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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가나다라’를 배우던 프랑스 대학생들이 3, 4학년만 되면 한국어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해요. 한국어가 정말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올 9월 프랑스 파리 7대학 동양학부 한국학과에 연구교수로 부임한 이정민 교수(37·여)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200여 명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어도 거의 못하는 이 교수가 파리에 온 지 1년 만에 국립대 연구교수가 되자 교민사회는 들썩였다. 국어 교사가 꿈이었던 이 교수는 대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9년부터 2년간 몽골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한 후 전공을 바꿨다.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난해 경희대 한국어교육학과가 배출한 1호 박사가 됐다. 이 교수처럼 국내 대학의 한국어교육학과 석박사 학위 졸업자들이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대학으로 진출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중국 유학생들이 몰려오면서 시작된 국내 대학의 한국어교육과 열풍은 2000년대 들어 외국인 유학생은 물론이고 국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번져 나가고 있다. 한국어교육학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계명대 등 전국 50여 개 대학의 학부 또는 대학원에 설치돼 있다. 각 대학 한국어학과 석사과정에는 국어국문학과는 물론이고 다른 외국어 전공 졸업자까지 몰려 입학 경쟁률이 평균 10 대 1을 넘어선다. 취업률이 높고 해외진출 전망도 밝다. 경희대 한국어학과 학부생의 경우 지난해 60%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전국에 140개가 넘는 대학부설 한국어학당이 있는 데다 해외 한국어교육기관인 ‘세종학당’도 2009년 14곳에서 올해 31개국 60곳으로 늘어 한국어 강사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방선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은 “세종학당을 2013년까지 전 세계 120곳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삶의 지루함, 따분함, 게으름, 우울함…. 현대인들은 권태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권태는 3000년 이상 인간의 역사 속에 존재해 왔다. 장폴 사르트르는 ‘구토’에서 ‘실존적 권태’를 이야기했지만, 저자는 “이는 지성인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 오히려 일상생활의 ‘단순한 권태’야말로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정상적인 감정이며 축복이라는 것. 삶이 단조롭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바로 그 권태 속에서 꿈틀거리며 피어오르는 ‘창조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태에 빠진 로마인, 뒤러와 드가의 그림 등 저자는 유명한 예술작품과 심리학, 사회학, 철학의 역사 뒤에 숨겨진 권태를 조명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블랙홀은 이상하고 특별하고 수수께끼인 존재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책이 말하는 바가 바로 ‘블랙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상하고, 더 특별하고, 더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스탠퍼드대의 이론물리학 교수이며 입자물리학과 중력 및 끈 이론의 대가인 저자 레너드 서스킨드는 블랙홀을 둘러싸고 스티븐 호킹과 무려 25년 동안에 걸쳐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핵심은 1983년에 나온 호킹의 “블랙홀에 들어간 정보는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블랙홀은 그 내부와 외부를 서로 연결될 수 없는 두 세계로 나누어 놓는다. 그러므로 일단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면 책이든 컴퓨터든, 그 물건의 정보는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으며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 호킹의 주장이었다. 대부분의 일반 상대론 학자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호킹의 주장을 들은 토프트와 서스킨드는 양자역학적으로 그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기나긴 연구의 여정을 보낸다. 20세기에 인간이 이룩한 가장 빛나는 지적 성과인 중력 이론과 양자역학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적어도 인간은 아직 이들을 조화시키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블랙홀과 정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적으로 블랙홀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 책은 이 과제를 위해 사투한 서스킨드의 기록이다. 그 과정에서 서스킨드와 토프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우주의 모든 정보가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2차원의 면 위에 있고 이 우주는 그 정보들의 홀로그램일 수 있다는 홀로그래피 원리와, 블랙홀의 사건 지평면에서 일어나는 블랙홀 상보성 같은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끈 이론과, 말다세나의 반 드지터 공간의 이론 등을 통해서 마침내 호킹은 2007년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인간이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추상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야말로 이론물리학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고 흥미로운 모습이다. 이는 반드시 두 사람만의 논쟁도 아니었다. 스트로민저와 호로비츠 같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전문가들은 호킹의 편에 섰고, 게이지 이론이 양자역학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해서 1999년 노벨상을 수상한 네덜란드의 토프트 같은 사람은 서스킨드와 견해를 같이 했다. 그러니까 이는 어떤 의미에서 호킹과 같이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중력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토프트로 대표되는 양자 물리학자들 사이의 논쟁이었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호킹의 주장은 비록 틀렸지만 이 모든 새로운 관점과 이해와 물리학의 진보를 가져오게 한 것은 바로 호킹의 ‘틀렸지만 통찰력 있는’ 질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쟁의 진정한 주역은 호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에서 서스킨드 역시 호킹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위대한 틀린 질문을 하는 것은 수백 개의 평범한 옳은 이론보다 더 훌륭한 일이다.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

책이 절판(絶版)된다는 것. 그것은 서점에서 더는 그 책을 구할 수 없는 비극의 순간이다. 그러나 헌책 수집가들에게 ‘절판’은 본격적인 책 사냥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지난해 초 법정 스님이 입적한 후 자신의 책을 절판시키라는 유언이 공개되면서 스테디셀러였던 ‘무소유’ 초판(1976년 발행)은 중고시장에서 무려 100만 원까지 값이 뛰었다. 동화작가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를 영인한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는 2003년 출간 과정에서 작가와의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서점 배포 하루도 안 돼 회수해 폐기처분됐다. 그러나 회수되기 전 팔렸던 몇 권 안 되는 책은 헌책방에서 희귀본으로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경북 상주의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그의 집엔 25년간 수집한 3000여 권의 책이 서가에 가득하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절판된 책’을 찾아 헌책방을 순례해 왔다. 그는 “신간을 사고 몇 년 후면 ‘저 책을 왜 샀지?’ 하고 후회하는 일이 많다. 한 권을 사더라도 오랜 세월 회자되며 검증된 책을 사고 싶었다”고 절판된 책에 대한 헌사의 이유를 말했다. 그가 풀어놓는 헌책 이야기는 ‘오래된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구입한 절판 도서 중 풍수지리학자 최창조의 인생이 오롯이 실린 ‘한국의 자생풍수’, 삼베를 붙여 책의 커버를 만든 예용해의 ‘인간문화재’, 김소월 시와 최낙경의 목판화를 곁들인 ‘소월시 목판화집’, 우리나라 근대의 대표시인 102명의 육필원고와 서명을 담아 영인한 ‘육필집’ 등을 보면 수십 년 된 책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예쁘고 정성껏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 도서애호가들이 ‘헌책’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 책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위주의 국내 인문서의 경우 2, 3년만 지나면 절판되기 일쑤. 심지어 시리즈 총서의 경우 완간도 되기 전에 앞서 출간한 목록이 절판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책을 찾는 사람들은 ‘절판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전국의 온오프라인 헌책방에서도 책을 구하지 못한 독자들은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재출간을 요구하는 글을 도배하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열혈독자들의 활약 덕에 절판도서가 ‘오래된 새 책’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재출간된 도서의 운명은 다시 엇갈린다. 젊은 남성 독자 회원이 많은 인터넷 독서커뮤니티에서 ‘도본좌’로 숭배받고 있는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전집(25권)이 절판되자 출판사였던 열린책들의 인터넷 게시판은 재출간을 요구하는 독자들의 탄원이 빗발쳤다. 급기야 ‘출판사가 전집을 재출간할 생각이 없으면 판권을 구입하겠다’는 슈퍼 열혈 독자까지 출현하면서 출판사는 결국 전집을 다시 출간했다. 1993년에 나온 신영복의 ‘엽서’는 저자의 육필과 그림, ‘검열필’이라는 도장까지 그대로 영인돼 헌책방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의 ‘블루칩’으로 통했다. 출판사는 개정판을 내놓았으나 개정판은 다시 절판됐고, 여전히 원판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전몽각의 ‘윤미네 집’은 아버지가 딸의 갓난아기 시절부터 입학과 졸업, 연애와 결혼까지 평생을 일일이 찍은 사진을 엮어 심금을 울리는 책. 1990년에 출간된 이 책은 절판 후에 명성이 더 높아져 유가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소량의 재고분까지 판매했다. 결국 이 책은 20년 만에 세상에 나왔고, 복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에서 ‘고서’와 ‘헌책’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고서연구회’에 따르면 고서는 1959년 이전에 출간된 책을 말한다. 