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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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형준 기자입니다. 일본 정치와 사회, 한국 산업과 경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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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5-21~2026-06-20
칼럼97%
사설/칼럼3%
  • 日 ‘TPP 가입’ 급류탄다

    일본이 세계 최대 자유무역권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5일 TPP 교섭 참가 방침을 정식으로 밝힐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13일 일제히 보도했다. TPP는 양자 간 협정인 자유무역협정(FTA)과 달리 환태평양 국가들의 다자 협정으로 현재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11개국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FTA에서 한국에 뒤진 일본이 한 방에 거대 경제권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체 경제규모는 21조670억 달러(약 2경3119조 원)로 세계 최대다. 일본 정부가 교섭 참가를 선언하면 TPP를 주도하는 미국 의회가 먼저 90일 동안 승인 절차를 밟는다. 이어 교섭 중인 11개국의 합의를 거쳐 최종 승인을 확정짓는다. 이르면 9월 TPP 회의부터 일본이 참가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성역 없이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면 TPP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부분적인 관세 철폐 유예에 합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양국 정부 간 협의에서 일본이 수입하는 농산품에 대해 관세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대신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도 유지 혹은 단계적으로 인하해 상대국의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관건은 일본 국내의 반발이다. 특히 관세 철폐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단체의 반발이 심하다. 12일 농업단체 관계자 4000여 명은 도쿄(東京)에서 TPP 교섭 참가 반대집회를 열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내수가 수출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TPP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가 2011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TPP 참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별 진전이 없을 정도다. 아베 총리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점을 감안해 TPP 교섭 참가 필요성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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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박형준]팩스도 버리고 일정도 못 챙기고 주일대사관의 어이없는 외교 결례

    11일 오후 신각수 주일본 한국대사는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일왕과 일본 총리 등이 참석한 동일본 대지진 2주년 추도식에 외국 대사들도 대거 참석해 있었다. 지난해 1주년 추도식에 신 대사도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2주년 행사도 참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외무성에서 초청장이 오지 않았다. 11일 오전에도 직원들에게 “추도식 초청장이 왔느냐”고 물어봤지만 초청장은 없었다고 했다. ‘올해는 일본 정부 내부 행사로 치르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외국 대사들이 추도식에 참석해 있다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 대사는 곧바로 비서를 찾아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발단은 지난달 22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일본 외무성은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2주년 추도식이 있다’는 팩스를 한국대사관에 보냈다. 팩스는 총무과에서 접수해 정무과에 전달한 후 사라졌다. 정무과 직원이 영문 팩스를 통상적인 초대장으로 무심하게 보고 폐기해 버렸다. 팩스가 도착한 날은 시마네(島根) 현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행사를 치르는 날이었다. 처음으로 중앙정부의 차관급 각료가 참석해 대사관은 상세한 내용 파악 및 대응에 바빴고 사흘 후에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어서 정신이 없었다고 대사관 측은 설명했다. 신 대사는 11일 저녁 가와이 지카오(河相周夫) 외무성 사무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불참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이번 사건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영문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중요한 팩스를 놓친 직원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뿐일까. 설령 ‘팩스 한 장’이 없더라도 일왕과 총리까지 참석하는 주재국 정부의 가장 큰 행사를 미리 챙겨보는 사람이 대사관에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번 추도식에는 180여 개국이 초청을 받아 대부분 국가의 외교사절이 참석했는데 우리만 ‘까막눈’이었다. 중국도 불참했지만 “헌화할 때 대만도 포함시킨 것은 2개의 중국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해 사전 통보한 것이어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대사관은 양국 관계가 경색돼 국민이나 정치인들이 격앙돼도 관계 회복의 실낱같은 단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임무다. 그런데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당사자가 돼 해명하고 사과하는 처지가 됐다. 팩스 한 장 잘 챙기는 것 이상의 반성과 각오, 심기일전이 필요하다.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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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 다이제스트]日 원전피해 주민들 국가 상대 손배소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로 피해를 입은 주민과 피난민 등 1650명이 국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집단 소송을 11일 후쿠시마지방법원 등에 제기했다. 총 배상 청구액은 최소 53억6000만 엔(약 611억 원). 일본에서 원전사고와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자력손해배상법에 따라 원전사고의 배상 책임은 사업자인 전력회사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도쿄전력에 대한 소송만 있었다. 하지만 원고들은 “원전은 국책 사업이기 때문에 국가도 책임이 있다”며 국가에 대한 소송 배경을 밝혔다.}

    • 201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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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軍보유 금지 헌법9조 개정해야” 또 공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9일 전쟁과 군대 보유 금지를 명기한 헌법 9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뜻을 또다시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날 BS아사히 방송에 출연해 헌법 9조 개정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집단 안전보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남기는 것이 좋다”며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유엔의 ‘집단 안전보장’에서 일본이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지 논란이 남는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집단 안전보장은 유엔 헌장 제7장을 의미한다. 7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특정 국가에 대해 경제 제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경우 집단 안전보장 활동을 위해 유엔군을 구성해 군사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은 집권 초기 경제 성적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에 기초한다. 하지만 헌법 개정에 대해 자민당 내부에서도 신중한 목소리가 있다. 아베 총리와 가까운 당 간부는 익명으로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하며 “집단적 자위권까지는 몰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논의는 중장기적인 과제로 신중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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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북 카페]한국과 일본의 가깝고도 먼 차이는 유교문화 퇴출시킨 메이지유신 탓

