음은 나가는데 발끝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가족에게 울고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화는 절치부심했다. 초반 100m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10년 이상 써 온 금색 날을 높이가 낮은 파란색 날로 교체했다. 평창에서 은메달을 딴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루 7차례 울리게 맞춰 놓은 알람을 꺼버린 것이었다. 기상, 오전·오후 훈련 등 하루를 철저히 설계했던 이상화는 은퇴식에서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2000년 전국동계체전에서 남자 선수나 여자 중학교 선수들을 능가하는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초등부 500m, 1000m를 석권한 뒤 근 20년간 한국 빙속의 신화를 써오면서 어린 소녀, 젊은 아가씨가 감내해야 했던 중압감과 의지, 투혼이 느껴져 국민들도 마음이 찡했고, 고마웠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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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 현장칼럼/이진구]처벌과 교화 사이… 포기해선 안될 ‘우리의 믿음’을 보았다

    우리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믿음을 갖고 있을까. 범죄에 대한 처벌은 어느 선까지가 타당한 것일까. 피해자를 대신해 속이 후련할 정도로 처벌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교화에 무게를 둬야 하는 걸까. 혹시나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난달 22, 23일 경기 수원구치소에서 교도관 체험을 했다. 그곳은 ‘밖’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요즘 콩값 비싸서… ‘콩밥’ 못줘요” 구치소는 재판 중인 사람들이 형이 확정될 때까지 수감되는 곳이다. 하지만 수용 문제 때문에 구치소에도 기결수가 있고, 교도소에도 미결수가 있다. 지상 8, 9층짜리 2개 동으로 구성된 수원구치소에는 1700여 명이 수감돼 있다. 대부분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미결수들인데, 내란 선동 등의 혐의가 확정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57)이 6년째 수감 중이고, 최근에는 마약 투약 혐의로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31)가 들어왔다. 교도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침 TV에 황 씨와 함께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 씨(33)가 나왔다. “저분도 곧 여기 오나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수사하니까… 아마도….”(박 씨는 3일 합류했다.) 경기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는 ‘범털’, 수원구치소는 ‘개털’이 주로 수감된다는 속설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맞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서울구치소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 피의자들이 수감되는데 서울지법에서 재벌, 정치인 등 중요 인물 사건을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서울구치소에는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고 노태우 전 대통령,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도 이곳 동문들이다. 수감자들이 먹는 식사 그대로 저녁을 먹었는데 ‘콩밥’이 아닌 ‘찐밥’과 돈육제육볶음, 상추쌈이 나왔다. “저, 콩밥은 안 줍니까?” “요즘 콩이 비싸서… 못 줘요.”(올 1분기 콩값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4% 올랐다.) 수감자들은 자기 방에서 배식을 받아먹는다. 기상은 오전 6시 반이고, 오후 9시 반 이후는 취침. 미결수는 작업이 없기 때문에 방 안에서 TV나 책을 보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가수 정준영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화책을 보며 지낸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모든 미결수에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19금 등의 문제만 없으면 만화책도 반입이 가능하다. 단, 공간이 좁아 1인당 약 30권 정도만 허용된다고 한다. 구치소에도 도서관이 있어 책을 빌려주는데 소설보다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한국의 소수자 운동과 인권정책’ ‘이중섭 평전’ 등 수준 있는 책이 더 많았다. ―수감자들이 이런 책을 본다고요? 전시용 아닙니까? “심심하니까요. 어려운 책 많이 봐요. 그래도 가장 많이 보는 책은 국어사전과 옥편이죠.” (왜요?) “법률 용어가 어렵잖아요. 재판 준비하느라….” ‘장첸’같은 미결수 7, 8명이 등뒤에 엄중 계호 수용동 순찰 시간. 일명 ‘징벌방’인데 수감 중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만 따로 모은 곳이다. ‘감방’에서 또 무슨 사고를 칠까 싶지만 워낙 다양한 인간들이 모이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고 한다. 과거에는 요구르트 구입이 가능했는데 재소자들이 요구르트에 빵을 넣어 발효해 술을 만들어 마신 뒤로는 금지됐다. 알갱이가 600개라 콘택 600이다, 아니다를 놓고 싸워 징벌방에 들어온 경우도 있다. 내기를 걸고 셌는데 600개가 안 되자 진 쪽이 분해서 때렸다고 한다. 자살 기도는 물론이고 스스로 못이나 바늘을 삼키는 자해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지나가는 교도관에게 침을 뱉거나, 수감자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징벌 차원에서 혼자 또는 2인으로 수감하는 곳이다. 여기서는 면회는 물론 TV 시청도 금지된다. ‘감방’ 속의 ‘감방’인 셈인데, 다른 수감자들과 부대끼지 않아 선호하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견디기 힘들어한다고 한다. 잠시 들어가 본 징벌방 벽에는 ‘×같다 징벌방, 다신 안 온다’ ‘3월 28일 징벌방 출소일. 부러워하지 마라 시간 금방 간다’는 등의 낙서가 가득 적혀 있었다. 나가 봐야 다시 원래 있던 감방으로 돌아가는 것뿐인데도 이렇게 나가기를 염원하다니…. 일반 수용자는 낮 동안은 면회, 재판 출석, 의료실 이용, 상담 등으로 이동이 많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영화 ‘범죄도시’의 장첸 같이 생긴 미결수 7, 8명이 안에 있었다. 왠지 뒤에서 누군가 머리를 내리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인마 오원춘도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한다. 재소자 관리는 마약범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이들은 ‘남한테 피해 준 것도 아니고 내 몸에 한 건데 뭐가 잘못이냐’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잘 안 한다는 것. 또 구치소에서는 약을 할 수가 없어 정신상태도 다소 불안하다고 한다. 황 씨는 어찌 지내고 있는지…. 여성 수감자들은 3, 4층에 있는데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징벌방을 담당하는 류주형 교위는 “폭력범들은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처럼 으스대는 자기 과시욕이 많고, 절도범들은 의외로 대범하다”며 “‘욱’ 해서 저지르는 범죄 유형일수록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도 잘한다”고 말했다. 수감되면 대부분 마음이 굉장히 좁아진다고 한다. 식사 시간에 고기 한 점 더 먹었다고 주먹다짐도 일어난다는 것. ‘설마’ 했는데 실제로 다음 날 기상 시간 직전에 ‘마약방’(마약 사범만 있는 방)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10분 더 남았는데 깨워서란다. 불안감도 특징인데 형이 확정되지 않은 탓도 있고, 밖에 있는 애인이나 아내가 변심할까 봐 걱정하는 것도 이유라고 한다. 그래서 거의 매일 편지를 쓰는 사람이 많은데, 겉봉에 무지개색으로 만화를 그리고, 우표로 꽃을 만들어 붙인 것도 있었다. 자신이 이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무심코 보고 있는데 등기로 신청한 편지 겉봉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만약 아무도 받지 않는다면, 대문 옆 ○○○에 놓아주세요.’ 의료실 이용도 잦은데, 교도관 말로는 수감자들은 자기 몸을 끔찍이 챙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뾰루지지만 “혹시 잘못되는 것 아니냐”며 의료실 진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진찰을 받으려면 방에서 나올 수 있어 이것도 이유라고 한다. 국가마저 처벌로만 다룬다면…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강력·흉악범죄가 빈번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처벌과 사전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화와 인권을 위해 수용시설을 개선해야 한다고 하면 “범죄자가 죗값을 받아야지 무슨 처우개선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야간 순찰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 매일같이 범죄자를 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지 궁금해 동행한 이희관 교위에게 물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강한 처벌과 열악한 처우로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게 결국 복수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피해자가 있는데…. 처벌에 복수의 개념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죽을 때까지 가둬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나올 사람들인데…. 가혹한 처벌만 받고 달라진 게 없다면….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요.” 온갖 범죄자를 보다 보니 그도 인간성에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눈물로 참회했던 사람이 출소 뒤 가족보다 더 옥바라지를 도운 지인을 돈 때문에 살해해 다시 들어오는 걸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강력·흉악범일수록 어릴 적부터 가족과 주변에서 버려지고 학대받은 경우가 많아요.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늘 분노가 잠재돼 있고 언젠가 터져 나오지요. 가정 학교 사회에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 건데, 가장 마지막 보루인 국가마저 처벌로만 다룬다면….” 철문을 나섰다. 담장 하나 차이인데 공기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매일 출퇴근하는 교도관들도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현재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기·미결수는 약 5만 명. 사람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은, ‘사람은 바뀔 수 있고,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배신당할 때가 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수많은 전쟁과 범죄를 겪으면서도 거꾸로 가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마음 때문이 아닐까. 많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그들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교화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이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는지.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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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김종수 본부장 “노벨상요? 솔직히 좀 기대하긴 합니다, 하하하”

