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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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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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5-24~202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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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대지진 공포 시달리는 日 가족 품속으로 파고들다

    “34세 회사원 이토 슈지로 씨는 대지진 후의 바뀐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외국계투자기업, 부동산컨설팅회사 등에서 일하던 그는 2011년 10월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인재파견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가장 큰 고려 요소는 급료가 아니었다. 이토 씨는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재해로 교통시설이 마비되더라도 걸어서 집으로 가 가족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쓰나미, 방사능 누출로 일본은 크게 휘청거렸다. 2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됐고 ‘나도 갑자기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단시간에 확산됐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지각만 흔들어놓은 게 아니다. 사회, 문화, 종교, 산업 등에서 일본인들의 가치관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일본 현장에 보름 동안 파견됐고, 같은 해 7월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복구 상황을 열흘간 살펴봤다. 이후 게이오대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대지진 후 일본사회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저자가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만난 센다이 출신 여성은 “가슴이 떨리고 무섭다. 가족이 너무나 보고 싶다”고 외쳤다. 위기 때 자신을 받아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었다. ‘고독사(孤獨死)’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가족 관계가 단절됐던 일본 사회는 대지진을 계기로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당시까지 일본인들의 주택구매 기준은 실용, 도심, 학군이었다. 그러나 대지진 후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2011년 4월 도쿄의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 값은 전년 대비 82.8% 급락했다. 반면 천재지변으로 전력 공급이 되지 않아도 걱정 없는 가정용 태양열 발전시스템, 내진 설계, 비축 창고를 갖춘 집이 인기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닷새 후 아키히토 일왕도 TV를 통해 5분 56초짜리 비디오 담화를 내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해 현장을 다니며 주민들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에 “종전 직후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는 일본인도 많았다. 저자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도 일본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정치 행태’라고 꼬집는다. 그는 “재난현장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를 만났지만 공무원은 거의 볼 수 없었다”며 “대지진은 정치 리더십에 대한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확인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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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성호의 옛집 읽기] ‘전통의 새 모색’ 농암종택

    어느 날 피아노잡이 임동창은 임하댐 수몰지구를 지나다 건기에 물이 줄어들자 수면으로 얌전히 솟아나온 고가를 본다. 뭔가 먹먹해진 그는 트럭을 몰고 와 짐칸에 천막을 치고 한바탕 공연을 펼쳤다. 집을 위한 위령제였을까? 시절이 수상하면 많은 사람이 다친다. 이 와중에 집이라고 온전하겠는가. 농암종택은 영천 이씨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1467∼1555)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지금 이 집은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올미재에 있지만 원래는 더 하류 쪽인 도산서원 근처 부내라는 곳에 있었다. 과거의 사진을 보면 굉장히 짜임새가 있는 종택이었고, 별당인 긍구당(肯構堂)은 마치 독락당의 계정처럼 담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 너른 문전옥답을 지나쳐 낙동강이 바라다 보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집의 첫 번째 시련은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고 난 다음에 왔다. 마을에 신작로가 생기면서 농암의 정자인 애일당을 영지산 위쪽으로 옮긴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안동댐이 생기면서 부내 일대가 물에 잠기게 되자 농암종택의 집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이 와중에 농암의 17대손은 흩어진 집들을 모으고 종가를 복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마침내 지금의 자리를 찾았다. 신기하게도 부내의 지형과 흡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먼저 이 일대의 터를 사들이는 것에서부터, 다시 흩어진 집들을 해체하고 모아서 복원한 것이 지금의 농암종택이다. 집뿐만이 아니라 바위에 새겨진 각자도 바위를 캐기가 불가능하자 일일이 떼어다 놓았다. 집을 보존하기 위한 농암종가의 노력은 피눈물 나는 것이었으리라. 긍구당이란 당호 자체가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는다’는 뜻이니, 후손들은 농암의 말을 그대로 실현하며 살았던 셈이다. 당대의 명필 신잠이 쓴 긍구당의 현판은 오만하고, 당당하고, 유려하다. 농암도 그랬을까. 그는 스스로 농부를 자처하며 유유자적 말년을 보냈다. 당시 부내를 소요하던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유선이라 불렀다. 지금 복원된 종택의 배치도 휑하리만큼 널찍하다. 그리고 거기에 종손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넣었다. 종택을 ‘고가옥 활용 프로그램’에 따라 게스트하우스로 개방했다. 내가 들렀을 때는 마침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상처 입은 전통을 추슬러 새로운 종가의 활용 방식을 찾은 것이다. 농암종택은 그렇게 조상의 유업을 이어가고 있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 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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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z Books]협상할 땐 나란히 앉아라

    차 안에 FBI 요원과 탈주자가 타고 있다. 탈주범은 흥분된 상태에서 범행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요원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다 보니 그가 ‘꼴사납다’ ‘당혹스럽다’ ‘걱정된다’ ‘선량한 기독교인이다’라는 표현을 쓰는 점이 두드러진다. 요원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얼마나 ‘당혹스러울지’ 안다. 이렇게 체포되는 것이 ‘꼴사나운’ 일이라는 것도, ‘선량한 기독교인’이니만큼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하는’ 것도 이해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탈주범은 혐의 사실들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때 FBI 요원이 쓴 기법은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개발한 ‘말 따라하기’ 기법이다. 단순히 말을 따라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은 깊이 이해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호응에 나선다. 기업에서도 상대방과 책상을 두고 마주 보고 앉으면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낮다. 두 사람 사이에 장벽과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편안한 기분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나란히 혹은 직각으로 앉아야 한다. FBI에서 ‘인간 거짓말 탐지기’라고 불렸던 저자는 30여 년간 미국 최고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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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최고의 맛 ‘엘불리’ 들여다보기

    연간 예약자 50만 명, 14년간 미슐랭 최고 등급, 영국의 음식전문 매거진 ‘레스토랑’이 뽑은 ‘세계 최고 레스토랑’ 타이틀을 5번이나 획득한 곳. 바로 스페인 북부 로사스에 있는 소박한 레스토랑 ‘엘불리’다. 셰프 페란 아드리아의 결정으로 1년에 단 6개월만 영업하고 6개월은 ‘창조적인 요리’ 연구를 위해 문을 닫는다. 주방 실습생은 30명 정원에 3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쇄도한다. 6개월간 무보수, 14시간의 중노동에도 불구하고 왜 전 세계의 요리사들이 몰려드는가. 기자 출신의 저자가 엘불리의 주방에서 실습생들과 함께 겪은 6개월의 기록을 담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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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반기문의 ‘또박 영어’를 배워라