고서는 수백만∼수천만 원을 호가하며 문화재처럼 다뤄지지만 헌책의 경우 사진집(20만∼30만 원)을 제외한 단행본은 기껏해야 5만∼7만 원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가끔 ‘초대박 헌책’이 무더기로 나오기도 한다. 저자는 “정신없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다 보면 ‘또 한 분의 애서가가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책은 가치를 모르는 자식에겐 물려줄 수 없으니 나눌 수 있을 때 나눠야 한다. 책도 역시 흘러야 제맛”이라고 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되살아나는 헌책방 열풍▼온라인서점, 대형 매장 개설… 인터넷서도 50여 곳 성업 중온라인 서점으로 유명한 알라딘이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2가에 헌책방을 열었다. 이름은 ‘알라딘 중고서점 1호점’. 5만 종의 헌책을 구비한 이곳은 유명한 나이트클럽이 있던 자리였다. 이 책방은 개점하자마자 직장인, 어린이, 노인 할 것 없이 다양한 계층의 손님이 몰려 당초 목표치인 ‘하루 3000권 판매’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헌책방 체인인 북오프가 2006년 서울역 앞에 열었던 매장이 올해 1월 결국 문을 닫았다는 점에서 알라딘 헌책방의 성공 여부에 출판계의 관심이 쏠린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고구마, 북어게인, 바이북, 야호책, 빨간구두, 북헌터 등 50여 개의 헌책방이 성업 중이다. 예전의 서울 청계천 고서점의 명성을 능가한다는 평이다. ‘북아일랜드’와 같은 사이트에서는 모든 헌책방 사이트의 재고를 한꺼번에 검색할 수도 있다. 1일부터 경기 파주시 출판문화도시에서 열리는 북소리 페스티벌에서도 헌책방이 열린다. 이 행사에는 부산 보수동 책방거리의 대표적인 헌책방 ‘고서점’과 일본의 ‘도쿄고서조합’이 함께 참여한다.}
서울에서도 가을맞이 책 축제가 잇따라 열린다. 10월 7∼9일 서울 덕수궁에서는 ‘제4회 서울 북 페스티벌’이 ‘책의 길(Book Road)’을 주제로 펼쳐진다. 주최 측은 600여 권의 도서를 갖춘 도서관 ‘궁애서(宮愛書)’를 덕수궁 중화전 회랑에서 상시 운영해 책을 읽으면서 도심 속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고종이 연회를 즐기던 ‘정관헌’에서는 일요일인 9일 저녁 시와 음악이 함께하는 ‘고궁 음악회’를 연다. ‘덕혜옹주’의 작가인 권비영 씨와 시인 정호승 안도현 씨, 소설가 김진명 씨 등이 독자와 대화를 갖는다. 28일부터 서울 홍익대 앞 거리에서는 제7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일주일간 펼쳐진다. 1일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 사인회가 열리는 것을 비롯해 소설가 백가흠 배명훈 김별아 씨, 시인 심보선 씨, 사진작가 전민조 씨, 만화가 성지현 씨 등이 독자와 만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경기 파주 출판도시가 아시아 최대의 책 축제를 펼친다. 다음 달 1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제1회 ‘파주 북소리 페스티벌’. 약 79만 m2(약 24만 평)에 이르는 파주 출판단지 전역은 작가 1000여 명이 독자 10만여 명과 만나는 거대한 ‘지식 난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2005년 완공된 파주 출판문화단지는 258개 출판 관련 업체가 둥지를 튼 국가 산업단지. 2014년 2단계 공사가 끝나면 48만 평 규모에 300여 개 업체가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파주출판도시는 “건축에만 신경 쓴 나머지 삶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파주출판도시가 올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출판사 100여 곳의 1층을 모두 서점으로 만드는 ‘책방거리’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번 축제도 책을 읽는 사람,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지식 축제를 표방했다. 김언호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한길사 대표)은 “그동안 파주출판도시는 ‘책을 만드는 공간’에 그쳤는데, 이제는 ‘책을 만나는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전시는 ‘노벨 문학상 110주년 특별전’. 제1회 수상자인 프랑스의 르네 프랑수아 아르망 쉴리프뤼돔부터 어니스트 헤밍웨이, 장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 로맹 롤랑 등 역대 노벨상 수상작가 107명의 작품 초판부터 작가들의 유품과 친필편지, 사진, 엽서 등을 전시한다. 주최 측은 “볼거리를 넘어 아이들에게 꿈을 키우고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축제의 키워드는 ‘아시아’다. 1일 개막식에서 파주출판도시는 ‘아시아 책의 수도’임을 선포한다. 5일 한중일과 대만의 대표 출판인들이 참가하는 아시아 대편집자 특강에서는 ‘아시아 출판문화상’ 제정도 논의한다. “책을 통해 아시아인이 함께 소통하고, 서구와는 다른 아시아적 정신문화의 가치를 높여 나가자”는 취지로 구상한 상이다. ‘책으로 신(新)실크로드를 열다’ 전시회에서는 혜초, 마르코 폴로, 현장, 마크 아우렐 스타인, 장건, 정화 등 6명의 여행자를 따라 실크로드의 과거와 현재를 책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권영필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등이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강의한다. ‘아시아 문자전’은 아시아 40개국의 문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려주는 전시회다. 고은 시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영국의 세계적인 책마을 ‘헤이온와이(hey-on-wye)’의 창시자인 리처드 부스 씨(73) 등 석학들이 참여하는 강연도 잇따라 열린다. 파주국제출판포럼에서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펴낸 미국 크노프의 로빈 데서 부사장 등 해외 출판인들이 모여 ‘문학 한류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출판단지 내 100여 개의 출판사 사옥 곳곳에서 열리는 ‘지식난장’을 보려면 하루해가 짧을지도 모른다. 행사기간 중 총 1000여 명의 저자가 독자와 만남을 갖는다. 들녘출판사 사옥에서 열리는 ‘한일 특별고서전’에서는 일본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계림래빙기(鷄林來騁紀)’ 미공개 필사본을 비롯해 총 8000여 권의 고서를 전시 판매할 예정이다. 031-955-1734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나는 오래전부터 보수주의는 ‘엄격한 아버지’같은 것이고 진보주의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래서 보수주의의 핵은 도덕성에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도덕적이지 못할 때, 엄격할 수 있을까? 도덕성은 진보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각종 TV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수논객으로 이름을 떨친 저자가 보수주의를 말하는 에세이다. 책에서 그는 보수의 핵심가치인 ‘자유’를 억압하는 가짜 보수주의자, 부도덕한 지식인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오늘날 좌우파를 논할 때 제한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형태의 독재체제든 비(非)자유주의 계열의 정치형태나 그 배후사상을 결코 우파 혹은 보수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파시즘에 대해 “‘국가의 재탄생’을 꿈꾸는 국수주의자들이 ‘반자유주의적’인 극단적 민족주의에 입각해 눈물과 불과 피로써 대중을 동원한, 포퓰리즘에 기반한 대중정치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진단하고 2011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시발로 이집트와 리비아 등에서 들불처럼 번진 ‘아랍 혁명’은 20세기 말 소련을 소멸하고 동유럽권을 붕괴시킨 자유주의 혁명의 재점화로 평가한다. 저자는 마르크스, 톨스토이, 헤밍웨이, 사르트르, 브레히트, 촘스키 등 철학 역사 문학 등 다방면의 지식인들로 시작해 박정희, 김대중 등 정치인들의 발언까지 ‘자유주의’ 관점에서 낱낱이 해부한다. 그가 “박정희는 결코 보수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것만으로 박정희를 보수주의자로 이해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독재를 펼친 사실만으로도 그는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오늘날 보수주의와는 동떨어졌다. 그는 국가 경제개발계획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관치경제’를 펼쳤다. 따라서 산업화를 통한 국부의 증진이 보수주의의 목표와 일치했다고 해서 박정희를 보수주의자로 지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일부 좌파적 경향을 보였다. 그는 의료보험과 국민연금법을 도입했고, 산림녹화운동과 그린벨트 정책을 강력히 시행했다. ‘국민교육헌장’으로 대변되는 교육의 획일화 역시 보수주의와는 동떨어진 집단주의적 정책이다.”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편견과 선동을 남발하고, 거짓 주장인 줄 알면서도 옹호하는 좌우파 지식인들에 대해 저자는 날선 비판을 가한다. “지식인이란 쇼윈도 안에서 팔리기를 기다리는 창녀와 같다. 자신이 팔리지 않았을 때 먼저 팔린 동료를 비웃는 것이 다를 뿐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북한 작가 백남룡(63·사진)의 소설 ‘벗’이 최근 프랑스에서 ‘Des Amis’(악트 쉬드 출판사)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북한 소설이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체제 찬양이나 우상화에서 벗어나 북한 사회의 연애와 결혼, 사회문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프랑스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간 르몽드는 15일자 북리뷰에서 “북한 문학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혁명적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일상적 삶을 다루는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북한 소설의 주인공 자리에서 전통적인 당 지도자, 노동자, 혁명영웅이 사라지고 그 대신 재판관 과학자 부부 가족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현실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시사주간 엑스프레스는 “한 부부가 이혼한다. 여자는 성악가고, 남자는 노동자다…. 만일 북한이 배경이 아니었다면 서구에서는 너무나 진부한 부부 드라마였을 것”이라며 “그러나 유럽에서 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는 북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창문”이라고 소개했다. 1988년 북한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한 아이의 엄마인 성악가 채순희가 기계공장 선반 노동자인 남편 이석춘과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 심리담당 판사 정진우를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혁명 영웅이 아니며 일상생활의 고통을 직면하고 있는 평범한 주민들이다. 그들은 ‘출세 지상주의’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기도 한다. 