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경찰차라는 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고속도로에서 난폭운전 등을 단속할 ‘암행 순찰차’의 실물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공개됐다. 암행 순찰차는 일반차처럼 고속도로를 순찰하다 위법행위가 발생하면 정체를 드러내 단속에 나서게 된다. 이날 공개된 까만색 암행 순찰차는 겉보기에는 일반 승용차와 큰 차이가 없다. 보닛과 좌우에 경찰 마크를 붙이긴 했지만 가까이 있지 않으면 경찰차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승용차처럼 운행하던 암행 순찰차는 난폭운전 등 위법행위를 발견하면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법규 위반 차량에 접근해 단속 중임을 밝히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마크마저 없으면 단속에 응하지 않을 우려 등이 있어 최소한으로 노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량에는 앞뒤로 적색·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경광등이 달렸다. 차량 전면 그릴 내부에도 보조 경광등이 있다. 그러나 단속에 돌입하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뒤쪽에는 문구가 표시되는 전광판도 있다. 단속 대상 차량 앞으로 이동해 “경찰입니다! 교통단속중, 정차하세요!”라는 문구를 보여준다. 경찰청은 다음달부터 6월까지 암행 순찰차 2대를 경기·충남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에서 시범 운용하고 연말까지 11개 순찰대에 보급할 계획이다. 암행 순찰차의 차종과 색상은 일률적이지 않아 어떤 차량이 암행 차량인지 미리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경찰은 설명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한 케이블TV 드라마 ‘시그널’에 등장하는 여형사 차수현(김혜수)은 언제나 당당하다. 거친 강력범을 쫓으며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범인을 추적하다 범죄 피해자가 돼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사건도 겪는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강력계 형사로 활약하다 장기미제전담팀을 이끈다. 어린 여학생들이 “나도 저런 멋진 형사가 되고 싶다”고 부러워할 만하다. 하지만 현실은 확연히 다르다. 1946년 80명으로 출발한 여성 경찰관은 올해 창설 70주년을 맞았다. 전체 경찰관의 10%에 이르는 1만 명의 여경이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여경들은 ‘여성’이라는 한계가 여전하다고 하소연한다.○ 10명 중 1명이지만 현장에선 아직 ‘약자’ 지난달 말 서울 마포경찰서 관내 한 지구대에 한 40대 남성 취객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지구대에 있던 젊은 여경을 가리키며 “내가 결혼도 안 했는데 예쁜 여경이 있어서 들어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빵 좀 사왔는데 여경한테 주고 가야겠다. 여경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어야겠다”고 떼를 썼다. 다른 경찰까지 모두 나서서 말렸지만 피의자도 아니라 강제로 쫓아낼 순 없었다. 이 취객은 기어이 자신이 콕 찍었던 그 여경이 타준 커피를 마시고 떠났다. “여경이 직접 타줘서 그런지 커피가 참 맛있다”는 얘기까지 남겼다. 여경들이 근무 중에 성희롱이나 무시를 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피의자한테 이런 일을 당하기도 한다. 3년 차 여경인 장모 순경은 지난해 12월 절도 피의자를 체포하러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장 순경은 “수갑을 채우는데 피의자가 실실 웃으면서 ‘어? 예쁘네?’라고 말하고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라”라며 “현장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기분 나쁜 기억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원인이 ‘아가씨’나 ‘계집애’(‘여자아이’를 낮잡아 부르는 말)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따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지방경찰청 성희롱 고충상담센터 관계자는 “정도가 심하면 고소할 수 있지만 웬만한 건 감내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업무 방해로 보기 어려운 언어폭력과 성희롱은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 3년 차 여경은 손을 더듬는 피의자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자 주변에서 “뭘 그렇게 까다롭게 일하냐”는 반응을 보여 황당했다고 털어놓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며 “여성 경찰관이 전문적인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면서 성희롱 등이 있으면 정해진 범위 안에서 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입 여경’ 홍보용으로 악용하기도 경찰 조직 내에서 여성의 위상과 역할은 남성과 다르다. 비교적 거친 조직 문화 속에서 수시로 범죄자와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여경에게 별로 유리하지 않다. 한 10년 차 여경은 “강력팀에 지원하려 해도 여경을 잘 받지 않는다”며 “강력범은 남성이 많기도 하고 차 안에서 같이 오랜 시간 잠복할 때 여성이 있으면 서로 불편하다는 생각도 있다”고 했다. ‘주간-야간-비번-휴무’ 식의 교대 근무를 많이 하는 특성 탓에 출산과 육아 부담이 큰 여경이 강력팀 등 격무 부서에서 일하기가 기본적으로 힘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부 경찰인 정모 경사(34)는 “내가 교대 근무를 하는데 아내마저 그렇게 일하면 가정은 누가 지키겠느냐”고 얘기했다.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두 사람이 모두 형사 업무 등을 맡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이자 경찰의 남편으로 일하면서 여경이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강력팀 등에서 일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경을 홍보 목적으로 우선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충북 청주시의 한 지구대에서는 신입 여경이 택배기사로 위장해 수배자를 검거한 것처럼 홍보자료를 냈다가 거짓으로 드러나 관련 경찰관들이 징계를 받았다. 홍보 효과를 노리고 ‘새내기 여경의 활약’과 같은 식의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경찰은 여성의 장점을 살리는 인사 등을 통해 여경의 역할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같은 문제는 여성 경찰관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꼽힌다”며 “사회 전반의 문제와 연결돼 있어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차별 없이 각자의 희망과 여성의 특징을 고려하면서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김도형 dodo@donga.com·이지훈 기자}
‘parent.ewha.ac.kr’. 이화여대가 이번 봄 학기 온라인에서 새로 시작하는 서비스의 인터넷 주소다. 부모님(parent)이란 단어가 알려주는 것처럼 학부모를 위한 종합 포털 서비스다. 자녀의 사소한 일까지 직접 챙기는 이른바 ‘헬리콥터 맘’이 대학가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이화여대가 학부모와 직접 소통하는 통로를 열기로 했다. 학부모에게 학생 교육과 관련된 정보를 직접 제공하고 들어야 할 의견이 있으면 공식적인 통로로 받겠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새로 만드는 포털에서 △학생 관련 정보 열람 △학교 주요 행사 및 학부모 프로그램 일정 확인 △등록금 고지서 및 교육비 납입증명서 조회·출력 등을 직접 할 수 있다. 학부모가 학교에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게시판과도 연동된다. 가입할 때 학부 학생의 학부모라는 점을 인증한 뒤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고 학점 등 일부 정보는 학생의 허락을 받아야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생을 위한 포털 서비스와 학교 홈페이지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많지만 따로 포털을 만드는 것은 대학이 학부모를 학사 운영의 중요한 주체로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등록금 고지서 출력마저 학생을 거쳐야 했던 일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학부모가 학사 운영과 관련된 생각도 손쉽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헬리콥터 맘’ 논란은 학부모가 학교와 관련된 의견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밝혔을 때 불거진다”며 “학교 공동체 전체에 대한 의견을 드러낼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발전적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학생이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는 알리지 않고 돈을 따로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학교가 학부모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인다”고 얘기했다. 