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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4)의 다른 제목, 같은 소설 ‘노르웨이의 숲’(양억관 옮김·민음사)과 ‘상실의 시대’(유유정 옮김·문학사상)의 경쟁이 두 달째다. 중간 성적표를 받아봤다. 지난달 초 원제목을 단 ‘노르웨이의 숲’은 국내에서 150만 부가 팔린 ‘상실의 시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민음사가 무라카미 씨와 정식 판권 계약을 맺고 세계문학전집 310번째 책으로 초판 3만 부를 출간했다. 번역가 양억관 씨가 일본어 번역투 문장을 요즘 20대들이 사용하는 가벼운 구어체로 새롭게 번역했다. ‘상실의 시대’는 무라카미 씨와 계약이 끝났지만 저작권법 개정 이전에 출간돼 ‘회복저작물’로 인정받아 계속 출간될 수 있다. ‘노르웨이의 숲’ 출간 후 최근까지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3200여 권, 같은 기간 ‘상실의 시대’는 1900여 권이 팔려 약 1.7배 차이가 났다. 같은 기간 교보문고 온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노르웨이의 숲’이 2.3배나 팔렸다. 예스24 문학담당 김희조 MD는 “새로운 번역과 예술적 표지가 독자의 마음을 사 꾸준한 판매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민음사 관계자는 “세계문학전집에 포함해 하루키를 고전의 반열에 끌어올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생겨날 10, 20대 하루키 팬에게는 새롭게 번역한 ‘노르웨이의 숲’이 더 매력적으로 읽힐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인 문학사상은 느긋하다. 해마다 최소 1만 권 이상 팔린 ‘상실의 시대’는 ‘노르웨이의 숲’ 출간 이후에도 판매량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란 이름값과 반값 할인이 판매 요인으로 분석된다. 문학사상 관계자는 “‘상실의 시대’가 오늘날 한국에서 하루키를 만들었기에, 하루키 측이 제목을 바꿔달라고 해도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라카미 팬에게 두 책의 경쟁은 관심사다. 인터넷에는 두 책을 비교하는 리뷰가 계속 올라온다. 무라카미 팬 카페 ‘무라카미 하루키 되기’ 회원의 의견도 갈렸다. 닉네임 ‘니노’를 쓰는 31세 여성 회원은 “‘상실의 시대’ 제목이 더 적절해 보였는데 ‘노르웨이의 숲’을 사서 여러 번 읽고 나니 가슴속에 더 다가온다”고 밝혔다. 닉네임 ‘가브리엘’인 26세 여성 회원은 “‘상실의 시대’ 번역과 제목이 작품의 분위기에 더 잘 어울린다. 오히려 캐릭터가 잘 드러나게끔 성실하게 번역했다”고 평했다. 팬카페 운영자 김도윤 씨는 “번역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노르웨이의 숲’이 낫단 평이 많다. 하지만 추억이 간직된 깊은 맛은 ‘상실의 시대’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스물셋 ‘알 작가’(햇병아리도 안 된 작가)가 인터넷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베스트셀러 ‘개미’ ‘신’을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앞섰다. 예스24는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제3인류’(열린책들) 출간에 앞서 7일부터 e연재 사이트에 총 20회 분량을 매일 한 회씩 무료 연재하고 있다. 베르베르가 워낙 두꺼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단숨에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14일부터 일주일 동안 ‘제3인류’의 조회수는 1만265건으로 2등에 머물렀다. 조회수 3만1179건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작품은 무명작가 정연주 씨(23·여)의 로맨스소설 ‘기화, 왕의 기생들’이었다. 다음 모바일서비스에서도 ‘제3인류’는 ‘기화…’의 벽을 넘지 못했다. 7월부터 3개월째 1위를 지켜 온 ‘기화…’는 지난달 59회로 이미 연재가 끝난 소설, 11회부터는 100원씩 내야 볼 수 있는 유료 소설이기도 했다.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정 씨는 “순위를 볼 때마다 눈을 의심한다. 나도 베르베르 소설의 팬인데…”라며 부끄러워했다. 정 씨는 연산군이 궁궐로 불러 모은 기생 조직 흥청에서 착안해 망나니 왕 이훈이 기생 가란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썼다. 주 독자층은 30대 여성. 고교 시절 디지털영상학을 전공해 영상 문법에 익숙한 것이 장점이었다. “독자가 읽으면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듯 묘사에 중점을 뒀어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독자에게 긴장감을 줬죠. 그렇다고 쉽게 쓰진 않았어요. 매일 마감에 쫓기면서도 완성분의 세 배 이상을 버리고 고쳤습니다.” 로맨스를 쓰지만 현실은 고달팠다. 슈퍼마켓 집의 꿈 많은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가게가 망하면서 고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2011년 수원여대 세무회계정보과를 졸업하고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숫자로 가득한 영수증과 회계문서, 닦달하는 거래처 전화, 외부 영업까지 매일 파김치가 됐다. 그 와중에 지난해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한 장르소설 인터넷 공모전에 ‘인어의 목소리’를 3개월간 매일 연재하고 그날그날 독자투표에서 살아남은 끝에 판타지 분야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이제 ‘기화…’가 인기를 모으며 대기업 사원 못지않은 월수입을 올리는 전업 작가가 됐다. “부모님은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쓰니까 걱정이 태산이셨는데, 꿈과 열정보다 수익을 보여 주니 안심하시더군요.(웃음) 앞으로 로맨스 소설을 열심히 써서 내가 쓴 책으로 책장을 채우는 게 꿈입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한국학 분야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사진)가 22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지난달 혈액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글을 계속 써왔으며 이날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1932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29세 때 대학교수가 된 뒤 충남대와 서강대 교수,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객원교수 등 반세기 동안 학교 강단에 섰다. 1991년에는 정년을 6년 남겨두고 서강대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삶을 꿈꾸며 낙향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학문을 닦으며 영남 지역 주민을 위한 강연도 해왔다. 한국인 연구를 천업(天業)으로 삼아온 고인은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를 다룬 저서 60여 권을 남겼다. ‘한국민속과 문학연구’ ‘한국문학사’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의 자서전’ 등이다. 