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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형저축(근로자 재산형성저축) 관련해서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지요?”(1월 2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업무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인수위 분과별 업무보고에서 ‘법(法)’에 대한 주문을 쏟아 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실현을 위한 사회보장기본법(모법) 후속 조치로 개별법에 대한 개정 검토가 있어야 한다” “당에서 이미 발의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에 대해 국회에서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해 달라” 등 법 제정과 개정 등에 대한 당부가 이어졌다. 이는 박 당선인이 입법 조치를 공약에 쐐기를 박기 위한 첫 단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새누리당을 이끌었던 지난해 4·11총선 때도 총선 공약 관련 62개 법안 리스트를 만들었고 19대 국회 개원 직후 61개를 발의했다. 의정 활동 경험상 법안 발의에 시간을 끌면 타이밍을 놓쳐 아예 추진이 물 건너 갈 수 있다는 판단도 있다. 이에 인수위도 6일까지 분과별로 ‘박근혜 공약법’ 추진 로드맵을 작성해 국정기획조정분과에서 취합할 예정이다. ‘이미 국회에 발의된 법안 ○건, 신규 입법이 필요한 법안 ○건, 대통령령을 포함해 개정이 필요한 시행령 ○건’ 방식으로 정리한다. 앞서 법제처도 인수위에 당선인의 공약 실현에 필요한 법안 제정·개정 리스트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공약’ 입법 추진 계획에 담길 주요 개정 법안으로는 △60세 정년 법제화를 위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용촉진법’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위한 ‘근로기준법’ △기초연금 도입을 위한 ‘기초노령연금법’과 ‘국민연금법’ △‘정부 3.0’ 구상에 따라 공공정보의 민간 개방을 위한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지하경제 양성화 등 조세 정의 확립을 위한 ‘국세기본법’ △금산분리 강화를 위한 ‘은행업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등이 있다. 선행학습 유발 시험 출제 금지를 위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 특별법’ 등 제정 법안도 있다. 인수위는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서 추진해야 할 법안과 새누리당에서 추진할 법안을 정리해 조만간 새누리당에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박근혜 타이머’가 따로 있다.” 정치권 안팎의 예측과 관행을 비켜가는 박 당선인 특유의 ‘타이밍 정치’를 두고 나온 말이다. 박 당선인 주변에서는 그동안 국무총리 등 인선의 마지노선으로 4일을 꼽는 이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25일을 기준으로 역산하면 “4일까지만 하면 절차상 큰 무리는 없다”라는 것이다. ‘국회는 임명동의안 등이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그 심사 또는 인사 청문을 마쳐야 한다’라는 인사청문회법 규정을 존중한다는 취지였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대통령비서실장이나 청와대 주요 수석비서관의 인선이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후임 인선은 인사 검증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청와대 인선을 먼저 하는 게 좋겠다”라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건의도 지난달 31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후까지 아무런 발표 소식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박 당선인 측도 ‘늑장 인선’ 지적 속에 머쓱해졌다. 이미 “2008년 이명박 당선인도 1월 28일 초대 총리 후보자를 발표했다. 우리가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아니다”에서 김 후보자 사퇴 뒤 “4일까지면 큰 무리는 없다”라고 한 차례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총리 인선에 대해선 “박 당선인이 생각해 둔 이가 있는 것 같다”라는 말만 공통적으로 나왔다. 박 당선인은 인선 작업에 속도를 내고는 있지만 최근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라는 말을 주위에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장관의 경우 사실상 인선을 마무리 짓더라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기다릴 개연성이 높다. 결국 총리, 청와대, 내각의 인선 시기는 박 당선인의 결심에 따른 ‘박근혜 타이머’에 달려 있다. 박 당선인은 15년 정치 인생 동안 위기나 결단의 순간마다 모든 논란이 분출될 만큼 분출될 때까지 기다리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단칼에 처리하는 정치 스타일을 선보였다. 대선 과정에서 과거사 논란에 대한 대처 방식이 대표적이다. 한 관계자는 “‘박근혜식 타이밍 정치’는 상황에 좌우되기보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최적의 순간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로켓 기술에서) 3년 내 북한 정도 하는 것은…. 그렇게 얘기를 해서 국민들을 안심을 좀 시켜줍시다.”(장순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4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을 찾은 인수위 교육과학분과에선 한국과 북한의 로켓 기술이 화제에 올랐다. 항우연은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개발과 발사 운영을 총괄했다. 