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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 밝히는 전깃줄은 땅속으로 묻고/저 전봇대와 전깃줄에/나팔꽃, 메꽃, 등꽃, 박꽃…올렸으면/꽃향기, 꽃빛, 나비 날갯짓, 벌 소리/집집으로 이어지며 피어나는/꽃봇대, 꽃줄을 만들었으면’(시 ‘꽃봇대’ 전문) 집집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전깃줄 대신 꽃줄을 연결했으면 한다. 꽃줄을 따라 서로가 꽃향기를 전했으면, 집집마다 단단한 씨앗 같은 꿈을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함민복 시인은 전깃줄을 꽃줄로 바꿨다. 카투니스트인 황중환 동아일보 기자가 그의 시에 포근한 그림들을 입혀 사랑의 온도를 높였다. 올해 쉰 살의 나이에 결혼한 시인은 두 줄로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은 곡선이다/곡선의 씨앗은 하트♡다!’(시 ‘곡선’ 전문) 그의 행복 바이러스가 책장 가득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조남주 씨(33)가 계간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제17회 문학동네소설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챔피언’이며 상금은 5000만 원.}
소설가 전성태(42), 시인 김소연(44), 평론가 박혜경 씨(51)가 현대문학사가 주관하는 제57회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각각 선정됐다. 상금은 각각 1000만 원.}
소설가 최제훈 씨(38)가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며 상금은 2000만 원.}

소설가 신경숙(48·사진)은 “지난 8년은 장편 작업에 몰두한 시기”라고 했다. 2003년 소설집 ‘종소리’ 이후 작가는 오래도록 장편에 매달렸고 ‘리진’(2007년) ‘엄마를 부탁해’(2008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년) 등 세 편을 연달아 선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편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8년 만에 출간한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은 그가 2003∼2009년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7편을 묶었다. 이 작가에게 장편과 단편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올까. “장편 쓰는 시간은 급류를 타고 격정적으로 어딘가로 휘몰아치는 느낌이라면 단편 쓰는 시간은 이른 아침 산 쪽으로 놓인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는 듯한 차분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다른 매력이 있죠.” ‘엄마를 부탁해’로 31개국에서 출간 계약을 하면서 바쁘게 해외 활동을 했던 신경숙은 8월 귀국한 뒤 차분히 소설집 출간을 준비해 왔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다시 읽다 보니 이 작품들을 썼던 시간들이 나를 위로도 해주고 견디게도 해준 것 같네요. 그 기운이 이제 저를 떠나 독자들 속으로 스며들어 갔으면 합니다.”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필체는 이 책의 각 단편들에도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의 만남과 인연, 세월의 흐름을 늦가을 거리에 떨어진 마른 낙엽을 밟으며 걷듯 조용히 써내려갔다. 표제작 ‘모르는 여인들’에선 40대가 된 여자가 20대에 만났던 옛 남자친구와 오랜만에 해후하는 과정을 잔잔히 그린다. ‘세상 끝의 신발’에서는 6·25전쟁 후 이어졌던 두 가족의 따뜻하면서도 애절한 인연을 전한다. 딱 들어맞는 상자에 담긴 선물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포근한 작품들이다. “세상의 험한 꼴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나씩 창출해 작품에 담곤 했어요. 아마도 ‘그런 모습만 있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실이 과도하게 훼손해 버린 것들을 작품을 통해 복구하며 균형을 잡고 싶었다고나 할까…. 소설은 제가 쓰지만 마침표는 독자가 찍는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면 모르는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고 싶은 마침표였으면 합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2012년 신춘문예의 막이 올랐다.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신문사들은 이달 나란히 공고를 내고 다음 달까지 작품을 접수한다. 마감을 앞둔 문청(文靑·문학청년)들의 가슴이 설레고 조바심이 나는 것도 이때쯤. 1925년 동아일보가 처음 시작한 신춘문예는 80년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가장 화려한 등단 코스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은 작가 라이선스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당선자가 문단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보는 2000∼2002년 3년간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등 8개 중앙 일간지가 주최한 신춘문예 시, 소설 부문 당선자 50명을 대상으로 등단 후 약 1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했다. 10명 가운데 4명은 아직 자신의 책(소설, 시집 등 작품집)을 출간하지 못했으며 3권 이상 책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는 5명에 한 명꼴이었다. ○ ‘저자가 되지 못한 작가’ 열 가운데 넷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주위에서 축하 인사에 이어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책은 언제 나오나”다. 