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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장 및 산업단지 활성화 대책’에서 주목되는 내용 중 하나는 환경영향평가 관련 규제 일부를 크게 완화한 것.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때 3계절 이상의 현장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바꿔 ‘신뢰할 만한 기존 데이터’가 있을 경우 2계절 조사로 줄일 수 있도록 했다. 이미 축적돼 있는 대기질, 수질 관련 자료가 있는데도 3계절 조사를 받으면서 착공까지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는 업계의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국가측정망 자료, 주변 지역의 환경영향평가서 등 공신력 있는 데이터가 있다면 현장조사를 대체할 수 있다. 환경부는 4계절 조사를 의무화했던 과거 법 조항이 2008년 폐지된 이후 환경영향평가협의회에서 조사 기간을 결정토록 했으나 이후에도 3계절 이상의 조사 기간이 관행적으로 유지돼 왔다. 환경영향이 적은 사업의 경우 평가 협의 기간을 기존 30일에서 20일로 단축한 것도 달라진 부분. 3만 m² 미만의 공장과 창고, 체육시설 설립 등 8개 사업이 대상이다. 이 밖에 환경영향평가 내용을 보완, 조정하는 횟수는 2회로 제한했고 협의가 완료됐다가 취소된 사업을 5년 내에 재추진할 경우는 기존 평가 결과를 인정키로 했다.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충족해야 하는 30%의 생태면적률(전체 개발면적 중 자연녹지와 공원 등의 비율)도 “너무 높다”는 업계의 지적을 감안해 적용 기준을 재검토할 방침이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12월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환경보호가 후순위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공기, 물, 동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주기별로 들여다봐야 하는 사안의 경우 협의 과정에서 어차피 3계절 이상 평가로 결정될 것”이라며 “사안별로 꼼꼼히 따져 규제 완화의 악용 소지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맹꽁이가 서식하는 지역에 공장 설립을 추진할 때에는 반드시 여름철 조사가 포함되도록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최근 본격적인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올해 폭염으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30일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건설 노동자인 A 씨(34)가 28일, 전남 순천에 사는 B 씨(87·여)가 29일 열사병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열사병은 체온이 40도가 넘으면서 주로 두통, 오한 등의 증세가 나타나고 심할 경우 혼수와 같은 의식장애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온열 질환(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등)’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A 씨는 28일 오전부터 건설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오후 4시경 식은땀을 흘리고 몸이 처지면서 의식 소실 증세가 나타나 119를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5시 20분경 사망했다. 또 B 씨는 29일 오전 9시 50분경 밭일을 하다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온열 질환 감시 체계’가 가동되기 시작한 5월 24일∼7월 28일 총 352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특히 26∼28일에 74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등 최근의 폭염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가장 많은 온열 질환자가 발생한 공간은 야외 작업장(108명·36.4%)과 논밭(69명·19.6%)이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78명(22.1%)으로 가장 많았고, 40대(58명·16.5%)와 60대(57명·16.2%)가 뒤를 이었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경남 합천 37.3도, 경주 37.1도, 대구 37도 등까지 치솟았다. 질병관리본부는 △낮 12시∼오후 5시에 외출 자제 △물 자주 마시기 △외출할 때 양산과 모자 챙기기 △헐렁하고 밝은 색깔 옷 입기 등이 온열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31일에도 전국에 찜통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밤에도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열대야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태평양 고기압을 따라 남서쪽에서 무더운 공기가 들어오는 데다 낮에 일사에 의해 기온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부와 남부 36개 시군에 내려진 폭염경보 및 폭염주의보가 대부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 울산 전남(구례, 광양) 경남 경북 등지에는 폭염경보가, 강원도와 부산 광주 제주도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아침 최저기온은 22∼28도, 낮 최고기온은 대구 36도, 홍성 34도, 대전 세종 천안이 33도 등으로 전날과 비슷하거나 높겠다. 강원 영서 북부에는 31일 낮 한때 소나기(강수확률 60%)가 내리고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가 치는 곳이 있겠다. 이세형 turtle@donga.com·이정은 기자}

제12호 태풍 ‘할롤라’가 한반도를 향해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26일 제주도 해상을 거쳐 27일에는 부산 앞바다까지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할롤라는 당초 태평양 중앙에서 만들어진 허리케인이 날짜변경선을 넘어 북서쪽으로 넘어오면서 강한 태풍으로 전환된 것. 1997년 허리케인 ‘올리와’ 이후 18년 만에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허리케인이다. 24일 기상청에 따르면 할롤라는 최대풍속 초속 37m(오후 3시 기준)의 강한 소형급 태풍으로 발전해 일본 오키나와 동남쪽 바다를 지나고 있다. 북서쪽으로 계속 이동해 26일 오후 3시에는 제주 서귀포 동남쪽 150km 부근 해상을 지나고, 27일 오전 3시에는 부산 남서쪽 약 30km 해상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25일 밤부터 27일 오전까지는 제주와 영남지방에 강한 바람이 불고, 동해와 남해에는 많은 비와 높은 파도가 예상된다. 기상청은 25일 새벽부터 강원 대부분 지역과 경기 포천, 연천, 동두천 일대에 호우 예비특보를, 최대 파고가 5m로 높게 예상되는 제주 남쪽 먼바다에는 같은 날 오후를 기해 풍랑 예비특보를 발표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계속되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24일 전국은 흐린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남부지방은 밤에 대부분 그치겠지만 중부는 다음 날까지도 비가 오겠다. 서울, 경기와 강원, 충청 등 중부지방 대부분 지역에 새벽부터 호우예비특보가 내려진 상태다. 일부 지역은 시간당 30mm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바다의 물결은 제주 남쪽 및 동해 먼바다에서 1.5∼3.0m로 점차 높게 일겠다. 기상청은 “오후부터 제주와 남해안 일대에는 너울로 인해 높은 파도가 방파제나 해안도로를 넘는 곳이 있겠으니 시설물 관리와 안전사고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서북서진 중이던 제12호 태풍 할롤라는 예상보다 더 서쪽으로 움직이며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26일쯤 제주 서귀포 동남동쪽 약 130km 부근 해상까지 올라와 제주도와 남해 지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기상청은 보고 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장마전선이 북상하는 가운데 23일 일부 지역에서는 돌풍과 천둥, 번개가 예상된다. 전국이 흐린 가운데 비(60∼90%)가 오겠고 천둥, 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20mm 내외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도 있겠다. 