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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알’을 낳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2011년 3월 노래방 업자 강모 씨(50·여)는 단골손님인 김모 씨(49)의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교통카드를 쓰면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제도를 사람들이 몰라 수십조 원의 현금이 교통카드 회사에 쌓여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이를 활용하면 원금에 30%를 더한 금액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평소 노래방을 자주 찾으며 넉넉하게 술값을 챙겨주는 김 씨의 모습을 보니 믿음이 갔다. 재미삼아 김 씨에게 30만 원을 투자했다. 곧 39만 원 어치의 교통카드가 돌아왔다. 실제로 은행에 갔더니 현금으로 인출이 가능했다. 김 씨가 즐겨 말하던 “여권 유력 정치권 인사와 친하다”는 자신만만한 태도가 점점 진짜라고 느껴졌다. 일확천금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강 씨는 노래방과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3억 원의 돈을 김 씨에게 투자했다. 주변 지인에게도 이 좋은 투자 수단을 알렸다. 김 씨는 소개만 해도 지인이 투자한 금액의 5~15%를 상여금 명목으로 나눠줬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였다. 조금씩 들어오던 투자금이 2011년 5월부터 끊겼다. 김 씨에게 아무리 연락해도 답장이 없었다. 알고 보니 김 씨는 돌려 막기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 돈을 끌어 모았다. 이렇게 속인 사람만 65명이었다. 피해자들로부터 107억 원의 투자금을 받은 김 씨는 일부 금액을 다시 나눠주고 24억여 원을 챙겨 2011년 5월 29일 중국으로 도피했다. 김 씨의 도피생활은 3년 6개월 만에 끝났다. 경찰이 인터폴과의 공조 수사 끝에 지난해 11월 24일 한국으로 입국하던 김 씨를 인천국제공항에서 검거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김 씨를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지난해 11월 27일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7일 밝혔다. 동작서 고태완 경감(42)은 “누구나 하나 쯤 갖고 있는 교통카드를 이용한 새로운 사기수법”이라며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제안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으로 불린다. 하지만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일부 정부부처 공무원들의 행태는 오히려 국민들을 분통터지게 만든다. 연초부터 공무원들이 사리사욕 챙기기에 급급하거나 행정을 안일하게 처리해 빈축을 사고 있다. 》 ○ 세종시 아파트 웃돈받고 판 공무원 2600여명 특별공급 받은 직원 10명중 3명꼴… 거주자우선제 활용해 분양권 전매 2011년부터 5년간 세종시 아파트를 특별 공급 받은 공무원 및 국책연구기관 직원의 27%가 분양권을 전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양 열기가 높았던 지난해를 전후해 분양권을 되팔아 시세 차익을 누린 공무원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공무원들은 ‘거주자우선분양제’를 악용해 분양권을 전매하고 있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과 세종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세종시 아파트를 특별 공급받은 중앙 부처 공무원과 국책연구기관 직원 9802명 중 입주를 하고 취득세 감면을 신청한 인원이 6205명(63%)으로 집계됐다. 분양받고 취득세 감면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은 3597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취득세 감면이 적용되지 않는 임대주택 특별 공급 당첨자(631명), 특별 공급 후 부실 공사 논란으로 계약을 해지한 인원(172명), 아직 입주를 시작하지 않은 2013년 하반기(7∼12월) 특별 공급 당첨자(142명)를 제외한 2652명이 분양권을 전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행복청과 세종시 측은 “분양받은 후 다른 기관으로 파견 가는 바람에 계약을 하지 못한 공무원도 포함된 수치여서 실제 분양권 전매를 한 인원보다 부풀려져 있다”고 해명했다. 일부 공무원은 입주 초기 세종시의 생활 인프라가 부족해 불가피하게 분양권을 전매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중앙 부처의 한 공무원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5년 전에는 세종시의 생활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입주하려고 보니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 분양권을 팔고 서울에서 출퇴근 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 공급 혜택을 받은 공무원들이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분양권을 팔아넘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공무원들의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 전매에 대한 비판이 일자 2014년 3월부터 세종시로 이전한 공무원에 대한 분양권 전매 금지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강화했다. 최근에는 공무원들이 거주자우선분양제를 활용해 얻은 분양권을 되팔아 시세 차익을 얻고 있다고 세종시 부동산업계는 지적했다. 거주자우선분양제는 해당 지역에 2년 이상 거주하면 분양 우선권을 주는 제도다. 김수현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거주자우선제는 공무원을 위한 특혜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 실종 청소년 위치추적 막는 답답한 방통위 경찰, 신속 수사 위해 IP추적 추진… 방통위 “부모가 악용 우려” 반대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김모 씨(53)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11월 12일) 성적 부담감으로 집을 나간 딸의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러나 휴대전화 전원을 꺼둔 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경찰의 답변만 돌아왔다. 경찰도 답답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휴대전화 위치추적 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 딸은 집에서 가져간 50만 원이 떨어지자 자살까지 결심한 상태였다. 경찰은 실종이 아닌 납치 사건으로 전환했다. 그래야만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인터넷 접속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경찰은 딸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위해 접속한 인터넷주소(IP주소)를 추적해 가출 5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현행법상 경찰이 실종 수사를 할 때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휴대전화 위치추적과 탐문수사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종종 발생한다. 실종 수사를 빌미로 IP주소 추적 등을 남용해 생길 인권 침해를 우려한 조항이다. 