매년 봄 신춘문예 시, 소설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집을 내기까지는 보통 수년이 걸린다.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응모자들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뽑기도 하지만 출판사는 현실적인 경쟁력을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출간은 당선자들이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이다. 본보가 조사한 결과 2000∼2002년 일간지 8곳이 배출한 시, 소설 부문 당선자 50명 가운데 단행본 시집이나 소설책(동시, 동화 포함)을 한 권 이상 낸 작가는 29명(58%)이었다. 나머지 21명(42%)은 등단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책을 내지 못했다. 한 권 낸 작가는 12명(24%), 두 권 낸 작가는 6명(12%)이었다. 10여 년 동안 책을 내지 못했거나 두 권 이하의 책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지 못한 작가가 전체의 78%에 달했다. 4권을 낸 작가는 4명(6%), 5권 이상은 5명(10%)에 그쳤다. ○ “당선된 해 가을부터 청탁 딱 끊겨”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새해 첫날 아침 신문 1면에 이름이 실리고, 당선 작품이 신문에 게재된다. 언론 매체나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고, 이름 뒤에 꼬리표처럼 ‘OO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라는 수식어가 달려 당선자의 어깨가 으쓱해진다. 하지만 주위의 관심은 금세 시들고, 당선자는 홀로 남게 된다. 이때부터 첫 책을 내기까지 2, 3년이 가장 버티기 힘들다고 당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인 소설가 백가흠 씨(37)는 “당선되고 반짝 일했는데 그해 가을부터 청탁이 딱 끊기더라. 2년여 동안 청탁이라는 게 산문이든 소설이든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짐작보다 훨씬 힘들었다. 갓 데뷔했을 때 화려함에 비하면 그 다음은 정말 소설과 나의 싸움이었다. 이전에는 학원 강사도 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당선되고 나니 그런 일을 못하겠더라. 결국 나를 안쓰럽게 생각한 출판계 선배들이 (문예지에) 지면을 만들어줬는데 그게 굉장히 소중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박성우 씨(40)는 “당선된 직후에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는데 그 환상이 딱 석 달 지나니까 깨지더라. 다른 동료나 선배 시인들의 시를 보면 내 시는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때부터 2, 3년 버티면서 시를 쓸 수 있느냐, 그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느냐가 작가로 살아남는 갈림길 같다”고 말했다. 낯선 문단 활동도 갓 등단한 신인작가에게는 부담이다. 2001년 동아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김지혜 씨(35)는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청탁하거나 책을 내주는 문예지의 후원이 없어 본인 실력으로만 살아남아야 한다. 문단에서 안면을 익히는 게 중요한데 거기에 관심이 없거나 서툴면 소외되기 쉬운 점도 있다. 자기 PR를 해야만 살아남는 구조”라고 말했다. ○ 강사 겸직 많아, 동화로 부문 바꾸기도 당선 10년 뒤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사 대상자 50명 가운데 연락이 닿은 29명을 전화 설문한 결과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10명(34.5%)으로 가장 많았고 대학이나 문화센터 강사(6명·20.7%), 문학관이나 출판사 직원(5명·17.2%) 순이었다. 당선 이후 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비율은 72.4%였다. 나머지는 대기업 홍보팀 직원, 주부, 군인, 카페 운영, 연극배우 등으로 다양했다. 전업 작가 가운데 절반이 동화나 동시를 쓰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어린이 책 시장이 성장한 데다가 신인 작가가 입지를 다지기에 상대적으로 손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조선일보 희곡 당선자인 강석호 씨(40)는 “2006년 이후로 희곡을 무대에 올리지는 못했다. 지금은 동화와 희곡이 결합된 형태의 책을 쓰고 있고, 지난해 6권을 냈다”고 말했다. ○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등단 코스” 2000∼2002년 시, 소설 부문 당선자 가운데 각종 문학상을 받으며 왕성히 활동하는 작가는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지만 조사에 응한 사람들 대부분은 신춘문예를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등단 코스로 꼽았다. 2000년 동아일보 중편소설 당선자인 조민희 씨(37)는 “당선 이후 출간 제의뿐만 아니라 광고회사와 영화사 쪽에서 여러 제의를 받았고 많은 기회가 있었다. 인생에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 자체가 혜택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 문화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김규진 씨(52)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의 시대도 아닐뿐더러 시의 시대는 더욱 아니다. 