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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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4-13~2026-05-13
문학/출판40%
문화 일반27%
인사일반12%
학술6%
역사3%
사회일반3%
만화3%
인공지능3%
기타3%
  • [책의 향기]400년 전 ‘원조 심리학’ 셰익스피어 소설 주인공, 우울증-강박장애 앓아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과거 어떤 극작가보다 등장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활짝 열어젖힌 작가였다. 바로 ‘독백’을 통해서였다. 왕을 살해할지 아니면 스스로 생을 마감할지.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햄릿의 독백이 대표적인 경우다. 셰익스피어의 창은 후대 심리학자들이 그의 텍스트를 ‘해석 잔치’에 자주 가져다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셀로’에선 오셀로가 확증편향과 질투에 눈멀어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맥베스’에선 맥베스가 매몰비용 오류의 덫에 갇혀 파멸한다. 후대 심리학자들이 동일한 개념을 재발견하기 400년도 전에 이를 예감한 셈이다. 신간은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설계자로 유명한 필립 짐바도 스탠퍼드대 명예교수가 로버트 존슨 교수와 공저한 책이다. 셰익스피어를 ‘원조 심리학자’로 다시 읽어 보자고 제안한다. 1971년 짐바도 교수는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건물 지하에 모의 교도소를 꾸미고 남성 지원자 24명을 무작위로 두 집단, 죄수와 간수로 나눴다. 이들은 곧 자기 역할에 깊이 몰두했다. 일부 간수들은 권위적으로 행동했고, 가혹 행위까지 했다. 실험은 일주일 만에 갑작스럽게 종료됐다. 놀랍게도 셰익스피어가 1604년 발표한 희극 ‘잣대엔 잣대로’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빈센티오 공작은 이인자 앤절로에게 통치를 맡기는 일종의 ‘유사 실험’에 착수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앤절로는 곧 전횡을 저지르며 젊은 신사 클라우디오를 감옥에 가둔다. 짐바도 교수는 실험 당시엔 ‘잣대엔 잣대로’를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빈센티오 공작과 매우 유사한 역할을 맡은 셈이 됐다. 짐바도 교수는 이후 감옥 실험을 낱낱이 분석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루시퍼 이펙트’를 펴냈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의지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개인의 성격 특성보다 상황과 사회적 맥락이란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와 짐바도 교수가 인간성을 암울하게만 봤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기 때문이다. ‘잣대엔 잣대로’에서 신하 에스칼러스는 아랫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앤절로 앞에서 그의 처벌이 과도하다는 점을 직언한다. 짐바도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였던 크리스티나 매슬러크 역시 실험이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대학원생으로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했다. 짐바도 교수는 매슬러크 덕분에 자신이 실험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간수가 죄수를 학대하고 있다는 걸 미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실험을 중단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러한 행위의 상당수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는다. 짐바도 교수는 이를 ‘영웅적 행위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셰익스피어를 심리학의 용어로 다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햄릿, 리어왕, 맥베스 부인, 리처드 3세…. 이들은 의식했든 못 했든 우울증, 조증, 인지저하증, 강박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히스테리와 맞닥뜨린 인물이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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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집-명소 정보 한눈에… 여행책, 스마트폰 안부럽네

    지난달 교보문고에서 ‘여행’ 부문 베스트셀러 1위는 뭘까. 국내 곳곳을 소개한 ‘에이든 국내여행 가이드’란 책으로 2020년 초판 이후 6년 만에 새로 나왔다. 그런데 개정판은 224쪽이 추가돼 무려 1088쪽에 이르는, 이른바 ‘벽돌책’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도든 맛집이든 다 찾을 수 있는 세상. 해외여행을 가도 소셜미디어를 뒤지거나 인공지능(AI)에 물어보면 금방 답을 알려준다. 그런 시대에 백과사전처럼 빼곡한 정보를 담아 두껍기 그지없는 책이 왜 인기를 끌고 있는 걸까. ● 소셜미디어보다 믿을 수 있다 사실 출판계 안팎에서 종이 여행가이드북은 무선인터넷 시대가 열린 뒤 가장 먼저 ‘사라질’ 책들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내외 할 것 없이 여행 안내서는 외려 더 꾸준히 팔리고 있다. 서점가에선 이런 여행 안내서의 경쟁력을 ‘신뢰’에서 찾는다. 온라인에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오는 여행 콘텐츠는 영리 목적이 많아 ‘위장 마케팅’에 대한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여행 시리즈 ‘리얼’을 펴내고 있는 한빛라이프의 고현진 팀장은 “출판사들은 가이드북 제작 때 기본적으로 직접 발로 뛰며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초판 작업은 한 지역을 10∼20번씩 다녀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개정판에 100개의 새로운 장소를 넣을 땐 그 3배쯤 되는 후보들을 조사한 뒤 선별된 정보를 담는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쏟아 걸러내는 작업을 거친다는 뜻이다. 짧은 유행에 치우치기보단 ‘지속 가능한 정보’를 담으려 노력하는 것도 종이 여행책의 매력이다. 고 팀장은 “유튜브 등은 아무래도 빠르게 주목받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트렌디한 요소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이드북은 최소 2∼3년은 활용이 가능한 정보를 중심으로 담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트렌드를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중국 상하이에선 왕훙(중국 인플루언서)처럼 입고 촬영하는 ‘왕훙 체험’이 몇 달 동안 유행했지만 최근엔 확 시들해졌다. 출판사들은 이런 반짝 유행을 다루기보단 ‘올해의 여행 키워드’ 같은 별도 코너를 만들어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개인의 취향이 담긴 여행서 물론 가이드북이 꾸준히 팔린다고 해서 시장도 성장세라 보긴 어렵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여행이 재개된 2023년은 전년 대비 40% 성장했지만, 이후 다시 조금씩 감소 추세다. 워낙 관련 책들이 많다 보니 출간 시기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몇몇 출판사는 가이드북의 성격 자체를 바꾸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기존 여행작가에서 벗어나 러너나 미식가 등이 필자로 참여한 ‘취향 중심의 여행’ 안내도 요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건축가가 투시도법으로 정교하게 그린 도쿄 레트로 카페 안내서인 ‘도쿄 킷사텐 도감’, 음식 문화연구가와 함께하는 일본 슈퍼마켓 미식 여행서 ‘일본 현지 반찬 대백과’, 김밥 큐레이터가 전국 김밥 맛집을 추린 ‘전국김밥일주’ 등이 최근 주목받는 책들. 출판계 관계자는 “같은 여행지라도 필자와 콘셉트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제안하며 차별화를 꾀하는 흐름”이라고 전했다.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한 가이드북들도 있다. ‘에이든’ 시리즈를 펴낸 타블라라사는 원래 지도 제작으로 출발한 출판사. 이들은 하나의 지도에 맛집, 명소, 역사 정보를 촘촘히 담아내는 방식으로 주목도를 높였다. 스마트폰처럼 여러 번 클릭할 필요 없이, 모든 정보를 한번에 다 볼 수 있는 방식인 셈이다. 이정기 타블라라사 대표는 “아날로그라고 비효율적인 건 결코 아니다”라며 “오히려 한눈에 펼쳐 보여주는 게 더 직관적이고 ‘스마트’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했을 때도 20대 독자들이 ‘이런 게 있느냐’며 흥미로워했다고. 이 대표는 “젊은층일수록 과거의 두꺼운 지도책 같은 형식에 신선함과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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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먼저 ‘사라질’ 줄 알았던 여행책자, 꾸준히 팔리는 이유는