해마다 책 한 권 이상을 집필한 저자는 올해 6월 ‘상징으로 말하는 한국인, 한국 문화’를 썼다.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깃든 다양한 상징에 대해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일생 ‘책벌레’로 불려온 고인은 독서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2008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책 읽기는 마음을 가다듬는 즐거움이 있다. 쉽진 않지만 어려울수록 즐거움은 더 깊어진다. 바쁜 형편이 책 안 읽는 구실이 되어선 안 된다. 독서는 자신의 인간 가치를 살피는 일이다. 머리 고픔은 책 예술 자연을 통해서만 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2002년 본보에 연재한 칼럼 ‘김열규 교수의 웃음의 인생학’을 통해 그는 허위와 위선에 칼침을 놓거나 고된 인생을 달래주는 해학의 글을 선보였다. 마지막 연재 칼럼에는 이렇게 썼다. “죽음의 위기는 더없이 좋은 유머가 생겨날 터전이다. 유머의 미덕은 그것이 태어난 모태인 위기의 크기에 비례해서 증폭한다. 그러나 죽음 이외에도 삶에는 크고 작은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또 갈등도 빚어지기 일쑤다. 이들도 역시 유머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일수록 그 자신의 삶을 위한 훌륭한 관리자가 된다.” 유족은 부인인 수필가 정상욱 여사, 아들 진엽 서울대 미학과 교수와 진황 현대고 교사, 딸 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9시 서강대 성당. 02-2072-2010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엊그제 내린 비로 추위가 온다하고/설악산 단풍들은 눈 속에 졌다 한다/내 귀한 가을이래도 별 수 없이 잃고 있다’ 계간 시조문학 발행인이자 시조시인 김준 서울여대 명예교수(75)는 16일 시조문학 홈페이지 ‘김준 문학서재’ 코너에 7001번째 시조 ‘엊그제 내린 비로’를 올렸다. 2003년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에서 정년퇴직한 뒤 10년간 올린 작품이 어느새 7000수가 넘어섰다. 이달 말 새 시조집을 출간하는 그를 서울 구로동 시조문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시조와 함께 살았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아버지 뜻에 따라 이리공고 전자과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글과 음악을 좋아했던 터라 복잡한 수학공식과 위험한 전기실습은 힘에 부쳤다. 학교를 관둘까 하던 차에 시조시인이자 국어교사인 구름재 박병순 선생을 만났다. 김 명예교수는 “선생님이 황진이 시조를 읊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시조는 내 신앙이 됐다”고 했다. 다시 가람 이병기 선생에게 시조를 배운 뒤 경희대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1960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는 대학 졸업 뒤 수도공고, 중앙고 국어교사, 서울여대 교수로 일하며 꾸준히 시조를 썼다. 활발한 저작 활동을 했던 학자도 퇴임 이후엔 쉬는데, 오히려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더 많은 작품을 쓰고 있다. “30여 년 전 등산 중 사고로 오른쪽 눈을 실명해 불편하지만 매일 오후 9시부터 새벽 두세 시까진 시조를 씁니다. 남들은 시조가 형식이 있어 고루하다고 하는데, 그 형식 속에서 단어와 문장을 매만지는 재미에 피로한 줄 모릅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하나. 몇 년 전 일본 오사카 여행 때 그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사위와 함께 한 선술집에 갔다. 술집에 있던 비슷한 또래의 일본인 손님들은 그가 시조시인이란 사실을 알고 한 수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즉석에서 한 수를 노래했다. ‘접어 둔 헌 우산을 서둘러 챙겨 들고/봄비를 맞으면서 네 생각에 젖고 있다/펼쳐 든 우산 속으로 그리움이 고인다’. 그의 즉흥시를 들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시인 하이쿠보다 낫다며 박수를 쳤다. 김 명예교수는 ‘파격시조’를 주장하며 기본적인 형식마저 무너뜨리고 있는 요즘 세태가 아쉽다고 했다. 그는 “시조 형식을 바꾸는 것은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시조는 시가 될 수 있지만 시는 시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원로 방송인 송해처럼 허허 웃으며 시조를 읊던 그가 이 순간만큼은 표정이 비장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제목만 보고 촌스럽다고 외면하기엔 예쁜 구석이 많은 책이다. 책 제목을 한자어로 써놓으니 복고풍이 솔솔 불어온다. 투박하게 통으로 감싼 비닐포장도 나름 멋스럽다. 표지사진 속 맥주잔을 든 남녀는 조금 어색하지만 사랑스러운 표정을 연기하며 서로 바라보고 있다. “언제라도 좋아요!!”라며 정말 느낌 아는지, 느낌표를 두 개나 써가며 소비자를 유혹했던 1976년 크라운맥주 광고사진이다. 이 책은 1970년대 100여 종의 잡지에서 모은 광고사진 600여 개를 한 권으로 묶었다. 1970년대는 ‘신제품’의 시대란다. 광고가 없어도 물건만 만들면 팔리는 1960년대를 지나 압축성장 속에 각종 신제품이 쏟아지자 광고 이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예나 지금이나 광고는 3B, 아기(Baby) 미인(Beauty) 동물(Beast)이 중요했다. 특히 당시의 화장은 짙지만 성형은 하지 않은 개성 강한 미인 모델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물건 종류별로 노란색 종이에 따로 발췌해 놓은 ‘소프트 세일’ ‘아랫배의 나옴을 막아주는’ 식의 광고문구와 그 폰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은 사라진 카세트나 브라운관 TV를 최신식 기술로 묘사해놓은 광고도 귀엽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밝고 행복하고 긍정적이다. 심지어 노동자마저 고생한 티가 안 난다. 하지만 광고가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쓰고 욕망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시각자료임은 틀림없다. 책이 일반 독자가 아닌 디자인 전문가를 겨냥해서 만들어져 가격이 조금 비싼 게 흠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책을 펼치면 식당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서자 하드록 밴드 AC/DC 노래가 울려 퍼진다. 2013년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 4위에 오른 뉴욕의 ‘모모푸쿠(Momofuku)’다. 식당 주인인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장(장석호·36·사진)을 만나 보자. 그는 ‘성질 더럽고 까탈스럽지만 종종 기발하다’. 중학생 때 골프 선수를 꿈꿨지만 재능이 없어 관뒀다. 대학에서 신학과 인문학을 배웠지만 졸업 후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지 못했다. 영어 선생을 하려고 일본에 건너갔다가 맛본 라멘의 매력에 빠진 뒤에야 그는 꿈을 정했다. 뉴욕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요리를 배운 저자는 2004년 8월 좁은 가게를 인수하고 ‘모모푸쿠 누들 바’를 열었다. 