예상 강수량은 서울 및 인천 등이 30∼80mm,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의 경우 120mm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앞서 비가 시작된 제주도는 오후부터 점차 그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이번 비는 지역에 따라 강수량의 차이가 클 것”이라며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곳이 있겠으니 앞으로 발표되는 기상정보를 참고하면서 피해가 없도록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침 최저기온은 서울 24도, 인천 23도, 대전 24도 등 전체적으로 20∼24도 수준이며 낮 최고기온은 서울 29도, 대구 29도, 제주 30도로 전날과 비슷하다. 바다의 물결은 제주도 전해상과 남해 서부 동쪽 먼바다에서 1.5∼3.0m로 높게 일 것으로 보인다. 중형으로 몸집이 불어난 제12호 태풍 할롤라는 22일 오후 3시 현재 일본 오키나와 남동쪽 약 1120km 부근 해상에서 북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강한 태풍으로 발전하며 26일경에는 일본 규슈 지역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남해와 영남, 동해안 일부 지역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김용진 기상사무관은 “태풍의 경로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남해상에서 북상하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20일 전국은 대체로 흐리고 비가 오겠다. 낮부터 서울·경기와 남해안에서 시작되는 비(강수확률 60~80%)는 늦은 오후 대부분의 지방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예상 강수량은 전국 평균 5~10㎜, 경남과 경북해안, 전북 등지에서는 최대 30㎜ 정도다. 아침 최저기온은 19~24도, 낮 최고기온은 23~30도로 전날과 비슷하겠다. 바다의 물결은 제주 앞바다에서 1.5~3.0㎜, 그 밖의 해상에서는 0.5~2.5㎜로 일겠다. 기상청은 “기압골의 영향으로 인한 비는 21일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대구와 경북, 광주에서는 아침에 짙은 안개가 끼는 곳도 있겠으니 교통안전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괌 부근에서 일본 쪽으로 움직이던 제12호 태풍 할롤라는 18일 밤 열대저압부로 약화된 뒤 소멸됐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 어린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든 결국 자라서 통일된 한국을 이끌 차세대 일꾼들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지난달 영국의 한인타운 뉴몰든에서 만난 윤명숙 조선아카데미 원장(사진)은 이 지역에서 ‘탈북가정 어린이의 대모(代母)’로 통한다. 그가 운영하는 조선아카데미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30여 명. 이 중 80% 이상이 탈북가정의 아이들이다. 조선아카데미는 시내 뉴몰든센터의 교실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방과후 수업’ 형식으로 2시간씩 열린다. 7명의 자원봉사자 교사들이 수학과 한글을 가르친다. 2010년 아카데미를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는데 올해부터 한글로 바꿨다. 그 이유에 대해 윤 원장은 “탈북가정의 어린이들은 여느 교포 2세와 마찬가지로 영어가 모국어 수준”이라며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국의 문화와 한국어”라고 설명했다.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20여 년 전 영국에 정착한 윤 원장은 2009년경 “영국에서는 한인들이 북한에 관심이 없다”는 한 교회 목사의 얘기를 우연히 듣고 조선아카데미 건립을 구상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느꼈던 사명감과 열정이 다시 끓어올랐다고 했다. 윤 원장은 새벽기도를 함께 다니던 주부 3명과 뜻을 모았다. 교회 앞 주차장에서 ‘북한어린이 돕기 바자회’부터 시작했다. NKCR(North Korean Children Relief)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어 후원금 모금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저금통도 돌렸다. 지금은 영국 정부에 등록된 정식 자선단체가 됐다. NKCR가 운영하는 조선아카데미는 탈북가정의 어린이들이 감기로 열이 펄펄 끓어도 “아카데미에 가겠다”고 할 만큼 인기가 높다. 처음에는 “정치적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냉소적이던 뉴몰든의 탈북자 부모들도 이제는 후원금을 내고 있다. 윤 원장은 이 후원금의 일부를 연변과학기술대를 통해 북한으로 보내 평양이나 혜주 지역 등의 탁아소를 지원한다.뉴몰든=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사람들이 다 안 착해요. 그 사람들이 엄마한테 토마토를 막 던졌어요. 거짓말을 한다고 막 이렇게 banana and tomatoes(바나나랑 토마토를)…. 그래서 학교를 못 다녔어요.” 영국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소도시 뉴몰든. 지난달 이곳에서 만난 강지애(가명·8) 양은 “왜 영국에 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며 빈주먹으로 뭔가 던지는 시늉을 했다. 한국말은 했지만 혀끝이 꼬부라지는 교포 2세의 발음이었다. 영어 단어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엄마가 왜 바나나랑 토마토를 맞았어”라고 묻자 “내가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안 되는데, 다녀서요”라며 묻지도 않은 중국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어요. 핑크카드(출생지 등 신상정보가 적힌 서류)에서 봤어요. 내 이름, 그리고 날짜. 엄마가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 중국 학교에 갔어요. 이렇게 똥머리(위로 올려 묶는 경단머리)를 하고 있는 중국 애들이랑 같이…. 중국 사람들은 다 똥머리를 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지애 엄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가 언제 중국에서 태어났니….” 기자의 눈치를 보면서 지애 엄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지애 엄마가 중국을 거쳐 탈북한 것은 2000년대 초.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뒤 낳은 지애는 중국에 가본 적이 없다. 영국에서 난민 심사를 받기 위해 ‘엄마가 외우게 한 내용’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지애네 가족은 2009년 영국에 왔을 때 북한에서 탈출해 곧바로 유럽으로 왔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정부의 합동심문을 거쳐 주민등록증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은 숨겼다. 그래야 북한 난민으로 인정받아 영국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 없는 자신의 과거를 수없이 반복해 외우면서 지애는 실제로 그 생각을 믿고 있는 듯했다. 민망한 표정을 짓는 엄마에게 “No, I remember(아니야, 내가 기억한다고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만들어진 과거 속에 잊혀지는 한국 뉴몰든에 사는 또 다른 탈북 부모의 자녀 신현지(가명·10) 양에게도 ‘만들어진 기억’이 있다. 아빠에 대한 얘기다. “아빠는 여기 영국에서 무얼 하시니”라는 질문에 현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기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어깨를 움츠리더니 “아빠는 여기에 없어요. 좀 오래됐어요”라고 말했다. 현지 아빠는 영국에 없다. 한국에서 혼자 통닭집을 한다. 현지는 2006년 엄마, 남동생과 함께 이곳에서 난민 심사를 받았다. 엄마가 미혼모이거나 싱글맘 난민이면 양육비가 제공된다. 현지 엄마(37)는 “남편이 뒤늦게 영국에 따라오려고 했는데 영국 정부의 난민심사가 엄격해지면서 올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끊겨 버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떨어져 산 지 7년째. 현지 엄마는 그런 상황에 어느덧 익숙해진 듯했다. “뭐 어째요.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내년에 시민권을 신청해서 받으면 그때 남편을 초청할까 생각 중이에요.” 