이 책은 발간 초기 무책임한 관료의 부패, 권력남용 등을 비꼬는 장면 때문에 검열당국의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북한 정권은 이 책을 ‘건설적인 비판’의 모델처럼 소개해 왔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르몽드는 이 책의 한계도 분명하게 지적했다. “이 책의 저자는 반정부 책동을 하거나,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지 않으며,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며” “정권이 인정하는 ‘건전한 비판’이란 북한체제의 일탈이 부패관료, 기회주의자, 이기주의자, 출세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만 한정돼 있다”는 것. 그러나 르몽드는 이 소설에 나타난 북한 여성상의 변화에 대해 주목했다. 여성이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혁명과업’을 벗어던지고 개인적인 열망을 표출함으로써 부부 사이에 긴장관계가 표출된다는 점이다. 르몽드는 “1990년대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을 거치면서 장마당 상인과 공장 노동자로서 경제활동에 적극 뛰어들었던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거대한 영웅으로 등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가 백남룡은 10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다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20여 편의 장편 및 단편을 발표한 북한의 대표적 현대 작가. 번역을 맡은 파트리크 모뤼스 씨는 “한국의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저작권을 얻기 위해 두 번이나 평양을 방문해 작가를 만났다”고 말했다. 프랑스 동양문화언어대(INALCO) 교수로 악트 쉬드 출판사 한국어 컬렉션 총책임자인 모뤼스 씨는 조만간 방북해 북한의 다른 젊은 소설가들을 인터뷰할 예정이다. 그는 “백남룡 이후 잇따라 북한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식량부족, 결근, 경제적 불평등, 부패와 같은 사회문제들도 등장하고 있어 주목된다”며 “아무리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문학적 표현들도 이면에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올해는 일제강점기 교육가이자 기업가, 언론인으로서 민족의 실력을 키우고 민족혼을 일깨웠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닦는 데 헌신한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1891∼1955) 선생이 탄생한 지 120주년 되는 해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 고려대학교는 이를 기념해 20일 오후 2∼6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선각자 仁村을 재조명한다’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현승종 인촌기념회 이사장과 한승주 국제정책연구원 이사장 등 각계 인사와 시민 600여 명이 참석해 인촌의 숭고한 삶을 되돌아보고 그 현재적 의미를 조명했다. 학술대회는 진덕규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장(정치학), 한용진 고려대 교수(교육학),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학),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학)의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 ○ 종합토론회서 나온 인촌 행적과 면모“인촌이 중앙학교, 보성전문과 경성방직을 인수해 발전시킨 활동은 교육과 산업으로 국권 회복을 모색하는 노선이었다.”(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 “간디가 인촌의 편지에 보내온 답장은 항일보다 ‘조선인다운 혼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인촌은 민족독립을 위한 민족문화 되찾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백완기 학술원 회원)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종합토론에는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백완기 학술원 회원, 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 김중순 고려사이버대 총장,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정영수 인하대 교수,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 이옥순 인도문화연구소장이 참여해 인촌의 면모와 행적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살폈다. 최정호 교수는 “인촌의 동아일보는 창간 취지가 민족계몽이었다. 한국에서 언론이 ‘무관의 제왕’ ‘사회의 목탁’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의 업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중순 총장은 “야당의 뿌리도 인촌에서 시작하는 등 인촌의 유산이 많다. 독립투쟁과 건국 과정에서 인촌의 역할은 영향력이 지속적인 만큼 부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이사장은 “광복 직후 인촌과 동아일보의 반탁과 단독정부 수립 지지에 대해 일부에서 ‘반통일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만 1990년대 공개된 옛 소련 문서를 통해 당시 판단은 정확했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정영수 교수는 “동아일보가 브나로드 운동을 시행하고 맞춤법 연구를 지원한 것은 대한민국의 사회 교육과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주익종 연구원은 “임정에서 활동한 김구 선생의 행적에 우리가 감동하듯,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민족의 힘을 키운 인촌의 실력양성운동에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옥순 인도문화연구소장은 “동아일보가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바로 일제를 비판한 독립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이종은 국민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현승종 인촌기념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인촌의 리더십과 비전, 포용력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어떤 스승이 절실한가를 짚어볼 수 있는 자리”라고 세미나의 의의를 밝혔다. 한승주 국제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축사에서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신념으로 늘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며 낮은 자세로 임했던 인촌은 ‘과거완료’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했다.주제 ① 인촌과 대한민국의 건국진덕규 이화학술원장은 ‘인촌 김성수와 대한민국의 건국’ 주제의 발표를 통해 광복 직후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하던 상황에서 인촌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이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로 이어졌다고 분석하며 “인촌은 대한민국 건국의 최대 주주와도 같은 존재였다”고 평가했다. 광복 직후의 남한은 정치적 대혼란기였다.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등 좌익 진영과 인촌 및 고하 송진우의 한국민주당,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 등 우익 진영, 김구의 임시정부 세력이 극심한 갈등 속에 각축했다. 인촌은 이 혼란의 파고에서 신탁통치 반대와 국제 정세를 고려해 실현 가능한 선택으로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좌익의 공산주의 정권 수립을 저지했다. 그럼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의 징조를 보이자 미련 없이 부통령직을 사임했다. 진 원장은 인촌의 실천 양식을 ‘전통적 문화주의’, ‘계몽적 실천주의’, ‘타협적 통합주의’로 정의하며 “인촌은 그의 실천 양식을 바탕으로 민족적 민주주의를 선택해 한국민주당의 정강 정책은 물론이고 실제의 정치활동에서도 그대로 표출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인촌의 타협적 통합주의는 자신의 주관이나 일방적인 의지의 관철이 아닌,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통해 모두에 의한 최선의 모색을 추구하는 행위원칙이었다고 강조했다. 주제 ② 교육적 인간상으로서 인촌인촌은 24세에 중앙학교를 인수함으로써 교육사업에 투신한 것을 시작으로 평생 교육구국(敎育救國) 신념을 가졌던 교육가이기도 했다. 한용진 고려대 교수는 ‘교육적 인간상으로서 인촌’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교육가로서 신념이 굳었던 인촌의 삶 자체에 녹아 있던 ‘교육적 인간상’을 탐색했다. 여기서 ‘교육적 인간상’은 일반적으로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간상이라는 의미를 넘어 타고난 자질과 함께 주어진 환경과 자기 선택적 주체 형성 능력이 복합된 것을 의미한다. 한 교수는 교육적 인간상에 ‘인덕(仁德)의 대인으로서의 교육자’ ‘공(公)과 신의(信義)를 중심으로 한 좌우명’ ‘역사적 의식인으로서 입지(立志)의 선비’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는 인물로서의 인촌을 표현한 ‘민족의 거성’ ‘위인’ ‘영웅’ 등의 여러 표현 등을 종합해 보면 인촌에게서 볼 수 있는 면모는 바로 사람들을 포용하는 ‘큰 그릇(大器·대기)’이자 ‘어른’의 풍모였다고 밝혔다. 앞에 나서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대인이었다는 것. 한 교수는 “‘맹자’에서 대인이란 ‘자기 몸을 바르게 함에 남이 바르게 되는 자를 이른다’고 했다”며 “교육자로서의 인촌이 이에 해당한다. 보수와 진보로 편 가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인간상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주제 ③ 경성방직의 경제사적 의의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경성방직과 창업자 김성수의 경제사적 의의’ 발표에서 1980년대 이후 이른바 민중·민족주의 역사관에 의해 폄훼되어 온 식민지 시기 기업가정신을 재평가하며 경성방직을 설립하고 경영한 김성수 김연수 형제가 20세기 한국 문명사에 있어서 토인비가 제시하는 ‘창조적 소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일찍이 경성방직은 최초의 근대적 대기업으로 민족기업이라는 연구가 나온 바 있지만 1980년대를 지나며 민중·민족주의 관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해석하는 흐름이 커지면서 이런 관점의 연구가 계승되거나 평가받지 못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 와서야 식민지 시기 기업가의 활동을 재평가하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며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의 저서 ‘대군의 척후’를 인용했다. 