    한국인은 영어의 문법과 발음에 지나치게 얽매이기 일쑤다. 오죽하면 강남의 엄마들 사이에서 아이의 영어발음 교정을 위해 혀 밑을 자르는 ‘설소대’ 수술까지 유행했을까. 이 책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5년간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공식석상에서 사용한 품격 있는 연설 표현을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한 학습서다. 지금까지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이 인기였다. 한국 출신 세계적 지도자의 연설문으로 영어를 배운다는 사실이 또 다른 흥미를 자아낸다. ‘EBS 다큐프라임’의 실험에 따르면 반 총장의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연설을 들은 한국인과 외국인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반 총장의 연설을 들은 한국인들은 ‘촌스럽다’ ‘발음이 뚝뚝 끊긴다’ 등의 이유를 들어 50점대의 점수를 준 반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들은 ‘아주 높은 수준의 단어를 사용하고’ ‘문장구조가 좋고 의사도 잘 전달했으며 내용이 분명하다’라고 평하며 90점대 후반의 점수를 줬다는 것.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총회 등 국제회의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온 대표들의 ‘토종 발음’ 경연장이다. 미국식 ‘버터 발음’은 오히려 소수다. 손지애 아리랑국제방송 사장은 “CNN 서울지국장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가장 필요했던 역량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토킹 포인트’였다”며 “명확한 의사전달력과 설득력을 갖춘 반 총장의 연설문은 좋은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1월에 반 총장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유례없이 15개 상임·비상임이사국과 5개 지역그룹 의장의 추천을 받아 19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확정된 연임이었다. 1기 재임 동안 한때 ‘지나치게 조용한 리더십’이라는 가혹한 비판도 있었으나 특유의 동양적 리더십은 조화롭고 가교적(Bridge building)인 리더십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실적을 거두었다. 특히 유엔 개혁, 남수단 독립, ‘아랍의 봄’을 불러온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과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몰락 과정에서 그의 조용하면서도 효율적인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저자는 “반 총장 연설문의 특징은 전 세계 핫이슈를 명료하게 분석하고 갈등 해결 방안을 제시한 뒤 인류애와 보편가치를 강조하며 청중의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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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내전의 땅에 부처님 평화 불씨 지핀 한국불교에 보은”

    《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버스는 10시간이 넘도록 왕복 2차로의 험준한 계곡 길을 곡예운전했다. 천길 낭떠러지 밑에 흐르는 빙하천 주변에 사고로 굴러 떨어진 트럭의 잔해들이 오싹한 기운을 전했다. 버스가 드디어 인도 국경 인근의 룸비니에 도착하자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험준한 산맥은 간 곳이 없었다. 드넓은 평원에는 노란 유채꽃이 한창이고, 원시림은 몬순기후 특유의 습한 안개로 휩싸여 있었다. 아, 부처님이 최초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셨다는 녹야원(鹿野苑)이 바로 이런 풍경이었으리라. 》 13일 대한불교 조계종의 ‘108산사 순례기도회’(회주 선묵혜자 스님)가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네팔 정부의 환영행사는 대단했다. 기알왕 드룩파 린포체(티베트 불교의 영적 지도자)가 영접을 나왔고, 대통령과 총리, 제헌국회 의장이 모두 한국에서 온 스님들을 초청해 면담을 가졌다. 한국 불교계 인사들이 거국적인 환영을 받은 이유는 네팔에서 최상의 보물로 대접받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왔기 때문이다. 이 사리는 부처님의 열반지인 인도 쿠시나가르에 있는 마하파리니르바나 스투파에서 1910년 출토됐던 것으로, 대열반사의 기아네슈와르 주지가 한국의 108산사 순례기도회에 봉양한 8과 중 일부다. 4년 전 선묵혜자 스님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들고 처음 네팔을 찾았을 때 현지 언론은 “평화의 부처님이 돌아오셨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네팔은 왕정 철폐를 내건 마오이스트 반군과 정부군이 10년간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룸비니는 반군이 남부 테라이 지방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저항하던 곳으로 순례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300명의 108산사 순례기도회원이 룸비니를 찾아온다는 소식에 네팔 정부와 반군 측은 순례길을 터주는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룸비니에서 열린 사리이운 법회에는 네팔 총리와 여야 정치인이 모두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평화협상은 계속됐으며 네팔은 내전을 끝내고 제헌의회를 구성했다. 15일 룸비니 사원구역 입구에 조성된 한-네팔 평화공원에서 열린 탄생불 제막식에는 네팔 정부요인이 대거 참석했다. 바부람 바타라이 총리는 “네팔은 내전의 상처를 딛고 결연한 전진을 하려는 시기”라며 “룸비니에서 벌어지는 국제적인 협력은 세상만물에 평화와 자비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 입적지 쿠시나가르와 함께 불교의 4대 영지(靈地)에 속한다. 룸비니가 본격 개발된 것은 1967년 우 탄트 유엔 사무총장이 룸비니를 방문한 이후 유엔 산하 ‘룸비니 개발을 위한 국제위원회’를 설치하면서부터다. 룸비니 사원구역 내에는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 독일 프랑스 등이 각국의 사찰을 짓고 있다. 룸비니 개발프로젝트는 네팔정부와 경제협력을 하려는 각국의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특히 108산사 순례기도회가 탄생불을 세운 장소는 유네스코가 개발하는 룸비니 사원구역의 출입구로 순례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다. 원래는 네팔 왕가의 기념비 건립 예정지였으나 왕정 붕괴 후 중국 일본 태국 등 각국이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자국의 기념물을 세우려고 로비전을 펼쳤다. 그러나 기리자 코이랄라 전임 네팔 총리는 “내전으로 아무도 찾지 않던 때에 한국의 108산사 순례기도회가 진신사리를 모셔와 네팔 평화의 불씨를 마련한 것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며 이곳에 한-네팔 평화의공원을 조성하고 진신사리 탄생불을 모셔줄 것을 요청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뉴욕에서 보내온 축하 메시지에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룸비니 동산의 성역화를 위해 한국의 108산사 순례기도회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진신사리 탄생불을 봉안한 것은 무척 기쁜 일”이라고 평가했다. 룸비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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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묵혜자 스님 “내 마음 찾는 게 진정한 순례길”