    지난달 교보문고에서 ‘여행’ 부문 베스트셀러 1위는 뭘까. 국내 곳곳을 소개한 ‘에이든 국내여행 가이드’란 책으로 2020년 초판 이후 6년 만에 새로 나왔다. 그런데 개정판은 224쪽이 추가돼 무려 1088쪽에 이르는, 이른바 ‘벽돌책’이다.스마트폰만 있으면 지도든 맛집이든 다 찾을 수 있는 세상. 해외여행을 가도 소셜미디어를 뒤지거나 인공지능(AI)에 물어보면 금방 답을 알려준다. 그런 시대에 백과사전처럼 빼곡한 정보를 담아 두껍기 그지없는 책이 왜 인기를 끌고 있는 걸까.● 소셜미디어보다 믿을 수 있다사실 출판계 안팎에서 종이 여행가이드북은 무선인터넷 시대가 열린 뒤 가장 먼저 ‘사라질’ 책들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내외 할 것 없이 여행 안내서는 외려 더 꾸준히 팔리고 있다.서점가에선 이런 여행 안내서의 경쟁력을 ‘신뢰’에서 찾는다. 온라인에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오는 여행 콘텐츠는 영리 목적이 많아 ‘위장 마케팅’에 대한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여행 시리즈 ‘리얼’을 펴내고 있는 한빛라이프의 고현진 팀장은 “출판사들은 가이드북 제작 때 기본적으로 직접 발로 뛰며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초판 작업은 한 지역을 10~20번씩 다녀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개정판에 100개의 새로운 장소를 넣을 땐 그 3배쯤 되는 후보들을 조사한 뒤 선별된 정보를 담는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쏟아 걸러내는 작업을 거친다는 뜻이다.짧은 유행에 치우치기보단 ‘지속 가능한 정보’를 담으려 노력하는 것도 종이 여행책의 매력이다. 고 팀장은 “유튜브 등은 아무래도 빠르게 주목받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트렌디한 요소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이드북은 최소 2~3년은 활용이 가능한 정보를 중심으로 담는다”고 했다.그렇다고 트렌드를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중국 상하이에선 왕훙(중국 인플루언서)처럼 입고 촬영하는 ‘왕훙 체험’이 몇 달 동안 유행했지만 최근엔 확 시들해졌다. 출판사들은 이런 반짝 유행을 다루기보단 ‘올해의 여행 키워드’ 같은 별도 코너를 만들어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개인의 취향이 담긴 여행서물론 가이드북이 꾸준히 팔린다고 해서 시장도 성장세라 보긴 어렵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여행이 재개된 2023년은 전년 대비 40% 성장했지만, 이후 다시 조금씩 감소 추세다. 워낙 관련 책들이 많다 보니 출간 시기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몇몇 출판사는 가이드북의 성격 자체를 바꾸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기존 여행작가에서 벗어나 러너나 미식가 등이 필자로 참여한 ‘취향 중심의 여행’ 안내도 요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건축가가 투시도법으로 정교하게 그린 도쿄 레트로 카페 안내서인 ‘도쿄 킷사텐 도감’, 음식 문화연구가와 함께하는 일본 슈퍼마켓 미식 여행서 ‘일본 현지 반찬 대백과’, 김밥 큐레이터가 전국 김밥 맛집을 추린 ‘전국김밥일주’ 등이 최근 주목받는 책들. 출판계 관계자는 “같은 여행지라도 필자와 콘셉트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제안하며 차별화를 꾀하는 흐름”이라고 전했다.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한 가이드북들도 있다. ‘에이든’ 시리즈를 펴낸 타블라라사는 원래 지도 제작으로 출발한 출판사. 이들은 하나의 지도에 맛집, 명소, 역사 정보를 촘촘히 담아내는 방식으로 주목도를 높였다. 스마트폰처럼 여러 번 클릭할 필요 없이, 모든 정보를 한번에 다 볼 수 있는 방식인 셈이다.이정기 타블라라사 대표는 “아날로그라고 비효율적인 건 결코 아니다”라며 “오히려 한눈에 펼쳐 보여주는 게 더 직관적이고 ‘스마트’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했을 때도 20대 독자들이 ‘이런 게 있느냐’며 흥미로워했다고. 이 대표는 “젊은층일수록 과거의 두꺼운 지도책 같은 형식에 신선함과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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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물도 음악 저작권 정보처럼 한눈에 알 수 있는 구조 만들 것”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글이나 그림이라도 사람이 일부 수정했다면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생성형 AI 확산 이후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저작권위원회 강석원 위원장을 17일 서울 용산구 서울사무소에서 만나 AI 시대 변화와 대응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AI 확산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저작권 등록 건수의 증가다. 강 위원장은 “저작권 등록이 30% 이상 늘어났다”며 “예전에는 창작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은 ‘딸깍 출판’처럼 AI로 결과물을 만들고 일부 수정해 자신의 저작물로 등록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 AI만으로 생성된 결과물은 저작물이 아니라 산출물로 보지만, 여기에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들어가면 기여 부분에 대해선 저작권이 인정된다. 이런 방식으로 등록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AI 기업이 모델 학습에 기존 콘텐츠를 무단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는 호소도 잇따르고 있다. 강 위원장은 “창작자는 AI로 인해 기존 시장이 위축될 수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다고 보고, 반대로 AI 기업은 아직 수익 모델이 없는 학습 단계인 만큼 무료 이용이 필요하다고 한다”며 “이런 입장 차이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창작자들의 수익 감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례로 매장에서 트는 음악이나 게임 배경음악 등은 원래 사람이 만들어 사용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AI로 대체되면 창작자들이 가져가던 몫이 줄어들 수 있다. 출판 분야에서도 AI로 빠르게 만들어낸 ‘딸깍 출판’이 기존 저작물 시장을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강 위원장이 걱정하는 건 콘텐츠 시장의 질적 저하다. 그는 “저품질 콘텐츠가 범람하면 수익도 줄고 창작 의욕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저작권 제도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강 위원장은 “콘텐츠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사람이 만든 것만 저작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이 경우 인간 창작물이 ‘명품’처럼 취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제도적인 대응도 추진되고 있다. 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생성형 AI 활용 저작물 등록 안내서와 분쟁 예방 가이드를 마련하고, AI 학습 과정에서 공정 이용 판단 기준을 담은 안내서를 발간했다. 또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23일)을 맞아 저작권의 가치를 알리는 토크 콘서트와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권리 정보 정리’도 위원회의 주요 과제다. 강 위원장은 “AI 기업들도 권리자를 찾기 어려워 계약 자체가 힘들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며 “음악처럼 권리 정보를 한곳에 모아 어디서 계약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판물의 경우 사후 70년까지 권리가 유지된다. 하지만 권리가 상속됐는지, 출판사에 넘겨졌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위원회는 AI 학습 데이터로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는 어문(출판) 분야로 권리 정보 체계를 확대할 계획이다. 강 위원장은 “이를 통해 계약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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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로 만든 글·그림·음악, 인간이 기여한 부분은 저작권 인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글이나 그림이라도 사람이 일부 수정했다면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생성형 AI 확산 이후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강석원 위원장을 17일 서울 용산구 서울사무소에서 만나 AI 시대 변화와 대응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AI 확산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저작권 등록 건수의 증가다. 강 위원장은 “저작권 등록이 30% 이상 늘어났다”며 “예전에는 창작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은 ‘딸깍 출판’처럼 AI로 결과물을 만들고 일부 수정해 자신의 저작물로 등록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AI만으로 생성된 결과물은 저작물이 아니라 산출물로 보지만, 여기에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들어가면 기여 부분에 대해선 저작권이 인정된다. 이런 방식으로 등록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AI 기업이 모델 학습에 기존 콘텐츠를 무단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는 호소도 잇따르고 있다. 