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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마을 하라에 사는 열 살 소년 프롬사는 하굣길에 끔찍한 일을 당했다. 들판을 서성이던 하이에나 3마리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프롬사는 비명을 질렀고 엄마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왔다. 무기를 든 동네 사람들은 하이에나 한 마리를 죽인 끝에 크게 다친 프롬사를 겨우 구해냈다. 상처는 처참했다. 오른쪽 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양쪽 허벅지의 살점도 뼈가 보일 만큼 떨어져 나갔다. 함께 공격을 받은 두 친구는 목숨을 잃었다. 최근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명성기독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난 프롬사는 힘겹게 기자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두 차례 대수술을 받은 그는 앞으로 최대 열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한다. 가난한 프롬사 가족을 위해 병원은 수술비를 받지 않았고 향후 지원도 약속했다.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약 35만 원) 수준. 100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75명은 질병과 가난으로 숨지고, 5세 이하 아동 가운데 저체중아 비율도 34.6%에 달한다. 평균 수명은 56.6세에 그친다. 가난은 가벼운 질병의 예방과 치료마저 힘들게 만든다. 입원실에는 머리 속에 물이 차는 뇌수종에 걸려 머리가 농구공만 해진 아이들이 힘없이 누워 있었다. 엄마가 임신 중에 엽산만 제대로 챙겨 먹어도 뇌수종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지만, 하루 3비르(약 210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심각한 영양실조는 아이들의 얼굴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저항력이 떨어져서 입속 세균이 얼굴을 파먹어 들어가는 질병 ‘노마’에 걸린 아이들은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2004년 11월 25일 개원한 이 병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신경과 등 12개 부문에서 35명의 의사, 115명의 간호사가 일하고 있다. 병원 진료 시간이 1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외래진료실 앞에는 30여 명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인기가 높은 까닭은 현지의 다른 병원보다 의료 수준은 높지만 진료비는 30%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환자들의 진료비를 감액하거나 면제해 주기도 한다. 지난해 400만 달러(약 45억4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이 병원은 수익 40만 달러(약 4억5000만 원)를 무료 진료에 고스란히 내놓았다. 병원은 현지인들로부터 ‘코리안 하스피털’로 불린다. 명성교회가 지은 병원이지만 한국 정부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병원은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참전용사의 부인도 병원비의 절반만 내면 된다. 참전용사의 자녀는 우선적으로 병원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6037명의 에티오피아 군인이 참가해 122명이 사망했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 20대의 청년들은 어느새 80대 할아버지가 됐다. 12일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멜라세 테세마 협회장은 “전우들 가운데 450여 명이 살아 있다. 우리에게는 의료 서비스가 절실한데 (명성기독병원이) 무료 진료를 해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종교적 신념과 인간애를 앞세워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료 기기와 의료진의 부족 같은 현실적 고충은 피할 수 없다. 김철수 원장(57)은 “산소호흡기가 6대 있는데 환자가 몰려서 모두 호흡기를 달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내시경도 기기는 있지만 다룰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해 24시간 진료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국내 의료계의 관심을 당부했다. 9월 병원 옆에는 명성의과대가 개교한다. 한 학년 30명 정원으로 절반의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줄 예정이다. 일시적 진료 봉사가 아니라 진료할 현지 인력을 키우는 근본적인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의과대 졸업생들은 향후 에티오피아 의료의 발전을 이끌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세브란스병원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병원을 에티오피아인들의 손에 넘겨줄 예정입니다.”(김철수 원장)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지난해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1931∼2011)의 마지막 강연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영인문학관에서 열렸다. 2010년 6월 19일 고인은 이곳에서 단편 ‘환각의 나비’에 대해 얘기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이었지만 청중은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강연이 끝나고 문을 나서는 박 선생의 등에 무심코 손을 댔던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의 몸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텅 빈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치명적 병환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 몸 안에서 암종이 생명을 축내기 시작한 지 오랜데 당신도 우리도 전혀 눈치 못 챈 것이다. 그리고 반년 만에 선생님은 가셨다….” 강 관장은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5월 4일부터 6월 30일까지 영인문학관에서는 ‘엄마의 말뚝―박완서 1주기전’이 열린다. 선생의 1주기(1월 22일)에 맞춰 열 예정이었지만 운영비 문제로 뒤늦게 열게 됐다. 영인문학관이 보관하고 있는 고인의 자료에 유족이 대여해준 자료를 보태 200여 점이 전시된다. 