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정

최효정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구독 13

추천

동아일보 최효정입니다.

취재분야

2026-06-08~2026-07-08
지방뉴스60%
사회일반20%
교통7%
건강7%
정치일반2%
행정2%
자동차2%
  • 초등안심벨 전 학년 확대… 서울시, ‘2026 달라지는 서울 생활’ 공개

    서울시는 31일 내년부터 시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책과 제도 변화를 정리한 책자 ‘2026 달라지는 서울 생활’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안전장치인 초등안심벨 전 학년 확대, 기후동행카드 모바일 관리 서비스 도입, 파크골프장 확충 등 시민 체감형 변화가 다수 포함됐다.내년 3월부터 ‘초등안심벨’이 전 학년으로 확대된다. 그동안 초등 1·2학년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해왔다. 초등안심벨은 위급 상황에서 버튼을 누르면 120dB 이상의 경보음이 울리는 휴대용 안전장치로, 학교 안팎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범죄와 사고 예방을 위해 도입됐다. 안심벨은 재학 중인 학교를 통해 지급된다.교통 분야에서도 시민 편의가 강화된다. 기후동행카드를 모바일 앱으로 통합 관리하는 서비스가 도입돼 앞으로는 모바일 티머니 앱을 통해 충전·사용 정지·이용 내역 확인이 가능해진다. 또 새벽 시간대 이동 수요에 대응한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는 기존 1개 노선에서 4개 노선으로 확대 운행된다.여가와 체육 인프라도 확충된다. 서울시는 내년 중 파크골프장 32곳과 스크린 파크골프장 61곳을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파크골프장은 ‘서울시 공공예약 서비스’를 통해 사전 예약하거나 현장 선착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강서구 어울림플라자와 노원의 서울어울림체육센터 등 신규 공공시설도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부동산 규제도 일부 완화된다.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건축심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도시정비형 재개발 관련 규제를 개선한다. 주거 지원 분야에서는 청년월세 지원사업의 제출서류를 줄여 신청 절차를 간편화한다.‘2026 달라지는 서울 생활’에는 규제철폐, 시민 생활, 시설 개관, 행사·축제 등 4개 분야 60개 사업이 담겼다. 전자책은 서울시 누리집과 ‘내 손안에 서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책자는 내년 1월부터 서울시청과 자치구 청사, 동주민센터, 공공도서관 등에 비치·배부될 예정이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30
    • 좋아요
    • 코멘트
  • 내년 공무원 보수 3.5% 인상…9급 초임 연봉 3400만원대

    내년 지방공무원 보수가 3.5% 인상된다. 저연차 공무원에 대해서는 최대 6%대의 추가 인상이 적용되지만, 각종 수당을 포함한 9급 초임 보수는 3400만 원대에 머물 것으로 보여 민간과의 보수 격차를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정부는 10일 국무회의에서 ‘지방공무원 보수규정’과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내년 지방공무원 보수 인상률은 3.5%로 확정됐다. 이는 201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3%대 인상이다.특히 초임 보수가 낮다는 지적을 받아온 저연차 공무원에 대해서는 9급 1호봉 기준 최대 6.6%까지 차등 인상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청년 공무원의 처우를 일부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다만 인상 효과에도 불구하고 각종 수당을 모두 합친 9급 공무원 초임 연봉은 3400만 원대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이 2024년 기준 83.9%에 그치는 상황에서, 보수 인상만으로 청년 공무원의 공직 이탈을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정부는 수당 제도도 일부 손질했다. 상시 민원에 노출된 민원창구 근무자의 수당은 월 5만 원에서 7만 원으로 인상된다.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수당 상한액도 기존 22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상향된다.재난·안전 분야 공무원에 대한 인사 인센티브도 강화된다. 재난 및 안전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거나 정부 포상을 받은 7급 이하 공무원은 상위 직급에 결원이 없어도 특별승진이 가능해진다. 승진 소요 근속기간 단축 한도도 기존 최대 1년에서 2년으로 확대된다.정부는 민간과의 보수 격차 확대와 저연차 공무원의 이탈 문제를 고려해 보수와 인사 제도를 함께 손질했다고 설명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30
    • 좋아요
    • 코멘트
  • 무안공항 참사 1년…유족들 “정부 조사 불신·자료 비공개에 분통”

    둔덕 앞에 선 아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직접 마주한 구조물은 정부 설명과 달리 거대한 ‘콘크리트 벽’에 가까웠다. 지난해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이준화 씨는 사고 현장을 본 순간 상주(喪主) 대신 조사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다른 유가족과 함께 레이저 측정기를 들고 현장을 돌며 사고 현장을 기록했다. 그렇게 1년간 모으고 써 내려간 자료만 2500여 장에 달한다.22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 씨는 “정부가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고 공식적인 사고 원인도 밝히지 않아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고 초기 국토교통부가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은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는 등 입장을 밝혔지만, 이 씨가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은 정반대였다. 의문이 쌓이면서 그는 점차 정부 조사를 믿지 못하게 됐다.179명이 세상을 떠난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흘렀지만, 취재팀이 만난 유족 7명은 “조사 주체인 국토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의 소통이 일방적”이라고 지적했다. 박인욱 씨(69)는 당시 참사로 부인, 외동딸과 사위, 손자·손녀 등 가족 5명을 잃고 홀로 남겨졌다. 사고 이후 매일 공항을 지키는 박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활주로 끝에 놓인 로컬라이저를 찾는다. 혹여 바뀐 게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박 씨는 “투명한 자료 공개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공항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유족의 불신은 정부의 ‘깜깜이 조사’에서 비롯됐다. 특히 올 7월 정부의 엔진 정밀조사 결과 발표 추진 과정을 지켜보며 더욱 깊어졌다. 당시 사조위는 ‘조종사 과실’ 등을 중심으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근거가 부실하다”는 유족의 반발에 언론 브리핑을 취소했다. 정부는 엔진 정밀 분석 보고서와 사고기 음성기록장치(CVR), 비행기록데이터(FDR) 등 정보도 유족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족들은 “무엇이 밝혀졌고 무엇이 가려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옥의 1년’을 보냈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조사가 제자리를 맴도는 사이 다른 공항의 위험도 그대로다. 무안공항처럼 항공기와 충돌할 경우 대형 참사를 유발할 수 있는 구조물이 방치된 전국 7개 공항 중 5곳은 여전히 시설 개선 공사를 마치지 못한 상태다.● “원문 보고서 공개하라” 거리에 나선 유족들참사로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던 딸을 잃은 윤순한 씨(59)는 ‘왜 사고가 났을까’라는 의문이 지난 1년간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큰 딸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윤 씨는 손이 떨려 운전대를 잡을수 없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착한 공항은 이미 울음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그 곳에서 윤 씨는 생전 처음으로 사돈을 만났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견례를 마친 두 부모는 몇 날 며칠을 함께하며 사고 원인 규명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윤 씨는 사고가 나기 불과 2주 전 같은 비행기를 타고 태국 방콕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해당 비행기를 탔을 당시 착륙할 때도 덜컹거림이 심했다며 기체 결함을 의심했다. 24일 오후 광주 북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윤 씨는 “의구심을 풀어 줄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니 정부 조사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실제로 사조위는 7월 조사 내용 일부를 발표하려다 유족 제지 등을 이유로 취소했다. 당시 사조위가 발표하려던 내용에 “오른쪽 엔진 손상이 심했음에도, 조종사가 왼쪽 엔진을 껐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었다. 특히 엔진 제조사인 미국 업체 측의 분석에만 의존해 기체 자체의 결함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고 조종사 과실로 사고 원인을 몰아가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족들이 엔진 결함 여부 등이 담긴 원문 보고서 공개를 요청했지만, 사조위는 영업 비밀과 국제 관례를 이유로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답답한 조사 과정 탓에 ‘거리의 투사’가 된 유족들도 있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만난 고재승 씨(43)는 이날도 시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 씨는 “국가 책임이 걸린 시설물 문제나 조사 과정은 덮어둔 채 개인 과실만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올 7월부터 약 6개월 간 휴직 중이다. 국토부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일이 종종 생겨 심적 부담이 컸던 탓. 고 씨는 “사고 책임이 국토부에도 있는데 함께 일하니 ‘가해자’와 함께 일하는 기분이라 힘들었다”며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거리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참사 이후 서득호 씨(43)의 삶은 ‘아버지의 삶’이 됐다. 서울에서 IT 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광주로 내려왔다. 아버지가 손수 직접 지은 집, 타고 다니던 차, 손길이 묻은 물건들까지. 24일 오전 광주 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 씨는 “‘아버지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난관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1년간 정부의 대응을 지켜봐온 그는 사조위의 소통 방식을 지적했다. 서 씨는 “정부에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료 공개를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러한 정보 공개 문제 지적에 대해 국토부와 사조위는 블랙박스 기록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상 보안 유지 대상이고 보고서엔 영업 비밀이 포함돼있어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조사위 독립성 논란… 결론 발표 더 미뤄질 전망유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요구해 왔다. 참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국토부 소속인 사조위의 ‘셀프 조사’는 믿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려에 따라 참사 초기 국회에서는 유족들의 의견에 따라 사조위를 국토부가 아니라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하는 내용의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사고 1주년을 앞둔 10일에야 비로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개정안에는 현재 사조위 상임·비상임 위원의 임기를 종료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 과정이 역설적으로 속도에는 제동을 걸게 됐다. 조사 기구 재편과 위원 재선임, 조사 내용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초 올해 말로 예상됐던 최종 사고 원인 결과 발표는 내년 하반기 이후로 밀리게 됐다.23일 오후 광주 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근우 씨(23)는 “유족들이 원하는 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두 가지인데 그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한 줄 몰랐다”며 “독립된 조사 기구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순식간에 부모를 잃고 혼자 남겨진 박 씨는 결국 올해 4월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정리했다. 그는 “부모님의 흔적을 볼 때마다 눈물이 차올랐다”며 “그곳에서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서 결국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무안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아직도 공항 한켠에 머물며 서로를 부여잡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참사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려는 이도 있다. 26일 전남 무안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천병현 씨(47)는 올해 사고로 숨진 형 생일에 지원금 등 일부를 고향인 전남 무안군에 기부했다. 천 씨는 “이달 26일이 형님 생일이었다”며 “작년에 형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해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액이라도 기부하며 형님을 계속 알리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한 번에 통솔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관련 기구를 총리나 대통령 산하로 두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한편 무안공항 참사 발생 1년이 지났지만 인천국제공항을 포함한 주요 공항들이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활주로 내 위험 시설물을 여전히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안공항을 포함한 전국 5개 공항도 항공기와 충돌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구조물 개선 공사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광주=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무안=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무안=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 2025-12-29
    • 좋아요
    • 코멘트
  • “엔진분석 원문보고서-블랙박스도 공개 안해… 정부 조사 믿겠나”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흘렀지만 정확한 사고 원인은 여전히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기체 결함을 가릴 핵심 자료인 엔진 분석 보고서 원문과 블랙박스 등 기초 자료 공개조차 거부하면서 유족들은 “무엇이 밝혀졌고 무엇이 가려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옥의 1년’을 보냈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원문 보고서 공개하라” 거리에 나선 유족들참사로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던 딸을 잃은 윤순한 씨(59)는 ‘왜 사고가 났을까’라는 의문이 지난 1년간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윤 씨는 사고가 나기 불과 2주 전 같은 비행기를 타고 태국 방콕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해당 비행기를 탔을 당시 착륙할 때도 덜컹거림이 심했다며 기체 결함을 의심했다. 24일 오후 광주 북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윤 씨는 “의구심을 풀어 줄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니 정부 조사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사조위는 7월 조사 내용 일부를 발표하려다 유족 제지 등을 이유로 취소했다. 당시 사조위가 발표하려던 내용에 “오른쪽 엔진 손상이 심했음에도, 조종사가 왼쪽 엔진을 껐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었다. 특히 엔진 제조사인 미국 업체 측의 분석에만 의존해 기체 자체의 결함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고 조종사 과실로 사고 원인을 몰아가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족들이 엔진 결함 여부 등이 담긴 원문 보고서 공개를 요청했지만, 사조위는 영업 비밀과 국제 관례를 이유로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답답한 조사 과정 탓에 ‘거리의 투사’가 된 유족들도 있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만난 고재승 씨(43)는 이날도 시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 씨는 “국가 책임이 걸린 시설물 문제나 조사 과정은 덮어둔 채 개인 과실만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가족 서득호 씨(43)는 사조위의 소통 방식을 지적했다. 서 씨는 “정부에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료 공개를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와 사조위는 블랙박스 기록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상 보안 유지 대상이고 보고서엔 영업 비밀이 포함돼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조사위 독립성 논란… 결론 발표 더 미뤄질 전망 유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요구해 왔다. 참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국토부 소속인 사조위의 ‘셀프 조사’는 믿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려에 따라 참사 초기 국회에서는 유족들의 의견에 따라 사조위를 국토부가 아니라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하는 내용의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사고 1주년을 앞둔 10일에야 비로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현재 사조위 상임·비상임 위원의 임기를 종료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 과정이 역설적으로 속도에는 제동을 걸게 됐다. 조사 기구 재편과 위원 재선임, 조사 내용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초 올해 말로 예상됐던 최종 사고 원인 결과 발표는 내년 하반기 이후로 밀리게 됐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박근우 씨(23)는 “유족들이 원하는 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두 가지인데 그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한 줄 몰랐다”며 “독립된 조사 기구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무안공항 참사 발생 1년이 지났지만 인천국제공항을 포함한 주요 공항들이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활주로 내 위험 시설물을 여전히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안공항을 포함한 전국 5개 공항도 항공기와 충돌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구조물 개선 공사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광주=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무안=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 2025-12-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AI 이용한 SNS 전수 조사, 단기 여행객까지 확대할 듯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단기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 신청 시 최근 5년 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록 제출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실제 심사 과정에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프로그램이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은 10일(현지 시간) ESTA 신청 절차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신청자는 최근 5년간 사용한 SNS 계정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CBP는 또 필요에 따라 최근 5년간 사용한 전화번호, 최근 10년간의 e메일 주소, 가족 구성원 개인정보, 얼굴과 지문, DNA 및 홍채 등 생체 정보 제출도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는 이미 AI로 SNS 기록을 분석해 비자를 취소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미 국무부가 3월 초 AI 기반 프로그램인 ‘적발 및 비자 취소(Catch and Revoke)’의 사용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유학생의 SNS 활동을 전수 조사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동조하거나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보인 사례를 걸러낸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이 절차를 통해 약 한 달 만에 300여 명의 비자가 취소됐다. 전문가들은 방대한 개인정보를 개별적으로 검토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AI 기반 프로그램이 외국인 유학생 검열을 넘어 입국 심사에까지 확대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국가 안보 이슈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감안하면, 유학생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AI 기반 프로그램이 향후 단기 방문객까지 확대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비자 심사 과정에서 절차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자동화된 AI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비자는 한 번 거절되면 회복이 사실상 어려운 결정인 만큼 거절 사유에 대한 설명과 오류 가능성에 대한 소명,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가 함께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은 AI 판단을 전적으로 기계에 맡기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AI법(AI Act)은 생체인식, 이주, 사법, 채용 등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AI를 ‘고위험 AI’로 규정하고, 감독자 지정과 로그 기록 의무를 통해 인간의 관리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美 SNS 검열에 ‘계폭’ 릴레이…100만원 넘는 디지털 세탁소 호황