시인들이 천연기념물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시를 쓰고, 읽는다. 그들에게 신춘문예는 여전히 평생 한 번은 달성하고픈 꿈이 아닐까.” ▼신춘문예의 계절… 선배들의 조언 ▼문단 데뷔를 노리는 문청 ‘글쟁이’들에게 요즘은 ‘수험의 계절’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선배 작가들은 대개 “비방은 없다”면서도 “안정된 실력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본기 탄탄한 작품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고 분량이 적지 않은 소설과 희곡의 경우, 첫 페이지와 첫 장면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게 좋다. 지난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2505명의 응모자가 7110편에 이르는 응모작을 쏟아냈다. 심사위원도 문학인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전체적 짜임새가 탄탄하거나 후반부 독창적 반전을 품고 있다고 해도 독자나 관객을 5분 만에 졸음에 빠뜨릴 수 있는 도입부는 위험하다. 소재와 주제에 있어 자유롭게 접근하되 ‘현실적 소재를 현실감 없게’ 다루면 곤란하다. 지난해의 동아 신춘문예의 경우 “실제 체험보다는 인터넷 댓글을 확대한 데 머물거나 소재만 신기한 데 그치는 작품이 적지 않다”는 심사위원의 지적이 있었다. 골방에서 폐쇄적인 글쓰기를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득이 되지 못한다.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시각에서 참신함을 드러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장력에 자신이 있다면 신인다운 실험적인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 희곡의 경우, 문학성을 높이 쳤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트렌디하고 젊은 감각의 작품이 당선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신춘문예는 ‘겉늙은이’ 같은 노회함보다는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신인의 패기 어린 도전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문장력과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당선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시 부문의 경우, 너무 많은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득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덜 좋은 작품들이 좋은 작품들의 평균을 깎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본심으로 갈수록 심사자들이 ‘옥의 티’를 찾아 좁혀가므로 작품의 안정성은 기본이다. 불같은 목표의식과 치밀한 전략이 능사는 아니다. 당선자 가운데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상을 담담히 써내려가다 맘에 차는 시가 세 편 나왔을 때 비로소 신춘문예를 생각했다는 이도 있었다. 당선작이 새해 첫 신문에 게재된다는 점도 감안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잉여, 실직, 생활고 등을 우울하게 토로하는 자기고백적 작품이 범람했다.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인 김정훈 씨(42)는 “자살 등 지나치게 어두운 이야기보다 새해에 신문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밝은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소설가 심재천 씨(34)가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나의 토익 만점 수기’이며 상금은 1억 원이다. 시상식은 다음 달 2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올리브타워에서 열린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사진)가 제25대 한국방송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내년 11월부터 1년간이다. 강 교수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한국언론정보학회장, 디지털방송활성화위원회 실무위원장 등을 지냈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생태계의 보고로 소생한 비무장지대(DMZ)를 주제로 한 정원예술 작품이 내년 영국 첼시플라워쇼에 전시된다. 영국 왕립원예협회(RHS)는 한국의 정원디자이너 황지해 씨(35·사진)의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화원’을 내년 5월 22∼26일 런던에서 열리는 첼시플라워쇼 가든부문 전시작으로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1827년 시작된 첼시플라워쇼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하고 180여 년간 지속된 세계 최고 권위의 정원·원예 박람회로, 연 15만 명 이상이 관람한다. 매년 600∼800개의 기업이 참가하지만 행사의 백미로 꼽히는 가든부문에는 220m² 크기의 대형 정원 10여 개를 선보일 뿐이다. 가든부문에 처음 참가하는 한국인이 된 황 씨는 5월 열린 첼시플라워쇼에서 아티즌 가든부문(20m²) 금상을 받기도 했다. 작품 ‘고요한 시간’은 DMZ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경계초소, 한국군과 영국군의 군번 줄, 군복 단추로 만든 길, 참전 기념 조형물, 노병들이 소장해온 사진과 소품으로 꾸며진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영국군 노병 4명의 이름도 함께 새긴다. 