김승조 원장이 먼저 북한이 지난해 12월 발사한 장거리로켓(은하3호)을 언급하며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그게 미사일이 될까이지 로켓의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더 나아질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30t급 엔진 4개를 묶어 로켓을 발사했는데 “그 엔진을 왕창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조광래 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도 “(러시아와) 숨은 협력이 있었다”며 “상당한 기술 습득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이에 장 위원은 “우리가 북한보다 2∼3년 정도 차이가 나지만 3년만 열심히 하면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장 위원은 인수위 활동 기간인 지난달 10일부터 2주가량 자신이 개편을 주도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차량을 여러 차례 이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KINS가 개편에 대비하기 위해 장 위원에게 편의제공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 위원은 “급할 때 몇 번 탄 것은 사실이지만 1월 말 이후 타지 않았다”며 “차량 주인과는 사제지간”이라고 해명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검소한 옷차림과 변치 않는 헤어스타일로 유명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이례적으로 ‘고가(高價) 백’ 논란이 제기됐다. 박 당선인 측은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박 당선인은 대선 이후 수납공간이 넓은 쇼퍼백(장바구니 모양) 스타일의 회색 가죽가방을 새로 구매해 애용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인기를 끌어온 올록볼록 엠보싱 무늬의 ‘타조(가죽)백’이다. 일부 누리꾼이 ‘이 가방이 100만 원이 넘는 고액’이란 의혹을 제기한 것은 지난달 30일경. 인수위 업무보고 참석차 박 당선인이 가방을 들고 차량에서 내리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였다. 이른바 ‘누리꾼 수사대’는 “국내 브랜드인 H사의 128만 원짜리 타조백”이라고 주장했다. H사 관계자가 “디자인과 색상이 딱 봐도 우리 것이 맞다”고 했다는 얘기도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러나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은 2일 “박 당선인이 사용하는 가방은 국산 고가 브랜드 제품이 아니며 국내 한 영세업체가 작은 가게에서 만든 저렴한 가격의 제품”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박 당선인이 그동안 들던 가죽가방 2개가 10년도 더 지나 가장자리가 다 해어지고, 가죽이 반들반들해져 최근 수작업 가방을 하나 새로 장만했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 측은 구체적인 가격은 밝히지 않았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타조백은 가죽의 질과 장인(匠人)에 따라 30만, 40만 원대부터 수백만 원대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며 “박 당선인의 가방은 타조백 중에서는 중저가 제품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새 정부가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해도 국민연금 가입자의 혜택은 늘리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노인은 기초연금 도입 이후에도 지금보다 일정액을 더 받는다. 경제적 형편이 비슷하면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바뀌는 셈이다.○ 국민연금 가입자 역차별 해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8일 인수위를 통해 공개한 기초연금 구상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최소 월 20만 원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기초노령연금을 없애면서 국민연금 미가입자에겐 기초연금을 주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는 기초연금(20만 원)에 모자라는 액수를 채워주는 방식. 이에 대해 역차별 논란이 나왔다. 보험료를 10년 동안 꼬박꼬박 냈던 국민연금 가입자와 미가입자가 똑같은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가입 의무가 없는데도 국민연금을 붓던 임의가입자의 탈퇴 움직임까지 감지됐다. 결국 인수위는 형평성을 위해 기초연금 제도를 손질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까지 유력하게 논의한 방안은 65세 이상 노인을 4개 그룹으로 나눠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는 식이다.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동시에 받던 그룹은 국민연금 수령액에 기초연금(20만 원)을 추가한 뒤 소득을 감안해 일정액을 깎기로 했다. 구체적인 비율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깎는 액수를 줄여 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한 가입자의 심리적 박탈감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이 경우 실제 수령액은 전체적으로 3만∼5만 원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현재 국민연금(20만 원)과 기초노령연금(10만 원)을 합쳐 30만 원을 받는 노인은 앞으로 국민연금(20만 원)과 기초연금(20만 원)을 합친 액수에서 소득 수준을 감안해 5만∼7만 원을 깎은 33만∼35만 원을 받는다.