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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국 한국을 돌고 돌아 북한의 대화 타깃은 결국 다시 미국이었다. 북한은 16일 미국에 북-미 당국 간 고위급회담 개최를 전격 제안했다. 11일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지 닷새 만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중대담화를 통해 “조선반도(한반도)의 긴장국면을 해소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해 조미(북-미) 당국 사이에 고위급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국방위는 북-미 회담의 의제와 관련해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 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 문제를 포함해 쌍방이 원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폭넓고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 장소와 시일에 대해서는 “미국이 편리한 대로 정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국방위는 이날 북-미 회담을 제안하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수령님(김일성 주석)과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며 우리 당과 국가와 천만군민이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대외적으로 발표한 것은 김정은 체제의 공식 출범(지난해 4월) 이후 처음이다.그러나 국방위는 “우리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라고 주장했다. 이어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의 당당한 지위는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고 외부의 핵위협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추호의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토대 위에서 미국과의 ‘핵 군축 회담’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국방위가 미국을 향해 “전제조건을 내세운 대화와 접촉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북한만의 비핵화’로 의제를 국한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미국은 이에 대해 북한이 비핵화를 준수하겠다는 행동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미국은 대화를 선호하며, 북한과 대화 라인을 열어놓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에 다다를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려면 북한이 유엔 결의안 등 국제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북-미 간 대화나 협상이 진행되려면 북한이 진정성 있는 행동을 먼저 보여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해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北, 日→中→韓→美 ‘릴레이 노크’… 核 명분쌓기용 찔러보기 ▼북한은 미국에 고위급회담을 제안하면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중단 등 국제사회가 요구해온 의무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비핵화 유훈’으로 포장한 북한의 다목적 포석북한은 오히려 미국에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미국과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는 데 진실과 관심이 있다면 전제조건을 내세우지 말라”는 식의 훈계조로 일관했다. 최소한 지난해 2·29합의 때의 조건을 충족해야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다는 미국의 기본 입장을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다. 2·29합의는 미국이 북한에 24만 t 규모의 영양(식량) 지원을 하고 이에 호응해 북한은 △장거리로켓 발사와 핵실험의 모라토리엄(유예) △영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 등 비핵화 사전조치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자국 내 대북 강경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도출했던 2·29합의가 같은 해 4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로 어이없이 깨진 이후 어느 때보다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 측 6자회담 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4일(현지 시간) 경남대와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에서 공동 주최한 ‘제4차 워싱턴포럼’에서 “미국은 실질적인 문제인 북한 핵 프로그램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원한다”며 북-미 대화의 의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북한이 12일 예정됐던 남북 당국회담을 하루 전날 무산시킨 뒤 16일 미국에 대화를 제의한 것을 두고 ‘통미봉남(通美封南)’ 시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중 정상회담(27일)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한미중의 3각 협력을 흔들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북-미 대화에 앞서 남북 대화를 하라는 것이 미국이 북한에 해온 요구였다”며 “북한이 남북 대화를 건너뛰고 미국을 상대하려는 것은 현재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북한이 이날 지난해 4월 개정헌법에 핵보유국임을 천명한 이후 1년 넘게 꺼내지 않던 ‘유훈’ 언급을 다시 꺼내 든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러나 북한은 그 조건으로 “미국의 핵위협부터 종식하라”고 요구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밝힌 ‘핵 없는 세계 건설’까지 거론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특히 “우리의 핵 보유는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기존의 궤변도 되풀이했다. 의제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핵 문제보다 평화체제 이슈를 앞세웠다. 결국 핵개발 관련 의제는 군축 및 비확산 회담의 성격으로 논의하면서 평화체제 협상에 집중해 체제 보장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노골적 대화공세의 종착점은 어디?북한은 북-미 회담 제의를 거부당하더라도 최근 보여 온 일련의 대화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위협과 도발 이후 대화공세를 펼 것이라는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런 대화공세는 당분간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실제 북한은 최근 ‘도발과 위협 후 대화’라는 기존 패턴을 반복하며 고립 국면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북한은 지난달 일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참여(총리 자문역)의 방북을 받아들였다. 이후 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에 파견해 “주변국들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6일 한국 정부에도 포괄적인 의제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며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의했다. 북한은 조만간 러시아에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등을 특사로 보내 북-러시아 고위급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의 특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북한은 이 밖에 30일부터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외교적 대화공세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자리에서 남북 외교장관 회담이 성사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대화를 위한 대화’를 제안한 뒤 성사되지 않으면 ‘우리의 대화 시도가 거부당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다시 도발과 위협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이정은·윤완준 기자·워싱턴=신석호 특파원 lightee@donga.com}

《 ‘만일 급변사태로 북한지역에 권력공백이 생긴다면 핏줄이 같고 역사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남한이 북한을 접수해 통치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이런 명제에 대해 한국인 대부분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지극히 당연한 논리가 국제사회에서 그대로 통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유엔 또는 미국, 중국의 개입 가능성이 높다. 한국 주도의 ‘통일외교’가 절실한 이유다. 동아일보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은 5일 서울 중구 충무로 한선재단 회의실에서 통일외교 강화방안에 대해 집중토론을 벌였다. ‘통일의 길, 북한의 정상국가화’라는 주제로 진행돼온 공동세미나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자리였다. 