이화여대의 학부모 포털은 다음 달 7일부터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장애물을 하나씩 넘어서면 꼭 칭찬하고 도와주는 손길이 있었어요. 학생들에게 그런 얘길 꼭 해주고 싶어요.” 예비교사 신분으로 29일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는 김태연 씨(43·사진)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던 평범한 아이의 삶은 다섯 살 때 금이 갔다. 시각세포가 집중된 망막 중심부 황반의 이상 때문에 시력장애가 생기는 ‘황반변성’ 진단을 받았다. 사물의 가운데가 검게 보이고, 주변도 흐릿해졌다. 김 씨는 그래도 일반 학교에서 공부해 1992년 수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건국대 수의학과에 진학했지만 시력이 갑자기 더 나빠졌다.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다. 민간요법으로 시력을 되찾으려는 노력도 부단히 해봤다. 하지만 전환점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서 찾아왔다. 장애인이 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36세가 돼서야 뒤늦게 연락한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장애인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희망을 안겨줬다. 김 씨는 “눈이 안 보인다고 귀까지 막고 지내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어교사라는 새로운 목표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해 2012년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학교 측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매 학기, 매 과목마다 도우미를 붙여주며 공부를 도왔다. 4.3점 만점에 평점 3.97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임용고시에 합격한 김 씨는 다음 달 서울 구로구 경인중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김 씨는 “좋은 사람들이 늘 도와줬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한때의 방황이 후회스럽다”며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차분하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경순 할머니가 20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히로시마 위안소로 강제 동원돼 고초를 겪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줄곧 열정적으로 활동해 왔다. 1993년 7월에는 일본 정부 조사단에 피해 사실을 직접 증언했다. 김 할머니 등 16명이 참여한 이 증언은 일본이 같은 해 8월 ‘고노담화’를 발표하는 근거가 됐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4명으로 줄었다.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 9명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가운데 올해 들어서도 김 할머니 등 2명이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22일 충남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 안장된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장애물을 하나씩 넘어서면 꼭 칭찬하고 도와주는 손길이 있었어요. 학생들에게 그런 얘길 꼭 해주고 싶어요.” 예비교사 신분으로 29일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는 김태연 씨(43)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던 평범한 삶은 5살 때 금이 갔다. 시각세포가 집중된 망막 중심부 황반의 이상 때문에 시력장애를 앓는 ‘황반변성’ 진단을 받았다. 사물의 가운데가 검게 보이고, 주변도 흐릿해졌다. 김 씨는 그래도 일반 학교에서 공부해 1992년 수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건국대 수의학과에 진학했지만 시력은 백내장 때문에 더 나빠졌다.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다. 민간요법으로 시력을 되찾으려는 노력도 부단히 해봤다. 하지만 전환점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서 찾아왔다. 장애인이 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36세가 돼서야 연락한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장애인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희망을 안겨줬다. 김 씨는 “눈이 안 보인다고 귀까지 막고 지내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어교사라는 새로운 목표로 수능시험을 준비해 2012년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학교 측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매 학기, 매 과목마다 도우미를 붙여주며 공부를 도왔다. 4.3점 만점에 평점 3.97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임용고시에 합격한 김 씨는 다음달 서울 구로구 경인중학교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김 씨는 “좋은 사람들이 늘 도와줬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한 때의 방황이 후회스럽다”며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차분하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왕복 8000km. 29일 열리는 연세대 학위수여식에서 석사학위 외에 특별상을 받는 김도완 씨(40·사진)의 통학 거리다. 김 씨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를 오가며 공부했다. 논문 준비로 한국에 머문 한 학기 반을 제외한 세 학기 반 동안 꼬박 60번을 왕복했다. 계산하면 비행 거리만 48만 km다. 16일 오후 학교에서 만난 김 씨는 “집안일 때문에 결석한 적은 있어도 거리가 멀어서 수업에 빠진 적은 없다”며 웃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구의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 씨는 2004년 베트남으로 건너갔다. ‘영국이 영어 덕분에 버는 돈이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보다 많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느낀 게 많았단다. 마침 베트남에서 한국어 강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훌쩍 떠났다. 한국 기업의 활발한 진출 덕택에 한국어의 인기가 영어 못지않았다. 재외국민과 베트남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금방 자리를 잡은 김 씨는 현재 베트남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힐탑 외국어학교’의 대표다. 하지만 학생이 늘어날수록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란 의문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문법 용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전혀 다른 한국어 교수 방식이 필요했다. 외국인을 위한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도 없었다. 김 씨는 “‘직업 목적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베트남인들에게 한국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교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김 씨는 고민 끝에 연세대 교육대학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전공’ 진학을 결정했다. 비행기로 왕복 10시간 넘게 걸리는 통학 거리를 무릅쓰고서라도 제대로 된 한국어 교수법을 배워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2011년 9월 입학한 김 씨는 베트남 현지 강의 때문에 도중에 휴학했지만 2014년 복학해 공부를 마쳤다. 김 씨는 그동안 일요일 밤 호찌민에서 비행기를 타고 월요일 아침 인천에 도착해 월, 화요일 수업을 집중해 듣고 수요일 아침에 돌아가는 생활을 했다. 