이로 인해 실종 수사는 담당 경찰의 기지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가출을 강력범죄인 납치 수사로 전환해 IP주소 추적을 하는 등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실종 담당 경찰관은 “가출한 지 3일 이내면 자녀를 찾을 확률이 97%에 이르지만 시간이 지체될수록 휴대전화를 꺼두고 잠적해 찾기 힘들어진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해 경찰은 가출 청소년을 찾을 때만이라도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임 사이트 등에 접속한 IP주소 추적을 할 수 있는 ‘실종아동 위치 자동 추적 시스템’을 추진했다. 대부분의 가출 청소년이 가출과 동시에 휴대전화를 꺼놓는데 이처럼 실종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경찰의 계획은 관계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반대로 답보 상태다. 방통위는 경찰의 방안대로라면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가 악용할 소지가 있다며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엄격한 법 해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행 실종아동법상 가출 청소년의 신상정보를 악용할 경우 처벌 규정이 이미 마련돼 있을 뿐만 아니라 IP추적은 경찰이 하기 때문에 인권침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경찰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을 발견하면 가정환경 조사를 통해 부모가 학대했을 경우 친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이미 시행 중”이라며 “수사기관인 경찰조차 믿지 못하는 방통위의 방침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동시접속 설마 100명 넘겠어?” 안이한 미래부 휴대전화 요금할인 확인 홈피 개설수만명 몰려 먹통… 보완조치도 안해 ‘아니, 왜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는 거야.’ 4일 오후 미래창조과학부가 공개한 홈페이지(www.checkimei.kr)에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먹통’이 됐다. 이들은 홈페이지에 접속해 자신이 가진 휴대전화가 요금 할인(20%)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이동통신요금 할인은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 통신사의 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약정 기간(통상 2년) 동안 요금을 할인받는 제도다. 기존에는 통신사 대리점을 방문해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미래부가 이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정식서비스가 이뤄진 5일 오전에도 한동안 해당 서비스의 접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자 미래부의 담당 공무원은 “동시에 몇만 명이 몰렸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홈페이지는 100명이 동시 접속할 수 있는 용량을 갖췄다. 하지만 현재 국내 휴대전화 가입회선은 지난해 말 기준 약 5700만 개로 이 중 상당수 개인 고객은 요금할인제에 관심이 크다. 실제 정부 발표가 이뤄진 4일 낮 12시∼밤 12시 약 5만 명이 접속했다. 홈페이지가 먹통이 된 것은 이미 예고된 셈이다. 5일 오후부터 접속이 문제없이 이뤄지자 미래부 측은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접속 용량을 늘리는 조치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책홍보를 통해 서비스 이용자를 적극적으로 늘려야 하는 정부가 ‘접속량이 늘지 않아 안심’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출범한 미래부는 ‘창조경제’를 이끌어가고 국가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10년 뒤에 어떻게 뭘 먹고살지 두렵다’는 한숨에 답변을 내놔야 하는 미래부가 정책의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한탄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화물차만 골라 상습적으로 금품을 털어 온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전통시장 근처에 세워진 화물량에서 현금과 상품권 등을 훔친 혐의(상습절도)로 김모 씨(51)를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8월 서울 양천구의 한 재래시장에서 조모 씨(40)가 물건을 옮기는 사이 운전석으로 들어가 차 안에 있던 현금 8만 원과 15만 원 짜리 외장하드 등 총 43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난 혐의다. 또 지난해 12월 임모 씨(57)의 트럭에서 같은 수법으로 현금 15만 원과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권 등을 훔쳤다. 경찰은 근처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김 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2014년 12월에도 화물차에서 현금 580만 원과 100만 원 상당의 휴대폰을 훔쳤다가 붙잡힌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김 씨는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으나 검찰의 출석 통보에 불응하고 잠적했다. 양천서 김정수 경위(43)는 “김 씨가 절도 등 전과 12범이고, 검찰 통보에 불응하고 도주한 경력이 있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며 “트럭 운전사들이 하역 작업 중이라도 차 문을 잠그는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동혁 hack@donga.com·유원모 기자}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쑥스러워하는 표정은 비슷했다. 하지만 ‘달라진 기부’를 말하는 목소리는 전보다 훨씬 경쾌했다. 2011년부터 ‘신월동 주민’이란 이름으로 매년 1억 원 이상을 기부한 이상락 씨(63). 이 씨가 익명 기부의 주인공이란 사실이 지난해 본보 보도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뒤 그는 적극적인 공개 기부자로 변신했다. 이 씨는 “기부 사실이 알려진 뒤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며 “공개 기부를 하는 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개 기부를 실천에 옮기면서 이 씨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동참’. 그는 2015년 11월 자신이 운영하는 타일가게에 정수기 물통을 개조한 ‘모금함’을 설치했다. 기부에 동참하고자 하는 동료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거래처 직원은 물론이고 이 씨의 가게에 들른 신월동 주민들도 작게는 1000원부터 많게는 5만 원까지 쌈짓돈을 털었다. 한 달간 설치된 모금함에는 60여 명이 참가해 90만4250원이 모였다. 이 씨는 “말 그대로 ‘신월동 주민’들이 함께 기부한 것”이라며 “예쁜 손주들까지 고사리손으로 기부할 때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난해 12월 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를 찾았다. 주민들이 모은 90여만 원에 자신이 낸 1억 원을 더한 성금을 전달했다. 구세군자선냄비본부는 이날 1억 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들이 가입하는 ‘베스트도너클럽’의 13번째 회원으로 이 씨를 선정했다. 앞서 이 씨는 10월 대한적십자사에 1000만 원을 기부했다. 