》▼ 美의 獨통일 지지가 英-러 등 동참 이끌어내비핵-시장경제-민주주의 통일원칙 부각필요 ▼이명박(MB) 정부 시절 북한 붕괴에 대한 ‘희망 섞인 기대(wishful thinking)’가 적지 않았다. MB정부에서 외교부 정책기획관을 지낸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 급변사태 때 한국정부에 실질적 권한이 어느 정도 위임 또는 이양될 것인지의 문제는 한국정부의 전반적인 통치 및 행정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북한지역을 제대로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또 그 역량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지가 한국의 군사분계선(MDL) 이북지역 접수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위원은 “북 급변사태 시 유엔의 승인을 받아 다자적인 개입을 하되 실질적으로는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이 통일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동의할 수 있는 통일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국 필요한 것은 ‘통일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불리하지 않다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남궁 교수는 통일외교의 근간은 결국 한미동맹에 기반을 둔 한미 간 공조와 협력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이해가 충돌한다면 그 우선순위는 한미관계에 있다는 점을 중국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미국의 확고한 지지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당시에는 소련)의 동참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는 “중국의 무리한 팽창이나 북한의 돌이킬 수 없는 핵무장 강화로 동북아 안보질서가 파탄나지 않도록 하는 핵심역할은 한미동맹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통일한국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한미 공통의 가치를 증진하고 미국의 동북아 지역 핵심파트너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미국 조야에 부각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상현 연구위원은 “북한 급변사태 시 미국의 최대관심은 북한 핵무기 확보 및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라며 “미국은 남북통일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완전폐기에 크게 기여한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 中, 美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 우려해 분단 선호 “통일한국, 동북3성과 경협등 이익” 인식 심어야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북한이라는 프리즘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 온 양국 관계는 최근 시진핑(習近平) 주석 중심의 제5세대 지도부가 등장한 뒤 대전환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강화될 때마다 대북(對北) 한미일 3국 협력이 강화되고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내 영향력이 커지는 빌미가 되자 중국 내에서는 북한이 더는 전략적 자산(資産)이 아닌 부채(負債)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일부 학자는 “북한의 존속이 중국의 핵심적이고 전략적인 가치에 유해하며 통일한국이 과거 북한을 대치하는 ‘전략적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중국 정부는 여전히 북한의 존립 자체를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 한반도의 안정과 현상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 주도로 통일된 한반도에서 자국에 비(非)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이 정권이 미국을 도와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미나 토론자들의 결론은 결국 통일한국이 중국에 불리하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한다는 데 모아졌다. 남궁 교수는 “통일된 한반도는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극동지방의 발전을 촉발하고 광대한 경제교류와 협력의 공간을 확보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동북 3성의 동북 진흥 계획에 적극 참여하여 이곳 주민들의 통일 지지 기반 네트워크 확충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원을 획득하고 강화하기 위한 차원의 공공외교 추진을 강조했다. 공공외교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 정무나 경제 분야의 외교를 펼쳐 나가던 것을 뛰어넘어 직접 대상국의 국민에게 다가가는 외교다. 자국의 국가적 목표나 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통상적 외교 활동뿐만 아니라 제도와 문화, 생활의 방식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이다. 박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와 쌍무적 협력을 통해 한반도 통일 관련 자료를 제작해 공급하는 등의 노력을 꾸준히 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日, 북한 경제재건-중국군 개입 저지에 큰 역할“통일 기여땐 군사협력 등 강화” 메시지 줘야 ▼한반도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도 없는 일종의 계륵(鷄肋)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주변국가가 일본이다. 전문가들은 “급변사태를 맞은 북한을 흡수통일한다고 할 때 중국군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의 강고한 군사적 협력이 억제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재건을 위한 국제적 컨소시엄을 구성할 경우에도 일본의 경제적 기여는 필수적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 급변사태의 관리 실패로 북한 군부와 충돌이 벌어진다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따른 일본의 후방지원은 전쟁의 승리 및 안정화 작전에 긴요하다는 것이 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일본 고베(神戶)대 방문교수로 있는 남창희 인하대 교수는 “일본의 개헌, 집단적 자위권 행사, 국방군 격상 등에 대해 무조건 반발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경제력과 잠재적 군사력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건설적 요소가 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중국에 경도되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는 일본의 불안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일본의 행동 여하에 따라 우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며 “일본이 한반도 통일외교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면 한국도 군사협력 강화 등 일본의 요구에 맞춰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미안하지만… 지금 南은 능력도 의지도 없다” ▼“젊은층 시큰둥… 국민공감대도 약해, 통일 큰그림-남북 갈등 조정력 필요”“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통일의지가 있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과격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미국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나 대기업 최고 경영자들에게서 적극적 의지를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모두 우리의 통일의지를 의심하는데 통일을 지지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은 “결국 한반도 통일은 우리 하기에 달려 있다”며 “통일에 대한 국민 내부의 공감대를 넓히고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갈등 조정 능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현재 우리의 능력으로는 주도적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토로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통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필수다. 북한을 수용하는 것은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그림을 그려놓고 보아야 한다. 정상차원의 통일외교 역량도 중요하다. 독일 통일논의가 진행될 때 프랑스 대통령이 갑자기 동독을 국빈 방문한다. 통일독일에 반대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하지만 서독은 미국과 영국의 적극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는데 바로 그것이 통일외교의 힘이다.”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은 가능한 것인가. “한반도의 구조적 상황을 볼 때 남북공조에 의한 통일, 또는 남북 간 대화나 합의에 의한 통일은 어렵다고 본다. 결국 한국이 주도하고 선도하는 통일의 가능성만이 남아 있다. 당사자인 한국의 주도적인 의지와 능력이 중요하다.” ―갈등조정 능력을 유난히 강조하는데…. “중국 사회과학원이 5년마다 국력지표를 조사해 공개하는데 군사력 자원력 과학기술력 등 하드파워, 문화 외교 정보력 등 소프트파워와 더불어 갈등 조정력을 중요한 국력의 척도로 삼고 있다. 통일외교에서도 갈등조정 능력은 필수적이다.”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참석자(가나다순)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김태현 중앙대 교수남궁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남창희 인하대 교수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용환 한선정책연구원장이태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남북이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급을 놓고 거센 샅바싸움을 벌인 핵심에는 북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있다. 정부는 9일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통-통(통일부-통일전선부장)’ 라인 간 회담을 제안하며 김 부장의 참석을 요구했지만 북한 측이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른바 ‘격(格)의 싸움’이 본격화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12일 국회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대화라는 것은 격이 맞아 서로 수용해야지 일방적으로 굴욕을 당하는 대화는 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수석대표 문제를 양보해서라도 회담을 성사시켰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도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무한대로, 일방적으로 (북한에) 양보했지만 이제는 남북이 격에 맞는 대화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격 떨어지는 북한의 수석대표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남북 양측이 미리 직급 대조표를 만들고 회담의 중요도에 따라 수석대표를 미리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2000∼2007년 개최됐던 1∼21차 남북 장관급회담에 참가했던 남측 수석대표는 모두 6명. 