강 위원장은 “창작자는 AI로 인해 기존 시장이 위축될 수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다고 보고, 반대로 AI 기업은 아직 수익 모델이 없는 학습 단계인 만큼 무료 이용이 필요하다고 한다”라며 “이런 입장 차이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창작자들의 수익 감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례로 매장에서 트는 음악이나 게임 배경음악 등은 원래 사람이 만들어 사용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AI로 대체되면 창작자들이 가져가던 몫이 줄어들 수 있다. 출판 분야에서도 AI로 빠르게 만들어낸 ‘딸깍 출판’이 기존 저작물 시장을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강 위원장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건 콘텐츠 시장의 질적 저하다. 그는 “저품질 콘텐츠가 범람하면 수익도 줄고 창작 의욕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저작권 제도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강 위원장은 “콘텐츠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사람이 만든 것만 저작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며 “이 경우 인간 창작물이 ‘명품’처럼 취급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제도적인 대응도 추진되고 있다. 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생성형 AI 활용 저작물 등록 안내서와 분쟁 예방 가이드를 마련하고, AI 학습 과정에서 공정이용 판단 기준을 담은 안내서를 발간했다. 또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23일)’을 맞아 저작권의 가치를 알리는 토크 콘서트와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권리 정보 정리’도 위원회의 주요 과제다. 강 위원장은 “AI 기업들도 권리자를 찾기 어려워 계약 자체가 힘들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며 “음악처럼 권리 정보를 한곳에 모아 어디서 계약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판물의 경우 사후 70년까지 권리가 유지된다. 하지만 권리가 상속됐는지, 출판사에 넘겨졌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위원회는 AI 학습데이터로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는 어문(출판) 분야로 권리 정보 체계를 확대할 계획이다. 강 위원장은 “이를 통해 계약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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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일한 박사의 삶, 그 자체가 드라마더라”

    “저세상에 간다면 ‘이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여기서 ‘이분’은 독립운동가이자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1895∼1971). 그를 흠모하게 된 이는 만화 ‘미생’ ‘이끼’로 잘 알려진 윤태호 작가(57)다. 윤 작가는 올해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을 맞아 유 박사의 삶을 웹툰 ‘NEW 일한’(8화)으로 풀어냈다. 그는 15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작업 과정을 소개했다. 윤 작가는 “유 박사님은 우리 세대에겐 안티푸라민 등으로 너무나 익숙한 분”이라며 “하지만 (유한양행과) 첫 미팅 뒤 ‘이게 지옥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뗐다. “박사님이 자서전처럼 직접 쓴 기록이나, 자신의 내면과 생각을 드러낸 자료가 없더라고요. 인터뷰조차 없었어요. 일단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잔 생각에 몇 달 동안 자료만 읽었습니다.” 윤 작가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유 박사의 삶 자체가 ‘드라마’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50세에 조국 해방을 위한 특수작전에 자원했고, 76세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윤 작가는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사람이 가능했을까 싶었다. 삶 전체가 그냥 드라마 소재라 봐도 된다”며 “제대로 된 전기로 그려보고 싶어, 80부짜리로 제안해 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했다. 특히 1919년 3·1운동 직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 등 재미 한인 리더들이 ‘한인 자유 대회’를 열 당시 유 박사가 결의문 작성 역할을 맡았던 점도 언급했다. 유 박사는 미 독립선언서의 핵심 구절을 계승해 ‘우리는 정부가 바로 피치자로부터 나오는 권력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라는 문장을 담았다. 윤 작가는 이 장면을 웹툰에서 클라이맥스로 그리기도 했다. 그는 “영화 ‘변호인’의 명대사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며 “어마어마하게 모던한 분”이라고 했다.“요즘 불확실성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유 박사님이 겪은 걸 뛰어넘는 불확실성이 있었을까요. 우리가 목격하고 배워야 할 건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자기 내면을 블록 쌓듯 탄탄하게 쌓아왔는지, 어떻게 흔들리지 않았는지입니다. 전 운 좋게도 이번 기회를 통해 박사님을 배웠는데,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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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생’ 윤태호, 유한양행 창업자 삶을 웹툰으로…“그의 삶이 드라마”

    “저 세상에 간다면 ‘이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여기서 ‘이분’은 독립운동가이자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1895~1971). 그를 흠모하게 된 이는 만화 ‘미생’ ‘이끼’로 잘 알려진 윤태호 작가(57)다. 윤 작가는 올해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을 맞아 유 박사의 삶을 웹툰 ‘NEW 일한’(8화)으로 풀어냈다. 그는 15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작업 과정을 소개했다.윤 작가는 “유 박사님은 우리 세대에겐 안티푸라민 등으로 너무나 익숙한 분”이라며 “하지만 (유한양행과) 첫 미팅 뒤 ‘이게 지옥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뗐다. “박사님이 자서전처럼 직접 쓴 기록이나, 자신의 내면과 생각을 드러낸 자료가 없더라고요. 인터뷰조차 없었어요. 일단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잔 생각에 몇 달 동안 자료만 읽었습니다.”윤 작가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유 박사의 삶 자체가 ‘드라마’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50세에 조국 해방을 위한 특수작전에 자원했고, 76세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윤 작가는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사람이 가능했을까 싶었다. 삶 전체가 그냥 드라마 소재라 봐도 된다”며 “제대로 된 전기로 그려보고 싶어, 80부짜리로 제안해 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했다.특히 1919년 3·1 운동 직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 등 재미 한인 리더들이 ‘한인 자유 대회’를 열 당시, 유 박사가 결의문 작성 역할을 맡았던 점도 언급했다. 유 박사는 미 독립선언서의 핵심 구절을 계승해 ‘우리는 정부가 바로 피치자로부터 나오는 권력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라는 문장을 담았다.윤 작가는 이 장면을 웹툰에서 클라이막스로 그리기도 했다. 그는 “영화 변호인의 명대사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며 “어마어마하게 모던한 분”이라고 했다.“요즘 불확실성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유 박사님이 겪은 걸 뛰어넘는 불확실성이 있었을까요. 우리가 목격하고 배워야 할 건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자기 내면을 블록 쌓듯 탄탄하게 쌓아왔는지, 어떻게 흔들리지 않았는지입니다. 전 운 좋게도 이번 기회를 통해 박사님을 배웠는데,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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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K호러로 풀어낸 인종-젠더 차별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눈알이 제일 맛있단다’. 1993년생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2024년 데뷔작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초식동물처럼 늘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아시아계 여성의 감각을 뒤틀린 호러로 풀어냈다. 소설의 출발은 일상적이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는 ‘조지’라는 중년 백인 남성과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남자, ‘옐로 피버(yellow fever·아시아 여성에 대한 성적 환상)’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다른 여성들에게 추근대는 데 거리낌이 없다. 