처음 공개하는 자료들도 여럿 눈에 띈다. ‘아이고 하느님!’ 등 고인의 육필 원고, 자녀들과 문인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 조각가 이영학 씨가 빚어낸 고인의 청동 두상 등이다. 평소 입었던 옷과 사용했던 그릇, 가위, 호미, 재봉틀 등 고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도 공개한다. 놀랍게도 동영상 자료도 있다. 선생과 남편 호영진 씨(1988년 작고)의 1953년 결혼식 영상이다. 전쟁으로 피폐했던 이 시기에 국가나 기관이 아닌 개인 행사의 동영상 기록을 남긴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초소형 6mm 필름으로 촬영했으며 길이는 5분여 분량이다. MBC가 최근 디지털 복원을 마쳐 이번 전시에서 직접 영상을 볼 수 있다. 고인의 장녀인 호원숙 씨의 기억은 이렇다. “아버지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해주셨고, 최고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 당시 고급 중국요리집인 소공동 아서원에서 결혼식을 올리셨는데 영상을 찍어 남겨 놓으셨다. 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엄마와의 결혼을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으신 것은 엄마의 글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문인들은 대체로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박완서 선생의 자료들이 이만큼이나 남은 것은 역설적으로 버리고 치우기 좋아하는 고인의 성격 때문이었다. “엄마는 버리는 것을 좋아하셨다. 몸에 기운은 빠져 보이지만 얼굴은 맑고 개운한 표정으로 빛나 보일 때는 으레 물건을 정리하고 잔뜩 버린 뒤였다. 엄마는 보자기에 싼 옷이나 책을 ‘너 좀 가져가라’ 하시며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엔 엄마의 물건이 쌓이게 됐다.” 1970년 여성동아 여류장편 소설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며 마흔 나이에 등단한 고인은 1남 4녀를 키우며 작품 활동을 했다. 글쓰기와 가사의 병행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서울 보문동 집에 살 때 딸에게 점심을 차리라고 흘려 써 놓고 간 메모에는 급하게 외출하면서도 아이들 걱정에 요리법을 자세히 적고 있는 고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수제비 반죽을 해 놓았으니 떠먹어라. 수제비 뜨는 법은 먼저 국이 팔팔 끓거든 손으로 얄팍얄팍 떠 넣는데, 찬물을 한 공기 마련해 놓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뜨면 반죽이 손에 묻지 않는다. 다 뜨거든 국자로 한번 저어서 서로 붙지 않게 하고 뚜껑 덮어서 한번 끓여라. 곧 먹을 수 있다.’ 영인문학관에서는 박완서 1주기전에 맞춰 다른 작가들의 애장품도 공개한다. 최인호의 촉이 비뚤어진 만년필, 김훈의 몽당연필, 윤후명의 엉겅퀴꽃 그림, 이근배의 벼루 등을 함께 전시한다. 02-379-3182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7년간 일한 뒤 태국으로 돌아간 사욍 씨는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70만 원의 적은 월급을 받아 목돈을 모으지 못한 데다 부인과 불화가 생겨 이혼했기 때문이다. 필리핀 여성 리아 씨는 한국에서 7년간 일하며 홀어머니와 여동생, 언니까지 부양한 뒤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가족이 그를 위해 남겨둔 돈은 거의 없었다. 남은 것은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뿐이었다.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저자가 한국에서 일하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추적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문학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유로)=독일 문학의 전성기인 소위 ‘괴테 시대’에 등장했으나 문학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의 대표 시선집. 104편의 시를 실었다. 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가 번역했다. 2만5000원.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장석주 지음·21세기북스)=청춘과 중년에 낀 ‘방황하는 서른’을 위로하는 책. 중견 시인이자 평론가인 저자가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시와 함께 세상을 조금 여유롭게 보는 시각을 제안한다. 1만5000원. ○ 인문·교양 물구나무 서는 여자(개리 스몰 지음·파이카)=발가벗고 물구나무 서는 여자, 자신의 페니스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30여 년간 상담한 환자들 중 인상적인 사례들을 풀어놓았다. 1만5000원. 레드 머니(쑨지엔, 송메이리 지음·더난출판)=금, 파운드, 달러 등 기축통화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며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가 가능할 것인지, 가능해진다면 세계 경제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분석했다. 2만 원. ○ 학술 화이부동의 동아시아학(심재훈 엮음·푸른역사)=한국에서의 동아시아학이 국제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에 초빙된 해외 석학들의 강연 원고를 토대로 엮었다. 2만 원.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김유신 지음·이학사)=정보통신혁명의 토대가 되는 양자역학의 발전 과정을 아인슈타인, 보어 등 천재적 물리학자들의 논쟁을 바탕으로 소개한다. 물리학 철학 역사를 버무린 융합연구의 산물. 2만7000원.○ 실용·기타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한혜경 지음·샘터)=100세까지 살아갈 일명 ‘호모헌드레드’ 시대를 맞아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위한 23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1만4000원.예술가의 인테리어(프란체스카 가빈 지음·1984)=베를린 바르셀로나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세계 각지에 있는 예술가의 집 30곳을 풍부한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이들의 집은 주인의 창작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만3000원.긍정심리학의 행복(우문식 지음·물푸레)=‘행복도 과학’이라는 저자가 행복을 찾기 위한 9가지 과학적 도구를 소개하고 행복을 연습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생 곳곳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행복을 추구해온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곁들였다. 1만7800원.}