○ 국민연금 임의가입자 탈퇴 막아야 기초노령연금에서 배제됐던 소득 상위 30% 중에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는 10만 원 이하의 연금을 추가로 지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소득이 상위 30%이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그룹(100만 명)이다.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기초연금을 줄지가 논란이다. 이들의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월 5만 원 정도의 액수는 실효성이 적지만 예산 부담은 만만치 않다. 모든 노인에게 연금 혜택을 준다는 원칙을 세운다면 모든 노인이 지금보다 3만∼10만 원의 연금을 더 받는다. 인수위와 복지부 관계자들은 국민연금 임의가입자의 탈퇴 조짐에 우려를 나타냈다. 복지부 관계자는 “섣부른 유불리 판단 때문에 국민연금 가입자가 수급 자격을 잃을까 걱정이다. 아직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의 최성재 고용복지분과 간사는 3일 간사단 회의에 앞서 기초연금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면서도 “어느 계층도 손해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근형·홍수영 기자 noel@donga.com}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인사전략가’로 통한다. 10월 유신으로 독재 체제를 수립한 뒤 서서히 몰락의 길에 들어섰지만, 현재도 장단점을 깊이 따져보고 벤치마킹할 만한 특유의 용인술을 보여줬다. ○ 장수형 용인술박 전 대통령은 현장 지휘관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되 전투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장수형 용인술’을 폈다.경제부총리제를 만들어 경제정책과 관련된 제반 권한을 보장했고, 국면전환용으로 부총리나 장관을 교체하는 일도 많지 않았다. 초대 경제부총리인 장기영 전 부총리는 3년 5개월 동안 재임하며 외자 도입을 주도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경제부총리 시절 최장수인 4년 3개월 동안 재임하며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밀고 나갔다.차관 이하 인사권은 원칙적으로 장관에게 있었다. 대통령비서실에서 각 부처에 연락할 때도 국·실장이 아니라 장관에게만 연락하게 해 장관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했다.그 대신 책임은 엄격하게 물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을 이끌며 ‘불도저’라는 별칭을 얻은 장 전 부총리였지만 삼성계열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대처를 잘못하자 즉각 경질했다. 장·차관 공동운명제도 적용했다. 장관이 데리고 일할 사람으로 차관을 인선하게 한 만큼 차관이 중대한 잘못을 저지를 경우 장관까지 함께 물러나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총리와 장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따른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 발표되자마자 ‘책임총리’로 적합한 인물이냐는 논란이 일었다. 추후 인선에서는 자율성을 갖고 권한과 책임을 행사할 수 있는 책임총리, 책임장관제에 적합한 인사를 기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통 큰 용인술5대 대선 이틀 전인 1963년 10월 13일 동아일보는 당시 박정희 공화당 후보가 여수·순천사건 관련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사실을 호외로 보도했다. 당시 사상 논쟁은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만큼 그는 동아일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표출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 그는 초대 국무총리로 최두선 당시 동아일보 사장을 임명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 사례를 언급하며 “박 전 대통령의 용인술은 한마디로 폭이 넓었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섰던 인사까지 과감히 발탁했다는 것.이 전 의장은 예편한 이한림 장군을 1969년 건설부 장관에 임명한 것도 박 전 대통령의 ‘통 큰 용인술’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했다. 그는 5·16군사정변 당시 1군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 개입 반대’를 외치며 혁명군을 진압하려 했기 때문이다.▼ 5·16 진압하려한 이한림 장군을 장관 임명 ‘통큰 인사’ ▼능력만 있다면 지역적인 연고를 묻지 않고 요직에 기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전남 영광 출신의 박경원 2군사령관을 내무부 장관을 포함해 세 차례 장관으로 임명했다. 광주 출신인 정래혁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인사 대탕평’ 의지를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람이나 대표적인 탈박(脫朴) 인사로 분류됐던 김무성 전 의원을 중책에 기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15년의 정치 인생 동안 자신을 겨냥해 쓴소리를 하거나 불편한 관계를 겪은 인사들을 끌어안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는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다. ○ CEO형 용인술현장에서 실무를 관장하는 젊은 인재들을 눈여겨봤다가 직접 발탁하는 것도 ‘박정희 스타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몇 차례 걸러진 인사 정보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동훈 전 국토통일원 차관은 “박 전 대통령은 농림부 농정국장, 내무부 지방국장, 재무부 이재국장 등 당시 주요 정부 부처 핵심 실·국장들의 정책 입안과 실행 역량을 관찰했다”고 전했다. 