    《지난달 10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블랙홀(M87 은하) 관측사진이 공개되면서 과학계가 흥분에 휩싸였다. 혹자는 달 착륙에 비견될 정도의 업적이라고도 한다. 전 세계 과학자 200여 명이 참여한 이번 블랙홀 관측 프로젝트에는 한국천문연구원 김종수 전파천문본부장 등 국내 연구진 8명이 참여했다. 김 본부장은 국내 연구진을 선발하고 연구에 참여시킨 주역이다.》  ―‘문송’합니다만 블랙홀 사진을 찍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요. “그동안 우리가 영화나 책에서 본 블랙홀 모습은 전부 그림이나 그래픽이거든요.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상상도지요. 블랙홀은 중력이 아주 강해 빛도 빨아들이기 때문에 볼 수가 없어요. 그런 블랙홀을 관측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직접적인 증거를 통해 확인했다는 게 가장 큰 의의죠.” ―빛도 빨아들여서 볼 수 없는 블랙홀을 어떻게 찍은 겁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블랙홀을 찍은 게 아니고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을 찍은 거죠. 블랙홀은 볼 수가 없거든요.” (이벤트 호라이즌요?) “음… 블랙홀 주변은 바다의 소용돌이처럼 빛을 포함해 물질들이 회전을 하며 빨려 들어가는데, 아직 빨려 들어가지 않은 빛이 고리 모양으로 경계를 이룬 곳이죠. 이번에 관측된 것이 바로 이 ‘이벤트 호라이즌’이고, 블랙홀은 그 안에 있지요.” ※이벤트 호라이즌은 이번 블랙홀 관측 프로젝트 이름이기도 하다. 물리학에서는 ‘이벤트 호라이즌 안쪽=블랙홀’로 여긴다. ―빛도 중력에 의해 휘어지고 빨려 들어간다는 게 신기합니다. “어떤 빛이 태양을 지나 우리에게 보일 때 태양 중력의 영향이 없다면 직선으로 움직이겠죠. 그런데 1919년 영국의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이 개기일식 때 태양 너머에서 온 빛이 태양의 중력 때문에 휘는 것을 발견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 전체로 보면 태양은 약한 중력에 속하기 때문에 블랙홀처럼 아주 극단적인 강한 중력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 확인된 거죠.”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영향을 받는다면, 정말 블랙홀을 통한 시간여행도 가능한 겁니까?)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로 여행하는 사람의 시간은 이곳에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천천히 간다고는 했지만 시간여행을 말한 건 아니거든요. 아직까지는 시간여행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혹시 상사하고 술 먹으면 시간이 안 가는 것도 그런 현상입니까?) “그건, 절대 아니죠. 하하하.” ※강한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휜다는 게 191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번에 관측된 M87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65억 배라고 한다.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습니까. “이번 연구에 미국 스페인 칠레 멕시코 남극 등에 있는 8개 전파망원경이 사용됐습니다. 그중 하와이에 있는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망원경(JCMT)을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네 나라 주요 천문대가 모여 만든 동아시아관측소란 곳에서 운영을 하고 있지요. 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칠레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도 우리가 2014년부터 운영비를 내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관측소 책임자인 폴 호 박사가 프로젝트 얘기를 듣고 연구자들을 모으면서 제게 참여를 권유해 시작됐지요. 국내 연구진은 제가 모았고요.” ―이번에 사용된 전파망원경이 지구 규모라고 하던데요. “망원경이 해상도를 높이려면 최대한 빛을 많이 받아야 해요. 천문대 망원경이 아주 큰 이유가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 이번에 관측한 M87 블랙홀은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진 아주 먼 곳에 있기 때문에 블랙홀을 관측할 정도로 해상도를 높이려면 지구 정도 크기의 망원경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큰 망원경을 만들 수는 없지요. 대신 그만 한 크기의 망원경처럼 효과를 내도록 장비를 운용한 게 이번 프로젝트입니다.” (8대로 어떻게 그런 효과를 낼 수 있습니까?) “쉽게 말하면…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에 우주에서 보면 한 대의 전파망원경 위치는 궤적을 그리게 됩니다. 이렇게 8대의 전파망원경에서 장기간 수신한 정보를 다 모아 듬성듬성한 모자이크를 맞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사진처럼 촬영했다’가 아니라 ‘정보를 합성했다’가 더 맞는 표현일 겁니다. 전 지구에 흩어져 있는 8대의 망원경 연구자들과 정보를 슈퍼컴퓨터로 분석해 이미지로 만들다 보니 연구자가 200여 명이나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전파망원경을 서로 연결하는 게 어려운 일인가요. “여러 개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한다는 개념은 1974년에 나왔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크고 우수한 전파망원경이 별로 없었어요. JCMT도 1987년 운영을 시작했고요.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의 셰퍼드 돌먼 박사가 이번 프로젝트의 총괄단장인데, 전 지구에 흩어져있는 망원경들을 다 섭외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7, 8년 전 미국 하와이, 애리조나, 멕시코에 있는 망원경 3개로 처음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블랙홀 이미지를 얻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남극 망원경(SPT)과 칠레 망원경이 참여하면서 가능하게 됐지요. 특히 칠레 알마(ALMA) 망원경이 큰 역할을 했고요.” ―연구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하하하.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고산병 대비는 좀 했지만….” (고산병요?) “칠레 알마 망원경이 해발 5000m에 있거든요. 3000m에 식당 숙소 같은 일종의 베이스캠프가 있는데 여기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하죠. 하지만 망원경 있는 곳까지 올라가려면 국내에서 고지대에 올라가도 이상 없는 상태인지 진단서를 떼 가야 하고, 현장에서도 혈압 측정 등 건강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못 올라가죠. 올라가는 날은 작은 산소통을 하나씩 주는데 4000m 정도부터는 계속 써야 해요. 올라가서는 달리기도 하면 안 되고요. 제 경우에는 머리가 좀 띵한 정도였지 별 문제는 없었어요. 하와이 맥스웰 망원경도 해발 4000m에 있지요.” ―전파망원경은 일반 망원경과 다를 것 같은데 높이에 영향을 받습니까. “전파망원경은 습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고지대일수록 습기가 적은데, 칠레 알마 전파망원경이 있는 아타카마사막이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지요.” (에베레스트산에 만들면 가장 좋지 않습니까?) “건설하기도 어렵지만 항상 유지 보수를 해야 하는데 누가 그 장비를 짊어지고 가나요? 하하하.” ―이번 블랙홀 관측이 노벨상감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 말도 있긴 한데… 하하하. 이번 관측이 왜 과학적으로 중요하냐면, M87 블랙홀처럼 엄청나게 중력이 강한 곳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죠. 블랙홀 이미지를 얻기까지의 국제적인 협력, 과정 등도 아주 의미 있는 일이고요. 블랙홀과 블랙홀이 충돌할 때 나오는 파장을 관측해 블랙홀의 존재를 실증한 연구는 노벨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좀 조심스럽지만 노벨상을 받을 만도 하다고 생각하고… 기대도 좀… 있지요.” ※2017년 라이너 바이스 미국 MIT 명예교수, 배리 배리시와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 3인이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해 발생한 중력파를 관측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 자문을 맡은 사람이 킵 손 교수다. ―우주과학 분야가 참 매력 있는 분야인 것 같은데 우리 교육과정에서는 별로 가르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어렵기도 하고…. “우주에 관한 책으로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가장 유명한데 두 가지 기록을 갖고 있지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장한 우주과학 책이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가는 책이라는…. 하하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상대적으로 잘 풀어 쓴 책이죠. 그 책을 번역한 홍승수 교수님이 제 지도교수셨는데 얼마 전 뵀더니 그 책 인세가 치료비를 도와주고 있다고 웃으며 말하시더라고요.” (우주가 대폭발로 만들어졌다면 그 대폭발은 어디서 발생한 겁니까?) “모르지요. 하하하. 단지 대폭발(빅뱅)이론을 만들게 된 관측 증거는 있는데… 지구에서 보면 다른 은하들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거든요. 우주가 이렇게 팽창하는 이유는 뭔가 최초의 폭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거죠. 최초 폭발 지점은… 찾고는 싶지만 못 찾으니까. 그거 찾으면 진짜 노벨상이겠죠. 하하하.” ※1988년 출판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는 9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코스모스’를 번역한 홍승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는 지난달 15일 별세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뭔지는 모르겠는데 엄청나게 똑똑해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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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구]잘린 김영철

    “어이, 준장!” 1990년 9월∼1992년 9월 8차례에 걸쳐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당시 군사분과위원회 북한 측 대표인 44세의 김영철 소장(73)은 우리 측 대표인 박용옥 준장에게 회담 내내 “준장이 뭐야? 그건 거의 장군이 아니잖아”라며 하대했다. 북한군 소장은 별 하나로 우리의 준장과 같지만, 용어 때문에 자신이 우리 군 소장급인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김영철이 네 살이나 더 많은 박 준장을 “남쪽 준장”이라 부르며 계속 건방을 떨자 1992년 5월 7차 회담을 앞두고 박 준장을 소장으로 승진시켰다. 김영철은 별 두 개를 달고 등장한 박 소장을 보고 머쓱해했다고 한다. ▷2016년 북한의 대미·대남 업무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에 김영철이 임명됐을 때 당시 공식적인 북한 내 서열 2위는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었지만 실제로는 김영철이 더 실세라는 소문이 돌았다. 김영철은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의 보좌역을 하는 등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이 밥투정을 할 때부터 지켜본 몇 안 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초급장교 시절부터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를 맡는 등 한미 군사훈련, 주한미군 문제 등을 체득할 기회가 많았다. ▷김영철이 최근 통전부장에서 해임됐다. 하노이 회담 노딜은 ‘무오류’여야 하는 김정은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고 그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 새 통전부장인 장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은 대남 민간교류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중-러 밀착과 남북 관계를 통해 미국에 맞서겠다는 김정은의 책략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장금철의 첫 작품으로 보이는 통전부 소속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25일 내놓은 대변인 담화는 ‘남조선 당국의 배신적 행위’ 운운하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채워졌다. 통전부의 대남 비난 담화는 지난해 1월 23일 이후 처음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김영철은 정치군인에 불과하다. 북-미 외교와 남북 관계 총책이라는 자리는 분에 넘친다. 나중에 숙청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천안함 폭침의 배후인 김영철은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남 정치꾼인’으로 불릴 만큼 협상 중에도 도발 등 뒤통수를 치며 골탕 먹이는 데 능란했다. 천안함 폭침 문제를 다룬 2014년 10월 남북군사회담에 수석대표로 나타나는 뻔뻔함을 지녔다.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열차 여행을 또 해야 하냐”며 불쾌해했다고 한다. 김영철이 아직 당 부위원장과 국무위원은 유지하고 있지만 해임을 넘어 숙청까지 이어질지 관심거리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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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오토바이 타다 다쳤냐 묻기도 해요… 그렇게 잊혀지는 거겠죠”