황 씨는 “DMZ를 정원예술로 표현해 그동안 우리가 품지 못한 참전용사들의 아픔을 위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혜련은 이런 여자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외모는 이국적이지만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중년의 나이에 한국에서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 성공한 인물. 그렇다. 그녀의 실제 모델은 박칼린(44)이다. 이문열과 박칼린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원작자와 음악 감독으로 함께 일한 적이 있다. 현실과 소설을 혼동하기 쉬운 상황에 대해 이문열은 ‘작가의 말’에서 분명히 선을 긋는다. “1993년 늦겨울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였다. 어릴 적 한국에서 자랐던 그녀가 한국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아 미국으로 가거나, 리투아니아를 빠져나와 미국에 찾아온 그녀의 이모 얘기를 들으며 소설화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모델과 창작된 캐릭터는 다르다. 나는 이 소설과 그녀의 실제 삶이 혼동되지 않기를 바란다.” 작품은 공연 연출을 하는 소설 속 화자인 ‘나’와 음악 감독을 하는 김혜련의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물 흐르듯 추적해간다. 재수생이던 나는 소꿉놀이를 하던 이국적 외모의 소녀에게 끌리고, 세월이 흘러 둘은 부산의 한 작은 극단의 조연출과 풋내기 음악 감독으로 만난다. 작품 후 헤어졌던 이들은 공연이라는 운명적 매개체를 통해 서울 대학로나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우연히 만나 반가워하고, 인연에 놀라하며, 다시 작품을 하곤 헤어진다.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둘은 가까워지지만, 닿을 듯 말 듯한 관계는 세월의 흐름 속에 희석되고 잊혀진다. “집착은 그리움의 다른 말이며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부질없는 저항이지만 그게 부질없기에 진한 연민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고 작가는 ‘나’를 통해 말한다. 둘의 연민의 관계 외에도 옛 소련의 침공으로 리투아니아를 떠나온 김혜련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약소국의 수난사와 그것을 온몸으로 헤쳐온 한 가족의 삶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똑같다.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이들의 뮤지컬 창작 스토리다. ‘나’와 김혜련 등은 뉴욕 브로드웨이의 공연들을 닥치는 대로 보며 월북한 시인 임화의 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을 제작한다. 아이디어 착안부터 이를 무대화하는 과정이 실감나게 그려져 눈길이 간다. 김혜련은 한국에서 유명 음악 감독으로 단숨에 떠오르지만 몇몇 스캔들이 보도되고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순식간에 추락한다. ‘정파와 지역성에 바탕을 둔 논리로 무장하고 이제 막 열린 인터넷 광장을 선점한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대자보로 무자비한 한국판 문화혁명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게 작가의 배경 설명. 2001년 좌파 시민단체들로부터 ‘현대판 분서갱유’를 당했던 작가는 이국에서 온 음악 감독의 눈을 통해 우리 문화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들의 얘기를 그린 소설. 잔뜩 구름이 낀 회색 하늘을 쳐다보는 듯하고, 책장 가득 상실감과 허무함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돼지’라 놀림 받던 초등학생 기환이는 자신을 놀리는 애들 중 왜소한 창호만 꼭 집어 괴롭히기 시작한다. 기환이의 호출에 밤에 산으로 간 창호는 실족사하고, 아이를 잃은 창호네 가족은 서서히 붕괴된다. 하지만 죄책감에 삐뚤어지는 기환네 가족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얽힌 두 가족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복수를 그렸다. 놀랍도록 차분하고 침착한 전개가 점차 흡인력을 높이지만, 초반에 쳐 놓은 여러 복선 장치가 미처 실타래를 다 풀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종결되는 느낌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선거 때면 철새 정치인들 얘기 많이 하잖아. 그런데 내 소설에서는 철새 정치인들이 하늘을 날아서 바다 건너 섬으로 가. 진짜 철새처럼 말이야. 아휴∼,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웃기네. 허허.”소설가 안정효(70)가 껄껄 웃었다. 집필을 마친 장편 ‘역사소설 솔섬’을 설명하면서였다.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 사실적이고도 묵직한 소설을 써왔던 작가는 작심하고 펼친 문학적 변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즐거운 듯했다. 15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원고지 4000장 분량으로 책 서너 권은 너끈히 채울 만한 이번 소설의 장르는 이렇다. ‘판타지+역사+정치+풍자소설.’ 일흔에 쓴 ‘해괴한 작품’의 정체성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막소설이지, 막 쓰는 소설. 나는 그동안 너무 고지식하게 ‘하얀 전쟁’이니 이런 걸 써왔는데 돌아보니 내 속에는 이런 걸 쓰고 싶은 충동이 있었던 거야. 상상력에 제한을 안 두는 자유분방한 소설 말이야. 쓰면서도 즐거웠어.”“좀 황당하긴 하지”라며 작가 스스로 설명한 스토리는 이렇다. 가상의 섬 ‘솔섬’이 점차 융기해 거대해지면서 이 땅의 이윤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투기꾼과 조직폭력배, 정치인들이 몰려든다. 