뉴몰든은 현재 600여 명의 탈북자들이 모여 사는 유럽 최대의 ‘탈북자 마을(North Korea Town)’로 불린다. 난민 인정과 지원에 적극적인 영국 정부가 탈북자를 대거 받아들이면서 한때 ‘탈북자 주민’이 15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낯선 외국에서의 적응 실패와 언어 장벽 등으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속출했지만 아직도 이곳으로 오려는 탈북자들의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일단 영국 땅에 들어가 난민 신청만 하면 심사가 진행 중인 기간에도 숙소와 생활비를 제공받을 수 있고, 어린이의 경우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된다. 이후 난민으로 받아들여지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고 집세를 포함해 월 3000파운드(약 520만 원) 안팎의 생활비와 각종 지원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런 혜택을 누리려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난민에 맞는 ‘과거’를 만들어야 한다. 현지 엄마는 “(난민 심사 때) ‘아이들을 탈북 이후 중국에서 낳았다’고 말해야 하니까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다”며 “잘못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말”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말실수를 하거나 밖에 나가서 순진하게 재잘거리다가 들통이 날까 봐 수시로 내가 질문을 던지고 그 거짓말 답변을 외워서 말하도록 훈련시켰어요.” 현지는 그 거짓말이 자신의 과거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북한, 잘 모르는데요. 무섭고 싫어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 아이들은 북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북한이 어딘지 아느냐”는 질문에 최준 군(10)은 눈을 빛내며 “알아요”라고 큰소리쳤다. “음, 사람들이 집도 많이 없고 돈도 없고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어요. 땅에서 죽어요. 뭘 사면 나쁜 사람들이 빼앗아 갈 수 있어요. 아파도 약 없어요. 우리 아빠 군인이었는데 아빠 친구들 5명이 다 죽었어요. 아빠도 다 죽었다가 살아났대요.”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이 짧은 문장으로 끊기듯 이어졌다. 꼬이는 발음에 잘 안 되는 모국어가 답답했는지 준이는 한국어를 쓰다가도 자주 영어로 돌아갔다. 준이는 “엄마가 북한에 대해 말하면 police(경찰서)에 간다고, 북한에 끌려간다고, 그러니까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말 안 했어요”라고 했다. 준이의 19세 이복누나는 아직 북한에 살고 있다. 삼촌, 할머니도 북한에 살고 있다고 했다. 뉴몰든의 한 한국 상점에서 일하는 아빠는 최근까지도 번 돈의 일부를 북한에 보냈다. 아빠는 늘 준이에게 “더 크면 북한에 가서 네 누나를 찾아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내 조국은 어디…” 우리 새싹들이 뿌리 없이 자란다 ▼얼굴도 모르는 이복누나 이야기를 하면서 준이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빠는 탈북한 뒤 재혼해 준이를 낳았다. “난 크면 (북한에) 갈 거예요. 누나한테 집도 주고 먹을 것도 줘야 해요. 빨리 가야 해요. 안 그러면 죽으니까. 우리는 먹을 것도 있고 햄버거랑 물이랑 다 있으니까. 누가 나 죽이려고 하면 칼 갖고 가고 총도 갖고 가요. 나쁜 놈들이 총 갖고 있어요.” 준이는 엄마가 보여주는 DVD와 TV 방송을 통해 북한을 알게 됐다. 북한의 실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물론이고 부자(父子)의 눈물겨운 탈북 과정을 담은 영화도 봤다. 준이는 또래의 꽃제비들이 장마당에서 시커먼 검댕이 묻은 얼굴로 구걸하는 장면도 봤다. 준이 엄마(39)는 “아이들에게 북한을 숨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며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교육이고 애들이 자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탈북자 가정이 모두 준이 엄마처럼 교육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뉴몰든 탈북 부모의 대부분은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탈북자 몇 명은 동아일보의 인터뷰 요청을 강하게 거부했다. 북한에 대해 준이만큼 아는 아이가 많지 않은 건 당연했다. 인터뷰에 응한 10여 명의 어린이 중 통일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북한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몰랐다. 지애는 “(북한에) 절대 가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거기는 대왕이 다 jail(감옥)에 보내고 사람들을 죽여요. 교회에서 전도사님이 불쌍한 북한 사람들을 위해 다 같이 기도하자고 했어요….” 김은지 양(9)은 엄마의 과거 삶에 대해 일곱 살 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의 생활에 대해 적어 가는 숙제를 받아 온 날 엄마는 딱 한 번 입을 열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후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해 주지 않았다. “엄마는 13세 때 가족들이랑 흩어져서 잘못 살았어요. 중국에서 경찰에 잡혔고 잘 먹지도 못하고 감옥에도 갔대요. 외할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는데… 큰 강이 있었대요. 이렇게 열린 강이 있었는데 거기로 건넜대요. 아빠는 태국에서 만났대요.” 은지는 “많이 놀랐어요. 슬펐어요. 싫어요. 거기는…”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은지 엄마(29)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탈북했다가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중국에서 고아로 떠돌았던 그 상처를 내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아이들에게 북한은 무섭고 싫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한국을 ‘내 나라’로 느끼지도 않았다. 난민 심사를 위해 한국에서의 모든 기억을 지웠고 그 후에도 ‘한국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 보고 싶다”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영국 영주권을 가진 이 아이들은 시민권이 나올 때까진 법률적으로 엄연한 북한 국적의 북한 난민이다.○ “아이들 미래 위해 대한민국이란 뿌리 버렸다” 아이들의 정체성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 뿌리는 한국’이란 인식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김주일 재유럽조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탈북자 부모가 아이들에게 탈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뿌리가 어디인지, 북한은 어떤 곳인지,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안 가르친다”며 “정체성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정체성 문제는 성인인 탈북 부모들도 겪는다. 뉴몰든의 한인 교포들은 “탈북자들은 뭔가 우리와 다르다”고 말한다. 북한에서의 어두운 기억, 북한식 말투, 이질적인 사고방식 등 때문에 한국 출신의 교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면서 영국 사회에도 섞여들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행자와 출장자들을 상대로 민박집을 운영하는 한 교포는 “우리는 돈 벌어서 세금과 집값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데 탈북자들은 이곳 대졸 초봉의 2배가 넘는 생활비와 집을 그냥 제공받는다”며 “뉴몰든에서 제일 부자는 탈북자들”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버버리 같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탈북자로 보면 된다”고도 했다. 탈북자들을 상대로 목회를 하는 런던새마음교회의 강도준 목사는 “생활비를 비롯한 각종 지원금이 안정적으로 나오다 보니 일자리를 얻지 않고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도 생기고, 낯선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도박에 빠지는 등 탈선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걱정했다. 