그는 “힘든 시간이긴 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이제는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 교재를 만들어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목사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진 채 1년 가까이 방치됐던 이모 양(사망 당시 13세)의 부모에게 경찰이 살인죄를 적용해 수사 결과를 검찰에 넘겼다. 경기 부천소사경찰서는 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이모 씨(47)와 계모 백모 씨(40) 부부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 검찰로 넘겼다고 12일 밝혔다. 수사 결과 이 부부는 이 양 사망 추정일인 지난해 3월 17일 7시간에 걸쳐 나무막대가 부러질 정도로 이 양을 때린 것으로 확인됐다. 손바닥 종아리 허벅지 등을 50~70대 가량 반복해 폭행한 것이다. 또 2014년 4월 중순부터 이 양을 상습적으로 체벌하고 식사량을 줄이는 등의 학대를 가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경찰에서 “딸을 폭행한 것은 맞지만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하면서도 “때리다가 지쳐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며 장시간에 걸친 폭행 사실은 인정했다. 경찰은 두 사람을 구속할 때는 우선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했지만 사건을 검찰로 넘기면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판단했다. 같은 달 11일부터 3차례에 걸쳐 폭행이 계속되면서 이 양이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 사실 등을 바탕으로 사망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는데도 폭행을 계속하고 방치한 점 등으로 미뤄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고 판단했다. 한편 경찰은 이 씨 부부의 범죄심리분석(프로파일링) 결과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성향은 나타나지 않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부천=김도형기자 dodo@donga.com}

새파랗게 얼어가는 겨울 하늘에 종이가 나부낀다. 빨래한 광목 기저귀처럼 내걸린 종이가 매서운 바람을 맞고 펄럭인다. 스치듯 풀 바르고 쿵쿵쿵 방아 찧어 만든 종이가 거의 제 모습을 나타냈다. 종이를 빨랫줄에 내거는 손이 금방 얼어붙는 날씨. 하지만 제대로 된 한지(韓紙)는 겨울에 만들어진다. 3대째 한지를 만들어 온 최영재 천양P&B 대표(50)가 종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직접 만들면서도 ‘한지가 좋다’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었어요. 보푸라기 때문에 붓이 제대로 나가지도 않고 인쇄기에 넣을 수도 없는 무거운 종이였는데… 이제는 알겠어요. 옛날부터 고려지 조선지를 왜들 그렇게 찾았는지….”벗겨서 삶고 때려서 풀고 떠서 말리고… 지난달 5일 전북 완주군의 한지 제조업체 천양P&B를 찾은 이유는 2015년 말 행정자치부의 발표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맥이 끊긴 민족 정통성 있는 한지 재현.’ 행자부는 재현에 성공한 전통 한지를 앞으로 훈장용지에 쓰겠다고 밝혔다. 주변의 문구점에만 가도 한지가 쌓여 있는데 무엇을 재현했다는 것일까. 재현 작업의 중심에 섰던 김호석 한국전통문화대 교수(59)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우리가 써왔던 한지는 상당수가 가짜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통째로 일본식 한지로 바뀌었는데 무엇이 진짜 한지인지를 몰랐던 거죠. 진짜 한지는 어떻게 만드는 건지 보실래요?” 김 교수와 최 대표가 제작 과정을 설명하며 시연에 나섰다.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다. 정확히 말하면 닥나무 껍질이다. 1년생 닥나무를 베어낸 뒤 쪄서 껍질만 벗겨낸다. 이 ‘흑피(黑皮)’에서 다시 검은 겉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남는 ‘백피(白皮)’가 한지의 재료가 된다. 이 백피를 말린 뒤에 천연잿물에 삶는다. 그리고 흐르는 물로 씻어내면서 일광(日光) 표백을 하고 티를 골라낸다. 하얀색 닥섬유가 만들어지면 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 방망이로 수없이 두드려야 한다. 고해라고 부르는 작업이다. 장인들이 “골병든다”고 하는 고된 일이다. 고해를 마친 섬유를 물에 잘 풀어서 발로 떠내면 한지가 된다. 물론 섬유가 물에 그냥 풀리는 것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떠낼 수도 없다. ‘닥풀’이라고도 불리는 황촉규 뿌리를 짓이겨 얻은 진액을 분산제로 넣는다. 섬유질이 잘 풀어지도록 하는 역할이다. 이 닥풀이 영하의 날씨에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한지는 겨울에 만든다. 발로 종이를 뜨는 작업은 온전히 한지 장인의 몫이다. 섬유가 풀려 있는 닥물을 넓은 발 위에서 앞뒤 좌우로 흘려내면서 떠내면 습지가 된다. 섬유가 남고 물기가 빠져나간 상태다. 이 습지를 여러 장 겹친 뒤에 말리면 한지가 1차 완성된다. 아직 삶지 않은 닥나무를 보여준 뒤 나무 방망이로 퍽퍽퍽 닥나무 섬유를 두드려 보이던 최 대표가 발을 잡고 닥물을 흘려내며 종이를 떴다. 두 차례 습지를 떠내 맞붙인 최 대표는 “견본으로 떴지만 그래도 이건 진짜 한지”라고 했다.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진짜 한지’ 이렇게 천연 재료만 써서 장인의 손으로 한 장 한 장 떠온 한지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다른 전통 문화처럼 그 명맥이 끊겼다. 김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공식 문서 등을 통해서 전통 한지 제조 방식이 조선식에서 일본식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본이 닥나무를 칼비터라는 일종의 믹서로 자르고 또 펄프를 섞어 쓰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의 닥나무는 길고 질긴 섬유가 특성이고 장점이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나무 방망이로 닥나무를 때려서 섬유를 풀고 한지를 떠냈다. 이 닥나무 섬유를 잘라버리면 닥나무를 쓰는 의미가 사라진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제작 방식을 바꿔서라도 자신들이 써온 화지(和紙)처럼 잘 번지는 종이를 만들어 내길 원했다.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서 백피 삶는 방식도 바뀌었다. 메밀대 콩대 고춧대 등을 태워서 만든 천연잿물로 백피를 풀어내던 전통 방식에 양잿물이 끼어들었다. 만들기 어려운 천연잿물 대신 양잿물을 쓰면 작업은 훨씬 편해진다. 하지만 양잿물을 쓰면 닥나무 섬유는 잔털이 다 녹아내린다. 거칠고 딱딱해져 종이의 밀도가 떨어진다. 닥나무를 칼로 다 잘라버리고 양잿물까지 쓴 것은 한지의 질긴 특성을 빼앗은 주원인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칼비터를 쓰거나 양잿물을 쓰는 순간 한지는 더이상 한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종이를 뜨기 전에 섬유를 풀어내는 해리 작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황촉규 닥풀을 쓰던 방식이 팜유 등을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바뀐 제조 방식은 한지의 개념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전통 한지 제조법의 맥이 끊기면서 ‘무엇이 전통 한지냐’는 개념마저 사라진 것이다. 재현 작업에 나서면서 국내 한지업체의 현황을 살펴봤을 때의 상황은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에서부터 지역별 특성이 사라졌고 외국산이 국산처럼 쓰이기도 했다. 닥을 삶을 때는 화학잿물과 천연잿물을 쓰는 경우가 섞여 있었고 힘든 두드림(고해) 작업 대신 닥섬유를 잘라 작업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두드림 작업 뒤에 유수 표백을 하는 곳도 찾기 힘들었다. 종이를 떠내는 작업 역시 닥물을 전후좌우로 흘리는 ‘외발뜨기’ 대신 닥물을 가둬놓은 채 편하게 진행하는 ‘가둠뜨기’가 대부분이었다. 모두 한지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인들이었다.정조의 친필 편지 오려내 만든 ‘한지의 기준’ 행자부와 김 교수가 지난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복원 작업은 전통 한지의 개념을 새로 세우고 한지 제조의 기준을 표준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각자 알고 있는 전통 방식을 사용해 한지를 제작하는 몇몇 장인(匠人)의 노하우와 기억을 서로 짜 맞추고 옛 문헌까지 참고해 온전한 전통 한지 제작의 비법을 복원했다. 한지 장인 인터뷰와 업체별 제조 기법 발표회 등이 함께 진행됐다. 복원의 시작은 ‘기준 잡기’였다. 어떤 수준의 한지를 목표로 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선정된 표본은 김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정조(正祖)의 편지였다. 세자 시절 스승 채제공에게 보낸 어찰. 조선의 부흥기에 왕이 사용한 종이야말로 최상급의 한지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문화재급 유물이었지만 글씨가 쓰여 있지 않은 여백의 일부를 오려내고 내절강도 등을 측정한 뒤 복원했다. 