대군의 척후란 대한민국 성립 이후 생긴 기업 대군의 맨 앞에 서서 그들이 갈 길을 제시한 선구적 존재였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주 연구원이 책에서 사용한 표현을 인용해 경성방직과 김성수 형제가 20세기 한국 경제와 기업의 역사에서 ‘뛰어난 학습자’였으며 ‘성공적인 후발자’였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발전을 만든 ‘사회적 능력’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기업가 능력’을 독립운동 중심의 정치사에서 해방시켜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④ 인촌과 한국 언론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인촌 김성수와 한국언론’ 발표를 통해 일제 식민지 20년과 광복 후 10년간 수많은 언론인에게 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언론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의 큰 물결을 바른 방향으로 유도한 인촌의 업적이 크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국내에서 독립의 방략을 모색하고 외국 독립운동을 사례로 삼아 연계를 시도했으며 묵묵히 민족의 역량 배양에 헌신했던 인물이 김성수였다”고 평가했다. 일제강점기 국내 항일운동의 중심기관은 언론이었다. 정 교수는 “언론은 항일 논조를 펼치면서 민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글로써 깨우치고 새로운 사상을 도입하는 창구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 당시 신문사는 인재의 집결처이기도 했다. 인촌은 언론인과 문인들을 신문사라는 당대의 첨단 조직에 포용해 민족 언론이 기능을 발휘하도록 했으며, 광복 후에는 이들이 정계 학계 문화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고 정 교수는 평가했다. 정 교수는 동아일보가 1963년 동아방송을 개국해 신문과 방송으로 보도와 비판 기능을 강화했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방되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을 상기하며 “이제 동아일보가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종합편성방송인 ‘채널A’를 준비 중이므로 인촌의 유지를 되살려 방송 언론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19세기 초 세계 인구는 10억 명. 현재 세계 인구는 65억 명에 육박한다. 인류가 일찍이 없던 풍요를 구가하며 지구의 지배종(種)을 넘어 신의 영역까지 넘보게 된 데는 화석연료의 힘이 컸다. 그러나 급격한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 식량난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선 지금 당장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긴급한 메시지가 잇따르고 있다.》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36억5000만 년 전을 기점으로 하고 지구 생명의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하면 1000만 년은 정확히 하루에 해당한다. 1월 1일 0시, 바닷속에 세포가 하나 등장했다. 한 개의 세포에서 시작한 생명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명체로 진화했다. 생명 진화의 원동력은 ‘자연선택’이었다. 인류도 선택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 12월 31일 오전 10시에 침팬지 계통과 갈라진 인류 계통은 오후 4시가 되자 직립보행을 하게 됐으며, 오후 11시 30분에 아프리카를 탈출한 호모 사피엔스는 11시 45분까지 지구의 육지 전역을 차지했다. 그리고 12월 31일 밤 12시인 지금, 우리가 있다.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후인 마지막 15분간의 사건을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살펴본 생태환경 이야기다. 15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이 책의 원제대로 지구를 ‘지배하는 동물(dominant animal)’이 되었고, 자연의 선택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자연을 선택하는 압력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를 지배하는 종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자의 대답은 비관적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적인 동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조상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인데, 인류는 지표면에 있는 거의 모든 생명의 환경을 바꿔 놓았다. 우리 조상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로 인구는 1000배가량 늘었다. 인구는 늘었지만 곡물을 가축에게 먹이고 다시 가축을 잡아먹는 육식 습관은 에너지의 효율을 극도로 낮춰 더 많은 농토가 필요했다. 결국 늘어나는 인구를 위한 생활공간과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가장 생산적인 생태계인 습지를 간척했다. 소비에 길들여진 인류는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화석연료를 단 수십 년 동안 고갈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인구의 밀도가 높아지고 이동의 속도가 빨라짐으로써 신종 바이러스에 대처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더군다나 인간의 영향은 지표면을 벗어나 지구의 대기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인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미 수많은 생물종을 멸종시킨 인류는 이제 자신마저 ‘멸종 위기’ 속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지배적인 동물이 되게 해준 특성을 이제는 우리 자신과 생물 세계의 모든 존재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 이용할 수는 없을까? 인간과 세계 그리고 둘 사이의 영향에 관한 본질적인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이정모 과학저술가 ▼ ‘석유 고갈’ 재앙은 다가오는데… 소비만능 삶의 태도는 그대로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고, 아들의 아들은 낙타를 타게 될 것이다.”(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속담) 석유는 단지 에너지원이나 연료에서 그치지 않는다. 식량, 의복, 건축자재, 펄프, 플라스틱, 공산품과 생필품, 의약품…. 석유는 현대문명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러나 석유 생산량은 정점(피크 오일)을 지나고 있다. 정점이란 이 세상에 묻혀 있는 모든 석유의 ‘절반’을 뽑아낸 도달점을 뜻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뽑아낸 절반이 ‘제일 취하기 쉽고, 가장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가장 질이 좋고 값싸게 정유할 수 있었던’ 석유라는 점이다. 나머지는 북극이나 바다 밑 깊숙한 곳에 묻혀 있어서 추출하는 일 자체에 많은 석유 에너지가 들 수 있다. 조사 결과 전 세계에 남은 석유의 총량은 37년 사용치에 불과하다. 이 책은 석유생산 정점 이후의 시기를 ‘장기 비상시대(long emergency)’, 즉 상시적 긴급상황으로 규정한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는 대체에너지가 석유를 대신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한 공상’일 뿐이라고 본다. 대체에너지 기술 역시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의 금속터빈은 풍력에너지 기술로는 만들 수 없고, 태양광발전 시스템에 들어가는 납축전지는 어떤 태양광발전 시스템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 수소에너지, 바이오매스, 메탄하이드레이트도 마찬가지다. 저자에 의하면 ‘장기 비상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석유 고갈과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난으로 수십 년간 많은 사람이 굶주리거나 죽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세계의 곡물생산량을 250%나 증가시킨 이른바 ‘녹색혁명’이 전적으로 화석연료의 투입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거리 수송’에 의존해 멀리서 자원을 조달해오던 글로벌 국제경제는 급속히 붕괴한다. 각국은 자원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군사분쟁의 시대에 진입한다. 그러나 저자가 ‘종말론자’는 아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지역공동체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해야 하며, 사람들은 생활필수품 정도는 만들어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책은 권고한다. “현대인은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몽유병’의 행진을 멈춰야 할 때다.” 피크오일 이후의 세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책으로 크리스토퍼 스타이너의 ‘석유종말시계’(시공사·2008년)도 읽어볼 만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인문 추락하는 일본(이종각 지음·나남)=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일본 주오대 겸임교수인 저자가 일본의 추락에 대해 전망했다. 기술과 자본, 노동력이 감소하는 일본의 경제, 점점 심해지는 일본의 고령화사회 등을 분석했다. 1만5000원. 내 삶의 쉼표, 불교미술 산책(김진숙 지음·올리브 그린)=불교미술을 전공한 저자가 일본 교토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 불교 유적지와 미술품을 관찰했다. 읽기 편한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썼다. 1만7000원. 나쁜 사회(대니얼 리그니 지음·21세기북스)=‘무릇 있는 자는 더욱 넉넉해지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구절을 들어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마태 효과’로 분석한다. 1만5000원. 이기적인 사회(수 거하트 지음·다산초당)=‘이기심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사람은 이기적이 됐으며 자본주의가 아닌 조건에서 인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1만8000원.○ 문학 들꽃사전(박희정 지음·책만드는집)=‘길은 다시 반전이다’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은 시조집.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사유의 눈길을 보내면서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관심을 전통의 운율에 직조했다. 9000원. 호랑이의 아내(테이아 오브레트 지음·현대문학)=동물원 우리를 뛰쳐나온 호랑이를 쫓는 마을사람들, 그 호랑이를 지켜주는 청각장애인 소녀의 얘기 등이 신비한 전설처럼 펼쳐진다. 1만3500원. 어떤 작위의 세계(정영문 지음·문학과지성사)=과거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던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5년 만에 다시 찾았다. 추억과 현재의 단상이 혼합된 기행문 같은 소설. 1만1000원. ○ 학술 금융자본론(루돌프 힐퍼딩 지음·비르투)=독일의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정치가인 저자가 ‘금융자본주의가 어떻게 경제위기를 세계화하고 동시화하는가’를 탐구했다. 산업자본이 은행자본과 융합해 금융자본으로 전환함으로써 경제위기가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2만5000원. 이슬람의 허용과 금기(최영길 지음·세창출판사)=이슬람의 허용(Halal)과 금기(Haram), 혐오사항(Makruh)을 이슬람 문헌에 근거해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이슬람 자본은 사업에 투자를 할 때도 여러 금기 사항을 고려한다. 2만5000원. 