이런 시선에 대해 뉴몰든의 탈북자들은 “그래도 영국에서의 삶은 한국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한에서 경험한 차별과 편견, 은근한 따돌림 같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현지 엄마는 “오로지 애들 때문에 왔다”고 했다. “한국에서 공부시킬 자신이 없었어요.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 많고 비싼 학원들을 다 어떻게 보내요. 한국은 이제 겨우 우리 둘째(6세)만 한 애들이 서로 ‘너 몇 평 아파트에 사니, 방은 따로 있니’ 그런 것들을 묻고…. 그 차별의 시선은 또 어쩌나요. 애들한테까지 상처를 줄 수는 없었어요.” 최연제 양(6)과 재룡 군(5)의 엄마(함경북도 회령 출신)도 같은 이유로 연제가 생후 2개월이었을 때 무작정 영국행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이미 힘든 것 다 겪으며 살았고 고향을 떠나 봤으니 낯선 나라에서 또다시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한국에서 애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애들 키우기가 정말 무서웠어요.”뉴몰든(영국)=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은 싫어요. 무서워요. 나중에 커서도 절대로 안 갈 거예요….” 영국 뉴몰든 지역에 사는 신현지(가명·10) 양을 비롯해 이 지역에 정착한 탈북자 부모의 자녀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탈북한 후 한국 국적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영국에서 난민 신청을 한 부모들이 아이들의 머리에 주입한 가짜 기억이다. 만들어진 기억 속 북한은 그저 끔찍하다. 북한의 실상을 직접 경험한 탈북 청소년들에게도 그 기억은 지우고 싶은 어두운 과거다.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조은혜 씨(23·여)는 아버지가 북한에서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신 후 영양실조로 신음하는 4세 남동생을 남겨 놓고 두만강을 건너야 했다. 참혹한 북한의 실상이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아이들도 있다. 북-중 접경지역의 꽃제비들은 여전히 굶주림과 공안당국의 단속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북한 어린이들은 통일된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어갈 차세대 주역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북한 내의 대표적인 취약계층으로 영양 부족과 이로 인한 발달장애, 교육 기회 박탈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엄마 아빠를 따라 북한을 탈출한 뒤에도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제3국으로 떠나거나 제3국에서 떠돌며 낯선 환경과 마주해야 한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들 같은 ‘제3국의 북녘 어린이’에게도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럽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단체인 재유럽조선총연합회의 김주일 사무총장은 “통일한국에서 활약할 미래 인재를 만들려면 기본적인 영양과 교육 지원은 물론이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교육부터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이 되레 반통일 세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갖고 있지 않다. 동아일보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탈북 고아들이 모여드는 북-중 접경지대와 유럽에서 가장 많은 탈북자들이 정착한 영국, 탈북아동입양법을 통과시킨 미국을 현지 취재했다. 이번 기획은 동아일보가 지난해 5월 ‘굶주리는 북녘’과 10월 ‘북녘의 숨겨진 굶주림’에 이은 북한 어린이 관련 3부 시리즈이기도 하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했다.뉴몰든(영국)=이정은 lightee@donga.com버지니아(미국)=김정안 / 투먼(중국)=이샘물 기자}

“한마디라도 정보를 유출하는 사람은 잘라 버리겠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사진)이 최근 전 직원을 상대로 함구령을 내렸다.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으로 요동치는 북한 권부(權府) 관련 정보가 타깃이 됐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거론되고, 국회 차원의 국정원 개혁 논의까지 진행 중인 민감한 상황에서 철저한 ‘입단속’을 주문한 것이다. 국정원이 최근 장성택 측근들의 망명설 등에 대해 확인을 거부하고 침묵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기자들과 접촉하는 대변인실 관계자들조차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24일 “북한 관련 정보는 이를 다루는 소수의 담당자만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 대부분은 전혀 내용을 모른다”고도 했다. 국정원은 언론의 확인 요청에 대한 설명이 또 다른 해석을 낳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 관련 정보의 출처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는 후문이다. 국정원이 장성택의 측근인 장수길, 이용하의 처형 사실을 파악한 것이 대북 감청이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북한에서는 통신 보안 강화 지시가 내려진 상태다. 국회의 국정원 개혁 논의도 중요한 변수다. 국정원 개혁특위가 조만간 개혁안을 내놔야 하는 시점에 국정원의 움직임이 자칫 정치적으로 해석될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권력층 내부 움직임과 관련된 각종 억측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정원에서도 알고 있다”거나 “국정원 관계자가 확인했다”는 식의 설명이 따라붙는 경우도 있다. 설익은 얘기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번지자 정부는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었다. 회의 직후 통일부 김의도 대변인은 “북한 고위 인사의 망명설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남 원장도 23일 국회 정보위에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낭설이다”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정보기관이 앞에서는 부인하고 뒤에서 흘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내놓고 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망명설을 지속적으로 흘려 북한 내부를 자극하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국정원을 제외하면 북한과 관련된 각종 정보가 나오는 주요 창구는 이른바 대북 소식통들이다. 북한에 직접 들어갈 수 없고 언론의 현장 취재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휴민트(사람을 통한 정보 습득)와 시진트(감청 등을 통한 신호 분석) 등을 활용하는 정부의 정보기관을 제외하면 소식통들에게 북한 정보를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북 소식통들의 정보는 북한 인사들과의 접촉에서 나온다. 탈북자 출신의 북한 관련 비정부기구(NGO)나 매체 관계자를 비롯해 △과거 북측과 사업을 함께 했거나 북한에서 사업했던 경협 전문가 △북-중 접경지대 등에 거주하는 활동가와 선교사 등이 그들이다. 북한 내부와 통화하는 탈북자들의 경우 대부분이 양강도나 함경북도 등 평양과는 멀리 떨어진 지역의 주민들과 통화하는 것이어서 북한 지도부 내부의 사정을 알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북 경협 사업자의 경우 외자 유치와 굵직한 합작 사업 등 장성택이나 북한 지도부가 직접 관심을 갖고 챙기는 현안의 담당자들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더 높은 편이다. 