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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당시 경제학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수상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기존 경제학에 심리학의 통찰력을 결합했으며 실험을 통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경제학을 새롭게 정립했다. 그는 경제학과 심리학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고 혁신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경제학은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가정 아래 인간의 경제 행위를 분석하는 학문, 즉 비실험과학으로 존재해왔다. 경제학은 실험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데이터와 수식, 그리고 통계로 현상을 분석한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카너먼 교수는 다양한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미래가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경제학 이론이 실제와는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택시 손님이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미터기 요금이 100원 올라갔는데 기사가 100원을 깎아주면 속으로 기뻐하겠지만 100만 원짜리 모피코트를 살 때 점원이 100원을 깎아주겠다고 하면 오히려 불쾌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 관점에서는 똑같은 100원인데 말이다. 이 책은 손실회피의 예도 든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앞면이 나오면 150달러를 받고 뒷면이 나오면 100달러를 잃는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자고 하면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이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대수익이 0을 넘으므로 참여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달러를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압도되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나오게 된다. 이를 통해 손실회피란 개인과 조직에 변화가 최소화하기를 희망하는 경제 주체들의 행태라고 저자는 설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빠르게 생각하는 자아를 ‘시스템 1’, 느리게 생각하는 자아를 ‘시스템 2’로 명명하고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1이 범하는 오류와 편향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수합병 뉴스가 나오면 인수에 나선 기업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대개 기업인들은 자신이 다른 기업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데 인수합병 기업의 주가 약세는 그들의 생각만큼 그 기업이나 경영자들이 유능하지 못하다는 ‘교만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 1의 오류, 편향, 그리고 착각을 어떻게 해결하고 줄일 수 있을까. 저자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직관적 사고, 과신, 극단적 판단, 오류 등에 빠지기 쉽다고 자기고백 식으로 말하고 있다. 현재까지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부문 연구자들이 진행했던 연구 성과들이 이 책에는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이론, 세인 프레더릭의 의사결정이론, 월터 미셸 스탠퍼드대 교수의 심리학 역사상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 등 다양한 인간행동 관련 연구 성과와 주제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유익함을 줄 것이다. 최근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 대한 대중교양서의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책이 출간됐다. 한국 출판계에 행동경제학의 붐을 일으킨 이가 이 책을 내놓은 카너먼 교수일 것이다. 가장 인기 있는 가수가 마지막에 등장하듯 그도 지금에야 대중교양서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경제 주체 안에 있는 전혀 다른 두 자아를 잘 분석해낸 ‘생각에 관한 생각’이 그의 학문적 깊이와 지향점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길 기대한다.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자기계발과 경제경영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가 인류 최고의 고전을 읽어 나가는 평생 프로젝트를 펼친다. 현대 기업 국가 가정 개인의 시각으로 고전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자기계발적 관점에서 철학 문학 역사서 등의 맥을 잡아가는 ‘지혜의 브리지’를 시도한다. 처음 나온 두 권 중 첫 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최고의 인생을 묻다’에서는 두 철학자의 문답법과 논박의 지적산파술에서 나오는 육체와 영혼, 성공과 부, 인간관계의 본질, 권력의 양면성, 사랑과 결혼 등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담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각국의 화폐를 잘 살펴보세요. 위인들의 얼굴뿐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 건축물, 그림, 민속춤까지 무궁무진한 문화적 기호가 숨어 있답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김시영 씨(41)와 고교생 아들 상언 군(17)이 세계 각국의 화폐 이야기를 담은 ‘화폐 속 역사 팝’(좋은땅)을 펴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해 혼자 노는 데 익숙했던 상언 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락방에서 우연히 아빠의 우표책을 발견했다. 낡은 우표책 속에 끼워져 있던 빛바랜 500원짜리 지폐가 눈에 확 들어왔다. 거북선, 이순신이 그려져 있는 옛날 지폐가 신기해 뚫어져라 쳐다보며 문양을 살피고, 좁쌀보다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확대해 보았다. “우표는 너무 작잖아요. 지폐는 크고 화려해 눈길이 갔어요. 당시 위인전집을 읽던 중이라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제일 컸어요.”(김상언) 아빠와 함께 화폐전시회와 화폐박물관을 둘러보기 시작한 김 군은 급기야 인근 외환은행에 들러 환전을 하며 외국지폐 수집에 나섰다. 집안일이나 심부름을 한 대가로 1만∼2만 원 용돈이 생기면 소액환전으로 달러, 위안화, 엔화 등을 모았다. 6개월 치 용돈을 모아 아빠와 함께 대구, 서울의 화폐상을 찾아가 유로화 이전의 유럽 국가들의 옛 화폐를 사기도 했다. 두 사람이 모은 세계 화폐는 앨범 7개에 빼곡히 담겼다. 