두 딸이 보기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물. 문제는 그의 시선이 자매에게까지 향한다는 점이다. 먹잇감을 훑듯 노려보는 눈. 초식동물이 포식자의 기척을 감지하듯, 자매는 그 시선을 예민하게 감각한다. 균열은 그때 시작된다. 자매 중 언니인 주인공은 꿈에서 조지의 푸른 눈을 마주한다. 나팔꽃처럼 밝고 선명한 눈동자가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집요하게 좇는 꿈이다. 주인공은 눈알을 입에 넣고 씹어 삼키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다. 공포와 쾌감이 뒤섞인 감각이 서사를 밀어 간다. 이 기괴한 상상력은 작가의 개인적 기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작가는 198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한 어머니를 통해 생선 눈을 먹는 풍습 등 한국의 여러 문화와 미신을 접했다. 여기에 팬데믹 시기 급증한 아시아인 혐오 범죄, 특히 2021년 애틀랜타에서 아시아 여성 6명이 총격으로 희생된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소설은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보는 자’의 폭력성과 ‘보여지는 자’의 불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다만 1970년대 한국을 묘사하는 대목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굶주림 속에 나무껍질이나 들쥐를 먹는 장면은 시대 고증이 너무 빗나간 듯하다. 그럼에도 음식과 감각을 다루는 문장은 인상적이다. 바싹 구운 생선의 뼈를 발라내는 장면은 유난히 생생하고, 서사는 속도감 있다. 초식동물처럼 살아남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워야 했던 존재가, 어느 순간 포식자의 욕망을 되돌려 쥐는 순간. 소설은 그 전복의 감각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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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이 쓴 글 모두 학습한 AI, 시 창작 넘어 시인 정체성까지 창조”

    《2022년 11월 서울 대학로의 한 무대.김언 시인은 인공지능(AI)에 자신이 2012년에 쓴 일기를 입력한 뒤, 이를 바탕으로 2022년의 ‘미래 일기’를 써 보라고 했다. AI는 곧바로 새로운 일기를 만들어 냈다. 당사자가 무대 위에 서 있는 상황에서, 기계가 그의 일기를 대신 쓰는 장면. 관객들은 개인의 경험을 담는 일기가 AI에 의해 쓰이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이 실험은 창작 과정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AI가 소설이나 시를 쓸 수 있다는 건 이제 더 이상 생소한 주제가 아니다. 이미 해외에선 AI를 활용한 다양한 창작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AI라는 새로운 ‘글쓰기 도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인간은 이런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 2022년 무대를 함께 기획했던 김 시인과 허희 문학평론가, 권보연 사이버텍스트 디자이너가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여 ‘AI와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세 사람은 2024년 3월부터 매달 AI 문학 스터디를 이어 왔다. 김 시인은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대 출신 시인’이고, 권 디자이너는 정보기술(IT) 업계 경력을 바탕으로 AI로 글 짓는 방식을 설계하고 있다. 허 평론가 역시 인공지능과 문학의 관계를 탐구하는 ‘AI 포에틱스’를 주요 연구 축으로 삼고 있다. 기술과 문학을 함께 다뤄 온 공통점을 지닌 세 사람은 최근 공저 ‘어쩌면 문학이 아닐지도 몰라’(리메로북스)도 펴냈다.● “AI 안 쓰는 작가 없다”권보연=요즘 작가들 중에 AI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AI를 쓰는 영역이 검색이냐 창작이냐의 차이일 뿐, 하나도 안 쓸 수는 없다. 구글 검색 자체가 이미 AI를 바탕으로 작동하지 않나. 김언=이런 질문은 이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작가가 있을까’라는 질문과 비슷해졌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기 문학의 일부로 삼든, 아니면 단순한 자료 조사에 그치든 AI는 이미 스마트폰처럼 쓰이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본다. 허희=최근 황석영 작가가 소설 ‘할매’를 쓰면서 자료 조사에 챗GPT를 활용했다는 점이 언론에서 크게 다뤄졌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까지 대서특필할 일인가 싶었다. 한국 문학장에서 AI를 바라보는 수준이 아직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약하다. 권=다른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AI 활용을 드러내지 않는데, 굳이 숨길 일도 아니라고 본다. 작가가 자료 조사를 할 때 AI를 활용하는 건, 길 찾을 때 내비게이션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AI 문학이 겨냥하는 지점은 그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 예를 들어 김언 시인이 그동안 쓴 시와 글을 모두 학습시켜, 그것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AI가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표현을 만들어 내는 시대가 온다면, 문학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AI 윤동주가 윤동주와 얼마나 비슷한가’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더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수면 위에서만 맴도는 느낌이다. 허=유발 하라리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AI가 음악에서 차이콥스키를 넘어설 필요는 없고, 브리트니 스피어스만 능가하면 된다고. 그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한강 작가나 김혜순 시인을 뛰어넘는 작품을 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권=애초에 ‘뛰어넘는다’는 발상 자체가 크게 의미 있는지 의문이다. 특정 예술가를 넘어서기 위해 창작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 자기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AI 문학의 다양한 얼굴허=미국 시인 찰스 번스타인은 자신의 평생 저작을 AI에 학습시켜, 자신의 언어관에 입각한 새로운 시가 가능한지를 실험했다. 번스타인은 여기서 스스로를 창작자가 아니라 큐레이터로 설정하고,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선별하고 재배열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인간의 창작물도 기계의 산출물도 아닌, 일종의 ‘제3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AI는 번스타인의 시적 스타일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기억과 정체성까지 흡수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 권=AI 문학은 공연 형식으로 풀면 훨씬 더 흥미로울 수 있다. 결과물보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이른바 ‘블랙박스’를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문학적 체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책이라는 형식은 AI 문학으로선 오히려 불리한 측면이 있다. 분량이나 지면의 한계 때문에 그런 과정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 김=카메라와 회화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카메라가 등장했다고 해서 회화가 사라진 건 아니다. 두 영역이 일부 향유층을 공유하면서도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AI 문학과 인간 문학도 제로섬 관계라기보다 서로 다른 문학성을 향해 가지를 뻗어갈 가능성이 있다. 권=조금 도발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해 보겠다. 2008년 세계 시인 3164명의 이름을 내건 시선집 ‘이슈1’이 공개된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작품을 보낸 시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편집자들이 기존 문학계에 충격을 주기 위해 AI로 생성한 시를 넣고, 시인들의 이름을 무단으로 기재했다. 당시 이름을 도용당한 시인 베리 슈왑스키는 “이 사건 덕분에 AI 시대의 시인이 겪게 될 위기를 미리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앞으로 더 쉽게 반복될 수 있다. 예컨대 김언 시인의 이름을 단 시집이 김 시인과 무관하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막 팔리는 일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김=고속도로에서 좀 팔렸으면 좋겠다.(웃음)● 다음 세대는 무엇을 읽을까권=생성형 AI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1000만 편의 시를 만드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종래의 미적 기준으로 보면 ‘쓸데없다, 자원 낭비다’라고도 할 수 있는 시들이다. 하지만 AI는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따지지 않고 큰 의미를 두지도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향유’라는 개념이다. 