    《올 1월 말, 2015년 8월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수색 작전 중 북한이 매설한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전 중사(25)가 전역했다. 부사관인 그는 사고 후 국군수도병원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패럴림픽 조정 금메달이란 더 큰 꿈에 도전하기 위해 보장된 군 생활을 포기했다. 17일 경기 하남시 미사리 조정카누경기장에서 만난 그는 내년 도쿄 패럴림픽을 향해 힘차게 노를 젓고 있었다.》  ―안정적인 군 생활이 보장됐는데, 주변에서 전역을 말리지 않던가요. “안 말리기는요. 3분의 2는 다 말렸지요. 선수 생활이 끝나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그래서 한 반년 정도 부모님을 설득하면서, 동시에 주변에 계신 분들에게도 거의 전부 다 물어보고 의견을 들었어요. 부모님을 설득하기는 했지만 저 자신도 고민을 많이 했지요. 이 길로 갔다가 만약 메달도 못 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걱정하는 측면에서 보면 반대하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요.) “지지해준 분들도 꽤 있었어요. 이종명 의원님 같은 분들은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했지요. 육군참모총장님도 많이 챙겨주셨고…. 다행히 23일 SH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장애인 조정팀을 창단하는데 거기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이종명 국회의원은 군인 출신으로 대령이던 2000년 6월 경기 파주 비무장지대에서 부하를 구하다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같은 부상을 입은 하 전 중사 병문안을 계기로 친해졌다고 한다. ―가슴을 자주 만지는데 몸이 좀 안 좋습니까. “훈련하다 부상을 좀 입었어요. 수요일 오후, 주말 오후만 제외하고는 매일 훈련을 하고 있거든요. 배를 탈 때 스트랩으로 가슴을 꽉 묶고 숙인 채 노를 젓다 보니 가슴이 계속 눌려서 약간 다친 것 같아요.” (다리는 좀 어떻습니까.) “환상통 때문에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고 있어요. 비장애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절단 부위가 아픈 신경계통 질환인데, 절단 환자들만 아는 통증이죠.” ※환상통은 절단된 부위가 가벼운 불편감부터 극도의 통증까지 느끼는 것. 절단부 통증과는 다르며 절단 환자 중 상당수가 겪는다고 한다. 그는 사고 후 약 1년간 입원하며 무려 21차례 수술을 받았다. ―재활 훈련은 했지만 의족을 차고 생활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의족을 차면 비장애인일 때 걷는 것보다 한 3배 이상 힘들어요. 쉽게 생각해서 나무 장대에 올라 걷는다고 생각하면 비슷하죠.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그렇지만 시선이나 무심코 던지는 말이 더 아쉬울 때가 많아요.” (말?) “모든 장애인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어떻게 하다 다쳤느냐’고 물으면 좀 껄끄러워지는 경우가 많지요. 저도 좀 그렇고….” (왜 다쳤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까.) “하하하. 돌아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지금은 다 잊혀졌지요. 물어보면 말은 해줄 수 있는데…기분은 좀…. 꼭 한두 명씩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오토바이 타다 다쳤냐’고…. 근데 그게 꼭 ‘너 좀 놀았구나’ 하는 식으로 들려서…. 그런 뜻은 아니더라도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왜 다쳤냐고 묻는 건 실례가 아닌가 싶어요.” ―사고 당시를 묻는 질문도 여전히 많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지뢰에 대해 잘 몰라서 밟아도 발을 안 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지뢰는 밟으면 압력 때문에 그 순간 그냥 터져요. 발을 뗐다고 터지는 게 아니라. 부비트랩도 건드려서 이미 ‘틱’ 하는 소리가 난 순간 안전핀이 뽑혀 바로 터지지요. 아슬아슬하게 줄만 건드리고 있는 그런 상태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고…. 부사관 교육 때 지뢰 교육을 받는데, 불과 일주일밖에 교육을 안 받은 제가 훈련 때 지뢰를 묻어도 다른 사람들이 찾지 못했어요. 제가 밟은 목함지뢰는 상자가 나무로 만들어져 지뢰탐지기에도 잘 안 나타나고….” ―군 복무 중 사고를 당한 분들과 자원봉사 모임을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아직 정기적인 자원봉사 모임으로 발전한 건 아니고…친구들끼리 술 한잔하다가 찬호가 연탄배달 자원봉사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을 뿐인데 소문이 좀 크게 났어요.” (찬호요?) “2017년 8월 K-9자주포 폭발사고로 부상을 입은 이찬호 예비역 병장요. 찬호가 사고를 당했을 때 위로할 겸해서 병문안을 갔는데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친하게 지내기로 했어요. 다른 친구들도 다 군에서 부상을 입은 친구들이에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지인들에게 연탄배달 자원봉사 취지를 알렸더니 약 30명이 모였지요. 연탄배달 봉사는 처음이었는데 땀도 엄청 나고 많이 힘들더라고요. 저는 움직이기가 좀 힘들어서…. 차에서 연탄을 내려주는 일을 했고요. 너무 특별하게 보지 않았으면 하죠. 그냥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을 한 걸로 봐주면 좋겠어요.” ―과거에 조정을 한 적은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사고 후 대한장애인조정연맹에 계신 분들이 병문안을 왔어요. 원래 알던 분들은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재활운동에 도움을 주려고 왔나 보다 생각했지요. 조정 선수들은 로잉머신으로 연습을 하는데, 달리기를 하기 어려운 절단 환자들에게는 유산소 운동으로 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데 퇴원 후 시간이 나서 한번 별생각 없이 타봤는데, 아∼ 이게 웬걸? 아주 재미있더라고요. 제 안에 있던 운동 본능이 솟아나는 것 같기도 했고요.”(운동 본능요?) “중학교 때까지 투수로 야구 선수를 했으니까요. 보트를 타고 강 위에 혼자 떠 있는데 그 기분도 너무너무 좋았고요. 내친김에 경기에 나갔는데 생각도 못 한 금메달을 따 버렸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힘으로 탔는데… 하하하. 그 뒤로 이 길에서 승부를 봐야겠다고 결심했죠.” ※로잉머신(rowing machine)은 조정 선수들이 실내에서 노 젓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기구다. 그는 지금까지 5개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땄다. ―조정에도 여러 종목이 있던데요. “싱글스컬(Single Scull) PR1 종목에 출전하고 있는데, 싱글스컬은 쉽게 말해 혼자 노 두 개를 젓는 것이고, PR는 장애 등급이에요. PR1, 2, 3까지 있는데 제가 속한 PR1은 척추마비같이 허리 아래는 전혀 쓰지 못하고 거의 어깨와 팔로만 노를 젓는 가장 장애가 심한 상태를 말하지요.” (보트도 비장애인용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폭이 비장애인용보다 좀 더 넓고, 양옆에 배가 뒤집히는 것을 방지하는 기구가 달려 있어요. 비장애인은 노를 저을 때 몸이 앞뒤로 움직이는 슬라이딩 의자를 사용하지만, 장애인은 고정식 의자에 스트랩(strap)으로 몸을 묶고 타는 게 다르지요. 몸이 흔들려서 물에 빠지면 안 되니까요.” ―내년 도쿄 패럴림픽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망은 어떻습니까. “최종 목표는 패럴림픽인데 지금은 일단 8월에 열리는 오스트리아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 대회에서 7등 안에 들어야 올림픽 출전권이 나오거든요. 조정은 바람 같은 외부 요인의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기록은 큰 의미가 없고…, 그래서 지금으로선 좀 예상하기 어렵지요. 열심히 훈련할 뿐….” ※장애인조정에는 싱글스컬 외에도 두 명이 노 2개씩을 젓는 더블스컬, 두 명이 노 하나씩을 젓는 무타페어, 타수(舵手)와 선수 4명으로 구성된 유타페어가 있다. 조정 장비는 국내 생산 업체가 없어 무척 비싸다고 한다. 그가 타는 배만 약 2000만 원, 노 한 쌍에 200만 원 정도다. 이 때문에 개인이 구입하기는 어렵고 연맹이나 시도에서 지원해준다고 한다. ―장애인 조정 국가대표 선수가 많습니까. “개인전에 저와 저랑 같은 장애등급인 김세정 선수, 그리고 단체전 혼성팀 5명, 이렇게 7명이 현재 장애인 조정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목에 나갈 정도로 선수가 많지는 않거든요.”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들이 참가하고, 성대한 행사를 치렀는데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솔직히 저도 사람인데…, 좀 착잡한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국가적으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단지 (북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쪽에도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좋겠는데…. 아마 저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을 겪은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일 거예요.” (원망은 안 들었습니까.) “하하하.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사람인데…. 하지만 최대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또 그렇게 살고 있고요.” 그의 사고를 계기로 최장 30일이던 군인의 민간병원 요양비 지급 기간이 일반 공무원 수준인 2년으로 바뀌었다. 또 복무 중 부상으로 인한 보상금도 대폭 올랐다. 국방 외에도 우리 사회가 그와, 그처럼 복무 중 사고를 당한 이들에게 진 빚이다. 그가 내년 도쿄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우리는 또 감동을 받고 삶의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해줬을까.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과연 지키고 있는지….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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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구]배드 파더스

    지난해 이혼 후 자녀 양육을 맡은 사람 10명 중 7명이 전 배우자에게서 단 한 푼도 양육비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고도 “돈이 없다”며 ‘배 째라’식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로또에 당첨되거나, 인터넷 방송 활동 등으로 재산이 수십억 원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살길이 막막한 한 어머니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배드 파더스(Bad Fathers)’에 도움을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하는 걸 보며 무서운 게 없어졌다. 고소를 당하든, 뭘 하든….” ▷배드 파더스는 장기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전 배우자의 실명과 사진, 직업, 직장, 미지급 금액 등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아는 정보에 따라 거주지와 나이, 개명 전후 이름까지 공개하기도 한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약 600명이 의뢰했고 이 중 94건을 해결했다. 장기 미지급자 중에는 엄마도 있지만 80% 이상이 아빠라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현재 160여 명의 신상이 공개돼 있다. ▷미지급 양육비를 받으려면 개인이 소송을 하거나,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 소송은 돈이 많이 들고,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처리에 평균 2년 정도가 걸린다. 소송 전에 재산 명의를 바꿔놓는 것은 나쁜 아빠들에게는 흔한 수법이다. ‘더 나쁜 아빠’들은 소송에 지면 두세 달 정도만 주고 다시 끊는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대방이 또 소송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려서다. 선진국에선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 범죄로 간주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미국은 운전면허 정지 또는 취소와 함께 이행하지 않은 양육비를 계산해 세금 환급 시 강제 징수하거나 계좌 압류를 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최장 2, 3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지급제를 시행하는 나라도 많다. ▷국가가 이렇게 나서 주니 선진국에선 배드 파더스 같은 사례는 찾기 어렵다. 배드 파더스의 신상공개는 물론 법 위반이다. 이 단체의 한 활동가는 9건의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법을 어기는 활동을 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전남편의 보복이 무서워 소송은 물론이고 정부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의지할 수단이 없다는 점은 딜레마다. 이런 사이트가 불필요한 사회가 되도록, 국가가 적극 나서서 ‘나쁜 아빠들’이 방기한 아이들의 생존권을 우선적으로 지켜내야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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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젊음아, 말뚝에 묶인 코끼리가 돼선 안 돼!”