    《美 SNS 검열에 ‘디지털 세탁’ 확산 미국이 단기 여행자용 전자여행허가(ESTA) 신청 때도 소셜미디어 기록을 제출해야 한다고 예고하자, 출국 전 계정을 지우는 ‘자기 검열’이 확산하고 있다. 높아진 ‘디지털 국경’에 가로막힌 유학생의 사연을 취재했다.》“미국 출국을 불과 이틀 앞두고, 영문도 모른 채 비자 거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 게시물도 아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에 태그된 동아리 계정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이 문제가 된 건 아닌지 추측할 뿐입니다.” 24일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김상진(가명·21) 씨는 올 7월 미국 교환학생 비자(J-1 비자)가 거부됐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6월 비자 인터뷰 당시 “SNS 검토를 포함한 추가 심사를 거쳐 승인 여부를 통보하겠다”고 안내받았다. 그런데 미국대사관은 약 한 달 동안 별다른 연락이 없다가, 출국 직전에 갑작스럽게 비자 거절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외교관을 꿈꾸며 해외살이를 경험해볼 기대에 부풀어 있던 김 씨는 이미 예매했던 항공권과 체류 일정은 물론이고 교환학생 과정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구체적인 거절 사유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는 “비자를 두 차례 거절당하면 향후 미국 방문이나 학업, 여행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 재신청조차 못 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대학생 유모 씨(22) 역시 비자 인터뷰 이후 발급 보류를 통보받아 노심초사했다. 유 씨는 “영사의 안내에 따라 비공개로 운영하던 SNS 계정을 공개로 전환한 뒤, 일주일간 추가 검토를 거쳐서야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며 “출국이 임박한 상황에서 보류 통보를 받아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국경’↑… 유학생-여행객 ‘SNS 자기 검열’국가가 개인의 온라인 기록을 입국 심사 기준으로 삼는 이른바 ‘디지털 국경’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입국 기준은 한층 엄격해지는 추세다. 현재 미국은 F(학생), M(직업훈련), J(교환방문) 비자를 신청하는 유학 희망자와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SNS 검증을 시행 중이다. 여기에 미 국무부가 10일(현지 시간) “90일 이하 단기 방문객이 비자 없이 신청할 수 있는 전자여행허가(ESTA) 신청 시에도 최근 5년 치 SNS 기록과 생체정보 제출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올 10월 미 국무부는 9월에 피살된 미국의 강경 보수 운동가 찰리 커크 사건과 관련해 SNS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외국인 6명의 비자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방문을 염두에 두고 ‘SNS 자기 검열’에 나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한 대학원 식품공학과에 재학하는 정모 씨(33)는 스타트업 창업과 학술 포럼 참석 등을 위해 미국에 방문할 가능성이 커지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하고 휴대전화까지 교체했다. 그는 “과거 ‘총기 규제에 반대하던 찰리 커크가 총기에 의해 사망한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취지로 했던 발언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임모 씨(25)도 커크 피살 이후 기존에 올렸던 정치적 게시글을 모두 삭제했다. 임 씨는 “당장 미국에 갈 계획은 없지만 혹시 몰라 지웠다”며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검열 대상이 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 체류 신분 유지를 위해 한국 방문 자체를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이모 씨(34)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귀국하려던 계획을 접고 가족을 미국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는 “미국에서 출국했다가 SNS 문제 등으로 트집이 잡혀 다시 입국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윤모 씨(32) 역시 내년 3월 미국 신혼여행을 앞두고 노파심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글을 모두 삭제하고 계정까지 탈퇴했다. 윤 씨는 “기록이 아깝지만 신혼여행과 맞바꿀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었다”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일상까지 감시당하는 느낌”… 사생활 침해 논란한편 입국 심사 과정에서의 SNS 공개 요구가 사생활 침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던 대학생 이제아 씨(21)는 미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비자 인터뷰 예약 시점부터 출국까지 SNS 계정을 사실상 강제로 공개 상태로 전환했다. 평소 위치와 얼굴, 소속 등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돼 비공개 상태를 유지했지만, 비자 심사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이 씨는 “문제가 될 만한 게시물이 있는지 스스로 검열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불편했다”며 “외국인을 모두 잠재적 위험 요소로 보는 것 같아 언짢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계정을 공개로 전환한 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팔로 요청과 메시지를 받는 등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 씨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애니메이션 관련 ‘덕질’을 주로 하는 부계정까지 함께 제출했다”며 “개인정보가 아니라도 취향과 일상이 담긴 계정을 한 나라의 정부가 특정 목적을 위해 들여다본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여행 및 유학과 취업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정치적 성격과 무관한 계정인데도 비자 심사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걱정된다”는 대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해외여행 사진이 많은 계정을 가진 또 다른 사례자는 “미국에 눌러앉을 거란 오해를 받을까 봐 불안하다”며 “기준이 모호하다”고 토로했다. 보유한 SNS 계정을 어디까지 기재해야 하냐는 혼란도 적지 않다. 부계정을 두고 메인 계정만 적은 것이 문제가 될지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계정을 찾지 못했을 때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묻는 사례도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인스타그램, 스레드, 페이스북, X(옛 트위터)뿐 아니라 디시인사이드 계정까지 포함해 기재해야 하는지를 두고 질문이 오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SNS가 싸이월드뿐이었다는 한 유저는 ‘SNS가 없다’고 기재했다가, 서류를 확인하던 한국인 영사 직원으로부터 불이익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받아 당황했다는 경험담을 공유하기도 했다.● SNS 기록 지우는 ‘디지털 세탁소’까지 호황이처럼 디지털 국경이 높아지는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2023년 7월 반간첩법 시행 이후 입출국 과정에서 휴대전화 검사와 심층 면접을 강화했다. 중국을 자주 방문한다는 한 대학생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입출국 때마다 공안이 있는 곳으로 끌려가 휴대전화 검사를 받는다”며 “범죄나 정치와 무관해도 반복된다”고 토로했다.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또 다른 유저도 “최근 중국 입국 당시 직원 4명에게 둘러싸여 엄격한 휴대전화와 가방 검사를 받았다”며 “무서워서 중국을 못 가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등도 중국과 유사한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과거 SNS 게시물을 전문적으로 삭제해주는 이른바 ‘디지털 세탁소’는 뜻하지 않은 호황을 맞았다. 과거에는 리벤지 포르노 등 성착취물 피해자가 주 고객이었지만, 최근에는 유학생, 주재원 등 일반인의 문의가 30∼40%가량 늘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디지털 삭제 대행업체 ‘사라짐 컴퍼니’의 최태운 대표는 “검열 강화 이후 ‘미국 출국을 앞두고 SNS 기록을 급히 정리해 달라’는 문의가 매달 한두 건씩 꾸준히 들어온다”며 “건당 100만∼200만 원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한 달여 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 통지를 받은 20대 남학생이 과거 “주한미군 철수해야 한다” “한미일 동맹 반대” 취지로 작성한 SNS 게시글 삭제를 급히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수용 기준은 각 국가의 주권에 속하는 사안이지만, 입국 심사 과정에서 SNS 검열이 과도하게 강화될 경우 민주주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SNS 검열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의 발언 자유까지 억압하는 조치”라며 “미국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외국인을 잠재적 위험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에 불만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가려내 비자를 발급하지 않겠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효과적인 정책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돈이 많다면 킬러를 고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쏴 죽이고 싶다”는 취지의 글을 SNS에 올렸던 한 40대 한국인 남성이 디지털 세탁을 의뢰한 뒤 미국 출국을 시도했다가, 해당 발언이 이미 검열돼 입국이 제한된 사례도 있었다. 다만 조 교수는 “정책 비판까지 반체제·범죄로 간주할 경우 민주주의 국가가 보여야 할 관용과는 거리가 먼 배타적 민주주의로 흐를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개인 차원에서 과도한 혐오 표현을 자제하려는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가 안보를 위한 디지털 장벽 강화와 개인의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 2025-1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서울대, 학부생 5급 공무원 고시반 첫 운영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국가공무원 5급 공개경쟁채용 시험 준비반의 문호를 학부생에게도 개방하기로 했다. 서울대가 1946년 개교한 이래 학부생을 대상으로 별도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운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1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등에 따르면 대학 측은 2026년부터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등 5급 공채를 준비하는 학부생을 위해 현재 행정대학원생 전용 시험 준비반인 ‘서연재’를 확대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대상은 5급 공채를 준비 중인 학부생 20여 명 규모로, 선발된 학생에게는 전용 학습 공간이 제공된다. 이와 함께 시험 과목별 특강 등의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될 예정이다. 지원 기간은 이달 24일까지다. 그간 서연재는 대학원생 대상으로만 운영했지만, 장기화하는 취업난 속에서 공직 진출을 희망하는 학부생의 요구가 갈수록 커지자 이를 반영해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그동안 서울대 학부생은 별도의 학교 지원 없이 각자 도서관 등에서 시험을 준비해 왔으나, 시험의 난도가 높아지고 정보 공유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대학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행정대학원 관계자는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혼자 준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공감대가 학내에 형성됐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대 관계자는 “서연재 확대 운영은 학부생에게도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자기 주도 역량을 키워 주려는 목적으로, 다른 학교에서 운영하는 고시반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서울대, 학부생에도 ‘고시반’ 개방… 취업난에 별 수 없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국가공무원 5급 공개경쟁채용 시험 준비반의 문호를 학부생에게도 개방하기로 했다. 서울대가 1946년 개교한 이래 학부생을 대상으로 별도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운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1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등에 따르면 대학 측은 2026년부터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등 5급 공채를 준비하는 학부생을 위해 현재 행정대학원생 전용 시험 준비반인 ‘서연재’를 확대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대상은 5급 공채를 준비 중인 학부생 20여 명 규모로, 선발된 학생에게는 전용 학습 공간이 제공된다. 이와 함께 시험 과목별 특강 등 프로그램 등도 함께 제공될 예정이다. 지원 기간은 이달 24일까지다.그간 서연재는 대학원생 대상으로만 운영했지만, 장기화하는 취업난 속에서 공직 진출을 희망하는 학부생의 요구가 갈수록 커지자 이를 반영해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그동안 서울대 학부생은 별도의 학교 지원 없이 각자 도서관 등에서 시험을 준비해 왔으나, 시험의 난도가 높아지고 정보 공유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대학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행정대학원 관계자는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혼자 준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공감대가 학내에 형성됐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대 관계자는 “서연재 확대 운영은 학부생에게도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자기 주도 역량을 키워주려는 목적으로, 다른 학교에서 운영하는 고시반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2023년 3월 서울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대학은 단순히 학생이 공직자가 되도록 지원해 주기보다 학생이 공직자로서 필요한 역량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21
    • 좋아요
    • 코멘트
  • 日 동네마다 치매 후견지원센터… 가족도 목돈 못 건드린다[히어로콘텐츠/헌트④-下]

