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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6·25전쟁과 관련해 “항미원조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중국 정부가 정론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시 부주석이 항미원조전쟁 참전 60주년 좌담회에서 중국 정부를 대표해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천명했다”며 “중국은 그 역사 문제에 대해 일찍이 정해진 정론이 있다”고 밝혔다.마 대변인은 이어 “우리 중화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서 평화공존의 원칙하에 관련국들과 우호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중국은 지역은 물론 나아가 세계 평화와 안정에 적극 공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앞서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7일 “시 부주석의 발언은 내게는 옳은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크롤리 차관보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돌아가서 역사책들의 먼지를 털어봐야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워싱턴을 방문 중인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도 26일 “한국전쟁은 북한의 침공에 의한 전쟁이었다”면서 6·25전쟁은 세계가 함께 북한의 침공을 막아낸 전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27일 “중국은 서구식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답습하지 않고 중국 특색의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8월 20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광둥(廣東) 성 선전(深(수,천))의 경제특구 지정 30주년을 맞아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계속돼 온 중국 내의 정치개혁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영 신화통신도 런민일보의 이 글을 이날 머리기사로 소개했다. 이에 대해 중국의 누리꾼들은 “어용학자의 글”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이날 런민일보는 정칭위안(鄭靑原)이라는 필명 기명 칼럼을 통해 “각국의 정치체제와 정치발전의 길은 그 나라 인민의 의지와 구체적 상황, 역사 문화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제하고 “개혁개방 이래 30년간 중국이 이룩한 성과는 현 사회주의 정치제도가 중국 상황에 적합하고 생명력을 지녔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어떠한 정치개혁도 중국의 사회주의를 굳게 지키는 전제 아래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럼은 “공산당 지도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정치발전관의 원칙을 견지하되 다수의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거나 삼권분립 체제를 구축하는 등 서구의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칼럼은 “최근 30년간 개혁개방 과정에서 정치체제 개혁은 멈춘 적이 없다”며 “우리는 민주적 관리와 감독, 인민의 알권리와 참여권 표현권 감독권 보장을 법에 따라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칼럼은 “정치개혁은 △현실과 떨어지지 않고 △단계를 건너뛰지 않으며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어서는 안 되며 △공허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칼럼의 필명 정칭위안은 구체적인 인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교수나 관료 중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이는 칼럼의 취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근본부터 철저히 개혁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정번칭위안(正本淸源)에서 필명을 따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런민일보는 20일에도 “서구의 다당제와 권력분립은 비효율적이고 분열적”이라며 “중국의 현 정치체제가 중국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당 기관지의 글에 대해 누리꾼들은 “개나 돼지의 잡종 같은 어용학자의 글”이라고 맹비난하며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중국 정계의) 풍향이 불안하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풍자와 조소를 쏟아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15명은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사진)의 석방을 촉구해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25일 발표했다. 26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G20 정상들에게 편지를 보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압박해 류샤오보를 석방토록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인권단체인 ‘프리덤 나우’가 공개한 서신에 따르면 “류 박사 석방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꼭 필요한 것으로 후 주석에게 강력히 그의 석방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서신은 또 류샤오보가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된 이후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부인 류샤(劉霞) 씨의 석방도 요구했다. 이번 서신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1984년 노벨 평화상 수상), 폴란드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1983년),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1989년) 등이 서명했다. 류샤오보는 2008년 ‘08헌장’ 작성에 참여해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다. 한편 류샤 씨는 류샤오보나 자신이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중국의 민주 활동가와 문화계 인사 143명에게 대신 참석해줄 것을 e메일로 요청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초대장을 받은 인사는 ‘톈안먼(天安門) 어머니회’를 조직한 딩쯔린(丁子霖), 마오쩌둥(毛澤東)의 전 비서 출신 리루이(李銳), 인권변호사 가오즈성(高智晟), 제5세대 대표 영화감독 천카이거(陳凱歌) 등으로 이미 수십 명이 참석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과 일본 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토 갈등으로 촉발된 중국 내 반일 시위가 2주째 이어지면서 내부 도시로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반일 시위와 함께 ‘일당독재 종식’과 같은 정치적 요구도 들고 나와 중국 당국도 자제를 호소하며 시위 억제에 나서고 있다. 24일 간쑤(甘肅) 성 란저우(蘭州) 시에서는 대학생 등 시위대 200여 명이 중심가에 집결해 ‘댜오위다오 반환’ ‘일본상품 불매’ ‘일본인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고 홍콩 원후이(文匯)보가 25일 보도했다. 