박재규 홍순영 정세현 정동영 이종석 이재정 등 모두 통일부 장관이다. 반면 상대방으로 나온 북한 수석대표는 내각 책임참사라는 직함을 썼지만 실제 맡고 있는 업무나 격은 장관급에 턱없이 부족했다. 1∼4차 장관급회담 수석대표로 나온 전금진은 당시 통일전선부 부부장. 노동당 산하 전문 부서인 통전부가 남측 통일부의 상대인 만큼 통전부 부부장은 차관급에 해당한다. 5∼13차 북측 수석대표는 조국평화통일위(조평통)의 김령성 서기국 제1부국장이었다. 김 부국장은 한국의 국장∼차관보급에 걸쳐 있는 직위라는 평가도 있지만 조평통이 당의 외곽기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관급인 한국 수석대표와 비교하면 격이 한참 떨어진다. ○ ‘통-통’ 라인 동의했던 김양건의 변심 김양건 부장은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 혼자만 배석했다. 맞은편의 노무현 대통령 옆에는 권오규 경제부총리,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 4명이 앉았다. 일부 전문가와 야권 일각에서는 이를 들어 “통일전선부장이 최고지도자에 대해 갖는 영향력과 부여받은 신임이 한국의 통일부 장관보다는 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당(黨) 국가체제인 북한의 특수한 체제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양건의 격을 너무 높게 볼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김 부장은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비밀접촉을 갖고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하면서 ‘통-통’ 라인을 통한 업무 공식화에 동의한 당사자다. 같은 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단으로 서울에 내려와서는 임태희 장관과 밤늦게 양주를 마시며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그때는 북한이 (쌀과 비료 등) 거액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만큼 김양건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이라도 나왔을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결국 문제는 단지 수석대표의 급이 아니라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의도와 태도”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과거 남한이 회담 진행을 위해 용인해 준 ‘잘못된 격과 급’에 집착해 오기를 부리다 이번 회담의 기회를 걷어찼다는 취지다.이정은·고성호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유엔이나 미국하고 회담할 때도 그런 식으로 하겠나.”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격’에 대한 원칙을 정하며 이같이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박 대통령은 “북한과도 일반 국가와 외교하듯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출 필요가 있다. 예전처럼 하지 않고 남북한이 서로 격을 맞추는 것이 국민 정서와도, 세계 관례와도 맞는 것”이라는 뜻이 확고했다고 한다. 11일 수석대표 명단 교환 과정에서도 박 대통령의 이런 의지가 강력히 반영됐다. 회담 무산 직후 청와대 관계자가 “북한이 첫 회담에 임하면서 과거 해왔던 것처럼 상대에게 존중 대신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것은 발전된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도 대통령의 이런 원칙에 따른 것이다. ○ 박 대통령, “회담 무리하게 성과 낼 필요 없다”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회담에 임하면서 무리하게 속도를 내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라는 기본원칙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이 얽힌 현안은 한 번에 해결될 수 없는 만큼 첫 당국회담에서 굳이 북한으로부터 많은 약속을 얻어낼 필요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한다.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을 주요 의제로 삼겠지만 어느 논의도 12, 13일 회담에서 완결 짓기보다는 북한의 의견을 듣고 우리의 뜻을 충분히 전달하는 쪽으로 기류를 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북한이 유연한 제안을 해올 경우 그에 상응해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전략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북한이 당국 간 대화 제의에 응하기는 했지만 과연 대화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한 ‘쇼’인지 예단하지 않고 예의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북한이 9일 판문점에서 열린 실무접촉에서 ‘남북 당국회담’을 주장하거나 명단을 회담 예정일 하루 전까지 제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북한의 다양한 패턴 중 하나”라며 차분하게 지켜봤다고 한다. 이런 회담 전략에는 “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따라서 북한의 태도가 변화하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먼저 북한에 추가 제안을 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27일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 전에 무리하게 남북회담을 진행해야 할 이유도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온 국민이 이 과정을 다 지켜봤고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했기 때문에 국민들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첫걸음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화의 문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은 채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이날 회담 무산을 통보하면서 “대표단 파견을 보류한다”며 다소 유보적인 표현을 사용한 만큼 냉각기를 거쳐 전향적인 태도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화 기회 걷어찬 북한 북한은 어렵게 얻은 대화의 기회를 걷어찼다. 전격적으로 대화에 응할 듯이 나오다가 이날 오후 태도가 돌변해 “무산 책임은 남한에 있다”고 반발한 것도 북한에 대한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대목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당장 “북한의 대화 제의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미봉책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에 앞서 선제적으로 대화 공세를 펴기 위해 남북 대화를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예상 외로 강경한 미중 양국의 태도에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이제 북한은 이런 의심이 쌓이면서 더 냉랭해진 박근혜정부와 마주해야 한다. 남북 대화가 어이없이 어그러진 상황에서 북한이 기대하는 북-미 대화는 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어느 때보다 완강하다. 대화 분위기를 띄워 보려던 중국도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이 27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 번 강도 높게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 한중 협공으로 돌파구가 막혀버리는 셈이다. 극적 반전이 없을 경우 북한으로서는 더욱 심화된 고립과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지 않고 ‘돈줄’이었던 개성공단 정상화도 지연되면서 춘궁기를 지나고 있는 북한의 내부 사정은 더욱 악화될 위기에 놓여 있다.동정민·이정은 기자 ditto@donga.com}
정부가 12, 13일 남북 당국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언급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그 수위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10일 “북한과 어떤 대화를 하더라도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핵으로 연결된다”며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언급은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가 의제에는 포함되지 않더라도 논의 과정에서 북측에 비핵화와 이를 위한 6자회담 복귀 필요성 등을 거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7일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의 원칙을 강하게 천명한 것도 정부의 이런 방침에 힘을 보탰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는 6년 만에 열리는 남북 고위급회담인 만큼 남북이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의제들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은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논의하면서 남북대화를 어느 정도 다시 궤도에 올린 뒤 비핵화 논의로 연결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이 대표단으로 누구를 보내느냐가 대화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첫 번째 근거”라며 “이를 살펴가며 비핵화의 발언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문제와 관련한 대화 상대로 미국만 인정하겠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밝혀왔다. 그러나 과거 남북 장관급회담을 살펴보면 남북이 핵문제도 논의한 전례가 없지 않다. 