퍼스의 기호학과 미술사(강미정 지음·이학사)=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와 함께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미국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1839∼1914)의 기호학을 설명한 책. 퍼스 기호학을 미술사와 연계해 표상 실재 역사의 세 가지 핵심어로 재구성했다. 1만8000원.○ 실용기타 추억, 역사 그리고 길을 걷는다(이재영 지음·재승출판)=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로 20곳을 선정했다. 추억의 길, 역사의 길, 연민의 길, 낭만의 길로 나누어 사진과 여행기를 담았다. 1만5800원.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다(김재우 지음·비전과리더십)=입사 후 승진가도를 달리며 45세에 삼성항공 부사장에까지 오른 ‘잘나가던’ 직장인이 50대 초반에 명예퇴직을 당한 뒤 좌절하지 않고 재기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았다. 1만2000원. 은행원에서 은행장까지(설홍렬 지음·선우미디어)=30년간 한 은행에 근무했던 은행원이 느껴온 애환을 담백한 에세이로 엮었다. 1만5000원. 모자이크 세계지리(이우평 지음·현암사)=현직 고등학교 지리교사인 저자가 대륙별 세계 지리상식과 흥미로운 역사를 엮었다. ‘힌두교도에게 소란 어떤 존재일까’ 등 다양한 물음에 해답을 제시한다. 2만8000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선 병아리 부화회사가 성업 중이다. 집에서 가축을 길러 잡아먹는 문화가 사라졌던 미국인들이지만 경기침체로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자 집집마다 닭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300달러를 들여 닭장을 만들어 닭을 키우는 주민이 뉴욕부터 시카고의 교외, 서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여기저기 닭 울음소리에 밤잠을 설친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수탉을 한 마리로 제한하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경제위기 속에서 총기류와 닭장이 많이 팔리는 것은 미국인의 심리적 물질적 불안감이 표출된 겁니다. 정상적인 교환경제 사회의 그물망이 해체되고 타인의 도움을 유기적으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립 생존전략이죠.”김광기 경북대 교수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중견 사회학자다. 그가 위기에 빠진 미국을 경제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를 펴냈다.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올해 재정위기로 신용등급 강등사태까지 맞은 미국인의 일상생활 변화는 충격적이다. 김 교수는 “미국이 경기침체에 크게 흔들리는 이유는 가계부터 국가까지 만연한 ‘가불(假拂)경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민이나 중산층 또는 고소득층, 주정부, 연방정부 가릴 것 없이 미래의 소득을 상정하고 몇 배를 당겨서 소비했는데, 불경기로 임금이 줄거나 해고를 당하면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는 것. 저축이 없는 미국인들에게 실업은 곧 빈곤층 전락을 의미한다.“가불경제는 100원이 생기면 100원을 쓰는 게 아니라 앞으로 100원이 생길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300원, 400원을 쓰는 겁니다. 생활의 기반인 직장만 있다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자신의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집보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풀장, 그리고 별장과 요트, 심지어 자가용 비행기까지 소유하려 들지요. 그래야 세금 환급으로 빼앗기는 액수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내일은 없고 오직 오늘만 있다는 심정으로 악착같이 소비하면서 살아왔어요. 이런 삶의 정점이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거품이었습니다.”청산 직전에 몰린 주정부의 재정상황도 심각하다.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관통하던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비용이 적게 드는 자갈로 대체하느라 파헤치고 있다. 교사들에 대한 대량해고로 학년이 다른 학생들이 합반 수업을 하는가 하면,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로 수업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각 주는 넘쳐나는 노숙인들에게 편도 항공권을 주며 다른 주로 내쫓고 있다. 미국 몰락의 초점을 김 교수는 사회학적 원인에서 찾는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기초한 정직과 신뢰, 아메리칸 드림 등 불과 2세기 만에 미국을 최강대국으로 만들었던 사회적 습속과 문화가치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는 분석이다. “사회학자인 애덤 셀리그먼은 현대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은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맺어진 ‘확신(confidence)’뿐 아니라 낯선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유지해 주는 ‘신뢰(trust)’라고 말했어요. 미국은 신뢰를 바탕으로 다인종사회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유지해 왔는데 그게 무너지면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빠져들게 되죠.”책은 렌터카의 기름 대신에 물을 채워 반납하거나 여분 바퀴를 훔치는 사소한 도덕불감증부터 미국의 정치 사회 경제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보여 준다. 미국도 급속하게 학벌 위주 사회로 변모하고 있으며, 명문 학교 입시를 위한 사교육시장도 커져간다. 고교마다 수석졸업생이 30명씩 배출되는 등 학교장 추천서도 더는 믿을 수 없게 됐다. 서민층부터 고소득층까지 빚을 갚지 않기 위한 ‘전략적 빚 체납’으로 수많은 은행이 쓰러진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월가와 정부의 정경유착은 더욱 심해진다. 정치권과의 유착이 심한 골드만삭스에 빗대 ‘정부 삭스(government Sachs)’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 교수는 “미국이 사회적 가치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위기는 긴 터널이 아니라 출구 없는 동굴이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편으로 이 책은 우리나라를 향한 성찰로도 읽힌다. 정경유착, 부정부패, 양극화, 집단 이기주의,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 지방정부의 무책임함, 교육비리, 도덕 불감증 등이 ‘유사 미국(Pseudo-America)’이라고 할 만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사회 이슈화되는 복지문제에 미국의 주정부 재정악화 사태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러시아 문화예술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이 6년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다음 달 28일 재개관한다. 2005년 지반 침하 등으로 붕괴 위험이 제기돼 시작된 보수공사에 총 7억2000만 달러(약 7700억 원)가 들어갔다. 크렘린이 공사를 직접 감독했고 재개관 날짜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직접 정했다. 극장에는 최첨단 음향 및 조명시설이 들어서고 지하수 통제시설까지 업그레이드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화두는 “옛 차르 시대의 영광을 상징했던 볼쇼이를 1856년 개관 당시의 원형대로 복원하라”는 것이다. ‘볼쇼이’란 러시아어로 ‘크다’는 뜻. 그 이름처럼 1856년 개관 당시 볼쇼이는 당대 유럽의 어떤 공연장보다 크고 웅장했다. 그러나 1918년 러시아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권은 이 극장을 귀족 체제의 사치와 낭비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황제를 상징하는 수많은 내부 장식을 파괴했고, 메인홀은 공산당 회의실로 쓰기 위해 객석으로 빽빽하게 채웠다. 재개관하는 볼쇼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황제의 휴게실이다.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화려한 태피스트리로 장식됐던 이 방은 1856년 알렉산드르 2세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으로 소비에트 시절에도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 미하일 시도로프 시공 총책임자는 “휴게실의 한가운데에서 박수를 치면 우렁찬 소리에 귀가 멀 정도”라며 “당시 목이 아팠던 황제의 말이 모든 사람에게 잘 들리도록 특별히 설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8m 높이 3층 구조의 거대한 샹들리에도 복원했다. 이 샹들리에는 1896년 러시아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때 설치한 것. 복원된 샹들리에는 2만4000개의 크리스털 줄과 펜던트로 장식했다. 무게가 2t, 지름이 6.5m나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1년 나치의 폭격에 부서졌던 볼쇼이극장 정면에 있는 아폴로 신의 4두마차 상과 뮤즈의 여신상도 복원했다. 거대한 바이올린 모양의 객석에 울려 퍼지는 ‘볼쇼이 사운드’의 복원도 관심거리다. 볼쇼이극장은 원래 바닥과 천장, 칸막이 등을 모두 전나무로 만든 음향 패널로 장식했다. 객석과 오케스트라 피트 밑에 ‘에어쿠션’으로 부르는 빈 공간을 두어 자연스럽게 음향이 증폭되고 반사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50년대 소비에트 정권은 공산당 회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객석과 오케스트라 피트 밑의 빈 공간에 콘크리트를 부어버렸다. 이번 공사를 위해 극장 측은 수백 개의 전나무 패널을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수입했고 바닥의 콘크리트를 털어내 음향시스템을 복원했다. 공사 관계자는 “관객들은 볼쇼이의 포르티시모를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볼쇼이극장이 원형복원 원칙에서 양보한 것은 단 한 가지. 1980년대 병을 앓고 있던 콘스탄틴 체르넨코 서기장을 위해 설치한 로열박스석 엘리베이터다. 그러나 박스석 전면에 새겨져 있던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망치와 낫’ 문양은 러시아 차르 시대 로마노프 왕조의 상징물인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 문양으로 대체했다. 볼쇼이극장은 10월 28일 갈라 콘서트, 11월 2일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 등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재개관 페스티벌을 연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길 위에 선 두 남자가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들고 20여 년째 전국을 돌고 있는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50)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들고 산에 오르는 33년 경력의 베테랑 산악인 박기성 씨(54)다. “역사책은 여행의 나침반”이라고 말하는 두 사람을 서울 연세대 청송대에서 2일 만났다. 