즐길 수 있는 것, 즉 놀이로서의 의미는 분명히 있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놀이를 원한다. 그게 문학이든 쇼츠든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문학이 그런 즐거움을 담당했다. 제가 대학 다니던 1990년대만 해도 한국 소설의 황금기였고, 대학생이라면 자연스럽게 소설을 읽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다른 방식의 놀이를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 방향이 맞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이미 변화는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김=앞으로는,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보다 ‘지금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가 등장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즉각 소비할 수 있는 ‘기성품’ 같은 문학이 따로 있을 것이다. 반면 기존 문학은 시장에서 밀려나 골동품처럼 남거나, 기성품과는 다른 ‘명품’으로 자리 잡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이게 될 것 같다. 허=문학은 사라진다기보다 층위가 나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는, ‘어쨌든 문학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인간 사유의 정점’이라고 여기는 독자들도 계속 존재하지 않겠나. 대다수 95%의 독자는 결과를 볼 것이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나, 나에게 얼마나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가. 다만 나머지 5%가 있기 때문에 (기존 방식의) 문학도 가능해진다. 권=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건 AI 문학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사건’을 일으키는 예술가들이 필요하다. 단순히 문체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한 작가의 모든 저작을 학습시켜 전혀 다른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까지 밀어붙여 봐야 한다. 허=그래서 대가들이 좀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바라고 있다. 권=김 시인부터 제가 설득을 해보려고 한다. 한번 사건을 일으켜 보자. 김=생각을 좀 해 보겠다.(웃음)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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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에 ‘AI 문학’ 부문 신설될 수도 있어”

    15일 김언 시인과 허희 문학평론가, 권보연 사이버텍스트 디자이너의 대담에선 신춘문예와 노벨 문학상 등 기존 문학계를 지탱해 온 제도들이 인공지능(AI) 문학 시대에 어떤 변화를 맞을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최근 언론사 신춘문예를 진행하는 주요 언론사는 응모 편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진행한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역시 9개 부문에 걸쳐 접수된 작품은 총 9113편으로, 2024년(7384편)보다 1729편이 더 늘어났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선 “AI 활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신춘문예도 면접을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몇몇 신춘문예는 공모 요강에 ‘AI로 작성한 것이 드러날 경우 당선을 취소한다’는 문구를 명시하기도 한다.● “신춘문예에 ‘AI 문학’ 부문 만들자” 김 시인은 신춘문예에 아예 ‘AI 문학’ 부문을 신설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그는 “일부 대학에선 이미 AI를 활용한 문학·영화 공모전이 열린다”며 “차라리 별도 부문을 만들어 실험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권 디자이너는 이럴 경우 ‘과정 검증’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최종 결과물만 놓고 인간과 비교해 우열을 가리는 방식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며 “프롬프트, 데이터베이스, 사용한 도구, 창작자의 의도와 비전까지 함께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디자이너는 이어 “이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과 역량”이라며 “문학가뿐 아니라 공학자, 사회학자, 법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심사위원이 함께 참여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협업적 심사 구조야말로 AI 문학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방식일 것”이라는 얘기다. 미래 세대의 인식 변화도 언급됐다. 김 시인은 “10년쯤 지나면 AI를 활용해 썼다는 사실 자체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세대가 등장할 수 있다”며 “인간이 썼는지 AI가 썼는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질문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50년 뒤 노벨 문학상은 노벨 문학상은 ‘인간 문학’의 마지막 보루로 남을까. 허 평론가는 노벨 문학상 역시 끊임없이 문학의 경계를 확장해 온 제도라고 짚었다. 2016년 밥 딜런의 수상 당시에도 ‘대중 가수가 어떻게 문학상 수상자가 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수상 때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작품이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거셌다. 허 평론가는 “노벨 문학상은 계속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온 제도”라며 “AI와 문학이 결합한 형태의 작품이 충분히 축적된다면, 50년 뒤에는 그런 작품이 선택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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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퀴벌레에 대한 공포감, 그건 사실일까 해석일까

    ‘원효대사 해골 물’은 해석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리 보일 수 있음을 일깨우는 고전적 이야기다. 미국 작가 매슈 맥스웰의 그림에세이 ‘바퀴벌레 이야기’(동아시아)는 이런 깨달음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해골물뿐 아니라, 바퀴벌레조차 다르게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맥스웰 작가를 16일 서면으로 만났다. 작가는 자신을 “바퀴벌레가 흔한 콜로라도와 텍사스에서 호기심 많은 소년으로 자랐다”고 소개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바퀴벌레를 발견할 때마다 비명을 지르던 모습을 보며, 그는 이를 자연스럽게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바퀴벌레를 혐오한다”며 “바로 그 보편성이 이 소재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고 했다. 책은 어느 날 식탁에 나타난 바퀴벌레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소년에게서 출발한다. 그러나 곧 질문이 이어진다. ‘나는 왜 바퀴벌레를 싫어하게 됐을까? 실제로 해를 입은 적도 없는데.’ 이 물음은 사랑, 과거, 죽음 등 인간을 괴롭히는 주제로 확장된다. 소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감정과 믿음을 의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해 나간다. 혹시 스스로를 바퀴벌레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그들을 향해서도 조용히 손을 내민다. 작가는 “과거에 그토록 싫어했던 ‘저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이 책이 탄생했다”며 “스스로에 대해 가졌던 믿음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자, 자기애가 깊어졌고 주변을 향한 연민과 호기심도 함께 커졌다”고 했다.작가는 해석을 바꾸는 구체적인 방법도 소개했다. 첫 단계는 ‘알아차리기’. 그는 사흘 동안 수첩을 들고 다니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적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다음 단계는 그 믿음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 묻기. “이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해석인가?” 예를 들어 “나는 멍청해”라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다. 그는 그 생각을 내려놓고 새로운 해석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이때 중요한 건 단순히 정반대로 뒤집지 않는 것이다.“‘나는 멍청해’를 ‘나는 똑똑해’로 바꾸는 식의 대응은 오히려 내면에서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 있어요. 그 대신 ‘삶은 경이롭다’거나 ‘난 축복받은 존재다’처럼 전혀 다른 방향의 문장을 선택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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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퀴벌레를 다시 보게 되는 순간, 나도 달라진다