    “부처님께서는 열반이 다가오는 것을 아시고 고향 룸비니로 향하던 도중 쿠시나가르에서 열반해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2556년 만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탄생지로 이운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8산사순례기도회’를 이끌고 있는 선묵혜자 스님(도선사 주지·사진)은 2006년 9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에 있는 사찰 108곳을 찾아 순례하고 있다. 그는 “‘참나’를 찾아가기 위해 순례길을 나서보자는 마음을 갖고 시작했는데 벌써 5년이 흘렀다”고 말했다. 스님은 2008년 인도 쿠시나가르에 있는 대열반사에 갔다가 봉양 받았던 부처님의 진신사리 8과를 모시고 108산사 순례에 나섰다. 그중 3과를 이번에 네팔의 룸비니 동산의 탄생불 안에 모셨다. 순례기도회는 이번 방문 중 룸비니 인근 마듀버니 마을에서 ‘108선혜 초등학교’ 현판식을 갖기도 했다. 108산사순례기도회의 회원들은 5000여 명이다. 지난 5년간 순례에 참가한 연인원은 약 30만 명에 이른다. 회원들은 순례길에 농어촌 직거래 장터, 군 장병 사랑 초코파이 보시, 다문화 가정 108인연 맺기, 소년소녀 장학금, 환자 지원금 등 보살행도 적극적이다. 선묵혜자 스님은 “내 마음을 찾고, 남을 돕는 보살행의 길을 떠나는 것이 순례의 참뜻”이라고 말했다.룸비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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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전승훈]‘다문화의 고속도로’ TV

    알제리계 이민 세대인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의 고향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 마르세유다. 그의 환상적인 드리블은 ‘마르세유 턴’이라고 불렸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마르세유는 이탈리아, 동유럽, 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은 항구도시이다. 프랑스 최고의 인기드라마인 ‘인생은 아름다워(Plus Belle la Vie)’의 배경도 마르세유다. 9년째 시청률 20%가 넘는 이 장수 드라마에는 조그만 바를 운영하는 주인공 가족과 알제리 이민자 출신 나시르 가족, 스페인 출신 토레스 가족이 등장해 얽히고설킨 애정관계와 인종차별, 동성애 문제 등을 시시콜콜 보여준다. 빈민가, 범죄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마르세유는 이 드라마로 프랑스의 ‘다문화 용광로(melting pot)’를 상징하는 활기찬 도시가 됐다. 각국 선거에서 다문화 정책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53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완득이’에 출연한 필리핀 이주여성 이자스민 씨(35)가 새누리당 비례대표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문화 사회를 꽃피우게 하는 데 TV와 영화는 고속도로처럼 막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방송계의 경우 2005년 파리 외곽 지역에서 벌어진 이민자들의 폭동 소요사태 직후 심각한 자성의 질문이 쏟아졌다. 과연 프랑스의 TV 화면은 실제로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제대로 비추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2009년 프랑스의 시청각고등위원회(CSA)가 16개 채널의 출연자들을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톨레랑스(관용)’ 문화를 자랑하는 프랑스 TV에서 비(非)백인 출연자는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드라마에서는 그 비율이 8%로 줄었고, 뉴스에서 기자, 전문가로 출연하는 유색인종 비율은 6%로 더욱 낮았다. 그나마 TV 속 흑인이나 아랍인들은 마약 밀매자나 범죄인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직시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CSA는 이후 6개월마다 주요 채널프로그램을 분석한 ‘미디어 다양성 감시 보고서’를 내며 방송사들을 압박했다. 이후 각 방송사 내부에 ‘다양성위원회’가 설치됐고, 최대 민영방송인 TF1의 저녁 8시 메인뉴스를 흑인 남성 앵커가 맡는 등 수많은 채널에서 유색인종 스타 진행자가 탄생했다. 반면 국내 TV에 비친 외국인들의 모습은 어떤가. 수적으로도 크게 부족할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남성들은 임금을 체불당한 불쌍한 이주 노동자, 여성들은 한국 농촌으로 시집 온 며느리와 같은 이미지로만 고착된다. 이자스민 씨는 “첫 영화 ‘의형제’의 모니터 시사회에서 이주여성을 커다란 스크린에서 보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다는 지적이 뜻밖이었다”며 “영화에는 외계인과 괴물도 나오는데, 외국인은 그보다 더 부담스러운 존재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한류의 일방통행식 전파는 곳곳에서 ‘반(反)한류’ ‘혐(嫌)한류’라는 역풍을 낳고 있다. 글로벌 한류를 위해선 우리가 먼저 다문화를 받아들이고, 대중문화의 창의성과 혁신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 지난해 파리에서 “이제 한류는 프로듀서만 한국인일 뿐 유럽의 작곡가, 중국이나 동남아 출신 가수, 미국의 유통회사와 손잡고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올해 초 시각장애인 앵커가 KBS뉴스 진행을 맡아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외국인 출신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도 하루빨리 보고 싶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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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녕]박정희기념관과 정수장학회