남북은 2002년 10월 8차 회담에서 ‘남과 북은 핵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명시했다. 북한이 당시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에게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보유를 시인한 직후였다. 그때 정부는 “북한이 핵 이슈가 북-미 간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남북 간에는 언급을 안 하려는 자세였으나 우리 측의 강력한 촉구와 압박에 태도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다음 해인 2007년 3월 열린 20차 장관급회담에서도 양측은 핵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당국자들은 “남북대화가 핵문제 해결에 유용한 틀임을 확인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더운 날씨에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천해성 남측 수석대표) “몇 년 만에 진행되는 회담인데 더운 날씨든 추운 날씨든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김성혜 북측 수석대표) 9일 오전 10시 15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회의실. 마주 앉은 남북 실무회담 대표단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회의실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 대표의 양옆으로 통일부 권영양, 강종우 과장이 배석했다. 반대편에는 김 대표를 중심으로 북측 대표단의 황충성, 김명철이 앉았다. 양측 뒤쪽으로는 기록 등을 담당하는 연락관이 한 명씩 자리 잡았다. 이날 회의장에 동시 입장한 양측 대표단은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곧바로 회담에 돌입했다. 오전 11시. 45분 만에 오전 회담이 종료됐다. 별다른 논쟁 없이 차분히 논의를 진행했다고 통일부 당국자는 전했다. 하지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회담은 오후 2시 수석대표 간 독대 형식으로 본격적인 의제 조율에 들어서면서 치열하고 숨 가쁜 협상전으로 변했다. 1차 수석대표 접촉이 1시간 만에 끝나고 오후 5시에 속개된 2차 접촉은 20분 만에 다시 종료됐다. 이어 5시 50분 3차, 7시 35분 4차, 9시 35분 5차, 10시 35분 6차, 그리고 10일 오전 1시 55분 7차 접촉까지 속개와 휴회를 반복하며 양측의 날선 신경전이 이어졌다. 세부적인 내용의 합의에 난항을 겪으면서 남북 대표가 양측 본부에 중간중간 회담 상황을 보고하고 조율하는 절차가 반복된 것이다. 장관급회담의 대표단 구성 등 문제를 놓고 완강히 버티던 북한은 3차 접촉에서 다소 유연한 태도로 합의점을 찾으려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양측은 합의문의 문안 조율 단계로 넘어갔으나 여기서 다시 난관에 부닥쳤다. 오전 2시가 넘도록 합의문 도출이 이뤄지지 않자 일각에서는 “이러다 회담이 아예 결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날 회담이 열린 판문점은 비(非)군사 분야의 의제를 논의하는 장소로는 2000년 이후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다.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군부가 총괄 관리한다. 그런 점에서 당초 개성공단을 장소로 제안했던 북한이 판문점에서 만나자는 남측의 수정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북한 군부의 대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측 대표단은 이날 오전 9시 43분경 군사분계선을 건너 판문점 남측으로 넘어왔다. 김 대표는 청록색 투피스 정장 차림에 흰색 가방을 들었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반갑습니다”란 인사말과 함께 남측 대표단과 차례로 악수를 했다. 김 대표는 “(평양에서 판문점으로) 어제 내려왔는데 평화의 집은 처음 와본다”고 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나란히 담긴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달았다. 반면 남측 대표단의 배지는 태극기 문양이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남측 수석대표는 통일부의 남북회담 베테랑인 천해성 통일정책실장(49)이 맡았다. 천 실장은 2006년 2급으로, 2011년 1급으로 승진했다. 통일부 내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시 30회로 통일부에 입부했다. 그는 2009년부터 2년 5개월간 통일부 대변인을 지냈으며 직후에는 상근회담 대표를 지냈다. 천 실장은 2000년 청와대 근무 당시 남북정상회담 실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으며 200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를 북측과 협의하는 실무접촉에도 관여했다. 경제회담인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남북 군사실무회담에도 참여한 바 있다. 장관급회담과 관련해서는 2000∼2007년 21차례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차례 회담에 직접 참여했다. 특히 천 실장이 참여한 15, 16차 장관급회담에 이번 실무접촉의 북측 수석대표인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도 관여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구면인 셈이다. 당초 판문점 실무접촉의 남측 수석대표는 배광복 통일부 회담기획부장(국장급)이었으나 접촉을 하루 앞둔 8일 실장급(1급)으로 격상됐다. 배 부장도 남북회담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지만 대표의 격을 높이라는 청와대 지시로 급히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협상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현장에서 곧바로 대처할 수 있는 권한을 크게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실무접촉은 2년 4개월 만의 남북 당국 간 만남인 만큼 돌발상황이 적지 않고 현장 지휘관이 판단을 내려야 할 요소가 많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통일부는 수석대표의 갑작스러운 교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金, 드문 ‘女 대남일꾼’… 10여차례 서울 방문 ▼일각 “남한 첫 여성대통령 의식한 것”9일 남북 실무접촉에 북측 수석대표로 나온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48)은 과거 남북회담에도 수차례 배석했던 친숙한 얼굴이다. 10회 이상 서울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대남업무를 맡아 대표적인 ‘여성 대남 일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김성혜는 2006년 6·15 남북 당국 공동행사의 보장성원(안내요원)으로 활동했고, 2005년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 제15, 16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 수행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당시 검은색 양복차림 일색인 북측 인사들 사이에서 새하얀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등장해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평양에서 진행된 만찬에서는 짙은 파란색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남측 인사들과 담소하는 모습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우리 민족에는 여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며 따로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성혜는 이희호 여사가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조문을 위해 방북했을 때 이 여사를 영접했다. 지난해 2월에는 평양을 방문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일행의 영접과 환송을 맡았다. 이에 앞서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남측 특별수행원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일성대 출신이라는 설이 나오지만 정확한 학력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여성을 실무접촉 수석대표로 보낸 것을 놓고 한 북한 전문가는 “여러 함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어렵게 재개된 남북 실무회담을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또 남한에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미중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북한 비핵화와 핵보유국 불용이라는 원칙을 천명함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당초 예상했던 대로 두 정상의 핵심 의제는 북한 핵이었다. 두 정상은 7일 2시간에 걸쳐 진행된 만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북핵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데 할애했으며 8일 2차 회담에서도 추가로 논의했다. 토머스 도닐런 국가안보 보좌관은 8일 두 정상의 합의 사항을 전하는 언론 브리핑에서 북핵 문제를 가장 먼저 거론했다. 이는 두 정상의 북핵 공조가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북한 비핵화와 핵보유국 불인정은 새로운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이 각각 2기 출범과 주석 취임 후 처음 만나 국제질서를 새로 짜는 자리에서 이 같은 원칙을 다시 확인해 북한에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해석된다. 12일 열릴 남북 장관급 회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회담 재개를 위한 구체적인 조건에 대한 합의도 없었다. 앞으로 대화 재개 문제를 두고 양국이 신경전을 펼 가능성도 있음을 보여 준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과 혈맹 관계인 중국이 공개적으로 ‘북한 핵보유국 불용’ 입장을 천명했다는 것은 북한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강화된 유엔 제재를 실행에 옮기고 고위 지도부가 (북한 핵개발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며 중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미중 정상이 북한 핵보유국 불용 원칙을 밝혀 앞으로 핵 문제에 대해 북한이 기존의 태도를 바꿀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관건은 북한이 비핵화 회담에 응하느냐다. 