김 씨는 아들에게 미국에서 발행된 ‘세계화폐도감’(World Paper Money)을 사주었다. 세계 각국의 화폐에 나와 있는 인물과 문화유산에 대해 길게 해설을 붙인 책이다. 김 군은 영어사전을 뒤져가며 화폐도감을 읽었고, 백과사전, 인터넷을 통해 공부한 후엔 꼭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1만 원권의 앞면을 한번 볼까요. 세종대왕 얼굴뿐 아니라 일월오봉도 그림, ‘불휘기픈남ㅱㅱㅱ매아니뮐새…’라는 용비어천가 내용이 있습니다. 뒷면에는 조선시대 별자리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지요. 조선시대 별자리를 관측했던 ‘혼천의’와 현재 보현산 천문대에 있는, 국내에서 가장 큰 현대식 광학망원경 그림도 그려져 있답니다.”(김시영) 김 군에게 화폐 수집은 역사뿐 아니라 경제를 이해하는 계기도 됐다. 수없이 은행을 다니며 환율변화에 민감해지다 보니 국제적인 경기 흐름과 증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리먼브러더스 사태, 아일랜드 화산 폭발, 동일본 대지진이 환율이나 증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는 질문을 해대는 아들에게 김 씨는 “증권사 직원에게 물어보라”고 권했다. 김 군은 여러 증권사를 찾아가 경제에 관해 묻고 들은 내용을 노트에 기록했다. 김 군은 2010년 아파트 경제장터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화폐 전시회를 열고 화폐 속 인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아버지 김 씨는 “요즘 아이들이 꾸준히 길게 뭔가를 해서 성취하려는 노력이 부족한데, 외국에서도 화폐 수집은 대를 이어서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로 꼽힌다”며 “아들과 함께 화폐를 수집하며 나눴던 대화의 시간들이 무척 소중한 추억”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요즘 TV의 토크쇼를 보면 인기 절정의 10대 아이돌 그룹 가수들도 연습생 시절 ‘눈물 젖은 라면’을 먹던 이야기를 한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모두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했음을 강조한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앞다퉈 펴낸다. “왜들 이러는 걸까요?” 개그맨 황현희의 말투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여기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대중은 힘센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국가대표’나 ‘쿨러닝’에서 보듯 대중들은 보잘것없는 주인공들에게는 열광하지만, 다윗과 싸운 거인 골리앗은 수세기가 지나도록 악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 최근 출간된 마이클 프렐의 ‘언더도그마(지식갤러리)’다. ‘언더도그(underdog)’란 싸움에서 지고 꼬리를 내린 개처럼 객관적인 열세를 보이는 약자다. ‘언더도그마’는 약자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선하고 고결하며, 강자는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사악하다고 믿는 현상을 말한다. 2005년 11월 이라크전쟁 당시 크리스천 피스메이커팀이라는 기독교 평화운동단체가 이라크에서 반전시위를 하던 중 이라크군에 인질로 잡혀 한 명이 총살을 당했다. 나머지 인질들은 수개월 후 공교롭게도 자신들이 비판했던 다국적군에게 구출됐는데, 석방 후에도 이들은 강자인 다국적군에게 모든 책임이 있으며, 약자인 이라크군은 선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국내에서 인권을 외쳐온 단체들이 북한 3대 세습체제에는 침묵을 지키고, 중국의 탈북자 북송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성명 하나 내지 않는 심리의 근저에는 언더도그마가 깔려 있다. 지구 최강국인 미국에 대한 반감이 북한, 리비아와 같은 독재국가나 테러리스트까지 무조건 옹호하는 아이러니를 빚어내곤 한다. 언더도그마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중은 무명의 언더도그 참가자들이 거대 음반사와 계약을 맺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한 수전 보일은 ‘우승을 하지 못한’ 덕분에 데뷔 앨범이 300만 장이나 팔렸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수년째 가을에 야구를 못한 롯데 자이언츠는 열광적인 팬을 몰고 다니는 반면, 만년 강자로 보이는 삼성 라이온즈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 언더도그마는 실패한 자는 칭찬하고, 성공한 자는 처벌하는 대중의 심리다.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언더도그마 전략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고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TV에 나와 풀빵장사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욕쟁이 할머니의 장터국밥을 먹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자신이 ‘거대야당과 언론권력’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라고 호소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부산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가 속한 민주통합당이 언더도그였는데, 새누리당은 더 약해 보이는 27세 정치신인 손수조로 맞불을 놓아 ‘언더도그’ 경쟁을 벌인다. 진보정당이 거대여당에 대한 심판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스캔들에는 ‘무오류’를 주장하는 것도 언더도그마로 해석된다. 대중이 약자에게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다. 그러나 이것이 말 그대로 ‘도그마(dogma)’로 변질될 때는 위험하다. ‘언더도그마’는 분별 있는 이념도, 도덕도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대중들의 변덕스러운 심리일 뿐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우리는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한 4차원 시공간(時空間)에서 살고 있다. 공간과 시간이 분리되지 않으므로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것은 공간을 통해서다. 거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거리와 거리의 다른 방향들이 우리에게 살펴지면서 장면과 장면의 시간적 순서를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조선집을 구성하는 가구식 구조(架構式構造·목재로 기둥과 보를 조립해 만드는 구조)는 지형과 지세를 이용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장면과 장면의 시간의 순차를 통해 공간을 느끼게 하는 데 더없이 탁월한 구조다. 안동의 와룡면 중가구리에 있는 영남 남씨 문중의 남흥재사(南興齋舍)는 이러한 가구식 구조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남흥재사가 있는 남흥마을은 순흥 안씨 집성촌인 가느실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남흥재사를 충분히 느끼려면 적어도 이 가느실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좋다. 