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명성병원, 당신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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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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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가 된 6·25 참전용사는 무료 진료

일산병원 산부인과 과장직(연봉 1억7000만 원)을 버리고 2010년 8월부터 에티오피아
에서 의료 봉사를 해온 김철수 명성기독병원장. 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일산병원 산부인과 과장직(연봉 1억7000만 원)을 버리고 2010년 8월부터 에티오피아 에서 의료 봉사를 해온 김철수 명성기독병원장. 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마을 하라에 사는 열 살 소년 프롬사는 하굣길에 끔찍한 일을 당했다. 들판을 서성이던 하이에나 3마리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프롬사는 비명을 질렀고 엄마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왔다. 무기를 든 동네 사람들은 하이에나 한 마리를 죽인 끝에 크게 다친 프롬사를 겨우 구해냈다. 상처는 처참했다. 오른쪽 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양쪽 허벅지의 살점도 뼈가 보일 만큼 떨어져 나갔다. 함께 공격을 받은 두 친구는 목숨을 잃었다.

최근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명성기독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난 프롬사는 힘겹게 기자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두 차례 대수술을 받은 그는 앞으로 최대 열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한다. 가난한 프롬사 가족을 위해 병원은 수술비를 받지 않았고 향후 지원도 약속했다.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약 35만 원) 수준. 100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75명은 질병과 가난으로 숨지고, 5세 이하 아동 가운데 저체중아 비율도 34.6%에 달한다. 평균 수명은 56.6세에 그친다.

가난은 가벼운 질병의 예방과 치료마저 힘들게 만든다. 입원실에는 머리 속에 물이 차는 뇌수종에 걸려 머리가 농구공만 해진 아이들이 힘없이 누워 있었다. 엄마가 임신 중에 엽산만 제대로 챙겨 먹어도 뇌수종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지만, 하루 3비르(약 210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심각한 영양실조는 아이들의 얼굴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저항력이 떨어져서 입속 세균이 얼굴을 파먹어 들어가는 질병 ‘노마’에 걸린 아이들은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2004년 11월 25일 개원한 이 병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신경과 등 12개 부문에서 35명의 의사, 115명의 간호사가 일하고 있다. 병원 진료 시간이 1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외래진료실 앞에는 30여 명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인기가 높은 까닭은 현지의 다른 병원보다 의료 수준은 높지만 진료비는 30%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환자들의 진료비를 감액하거나 면제해 주기도 한다.

지난해 400만 달러(약 45억4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이 병원은 수익 40만 달러(약 4억5000만 원)를 무료 진료에 고스란히 내놓았다. 병원은 현지인들로부터 ‘코리안 하스피털’로 불린다. 명성교회가 지은 병원이지만 한국 정부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병원은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참전용사의 부인도 병원비의 절반만 내면 된다. 참전용사의 자녀는 우선적으로 병원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6037명의 에티오피아 군인이 참가해 122명이 사망했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 20대의 청년들은 어느새 80대 할아버지가 됐다.

12일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멜라세 테세마 협회장은 “전우들 가운데 450여 명이 살아 있다. 우리에게는 의료 서비스가 절실한데 (명성기독병원이) 무료 진료를 해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11일 오후 에티오피아 현지인들이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명성기독병원 외래진료실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들이 오전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오후에 많은 환자가 몰린다. 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1일 오후 에티오피아 현지인들이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명성기독병원 외래진료실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들이 오전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오후에 많은 환자가 몰린다. 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종교적 신념과 인간애를 앞세워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료 기기와 의료진의 부족 같은 현실적 고충은 피할 수 없다. 김철수 원장(57)은 “산소호흡기가 6대 있는데 환자가 몰려서 모두 호흡기를 달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내시경도 기기는 있지만 다룰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해 24시간 진료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국내 의료계의 관심을 당부했다.

9월 병원 옆에는 명성의과대가 개교한다. 한 학년 30명 정원으로 절반의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줄 예정이다. 일시적 진료 봉사가 아니라 진료할 현지 인력을 키우는 근본적인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의과대 졸업생들은 향후 에티오피아 의료의 발전을 이끌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세브란스병원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병원을 에티오피아인들의 손에 넘겨줄 예정입니다.”(김철수 원장)

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의료봉사#에디오피아#명성기독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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