북한은 올해 초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 “앞으로는 군축 회담만 있을 뿐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북한도 전례 없이 높은 수위의 대북 제재가 이어지면서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돌파구를 찾아 나설 개연성이 없지 않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보냈다는 점에서 북한에는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이 당장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추가 핵실험 중단, 영변의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핵시설 가동 중단 등을 카드로 삼아 다시 북-미 대화 등에 나서려 할 개연성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가장 치열한 논의가 오간 사이버 안보에 대해 양국은 실무 그룹을 만들어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또 다른 양국 현안인 경제협력에 대해 시 주석은 미국에 대중(對中) 고급 기술 수출 제한 완화,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무역 관행이 공정한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지식재산권 침해가 아직 중대한 문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평화적인 외교 노력으로 풀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고 시 주석은 영토주권 수호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랜초미라지=정미경 특파원·이정은 기자 mickey@donga.com}
金, 北선 드문 ‘대남 女일꾼’… 옷차림 세련9일 남북 실무접촉에 북측 수석대표로 나온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48)은 과거 남북회담에도 수차례 배석했던 친숙한 얼굴이다. 10회 이상 서울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대남업무를 맡아 대표적인 '여성 대남 일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김성혜는 2006년 6·15 남북 당국 공동행사의 보장성원(안내요원)으로 활동했고, 2005년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 제15, 16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 수행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당시 검은색 양복차림 일색인 북측 인사들 사이에서 새하얀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등장해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평양에서 진행된 만찬에서는 짙은 파란색의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남측 인사들과 담소하는 모습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우리 민족에는 여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며 따로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성혜는 이희호 여사가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조문을 위해 방북했을 때 이 여사를 영접했다. 지난해 2월에는 평양을 방문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일행의 영접과 환송을 맡았다. 이에 앞서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남측 특별수행원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일성대 출신이라는 설이 나오지만 정확한 학력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여성을 실무접촉 수석대표로 보낸 것을 놓고 한 북한 전문가는 "여러 함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어렵게 재개된 남북 실무회담을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또 남한에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이정은 기자lightee@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千, 장관급 회담만 11차례 참여… 金과 구면판문점 실무접촉에서 남측 수석대표는 통일부의 남북회담 베테랑인 천해성 통일정책실장(49)이 맡았다. 천 실장은 2006년 2급으로, 2011년 1급으로 승진했다. 통일부 내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시 30회로 통일부에 입부했다. 그는 2009년부터 2년 5개월간 통일부 대변인을 역임했으며 직후에는 상근회담 대표를 지냈다. 천 실장은 2000년 청와대 근무 당시 남북정상회담 실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으며 200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를 북측과 협의하는 실무접촉에도 관여했다. 경제회담인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남북 군사실무회담에도 참여한 바 있다. 장관급회담과 관련해서는 2000~2007년 21차례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차례 회담에 직접 참여했다. 특히 천 실장이 참여한 15, 16차 장관급회담에 이번 실무접촉의 북측 수석대표인 김성혜 조평통 부장도 관여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구면인 셈이다. 당초 판문점 실무접촉의 남측 수석대표는 배광복 통일부 회담기획부장(국장급)이었으나 접촉을 하루 앞둔 8일 실장급(1급)으로 격상됐다. 배 부장도 남북회담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지만 대표의 격을 높이라는 청와대 지시로 급히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협상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현장에서 곧바로 대처할 수 있는 권한을 크게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실무접촉은 2년 4개월 만의 남북 당국 간 만남인 만큼 돌발상황이 적지 않고 현장 지휘관이 판단을 내려야 할 요소가 많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통일부는 수석대표의 갑작스러운 교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북한이 6일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하자 정부가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이라는 파격적인 맞제안을 내놨다. 2007년 5월 이후 6년 만에 장관급 회담이 열리게 될 경우 꽉 막혔던 남북 관계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다시 공을 넘겨받은 북한이 어떻게 호응하는지는 7일로 예상되는 판문점 연락채널 재개와 이어질 실무접촉 등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 간 견해차가 큰 의제들이 산적해 있는 데다 국제사회의 강한 요구를 받고 있는 비핵화 문제에서 북한의 실질적 자세 변화가 없다면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지속 가능성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긴박했던 하루 북한은 낮 12시경 ‘당국 간 회담’이란 갑작스러운 제안을 내놨다. “장소와 날짜는 남측이 편리한 대로 정하라”고 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즉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고, 북한의 제안 1시간여 만인 오후 1시 20분, “북한의 당국 간 회담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김형석 통일부 대변인)며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후 청와대와 통일부, 외교부 등은 관계부처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민간 측만 상대하며 ‘통민봉관(通民封官)’을 시도하던 북한이 당국을 향해 태도를 바꾼 만큼 남북 관계 개선을 모색해볼 여지가 생겼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회의가 끝난 뒤인 오후 6시 20분, 정부는 후속 발표를 예고했고, 오후 7시 류 장관은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을 제안했다. 북측 제의가 있은 지 7시간 만에 회담의 형태(장관급), 장소(서울)와 날짜(12일)를 구체적으로 정해 북한에 다시 제의한 것이다. 장관급 회담 준비를 위한 판문점 연락채널 재개 등 북측의 사전 조치까지 요구했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계기로 남북 관계를 급진전시키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서 통 크게” 정부의 제의는 남북 관계의 큰 틀에서 한꺼번에 통 크게 다뤄 보자는 박 대통령의 뜻이 담겼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5·24 대북제재 조치의 해제를 비롯한 다양한 이슈가 대화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여러 가지 의제를 한꺼번에 던졌는데 정부가 옹색하게 하나씩 건드려서야 되겠느냐”며 “이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려면 최소 장관급은 되어야 진지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북한이 막상 회담장에서 개성공단 정상화 같은 시급한 현안을 제쳐놓고 6·15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앞세워 거액의 대북 지원을 요구해올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전해졌다. 