각종 권모술수와 사기, 이합집산이 펼쳐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사회를 풍자한다. 시간적 배경은 2007년에 시작해 1945년에 마치는 역순으로 잡았다.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내세웠지만 실제 인물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쿠데타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니던 군 장성이 솔섬으로 쫓겨난 뒤 섬의 권력을 찬탈하거나, 사이버 선거전 승리를 통해 대권을 쥐는 인물 등에서 쉽게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다.“이승만 시대, 군사정권 시대(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진보 시대(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각 시대를 풍자했다. 특정 시대를 두둔하기보다는 잘못된 우리 정치와 정치인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풍자하려고 했다.”작품 속에선 떡값 2억 원을 받은 정치인들에게 실제 떡 2억 원어치를 먹게 하고, 기업인들이 산으로 야유회를 가자 인근에 있던 정치인들이 단체로 마중 나가 후원 요청을 하며 매달린다. 최루탄을 팔아 거부가 된 기업인이 촛불집회 열풍이 불자 양초 장수로 변모하고, 조폭은 ‘정치인 수련학교’를 세워 격투기장으로 변모한 국회에서 싸울 파이터들을 키워낸다. 가장 가까운 시점을 2007년으로 못 박았지만 전국에 도랑을 쳐 가재를 잡는다는 설정에서 4대강 사업을 유추할 수 있는 등 최근 정치 행태도 담았다.“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 행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본격적인 정치 소설을 쓸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정치 얘기는 풍자가 들어가야 재미있는 것 아니겠어. 정색하고 쓰는 건 신문에 매일 나잖아.”정치 얘기는 내년 대선 얘기로 흘렀다. 1700억 원 상당의 보유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얘기를 꺼내자 안정효는 말을 아꼈다. “몇 번 만났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지. 글쎄, 아까운 사람 하나 또 망가지겠구나 싶어.”안정효는 내년에 작품을 출간할 계획이다. 당초 출간을 의뢰했던 출판사는 정작 탈고가 되자 “부담스럽다”며 출간을 포기했다. 새 출간 계약은 아직 하지 않았다.“그래도 정치 얘기인데 대선 앞두고는 나와야 하지 않겠어. 정 안 되면 나 죽고 나서 딸들이 내도 좋고, 허허.”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 문단의 유이(唯二)한 야구단들이 창단 후 첫 맞대결을 펼친다. 문인들의 자존심 대결은 원고지에서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에서도 뜨겁다. 문단의 긴장감도 높다. 2008년 문단에서 최초로 창단한 문인야구단 ‘구인회(球人會)’와 지난해 창단한 시인야구단 ‘사무사(思無邪)’가 19일 오후 3시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자유로리그 야구장에서 일합(一合)을 겨룬다. 언뜻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1930년대 김기림 정지용 등이 참여했던 순수문학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서 팀명을 따온 구인회는 시인 박형준 감독 아래 박상 박성원 백가흠(이상 소설가) 고운기 정용효 박준(이상 시인) 등 문인뿐만 아니라 출판 관계자까지 참여한 ‘다국적 구단’. 소설가 박범신이 명예구단주로, 은희경이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고 등록선수만 20명이 넘는다. 반면 사무사는 신생 구단인 데다 시인들로만 구성된 까닭에 선수가 모자라는 실정이다. 김두안 감독 아래 김요안 김병호 이승희 등이 뭉쳤지만 9명의 경기 최소 인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시인의 가족과 친구를 수소문해 경기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구인회에만은 질 수 없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팀명은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뜻으로 공자의 논어에서 따왔다. 양 팀 감독의 포부는 한국시리즈를 앞둔 프로야구 명장들 못지않게 진지했다. 박형준 구인회 감독은 “방심은 금물이다. 박빙의 경기가 예상된다. 결국 수비 하나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두안 사무사 감독은 “객관적인 전력은 우리가 약세지만 경기 초반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조직력에 승부를 건다”고 말했다. 변수는 날씨다. 이들은 6월 첫 대결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전날부터 내린 장대비 때문에 경기가 무산된 바 있다. 기상청은 경기가 열리는 19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예보했다. 문인 선수들은 수중전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문단의 야구 라이벌 대결이 해를 넘길 것인가. 하늘에 달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시인들에게 산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규성 시인은 “사람들은 도시화될수록 일상의 번잡에 찌든 영혼을 맑히고 속엣말을 가다듬으러 바쁜 시간표를 쪼개 산책을 나선다. (산책은)일부러 고독과 몸의 수고를 빌려 자연에서 멀어진 발길을 자연에 바싹 붙이는 ‘본원적 귀향’, 즉 자아 회복을 위한 충전”이라고 말한다. 김사인 시인은 산책을 “잠깐식의 출가(出家)”라고 정의한다. 길을 천천히 걸으며 사물들에 하나하나 눈을 맞추면, 안다고 여겨온 풍경의 깊고 아득한 내면으로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계간 ‘시인세계’가 겨울호에 ‘시인들이 좋아하는 산책길’이란 기획특집을 실었다. 