일본어로 ‘행운의 복숭아’를 뜻하며, 인스턴트 라멘을 발명한 일본인 안도 모모푸쿠에 대한 경의도 담았단다. 퓨전 라멘 집을 열었지만 처음에 파리만 날렸다. 웃으면서 망하자며 싸게 양 많이 퍼준 다음에야 가게에 손님이 모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후진’을 수시로 내뱉지만, 오기로 똘똘 뭉친 저자의 도전기가 재밌다. 그는 끊임없이 일을 벌인다. 한국 보쌈과 멕시코 부리토를 결합한 ‘쌈 바’를 열고, 등받이 없는 의자를 놓곤 하루에 손님 12명만 받는 ‘코’도 연다. 사업을 확장할 때마다 슬럼프가 찾아오지만 그는 버틴다. “기분은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졌고, 스트레스는 더욱 쌓여만 갔다. 그래서 셰프들만의 해결 방법을 동원했다. 그건 바로, 그저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저자는 2010년, 2012년 주간 타임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고, 올 5월 ‘음식의 오스카상’인 제임스비어드상 최우수 요리사상을 수상했다. 아직 꿈을 못 정한 청년은 그의 성공 스토리에 마음이 움직이고, 요리가 취미인 사람은 그가 특별 공개한 모모푸쿠 레시피를 흉내 내기 바쁠 것 같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무료 배포하는 ‘미니북’이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니북을 갖기 위해 책을 사고, 원래 책값에 웃돈을 얹어 미니북을 구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창비는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1·2권) 미니북 2000세트를 제작했다. 이 미니북(가로 7.7cm×세로 11.2cm)은 원래 책(14.8cm×22.5cm)의 절반 정도 크기지만 본문 내용과 사진까지 빠짐없이 수록돼 있다. 이 책을 구입한 독자들이 답사 현장에서 간편하게 찾아 읽게끔 만들었다. 창비는 인터넷서점에서 답사기를 구매하거나 페이스북 이벤트에 참여한 독자에게 이를 증정했다. 창비 황혜숙 인문출판팀장은 “저자 유홍준 교수도 미니북이 예쁜 데다 실용성도 뛰어나다며 만족해했다. 독자 반응이 좋으면 기존에 나온 국내편 답사기도 미니북으로 제작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문학동네와 열린책들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미니북은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앙증맞은 ‘귀요미’다. 크기는 가로 6cm, 세로 8.5cm.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최소 활자 크기(1mm)에 맞춰 제작됐다. 이 세계문학 미니북은 특히 책장 장식용 인테리어 소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니북 애호가들은 본래 책과 미니북을 나란히 찍은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문학동네 정민호 마케팅 팀장은 “이벤트 기간을 놓친 독자들은 책값보다 더 비싸게 웃돈을 주고서라도 미니북을 구하려 한다. 주요 소설이 나오면 저자가 쓴 다른 소설을 미니북으로 만드는데, 미니북으로 제작된 소설의 판매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비교적 덩치가 큰 미니북도 있다.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종합순위 1위를 질주 중인 조정래 작가의 소설 ‘정글만리’(1∼3권)도 초판 10만 부를 찍을 당시 제1권의 미니북 10만 부를 제작했다. 이 미니북은 양장본(12.6cm×18.7cm)에 비해 조금 작은 크기(10cm×15cm)여서 읽기에 불편함이 없다. 해냄출판사의 이종우 마케팅 부장은 “조정래 작가 팬들은 양장본 소장 욕구가 강해서 양장본은 보관해두고 미니북만 읽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과 돌려봐 추가 독자를 만드는 ‘마중물’ 역할도 했다”고 설명했다. 출판사는 책 판매 부수에 따라 저자나 저작권자와 인세 지불 계약을 한다. 미니북도 실제 책과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번듯한 책이지만 비매품이고 홍보용이라 출판사가 따로 인세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히려 저자들이 미니북 홍보 효과를 알고 반기는 분위기라고 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우리가 어떤 인연이 있기에 여기 모였을까?” 한때 대한민국 만화계를 대표했던 이현세 화백(59)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1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교외의 한 식당.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만화 삼국지’를 출품한 이 화백이 네이버 웹툰 전시관에 참여한 웹툰 작가들을 만났다. ‘신의 탑’의 SIU(시우·본명 이종휘·27), ‘노블레스’의 손제호(36·글)와 이광수(32·그림), ‘갓 오브 하이스쿨’의 박용제 작가(32)다. 이 화백의 데뷔는 31년 전인 스물여덟 살 때. 동시대 작가에 비해 빠른 편이었다. 이날 모인 후배들도 비슷한 또래에 데뷔했다. 시대는 달랐지만 데뷔 당시의 고민은 비슷했다. ‘좋아하는 만화를 과연 한평생 그릴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이 화백은 “롱런하려면 성실해야겠지만 그보단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또 그걸 채우려면 책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일찍 성공한 대다수 천재는 세상을 시시하게 보고 만화도 습관처럼 그린다. 그럴 때 우리 같은 사람도 천재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용제 씨는 “선생님이 쓴 ‘천재와 싸워 이기는 법’은 후배에게 ‘바이블’과 같다. 육성으로 들으니 더 마음에서 울리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처음 웹툰이 세상에 나왔을 땐 출판만화 대선배 중에는 “너희가 무슨 만화가냐. 앞으로 만화가란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며 불호령을 내린 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화백은 오히려 후배들을 걱정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 웹툰은 연재 주기가 짧고 작업량도 많은 것 같다. 작가는 무례한 독자가 단 악성 댓글에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밀도 있는 작품을 계속 그리고, 소모품이 되지 않도록 강한 신념을 갖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후배들은 “악성 댓글에 대한 멘털(정신력)은 강해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 화백은 환갑을 맞는 내년 7월 웹툰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작가가 살아온 현대사를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후배보다 순위에서 앞설 자신은 없지만 전투력만큼은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SIU는 “웹툰은 애들 만화란 인식이 아직 있는데, 선생님이 오시면 독자층이 크게 넓어지겠다. 웹툰계도 큰 기둥이 하나 세워질 것 같다”며 반겼다. 