    《시놉시스=황혼에도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까칠한 노배우 ‘신구’. 기삿거리를 찾지 못해 상사에게 늘 욕을 먹는 말년 말단 기자인 ‘나’. 해고 위기에 몰린 ‘나’는 기자 인생을 역전시킬 거물급 인터뷰를 하기 위해 노배우에게 접근하는데…. 세대를 초월한 교감과 위로, 까칠한 노배우가 젊은이들에게 애정을 담아 건네는 속 깊은 이야기. 출연=신구(83), 나 / 공연일=2019년 4월 8일 / 관람료=800원》  S#1 (F·I) 연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 위. ‘신구’와 ‘나’가 소품으로 쓰이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구=내 기사를 쓰겠다고? 할 얘기도 없는데…, 기자들 물어보는 게 다 비슷하더라고. 나=(당황해 우물쭈물하며) 저…, 그래도…. 몇…가지 좀…. 신구=알고 싶은 게 뭔데? 나=‘신구’가 예명인지는 몰랐습니다. 신구=원래 이름은 신순기인데, 1962년 남산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 1기생으로 들어갔을때 만들었어. 첫 작품을 앞두고 이름이 좀 촌스러운 것 같아서 극작가 동랑 유치진 선생께 예명을 부탁했더니 한 달 정도 후에 ‘이거 써봐’ 하시더라고. 그게 ‘久(오랠 구)’였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몰라. 안 가르쳐주시더라고. 어려워서 묻지도 못했고. 나=처음에는 아나운서를 지망하셨다고요. 신구=제대 후에 뭘 할까 고민하다 아나운서에 끌려서 당시 명동에 있던 시청각교육원을 다녔어. 그때 우연찮게 연극아카데미 모집 광고를 봤는데 기왕이면 배우가 더 나를 ‘맛있게’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서. 벌써 57년 전이구먼. 전무송 반효정 이호재 등이 우리 동기지. 나=수재들만 간다는 경기중고교를 나오셨더군요. 신구=그랬대. 하하하. 선생님 잘 만난 인연으로…. (선생님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서울대 법대를 다니면서 교사를 하셨는데, 그 양반 눈에 내가 가난하지만 공부를 시키면 잘 할 것 같아 보였나 봐. 우리 반 세 놈을 골라 경기중학교 시험을 보게 했는데 두 명이 됐지. 내가 외우는 건 참 잘했어. 수학도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 외워 풀었으니까. 수학을 아주 싫어했거든. (외워서 풀었다고요?) 그러니까 (서울대) 떨어졌지. 두 번 떨어졌어. 허허허. ※그는 경기고 52회로 고건 전 국무총리,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이 동기다. 서울대 상대에 떨어진 뒤 성균관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중퇴했다고 한다. 나=주변에서 연극하는 걸 반대했을 것 같은데요. 신구=많이 반대했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으니까…. 만약 연극을 안 했다면 아마 봉산탈춤 인간문화재가 됐을 거야. (봉산탈춤요?) 젊을 때 봉산탈춤을 배웠거든. 1968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서 1년간 탈춤도 소개하고 현대무용도 배우고 공연을 했지. (공연을 할 정도로 영어를 잘하셨나 봅니다) 음…, 단역인데 대사는 없는…. ※그는 봉산탈춤 예능보유자인 김진옥에게 전수받았다. 2013년 예능프로 ‘꽃보다 할배’에서 파리 개선문 위에서 이 춤을 춰 화제가 됐다. 나=허스키한 목소리가 특징인데 원래 목소리입니까. 신구=이게 연습해서 만들어진 건데…, 미성은 아니지만 관객이 듣기 좋게 갈고 닦고 연습해 만들어진 결과지. 한참 연기 배울 때 지금은 돌아가신 바리톤 이인영 선생님께 발성법을 배웠는데, 지금도 목이 잠기면 방문을 닫고 낼 수 있는 한계까지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고 있지. 나는 재주는 대부분의 사람이 거의 같다고 봐. 단지 누가 더 노력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재주만 믿고 노력하지 않아서 망한 사람 많이 봤다고. (F·O) S#2 (F·I) 젊을 적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씩 흥이 나기 시작한 노배우. 이제는 스스럼없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신구=지금 ‘앙리 할아버지와 나’란 연극을 하고 있는데…, 이 연극이 참 재밌어. 앙리는 까칠하고 괴팍하고 고집불통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노인인데… 내게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고. (젊을 때부터 아버지나 할아버지 역을 많이 하셨다고요) 주연을 맡을 조건이 아니니까. 나는 배역을 받는 쪽이지 선택하는 쪽도 아니고. (1969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연으로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는데요) 그건…, 얼굴이 상관없는 배역이라…. 인상이 강해서 젊을 때는 간첩, 파계승, 인민위원장, 악당 같은 까맣고 빨간 역할이 죄다 내 차지였어. 햄릿이나 멜로 작품은 안 오고. (죄송한데 얼굴 때문에?) 죄송하긴 사실인데…. 불륜역도 얼굴이 돼야 하지. 나=50년이 넘게 연기를 해왔는데 아직도 아쉬운 점이 있습니까. 신구=날카롭게 조목조목 지적하는 비평이나 리뷰에 대한 갈증이 있어.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콕 집어서 이렇게 해달라는 말을 잘 안 합디다. (잘해서 아닌가요) 경험은 좀 있겠지만, 완벽할 수는 없는데…. 그런 지적이 있으면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텐데, 공연은 공동작업이니까 나이나 경험에 구애받지 않고 할 말은 하면서 작업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항상 부족하지. 작품 속 모든 인물과 상황을 경험해본 게 아니니까. 재공연도 마찬가지고. 먼저 한 것과 똑같이 하면 의미가 없지 않겠소? 새로운 해석을 넣고, 더 살찌워서 풍부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야지. (그래서 파마를 하신 건가요) 어떻게 하면 괴팍한 프랑스 할아버지 느낌을 줄 수 있을까 해서…. 난 원래 파마를 해본 적이 없어. 작년이랑 올해 이 작품 때문에 했지. 하하하. 나=‘니들이 게 맛을 알아?’란 햄버거 광고 대사는 지금도 패러디되는 유행어인데 원래 유머 감각이 있으신가요. 신구=하하하. 광고는 히트 쳤는데 정작 햄버거는 망했다고 하더라고. 그 광고도 그렇고, 시트콤(‘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도 평소 나와는 좀 다른 연기였는데… 그 또한 내 안에 내재된 모습이 아닌가 싶어. 연기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녹아들 수밖에 없지. 특별히 과장된 역할이 아닌 한, 대부분 자신의 본래 모습을 바탕으로 캐릭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TV에서 보여지는 모습도 내 인격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연기를 통해 보여진다고 믿고 있어. (F·O) ※‘니들이 게 맛을 알아?’는 2002년 공전의 히트를 친 롯데리아 크랩버거 CF 카피다. 광고가 워낙 유명해져 출시 한 달 만에 550만 개나 팔릴 정도로 인기였으나 기존 생선버거와 큰 차이가 없는 데다 가격도 비싸 오래가지 못하고 단종됐다. S#3 (F·I) 지그시 눈을 감는 노배우.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는지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나=무척 바쁘실 텐데도 매니저가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신구=(눈을 뜨며) 응? 지금껏 한 번도 없었는데…. 젊었을 때부터 촬영 있으면 직접 의상 들고, 택시 타고 갔으니까. 지금은 이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소속사도, 매니저도 생겼지만 난 처음부터 그렇게 훈련돼서 그런지 굳이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이 많을 것 같은데요) 없어. (네?) 하하하. 없어. 이거(‘앙리 할아버지와 나’)하고, ‘장수상회’(연극) 지방 공연을 다니고 있고, 얼마 전에 영화 ‘천문’을 찍었고, 드라마는 없고…. 광고도 광고주가 자주 틀어서 많아 보일 뿐이지 많이 찍은 건 아니야. 누구는 그 정도면 바쁜 거 아니냐고 하는데 몸에 배서 그런지 난 별로…. 나=실례지만 연세에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을 하시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팔로어는 19만6000명이나 되는데 팔로는 왜 한 명도 없습니까. 신구=하하하, 작년에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회사에서 홍보해야 한다고 인스타 뭐라는 걸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게 뭐냐고 물으니까… 개인 사진 뭐 뭐라고…. 난 그게 뭔지도 몰랐어. 회사에서 만든 거지. 그러니까 팔로가 하나도 없는 거고. 하하하. 나=젊은이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신구어록’이 인터넷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신구=젊은이들이 실패할 걱정 때문에 도전도 못 하지는 않았으면 해. 이번 연극에서 떨어질까 봐 음악학교 지원을 주저하는 콘스탄스에게 앙리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어. ‘난 자네가 서커스단 코끼리 같아 보여. 그 큰 덩치로 어릴 때부터 말뚝에 묶여 꼼짝달싹 못하는 코끼리. 이제는 지 힘으로 뽑아버릴 수도 있는데 못 해. 왜 그런 것 같아? 그건 말이야,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이미 포기한 코끼리 자신의 생각 때문이야’라고. 어려워도 말뚝을 뽑는 젊은이들을 보면 부럽고 자랑스럽지. 잔소리지만… 삶이란 건, 성공이나 실패로 가를 수 있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얼마나 매사에 열심히 사랑했느냐, 그거지. 나=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 제게는 뭐 해주실 말이 없으신가요. 신구=이제 상사에게 혼나지 않아도 되지? 물끄러미 무대를 바라보는 신구. 조용히 문밖으로 사라진다. (F·O)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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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구]대변인의 靑테크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피자 한 판씩을 쏘겠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8·2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9·5, 10·24, 12·13 등 부동산 정책이 줄을 이었다. 넉 달여 후 기재부에는 청와대에서 보낸 피자 350판이 배달됐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듬해 7월 2일, 재개발 예정지인 동작구 흑석동의 2층 상가건물을 25억7000만 원에 매입했다. 공교롭게도 며칠 후인 7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여의도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한 달 후인 8월 첫째 주 용산구와 영등포구의 아파트 값은 0.29%로 서울 전체에서 가장 많이 올랐고, 그 사이에 낀 동작구도 0.21%로 급등했다. 김 대변인은 같은 달 22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부동산 동향에 대해 김수현 사회수석을 중심으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8·27, 9·13, 9·21대책이 연이어 발표됐다. ▷김 대변인은 흑석동 건물을 사면서 은행 대출 10억2000여만 원, 사인 간 채무 3억6000여만 원 등 16억4580만 원의 빚을 냈다. 지난해 2월 대변인 임명 때 신고 재산이 약 12억 원이었으니 재산보다 많은 빚을 내 건물을 산 것이다. 청와대 관사로 이주하면서 기존 거주 주택의 전세보증금(4억8000만 원)도 건물 매입비에 보탰다. 일반인들로선 엄두를 내기 힘든 과감한 투자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주요 공직에 임명되면 있던 부동산도 처분하기 마련인데, 현직에 있으면서 새로 상가를 구입한 점이다. ▷원래 청와대 대변인에겐 관사가 제공되지 않았으나 문재인 정부 첫 대변인인 박수현 현 국회의장 비서실장 때부터 생겼다.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 시절 서울 집값이 비싸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충남 공주 출신인 박 대변인에게 경호실에서 사용하던 빌라를 관사로 제공했다고 한다. 서울에 살던 후임 김 대변인이 가족과 함께 관사에 입주한 것이 적절한 처신이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관사를 마련해준 취지가 전세보증금을 빼 더 큰 집을 사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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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아직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해결하기는 힘든데…”