접경지역이나 이권 사업 관련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됐다거나 사업이 중단됐다는 등의 정보는 이들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아버지인 김정일의 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기념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이날 참배에는 군의 신진 고위 간부들이 대거 동행해 17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2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드러난 군의 세대 교체 흐름을 다시 확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이 금수산태양궁전 내 영생홀에 안치된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에 참배하고 훈장보존실과 유품 보존실 등을 둘러봤다고 전했다.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과 이영길 군 총참모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이 동행했다.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김수길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염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등도 함께 참배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조선중앙TV 등에는 조경철 보위사령관, 박정천 포병사령관, 이병철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의 얼굴도 보였다. 노동신문은 이들의 사진을 내보내면서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이 함께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인민군 지휘성원은 총정치국과 총참모부, 인민무력부 등 군 지휘권 및 인사권 등을 갖고 있는 고위 간부를 뜻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해 참배에 동행했던 현영철 당시 총참모장, 김격식 당시 인민무력부장 같은 군 원로들은 나오지 않았다”며 “김정은이 지속적으로 군 인사를 단행해 고위 인사들을 대폭 교체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고모이자 전격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 당 비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했다. 김경희는 17일의 중앙추모대회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부 관계자는 “24일 참배의 경우 최고사령관 추대와 관련된 군 행사이기 때문에 김경희의 불참 자체가 이례적인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인생에 목숨은 초로(草露)와 같고/이씨조선 오백년 양양하도다/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이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사진)은 21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국정원 간부들과 송년회를 하면서 이 노래를 다함께 여러 차례 불렀다고 한다. 국정원 내에서 이 노래의 제목은 ‘독립군가’로 알려져 있다. 한 정부 소식통은 “중국 당대(唐代)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가 조선시대에 개사됐는데 나중에 곡(曲)을 붙여 일제강점 전에는 대한제국의 군가로, 강점 후에는 독립군가로 불렸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6·25전쟁 때도 ‘이씨조선 오백년’을 ‘조국의 앞날은’으로 바꿔 전장에서 군가로 불렸다”고 덧붙였다. 이 노래가 남 원장의 대표적 애창곡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정원 간부들도 따라서 즐겨 부르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남 원장이 주재한 간부 송년회는 한 해의 회포를 푸는 모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결의대회 같은 비장한 분위기였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했다. 한 관계자는 “북한 장성택의 전격 처형 이후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 증대 등 남북관계의 긴장도 높아지는 만큼 송년회도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남북통일에 대한 기여’를 다짐하는 자리가 됐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특히 독립군가 중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이다’는 대목을 부를 때면 참석자 모두가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 결연한 표정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부 안팎에서는 “송년회조차도 ‘남재준 스타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 원장은 취임할 때 “나는 전사(戰士)가 될 각오가 돼 있다. 여러분도 전사가 될 각오를 다져 달라”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내부 행사 중 일부 간부가 애국가를 작은 목소리로 우물우물 부르자 마이크를 잡고 “애국가부터 크게 부르라”고 질책한 적도 있다. 21일 송년회도 남 원장과 참석 간부들이 전원 기립해서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큰소리로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한다.이정은 lightee@donga.com·부형권 기자}

중국 지도부는 북한이 친중파로 분류되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아무런 상의 없이 즉결 처형한 것을 ‘중국에 대한 무시이자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강력히 희망해온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중국 방문은 상당 기간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중, 북에 분노와 배신감” 중국의 한 고위 관리는 “새파란(새파랗게 어린) 김정은이 중국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친중파인 장성택을 숙청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최근 외교라인을 통해 중국 측과 접촉한 정부 고위당국자가 20일 전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중국 고위관리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과의 교감을 유지하면서 큰 문제를 처리했다”며 “(이런 과정이 무시된 장성택 처형은) 중국에 대한 무시이자 도전”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또 “(주중 북한대사인) 지재룡도 소환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 김정은은 중국을 방문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지도부 인사들과 교류해온 당국자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김정은을 ‘통제가 되지 않고 제멋대로인 지도자’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중국 측 인사들은 장성택의 처형을 지켜본 이후 “김정은이 1인 독재체제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공포정치의 희생양을 만들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특히 핵실험에 반대해온 장성택의 처형 이후 김정은의 4차 핵실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정은에 대한 중국의 불신은 김정일 사망 이후 2년간 누적돼 왔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중국으로부터 20만 t의 긴급 식량지원을 받고도 아무런 감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북한을 보고 중국 당국자들이 아연실색했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돈만 뜯는 北” 불만 누적 중국의 사업가들이 북한에서 잇따라 투자 피해를 보고 있는 점도 지도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A사는 5월 주중 북한대사관의 중개로 북한 무역회사와 철광석 거래계약을 체결하고 50만 위안(약 8660만 원)을 선불로 지급했으나 아직까지 약속한 물품을 받지 못하고 있다. 7월에는 중국의 무역업체인 B사가 화물대금 60만 달러(약 6억3200만 원)를 받지 못해 소송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당국에 보고되기도 했다. 최근 나선지역을 다녀온 한 중국 기업인은 “북한의 보위부나 보안부의 공안기관원들이 무역허가증과 초청장 발급 등을 빌미로 중국 상인들에게 뒷돈을 요구하고 있다”며 “벌금을 억지로 물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는 경우도 많아 이를 못 견디고 사업을 접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베이징=고기정 특파원}