《시인들에게는 자신만의 문학적 곳간이자 삶의 휴식처인 곳이 있다. 김용택 시인에게 그곳이 섬진강이라면 곽재구 시인에게는 와온 마을이다. 2001년 3월 전남 순천시 상내리 와온 마을을 처음 찾은 곽 시인은 그 자그마한 바다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형형색색으로 변해가는 와온의 노을은 드넓은 하늘에서 개펄에 있는 작은 물웅덩이까지 지천에 흩날리는 꽃밭으로 만들었다. 시인은 이곳을 ‘정서적인 고향’으로 삼았다. 그러던 그가 2009년 7월 훌쩍 인도로 떠났다. 문청(文靑) 시절 경도됐던 시성(詩聖)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을 찾아가 1년 반을 보냈다. 그가 체험적이자 영적이기도 한 시간들을 한 권의 시집으로 녹여냈다.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1999년) 이후 13년 만에 나온 반가운 시집이다. 와온과 인도에서는 같은 해와 달이 떠 시인을 맞았다. 그 속삭임은 잔잔하고 깊었다.》‘해는/이곳에 와서 쉰다/전생과 후생/최초의 휴식이다//…//달은 이곳에 와/첫 치마폭을 푼다/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시 ‘와온 바다’ 중) ‘해는/달 속에서 뜨고/달은/해 속에서 뜨고/해는 솟아올라/저무는 달에게/챔파꽃 레이를 걸어주고//달은 솟아올라/저무는 해에게/라마야나 이야기를 들려주네’(시 ‘산티니케탄’ 중) 시인은 시집 ‘사평역’(1983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일생을 섬세한 시어들로 형상화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인도에서 만난 빈자(貧者)들에게도 그 정감 어린 시선은 여전하다. 평생 기차역 근처에도 못 가본 찻집 여종업원, 5개월은 그림을 그리고 한 달은 그림을 팔러 떠도는 화가들이 시어로 살아났다. 시인은 이들을 ‘적빈’으로 칭한다. 보통 ‘적빈(赤貧)’은 ‘몹시 가난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적빈(寂貧)’으로 바꿔 부른다. ‘고요하고 적막하게 가난’, 그 속에서 세상 이치를 깨달아가는 ‘은자(隱者)’의 이미지다. ‘낡을 대로 낡은 그림 가방을 등에 메고/그가 석양 속으로 떠나는 동안/시를 쓰고 살았다는 지상의 내 이력이 부끄럽고 부끄러웠다’(시 ‘화가’ 중) ‘풀들이/제 몸 끝에/별 하나씩 붙들고/이승의 끝까지 걸어간다/순례자가/오체투지를 멈추고/얼굴을 풀밭 위에 부빈다/풀과 인간이/함께 껴안고/우는 아침’(시 ‘적빈 7’ 전문) 10년 넘게 시집을 내지 못했던 고난한 시업(詩業)의 짐을 인도에서 잠시 내려놓은 시인은 “그들의 맑은 눈망울과 따스한 마음이 없었으면 이 시집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하지만 시인이 인도에서 보낸 긴 시간과 상념이 다음과 같은 시로 피어났기에 시인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미스티 가게 앞/자전거를 멈춘 연인들은//세월이/잠시 그들 곁에/멈춘 것을 알지 못하지//페달 위에 올려진/푸른 밤의 발 하나//죽은 시인의 언어들이/페달 위에서 가벼운 탄식을 올리는 동안//남은 한발이/지상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와 입맞춤하네’(시 ‘우리 곁을 흘러가는 따뜻한 일초들’ 중)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남북한 통일은 세계 평화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세계의 교회들이 부산에 모여 어떻게 남북한 문제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가 열린다. 1948년 창설된 WCC는 교파나 교단의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결속을 도모하는 ‘에큐메니컬 운동’ 협의체로 110개국 349개 교단이 회원이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등 4대 교단이 속해 있다. 14일 스위스 제네바 WCC본부에서 만난 올라브 s세 트베이트 WCC 총무(사진)는 “7년마다 열리는 총회는 세계 기독교를 가장 광범위하게 대표하는 자리다. 총회가 부산에서 열리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며 그 세 가지 의미를 소개했다. “첫째는 총회를 통해 한국 내 교회들의 이해와 협력이 증진되기를 기대합니다. 또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이 있는 공간에서 세계의 여러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도전에 대해 얘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종교 사회인 한국을 통해 종교 간의 건전한 관계 유지에 대해 토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 부산 총회에는 해외 기독교인 약 5000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회에선 예배와 기도, 세미나와 워크숍 등이 열리며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국내외 기독교인들의 소통의 장으로 꾸려진다. 트베이트 총무는 “부산 총회는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창이나 문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한국 교회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시각이 있는데, 세계 교회를 바라봄으로써 시각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 총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 총회 이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인구가 성장하고 발전 속도도 빠릅니다. 아시아의 교회들도 역동성이 두드러지며 세계 교회의 성숙과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WCC는 보수 기독교계로부터 ‘공산주의를 포용하고 지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트베이트 총무는 “어느 개인이나 단체를 범주화하고, 색깔을 칠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못하다. WCC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항상 정의와 평화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트베이트 총무는 6월 방북해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부산 총회 참석을 타진하려고 했지만 북한이 불허해 가지 못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1991년 호주 캔버라 대회부터 3회 연속 총회에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참석이 불투명하다. 