정진규 문충성 김사인 나태주 문정희 허형만 등 시인 16명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산책길과 그 위에서 얻은 여유, 단상들을 풀어냈다. 4년 전 서울을 떠나 경기 안성시로 이사 간 정진규 시인의 산책은 성묘에 가깝다. 매일 선대 어른들의 묘원인 기유원(己有園)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아침마다 300여 년을 거슬러 산책하고 있는 사람이다. 수백 년 장송의 솔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의 아침 공기로 산림욕 샤워를 누린다.” 제주에 사는 문충성 시인은 현지의 ‘올레 걷기’ 열풍을 소개하며 사라봉 공원과 별도봉 장수산책길을 추천한다. 특히 서쪽으로는 제주 시가지, 북쪽으로는 제주 바다와 제주항, 남쪽으로는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이 두루 보이는 사라봉 정상의 절경을 예찬한다. 정일근 시인은 “30대 전부를 경주 남산과 사랑했다”고 털어놓았다. “나에게 경주 남산은 산이 아니었다. 하나의 길이었다. 눈이 내리는 날은 눈을 맞고,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면 달빛에 젖어 걸었다. 그렇게 백 번쯤 걸었을 때 얼굴 없는 돌부처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고 그는 말한다. 대구에 사는 문인수 시인은 고모동을 산책하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린다. ‘고모,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시 ‘고모역의 낮달’에서) 한 잔의 테이크아웃 커피처럼 도심 산책을 즐기는 시인들도 있다. 문정희 시인은 집 근처 선릉과 봉은사, 코엑스 주변 광장을 산책하며, 허형만 시인은 여의도 한강 둔치를 거닐며 시상을 가다듬는다. 나태주 시인은 걷기의 미학을 이렇게 말한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사색가가 된다. 서투른 철학가가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길은 지상에 만들어진 기다란 공간의 연속이지만 그것은 또 마음속으로 이어지고 이어지는 정신의 통로이기도 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기원전 3804년 배달국에서는 1년이 360일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90일씩으로 나눴고 ‘월(달)’ 개념이 없었다. 천문을 연구하는 관직인 ‘천백’에 오른 해달은 천황(天皇)에게 “열두 달로 나누면 더 간편해진다”고 상소를 올린다. 천황은 크게 기뻐하며 1년이 열두 달인 환력(桓曆)을 시행한다. 우리 민족의 시초 배달국의 국가 정비 과정을 그린 소설. 천문을 통해 음양과 팔괘의 이치, 날짜와 시간 개념을 깨치며 이를 생활에 접목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노력을 그렸다. 태극 문양을 바탕으로 한 태극기를 수천 년 전 배달국에서 만들었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한국천문연구원장을 지낸 저자는 “나라의 근본이 되는 모든 것이 하늘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한강(41)이 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을 냈다. 원고지 600여 장 분량의 경(輕)장편이다. 하지만 8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카페에서 마주앉은 작가는 “경장편이 아닌 장편”이라고 강조했다. “길이는 짧지만 저에게는 무게가 가벼운 게 아니에요. 누가 뭐래도 저의 다섯 번째 장편입니다.” 애착이 큰 연유는 이렇다. 작가는 2008년 늦가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언어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희랍어 시간’의 초고를 쓰며 이 고민을 힘겹게 뚫고나갔다. 이듬해 봄 150여 장의 스케치를 완성했을 때 깊은 수렁을 빠져나온 듯했다. 그 느낌에 힘입어 한동안 손을 놓았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바람이 분다, 가라’가 격렬한 느낌이었는 데 반해 이번 작품은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조용한 이야기예요. 소멸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단 한순간 마주보는 사람들을 다뤘죠.” 점심을 걸렀다는 한강은 땅콩크림을 바른 베이글 한 개와 따뜻한 코코아를 달게 먹으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네 번 고쳐 썼다. 쓸 때마다 분량이 늘었고, 결말도 달라졌다. 6월 초부터 두 달 반 동안은 출판사 문학동네의 인터넷 카페에 연재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희랍어 강사인 남자는 독일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산다. 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병을 가졌다. 그의 수강생 중에는 한 여자가 있다. 듣기는 하지만 어릴 때 병을 앓아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다. 여자는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을 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언어를 찾는다’는 점에서 작품 속 여자와 작가가 오버랩된다고 하자 한강은 ‘푸하하’ 웃었다. “여자하고 제가 언어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맞겠네요. 하지만 소멸하고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그린 거죠.” ‘결여된 삶’을 살아가는 남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늦은 밤 남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지금, 택시를 부르겠어요.” 