참가자들은 일본 국기에 ‘×’ 표시를 하거나 일본 제품 불매 등이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는 일본 국기를 훼손하기도 했다. 란저우 시는 무장 경찰을 출동시켜 1시간여 만에 시위대를 해산했다. 이날 산시(陝西) 성 바오지(寶鷄)에서는 수백 명이 반일 시위와 함께 ‘일당독재 반대’ ‘집값 해결’ 등의 구호를 외치다 1시간여 만에 해산됐다. 원후이보는 24일에만 장쑤(江蘇) 성 난징(南京)과 후난(湖南) 성 창사(長沙) 등 10여 개 도시에서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23일에도 쓰촨(四川) 성 더양(德陽) 시에서 학생과 시민 등 1000여 명이 반일 시위를 벌였다. 중국 정부는 시위가 변질될 조짐을 보이자 자제를 촉구하고 관련 보도 통제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다음 달 16회 아시아경기 개최지인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아시아경기 개막 4일 전인 8일에는 중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가 열릴 예정이어서 충돌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인터넷판은 25일 ‘법에 따라 이성적으로 애국적 열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일본의 잘못에 대해 애국 열정을 표현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성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없고, 경제사회의 평온과 발전도 보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의 여파는 넓고도 깊다. 일본과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관계개선 움직임과는 별개로 중국인의 반일시위는 2주째 이어졌다. 일본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가스전 굴착작업 의혹을 밝히기 위해 지진파 검사선을 파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중국은 그동안 자국을 비판해 온 일본 외상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했다.》 중국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잡지 ‘난팡(南方)인물주간’은 최근호에서 일본의 대표적 우익인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사진) 도쿄(東京)지사를 표지 인물 기사로 소개했다. 제목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이시하라 신타로’.‘그의 이름만 들으면 중국 민중은 즉각 일본 우익, 반중국분자, 군국주의자, 민족주의자이자 선동자, 말썽꾸러기 등을 떠올린다.’ 이 잡지는 이런 도발적 내용을 시작으로 14쪽에 걸쳐 그와의 인터뷰, 그의 정치역정 등을 소개했다.이 잡지는 이시하라 지사가 “나는 중국 문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주의는 싫어한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한 중국은 일본에 위협적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내 반체제 인사 탄압 등을 지목해 “나 같은 사람은 중국에서는 오래전에 숙청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과 중국 모두 그들의 슈퍼파워를 휘두르려 한다며 “중국은 중화민족주의를 통제하지 않으면 골치를 앓을 것”이라고 충고했다.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청년보 등 다른 대륙 언론은 이시하라 지사가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해 중국이 분열되기를 바란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그들은 중국판 히틀러다’라는 말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고 전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中, 외교관례 깨고 마에하라 外相 공개비판 ▼ 강도 높게 중국을 비판해 온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사진) 일본 외상이 중국의 공적(公敵)이 되고 있다. 후정웨(胡正躍)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최근 “마에하라 외상이 매일 중국을 공격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일부 언론은 1면에 마에하라 비판 기사를 내보냈다. 고위 외교관이 상대국 외교장관을 실명으로 공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이는 마에하라 외상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과정에서 중국을 겨냥해 “지극히 히스테릭한 반응”이라고 비판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중국의 지나친 과잉반응이 폐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거나 “영유권을 1mm도 양보할 마음이 없다”는 등 강경발언으로 중국을 자극해왔다.그와 중국의 악연은 오래됐다. 민주당 대표이던 2005년엔 미국을 방문해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현실적 위협”이라며 미일동맹 강화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당시 중국은 마에하라 외상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면담을 거부했다. 지난달 그가 외상이 되자 중국 언론은 “강경파가 외상이 됐다”며 경계했다.일본 언론은 중국이 ‘마에하라 따돌리기’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일 정상회담 관련 협상창구는 마에하라 외상이 아니라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이다.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올해 4월 부임한 최병관 주중국 북한대사가 6개월 만에 전격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베이징(北京)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최 대사는 23일 중국 외교부와 일부 주중 외교사절에게 이임인사를 하고 23일 평양으로 떠났다. 후임에는 지재룡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68·사진)이 임명됐으며 25일 평양에서 열리는 중국군의 6·25전쟁 참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후 곧 부임할 것으로 알려졌다.