이 종이의 내절강도는 3525회. 3500회가량 접었다 펴야 종이가 끊어진다는 뜻이다. 기존에 쓰던 훈장용지의 내절강도(약 300회)에 비해 10배 이상의 강도를 가진 종이였던 것이다. 문헌 조사에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천연잿물과 함께 생석회를 널리 사용했다는 사실과 두드림 과정에서 닥섬유가 달라붙지 않는 고욤나무 방망이를 이용했다는 세세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지를 뜨는 발 역시 대나무발이 아니라 억새, 띠 등으로 만든 촉새발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닥섬유를 흐르는 물에 일광 표백할 때 닥섬유 사이의 수소결합이 촉진돼 전통 한지 고유의 흰색이 만들어지는 과학적인 원리도 규명됐다.전통 방식 복구하고 새 도침 기법 완성 국산 닥나무만 사용할 것. 백피는 천연잿물로 삶을 것. 닥섬유를 칼로 자르지 말고 나무 방망이로 두드릴 것. 닥섬유를 흐르는 물에 일광 표백할 것. 황촉규 같은 식물성 분산제를 사용할 것. 가둠뜨기가 아닌 외발뜨기로 종이를 뜰 것…. 어떻게 만들어야 진짜 전통 한지인지에 대한 자세한 기준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세워졌다. 한지 장인들이 쓰던 방법도 있고 알지만 쓰지 못하던 방법도 있었다. 그 누구도 방법과 의미를 몰랐던 것도 있었다. 이 방법을 서로 공유한 업체 12곳이 ‘훈장용지 업체 선정’에 도전했다. 합격점을 받은 곳은 천양P&B를 비롯한 5곳. 김 교수는 “안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나무 방망이로 두드리는 고해 작업은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고 싶은 힘든 작업이고 외발뜨기는 장인의 솜씨가 집약돼야 가능하다. 공유한 제조 방식 중에는 한지 업체 모두가 반긴 마지막 비결도 있었다. ‘도침’이라고 부르는 마무리 작업이다. 도침은 다 만들어진 한지에 풀을 먹이고 디딜방아로 찧어서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밀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달군 금속을 두드려 강하게 만드는 단조 공정과 비슷하다. 질기고 두껍지만 보풀이 많이 일어 서화용이나 인쇄용으로 사용하기 힘든 한지는 이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최고의 종이로 완성된다. 이날 겨울바람에 말라가고 있던 한지도 풀을 얇게 바른 뒤 두 차례 찧어서 도침질까지 마친 종이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제대로 된 방법이 전하지 않던 도침은 김 교수가 전통장판지 등에 풀을 먹여 밀도를 높였던 기술을 응용해 재현에 성공했다. 동양화가이면서 복원 작업을 이끈 김 교수는 동양화 작업을 할 종이를 30년 넘게 직접 만들어 썼다. 도침 역시 스스로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채록해 자신의 종이에 활용해 왔다. 김 교수는 “문헌을 보면 한지 제조 인력과 같은 수의 인력이 디딜방아로 도침질을 한 것으로 나올 정도로 핵심 기술”이라고 얘기했다. 최 대표도 “전통 한지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고 있지만 제대로 만드는 것에 도전하지 못한 것은 도침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품질 좋은 한지에 아교나 전분을 바르거나 화학약품으로 코팅하는 시도를 해봤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풀을 잡지 못하면 아무리 질긴 한지를 만들어도 쓸모가 없다.“최고급 서화용지 복원용지로 우뚝 설 것” 이렇게 복원한 전통 한지는 올해부터 정부의 훈장용지로 쓰인다. 훈장은 한지 복원의 출발점이었다. 김 교수는 “왜 정부가 국가유공자에게 준 훈장이 몇십 년도 가지 못해 색깔이 변하는지가 이번 복원의 단초가 됐다”고 설명했다. 복원이 행자부 주관으로 진행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힘들게 복원하고 기술을 표준화한 한지가 훈장용지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최고급 서화용지와 복원용지로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중국에서는 과거의 ‘고려지’를, 유럽에서는 예술 작업용 ‘파인아트지’를 꾸준히 찾고 있지만 그 정도 수준의 한지를 공급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며 “이번에 만든 한지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보풀을 잡고 인쇄기에 넣을 수 있는 한지를 만드는 길이 열린 덕택이다. 한지는 특유의 보존성 때문에 오래된 문서를 복원할 때 쓰이는 복원용지 영역에서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아직 남은 과제도 있다. 한지의 기준을 만들었지만 이것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나무 방망이로 닥섬유를 때려가면서 천연 재료로만 한지를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더 쉬운 길로 빠지려는 유혹을 계속 이겨내야 한다. 지금 한지를 뜨는 대나무발을 촉새발로 교체하는 일은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촉새발 제작 기술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겨울바람 맞고 바스락거리며 마르고 있는 한지를 어루만지며 김 교수가 말했다. “자연을 손으로만 다듬어서 만든 종이예요.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삶을 담아내다가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이 종이를 다시 살려내는 데 꼬박 70년이 걸렸네요.”▼“고려의 종이는 銀처럼 빛나네”… 中 문인들 감탄▼‘동아시아 최고의 종이’로 꼽힌 고려지-조선지 중국 명나라 말기 서화가로 이름 높은 동기창(董其昌)의 명작 ‘강산추제도(江山秋霽圖)’ 한쪽에는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라는 도장이 큼지막하게 찍혀 있다. 그림 속의 산세가 잦아들고 강 자락이 넓어지는 자리에 찍힌 도장은 이 종이가 조선 왕실이 중국 황실에 보낸 종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종이는 중국의 발명품이었지만 동아시아 최고의 종이는 고려지, 조선지로 불리던 한지였다. 중국 사람들은 한지를 ‘금령지(金齡紙)’라고 부르기도 했다. ‘황금과 같이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종이’라는 뜻이다.동기창뿐 아니라 소동파와 황정견 등 당대의 시인 묵객 상당수가 한지를 애호하고 예찬했다. ‘강산추제도’에 “고려의 표지가 은처럼 빛난다(高麗表紙光如銀)”는 발문이 달리기도 한 것처럼 특유의 매끄러움과 부드러운 먹 번짐이 장점이었다.이와 더불어 한지의 가장 돋보이는 강점은 보존성이다. 8세기 초중반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이 증명하는 것처럼 한지는 1000년 이상의 보존성을 자랑한다. 화학 처리 없이 천연 재료만을 가공해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완주=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5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의 한 주택.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진 뒤 1년 가까이 방치됐던 여중생 이모 양(사망 당시 13세) 사건의 현장검증이 진행됐다. 오전부터 집 근처에는 주민 100여 명이 몰렸다. 낮 12시 무렵 목사인 아버지 이모 씨(47)와 계모 백모 씨(40)가 도착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쓴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모 씨(61)는 “목회 일을 하는 사람이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다니 더욱 용납이 안 된다”며 “얼굴 보고 욕이라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화가 날 따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검증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두 사람은 나무막대와 빗자루로 이 양의 손바닥과 허벅지 등을 때린 행동을 담담하게 되풀이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때 진술한 내용 그대로 비교적 태연하게 진행했다”고 말했다. 앞서 구속영장 실질심사 직전 두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아동학대치사 및 사체유기 혐의로 두 사람을 구속했다. 설 연휴에도 수사를 계속한 뒤 11일경 검찰로 사건을 넘길 예정이다. 무엇보다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지난달 15일 드러난 부천 초등학생 시신훼손 사건 당시 피의자 부부의 살인죄를 규명했던 법률지원팀을 투입했다. 한편 2012년부터 이 양을 키워 온 계모 백 씨의 여동생(39)은 이날 오전 풀려났다. 경찰은 여동생의 아동학대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검찰 판단에 따라 석방을 결정했다. 여동생은 이날 “아이의 일기장을 다시 봐도 우리 집에서 학대 같은 일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불구속 상태로 폭행 및 학대행위 여부를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부천=김도형 dodo@donga.com·박희제 기자}