그는 “최근 방북에 대해 북한 측으로부터 부정적인 회신을 받았지만 아직 확실하게 북한의 참석 여부에 대해 확정짓기 어렵다”며 북한이 참가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제네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 된다. 그렇다구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둥글고 커단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김유정의 단편 ‘봄봄’에서 키가 작아 혼례를 못 치르고 있는 ‘점순이’를 설명한 대목이다. 점순이는 단편 ‘봄봄’뿐만 아니라 ‘동백꽃’에도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순박하고 건강한 시골 처녀의 모습이다. 점순이와 닮은 인물을 선발하는 대회 ‘점순이를 찾습니다’가 열린다. 27일부터 3일간 강원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 문학촌에서 펼쳐지는 ‘2012 김유정 문학제’에서다. 여느 미인 대회와는 성격이 다른 이 대회의 선발 기준은 이렇다. ‘키는 작지만 야무지고 당찬 캐릭터 이미지의 여성을 선발한다.’ ‘봄봄’의 점순이와 ‘동백꽃’ 점순이를 따로 뽑는데 우승자 2명은 상금 30만 원씩을 받는다. 문학촌 관계자는 “점순이 선발대회는 8년 정도 됐는데 매해 약 20명이 참가한다. 우선 외모가 점순이와 비슷해야 하지만 면접도 보기 때문에 김유정 문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닭싸움이 나오는 단편 ‘동백꽃’에서 착안해 ‘날아라 닭!’ 행사도 열린다. 일반인 참가자 20명이 마을 닭을 빌려 누가 닭을 멀리 날게 하느냐를 겨루는 대회다. 참가비는 1000원, 1등 상금은 10만 원. 주최 측은 닭의 비행 거리 50m 내외를 우승권으로 예상한다. 올해 10회를 맞은 김유정 문학제에서는 이 밖에도 ‘김유정 산문백일장’ ‘김유정 소설 입체낭송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시인 이상(李箱·본명 김해경·1910∼1937)은 ‘불우한 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학창 시절 그의 곁에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는데 당시 졸업생 69명 가운데 조선인은 17명이었다. 이상은 조선인 졸업 동기들과 그들만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1928년 가을부터 함께 사진을 찍고 인화해 수제 사진첩을 만들었다. 사진첩의 이름은 ‘추억의 가지가지’. 》이상의 졸업 동기였던 김희영이 쓴 1929년 2월 12일자 일기(서울대 기록관 소장)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하학 후에는 설경을 배경으로 앨범에 넣을 사진을 박히기 위하여 우리 일동은 낙산(駱山)으로 갔다. 사진인지 무엇인지 추워서 죽을 욕을 보았다. 우리는 다시 발길을 옮겨 탑동 공원에까지 왔다. 전번에 박힌 것이 잘못되었다 하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김해경 군이 나보고 장가가라고 좋은 여염집 새악시가 있으니….’사진첩은 이상을 포함한 동기 17명이 나눠 가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은 문학사상사가 보관하고 있는 한 권뿐이다. 이상의 졸업 동기인 원용석이 1980년대에 기증한 것이다. 이상의 75번째 기일인 17일 이 사진첩이 처음 공개된다. 이날 오후 6시 반부터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 서울’에서 문학사상사 주관으로 열리는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의 첫 회 ‘이상을 다시 만나다’에서다. 문학콘서트를 기획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김희영의 일기를 보면 이상이 직접 앨범을 만든 것으로 나와 있고, 사진첩 뒤의 주소록 필체도 이상의 것과 동일하다”며 “이상은 일일이 사진을 오려 붙이고 표지에도 글자와 함께 그림을 그려 넣는 등 앨범 제작에 애착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 50여 장으로 만들어진 이 빛바랜 사진첩에는 장난스럽게 여성 한복을 입은 이상, 미술 전시실에 서 있는 이상 등 다양한 ‘청년 이상’의 모습이 등장한다. 졸업생들의 개인 사진이 각기 석 장씩 들어 있고, 서울 시내 고궁 등을 돌며 찍은 단체 사진도 있다. 사진첩의 앞부분에는 학교 사진과 교가를 넣었다. 권 교수는 사진첩의 사진을 일일이 스캔해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문학콘서트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콘서트에서는 소설가 김연수가 ‘내 문학 속의 이상’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김연수는 이과였던 고교 시절 이상의 ‘오감도’를 읽고 그 난해함에 매료돼 이상과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94년 등단 이후 이상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장편 추리물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9년 단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제33회 이상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김연수는 “‘꾿빠이, 이상’은 고교 때부터 관심 있었던 이상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소설로 푼 것이다. 콘서트에서는 집필 배경 등을 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상 시시비비(是是非非)’란 주제로 권 교수와 김연수, 문학평론가 함돈균, 안서현이 이상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가야금 연주자 이화영의 ‘한오백년―25현 가야금을 위한 변주곡’ 등 공연도 곁들인다. 권 교수는 “대중과 함께 수준 높은 인문학적 대화와 토론을 펼쳐 사회문화적 담론의 장에 인문학의 창조적 상상력과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문학콘서트를 시작한다”며 “매월 초대 손님들과 함께 문인 한 명을 집중 조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유민문화재단(이사장 이홍구)은 제3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로 과학 부문에 김진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41)을, 사회 부문에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장(43)을, 문화 부문에 소리꾼 이자람 씨(33)를 각각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0만 원과 상패가 수여된다.}