이 좁고 긴 가느실 마을의 지형을 따라가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남흥마을이 나온다. 잘못하면 사람 그림자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올 수도 있는 이 동네의 제일 높은 곳에 남흥재사가 있다. 이제부터는 경사가 좀 가파른 길을 따라간다. 남흥재사의 2층 누각인 원모루 처마가 가까워 올수록 고조되는 음계처럼 펼쳐져 있는 재사의 지붕들이 일정한 화음을 갖고 변주된다. 원모루의 판벽에 낸 두꺼운 영쌍창(靈雙窓)들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처마의 그림자로 무겁고, 음울하다. 반면에 재사 1층의 흙벽들은 눈부시다. 약간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재사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거기서 이제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가느실의 좁은 길과 마을을 둘러싼 산들까지 남흥재사의 안뜰은 그것을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경사지에서 각각의 채를 받치고 있는 기단들은 마치 각각의 마당을 구성하여 가운데 안뜰로 흐르는 듯하고, 지붕들은 지붕들대로 산맥이 달리듯이 서쪽 채에서부터 대청으로, 종손방을 돌아 2층 누각인 원모루에서 크게 일어서고 있다. 원모루에 앉아 비로소 숨을 내쉬면 다시 안뜰 위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지세를 따라 주초에 다리를 내리고 있는 가구식 구조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와 같이 걷는 집. 나는 혼자 걷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시인·건축가}

경영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먼의 수석 부사장인 저자는 시간 단위 렌트 개념을 도입한 집카(ZipCar), 스타벅스를 집 안으로 옮겨다준 네슬레의 네스프레소 등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해낸 기업들의 여섯 가지 비결을 밝혀낸다. 그에 따르면 불황이란 반드시 모든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황이라는 독특한 환경요인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변화를 관찰하고, 매력적인 제품과 배경 스토리를 갖춘 제품을 만들어 내면 ‘수요(demand)의 방아쇠’가 당겨진다는 설명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000만 명이 사는 도시 런던은 단지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끄는 도시다. 평범한 시내버스 안에서도 10개 언어를 들어볼 수 있다는 도시.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런던을 가리켜 ‘후대에 물려줄 특별한 기자와 같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후 기자이자 소설가인 존 란체스터는 ‘Capital’이란 제목으로 이 특별한 도시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를 써냈다. 가상의 인물들로 구성한 소설이지만, 란체스터는 논픽션에 비유될 만큼 생동감 있는 묘사로 런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남런던의 한 작은 거리인 페피스 로드. 19세기 후반 이곳의 주민들은 주로 서민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시작되는 2007년 12월경 이곳 부동산 가격은 높이 뛰어 있었고, 주택 소유주들도 모두 부자가 됐다. 2008년 말 유럽을 강타한 경제위기 이전에는 런던의 집값이 매년 꾸준히 오르기만 했기 때문이다. “페피스 로드에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첨확률 100%인 카지노에 있는 것과 같았다”라는 소설 속 문장은 런던에서 10년 이상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다문화 다인종의 상징인 런던을 잘 반영하듯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페피스 로드의 주민들과 이곳에서 목수로 일하는 폴란드인 남자, 보모로 일하는 헝가리인 여자, 유명한 세네갈인 축구 선수, 정치 망명자인 짐바브웨 출신 여자 등이다. 소설이 진행되며 독자들은 그들이 한때 꿈꿨던 장밋빛 인생이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페피스 로드에 예전부터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부자가 된 집 주인들과 매일같이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타국에서 설움을 겪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던 중 2008년 11월 영국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경제위기가 닥치고, 경제위기 속에 이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뒤흔들리게 되는데…. 가디언지와 텔레그래프지가 ‘논픽션을 읽듯 생생한 묘사’라고 칭찬했듯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실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동유럽이 유럽연합에 속하면서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꿈과 돈을 좇아 런던으로 왔다. 본국에서 교사, 회계사, 회사원 등의 견실한 직업을 갖고 있던 이들은 런던에서는 택배 배달부, 청소부, 가정부 등의 일을 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많은 폴란드인들이 런던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것은 영국 언론들이 비중 있게 다룬 큰 화제였다. 작가는 다양한 인종들을 품고 있는 이 멜팅 폿(melting pot·용광로)이 2008년 11월을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그려나간다. 머나먼 나라 영국 수도의 이야기지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수도, 서울을 가진 한국인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올 이야기이지 않을까.런던=안주현 통신원}

미국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동성애자들’이란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반미,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에서는 동성애자를 범법자로 간주해 잔인하게 학대하고 광장에서 처형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동성애자 축제 퍼레이드가 열리는 유일한 나라다. 이슬람계 레즈비언 작가 어샤드 만지는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위해 자신들의 정체성마저 철저히 내팽개쳤다”고 말한다. 왜 인권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들을 옹호할까.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 건물을 공격하거나, 동성애자의 몸을 생매장해 얼굴에 돌을 던져 죽여도, 선량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아동을 자살폭탄 공격에 이용해도 관계없다. ‘강한 자’(미국)에게 맞서 싸우는 ‘약한 자’로서의 유대감 때문이다. 