    박정희기념관이 입안된 지 13년 만에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문을 열었다. 총면적 5290m²의 3층짜리 건물이지만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새마을운동, 중화학공업 육성 등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밑바탕이 됐던 역사적 성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상징하는 기념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 전 대통령과 ‘숙적 관계’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건립이 이뤄지게 된 것도 의미가 작지 않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박정희기념관은 긍정적인 유산에 해당한다. 기념관은 부친이 남긴 빛과 그림자 가운데 아무래도 빛을 더 많이 비출 것이다. 이에 비해 박정희의 정(正) 자와 어머니 육영수의 수(修) 자를 따 이름 지은 정수장학회는 부정적 유산일 수 있다. 부산지역 기업인이던 고(故) 김지태 씨가 만든 부일장학회가 모태였다. 김 씨는 박 전 대통령이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일 때부터 악연이 있었다. 처음엔 5·16장학회였다가 1982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부산일보 지분 100%와 문화방송 지분 30% 등을 소유하고 있다. ▷정수장학회 문제가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작년 11월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과 사장 선출권’을 요구하는 부산일보 노조와 사측의 대립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큰 선거 때가 되면 박 위원장을 괴롭히는 단골 소재다. 1961년 5·16 당시 부정축재 등으로 구속된 김 씨의 부일장학회 포기가 ‘자진 헌납’이냐, 국가에 의한 ‘강탈’이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정수장학회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이사장을 지낸 박 위원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느냐도 관심거리다. ▷박 위원장은 “이사장직을 그만둔 이후 나와 장학회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야권은 박 위원장을 겨냥해 ‘장물(贓物)’의 사회 환원을 촉구한다. 법적으론 박 위원장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1978년 박 위원장이 청와대 ‘큰 영애’이던 시절 개인 비서관이었던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해 이사진 5명의 면면을 보면 박 위원장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 긍정적인 유산의 계승도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유산을 잘 극복하는 것도 상속자의 역량이다. 박 위원장이 왜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지 답답하다.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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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북 카페]프랑스혁명 직전의 숨막히는 악취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코스타 상의 2011년 수상작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순수(Pure)’에 돌아갔다. 40년 전통의 코스타 상은 소설, 전기, 시, 청소년 소설, 데뷔 소설의 다섯 개 부문에서 각각 후보작을 뽑은 뒤 한 작품을 선정해 상을 수여한다. 소설은 프랑스혁명 직전인 1785년,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기술자 장 밥티스트가 프랑스 국왕의 부름을 받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혁명 전 베르사유 궁전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다. 장 밥티스트는 국왕으로부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공동묘지인 레 지노상트를 허물고 묘지의 시체들을 없애 버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직 앳되고 순진한 그는 레 지노상트에 도착한 후 참담한 광경에 충격을 받는다. 수많은 시체들이 묘지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해 묘지 밖에 나뒹굴고, 악취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끔찍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장 밥티스트는 묵묵히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장 밥티스트가 묵는 하숙집 주인 부부, 그 부부의 딸, 묘지 공사를 위해 고용한 네덜란드인 광원들 등 그의 주변 인물들은 살인, 강간, 탐욕, 열정, 자살 등 책의 제목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장 밥티스트는 점점 자신의 작업, 평소 가지고 있던 신념과 생각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과 삶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고, 공포와 경외의 차이가 모호해진다. 주인공인 장 밥티스트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프랑스 파리에는 실제로 레 지노상트라는 공동묘지가 존재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국왕이 그랬듯 실제로 이 묘지는 왕의 지시에 따라 해체돼 시체들은 파리 외곽의 지하묘지 카타콤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일까. 코스타 상 심사위원장이었던 조르디 그레이그는 이 소설의 강점이 ‘그 시대의 생생한 묘사’에 있다며 칭찬했다. 포일스 서점의 웹 편집자이자 2010년 코스타 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조나단 루핀은 “짓밟혀 성난 민심과 이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지배 계층의 이야기는 비단 프랑스혁명 시대의 것만은 아니다. 이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오랜만에 문학 작품이 코스타 상을 수상한 데 대해 기대감을 표시했다.런던=안주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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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가 본 이 책]우주 밖 또 다른 우주에 내 판박이가…

    본래 유니버스(우주)는 ‘하나’의 ‘천구(天球)’를 뜻한다. 하늘의 모든 별이 둥근 천구에 붙어서 회전한다고 믿었던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에게 우주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세상 전체’였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은 우주에 들어 있어야 하고, 우주에 없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가 없다고 믿었다. 그런 우주가 하나뿐인 것은 하늘에 태양이 하나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현대 이론물리학자와 우주론학자들이 역설적이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우주가 하나 이상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저 한두 개가 더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 우리 우주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우주들이 끊임없이 새로 등장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주장이 다분히 사변적인 주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아무런 모순이 없는, 과학적이고 필연적인 결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확률로 설명하는 양자역학은 뉴턴적 확실성에 익숙한 우리에게 난처한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다중세계 해석이다. ‘이곳’에서 관찰되는 입자가 오즈의 마법사가 데려다준 다른 우주에서는 ‘저곳’에서 관찰된다. 서로 다른 우주에서 모든 일이 동시에 서로 다르게 진행되는 ‘양자적’ 다중우주는 공상 소설의 훌륭한 소재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단순히 우주가 공간적으로 무한히 광대하다는 사실 자체가 수학적으로 다중우주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득하게 먼 곳에 존재하는 평행우주에 내 판박이가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광대한 세상은 그런 평행우주들을 ‘누벼 이은’ 다중우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빅뱅(대폭발)에서 시작된 우주가 빠르게 팽창한다는 우주론에서도 ‘인플레이션’ 다중우주가 등장한다.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적 인플레이션에서 무수히 많은 거품 우주가 탄생하고, 우리 우주도 그런 거품 중 하나다. 자연의 모든 법칙을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끈이론은 다중우주의 보고(寶庫)다. 우리 우주는 더 높은 차원의 공간을 떠다니는 수많은 3차원 ‘브레인’ 다중우주 중 하나다. 그런 브레인 우주들이 주기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따라 무수히 많은 ‘주기적’ 다중우주가 등장할 수도 있다. 끈이론이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만나면 감춰진 차원에서 다양한 ‘경관’ 다중우주가 도출된다. 다중우주가 고차원의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홀로그램’처럼 투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의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능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다중우주도 있다.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도 있고, 수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궁극적’ 다중우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다양한 다중우주 이론들이 실험적으로 확실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다. 다중우주의 존재를 밝혀내는 것이 ‘다윈 혁명 이후 과학사의 최대 난제’라는 뒤표지의 주장은 아직은 성급한 것이다. 과연 다중우주에 어떤 물리법칙이 적용되고, 우리가 인식하는 실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사실은 우리가 다중우주의 모든 신비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 젖어 있던 우리에게 현대 물리학이 제시하는 다중우주가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수없이 많은 우주들 중 어느 평범한 우주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별들 중 어느 평범한 행성에 살게 된 ‘한 점’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학의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그런 과학을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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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똥폼’잡는 한국 남자들아… 그대만의 ‘물건’은 있는가?