말을 할 수 없는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가만히 적는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찬 슬픈 눈과 같은 소설은 시종 조용하고 담담하게 남녀의 일상을 따라간다.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는 “소설의 절정 부분이라는 게 꼭 격렬하고 시끄러울 필요는 없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절정도 가능하다”고 했다. “작품을 완성하면 작가가 작품 속에서 ‘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이번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이 소설은 아프고 슬픈 얘기지만 저에게는 따뜻했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문학 엄마의 마지막 눈물(이순교 지음·종문화사)=합창곡 ‘염소와 촌할아비’ ‘노인과 바다’ 등의 작곡가인 저자가 대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작곡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 1만2500원.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박석근 지음·민음사)=돈을 받고 남편 역할을 대신해 주는 남성, 전망 좋지만 유독 주인이 자주 바뀌는 집 등을 소재로 현대인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소설집. 1만1500원. 아빠의 별(최문정 지음·다차원북스)=세계적 발레리나인 딸과 군인인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가족 소설. 진한 부성애가 책장 가득하다. 1만2000원. ○ 인문 모든 것은 진화한다(앤드루 페이비언 엮음·에코리브르)=가장 작은 동물 세포로부터 도시, 사회, 소설, 그리고 원대한 우주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읽기 쉽게 정리했다. 1만6000원. 韓의 건축문화(후지시마 가이지로 지음·곰시)=전 도쿄대 교수인 저자가 1922년부터 1986년까지 한반도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우리의 건축과 고미술, 문화재 등을 기록했다. 2만5000원.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빌리 우드워드 외 지음·푸른지식)=천연두를 차단해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과학자 빌 페이지 등 연구에 몰입해 어마어마한 생명을 구해낸 연구자들의 사연을 한 권으로 묶었다. 2만5000원. 교역 오백년기담(김동욱 풀어 옮김·보고사)=조선시대 야사와 야담을 국한문혼용체로 저술한 야담집 ‘오백년기담’을 우리말로 풀어 옮겼다. 조선 초 사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1만2000원.○ 학술 불온한 신화 읽기(박효엽 지음·글항아리)=인도 철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경전이라 일컫는 ‘바가바드기타’를 비판적 시각으로 해설한 책. 이 경전에 담긴 메시지를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1만5000원. 몸으로 역사를 읽다(한국서양사학회 엮음·푸른역사)=몸에 대한 서양의 지적 발자취를 살핀 책. 고대엔 몸을 우대했지만 중세엔 몸의 욕망을 죄악으로 여겼다. 현대의 몸은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까. 1만8500원. 20세기 성인교육철학(피터 자비스 지음·동문사)=성인이 된 후에도 왜 학습을 해야 하고, 성인 대상 교육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등을 20세기 교육사상가들의 철학과 행적을 통해 풀어냈다. 2만 원.○ 실용·기타 인생의 고비에서 망설이게 되는 것들(이영만 지음·페이퍼로드)=삶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기계발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직접 만난 인물을 중심으로, 선택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흥미진진한 사례 23가지를 실었다. 1만3000원. 나는 영화가 좋다(이창세 지음·지식의숲)=영화기자 출신으로 영화 프로듀서이자 배우인 저자가 감독, 프로듀서, 배우, 스턴트맨, 촬영, 조명, 음악, 미술, 편집, 마케터, 평론가 등 업계 종사자들의 삶을 통해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갖가지 대답을 들려준다. 1만7500원. 한 뼘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 만들기(이기석 지음·바움)=우리나라 청년실업의 근본적 원인과 완화 방안을 모색한다. 공신력 있는 자료와 국내외 사례들을 꼼꼼히 활용해 객관성과 실증성 확보에 노력을 기울였다. 1만5000원. 위험을 최소화하는 시나리오 경영(케스 반 데르 헤이든 지음·21세기북스)=9·11테러를 예측하고 철저한 대비를 주장했던 경영 컨설턴트 겸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의 ‘시나리오 경영론’을 다뤘다. 내용을 보완한 새로운 판. 3만5000원.○ 어린이 황금 갑옷을 빌려줄게(정진 글·에스더 그림·아이앤북)=누구나 숨고 싶을 때가 있다. 태평이는 거북이로부터 등딱지를 빌려 곤란할 때마다 그 안으로 숨는다. 한 번에 1분씩만 쓸 수 있다. 하지만 등딱지 안에 숨는 게 늘 좋지만은 않다. 9000원. 나처럼 말해 봐!(미셸 피크말 글·토마스 바스 그림·국민서관)=철학하는 피콜로 시리즈. 좋아하는 고양이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피콜로는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1만2000원. 반토막 서현우(김해등 글·이광익 그림·사계절)=키가 작고 말라 ‘반토막’으로 불리는 서현우는 자작나무 숲으로 비밀 탐험을 떠난다. 싸움짱 강경호와 반장 오귀빈은 있는 대로 잘난 척하며 앞장을 서지만 폐가에서 탈출할 출구를 찾은 사람은…. 8800원.}