    《미세먼지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해결 방안으로 ‘인공강우’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서해상에서 중국과의 공동 인공강우 실험을 지시하면서 관심이 더 높아진 상태. 듣기에는 그럴듯한데 과연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제거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나 효과가 있는 것일까. 국내 인공강우 실험을 총괄하는 주상원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우리 인공강우 수준은 이제 막 자료를 축적하는 기초단계”라며 “지금 수준으로는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립기상과학원을 찾은 13일 제주 서귀포의 낮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모자가 날려갈 정도의 바람에 씻긴 탓인지, 얼마 전까지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도 체감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자체 오염원이 적다 보니 내륙에서 미세먼지가 극심할 때도 제주는 절반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과학원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극심했던 4∼10일 미세먼지(PM10) 주간 평균이 서울은 101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인 데 비해 제주는 58μg으로 절반 정도였다. 초미세먼지(PM2.5)도 서울은 주간 평균 69μg인데 제주는 38μg이었다. ―이달 초 미세먼지가 워낙 심하다 보니 ‘피미족’이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아무래도 제주는 미세먼지 피해가 적을 것 같은데…. “자동차 공장 등 자체 오염원이 별로 없으니까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느낌은 잘 못 받는다. 심한 날 한라산이 좀 뿌옇게 보이고 민감한 사람은 목이 좀 칼칼한 정도? 미세먼지가 심하면 육지는 온통 누렇게 되지만 여기는 수증기와 결합해 하얀색이다.”(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가 많은 편인가?) “중국과 그리 먼 거리는 아닌데 기류 탓인지 그렇게 심한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바람 탓에 흩어지니까 더 못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이날 오후 서귀포의 미세먼지는 43μg으로 보통 수준이었지만 바람 탓인지 체감으로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기자는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 미세먼지에 민감한 편이다. ―주간 평균은 낮았지만 5일 하루는 118μg까지 올라갔는데…. “여기도 나쁠 땐 아주 안 좋은데, 바람이 세다 보니 오래가지는 않는다. 다음 날인 6일에는 바로 절반 수준인 49μg으로 떨어졌다. 올해 차량 2부제도 5일 하루밖에 안 했다. 비상저감조치도 없었고…. 생활할 때는 잘 못 느끼는데, 내륙에서 미세먼지가 심하면 제발 좀 줄여 달라는 민원 전화가 많이 오니까 그럴 때 실감하기는 한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써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미세먼지 농도는 좋음 0∼30, 보통 31∼80, 나쁨 81∼150, 매우 나쁨 151 이상(단위 μg), 초미세먼지 농도는 좋음 0∼15, 보통 16∼35, 나쁨 36∼75, 매우 나쁨 76 이상이다. ―미세먼지 피해가 갈수록 커지다 보니 인공강우가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래 인공강우는 가뭄 해소 대책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 인터넷 언론 등에서 중국 태국에서는 인공강우 기술을 활용해 미세먼지를 제거한다고 언급했고, 그러면서 인공강우가 마치 미세먼지 해결책인 것처럼 인식됐다. 우리가 먼저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기상학계 전문가들은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줄이는 건 요원하다고 본다.” ―하지만 1월에 인공강우로 미세먼지 제거 실험을 하지 않았나. 당시 관심이 매우 높았다. “원래 1월 20∼25일 중에 인공강우 실험이 계획돼 있었다. 그런데 1월에 워낙 미세먼지가 심하다 보니 환경부와 얘기하면서 겸사겸사해서 같이 실험은 할 수 있다고 한 거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인공강우가 성공하면 그로 인한 세정 효과도 측정할 수 있을 테니…. 그런 취지였다. 비가 내리지 않아 실패했지만….” (인공강우의 성공 실패 기준이 뭔가?) “실험 목표가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면 내리면 성공이고 안 내리면 실패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단계가 아닌 아직 연구 단계다. 구름 속에 구름씨(요오드화은)를 살포한 뒤, 그 구름씨가 어떻게 성장해 물방울이 되는지 등을 관측해 데이터를 모으는 수준이다. 아직 성공, 실패를 말할 단계가 아닌데 갑자기 워낙 관심이 뜨거워지다 보니 성공 실패란 단어를 쓰게 됐다.” ―인공강우든 자연 상태든 어느 정도 비가 내려야 미세먼지가 제거되나. “실제 인공강우로 미세먼지 제거에 성공했다는 논문이나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다 시뮬레이션인데…. 천차만별이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10mm 이상 두 시간 정도는 세차게 내려야 효과가 있다는 것도 있고, 또 어디서는 1mm도 두 시간가량 내리면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비로 미세먼지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고기압으로 대기가 정체된 날이 많다. 고기압이면 구름이 별로 없다. 인공강우 조건에 잘 안 맞는 거다. 그래서 인공강우가 미세먼지의 주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보고하고 있다.” ―미세먼지 제거도 인공강우가 성공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우리는 보통 평균 1mm 정도 나오는데…. 작년에 처음 우리 비행기로 항공 실험을 했는데 12번 중 9번 성공했다. 2017년 6월 충북 충주에서 했을 때는 시간당 2mm 정도 내렸는데 가장 많이 나온 수치다. 적은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양이다. 예를 들어 서울 여의도에 한 시간 동안 1mm가 내렸다면 물의 양은 약 450만 t에 달한다. 1월 서해에서 한 인공강우 실험도 대상 지역 넓이가 여의도의 약 180배였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내리니까 체감하기 어려운 것이지, 다 모으면 엄청나게 많은 양이다.” ―우리 비행기로 항공 실험을 한 게 지난해가 처음이라고? “지난해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샀으니까…. 13인승 크기다.” (그 전에는 기상청에 관측비행기가 없었나? 얼마나 비싸길래….) “조종사, 정비, 실험 등을 다 포함해 1년 운영비가 19억 원 정도 든다. 인공강우 실험만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분야 실험도 함께 하는 공용이다. 태국 기상청은 인공강우 실험용으로만 31대, 중국은 소형은 뺀 중대형 비행기만 50대가 있다. 중국 기상청은 인공강우 실험을 위한 로켓도 5000대 이상 갖고 있다고 들었다.” (태국도 31대라고?) “거기도 건기에 가뭄이 드는 곳이 많다. 그래서 인공강우 연구가 활발하다.” ―한 대로는 충분한 실험이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나라는 보통 두세 대가 함께 떠서 하나는 구름씨를 살포하고 나머지는 뒤따라가며 빗방울 형성 과정을 관측한다. 한 대로 하면 구름씨를 뿌린 뒤 다시 돌아오며 관측해야 하는데 지역이 넓은 데다 비행시간이 3∼4시간밖에 안 돼 제대로 관측하기가 어렵다.” (비행기를 사기 전에는 어떻게 했나?) “1, 2인용 경비행기를 임차했는데 비행기가 작아 관측 장비를 설치할 수가 없어서 구름씨만 뿌리고 관측은 지상에서 했다.” (구름 속 상황은 측정하지 못한 건가?) “못했다. 작년에 비행기를 사면서 구름 속을 분석한 게 처음이다.” (이제 걸음마인데 대통령이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것 같은데?) “하하하.” ―대통령이 중국과의 공조를 주문했는데 중국이 좀 우호적인가. “작년 11월에 중국 기상과학원 기상조절센터를 방문했는데 중국도 인공강우를 이용한 미세먼지 제거 실험을 하기는 했다고 했다. 하지만 분석이 아직 안 돼 자료는 줄 수 없다고 하더라.” (주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닌가?) “중국도 인공강우를 가뭄 대책으로 했지 미세먼지 제거 실험은 그게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처음 해서 성공하기는 어려우니까…. 앞으로 계속할지 여부도 말하지는 않았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비가 예보되자 인공강우로 막았다던데…. “미리 비를 내려 맑게 한 게 아니라 올림픽 기간에 비가 오지 않도록 참게 만든 것이다.” (무슨 뜻인가?) “쉽게 말해 구름씨 하나에 수분 10개가 모여야 빗방울이 된다고 치면, 채 10개가 달라붙을 새가 없게 대량의 구름씨를 살포한 것이다. 그럼 빗방울 개수는 많아져도 일정 무게에 도달하지 않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구름만 좀 커질 뿐…. 구름씨를 너무 많이 뿌려도 비가 안 오기 때문에 적당한 살포량을 찾는 것이 정말 어렵다.” ―미세먼지 제거에 비보다 바람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는 단순히 물만 뿌리는 게 아니다. 비가 온다는 건 저기압이란 공기덩어리가 밀고 들어오는 거고, 그 공기덩어리의 움직임이 바람이다. 분리해서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 알기는 아주 힘들다. 미세먼지를 기상 조절을 통해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 미세먼지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배출되는 것이니까 결국 근본적으로는 배출원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인공강우 실험을 하는 데 아쉬운 점이 있나. “항공 실험은 날씨와 구름 생성 등 기상조건이 맞을 때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공강우 실험을 할 수 있는 체임버(Chamber)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인공적으로 구름을 만들어 강우 실험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커다란 방이다. 지금 어느 정도 규모로 하는 게 가장 좋은지 연구 중이고 내년에는 설계에 들어가려고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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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크게 보면 살길이 있는데, 황 대표가 둘 수 있을지…”