    지난해 7월이었다. 친구처럼 지내는 일본인(46)이 “고구마 자원봉사를 가자”고 제안했다. 가나가와(神奈川) 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80) 집 텃밭의 고구마를 캐드려야 한다고. 기자는 흔쾌히 따라 나섰다. 자원봉사 하러 온 일본인은 5명이나 더 있었다. 모기와 싸움을 벌여가며 다 함께 고구마를 캤다. 저녁이 되자 할머니 댁에서 소박한 감사 파티가 열렸다. 그때 ‘이로리(위爐裏)’라는 것을 처음 봤다. 안방 바닥을 네모나게 잘라 그 안에 불을 피울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일본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런데 파티를 준비하며 적잖게 놀란 점이 있다. 80세 할머니가 계신데도 일본 자원봉사자들의 태도가 영 점잖지 못했다. 다리를 쭉 뻗고 퍼질러 앉거나 심지어 눕기도 했다. 할머니가 열심히 반찬을 나르는 동안 자신들끼리 맥주를 따서 먼저 마셨다. 드디어 준비 끝. 할머니도 자리에 앉았고 맥주도 한 모금 드셨다. 그때서야 기자도 맥주를 마시고 음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일본인들이 물었다. “박 기자는 왜 지금까지 맥주 안 마셨느냐”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일본인들이 무척 놀랐다. “한국인들은 다들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밥을 안 먹느냐”며 신기한 듯 물었다. 자기들끼리 “대단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기자는 그런 일본인의 반응이 오히려 신기했다. 일본인은 어릴 때부터 “남한테 폐를 끼치지 마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다. 남에 대한 배려심도 많다. 그런데 웃어른을 공경하지 않다니…. 그 의문은 최근 책 한 권을 보고 풀렸다. ‘입문 주자학과 양명학.’ 이 책은 한국학을 전공하는 한 일본인 교수의 추천으로 사게 됐다. 그 교수는 “이 책을 보고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고서 일본인 교수의 말에 동감했다. 저자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씨는 서문에서 “대부분 일본인들이 주자학과 양명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하고 배척해왔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서양중심주의와 근대화 두 개. 근대 이전에는 일본에서도 유교는 매우 중요한 사상이었지만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근대화를 하면서 유교를 ‘쓰러뜨려야 하는 적(敵)’으로 봤다. 그 대신 서양 문물을 철저히 받아들였다. 반면 한국에선 유교, 좀 더 구체적으로 주자학과 양명학이 14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왔다. 지금도 사상적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그랬기에 기자는 80세 할머니 앞에서 행동을 조심했다. 저자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책을 썼다. “중국과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한 것은 유교와 같은 비근대적인 종교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에게 주자학과 양명학의 참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란다. 책에는 한국 사례가 무척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양반은 경서를 읽으며 이(理)를 느낀다고 했다. 재미있는 소설책이나 야한 그림이 아닌 경서를 읽고 자신과 이가 합체돼 무한한 쾌락을 얻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나 책에 적힌 문자 등은 기(氣)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인, 중국인들이 신봉했던 유교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 봐도 재미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매우 비슷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이유를 알 수 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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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바이어 특별초청… 한식 리셉션 열어

    “한국 부침개 정말 맛있어요. 이탈리아 음식하고도 잘 맞으려나.” 5일 일본 지바(千葉) 현 지바 시에서 열린 2013 도쿄식품박람회 행사장. 나가노(長野) 시에서 이탈리아 음식점을 운영하는 엔도 유키코(遠藤雪子·여) 씨는 부침개를 시식하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음식과 궁합이 맞을 메뉴를 ‘사냥’하기 위해 전 매장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8일까지 열리는 아시아 최대 식품 박람회에 한국은 김치 인삼 주류 장류 등을 판매하는 84개 업체가 참여했다. 한방차를 홍보하기 위해 사극 대장금의 옷을 입는가 하면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가능한 아르바이트 학생을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업체 관계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전과 부침개를 전문으로 하는 사옹원의 이지인 해외영업팀장은 “해외 22개 수출국 중 일본 비중이 가장 크지만 지난해 하반기 한일관계가 나빠진 이후 일본 매출액이 25%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송가네’라는 브랜드로 냉면, 떡볶이 등을 판매하는 고세이의 석동민 영업과장도 “10년 동안 꾸준히 매출이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많이 고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일 농식품 수출액은 23억8950만 달러(약 2조600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류 붐에 힘입어 그동안 10% 내외 큰 폭으로 성장해 오던 것에 비하면 부진한 성적표다. 직접적인 원인은 일본 대형 유통업체들이 한국 상품 판촉전을 대거 취소한 것. 파프리카 등 한국의 신선 야채를 수입하는 H&F인터내셔널의 마이타 유키(米田由紀·여) 제2영업부장은 “한국 상품 판촉전을 열면 극우들의 항의전화가 온다. 요즘 한일관계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한국’이라는 이름을 다 빼고 판촉전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 업체의 박람회 참여를 주관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해 올해 특별히 ‘일본 바이어 초청 리셉션’ 행사를 기획했다. 이온리테일, 이토요카도 등 대형 유통업체 사장들을 초청해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한국 업체와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다. 다행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연매출 4조 엔(약 46조 원)을 올리는 이온리테일의 무라이 쇼헤이(村井正平) 회장은 “올해 박람회에 참가한 한국 식품업체들은 건강과 여성, 개식(個食·1인 식사)을 테마로 잡은 것 같다. 좋은 방향이다. 이건 일본 시장의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지바=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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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일본 대지진 2년] 끝나지 않은 공포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앞다퉈 추가 대형 지진을 예고해 국민들은 일상적인 지진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인한 먹거리 걱정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고향을 떠난 주민들은 객지에서 고독사하고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를 둘러싼 책임공방도 이어지고 있다.이와테(巖手) 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의 한 보육원에서 지난달 18일 만난 보육사 간노 게이코(管野惠子·60·여) 씨는 “요즘 크고 작은 지진이 너무 많다. 다시 대형 지진해일(쓰나미)이 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라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문부과학성은 지난해 수도권에서 향후 30년 내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0%라고 발표했다. 최악의 경우 사망자는 1만1000명, 피해 규모는 112조 엔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내각부 전문가검토회는 도쿄 바로 밑 시즈오카(靜岡) 현에서 남부 규슈(九州)의 미야자키(宮崎) 현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의 난카이(南海) 해구(海溝)에서 규모 9.1의 거대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사망자는 최대 32만3000명, 경제피해는 50조 엔으로 예상됐다. 일본 방재과학기술연구소는 도쿄에서 100km 떨어진 후지 산 폭발 가능성도 예고했다.지방자치단체들이 마을을 통째로 높은 지대로 옮기는 계획을 세우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는가 하면 추가 지진 공포로 원전 재가동 시기도 미루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원전 재가동 방침을 밝혔지만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전을 지을 수 없는 활성단층 판단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새 기준에 따르면 유일하게 재가동 중인 후쿠이(福井) 현 오이(大飯) 원전은 7월에 가동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고, 홋카이도(北海道) 도마리(泊) 원전 등 일부는 폐쇄될 수 있다. 원전이 멈추면서 기업과 국민은 전기요금 인상에 고통 받고 있다.원전 사고 책임 문제를 둘러싼 검찰 수사는 사고 2년이 지난 최근에야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부터 마다라메 하루키(班目春樹) 전 원자력안전위원장과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간부 등 100여 명을 줄줄이 소환하고 있다. 이들이 실제로 형사 입건될지는 의문이지만 수사 결과는 일본 사회를 또 한 번 달굴 것으로 전망된다.피해 주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후쿠시마 현 주민 약 15만 명은 지금도 고향에 못 돌아가고 현 안팎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젊은 세대는 방사성 물질 공포 때문에 끊임없이 현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쓰나미 피해를 본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3개 현 인구는 지진 전보다 7만2000명이 줄었다. 피난 주민을 위한 일명 부흥주택(재해공영주택)은 정부가 2만4274채를 짓겠다고 밝혔지만 용지를 확보하지 못해 아직 56채밖에 완공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11만 명이 여전히 가설주택에 살고 있고 홀로 피난생활을 하던 주민들이 고독사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대지진은 일본 사회의 패배주의와 폐색감(閉塞感·고독감과 무력감)도 깊게 했다. 이는 일부에서 극우 민족주의로 표출돼 ‘강한 일본을 되찾자’는 자민당의 정권 복귀로 이어졌다. 일본의 한 언론인은 “동일본 대지진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도쿄=배극인·박형준 특파원 bae2150@donga.com}