지 부부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이 2004년 초 잠시 권력에서 밀려날 때 같이 지방으로 쫓겨 가는 등 장 부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주중 북한대사로 주창준 최진수 대사가 각각 12년과 10년 근무한 것에 비해 이번 최 대사가 6개월 만에 교체되는 것에 대한 해설이 분분하다. 외교가에서는 최 대사의 개인적인 문제나 책임보다는 북한에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본격 부상하면서 북한 내부 인물 교체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신임 지 대사가 정통 노동당 인사라는 점에서 북한이 중국 공산당과의 교류 확대를 강화하기 위해 바꿨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선 최 대사가 베이징에 부임한 후 외교적 활동이 적었다는 점으로 미뤄 임무수행에 대한 견책설도 나오고 있다.지 부부장은 1970년대 사로청, 조선학생위원회 등 청년조직의 간부로 활동했고 1993년부터 당 국제부 부부장을 맡았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의 결과물인 성명서(코뮈니케)는 참가국의 전원 합의(컨센서스)로 만들어졌다. 그래도 각국의 이해득실은 제각각이다. 환율전쟁의 시발점인 미국과 중국, 그 전쟁의 불길을 잡은 의장국인 한국은 웃었다. 그러나 일본 독일 등은 자신들의 복잡한 처지에 딱 맞는 결과물을 얻지 못해 시무룩하다. 각국 외신의 경주 회의에 대한 다양한 평가도 국가별로 엇갈린 성적표와 무관하지 않다.○ 엇갈린 이해득실 엔고의 시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이 가장 울상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상은 1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대정부질문에서 한국과 중국을 외환시장 개입국으로 공개적으로 지목해 ‘한국 중국까지 끌어들이는 물귀신 작전을 쓴다’는 국제적 비판이 일었다. 그만큼 환율 문제는 일본에도 절박한 이슈였다. 그러나 경주 성명서에 대해 일본 산케이신문은 “일본 혼자만 손해를 봤다”는 차가운 평가를 내놓았다. 아사히신문도 “엔고를 저지할 ‘유효한 방법’을 손에 넣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일본 신문들은 “‘시장이 결정하는 환율체제 구축’이나 ‘경상수지 수치 목표 설정’ 등은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국인 일본의 엔고 대응을 위한 시장 개입을 더욱 힘들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노다 재무상은 23일 “환율 정책에는 변함이 없으며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엔고 저지를 위해서라면 경주 컨센서스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반면 환율전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 중 하나인 중국은 미소를 지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국제통화기금(IMF) 지분 6% 이상을 (중국 같은) 신흥국에 넘기기로 결정한 것은 ‘중대 진전’”이라고 환영했다. 이 통신은 “이는 IMF의 운영과 관련해 최대 개혁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의 발언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중국은 이번 조치로 IMF 쿼터 6위에서 3위로 급부상해 발언권이 한층 커지게 됐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한 당국자는 “중국은 커진 영향력만큼 책임도 증가하는 부담이 있다”며 “시장 상황에 맞는 위안화 절상 노력을 하지 않으면 국제적 반감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그동안 IMF 쿼터와 관련해 “미국도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고 미국을 압박해 왔다. 미국은 이번 개혁안으로 17%대의 지분이 16%대로 1%포인트가량 줄게 됐다. 그러나 독일의 입김은 그 정도까지였다. 라이너 브뤼덜레 독일 경제장관은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환율 및 무역 불공정 문제에 대한 서한에서 중국뿐만 아니라 독일에도 초점을 맞췄다”며 “미국의 이런 의도는 ‘계획경제적 요소들’을 갖고 있다”고 불쾌감을 토로했다. IMF 이사 2개 자리를 내놓게 된 유럽연합(EU) 국가들도 글로벌 경제시스템의 변화를 실감해야 했다. ○ 외신, 긍정 평가 대세 속 ‘실패했다’는 악평도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회의 직후 ‘지나친 무역 불균형을 억제하는 협력체계 합의’에 대해 큰 만족을 드러냈다. 미국 주요 언론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주 회의가 IMF 개혁과 무역 불균형 해소에 합의해 가장 첨예한 2대 이슈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높게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도 “경주 코뮈니케는 (환율 문제에 대해) 그동안 G20에서 나온 합의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AP, AFP, 로이터 등 주요 통신사들은 “한발 전진한 회의”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특히 AFP는 “G20이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은 미국이 무역 불균형 문제에 대해 G20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경주 회의는 ‘분열(disunity)의 전시장’이었다”며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고 혹평했다. 이 신문은 “환율전쟁을 공개적으로 경고한 ‘최초의 G20 장관’인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브라질 환율 문제에 대처하느라 경주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며 “G20은 컨센서스로 운영되기 때문에 합의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주 회의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일본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한 ‘현지 시찰’을 결의하고 중국은 오사카(大阪) 지사의 중국 방문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는 등 열도를 둘러싼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센카쿠 열도를 행정구역 내에 두고 있는 오키나와(沖繩) 현 이시가키(石垣) 시의 시의회는 20일 만장일치로 “센카쿠 열도는 시의 ‘행정구’이며 섬에 대한 현지 시찰을 벌인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친중국계 홍콩 원후이(文匯)보가 21일 보도했다. 이시가키 시 시장 등은 다음 주 도쿄(東京)를 방문해 관련 부처에 결의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원후이보는 “결의안은 ‘섬의 자연환경과 생태계 조사를 진행한다’고 시찰목적을 밝혔지만 중요한 것은 결의안 내용 중에 댜오위다오가 일본의 영토이자 소속 행정구라고 밝힌 점”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결의는 중국이 최근 댜오위다오 해역에 각각 1000t급인 ‘웨이정(爲政) 202호’ 및 ‘웨이정 118호’ 2척과 500t급 1척 등 어업지도선 3척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진 직후 나왔다. 