지인의 부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개그우먼 이경실 씨의 남편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9단독 이광우 판사는 4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최모 씨(59)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10여 년간 알고 지낸 지인의 배우자를 심야의 승용차 안에서 추행해 죄질이 무거운데도 진심으로 사과하기보다 피해자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 씨는 지난해 8월 경기 용인시 한 호프집에서 지인과 이 지인의 부인 김모 씨(37) 등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자신의 개인 운전사가 모는 승용차에 김 씨를 태워 집으로 데려다 주다가 졸고 있던 김 씨의 신체를 만져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 씨는 재판에서 김 씨를 추행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당시 자신이 4차에 걸친 음주로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로 저지른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 씨가 술에 다소 취하긴 했지만 다른 부부가 차에서 내리자 조수석에서 뒷자리로 옮겨 탔던 점 등에 비춰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최 씨는 사건이 불거지자 김 씨에게 새벽에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는가 하면 김 씨 남편에게도 욕설과 함께 “자식을 생각하라”며 협박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사건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고, 욕설 전화 때문에 불안 증세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목사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진 채 1년 가까이 방치됐던 이모 양(사망 당시 13세)이 외상에 따른 충격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기 부천소사경찰서는 “이 양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외상에 따른 쇼크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1차 소견을 통보해 왔다”고 4일 밝혔다. 외상에 따른 쇼크사는 극심한 고통이나 스트레스로 갑작스레 혈압이 낮아지고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사망에 이르는 증상이다. 오랜 시간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다 맞은 부위에서 오는 큰 통증을 감당하지 못해 숨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과수는 “대퇴부(넓적다리)에 비교적 선명한 출혈이 관찰됐지만 골절이 없고 복강(배 안)에도 출혈이 없었다”며 “정확한 사인은 현미경 검사 등 정밀감정을 거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양은 사망 추정일인 지난해 3월 17일 부모로부터 5시간에 걸쳐 구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체포된 아버지 이모 씨(47)는 경찰에 “나무 막대로 딸의 손바닥과 종아리, 무릎 위쪽을 수차례 때렸다”고 진술했다. 계모 백모 씨(40) 역시 “빗자루 등으로 팔과 허벅지를 여러 번 폭행했다”고 말했다. 사망 당일 이 양은 속옷만 입은 채였다. 경찰은 “이 양 부모가 ‘(딸이 돈을 또 훔치거나 가출을 할까 봐) 다시 가출하지 못하게 하려고 옷을 벗겨놓은 채 때렸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이 양 부모는 이 양의 도벽과 가출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고 경찰에 주장했다. 이 양은 2012년부터 계모 백 씨의 여동생(39) 집에서 지냈다. 이 양의 이모부는 본보에 “이 양을 친딸처럼 생각하며 키웠는데 2013년경부터 어른들 돈에 손을 댔다”며 “2015년 들어서는 아빠 교회 헌금을 훔치다가 걸렸는데 금액이 수십만 원, 수백만 원까지 커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계모 쪽 친척들은 이 양을 계도하려 애썼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6일 전인 지난해 3월 11일에도 이 양은 절도 건으로 아버지에게 맞았다. 당시 백 씨의 여동생은 속옷만 입고 있던 이 양에게 연고를 발라줬다. 이 씨는 이날 면회 온 아내 백 씨 가족들에게 “(딸 때문에)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이 씨의 큰아들(19)과 둘째 딸(18)은 부모가 체포될 때까지 막냇동생이 폭행당하고 사망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큰아들 이 군은 “(이 양 사망 건은) 매우 슬픈 일”이라면서도 “(계모 체포 등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군은 동생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도 “나는 2012년경 집을 나왔기 때문에 동생 실종은 잘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했다. 이 군은 한동안 부천에서 홀로 지내다 최근 들어 친척들의 보호를 받으며 부천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이 씨 부부에게 아동학대특례법상 아동학대 치사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함께 체포된 백 씨 여동생에게는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이 양 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사건은 11일쯤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한편 이 씨 주변인들은 이 씨가 부천 S신학대에서 강사(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정교수 임용에 사활을 걸었었다고 증언했다. 개척교회 목사 활동으로는 축구 꿈나무인 큰아들과 외국 유학 중인 둘째 딸, 장래 희망이 의사였던 숨진 이 양 등 3남매를 뒷바라지하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정교수 승진을 노렸다는 것이다. S신학대 관계자는 “본교가 최근 몇 년 새 20여 명의 교수를 확충할 때 이 씨도 수차례 임용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고 말했다. 이 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교직원은 “이 씨는 올해 안에는 꼭 교수로 채용될 것으로 믿어 왔다. 딸의 죽음을 숨긴 이면엔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S신학대는 이 씨를 해임했다. 지난 1년간 이 씨 강의를 들어온 학생 100여 명에겐 외상 후 스트레스 심리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부천=박창규 kyu@donga.com·박희제·김도형 기자}
한일 양국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내기로 한 10억 엔(약 100억 원)이 피해자 할머니에게 직접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 당국자는 4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개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지원의 예로는 “간병인 비용이나 의료비 지원, 위로금”을 들었다. 기념관 설립 등 추모사업 대신 현금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협상 타결 이후 정부가 개별 지원 방침을 명확히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합의 직후 위안부 할머니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했고 이 결과를 적극 반영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1, 2차관이 나눔의 집 등에서 만난 14명에 이어 국내외 개별 거주자(21명)를 일일이 면담했고 이 가운데 16명이 ‘이번 합의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현재 위안부 생존자는 모두 46명이다. 사망자를 포함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지원 기준은 정부가 재단을 설립한 뒤에 결정할 방침이다. 현재 여성가족부는 재단 설립 준비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다. 다만 재단 설립 비용 등에 정부 예산이 추가 투입될 수 있어 한일 ‘공동 책임’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외교부가 16명에게 설명했다고 밝힌 데 대해 “노환과 의사소통 곤란 등으로 직접 의사를 듣지 못한 경우를 고려하면 피해자 의견 직접 청취는 3건에 불과하다”며 ‘여론 호도’라고 주장했다.우경임 woohaha@donga.com / 부천=김도형 기자}