    • 20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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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경영난 日샤프 구원투수로

    삼성전자가 경영난에 빠진 일본 전자업체 샤프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삼성전자는 6일 샤프에 104억 엔(약 1200억 원)을 출자하고 지분 3.0%를 넘겨받는 투자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샤프의 5대 주주로 올라섰다. 금융회사를 제외하면 주주 가운데 지분이 가장 많다. 경영 악화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던 샤프는 삼성전자로부터 긴급자금을 받아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샤프는 창사 이래 전통으로 지켜왔던 종신 고용 문화를 버리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적자 폭은 줄지 않았다. 작년 3월 대만 최대 전자그룹인 훙하이(鴻海)정밀공업에 지분 9.9%를 669억 엔(약 7770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최근 세부적인 조건 등을 놓고 벌이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자기자본비율(총자산 중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9.9%까지 떨어진 샤프가 삼성전자에 긴급 ‘SOS’를 보내 자본 확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주로 TV 생산에 쓰이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샤프와 지분 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대부분의 디스플레이 패널을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고 있지만 60인치 이상 대형 LCD의 상당 부분을 샤프에서 조달해 왔다. 특히 최근 60인치 이상 대형 TV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10세대 LCD 생산라인을 갖고 있는 샤프의 경쟁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10세대 라인을 새로 만들려면 10조 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삼성전자로서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말했다. 애플 역시 샤프로부터 디스플레이 패널을 공급받아 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제휴는 덤으로 ‘애플 견제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에 이어 샤프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공급업체 간 경쟁을 통해 단가를 낮춰 왔던 애플의 구매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삼성전자는 샤프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지분 투자는 최근 퀄컴 등으로부터 자본 확충을 추진해 온 샤프의 핵심 사업인 액정사업의 수익 개선에 기여하고 향후 샤프와 확고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 언론들도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제휴는 TV와 반도체에서 격심하게 경쟁해 온 두 나라 가전 대기업이 라이벌 관계를 넘어서는 조치로 (업계) 재편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김지현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 jhk85@donga.com}

    • 20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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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일어나!… 눈폭풍속 나를 살렸잖아”

    2일 오후 3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유베쓰(湧別) 정에 사는 오카다 미키오(岡田幹男·53) 씨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 일어섰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 나쓰네(夏音·9) 양은 집에서 약 5km 떨어진 아동센터에 있었다. 현관문을 여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의 나라’ 홋카이도에 이 정도 폭설은 흔하디흔하다. 조용히 얌전하게 내리는 걸로 봐서 차로 20분이면 충분히 딸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트럭을 몰고 아동센터에 도착했다.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날씨가 급변해 강한 바람이 불더니 눈발이 옆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폭풍설이었다. 금세 도로에 눈이 쌓이면서 차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오카다 씨는 차를 세웠다. 집까지 거리는 약 2.4km. 폭풍설 속에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는 약 700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친척 무라카와 가쓰히코(村川勝彦·67) 씨에게 휴대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주세요. 눈 때문에 차가 안 움직여요.” 오후 4시경이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친척은 오지 않았다. 차 기름도 간당간당했다. 기름이 떨어져 엔진이 꺼지면 자칫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어디로든 빨리 대피해야 했다. 오후 4시 반경 그는 다시 무라카와 씨에게 전화를 했다. 무라카와 씨는 구조에 나섰지만 폭풍우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하고 돌아온 뒤였다. “연료가 없어요. 여기서 200m 떨어진 곳에 친구 집이 있으니 그리로 피난할 게요.” 무라카와 씨는 제대로 겨울 장비를 갖췄는지 물었다. 오카다 씨는 “딸은 스키복을 입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정작 자신은 얇은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트럭에서 나왔다. 1시간 반 사이 온 세상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다. 도로인지 밭인지 구별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금세 눈이 쌓였다. 방향감각도 찾기 어려웠다. 눈보라가 계속됐다. 타고 온 차량의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맞바람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데다 발이 눈 속에 빠져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200m만 걸으면 됐다. 힘을 냈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건물을 발견했다. 하지만 친구 집이 아니라 창고였다. 자물쇠가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눈보라를 피해 창고 옆에 앉았다.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딸에게 덮어주었다. 그리고 딸을 꼭 껴안았다. 무라카와 씨는 안절부절못했다. “무사히 피난했다”는 오카다 씨의 연락이 없었기 때문. 게다가 오카다 씨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다. ‘사고가 났다’고 직감했다. 소방서에 연락했지만 이미 모든 대원이 구조작업을 하러 출동한 상태였다. 무라카와 씨는 여러 지인에게 연락하고 직접 찾으러 나섰지만 어두워진 데다 워낙 눈보라가 심해 멀리 나갈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오전 7시 소방관들이 오카다 씨를 발견했다. 창고에 기대 옆으로 누운 상태로 딸을 여전히 껴안고 있었다. 숨은 멎었다. 하지만 딸은 살아 있었다. 소방관을 보자 “발이 아프다”며 울었다. 창고는 오카다 씨의 트럭에서 약 300m 떨어져 있었다. 옆으로 70m 지점에 낙농가가 있었지만 오카다 씨는 눈보라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다. 무라카와 씨는 병원에서 오카다 씨를 볼 수 있었다. 오카다 씨의 양손은 딸을 감싸 안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나쓰네 양의 건강은 이상 없었다. 나쓰네 양은 “필사적으로 트럭에서 내렸다. 그 후에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카다 씨는 재작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가리비와 굴 양식을 하면서 딸과 둘이서 생활했다. 동네 주민들은 “정말 사이가 좋은 부녀였다. 70m만 더 힘을 냈으면 따뜻한 집을 찾을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2, 3일 홋카이도엔 무려 2m까지 눈이 내렸다. 오카다 씨를 포함해 9명이 폭설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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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 손녀 이해경 여사, 日총리에 편지 “조선왕실 투구-갑옷 돌려달라”