    ‘원효대사 해골 물’은 해석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리 보일 수 있음을 일깨우는 고전적 이야기다. 미국 작가 매슈 맥스웰의 그림에세이 ‘바퀴벌레 이야기’(동아시아)는 이런 깨달음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해골물뿐 아니라, 바퀴벌레조차 다르게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맥스웰 작가를 16일 서면으로 만났다.작가는 자신을 “바퀴벌레가 흔한 콜로라도와 텍사스에서 호기심 많은 소년으로 자랐다”고 소개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바퀴벌레를 발견할 때마다 비명을 지르던 모습을 보며, 그는 이를 자연스럽게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바퀴벌레를 혐오한다”며 “바로 그 보편성이 이 소재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고 했다.책은 어느 날 식탁에 나타난 바퀴벌레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소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곧 질문이 이어진다. ‘나는 왜 바퀴벌레를 싫어하게 됐을까? 실제로 해를 입은 적도 없는데.’ 이 물음은 사랑, 과거, 죽음 등 인간을 괴롭히는 주제로 확장된다. 소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감정과 믿음을 의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해 나간다.혹시 스스로를 바퀴벌레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그들을 향해서도 조용히 손을 내민다. 작가는 “과거에 그토록 싫어했던 ‘제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이 책이 탄생했다”며 “스스로에 대해 가졌던 믿음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자, 자기애가 깊어졌고 주변을 향한 연민과 호기심도 함께 커졌다”고 했다.작가는 해석을 바꾸는 구체적인 방법도 소개했다. 첫 단계는 ‘알아차리기.’ 그는 사흘 동안 수첩을 들고 다니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적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다음 단계는 그 믿음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 묻기. “이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해석인가?”예를 들어 “나는 멍청해”라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다. 그는 그 생각을 내려놓고 새로운 해석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이때 중요한 건 단순히 정반대로 뒤집지 않는 것이다. “‘나는 멍청해’를 ‘나는 똑똑해’로 바꾸는 식의 대응은 오히려 내면에서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 있어요. 대신 ‘삶은 경이롭다’거나 ‘난 축복받은 존재다’처럼 전혀 다른 방향의 문장을 선택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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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금이 작가, ‘아동문학 노벨상’ 안데르센상 수상 불발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이금이 작가가 끝내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2024년에 이어 다시 한번 같은 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수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는 13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개막 기자회견에서 2026년 안데르센상 글 부문 수상자로 영국 작가 마이클 로즌을 선정했다고 밝혔다.이금이 작가는 글 부문 최종 후보 6인에 포함됐다. 1984년 단편 동화 ‘영구랑 흑구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너도 하늘말나리야’, ‘소희의 방’, ‘숨은 길 찾기’ 3부작을 비롯해 ‘유진과 유진’, ‘허구의 삶’ 등으로 한국 아동·청소년 문학을 대표해 온 작가다.1956년 제정된 안데르센상은 아동 도서의 작가와 삽화가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국제적인 권위를 지닌 상이다. 국제아동도서평의회(IBBY)가 아동문학에 중요하고 지속적인 기여를 한 작가와 삽화가에게 격년으로 수여한다. 이수지 작가가 지난 2022년 그림 부문에서 안데르센상을 받은 바 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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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15세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느린 그림’

    자폐성 발달장애를 지닌 아이가 영국 사치갤러리 작가가 되기까지, 만 15세의 색연필 작가 양예준 군과 어머니 장윤경 씨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예준 군의 그림은 안정감을 찾기 위해 손에 쥔 것을 끊임없이 흔드는 상동행동에서 시작됐다. 어머니 장 씨는 이를 멈추기보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연필을 흔드는 대신 스케치북 위에서 마음껏 색을 흔들어 보게 한 것. 피할 수 없다면 함께 느껴 보고, 그 안에서 길을 찾겠다는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미술학원을 찾았지만 발달장애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미술을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어머니는 결국 ‘엄마표 미술’을 시작했다. 예준 군은 하루 3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 넘게 앉아 색연필을 흔들었다. 그렇게 9년. 반복되던 상동행동은 점차 화면을 채우는 손짓이 됐고, 무의미해 보이던 움직임은 표현이자 예술로 바뀌었다. 성과도 뒤따랐다. 예준 군은 2022년 영국 사치갤러리 청소년 참여 작가로 선정됐다. 국내 초중고교생 중 6명만 선발해 유명 작가들과 함께 전시에 참여하는 이 공모에서 색연필로 그린 오랑우탄 작품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된 것. 국내외 미술대회 70여 건 수상, 서울역광장 미디어 전시 참여, 서울 양천구 선정 작가 개인전 등 이력을 쌓았다. 흔들던 손이 관객을 불러 모으는 작품으로 이어진 셈이다. 공모전 심사 과정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장애를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선입견 없이 작품 자체로 평가받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행동을 멈추게 하기보다 표현으로 바꿔낸 선택이 어떻게 한 아이의 세계를 넓혔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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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호르무즈, 지브롤터… 지정학 격전지 된 바다 21곳

    “인간을 굴복시키는 것들 중 바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변수와 맞물려 세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지금처럼 이 말이 시의적절할 때가 있을까. 세계의 시선이 바다로 향하고 있다. 신간은 프랑스 아르테 방송에서 지정학 프로그램 ‘지도의 이면’을 연출·진행해 온 저널리스트가 수년 동안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해 온 지정학 박사와 공저했다. 프랑스에서 10만 부 이상 판매된 지도책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의 후속작으로, 이번엔 바다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호르무즈 해협, 대만 해협, 지브롤터 해협 등을 직접 답사하고 5대양 113개 바다 가운데 21곳을 선별해 소개한다. 이 책의 장점은 지도를 통해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즐거움이다. 가령 호르무즈 해협은 지도만 봐도 전략적 ‘빗장’ 역할을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사실상 유일한 출입구이기 때문이다. 해협의 조건도 긴장을 키운다. 수심은 얕고 폭은 약 45km에 불과하다. 구조적으로 언제든 봉쇄 위협에 노출돼 있다. 이는 1970년대 이후 이 지역의 군사화가 가속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2023년 각각 세계 무기 수입의 9.6%, 9.4%를 차지하며 인도에 이어 세계 2·3위 무기 수입국에 올랐다. 각국은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우회로 확보에도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부 석유를 육상 송유관으로 홍해 연안까지 수송하고 있고, 아랍에미리트 역시 아부다비 유전과 오만만의 푸자이라 항구를 잇는 송유관 건설에 투자했다. 저자는 바다가 현대 세계의 핵심 무대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에는 흑해가 있고, 중동 분쟁의 긴장선에는 홍해가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해 세계 해상 물류가 흔들린 장면은 바다의 전략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대국의 조건 역시 바다에서 결정된다. 세계 1위 해양 강국인 미국은 동맹국에 배치된 해군기지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배타적경제수역을 바탕으로 바다를 통제하고 있다. 