“스물아홉이 되고 난데없이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도스토옙스키나 발자크에 필적할 가망은 없었지만. 딱히 대문호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노벨 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명되고 있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2·사진)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할 당시를 이렇게 추억했다. ‘노르웨이 숲’ ‘댄스 댄스 댄스’ ‘태엽감는 새’ ‘1Q84’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배출하며 30년 넘게 이어진 창작 활동은 그에게는 외로운 여정이기도 했다.“돌이켜보면 나는 소설을 쓰는 데 도움 받을 스승도 없었고 동료도 없었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난데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줄곧 혼자 써왔다.”다음 주 출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비채)에는 그의 미발표 에세이 69편이 담겨 있다. 진지한 문학론도 있고 음악과 인생에 대한 진솔한 단상도 가득하다. 저자는 각 에세이에 새로 소감을 추가하는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하루키에게 소설, 소설가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새로운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소설가가 할 일”이라며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Q84’에서 덴고가 듣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음악이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은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어주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 배웠다.”리듬감에 대한 그의 애착은 소설의 텍스트를 넘어 창작 태도로까지 이어진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4월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가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가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이 선정한 ‘문학·픽션 부문 올해의 책 베스트 10’에 선정됐다. ‘엄마를 부탁해’는 올해 출간된 모든 책을 대상으로 하는 ‘올해의 책 베스트 100’에도 이름을 올렸다.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에서 초판 10만 부를 찍으며 현지 출판계의 높은 기대를 받았고 출간 하루 만에 아마존닷컴 전체 순위 100위권에 진입했다. 아마존닷컴 상반기 결산에서도 ‘편집자가 뽑은 베스트 10’에 꼽혔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양장본소설(Hardcover Fiction) 부문에서도 14위까지 오르며 호평을 받았다.이 책의 영문판을 낸 출판사인 크노프는 현재 9쇄까지 찍었으며, 내년 문고판을 선보여 열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신경숙의 다른 장편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출간할 계획이다. 신경숙 작품의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는 “외국 서적의 비중이 3%에도 못 미치는 미국 시장에서 이룬 순위 진입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은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31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15개국에서 출간됐다. 일본에서도 9월 출간돼 한 달 만에 3쇄를 찍어내며 1만3000부가 팔렸다. 한국 유명 작가의 책들이 앞서 3000여 부 팔린 것에 비하면 높은 호응이다. 국내에서 ‘엄마를 부탁해’는 2008년 11월 출간 이후 현재 180만 부를 넘겼으며 내년 초 200만 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지난달 400호 기념시집 ‘내 생의 중력’을 낸 데 이어 최근 401호 시집으로 김혜순 시인의 ‘슬픔치약 거울크림’을 출간했다. 기념시집이 300호대 시집의 대표작들을 엮은 것임을 감안하면 이번 시집으로 본격적인 400호대 항해를 시작한 셈. 문학과지성사는 401호의 상징성을 감안해 이 회사와 인연이 깊은 원로 작가에게 출간 기회를 주려고도 했지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취지에 맞춰 중견 시인 김혜순을 택했다. 1979년 등단한 김 시인은 자기반복을 최소화하며 늘 새로운 시적 탐구를 계속하는 시인으로 꼽혀왔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슬픔치약…’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우 다음엔 울이라고/세상에 가득 찬 수학이 출몰하는 밤/존경하는 시인님들은 아직 죽음의 탯줄에 매달려 계시고’(‘우가 울에게’) ‘길에서 집에서 머리채 잡혀/실종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해파리처럼 젖은 머리를 내리고 물속 땅속 어디에 묻혀 있을까’(‘책 속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여자처럼’) 우울의 ‘우’와 ‘울’을 쪼개 순차적으로 돌아가는, 틀에 박힌 세상을 꼬집고, 투명한 해파리를 통해 머리를 풀어헤친 불행한 여인을 응시한다. 시인은 낯선 시어들이 가득한 ‘김혜순 월드’에 대한 초대장으로 이런 인사말을 남겼다. ‘침묵과 비밀, 그 무궁한 풍부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즐거움! 내가 또 이 부재의 비밀을 당신에게 투척하니 흡입하시어 부디 궁핍하시길.’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