한편 일본 오사카 부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지사는 31일 상하이(上海) 세계박람회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었으나 18일 갑자기 박람회 사무국으로부터 취소를 통보받았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박람회 사무국은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하시모토 지사는 “중국에 크게 실망했다”며 “12월에 홍콩을 방문하려던 계획도 잠정 중단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오사카 정부 차원에서도 박람회 사무국에 정식으로 항의할 계획이다. 일본 와가야마(和歌山) 시도 산둥(山東) 성 지난(濟南) 시 우호방문단 파견 계획을 연기하는가 하면 양국 간 민간 우호교류 활동마저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되고 있다고 원후이보는 전했다. 일본여행업협회는 센카쿠 열도 갈등으로 9월 중국으로 출발한 일본 여행객이 전년 대비 25.4% 줄었으며 이달 상순에는 27.0% 줄었다고 발표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외교부는 2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이명박 정부를 가리켜 ‘한반도 평화 훼방꾼’이라고 말했다는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을 공식 부인했다.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시 부주석이 ‘한국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훼방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확인해 본 결과 그런 발언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마 대변인은 “우리도 관련 보도와 한국 정부의 입장 발표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동아일보가 21일 전문(全文)을 입수한 시 부주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난해 면담록에도 시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거론한 대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박 원내대표가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거짓말로 국민을 현혹시켰고 중국에 대단한 외교적 결례를 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이에 박 원내대표는 발표문을 통해 “우리 정부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하기 위한 의미에서 사실을 말한 것”이라며 “국익 차원에서 그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류원식 기자 rews@donga.com▲동영상=시진핑 관련 말은 사실이라고 거듭 주장}
중국 런민(人民)은행이 2년 10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1년 만기 예금금리 등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물가상승 압력 억제는 물론이고 위안화 절상 압력에 대한 방어, 나아가 미래 중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 표출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 옌젠펑(殷劍鋒) 부소장은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5%로 22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는 등 자산거품과 통화팽창이 위험수위에 도달해 이자율 상승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이 높아지는 가운데 선제적 대응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위안화 절상 압력이 높은 가운데 이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보다 이자율 상승으로 인한 핫머니(투기성 단기 유동자금) 유입 등으로 위안화 환율이 자연스럽게 내려가도록 한다는 것. 18일 폐막한 올해 제17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에서 내년부터 5년간의 경제기조를 성장 일변도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기로 하는 등 앞으로의 경제 상황에 대한 자신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연구위원(중국 주재)은 “이자율 상승에 따른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다고 보고 이자율 상승으로 인한 평가절상의 충격도 흡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기준금리를 연내 추가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인허(銀河)증권 쭤샤오레이(左小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재의 통화팽창 및 자산거품 수준에서 보면 이번 1년 만기 예금금리를 0.25% 인상하는 이자율 상승폭은 매우 부족하다”며 “추가로 연속적인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콩 경제학자 셰궈중(謝國忠) 씨는 “중국이 이미 인플레이션 시대에 진입했으며 앞으로 10년간 지속될 것”이라며 “이번 금리인상 폭이 너무 작아 연내 한 차례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미국의 4배에 이르는데 인상폭을 미국처럼 낮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출신 성분 때문에 공산당 입당을 10번 거절당했다.” 18일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돼 2년 후 최고지도자를 예약한 시진핑(習近平·57·사진) 국가부주석도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고위간부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입당을 거절당했다. 푸젠(福建) 성 외국어대 교우회는 2003년 푸젠 성과 인연이 있는 인물들의 글을 모은 ‘푸젠 성 박사의 풍모’라는 총서를 편찬했다. 첫째 권에는 381명의 글이 실렸는데 여기에 시 부주석은 1969년 베이징(北京)에서 산시(陝西) 성 옌촨(延川) 현의 량자허(梁家河) 마을에 내려가 농민들과 7년간 생활한 내용을 ‘자술(自述)’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시 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은 국무원 부총리를 지내던 1962년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마오쩌둥(毛澤東)의 미움을 사 직위를 박탈당하고 감시와 억류의 세월을 보내다 1978년에야 완전히 복권됐다. 지식청년대에 소속돼 이곳에서 하방(下放)활동(문화대혁명기 지식인의 농촌 활동)은 했지만 정식으로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시 부주석은 대학도 간신히 진학했다고 소개했다. 1975년에야 부친에 대한 처분이 다소 완화돼 칭화(淸華)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시 부주석은 어려서부터 부친에게서 사람들과의 인화 단결을 강조하는 말을 들었는데 량자허에서 체험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7년간의 농촌 생활에서 가장 큰 소득은 실질적인 것과 실사구시가 무엇인지, 군중(민중)이 무엇인지 알았고, 나에 대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는 점 두 가지가 가장 큰 소득”이라고 밝혔다. 