고 교수는 최근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현암사)를 냈고, 박 씨는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책만드는집)란 책을 출간했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왜 길이나 산 위에서 읽어야 한다는 걸까. “일연은 운수(雲水·구름이나 물처럼 정처 없음)에 운명을 맡긴 승려였습니다. ‘삼국유사’는 책상 위에서 자료만 갖고 쓴 게 아니고 일연이 양양, 경주, 익산, 개성 등지 절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말로 ‘필드워크’를 한 거죠. 독자도 이야기의 소재가 된 곳마다 그 자리에 서서 그 대목을 읽으며 느껴봐야 합니다.”(고 교수) “삼국사기는 절반 이상이 삼국통일 전쟁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높은 산성에 올라야 골짜기, 벌판이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부산 황령산에 올라가면 탈해왕 때 병합한 동래 지역 40여 리에 걸쳐 있던 거칠산국의 범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황산벌 싸움은 평지에선 잘 못 느끼는데 김유신 장군의 지휘소가 있던 갈마산에 오르면 치열했던 전황이 한눈에 들어오지요. 마치 사극을 보는 것처럼요.”(박 씨) 고 교수의 호는 여연(如然)이다. 일연의 길을 따라가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다. 이번 책은 총 15권으로 계획한 필생의 역작 ‘스토리텔링 삼국유사’의 세 번째 책이다. 박 씨는 서울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월간 ‘사람과 산’의 창간 멤버가 됐다. 대학 산악부 때부터 요세미티, 칸텡그리, 가셔브룸 등 해외 고산 원정도 다녀온 산악인이다. 산 이야기에 역사를 버무린 글로 고정 독자를 확보해온 그는 “평생 좋아하는 두 가지, 산과 역사만 일구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고대사에서 부족한 한 줄의 기록은 오히려 여행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고 교수나 사학을 전공했지만 산악인으로 살아온 박 씨는 전문 역사학자처럼 사실의 고증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글에선 자유가 느껴진다. 고 교수는 “텅 빈 절터에 서면 내 마음속의 스카이라인을 그린다”고 표현했다. 무너진 돌탑에서 이어지는 마음속 선을 따라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하면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다. “경주 분황사에 가면 눈먼 어린 딸을 위해 관음보살상 앞에서 노래를 부른 어미를 생각합니다. 그 앞에서 저도 향가 ‘천수대비가’를 한번 불러보는 거죠. 분황사 문을 열면 황룡사입니다. 지금은 빈터지만 그때는 구층탑이 우뚝 솟아 있었죠. 눈을 뜬 딸은 9층탑을 보고 환희가 하늘 끝까지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고 교수) “산에 오르면 수많은 역사인물을 만납니다. 지금도 하루에 오르기 빠듯한 태백산 정상에서 제사를 지냈던 아달라이사금, 임금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삼태봉 개활지에서 서라벌을 넘봤던 탈해…. 또 수많은 미스터리도 떠오릅니다. 진흥왕의 첫 순수지 하림궁은 어디 있으며, 대가야 사람 우륵은 왜 거기서 가야금 연주를 했을까. 성왕과 백제군 2만9600여 명은 관산성에서 어떻게 그렇게 몰살을 당할 수 있었나.”(박 씨) 박 씨는 “이 미스터리들은 거의 자면서 풀었다”고 말했다. “꿈에 역사의 신이 나타나 답을 가르쳐준 적은 없었지만 늦은 시간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잠들면 아침에 답이 떠오르곤 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대표적 인물을 한 명씩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삼국사기의 스타는 단연 김유신입니다. 열전 10권 중 3권이 김유신 편으로 양적으로도 압도하죠. 김유신은 김부식이 생각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이상적 인간형이었습니다. 반면 삼국유사의 대표 인물은 원효입니다. 원효는 인간적 실수도 많이 하지만 모두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은 인물이기 때문에 일연이 가장 중요시한 인물입니다.”(고 교수) 박 씨는 “삼국사기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은 군사적으론 이사부 장군이고, 정치적으로는 선덕여왕의 남편이었던 용춘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김유신이 수재였다면 이사부는 싸우지 않고도 신라 전성기 시절에 수많은 승리를 이끌어낸 천재였다”고 덧붙였다. “용춘은 그림자 같은 인물이었지만 그의 이상과 계획은 아들 김춘추에 의해 실현됩니다. 용춘은 ‘외교는 활 쏘지 않는 전쟁과 같다’는 말을 깨달은 인물이었어요.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한 것을 ‘나라 팔아먹었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지만 실은 당나라 속에 들어가 당나라를 갖고 놀았던 거죠. 약소국이 강대국을 움직여 중강대국을 병합한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습니다.”(박 씨) 두 사람의 책은 직접 찍은 사진에 지도까지 곁들여 답사여행의 길잡이로 손색없다. 고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저는 ‘보는 만큼 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씨는 “대부분의 산꾼이 앞사람 발뒤꿈치만 따라 걷는데, 역사책을 들고 떠난다면 산길에서 차이는 돌멩이 하나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사건은 역사가의 사료로 선택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버지니아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역사학자가 상식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인 줄 알면서도 ‘상식’을 이 책의 주제로 잡았다. 역사에서 ‘상식’이 논란이 되는 시기는 바로 기존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상식’이 의심받고 도전받는 ‘역사적’ 순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 정치에서 ‘상식’이라는 개념의 비중이 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과 사회의 진로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상식’이다. 모두가 한 표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제도는 바로 이 ‘상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국가의 운영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상당한 전문지식과 도덕적 소양을 갖춘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상식’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존립하고, 특히 상당수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양원제가 운영되는 것은 바로 이 ‘상식’에 근거한다. 대선·총선·보선 때마다 여야와 보수·진보를 적절히 안배하여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국민의 현명함을 보면, 잘난 척하는 지식인이나 정치가, 자본가의 ‘신중한’ 판단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인의 ‘상식’에 따라 한국사회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 듯하다. 그럼에도 뉴타운정책, 수도 이전, 4대강, 신공항, 무상급식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의 포퓰리즘적 선동에 휘둘리는 국민을 보면 ‘상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상식’을 동원한 포퓰리즘이 어떻게 정치 지형을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 ‘상식의 역사’는 매우 간결하지만 원제목 ‘Common Sense: A Political History’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상식’에 대한 로젠펠드 교수의 접근은 개념사, 정치사, 철학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논의의 맥락에서 보면 개념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common sense’는 인간의 5가지 기본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인상들을 비교·통합하며 이성과는 별도로 감각 대상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별다른 이의 없이 전해진다. 아일랜드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건강한 사고의 증진을 위해) 형이상학을 영원히 추방하고 사람들이 상식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상식’의 의미는 이미 충분히 이해된 듯하다. 문제는 그 ‘상식’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상식’은 기본적으로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지배층에 대해 모든 사람이 이성과는 다른 차원의 건전한 판단력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것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18세기 중후반 스코틀랜드의 외진 도시 애버딘과 자유로운 문화의 망명지였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철학자만이 전점하던 판단력과 소수의 지배층이 독점하던 통치권을 흔들어 놓은 ‘상식’의 반란이 시작됐다. 머지않아 그 영향은 신대륙의 식민지 도시 필라델피아에 미쳤다. 그곳에서는 이 ‘상식’에 근거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행정관 대신 의회에 권한을 집중시키되 매년 선거를 통해 ‘상식’을 가진 인민들이 의원을 교체하게 하는 혁명적 정치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상식’이 늘 진보의 편은 아니다. 필라델피아를 거쳐 다시 대서양을 건너온 ‘상식’은 혁명의 도시 파리에서 복고적 사상과 결합한다. 프랑스혁명 발발 2, 3년 만에 전통적 가치들과 생활방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교회와 국왕, 마을의 공동체 정신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상식’에의 호소가 힘을 얻었다. 물론 혁명을 주도한 자들도 ‘상식’에 호소하고 있었다. 이후 ‘상식’은 모든 정치적 논쟁에 동원됐다.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견해가 대중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고 이를 위해 정치가와 대중이 공유하는 ‘상식’이 가정되고 강조됐다. 진보든 보수든, 우파든 좌파든 적어도 대중의 힘을 필요로 하는 한 ‘상식’은 포기할 수 없는 무기가 됐다. 노예제도, 여성운동, 민족주의 등 정치사에서 벌어진 주요 논쟁마다 그 찬반 양측은 모두 ‘상식’에 의존해 자신의 생각을 주장했다. ‘상식’은 죽음을 모르고 출몰하는 영혼과 같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대중의 ‘상식’에 일정한 거리를 두려 했던 칸트에게 호의적이지만 칸트의 후예들은 다시 정치로 나아갔다. 저자는 그중 해나 아렌트에게서 작은 희망을 찾는 듯하다. 아렌트에게서 ‘상식’은 사람들을 현실세계와 연결해 주고,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도록 해주며, 또한 공적 생활의 한계를 정해준다는 것이다. 미약하지만 이것은 미워도 버릴 수 없는 ‘상식’의 폐해를 막을 방법에 대한 고민의 출발점이다.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

