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문학관 ‘박완서 1주기전’ 내달 유품 200여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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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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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팔팔 끓거든 수제비 넣어라” 딸에게 급히 쓴 점심밥상 메모
1남4녀 키운 그릇, 재봉틀… 일상에서 풍기는 ‘엄마의 체취’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고 박완서 선생의 ‘아이고 하느님!’ 육필 원고. 작가 최인호의 만년필, 김훈의 몽당연필(왼쪽부터 시계방향) 등 다른 작가들의 애장품도 전시한다. 영인문학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고 박완서 선생의 ‘아이고 하느님!’ 육필 원고. 작가 최인호의 만년필, 김훈의 몽당연필(왼쪽부터 시계방향) 등 다른 작가들의 애장품도 전시한다. 영인문학관 제공
2004년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 자택에서 박완서 선생(오른쪽)과 장녀 호원숙 씨.
2004년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 자택에서 박완서 선생(오른쪽)과 장녀 호원숙 씨.
지난해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1931∼2011)의 마지막 강연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영인문학관에서 열렸다. 2010년 6월 19일 고인은 이곳에서 단편 ‘환각의 나비’에 대해 얘기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이었지만 청중은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강연이 끝나고 문을 나서는 박 선생의 등에 무심코 손을 댔던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의 몸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텅 빈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치명적 병환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 몸 안에서 암종이 생명을 축내기 시작한 지 오랜데 당신도 우리도 전혀 눈치 못 챈 것이다. 그리고 반년 만에 선생님은 가셨다….” 강 관장은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5월 4일부터 6월 30일까지 영인문학관에서는 ‘엄마의 말뚝―박완서 1주기전’이 열린다. 선생의 1주기(1월 22일)에 맞춰 열 예정이었지만 운영비 문제로 뒤늦게 열게 됐다. 영인문학관이 보관하고 있는 고인의 자료에 유족이 대여해준 자료를 보태 200여 점이 전시된다.

처음 공개하는 자료들도 여럿 눈에 띈다. ‘아이고 하느님!’ 등 고인의 육필 원고, 자녀들과 문인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 조각가 이영학 씨가 빚어낸 고인의 청동 두상 등이다. 평소 입었던 옷과 사용했던 그릇, 가위, 호미, 재봉틀 등 고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도 공개한다.

놀랍게도 동영상 자료도 있다. 선생과 남편 호영진 씨(1988년 작고)의 1953년 결혼식 영상이다. 전쟁으로 피폐했던 이 시기에 국가나 기관이 아닌 개인 행사의 동영상 기록을 남긴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초소형 6mm 필름으로 촬영했으며 길이는 5분여 분량이다. MBC가 최근 디지털 복원을 마쳐 이번 전시에서 직접 영상을 볼 수 있다. 고인의 장녀인 호원숙 씨의 기억은 이렇다.

“아버지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해주셨고, 최고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 당시 고급 중국요리집인 소공동 아서원에서 결혼식을 올리셨는데 영상을 찍어 남겨 놓으셨다. 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엄마와의 결혼을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으신 것은 엄마의 글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문인들은 대체로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박완서 선생의 자료들이 이만큼이나 남은 것은 역설적으로 버리고 치우기 좋아하는 고인의 성격 때문이었다. “엄마는 버리는 것을 좋아하셨다. 몸에 기운은 빠져 보이지만 얼굴은 맑고 개운한 표정으로 빛나 보일 때는 으레 물건을 정리하고 잔뜩 버린 뒤였다. 엄마는 보자기에 싼 옷이나 책을 ‘너 좀 가져가라’ 하시며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엔 엄마의 물건이 쌓이게 됐다.”

1970년 여성동아 여류장편 소설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며 마흔 나이에 등단한 고인은 1남 4녀를 키우며 작품 활동을 했다. 글쓰기와 가사의 병행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서울 보문동 집에 살 때 딸에게 점심을 차리라고 흘려 써 놓고 간 메모에는 급하게 외출하면서도 아이들 걱정에 요리법을 자세히 적고 있는 고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수제비 반죽을 해 놓았으니 떠먹어라. 수제비 뜨는 법은 먼저 국이 팔팔 끓거든 손으로 얄팍얄팍 떠 넣는데, 찬물을 한 공기 마련해 놓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뜨면 반죽이 손에 묻지 않는다. 다 뜨거든 국자로 한번 저어서 서로 붙지 않게 하고 뚜껑 덮어서 한번 끓여라. 곧 먹을 수 있다.’

영인문학관에서는 박완서 1주기전에 맞춰 다른 작가들의 애장품도 공개한다. 최인호의 촉이 비뚤어진 만년필, 김훈의 몽당연필, 윤후명의 엉겅퀴꽃 그림, 이근배의 벼루 등을 함께 전시한다. 02-379-3182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박완서#박완서 1주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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