    지난달 6일, 일본 도쿄에서 차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사이타마현 한노(飯能)시의 솜포요양원. 로비에 들어서자 따스한 노란 조명 아래 백발의 미와 요시오 씨(78)가 나무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27년 지기이자 법무사인 다카하시 히로시 씨가 자리했다. 긴장한 표정의 미와 씨가 입을 열었다.“저한테…. 재산이 있나요?”● ‘나다운 삶’ 위해… 12만 명이 임의 후견아내와 사별하고 아들과 떨어져 홀로 사는 그는 2년 전 치매로 진단된 후 증상이 계속 나빠져 최근에는 재산이 있다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상태였다. 한국이었다면 ‘치매 머니 사냥꾼’이 군침을 흘릴 표적이 됐을 것이다.하지만 이날의 풍경은 약탈이 아닌 보호의 현장이었다. 과거 부동산업자로 일했던 미와 씨는 건강했던 4년 전 다카하시 씨를 후견인으로 정해 뒀다. 이날은 후견 활동을 공식적으로 개시하기 위해 본인 의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다카하시 씨는 미와 씨가 직접 서명했던 계약서를 꺼내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혹시 내가 치매에 걸려도 살던 곳을 떠나지 않겠다. 내 재산은 요양비로 우선 쓰고, 남은 돈은 지역 발전을 위해 쓰고 싶다.” 서류에서 눈을 뗀 다카하시 씨가 미와 씨와 눈을 맞췄다. “이 약속대로 저희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겠습니다.” 미와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심 되네요.”일본에는 미와 씨처럼 건강할 때 미리 후견인을 정해 둔 노인이 12만 명이 넘고, 실제로 후견이 개시된 사례가 1만4229명에 이른다. 후견 신청자가 229명, 개시 사례가 32명에 그친 한국과는 다르다. 수혜 대상엔 기초생활수급자도 있다. 소외 계층도 미리 준비된 시스템을 통해 ‘나다운 삶’과 재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동네마다 ‘후견지원센터’, 문턱 낮춘 해결사일본이 이처럼 탄탄한 방어막을 갖추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같은 날 오전 한노시의 ‘사회복지협의회’를 찾았다. 한국의 행정복지센터와 비슷한데, 이곳에선 각 지방자치단체의 후견 업무를 한다. 한노시는 인구 8만 명의 소도시지만, 이곳 1층에는 ‘중핵기관’(후견지원센터)이라는 나무 팻말이 걸린 사무실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사무실에선 사노 시게루 씨(68)가 센터 직원과 상담 중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양성한 ‘시민후견인’이다. 은퇴 후 간호사 경험을 살려 이웃 치매 노인의 후견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이날도 자신이 맡은 80대 치매 노인의 병원비 납부 문제를 상의하러 들렀다.나미키 카즈히로 한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은 “한국에서는 친족이 아닌 후견인을 구하려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수백만 원을 내야 한다고 들었지만, 일본은 다르다”고 했다. 일본은 2016년 ‘성년후견제도 이용촉진법’을 제정하고, 전국 지자체의 약 70%에 후견지원센터를 설치했다.이곳에서는 상담부터 서류 작성, 후견인 매칭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기댈 곳 없는 치매 노인에게는 사노 씨 같은 시민 후견인을 연결해 준다. 사노 씨는 “한 달에 한 번 치매 노인의 병원비를 정산하고, 정기적으로 면회를 가 말벗이 되어 드린다”며 “이웃을 지킨다는 책임감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시민 후견인의 시급은 1600엔(약 1만5000원)으로, 도쿄의 최저시급 1226엔(1만1600원)보다 높다. 후견인 지정 절차도 효율적이다. 한국에선 신청부터 선임까지 최소 6개월 이상 걸리지만 일본은 대체로 2개월이면 된다.후견인이 지정되기 전에도 보호망은 작동한다. 한노시는 판단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아직 법정 후견이 필요할 정도는 아닌 노인을 위해 ‘안심 서포트’ 제도를 운용 중이다. 누가 빼돌리지 못하게 연금이나 수당을 직접 노인에게 전달한다. 저소득층의 경우 후견인의 활동을 관리하는 감독인 비용도 국가가 대신 내준다. 일본도 아직은 사후 조치인 법정후견을 이용하는 노인이 많지만, 임의후견 활성화를 위해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가족 약탈’의 교훈… 전문가와 신탁이 만든 ‘철벽’일본이라고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니다.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성년후견센터 리걸서포트’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일본도 2000년대 초 뼈아픈 성장통을 겪었다”고 입을 모았다. 2016년엔 친족 후견인에 의한 횡령 피해액이 연간 56억 엔(약 520억 원)에 달했다. 자녀가 후견인이 된 뒤 부모 돈을 유흥비로 탕진하거나, 빚을 갚는 데 써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이에 일본 법원은 칼을 빼 들었다. ‘돈’과 ‘돌봄’을 분리하는 대수술을 감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변호사·법무사 등 전문가가 후견인을 맡는 비율은 과거 10%에서 현재 80% 수준으로 상승했다.또 일본은 치매 노인이 큰돈을 신탁은행에 맡겨 두도록 ‘후견제도지원신탁’ 제도를 운영한다. 법원이 친족 후견인에게 신상 보호 권한과 그에 필요한 2000만~3000만 원 정도의 유동성 자금만 맡기고, 상대적으로 큰 자산은 금융기관이 관리하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방식이다. 후견인이 부동산 판 돈 같은 목돈을 찾으려면 반드시 가정법원이 허가해야 한다. 도쿄변호사회 소속 아카누마 야스히로 성년후견전문 변호사는 “이 시스템을 도입한 후 횡령 피해가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최고재판소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맡긴 후견제도지원신탁 금액만 3845억 엔(약 3조6600억 원)에 달했다.최근에는 재산 관리는 전문 후견인이나 신탁은행이, 병원 동행이나 요양원 선택은 가족이 맡는 ‘역할 분담’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탁금을 운용하다가 생긴 손실은 전액 금융사가 책임지도록 했다. 치매에 걸리기 전 믿을 수 있는 가족에게 자산 관리를 위탁하는 ‘가족신탁’도 활성화돼 있다. 다만, 일본은 연금 운용기관 등이 재산을 맡아주는 공공신탁은 운영하고 있지 않다.● 고액 인출하면 은행 직원이 신고일본에선 경제적 학대 조짐이 보이면 지자체가 강력한 권한을 갖고 개입한다. 학대 징후가 보여도 조사관이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인 한국과는 달랐다. 가족이 없는 경우는 물론이고, 가족이 있어도 학대가 의심되면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법원에 후견인을 신청한다. 이 비율이 전체의 30%에 달한다.금융 시스템 역시 촘촘하다. 일본 금융기관은 지자체와 협력해 치매 의심 고객의 거래 패턴을 모니터링한다. 평소와 달리 고액을 찾거나 낯선 인물이 동행해 돈을 찾으려 하면 즉시 지자체에 신고한다. 공무원은 즉각 개입해 사실관계를 확인한다.일본 성년후견법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아라이 마코토 주오대 교수는 “치매 노인의 자산이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후견 제도와 신탁을 결합해 자산은 안전하게 묶어두고, 돌봄에는 유연하게 쓰이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으로 연결됩니다.도쿄=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치매 발병전 스스로 후견인 지정, 한국 229명 vs 일본 12만명[히어로콘텐츠/헌트④-上]