또 홀몸노인 등 불우이웃을 위해 신월동 주민센터에 쌀 100포대와 라면 100상자도 전달했다. 12월 20일에도 명동을 찾아 자선냄비에 기부금을 넣었다. 이 씨는 “한국의 기부문화가 많이 활발해졌지만 아직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돈이라도 기부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부러워하던 주변의 시선은 연민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7월 김모 씨(27)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했다. 6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일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건으로 단 1명을 뽑았는데 김 씨가 합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11월 말 회사는 ‘경영사정이 안 좋아져 채용을 취소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통보해왔다. 김 씨는 “채용이 됐을 땐 불황 속에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오래가지 않았다”며 씁쓸해했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청년들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채용정보 사이트 인크루트가 조사한 ‘2015년 500대 기업 일자리 기상도’에 따르면 2015년 대기업 1곳당 평균 채용 인원은 126.9명으로 집계됐다. 2014년보다 2.3% 줄어든 규모다. 올해 청년층의 취업상황은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1일부터 정년연장법이 시행되지만 100명 이상 사업체 9034곳 중 9.4%만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태라 청년취업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문계 대학생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대학생 유모 씨(26)는 지난해 15곳의 기업에 원서를 냈지만 취업에 실패했다. 명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성적 우수 장학금까지 받은 데다 대기업이 주최한 행사의 홍보대사를 하는 등 ‘취업 8종 세트’를 완벽히 갖춘 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최근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준비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 먹은 유 씨는 “그래도 자격증이 하나라도 있으면 낫지 않을까 싶은 게 지금 심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기업 150곳에 원서를 냈다가 모두 떨어진 정모 씨(28)는 “문과 출신을 뽑는 기업이 워낙 적어 영업, 마케팅, 인사 등 분야에 상관없이 채용 공고만 뜨면 무조건 원서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이공계 전공자들의 미래가 밝은 것도 아니다. 특히 건설경기 불황이 몇 년째 이어지면서 건축·토목 전공 학생들의 절망감은 크다. 토목공학과 출신인 안모 씨(28)는 3년째 취업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그는 취업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한 건설사 최종면접장에서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진짜 잘한다. 같이 일하고 싶다”며 칭찬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부모님은 조심스레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올해는 꼭 취업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새해 소망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서울 금천경찰서는 협동조합을 설립해 고액의 배당금을 주겠다고 노인들을 속여 투자금 수십억 원을 가로챈 혐의(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박모 씨(59)를 구속하고 김모 씨(61) 등 4명은 불구속 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 등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과 부산 등에 ‘○○○ 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장례용품과 상조 사업에 투자하면 3∼4배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고 속여 423명에게서 20억660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이들은 사업설명회를 열어 “상조 1계좌에 123만 원을 투자하면 410만 원권 상조증서를 주고 매주 배당금 10만 원 상당을 200만 원이 될 때까지 지급하겠다”고 홍보해 투자자들을 유혹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나라가 약해서, 민족의 수난이 계속돼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의 만행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였다. 29일 외교부 제1, 2차관을 만난 할머니들은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협상을 진행한 우리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을 보자마자 “어디(어느 나라) 외교부예요?”라고 물어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이용수 할머니(87)는 “(우리는) 엄연한 조선의 딸이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라며 화를 내고야 말았다. 김복동 할머니(89)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공식으로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 바람”이라며 “돈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 “피해자는 우리인데 왜 정부가…”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방문해 정복수(100) 김군자(90) 박옥선(92) 이옥선(89) 유희남(88) 강일출 할머니(88) 등 6명과 마주 앉은 조태열 외교부 2차관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냉담한 할머니들 앞에서 조 차관은 “할머님의 용기 있는 고백이 헛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했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일본이 할머니들뿐 아니라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 사과를 했기 때문에 이 이상 명예 회복은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이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피해자는 우리인데 정부가 어떻게 함부로 합의합니까. 우리는 인정 못 해요. 개인적으로 배상 받고, 공식 사과 받게 해 주세요.”(김군자 할머니) “할머니들 몰래 합의를 한 것은 우리를 울리고 정부가 우리 위안부를 팔아먹은 것과 같아요.”(이옥선 할머니) 50여 분간 이어진 면담은 오후 3시 20분경 끝났다. 조 차관은 “송구스럽다. 합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마음으로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일어섰다. 