미국 보수단체 티파티 패트리어츠의 전략가인 저자는 ‘가진 자’(overdog)와 ‘못 가진 자’(underdog) 사이의 ‘힘의 축’이 어떻게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의 개념을 대체해 이 시대의 쟁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는지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언더도그마(underdogma)’란 약자는 도덕적 우위에 있고, 강자는 경멸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뜻한다. 언더도그마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도 나온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힘없는 다윗을 영웅으로, 힘센 골리앗은 악으로 생각해 왔다. 1923년부터 2009년까지 월드시리즈에서 27회나 우승한 뉴욕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린다. 심지어 세계자연보호기금 전 총재인 필립 공은 “다시 태어난다면 세계의 인구밀도를 낮추기 위해 인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인간의 수를 줄여야 인간보다 힘이 약한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대해서도 주택 소유가 미국 시민들의 권리라는 환상을 심어준 정치적 언더도그마가 개입했다고 분석했다. 처음엔 언더도그로 인기를 얻다가, 힘센 오버도그로 변하는 순간 대중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수많은 추종자가 따르던 애플은 2010년 5월 ‘시장자본 총액에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추월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공격의 대상이 됐다. 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한 수전 보일은 우승을 못했기 때문에 첫 앨범이 300만 장이나 팔릴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저자는 “현대의 정치인과 기업은 대중의 눈을 속여 ‘언더도그’가 되기 위해 갖은 연극을 해댄다”고 분석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세기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면서 현재에 대한 과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며, 따라서 현재는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부상이 구체화되면서 현재 중국의 모습을 역사 속에서 조명해 보면서 중국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려는 작업들이 시도되고 있다. 특히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중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시각에서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 책은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대중관(對中觀)을 모색해 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통한 근대화 과정, 그리고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였던 후야오방, 자오쯔양, 장쩌민, 그리고 후진타오와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현대중국역사에서 나타나는 중국 발전의 명과 암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문화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해서파관(海瑞罷官·명나라의 강직한 관리 ‘해서’의 파직을 소재로 한 역사극)’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우한, 팽더화이, 류사오치와 그의 부인 왕광메이에 이르기까지 마오쩌둥 시대의 정치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인물들을 꼼꼼하게 검토해보고 있다. 마오쩌둥 시대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 덩샤오핑 시대의 개혁·개방과 나아가서는 중국 강대국화의 성공에 필수적인 환경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현대적 해석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은 철저한 현장주의에 기반을 두고 완성되었다. 저자는 해서의 고향이자 그의 묘가 위치해 있는 하이난 섬의 하이커우 시를 직접 찾아 해서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시도했으며, 왕광메이가 홍위병과 대결하였던 베이징 칭화대에서는 당시의 모습을 그려가며 참담한 상황에 처한 왕광메이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다년간에 걸쳐 수집했던 엄청난 양의 자료에 대한 분석의 결과로 출판되었다. 저자는 1970년대 말 동아일보 도쿄지사장으로 근무할 때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읽으며 시각을 정립해왔다. 이러한 현대 중국 역사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즉, 저자는 현대사적 시각에서 오늘날 중국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명쾌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 지배체제의 정당성 문제, 고도성장의 지속가능성 여부,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및 차별의 문제,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경향, 그리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입장 등 중국 사회 내에서 민감성과 불확실성이 내재된 문제들을 일관된 시각으로 정리하고 있다.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북 상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령 밑에 큰 도회지로 산세가 웅장하고 들이 넓다. 북쪽은 조령과 가까워서 충청도 경기도와 통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에 임해서 김해·동래와 통한다. 육로로 운반하는 말과 짐을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과 육로로 모여드는데, 이것은 교역하기가 편리한 까닭이다.” 그래서 상주는 예부터 번성한 도시였다. 물류의 집합지였고 정보의 교환처였다. 그러나 살기에 그렇게 녹록한 곳은 아니다. 여름은 덥고 비도 많이 오고, 낙동강의 범람도 있다. 반면에 겨울은 눈도 많고 심하게 춥다.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것이 꼭 살기에 좋은 법은 아니다. 그래서 상주와 안동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전혀 다른 건축을 보여준다. 상주지역의 건축적 특색은 겨울을 견디기 위한 북방식 평면과 여름을 나기 위한 남방식 구조가 섞여 있다. 상주의 양진당(養眞堂)이 그 대표적인 집이다. 양진당은 검간 조정(黔澗 趙靖·1555∼1636)이 1626년 처가인 안동의 천전동에 있던 가옥을 해체해 낙동강에 뗏목을 띄워 상주 승곡리에 옮겨 지은 집이다. 남녀 차별 없이 상속이 똑같이 나누어지던 시대에 하필 집을 뜯어 왔다는 게 좀 의아하지만 어쨌든 조정은 처가의 집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러나 그 집이 상주에 안착할 때는 상주의 자연조건에 따라 많은 변형이 이뤄졌다. 양진당의 안채는 방들이 ‘田’자 형태의 겹집이다. 겹집이란 방-마루-방으로 이어지는 홑집과 달리 ‘밭전’ 자의 네모 칸이 모두 방으로 이어져 있는 집을 말한다. 이는 한겨울의 추위에 견디기 위한 형태로 주로 강원도 이북의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런데 입면구조를 보면 조선집에서는 드물게 양진당은 기단이 사람 키 이상으로 올라와 있다. 이는 분명 더위와 습기를 피하기 위한 남방식 주거의 형태다. 더구나 안채 좌측의 날개채는 이층으로 일층은 부엌과 헛간이 있고 이층에는 방과 긴 마루가 있다. 상주지역은 한겨울의 추위도 추위지만 한여름의 더위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태양열로 뜨거워진 땅의 열기를 피해 입면구조가 고상식 주거로 정착된 것이다. 그 결과 양진당을 비롯한 상주의 고상식 겹집형 주거들은 한여름의 더위와 낙동강의 범람, 한겨울의 추위와 눈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시인·건축가}