《“관세음보살상이 머리에 쓴 관이 무엇입니까.” “화관(花冠)입니다.”“손에 들고 있는 병은 무엇입니까.” “정병(淨甁).”“손바닥이 이쪽에서 보이도록 만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구고(救苦).”1999년 여름, 원로 조각가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80)의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작업실에 길상사 회주였던 법정 스님이 찾아왔다.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으로 전국의 성당에 성모상을 세워온 최 교수에게 관음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다.》 최 교수는 “나도 짧게 (세 가지를) 물었지만 스님은 토씨 하나 안 붙이고 외마디 답으로 알려 주었다”며 “꽃관에다, 정화수에다, 세상 고통 구한다는 세 마디 말씀을 듣는 순간 작품은 다 잡혔다”고 회고했다. 최 교수가 자신의 예술과 신앙에 관한 에세이집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바오로딸)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에 종교적 정신적 스승으로 다가왔던 두 사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최 교수는 1958년 가톨릭에 입교했지만 서울대 미대 졸업 후 3개월간 불교 교리를 배웠다. 해맑은 소녀상을 조각해온 그는 “1960년대 중반 반가사유상에서 한국의 조각가로서 추구해야 할 평생의 길을 찾았다”며 “내 신앙적 본향은 가톨릭이지만 원천은 불교였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성모상과 관음상은 영원한 어머니로서 대자대비이고 큰 사랑이며, 맑음과 깨끗함, 고귀함과 온화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성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 추기경에게 “성모상을 만들던 내가 관음상을 만들면 천주교에서 나를 파문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김 추기경은 “일본에서도 천주교가 전파된 초기에 관음상 한 귀퉁이에 작은 십자가를 표시해 기도를 드리며 박해를 피했던 일도 있다”며 격려했다. 어느 날 법정 스님과 함께 차를 타고 서울 삼청터널을 지나면서 사람을 맑게 해주는 ‘정화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법정 스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갈증’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한 해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두 분의 마지막 모습도 그에겐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최 교수는 2009년 2월 김 추기경 선종 1주일 전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옆에 있던 수녀가 “추기경이 늦잠을 주무셔서 아침 미사를 빼먹었다”고 말하자, 추기경은 최 교수의 귀에 대고 “밖에 나가선 말하지 마”라고 말했고 방 안에 폭소가 터졌다. 최 교수가 “말로가 아니라 만천하에 글로 쓸 것이다”고 했더니 추기경은 또 파안대소를 했다. 그는 “30분간 병실에서 웃다가 나왔다”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찾아온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은 참으로 성자(聖者)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법정 스님 입적 5일 전 최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장익 주교(전 천주교 춘천교구장)와 동행한 최 교수에게 법정 스님은 일어설 수 없음에 “원(願)은 여전한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며 양해를 구했다. 스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며칠 후 퇴원할 것”이라며 “강원도 산골 집에 가서 눈 구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내오라고 해서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씩 나눠 먹었다. 최 교수는 “법정 스님이 눈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은 죽는 날까지 순수함, 맑고 향기로움을 추구하고자 했던 바람이었던 같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죽음을 직접 눈으로 보니, 이분들은 진정 죽음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종교와 예술이 분리되는 21세기에 두 분을 만나 종교와 예술, 삶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고백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조선시대에 아주 유행했던 ‘승경도 놀이’에서는 9품에서 1품까지 관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주사위를 잘못 던지면 ‘귀양살이’로 떨어지고 만다. 조선의 선비에게 벼슬길과 귀양살이가 동전의 양면과 같았음을 보여준다. 요즘 말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형과 유배라는 치열한 정치보복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쟁과 사화가 격화된 15, 16세기에는 벼슬아치 4명 가운데 1명꼴로 유배를 당할 정도였다. “가시나무로 사방을 둘러 배 안에 있는 듯하나/탱자나무로 거듭 에워싸 하늘도 보이지 않네./담담히 앉았노라니 봄날은 차차 길어지고/괜한 걱정에 바뀌는 풍경조차 아쉽네. … 산가지 세며 책 읽은들 종내 어디에 쓰겠는가?/세상사 험한 길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네.”(이행의 ‘해도록’) 귀양이란 말은 귀향(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에서 나왔다. 그러나 초기엔 한양과 가까웠던 귀양살이가 점점 멀어졌고, 조선 중기 이후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고도(絶海孤島)로 보내졌다. 그것도 모자라 위리안치(圍籬安置) 형벌까지 더해졌다. 유배객이 머무는 집의 지붕 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치고, 개구멍 같은 작은 틈으로 먹을 것을 넣어주며 유배객을 유폐시키는 형벌이다. 국문학과 한문학의 권위자인 두 저자는 조선시대 유배객들이 보내졌던 흑산도, 남해도, 임자도, 추자도, 백령도 등 14개의 섬을 직접 탐방하며 선비들의 자취를 더듬는다. 짧게는 20여 일부터 길게는 27년까지, 유배객들이 섬에 머문 기간이 달랐듯이 그들의 삶도 제각각이었다.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한탄 속에 숨을 거둔 이도 있고, 벼슬아치로 살아서는 결코 이룰 수 없었을 학문적 성과를 거둔 이도 있었다. 유배객들이 막다른 섬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어땠을까. 당대의 수재로 평가받던 이행은 연산에 의연히 맞섰다가 거제도에 유배된 후 “밥 한 끼 먹을 때도 네댓 번씩 일어나고, 열 밤이면 아홉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조선 최후의 선비 최익현은 대마도로 유배된 후 곡기를 끊고 결국 이역 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쿠데타로 교동도에 위배된 연산군은 갑자사화(1504년) 당시 자신이 처음으로 시행했던 ‘위리안치’ 제도에 자신이 갇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중종실록’은 “연산군이 역질로 몹시 괴로워하여 물도 마실 수 없을 뿐 아니라 눈도 뜨지 못했다”고 기록했으며, 결국 그는 석 달 만에 31세로 죽었다. 그러나 유배지가 고통과 절망의 땅만은 아니었다. 절해고도 외로운 섬에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은 이도 있었다. 바쁜 일상에 휘둘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여유도 얻지 못하다가 유배를 와서야 산수를 즐기는 호사를 누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 수많은 선비가 골치 아픈 정치와 세상사에서 단절된 채 학문에 정진해 위대한 저서를 남겼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박물학 저서인 ‘현산어보’와 소나무 벌목을 비판하는 혁신적인 논문 ‘송정사의’를 썼다. 유배지의 자연과 그곳에서의 삶이 남긴 저작이다. 노수신은 19년의 세월을 진도에 갇혀 살면서 그 분노를 학문으로 삭였다. 그는 훗날 화려하게 조정으로 복귀해 남은 생을 대학자이자 시인으로 인정받으며 살았다. 그를 가리켜 명문장가 유몽인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는 19년을 기한으로 잡아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70세의 고령에 백령도로 유배된 이대기는 백령도의 생태와 전모를 충실하게 기록한 ‘백령도지’를 남겼고, 조정철은 ‘정헌영해처감록’이란 책을 남겨 제주도의 풍물과 인심을 오늘에 전한다. 저자는 “뛰어난 문장력을 갖춘 유배객들에 의해 궁벽했던 섬이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고, 세상에 알려졌다”고 말한다. 섬에 갇힌 분노와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도 여럿 전한다.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이 유배지에서 탄생했고, 김만중도 한글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각각 함경도 선천과 남해도 유배시절에 썼다. 신지도에서 불행한 생을 마친 이광사는 아내가 자결하는 처절한 상황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동국진체’라는 글씨를 남겼다. 조희룡은 유배지 임자도를 그림으로 빛냈다. 임자도의 나무와 돌과 노을과 구름을 보고 새로운 감각의 눈을 틔웠으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꽃피운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아름다운 섬들의 풍광사진이 절해고도의 외로움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한다. 저자인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흔히들 생각하듯이 섬은 문화가 없는 황량한 공간이 아니었다”며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죄와 벌’과 같은 대작이 나올 수 없었듯이, 우리 역사에서 유배가 없었다면 조선 학문의 폭과 깊이가 그만큼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국인 소설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는 무엇일까? 노벨 문학상을 제외하면 아마도 ‘데이비드 코언 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문학 발전에 공헌한 영국 국적의 작가에게 2년에 한 번씩 주는 이 상의 올해 수상자는 바로 지적인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작가, 줄리언 반스에게 돌아갔다. 8월 4일 영국에서 출간된 반스의 열한 번째 소설 ‘죽음의 감각(The Sense of an Ending)’은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날카로운 재치와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60대 노인인 토니가 고교 시절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토니는 대학 졸업 후 적당한 직장을 얻고, 평범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도 한 명 얻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토니가 그의 평범하지 않은 친구들, 아드리안과 베로니카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토니의 고등학교 동창 아드리안은 10대 때부터 이미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역사와 철학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으로 충만했다. 토니와 그의 친구들이 사춘기 소년답게 주로 성(性)에 관심을 가졌던 반면 아드리안은 ‘왜 영국인들은 심각한 주제에 대한 고민을 회피하는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고교 졸업 후 아드리안은 케임브리지대로, 토니는 브리스틀대로 각각 진학했고, 토니는 베로니카라는 여자 친구를 만난다. 