직접 불러 토론하고 과제를 내기도 했다.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재무부 차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재무부 장관 등 ‘계단식 승진’의 대표적 사례. 1967년 12월 재무부 이재국장 시절 “경부고속도로의 건설비 소요액을 산출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유류세 신설을 통한 재원 조달 방안까지 마련해 브리핑했다. 예상 밖의 보고에 흡족해한 박 전 대통령은 그때 김 고문을 낙점했다. 신년초도(新年初度) 순시나 국무회의도 실무 인재 발굴의 장으로 활용했다. ○ 교사 용인술“OOO 귀하. 청와대 근무 10년의 노고와 그간의 업적을 높이 치하하며 앞으로도 방가(邦家·국가)를 위해 위국 대성 있기를 기원합니다. 대통령 박정희” 박 전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 출신으로 경북 문경보통학교에서 3년 동안 교사생활을 한 경험을 살려 교사 같은 용인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손으로 눌러 쓴 친서를 통해 주위 공직자들에게 각별한 관심이 있음을 나타냈다. 박 전 대통령의 인사 수첩에는 사람에 대한 기록도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고 한다. 관직을 그만둔 인사에게 “1년 있다가 연락할 테니 좀 쉬고 있으라”고 한 뒤에는 정확히 1년 뒤 연락을 했다. 자리를 다시 주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낚시라도 하라”고 연락을 보내 잊혀진 존재가 아님을 각인시켰다. 실수나 뜻을 달리해 내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를 반드시 한 번은 줬다고 한다. 김용태 공화당 원내총무는 1967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공화당 사전조직 작업’에 가담해 출당 조치됐지만 1978년 무임소(無任所)장관(현 특임장관)에 복귀했다. 인력풀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치밀하게 관리해 대상 인물들이 자연히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없게 했다는 것. 박 당선인 특유의 정에 연연하지 않는 통치술은 장점이 많다. 하지만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박 당선인은 세심한 동시에 냉혹한 리더라는 평가도 나온다. ○ 균형 용인술박 전 대통령은 측근끼리도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분리통치(divide and rule)’의 용인술을 구사했다. 유신 전에는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경쟁 구도를, 유신 후에는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경쟁 구도를 유도했다. 10·26사태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지만 힘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려는 권력 관리 의도가 깔려 있었다. 여기엔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세력을 만들지 않기 위한 측면도 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던 만큼 정권 내내 견제를 받았다. ‘2인자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 당선인은 아버지를 빼닮았다. 17년 동안의 청와대 생활을 거치면서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데다 ‘배신 트라우마’로 오히려 강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민주화를 거치며 권력구조가 안정화된 만큼 박 전 대통령의 ‘균형 용인술’을 국정 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세중 전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현 시대정신 발행인)는 “박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해 언제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권력 관리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박 당선인은 그렇지 않은 만큼 총리나 장관에게 과감히 권한을 맡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홍수영·장원재 기자 gae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31일 “후보자의 신상 문제는 비공개로 시스템화해 검증하고, 공개 청문회에선 업무, 정책 능력을 검증하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이날 청와대 인근 안가(安家)에서 경남 지역 새누리당 의원 11명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제도 보완을 이번 조각 때 하자는 게 아니라 앞으로 중간 개각에서라도 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박 당선인은 “그 시대의 관행들도 있었는데 40년 전의 일도 요즘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 같다” “능력 있고 할 만한 사람들이 만신창이가 돼 못 하면 국민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등의 얘기도 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국가 인사검증 시스템을 활용하라는 외부 지적에는 “후보자 본인에게 인사 검증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확정된 사람도 아닌데 상처투성이만 될 수 있고 가족들의 어린 시절까지 파헤쳐지는 상황에서 누가 동의서를 내 가며 하려 하겠느냐”며 “가족들이 상처를 받을까 미안하고 걱정된다”고 말했다는 것. 