    고종의 손녀인 이해경 여사(83·사진)가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조선왕실의 투구와 갑옷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보내기로 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3일 “이 여사가 조만간 문화재 반환 요구를 담은 편지를 아베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 제니야 마사미(錢谷眞美) 도쿄국립박물관장 등에게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종의 아들이자 순종의 이복동생인 의친왕(1877∼1955)의 다섯째 딸인 이 여사는 혜문 스님을 통해 공개한 편지에서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왕실의 투구와 갑옷은 일제강점기에 반출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일본은 하루빨리 투구와 갑옷을 돌려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지난해 4월 이 여사가 반환을 요구한 투구와 갑옷에 대해 “조선왕실에서 사용하던 물품”이라고 인정했다. 지난달에는 의친왕의 12남 9녀 중 9남인 이충길 씨의 장남인 이원 대한황실문화원 총재가 투구와 갑옷을 특별 열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혜문 스님은 “이 여사는 조선 왕실의 물품에 대한 법적 상속권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며 “일본은 조속히 문화재를 반환해야 한다”고 말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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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연구진, 거부반응 없는 장기이식술 개발

    일본 연구진이 장기이식 후에 면역 억제제를 투약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일 보도했다. 지금까지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는 평생 면역 억제제를 복용해야만 했다. 면역세포가 이식받은 장기를 ‘이물질’로 여겨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공격하기 때문에 이식한 장기를 보호하려면 면역세포의 공격을 줄이는 면역 억제제가 필요했다. 홋카이도(北海道)대와 준텐도(順天堂)대 연구팀은 환자와 장기 제공자의 혈액에서 백혈구를 채취해 특수한 약제를 넣어 2주간 배양한 후 환자 혈액에 다시 주입했다. 이 같은 시술 후엔 환자의 면역세포가 이식받은 장기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해 공격하지 않았다. 간이식 수술을 받은 30∼60대 환자 10명에게 이 같은 시술을 한 결과 4명은 장기이식 후 18∼21개월이 지난 뒤부터 면역 억제제를 투약하지 않아도 됐다. 이들은 지난달 말 현재 1개월 반∼6개월가량 면역 억제제 없이 생활하고 있다. 나머지 6명은 면역 억제제 투약 분량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 지금까지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는 평생 억제제를 복용하는 데 따른 불편과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고 당뇨병과 고관절 괴사 등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도 컸다. 연구진은 “이식 후 수년이 지나고 나서 부작용이 일어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장기간 유효성과 안전성을 조사한 뒤 치료법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연구 성과에 대해 김택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과장은 “예전에도 국제 학회에 보고된 적이 있는 기술이지만 임상시험 단계까지 진전시킨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유근형 기자 lovesong@donga.com}

    •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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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군사대국 발톱 세운다

    일본이 미국에 F-35 스텔스기 부품을 수출하기로 결정해 ‘무기 수출 3원칙’이 사실상 무력화됐다. 민주당 등 야당의 일부 의원들까지 개헌에 가세해 개헌 움직임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는 1일 안전보장회의와 내각회의에서 일본 기업의 F-35 스텔스기 부품 수출을 무기 수출 3원칙의 예외로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담화에서 “항공자위대의 차기 주력 전투기인 F-35 스텔스기 제조에 일본 부품을 수출하는 것은 무기 수출 3원칙의 예외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무기 수출 3원칙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내각 때 만들어진 것으로 △공산권 △유엔이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2011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대폭 예외를 만들었지만 ‘국제분쟁 조장을 피한다’는 기본원칙은 유지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F-35 스텔스기의 부품 수출을 용인하면서 기본원칙마저 무너지게 됐다. F-35 스텔스기는 국제 분쟁국인 이스라엘에 판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의 무기 수출 3원칙이 사실상 폐기돼 동아시아에 군비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헌안 발의 요건을 완화해 평화헌법을 바꾸자는 움직임도 일본의 집권 자민당에서 야당으로 확산되고 있다. 취임 후 몸을 사리던 아베 총리는 지지율이 오르자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야당인 민주당과 일본유신회, 다함께당 의원들은 헌법 96조 개정을 추진하는 초당파 의원연맹을 발족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이 1일 보도했다. 96조가 규정한 개헌안 발의 요건을 완화해 궁극적으로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를 규정한 9조를 개정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 의회에서 행한 시정방침 연설에서 ‘아베 본색’을 본격화했다. 개헌과 관련해 “의회 내 헌법심사회에서 논의를 촉진해 국민적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핵 보유 잠재력으로 이어지는 원전 재가동 방침도 분명히 했다. 도쿄=배극인·박형준 특파원 bae2150@donga.com}

    • 201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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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한국-호주도 집단적 자위권 적용 대상”