당시 생활하던 농촌은 외진 곳으로 주위에 일가친척도 없었기 때문에 믿을 것은 그들과의 단결뿐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학에서 마르크스 이론과 사상을 배우고 법학박사를 받았지만 농촌의 시장화 건설, 빈곤 탈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중국 농촌건설과의 관계 등의 정책을 펴는 것과 관련된 많은 경험은 옌촨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일반 백성이야말로 공산당으로서는 옷과 음식을 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라며 “인민의 공복임을 굳게 마음에 새기고 인민이 배부른지 추운지 따뜻한지 등을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적었다. 량자허에서 춥고 배고프게 지냈던 시 부주석은 후에 푸젠 성장 등을 지낼 때 이곳이 여전히 가난한 것을 알고 전기가 공급되도록 주선했다. 또 푸젠 성 기업인들에게 량자허를 위해 기부하도록 하는 등 도움을 주며 당시의 인연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출신 성분 때문에 공산당 입당을 10번 거절당했다." 18일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돼 2년 후 최고지도자를 예약한 시진핑(習近平·57·사진) 국가부주석도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고위간부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입당이 거절당했다. 푸젠(福建) 성 외국어대 교우회는 2003년 푸젠성과 인연이 있는 인물들의 글을 모은 '푸센 성 박사의 풍모'라는 총서를 편찬했다. 첫째 권에는 381명 박사의 글이 실렸는데 여기에 시 부주석은 1969년 베이징(北京)에서 산시(陝西) 성 옌촨(延川) 현의 량자허(梁家河) 마을에 내려가 농민들과 7년간 생활한 내용을 '자술(自述)'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시 부주석의 아버지 시중신(習仲勛)은 국무원 부총리를 지내던 1962년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마오쩌둥(毛澤東)의 미움을 사 직위를 박탈당하고 감시와 억류 등의 세월을 보내다 1978년에야 완전히 복권됐다. 지식청년대에 소속돼 이곳에서 하방 활동은 했지만 정식으로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시 부주석은 대학도 간신히 진학했다고 소개했다. 1975년에야 부친에 대한 처분이 다소 완화돼 칭화(淸華)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시 부주석은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사람들과의 인화와 단결을 강조하는 말을 들었는데 량자허에서 체험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7년간 농촌 생활에서 가장 큰 소득은 실질적인 것과 실사구시가 무엇인지, 군중(민중)이 무엇인지 알았고, 나에 대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는 점 두 가지가 가장 큰 소득"이라고 밝혔다. 당시 생활하던 농촌은 외진 곳으로 주위에 아무 일가친척도 없기 때문에 믿을 것은 그들과의 단결뿐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학에서 마르크스 이론과 사상을 배우고 법학박사를 받았지만 농촌의 시장화 건설, 빈곤 탈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과 중국 농촌건설 과의 관계 등의 정책을 펴는 것과 관련된 많은 경험은 옌촨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일반 백성이야말로 공산당으로서는 옷과 음식을 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라며 "인민의 공복임을 굳게 마음에 새기고 인민이 배부른지 춥고 따뜻한지 등을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적었다. 량자허에서 춥고 배고프게 지냈던 시 부주석은 후에 푸젠 성장 등을 지낼 때 이곳이 여전히 가난한 것을 알고 전기공급이 되도록 주선했다. 또 푸젠 성 기업인들에게 량자허를 위해 기부하도록 하는 등 도움을 주며 당시의 인연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인민해방군이 이르면 올해 평양 외곽 순안에 전투병력을 파견해 주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베이징(北京)의 북한 소식통이 19일 전했다. 인민해방군이 북한에 진입하면 6·25전쟁이 끝난 후 1950년대에 한반도에서 병력이 철수한 후 50여 년 만에 처음이다.이 소식통은 인민해방군의 평양 주둔은 명목상으로는 북한군 현대화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파견 병력 규모는 2, 3개 퇀(團·한국의 연대급으로 병력은 2000∼3000명)으로 최소 수천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병력을 지휘할 일부 중국군 장교들에 대해 북한은 조선어와 지리 풍습 등에 대한 교육을 중국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인민해방군의 평양 주둔 목적이 군 현대화 지원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 선포된 3남 김정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직은 김 위원장이 건재하지만 김 위원장의 사망 등 혼란이 발생했을 때 김정은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군을 활용하려 한다는 것. 중국군의 한반도 진입은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자 김 위원장의 대중 외교노선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중국으로부터 정치 경제 외교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두 차례 핵실험을 하는 등 자주를 강조하며 뻣뻣한 자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후계체제 안정을 위해서 “믿을 것은 중국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며 중국군의 개입까지 요청했을 수도 있다고 대북 소식통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자주와 선군정치를 강조해 온 북한에서 중국군의 주둔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28일 개최된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가 당초 일정보다 20일가량 늦춰진 것도 권력구조 개편 과정에서 군부의 위상과 영향력이 줄어들어 군부가 반발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 인민해방군의 북한 진주가 확인될 경우 미국과 일본 등으로부터의 반발도 예상된다.한국 정부 당국자들도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청와대 당국자는 “3대 세습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은데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자주를 강조해 왔다”며 “북한은 중국에 의존하지만 불신감도 커 중국 군대의 주둔을 받아들이거나 자원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시진핑(習近平)의 외교는 패권일까, 화평일까.’ 