    《당대의 국수(國手)도 정치라는 바둑판에서는 어리둥절하기가 다반사였다. 자칭 고수라는 사람들이 19급도 안 둘 수를 둬 자멸하기 일쑤였으니…. 그가 속한 당도 약간의 반사이익을 얻다가 잇단 망언으로 다시 수렁에 빠졌다. 최근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당 대표에 선출하고 재기를 모색하고 있지만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인터뷰에서 “황 대표가 큰 바둑을 두고 싶다면 돌 몇 점 잡는 데 연연해하면 안 된다”며 “탄핵, 5·18 망언 등에 대한 처리도 대국적으로 보면 답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뭘 좀 해보려면 잇따라 터지는 악재들. 얼마나 더 내려가야 바닥이 보일까. 빈삼각을 둘 수 있어야 고수라지만, 빈삼각만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지난 3년간 비상대책위만 3번이 들어섰는데 당이 좀 나아졌다고 보나.○솔직히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잘한 것 같지는 않다. 당 안에서야 이런저런 사람이 바뀌는 부침이 있었지만 막장공천, 탄핵 이후보다 나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내부 싸움을 멈춰야 하는데…. (안에서 여전히 싸움이 많나?) 아직도 갈라져 있으니까…. 황 대표가 내·외부 통합을 잘해야 하는데…. 일단 5·18 망언 의원 처리와 탄핵에 대한 입장 표명을 어떻게 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황 대표는 탄핵에 대한 입장이 애매한 것 같은데….○탄핵은 그에게 평생 꼬리표로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잘 정리하지 않으면 꼬리표가 떨어지지도 않고, (자신은 물론 당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온 국민의 70∼80%가 인정하는데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솔직히 말해 정치가 국민의 뜻대로 가야 하는 거지 우리 뜻대로 하는 것인가.●일반적인 생각은 그런데 전대 과정에서도 보듯 한국당 내부는 많이 다르다.○그래서 새 당 대표의 과제가 무겁다. 또 언론에서 언급하듯 본인이 정말로 대선을 생각한다면 (당의) 좌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는 분명한 것이다. 지금 한국당 지지층의 표만 받아서는 될 수가 없지 않나. 전체 국민을 봐야지. 물론 개중에는 내 편이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것 따지면 글렀다고 본다.●특정 세력의 입장이나 이익에 매몰되지 말라는 건가.○돌 몇 개 잡는 거보다 대국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선수를 잡아야지 몇 점 따려고 국지전에 매달리면 이길 수가 없다. 목표가 오직 당 대표라면 자기편만 자리 주고, 지지층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꿈이 있다면 크게 봐야 한다. 탄핵도,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도 그 안에 다 포함된다. 그에게도 자신만의 바둑이 있겠지. 어떻게 둘지는 모르겠지만….●황 대표 지지층 중에는 복당파를 배신자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난 무조건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한 사람이라도 내 편을 만들고 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래서 떼고, 저래서 버리면 누구와 함께하나. (유승민 의원도 마찬가지인가.) 온다고 하면 다 받아줘야지. 생각이 좀 달라서 간 건데 적군한테 간 것도 아니지 않나. (들어오고 싶으면 석고대죄하고 오라는 사람도 있지 않나.) 치졸하게… 그거 하라고 하면 누가 들어오겠나. 들어오지 말라는 소리지. 그래 놓고 또 ‘나는 막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냥 조건 없이 받아야 한다.●스스로 정치는 하수라고 했지만 정치에 묘수가 필요한가. 상식이 묘수 아닌가.○그게 안 되는 세상이 여기더라. 이미 흑백논리가 정해져 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상대방 것은 일단 아웃시켜야 되는 걸로 보는 거지. 물론 모든 게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단 아웃이다. 처음에는 ‘왜 이러나…’ 싶었는데, 지금은 이유를 조금 알게는 됐다. (왜 그러나?) 이상한 사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개인적으로 만나 보면 아주 괜찮은 사람들이다. 양식 있고 무모하지 않고 대화도 되고…. 그런데 상임위 등에서 정치적인 대립 상황이 생기면 돌변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사람들이 안 따른다. ‘귀신보다 무섭다’는 자충수. 가까이서 보면 괜찮은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 정치가 사람을 변하게 한 걸까. 혹시 나도 변하지 않았을까.●잠시 반사이익을 얻었는데 5·18 망언으로 다시 자멸했다.○망언 맞지. 망언 맞다. 괴물 집단이니, 세금 도둑이니 하는 말은 너무 험한 거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표현은 잘못됐는데… 5·18민주화운동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고 잘못 선정된 유공자가 있으니 가려야 한다는 말이 좀 과격해진 게 아닌가 싶다. 따질 건 따져 보고 사과할 게 있으면 하면 되지 않을까. (지만원 씨는 북한군이 개입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영웅이라고 한다.) 그건 진짜 아니고…, 6명도 아니고 북한군 600명이 어떻게 들어오나. 나도 안 믿는다. 그게 사실이면 국방이 뚫린 건데 국가가 먼저 사과하고 책임을 졌어야 하는 거 아닌가? (북한군 개입설은) 인정할 수 없다.●망언도 문제지만 징계 유보 등 사후 처리도 문제 아닌가. ○당 윤리위가 한 사람은 최대 수위인 제명을 의결했고, 둘은 전당대회 때문에 징계를 유예했는데, 당규가 그런데 어떻게 하겠나. 징계하려면 당규를 고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은 없고…. 이후가 문제다. 한 사람은 떨어졌지만 다른 한 사람은 최고위원에 당선됐으니…. 골치 아프긴 하지만 규정대로 하면 되지 않나 싶다.※한국당은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규정에서 ‘후보자는 후보 등록이 끝난 때부터 당선인 공고 시까지 윤리위 회부 및 징계의 유예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도부 대응이 늦어지면서 김진태, 김순례 의원은 지난달 12일 후보 등록을 했고, 당 윤리위는 다음 날인 13일 소집됐다. 이종명 의원에 대한 윤리위 제명 의결이 확정되려면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의총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고향이 전남 영암이라 이런 경우에는 좀 팔이 안으로 굽을 만도 한데 안 그런 것 같다. ○나는 좀 크게 봤으면 좋겠다. 이 작은 나라에서 남북이 갈리고, 또 영호남으로 가르면 너무 웃기지 않나. 고향을 위하는 건 좋지만 각자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갈라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건 안 했으면 좋겠다. 참 웃기는 게 같은 사람이 여기 가서는 ○○의 아들이라고 하고, 저기 가서는 ○○의 사위라고 하는데… 그거 다 합치면 결국 전국구가 되지 않나. 그냥 대한민국의 아들, 딸이라고 하면 안 되나? (고향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하던가.) 지인들이 아끼는 마음에 5·18 거기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더라. 광주 사람들이 지금 감정이 안 좋으니까 세미나고 뭐고 근처에 가지 말라고…, 하하하.●말이 난 김에… 전 전 대통령이 가끔 바둑 두자고 불렀다고 하던데….○그가 바둑을 좋아했다. 하루는 연희동이라며 비서인 듯한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전 전 대통령이 지도를 받고 싶어 한다고 와 달라는 거다. 재임 시절에 KBS 바둑대축제(1983∼1992년)도 만들어주고 해서 갔는데, 아마 초단 또는 2단 정도는 됐다. 처음에 9점 놨는데 내가 안 되더라고…. 7점 놓으니까 비슷했다. 한 번 두고 다 알 수는 없지만 엄청 싸움 바둑이었다. 수비고 뭐고 그런 거 별로 없고 아주 공격적인…. 대통령 재임 중에 함께 둔 기억은 없고, 퇴임 후였다. (혹시 대국료 주던가? 받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에 0이 하나 더 붙을 정도로 통이 아주 크다고 하던데….) 보통 그런 분들을 만나면 주는데…, 그때가 마침 ‘전 재산이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법정에서 말해 화제가 됐던 때였다. 미안하다면서 그래서 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 하하하. 만약 주면 돈이 더 있다는 증거가 되니까…. 대신 뭐 조그만 선물을 주면서 좀 지나면 보자고 했는데, 그 뒤로는 못 봤다. 하하하.※전 전 대통령은 1997년 추징금 2200억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거의 안 내 2003년 4월 다시 법정에 불려갔고, 이때 “내 전 재산은 통장에 29만1000원뿐”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과의 대국은 이 발언 이후였다. ●통합돼야 한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통합의 실체가 뭔가? 없어지란다고 계파가 없어지나.○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들 그게 되겠나. 애들도 아니고…. 계파가 무슨 동호회처럼 탈퇴서를 내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통합의 실체는, 안에서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일단 결정되면 다 같이 승복하고 밀어 주자는 거다. 화해하라는 게 아니라.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일단 뽑혔으면 인정해 주자는 거다. 나는 찍지 않았다고 끝까지 몽니 부리지 말고.●구성원들이 밀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반대로 그런 승복을 이끌어내는 게 리더 아닌가. 황 대표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보나.○그게 앞으로 본인이 해야 할 일이다. 포용해서 품고 가든지, 굴복시켜 따라오게 하든지 방법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 어떤 방법을 쓰든 구성원들이 따라와야 내부가 단단해지고 그래야 당도 산다. 특정 세력에 치우친 판단과 행보를 하면 전체 구성원들이 따를 리가 없지 않은가. 답은 나와 있다. 하기 나름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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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세종대왕 동상 옮기면 흉물 돼… 차라리 없애 달라”