해외 만화시장에서는 후배가 선배의 업적을 넘어설 가능성을 보여줬다. 12, 13일 열린 웹툰 작가 사인회는 그에 앞서 열린 이현세 사인회를 능가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온라인에서 16개 언어로 번역된 해적판 웹툰을 보고 자발적으로 모인 팬들이었다. 독일의 한 교사는 “학생에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웹툰을 권한다”고 했고, 우크라이나 여성은 “웹툰을 보려고 한국어를 배웠다”며 한국어로 쓴 팬레터도 가져왔다.프랑크푸르트=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부산이 넓다꼬? 서울이랑 붙으면 쨉이(상대가) 안 될 낀데.” 책 ‘부산은 넓다’를 손에 든 순간 든 생각이다. 기자는 부산에서 자랐다. 물론 어릴 땐 부산이 최고인 줄 알고 컸다. 서울행 기차 안에서 ‘부산 싸나이’ 자존심은 잃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런데 수도 서울은 정말 컸다. 멀리 떨어진 고향 부산은 점점 작아 보였다. 그런데 이 책을 넘길 때마다 “맞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저자는 경제 통계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산의 넓은 역사적, 문화적 품을 책 한 권에 담았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인 저자는 서울 출신이지만 10년 전 부산 동해안별신굿의 매력에 반해 부산 문화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부산구술사연구회와 산동네(서울로 치면 달동네)를 연구하며 부산 사람들에게 반했다. 저자의 눈에 부산 사람은 거칠어 보이지만 내면은 따뜻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저자에게 부산의 정체성을 물으면 ‘부산은 항구다’라고 답한다. 책은 부산항을 노래한 가요들을 소개한다. 1940년 가수 남인수 씨는 ‘울며 헤진 부산항’을 불렀다. 기타 반주에 따라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는/연락선 난간머리 흘러온 달빛/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더구나 정 들인 사람끼리 음음’이라고 노래했다. 부산항을 출발한 관부연락선에 실린 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애절함이 가사에 담겼다. 부산항의 이별과 만남의 역사는 대규모 해외 이민단, 파월 장병, 외항 선원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부산항의 정서가 가왕 조용필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썼다. 1975년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러 국민 가수가 됐다. 젊은 나이에 대연각 호텔 화재로 숨진 가수 김성술의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개작하고 편곡해 다시 만든 노래였다. 노래의 성공에는 그의 음악 역량도 있었지만 호소력 짙은 부산항이란 이름 그 자체, 그리고 선배들이 부른 1960년대 부산항 노래들이 깔려 있었단다. 이제는 거꾸로 부산이 새로운 시대 정서, 유행을 만들어 낸 조용필을 배울 때라고 말한다. 부산항은 경쟁 항구에 밀려 그 기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부산은 각종 통계에서 ‘제2의 도시’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그러나 저자는 헌집 부수고 새집 짓는 토건 이념으로 부산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경계한다. 오히려 다른 도시를 따라하면 2등을 벗어나지 못하니 부산만이 지닌 가치를 살리잔다. 부산 문화를 살피려면 이 책을 만든 것과 같은 인문정신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엔 1964년 해운대 해수욕장에 나타나 해운대를 바캉스 1번지로 만들어 준 250년 된 거북이, 영도를 떠난 사람은 3년 안에 망하게 한다는 ‘영도 할매 전설’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현장 답사에 신문기사나 사료를 더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다른 지역 향토학자들이 이 책에 자극을 받아 분발하길 기대해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9일(현지 시간) 개막된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선 지금까지 없었던 이색 전시관이 선을 보였다. 도서전 최초의 웹툰 전용 전시관이다. 네이버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한국 웹툰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9∼13일 도서전 만화관 내에 운영하는 한국 웹툰 부스는 현지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10일 오전 독일 출판직업학교 학생인 크리스틴 루스(21·여)와 이네스 바톤(18·여)은 스크롤 방식의 국내 웹툰을 보며 “태블릿PC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만화를 볼 수 있다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각종 도서전을 다녀본 프랑스 아프리카 대만 출판사 관계자들도 웹툰을 보며 어린이처럼 좋아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웹툰라이브닷컴’을 운영한다는 벨기에인 마크는 자신의 사이트에 한국 웹툰을 영어로 서비스하는데 인기가 높다며 저작권 침해 사실도 망각하고 자랑을 늘어놨다. 여덟 살짜리 독일 어린이는 직접 그린 만화를 웹툰 전시관으로 가져와 보여주며 디지털 만화로 출간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국내 웹툰 팬들에게 작품 제목의 첫 글자만 따서 ‘신노갓’으로 불리는 3편의 웹툰 작가들도 출동한다. ‘신의 탑’의 SIU(시우), ‘노블레스’의 손제호(글)·이광수(그림), ‘갓 오브 하이스쿨’ 박용제 작가다. 신인작가 데뷔 무대인 ‘네이버 도전만화’를 통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웹툰 작가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손제호 작가(36)는 “웹툰은 온라인으로 볼 수 있어 전파가 용이했던 점이 인기 요인이다. 해외에서 내 작품을 많이 본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유럽 팬들을 직접 만나게 돼 설레고 기쁘다”고 말했다. 국내 웹툰의 인기는 해외에서 뜨거웠다. 만화 수십만 종을 불법 번역해 올리는 영어판 불법 만화 공유사이트 ‘망가폭스(Mangafox)’에선 9일 현재 ‘노블레스’가 4위, ‘신의 탑’ 35위, ‘갓 오브 하이스쿨’이 39위에 올랐다. 네이버 김준구 웹툰사업부장은 “국내 웹툰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았단 사실은 반갑지만 저작권 보호를 못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계 최대 도서전에 전시관을 마련한 만큼 한국 웹툰의 저작권 보호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올해 65회째를 맞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100여 개국 7300여 개 출판사가 참가해 전 세계 도서 저작권의 25%가량이 거래되는 세계 최대 규모 도서전시회다. 28만 명이 찾을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 도서전의 주빈국은 브라질이다. 프랑크프루트=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그는 초등학생 때 확고한 꿈을 정했다. 