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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51로 패가 시작됐지만 사실상 패라고 하기 힘들다. 흑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백은 적당히 이익을 보는 선에서 양보하면 된다. 백에겐 꽃놀이패. 백 52의 팻감이 흑에겐 얄밉다. 백 58이나 백 64처럼 절대팻감이 있는데도 백 52처럼 애매한 팻감을 쓴 것. 원성진 9단은 만약 흑이 52에 응수하면 아껴둔 절대팻감을 써서 패를 이기려는 것이다. 흑은 두 개의 팻감(흑 55, 61)밖에 없기 때문에 백 52의 팻감을 받을 수가 없다. 흑 53으로 패를 해소했는데 그냥 패를 따내 해소하는 것보다 이득이다. 이후 패 따냄이 몇 차례 오갔지만 이건 패싸움이 아니라 초읽기에 몰린 백의 시간 벌기. 팻감이 떨어진 흑이 67로 잇자 하변 백 대마는 완벽히 숨을 거뒀다. 흑 73으로 참고도 흑 5로 두는 것은 백 6으로 먹여치는 수가 있어 흑이 잡힌다(9…6). 하변을 통째로 손에 넣은 흑 집은 65집에 달한다. 집으로 흑도 해볼 만하지만 문제는 우상귀. 백이 80으로 한 점을 때리자 우상 흑이 졸지에 미생마가 된다. 그것도 아주 위태롭다. 흑 81로 벌려 궁도를 넓히지만 많은 피를 흘려야 할 것 같다. 아직 하변 백 대마를 잡은 중앙 흑 돌이 불안정하다. 원 9단은 이 돌과 우상 흑 돌을 엮어 한쪽을 요절내려 하고 있다. 흑에게 형극의 길은 끝날 줄 모른다. 54·60·66…○, 57·63…51.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흑은 집의 균형을 맞추려면 좌하 백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문제는 공격의 주축인 흑 ○가 약해 공격의 강도를 높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일단 백 ○ 행마의 약점인 흑 21을 둬야 앞날을 기약할 수 있다. 백 22로 먼저 끊은 것은 기민했고 백 30까지 둔 원성진 9단은 느긋한 표정이다. 흑이 백을 그냥 잡지 못하고 참고1도처럼 패가 나면 백의 압승이다. 그러나 김형우 4단은 원 9단도 미처 깨닫지 못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 4단은 흑 31, 33을 선수했다. 흑 석 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프지만 흑 ○의 보강이 우선이기 때문. 이어 흑 35를 작렬시켰다. 원 9단은 깜짝 놀랐다. 예상하지 못했던 수인데 생각보다 위협적이다. 백 36으로 잇는 것이 절대인데 흑 37, 백 38을 교환하고 흑 39가 놓이자 백이 두 집을 낼 수 없다. 백에게 비상이 걸렸다. 원 9단은 백 40, 42로 외곽부터 정리한다. 중앙 흑의 허약함과 좌하 흑이 아직 100% 살지 못한 점을 엮어 활로를 뚫으려는 것이다. 백 44 때 흑 45는 불가피하다. 만약 흑 45를 생략하면 참고2도 백 2가 성립한다. 수순이 길지만 백 30까지 축으로 흑 전체를 잡는다. 원 9단은 장고 끝에 백 46을 찾아냈다. 백 50까지 패. 참고1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패를 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흑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고지가 바로 저기’여야 힘이 날 텐데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백 4, 6의 이단젖힘. 백 모양에 약점이 많은 것 같지만 막상 응징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흑은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며 일단 흑 7로 물러선다. 흑도 노리는 바가 있다. 흑은 백의 공격이 더욱 강렬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백이 공격에 취해 십자포화를 쏟아 부을 때 반격의 기회가 생긴다는 것. 예를 들면 흑 9 때 백이 참고도 백 1로 틀어막는 수다. 이 수로 흑이 더 이상 탈출할 수 없는 건 맞다. 하지만 흑 8, 12를 두고 14, 16으로 젖혀 이으면 대마 수상전이 된다. 이건 백이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수상전. 원성진 9단 같은 사냥꾼은 이런 위험의 징후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원 9단은 백 10으로 템포를 한 번 늦춘다. 이게 사실 흑에겐 더 괴롭다. 여기서 김형우 4단은 결단을 내린다. 12의 곳을 이으면 대마를 다 살릴 수 있겠지만 계속 공격에 시달릴 것이다. 김 4단은 흑 11로 뛰어나간다. 백 12로 잡힌 흑 대마가 무려 35집이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걸 버려야 자신에게도 공격할 기회가 생긴다. 김 4단은 흑 19로 좌하 백 대마 공격에 나섰다. 이 대마는 꼭 잡아야 계가가 된다. 백은 20으로 가볍게 탈출을 시도한다. 흑 ‘가’의 공격에는 대비책이 서 있는 눈치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백 72로 공격의 서막이 올랐다. 