    《서울시가 지난달 21일 광화문광장 재조성안을 확정·발표했다. 이 안에 따르면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은 정부서울청사 옆으로 옮겨진다. 안이 공개되자 동상 이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고, 서울시는 “확정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순신 동상은 존치하고, 세종대왕 동상은 이전하는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동상을 옮기면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세종대왕 동상을 만든 김영원 전 홍익대 미대학장(72)은 “장소가 바뀌면 세종대왕 동상은 흉물이 된다.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금의 세종대왕 동상 위치는 어떻게 정해진 건가. “공모에 선정된 후 2주 동안 광화문을 답사했다. 그리고 북악산 정기가 경복궁과 광화문을 거쳐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축에 가장 위대한 인물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의 거리도 고려했다.” (이순신 동상과의 거리라니?) “두 동상이 너무 가까우면 시각적 공간 충돌이 생겨 보기가 부담스러워진다. 너무 떨어지면 무(武)를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과 문(文)을 상징하는 세종대왕 간의 조화가 사라진다. 세종문화회관과 미국대사관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동상에 미치는 시각적 요소도 고려했다. 주변의 모든 구조물이 시각적으로 서로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은 거다.” ―재조성안처럼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옮기면 이상해지나. “작품과 장소는 한 몸이다. 이전되면 지금처럼 광장의 주인, 역사의 축으로서의 상징성이 사라진다. 세종문화회관은 엄청나게 웅장한 건물이다. 그 옆에 동상이 놓이면 같은 크기라도 지금보다 훨씬 왜소하게 보인다. 세종문화회관에 딸린 장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동상이 지금처럼 남쪽(남대문 방향)을 바라보지 않고, 동쪽(미 대사관 방향)을 본다는 점이다.” ―얼굴이 동쪽을 보는 게 왜 문제가 되나. “조각은 빛의 예술이다. 어떻게 조명을 받느냐에 따라 작품이 살고 죽는다. 그래서 조각은, 특히 인체는 동향이나 서향으로 놓지 않는다. 지금은 햇빛이 얼굴 왼쪽에서 머리, 얼굴 오른쪽을 비추며 지난다. 이마, 코 등 때문에 얼굴에 적당한 음영이 지면서 양각이 살아나 어느 때, 어느 쪽에서 봐도 정상적인 사람 얼굴로 보인다. 그런데 이전 예정지에 놓이면 동상이 동쪽을 향한다. 해가 얼굴 정면을 비추며 뜬 뒤 뒤통수를 비추며 지는 것이다. 햇빛이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면 음영이 하나도 안 생겨 인형처럼 멍청해 보인다. 반대로 오후에는 해가 뒤에서 비추기 때문에 얼굴이 시커멓게 된다. 그래서 옮길 바에는 차라리 없애 달라고 한 거다. 알 만한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니…. “공모전 심사위원장인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건축가다. 조경,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공간에 대한 공부는 기본이다. 공간과 방향에 따라 동상이 어떻게 보인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이전을 하면 세종대왕 동상은 흉물처럼 보이게 된다. 시민들 사이에서 보기 안 좋다는 말이 나올 테고 그때 가서 자연스럽게 없애려고 하는 게 아닌지….” ―서울시가 사전에 의견이나 양해를 구하지 않던가. “한마디도 말해 준 게 없다. 그래서 왜 옮기려고 하는지 모른다. 하도 답답해서 서울시 홈페이지에 질문을 올렸는데 답이 없다가 어제(11일) 오후 5시경에야 서울시 공무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시는 이전을 말한 적이 없다면서 단지 당선작 설계자와의 만남은 주선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설계자를 만난들 무슨 소용인가. 결정은 서울시가 하는 거 아닌가) “책임을 그쪽에 떠넘긴 거지.” (만났나?) “오늘 오후 2시경이라고 했는데 어디서 만나는지 아직도 연락이 없다.” (지금 오후 1시가 넘었는데?) “그러게 말이다.”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예의 아닌가.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앞에 현대미술의 거장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이란 작품이 있다. 비행기 잔해로 꽃을 형상화한 것인데 예술적 의미가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좀 흉하게 보일 수 있는 형상이다. 보기 싫다는 민원이 많아지니까 포스코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겠다고 했다. 내가 그곳 작품심의위원이었는데 심의를 하면서 작가한테 허락을 받으라고 했다. 안 그러면 큰 망신이나 아니면 엄청난 페널티를 물 수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노발대발해서 한 치라도 옮기면 소송을 하겠다고 펄펄 뛰더라. 결국 못 옮겼다. 작품과 장소는 한 몸이다.” ―세종대왕의 어떤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나.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초상화도 없고….” (어진이 없나?) “세종대왕은 어진이 없다. 지금 1만 원권 지폐에 있는 그림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것이다. 동상심사위원회가 운보 그림을 주면서 참고하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좀 유약해 보였다.” (유약하다니?) “세종대왕은 자애로운 분이지만 백성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늘 사대부들과 충돌했다. 훈민정음 창제는 그 절정이었고. 난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는 목숨을 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존 표준 영정에서는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남아 있는 태조 영조 고종 순종 어진을 참고하고 후덕한 얼굴인 고종을 많이 반영했다. 다행히 다들 세종대왕으로 여기더라. 하하하.” ―만드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나. “점토 작업만 3개월 반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5kg이나 빠졌다. 한여름에도 오한이 들어 점퍼를 입고 작업했으니까…. 불면증도 걸리고….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다 포기하고 외국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까짓것 위약금 물어주면 그만이지 하고….” (세종대왕 용안을 본 사람도 없는데…) “안 봤으니까 각자 느낌으로만 대할 것 아닌가. 더 힘들지. 더구나 광화문이라는 대한민국의 중심이 주는 중압감, 최고의 성군을 감히 나 같은 게 만든다는 부담이 너무 컸다. 나라 한복판에 자신의 작품이 있다는 건 대단한 영예지만 그만큼 큰 부담이다. 2009년 10월 9일 제막식만 가고 이후 1년 동안 광화문 근처는 얼씬도 안 했다. 너무 힘든 기억이 떠올라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만들었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하던데…. “2017년 박 전 대통령 추모 단체에서 서울 마포구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에 세울 동상 제작을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11월 14일을 기념해 전날 설치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념관 안에 텐트까지 치고 격렬하게 막았다. 충돌이 너무 커져서 결국 동상은 못 세우고 소유권을 기념관에 넘기는 서류 기증식만 했는데…, 기념관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도 와서 격렬하게 반대하더라. 그런데 나랑 눈이 마주치자 못 본 척 고개를 휙 돌렸다.” (손 의원은 홍대 미대를 나오고 산업미술대학원 교수를 하지 않았나) “그렇지….” (그 뒤에는 어떻게 됐나) “서울시가 허가를 안 해 아직도 설치를 못 하고 있다. 동상은 내가 보관하고 있고…. 인물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박 전 대통령이 동상도 만들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반대한다고 힘으로 막는 게 진보라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서울시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설치를 불허했다.” ―서울시가 왜 동상 설립을 불허하나. “기념관 부지가 시유지라 조형물을 세우려면 서울시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게 심의할 만한 걸 해야지, 박정희 기념관에 박정희 동상 설치가 심의 대상이 되나. 견디다 못해 기념관에서 서울시에 정식으로 설치허가 요청서를 냈다. 그랬더니 마포구민 동의서를 받아 오라고 했다. 기가 막힌 일이다.” ※허가를 지연하던 서울시는 이듬해인 2018년 2월 당초 없던 ‘근·현대 역사 인물 동상 건립 기준’을 신설하고 기념관 측에 역사자문기관 3곳 이상에서 인물 평가를 받아 와야 허가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기념관 측은 역사기관 평가 대신 박 전 대통령 관련 서적 12권을 제출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청남대에 세워진 역대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다 만들었다던데…. “충북도에서 청남대 길마다 역대 대통령 이름을 붙였는데 그 길에 하나씩 세워졌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대통령마다 표현하고 싶은 모습이 있었나) “YS는 결단성, DJ는 화합과 통합,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 타파, MB는 부지런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누가 가장 만들기 어렵던가) “하하하. MB였다. 그분이 좀 얼굴이 왜소해서 양감이 잘 안 나온다. 또 눈 크기가 달라서…. 속된 말로 짝눈이라고 하는 건데…. 똑같이 만들면 얼굴이 엄청 이상하게 보인다. 약간 (눈을 키우는)가필을 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할 수 없이 눈도 그렇고 좀 가필을 했다. 하하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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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김수현 정책실장은 꼭 중장기과제 고민할 짬을 냈으면…”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 거세다. 