그 꿈을 이루려고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질·해양학과군에 입학했다. 학부 공부도 부족해 석사·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가 2008년 쓴 박사학위 논문은 ‘태백층군 후기 캄브리아기 세송층과 화절층의 층서와 고생물’. 그런데 그의 꿈은 대학교수나 저명한 학자가 아니었다. 만화가였다. 6월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 중인 웹툰 ‘달이 내린 산기슭’의 작가 손장원 씨(36) 얘기다. 2011년 만화전문출판사인 학산문화사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단편 ‘산’을 확장한 이 웹툰은 젊은 지질학자 오원경이 강원도의 한 산길도로에서 만난 흥월리층 지층의 정령 ‘월리’와 함께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만화는 탄탄한 지질학 지식을 바탕으로 난개발에 신음하는 우리 땅에 얽힌 이야기를 오래된 지층과 산속에 사는 신비한 정령과 결합해 잔잔하게 풀어낸다. 독자들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롭다” “강물처럼 이야기가 흐른다”며 ‘힐링 만화’로 추천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학산문화사 사무실에서 웹툰 작가 중 최고 학력자인 신인 만화가 손 씨를 만났다. 정말 만화가가 되려고 오랫동안 공부를 했을까. 반복해 물었지만 답은 똑같았다. “어릴 때부터 만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만화를 그리려 해도 많이 알면 좋으니까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지구과학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혼자 공부하기 어렵기도 하고 배우고 나면 전반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작 만화는 독학으로 배웠다. 손 씨는 과학고 시절 만화동아리 ‘그림자들’을 만들었다. 동아리 친구들은 함께 서울대에 입학해 활동을 이어갔다. 손 씨는 “박사나 연구원 수입이 안정적이겠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한 캐릭터, 사건, 세계를 그림과 대사로 표현하는 만화를 죽을 때까지 그리겠다”고 했다. 손 씨는 ‘화석 그리는 만화가’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이 싫다며 다음 작품은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화는 결국 독자와의 소통이고 만화의 완성은 독자의 가슴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판타지 액션 학원물 등 다양한 작품을 그려보고 싶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통일운동가이자 반미운동가인 홍근수 목사(사진)가 7일 지병으로 소천했다. 향년 76세. 고인은 1937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 한신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4년 미국 유학을 떠나 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귀국해 서울 향린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2003년까지 시무했다.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94년 문규현 신부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을 창립해 상임대표를 지냈으며 통일신학동지회 회장,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유족으로 부인 김영 목사와 아들 성산 성봉, 딸 정화 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11일 오전 9시 서울 향린교회에서 영결예배가 열린다.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02-927-4404}

‘몸집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여성 검투사의 싸움은 남성보다는 검의 타격이 약해 재미를 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생존을 건 싸움이므로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투구를 쓰지 않는 여성 검투사들의 특성상 긴 머리카락은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신이 맞았을 때 움직임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책 속에 담긴 여성 검투사의 싸움에 대한 묘사다. 로마인들은 한쪽에선 ‘여성들의 싸움이 남성의 용맹함에 대한 모욕’이라며 점잖게 비판하면서도 경기장에 올라온 검투사의 각선미는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흥분했다. 장애인도 볼거리 집착의 희생양이 됐다. 여성 검투사와 난쟁이가 싸우는 모습은 그들에겐 박장대소하며 보는 색다른 오락이었다. 책에는 로마 검투사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도 하루라도 더 살길 간절히 원했던 그들의 애잔함이 전해져 온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로마 검투사는 군살은 찾아볼 수 없는 우람한 근육과 식스팩(복근)을 자랑한다. 하지만 오늘날과 비교하면 그들의 키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우수한 검투사로 꼽힌 갈리아, 브리타니아, 게르만 출신의 평균 키는 170cm였다. 평균 165cm인 로마인에게는 커보였겠지만 현대인 기준에선 오히려 작은 편이다. 배를 덮은 지방층은 오히려 무기였다. 지방이 두툼하면 맞아도 덜 아프고 장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것도 방지했다. 지방을 많이 축적하는 것이 검투사의 능력 중 하나로 꼽혔다. 대부분 전쟁포로나 노예, 범죄자가 검을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뿐 아니라 자유민도 자발적으로 검투사가 됐다. 그들 중에는 검투사의 삶을 동경한 낭만파도 있었지만 빚과 가난에 쫓기는 생계형이 대부분이었다. 막다른 삶에 몰린 끝에 로마시민 자격이 박탈되는 검투사가 돼 승리수당이라도 챙기겠다는 절박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부자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살해자를 사지만 가난한 자들은 살해당할 곳에 자신을 팔았다”란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자유민 출신 검투사는 싸움 기술에 능한 전쟁포로보다 더 인기를 끌었다. 전쟁포로는 마지못해 싸웠지만 자유민 출신은 마지막 희망을 찾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웠기 때문이다. 로마 검투사는 ‘불에 타고, 사슬에 속박되고, 막대기로 매질을 당하고, 검으로 살해되어도 참겠다’는 살벌한 맹세를 했다. 그들은 ‘싸움을 좋아하는 남자’ ‘전사 같은 남자’ 같은 별칭을 지어 남성성을 과시했다. 그러나 검투사도 죽음이 두려운 인간이었다. 경기 하루 전날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최후의 만찬이 차려졌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잘 삼키지도 못했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싸울 수는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어 싸움을 피하려 했다. 