의제의 우선순위를 놓고 시작부터 양측이 충돌할 여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과 금강산, 이산가족 등 문제를 놓고 다양한 회담 시뮬레이션을 거치면서 북한과의 협상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준비가 다 돼 있다”며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고통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회담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화가 진전될 경우 가을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재개되고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전히 갈 길 먼 비핵화 남북 대화가 급진전될 가능성은 커졌지만 북한 문제의 핵심인 비핵화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날 남북회담을 제의하는 장문의 특별담화문을 내놓으면서 비핵화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핵개발을 강행하겠다는 기존의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남한을 핵 문제의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남북 대화가 곧바로 6자회담이나 북-미 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 회담이 다른 다자 간 대화로 쉽게 연결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남북 교류나 협력, 대화 다 좋은데 결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자 과제”라며 “이걸 무시하고 대화할 상황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북한에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아프리카 동남부 국가 말라위가 한국에 최대 10만 명의 노동 인력을 보낼 것이라는 내용이 해외 언론에 보도돼 국내외에 파문이 확산되자 외교부가 ‘사실 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말라위의 인구는 약 1700만 명이다. 또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거주 15세 이상 외국인은 111만4000명이며 이 중 취업자는 79만1000명이다. 외교부가 5일 밝힌 진상에 따르면 이 국제적 해프닝의 장본인은 말라위 현지에서 사업하는 한국인 Y 씨.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은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통상, 농업 부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말라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Y 씨는 한국 정부와의 협의 없이 ‘말라위 인력 10만 명의 한국 송출 방안’을 말라위 정부에 건의했다. 반다 대통령은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이 방안을 정부 업적처럼 홍보했고 이는 현지 언론에 크게 보도돼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말라위 야당은 ‘한국처럼 노동 여건이 열악한 곳에 인력을 보낼 수 없다’며 이 송출 계획을 노예제(slave labor)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데 말라위인 10만 명을 왜 수입해오나”라는 뜨악한 반응이 쏟아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말라위와 인력 송출에 관한 논의는 일절 없었다”며 “문제의 Y 씨는 말라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말라위의 명예영사를 자청했으나 한국 정부는 ‘Y 씨가 부적절한 인사’라는 의견을 말라위 정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은 라오스에서 추방된 탈북 청소년 9명이 강제 북송된 사건과 관련해 이를 남한의 유인납치 행위로 규정하고 주모자의 강력한 처벌을 남한 당국에 5일 요구했다. 북한의 공식 반응은 9명이 북송된 5월 28일 이후 8일 만에 나온 것이다.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조선적십자회는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우리의 나이 어린 청소년을 유인 납치해 남조선으로 집단적으로 끌어가려고 하다 발각된 반인륜적 만행사건이 드러났다”며 남한을 맹비난했다. 이어 “(송환된 청소년들은) 지금 안정을 되찾고 있으며 이제 국가적 보살핌 속에 자기의 희망과 미래를 마음껏 꽃피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미 국무부와 긴밀하게 공조한 사실’을 실토했다”고 주장하며 이번 사건의 ‘공범자’이자 ‘배후 조종자’로 미국을 지목했다. 이와 관련해 대북 소식통은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 중 일부가 6일 조선소년단 창립일 행사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남한 선교사에게 인신매매를 당했다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은혜로 다시 고국을 찾아왔다는 식의 발언을 강요받으면서 체제 선전에 이용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23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신동익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은 5일 이사회 회의에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 9명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부당한 처벌과 대우를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의 지위와 안위를 결정할 수 있는 ‘독립된 행위자(independent actor)’가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 한반도선진화재단과 동아일보는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충무로 한선재단 회의실에서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북한 인권,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 토론을 벌였다. ‘통일의 길,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주제로 진행 중인 세미나의 다섯 번째 순서다. 이 세미나는 탈북 청소년 9명의 강제북송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진행됐지만 북한 인권의 실상과 개선책, 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 등에 대한 심도 있는 토의가 있었다. 》○ 북한 민주화 이끌어야 인권 문제 풀린다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정치범수용소. 수용소에서 태어나 자란 탈북자 신동혁 씨의 이야기를 다룬 책 ‘14호 수용소 탈출’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감시의 눈길이 강화되고 있다. 정치범수용소의 수용 규모는 기존 ‘15만∼20만 명’에서 최근 ‘8만∼12만 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전향적인 정책을 편 결과라기보다 수용시설의 문제나 그 안에서의 부패 고리 등과 관련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부패 문제가 심각한 북한에서 보위부 관리들이 돈을 받고 수감자를 풀어주거나 형을 감축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그는 지적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에 따르면 북한의 인권침해 유형 중 ‘구금자의 권리’ 침해나 ‘이주 및 주거권’ 제한 사례가 2000년대 들어 많아지고 있다. 탈북하려는 주민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감시도 심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 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이 아님을 주민들에게 알려 북한 내부의 지지를 얻고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 주민들을 민주화운동의 동반자로 만들어야 한다”며 애드벌룬을 이용한 전단 및 생필품 살포, 대북 방송, 탈북자를 통한 북한 내부로의 송금 등 구체적 지원방식을 소개했다. 북한 내부로 반입되는 USB 메모리나 방송 등의 채널을 총동원해 북한 주민들에게 실상을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중국 통신망을 이용해 남북 간에 연결되는 휴대전화 사용 횟수가 하루에 3000∼4000건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중국 러시아 상대로 ‘인권외교’ 강화해야 이날 세미나에서는 북한 당국이 인권 개선에 나서도록 압박할 수단들도 의제로 올랐다. 특히 최근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개념을 적용하는 접근 방식이 관심을 끌었다. R2P는 한 국가가 자국민을 집단살해나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등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집단행동에 나선다는 원칙이다. 주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권유린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북한을 겨냥해 유엔이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구성키로 한 것도 R2P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태훈 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특위 위원장은 “COI가 성공적으로 활동해서 가급적 내년 3월 제대로 된 조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하면 책임자를 국제재판소에 회부하기 어려운 만큼 이 두 국가에 대한 ‘인권외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이규창 연구위원은 “COI의 최대 난제는 인권침해 사례의 가해자 규명”이라며 “정부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책연구소인 통일연구원,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 등이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정보의 통합 및 상호 협력 문제도 거론됐다. 이원웅 관동대 교수는 “정부 내에 이 문제를 다루는 컨트롤타워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수암 선임연구위원도 “조율 시스템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그동안 정부에 이런 문제를 수없이 얘기했는데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굶주림도 해결 절실한 인권침해” 유엔 COI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아홉 가지 인권침해 유형 중 첫 번째는 식량권이다. 굶주림을 인권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접근 방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감을 표시했지만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 문제를 놓고는 의견이 갈렸다. 이원웅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북 지원에 나서는 것은 (핵실험 등)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교수는 “구호물품이 쌓여 있는 창고에 수백만 원짜리 호화 가구가 즐비한 것을 본 적도 있다”며 “원칙 없고 일회성인 대북지원 단체들의 경쟁적인 활동은 걸러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인도적 지원에는 찬성하지만 과거처럼 한 번에 왕창 지원하는 바보짓은 안 했으면 좋겠다”며 월별로 식량을 나눠 주거나 지원예고제를 하는 방식을 제안했다.