수박씨닷컴 아이셀파 하이퍼센트 이투스 엠베스트 엠쥬니어 IB96…. 언뜻 봐서는 무엇을 나열한 것인지 알기 힘들다. 중고교생 자녀에게 물어보면 금방 대답할 것이다. 인터넷 강의 사이트들이다. 학생들은 줄여서 ‘인강’이라 부른다. 인강은 학원을 오가는 시간, 수업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준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 휴대용 정보기술(IT)기기를 활용할 경우 자투리 시간에 아무데서나 시청이 가능하다. 요즘은 사법시험, 공무원시험, 컴퓨터자격시험, 토익 준비생들을 위한 인강도 꽤 활성화돼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EBS 강의와 연계돼 출제되면서 ‘EBS 수능 인강’이 특히 인기다. 무료이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데다 실력 있는 인기 교사 및 강사가 대거 출연해 “EBS 수능 인강만 제대로 들으면 꼭 학원 다닐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교육과학기술부는 EBS 인강을 통해 사교육비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농어촌 지역이나 오지의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기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기주도적 학습’ 방식인 인강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 어린 학생이 스스로 강의를 선택해 꾸준히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니터에서 툭하면 팝업 창이 뜰 경우 집중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야 인강을 들을 수 있으므로 게임의 유혹도 따른다. 수강 장소를 일정한 곳으로 정하고 자신만의 계획표를 준비해 체계적으로 수강해야 도움이 된다. 강의 중 메신저나 웹서핑은 절대 금물이다. 휴대용 IT기기를 이용하는 것은 자기통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나 적합한 수강 방식이다. ▷EBS가 중학생을 대상으로는 유료 인강을 하고 있다. 가격도 사교육업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EBS 관계자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가 있어 중학생 과정을 개설했다. 고교생의 수능 관련 강의는 정부 지원을 받지만 초·중학교 과정은 지원이 없어 자체 수익이 있어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EBS는 공영방송이다. KBS가 받는 수신료에서 일정 부분을 지원받고 있다. 중학교 인강도 공영방송답게 무료로 제공해야 옳다. EBS는 수능 교재를 팔아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 교과부도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 주려면 인강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1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테살로니키의 국립극장은 5일부터 관람객들에게 티켓 대신 밀가루, 국수, 쌀 한 포대씩으로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재정위기 이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실업자도 문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극장 측은 티켓 대신 받은 식료품을 고아, 싱글맘 등을 돕는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2 올해 1월 초 아테네 피나코테크 미술관은 파블로 피카소의 ‘여인의 머리’(약 550만 유로·약 80억 원)를 비롯해 몬드리안의 작품, 17세기 이탈리아 그림 등 작품 3점을 도난당했다. 2월에는 고대 올림픽 경기의 발상지인 올림피아 박물관에 총을 든 두 명의 강도가 침입해 청동조각상 63점과 항아리 등 전시유물을 훔쳐갔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문화가 위험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2년간 긴축정책으로 문화예산을 대폭 줄인 데다 길거리 민심도 흉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인 지시스 파라스 씨는 “길가에 아이들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깨진 항아리 조각에 관심을 쏟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2009년 경제위기가 시작된 이후 문화 분야 예산을 35%나 줄였고, 2000명이 넘는 공무원을 해고했다. 올해 문화유적 보호예산은 2010년 대비 50%나 줄었다. 다음 달에는 인력 40%를 추가로 감축할 예정이다. 문화예산이 줄어든 데 따라 정부 예술단체 소속 예술가들은 대폭 삭감된 임금조차도 8개월∼1년짜리 어음으로 받고 있다. 그리스 극장연합회 측은 “일부 극장에서 현물로 표를 받는다는데, 앞으로 배우들도 유로로 월급을 받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리스 북부지역 파블로스 크리스토무 유적지에선 정부 발굴이 중단된 이후 도굴꾼들이 파낸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10개나 발견됐다. 이 때문에 발굴이 중단된 유적을 다시 덮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가 12일 총 3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인문서로는 국내 초유의 기록이다. 1993년 출간된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를 시작으로, 북한 문화유산을 다룬 4∼5권, 지난해 발간된 제6권까지 20년 세월에도 이 시리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15일 서울 경복궁 옆 전통레스토랑 ‘두가헌’에서 그를 만나 소감을 물었다. 그는 “인문서의 대중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첫 권이 출간됐을 때 교보문고 도서 분류에 ‘인문’ 파트가 없었어요. 그냥 도서관처럼 소설, 비소설, 역사, 종교, 문학 등으로 돼 있었죠. 어떤 교수는 서평에서 ‘유홍준 답사기의 가장 큰 의의는 베스트셀러의 수준을 높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베스트셀러 하면 싸구려 문화의 상징처럼 돼 있었는데, 좋은 책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것이죠.”