    일본이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호주의 함선이 공격을 받을 때도 반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일본 총리 직속 기구인 안보법제간담회의 야나이 �지(柳井俊二)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보도된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헌법 9조 해석으로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호주나 한국은 동맹국은 아니지만, 관계가 매우 긴밀한 국가다. (한국, 호주의 함선 방어를 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당연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공격받지 않더라도 동맹국에 대한 공격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그동안 집단적 자위권이라고 하면 동맹국인 미국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됐지만 야나이 위원장은 한국과 호주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전쟁을 금지한 헌법 9조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을 가지고는 있지만 행사할 수는 없다’고 인식해왔지만 지난해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출범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설혹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더라도 최종 결정권은 한국에 있다. 한국의 ‘지원 요청’이 있어야 일본 자위대가 한국 함선이나 원유수송선을 방위하기 위해 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외국 군대가 한국에 상륙하려면 한국 국회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야나이 위원장은 ‘자위대 함정이 공해상에 있는 미군 함정의 바로 옆에 있을 경우에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실태를 고려하지 않은 공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수백 km 떨어져 있더라도 바다에선 가깝다”며 “미국이 ‘적어도 괌 정도는 지켜 달라’고 한다면 (일본) 헌법상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지는 정책적으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안보법제간담회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여부에 대해 지식층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회의체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면 아베 정권은 본격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헌법 해석을 바꾸고 법제화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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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일본 대지진 2년]뼈대만 남은 원자로… 사용후연료 꺼낼 준비공사 더디게 진행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폭발사고가 일어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은 현재 어떤 상태일까.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앞두고 동아일보의 자매지인 아사히신문은 최근 원자로 건물 안에까지 들어가 작업 현장을 취재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의 도쿄 특파원들도 공동취재단을 꾸려 원자로 건물에서 약 10m 떨어진 지점까지 다녀왔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공습으로 무너진 듯한 상태인 후쿠시마 제1원전의 최근 모습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당시 수소폭발이 일어났던 4호기 원자로 건물 벽에는 온통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지붕은 폭발로 날아갔고 철골도 여기저기 삐져나와 있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까지 올라갔다. 갑자기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를 보면 과연 이곳이 그 처절한 공포의 핵심인지 잊게 할 정도다. 지붕이 있던 자리는 지금 전망대로 바뀌었다. 폐기물도 깔끔히 치워졌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은 여전했다. 방사선량은 시간당 200μSv(마이크로시버트). 같은 날 원전에서 약 15km 떨어진 나라하(楢葉) 정에서 측정한 최고 시간당 방사선량(0.989μSv)보다 200배나 더 높다. 도쿄전력 직원은 “3호기 북측에는 시간당 1000μSv가 검출되니 그쪽으로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4호기 원자로 건물 안 사용후연료 저장조는 덮개가 놓여 있다. 덮개 빈틈으로 짙은 푸른색 물이 보였지만 안에 있는 남은 사용후연료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 남측에는 저장조의 사용후연료를 꺼낼 크레인 설치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해 7월 연료 2개를 시험적으로 꺼냈다. 본격적으로 꺼내는 작업은 올해 11월부터 시작된다. 원자로를 완전히 밀봉하는 작업은 37년 뒤인 2050년으로 예정돼 있다. 작업 진도가 너무 늦다는 지적에 다카하시 다카시(高橋毅·56)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장은 “근로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로봇 투입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작업 진도가 더디다”고 설명했다. 2011년 8월부터 가동한 방사성세슘 흡착장치도 공개됐다. 방사성 물질 오염수에서 방사성 물질을 분리해내는 장치다. 최근 오염수의 세슘 농도가 옅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흡착장치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니 “방사선량이 높다”며 직원이 말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약 4시간 동안 원전 내부를 취재한 후 측정한 누적 방사선량은 111μSv. 연간 인공 방사선 피폭한계(1000μSv)의 약 10분의 1이었다. 후쿠시마=박형준·도쿄=배극인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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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中 대북제재 합의… 강제조항은 빼기로

    미국과 중국이 ‘유엔헌장 7장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대신 대북 제재를 강화한다’는 방식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안을 만들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제재에 강제적 조치가 명시된 7장을 언급하지 않으면 제재의 실효성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6일 안보리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중 양국은 지난 주말 이 같은 대북 제재 결의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조만간 이사국에 결의안 초안을 제시해 이르면 이번 주에 제재 결의를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리의 새 결의에는 금융 제재를 강화하거나 수출입 금지 품목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이 신문은 예상했다. 유엔헌장 7장은 평화에 대한 위협, 파괴, 침략 행위를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회원국의 강제적 대응 조치를 41조와 42조에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대북 제재 결의를 인용하고 이를 강화한다는 방식으로 새 결의안을 만들면 별도로 유엔헌장 7장을 언급하지 않아도 실질적으로 제재를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중국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당초 제시했던 결의안 초안에서 ‘북한이 핵을 내놓든지 정권을 내놓든지 양자택일을 하라’는 강력한 안을 담았다”고 말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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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도나도 ‘돈줄 푸는 중앙銀 총재’ 기용… 환율전쟁 거세진다

    일본과 영국의 차기 중앙은행 총재는 물론이고 중국과 미국의 중앙은행 수장으로 유력한 인물이 모두 환율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삼을 것으로 보여 글로벌 환율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 중앙은행 총재들이 물가 안정을 강조하는 인플레이션 파이터, 즉 ‘매파’인 것과 달리 이들은 자국 통화 약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중시하는 디플레이션 파이터, 즉 ‘비둘기파’가 대부분이어서 ‘아베노믹스’(엔화 약세를 통한 수출 증대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책)로 촉발된 환율 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새 정부도 임기 초부터 환율 전쟁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日·英, 환율전쟁 주도할 듯 아베 총리는 25일 차기 일본은행(BOJ) 총재에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68)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내정했다. 다음 달 BOJ 수장이 되는 구로다 총재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재무성 재무관으로 활동하며 무려 14조 엔(약 161조 원)을 외환시장에 풀어 엔화 약세를 주도했다. 그래서 ‘통화 마피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구로다 총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할 여지가 아직 많다”라며 “내가 BOJ 총재라면 일본 국채만 사지 않고 회사채나 주식까지 사들여 더 공격적인 완화 정책을 단행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베 총리가 구로다 총재를 낙점한 이유는 그가 아베노믹스 찬성론자라는 사실 외에도 영국 옥스퍼드대 석사, ADB 경험 등으로 영어가 유창하고 국제 금융계 인맥이 탄탄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차기 BOJ 총재가 아베노믹스로 인한 국제사회의 반발을 능수능란하게 잠재우기를 기대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 영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의 차기 총재로 뽑힌 마크 카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도 7월 취임하면 아베노믹스 못지않은 적극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319년 역사를 지닌 BOE가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버리고 사상 첫 외국인 수장을 택한 이유는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됐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트리플 딥(삼중 경기침체)’ 위기에 놓인 영국 경제를 살리려면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를 지닌 인물이 필요하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영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10∼12월) ―0.3% 성장에 그쳐 우려를 자아낸 바 있다. 카니 총재는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통화정책은 경제 출구전략을 도와야 한다”고 말해 물가 안정보다 성장에 중점을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中·美도 경기부양 시급 지난해 2분기(4∼6월)부터 3개 분기 연속 7%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나타낸 중국 경제도 경기부양이 시급하다. 갓 출범한 시진핑(習近平) 정권은 체제 안정을 위해 ‘바오바(保八·8%대 성장 유지)’ 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다우존스는 지난달 말 중국의 올해 성장률도 정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큰 데다 GDP의 25% 규모인 수출이 생각만큼 탄탄하지 않아 중국도 환율전쟁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다음 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열어 저우샤오촨(周小川·65) 런민(人民)은행 총재의 후임자를 선정한다. 런민은행 총재의 유력 후보는 상푸린(尙福林)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은감위) 주석, 궈수칭(郭樹淸)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 주석, 샤오강(肖鋼) 중국은행장, 러우지웨이(樓繼偉) 중국투자공사 회장 등이다. 제로금리와 막대한 재정적자 때문에 경기부양 수단이 양적완화밖에 없는 미국도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후임자로 경기부양 의지가 강한 인물을 찾고 있다. 유력 후보인 스탠리 피셔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와 재닛 옐런 연준 부의장은 모두 비둘기파다. 피셔 전 총재가 중앙은행 수장이었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이스라엘 경제는 무려 평균 14.7% 성장했다. 그는 최근 다보스포럼에서도 “세계 경제가 양적완화 정책의 부작용을 잘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첫 여성 연준 의장이 될 수도 있는 옐런 부의장 역시 미국이 2016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잇따른 금리 인하로 9·11테러 이후의 미국 경제를 부양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의 수제자이자 흑인인 로저 퍼거슨 전 연준 부의장,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등도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하정민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 dew@donga.com}