돌아서서 나오는 조 차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할머니들 역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 박 대통령, 할머니들 직접 위로할까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수사로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견뎌 온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 상처를 위로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단지 한일간 외교적인 해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희생된 개인의 삶을 보듬을 수 있어야만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일본이 진정성을 갖고 합의를 이행한다면 후속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일 관계는 이제 시작”이라며 “일본의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합의가 이뤄졌다. 일본도 감성적인 이벤트를 검토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본의 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박 대통령의 나눔의 집 방문이나 메시지 전달이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강조한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위안부 할머니와의 만남을 검토했다고 한다. 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외교관계를 고려해 협상 타결이 된 다음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참모들의 건의에 따라 만남을 미뤘다”고 전했다.우경임 woohaha@donga.com·유원모·김호경 기자}
서울 광진경찰서는 제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당시 복면을 쓰고 경찰 버스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현존자동차방화미수 등)로 화물연대 구미지회장 이모 씨(46)를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달 14일 오후 4시 35분경부터 1시간 30분가량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하면서 종로구청 사거리 인근에 세워져 있던 경찰버스의 좌석에 불을 붙이는 등 2차례에 걸쳐 방화를 시도한 혐의다. 또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경찰관을 향해 돌멩이와 부러진 각목 버스의자 등을 던진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이 씨는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얀색 우비를 입고 있어 신원이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은 용의자 특정을 위해 인근 폐쇄회로(CC)TV 300여 대를 분석해 이 씨가 구미에서 올라온 버스에 탑승한 것을 발견하고 검거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했지만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버스 지붕에 있는 경찰관에게 돌을 던진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로 화물연대 포항지회 소속 노조원 김모 씨(40)도 검거해 불구속 입건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신조어는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사, 현실을 반영한다. 올해도 다양한 의미를 담은 신조어가 여럿 등장했다. 특히 경기 침체와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 단어가 많았다. 본보는 올해 등장한 신조어를 통해 2015년 한 해를 되돌아봤다.○ “인문계 90%는 백수, 문과라서 죄송해” “대기업 인턴 두 번에 홍보대사는 세 번 해봤어요. 국내외 봉사활동도 여섯 번 다녔고….” 취업준비생 이정연(가명·27·여) 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이 씨가 본격적인 취업 전쟁에 뛰어든 지도 올해로 3년째. 원서를 넣은 회사만 150곳이 넘는다. 그중 서류전형을 통과해 면접을 본 곳은 10곳 남짓. 이 씨는 “이 정도면 나름대로 평균은 되는 셈”이라며 웃었다. 이 씨는 요즘 말로 지여인이라고 불린다. 구직자들은 취업문을 뚫기 어려운 3대 요소로 ‘지방대 출신, 여자, 인문대생’을 꼽는데 이 3가지 악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 바로 지여인이다. 지여인은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문송이나 ‘인문계 90%가 논다’는 인구론을 압도한다. 특히 최근에는 토익 950점과 평점 4.0을 넘는 학점에도 기업의 러브콜을 받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다. 토익과 학점, 딱 2가지 스펙만으로 취업할 수 있었던 선배들을 사라진 원시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빗대 오스트랄로스펙쿠스라고 부를 정도다. 그 대신 이 씨 같은 청년 구직자에겐 호모인턴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인턴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어지간한 기업 간부의 업무 경험 뺨칠 정도라며 부장인턴이란 말도 생겼다. 이 때문에 요즘 구직자들은 서류전형 통과를 오르가슴에 빗대 서류가즘이라고 부를 정도다. 이 씨도 “최근 한 중견 건설사 공개채용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했는데 그때의 서류가즘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조롱하고 싶은 대상은 벌레(蟲)로 도서관에는 이 씨보다 더 오랜 기간 취업 준비에 묻혀 지내는 ‘화석선배’가 적지 않다. 한창 일을 해야 할 시기에 아직 일할 곳을 찾지 못한 청춘들은 자신을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등 삶의 가치를 포기해 버린 ‘N포세대’라고 말한다. 자존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낮아진 자존감은 때때로 나와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조롱하는 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올해 유독 많이 눈에 띄는 ‘충(蟲)’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한국 남성은 벌레’라는 의미의 한남충,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엄마’를 일컫는 맘충, ‘무엇이든 설명하려 드는 사람’을 말하는 설명충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남녀 간 대립도 깊어졌다. 올 초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아몰랑’이라는 표현이 화제가 됐다. 한 여성 누리꾼이 자신의 얘기를 한참 털어놓다가 복잡한 사안 앞에서 “아몰랑”이라고 쓴 게 발단이었다. 남성들은 “있는 척은 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내용도 잘 모르면서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는 행동”이라며 여성들을 비판할 때 이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이에 대적해 한남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남성이 저지른 각종 성범죄 기사에는 “역시 한남충” “한남충답다”란 댓글을 달며 조롱하는 식이다.○ 헬조선, 흙수저… 사회 불만 반영 “어렵게 입사했지만 동료들을 볼 마음이 더는 들지 않더군요.” 박응철(가명·33) 씨는 최근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그가 5년 전 처음 몸담았던 곳은 한 무역회사의 재무팀. 