    12만 명 vs 229명.치매로 기억을 잃기 전, 내 자산을 지켜줄 ‘후견인’을 미리 지정한 일본과 한국 노인의 숫자다. 치매 노인 인구는 각각 471만 명과 97만 명으로 4.9배인데, 건강할 때 후견인을 정하는 ‘임의후견’ 이용자는 50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극명한 격차 사이로 한국 치매 노인이 평생 모은 돈은 증발하고 있다.고향 친구에게 속아 땅 800평을 빼앗기고 세상을 떠난 강대용 씨(76) 곁에는 그를 지켜줄 시스템이 전무했다. 반면, 지난달 6일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만난 미와 요시오 씨(78)는 4년 전 자신이 직접 고용한 후견인 덕분에 치매 발병 후에도 재산을 지키며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한국도 12년 전, 임의후견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2023년 기준 신청자는 229명, 실제 이용자는 32명뿐. 사실상 잊힌 제도나 다름없다. 대다수는 치매 발병 후 재산을 두고 가족 간 멱살잡이가 벌어진 뒤에야 법원이 개입하는 ‘법정후견’이라는 사후약방문에 매달린다. 그나마 이조차 이용하는 치매 환자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이유는 명확하다. 복잡한 절차와 높은 비용 때문이다. 수백만 원의 선임 비용과 수십 건에 달하는 제출 서류도 부담인데, 후견인을 감시할 감독인 비용까지 치매 노인이 내야 한다.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는 조기 검진 업무에 허덕여 재산 보호에는 손을 놓았다. 돈을 맡아 보호해 주는 민간 은행의 신탁 상품이 있지만, 이 역시 최소 가입 금액이 수천만 원에 달해 저소득층은 문턱조차 밟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일본은 달랐다. 돈과 돌봄을 분리해 약탈을 원천 봉쇄했다. 예금과 부동산 등 큰 자산은 전문 후견인이나 신탁 상품에 맡겨 묶어두고, 서민에게는 복지사가 저렴한 비용으로 통장을 맡아 관리해 주는 ‘안심 서비스’를 제공해 사각지대를 없앴다. 동네마다 후견지원센터를 두고 모든 절차를 ‘원스톱’ 지원한다. 가족이 없거나 가난한 노인을 위해선 이웃이 시민 후견인으로 나선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파수꾼’을 자처하며 가족의 짐을 덜어줘서 가족은 횡령의 유혹 없이 환자의 돌봄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임의후견 신청자가 약 12만 명, 이용자는 2만 명에 달한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치매 노인과 가족 36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학대 판정서 379건을 전수 분석한 결론은 하나다. ‘치매 머니 사냥’은 개인의 불행이 아닌 시스템의 방조 탓이다. 154조 원에 달하는 한국의 치매 머니를 지키려면,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韓, 후견인 신청 서류만 최소 15종… 법률비용 수백만원재산 보고 등 후견인 부담 과중신탁상품 최소 가입액 수천만원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서 후견-신탁 등 재산관리 필요“수수료 낮춘 공공신탁 도입을”믿었던 고향 친구에게 평생 모은 땅을 뺏기고 세상을 떠난 강대용 씨(73). 2년 전, 아들 강성식 씨(46)에게는 비극을 막을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성식 씨가 후견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 하지만 법원에 제출할 서류 목록을 받아 든 성식 씨는 아연실색했다. 아버지의 모든 금융 거래 명세와 치매 판정서는 물론이고, 13분짜리 후견인 교육 영상을 시청했다는 확인서 등 15종이 넘는 서류를 요구한 것. 생업을 뒤로하고 산더미 같은 서류에 매달릴 수 없어 도움을 청한 법률사무소에서는 “500만 원은 주셔야 한다”고 했다. 성식 씨는 결국 후견인 신청을 포기했다.● ‘건강할 때 미리 후견’, 고작 229명치매 노인의 재산을 지키는 후견 제도는 크게 두 가지다. 건강할 때 미리 믿을 만한 자녀나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정해 두는 ‘임의후견’(예방)과, 이미 치매가 발병해 판단력이 떨어진 뒤 법원이 관리자를 정해 주는 ‘법정후견’(사후 처방)이다. 만약 대용 씨가 미리 후견인을 정했다면, 고향 친구가 돈을 빼돌리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모든 금융 거래가 후견인을 거치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이 중 임의후견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건강할 때의 뜻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3년 제도가 도입된 이래 임의후견 신청자는 229명뿐이고, 후견이 개시된 사례는 32명에 불과하다. 100만 명에 육박하는 치매 환자 규모를 생각하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다름없다.이유는 간단하다. 비싸고 불편해서다. 일단 후견인 공증과 등기를 위한 변호사 법률 비용만 수백만 원이 든다. 어렵사리 절차를 마쳐도 치매가 발병하면 또다시 후견인을 감시할 ‘감독인’을 선임해야 하는데, 그 보수도 오롯이 치매 노인의 재산에서 나간다. 제철웅 한국후견협회 부회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한국은 ‘부정행위 방지’에만 초점을 맞춰 이중 삼중의 고비용 구조를 만들어 놓은 탓에, 서민은 울타리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치매안심센터 256곳, ‘재산 보호’는 남 일선진국과 비교하면 이런 단점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에선 공증 등 법적 절차 없이 지방자치단체에 후견인 지정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신청서는 동네 문구점에서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직접 후견인의 활동을 관리해 일탈을 방지한다.후견인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점도 문제다. 매년 법원에 치매 노인의 재산과 사용 명세를 보고해야 하는데, 어디에 지출했는지 영수증까지 일일이 첨부해야 한다.이를 돕는 기관도 없다. 전국 256곳에 달하는 ‘치매안심센터’는 치매를 조기 진단하고 증상을 관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치매안심센터가 저소득층과 홀몸노인을 위해 공공후견인 지정을 돕는다고 홍보하지만, 수혜자가 올 11월 기준 누적 730명에 불과하다. 독일과 일본 등에 후견 신청뿐 아니라 후견인의 활동을 돕는 전담 기관이 있는 것과 대조된다.치매에 걸린 후 뒤늦게 지정하는 법정후견의 가장 큰 문제는 ‘정신이 온전할 때 고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상 치매 발병 전후로 돌봐주던 가족이나 이웃이 후견인을 자처하는데, 이들이 도리어 ‘사냥꾼’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신탁도 문턱 높아… “국가·은행이 금고지기 돼야”가족도 믿을 수 없고, 후견 비용도 부담스러운 치매 노인을 위해 신탁 상품의 문턱이라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이나 보험사가 치매 노인의 재산을 위탁받아 관리하면서 병원비나 요양비 등 필요한 곳에만 자금을 집행하는 서비스인데, 최소 가입액이 수천만 원에 이르고 수수료도 비싸다. 적은 재산이라도 저렴한 수수료로 맡길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국가가 수수료를 지원하는 방식도 필요하다.재산과 돌봄이 연결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가족이 없는 치매 노인은 신탁 상품에 가입했어도 운용사가 요양시설 입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홀몸 치매 노인만이라도 신탁 제도와 돌봄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궁극적으로는 ‘공공신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공단 등 공공기관이 신탁 기관이 돼주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정부 지원으로 세운 비영리 법인이 저렴한 수수료로 신탁 서비스를 제공한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공신탁을 통해 치매 노인의 자산을 안전하게 묶어두고, 이를 돌봄 서비스 비용으로만 지출되도록 연결한다면 치매 환자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매 노인 거래 땐 은행 직원에게 알려야”제도 밖에서는 ‘정보의 단절’이 약탈을 부추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치매 등급 판정 정보’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공유되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목 아래, 치매라는 질병 정보가 금융 시스템과 단절된 것이다.이 틈을 타 사냥꾼들은 활개 친다. 은행 창구 직원은 통장의 주인이 중증 치매 환자인지 알 길이 없다. 대용 씨의 신분증과 도장을 든 ‘고향 친구’가 혼자 은행을 찾았을 때 직원은 의심 없이 돈을 내줬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데도 방치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돈이 빠져나간 뒤 학대 정황을 포착했을 때 이를 입증할 수단이 없는 것도 문제다. 학대 조사관이 현장에 나가도, 가해자로 의심되는 가족이나 요양보호사가 “생활비로 썼다”며 통장 내역 공개를 거부하면 강제할 권한이 없다.경찰 수사도 마찬가지다. ‘친족상도례(가족 간 재산 범죄는 처벌 면제)’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수사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족 간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며 반려되기 일쑤다. 한 학대 조사관은 “계좌를 열어볼 권한조차 없어 사실상 맨손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으로 연결됩니다.도쿄=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8일 만에 입 연 박나래 “법적 절차 진행중”

    매니저에 대한 갑질 논란과 불법 의료행위 의혹이 불거진 개그우먼 박나래 씨(40·사진)가 16일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한 지 8일 만이다. 이날 박 씨는 한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영상을 통해 “최근 제기된 사안들로 인해 많은 분들에게 걱정과 피로를 드린 점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현재 제기된 사안들은 사실관계를 차분히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 있어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더 이상의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 영상 이후로는 관련 말씀을 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범죄조사부는 임현택 전 대한의료협회 회장이 박 씨 의혹과 관련해 ‘주사 이모’를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12일 접수했으며, 수사가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경찰로 사건을 넘겼다고 밝혔다. 임 전 회장은 또 박 씨가 또 다른 ‘링거 이모’로부터도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박 씨와 성명 불상의 해당 인물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요양원 321곳 중 85곳 “치매발병후 기초수급자 전락 사례 있어”[히어로콘텐츠/헌트③-下]

    전국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2023년 말 기준 5917곳. 이곳에 머무는 치매 환자는 약 31만3250명이다. 전체 치매 환자 10명 중 3명이 집을 떠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우리요양원 7층의 연순과 옥분, 명자는 그중 셋일 뿐이다.이들처럼 새어 나가는 기억과 재산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치매 머니 사냥’의 피해자는 전국 요양시설에 얼마나 퍼져 있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10월 31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와 함께 전국 요양원 321곳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벌였다.그 결과, 곳곳에서 치매 노인이 자산을 뺏기고 방치되는 징후가 뚜렷했다. 설문에 응답한 시설 중 54곳(16.8%)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금융 범죄 피해를 본 치매 노인 사례를 직접 목격했거나 알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징후도 뚜렷했다. “입소 이후 노인의 자산이 급격히 감소한 경우가 있다”고 답한 곳은 33곳(10.3%)이었다. 멀쩡하던 노인이 치매 발병 후 빈털터리가 되어 “기초생활 수급자로 전락했다”는 응답도 85곳(26.5%)에 달했다. 시설 입소 노인 약 10명 중 3명은 치매가 온 뒤 평생 모은 재산을 잃고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치매 노인의 ‘금융 주권’은 사실상 박탈 상태였다. 입소 노인이 자기 재산을 직접 관리한다고 응답한 시설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반면 320곳은 “배우자나 자녀 등 보호자가 전적으로 관리한다”고 답했다. 법적 안전망인 후견 제도를 이용하는 노인이 있다는 곳은 단 1곳에 불과했다. 가족에게 통장을 맡긴 대가는 가혹했다. 117곳(36.4%)은 “재산을 가져간 보호자가 시설 비용조차 제대로 내지 않아 체납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돈은 가족이 쓰고, 빚은 노인이 지는 구조다.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고립’이다. 208곳(64.8%)이 “특정 가족에게 입원 사실을 알리지 말라거나 면회를 막아 달라는 식의 ‘사생활 보호 조치’를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 요양원 관계자는 “재산 분쟁 중인 자녀가 부모를 독점하려고 면회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보호자 권한이 막강해 요양원이 개입하거나 신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치매머니 사냥’ 요양원의 비극…701호 동생, 702호 아들에 뜯겨[히어로콘텐츠/헌트③-上]