이브라힘 차낙즈 터키 재무차관(왼쪽에서 두 번째)을 비롯한 주요 20개국(G20) 국제 금융기구 대표단이 19일 개성공단을 방문해 입주기업인 삼덕스타필드의 신발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G20 서울 콘퍼런스에 참석한 이들 대표단은 북한의 장성택 처형 사태 뒤 찾은 개성공단에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통일부 제공}

지난해 한미 정보당국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이복형인 김정남(사진)의 망명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19일 “양국은 김정남을 미국으로 망명시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촉진하는 구상을 협의한 바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처형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남의 후견인을 자처했다는 점에서 한미 당국 차원의 김정남 망명 추진이 장성택의 처형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인지 주목된다. 양국이 협의한 시점은 이명박 정부 말기인 지난해 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미는 협의 결과 망명 추진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김정남의 망명 결심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임시정부의 가동 여부를 낙관하기 어려운 등 불확실성이 너무 높다는 점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김정남 망명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계산도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외교안보부처 고위당국자는 “김정남은 지금처럼 해외에 체류하도록 두고 자유롭게 북한 체제의 불합리성에 대해 말하도록 하는 게 전략적으로도 낫다”고 말했다. 한국 주도로 망명을 시도했을 때 생길 파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김정남을 망명시킬 경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 때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충격파가 북한에 전해질 것”이라며 “북한과 전쟁하자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국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자유롭게 활동하던 김정남은 장성택 숙청 사태 이후 칩거하고 있다. 아들 김한솔이 파리에서 프랑스 경찰의 밀착경호를 받는 점에 비춰 김정남도 중국 정부로부터 유사한 보호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이복형 부자(父子)에 대한 인식을 바꿀 경우 언제라도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정권을 공식적으로 물려받기 전인 2009년 4월 평양의 김정남 파티장인 ‘우암각’을 습격해 측근조직을 와해시킨 바 있다. 한편 북한이 장성택을 숙청한 1차적인 계기는 수산물사업의 이권을 둘러싼 ‘장성택 라인’과 군부 간 충돌 때문이었다는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돈 문제를 둘러싼 양측 실무진의 갈등이 상부의 권력투쟁으로 이어지면서 핵심 실세의 처형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19일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인민무력부 소속의 군 인사들은 그동안 행정부가 운영해온 승리무역의 수산물사업권을 인수하려고 시도하다 행정부 실무진과 몇 차례 갈등을 빚었다. 인민무력부는 11월 초 평안남도 남포의 수산물기지 사업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 인사들을 현지에 보냈고, 이에 저항하는 승리무역 관계자들과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군인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김정은에게 보고되면서 승리무역의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의 측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처형된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특히 문제의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승리무역 관계자들이 “우리는 장성택 행정부장의 명령이 아니면 안 듣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군부 인사들이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나왔다’고 했는데도 현장에서 ‘최고사령관이 누구냐. 그 따위는 모른다’고 이야기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승리무역의 수산물기지는 김정은이 직접 현지지도를 하기도 했던 곳”이라며 “그런 사업장에서 장성택을 앞세워 상부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군부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은 현재 장성택 라인 인사들에 대한 추가 숙청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장수길과 이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 밑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이미 처형된 사람이 5명 정도는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 중국으로 망명한 장성택 측근이 70명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통일부 김의도 대변인은 이날 “국내 일부 언론의 북한 간부 중국 망명설과 관련해 ‘사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재확인한다”고 밝혔다.조숭호 shcho@donga.com·김정안 기자}
북한이 김영재 주러시아 북한대사와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등 최근 처형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고위급 외교관들을 감시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을 현지에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대사와 지 대사는 북한과의 경협 및 북핵문제 관련 협상에 관여해온 주요국 대사여서 이들이 소환될 경우 관련 협상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18일 “김영재 대사가 평양에서 나온 보위부 요원과 경호원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감시당하고 있다”며 “현재 수행하는 대외활동들은 보이지 않는 통제하에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지재룡 대사의 주변에 감시자들이 달라붙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외교활동을 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소환될 것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장성택 라인’으로 분류되는 북한의 고위인사들은 17일 김정일 2주기 중앙추모대회에 대부분 얼굴을 내밀어 “숙청의 칼날을 일단 피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의 등장이 숙청의 숨고르기 차원에서 연출한 일종의 쇼일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 대사와 지 대사는 노동당 중앙위 후보위원이며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북한 지도부 내에서는 탄탄한 입지를 유지해왔다. 6자회담 당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논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온 인사들이다. 김 대사는 최근 한국이 참여하기로 한 북한 나진∼러시아 하산 철도 이용 물류 프로젝트 관련 협상에도 관여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17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주기 중앙추모대회가 열린 평양체육관. 