불과 20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유럽 해양 강국들에 비해 뒤처진 국가였다. 해양 전략이 국가 위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역시 바다를 향해 체스 말을 옮기고 있다.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에서 파키스탄 과다르, 홍해 지부티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 항만에 투자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상업적 목적과 함께 군사적 활용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오늘날 세계 무역의 90%가 해상 운송으로 이뤄지고, 인터넷 데이터의 98%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오간다. 육지에만 눈길이 머물러서는 21세기의 쟁점을 이해할 수 없다. 110개 지도로 세계 해양 패권의 흐름을 읽게 해주는 책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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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원이 된 엄마 아빠… 우린 서로 짐이 아닌 힘이 됐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변. 카센터와 종합설비 상가가 오밀조밀 모인 길 끄트머리에 2022년 12월, 15평짜리 선술집이 문을 열었다. 황혼의 부모와 막내딸이 운영하는 ‘연희동 핫플’로 소소하게 입소문이 난 ‘또또’다. 8일 가게에 들어서자 카키색 비니를 멋스럽게 쓴 어르신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12개 식탁의 홀서빙과 재료 구입을 담당하는 아버지 최철균 씨(74). 주방에서 재료를 손질하던 어머니 김민자 씨(68)도 나와 인사를 건넸다. 손님도 덩달아 예의를 갖추게 되는 가게였다. 이곳은 노부부의 둘째 딸이자 막내인 최윤선 씨(36)가 대표로, 부모를 고용한 가족 식당이다. 가게에선 ‘철균 님’, ‘민자 님’으로 호칭한다. 두 사람은 경기 평택에서 포장마차, 실내포차, 백반집 등 평생 외식업을 했다. 하지만 팬데믹 직격탄을 맞고 어머니 암 수술까지 겹치며 폐업 절차를 밟았다.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최 씨는 부모를 서울로 모셔와 십수 년 만에 함께 살며 장사를 시작했다. 곡절 끝에 먹고살 정도가 됐고, 5년 차를 맞은 올해 그간의 일을 담은 에세이 ‘내 가게에 부모님을 고용했습니다’(파이퍼프레스)도 펴냈다. 어떻게 하던 일을 관두고 ‘가녀장(家女長·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딸)’으로 나설 결심을 했을까.“감히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감정을 다 느꼈다고 할까요. 엄마가 아프면 슬프고, 돈이 없으면 힘들고. 그런 감정을 두 바퀴쯤 돌았다 싶으니까, 다시 반복할 자신이 없었어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돈이 있었던 적이 없으니 돈을 벌어 보고, 급진적으로 가족도 먹여 살려 보면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말하자면 인생에 없던 도약을 꿈꾼 셈인데, 그 와중에 부모의 손을 잡았다. 최 씨는 “요즘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지 않느냐”며 “키오스크 앞에 서면 저도 떨리는데 어르신들은 얼마나 위축될까. 멋진 사람들이 시대 변화 때문에 소외되는 모습이 용납이 안 됐다”고 했다. 효녀라는 주변 평가에는 최 씨는 고개를 저었다. 부모의 ‘달란트’에 확신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단다.“냉정하게 저보다 부모님의 능력이 훨씬 높아요. 나보다 엄마 아빠가 훨씬 멋있는데, 그 ‘무엇’으로 같이 먹고살아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술집에서 ‘38년 차 조리실장’인 민자 님은 잔칫상처럼 푸진 음식을 내놓고, 철균 님은 접객을 맡는다. 치즈감자전을 8등분으로 정갈하게 잘라내는 일도 그의 몫이다. 젊은 세대로 북적이는 선술집에서 남다르게 움직이는 철균 님은 손님들의 소셜미디어에 게재되며 또또의 마스코트가 됐다. 철균 님은 월급의 80%만 받는 3개월 인턴 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됐다고. 손님에게 반말이나 철 지난 농담을 삼가도록 교육도 받았다. 오랜 장사 경력이 있지만, ‘고용된’ 가게 기준에 맞춰 자신을 낮추고 다시 배웠다. 상경 초기, 철균 님이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할 때 있었던 일이다. 서울 지리를 잘 몰라 한동안 딸이 뒤에 타고 ‘부녀 배달 팀’으로 활동했다. 한번은 신축 대단지 아파트로 배달하다가 실수해 음식과 배달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부녀는 아직 따뜻한 족발을 벤치에 앉아 먹으며 “서울은 족발도 맛있네”, “덕분에 외식하네”라며 웃었다고 한다. 가족도 멀어지면 남보다 못한 세상. 또또네는 부모와 자녀가 ‘동료 가족’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많이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힌트까지도.“두 분 여생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사업은 저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고 있어요. 저는 매일매일 더 부자가 되고 있더라고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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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업에 암투병…‘가녀장’ 딸이 일군 15평 선술집의 기적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변. 카센터와 종합설비 상가가 오밀조밀 모인 길 끄트머리에 2022년 12월, 15평짜리 선술집이 문을 열었다. 황혼의 부모와 막내딸이 운영하는 ‘연희동 핫플’로 소소하게 입소문이 난 ‘또또’다.8일 가게에 들어서자 카키색 비니를 멋스럽게 쓴 어르신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12개 식탁의 홀서빙과 재료 사입을 담당하는 아버지 최철균 씨(74). 주방에서 재료를 손질하던 어머니 김민자 씨(68)도 나와 인사를 건넸다. 손님도 덩달아 예의를 갖추게 되는 가게였다.이곳은 노부부의 둘째 딸이자 막내인 최윤선 씨(36)가 대표로, 부모를 고용한 가족 식당이다. 가게에선 ‘철균 님’, ‘민자 님’으로 호칭한다. 두 사람은 경기 평택에서 포장마차, 실내포차, 백반집 등 평생 외식업을 했다. 하지만 팬데믹 직격탄을 맞고 어머니 암 수술까지 겹치며 폐업 절차를 밟았다.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최 씨는 부모를 서울로 모셔와 십수 년 만에 함께 살며 장사를 시작했다. 곡절 끝에 먹고 살 정도가 됐고, 5년 차를 맞은 올해 그간의 일을 담은 에세이 ‘내 가게에 부모님을 고용했습니다’(파이퍼프레스)도 펴냈다.어떻게 하던 일을 관두고 ‘가녀장(家女長·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딸)’으로 나설 결심을 했을까.“감히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감정을 다 느꼈다고 할까요. 엄마가 아프면 슬프고, 돈이 없으면 힘들고. 그런 감정을 두 바퀴쯤 돌았다 싶으니까, 다시 반복할 자신이 없었어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돈이 있었던 적이 없으니 돈을 벌어보고, 급진적으로 가족도 먹여 살려보면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어요.”말하자면 인생에 없던 도약을 꿈꾼 셈인데, 그 와중에 부모의 손을 잡았다. 최 씨는 “요즘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지 않느냐”며 “키오스크 앞에 서면 저도 떨리는데 어르신들은 얼마나 위축될까. 멋진 사람들이 시대 변화 때문에 소외되는 모습이 용납이 안 됐다”고 했다. 효녀라는 주변 평가에는 최 씨는 고개를 저었다. 부모의 ‘달란트’에 확신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단다.“냉정하게 저보다 부모님의 능력이 훨씬 높아요. 나보다 엄마 아빠가 훨씬 멋있는데, 그 ‘무엇’으로 같이 먹고 살아보면 되겠다고 생각했죠.”술집에서 ‘38년 차 조리 실장’인 민자 님은 잔칫상처럼 푸진 음식을 내놓고, 철균 님은 접객을 맡는다. 치즈 감자전을 8등분으로 정갈하게 잘라내는 일도 그의 몫이다. 젊은 세대로 북적이는 선술집에서 남다르게 움직이는 철균 님은 손님들의 소셜미디어에 게재되며 또또의 마스코트가 됐다. 철균 님은 월급의 80%만 받는 3개월 인턴 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됐다고. 손님에게 반말이나 철 지난 농담을 삼가도록 교육도 받았다. 오랜 장사 경력이 있지만, ‘고용된’ 가게 기준에 맞춰 자신을 낮추고 다시 배웠다.상경 초기, 철균 님이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할 때 있었던 일이다. 서울 지리를 잘 몰라 한동안 딸이 뒤에 타고 ‘부녀 배달 팀’으로 활동했다. 한 번은 신축 대단지 아파트로 배달하다가 실수해 음식과 배달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부녀는 아직 따뜻한 족발을 벤치에 앉아 먹으며 “서울은 족발도 맛있네”, “덕분에 외식하네”라며 웃었다고 한다.가족도 멀어지면 남보다 못한 세상. 또또 네는 부모와 자녀가 ‘동료 가족’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많이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힌트까지도.“두 분 여생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사업은 저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고 있어요. 저는 매일매일 더 부자가 되고 있더라고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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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양 당시 받은 건 작은 가방 하나… 그뒤의 얘기,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게 정말 다인가요?” 