    흰색 린넨 천과 기저귀, 일회용 비닐봉지를 산더미처럼 실은 은색 카트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밤새 어르신들이 배설한 기저귀들이 쏟아져 나오자, 비릿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소독약 향을 뚫고 복도로 번졌다. ‘웅-웅-’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의 기계음과 요양보호사의 분주한 발소리가 적막했던 복도를 가득 메운다.카트를 밀고 도착한 706호. 절반가량 닫혀 있던 미닫이문을 활짝 열자, 4개의 침상 위 허공을 부유하던 8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문 쪽을 향했다. 어떤 눈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졸음이 가득하다. 요양보호사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젖은 기저귀를 갈아치우고 침상에 새 린넨을 끼우는 동안 블라인드가 내려진 창밖이 점차 밝아왔다. 지난달 19일 우리요양원 7층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됐다.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이 평범한 요양원의 풍경 뒤에는 전국적으로 만연한 ‘약탈’의 비극이 숨겨져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새 다달이 기초연금을 뺏겨 통장 잔고가 바닥 난 701호 노인, 1년 넘게 요양원비가 체납됐지만 자녀는 면회를 오지 않는 703호 노인, 입소 몇 달 만에 재산의 8할이 증발해 버린 702호 노인….이들은 전국 5917개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31만 명이 넘는 치매 환자 중 세 명일 뿐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요양시설 321곳을 접촉한 결과, 54곳에서 ‘치매머니 사냥’의 신음이 포착됐다. 대도시의 요양병원부터 시골 마을의 작은 요양원까지. 입소 노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이나 이웃이라는 이름의 사냥꾼에게 재산을 뜯기고 있었다. 재산을 지켜줄 ‘후견인’을 둔 노인이 있다는 요양원은 단 1곳에 불과했다. 취재팀은 이중 치매 노인 43명이 생활하는 우리요양원의 7층 병동에서 24시간을 보내며 이들의 하루를 관찰했다. 특히 자산을 잃고 세상과 단절된 세 노인의 삶을 들여다봤다. 허술한 보호 시스템 틈새엔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노인의 재산을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사각지대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기초연금 뜯기고 ‘잔액 0원’ 701호, 요양원비 최장 연체 703호아들에 전재산 80% 뜯긴 702호… 요양원 7층의 ‘조용한 착취’복도 양쪽으로 8평 남짓한 방이 3개씩 마주 보고 있다. 그 안에는 전동침대에서 하루를 보내는 노인 서너 명이 각각 누워있다. 7층에서 지내는 치매 노인 18명 중 17명은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하다. 직원 책상에 운영일지가 클립에 꽂혀 팔락거렸다. ‘야간→주간 전달사항’ 칸에는 밤새 벌어진 전쟁 같은 기록이 적혀 있다. ‘05시까지 안 잠. 섬망 증상’ ‘이불 던지심’… 그 중 눈에 띄는 기록이 보인다. ‘먹을 거 찾아 배회’. 와상 환자 사이에서 유일하게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김연순(가명·84) 씨다.● 오전 10시, 701호 ‘화려한 빈곤’ 김연순… 행여나 다치면 입원수속도 어려워복도 끝 10평 남짓한 701호. 연순이 혼자 지내는 사실상의 격리실이다. 밤마다 보행보조기를 끌고 복도를 서성이는 배회 증상과, 자신을 과시하는 조현 증상 때문이다. 문을 열자 연순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백성들이 다 착하고 아름다워.”그는 요양원에서 ‘대통령’으로 통한다. 겉모습부터 남다르다. 머리에는 분홍색 터번을 두르고 붉은 카네이션 핀을 꽂았다. 호피 무늬 사각 안경은 코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고, 왼팔에는 구슬 팔찌 3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내가 명문 사범대를 나와서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다 해. ABCDE… 마이 마더, 화더, 브라더.”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그의 과거는 화려했다. 하지만 요양원 직원 중 누구도 그 말이 사실인지 알지 못한다. 확실한 건, 화려한 치장 뒤 현실의 잔고는 ‘0원’이라는 사실이다.연순은 5년 전부터 요양원에서 살고 있다. 2020년 8월 단칸방에서 혼자 곰팡이가 핀 음식으로 연명하는 그를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발견했다. 매달 25일 나오는 기초연금 34만 원이 유일한 수입이다. 그러나 연순은 이 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연순이 ‘미스터 코리아’라고 부르는 그의 남동생이 2년 전 통장을 가져가 버리고 1년 넘게 연순을 찾지 않고 있어서다.지난봄, 연순이 간식을 찾자 요양원 측은 그의 체크카드로 1만4000원어치 빵을 결제하려 했다. 그러나 포스기에는 ‘잔액 부족’ 알람이 떴다. 사회복지사가 연순의 올케에게 연락하자 그는 달랑 5만 원만 채워 넣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요양원 측이 “어르신에게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연순은 이날 오전 침대에 앉아 천진하게 카스타드 빵 봉지를 만지작거리더니 연달아 2개를 해치웠다. 통장의 돈이 아니라, 정부가 지급한 소비쿠폰으로 사둔 빵이었다.비극은 단순한 간식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텅 빈 통장은 생명과 직결된다. 고령의 치매 노인은 낙상이 잦다. 뼈가 부러져도 본인 통장에 돈이 없으면 입원 수속부터 막힌다. 시청 긴급지원에 의존하거나, 치료를 포기하고 요양원으로 다시 데려와야 한다. 가벼운 골절도 때를 놓치면 패혈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현행법상 가족이 있는 치매 노인의 통장 관리에 공공이 개입하기는 어렵다. 재산을 은행이 대신 맡아주는 신탁 서비스는 문턱이 높다.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는 손을 놓고, 보호자는 그 점을 악용해 연금을 가로챈다.더 큰 문제는 ‘죽음 이후’다. 남동생 부부의 마지막 면회는 지난해 10월. 통장 잔고가 없는 무연고에 가까운 노인이 사망할 경우, 장례를 치를 비용조차 없다. 요양원 측은 연순 앞으로 나온 문화누리카드 잔액 11만 원을 쓰지 않고 남겨뒀다. 훗날 영정사진이라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오후 2시, 703호 임옥분의 은색 손거울… 기초연금, 아들 집 관리비로 쓰여703호 안쪽 두 번째 침상에 나른한 햇살이 비쳤다. 눈만 끔뻑이며 오전 시간을 보낸 임옥분(가명·85) 씨는 “식사 왔어요”라는 외침에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침대 등받이를 세우고 턱받이를 맸다. 불고기와 계란국이 나왔지만, 몇 숟가락 뜨지 않고 도로 자리에 누웠다.그는 은색 손거울을 조심스레 들여다봤다. 3년 전 가을 입소할 때 아들이 사준 거울이다. “나도 좀 보자.” 옆 침대 할머니가 손을 뻗자, 옥분은 화들짝 놀라며 거울을 가슴팍에 품었다. 그리고는 거울면이 바닥에 닿도록 조심스럽게 엎어놓았다. 닳을까 겁난다는 듯.나무 사물함에는 사진 3장이 붙어 있었다. 산악회 빨간 유니폼을 맞춰 입은 50대, 철쭉꽃 앞의 60대, 옥색 정장을 입은 70대. 모두 옥분의 과거다. 옥분은 하루 종일 거울 속의 늙은 자신과 사진 속의 젊은 자신을 번갈아 응시한다.그런 옥분에게도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 아들 보고 싶어. 우리 아들 요즘 왜 안 온대?” 그러나 아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온 건 1월 말. 옥분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 있다.아들은 지난해 여름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그즈음부터 요양원비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연락도 잘 닿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해 6월부터 옥분의 앞으로 체납된 원비만 602만7000원, 14개월 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요양원의 최장 체납자가 됐다. 4월 체납액이 700만 원을 넘자 요양원 측은 아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100만 원만 겨우 갚았다.지난해 옥분은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기회가 있었다. 수급자가 되면 요양원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옥분 명의의 임대주택이 걸림돌이 됐다. 현재 임대주택에는 아들이 살고 있는데, 옥분이 요양원으로 주소를 옮기면 임대주택을 처분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은 옥분의 수급자 등록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옥분의 기초연금은 고스란히 그 집의 관리비로 빠져나간다.요양원장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다. “기초연금은 어르신 본인을 위해 써야 합니다.” 아들의 대답은 당당했다. “생활비로 쓴 거 아니에요. 어머니 명의 아파트 관리비 내는 게 무슨 문제입니까?”옥분처럼 치매 노인을 빚쟁이로 만들어놓고, 가족이 그 돈을 대신 쓰는 경우는 흔하다. 재산을 지켜주는 후견 제도가 있지만, 옥분처럼 멀쩡한 자녀가 버티고 있는 경우 제3자가 개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결국 옥분은 아들의 집을 지키기 위한 ‘인질’이 되어 요양원 침대에 묶여 있는 셈이다.● 저녁 7시, 702호 최명자의 ‘증발한 8000만 원’… 요양원비 낸다며 돈 가로채 가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치매 노인들의 불안은 커진다. 일과를 마쳤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착각하는 ‘일몰 증후군’이다. 702호 최명자(가명·84) 씨는 문을 등지고 누워 있었다. 올 2월 요양원에 들어온 그의 하루 중 절반을 눈을 감은 채 보낸다. 그럴 때면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베개를 침대 밖으로 던지고 웅크려 있다.명자가 유일하게 미소 짓는 순간은 가족사진을 꺼내볼 때다. 자녀들과 요양원에 오기 전 안방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새끼들 다 애미 애비 닮아서 이뻐. 여기는 우리 손주. 잘생겼지?”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동자가 한결 또렷했다.앞선 두 노인과 달리 명자의 가족은 겉보기에 문제가 없다. 큰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찾아온다. 그냥 오는 법도 없다. 명자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요양원 몰래 우유병에 담아와 건넨다. “어머니, 한 잔 드세요.” 아들의 목소리에 명자의 눈빛이 소녀처럼 반짝인다. 요양원비도 밀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이면엔 전 재산의 8할을 빼앗긴 비극이 숨어 있다.명자는 요양원에 입소할 때만 해도 통장에 1억 원이 넘는 돈이 있었다. 그러나 8개월 만에 8000만 원이 증발했다. 잔액을 발견한 다른 자녀가 “어머니 재산이 어디 갔느냐”며 따지자 큰아들은 “요양원비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8개월 치 요양원비는 600만 원이었다. 계산이 맞지 않자 형제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그래도 사라진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다른 학대의 증거가 없기에 요양원은 명자 가족의 일에 개입하기 어렵다. 통장 내역은 보호자만 볼 수 있다. 설사 신고해도 경찰이 가족 간의 계좌 이체 내역을 ‘횡령’으로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족 간 재산 범죄는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의 관습과 맞물려 수사기관조차 개입을 꺼린다.자녀들은 부모의 돈을 ‘어차피 내가 물려받을 돈’이라고 인식하고,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 미리 당겨쓰는 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가 치매로 의사 결정 능력을 잃는 순간, 부모의 통장은 자녀들의 ‘공용 지갑’이 되어버린다. 요양원 관계자는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치매 노인의 자산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경제적 학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집 앞에 감이 많이 열렸을 건데….” 평생 일군 자산이 요양원에 들어온 지 몇 달 만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명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치매노인 울타리 없는 요양원… “수급자 통장이라도 공적 관리를”한밤, 요양원은 침묵에 잠겼다. 복도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 불빛만 붉게 깜빡였다. 취재팀이 지켜본 우리요양원의 풍경은 치매 노인 100만 명 중 상당수가 경제권을 잃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연순처럼 가족이 돈만 챙기고 연락을 끊어 ‘현대판 고려장’을 당해도, 옥분처럼 기초연금으로 자녀의 집 관리비를 내도, 명자처럼 멀쩡한 가족이 수천만 원을 몰래 가져가도, 지금의 시스템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양원비만 제때 입금되면,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만 있으면, 국가는 그 문 뒤에서 벌어지는 약탈을 ‘사적인 영역’이라며 눈감는다.요양원이 방문객으로 가장 붐볐을 때는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발행한 9월이었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가족들이 “소비쿠폰 선불 카드를 받으러 왔다”며 요양원을 찾았다. 이중 태반은 가족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떠났다.요양원에서 실질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한정적이다. 학대 신고를 해도 통장을 압류해서 밀린 요양원비를 갚아주는 절차는 없다. 일각에서는 “입소한 기초생활 수급자의 통장만이라도 공적으로 관리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양 능력이 없다고 판정된 보호자에게통장을 맡기느니, 공공이 대신 관리하며 요양원비 등을 내주자는 얘기다.다음 날 아침, 취재진이 요양원을 나설 때까지 옥분의 은색 거울은 침대 옆 협탁에 뒤집힌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엎어져 있어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거울처럼, 우리 사회의 감시망도 홀로 남겨진 이들을 전혀 비추지 못하고 있었다. 닫힌 미닫이문 너머로 거친 숨소리만이 새어 나왔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치매 엄마 연금까지 뜯어간 자식들…“돌볼 사람은 가족뿐” 면죄부[히어로콘텐츠/헌트②-上]