―인세 수입도 상당하지요.“지금은 창비에 신경숙, 공지영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지만 당시 제 책과 동의보감이 밀리언셀러로 처음이었어요. 창비는 두 책으로 30년 적자를 면하고 건물도 샀죠. 인세 수입은 집사람이 부동산도 펀드 투자도 안 하고 모두 정기예금에 넣어놨어요. 저는 문화재청장으로 재산 공개할 때 정확한 액수를 알게 됐어요. 모두 17억 원이었는데, 덕분에 공직자 중 현금보유액 순위 2등을 했습니다.”유 교수는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 꼽았다.“대학 때 읽었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제 전공을 미학에서 미술사로 바꾸게 한 결정적인 책입니다. ‘서양미술사’는 대중적인 눈으로 미를 보는 방법을 깊이 있게 가르쳐 주었지요. 우리나라에도 곰브리치가 쓴 것처럼 제대로 된 ‘한국미술사’가 있으면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크게 달라질 겁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은 우리말이 갖고 있는 조선인의 정서가 뭔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책입니다.”―기행문학도 많이 읽으셨나요.“답사기를 쓰기 전에 읽어본 적은 없어요. 육당 최남선이 1925년 남도를 답사하고 쓴 ‘심춘순례(尋春巡禮)’도 제 답사기가 나온 후에 읽어봤어요. 그 책을 읽었더라면 ‘남도답사 일번지’를 못 썼을 겁니다. 육당이 이야기한 이미지에 씌어서 내 글을 못 썼을 거예요. 19세기 스위스 미술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쓴 ‘치체로네’라는 책은 부제가 ‘로마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예요. 저도 언젠가 ‘경주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답사기 1∼3권에는 경주가 다 들어갔어요. 경주가 갖고 있는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이 그렇게 강하니까요.”―책에 나오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너무도 유명해졌는데요. 과도한 사전지식은 고정관념을 낳지는 않을까요.“고(故) 박완서 선생이 추천사에서 ‘나는 한때 유홍준의 신도였다. 유홍준이 보라는 대로 보고, 유홍준이 아름답다는 대로 아름다움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유홍준의 신도가 아니다. 이제는 내 시각대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유홍준이 시키는 대로 해봤기 때문에 내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라고 쓰신 적이 있어요. 그게 핵심 아닐까요. 교육과 훈련은 처음엔 모방에서 나오는 겁니다. 사전지식이 더 깊이 보게 하고, 보고 난 후에는 나만의 시각과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나게 합니다.”창비는 27일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300만 권 기념 북콘서트를 연다. 유 교수는 6월경 제주도 편을 다룬 ‘답사기’ 7권을 출간할 계획이다. “앞으로 중국 만주에 있는 고구려 문화, 일본 교토 나라 오사카에 있는 한국 문화를 다룬 책도 펴내고 싶어요. 올해 예순세 살인데 답사기를 졸업하려면 칠순이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상파 화가의 거장 클로드 모네는 대단한 미식가였다.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할 때에도 재료의 품종부터 신선함과 맛까지 세밀하게 따졌다. 지베르니로 이사 갔을 때 모네 일가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정원을 가꾸고 채소밭을 가꾸는 것이었다.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정원은 사실 모네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는 채소밭이요, 닭과 오리를 키우는 마당이기도 했다. 미술사가인 저자가 ‘그림같은’ 식탁 이야기를 통해 모네의 삶을 들여다본다. 책 후반에는 모네의 ‘요리수첩’도 실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 해의 시작은 봄에 있고, 인생의 봄은 청춘이다. 봄의 문턱에서 중국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청춘에 관한 책들을 모아 봤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活着已値得慶祝)’는 양팔이 없는 피아니스트의 감동적인 자서전이다. 저자 류웨이(劉偉·25)는 10세 때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하지만 중국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땄으며, 발가락 타자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다. 19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1년 만에 리처드 클레이더먼의 ‘꿈속의 웨딩’을 발가락으로 연주했다. 2010년 8월 중국판 ‘코리아 갓 탤런트’ 프로그램인 둥팡(東方)위성TV ‘중국다런슈(中國達人秀)’에서 이 곡을 연주해 일약 스타가 됐다. 류웨이는 이 책에 중증장애인인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로도 제작돼 올해 개봉될 예정이다. “이 책을 읽은 뒤 생활은 영원히 희망과 역량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살아있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서평이 나왔다. 중국의 20, 30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신세대 작가 한한(韓寒·30)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출간한 수필집 ‘청춘(靑春)’에서 냉소적인 화법으로 성장을 이야기한다. “‘이상’이라는 것은 꾸며진 가상일 뿐 우리의 현실에서 꿈꿀 수 있는 공간이란 없다”, “어렸을 때 해보지 못하면 평생 갈증을 느낀다. 아이가 물건 부수기를 좋아하면 부수게 놔두라. 크면 다시는 부수지 않을 테니….”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5개월 연속 관련 분야 1∼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지독한 세상이니 마음이 강해야 한다(世界如此險惡니要內心强大)’는 책 이름부터 심상찮다. 지난해 7월 출시돼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매달 판매량 1위를 독차지하다시피 해왔으며 올해 들어서도 한한의 ‘청춘’과 1, 2위를 다툰다. 저자 스융(石勇·37)은 삶의 태도에 따라 인간형을 ‘콤플렉스형’ ‘독점형’ ‘공격형’ ‘자화자찬형’ ‘적극적 표현형’ 등으로 분류한 뒤 이들이 살아가는 심리 상태를 해부하듯 조목조목 분석했다. 무엇이 우리를 비겁하고 소심하게 만드는지, 어떻게 자신감을 찾아야 하는지 등등을 자가 진단한 뒤 처방을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나이가 든 사람이라고 모두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만 먹었을 뿐 인격이나 심리 상태는 아직도 유년 시절에서 멈춘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그는 책 영화 음악 리뷰 사이트인 ‘더우반닷컴(豆瓣·www.douban.com)’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다양한 사회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많이 쓰고 있다.