    그 제목 한번 도발적이다. “여자의 물건이라면 바로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목걸이, 반지, 가방, 구두, 화장품…. 그래서 여자들의 삶이 흥미로운 거다. 그런데 남자의 물건이라면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다.” 저자가 표현하는 안타까움이다. “대부분 잠시 당황하다가, 은밀한 곳의 ‘그 물건’을 떠올린다. 너무 서글픈 일 아닌가? 여자의 물건은 그토록 화려하고 다양한데, 남자의 물건이라면 기껏 ‘거무튀튀한 그것’만 생각난다니.”대한민국 남자들은 외롭다.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 할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정치인 욕하기가 전부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의 기억은 뚜렷하다. 그 시절엔 모든 게 새로웠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억할 일을 자꾸 만들면 된다”고 말한다. 그 방법으로 저자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물건’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을 제안한다. 물건을 매개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책에는 남자 13명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기만의 스토리가 담긴 특별한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3m 길이 이어령의 책상… 지식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어령의 책상은 길이가 3m가 넘는다. 가장 큰 책상을 갖고 싶은 욕구는 지식에 대한 그의 근원적 욕망에서 나온다. 사주에 ‘장수가 될 운명’이었다는 그에게 책상은 사열대다. 그는 이곳에서 수천수만의 언어의 군사를 거느리고 호령한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는 80에 가까운 지금도 혼자 논다. 그에게 책상은 소통 부재의 외로움을 피해 위안을 얻는 곳이다.■ 아버지가 남기신 신영복의 벼루… 먹을 갈며 세월을 배운다20년간 감옥에서 무기수로 살았던 신영복에게 편지 쓰는 일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는 어릴 적 한학자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붓글씨를 배웠다. 그에게 아버지가 남겨주신 벼루는 ‘세계(世繼)’, 즉 ‘세대를 잇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신영복은 먹을 갈고 글씨를 쓰며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냈고, 목적이 아닌 ‘과정을 사는 삶’을 배웠다.■ ‘담백’ 문재인의 ‘듬직’ 바둑판… 복기하며 성찰한다담백한 문재인은 그의 바둑판처럼 묵직하다. 그의 바둑판은 총각 때부터 가지고 있던 물건이다. 대통령비서실장 임기가 끝나자 그는 경남 양산의 시골로 내려가 바둑이나 실컷 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바둑은 ‘복기’를 통해 자신의 실수를 정확히 알고 성찰하는 놀이다. 정치인 문재인은 참여정부의 공과를 ‘복기’ 중이라고 말한다.■ 차범근의 아침용 삶은 계란 받침대… 행복은 식탁이다‘계란받침대’는 독일 아침식사에 필수로 나오는 삶은 계란을 올려놓는 받침대다. 차범근에게 행복이란 가족과 함께 했던 아침식사였다. ‘계란받침대’는 바로 그 행복의 증거물이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모두 바빠져 그 소중한 아침식사가 사라졌다. 도대체 뭐가 그리 바쁜 일이 있어 한국인들은 가족과의 아침식사를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지, 차범근은 몹시 아쉬워한다.■ 착한 그림 그리는 안성기의 스케치북… 점 하나에 마음 쏟아안성기는 시간이 날 때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다. 아크릴 물감으로 점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집요하게 그림을 그린다. 자화상을 비롯해 아들, 가족, 자연, 정물 등 아주 ‘착한’ 주제들을 그린다. 한 자선행사에서 그의 그림이 300만 원에 팔린 적도 있다. 몰입 과잉의 한국사회에서 안성기의 존재감은 어떤 상황에서든 흥분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거리 두기에 있다.■ 네모나게 각진 조영남의 안경… 평범한 얼굴 특별하게가수이자 화가로 경계인의 삶을 넘나드는 조영남은 늘 크고 네모나게 각진 안경만 고집한다. 그의 방에는 똑같은 스타일의 안경만 수십 개다. 그의 안경은 특별하지 않은 그의 외모를 많이 가려준다. 숱한 우여곡절에도 그가 대중 연예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큰 안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면 세상에 두려울 것 없다’는 조영남 특유의 비현실적 낙관주의 덕택이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김문수의 수첩… 현대사 깨알같이 담겨책상 가득 꺼내놓은 김문수의 수첩에는 초등학교 일기장부터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고민까지 깨알 같은 기록이 담겨 있다. 중년의 우울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 김문수의 당당함은 그의 수첩에서 나온다. 그의 수첩은 주머니 안의 송곳처럼 불편하다.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노동운동가에서 도지사에 이르는 드라마틱한 개인사에 대해서도 그토록 당당하다.■ 목수가 꿈인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슬픔까지 담아놓는다박범신은 다시 태어나면 목수를 하고 싶어 한다. 실제 베스트셀러 작가로 ‘날리던’ 1980년대, 그는 목공예 작품전에 작품을 내기도 했다. 당시 만들었던 목각 수납통은 내면의 상처와 슬픔까지 깎아냈던, 박범신만의 물건이었다. 한때 ‘대중주의’ 작가라는 말이 억울해 절필선언까지 했던 그는 이제 고향 논산에 내려가 손녀에게 나무 의자를 만들어주는 꿈을 꾸고 있다.■ 갈아마시는 김갑수의 커피 그라인더… ‘시인됨’을 즐기노라저자 김정운은 “나이가 들수록 시인, 사진작가 같은 직함이 부러워진다”고 말한다. 정년퇴직 없이 평생 가기 때문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인 것처럼 한번 시인은 평생 시인이다. 20년 전 시집을 냈던 ‘시인’ 김갑수는 서울 마포의 작업실에서 음악을 듣고, 커피를 손수 갈아 마시는 생활에 푹 빠져 있다. 그는 “나이 들어 돈이나 밥이 아닌 다른 것에 함몰되는 것은 참 근사한 것”이라고 말한다.  }

    • 201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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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기자 아빠와 아들이 8년을 관찰한 우리 곁의 나무들