    〈2-상〉 학대 신고돼도 10%만 사법처리치매노인 자산 노린 범죄 급증, 실제 처벌은 0.1%도 안돼가해자 96%가 가족-요양시설 종사자-지인… 파악 쉽지 않아가을이 깊어 가던 2021년 10월 충남 논산시의 한 거리. 낡은 옷차림의 치매 노인 정순호(가명·71) 씨가 하염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노인보호전문기관 조사관이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조차 가물가물해했다. 하나의 문장만 또렷하게 반복했다. “돈을…. 돈을 되찾아야 돼.”조사관이 확인한 순호의 통장은 참혹했다. 2020년 7월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2억 원 넘는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치매에 걸린 후 통장 관리를 도맡았던 옛 직장 후배(69)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뭉칫돈이 후배의 딸과 지인의 계좌로 송금된 내역이 확인됐기 때문이다.하지만 조사관은 끝내 후배를 경찰에 넘기지 못했다. 후배는 항상 순호가 직접 돈을 보내게 했고, 치매 환자인 순호의 오락가락하는 진술로는 횡령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관 측에서 후견인이 되어 돈을 되찾으려 했지만, 후배의 딸과 지인은 그새 파산 선고 뒤에 숨은 상태였다. 결국 순호는 돈을 다 돌려받지 못한 채 지난달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고통과 죽음은 노인보호전문기관의 한 장짜리 ‘학대 판정서’ 속에만 남았다.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범죄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실태 조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얼마나 많은 재산을 잃는지,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파악조차 안 된다. 지난 5년간(2020~2024년) 금융 학대에 희생된 치매 환자는 6만7443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유죄 판결문에 나타난 피해자는 고작 49명이었다. 피해자가 1000명이라면, 법의 심판을 받는 가해자는 1명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보건복지부 산하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잠들어 있던 5년 치 ‘치매 노인 경제적 학대’ 판정서 379건을 분석했다. 공식 통계에 없는 ‘암수(暗數) 치매머니 사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 중 수사기관에서 인지한 사건은 34건(8.9%)뿐. 나머지 대다수는 치매 노인의 진술이라 믿기 어렵다며, 가해자가 유일한 혈육이라 달리 돌볼 사람이 없다며 제대로 된 조사로 이어지지 않았다.‘사냥꾼’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해자의 95.8%는 가족이나 요양시설 종사자, 지인 등 피해자와 가까운 이들이었다. 가장 믿었던 혈육과 돌보미가 노인의 판단력이 떨어지는 틈을 타 포식자로 돌변한 것이다. 방식은 치밀하고 다양했다. 치매 부모의 연금에 기생해 야금야금 돈을 빼가는 ‘빨대형’과 폭언과 흉기를 동원해 뜯어내는 ‘협박형’, 인감증명서를 위조해 부동산이나 목돈을 한꺼번에 가로채는 ‘거액 사냥형’까지. 치매 노인의 노후 자산은 ‘눈먼 돈’이 되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주머니로 사라지고 있었다.“가족인데 어떻게 감옥 보내요”치매머니 사냥 10건 중 9건 묻혀‘혈육 학대’ 피해자 다수 조사 거부‘돌볼 사람이 가족뿐’ 이유로 면죄부“횡설수설 치매 노인 말 믿냐” 역공노인전문기관, 금융자료 요청 못해경제적 학대 43% ‘의심’ 단계서 종결2020년 4월 21일, 충남 아산시의 한 주택. “아들이 치매 어머니를 때리고 돈을 빼앗아간다”는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도착한 노인보호전문기관 조사관의 눈에 들어온 건 이혜자(가명·87) 씨의 퉁퉁 부어오른 콧잔등과 깨진 발톱이었다. 양아들이 기초생활 생계급여 통장을 내놓으라며 폭행한 흔적이었다. 패륜은 처음이 아니었다. 3년 전에도 생계급여를 빼돌리려다 신고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씨는 이번에도 조사관의 손을 뿌리쳤다. “내 자식인데 어떻게 감옥에 보내요….” 결국 조사관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취재팀이 입수한 379건의 학대 판정서에는 이처럼 법망이 닿지 않는 ‘치매 머니 사냥’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수사기관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건들이 가벼워서였을까. 판정서 속 현실은 정반대였다. 치매라서 진술을 믿어주지 않았고, 어렵사리 증거를 찾아도 유일한 혈육이라며 가해자는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노인은 지옥 같은 현실에 다시 남겨졌다.먼지 쌓인 판정서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였다. 치매 노인이 이미 피해를 당한 뒤여서 늦고, 그의 재산을 지켜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면죄부“이렇게 때렸는데 죽지도 않네.” 남편은 아내(89)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효자손을 휘둘렀다. 2022년 4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치매 노인이 당한 건 강도에 가까운 행위였다. 하지만 조사관은 이 사건에 ‘응급’ 딱지를 붙이고도 수사 의뢰를 하지 못했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기관은 부부를 분리하고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전북의 한 치매 노인(80)이 8년 넘게 재산을 뜯겼지만 기관이 개입하지 못한 이유도 ‘가해자가 아들이라서’였다. 2014년 아들이 생계급여와 연금을 몽땅 가로채고 어머니에게는 월 10만 원만 쥐여준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노인은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됐다. 그리고 8년이 지난 2022년 10월, 똑같은 신고가 접수됐다. 아들은 여전히 어머니의 통장을 쥐고 있었고, 어머니의 삶은 더 피폐해져 있었다.‘돌볼 사람이 가족뿐’이라는 이유가 면죄부가 되기도 한다. 2021년 전북에서 한 치매 노인(88)이 ‘딸이 통장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통장에는 10만, 20만 원을 20여 차례에 걸쳐 빼간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딸에게 내려진 조치는 재발 방지 교육뿐이었다. 노인을 돌볼 혈육이 그 딸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이 답답한 건 노인보호전문기관도 마찬가지다. 가정 내 사건 대부분은 처벌이 어려운 데다, 가해자를 잠시 분리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한 조사관은 “친족 간 경제적 학대는 ‘친족상도례’로 인해 대부분 진행되지 않고, ‘병원비는 냈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민사로 해결할 사안으로 보고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라고 토로했다.● ‘치매’ 자체를 방패 삼는 가해자흐릿한 기억력과 판단력. 치매라는 병은 가해자에게는 법적 방패가 된다. 물증이 현금 인출 기록뿐일 때 피해자마저 횡설수설하면 수사는 제자리를 걷는다.지난해 10월 충남에 사는 치매 노인에게 벌어진 일도 이와 같았다. 통장에서 두 차례에 걸쳐 750만 원이 인출됐다. 폐쇄회로(CC)TV에는 요양보호사가 돈을 뽑는 장면이 선명하게 찍혔다. 하지만 경찰의 결론은 ‘무혐의’였다. 요양보호사가 “빌린 돈”이라고 딱 잡아뗀 반면, 치매 노인의 진술은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수사 착수 후 슬그머니 일부 금액을 돌려준 점도 면죄부가 됐다. 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방법이 없었다. 법망을 비웃듯, 그는 1년 뒤 같은 노인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몰래 개통해 쓰다가 다시 적발됐다.실제 가해자 대다수는 치매 환자의 판단력을 공격했다. 2020년 1월 경북 영천시. 사위가 치매 장모(78)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통장을 들고 도망쳤다. 그는 장모 명의로 몰래 차까지 뽑았다. 1년 전에도 장모를 폭행하고 돈을 빼앗아 재판에 넘겨졌지만 벌금형에 그친 경험이 있는 사위는 당당했다. 조사 과정에서 “미친 사람 얘기를 믿는 거냐”며 도리어 따지다 잠적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에게 숙소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야 했다.아예 조사까지 가지도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2021년 11월 서울, 교회 목사로부터 생계급여를 착취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치매인 데다 청력도 떨어져 진술 확보가 불가능했다. 결국 목사에게 경제적 학대의 위험성을 알려주며 예방 교육을 하는 걸로 사건은 허무하게 종결됐다.한 노인보호전문기관장은 “치매 노인 대다수는 진술이 오락가락하거나, 피해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상황’이 된다”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무리해서 수사 의뢰도 해봤지만, 증거 부족 등으로 처벌까지 이어진 사례는 드물었다”고 했다.● 권한 없어 “눈 감고 조사하는 거나 마찬가지”학대를 막아야 할 노인보호전문기관의 두 눈은 가려져 있다. 통장 명세를 확인하거나 금융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내가 안 가져갔다”거나 “노인을 위해 썼다”고 우기면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2021년 9월 경남의 치매 노인(82) 사례가 대표적이다. 딸이 어머니의 적금을 멋대로 해지하고 기초연금을 빼돌린 정황이 포착됐지만, 기관은 금융 기록과 현금인출기 앞 CCTV를 볼 수 없었다. 결국 물증이 없어 ‘잠재 학대(의심)’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제적 학대 379건 중 164건(43.2%)이 이처럼 의심 단계에서 표지를 덮었다.가해자가 조사를 거부하면 강제할 수도 없다. 경남에서는 아들이 어머니를 “죽여버린다”고 협박하며 수백만 원을 갈취해 조사관이 출동했지만, 아들의 거센 반발에 피해 노인 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인력 부족도 심각한 걸림돌이다. 조사관으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는 전국에 400명도 되지 않는다. 오복경 충남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장은 “신고가 접수되면 72시간 이내에 2인 1조로 출동하는 게 원칙이지만, 인력난 때문에 증거 확보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다”라고 토로했다.‘암수(暗數) 치매 머니 사냥’ 이렇게 추산했습니다.치매 노인의 재산을 노린 범죄 피해의 규모는 거대한 그늘 속에 있다. 검경은 사기나 횡령 사건의 피해자 가운데 치매 환자를 따로 분류하지 않고, 관련 법원 통계도 없다. 치매 노인 100만 명 가운데 재산을 지킬 후견인 제도나 은행 신탁 상품을 이용하는 이들이 극소수임을 고려하면, 범죄 실태부터 무관심 속에 방치된 셈이다.법원도서관에서 확인한 최근 5년 치 금융범죄 유죄 판결문 중 치매 환자로 명기된 피해자는 고작 49명. 한국노년학회와 공동 추산한 전체 규모(6만7443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학회는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의 연간 경제적 학대 피해율(0.4%)에 국내 치매 인구를 대입한 뒤, 치매 환자가 일반 노인보다 금융 착취에 3.7배 더 취약하다는 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해 이 수치를 도출했다.이런 상황에서 ‘치매 노인 경제적 학대 판정서’는 숨겨진 사냥의 실태를 보여주는 유일한 단서였다. 보건복지부 위탁 기관인 전국 38개 노인보호전문기관이 현장에서 작성한 이 기록에는 재판에 넘겨지지 못한 수많은 사건의 전말이 담겨 있었다. 취재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5년 치 판정서 원문을 전수 확보하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그 속에 숨은 가해자의 민낯과 사법 시스템의 구멍을 분석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돈 뺏어간 96%가 자식·요양사·지인… ‘양자’ 신고해 상속 노리기도[히어로콘텐츠/헌트②-下]

    〈2-하〉 가까운 이들을 조심하라가족 52%-시설종사자 32% 차지치매노모 연금-급여에 ‘빨대’ 꽂고요양원선 돈 빼내 해외여행 경비로서류 위조해 부동산-목돈 빼앗기도그렇다면 ‘치매 머니 사냥꾼’은 누구이며, 어떤 수법으로 노인의 자산을 노렸을까. 379건의 학대 판정서에 기록된 가해자들은 낯선 사기꾼이 아니었다. 95.8%가 가족이나 요양보호사, 지인 등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아들딸 등 가족(52.0%)이었다. 요양원·요양병원 등 시설 종사자(31.9%)와 이웃 등 지인(11.9%)이 뒤를 이었다.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던 이들은 노인의 기억이 흐릿해지는 틈을 타 가장 잔인한 포식자로 돌변했다. 수법은 치밀했다. 누군가는 노인을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연금 통장에 빨대를 꽂았고, 누군가는 아예 인감을 통째로 위조해 전 재산을 자기 명의로 옮겼다.● 믿음을 뜯어먹은 혈육과 보호사, 가짜 친구치매 노인은 통장과 도장을 본능적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피붙이’에게 건넨다. 그러나 이 믿음은 곧잘 사냥의 빌미가 됐다. 전체 절반을 넘는 197건의 가해자가 가족이었다.2022년 11월 울산의 김선자(가명·79) 씨는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아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통째로 내어줬다. ‘아들이 알아서 잘 관리해 주겠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돈을 받은 아들은 어머니를 방치한 채 종적을 감췄다. 보증금은 아들의 주머니로 들어갔고, 선자는 지금도 거리를 배회하며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돌봄’을 가장한 시설 종사자의 약탈도 121건에 달했다. 이들은 가족보다 더 가까이서 노인을 돌본다는 점을 악용해 ‘감시 없는 사냥’을 즐겼다. 지난해 1월 경북의 한 요양원에서는 원장과 사무국장, 사회복지사가 한통속이 되어 입소 노인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이들은 노인들의 통장에서 돈을 빼내 직원들의 해외여행 경비로 썼고, 요양원 소파를 수리했다.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종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며 활동비 명목으로 노인들의 쌈짓돈을 빼돌리기도 했다.무단으로 자산을 사용하고 나서 ‘치매 노인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23년 강원의 한 요양원장은 치매 노인 3명의 자산을 대신 관리해 준다는 명목으로 690만 원을 자신의 통장에 옮겼다가 가족이 따지자 그제야 돌려줬다. 그는 심지어 숨진 치매 노인의 물건도 몰래 팔아 운영비에 보탠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2월 충남에서는 방문요양보호사가 혼자 사는 치매 노인(75)의 신분증을 몰래 가져가 대출을 받았다. 갚으라는 독촉장이 날아오고 나서야 노인은 자신이 빚더미에 앉은 것을 알았다.‘외로움’을 파고드는 지인 사냥꾼도 45건이나 됐다. 2021년 8월, 제주에 사는 최석제(가명·77) 씨는 치매 진단 후 우울해하던 차에 옛 직장 후배의 방문을 받았다. 후배는 말벗을 자처하고 석제를 돕겠다며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냈고, 그의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챙긴 뒤 사라졌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석제는 배신감과 빚만 떠안은 채 노년을 보내고 있다.● 기생, 협박, 그리고 ‘한 방’사냥꾼이 노인의 지갑을 여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다. 연금을 착취하는 ‘기생형’, 폭력으로 돈을 뜯어내는 ‘협박형’, 목돈을 한 번에 가로채는 ‘거액 사냥형’이다.126건은 별다른 직업 없이 치매 노인의 연금이나 기초생활 생계급여에 기생하는 유형이었다. 이들은 노인이 죽을 때까지 빨대를 꽂고 소액을 야금야금 빼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2022년 10월 서울의 한 요양원에 입소한 치매 환자(81)는 매달 100만 원씩 들어오는 공무원 연금 덕에 노후 걱정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통장을 관리하겠다고 가져간 딸은 어머니의 연금으로 인터넷 쇼핑을 즐겼다. 정작 어머니의 요양원비는 두 달 넘게 연체됐다.인지 능력이 떨어진 노인을 공포로 몰아넣어 돈을 뜯어내는 방식도 45건에 달했다. 2023년 4월 7일 전북의 82세 노인은 딸이 들이민 과도 앞에서 벌벌 떨었다. 딸은 “죽여버린다”며 곽 씨를 위협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쓰던 어머니의 통장을 감췄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2016년부터 네 차례나 딸을 신고했지만, 그때마다 상황은 제자리걸음이었다.인감증명서나 등기 서류를 위조해 부동산이나 목돈을 한꺼번에 가로채는 대담한 수법은 40건이었다. 경남 창원시의 94세 노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자 몰래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뒤, 아버지 집 명의를 자기 앞으로 돌렸다.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 통장에 있던 5500만 원까지 싹 찾아갔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일당 2만5000원짜리 잔디 깎기 일을 하며 평생 모은 피땀 어린 돈이었다. 뒤늦게 다른 가족들이 사실을 알고 돈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들은 이미 돈을 자기 아들(손자)에게 송금한 뒤 사망해 버린 뒤였다.경북에서는 2022년 7월 이웃집 사위가 치매 노인을 시청에 데려가 양자 입양 신고를 하고 재산 상속권을 노린 사건도 있었다. 노인은 “갸가 와 그라노? 참 희한하다”며 양자 신고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조사에 나서자 그는 뻔뻔하게 “우리 엄마 지금 어딨어요?”라며 피해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한국노년학회 이연지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학대는 대부분 신체적·정서적 학대 신고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며 “수면 아래 숨겨진 사냥은 우리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조직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딸’ 같아서…상가 담보로 내준 치매부부, 6억 털렸다[히어로콘텐츠/헌트①-下]