전날 강원 지역 의원 오찬에선 “청와대에서 검증을 해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대상자를 올바른 시스템에 의해 정확하게 추천하지 않고 제도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30일 현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해 “가족이나 친인척과 관련된 사적인 부분을 너무 공격하니까 좋은 인재들이 인사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기피할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29일 자진 사퇴한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생각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박 당선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인근의 안전가옥(안가)에서 새누리당 소속 강원 지역 의원 8명과 한 시간 반 동안 오찬을 함께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박 당선인의 안가 사용은 당선 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으로 활동한 한 의원이 먼저 “‘망신 주기’ 청문회는 그만해야 한다”면서 인사청문회를 화두로 꺼냈다. 일부 참석자도 “예수도 인사청문회에 가면 문제가 된다”며 공감을 나타냈다. 이에 박 당선인은 “우리 인사청문회 제도가 죄인 신문하듯 몰아붙이기 식으로 가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며 “인사청문회라는 것이 일할 능력에 맞춰져야 하는데 조금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또 “청문회는 좋은 공직자를 가려내는 게 돼야 하는데 후보자에 대한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을 보였다고 한다. 박 당선인은 “후보자의 정책 검증은 공개적으로 국민 앞에서 철저히 하되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나 후보자의 인격에 대한 것은 지켜줘야 하지 않느냐”며 “미국은 그런 게 잘 지켜지고 있어 인사청문회를 더 효과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했다. 박 당선인은 마중을 나온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에게 “날씨가 많이 풀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기자들은 박 당선인에게 여러 질문을 쏟아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권의 초대 총리 후보로는 처음, 그것도 지명 닷새 만에 자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지만 이날 박 당선인의 표정엔 흔들림이 없었다.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은 “김 후보자의 사퇴가 언론에 공개된 29일 저녁 박 당선인과 통화했지만 예전과 다른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박 당선인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당선인 주변의 공통된 얘기다. 그만큼 감정 컨트롤에 능하고 위기에 강하다. 하지만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군주형 카리스마’는 불통 이미지를 강화했다. 대선 승리 이후 첫 번째 위기를 맞은 박 당선인이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지 주목된다. 이를 위해 그에게 없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의 ‘3무(無)’①정치적 동지2007년 대선 경선 패배 뒤 친박(친박근혜)계는 더 일찍 세(勢)를 모으지 못한 것을 패인 중 하나로 꼽았다. 김무성 전 의원은 좌장으로 나서 친박계를 관리하려 했지만 박 당선인은 “친박계에 좌장은 없다”며 쐐기를 박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선 기간에 신뢰관계를 회복했지만 김 전 의원의 ‘좌절’은 누구도 박 당선인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각인시켰다.박 당선인은 누구에게도 2인자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박 당선인의 ‘배신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뒤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부분 박 당선인에게 등을 돌렸다. 이후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18년간 박 당선인은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1989년 1월부터 1993년 7월까지 박 당선인이 쓴 일기를 모은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서 첫 문장은 “열 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중략) 진실하고 슬기로운 인간이란 그렇게도 귀하고 희귀한 것일까”라고 적었다.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당선인의 스타일과 김 전 의원의 ‘좌절’은 친박계를 박 당선인과 함께 정권을 창출하고 지켜내는 정치적 동지가 아닌 당선인의 부름을 기다리는 상하관계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차떼기와 탄핵 역풍 위기 등 온갖 정치적 고락을 함께했음에도 박 당선인에게 정국 구상을 함께 나눌 정치적 동지가 없다는 것은 권력의 정점에 선 지금, 누구도 박 당선인을 대신해 외풍을 맞아주지 않는다는 의미다.김영삼 전 대통령 곁을 지킨 최형우 전 내무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등은 대통령과 정치적 고민을 함께 나누는 동지 관계였다. 현재 여론의 질타가 모두 박 당선인에게 집중되는 것은 정치적 동지가 없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②직언하는 참모김 전 후보자 인선 과정은 지금도 미스터리다.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조차 “(발표) 30초 전에 알았다”고 했을 정도다. 처음부터 김 전 후보자를 단독 후보로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다른 후보들이 고사하자 김 전 후보자를 낙점한 것인지, 김 전 후보자 낙점 이후 검증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아는 이가 없다.