고생 끝에 들어간 회사지만 책상을 맞대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그는 신분이 달랐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었던 것. “멀쩡한 대학을 나왔는데 왜 계약직이냐”는 주위의 비아냥거림에도 박 씨는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빨대족 신세를 벗어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박 씨는 “일은 별로 하지 않으면서 월급날만 기다리는 월급루팡들이 넘쳐난다”고 혀를 찼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박 씨는 3년째 되던 해 경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으로 옮겼다. 기쁨은 잠시. 수년째 계속되는 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하고 회사는 감원을 결정했다. 박 씨는 “아직 주니어 사원인 만큼 나한테까지 칼바람이 들이닥치진 않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끝내 버려졌다”고 했다. 더 큰 절망감은 그 후에 찾아왔다. “회사 임원 자제들은 거의 다 살아남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처럼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탓이겠지요.” 박 씨는 “‘노력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기성세대의 말은 나처럼 흙수저를 물고 나온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과거에도 ‘잉여’나 ‘엽기’처럼 경쟁에서 낙오된 현실을 반영하는 신조어는 많았다. 문제는 박 씨처럼 현실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젊은이들이 과거에 비해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발생한 한 식품회사 명예회장의 운전사 폭행 건처럼 갑을(甲乙)관계가 드러나는 사안이 불거질수록 젊은이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는 편이다.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작가 장강명 씨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성세대와 한국사회에 대한 좌절감의 수위가 적신호에 이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잉여’가 사회시스템은 정상이지만 자신은 거기에 끼지 못하는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신조어라면, ‘헬조선’에는 자신은 정상이지만 사회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게 장 씨의 생각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한쪽에서는 현실에 적응하며 똑똑하게 소비하는 계층도 등장했다. 60, 70대임에도 스스로 노인으로 불리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가꾸는 데 집중하는 노노족이나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포미족이 대표적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기보다 혼자 사는 이들이 늘면서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아끼는 펫팸족도 올해 새롭게 등장했다. 일부는 ‘묻지 마 구매’ 대신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네오비트족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사회시스템 불신 걷어내야” 하지만 올해 등장한 신조어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내용이 많은 편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경기 침체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설 교수는 “신조어는 젊은 계층이 많이 사용하는데 이들은 어릴 때부터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자조적인 의미를 담은 신조어도 많이 생겼다”며 “긍정적인 신조어가 늘어나려면 경기나 취업 상황 등이 개선돼야 한다”고 내다봤다. 2016년에는 긍정적인 의미의 신조어가 많이 등장할까. 경기나 신뢰 회복과 더불어 긍정적인 생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개그맨 김영철의 유행어로 주문을 걸어보자. “내년에는 우리 모두 힘을 내요. 슈퍼 파월(super power)∼.”박창규 kyu@donga.com·유원모 기자}

윤태옥 씨(55)의 2013년 새해 소망은 작지만 특별했다.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를 실천하겠다는 것. 1월 한 달 동안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뜻이다. 잦은 음주로 인해 몸이 무겁고 쉽게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방법은 다양했다. 매일 자신의 블로그에 금주 일기를 쓰면서 다짐했다. 술자리에서는 금주 운동을 소개하며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걱정스러웠지만 주위의 반응은 의외였다. 불평은커녕 신선하다는 말과 동참하겠다는 지인도 생겼다. 평소에도 반주를 즐기던 윤 씨는 2013년 1월 한 달간 금주에 성공했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술에 대한 절제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 씨는 2016년 1월에도 드라이 재뉴어리를 실천할 계획이다. 잦은 음주로 건강을 해치고, 경제적 부담까지 느끼는 이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간헐적 금주 등으로 적당한 술자리를 즐기며 스마트한 음주를 실천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2012년 페이스북에는 ‘Dry January Korea’ 모임이 생겼다. 400여 명이 가입한 이 모임은 한 달간의 금주 각오를 공유하고 서로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개성 있는 방법으로 금주를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박상우 씨(26)는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는 모임을 최근 ‘무아이타이’(태국 전통 무술) 동호회로 바꿨다. 박 씨는 “술만 마시는 것보다 함께 모여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승오 씨(24)는 음주 후 달력에 그날 마신 술의 양을 적는다. 과도한 음주량에 깜짝 놀라 실천한 지 3개월 만에 술 마시는 횟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의 금주 노력도 다양하다. 부산 기장군 보건소는 올해부터 알코올 분해 유전자 테스트를 무료로 실시해 위험 체질에는 금주 배지를 제공하고 있다. 유병욱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체내 흡수된 알코올이 몸 밖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음주를 하면 간경화 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금주 기간을 두면서 간을 쉬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대한민국이 싫습니다. 호주나 영국에서 태어나지 못해 훈장은커녕 고액 체납자란 오명만 쓰고 있습니다.” 장학금으로 215억 원을 기부했다 225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은 황필상 구원장학재단 설립자(68) 얘기다. 22일 경기 수원시 구원장학재단에서 만난 황 씨는 장학 사업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황 씨의 인생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청계천 빈민촌에서 고등학교를 힘겹게 졸업한 황 씨는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했다. 우유와 신문 배달에서부터 공사장 막노동까지. 