    〈1-하〉 이웃의 얼굴을 한 사냥꾼어떤 치매 환자에게 사냥꾼은 가까운 이웃의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서울 종로구 서향분 씨(86) 부부의 옆집에 심영이(가명·65)가 이사 온 건 2014년 2월. 영이는 사근사근한 말투로 금세 노부부의 생활에 들어왔다. 밥을 같이 먹고, 생일이면 케이크의 초를 같이 불었다. 몸이 불편한 부부를 위해 시장에서 장을 봐다 주기도 했다. 치매 남편과 둘이 살던 향분에게 영이는 오랜만에 생긴 식구 같았다.● 이웃의 탈을 쓴 사냥꾼이혼 후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어린 자녀 셋을 홀로 키운다는 영이에게 향분 부부는 마음이 쓰였다. 두 사람도 한때 식당을 운영했다. 광화문에 해장국집을 차려 장사를 키운 끝에 상가 한 채를 마련했다. 그 상가가 노부부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는 걸 영이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2015년 4월, 여느 날처럼 식사하던 중 영이는 처음으로 돈 얘기를 꺼냈다. “우리 딸이 좋은 대학에 붙었는데 등록금 650만 원이 없어서 입학을 못 하게 생겼어요.” 눈물을 흘리는 영이에게 향분은 망설임 없이 장롱 속 통장을 열었다. 그 등록금이 수년에 걸쳐 집안 전체를 좀먹는 ‘사기의 씨앗’이 될 줄은 모른 채.그 후로도 영이는 명목만 바꿔가며 돈을 계속 가져갔다. 생활비가 모자란다며 100만 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200만 원. 어쩌다 한 번 갚기도 하며 믿음을 더 굳혔다. 돈 얘기를 꺼낼 때면 영이는 향분의 팔짱을 끼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며느리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향분은 “그런 소리 할 거면 오지 마라”며 초등학생 손자의 용돈 통장까지 영이에게 넘겨줬다. 영이는 거칠 게 없었다. 은행에 갈 때도 향분 남편의 팔짱을 끼고 창구에 섰다. 청원경찰이 “할아버지랑 늘 오는 그 여자, 딸 아니냐”라고 기억할 정도였다.2016년 무렵, 영이는 한 단계 더 대담한 얘기를 꺼냈다. “동탄에 상속받을 땅이 있는데 사촌과 소송을 해야 합니다. 소송 비용만 도와주시면 바로 갚을게요.” 향분 부부는 그 말을 믿고 종로 상가를 담보로 8억7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그때부터 돈은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2017년 7월 3일 1억 원, 9월 28일 2억7900만 원…. 차용증에 남은 기록만 따져도 영이가 가져간 돈은 39차례, 총 6억2680만 원에 이른다.“내일까지 갚겠다” “오후 3시까지 꼭 갚겠다”고 적힌 차용증과 각서가 수십 장으로 늘었지만 돈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부부의 삶은 서서히 무너졌다. 2021년, 향분은 돈을 받지 못하는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병문안을 와서도 영이는 “금방 갚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일가족을 좀먹다부부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결국 이듬해 남편은 스트레스로 병세가 악화하며 숨을 거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이는 갚을 것”이라고 믿었다.남편이 떠난 뒤 향분의 삶도 급격히 무너졌다. 부부가 평생 일궈낸 종로 상가는 결국 경매로 넘어갔고, 향분은 식음을 전폐했다. 우울증과 불면에 시달리다 4층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 충격은 뇌까지 갉아먹었다. 가스 불을 켜두고 잊거나, 있지도 않은 사람을 찾더니, 결국 그해 치매 판정을 받았다. 주치의는 “사기를 당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치매를 가속했다”고 진단했다. 이후 소송을 맡아 처리하던 둘째 아들마저 스트레스로 콩팥이 손상돼 일주일에 세 차례 투석을 받고 있다.재판에서 영이의 변호인은 “많은 액수를 여러 번 빌리긴 했지만 갚을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향분의 남편은 정신이 또렷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9월 영이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며 “치매 노인의 재산을 집중적으로 노린 계획적 범죄”라고 적시했다. 향분의 기억은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아들이 요양원에 다녀간 지난달 17일 오후에도 “왜 아들은 코빼기도 안 비추냐”고 말할 정도다. 사라진 노부부의 재산과 삶은 형벌로도 돌이킬 수 없었다.● 1원 입금 후, 빚쟁이가 된 치매 노인문영식(가명·76) 씨는 노리기 쉬운 ‘사냥감’이었다. 젊은 시절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평생 홀로 살았다. 본인의 휴대전화 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해 케이스에 적어 뒀다. 거기에 어눌한 말투까지. 그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금명선(가명·31)은 길 한복판에서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2023년 겨울, 경남 진주 중앙시장 앞. 올이 풀린 영식의 카키색 점퍼를 누군가 잡아끌었다. “새 폰 하나 해야겠습니다. 싸게 해드릴게.” 영식이 주름진 손을 휘휘 내저으며 불편한 다리를 절뚝였지만, 명선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결국 영식의 신분증을 뺏다시피 챙겨 들고 자기 가게를 비롯해 휴대전화 대리점 5곳을 돌았다. 인터넷과 TV를 설치하겠다며 영식의 집에 찾아와 “아빠, 문 좀 열어주이소”라고 외치기도 했다.며칠 후 영식의 통장에 처음 보는 문구가 찍혔다. ‘네이버9029’ ‘토스922’ ‘4562삼성’ 같은 이름으로 1원이 입금됐다. 스마트폰의 통화 기능밖에 쓸 줄 모르는 영식의 통장에 찍힌 첫 폰뱅킹 흔적이었다. 명선이 영식의 명의로 휴대전화 3대에 통장까지 개설한 뒤 보낸 인증번호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그때부터 명선은 영식의 통장을 마치 개인 지갑인 것처럼 이용했다. 나흘 후엔 영식이 만든 줄도 몰랐던 인터넷 은행 계좌에 47만 원이 들어왔다가 곧바로 빠져나갔다. 12월 20일엔 장애수당과 생계급여 등 43만7460원이 입금되자마자 다른 계좌로 이체됐다. 기초연금 33만4810원도 당일 그대로 빠져나갔다. 설을 앞두고 들어온 명절 위문금 2만 원마저 ‘알뜰하게’ 빼 썼다.더 큰 문제는 이후였다. 잔액이 바닥나자 영식은 통신 요금을 상습 연체한 ‘빚쟁이’가 됐다. 피해액은 851만 원. 지난해 12월 31일 뒤늦게 신고를 받은 노인보호전문기관이 통장을 틀어막고, 경찰과 협력해 휴대전화를 통한 추가 인출을 차단했다. 그러나 이미 잃어버린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치매 노인의 돈을 맡아 보호해 주는 민간 은행의 신탁 상품이 있지만, 최소 가입 금액이 수천만 원이라 영식에겐 그림의 떡이었다.영식은 결국 구청에 긴급생계보호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올 8월 치매 진단도 받았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진단이 늦었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치매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식은 명선을 경찰에 고발했지만 그는 벌금형으로 빠져나갔다.여전히 그의 집 우편함에는 고지서가 쌓여가고, 통신료 독촉 전화가 걸려 온다. 지금 영식이 바라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는 돈만 돌려받으면 돼. 너무 억울해 잠도 안 오고, 콱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통장을 바라볼 때마다 ‘이제 나는 껍데기만 남은 사람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친다고 했다.“금명선이는 이제는 안 보이더라. 경찰서 가면 주소 나올 텐데….” 초점을 잃은 영식의 시선 끝에, 수십 장의 고지서와 통장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통장에 찍힌 ‘1원 입금’ 알림에서 시작된 치매머니 사냥은 그렇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빚과 불면의 구덩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친구’란 말에, 치매 아버지는 고향땅 800평을 팔았다 [히어로콘텐츠/헌트①-上]