김용학 연세대 신임 총장(63)이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제18대 총장 취임식을 갖고 4년 임기의 총장직을 시작했다. 김 총장은 취임사에서 연세대를 존중하고 존경받는 대학, 미래를 이끌어 가는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발전 계획을 밝혔다. 이날 취임식에는 ‘선의의 라이벌’인 고려대의 염재호 총장(61)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찬송가도 함께 불러 눈길을 끌었다. 두 총장은 나이는 두 살 차이지만 같은 73학번으로 남다른 친분이 있다. 김 총장은 연세대 사회학과, 염 총장은 고려대 법대로 학부는 달랐지만 1979년 한국고등교육재단 해외유학생 장학 프로그램에 선발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두 총장은 1년간 함께 유학을 준비하고 1980년 무렵 미국 유학길에 올라 김 총장은 시카고대 사회학 석사, 염 총장은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들은 이때 맺은 인연으로 1994년 고등교육재단이 발간한 박사과정 논문집과 2008년 고 최종현 SK 회장 추모위원회가 발간한 ‘최종현, 그가 있어 행복했다’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카 바이러스의 경우 아직까지 국내 발병 사례는 없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태국에서 감염환자가 나타나는 등 지리적으로 근접해 들어오는 상황이다. 감염자가 발생한 나라로 태교여행이나 신혼여행을 가려던 젊은층들은 비상이 걸렸다.○ “혹시 여기도 지카 바이러스?” 문의 급증 다음 달 중순 괌으로 태교여행을 가려던 임신 20주 차 황모 씨(30)는 최근 여행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황 씨는 “여행을 가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 편히 놀지 못할 것 같았다”며 “환불받지 못한 숙소 대금 120만 원가량을 손해 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와이를 신혼여행지로 낙점했던 예비신랑 정모 씨(30)도 다른 곳을 새로 알아보고 있다. 그는 “아기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바이러스라고 하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지카 바이러스 문제가 없는 국가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신혼, 태교여행과 관련된 고민을 문의하는 글이 31일에만 10건 이상 올라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일선 병원에는 임신부를 중심으로 감염 여부를 검사해 달라는 요청이 하루 평균 4, 5건씩 접수되고 있다. 멕시코 칸쿤, 동남아 등 발생 지역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임신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중 실제 감염자로 추정되는 사례는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37도 이상의 발열 또는 발진이 있으면서 관절통 근육통 두통 결막염을 동반할 경우 유전자검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단순히 해당 국가를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는 의심환자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카 바이러스는 중남미에 서식하는 이집트숲모기가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있는 흰줄숲모기도 옮길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된 사례는 없다. 사람 간 접촉이나 공기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감염된 사람의 혈액을 수혈받는 과정에서 감염될 가능성이 있지만 매우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해외 감염환자의 정액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가 보고돼 성관계를 통한 감염 가능성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게 물린 뒤 증세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2∼7일. 최대 2주 안에 증세가 나타난다. 성인의 경우 대개 경미한 증상이 지속되다가 대부분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염된 사람 5명 중 1명에게서 증상이 나타나는 데다 발열, 발진 등도 가벼운 수준이어서 감염자의 80%는 감염됐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증세가 나타났을 경우에도 휴식과 수분 섭취, 해열제 투약 등 감기와 비슷한 수준의 대증치료를 통해 증세를 완화시킨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와 노인에게 더 위험하다는 증거도 아직은 없다. 길랑바레 증후군과의 연관성 여부는 의학계를 긴장시키는 부분이다. 이 증후군은 급성으로 말초신경, 척수, 뇌신경 등을 파괴해 근육을 약화시키거나 마비시키는 희귀 질환으로, 브라질에서 지카 바이러스의 유행 뒤 갑자기 발병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이 둘의 인과관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포의 ‘소두증’ 무엇이기에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신생아에게서 나타나는 소두증. 머리 둘레가 신생아 평균(34∼37cm)보다 작은 32cm 이하이면 일단 소두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신생아 2만∼3만 명당 1명꼴로 드물게 발생하는 소두증은 아기의 성장·발달 지연이나 인지능력 장애, 균형감각 상실, 청력 저하, 시각장애, 경련이나 발작 등을 유발한다. WHO에 따르면 지카 바이러스는 소두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강하게 의심(strongly suspected)’된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지훈 교수는 “임신부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 바이러스가 태반을 통과하여 태아에게 감염되고, 이러한 태내감염이 태아 소두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바이러스만 소두증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아기 두개골이 너무 일찍 붙어서 발생하는 두개골융합증, 다운증후군 같은 유전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나타난다. 또 임신부가 약물이나 영양부족, 알코올에 노출되거나 신생아가 풍진, 수두 같은 여러 감염병에 걸렸을 때도 발생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는 “소두증의 증세는 경증부터 치명적인 정도까지 매우 다양하다”며 “신경학적인 검사와 성장발달 검사를 병행해 진단한다”고 말했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도형·유근형 기자}

선임 나흘 만인 지난해 12월 21일 기자들과 만난 김용학 신임 연세대 총장(63·사회학과 교수)은 “고민과 중압감 때문에 잠을 못 이루겠다”고 했다. 내부에서마저 “우린 어차피 독과점 기업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명문 사립대를 이끌게 되었는데 무슨 큰 걱정이 있을까. 하지만 다음 달 1일 취임을 앞두고 27일 김 총장이 동아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보여준 것은 대학이 곳곳에서 마주한 도전들에 맞서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감’이었다.○ 시대에 뒤처진 대학의 ‘위기’ 김 총장은 ‘100세 시대’와 ‘네트워크 사회’를 심각한 도전으로 보고 있었다. 2045년이면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는데 현재의 신입생들은 그로부터도 50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 또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을 어떻게 연결하느냐, 즉 융합이 부가가치 생산의 핵심인 사회다. 그런데도 대학은 산업사회의 틀에 갇혀 변화를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는 학생들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이 그동안 초중고교와 똑같이 받아 적고 외우는 ‘적자생존’(적어야 산다)의 방식으로 교육해온 것이 더이상 유효할 수 없다는 반성이다.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10년 전 학부 대학장 시절 동료 교수 12명과 했던 실험 교육이다. 이 수업을 통해 ‘어떤 능력을 길러줄 것인가’ 하는 목표를 세우고 토론식 수업을 했다. 철학 수업에 ‘헤겔이 된장녀를 보면 어떻게 평가했을까?’ 같은 주제도 나왔다. 헤매던 학생들은 현 사회를 분석하라는 과제에 비로소 자신만의 학습을 시도하면서 반응했다. 학습량을 3분의 1로 줄여야 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김 총장은 “일단 학부생에게 연구비를 주면서 첫발을 뗄 것”이라고 했다. 