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설중매(雪中梅). 추운 겨울 흰 눈 속에서 피어난 탐스러운 매화를 조선 선비들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다. 사나운 바람도, 거센 눈보라도 그 뜻을 꺾을 수 없는 절개와 고매한 풍격을 상징하는 군자의 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중국의 남방에서도 음력 2월이 돼야 매화꽃이 피는데, 조선에서는 일부 해안지역을 제외하고 한겨울에 피는 조매(早梅)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 선비들은 집 안에 매합(梅閤) 매각(梅閣) 매옥(梅屋)이라 부르는 매화 화분용 공간까지 만들어 한겨울에 매화꽃을 피워 구경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꽃봉오리가 가지에 붙으면 따뜻한 방에 들여놓고 더운물을 가지와 뿌리에 뿜어준다. 화로에 숯을 달구어 그 곁에 두어 한기를 쐬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 동지 전에 활짝 꽃이 피어 맑은 향이 방에 가득해진다. 화분의 매화는 꽃이 진 후에는 한기를 쐬지 않도록 다시 움집 안으로 들여놓아야 한다.” 조선 초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강희안(1418∼1465)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이처럼 화분에 심은 꽃과 나무를 보며 마음을 수양했던 선비들의 원예문화가 담겨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낸 ‘규장각 새로 읽는 고전총서’ 시리즈의 첫 권이다. ‘양화소록’ 원전뿐 아니라 고려 조선 중국의 문헌을 두루 살피면서 한국 분재 문화의 변천사를 풍부하게 풀어냈다. 현대인들이 도심 아파트에서 꽃을 기르고, 주말농장에서 텃밭을 가꾸듯 조선의 선비들은 벼슬에 매여 도성 안에 살 때도 뜰에 못을 파 연꽃을 길렀다. 몇 그루 운치 있는 나무를 심은 후 기암괴석을 갖다 놓고 즐기기도 했다. 선비들이 화분에 꽃을 키우는 뜻은 누워서도 아름다운 산수 자연을 상상으로 즐길 수 있는 ‘와유(臥遊)’에 있었다. 책에는 노송, 만년송, 오반죽, 국화, 매화, 난초, 서향화, 연꽃, 석류꽃, 치자꽃, 자미화, 귤나무, 석창포 등 16종의 식물에 괴석을 붙여 총 17종의 정원을 꾸미는 내용이 나온다.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노송을 분재로 키우는 법, 괴석에 이끼가 끼게 하는 법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음력 5월 13일은 대나무를 옮겨심기에 가장 알맞은 날이다. 대나무는 절조가 강해서 무척 까다롭지만 이날만은 술에 취한 듯 정신이 몽롱해지며 나른해지기 때문에 옮겨 심어도 잘 살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5월 13일을 대나무가 술에 취한 날 죽취일(竹醉日) 혹은 대나무가 정신이 흐릿해지는 날 죽미일(竹迷日)이라고 한다.” 조선 선비들에게 꽃을 키우는 일은 마음을 닦고 덕을 기르는 방편이었다. 선비들은 난초, 국화, 대나무, 석류 등을 기르며 세상을 경계하는 시문을 남겼다. 조선 중기의 학자 홍유손은 “국화가 온갖 화훼 위에 홀로 우뚝 선 것은 빠르게 피어나지 않고,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늦가을에 피기 때문”이라며 너무 이른 성취를 경계하는 마음을 깃들였다. 화분의 꽃을 선비들은 눈으로, 코로 즐겼다. 가장 운치 있는 방법은 촛불을 이용해 꽃과 잎의 그림자를 완상하는 것이다. 강희안은 난초 꽃이 피면 촛불에 비춰보며 “마치 한 폭의 묵란(墨蘭)이 벽에 그려진 듯하다”고 탄복했다.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 ‘국화 그림자놀이’를 하는 시주(詩酒) 장면을 남기기도 했다. “국화의 위치를 바로잡은 뒤 벽에서 약간 거리를 두게 하고 적당한 곳에 촛불을 두어 밝히게 했다. 그제야 기이한 문양과 특이한 형태가 갑자기 벽에 가득했다. 제일 가까이 있는 것은 꽃과 잎이 서로 교차하고 가지가 빽빽하고 정연해 마치 수묵화를 펼쳐놓은 것과 같았다. 그 다음 가까운 것은 너울너울 춤을 추듯이 하늘거려서 마치 달이 동쪽 고개에서 떠오를 때 뜰의 나뭇가지가 서쪽 담장에 걸리는 것과 같았다. 모두들 박수치고 소리를 다 지르고 나자 술을 내오게 하여 시를 짓고 즐겼다.” 책 곳곳에 옛 화가들이 그린 아름다운 꽃과 나무, 괴석이 있는 분재 그림이 시각적 효과를 더한다. 그러나 대부분 중국의 그림이고 조선 화가들의 그림은 적어 아쉽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공연장의 생생한 소리를 자기 방 안에 재현하는 것. 오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궁극의 로망’이다.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스피커와 앰프, 턴테이블, 심지어 연결 케이블까지 바꿔가며 이상의 음향을 찾아간다. 그래서 이들은 ‘오디오를 듣는다’는 말 대신 ‘오디오를 한다’고 말한다. 수천만 원의 돈을 들인다면 빠른 길이겠지만 직접 만든 ‘자작(自作) 오디오’를 통해 자신만의 손맛이 깃든 소리를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 》○ 오디오 생활 30년 “LP의 음향은 턴테이블을 구성하는 아크릴, 알루미늄, 실, 나무 등 다양한 재료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죠. 소재를 바꾸었을 때마다 달라지는 소리의 질감은 오디오 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경기 시화공단에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김경해 씨(58)의 집 안에는 투명한 아크릴과 알루미늄으로 직접 깎아 만든 턴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높이 24cm, 무게 30kg에 이르는 투박한 모양새와 달리 LP판을 올려놓자 따뜻하고 명료한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그는 “턴테이블 음질의 생명은 진동을 없애고, 정확한 회전수를 얻는 것”이라며 “비싼 턴테이블도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직접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2004년 봄부터 6개월간 회사에 있는 선반 기계로 아크릴과 알루미늄 판을 깎고, 초정밀 베어링과 세라믹 볼을 만들어내고, 독일제 일본제 등 다양한 모터를 연결해보며 밤을 지새웠다. 특히 모터와 플래터를 연결하는 실을 찾기 위해 낚싯줄, 명주실, 치실, 카세트테이프줄까지 이용해보는 실험을 거듭했다. 그의 집에 있는 턴테이블은 3호기. 1호기 모델은 경기 고양 아람누리극장 내 클라라하우스에 비치돼 있다. 그는 “오디오 생활 30년 동안 수없이 스피커와 앰프를 바꾸느라 집사람하고도 많이 싸웠지요. 그런데 2004년 턴테이블을 직접 만들어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은 후에는 오디오 생활은 물론이고 가정에도 평화가 왔어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남 벌교의 스피커 공방 봄비가 촉촉이 내린 5일 오후. 섬진강변의 매화나무 가지마다 영롱한 물방울이 맺혔다. 전남 벌교의 명물인 꼬막정식 식당이 즐비한 길가의 한 귀퉁이에 있는 허름한 컨테이너 작업장에 들어서자 홀로 나무를 깎고 있던 오경택 씨(39)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그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수제(手製) 스피커 장인이다. 목공도구가 어지러이 널려 있는 작업장을 건너 리스닝룸에 들어서자 그가 요즘 만들고 있는 높이 2m, 무게 350kg짜리 스피커가 보였다. 미세한 가로무늬가 아름다운 이 자작나무통 스피커는 그가 두께 12mm짜리 자작나무판을 매일 한 장 한 장 1년 6개월 동안 겹쳐 붙여서 만든 것이다. 