이렇게 들여다보면 잇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금은 그냥 이었다간 백의 공격을 감당하기 어렵다. 흑 73은 엉뚱해 보이지만 우변 흑의 삶에 도움이 되는 수. 그 이유는 곧 나온다. 어쨌든 백 78의 씌움이 매섭다. 흑의 탈출로는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 탈출하려면 하변 쪽으로 해야 하는데 하변에 백 세력이 이미 자리잡고 있어 몇 발짝 나가지 못한다. 흑 79가 73과 연계된 맥. 백 80으론 참고도 백 1, 3으로 두면 우변 흑을 잡을 순 있지만 흑 8까지 백 두 점이 잡히는 것도 적지 않고 흑이 선수를 잡아 10으로 달리면 백이 손해다. (흑 6…◎) 백 80이 불가피할 때 흑 81로 되단수 쳐 안형을 만들기 시작한다. 결국 흑 89까지 패가 났다. 문제는 팻감. 백은 져도 큰 피해가 없지만 흑이 지면 대마가 함몰한다. 따라서 백은 94와 같은 곳을 팻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반면 흑은 대마를 살리겠다는 자체팻감이 고작이다. 흑 97에 대해 팻감에 여유가 많은 백이 받아줄 것 같았으나 그냥 패를 해소해버린다. 성급한 건 아닐까. 원성진 9단의 생각은 흑이 99로 한 수 더 둬도 백 100, 102로 두면 어차피 탈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원 9단의 생각처럼 백 102가 놓이자 흑이 갑갑해진다. 원 9단의 펀치가 제대로 꽂히고 있다. 93…79, 96…90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원성진 9단의 별명은 ‘원펀치’. 그만큼 한 번에 몰아치는 공격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전보에서 흑이 우하와 하변을 보강하는 대신 우상에 선착하며 배짱을 부리자 원 9단은 ‘원펀치’답게 백 50으로 즉각 응징에 들어갔다. 우하 귀는 흔히 됫박형이라고 불리는 사활. 흑이 어떻게 두든 패가 난다. 흑의 공배가 다 메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고도 흑 1이 성립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변 흑이 미생이어서 백 2, 4 이후 6으로 두는 맥에 걸려든다. 귀는 살지만 하변 흑이 패에 걸려 흑이 괴로운 건 마찬가지. 참고도의 패보단 흑 53으로 끼우는 패를 하는 것이 나중에 패를 이겼을 때 흑에 훨씬 이득이다. 패를 내기 전에 흑 51, 백 52를 교환한 것이 용의주도한 팻감 만들기. 그런데 흑 51 자체를 팻감으로 쓸 수 없을까. 만약 흑이 51을 팻감으로 쓴다면 백은 패를 해소할 가능성이 높다. 백 한 점을 때린 흑의 모양이 별로 튼튼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흑 51의 효과로 57이라는 절대팻감이 생겼다. 하지만 더 팻감이 없다. 그래서 흑은 백 60의 팻감을 받지 못하고 패를 해소했다. 대신 백 62로 뚫리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백 70이 ‘원펀치’다운 강수. 흑이 물러선다면 우변 흑 한 점을 크게 에워싸 잡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흑도 71로 살리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번 싸움 한판이 일어날 조짐이다. 59…53, 61…56.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장애인을 위한 좋은 장비보단 장애인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배려해주는 것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고려대 장애학생지원센터는 14일부터 3일간 장애 재학생 7명과 도우미 2명을 데리고 일본 쓰쿠바대와 와세다대의 장애학생 지원센터와 프로그램을 둘러보는 특별한 나들이를 가졌다. 참가 학생들은 대부분 시각 청각 지체 정신 장애 1∼3급으로 처음 비행기를 탔다. 14일 쓰쿠바대를 찾은 학생들은 시설과 프로그램을 둘러보고 “감동의 물결”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학생들의 관심을 끈 장비는 지도와 같은 간단한 그림까지 특수한 용지를 이용해 점자로 인쇄하는 프린터였다. 쓰쿠바대는 고려대 학생들에게 쓰쿠바대 교내 지도와 설명을 점자로 인쇄해줬다. 시각장애 1급인 김수미 씨(영어교육과 2년)는 “문자뿐 아니라 그림까지 점자로 바꿔 주니까 쓰쿠바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국내에서도 이런 걸 응용해 시각장애인에게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쓰쿠바대가 장애 학생을 위한 지원 항목을 학교가 결정해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장애학생들이 직접 필요한 것을 결정하는 학생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 최근 쓰쿠바대 메인 도서관에 만들어진 낭독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는 시각장애 학생이 책을 빌리면 자원봉사자가 미리 책의 주요 목차와 내용 일부를 읽어줘 필요한 책인지를 판별할 수 있도록 한다. 