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에 ‘주홍글씨’… 입양 막는 입양특례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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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아기 거래’ 이면엔… 법 개정 4년 명암

“아기가 호적에 남을까 봐 정식 입양은 생각도 못 했어요.”

‘논산 아기 매수 사건’으로 구속된 임모 씨(23·여)에게 자신의 아이를 넘겼던 미혼모 A 씨는 경찰에 이렇게 진술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입양 전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절차 때문에 인터넷으로 양부모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현재까지 입건된 미혼모 3명의 공통된 주장이다.

A 씨처럼 본인 아기를 남에게 입양시키고 싶어 하는 미혼모들이 반드시 본인의 호적에 먼저 아기를 입적시켜야 하도록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것은 2012년 8월이었다. 입양아가 성장한 뒤 친생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법 개정 이전엔 생모가 아기를 이른바 ‘고아 호적’에 올린 뒤 남에게 입양시키는 ‘우회로’가 있었지만 법 개정 후 길이 막혀 버린 것.

법 개정 후 미혼모들은 출생신고 기록이 추후 취업이나 결혼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정식 입양을 꺼리게 됐다. 2011년 1548명이었던 국내 정식 입양아는 2014년 637명(41.1%)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반면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등 교회 2곳이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들은 같은 기간 22명에서 280명으로 약 13배로 늘었다. 불법 입양을 줄이기 위해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오히려 미혼모들을 ‘어둠의 경로’로 내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입양특례법을 개정하며 함량 미달의 양부모를 걸러내기 위해 입양을 ‘지방자치단체 신고’에서 ‘법원 허가’ 사항으로 바꿨지만 이 역시 취지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14개월이었던 수양딸을 쇠파이프로 때려 숨지게 해 지난해 징역 20년형을 확정 받은 김모 씨(48·여)는 법원에 허위 재직증명서 등을 내 입양 허가를 받아냈다. 법원의 입양 허가율은 90% 안팎이다.

특히 임 씨처럼 몰래 사온 아기를 자기가 낳은 것처럼 허위로 출생신고하는 경우엔 속수무책이었다. 인우보증(隣友保證·친구 친척 이웃 등 가까운 사람들이 증명해 주는 것)을 활용하면 출생증명서 없이 성인 2명의 보증만으로 출생신고를 받아주는데, 임 씨는 남동생(21)과 사촌동생(21·여)을 동원해 아기 2명은 자기가 낳은 것처럼, 1명은 고모(47)가 낳은 것처럼 꾸며 출생신고를 했다.

입양 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인우보증 제도를 보완하고 미혼모가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때 아기 이름을 뺄 수 있도록 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7개월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라 19대 국회에서 통과될지가 불투명하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와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등 2곳이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와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등 2곳이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
복지부 관계자는 “아기 거래는 인터넷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탓에 실태조사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태승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는 “입양아를 위해 친생부모의 정보는 따로 관리하되 입양 전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조항은 없애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유원모 기자
#입양#입양특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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