어느 날 베로니카의 집에 초대된 토니는 그녀의 속물적인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모욕을 받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결국 그녀와 헤어지고 만다. 그의 열등감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베로니카와 토니가 결별한 직후 아드리안과 사귀기 시작한 것이었다. 토니는 아드리안과 절교를 선언했지만 결국 아드리안과 베로니카는 결혼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드리안은 그 후 욕실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한다. 그것이 토니가 아드리안과 베로니카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추억을 회상하던 토니에게 어느 날 편지가 한 통 배달된다. 그것은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가 사망했으며 그녀가 토니에게 500파운드와 아드리안의 일기를 남겼다는 내용이었다. 왜 토니에게 아드리안의 일기를 남겼을까? 혼란스러운 토니는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베로니카에게 연락을 취하고, 과거를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된 토니. 독자들은 그가 그동안 숨겨왔던 어두운 이면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토니가 일부러 자신의 과거를 숨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자신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왜곡하고 수정한 뒤, 그것이 진짜 일어났던 과거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반스는 이쯤에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어쩌면 토니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우리의 과거를 더 유리한 쪽으로 왜곡해 오지 않았을까? 옵서버지는 “젊은이들의 성, 억제, 계급, 후회, 그리고 잘못된 회상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언 매큐언의 ‘체실 해변(Chesil Beach)’과 비교될 만하다. 다만 ‘죽음의 감각’은 더욱더 지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라고 이 소설을 극찬했다.런던=안주현 통신원}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 열풍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불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생활고를 비관한 문화예술인들의 불행한 자살도 일어난다. 이처럼 ‘승자독식’의 양상이 강한 세계이지만 많은 젊은이가 어떤 형태로든 문화의 영역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연예계 지망생 수십만 명이 지원하고, 돈 한 푼 벌지 못해도 영화판을 떠나지 못하는 젊은 ‘영화 낭인’이 가득하며, 신춘문예 등 각종 공모에 매달리는 작가 지망생의 수도 줄지 않는다. 과연 문화로 먹고살 수 있을까. 즉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고 뛰어들 만한 분야일까. 생태학과 20대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88만 원 세대’ 저자 우석훈 씨(43·사진)가 ‘문화로 먹고살기’(반비)를 펴냈다. 방송 출판 영화 공연 음악 등을 총망라해 한국의 문화산업 전반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폈다.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지만, 그래도 문화산업만이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믿어요. 지금보다 딱 2배만 더 고용할 수 있다면 미래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건 물론이고 20대 실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화를 철저히 ‘숫자’로 분석한 이 책이 보여주는 현실은 참담하다. 가장 큰 수익을 내는 TV 드라마조차 조연과 스태프의 세 끼 밥도 챙겨주지 못하는 구조이고, 영화는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20대 젊은이들이 문화산업에 뛰어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에게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스스로 판단하게끔 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실 문화를 하겠다는 이들은 이미 돈보다는 꿈을 선택하는 거죠. 이들이 최소한 밥은 굶지 않도록 하는 게 기성세대가 할 일이고요.” 그는 다양하고 때로 색다르게 들리는 대안도 쏟아냈다. 예를 들어 방송과 관련해서는 ‘지역 드라마’ 양성을 제안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확고한 팬을 확보하며 성장해온 프로야구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자는 것. 그는 “지역 내에서 투자 및 지원이 이뤄지고, 지역 PD와 작가, 탤런트가 제작하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작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 이를 ‘지역 팬심’으로 이어가면서 산업을 발전시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화산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의 말도 잊지 않았다. “습작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자기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괜히 상업성을 고려해 기성세대를 따라가지 말고, 자기 것을 막 ‘질러야’ 하죠. 꿈만 있다면 다른 분야보다 기회가 많은 곳이 바로 문화산업입니다.”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명운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겨울 너무도 갑작스럽게 터진 튀니지 민중시위와 독재자 축출은 중동 연구자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고, 뒤이은 이집트의 같은 사례는 연구자들을 감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 후 리비아 예멘 시리아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변혁운동 과정은 수많은 시민의 희생을 낳고 있지만 이 파장이 어디에까지 미칠지, 사회문화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수반할 것인지는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촌각을 다투며 급변하는 현 이슬람 세계의 정세를 넓은 세계사적 흐름의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이슬람의 세계사적 통찰’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면 말이다. ‘세계사’라는 이름을 갖고 나왔으니 이 세계의 역사를 해석한 사람이 누구인지 우선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타밈 안사리, 완벽하게 이슬람적인 이름이다. 그는 아프간계 미국인 작가이자 교사로 저명한 무슬림 집안 출신이다. 어머니가 미국인이며 열여섯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이후 미국에서 줄곧 살면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문화와 미국 서구문화를 두루 경험했다. 그러니 이 책은 ‘타밈 안사리의 눈으로 본 세계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잊혀진 역사’라는 제목으로 아랍어로도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이슬람 세계의 역사를 다룬 교양 논픽션에 가깝다. 역사적 사실들을 분석한 학술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학술적 목표를 가지고 구성된 역사서에 건조하게 나열된,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을 새롭게 읽어낸 것이다. 책의 내용은 서로 맞지 않는 두 줄기의 세계사, 즉 유럽 세계사와 이슬람 세계사가 교차하며 발생한 마찰에 관심을 집중한다.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서구와 이슬람세계는 지난 1500년 동안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대부분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현재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와 서구는 서로 따로 존재하는 두 개의 우주” 같았고, “17세기 후반에야 두 내러티브가 교차하기 시작”했지만, “양쪽은 각자 별개의 방에서 제각각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독특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판단에 충실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저자는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파헤치기보다는 무슬림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형극과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니 일면 무척이나 교활한 책략가로 보이는 살라딘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통치자로 등장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기이니 읽기가 수월하다. 서문에서 색인까지 600쪽이 넘는 비교적 두툼한 책이지만 일단 읽어가기 시작하면 언제 이 책을 다 읽었는지 의아해질 정도로 쉬이 읽혀진 데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읽어온 세계사 책에서 ‘생략된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으로 그동안 독자들이 엮어 놓은 세계사 날줄에 여러 가닥의 씨줄이 잘 먹어들어 가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슬람 세계의 중세와 근대역사를 다루고 있으나 이야기는 중세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방점은 근대역사에 찍는다. 그러니 ‘지금’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이 있다면 우선 이슬람 세계의 근대 개혁운동을 다루는 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읽어도 괜찮을 것이다. 무함마드 압두, 자말루딘 알아프가니, 하산 알반나, 사이드 쿠틉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이슬람 세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추천사를 보니 이 책이 ‘이슬람공포증을 치료하는 해독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개신교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교세를 가진, 그야말로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종교가 이슬람인데 공포증을 갖는다면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공포증을 해독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진단시약 정도는 가지게 된 셈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슬람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세대 간에 서로 주고받는 ‘역사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재미가 자못 크다.안정국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