쓸모없는 책까지 빌리는 것을 막자는 장애인들의 요청을 반영한 것이다. 고려대와 쓰쿠바대 장애 학생의 만남 과정에서 쓰쿠바대 청각장애 도우미 학생들이 두 나라 장애 학생들의 발언 내용을 일일이 타자로 쳐서 바로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오체불만족’을 쓴 오토다케 히로타다 씨가 졸업한 와세다대도 새로 지은 건물에 장애인을 위해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고려대 장애학생지원센터는 2008년 문을 열어 현재 120명의 장애학생을 지원하고 있으며 2009년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 실시한 지원체제 평가에서 대학 중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쓰쿠바=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흑 ○의 응수타진에 ‘가’로 젖히는 것은 백이 사석작전에 말려든다. 백 28처럼 위에서 젖히는 수가 좋다. 이때 흑이 29로 ○를 무겁게 끌고 나온 것이 실착. 흑 ○는 응수타진으로 활용한 것이니 가볍게 처리했어야 했다. 예를 들면 참고도 흑 1이 가볍다. 백 2, 4면 흑 5로 한 점 잡는 수와 귀에 호구치는 것을 맞보아 충분한 모습. 백 2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가’로 잡으면 흑도 ‘나’에 둬 백 한 점을 손에 넣는다. 이것 역시 흑이 나쁘지 않다. 백 30이 흑의 무거운 행마를 정확히 응징하는 수. 한눈에도 흑이 곤란한 모양이다. 원래 36의 자리에 이을 수 있어야 하는데 백이 31의 자리에 둬 끊어버리면 흑 귀가 온전치 못하다. 그래서 흑 31은 눈물겨운 후퇴인데 백 32로 밀고 나오자 우하와 하변 흑이 갈라졌다. 흑 37, 39로 일단 우하 귀부터 보강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백 40의 압박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 아찔한 느낌을 준다. 흑 45까지 근근이 사는 모양을 갖췄지만 백 46으로 튼튼하게 이어가자 아직도 우하 귀와 하변 흑이 100% 살았다고 할 수 없다. 김형우 4단은 안전하게 가일수하고 있다가는 대세에 뒤처진다고 보고 흑 47로 큰 곳을 차지하며 배짱을 튕긴다. ‘나’로 패를 내는 수를 믿고 있는 것. 흑 47을 본 원성진 9단의 입가에 냉소가 번진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11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 한국남자팀 국가대표가 결정됐다. 시드를 받은 이창호 이세돌 9단을 비롯해 최철한 조한승 강동윤 9단과 박정환 8단이 선발전을 거쳐 대표가 됐다. 박영훈 9단이 탈락했지만 이 정도면 최강의 선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도 쿵제 구리 9단을 투톱으로 내세워 선수진을 구성했다. 두 국가가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칠 것으로 본다. 여성 대표에는 박지은 9단이 떨어졌지만 조혜연 8단, 이민진 5단, 이슬아 2단 등 알차게 짜였다. 이제부터는 누가 더 준비를 잘하느냐다. 선수들은 아시아경기의 중요성을 자각해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선수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백 10은 발 빠른 수. 흑은 여유 있게 11로 걸쳐 간다. 흑 21에 백 22는 적극적인 수. 초반 몸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백 26의 날일자 행마는 쌍방 근거의 급소. 흑의 다음 행마가 쉽지 않다. 흑은 직접 응수가 어렵다고 보고 27로 응수를 묻는다. 여기서 백이 참고도처럼 아래에서 젖혀서 받는 것은 흑의 의도에 걸려든다. 흑은 사석작전을 펼쳐 두터움을 확보한 뒤 흑 24, 26으로 공격한다. (17…8) 백의 탈출이 쉽지 않아 흑이 우세한 국면. 백도 고민이다. 해설=김승준 9단 글 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이영구 8단과 허영호 7단은 한국 바둑의 허리다. 이세돌 이창호 9단을 선두로 최철한 박영훈 강동윤 9단, 박정환 8단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이들이 선두권을 뒷받침하고 있다. 바둑계에선 이들을 ‘마귀’라고 부른다. 그만큼 두려운 상대라는 뜻이다. 선두권 기사들도 이들을 만만히 볼 수 없다. 현재 중국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활약이 중국과의 전적을 대등하게 만들 초석이 될 수 있다. 특히 허 7단은 올해 춘란배 8강 진출 등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랭킹 7위에 올라 있다. GS칼텍스배 4강에 오르기 위한 길목에서 서로 껄끄러운 상대를 만났다. 초반부터 하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제 하변 전투를 마무리할 시점에서 흑은 우열을 확실히 가리고 싶다. ○ 장면도=흑 1로 끊은 것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곧 맥점을 두기 위한 사전 정비작업. 