총선이 코앞이다. 언론매체들은 선거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내며 판세를 전망한다. 유권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후보와 정당 자료집을 받지만 선거보도가 물론 더 흥미롭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할뿐더러 정당과 후보들의 날 선 공방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실제 선거 상황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이 선택하고 만들어낸 뉴스를 볼 뿐이다. 특히 선거에서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을 하는 언론의 역할이 커진다고 책은 말한다. 1970년대 중요한 미디어 효과 이론 중 하나인 어젠다 세팅 이론을 주창한 저자가 1980, 90년대 미국 선거 당시 언론의 의제 설정 효과를 분석했다. 2004년 출간돼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변수는 분석에서 제외돼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성석제가 돌아왔다. 9년 만에 장편소설을 들고서. 기대감이 컸다. 문단의 소문난 입담꾼인 그가 잔뜩 웅크렸다가 펴낸 장편이 어떨까 하는. 결론부터 말하면 의표를 치르는 해학이며 가슴 찡한 글발은 건재하다. 그렇다. ‘성석제 소설’이란 주식은 여전히 매력적인 문단의 우량주다. 지방 어느 궁벽한 강가에 세워진 사극 세트장. 드라마도 끝나고, 사람들의 관심도 식자 버려진 곳. 이곳에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친척들의 횡령으로 빈털터리가 된 영필, 학교재단 이사장 부인이었지만 남편이 죽은 뒤 상속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소희,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새미와 자폐증이 있는 동생 준호…. 이들은 피가 아닌 정(情)으로 묶여 의지하고 사는 ‘가족’이 된다. 평온한 일상은 예기치 않게 틀어진다. 인근에 합숙소를 차린 조폭들이 우연히 ‘자연산 미인’인 새미를 추행하려다 부하 한 명이 준호의 급습에 부상을 입는다. 전국구 조폭의 자존심은 무참히 무너졌다. 두목인 정묵은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발대로 갔던 부하들은 소식이 없다. 외딴 곳이라 휴대전화도 불통이다. 후텁지근한 한낮의 더위. 짜증이 머리끝까지 오른 정묵은 부하들을 이끌고 공격에 나선다. 성석제표 웃음의 융단 폭격은 여기서 시작된다. ‘가족’으로 뭉친 강마을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분뇨나 고추, 잿물을 비닐봉지에 담은 ‘똥 폭탄’ ‘고추 폭탄’에 이어 말벌들을 풀어 조폭 십수 명을 간단히 제압한다. 힘의 역전과 의외성. 그리고 약자가 승리하는 통쾌함이 웃음과 함께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하지만 웃음이 다가 아니다. 아마도 소설의 결정적 장면을 꼽는다면 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 직전일 것 같다. 조폭 선발대를 재래식 화장실 구덩이에 빠뜨리는 데 성공한 마을 사람들은 삼겹살을 굽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연다. 어깨춤과 힙합, 강시춤에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몸짓까지. 한낮의 열기, 한계치를 넘은 취기. 작은 승리에 대한 기쁨과 다가올 더 큰 공격에 대한 불안감 속의 몽환적 축제이자 제의(祭儀). 엉뚱한 상황에 처음에는 키득키득 웃지만 이내 뭔지 모를 비감(悲感)이 치올라와 가슴이 찌릿해진다. 한바탕 소동의 끝과 함께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열병을 앓은 듯 노곤하게 피곤해지기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은 속도가 빠르고 집중도가 높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다만 성석제의 장편을 오래 기다린 독자들에게 220쪽 남짓한 짧은 소설 분량은 성에 안 찰지도 모르겠다. 공깃밥을 절반 비웠을 때 밥상을 치운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장편을 낸 성석제는 “좀 부자가 됐다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장편을 쓰고 싶은 욕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품이 나를 뚫고 흘러내리길 기다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사랑. 감수성의 보고이자 문학의 원동력.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으니 시와 사랑은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고래(古來)로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노래했는가. 강은교, 고은, 문정희, 오탁번, 이해인, 손택수, 장석남, 조정권 등 우리 문단을 이끄는 시인 57명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난해한 주제인 ‘사랑’으로 한 편씩 신작시를 썼다. 세대와 성별, 그리고 인생의 경험이 다른 시인들이 각기 풀어낸 사랑 시들을 찬찬히 되새겨본다. 같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시어들은 꽃으로 피어난다. ‘사랑한다는 것은/엄청나게 으리으리한 것이다/회색 소굴 지하 셋방 고구마 푸대 속 그런 데 살아도/사랑한다는 것은/얼굴이 썩어들어가면서도 보랏빛 꽃과 푸른 덩굴을 피워올리는/고구마 속처럼 으리으리한 것이다’(김승희의 시 ‘사랑의 전당’에서) ‘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푸른곰팡이 붉은곰팡이도 꽃이었다/아무 데서나 마음이 꺾였고/은화를 줍듯 공들여 걸었다’(이근화의 시 ‘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에서) 지난해 3월 쉰 살의 나이에 동갑내기 신부와 결혼해 강화에서 인삼가게를 하고 있는 함민복 시인의 시 ‘당신은 누구십니까’의 맺음말은 이렇다. ‘밤이면 돌아와 人蔘처럼 가지런히/내 옆에 눕는/당신은 누구십니까/나는 당신의 누구여야 합니까’ 사랑의 끝은 이별이다. 고영의 시 ‘태양의 방식’은 이렇게 운다. ‘당신은 어제의 방식으로 웃어달라 했다/나는 짐짓 고개를 돌린 채 어제의 웃음을 떠올려보았지만/당신과 나와의 요원한 거리만큼에서/기억은 노선을 헤매고 있었다//기억에도 정류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무 때나 타고 내릴 수 있게…’ 시작하는 사랑의 달콤함, 애틋함, 설렘부터 그 사랑이 식을 때의 상실감과 아픔까지. 책장 가득하다. 수많은 사랑 시들 가운데 유독 하나가 총알처럼 가슴에 박혔다. ‘사랑한다면/눈물의 출처를/묻지 마라//정말로 사랑한다면/눈물의 출처를/믿지 마라’(박후기의 시 ‘빗방울 화석’ 전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6일 경북 안동시 정하동 고성 이씨 문중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260년가량 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됐다. 미라는 두께 약 45cm의 조개껍데기와 회장석에 싸여 보존 상태가 양호했으며, 조선 영조 때 병조정랑(현재의 국방부 소령에 해당)을 지낸 팔회당 이시항(八懷堂 李時沆·1690∼1749)으로 추정된다고 안동시는 밝혔다. 안동시 제공}