    • 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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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담화에 역사인식 문제 언급 없을 것”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앞으로 내놓을 ‘아베 담화’에 역사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아시아 역할론에 대한 내용을 담겠다고 밝혔다. 이는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 등을 수정하겠다는 지난해 12월 총선 전의 주장과는 달라 주목된다. 아베 총리는 21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인터뷰에서 “무라야마 담화는 전후 50주년(1995년)에 맞춰서 나왔고, 전후 60주년(2005년)에는 고이즈미 담화가 발표됐다. 나도 적절한 시점에 담화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전후 70주년인 2015년경 아베 담화가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재임 기간이 불확실해 발표 시점은 앞당겨질 수도 있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 기존 담화를 모두 수정할 우려가 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질문에 “(아베 담화에는) 이웃 국가를 배려한 미래 지향적인 메시지를 담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정치가는 역사 인식 문제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며 “미래 지향적으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해 말하겠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총선 전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 등 과거사 반성 담화를 모두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노 담화 수정 여부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관방장관이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을 바꿨고 이번 인터뷰에서는 과거 담화를 수정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내용을 담았고, 고노 담화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했다. 아베 총리는 해양으로 확장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중국은 일본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영토분쟁을 하는 게 몸에 배었다. 공산당이 국내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영토분쟁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21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연다. 양국 정상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일본의 참여 문제, 중국을 염두에 둔 해양안보 협력 강화 등을 논의한다. 아베 총리는 애초 TPP 참여에 부정적이었지만 최근 기류가 바뀌고 있으며 정상회담 후 최종 정치적 결단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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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rrative Report]청년 1명이 낙도로… 그 후 7년 330명이 따르다