중국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됨에 따라 그의 외교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 부주석이 2년 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로 재임할 때는 중국의 경제력 등 종합 국력이 현재보다 월등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과의 최근 영토 갈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강공 외교 행보가 더 강화될지 주목된다. ○ 한국과는 실리 외교, 북에는 동맹 강조할 듯우선 북한과의 동맹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 부주석은 8일 베이징(北京)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창당 65주년 경축 연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주중 북한대사관의 노동당 창당 행사에는 과거 외교부장도 참여한 적이 거의 없을 뿐더러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가하기는 처음이다. 며칠 후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낙점을 앞두고 있던 상태여서 그의 행사 참가는 더욱 의미가 컸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날 시 부주석은 “노동당의 새 지도체제와 전통을 잇고 미래로 향하는 협력의 정신을 강화해 양국의 우호협력관계를 진일보 발전시켜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중 간 전통적 동맹 관계를 ‘3대 세습’을 맞는 북한과 더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비해 한국에 대해서는 실리외교를 중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시 부주석이 한국을 찾은 것은 2005년 저장(浙江) 성 당서기 시절이 처음이고 지난해 12월이 두 번째다. 당시 그와 만난 사람들은 시 부주석이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과 가진 회담에서는 “양국은 국제적 지역적 문제에서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어 평화적 조율을 통해 공동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방한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조기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며 “경제 무역 관계가 양국 관계 발전에 중요한 동력”이라고 말했다. 북한과의 동맹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 협력 확대 등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화평 발전’ 속에 숨겨진 높은 자존심시 부주석은 지난해 12월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평화 발전의 길을 가겠다. G2가 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화평 외교를 강조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민감한 정치문제에 대해 할 말을 다하는 자존심을 숨기지 않아 왔다. 지난해 2월 남미 6개국 순방에서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서방의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중국의 내정에 함부로 간섭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유럽 일부 국가가 티베트에 대한 자치 강화 등을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티베트나 대만,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문제 등은 ‘핵심적 주권 사항’으로, 중국은 일보의 양보도 없는 확고한 입장을 나타내온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차기 지도자로 주목되는 상황에서 평소 조심스러운 처신을 하는 데다 신중한 발언을 해온 시 부주석의 처신과 비춰볼 때 파격적인 언사였다. 당시 그의 말은 외신을 타고 세계로 타전됐다. 중국 국내에서는 언론 보도가 통제되기도 했다. 따라서 시 부주석 재임 시절에는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의식도 더욱 높아져 이를 외교 정책에 반영하려는 압력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시 부주석은 후 주석 시대에 비해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공산당은 18일 제1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를 열어 시진핑(習近平·57·사진) 국가부주석을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시 부주석은 2년 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뒤를 이어 중국의 최고지도자에 오를 게 확실시된다.관영 신화통신은 15일부터 이날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베이징(北京) 징시(京西) 호텔에서 열린 5중전회에서 이같이 결정됐다고 18일 보도했다. 시 부주석은 인민해방군 최고 지휘기구인 중앙군사위 12명 위원 가운데 후 주석을 빼곤 유일한 민간인으로 3명의 부주석 가운데 1명이 됐다.이처럼 인민해방군에 발판을 마련하면서 시 부주석은 이변이 없는 한 2012년 10월로 예정된 제18차 전국대표대회(18차 당 대회)에서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에 이어 제5세대 최고지도자로 등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리커창(李克强·55) 부총리도 18차 당 대회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뒤를 이을 것으로 보여 제5세대 지도부는 ‘시진핑 주석-리커창 총리’의 쌍두마차 체제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5중전회는 또 2011∼2015년 경제정책 마스터플랜인 제12차 5개년 규획(規劃·계획)을 확정했다. 12·5규획의 핵심은 크게 경제발전 방식전환과 민생의 보장으로 요약된다. 특히 민생의 보장과 개선을 경제발전 방식전환의 출발점이자 결과로 삼는다고 강조해 ‘성장에서 분배로’ 정책을 바꿀 것임을 명확히 했다. 한편 정치개혁과 관련해서는 “적극적이고 타당하게 정치체제 개혁을 추진한다”고 밝히는 수준에 그쳤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역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 중 ‘반체제’로 불리는 사람은 5, 6명 정도를 꼽는다. 독일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1935년), 옛 소련의 안드레이 사하로프(1975년),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1983년), 미얀마의 아웅 산 수치(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1993년), 이란의 시린 에바디(2003년) 등. 이들은 나치 독일의 재(再)무장 폭로, 옛 소련의 열악한 인권 상황 개선, 공산주의 체제하 폴란드의 노동자 권리 쟁취, 미얀마 장기 군부 독재 타도, 남아공의 흑인 및 이란의 여성 인권 회복 등에 헌신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에게 상을 주어 인류가 한 걸음 진보하고 정의가 확산되도록 했다. 