백 2는 불가피한 수. 수가 날 것 같은 모양이지만 정확한 수순이 아니면 상대를 도와주기 쉽다. ○ 참고도=흑 1, 3은 성급하다. 백 4로 지켜 아무 수도 나지 않는다. 물론 흑 1, 3처럼 찌르고 잇는 것이 백 모양을 허약하게 만들지만 사전 작업이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 실전도=흑 1로 먼저 젖히는 것이 맥. 백이 그냥 흑 한 점을 따내면 흑이 2의 곳에 늘어 중앙을 봉쇄한다. 허영호 7단은 백 2로 저항해 보지만 흑 3, 5가 정확한 수순. 흑 19까지 외길 수순이다. 흑이 중앙을 멋지게 봉쇄해 승기를 잡았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그 사람과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열한 살이나 어리지만 나보다 어른스러울 때도 있다.” 이창호 9단은 최근 결혼 기자간담회에서 예비 신부인 이도윤 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씨도 이 9단의 말에 화답하듯 “이 국수님을 돕기 위해 요리 일본어 운전 등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이 9단을 위해 할 수 있는 내조는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바둑계는 이 씨의 내조가 이 9단의 부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 9단은 예민하고 대중 앞에 서는 것을 꺼려 그동안 번거롭고 불편한 일을 적절히 처리해주는 ‘매니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결혼을 통해 이 9단이 편안한 마음과 안정된 생활을 갖게 된다면 성적도 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승부에 대한 중압감이 큰 프로기사들에게 결혼은 좋은 보약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혼이 기사 생활에 전환점을 가져온 대표적 사례로는 중국 쿵제(孔杰) 9단을 들 수 있다. 쿵제 9단이 후지쓰배에서 우승하고 6일 베이징 공항으로 귀국하던 날 그의 부인 천샤오윈 씨가 마중 나왔다. 그가 우승할 때마다 보는 풍경이다. 중국에선 천 씨가 “쿵제를 성숙시켰다”고 표현한다. 쿵제 9단은 침착하고 단단한 기풍으로 한때 중국 랭킹 1위도 차지한 적이 있지만 세계대회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결정적인 대국에서 우세한 바둑을 패한 경우가 많아 ‘새가슴’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쿵제 9단이 천 씨와 사귀기 시작한 건 2008년 말부터. 2006년 항저우(杭州) 지역 슈퍼걸 선발대회에 출전했던 천 씨는 아마 5단의 실력으로 바둑계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다. 쿵제 9단은 천 씨와 사귀기 시작한 뒤 놀라운 약진을 거듭했다. 2009년 TV아시아속기선수권전과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했다. 올해 들어 중국 랭킹 1위에 복귀한 뒤 LG배와 TV아시아속기전을 따냈고 이달엔 후지쓰배마저 거머쥐었다. 특히 후지쓰배의 경우 역대 전적에서 크게 밀리던 이세돌 9단에게 완승을 거뒀다. 그의 부활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세계 1인자’라고 부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쿵제 9단과 천 씨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삼성화재배 우승 후 혼인 신고를 해 법적 부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 씨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쿵제 9단에게만 신경 쓴다. 그가 대국에서 패해 기분이 가라앉으면 위로해 주고, 바둑이 아닌 다른 일에서 기쁨을 찾게 해준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2006년 결혼한 이세돌 9단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그 전에도 성적이 좋았지만 2007년 이후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다. 그는 올해 초 이창호 9단의 바둑을 해설하며 “결혼해야 안정된다”고 공개적으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최철한 9단도 2007년까지 극심한 슬럼프를 겪은 뒤 지난해부터 다시 성적을 내고 있는 것에 대해 여자친구(윤지희 2단) 덕분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창하오 9단이나 뤄시허 9단도 결혼 덕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준 9단은 “프로기사들이 승패의 부담을 혼자 지기 때문에 주위에 따뜻한 반려자가 있으면 심리적으로 위안이 된다”며 “특히 승부의 세계를 잘 이해하는 배우자라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금빛 칠갑을 한 18명의 동인(銅人)들이 차례로 앞을 막고 나선다. 