설계부터 음향튜닝까지 합치면 3년이 걸렸다. “매일 오전 8시에 나와 다음 날 오전 2, 3시까지 작업합니다. 10년 만에 만난 선배 형님이 ‘너 혼자 도 많이 닦고 있구나’라고 하시더군요.” 토목설계회사에 다녔던 그는 1999년 결혼 후 처음으로 홈시어터용 스피커를 제작했다. 당시 장흥댐 건설 현장소장을 맡고 있었는데 퇴근 후 취미삼아 만들어본 스피커가 동호회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자 용기를 얻었다. 이후 2002년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공방을 차렸다. 아버지가 벌교에서 꼬막과 바지락을 선별하던 작업장은 이제 스피커 공방으로 재탄생했다. 그의 ‘벌교 아도르 사운드’ 공방은 국내 오디오 마니아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순례지로 떠올랐다. 그는 “사람마다 원하는 모양과 소리가 다른데,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스피커를 만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벌교=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박근혜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나 사후문제 대응형이고, 문재인은 특전사 출신 인권변호사로 매력적이나 노무현의 아바타이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올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권 주자 5명의 리더십을 비교분석한 ‘어떤 리더십이 선택될 것인가?’(인뗄리겐찌야·사진)를 펴냈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이상적인 리더십을 ‘SMART+C’로 설명했다. ‘작고 부드러움, 유목과 동기부여, 성과주의와 매력, 속도와 재창조, 변혁과 초월, 소통과 애통의 리더십’을 뜻한다. SMART+C를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천막당사로 이전하는 유목형 슬림 정치와 온라인 지지율 1위의 모바일 정치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빠른 이슈 선점을 못하고 ‘박정희 향수’에 안주하는 비(非)변혁적 리더십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봉사와 섬김을 특징으로 하는 청지기 리더십의 소유자로 분석됐다. 반면 정치 지도자로서 브랜드 상품이 부족하고 문재인표 국가비전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신유목형 리더, 나눔을 실천하는 ‘착한 성공’의 리더로서 강점을 보였다. 하지만 국민의 요청에 제때 응답하지 못하는 ‘지연된 리더십’, ‘소통의 달인’이 보여주는 대중과의 불통 등은 약점으로 지적됐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재창조 리더십이 높은 평가를 받은 반면 추종자들과 열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햄릿형 리더십 등이 부족한 점으로 꼽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비전을 제시하고 서민과 소통하는 리더십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34세 회사원 이토 슈지로 씨는 대지진 후의 바뀐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외국계투자기업, 부동산컨설팅회사 등에서 일하던 그는 2011년 10월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인재파견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가장 큰 고려 요소는 급료가 아니었다. 이토 씨는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재해로 교통시설이 마비되더라도 걸어서 집으로 가 가족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쓰나미, 방사능 누출로 일본은 크게 휘청거렸다. 2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됐고 ‘나도 갑자기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단시간에 확산됐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지각만 흔들어놓은 게 아니다. 사회, 문화, 종교, 산업 등에서 일본인들의 가치관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일본 현장에 보름 동안 파견됐고, 같은 해 7월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복구 상황을 열흘간 살펴봤다. 이후 게이오대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대지진 후 일본사회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저자가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만난 센다이 출신 여성은 “가슴이 떨리고 무섭다. 가족이 너무나 보고 싶다”고 외쳤다. 위기 때 자신을 받아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었다. ‘고독사(孤獨死)’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가족 관계가 단절됐던 일본 사회는 대지진을 계기로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당시까지 일본인들의 주택구매 기준은 실용, 도심, 학군이었다. 그러나 대지진 후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2011년 4월 도쿄의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 값은 전년 대비 82.8% 급락했다. 반면 천재지변으로 전력 공급이 되지 않아도 걱정 없는 가정용 태양열 발전시스템, 내진 설계, 비축 창고를 갖춘 집이 인기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닷새 후 아키히토 일왕도 TV를 통해 5분 56초짜리 비디오 담화를 내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해 현장을 다니며 주민들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에 “종전 직후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는 일본인도 많았다. 저자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도 일본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정치 행태’라고 꼬집는다. 그는 “재난현장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를 만났지만 공무원은 거의 볼 수 없었다”며 “대지진은 정치 리더십에 대한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확인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정부 부처 공무원부터 각종 협회, 민간기업에 이르기까지 딱딱한 일상과 엄숙한 상사, 지루한 회의 등 숙연한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미없는 회의에서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고 즐거움이 없는 지겨운 혁신이 성공할 리 없다.” 창의성과 자발성을 획기적으로 끌어낼 ‘경영 한류’는 무엇인가. ‘고객만족(CS)’이란 ‘직원만족’이 선행돼야 얻을 수 있는 법. 저자는 창조란 ‘인간존중’의 밭에서만 수확할 수 있는 열매이며, 창조경영의 최고전략은 ‘즐거움(樂)’이라고 강조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