혹독한 훈련과 매질, 죽음의 공포에 지친 검투사는 자살을 택했다. 도망은 삼엄한 감시와 발에 채워진 사슬 때문에 불가능했다. 수레바퀴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서로 목을 졸라 죽이고 남은 사람이 벽에 제 머리를 찧어 죽기도 했다. 대변 닦을 때 쓰는 스펀지 달린 막대기를 제 입속에 밀어 넣기도 했다. 로마 역사를 천착해온 저자(계명대 외래교수)는 ‘강대국의 비밀-로마 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2008년)로 로마 군대의 일상을 생생히 복원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출판기획안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책도 풍부한 1·2차 사료를 바탕으로 로마 검투사의 삶을 재현했다. 책은 두껍지만 실제 현장에서 중계하듯이 서술해 술술 잘 읽힌다. 검투사의 일생뿐 아니라 스파르타쿠스 반란, 검투사의 기원, 정치적 의미까지 외연을 확장해 읽을거리도 풍부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한국 고전소설의 기점을 어디로 봐야 할까. 한국 고전소설의 새로운 레퍼토리 구축에 나선 돌베개 출판사의 ‘千년의 우리소설’ 시리즈 7권으로 최근 출간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9편의 작품은 그동안 소설이라기보다는 설화로 취급받아온 작품이다. 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수록됐거나, 신라시대 편찬되고 고려시대 증보됐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설화집 ‘수이전(殊異傳)’에 실렸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첫 수록작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 나타나는 두 수도자의 대조적 성격 묘사, 그리고 계율과 연민 사이의 내적갈등은 설화에서 소설로 옮겨가는 초기소설의 특징을 보여준다. 조선 문인이 비현실적 꿈의 세계를 통해 현실적 문제를 제기한 몽유록 계열 5작품을 선정한 ‘이상한 나라의 꿈’(8권)과 조선 후기 민간에서 도는 야담을 한문으로 기록한 야담계 소설 15편을 꼽은 ‘조선의 야담1’(9권)도 함께 출간됐다. 16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의 편역과 해설은 박희병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와 정길수 조선대 한문학과 교수가 맡았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족을 지치게 만든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는 70대 노인이 치매 걸린 아내를 돌보다 지치자 목 졸라 살해하기도 했다. 국내 치매 환자 57만 명 시대, 환자와 가족을 위로하는 만화가 이달 초 출간됐다. 일본 만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라이팅하우스)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오카노 유이치 씨(63)가 10여 년간 치매를 앓는 어머니(90)와 함께하며 생긴 에피소드를 담았다. 작가의 필명인 페코로스는 탁구공만 한 작은 양파로, 그의 민머리를 빗대 친구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 고향 나가사키를 떠나 도쿄의 작은 출판사에서 일했다. 마흔 살에 이혼하고 아들과 함께 귀향해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2000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시작됐다. 저자는 처음 5년 동안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어머니를 돌봤다. 하지만 뇌경색으로 치매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요양보호사의 권고로 노인복지시설로 어머니를 옮겼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시설을 방문해 모친을 돌본다고 한다. 오카노 씨는 2000년경부터 자신이 일하는 지역 정보지 한 귀퉁이에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려 연재했다. 그의 만화 데뷔작이었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늙음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담은 이 만화는 지난해 7월 책으로 출간된 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제42회 일본만화가협회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영화까지 제작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동글동글한 얼굴의 모자를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머니가 하루 5분씩 하는 유일한 운동은 아들의 민머리를 찰싹찰싹 때리는 일. 아들은 ‘대머리라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두 손을 마주 잡고 걸으며 어머니에게 걸음마를 배우던 시절을 떠올리고, 기억을 잃은 어머니의 멍한 동공을 보며 다 잊어버려도 괜찮으니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얘기한다. 저자는 “치매 부모를 돌보는 분들 곁에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만 간절히 빌고 있다. 잊어버리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라고 후기에 썼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60, 70대 원로 만화가들이 인터넷 웹툰에서 노재(老才·노인의 재능)를 뽐낸다. 수십 년간 만화를 그려온 내공을 자랑하지만 인터넷에서 신작 공개는 처음이다. 네이버는 한국만화가협회와 함께 원로 만화가 24명의 신작 단편을 자사 웹툰에서 공개하는 ‘한국만화 거장전’을 1일부터 시작했다. 여기에는 ‘로봇 찌빠’(1979년)의 신문수(74), ‘꾸러기 만화일기’(1993년)의 윤준환(72), ‘요철발명왕’(1975년)의 윤승운(70), ‘장길산’(1991년)의 백성민(65), ‘아기공룡 둘리’(1983년)의 김수정(63) 화백이 참가한다. 매주 화요일 ‘네이버 만화’에서 한 작품씩 공개될 예정이다. 첫 회는 붓그림 만화로 유명한 백성민 화백의 ‘붉은말’이다. 백 화백은 ‘천관녀 설화’를 바탕으로 술에 취해 잠든 신라 화랑 김유신을 그의 애인 천관녀 집으로 태워줬다가 목이 잘린 적토마의 이야기를 그렸다. 젊은 작가가 주류인 인터넷 웹툰에서 붓으로 그린 만화는 드물다. 그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 움직임이 더 생생하다. 젊은 독자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끼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신문수 화백은 1979년 발표된 ‘로봇 찌빠’의 주인공 찌빠가 2013년 돌아와 옛 친구인 팔팔이, 탱구, 촉새의 자녀를 만나 생긴 소동을 그린 ‘천방지축 찌빠’를 발표한다. 