조선중앙TV의 화면에 잡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가르마를 탄 머리 한쪽은 살짝 흐트러져 있었고 초점 없는 눈에는 피로감이 엿보였다. 화면을 지켜보던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며칠 사이에 얼굴빛이 왜 저렇게 거무스름해졌느냐”는 말이 나왔다. 아들이 아버지를 추모하는 엄숙한 자리임을 감안해도 그의 표정은 너무 굳어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마치 전날 늦게까지 과음(過飮)한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며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1주기 행사 때 깔끔하고 근엄한 모습을 연출한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12일) 이후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에 연일 보도됐던 그의 함박웃음 얼굴 사진과도 극명하게 대조됐다. 김정은은 고모부인 장성택의 처형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듯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공개 활동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보도사진과는 달리 실황 중계된 추모행사에서는 그의 심리와 감정이 그대로 민낯에 드러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무표정함 자체가 추모대회임을 의식한 연출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김정은이 행사 도중 삐딱하게 앉는 자세를 보인 것에 대해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최고 권력자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 태도는 오로지 김정은 1명만이 취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이날 “과연 김정은이 북한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외형적으로는 1인 영도체계를 공고화한 것 같지만 그 실정에 대해서는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이 적지 않다. 토마스 셰퍼 주북한 독일대사가 최근 “김정은이 군부에 떠밀려 장성택을 숙청했다. 군부 강경파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주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1차적으로는 장성택의 처형이 김정은의 권력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측근의 ‘국가전복음모’ 시나리오가 일단 현실화된 만큼 부하들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각계에 포진해 있는 장성택 라인을 뿌리째 뽑아내는 이른바 ‘여독청산(餘毒淸算)’은 만만치 않은 김정은의 과제다. 외로운 선택의 순간에 믿을 사람은 ‘백두혈통’의 가족뿐이지만 친형인 김정철과 여동생 김여정 등은 견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이다. 실질적인 집권 3년차인 내년에는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성과를 내놔야 하는 압박감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공고화를 놓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며 “향후 상황이 악화되면 김정은의 호전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이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군과 정보당국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커트 캠벨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1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김정은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과거 그의 스위스 유학시절 친구들까지 모두 수소문했다”며 “그 결과 그는 10대 시절부터 예측 불가능하고 폭력적이며 과대망상적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근거로 “겉으로 보이는 김정은의 불안정한 독재자적 면모가 단지 퍼포먼스가 아니라 본래 성격인 것이 확실하다”고 분석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과거의 충격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동시에 아른거린 행사였다. 겉으로는 견고하고 웅장했지만 최고지도자의 최측근 처형이 가져온 충격의 여파를 미처 감추지는 못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2주기인 17일 오전 평양체육관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중앙추모대회를 열었다.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정은과 이설주 부부가 함께 참석한 참배행사도 진행했다. 조선중앙TV가 실황 중계한 이날 중앙추모대회의 주석단에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이영길 군 총참모장 등이 중앙에 자리 잡아 핵심 실세임을 확인했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떠오르는 파워엘리트들도 도열했다. 노두철 내각부총리와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등 최근 전격 처형당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측근들도 거의 대부분 주석단에 등장해 일단 숙청의 칼날을 피해 갔음을 보여줬다. 다만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는 이날 행사들에 모두 참석하지 않아 배경에 의문을 낳았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결의연설에서 “어떤 평지풍파 속에서도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결사보위하겠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또 “우리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압살하려는 날강도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의 책동이 극히 무모한 단계에서 감행되고 있다”며 “침략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부 원로인 김격식 전 인민무력부장과 김정각 김일성군사종합대 총장, 이명수 전 인민보안부장 등은 작년과 달리 이번 행사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정은 집권 이후 군단장급 인사의 44%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사라진 인물들의 퇴장이 다시 확인된 자리였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주석단의 인물 면면을 예상만큼 많이 교체하지는 않았다. 장성택 처형 직후 지도부 내부의 동요를 의식한 ‘숨고르기’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날 행사가 김정은 집권 3년차에 들어서는 북한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신호들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 갓 서른인 김정은의 ‘홀로서기’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그의 핏줄이자 유일한 후견인으로 남은 김경희가 모든 행사에 불참한 점, 주석단에 예상만큼의 신(新)파워엘리트 그룹이 등장하지 않은 점 등이 대표적인 근거로 거론된다. 북한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읽은 추모사에서 장거리로켓 발사의 성공 등을 과시했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별다른 성과나 업적도 제시하지 못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곧 체제 정당성의 위기가 올 것”이라며 “북한의 앞날이 결코 밝지 않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17일로 집권 3년차에 들어선다. 2년 전 12월 17일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의 ‘홀로서기’가 시작된 날. 20대 최고지도자는 이후 당·정·군 핵심인사들의 지속적인 교체와 우상화 작업 등을 통해 1인 지배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집중해왔다. 집권 3년차의 문턱에서 후견자 역할을 해오던 고모부 장성택까지 제거해버린 김정은 앞에는 밤잠을 설치게 할 난제들이 쌓여 있다. 그의 머리를 싸매게 만들 ‘5대 고민’을 짚어본다. 