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형준]일왕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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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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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영상 10도를 웃돌 정도로 포근했던 지난달 2일. 기자는 신년을 맞아 공개되는 일왕의 거처인 고쿄(皇居)에 서 있었다. 이미 오전 11시경부터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고쿄 입구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줄지어 선 대형 관광버스. 일장기를 부지런히 나눠주는 한 우익단체의 부산한 움직임.

경찰들은 일일이 검문을 했다. 금속탐지기에 이어 몸을 더듬는 수준의 검색. 모두 여경이었다.

행사장에 온 순서대로 10열종대로 줄을 섰다. 노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연인들, 한두 살 된 아기를 목에 태운 가족 등 다양했다. 경찰 지휘에 따라 2중으로 된 다리를 건너 고쿄 안으로 들어가자 ‘와∼’ 하는 탄성과 함께 팔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일왕 가족이 궁전(宮殿)에서 나오자 시민들이 일장기를 흔든 것.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일왕과 관련된 또 다른 사례. 지난해 여름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 한 명과 저녁을 먹었다. 한국말로 대화했다. 기자는 일왕을 ‘덴노(天皇)’라고 지칭했다. 그러자 친구는 주위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덴노’라고 부르지 말고 한국 발음으로 ‘천황(일왕)’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외국인이 ‘신성한 단어’인 덴노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옆자리의 일본인이 시비를 걸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왕은 신(神)이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새롭게 등장해 권력을 잡은 신흥무사들은 일왕을 신격화했다. 국민에게 신격화된 존재를 알리기 위해 1882년경부터 전국 학교에 일왕의 사진을 내걸었다. 축제일에는 교사와 학생이 이 사진을 향해 직각으로 허리를 굽혀 절했다. 1880년에는 일왕에 대한 불경죄가 만들어져 감히 일왕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자 일왕은 신의 존재에서 일반인으로 바뀐다. 1946년 1월 일왕은 ‘인간 선언’을 했다. 그해 연합국이 주축이 돼 만든 일본 헌법은 제1조에서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라고 했다.

그로부터 약 70년. 일왕은 ‘상징적 존재’에 불과할까? 기자가 보기엔 일왕은 여전히 일본인의 가슴속에 신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인은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분노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에게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일왕이 피해지를 방문하자 피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했다. 일왕의 존재감은 1년이 멀다 하고 바뀌는 총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최근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의원이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왕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스쿠니신사는 A급 전범이 합사된 곳이다. 총리의 참배에 한국과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뜨거운 ‘정치의 현장’이다.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패전 후 8차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지만 A급 전범이 합사된 1978년 이후에는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다면 일왕이 정치 현장에 뛰어든다는 뜻이 된다. 주변국 반발이 불 보듯 뻔히 예상되고 일본은 심각한 외교 갈등을 겪을 것이다.

일왕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요구하는 주장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동일본 대지진 때의 성숙한 시민의식, 뛰어난 기술력, 저개발국에 대한 경제원조 등을 보면 일본은 세계에서 존경받을 여건을 충분히 갖춘 나라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런 ‘일본의 품격’을 일부 극우 정치인이 모두 깎아먹는 악순환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까.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왕#야스쿠니신사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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