    “아빠, 저 나무가 무슨 나무예요?” 2004년 봄 어느 주말.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 허예섭 군(17)이 아빠 허두영 씨(51·과학동아 편집인)에게 아파트 현관 앞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엄마한테 물어봐. 인터넷을 찾아보든가.” 무심하게 대답하던 아버지는 문득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10년 넘게 과학기자로 지내면서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 애써왔는데, 정작 아들과 함께 나무 이름 하나 공부할 시간이 없다니….’ 다음 날부터 허 씨 부자는 집 주변에 무심하게 서 있는 나무들의 정체를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느티나무는 출퇴근길을 가로등처럼 지켜보고 있었고, 명자나무는 딸내미가 놀던 놀이터에 예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전설의 계수나무는 달이 아니라 화단에 우뚝 서 있고, 동화 속 개암나무는 뒷산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마가목은 하루에도 몇 번씩 봤지만 무슨 나무인지 전혀 모르다가 아들의 질문으로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 됐다. “닥터 지바고가 흰 눈이 쌓인 산 속에 갇혀 있을 때 마가목의 빨간 열매를 보며 연인 라라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후 볼 때마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무인지 매번 감탄했죠.” 허 씨 부자는 8년간 나무를 관찰한 기록을 노트에 꼼꼼히 담았다. 아들은 나뭇잎을 그림으로 그리고 학명, 분류, 꽃말, 유래, 용도, 전설 등을 조사해 썼다. 아버지는 시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문학적 나무이야기를 곁들였다. 이 노트는 최근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궁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됐다. ‘사랑하면…’은 자작나무부터 호랑가시나무까지 52종의 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1월 첫 주부터 12월 마지막 주까지 매주 한 그루씩 나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때에 맞춰 배열했다. 자작나무는 4월에 꽃을 피우지만 한겨울 눈 속에 서 있는 모습이 가장 멋지고, 오동나무는 6월에 꽃을 달지만 커다란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오동추(梧桐秋)의 늦가을에 관찰해야 오동동(梧桐動)의 호젓한 운치를 느낄 수 있다는 식이다. 책을 읽다보면 나무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토끼와 거북’에 등장하는 토끼는 왜 하필 떡갈나무 밑에서 낮잠을 잤을까? 제페토 할아버지는 왜 소나무로 피노키오를 만들었을까?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왜 신단수(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했을까? 허 씨는 “아들과 둘이서 낮이면 나무를 관찰하고, 밤이면 글을 쓰느라 끙끙대던 지난 8년 동안 아내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도 한가롭게(?) 책을 쓰고 있는 아들에 대한 불안과 초조를 애써 감추어줬고, 딸은 주말에도 같이 놀아주지 않는 아빠와 오빠에 대한 질투를 잘 참아줬다”고 회상했다. 허 씨는 이제 딸과 함께 ‘사랑하면 보이는 풀(꽃)’에 대해 공부하고 책을 쓰는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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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지통]‘석궁 테러’ 前교수 책 낸 곳이 ‘석궁김명호’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된 석궁테러사건의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55·사진)가 9일 ‘판사 니들이 뭔데?’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을 내기 위해 ‘석궁김명호출판사’라는 1인 출판사도 등록했다. 책의 표지에는 한 손에는 소법전, 다른 손에는 석궁을 들고 있는 김 교수가 그려져 있다. 책에는 성균관대 재임용 탈락 관련 소송부터 석궁테러사건 이후 재판정에서의 신문기록, 증거사진 등을 원문 그대로 복사해 담았다. 책에서 그는 판사들에 대해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는 적재적소에서 법을 위반하고 터진 주둥이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대는 판결로 서민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대법원장 등 판검사들을 ‘3류 문서위조 사기꾼’ ‘찌질한 ○○○가 사표를 쓴 덕분에 내게도 이런 기회가 오다’ ‘춘천교도소 비리에 기생하는 ○○○’ 등 실명으로 비판했다. 김 전 교수의 원고를 보고 선뜻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교수의 행위가 ‘석궁시위’였으며, 오히려 판사들이 ‘재판테러’를 가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데다 직설적 표현을 써가며 판검사들을 실명으로 공격하고 있어 명예훼손 시비에 휘말릴 우려가 있기 때문. 책의 유통을 돕고 있는 이흥식 씨는 “김 교수가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진다는 각오로 1인 출판사를 차려 책을 냈다”며 “석궁은 김 교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로, 김 교수의 호(號)는 아니다”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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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조선 선비들 지적 허영심 채우는 최고 술안주는 소염통구이

    정조 5년(1781년) 겨울, 정조는 밤늦게 일하는 규장각, 승정원, 홍문관의 사관을 불러 매각(梅閣)에서 난로회(煖爐會)를 열었다. 난로회는 요즘처럼 추운 겨울날 화로 안에 숯을 피워 석쇠를 올려놓고 기름장, 달걀, 파, 마늘, 산초가루로 양념한 쇠고기를 구워 둘러앉아 먹는 것을 말한다. 정조는 ‘매(梅)’자를 시제로 정해 신하들에게 칠언절구를 지어 올리게 했다. 이날 회식자리에 참석한 정약용은 시에서 “임금 하사 진수성찬… 청빈한 선비 입이 황홀하여 놀랄 따름”이라고 읊었다. 조선은 성리학의 명분론이 밥상까지 지배한 시대였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본분에 맞게 살도록 왕은 12첩 반상, 공경대부는 9첩 반상, 양반은 7첩 반상, 중인 이하는 5첩·3첩 반상을 차려먹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비집고 맛을 탐한 이들이 있었다. 저자는 선비들이 남긴 수많은 문헌과 시 속에서 미식과 탐식의 기록을 찾았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한 후 밥상의 가장 큰 변화는 ‘육식열풍’이었다. 살생을 죄악시한 불교를 숭상한 고려와 달리 조선의 유교식 제례에는 쇠고기가 올랐다.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선 소염통구이인 ‘우심적(牛心炙)’이 최고 인기였다. 우심적은 중국 고사에서 진나라 주의와 왕희지, 송태조와 보의 우정을 상징하는 음식이어서 선비들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최고의 술안주였다. 진나라 장한이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를 먹으려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에 나오는 순채 나물도 사대부들의 시에 즐겨 등장한 식재료였다. 양민들에게 퍼진 육식열풍에 소 돌림병까지 겹쳐 농사에 쓸 소의 씨가 마를 것을 우려한 왕실은 ‘우금령(牛禁令)’을 내렸다. 세종은 소 도살 현장을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하는, 오늘날이라면 ‘소파라치’라 할 만한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정작 세종 본인은 육선(肉饍·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할 정도여서 이 정책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사대부들이 좋아했던 음식에는 두부도 있다. 왕실의 능묘를 보살피는 절에서 만든 두부는 중국 황실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대부들은 연포탕(두부를 꼬챙이에 꿰어 닭고기를 섞어 끓인 국)을 먹기 위해 절에 몰려가 횡포를 부렸다고 한다.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이 소개한 열구자탕(신선로), 일본에서 전래된 ‘승기악탕’(스키야키) 등 외국 음식도 유행했다. 중종의 사돈으로 권세를 누린 김안로는 개고기 탐식가였는데 맛있는 개고기 요리를 바친 자들을 요직에 등용해 구설에 올랐다. 인조반정으로 공신에 오른 김자점은 갓 부화한 병아리를 즐겼다. 이들의 탐식은 권력을 잃고 나서는 정적으로부터 ‘패륜’으로 공격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은 다양한 음식을 탐하고 이를 글로 적은 ‘음식 블로거’의 원조 격이었다. 조선의 식객을 꿈꾼 그는 이조판서를 상대로 진미가 많이 나는 전북 남원이나 가림(충남 공주 인근) 수령으로 보내달라고 관직 로비를 벌였다. 그는 귀양을 가면서도 ‘새우와 게가 좋은’ 전북 함열로 보내달라고 로비를 벌였는데, 정작 가보니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곳에서 예전에 먹었던 산해진미의 맛의 향수를 되살려 지은 책이 ‘도문대작’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평생 근검한 식습관을 실천했다. 유배생활 내내 채소를 몸소 가꾸었고, 두 아들에게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 가면 되는 것.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이미 더러운 물건이 되어 버린다”라며 진수성찬의 가치를 부정했다. 그런 다산도 귀양살이의 궁핍한 몸을 보신하고자 개고기를 먹었다. 다산은 흑산도로 유배 간 형 약전에게 쓴 편지에서 덫을 놓아 산 개 잡는 법과 요리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한식은 중식이나 일식에 비해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사치를 혐오하고, 경제가 좋지 못했던 조선시대에 미식을 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느냐는 선입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남긴 고서를 읽어 보면 그것은 굉장히 좁은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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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성호 시인 “방 안서 자연 품은 우리 옛집, 세상에서 가장 넓은 건축물”