▼ 朴당선인, 아버지의 ‘개방형 용인술’ 배워라 ▼최대석 전 인수위원의 갑작스러운 사퇴에 대해서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선에 대해서도 억측만 무성하다. 박 당선인을 오랫동안 지킨 친박 핵심들도 “박 당선인만이 알지 않겠느냐”며 한결같이 손사래를 친다.하지만 이들도 박 당선인의 ‘정보 독식’을 우려한다. 누구도 인선에 관여한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지금은 박 당선인을 돕지 않는 옛 보좌관 출신이 비선조직을 가동하고 있다는 등 온갖 괴소문이 나돌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이를 직접 문제 삼는 측근은 거의 없다. 박 당선인의 한 핵심 측근은 “당선인만큼 권력을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나중에 돌아보면 당선인의 선택이 옳은 적이 많았기 때문에 당장 여론을 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다수 주변 측근들이 박 당선인에게 직언을 하기보다 발을 빼다 보니 ‘박 당선인 혼자 허허벌판에 서 있고 나머지는 모두 수수방관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③ 토론 문화박 당선인이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참모들의 직언을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 당선인은 25일부터 인수위 내 분과별 토론회에 직접 참석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매일 A4용지 10장 분량의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거기에 인수위원들과의 자유로운 토론은 없다. 당선인의 일방적 지시만이 죽 나열돼 있을 뿐이다.박 당선인의 ‘보안 제일주의’는 토론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논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보안 유지가 힘든 만큼 토론보다는 일대일 면담을 선호하는 것이다. 대선 기간 과거사와 정수장학회 문제 등을 놓고 여러 참모가 “함께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지만 박 당선인은 그때마다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건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은 군 출신이면서도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 상대방을 설득해 동의를 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였다. 이는 사범학교 출신의 교사 리더십이었다”며 한 일화를 소개했다. 고 전 총리가 1971년 내무부 새마을담당관 시절 박 대통령의 지시로 ‘국토 조림(造林)’ 사업을 할 때 농림부 산하의 산림청을 내무부 산하로 옮기려 하자 농림부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한마디 지시로 이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지만 농림부 장관을 오랫동안 설득했다는 것이다.○ 박정희식 용인술 벤치마킹박 당선인이 2004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은 이후 보여준 일관된 용인술은 박 전 대통령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박 당선인이 만난 사람들의 인상과 언행 등을 기록한 ‘인사 수첩’을 인선 때 활용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엔마초’(비망록의 일본말)를 벤치마킹한 것이다.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밀봉 인사’ 논란을 부른 박 당선인에 비해 개방형에 가까웠다. 박 전 대통령을 9년 2개월 동안 보좌한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은 ‘정치회고록’에서 “내무·법무·국방·무임소장관(현 특임장관)은 대통령이 인선하되 나머지 장관은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복수 후보를 추천했다”고 전했다. 또 주미·주일·주유엔 대사는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고 기타 대사는 외무부 장관의 의견을 들었다. 청장 가운데는 국세청장이나 관세청장만 대통령이 지명했고 차관 인선은 원칙적으로 장관의 의사에 따랐다.반면 박 당선인은 2011년 비상대책위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4·11총선 공직자추천위원, 인수위원 인선까지 철저히 ‘폐쇄형 인선’을 고수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사 추천을 받지만 검증 실무 작업은 몇몇 실무자가 극비리에 진행했다. 최종 결정은 박 당선인의 ‘나 홀로 판단’에 의존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당선인이 인선 발표 전 보안이 유지되는지를 상호 간 신뢰의 척도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재명·홍수영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29일 첫 만남을 가졌다. 박 당선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방한한 수치 여사를 만나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큰 희생을 감내하며 헌신한 것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고 국민을 가족 삼아서 사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라고 수치 여사의 인생 역정에 공감을 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당선인과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인 수치 여사는 모두 아버지를 암살로 잃은 비운의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이후 정치에 투신한 2세 정치인이자 대표적인 아시아의 여성 지도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이처럼 공통분모가 많지만 이전에 특별한 인연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당선인은 수치 여사의 의회 입성에 축하를 건넨 뒤 “버마(미얀마의 옛 국호)의 민주화를 위해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3차례에 걸친, 15년 동안의 가택연금이 지난해 11월 끝나면서 4월 실시된 선거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미얀마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연맹(NLD)의 당수이다. 