신 화백은 “찌빠가 성장한 친구들의 2세와 만나는 설정을 세우고 나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찌빠를 보고 자란 부모 세대는 만화를 다시 보고 추억에 잠기고, 웹툰으로 찌빠를 본 자녀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1일 공개된 ‘붉은말’에는 댓글 1만여 개가 달려 원로 만화가의 신작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웹툰 만화가 인쇄 만화와 다른 것 중 하나는 독자 반응을 댓글로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붉은말’에 대한 댓글은 ‘웅장하다’ ‘우리 만화 특유의 멋이 담겼다’ ‘붓 선에 감탄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 ‘키보드 워리어(인터넷 호사가)’는 근거 없는 악성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원로 작가들은 댓글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비정규직의 설움을 그린 ‘비정규직론’을 준비한 윤준환 화백은 “우리 세대가 그린 만화가 어린 독자들 눈에는 흑백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나름의 멋과 재미가 있다. 설탕은 달면 되고, 만화는 재밌으면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맹꽁이서당’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그린 윤승운 화백은 “만화를 50년 넘게 그리다 일흔이 되다 보니 이제 독자평은 덤덤하다. 게다가 컴맹이라 올라오는 댓글은 보려고 하지도 않고 보지도 못한다”며 웃었다. 김수정 화백은 어떤 작품을 그릴지 심사숙고 중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33년 10월 29일 아일랜드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 10명이 배편으로 부산항에 들어왔다. 이들은 당시 대구교구 신학교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광주 목포 순천 제주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선교회의 발길은 1950년대 초 척박한 흑산도까지 닿았다.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된 곳이기도 하다. 26일 목포에서 바닷길로 90km가량 떨어진 흑산도를 찾았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흑산성당이 보였다. 골롬반선교회 진요한(아일랜드명 숀 브라질)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를 맡아 1958년 11월 11일 완공했다. 성당 초입 오르막길엔 바다를 향해 팔을 벌린 ‘흑산도 예수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유명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의 예수상을 본떠 2008년 만들어졌다. 한국에 들어온 지 80주년을 맞는 골롬반선교회는 흑산도와 독특한 인연을 맺어왔다. 1951년 목포 산정동성당의 안토마스(토머스 모란) 신부가 흑산도에 신자를 파견하고 사람들에게 밀가루 옥수수가루 우유 등 구호물품을 나눠 주도록 했다.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주민들로 신자가 크게 늘자 선교회는 본당 터를 확보하고 고국 아일랜드에 도움을 구해 돈을 마련했다. 신자들은 암반을 깎아냈고, 여성들은 바다에서 채취한 모래를 머리에 이고 날랐다. 선교회는 성당 건립뿐 아니라 1960년 성모중학교를 세워 교육에도 힘썼다. 건립 때부터 성당을 지켜온 이종암 씨(78)는 “당시 흑산도에는 초등학교밖에 없어 섬을 못 벗어나면 배울 수가 없었는데 중학생이 될 기회가 열렸다”며 “무상급식으로 학생들의 배고픔도 해결해줬다”고 말했다. 성모중은 1973년 평준화·공립화 정책에 따라 폐교되고, 이를 모체로 흑산중이 설립됐지만 아직 학교 터는 성당 옆에 남아 있다. 골롬반선교회는 1969년 흑산신용협동조합, 1971년 대건조선소, 대건발전소를 설립해 주민들의 자립도 도왔다. 조선소는 100t급 선박 건조 및 수리가 가능한 규모로 흑산도 어민들은 배가 고장 나면 목포까지 가야 했던 불편에서 벗어나게 됐다. 미군에서 구해온 설비로 발전소를 세우자 흑산도에 전깃불도 들어왔다. 1978년 첫 한국인 신부가 부임했다. 현재 흑산도와 주변 섬에는 6개의 공소(주임신부가 없는 예배소)가 있다. 신자 수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흑산도 주민 4명 중 1명은 가톨릭 신자다. 식당이나 가게에 세례명을 딴 상호가 많은 이유다. 인근 장도 공소 회장인 이충방 씨(73)는 “선교회는 신앙뿐 아니라 외부 세계의 선진문명이 들어오는 통로였다”고 했다. 하지만 골롬반선교회가 남기고 간 것에 대한 고마움은 옅어지고 있다. 흑산성당 이준용 신부는 “시대가 바뀌면서 흑산도 특유의 소박한 정신은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10월 29일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진출 80주년 미사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헌될 예정이다. 선교회 한국지부장인 아일랜드 출신 오기백(대니얼 오키프) 신부는 “골롬반 선교 역사를 돌아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정리할 수 있다”면서 “한국 천주교도 해외에서 많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흑산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손님은 기뻐하며 빙그레 웃고서 술잔을 씻고서 다시 따르니 안주는 어느새 없어지고 잔과 쟁반이 어질러진 채 서로 베고 배 안에 누워 자니 어느새 동녘이 훤히 튼 것도 모르고 있었네.’ 중국 북송 때 시인 동파 소식(東坡 蘇軾·1037∼1101)의 대표작 ‘적벽부’의 이 구절이야말로 일반에게 각인된 그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당송팔대가에 드는 천재 문장가이자 동파육이라는 중국요리를 좋아한 미식가요 애주가라는 것이다. 옮긴이는 ‘누구나 소동파를 알지만 아무도 소동파를 모른다’고 장담하며 이 평전을 읽길 권한다. 저자는 중국 당송 문학 권위자이자 소동파학(소학)에 정통한 상하이 푸단(復旦)대 교수다. 옮긴이도 대학원 시절부터 소동파를 30년 동안 공부해 온 학자다. 두 사람은 소동파를 인연으로 만나 오랫동안 교감을 이어 온 사이다. 책은 소동파 입문서를 표방하며 그의 인생역정과 작품을 알차게 한 권에 담아 냈다. 우국지사, 개혁가, 인도주의자, 문장가의 다양한 풍모가 펼쳐지니 읽을 때마다 각기 다른 매력에 주목할 수 있다. 오래 두고 여러 번 읽기 좋은 책이다. 이번에 처음 읽어 보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의 따뜻한 인간적 면모가 몸으로 전해졌다. 소동파가 26세 때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아우 소철과 이별하며 시를 짓는다. ‘아우여 기억하는가? 차가운 등불 아래 서로 마주하던 때를. 밤비 내리던 소슬한 그 정경을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너는 우리의 옛 언약을 잊지 않았겠지? 높은 벼슬에 마음 흔들리지 말자고 한 것을!’ 동생과 이별을 하는 애잔함과 인간의 도리를 지키자는 든든하고 자상한 형의 마음씨가 느껴진다. 지방관 시절에는 백성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았다. 42세 때 부임지의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면서 백성의 몸이 축나지 않도록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백성의 궁핍 앞에서 독서광인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시도 지었다. ‘가을 벼는 흉년 들어 얼마 없고 가을 보리는 종자조차 부족하다. 이 지방 사람들에게 늘 부끄럽구나. 그들의 피부에는 까끄라기가 박혔는데, 내가 평생 읽은 오천 권의 책은 한 글자도 굶주림을 구제하지 못한다니.’ 64세에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정치인으로서 소동파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당시 왕안석이 추진한 신법을 반대하고 풍자했다가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다. 