먹고살기 위해 갖은 일을 했다.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대상이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군대를 전역하고 뒤늦게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6세 늦깎이 신입생으로 아주대에 입학했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응용연구소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고 1984년부터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도전에 목말랐다. 1991년 당시로선 드물었던 생활정보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년에 수십억 원의 돈을 벌기도 했다. 인생의 황금기였다. 원 없이 일하고, 공부하고, 돈을 벌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사회로부터 받은 걸 사회에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2002년 모교인 아주대에 현금 15억 원과 자신이 세운 수원교차로 주식 90%(200억 원 상당)를 기부했다. 100%를 기부하려 했지만 학교 측에서 황 씨의 노후 등을 고려해 만류했다. 아주대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뿌듯했다. 첫해 11명의 장학생에게 1100만 원을 지급한 이후로 매해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늘어갔다. “저도 꼭 성공해서 박사님처럼 될게요”라며 황 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장학생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2008년 세무서에서 날벼락 같은 통지서가 날아왔다. 증여세로 140억 원을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장학재단에 기부한 금액이 현금이 아닌 주식이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된다는 논리였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공익재단에 기부를 하더라도 보유 주식의 5% 이상을 출연할 경우 증여세를 내야 한다. 재벌 등이 공익법인을 지주회사로 만들어 편법으로 부를 세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황 씨는 “가족에게 미안하고 민망했다.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망신만 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두 딸은 외국에 거주하고 있고, 재단 운영은 아주대에 맡긴 상태다. 법원에 증여세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부의 세습과는 무관한 경우까지 증여세를 부과한다면 오히려 공익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며 황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황 씨가 재단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증여세 부과는 정당하다며 세무 당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이 4년째 판단을 미루고 있는 사이 수원세무서는 140억 원에 가산세를 더한 225억 원을 내라는 독촉장을 보냈다. 그동안 세무 당국은 장학재단에서 20억 원을 가져갔다. 매년 100명 이상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던 장학재단은 올 1학기에는 장학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내가 기부만 안 했어도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황 씨는 자신처럼 기부를 했다 세금 폭탄을 맞게 되는 것이 알려져 기부하지 않은 부자들에게 명분만 주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수원=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그날의 흔적은 아직도 몸 곳곳에서 발견된다. 김용자 씨(52·여)의 왼쪽 팔꿈치에는 파열된 인대를 치료하기 위한 붕대가 둘둘 감겨 있다. 김 씨의 상처는 9월 6일 제주 추자도 근처에서 생겼다. ‘97흥성호’를 모는 남편 박복연 선장(54)과 조업을 나갔다 ‘돌고래호’ 조난자 3명의 목숨을 구한 날이었다. 박 선장은 구조 당시를 “바다 생활 30년 중 가장 날씨가 안 좋았던 날”로 기억했다. 오전 6시 25분, 동트기 직전 바다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서 낯선 검은 물체가 흐릿하게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속옷만 입은 남성 3명이 뒤집힌 배에 매달린 채 살려 달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구명튜브를 돌고래호 쪽으로 수차례 던졌지만 거센 파도 탓에 계속 실패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조난자 1명이 겨우 튜브를 잡았다. 박 선장은 선원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전속력으로 배를 반대 방향으로 몰았다. 부인은 안간힘을 쓰며 줄을 끌어당겼다. 얼마나 힘을 썼는지 부인 김 씨의 팔 인대가 끊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3명 모두를 구해냈다. 박 선장은 바다 생활을 품앗이에 비유했다. “바다에서는 모두가 ‘형제’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위험에 처할 수 있거든요. 이번에는 운이 좋아 제가 도울 수 있었지만 반대로 제가 조난당한다면 누군가 절 구해줄 거라고 믿어요.” 박 선장은 이후 일주일 동안 실종자를 찾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그 원동력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박 선장 부부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와중에도 서로 “먼저 가라”며 구조 순서를 양보했던 돌고래호 조난자들을 잊지 못한다. 이들은 뒤집힌 배에 밧줄로 몸을 묶은 채 11시간을 버틴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부부는 자신들의 공을 오히려 이들에게 돌리면서 당시 구조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박 선장 부부는 9월 국민안전처가 선정한 제1회 ‘참 안전인 상’을 수상했다. 포상으로 지급된 수상금의 절반은 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농구스타 출신 이충희 씨(56)와 부인인 배우 최란 씨(55·여)가 소아암과 희귀성난치질환 등으로 투병생활 중인 어린이 환자와 가족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이 씨 부부는 22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제3회 미리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소아암 등을 앓고 있는 어린이 환자 30여 명에게 테디베어 인형 등을 선물했다. 메이크어위시재단이 주최하고 삼성전자가 후원한 이날 행사는 환자와 가족 60여 명이 참가했으며 ‘나만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만들기’와 마술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됐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가나에서는 덩치가 크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비만과 고혈압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을 거예요.” 9일(현지 시간) 아프리카의 가나 볼타 주의 남(南)케투 시에서 열린 ‘건강 박람회’. 