유불선에 능통했던 탄허(呑虛·1913∼1983) 스님이 내년 탄생 100년을 맞는다. 조계종 중앙역경원 초대 원장, 동국대 대학선원 원장 등을 지낸 스님은 1971년부터 10년에 걸쳐 ‘화엄경’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범어로 10조9만5048자에 달하는 대업이었다. 이 책은 스님이 남긴 기고와 인터뷰 등을 발췌해 실었다. 스님은 빈곤과 역경을 헤쳐 온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국위를 선양할 것이며 우리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문학 우리들의 자취 공화국(구경미 지음·문학과지성사)=의리와 장난기가 가득한 명진, 가난하지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영주, 예쁘고 집도 부자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먼 주애…. 1990년대 자취촌에서 뭉친 여고생들의 발랄한 성장기. 9000원. 사우스포 킬러(미즈하라 슈사쿠 지음·포레)=일본 프로야구 2년차 좌완투수가 불시의 습격을 당한다. 이어 그가 승부조작에 휘말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데…. 생생한 경기 묘사와 치밀한 사건 전개가 눈에 띄는 야구 스릴러. 2005년 제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 1만2000원. 스타터스(리사 프라이스 지음·황금가지)=생물학 폭탄이 미국을 강타한 뒤 중장년층은 사망하고 70대 이상 노인과 10대 이하 청소년들만 살아남는 기묘한 상황이 펼쳐진다. 청소년들은 권력을 쥔 노인들에게 자신의 젊음을 팔기 시작한다. 1만3800원. ○ 인문·교양 청년 인생 공부(구본형 외 지음·열림원)=구본형 박웅현 이순재 주철환 황병기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위치를 다진 13인이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강연을 정리해 묶었다. 1만5000원. 정신차려 대한민국(김광기 지음·알에이치코리아)=사회학자인 저자가 경제 양극화, 복지 논쟁, 부동산 거품 붕괴, 월세 고착화 등 한국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대내외 요인을 분석했다. 1만4000원. 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이수광 지음·해냄)=남명 조식,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등 세상에 대한 뜻을 세우고 공부에 몰입한 조선 선비 16인을 추적해 정리했다. 1만3800원. 또 다른 비스마르크를 만나다(강미현 엮음·에코리브르)=책 속 일화 291편은 강철 재상 이면의 인간 비스마르크가 보여준 유머와 재치, 신랄한 풍자를 담아냈다. 1만3500원. ○ 학술 이해의 에세이 1930∼1954(한나 아렌트 지음·텍스트)=철학계 거물 한나 아렌트(1906∼1954)의 사고와 철학의 토대가 된 초기 저작 중 책으로 편집되지 않은 에세이와 대담 자료 등을 엮었다. 2만 원. 블랙 아테나 2(마틴 버낼 지음·소나무)=‘블랙 아테나 1’은 ‘그리스 신화가 허구가 아닌 역사’라고 주장했다. 이번 책에선 그리스 신화의 구체적인 내용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동지중해권 문헌 및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그 주장을 견고히 한다. 3만5000원. 이승만과 메논 그리고 모윤숙(최종고 지음·기파랑)=광복 후 유엔한국위원단 의장으로 한국을 찾은 메논의 저서 ‘메논 박사 연설집’과 모윤숙 시인의 저서 등을 참고해 대한민국 건국 당시의 역사적 순간을 그려냈다. 2만 원. ○ 실용·기타 세상의 모든 것과 동업하라(김병태 지음·토트)=애플트리호텔 이사회 의장인 저자는 동업 예찬론자다. 나에게 없는 능력을 채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동업이라는 것. 특히 “이성(異性)과 동업하라”라는 게 성공 노하우의 핵심. 1만2000원. 행복한 우동가게-두 번째 이야기(강순희 지음·북치는 마을)=충북 충주시 연수동에서 우동가게를 하는 저자가 손님들과의 인연을 엮은 에세이. 2002년 첫 책 이후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동 국물은 뜨끈하고 훈훈하다. 1만2000원. 강소기업 17가지 경영노하우(양영종 외 지음·청목출판사)=산업 현장 일선에서 경영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17명이 강소기업의 노하우를 제시한 책. 불확실한 틈새시장을 먼저 공략하라고 조언한다. 1만7000원.}

《 매콤한 아귀찜의 감칠맛을 돌게 하는 아삭아삭한 콩나물. 술 먹은 다음 날 아침 말간 국물로 아린 속을 달래주는 시원한 콩나물국. 밥상머리가 허전하자 엄마가 고춧가루와 마늘 다진 것, 소금을 넣고 조물조물해 거짓말처럼 뚝딱 만들어 내놓던 빨간 콩나물무침…. 우리네 식탁의 감초, 그 많은 콩나물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 ‘이달에 만나는 시’ 4월 추천작으로 김선우 시인(42)의 ‘콩나물 한 봉지 들고 너에게 가기’를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수년 전 무심코 콩나물 한 봉지를 사들고 슈퍼를 나오는 순간 (시적 영감이) ‘착상’이 됐지요. 콩나물과 관련해 제 몸에 붙어서 살던 기억들이 함께 총화돼 시가 됐습니다.” 강원 강릉에서 살던 김 시인의 어릴 적. 거실 한쪽에 콩나물을 길러 먹었다. 짙은 빨간색 고무 양동이 위에 덮은 까만 천을 젖히면 마치 아기 새들이 먹이를 달라고 고개를 쳐들 듯, 노란 콩나물 머리들은 물 달라고 까치발을 섰다. 그 신선한 역동성. 아무렇게나 쑤셔 담은 까만 비닐봉지 속의 콩나물들은 실은 깨알 같은 성장의 역사다. 폭풍 한 봉지다. 시인은 “우리가 덤덤하게 넘기는 일상 속에는 굉장히 빛나는 혁명적인 순간이 들어 있다. 그 숨겨진 찬란함을 발견하고 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시”라고 말했다. 장석주 시인은 “김선우의 시는 가녀린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정념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것들은 몸에 와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루고 연소한다. 이때 그 연소의 질료이자 동력이 되는 게 고통과 슬픔이다. 그의 시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의 바탕이 생명애이고, 모성적인 끌어안음이기 때문이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흔하디흔한 일상의 자잘한 사물들 속에서 폭풍 같은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시인의 경이로운 시선에 은근한 질투가 인다. 놓쳐버린 사랑이 그리움의 뿌리를 이토록 아삭아삭하게 만들었다니! 물줄기가 지나가는 그 순간에 생의 전부를 거는 콩나물처럼 흘러내리는 봄비 속에 그리움의 뿌리를 쭉 펴본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원 시인의 추천 이유는 이렇다. “‘아삭아삭’과 ‘폭풍’을 나란히 놓을 수 있다는 것. 아니 가장 먼 것은 가장 닮은 것일 수 있다는 것. 김선우의 시가 가리키는 방향.” 