올해 국제캠퍼스에서 서로 전공이 다른 학생 5명가량씩으로 구성된 100개 팀에 연 100만 원의 연구비를 주면서 각자 정한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교수법 변화와 관련해서는 에릭 머주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효과를 입증한 동료 교수법(Peer Instruction·학생이 학생을 지도)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 내 연구의 위기와 관련해서는 양적 평가 대신 질적 평가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세계적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질적 평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우리 대학은 학과 단위에서 교수의 장기 연구계획을 받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100위가 기적… 대학의 미래에 관심을” 새로운 방식으로 학생들을 길러내기만 하면 대학의 당면한 문제가 해결될까. 김 총장은 “극심한 취업난이라는 도전에 연세대도 예외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대학 졸업생들이 2000명, 3000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 여객선(대기업)을 기다리면 됐지만 이제는 불행인지 행복인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뗏목을 만들어서 타야 한다”고 비유했다. 취업, 창업 등 진로 개척을 사회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총장은 “학교는 전국 최고 수준인 창업지원단을 통해, 그리고 해외기업 취업정보 제공을 통해 학생들을 돕겠지만 학생은 학생대로 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계속 진로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학처장을 지냈던 김 총장은 수험생과 학부모의 관심이 가장 큰 입시제도에 대해서는 ‘예측 가능성’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강조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힘’에 초점을 맞춘 교육기조는 입시에서도 살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장시간의 면접이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기에 가장 좋지만 대학은 모든 학생을 그렇게 평가할 여력이 없다”며 “여전히 논술 전형이 유의미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논술을 준비하기 위해 그래도 책은 읽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전형이 진부해지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연세대 창의인재 전형으로 이른바 ‘곤충박사’ 학생이 합격하자 이듬해에 많은 학생이 비슷한 자기소개서를 내밀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또 최근 문제 유형이 단순해진 논술 출제방식에 대해서도 개선 방향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끝낼 무렵 김 총장은 “세계 대학평가에서 우리가 100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사실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이라고 본다”며 “앞으로는 200위, 300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큰 압박”이라고 고백했다. 정원 한 명 마음대로 늘릴 수 없고 등록금 한 푼 올릴 수 없는 상태로 해외 대학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위기감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4년 동안 1도가 아니라 0.5도라도 근본적인 각도, 방향을 바꿔놓고 싶다”고 했다. 짧은 임기 동안 가시적인 성과에 목매기보다 먼 훗날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변화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다만, 대학 스스로 노력하는 만큼 사회에서도 ‘한국의 미래’라는 시각으로 대학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 달라”고 당부했다.김도형 dodo@donga.com·정동연 기자}

행운 옛집 주연배우 우동1번지 정든집 작은거인 퇴근길…. 어둠이 깔리자 30년을 지켜온 낡은 이름들에 차례로 불이 켜졌다. 23일 밤 서울 마포구 아현초교 뒤 굴레방로에선 학교 담벼락에 등을 기댄 ‘아현동 포장마차’가 어김없이 영업을 시작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이날 36세 동갑내기 손님 5명은 ‘옛집’에 둘러앉았다. 손때 묻어 끈적이는 나무탁자를 사이에 두고 주인 김모 씨(75·여)와 손님들은 오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눴다. 사장님 대신 ‘엄마’ ‘이모’로 불리는 김 씨는 핏물 고인 꽁치와 돼지고기, 물이 흥건한 꼬막으로 안주를 만들고 있었다. 10m² 남짓한 포차가 몇 달 뒤 사라진다는 사실 탓인지 단골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 달에 두 번 꼭 찾아온다는 손님 강모 씨는 “흑백사진 혹은 오래된 일기장 같은 추억의 장소인데…”라며 소주잔을 들었다. ‘아포’라고 불리던 아현동 포장마차촌이 없어진다. 16곳 중 4곳이 폐업했고 나머지도 6월까지 문을 닫고 떠나야 할 처지다. 재개발의 여파다. 아포는 ‘아현동 산7번지’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애오개 언덕 산동네가 다세대주택 사람들로 복작거릴 때 아포도 함께 흥했다. 이 동네 주민들과 떠난 주민들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를 찾아온 술꾼들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전 6시까지 영업하는 포차가 많았다. 그러나 동네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아현동과 북아현동 일대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주민들이 동네를 떠나면서 손님이 크게 줄었다. ‘그래도 수천 가구 아파트에 새 이웃이 들어와 하루 150명씩만 우동을 팔아주면 어떨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14년 말부터 포차촌 앞 아파트에 입주하기 시작한 이웃들은 아포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통행에 불편하다거나 미관상 좋지 않다며 일부는 구청을 찾아가 “불법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시위까지 벌였다. 원래 아포가 자리 잡은 곳은 ‘선통물천’이란 하천이 있던 곳. 1960년대 복개 이후 주민들이 쓰레기장으로 사용하던 곳에 리어카를 끌고 와 술과 음식을 판 것이 아포의 시작이다. 1991년에는 상인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나무판자 노점을 만들었고 1999년 다시 공사를 해 컨테이너 상점이 됐지만 이 땅은 엄연한 국공유지다. 포차 존재 자체가 불법인 것이다. 상인들이 세금이라고 여기며 면적에 따라 매년 17만∼104만 원씩 낸 돈은 인도 불법 점유에 따른 변상금이었다. 마포구 관계자는 “상인들의 생계를 생각해 그동안 변상금만 받아왔지만 민원이 빗발쳐 묵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6월 말까지 자진 퇴거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23일 밤 불을 켠 포차의 주인은 50대 2명, 60대 4명, 70대 5명, 80대 1명이다. 대부분 6월 이후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32년째 ‘강타 이모네’를 운영하는 전영순 씨(69·여)는 “우리가 집값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이 나이에 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근 지하방에 세 들어 사는 ‘행운’의 주인 송모 씨(86·여)는 당장 월세 20만 원이 걱정이다. 아포가 사라진 자리엔 무엇이 남을까. ‘짱이네’ 주인 양모 씨(69·여)가 자신의 추억담을 들려줬다. “1988년 인창고 다닐 때부터 여기서 술 먹던 애들이 여덟 명 있어. 명절만 되면 ‘고모 힘들게 일하는 게 가슴 아프다’며 10만 원씩 주던 녀석이 늦장가를 가더니 몇 달 전엔 찾아와 ‘나 애 아빠 됐어’라고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김도형 dodo@donga.com·이지훈 기자}