생애 첫 건강검진을 받은 아야바 포도지 씨(52·여)는 이같이 말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기본적인 건강 검진조차 받지 못하는 현지 주민들을 위해 열렸다. 480명에 이르는 주민 대다수가 이날 처음으로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400여 달러(약 164만 원)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빈국이다. 특히 의료인 수는 1만 명당 1명에 불과할 정도로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 이훈상 코이카 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는 “기본적인 보건 교육만 받더라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아프리카 국민이 많다”며 “현대 의학보다 토착 의료를 믿는 가나 국민의 보건 인식을 바꾸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이카는 2013년부터 ODA 자금 600만 달러(약 70억 원)를 지원해 조산사 학교 건립, 보건소 간호사 교육 등 가나의 보건 인프라 확충을 돕고 있다. 2014년 7월부터 한국의 보건 전문가를 파견해 남케투 시 등 21개 보건소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말라리아, 콜레라 등 기본적인 위생 교육을 통해서 충분히 전염 예방이 가능한 질환 중심으로 예방접종, 손 씻기 방법 등을 보급 중이다. 남케투 시 보건지소 간호사 아포브 딜라이트 씨(26·여)는 “소독기, 태아심박음 측정기 등 응급 상황에서 필수적인 장비들이 이전에는 없었지만 한국의 도움으로 올해부터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남케투=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박찬호)는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59·경기대 교수)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김 전 처장은 2012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이철 대표(50)에게 불법정치자금 6억2900만 원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중간전달자를 통해 김 전 처장에게 현금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앞서 자본시장법과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게 정치자금법 혐의를 추가로 기소했다. 검찰 측은 두 사람이 돈을 주고받은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김 전 처장은 받은 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선거운동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처장은 2012년 총선에서 경기 성남 분당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김상곤 후보를 지지하며 자진 사퇴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진짜 OO이 아빠가 맞아요?” 배우 이름 대신 극중 이름을 물어볼 정도로 즐겨본 드라마였다. 서구적인 눈매며 훤칠한 키까지 딸과 똑같이 생긴 아버지였다. 백 모씨(55·여)는 믿기지 않았다. 좋아하는 드라마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직접 만난 것이다. “공부는 못했는데 대사를 잘 외우는 것 보면 신통하다”며 좋아하는 여배우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는 박모 씨(57)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해 3월 마침 처분하려고 했던 경기 파주시의 1639㎡ 땅을 10억 원에 사주겠다고 해서 계약서를 쓰고 박 씨로부터 계약금 1억5000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 잔금 8억5000만은 들어오지 않았다. 박 씨는 50억 원이 넘는 잔금 증명서를 보여주고, 은행 지점장을 만나게 해주며 “돈이 곧 들어 온다”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답답했지만 좋아하는 배우의 아버지여서 믿고 기다렸다. 박 씨의 말이 거짓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올 5월이다. 처음 들어 본 전북 임실군의 한 조합공동사업법인에서 매입하지도 않은 벼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문을 몰랐다. 뒤늦게 박 씨가 몰래 토지 매매계약서를 담보로 전북 임실군의 한 조합에서 10억 원 상당의 벼를 외상으로 매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이 박 씨는 외상으로 구입한 벼를 정미소에 처분해 7억50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상태였다. 이전에 보여줬던 잔고 증명서는 다른 사람 명의의 것이었고, 은행 지점장은 내용도 모른 채 그저 박 씨 일당이 시키는 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박 씨는 일당 강모 씨(56) 등과 돈을 나눠 갖고 “돈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백 씨의 속은 타들어갔다. 잔금을 받기는커녕 박씨가 몰래 설정한 담보로 인해 10억 원 상당의 땅을 고스란히 뺏길 처지에 놓였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박 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사기 등 동종 전과가 다수 있고, 피해 액수가 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박 씨의 딸은 현재 지상파 드라마 등에서 주연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김유빈 채널A 기자}

“실내화로 갈아 신으세요.”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온누리 보습학원에 들어서자 이화자 원장(57·여)은 “바닥이 차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이 실내화를 챙기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2월 40만 원에 이르는 전기료 고지서를 받으면서부터다. 전달에 비해 2배가 넘게 청구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겨울에도 10만 원 안팎의 전기료만 내고 있다. 방법은 작은 변화였다. 쓰지 않는 전자제품의 코드를 빼고, 온돌 난방이 설치되지 않은 바닥에서는 냉기를 막기 위해 반드시 실내화를 신도록 했다. 11월이 되면 항상 따뜻한 차를 준비해 교사와 학생들 스스로 온기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학원생 박근영 군(15)은 “누구나 난방기를 켤 수 있다. 하지만 교실에서 나갈 때는 반드시 꺼야 한다”고 말했다. 거리의 상점들은 겨울철만 되면 과도한 난방으로 경제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 난방비를 합리적으로 줄인 곳도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작지만 강한 실천이다. 서울 강남구 토니앤가이 미용실은 겨울철 적정 실내 온도인 20도 정도로 맞추고 필요할 때만 천장의 난방기를 가동한다. 오후 8시 영업시간이 끝나면 모든 전력을 차단해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이고 있다. 서울 마포구 그레이스 요양병원은 노인들이 거주하기 때문에 겨울에 무엇보다 온도 유지가 중요하다. 병원 측은 이를 위해 지난해 작은 창문 한 개까지 이른바 ‘뽁뽁이’(단열시트)를 설치해 열 손실을 꼼꼼히 막았다. 덕분에 월 150만 원씩 나오던 겨울철 난방비를 100만 원 수준으로 30%가량 아낄 수 있었다. 난방비 절약을 독려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정책을 활용하는 것도 현명하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알뜰 으뜸 절전소’ 공모전을 도입했다. 전년에 비해 전기 사용량을 절감한 업소에 포상금 등을 지급한다. 