이건청 시인은 이상국 시인의 시집 ‘뿔을 적시며’(창비)를 추천했다. 그는 “삶의 일상을 의미화하고 심화해 보여주는 언어들이 단단한 결집을 보여준다. 이것이 그의 시가 너른 공감대를 얻고 있는 이유”라고 평했다. 김요일 시인은 이건청 시인의 시집 ‘굴참나무 숲에서’(서정시학)를 추천했다. “시적 긴장을 놓지 않고 ‘사물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유지하며 현실에 대한 ‘균형과 조화’를 이끌어 내는 시인은 시력(詩歷) 45년의 노련하고 깐깐한 언어조탁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40년 가까이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아서 후련합니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게 제 문학의 목표이자 꿈이었으니까요.” 소설가 문순태 씨(71·사진)가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소명출판)을 완간했다. 1975년 전남매일신문에 ‘전라도 땅’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한 뒤 37년 만의 완간이다. 전 9권이며 200자 원고지로 1만1600장이 넘는 대작이다. 19세기 말 전라도 영산강 지역을 배경으로 노비세습제 폐지, 동학농민전쟁, 개항과 부두노동자쟁의, 1920년대 나주 궁삼면 소작쟁의 사건,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까지 반세기에 이르는 민초들의 신산한 삶을 조명했다. 1987년 창비에서 7권까지 낸 뒤 이번에 25년 만에 8, 9권을 펴내 마침표를 찍었다. 새로 추가된 두 권에는 주로 광주학생항일운동 얘기가 펼쳐진다. “7권을 낸 뒤 바로 전집을 완간하려고 했는데 그때만 해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죠. 최근 들어서야 당시 운동이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았고, 여러 새 연구를 참고해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타오르는 강’에는 구수한 전라도 방언이 가득하다. 작가는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직접 방언을 채집했다. 소설과는 별도로 2만 개의 전라도 방언을 모은 ‘타오르는 강-우리말 사전’(가제)도 낼 예정이다. “작가는 언어의 채굴자”라는 문 씨는 “대하소설을 위해서는 풍부한 어휘력이 필수적이다. 사라져가는 우리말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대하소설을 찾기 힘듭니다. 모두 ‘빨리 빨리’ 읽으려고만 하지요. 자꾸 짧아지는 우리 문학의 호흡에 느림의 미학을 선사했으면 합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거의 매년 책을 내놓는 이 작가의 책 중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환야’ 등은 이미 추리소설 마니아들의 ‘고전’에 올라 있다. 하지만 가끔 기대에 한참 떨어지는 작품을 펴내 기복이 심하다는 평도 나온다. 이번에 번역 소개되는 ‘신참자’는 2009년 일본에서 출간돼 ‘201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문예춘추 선정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50만 부가 팔렸고, 일본 TBS TV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2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1985년 데뷔해 등단 30년을 앞둔 작가가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작품이다. 에도 시대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도쿄 니혼바시의 닌교초 거리가 배경.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던 40대 여성 미쓰이 미네코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건의 열쇠는 교살에 사용됐던 의문의 끈. 현장에는 남아있지 않다. 경찰은 사소한 단서라도 찾기 위해 닌교초 거리의 상인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에 들어간다. 닌교초 거리에 있는 건과자(센베이) 가게, 시계 수리점, 민속품 가게, 식당 등을 돌며 경찰이 탐문하는 과정을 세세히 전하며 사건을 한발 한발 전개한다. 한 가게나 인물을 중심으로 9개의 독립된 단편처럼 이어지던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빈틈없는 퍼즐로 마지막에 완성된다.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 탐문 수사 속의 사소한 문답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를 결정적 증거와 연결하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에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출간 소감에서 “한 명을 그리려고 하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차례로 드라마가 연결됐다. 마지막 도미노를 쓰러뜨렸을 때 성취감은 작가로서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살인 사건 수사라는 큰 줄기 속에 휴먼 드라마들을 녹여낸 점도 특이하다. 작가는 각각의 단편들 속에서 완결된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 주제는 한결같이 가족의 화해와 사랑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수더분하고 쾌활한 형사 ‘가가’다. 그는 탐문 수사를 하는 가운데 해당 가족들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가족 간의 오해를 풀어주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가가 형사는 말한다. “형사는 수사만 하는 게 아닙니다.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또한 피해자입니다. 그 피해자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괴짜 의사 ‘이라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가가가 이라부 같은 역할을 한다. 완결성 높은 단편들을 통해 현대인의 다양한 아픔에 주목하고 이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히가시노와 오쿠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전통음악에 ‘시김새’란 말이 있다. 화려함이나 멋을 더하기 위한 꾸밈음 정도로 정의하는 음악용어다. 하지만 우리 소리를 이해하는 데 이런 사전적 정의만으론 부족하다. 흔히 시김새가 좋은 소리는 인생의 온갖 세파와 신산고초를 겪은 뒤에야 낼 수 있는, 그런 아픔이 있는 깊은 소리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그가 ‘시김새’란 제목의 시집 두 권을 냈다. 1970년대 필화사건을 일으켰던 시집 ‘오적’,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타는 목마름’을 냈던 그는 평생 저항시인, 민족문화운동가로 불려왔다. 