    “우리는 현재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식 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현재의 삶과 매우 다른 생활을 했지요. 조선의 옛집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1일부터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함성호의 옛집 읽기’를 연재하고 있는 함성호 시인(49). 그는 수많은 집과 사무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이지만 건축평론가와 만화비평가로 활동하며 책도 여러 권 냈다. 때때로 설치작품을 만들어 현대미술 전시회도 열고, 공연기획자로 나서기도 한다.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들쑤시고 다닌다는 뜻에서 명함에는 ‘오지래퍼’라는 직함을 달았다. 그는 2000년 이후 전통 건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전국을 답사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옛집 중에는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우암 송시열, 남명 조식 등 성리학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이 많았다. 유서 깊은 반가(班家)에는 집 부근의 산세와 산맥을 그려둔 ‘산경표(山經表)’가 족자로 걸려 있는 점도 놀라웠다. “우리의 옛집은 서양건축처럼 하나의 동떨어진 오브제가 아닙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산맥, 대지, 땅, 물과 어우러짐까지 고려한 엄청난 스케일의 건축입니다. 옛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심포, 다포’와 같은 양식보다는 그 너머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함 시인은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이 우리 옛집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기 위해 2003년부터 홍익대 앞 건축사무소에 ‘맹꽁이 서당’을 차리고 3년간 동료 건축가들과 한문을 공부했다. 그는 “퇴계 이황은 자신의 철학적 깨달음을 담은 그림 ‘성학십도’를 현실세계에 구현하기 위해 도산서원을 지었다”며 “도산서원은 가장 완숙한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동양철학의 정원”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의 반가는 방이 굉장히 작습니다. 그러나 방 안에 들어서면 전혀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외부의 풍경을 방 안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강원 속초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 건축과를 졸업할 때까지 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1989년 고 추송웅 씨의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보고 “나도 희곡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휩싸였다. 습작을 한 편 써서 고 김규동 시인에게 보냈는데, 선생이 “뛰어난 이야기 시(詩)”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1990년 문학과사회에 3편의 시로 등단했고, 이후 ‘56억7천만년의 고독’ ‘성 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등의 시집을 내면서 중견시인이 됐다. 그는 최근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아내를 위한 집을 직접 지었다. 옥탑방에서 인근 산봉우리에 걸린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이다. 요즘엔 집 안에서 건축설계도 하고, 시도 쓰고, 만화도 보고, 그림도 그린다. 함 시인은 동아일보 연재 칼럼을 통해 옛집의 뒤뜰에 대나무 숲을 조성한 이유, 처마의 길이, 풍경 소리, 담벼락 등 옛집 곳곳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살필 예정이다. “문화재 관리하는 분들은 제발 문을 꼭꼭 잠가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 건축은 서양 건물처럼 바깥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꼭 마루에 올라가 보고, 방 안에 앉아 차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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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경영]소수를 위한 문화, 주류를 쓰러뜨리다