유배지에서 땅을 직접 개간하는 노동을 하면서 하층 백성들과 가깝게 어울리고 더 관심을 가졌다. ‘인간세상 행로 어려워라. 땅 밟는 사람은 모두 세금을 낸다네’라며 조정의 과도한 수탈을 비판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 소동파가 송나라 조정에 고려에 서적 수출 금지를 요구하는 등 고려에 대한 반감이 있었음에도 고려와 친숙했음을 강조한다. 반면 옮긴이는 소동파가 한국 고전문학에 큰 영향을 줬지만 고려에 편파적이고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부록으로 소동파가 고려에 관해 쓴 글을 수록해 놓았으니 독자가 직접 판단할 수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공감제로(사이먼 배런코언 지음·사이언스북스)=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닌 사이코패스에 대한 뇌과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의 악이 결국 ‘공감의 침식’에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신병리학 교수로 재직 중인 발달심리학자다. 1만6000원.맵헤드(켄 제닝스 지음·글항아리)=지도에 미친 사람들, 지도광의 흥미로운 사례를 6단계로 등급화해 소개했다. 저자는 미국 유명 TV퀴즈쇼 ‘제퍼디’에서 74회 연속으로 최장기 우승을 하면서 잡학다식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다. 1만8000원.아파트 게임(박해천 지음·휴머니스트)=주택담보대출로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 받은 돈을 자녀 사교육비에 쓰는 베이비부머, 집이 아닌 방을 전전하는 청춘 세대가 아파트를 두고 서로 착취하는 기묘한 관계를 생생히 그려냈다. 1만8000원.‘대한민국’, 재건의 시대(이하나 지음·푸른역사)=대중의 감수성이 녹아 있는 ‘영화’로 대한민국 형성 과정과 오늘날 좌우 갈등, 이념 대립의 기원을 찾아간다. 박정희 정권은 ‘우리나라’를 남북한이 아닌 남한만 떼어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3만2000원.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만나라(장석주 지음·위즈덤하우스)=시인인 저자는 미국으로 떠난 아들과 ‘노자’를 통해 사람 사는 도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아들 또래 청년들의 짐을 덜어주려는 아비의 사랑이 묻어난다. 1만3800원.절벽사회(고재학 지음·21세기북스)=20여 년간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저자는 오늘 한국사회를 ‘절벽사회’로 정의했다. 한 발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벽을 허물 대안으로 상생의 경제 패러다임을 꼽았다. 1만5000원.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이기주 지음·황소북스)=‘말 언(言)’자에는 두 번(二) 생각한 뒤 입(口)을 열어야 말이 된다는 숨은 뜻이 있었다고 한다.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에서 연설문 작성자로 일한 저자가 ‘다투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얻는 32가지 대화의 기술’을 전한다. 1만2800원.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이루)=미국 심리분석학자이자 심리상담 전문의인 저자가 1992년 출간한 여성 심리학 고전. 1만8000원.}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이면 다 안다.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가 보여주는 끈끈한 전우애가 현실이 아닌 예능이란 걸. 군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권력을 쥔 선임과 간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눈치를 살펴야 한다. 반대로 후임을 적절히 갈굴 줄도 알아야 한다. 군대는 어쩌면 일보단 사람관계 때문에 힘든 곳이다. 군 생활 중 생기는 어려움과 고민을 풀어주는 ‘알면 인정받고 모르면 헤매는 군대심리학’(책이있는풍경)이 출간됐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올해 3월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미국 유학생이다. 중학생 시절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미시간대 심리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여인택 씨(24)다. 25일 국제전화로 그를 인터뷰했다. 여 씨는 2011년 6월 육군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했다. 군복무 중 우수 분대장 및 솔선수범 공로로 7차례나 표창을 받았다. 그는 대전차 유도화기 운용병이었지만 입대 동기보다 한두 살 많은 나이와 심리학 전공을 살려 고충상담병 역할도 했다. “군 복무에 적응 못하는 관심사병을 만나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자신이 처한 문제로 고민하는 병사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에게 심리학 이론을 곁들여 상담을 해줬더니 호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병장 때부터 수첩 겉면에 ‘여 병장의 심리수첩’이라고 적고 선후임들이 물어온 고민과 그들에게 해준 대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군인을 돕고 싶단 생각에 전역 이후 수첩에 적은 글을 인터넷 게시판, 블로그,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성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한창 인기를 끌 때는 하루 조회수가 1만5000회도 넘었다고 한다. 책은 지금까지 써온 글을 바탕으로 심리학 이론이나 사례 등을 보완해 출간했다. 1장에서는 소대 세탁기는 왜 항상 고장이 나 있는지, 남의 보직이 나보다 훨씬 편해 보이는 이유 등 군 생활에서 생긴 궁금증을 심리학으로 풀어주고, 2, 3장에서는 선후임에게 인정받는 심리학 비결을 알려준다. 4장에는 군 생활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심리학 조언, 마지막 장에는 군대에서 애인과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담았다. 여 씨는 “군대에선 일병 말이나 상병 초 때 헤어진다는 ‘일말상초’ 속설이 퍼져 있는데, 이러면 부정적인 피드백이 생겨서 헤어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부대 후임들에게 그런 속설에서 자유로워지라고 충고해줬다. 인터넷에 비슷한 글을 올렸을 땐 특히나 ‘고무신’(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들의 지지가 많았다”고 했다. 여 씨의 지도교수는 ‘생각의 지도’를 쓴 리처드 니스벳 교수다. 니스벳 교수도 “자기가 활동하는 영역에 심리학을 접목한 건 잘한 시도”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제 책을 읽고 군복무 중인 병사들은 군대가 시간 낭비란 생각을 버리고 세상을 보는 심리학적 안목을 키우고, 군 간부들은 병사들의 구체적 고민을 더 많이 이해해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