노벨상은 분명 인류 문화의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올해는 중국의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 박사가 중국 국적자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지금 노벨위원회는 중국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에게 상을 주는 것은 노벨상을 모욕하는 것이자 중국에서 범죄를 격려하는 행위와 마찬가지”, “그는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자”라며 비난했다. 노벨위 위원이 노르웨이 국회에서 선정된다는 이유로 중국은 주중 노르웨이 대사를 밤에 불러 항의하고, 예정된 장관급 회담도 중단했다. 노벨위가 반체제 인사에게 노벨 평화상을 줬다고 해서 당사국으로부터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다. 중국과 일본 간에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을 놓고 갈등을 일으켰을 때 중국이 희토류의 대일 수출을 중단하는 강수로 일본을 굴복시킨 것처럼 중국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대(對)노르웨이 강공 외교는 거침이 없다. 노르웨이 정부는 노르웨이산 연어의 최대 수입국이기도 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해 올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지금 이 FTA 협상이 좌초 위기에 몰려 있다. 노벨위가 노르웨이 정부에 좌지우지됐다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선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 위원장은 수상자 발표 직후 “중국이 급부상해 (다들 할 말을) 못할 때 우리라도 나서서 말해야 한다”고 기개를 드러냈다. 중국 내에서도 류 박사의 수상을 계기로 민주화와 정치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공개 서한 형식으로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공개 요구 서한 작성과 서명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는 공산당 이념의 전파자인 신화통신과 런민(人民)일보의 전직 고위 간부도 있다. 특히 14일 중국 내 반체제 인사 등 120여 명이 발표한 정치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한에는 “중국 정부가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다른 보편적 가치를 포용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높은 경제 성장으로 올해 미국에 이어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경제 성장에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기폭제가 된 측면도 있다. 세계 질서의 수혜자이기도 한 중국이 입맛따라 ‘보편적 가치’를 감탄고토(甘呑苦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최근 북한의 3대 세습 과정에서도 평소 외교 원칙으로 내세운 ‘타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에 보증국으로 나선 모습이다. 끼리끼리 동맹국 우의는 다질지 모르지만 왕조시대도 아닌 21세기의 보편적 가치는 아니다. 노벨위는 “중국의 새로운 위상은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고 충고했다. 이제는 중국이 정치적으로도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사진)의 실물 크기 밀랍상을 제작해 12월 초 북한에 선물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해가 항미원조전쟁(6·25전쟁) 60주년과 김일성 김정숙 결혼 70주년인 것을 기념해 김 위원장이 건의하고 중국 정부가 받아들여 이뤄졌다. 밀랍상 제작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부터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까지 중국 최고지도부의 밀랍상을 제작해 보관하고 있는 ‘중국위인밀랍상관(中國偉人蠟像館)’이 맡았다.동아일보가 입수한 주중 북한대사관이 7월 15일자로 밀랍상관에 보낸 전문은 “귀관이 항일 여성 영웅 김정숙 동지의 밀랍상을 제작하는 것을 환영하며 이는 중국 인민이 조선 인민에게 보내는 귀중한 선물이 될 것이며, 양국 인민 간 우호 감정을 더욱 높일 것으로 믿는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전문은 또 “밀랍상 제작을 위해 조선만수대창조사 관계자들이 곧 베이징(北京)에 와 상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양측이 협조하에 공동 제작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제작된 김정숙 밀랍상은 베이징에서 보내는 의식을 치른 후 중국 대표단 10여 명이 가져가며 북한에서도 성대한 접수의식 후 묘향산국제우의관의 김일성 밀랍상 옆에 전시될 계획이다. 중국은 1996년 7월에도 김일성 2주기를 맞아 김일성 밀랍상을 제작해 기증했다. 묘향산국제우의관은 전통 목조건물로 김일성국제우의관과 김정일국제우의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사람이 지금까지 외국에서 받은 10만여 점의 진귀한 선물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김일성 밀랍상을 북한에 보낼 때 북한 내에서 거치는 주요 지점마다 많은 사람이 나와 생생하게 복제된 수령 지도자의 모습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밀랍상은 환영을 받았다고 밀랍상관은 홈페이지에서 소개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권력교체기에 김 위원장 생모의 밀랍상을 선물받아 묘향산국제우의관에 김일성 주석 밀랍상과 나란히 보관하는 것은 북-중 관계가 어느 때 못지않게 긴밀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공산당 제17차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가 15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해 나흘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전국에서 올라온 204명의 중앙위원과 167명의 후보위원이 열띤 토론을 벌일 이번 회의는 시진핑(習近平·사진) 국가부주석이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돼 차기 최고지도자로 갈지가 가장 큰 관심사.