    책의 부제는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주류를 좋아하지 않는가’다.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 곳곳에서도 주류 문화가 급격히 균열하고 있다. 발아래 거대한 지반 곳곳에서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중심부에서 가장자리로 에너지가 이동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니치(niche)는 틈새를 의미한다. 틈새시장을 뜻하는 ‘니치마켓’은 예전부터 경영학자들이 써오던 용어다. 주변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추구한다는, 주변적이고 소극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중심부 곳곳에서 쩍쩍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21세기엔 “니치란 더 이상 제3의 길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의 주류이며 대세”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중간층이 소멸하고 사회가 ‘획일적인 대중’에서 ‘잡식성 대중’으로 변모한 것을 지목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과테말라 커피와 향이 풍부한 자바산 커피, 감미로운 케냐 블렌드의 차이를 구분하길 간절히 열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1969년 창업해 ‘모든 세대를 위하여: 갭’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승승장구했던 의류 브랜드 갭은 2000년대 들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더 이상 모두의 마음에 들 수 있는 브랜드, 평균적인 고객 따위는 없었다. 이처럼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공룡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그 대신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다르게 생각하라’는 모토를 내건 애플, ‘피카소, 헤밍웨이가 사용했던 전설의 수첩’을 표방한 몰스킨과 같은 회사들은 종교집단처럼 열광적인 추종자를 양산해내고 있다. 영화산업에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개런티를 준 스타배우를 캐스팅한 ‘블록버스터’ 여러 편이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있다. 기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잡식성’ 대중에게 블록버스터는 엄청난 비용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전략이 돼버렸다. 그 대신 요즘은 소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열광적인 숭배자를 낳을 수 있는 ‘니치버스터’ 전략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계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간 지지층보다는 부동층을 쓸어 담기 위해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중간으로 수렴했던 정당들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중을 만나지 않았다. 그는 소수의 열렬한 지지자 집단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입소문을 퍼뜨리는 일종의 하위문화를 구축해 엄청난 조직과 자금을 갖춘 경쟁자를 쓰러뜨렸다. 이 책의 장점은 주류가 사라진 ‘니치시대’의 어두운 면도 지적한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관심 분야에 열성적인 신봉자 집단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각각의 집단이 자신만의 구역에 보호막을 치고 남의 말 따위는 귀담아듣지 않게 된다는 것. 저자는 “스스로를 남다른 존재로 정의하겠다는 결의가 지나친 나머지, 개인이나 집단들이 각자 선택한 갑갑하고 비좁은 닭장 속에 갇힌 신세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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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사르코지의 ‘부자들 퍼주기’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7년 5월 취임 후 부자들에게 안긴 선물 명세를 낱낱이 기록했다. 저자는 25년 넘게 프랑스 상류층의 생활상과 집단심리를 연구해온 부부 사회학자. 책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부자 친구들에게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나눠주고 조세 상한제로 세금 부담을 덜어주었다. 비어가는 정부 금고는 공공부문 지출을 축소해 서민들의 삶의 기반을 쪼개는 형식으로 해결했다. 두 저자는 “극소수의 백만장자는 사르코지가 아니더라도 대타를 찾아 그들의 대변인으로 앉힐 것”이라고 경고한다.박민주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 20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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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맹자의 통렬함, 자본주의 탐욕을 찌르다

    “공자가 옥(玉)이라면, 맹자는 얼음에 비유합니다. 말과 행동이 늘 따뜻하고 온후했던 공자와 달리 맹자의 글은 번쩍번쩍하고, 날카로운 칼처럼 폐부를 찌르는 통렬함이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의 차이는 소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차이다. 맹자의 시대는 ‘싸우는 국가(戰國)’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원을 제패하기 위한 전쟁이 총력전으로 변해 한층 격렬했다. 시대는 더욱 각박해졌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맹자의 날카로운 지혜는 이런 각박한 현실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저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1978, 1980, 1988년 세 차례 구속됐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한 직후인 1990년대 초 인문학서당인 ‘온고재(溫故齋)’를 열고 동양고전 연구와 강의에 몰두해왔다. 이 책은 그가 2000년 ‘논어읽기’이후 12년 만에 펴낸 책이다. 그는 “전 세계가 자본주의의 탐욕으로 자기파탄을 드러내는 21세기에, 맹자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논어의 첫 구절은 공부에 관한 이야기(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인 데 비해, 맹자는 인의(仁義)로 시작한다. ‘맹자’의 첫머리에서 양혜왕이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하실 일이 있겠군요”라고 묻자,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왕이 이를 좇으면 신하도, 백성도 모두 각자의 이만 좇을 뿐이어서 결국 그 사회는 무너지고 만다는 뜻이다. 저자는 “맹자가 ‘개인의 이기심이 결국 사회 전체의 선이 된다’는 애덤 스미스 이래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선하다”며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공자와 맹자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고전에서 지혜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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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브르는 왜, 日 방사능 유출지역 가려고 하나”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해 피해를 본 지역에서의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전시를 놓고 프랑스 문화예술계가 뜨거운 논쟁에 빠졌다. 루브르 박물관은 4월 27일부터 9월 17일까지 후쿠시마, 센다이, 이와테 현 등 3개 도시에서 ‘만남, 사랑, 우정, 연대’라는 주제로 루브르 소장품 특별전시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메세나 기업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사랑의 삼미신(三美神)’, 18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프랑수아앙드레 뱅상의 ‘세 남자의 초상’,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의 태피스트리(색실로 짜넣은 그림), 고대 이집트 조각상 ‘이시스 여신상’ 등 23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문제는 전시 지역이 지난해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원전사고 지점에서 불과 7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점. 프랑스의 문화예술계와 원자력 전문가들은 루브르 박물관의 보물과 동행하는 전시인력이 방사능 오염에 안전하지 않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프랑스 내각의 산하기관인 방사능보호핵안전협회(IRSN)는 지난해 12월 12일 일본에 거주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미야기, 이바라키, 도치기, 후쿠시마 전역은 방사능으로 인한 중대한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여행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또 IRSN은 “방사능에 오염된 먼지가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가구와 카펫, 양탄자의 표면을 정기적으로 진공청소기로 청소해야 한다”고 지침을 내렸다. 루브르 박물관 측은 “후쿠시마 미술관 내부의 방사능 오염정도는 시간당 0.06마이크로시버트로 파리의 박물관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또 전시품은 유리로 된 격자보호상자에 담아 운송해 전시장 내부에서만 공개할 것이며, 외부의 대기 중에 절대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의 롤랑 데보르드 방사능오염정보연구협회 회장은 “건물 내부는 괜찮다 하더라도 방사능은 후쿠시마 전역에 퍼져 있다”며 “기상조건에 따라 시골에 있던 방사능이 도심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관람객을 통해 유입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유리처럼 매끈매끈한 표면에 붙은 방사능은 쉽게 제거할 수 있지만, 구멍이 많은 돌은 표면을 긁어내야 완전한 제거가 가능하다”며 “16세기 플랑드르의 태피스트리나 회화 작품이 오염될 경우 IRSN의 권고에 따라 ‘정기적으로’ 진공청소를 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디디에 리크네 라트리뷘드라르지 편집장은 “재난지역 주민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왜 루브르가 소장품 전시회를 통해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아이티 대지진 때 루브르는 소장품 전시회가 아닌 아이티 박물관 재건을 돕는 방식으로 도움을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왜 전 세계 재난 지역과 이라크전쟁으로 피폐한 바그다드엔 소장품을 보내지 않는가”라며 일본 전시 계획을 비판했다. 이번 전시회의 총책임자인 장뤼크 마르티네즈 씨는 “일본 기업은 루브르 박물관 보수공사에 많은 메세나 후원을 해왔으며, 일본 관람객은 루브르의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열성적 고객”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특별한 선례’가 될 이번 전시에 대한 논쟁은 4월 실제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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