불같은 청장년을 지낸 그도 이제 일흔한 살이 됐고, 시에는 다른 음조의 아픔이 배어 있다. ‘잠속에서 들으면/아내의 기침소리/좋지 않다//끊임없이 일하는 그이/쉬지도 않는/그이의/외로움//…//나는 구석방에서 겨우 겨우/숨쉰다//살아있는 것 단 한가지로 그저 그렇게//서럽다.’(시 ‘아내의 기침소리’에서) 시인은 2009년 경기 고양시 일산 자택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강원 원주시 무실동 아파트로 옮겨갔다. 그 후 2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 그는 원주의 자연을 벗 삼아 그의 생명철학을 가다듬거나 지난 세월을 조용히 반추하는 일상의 모습을 흐르는 듯한 시로 풀었다. “시집 같은 건 생각도 안 했다. 그저 일기 쓰듯이 끄적인 것뿐”이라고 인사말을 붙인 시인은 농담어린 항변을 한다. “시가 시원치 않다는 평이 있다. 시원할 까닭이 없다. 그 사이 내 삶을 알기나 하는가? 본디 ‘시김새’는 ‘시원끼’ 하고는 멀다.” 시인은 2009년 정운찬 국무총리 인준 청문회 당시 한 일간지에 쓴 정 총리후보자 옹호 칼럼, 이명박 대통령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했던 황석영 씨에 대한 옹호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번 시집에는 ‘이익공유제와 소말리아 해적 소탕’이란 시가 실려 있다. ‘정운찬의/이익공유제와/김관진의/소말리아 해적 소탕은/시(詩)다//내가 현 집권층의 어떤 일을/참으로 감동하기는/처음//처음은 호혜와 교환이/객관적 시장패턴 안에서/현실화하는/길//다음은 글로벌 물의 시대에/민족의 생명을 지킨/한 작은 나라의 커다란/모범//난/처음으로 국가에 대한 만족 비슷한/촌놈다운 안심에 사로잡힌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올해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작가 주요섭(1902∼1972)의 40주기다. 8세 아래 후배 문인이던 피천득은 고인이 사망한 지 이틀 뒤인 1972년 11월 16일 동아일보에 추모글을 실었다. “당신의 잘 알려진 작품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어느 부분은 나와 우리 엄마의 에피소드였습니다. 형이 상해 학생시절에 쓴 ‘개밥’ ‘인력거꾼’ 같은 작품은 당신의 인도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형은 정에 치우친 작가입니다. 수필 ‘미운 간호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형은 몰인정을 가장 미워합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하던 주요섭은 1920년대 중반 피천득이 찾아오자 중국음식을 사주고 영화를 보여주며 각별히 아꼈다. 귀국한 뒤에는 몇 년간 하숙집에서 함께 살기도 했다. 피천득은 친형 같던 주요섭이 사망하자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여섯 살 ‘옥희’와 ‘어머니’의 실제 모델이 본인과 어머니였다고 밝힌 것이다. 40주기를 맞은 올해 주요섭을 기리는 출간이나 문학 행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고인의 작품도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년) ‘아네모네 마담’(1936년) 정도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선집 형태로 간간이 출간됐을 뿐이다. 고인은 세 편의 장편을 남겼는데 ‘구름을 잡으려고’가 고인의 사후 28년 뒤인 2000년에야 단행본으로 나왔다. ‘자유문학’에 연재했던 ‘1억5천만 대 1’ ‘망국노군상(亡國奴群像)’은 아직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 40여 편의 소설을 남긴 고인이지만 전집이 출간된 적은 없다.“주요섭은 생시에나 사후에나 문단의 외곽지대에 있었다. 문제성을 지닌 작가가 아닌, 소녀 화자의 연애소설을 쓴 작가로 간주되어 평가 절하되거나 무시돼 왔다.” 조명 받지 못했던 주요섭의 작품 5편을 묶어 2008년 ‘주요섭 작품집’(지식을만드는지식)을 펴낸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흔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이렇게 대표작 이름조차 혼동되고 있는 작가가 주요섭이다”며 안타까워했다. 1902년 평양에서 태어난 주요섭은 1918년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중 형 주요한이 있는 도쿄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에 편입했다. 이듬해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해 김동인과 함께 지하신문을 만들다 일제에 검거돼 10개월간 복역했다. 일제에 항거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은 그가 중국 푸런(輔仁)대 교수로 재직할 때 동아일보 1938년 5월 17∼25일자에 연재했던 단편 ‘의학박사’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양심적인 의사였던 채동일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양심과 도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기주의자로 변하는 모습을 꼬집은 고발 소설로, 당시 국내 지식인의 변절을 비판한 작품이다. 이 교수는 작품이 게재된 1938년에 주목했다. 그해는 한국에 대한 일제의 수탈과 억압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다. 1월 지원병제도가 실시됐고, 4월부터는 학교에서 조선어교육이 금지됐다. 5월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했을 당시 베이징에 있었던 주요섭은 일제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베이징 일본영사관 내 유치장에 투옥돼 여러 날 조사를 받았다.“옥살이를 하고 나온 주요섭에게 동아일보는 소설 연재를 의뢰했고, 주요섭은 사회적 비판이 강한 작품을 써 보냈다. 일제의 검열이 있었을 텐데 이 작품이 신문에 게재된 것 자체가 미스터리다.”주요섭은 1920년대 상하이 유학 시절을 바탕으로 현지 하층민의 삶을 조명한 ‘인력거꾼’ ‘살인’ ‘첫사랑값’ 등을 선보였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29년 돌아온 뒤에는 미국 이민 1세대들의 삶과 죽음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구름을 잡으려고’를 발표했다.이 교수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가려서 주요섭의 다른 작품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는데 고인이 유학생활을 오래 하느라 문단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라며 “한국 근현대문학의 주요 작가들 가운데 가장 잘못 이해되고 저평가된 대표적인 작가가 주요섭일 것”이라고 강조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