    〈1-상〉 친구의 배신평생 바친 땅 800평을 판 치매 아버지돈 뜯기고도 “나쁜 사람 아냐” 마지막 필담‘나뿌사람 아니다.’목소리를 잃은 아버지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나쁜 사람 아니다’를 제대로 쓰지 못해, 글자 하나가 비뚤어졌다. 아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나쁜 사람 아니라고?”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식 씨(46)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빠 돈을 말도 없이 가져갔는데, 그게 나쁜 사람이지.” 아버지 강대용 씨(73)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손톱이 하얘지도록 볼펜을 꼭 쥔 채 종이만 바라봤다.믿었던 고향 친구에게 인생과 다름없는 땅 800평을 빼앗긴 뒤에도, 아버지는 끝까지 그 사람을 감쌌다. 치매가 기억과 판단력을 앗아간 자리에 남은 건 사람을 믿고 싶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조차 누군가에겐 ‘사냥감’이었다.10월 26일 경기 화성의 한 요양원에서 나눈 그 필담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이틀 뒤 아버지는 저녁 식사 도중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장례 후 찾은 요양원, 두 달 전 “복도라도 편하게 다니시라”라며 마련한 새 휠체어가 주인을 잃은 채 한쪽에 놓여 있었다. 성식은 휠체어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돈은 못 받더라도 그 사람, 우리 아버지 속인 사람, 벌은 꼭 받았으면 좋겠어요.”치매 노인 100만 명 시대. 정부가 추산한 이들의 자산은 154조 원에 이른다. 20년 뒤 치매 인구는 200만 명, 이들이 가진 자산은 414조 원 규모로 불어날 전망이다. 이 거대한 ‘치매머니’를 노린 조용한 사냥이 일상과 기억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월부터 5개월간 자산을 빼앗긴 치매 노인과 그 가족 36명을 인터뷰하고 이 가운데 치매 노인 3명 측의 협조로 그들의 통장을 분석했다. 그 안에는 30년 만에 나타난 친구에게 고향 땅을 잃고 세상을 떠난 대용의 삶과 죽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장 믿었던 이웃의 가면을 쓴 포식자의 잔혹한 사냥 일지가 적혀 있었다.● 30년 만에 나타난 ‘친구’지난해 5월 15일 석가탄신일. 성식은 “오늘은 아버지 모시고 고기라도 사 먹자”라는 생각에 모처럼 들떴다. 휴일을 맞아 초등학생 딸과 아내, 동생까지 함께 아버지의 요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버지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 사람 집으로 돈 찾으러 가야 한다.”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열어봤다. 성식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혼자서는 외출도 어려운 아버지 통장에서 이렇게 큰돈이 오갈 리가 없었다. ‘설마 송금 실수겠지’하는 생각도 잠시, 아버지가 부르는 이름을 듣고 성식은 사달이 났음을 직감했다. 박영길(가명·76). 아버지에게 30년 만에 나타난 고향 친구였다.영길이 요양원에 처음 찾아온 건 2023년 12월. 그는 대용과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상경한 지 30년도 넘었지만, 대용은 어린 시절과 20대 청춘을 보낸 고향에 대한 애착이 컸다. 영길은 “대용이가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에 얼굴이라도 보러 왔다”고 했다.성식은 아버지 지인 대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영길은 초면이었다. 하지만 치매로 기억이 들쭉날쭉한 대용은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영길은 그 후로 요양원을 자주 찾았다. 면회 기록지에는 2023년 12월 3일부터 지난해 5월 7일까지 그의 이름이 열 차례 나온다. 관계를 묻는 칸에는 항상 ‘친구’라고 적었다. 영길은 요양원에 외박을 신청해 대용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재우기도 했고, 면회가 없는 날에는 틈틈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3년간 치매 아버지를 돌보다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요양원에 모신 뒤 줄곧 죄책감을 안고 살던 성식에게도 영길은 고마운 존재였다. 그에게 용돈을 건네자 “뭐 이런 걸 다 줘. 친구 보러 오는 건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고맙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조용히 시작된 사냥시간이 흐르면서 영길은 대용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다. 대용은 요양원 생활을 답답해했고, 늘 30년 전 떠나온 고향이 그립다고 했다. 어느 날 영길이 말했다. “고향에 가서 살게 해줄게. 내가 다 알아봐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집을 구하고, 요양보호사도 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용에게는 한평생 일해 모은 고향 땅 2000평이 있었다. 영길은 그중 논 800평을 팔자고 했다. “자식들은 반대할 수 있으니 알리지 말자”라는 말도 덧붙였다.매주 요양원을 찾는 아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계획은 진행됐다. 지난해 3월 영길은 “옷을 사러 다녀오겠다”라고 말하고 대용과 고향의 면사무소를 찾았다. 그는 대용의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고, 새 통장을 만들기 위해 왕복 500km 길을 하루 만에 오갔다. 인감을 파고, 땅을 살 사람도 미리 찾아뒀다.두 달 뒤인 지난해 5월 7일, 대용의 논 800평이 4500만 원에 팔렸다. 시세보다 싼값이었다. 이튿날 아침 영길은 대용의 신분증과 통장, 도장을 들고 혼자 은행을 찾아 그 돈을 모두 찾았다. 통장과 비밀번호, 도장 찍힌 청구서만 있으면 누구든 인출할 수 있는 허점을 이용했다. 대용이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치매 환자라는 걸 은행은 몰랐다.영길은 의심을 피할 ‘미끼’도 잊지 않았다. 찾은 돈 중 300만 원을 다발째 대용에게 건넸다. “이걸로 이걸로 간호사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너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어라. 나머지는 내가 맡아뒀다가 고향 보내주는 데 쓸게.” 대용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사냥은 거의 끝나 있었다.그때부터 영길의 태도는 달라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 오던 전화는 뜸해졌고, 요양원에도 오지 않았다. 대용은 아들이 사준 효도폰 키패드에 익숙한 번호를 꾹꾹 눌렀다. 0, 1, 0, 3, 3, 4…. 그러나 영길은 바쁘다며 서둘러 끊었다. 어느 날은 10번 넘게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대용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돈 찾으러 가야 한다”라고 한 건 그제야 올라온 분노였다.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성식은 영길에게 돈을 당장 돌려달라고 했다. 영길은 오히려 화를 냈다. “대용이 요양원을 싫어해 벗어나게 해주려고 한 것인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도둑놈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달 말까지 돌려주겠다”고 했다.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영길에게 전화를 걸자 이전과는 다른 연결음이 들렸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삐 소리 후….’ 수신 거부였다. 그가 떠난 사냥터에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들만 남았다.● 평생을 바친 고향 땅대용의 빼앗긴 고향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었다. 고단했던 73년 삶 그 자체였다. 1952년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대용은 아홉 살부터 남의 집 더부살이를 했다.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교문은 문턱도 못 밟아봤다. 남의 논밭을 매고, 공사장에서 석재를 날랐다. 작두질을 하다 두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일터에서 간식으로 나온 크림빵조차 아까워 아들에게 주려고 품에 안고 오던 아버지였다.서른둘에 가족을 이끌고 경기 안산으로 올라온 뒤에도 그의 삶은 ‘노동’ 뿐이었다. 4층 상가 건물에서 36년을 경비로 일했다. 월급은 쥐꼬리만 했다. 화장실도 없는 4평 남짓한 상가 창고가 네 식구의 집이었다.그렇게 번 돈으로 고향 땅을 조금씩 사 모았다. 아내의 결혼 패물까지 팔아 보탰다. 지인 보증을 잘못 서 폐지를 주워 팔아야 했던 시기에도 그 땅만은 지켰다. 성식은 “아버지에게 땅은 ‘인생의 증거’였다”고 했다.식구를 키워낸 대용의 일터는 2018년경 재개발로 사라졌다.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철거된 상가처럼 대용의 삶도 주저앉았다. 하릴없이 집에만 있는 무기력한 하루가 되풀이됐다. 농사를 짓고 이웃들과 교류했던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치매와 외로움, 죄책감 사이로 파고든 고향 친구 한마디에 땅은 허망하게 넘어갔다.● 전세 사기범의 새로운 ‘사냥터’예방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성식은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후견제도’를 알아봤다. 법원이 정한 사람이 통장을 대신 관리해, 돈을 함부로 빼내지 못하게 막는 장치다.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변호사 비용만 수백만 원이 들어 신청을 포기했다. 멀쩡히 숨 쉬는 아버지를 금치산자로 만든다는 죄책감도 이길 수 없었다. 사냥꾼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성식은 지난해 7월 영길을 횡령 혐의로 형사 고소하고 민사소송도 냈다. 영길은 경찰 조사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대용이가 자식들에게 학대당하고 있다고 해서 도와준 것뿐”이라며 “돈은 대용이가 맡아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두 차례 열린 재판 기일에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영길은 대용의 돈을 가져간 지 닷새 만에 자기 빚 3600만 원을 갚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소유한 경기 용인 빌라는 깡통전세나 다름없었다. 우편함엔 단전 안내문 등이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한 세입자는 “집주인(영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만 이 건물에 6명”이라고 말했다.지난달 23일 취재팀과 마주한 영길은 여전히 당당했다. “대용이와는 형제 같은 사이였어. 돈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전화를 안 받았다니까.” 돈을 언제 돌려줄 생각이냐고 하자 그는 역정을 냈다. “자꾸 기분이 안 좋네. 내가 아들(성식)한테 돈 줘야 할 법적 의무가 있어요? 차용증을 썼나?”● 배신 그 이후영길에게 속았다는 사실은 대용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치매와 우울감은 더 심해졌고, 목소리마저 잃었다. 10월 26일 요양원에서 만난 대용이 종이에 ‘돈’이라고 적자, 성식은 “아직 돈 못 받았어, 아빠. 좀 더 기다려야 해”라고 했다. 대용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잠시 뒤 그는 몇 글자를 더 썼다. ‘나뿌사람 아니다.’ 자신을 속인 사람을 끝까지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치매 노인의 마지막 방어선. 그 말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이 됐다.이틀 뒤인 10월 28일, 요양원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대용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고꾸라졌다. 입안에는 미처 다 넘기지 못한 밥알이 굴러다녔다. 요양보호사가 급히 가슴을 누르며 119를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성식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용의 심장이 멈춘 뒤였다. 온기가 남아 있는 아버지를 붙들고 아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영길이 대용의 돈을 가져간 지 1년 5개월 만이었다.대용의 고향 마을 지인은 “두 사람은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서로 자주 어울리던 사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지인은 영길에게도 대용의 부고를 전했지만, 조문은커녕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고 한다.이제 성식은 아버지를 대신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돈은 못 받아도 처벌은 받게 해야죠. 아버지를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이, 아버지 인생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법으로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요.”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5세 여중생” 띄우자 1분만에 성매매 제안 메시지… 채팅앱은 방치

    “월 4번 500(만 원).” 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한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15세 여중생’이라고 글을 올리자 1분 만에 날아온 성매매 제안 메시지다. 상대는 30대 회사원이었다. 5분도 되지 않아 ‘중딩(중학생)도 만남하나?’ ‘얼마예요?’ 같은 메시지 14건이 줄줄이 도착했다. 카카오톡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픈채팅방에서 ‘여중딩 놀아줄 사람?’ ‘전화할 오빠 구해요’ 등 대화방에 별다른 인증 없이 바로 들어가 익명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프라이버시’ 방패 뒤에 숨은 오픈채팅 3일 경남 창원시의 한 모텔에서 여중생 김모 양(15) 등 2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표모 씨(26)가 피해자를 유인한 ‘덫’도 바로 카카오톡 오픈채팅이었다. 그는 2016년과 2019년에도 채팅 앱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미성년자를 꼬드겨 성폭행하거나 강제추행한 전력이 있었다. 누구나 접속 가능한 익명 채팅방이 성범죄자의 ‘안전한 사냥터’로 방치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아동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는 카카오톡마저 성인의 무분별한 접근을 막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선 한 남성이 ‘심심한데 전화할 사람’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한 뒤 13세 여학생을 유인해 강제추행했다. 카카오톡의 경우 성범죄 관련 신조어 등 금칙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채팅방 이름이나 닉네임에 유해한 단어가 노출되지 않도록 제어하고 있다. 또한 오픈채팅에서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해 법정대리인의 요청 또는 만 19세 미만 이용자 본인의 요청 있는 경우 서비스 이용을 제한하는 보호조치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 대화 및 오락을 표방하는 채팅방을 개설한 뒤 들어오는 미성년 이용자를 노리거나, 채팅방 이름에 유해 단어를 노출하지 않았지만 특정 키워드를 통해 미성년자 채팅방에 성인이 접근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익명성을 악용해 미성년자 방에 침입한 뒤 ‘한 명만 걸려라’ 식으로 시도하는 디지털 그루밍(길들이기)은 신고 전까지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금지어나 이를 우회하는 채팅방 제목을 적발하도록 모니터링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채팅방 내 대화 내용을 상시 모니터링할 수는 없다. 이용자 신고가 들어올 때만 한다”고 밝혔다.● 중소 앱은 우회 키워드 못 잡아내 중소 채팅 앱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취재팀이 다운로드 10만 회 이상인 앱 10개를 점검해 보니, 전부 휴대전화 인증만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부모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라면 다른 절차 없이 성인 인증을 통과할 수 있는 구조다. 10개 중 6개는 부적절한 키워드조차 검열하지 않았다. 키워드 필터링이 있는 나머지 4곳도 변형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한 앱에서는 44세 남성이라는 이용자가 성매매를 암시하는 단어가 검열되자 “띄어 써야지”라며 훈수까지 뒀다.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랜덤 채팅 앱 내 성매매 암시 정보 등에 대해 시정 요구를 한 사례는 2021년 6653건에서 지난해 1만7377건으로 2배 이상으로 폭증했다. 올해는 상반기(1∼6월)에만 9148건에 달했다. 성평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 1187건 중 960건이 채팅 앱과 SNS에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규제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플랫폼에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 의무만 부과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연방법에 따라 플랫폼이 아동 성착취 정황을 인지하고도 ‘아동성착취중앙신고센터’에 신고하지 않으면 민사 제재는 물론이고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호주는 16세 미만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플랫폼이 강제적으로 ‘1차 보호막’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성년자 채팅방에 성인 접근을 막는 등 강력한 사전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5-12-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성매매 관련 단어 못 거르는 채팅앱, 미성년 성착취 방치

    “오래 연락할 아저씨 구함” “애정결핍 여중딩”. 8일 취재팀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여중딩’(여중생)을 검색하자 이런 제목의 대화방 수십 개가 스마트폰 화면을 뒤덮었다. 몸매를 드러낸 여성 사진도 게재돼 있었다. 대화방에 입장할 땐 프로필과 대화명을 익명으로 설정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3일 경남 창원시 모텔에서 중학생 2명을 살해한 아동 성범죄자 표모 씨(26)가 피해 여중생들을 유인한 곳도 바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었다. 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건은 종결됐지만 제2, 제3의 표 씨가 활보하는 ‘사냥터’는 여전히 성업 중인 셈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8일 10만 회 이상 내려받은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10개를 점검한 결과 6개는 성매매와 관련된 부적절한 키워드를 검열조차 하지 않았다. 나머지 4개도 초보적인 변형어로 손쉽게 필터링을 피해 미성년자와 성인 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국민 메신저’로 통하는 카카오톡마저도 같은 위험을 방치하고 있는 점이다. 대화방을 개설할 때 노골적인 성착취 제목은 제재하지만, 입장 후 대화엔 관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필적 고의’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성년자의 성착취 위협을 방치하는 플랫폼을 상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5-12-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의사출신 등 ‘공대 외인구단’ 로봇대회 우승

    서울대 기계공학부가 개최한 제33회 로보콘(로봇 경진대회)에서 여학생 3명과 의사 출신 편입생 등으로 이뤄진 팀이 우승했다. 여학생 비율이 10% 미만인 기계공학부에서 여성이 과반인 팀이 정상에 오른 건 처음이다. 4일 서울대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관악캠퍼스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린 로보콘에는 70명의 학생이 14개 팀으로 참가했다. 이 대회는 기계공학부 실습 전공과목 ‘창의공학설계(창공)’의 일환으로, 1993년부터 매년 진행되고 있다. 우승은 기계공학부 재학생 조성은 박서현 윤혜주 씨(19)와 의사 출신 김원재 씨(30), 태국에서 12년간 거주 후 자유전공학부로 입학한 정지운 씨(18)로 구성된 ‘5vertake(오버테이크)’ 팀이 차지했다. 독특한 구성으로 대회 초반부터 ‘공대의 외인구단’으로 불리며 눈길을 끌었다. 창공 수업은 공학 기초가 부족한 1학년들이 로봇을 직접 설계·제작해 보는 실습 과목으로 고 주종남 교수가 도입했다. 올해 주제는 레이싱카 정비 과정을 모티프로 한 ‘SNU1’으로, 참가 팀들은 자율주행 ‘카로봇’과 정비 미션을 수행하는 ‘엔지니어 로봇’ 등 두 종류를 제작해 6분 동안 부품·타이어 정비 속도와 정확성을 겨뤘다. 오버테이크는 결승에서 104점을 기록하며 준우승팀 ‘관악 다이나믹스’(85점)를 제치고 우승했다. 이에 따라 국제 로보콘 출전권도 확보했다. 이들은 이번 실습으로 공학 진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팀장 조 씨는 “일주일 먼저 제작을 시작해 시행착오를 빨리 겪을 수 있었던 것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의대를 졸업해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에도 기계공학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편입을 결심한 김 씨는 “선택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루고 나니 잘한 선택이었다고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향후 의공학자가 되어 의료용 로봇 분야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대회 전날 로봇 보수 작업을 위해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던 박 씨와 윤 씨는 “이번 경험을 통해 로봇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정 씨는 “생체모사로봇 연구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 2025-12-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