그들이 버티고 있는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만 세상에 나가 정의를 펴고 이름을 떨칠 수 있다. 최정예 훈련을 거친 숱한 도전자들이 최종 관문을 앞두고는 줄줄이 쓰러져 간다. 하지만 주인공은 격파가 불가능해 보이던 무적의 동인진을 물리치고 활활 타는 청동화로를 감싸 들어올려 마침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힌다. 영웅의 가슴엔 최고수의 표상인 찬란한 용 문신이 아로새겨진다. 어릴 적 열광했던 무협영화 ‘소림 18동인’의 이미지가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릴 아시아경기 바둑 국가대표 선발 과정 내내 떠올랐다. 남자팀의 경우 자동 출전권을 받은 이창호 이세돌 9단을 제외하고 광저우를 밟은 수 있는 기사는 단 4명. 대표 선발전 출전 자격은 랭킹 20위까지 주어졌다. 1차전부터 출전한 랭킹 13∼20위 기사가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최소 18판, 최대 22판의 대국을 가져야 했다. 특히 1, 2차전에서는 거의 전승을 거둬야 했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하위 랭커 중에서 최종 통과자가 나오지 못했다. 박정상 9단, 윤준상 8단, 백홍석 7단이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분루를 삼켰다. ‘죽을 때까지 강해지겠다’는 다짐을 승부사로서의 모토로 삼고 있는 박 9단은 “패한 순간 지나온 승부들이 떠올라 20분이 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블로그에 심경을 남겼다. 랭킹 15위로 출전해 강자들을 연파하며 박 9단과 함께 관문 돌파의 쌍벽을 이뤘던 백 7단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부담 없이 시작했는데 자꾸 이기니까 슬슬 욕심이 났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군 미필 동료 원성진 9단, 백 7단과 함께 선발전이 끝나면 회포를 풀기로 약속했던 윤 8단은 마지막 국가대표 선발에서 미끄러진 뒤 씁쓸한 뒤풀이를 가졌다. 이들의 아픔을 뒤로하고 사상 첫 바둑대표팀의 진용이 갖춰지고 있다. 남자팀은 이세돌 이창호 최철한 조한승 강동윤 9단, 박정환 8단 등 6명을 확정했다. 여자팀은 먼저 선발전을 통과한 이슬아 김윤영에 이어 이민진 조혜연 박지연 셋이 남은 두 자리를 놓고 막판 경합 중이다. 16일 대표팀은 첫 소집을 갖고 훈련에 돌입한다. 대표팀의 선전을 당부하기에 앞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온 모두에게 따듯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프로들의 철저한 직업의식이야 익히 보아왔지만 이번 선발전을 통해 새삼 놀란 대목은 바둑에 대한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었다. 상금이 아니라 금빛 명예를 위해 젊은 사자들은 기꺼이 투혼을 불살랐다. 그들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철의 관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을 것 같다.이세신 바둑TV 편성기획팀장}


바둑의 승부를 결정짓는 주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강약 조절이다. 프로기사들은 수읽기 싸움에서 지는 것보다 강약 조절에 실패해서 진다. 잡으러 갈 건지, 살려줄 것인지 혹은 강하게 나갈 건지 아니면 물러설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이 바둑도 그 전형적인 사례다. 흑은 초반 ‘산 넘고 바다 건너는’ 험한 길을 잘 헤쳐 나와 우세라는 탄탄대로에 접어들었다. 이 대로를 걸어가는 도중 백이 74로 가볍게 견제에 나섰다. 백으로선 상대가 너무 잘나가니까 속도나 좀 줄여보자는 뜻이었다. 흑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참고도 흑 1처럼 브레이크를 밟고 백이 살아갈 때 흑 5로 다시 속도를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흑은 이 한 점을 요절내겠다고 덤볐다. 참고도 ‘가’(흑 75)는 백에게 어떤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강수였으나 이것이 오히려 일파만파의 변화를 일으켰다. 백이 76으로 즉각 움직이며 ‘속도조절용 응수타진’은 난타전으로 번졌다. 흑은 이 백을 그냥 살려줄 수 없어 흑 89로 끊어갔지만 이 돌은 백의 역공을 받아 거꾸로 곤마로 몰렸다. 백은 중앙 흑 돌을 몰아가며 좌상에 60집에 달하는 큰 집을 마련했다. 이후 흑은 127로 저항했지만 백의 정확한 방어에 무릎을 꿇었다. 허영호 7단이 입단 후 처음으로 국수전 본선에 올랐다. 62…45, 148…82. 소비시간 백 2시간 40분, 흑 2시간 59분. 170수 끝 백 불계승.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