    낙도로 가는 길은 고달팠다.14일 오후 6시 10분 도쿄(東京) 역에서 신칸센에 올라 오카야마(岡山) 역에서 일반열차로 갈아타고 돗토리(鳥取) 현 요나고(米子) 역에 도착하니 오후 11시 45분. 역 앞 호텔에서 잠을 잔 뒤 이튿날 아침 버스를 타고 시치루이(七類) 항구로 향했다. 오전 9시 출발 여객선을 타고 4시간 남짓 가서야 시마네(島根) 현 오키(隱岐) 군 아마(海士) 정에 도착했다. 도쿄에서 이동 시간만 10시간이 넘을 정도로 지독한 낙도(落島). 본토와 연결되는 여객선도 하루 2편밖에 없다.1박 2일에 걸쳐 ‘멀고 먼’ 아마 정으로 향하는 동안 떠오른 생각은 단순했다. ‘굴지의 기업 소니에 다니던 그가 왜 도쿄를 떠나 낙도의 동사무소 계약직으로 갔을까. 그것도 젊은 나이에….’ 문 닫을 뻔한 낙도 고교 부활 프로젝트이와모토 유(巖本悠) 씨. 올해 34세로 도쿄 토박이인 그는 낙도를 ‘제2의 인생 출발점’으로 선택했다. 대학 시절 2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로 여행 갔을 때 크고 작은 도움을 준 현지인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을 뿐이던 그였다. 교육학 전공자인 그에겐 ‘교육으로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막연한 각오만 있었다. 2004년 도쿄가쿠게이(東京學藝)대 졸업과 동시에 소니에 입사한 그는 인사부에서 인재 육성 업무를 맡았다. 인생의 전환점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2006년 5월. 아마 정에 살던 친구의 부탁으로 아마중에서 특별수업을 했다. 수업을 마친 뒤 마을 어르신, 동사무소 직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 그들은 섬에 하나 있는 도젠(島前)고의 존폐를 걱정했다. 당시 신입생 수가 28명. 21명까지 떨어지면 학교 문을 닫아야 한단다. 그럼 아마 정 주민은 고교생 자녀를 육지로 유학 보내야 한다. 아무래도 자녀와 함께 이사할 주민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줄어드는 주민의 감소 속도가 훨씬 빨라질 판이었다.섬의 어르신 중 일부가 이와모토 씨에게 “도와 달라”고 조심스럽게 요청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적당히 인사치레로 대답하고 말았을 텐데…. 이와모토 씨는 달랐다. 그의 가슴이 뛰었다. 저출산, 고령화, 인구 감소 등 일본의 문제점이 응축된 낙도를 교육으로 되살리고 싶다는 의지와 사명감이 일었다.넉 달 뒤 회사에 사표를 냈다. 소니 인사부 관계자는 “입사 면접에서 ‘세계에 공헌하고 싶다’고 말한 걸 기억한다”며 격려했다. 부모도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여자친구도 거들었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부모는 난색을 표했다. 일류 대기업을 떠나 월급이 절반인 데다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동사무소 계약직으로 가겠다고 하니…. 딸 가진 부모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와모토 씨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2006년 12월. 그는 짐을 싸서 기자가 방문한 같은 코스로 아마 정을 향했다. ‘교육으로 반드시 섬을 부활시키겠다’고 다짐하며.섬의 불편함 재구성한 역발상어느 낙도나 안고 있는 문제점은 비슷하다. 아마 정 인구는 10년 전 2600명에서 현재 2300명으로 줄었다. 인구부터 늘리는 게 급선무였다. 외부에서 특히 출산이 가능한 20, 30대를 끌어오려면 일자리와 자녀교육을 위한 학교가 필수적이다. 이런 판단에서 이와모토 씨는 도젠고의 매력을 높이는 작업이 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동사무소 계약직원이 된 그는 ‘고교 매력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지역 과제를 해결하고 활성화할 인재를 육성하는 게 목표였다. 아울러 대도시 학생들도 유학을 오고 싶게끔 만들고자 했다.‘도젠고의 매력이 뭘까?’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단점만 잔뜩 나왔다. 학생 수가 계속 줄고 1차산업 자원만 풍부하며 본토까지 드나들기 힘들고…. 이를 장점으로 만들어야만 본토 학생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다.역발상의 접근이 빛을 발한 게 이때였다.학생 수가 적으면 ‘소규모 집중 교육’을 할 수 있다. 도젠고의 전체 학생은 130명이고 교사는 18명이었다. 교사 1명이 약 7명의 학생을 맡는 셈이다. 볼링장 당구장 오락실 등 도시엔 널려 있는 학생들의 놀이시설이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부각했다. 낚시, 수영, 나물 캐기, 눈싸움 등 창의력을 개발하는 놀이를 활성화했다. 24시간 편의점도 없고 대형 전자매장도 없다 보니 필요한 것을 미리 사는 계획성도 기를 수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할 때 인내력이 생긴다. 물류비로 인해 공산품이 비싼 대신 섬에서 나는 어류 채소는 저렴했다. 생존을 위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한다. 이와모토 씨는 2010년부터 도쿄와 오사카(大阪)의 학원들을 찾아다니며 장점으로 승화시킨 아마 정 교육 프로그램 설명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섬 유학’을 홍보한 지 2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폐교를 걱정하던 도젠고는 지난해 1학년을 1학급에서 2학급으로 늘렸다. 지난해 신입생 수는 59명. 그중 21명이 본토에서 찾아온 유학생이다. 2010년 교토대 게이오대 와세다대 등 출신의 강사 6명을 모셔왔다. 한국의 학원에 해당하는 학습센터를 개설하기 위해서다. 동일한 수업을 받는 학교와 달리 학습센터에선 학생 수준에 맞는 개별 지도를 한다. 현재 학생 130명 가운데 50여 명이 학습센터에 다닌다.학습센터에선 지역 주민도 참가하는 ‘꿈 세미나’도 열린다. 학생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면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찾아준다. 그러자 학생들도 달라졌다. 이젠 스스로 목표의식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과거엔 아마 정의 부자는 자녀를 모두 본토 고교로 보냈다. ‘본토 고교=우수한 고교’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이젠 아마 정에서도 우수한 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피어나고 있다. 지난해 졸업생 33명 중 아마 정 사상 최초로 명문 사학인 와세다대 입학생이 나왔다. 아마 정의 중학교를 졸업한 뒤 도젠고 입학 학생 비율도 과거 40∼50%에서 50∼60%로 뛰었다.인간관계 배워가는 도시 유학생들이런 게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2006년 아마 정으로 왔을 때 대부분의 주민은 그를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낯선 도쿄에서 온 젊은이가 섬을 교육으로 살리겠다고 했으니…. 적을 두고 있던 동사무소의 상당수 직원뿐 아니라 도젠고의 일부 교사도 의심의 눈초리를 건넸다. ‘이 도회지 녀석이 무슨 꿍꿍이로 여길 왔지?’ 마치 이런 눈길이었다. 고교 매력화 프로젝트의 성과도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계속 섬을 떠났다. 첫 2, 3년 동안 이와모토 씨는 애가 탔다. ‘괜히 왔나’ 하는 후회도 됐다.몇 년 후 도시 학생들이 섬으로 유학 오기 시작했지만 그때도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또 다시 발생했다. 아마 정 학생은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교 졸업까지 항상 같은 반 친구들과 공부했다. 최근 도쿄와 오사카에서 유학생이 오면서 이른바 ‘도시 학생’과 함께 공부하자 문화적 충돌이 벌어졌다. 서로 따로 놀기 시작한 것.2년 전 학예회를 준비하는 아이디어 회의 때의 일이다. 도시 학생들이 이런저런 의견을 내는 동안 아마 정 학생들은 잠자코 들었다. 아마 정 학생들은 회의가 끝난 뒤 “도시에서 온 애들은 자기 말만 하고 주변 배려를 안 한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지역 주민에게 폐를 끼친다”고 지적했다. 도시 출신 유학생들은 “아마 정 학생들은 회의 시간에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고 나중에 불만만 이야기한다”고 맞받아쳤다.하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했다. 아마 정 주민들은 그의 열정을 믿기 시작했고, 학생들도 문화적 충돌을 자연스럽게 극복했다. 학생들의 융합 촉매제는 낚시였다. 낚시를 해본 경험이 없던 도시 학생들이 자연히 아마 정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데면데면하게 지낼 수만은 없던 아마 정 학생들이 월척을 낚는 포인트를 알려주고 함께 낚시를 했다. 긴 시간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서 가치’의 충돌은 사라졌다.이들이 의기투합하면서 ‘관계 맺기’ 관광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간사이(關西) 지역 출신 유학생에겐 대부분 알고 항상 인사하는 아마 정 주민들의 끈끈한 인간관계가 너무나 신기했다. 이런 정(情)을 관광객에게도 느끼게 해주자는 아이디어가 이 프로그램 탄생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면 관광객에게 ‘성이 오타(大田) 씨인 주민 3명을 찾아 그들의 집을 지도에 표시 하세요’ ‘굴 양식업을 하는 주민 5명을 찾아 사진을 찍어오세요’ 등의 숙제를 내는 것이다. 관광객은 아마 정 주민들과 이야기하며 도움을 받아야만 숙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아마 정 주민들이 얼마나 끈끈한 정을 갖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관계 맺기’ 관광 프로그램은 2009년 일본 전국 관광프로그램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30세에 돌아와 동장 하겠다는 학생들이와모토 씨의 낙도행은 대도시 주민이 농어촌으로 이주한 사례다. 그가 아마 정을 찾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218가구 330명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전체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여전히 섬에서 나가는 주민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이와모토 씨의 새로운 과제는 장기적인 아마 정의 발전 방향을 만드는 것. 고교생이 아마 정에 머물 수 있도록 온갖 아이디어를 냈던 그는 뜻밖에도 학생들에게 고교 졸업 뒤 섬을 떠나라고 조언한다. 더 큰 세상을 보고 아마 정과 다른 문화를 경험해야 고향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그들이 완전히 떠나버리면 어떻게 할까. 그는 “고교 시절은 장래의 삶과 진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아마 정의 가능성을 몸으로 느낀 학생일수록 고향에 대한 애착이 높아진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이와모토 씨는 설문조사 결과 하나를 내밀었다. 고교 매력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2010년 4월과 2011년 3월에 질문한 것. ‘장래 아마 정에 되돌아와 일을 하고 싶다’는 질문(5점 만점)에 대한 응답은 2.77점에서 3.22점으로 높아졌다. ‘고향에 공헌하고 싶다’는 응답도 3.19점에서 3.84점으로 뛰었다. 몇몇 졸업생이 섬을 떠나며 남긴 말도 소개했다. A 군은 지난해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며 “30세에 돌아와 동장을 하겠다. 그래서 섬의 총행복지수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B 군은 “꼭 되돌아와 지역을 활발히 움직이게 할 커뮤니티 카페를 만들겠다”고 했다. C 양은 “섬에 의료시설이 부족하니 간호사가 돼 섬 주민들을 돌보겠다”고 했단다. 이 가운데 얼마나 되돌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들의 이런 답변은 희망을 준다.낙도 생활 7년째에 접어든 도쿄 토박이 자신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만족합니다. 식사가 맛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쌀과 야채, 생선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동사무소 4분 거리에 집이 있습니다. 매일 저녁을 집에서 먹고 두 살 된 아이를 목욕시킵니다. 요즘은 가족 모두가 전통 춤을 배우고 있습니다. 학교 과외활동으로도 도입했습니다. 아마 정에선 가정 직업 취미 생활이 모두 연결된 느낌입니다. 도쿄에서 과연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아마(시마네 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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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의원들 얼굴 비치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日정부, 차관보급 파견 검토