▽참석자 (가나다순)△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김태훈 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특위 위원장△이규창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용환 한선정책연구원 원장△이원웅 관동대 교수△임순희 북한인권정보센터 실장△조영기 고려대 교수△홍성기 아주대 교수이정은 기자lightee@donga.com}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을 석방시키기 위한 국제 인권단체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련 활동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반인권범죄철폐국제연대(ICNK)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강제구금 실무그룹’ 및 ‘비자발적 강제실종 실무그룹’에 이번 탈북 청소년들의 강제 북송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청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ICNK는 휴먼라이츠워치(HRW)와 국제앰네스티(AI) 등 15개국 45개 국제인권단체로 구성된 활동그룹이다. 지난해 유엔인권이사회를 상대로 ‘통영의 딸’ 신숙자 씨와 두 딸 오혜원, 규원 씨 석방을 위한 청원 활동을 벌여 “북한은 강제 구금돼 있는 신 씨 모녀를 즉각 석방하고 배상하라”는 유엔의 결정을 이끌어냈다. ICNK의 권은경 팀장은 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유엔인권이사회의 두 실무그룹이 사건을 접수하면 북한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관련 자료의 수집, 기록 등의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북한이 탈북 청소년들을 함부로 다루거나 처형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엔 실무그룹의 확인 요청에 대해 북한이 시한 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탈북 청소년들의 강제구금 혹은 강제실종은 사실로 인정된다. 이런 내용은 유엔 COI가 내년 3월에 유엔에 제출하는 보고서에도 담길 가능성이 크다. COI는 7월 한국에 조사팀을 파견해 탈북자들의 면담 및 북한 인권 침해 자료 수집 등의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3일 “중국은 어떤 나라로부터도 (탈북 청소년 9명에 대한) 송환 협력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훙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들 9명의 강제 북송과 관련해 “확인한 결과 이들은 합법적 증명서와 비자를 소지하고 5월 27일 중국에 들어왔다가 28일 베이징(北京)을 떠나 북한에 들어갔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이 탈북 청소년 강제 송환과 관련해 공식 견해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훙 대변인의 불분명한 발언은 한중 간에 민감한 파장을 낳았다. 마치 ‘한국 정부가 이번 강제 송환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北京)의 주중 한국대사관 측은 “브리핑 직후 중국 외교부로부터 ‘훙 대변인의 발언은 북한이나 라오스로부터 탈북 청소년 9명을 송환하는 데 협력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 없다’는 뜻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중국은 이번 건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국제사회에서 ‘중국 책임론’이 일자 이를 반박하기 위한 발언일 뿐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훙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국내법과 국제법,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관련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국제화 정치화 난민화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이번 건과 관련해 중국을 비판한 것에 대해 “우리는 OHCHR가 증거 없이 무책임한 언론 발표를 하지 않기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외교부 본부도 “한국 측은 27일부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능한 모든 중국 내 유관 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거듭 해명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이달 말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탈북자 인권 문제가 주요 이슈 중 하나로 거론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여론의 성토가 잦아들지 않는데도 중국 라오스 등 관계국에서도 정부 주장에 반대되는 듯한 목소리가 계속 나오자 난감한 표정이다.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북한 주변국들과의 외교 채널과 정보 자산(능력)을 총가동해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의 신변 안전 여부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에 대한 자체 감사도 진행할 방침이다. 사건의 접수와 처리, 영사 면담 등에 있어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다시 점검하겠다는 것이다.이정은 기자·베이징=고기정 특파원 lightee@donga.com}

‘우리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생선은 한국 제품이다…. 애걔, 고작 이거 한 부분이야?’ 이기철 주네덜란드 대사(사진)는 지난해 네덜란드 교과서들을 뒤적이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들여다본 교과서에는 ‘한국은 바다를 면하고 있어 수산업이 중요하고 값싼 임금으로 손질된 생선이 판매된다’는 설명 두 줄밖에는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12쪽, 일본은 4쪽,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들도 3쪽이나 그 나라의 역사 등이 소개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외교부 안팎에서 화제가 된 이 대사의 ‘네덜란드 교과서에 한국 알리기 사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주네덜란드 대사관 직원들은 이 대사를 중심으로 치밀한 ‘사업 계획’을 세워 네덜란드 공략에 나섰다. 우선 교과서 발간 주기를 파악해 관계자들을 접촉할 최적의 타이밍을 골랐다. 교과서 내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해 만나야 할 대상들을 좁혀나갔다. 일선 학교와 교육부, 출판사 등을 찾아다니며 담당자를 찾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하멜의 고향인 호린험 시의 협조를 요청했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지원을 부탁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인 인맥도 총동원했다. “네덜란드가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 덕분에 ‘한강의 기적’도 가능했다”는 식으로 네덜란드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출판사 사장들에게는 “한국의 성공적인 발전모델을 소개하면 책이 잘 팔릴 것”이라고 구슬렸다. 유럽 사람들이 숫자와 통계를 좋아한다는 점도 적극 활용해 한국의 경제발전 속도,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자료와 순위 등을 상세히 곁들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A출판사는 올해 9월부터 고교 역사과목 시험준비서에 한국사를 기술하기로 했다. 2014년 상반기까지는 3개 교과서가 한국을 소개하는 내용을 추가할 계획이다. 호린험 시의 17개 학교는 올해 9월부터 아예 한국에 대해 따로 수업을 하게 된다. 1년여 만에 이뤄낸 이 성공담은 최근 공관장회의에서 소개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동료 대사들의 극찬을 받았다. 이 대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그동안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교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성과”라고 강조했다. 대사관이 “네덜란드 교과서를 바꾸겠다”며 협조를 요청하자 한 교포 청소년은 네덜란드 교과서를 전부 분석해 이미지 자료와 함께 대사관으로 보내줬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정부가 탈북 청소년 9명이 지난달 27일 라오스에서 강제 추방된 이후에야 이들의 신원 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9명 중 납북 일본인의 아들이 있을 수 있다’는 첩보 등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들 9명에 대한 신원 파악에 좀더 일찍 나섰다면 그런 첩보들의 진위 확인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신병 인도를 라오스 정부에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했을 것”이란 자성과 비판이 함께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2일 “탈북 청소년들이 추방된 뒤 명단을 확보하고 정보망을 동원해 이들 9명의 신원 파악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수집 활동인 휴민트, 북한 통신 감청 등의 정보망이 가동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관계자는 “송환 전에 알았다면 정부의 대응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 단체들은 “라오스에 억류됐을 때 주(駐)라오스 한국대사관이 이들에 대한 접근과 신원 파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그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고 말했다. 