이미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됐고 최근에는 전직 대법원장이 그 뒤를 따랐다. 누구든 죄가 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속에 서로에 대한 증오가 조금이라도 작용하고 있다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피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현 정부는 전임 정부를 존중하고, 전임 정부는 현 정부에 아낌없이 조언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백용호 전 대통령정책실장(63·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은 “국가적 중장기 과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못 한 게 무척 아쉽다”며 “현 김수현 정책실장은 어떻게 해서든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조차 중장기 정책을 고민할 여력이 없다면 어디서 하나. “매일 당면하는 현안이 너무 많다 보니 늘 후순위가 되더라. 현안도 중요하지만 긴 호흡을 가진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그런 부분이 많이 약하다. 예를 들면 4차 산업혁명 시대나 저출산같이 긴 호흡이 필요한 문제를 어떻게 대비할 건지 같은…. 꼭 해보고 싶었던 게 다문화 가정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고 세계화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문화 가정 문제를 전략적으로 잘 대응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또 부모의 재력으로 인한 교육 격차 문제도 고민이 필요하고…. 큰 사건이 터지면 청와대 역량이 전부 거기로 쏠리니까 여력을 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아마 지금 청와대도 비슷할 거다.” ―정책실 일이 그렇게 많은가. “공정거래위원장부터 시작해서 국세청장, 정책실장까지 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결과겠지만, 나중에는 걷는데 도로가 눈앞으로 튀어 올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기가 다 빠진 것인지 잇몸도 다 내려앉고, 머리도 다 빠지고…. 한의원에 갔는데 풍(風) 초기인 것 같다며 닭고기는 먹지 말라고 하더라. 하하하. 그래서 지금도 닭고기는 안 먹는다.” ―전임 정책실장으로서 현 정부 정책에 대해 말한다면…. “정책실장을 하면서 절실히 느꼈는데 정책 성공을 담보하는 건 명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명분과 정치적인 수사에 너무 매달리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고,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애매한 이름을 사용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본다. 사안의 본질과 상관없이 검증된 이론이냐 아니냐는 소모적인 용어 논쟁에 빠졌으니까…. 그냥 분배를 개선한다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명박(MB) 정부가 끝난 뒤 ‘역사는 역시 반복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음…, 선거 때 제시한 공약을 다 지킨 정부는 없을 거다. 다 해줄 수 있다, 또는 다 해줘야 한다고 너무 과신하는데 그게 모든 정부마다 반복된다. 그리고 못 지키고….” (정확하게 말하면 정부가 아니라 대통령 아닌가?) “허허허…, 뭐 그렇겠지. 이제는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정부가 나왔으면 한다.” (예를 들면 어떤 건가) “동남권 신공항 같은 것…. 특정 정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모든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또 하나는 권력자의 모습인데, 권력을 갖기 전에는 스스로 원칙을 지키고, 거절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 권력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그걸 지키기가 아주 어렵다. 그런 절제가 없는 상태에서 평소 하던 행동을 하면 아주 불행한 결과가 오는 거지. 그런 경우가 지금 많지 않나.” ―MB 정부의 공과를 평가한다면…. “지금은 잊었겠지만 MB 정부 시절 대외 경제 여건이 무척 안 좋았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는 어쩌면 서방 국가들에는 대공황 이래 가장 큰 쇼크였는데 국민들이 피부로 위협을 못 느낄 정도로 성공적으로 대처했다. 한미 통화 스와프(swap)가 체결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한국도 정부가 환율 방어 등 갖은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외환위기 문턱에서 이 상황을 진정시킨 것이 한미 통화 스와프였다. 사실상 미국 중앙은행이 보증을 서면서 원화에 대한 신뢰가 회복된 것이다.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이 어려운 일이었나. “국제 규정상 통화 스와프를 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는데 우리는 그 기준에 모자랐다.” (어떻게 체결할 수 있었나) “일종의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한 건데…. 대통령은 물론이고 많은 공직자들이 노력했고.” (과는?) “국민들이 실망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 부분은 5년간 MB 정부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참 착잡하고 무겁다.” ―MB 정부에서 국정홍보처를 폐지한 게 아쉬웠다고 했다. “정책 홍보를 전문 부처가 책임지고 하는 것과 부처 각자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더 아쉬웠던 건 아주 부드럽게 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는 도구를 없앴다는 점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의 ‘넛지효과(Nudge Effect)’인데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세금을 잘 낸다’는 사실만 알려도 탈세율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정부가 강제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홍보만 잘해도 상당한 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홍보처를 없앤 건 너무 성급했다. 물론 당시에는 홍보처가 기자실 폐쇄 등으로 원성을 너무 사긴 했지만….” ―보수가 지금 무척 어려운 상황이다. 보수의 경제관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는데…. “보수 정치집단은 그동안 쉬운 길을 걸어왔다. 과거 경제성장 실적, 안보와 지역주의에 안주해 수십 년을 버텼다. 그러다 지금 부패 문제로 위기를 겪고 있고…. 지금 위기는 시간만 지난다고 극복되는 게 아니다. 지키기 위해서라도 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 경제적 불평등과 격차 때문인데 이 담론을 진보의 영역에만 놔둬서는 안 된다.” (보수는 대개 보편적 복지에 각을 세우는데…) “도덕적 해이나 포퓰리즘, 재정 건전성 등을 걱정하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복지를 증진시키거나 경제적 불평등을 풀기 위한 과감한 조치들을 더 이상 진보의 영역으로 놔둬서는 (생존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우리 보수·진보 정당은 거의 이분법적으로 정책을 다룬다. “정책실장 때 친서민 정책을 제시했더니 내 편, 네 편 할 것 없이 ‘MB 정부가 무슨 친서민 정책이냐’며 비판하더라. 보수는 감세와 기업 규제 완화, 진보는 증세와 복지 증대 이런 식으로 아예 진영을 나누는 거지. 양극화가 심화되면 시장이 지속될 수 없다. 보수가 말하는 시장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친서민 정책을 펴야 한다고 설득했다. 마찬가지로 시장을 위험에 빠뜨릴 정도의 탐욕과 반칙에 대해서는 정부가 더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 (MB 정부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사면해준 건 시장경제에 대한 반칙 아닌가. 이 회장은 배임과 조세포탈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당신은 당시 국세청장이었다) “음…, 그때 세 번째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때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의 열망도 컸지만 이미 두 번이나 유치 신청을 하다 보니 인프라 등 선행된 투자 금액이 굉장히 많았다. 없던 걸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MB가 고민 끝에 ‘이왕 이렇게 된 바에는 모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성공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던 이 회장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비난을 예측하지 못할 리가 없었을 텐데…. “모를 수가 있나. 재벌 특혜다, 법치주의가 훼손됐다 등 상당한 비난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정치적 부담과 세 번째 도전에서는 꼭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이미 들어간 엄청난 투자 금액 등의 사이에서 결정한 건데…, 굉장히 고민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다른 국가적 이익을 위해 (법치 훼손을) 용인한 건 사실이다.” ―정부가 각종 제재로 지나치게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다. “보수 진보를 떠나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란 걸 모르는 정부가 어디 있겠나. 그런데 대기업 집단들은 그런 제재가 왜 나오는지 근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정치권은 국민의 마음을 읽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그런 제재들이 나오는 거다. 3세, 4세로 넘어가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는 행위가 너무 많이 나오고 있지 않나. 반기업 정서가 왜 생겼는지 재벌들이 고민하지 않으면 정권을 가리지 않고 대기업에 대한 제재 문제가 계속 거론될 거다. 상속도 그렇다. 경영에 관심이 없고 다른 걸 더 잘하는 자녀에게까지 굳이 무리하게 물려줄 필요는 없지 않나. 회사로도, 사회적으로도 너무 위험한 행동이다.” ―공과를 떠나 한 정부의 경제 정책 전반을 이끈 사람으로서 해줄 말이 있나. “정책을 한 사람으로서 후임자들이나 그들의 정책을 비판하는 건 참 어렵다. 그 고충을 아니까…. 정책 결정 과정에 있는 사람은 굉장히 외롭다. 어떤 선택을 해도 반대가 있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정책이 성공을 해도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영원히 기억한다. 그래서 굉장히 외롭고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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