“이 추위에 딸을 군대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말로 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재수까지 하면서 나서는 길인데 응원해줘야죠.” 서울 기온이 섭씨 영하 16도까지 곤두박질치며 기록적인 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3일 성북구 성신여대 학생군사교육단(ROTC) 전용 기숙사. 허만준 씨(56)와 문영미 씨(52)는 전투복 차림의 딸 허하은 예비후보생(22·스포츠레저학과 2학년)과 짧은 작별인사를 나눴다. 24일부터 충북 괴산군의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동계 입영 훈련을 받는 딸을 배웅하는 자리였다. 허 교육생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여대에 학군단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여군(女軍)의 꿈을 키웠다. 지난해 지원했다 떨어지자 휴학한 뒤 올해 다시 도전해 합격했다. 아버지 허 씨는 “여덟 살 많은 오빠는 인대 부상으로 군대에 보내지 못했는데 딸을 보내게 됐다”며 “아직 아기 같지만 더 성장하고 많이 배워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며 딸의 손을 힘껏 잡았다. 이날 경기 용인시에서 역시 부모님과 함께 기숙사로 돌아온 김혜인 후보생(22·운동재활복지학과 3학년)은 지난해 입단식을 거치고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았다. ROTC는 2학년 때 교육생으로 선발해 3학년 때 후보생으로 입단하게 된다. 세 번째 훈련에 들어가는 김 후보생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특공연대에 병영체험을 다녀와서는 “저렇게 당당하게 경례를 받는 곳인데 남자들은 왜 군대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며 군인의 꿈을 키워왔다. 이날 딸들을 배웅하러 먼 길을 함께 온 가족들은 눈물을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야심 찬 꿈을 이루기 위해 당당하게 훈련을 떠나는 딸들을 “주변에서 다들 부러워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2010년 숙명여대 등에서 처음으로 60명을 선발한 여군 학군후보생은 2012년부터 매년 250명을 선발하고 있다. 매년 선발 경쟁률이 5 대 1을 넘겨 남자보다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국방부가 다음 달 ‘여대 학군단’을 더 창단하기로 했다. 숙명여대 성신여대(2011년 창설)에 이어 세 번째 여대 학군단이다. 현재 광주여대 덕성여대 서울여대 이화여대 등 4곳이 경쟁하고 있다. ROTC를 마친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동등하게 각기 병과를 부여받고 28개월 동안 장교로 복무한 뒤 전역하거나 장기 복무하게 된다. 군 당국은 군 복무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남성과 같은 기준으로 경쟁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기는 점을 ‘여대 학군단’ 인기의 비결로 보고 있다. 전역하고 취업에 나서도 리더십과 조직 적응력을 갖춘 여성 인재로 평가받고 있다. 여대 측에서도 이런 장점 때문에 학군단 후보생들에게 장학 혜택과 해외연수 기회 등을 제공하고 있어 후보생들은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는 자부심도 크다. 군 당국은 여대 학군단 후보생들이 동·하계 입영훈련 결과에서 최상위권에 포함되고 임관할 때도 상위권을 차지할 뿐 아니라 부대 배치 후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학군단 유치 경쟁에 뛰어든 한 여대 관계자는 “학군단 출신 인재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높아지고 취업 등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아 놓칠 수 없는 기회다”라며 “사전 여론조사에서도 유치를 지지하는 학생이 많아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학군단이 없는 여대에서는 학사장교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4곳의 여대를 대상으로 25일부터 현지실사를 시작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일곱 살짜리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한 최모 씨(34)는 “권투하듯이” 아들을 때렸다고 진술했다. 또 사망 전날뿐 아니라 당일에도 아들을 무차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최 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22일 경기 부천원미경찰서에 따르면 최 씨는 2012년 11월 8일 아들을 폭행했다. 당초 최 씨는 전날 오후에 2시간가량 아들을 때렸다고 진술했으나 추가 조사에서 다음 날에도 폭행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결국 최 씨의 아들은 8일 오후 숨졌다. 특히 평소 축구와 헬스 등 운동을 즐겨해 몸무게가 90kg에 이르는 최 씨는 당시 폭행 상황을 털어놓으며 “권투하듯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들에 대해 “뼈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때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최 씨 아들의 몸무게는 16kg으로 추정돼 두 살 아래 여동생보다 가벼웠다. 최 씨의 폭행은 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됐다. 아들이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래 친구들과 자주 다툰다는 이유였다. 최 씨와 부인 한모 씨(34)는 교육방송 시청과 학습지 구독 등 홈스쿨링을 하겠다며 2012년 5월부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학습지 구독 등을 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 씨는 여전히 아들을 살해할 마음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아들이 위중한 상태인데도 처벌이 두려워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방치한 점, 사망 이후 범행 은폐를 위해 잔혹한 방법으로 시신을 훼손한 점 등을 근거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날 사체손괴·유기 및 아동복지법 위반 외에 살인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했다. 한 씨에게는 살인을 제외하고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살인죄가 인정되면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유기징역, 폭행·상해치사죄는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날 김수남 검찰총장은 앞으로 아동 사망 사건에서 사인이 불분명한 경우 검사가 직접 검시하거나 부검을 지휘할 것을 지시했다. 또 죄질이 나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구속수사’ 원칙을 천명했다. 부천=김도형 dodo@donga.com / 신동진 기자}
똑같은 비극이 1년 만에 또 되풀이됐다. 21일 경기 광주시 한 아파트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40대 남성이 부인과 자녀 2명을 살해하고 투신해 자살했다. 지난해 1월 서울 서초동에서 강모 씨(49)가 부인과 두 딸을 죽인 것과 비슷한 일이 1년 만에 또 벌어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그릇된 가부장 의식에 비극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기 광주경찰서에 따르면 21일 오전 9시쯤 광주시 경안동의 24층짜리 아파트 18층에서 포클레인 운전기사인 최모 씨(48)가 부인 김모 씨(42)와 고등학교 2학년 아들(18), 초등학교 4학년 딸(11) 등 3명을 살해한 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는 투신 직전 112로 전화를 걸어 “내가 아내를 망치로 때렸고 아이 2명도 살해했다. 불면증 때문에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부엌 쪽 거실에서 누운 채 숨져 있는 부인 김 씨와 범행 도구인 피 묻은 망치를 발견했다. 딸은 안방 이불 위에서 곰 인형을 끌어안은 상태로 누워 숨져 있었고 아들도 자신의 방 이불 위에 숨져 있었다. 최 씨는 아파트 밖 인도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피해자 3명 모두 망치로 머리를 맞아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다투거나 반항한 흔적이 없고 모두 집 안에서의 평상복 차림이어서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확한 범행 이유를 밝히기는 어려워졌지만 경찰은 최 씨가 우울증과 불면증 치료를 받아왔고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또 최 씨가 꾸준히 일하지 못하는 가운데 최근 부인의 렌터카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집이 넘어가게 생겼다”고 주변에 하소연하기도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웃들은 최 씨가 평소 술에 취하면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경찰은 이 집에서 가정폭력 사건이 신고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 씨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린 것과 대출금이 8800만 원에 이르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점 등을 중심으로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남성이 가족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과 관련해 그릇된 가부장 의식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자신 없이는 가족이 생존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인식에 비극의 불씨가 있다는 것이다. 1심에 이어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 범인 강 씨도 경찰에서 “내가 죽고 나면 남은 가족들이 멸시받을 것 같아 함께 죽으려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광주=남경현 bibulus@donga.com /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