그랬다면 북송된 탈북 청소년 중 유일하게 꽃제비(일정한 거주지 없이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떠돌이)가 아닌 백영원(20)에 대해 확인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백영원은 △8명의 꽃제비와 달리 북-중 접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 출신이 아니라 동해안의 함경남도 함흥에서 왔고 △올해 2월에야 합류했으며 △‘남한의 가족을 꼭 찾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탈북했다고 한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속전속결로 이들 9명을 비행기로 북송시킨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들의 탈북을 도운 주모 선교사와 만난 한 인사는 “이 청년이 ‘나이 차(일곱 살 차)가 많이 나는 누나가 있다’고 했으며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발에 심한 동상이 걸렸던 백영원은 “두만강을 건너 함께 탈북하던 친구가 얼어죽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전 국회의원)은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은 저마다 탈북하기까지 생사를 넘나든 가슴 아픈 이야기를 갖고 있다”며 “북송됐다고 이들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 9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노애지(15·여)는 2년 전 13세 때 중국인에게 납치돼 중국으로 팔려갔다. 노예처럼 부려졌고 성적 학대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번이 세 번째 탈북이었는데 자유를 눈앞에 두고 다시 사지로 끌려간 것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과 북한인권개선모임은 3일 ‘라오스 한국대사관의 무사안일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 이에 대해 외교부 측은 “라오스 당국이 우리의 영사면담 요청을 거부한 상황에서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 접근했다가 상황이 악화될 것을 우려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1일 ‘국제아동절’을 맞아 어린이 11명의 편지에 일일이 친필 답장을 보냈다고 북한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9명의 청소년을 강제 북송해놓고 마치 어린이를 챙기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처럼 선전하는 것이야말로 김정은과 북한의 실상”이라고 비판했다. 윤완준·이정은 기자 zeitung@donga.com}
한국과 미국이 한미원자력협정의 기한 만료를 2년 연장하기로 합의한 뒤 처음으로 협상 개정을 위한 본협상을 3일 서울에서 개최한다. 미국 협상대표가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에서 토머스 컨트리맨 국제안보·비확산담당 차관보로 바뀐 이후 첫 협상이기도 하다. 한국 측 대표는 박노벽 외교부 한미원자력협정 협상전담대사이다. 한국 정부는 △핵폐기물의 처리 △원전 원료(우라늄)의 안정적 확보 △원전 수출의 경쟁력 강화 방안 등 3대 부문에 중점을 두고 협상에 임할 예정이다. 양국 간 최대 쟁점인 사용후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놓고 어떤 해결책이 나올지 주목된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기차역 바닥에서 낳은 아기는 사람 같지 않았다. 너무 작고 쭈글쭈글했다. 옆에서 출산을 돕던 행인 할머니가 쓰레기통 근처에서 주워온 유리조각으로 탯줄을 잘랐다. 아기가 감염될까 순간 걱정됐다. 엄마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상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아가야,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이순실 씨는 36세이던 2004년 11월 양강도 혜산시 혜산역 보일러실에서 그렇게 출산했다. 》임신했을 때 그는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성인 꽃제비였다. 제대로 먹지 못해 생리가 불순하다 보니 임신할 줄도 몰랐다. 먹은 게 없어 젖도 나오지 않았다. 이 씨는 하혈하면서 아이를 안고 장마당에 나가 구걸을 했다. 측은하게 여긴 사람들이 갖다 준 국수 국물과 희멀건 강냉이죽을 아기에게 먹였다. 2008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이 씨는 30일 기자에게 이 처참한 경험을 회고하다가 목이 메어 계속 말이 끊겼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그렇게 힘들게 키워온 아이를 잃어버렸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진짜로, 반드시 남한에서 태어나 남한 여자들처럼 건강한 애를 낳고 싶어요.” 이 씨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 엄마 배 속에서부터 굶고 허약한 북한 아이들 북한에서 영·유아들 못지않게 지원이 절실한 취약계층은 임산부다. 최근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영·유아를 둔 어머니의 31.2%가 빈혈 증세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0여 년 전 북한에서 자녀를 출산한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은 “내 옆의 침대에 있던 한 산모는 못 먹어서 1.8kg짜리 애를 낳았는데 너무 작고 새카매서 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임신 기간 중 영양 부실은 각종 합병증을 야기하고 조산아와 미숙아 출산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아기의 성장을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두뇌를 비롯한 여러 부분의 발달장애 및 인지장애를 낳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엄마가 제대로 못 먹어서 태아도 뱃속에서 영양이 부족하게 공급받았을 경우에 그 아이도 저체중으로 자라게 될 뿐 아니라 성인기가 됐을 때 심장질환이나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 성인병 발병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최근 발표한 ‘2013 인간개발지수(HDI)’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북한의 0∼1세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6명, 0∼5세 영·유아 사망률은 33명에 달했다. 남한은 각각 4명과 5명에 불과하다.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이 남한의 6배가 넘는 셈이다. 출생아 10만 명당 산모 사망 통계인 모성사망률 역시 북한은 77명으로, 남한(16명)의 약 5배인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1990년대에는 10만 명당 54명이었다. 모성사망률이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40% 이상 증가했다. 이순실 씨와 함께 압록강 다리 밑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던 한 여성의 아기는 태어난 지 20일 만에 죽었다. 기온이 확 내려간 초겨울의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아기가 딱딱한 돌처럼 굳어 있었다. 머리를 땅에 찧으며 오열하는 엄마를 보고 압록강 다리를 지키던 북한 군인들이 툭 던진 한마디를 이 씨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거 봐, 오늘 춥다고 했잖아. 오늘쯤 죽을 줄 알았어….”○ 영아기의 영양결핍은 평생의 치명적 손상 출생 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더 막막하다. 생필품도 부족한 북한에서 분유를 구하는 것은 소수 특권층에만 허락되는 특혜다. 대부분의 산모는 산후조리는커녕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에 모유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고 탈북 여성들은 증언한다. 강냉이죽을 떠먹이다 아이가 설사병에 걸려 탈수증세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어린이가 한창 성장해야 할 결정적인 시기에 필수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엔은 올해 북한식량 실태 보고서에서 “태아의 성장 부진과 생후 2년 동안의 만성 영양실조는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어른이 된 후에도 키가 작고 교육 성취도도 낮게 되며 이는 소득 감소, 생산성 감소 등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국제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구호단체들은 북한 임산부들의 지원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4월 유엔 산하 중앙긴급구호기금(CERF) 50만 달러를 들여 북한 보건시설 300여 곳에 산모용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지원했다. 철분과 엽산 같은 필수 영양제도 국제기구를 통해서 공급되고 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국제기구들이 지원을 끊는 순간 북한의 취약계층은 열악한 영양과 위생 문제에 더욱 심각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도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있는 만큼 북한 취약계층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정은·이샘물 기자 lightee@donga.com}
탈북 청소년 9명을 중국으로 추방한 라오스가 앞으로는 탈북자 문제에 원칙적으로 대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탈북자들의 한국행에 적극 협조해온 것과는 크게 달라진 태도다. 30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라오스 정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특사로 급파된 이정관 재외동포영사대사에게 “법률에 따르면 모든 불법 입국자는 국적을 불문하고 소속 국가와 협의해 그 국가로 송환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측은 또 “우리가 불법 입출국을 용인하는 나라, 인신매매범들이 경유하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이런 오명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로 최근 고위급 회의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처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이런 설명을 종합해 볼 때 앞으로 탈북자 문제에서 라오스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존의 협조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해진 셈이다. 라오스 당국에 적발되지 않고 무사히 한국대사관에 들어오는 경우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데 문제가 없지만 검문에 걸리면 또다시 북한 측에 넘겨지거나 강제 추방될 가능성이 예전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탈북자나 탈북지원단체들도 라오스 당국의 태도 변화로 인한 위험성을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