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12차 5개년 규획(規劃·2011∼2015년)에 경제판 ‘조화사회’ 이념인 ‘포용성(inclusive) 성장’의 기본노선도 채택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잇단 정치개혁 필요성 발언에다 중국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인 류샤오보(劉曉波) 박사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이 잇따르고 있어 정치개혁 논의가 회의 분위기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원 총리는 3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와 정치개혁에 대한 인민들의 희망과 요구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14일 쉬유위(徐友漁)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등 중국의 문학비평가와 반체제 인사 등 120여 명은 류 박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번 서한 서명자에는 2008년 ‘08헌장’ 초안을 함께 작성한 헌법학자 장쭈화(張祖樺), 인권변호사 푸즈창(浦志强), 언론인 리다퉁(李大同) 씨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류 박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중국 지도부가 노벨 평화상 수상에 현실적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다른 보편적 가치를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원 총리의 일련의 발언이 정치개혁 열망을 촉발시켰다”며 “우리는 그러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11일엔 원로 고위 공산당 간부 및 언론기관 출신 인사 23명이 발기하고 사회지도층 인사와 시민 476명이 서명한 언론 출판 자유 공개 요구서가 나왔었다. 이 서한을 기초한 인사들은 원로 고위 인사들로 대부분 현직에서 물러난 사람들이었지만 14일 서한 서명자에는 현직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쉬 교수는 “정부가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劉霞) 씨와 접촉하려던 일부 인사를 구금 연행한 데 이어 이번 공개서한에 참여한 일부 인사들에게도 경찰을 동원해 참여하지 말라고 위협했다”며 개혁 인사에 대한 구금과 위협 등 불법적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여기에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기관지인 중궈칭녠(中國靑年)보 등 중국 각지의 주요 신문들도 원 총리의 정치개혁 발언이나 원 총리가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의 아시아판에 표지인물로 등장한 소식을 보도하면서 간접적으로 민주화 요구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광시좡(廣西壯)족 자치구, 상하이(上海) 등 지방에서는 민생 현안으로 인한 항의시위가 격화돼 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하는 등 최대 정치행사인 17기 5중전회를 맞은 중국은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15일 전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의 마자오쉬(馬朝旭) 대변인은 14일 “류샤오보에게 노벨 평화상을 준 것은 범죄를 격려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칠레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행운이다. 중국에서라면 생매장되거나 사망했을텐데"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68일간 매몰되어 있던 광부들이 구출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광산 사고 1위'인 중국의 누리꾼들이 탄식을 쏟아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탄광 사고 사망자수는 2631명이지만 독립 노동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인터넷 포털 서우후(搜狐)의 한 누리꾼은 "칠레의 구조 과정을 보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중국을 부끄럽게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 신랑(新浪)의 또 다른 누리꾼은 "지난 4월 산시(山西) 성 허진(河津)의 왕자링(王家嶺) 광산이 붕괴돼 115명이 구출됐지만 37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을 때는 누가 죽고 살았는지도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주지 않아 불만을 샀다"고 주장했다. 누리꾼들은 중국 내에는 탄광의 안전 불감증이 만연해 있는데다 정부의 미약한 대처가 사고를 부르고 있다고 성토했다. 중국 정부는 탄광 사고를 줄이기 위해 소규모 탄광의 채굴을 금지하고 사망 사고가 나는 경우 탄광 소유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처벌을 강화했다. 올 7월부터는 지하 갱도 채굴 작업 시 감독관도 함께 갱도에 내려가도록 했으나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랴오선(遼沈)만보는 14일 "이번 칠레 광산 매몰 광부들이 구출될 수 있었던 데는 갱도내에 '피난소'를 두도록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며 "이번 기적은 제도와 인화가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이번 사고와 구조는 중국에게 제도 정비 필요성 등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고 덧붙였다.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의 고위 공산당 및 언론기관 출신 인사 23명이 발기하고 사회지도층 인사와 시민 476명이 서명한 언론 출판 자유 공개 요구서가 나왔다. 이 공개서한은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55) 씨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최근 발표되고 15일부터 3일간 중국 공산당 제17차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 개최를 앞둔 시점에서 나와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개혁파 인사들은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앞으로 보내는 공개서한을 인터넷에 올렸으며 이 서한은 중국 인터넷에서는 검색이 안 되지만 둬웨이(多維)망 등 해외 인터넷에 게재된 후 중국 누리꾼 사이에 퍼지고 있다. 발기인은 마오쩌둥(毛澤東) 비서 출신의 리루이(李銳) 전 공산당 중앙조직부 상무부부장과 후지웨이(胡績偉) 전 런민(人民)일보 사장, 리푸(李普) 전 신화통신 부사장, 언론통제 중추기관인 당 중앙선전부의 중페이장(鍾沛璋) 전 신문국장, 장핑(江平) 전 정법대 총장, 두광(杜光) 전 중앙당교 교수 등이다. 요구서는 “1982년 헌법 32조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규정했으나 지난 28년간 시행된 바 없다”며 “이는 중국이 거짓민주(假民主)인 것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요구서는 “신문 출판물 검열은 영국은 1695년, 프랑스는 1881년 폐지해 각각 315년과 129년 중국이 낙후해 있다”고 개탄했다. 요구서는 “당의 언론 출판 선전 담당기구는 비밀스러운 힘을 가진 ‘검은손(黑手)’으로 심지어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최근 여러 차례 역설한 정치개혁 요구도 신화통신에서 보도하지 못하게 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요구서는 언론 담당 기관의 폐지, ‘무관의 제왕’으로서의 기자의 사회지위 인정, 언론사의 지역별 취재 제한 폐지, 집권당의 죄악과 잘못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 인정, 홍콩 마카오의 출판물을 대륙에서 구입 등 8개항의 요구사항도 제시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