생후 8개월이던 1998년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입양된 안데르스 현 몰비크 보튼마르크.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는 2020년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먼저 양어머니에게 입양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입양 당시 기관으로부터 받은 건 작은 파란색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7일 출간된 책 ‘너의 한국 엄마에게’(푸른숲)에서 이 일화를 소개한 노르웨이 입양모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씨가 출간을 맞아 아들 안데르스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는 크리스티아니아대 리더십·조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보튼마르크 교수는 같은 날 열린 간담회에서 당시 대화를 떠올리며 “아들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습니다. 엄마로서 내가 가진 파란 가방이 전부가 아니라, 그 뒤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보튼마르크 교수는 아들 안데르스 현에 이어 2002년 딸 셀마 유 몰비크 보튼마르크도 한국에서 입양했다. 그는 이번 책에서 아들의 뿌리 찾기에 동행한 개인적 경험과 함께 국제 입양 산업의 구조를 추적한 조사 내용을 담았다. 아동 보호 비정부기구인 ‘국제사회서비스(ISS)’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에도 266명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 입양 보낸 아이의 수가 콜롬비아(387명)와 우크라이나(277명)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다. 보튼마르크 교수는 국제 입양의 어두운 면을 묻는 질문에 “너무 많아서요”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어 “처음 국제 입양은 6·25전쟁 고아를 돌본다는 선의에서 시작됐지만, 서구 사회에서 아이를 원하는 가정의 수요가 생기면서 빠르게 수요·공급 체계로 산업화됐다는 점이 충격적”이라며 “대체 내가 어떤 시스템에 가담한 것인지 묻게 됐다”고 말했다. 책에는 1970, 80년대 한국에서 해외 입양을 신속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들도 소개된다. 입양 절차를 서두르기 위해 호적을 조작하거나 부모가 있는 아이가 고아로 처리되는 사례가 있었고, 입양 예정 아동이 숨졌을 경우 다른 아이가 그 신원을 넘겨받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해외 입양을 중단하겠다는 목표 아래 국내 입양과 위탁가정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튼마르크 교수는 이에 대해 “선언 자체가 의미 있다. 해외 입양이 계속될 수 없다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복지 제도가 완비된 뒤 중단하겠다는 접근이 아니라 먼저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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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웨이 입양母 “국제입양, 고아 돌보는 선의에서 산업으로 변질”

    “이게 정말 다인가요?”생후 8개월이던 1998년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입양된 안데르스 현 몰비크 보튼마르크.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는 2020년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먼저 양어머니에게 입양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입양 당시 기관으로부터 받은 건 작은 파란색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7일 출간된 책 ‘너의 한국 엄마에게’(푸른숲)에서 이 일화를 소개한 노르웨이 입양모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씨가 출간을 맞아 아들 안데르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는 크리스티아니아대 리더십·조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사회학자이기도 하다.보튼마르크 교수는 같은 날 열린 간담회에서 당시 대화를 떠올리며 “아들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습니다. 엄마로서 내가 가진 파란 가방이 전부가 아니라, 그 뒤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보튼마르크 교수는 아들 안데르스 현에 이어 2002년 딸 셀마 유 몰비크 보튼마르크도 한국에서 입양했다. 그는 이번 책에서 아들의 뿌리 찾기에 동행한 개인적 경험과 함께 국제입양 산업의 구조를 추적한 조사 내용을 담았다.아동 보호 비정부기구인 ‘국제사회서비스(ISS)’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에도 266명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 입양 보낸 아이의 수가 콜롬비아(387명)와 우크라이나(277명)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다. 보튼마르크 교수는 국제입양의 어두운 면을 묻는 질문에 “너무 많아서요”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어 “처음 국제입양은 6·25 전쟁 고아를 돌본다는 선의에서 시작됐지만, 서구 사회에서 아이를 원하는 가정의 수요가 생기면서 빠르게 수요·공급 체계로 산업화됐다는 점이 충격적”이라며 “대체 내가 어떤 시스템에 가담한 것인지 묻게 됐다”고 말했다.책에는 1970, 80년대 한국에서 해외입양을 신속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들도 소개된다. 입양 절차를 서두르기 위해 호적을 조작하거나 부모가 있는 아이가 고아로 처리되는 사례가 있었고, 입양 예정 아동이 숨졌을 경우 다른 아이가 그 신원을 넘겨받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한국 정부는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해외입양을 중단하겠다는 목표 아래, 국내 입양과 위탁가정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튼마르크 교수는 이에 대해 “선언 자체가 의미 있다. 해외입양이 계속될 수 없다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복지 제도가 완비된 뒤 중단하겠다는 접근이 아니라 먼저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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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붙잡을수록 멀어져’… 고양이 테마 소설 10편 묶어

    1984년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한 황인숙 시인(68). 그는 매일 밤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돌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높낮이가 만만치 않은 언덕배기 해방촌 일대를 오르내리며, 길고양이들에게 쓰는 시간만 하루 수 시간. 해방촌 한 집에서만 20년째 살아온 황 시인은 어느새 동네 길고양이들의 ‘거리 집사’가 됐다. 그 경험은 최근 단편소설 ‘하얀 새틴의 밤’에 담담하게 스며들었다. 작품엔 매일 고양이 밥을 챙기는, 시인을 닮은 화자가 등장한다. 길고양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화자는 이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더는 좋아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게 눈이다. 눈비가 내리면 고양이 밥이 무방비로 망가지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웬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젖은 건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소복이 쌓인 눈 아래 멀쩡한 밥이 그대로 남아 있어도 끝내 굶고 만다. “우아한 고양이들 같으니라고.” 하늘에선 얇디얇은 새하얀 새틴 커튼이 끝없이 내려온다. 아름다운 풍경마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다르게 보인다는 걸, 화자는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지난달 25일 고양이를 소재로 출간된 소설집 ‘고양이, 부르면 오지 않는 것들’(잉걸북스·사진)에 수록된 작품이다. 황인숙, 이순원 등 원로 작가를 필두로 서성란, 고은규 등이 참여해 고양이를 매개로 한 열 편의 이야기를 묶었다. 기획은 소설가이기도 한 신승철 잉걸북스 대표가 맡았다. 그는 “고양이를 테마로 소설을 모아보겠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예상보다 많은 투고가 들어왔다”며 “결과적으로 절반은 투고, 절반은 청탁으로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가들이 고양이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신 대표는 “고양이의 습성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람 이야기로 닿게 된다”며 “불러도 오지 않는 것들, 하고자 하지만 성사되지 않는 것들, 좌절된 욕망 같은 심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앞에 선 고양이는 붙잡을수록 멀어지고, 내려놓을수록 곁에 남는다. 작가들은 이런 고양이의 속성을 통해 관계의 거리와 삶의 아이러니를 담담하게 비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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