    일본 정부가 22일 시마네(島根) 현이 주최하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행사에 차관보급 인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행사에 국회의원이 개별적으로 참석한 적은 있지만 정부 고위 인사가 가는 것은 처음이다. 1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현직 참의원 의원이자 차관보급인 시마지리 아이코(島尻安伊子)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시마네 현은 이 행사에 아베 총리도 초청했다. 하지만 사흘 뒤인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예정된 만큼 총리 또는 각료가 가기보다는 그 아래 정무관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2006년 2월 첫 행사 때는 국회의원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 행사에는 국회의원 4명이 참석했다. 지난해에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 2명을 포함해 국회의원 13명이 참석했다.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청년국장,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간사장 대행 등 자민당 간부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 총리 직속 교육재생실행회의는 15일 학생의 심성교육을 위해 학습지도요령에 도덕을 정식 교과로 규정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주무부서인 문부과학성은 보고서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아베 총리는 2007년 ‘1차 아베 내각’에서 도덕의 정식 교과화를 추진했지만 “계량화하기 어려운 도덕의 영역에 대해 성적을 매겨야 한다”는 점을 들어 문부과학성에서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현 문부과학성의 내부 기류는 과거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교원노조 등은 “도덕 교육을 통해 국가의 가치관을 주입하려는 시도”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천황(일왕)에 대한 충성심 배양에 활용된 수신(修身) 과목의 부활” 등의 문제점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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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박형준]일왕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영상 10도를 웃돌 정도로 포근했던 지난달 2일. 기자는 신년을 맞아 공개되는 일왕의 거처인 고쿄(皇居)에 서 있었다. 이미 오전 11시경부터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고쿄 입구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줄지어 선 대형 관광버스. 일장기를 부지런히 나눠주는 한 우익단체의 부산한 움직임. 경찰들은 일일이 검문을 했다. 금속탐지기에 이어 몸을 더듬는 수준의 검색. 모두 여경이었다. 행사장에 온 순서대로 10열종대로 줄을 섰다. 노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연인들, 한두 살 된 아기를 목에 태운 가족 등 다양했다. 경찰 지휘에 따라 2중으로 된 다리를 건너 고쿄 안으로 들어가자 ‘와∼’ 하는 탄성과 함께 팔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일왕 가족이 궁전(宮殿)에서 나오자 시민들이 일장기를 흔든 것.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일왕과 관련된 또 다른 사례. 지난해 여름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 한 명과 저녁을 먹었다. 한국말로 대화했다. 기자는 일왕을 ‘덴노(天皇)’라고 지칭했다. 그러자 친구는 주위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덴노’라고 부르지 말고 한국 발음으로 ‘천황(일왕)’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외국인이 ‘신성한 단어’인 덴노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옆자리의 일본인이 시비를 걸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왕은 신(神)이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새롭게 등장해 권력을 잡은 신흥무사들은 일왕을 신격화했다. 국민에게 신격화된 존재를 알리기 위해 1882년경부터 전국 학교에 일왕의 사진을 내걸었다. 축제일에는 교사와 학생이 이 사진을 향해 직각으로 허리를 굽혀 절했다. 1880년에는 일왕에 대한 불경죄가 만들어져 감히 일왕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자 일왕은 신의 존재에서 일반인으로 바뀐다. 1946년 1월 일왕은 ‘인간 선언’을 했다. 그해 연합국이 주축이 돼 만든 일본 헌법은 제1조에서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라고 했다. 그로부터 약 70년. 일왕은 ‘상징적 존재’에 불과할까? 기자가 보기엔 일왕은 여전히 일본인의 가슴속에 신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인은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분노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에게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일왕이 피해지를 방문하자 피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했다. 일왕의 존재감은 1년이 멀다 하고 바뀌는 총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최근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의원이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왕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스쿠니신사는 A급 전범이 합사된 곳이다. 총리의 참배에 한국과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뜨거운 ‘정치의 현장’이다.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패전 후 8차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지만 A급 전범이 합사된 1978년 이후에는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다면 일왕이 정치 현장에 뛰어든다는 뜻이 된다. 주변국 반발이 불 보듯 뻔히 예상되고 일본은 심각한 외교 갈등을 겪을 것이다. 일왕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요구하는 주장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동일본 대지진 때의 성숙한 시민의식, 뛰어난 기술력, 저개발국에 대한 경제원조 등을 보면 일본은 세계에서 존경받을 여건을 충분히 갖춘 나라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런 ‘일본의 품격’을 일부 극우 정치인이 모두 깎아먹는 악순환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까.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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