》 ① ‘장성택 일당’들의 숙청 어디까지 할까 탈북자 출신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체제 특성상 국가전복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돼 있는 ‘장성택 라인’들은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김정은이 불안해서 못 살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란을 모의했다는 장성택의 측근들이 남아있는 한 언제든지 쿠데타를 일으킬 소지가 남아있다는 게 지도부의 인식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고강도 숙청을 계속할 경우 역풍이 불고 반발수위가 통제범위를 넘어설 위험도 있다. 더구나 오랫동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장성택의 주변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달라붙었기 때문에 숙청 대상과 범위를 특정하기도 어렵다. 장성택의 측근들은 일단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의 장의위원 명단에 대부분 이름을 올렸지만 김정은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지켜봐야 할 제1 관전포인트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겉으로는 자애롭고 온화한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시간을 두고 비공개 숙청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② 내부 동요 어떻게 무마할까 숙청의 범위를 좁힌다고 하더라도 고모부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으로 내부는 이미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 등을 통해 북한 내의 이미 정보흐름이 과거보다 훨씬 빨라진 만큼 민심을 효과적으로 다독이지 못할 경우 급변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북한 매체들이 연일 사상교육과 함께 김정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연출된 이미지와 강요된 메시지가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이 간부나 주민들에게 선심을 쓰는 ‘선물정치’를 통해 충성을 유도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③ 4차 핵실험 할까 말까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쯤 김정은이 다시 ‘핵 카드’를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4차 핵실험은 냉랭해져 있는 미국의 관심을 다시 끌어오고 우라늄탄의 성능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내부 결속을 위해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반면 중국의 강한 반발로 북-중 관계가 악화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및 고립 심화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부담이다. 언제 어떤 계기로 핵실험 버튼을 누르게 될지는 김정은에게도 결정에 많은 고민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4차 핵실험은 후폭풍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섣불리 시도하기 어렵고, 지금 그런 도발 카드가 절실한 상황도 아니다”며 “도발을 하게 되더라도 국지 군사 도발 같은 저강도 수준에서 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④ 외국자본 어디서 끌어오나 김정은이 제시한 ‘핵과 경제 병진노선’의 성과를 보여주려면 외자유치가 핵심이다. 김정은은 기존에 추진해온 특구 외에도 북한 전역에 13개 개발구 개발을 지시했다. 그러나 북한 내의 사업 안정성과 신뢰도가 바닥인 상태에서 외자를 끌어올 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 한국이 투자를 보장하는 개성공단에조차 들어오겠다는 해외 사업자를 찾는 데 애를 먹는 상황이다. 더구나 장성택 처형 후 해외에 파견된 외화벌이 일꾼들이 대거 소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접경지역의 사업 활동은 거의 올스톱 분위기란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⑤ 남북관계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이 애써 남한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고 반응하는 이슈다. 북한이 요구하는 북-미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은 필수 선결조건이다. 임기 2년차에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전개에 어디까지 호응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수석 연구위원은 “장성택 처형의 여파로 북한의 대남일꾼들이 ‘자본주의 날라리풍’ 유입에 연루될까 두려워 전향적인 대남정책에 나서기 힘들어질 것”이라며 “김정은 개인의 결단이 없는 한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철중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내 상설 사무조직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전임 이명박 정부 때 폐지됐던 NSC 사무처가 5년여 만에 부활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한반도 안보 상황과 주변국 상황 변화에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NSC 운영과 국가안보실 기능을 보강할 수 있도록 상설 NSC 사무조직 설치를 포함한 방안들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상황이 요동치고 있는 데다 방공식별구역을 비롯한 동북아 정세도 급변하고 있어 NSC 사무처 신설을 통해 국가안보실을 보강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와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를 잇달아 주재하며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실각 및 처형 파문에 대한 동향과 대비태세를 점검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북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향후 북한 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불투명하다”며 “도발 등 돌발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사태의 엄중함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우리 내부 분열을 꾀하고 혼란을 야기할 우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남한 내 일부 종북 세력들을 활용해 내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발언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군과 경찰은 서해 5도를 비롯한 북한과 인접한 지역의 감시 등 안보태세를 강화하고 치안 유지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모든 공직자들도 당분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해 달라”며 공직자들의 기강 확립을 강조했다. 북한은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2주기(17일) 중앙추모대회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12월 16일 추모대회가 열렸다. 북한은 이날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군의 대규모 충성맹세대회를 열었다. 정부 일각에서는 “중앙추모대회를 16일 열었다면 보도 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며 “중앙추모대회는 2주기 당일인 17일 열리거나 아니면 16일의 충성맹세대회로 대체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북한 매체들은 장성택 처형(12일) 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공개 활동을 14∼16일 사흘 연속 보도했다. ‘고모부 처형’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는 아무런 영향이 주지 않음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로 풀이된다.동정민 ditto@donga.com·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