정희정 서울시 에너지시민협력과장은 “실외기 위치를 문 근처로 바꾸는 등 작은 변화만으로 최대 50%의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서울대 공대 대학원생 2명이 지난달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14일 공대 학생 2000여 명 전원을 대상으로 결핵 감염 여부를 검진했다. 서울대 등에 따르면 서울대 공대 대학원생 2명이 지난달 군 입대 신체검사 도중 결핵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결핵협회와 서울 관악구보건소는 14일 오후 2시부터 결핵 감염 학생들이 연구실로 이용했던 공대 건물에서 공대 소속 학부생과 대학원생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흉부 X선 촬영을 통해 검진을 실시했다. 이날 검진을 받은 학생은 250여 명이다. 서울대 보건진료소는 결핵 확진 학생 2명과 ‘밀접 접촉’한 다른 학생을 대상으로 이달 초에 실시한 검진에서는 감염자가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에도 서울대 공대에서 결핵 판정을 받은 대학원생 1명이 발견됐지만 이들 2명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측은 “검진받지 않은 학생들은 보건진료소 등에서 검진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결핵 판정 학생들에게서 결핵균이 발견되지 않아 전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지난달 30일에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학년 학생이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로스쿨 학생 400여 명을 대상으로 검진을 진행하고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황망하게 모든 걸 내려놓은 듯했던 이한열 열사 가족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초·중학교 성적표와 사진 등을 이한열기념관에 기증하기로 밝힌 윤재걸 씨(68)는 1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1987년 6월 광주 이한열의 친가 모습을 이같이 밝혔다. 윤 씨는 1987년 6월 신동아 소속 기자로 직선제 개헌 요구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인물 기사를 쓰기 위해 광주의 이한열 친가로 갔다. 사건이 발생한 지 2일 후에 도착해 이미 다른 기자들이 기삿거리가 될 만한 물건들은 모두 가져간 상태였다. 윤 씨는 넋 놓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이한열의 가족에게 정중하게 성적표 등을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봤고 승낙을 얻었다. 그러나 윤 씨는 이한열의 물품과 관련된 내용을 당시 기사에 반영하지 못했다. 윤 씨가 가져온 5학년 성적표에는 “학습태도가 바람직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립니다. 칭찬해주십시오”라는 교사의 의견이 적혀 있었다. 또 중학교 2학년 때는 모든 과목에서 ‘수’ 성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생활습관·근면성·책임감 등을 평가한 항목에서도 최고 등급을 받는 등 착실한 학생으로 기록돼 있다. 윤 씨는 “당시 취재 관행상 당사자의 물건을 가져오는 게 흔했지만 늘 마음에 빚이 있었다”며 기증 이유를 밝혔다. 이한열 기념사업회는 보존 처리를 거친 뒤 내년 6월부터 이한열기념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김학민 이한열 기념사업회장은 “취재기자가 가져간 이한열 관련 자료를 돌려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이한열 열사의 1차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성적표와 사진 자료 등은 굉장히 가치가 있다”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8시경(현지 시간) 카메룬 수도 야운데에서 아솔로 조제프 클로드 씨(42)는 강도 4명의 습격을 받았다.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던 클로드 씨는 마침 한 달 치 수입인 25만 세파프랑(한화 약 50만 원)을 갖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강도들은 그를 쓰러뜨린 뒤 허리와 왼쪽 다리를 흉기로 찌르고 돈을 빼앗아 달아났다. 클로드 씨는 가까스로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병원 측은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출혈이 계속되는 가운데 클로드 씨는 야운데 국립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됐고 3시간가량 응급수술을 받고서야 겨우 위기를 넘겼다. 2일 국립응급의료센터 준중환자실에서 만난 클로드 씨는 “만약 이곳으로 오지 않았으면 난 이미 죽었을 것”이라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카메룬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1200달러(약 141만 원)에 불과한 나라다. 인구 1만 명당 의사 수가 1명 정도일 정도로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 특히 응급의료 시스템은 전무하다. 카메룬 제1의 국공립 의료기관인 중앙병원 응급실에는 아직도 산소호흡기나 심전도 측정기 등 기본적인 치료장비조차 없다. 클로드 씨의 생명을 구한 곳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으로 올 6월 문을 연 야운데 국립응급의료센터(응급센터)다. 카메룬 정부의 요청으로 KOICA가 2010년부터 약 393만 달러(약 47억 원)를 들여 완공했다. 카메룬에서 유일하게 현대식 응급의료체계를 갖춘 곳이다. 2069m²의 크기에 응급병상 42개와 중환자실 전용 병동 3개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접수, 치료, 입원, 정산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한국식 응급시스템을 똑같이 실행하고 있다. 인프라뿐 아니라 한국 의료진이 카메룬 현지 의료진과 함께 활동하며 한국의 의학을 전수해주고 있다. 12월 현재 야운데 응급센터에는 KOICA에서 파견한 응급의학 전문의와 간호사 12명 등 18명의 한국 의료진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4시간 3교대로 근무하며 수술과 진료, 간호 등 응급의료 전 과정에 참여하며 카메룬 의료진 287명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병원 경영 전문가도 현지에서 의료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카메룬 의료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였던 ‘선지불 후진료’ 방식 대신 선진료 후지불 방식을 도입해 누구든 응급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서울대 보라매병원 출신으로 현재 야운데 응급센터 부원장을 맡고 있는 정중식 ODA 전문가는 “단지 병원을 지어주는 게 아니라 응급의료진 양성과 시스템 도입 등 현대화된 응급의학을 카메룬에 정착시키는 게 진짜 목표”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은 내년부터 야운데 1대학 의과대학에 교육 커리큘럼 개발과 강사 양성 등의 지원을 할 예정이다. 카메룬 보건당국은 한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현지 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에툰디 카메룬 질병관리본부장은 “에볼라 등 감염성 질병이 많은 아프리카에서 응급센터는 의료진이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며 “야운데 응급센터의 성공을 토대로 앞으로 짓게 될 국공립 병원에는 모두 응급센터를 갖추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야운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