최근 2015년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한국이 올해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게 된 점을 언급하며 “유엔 차원에서나, 지역 및 국제적 이슈에서 한국과 버마가 함께 협력해 나가길 바란다”라고 했다. 수치 여사는 “버마가 민주화를 진전함에 따라 버마 국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사는 국민에 대해서도 노력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수치 여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려는 듯 “제가 여사님 생신 때 영국대사관에서 개설한 사이트에 (축하) 편지도 올렸는데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9년 가택연금 중인 수치 여사의 석방을 위해 마련된 홈페이지에 “비록 이번에 홀로 생일을 맞아야 하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남긴 것을 말한다. 이에 수치 여사는 “당시에 저는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었지만 말씀은 들었다”라고 화답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에서 수치 여사를 접견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 개발과 민주화는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라며 “수치 여사께서 교육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으니 미얀마의 미래가 밝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이 대통령은 미얀마를 방문해 아웅산 장군 묘지를 참배한 뒤 수치 여사를 만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교육 지원에 대한 협력 등을 논의한 바 있다. 수치 여사는 이 대통령에게 “미얀마 노동자들이 한국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양국간 인적자원 협력 확대를 요청했다. 수치 여사는 ‘2013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 초청돼 28일 4박 5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아들 병역 면제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등 각종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결국 사퇴했지만 그는 장애인들에게 ‘살아 있는 신화’였다. 소아마비를 딛고 헌법재판소장에까지 오른 그의 인생은 한 편의 ‘인간 승리 드라마’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을 때만 해도 75세 나이에 제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는 얘기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총리의 꿈은 좌절됐다. ○ 장애 극복한 법조계 원로 김 후보자는 한화그룹의 전신인 조선총포화약주식회사 대표를 지낸 김봉수 씨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납북되는 바람에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친가, 외가 모두 부유한 편이라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학창 시절엔 어머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했다. 하지만 ‘신동’이라는 소리가 따라다녔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희망하던 경기고 진학이 좌절되기도 했으나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대학 3학년인 19세 때 고등고시(현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22세이던 1960년 대구지법에서 최연소 판사로 법복을 입었다. 이후 40년 동안 법관 생활과 변호사 생활 12년을 포함해 50여 년 동안 법조인으로 지냈다. 김 후보자는 서울가정법원장을 거쳐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1988년 대법관에 임명됐고 1994년 제2대 헌재 소장이 됐다. 헌재 소장 시절 △과외교습 금지 △제대 군인 가산점 부여 △동성동본 금혼제 등 중요한 위헌 결정들을 이끌어 냈다. 청소년이나 장애인을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서울가정법원장 시절 비행청소년과 사회지도자를 연결하는 소년 자원보호자 제도를 만들었다. 헌재소장 퇴임 후엔 경기 양주시 ‘나사로 청소년의 집’에서 비행청소년 선도 활동을 했다.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장애와 가난 등을 이겨낼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 공부였고 나는 특히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법관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영예도 누린 내가 남은 생애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동안 받은 것을 갚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박근혜 당선인과의 인연, 4개월 철저히 비정치적 인물이었던 김 후보자가 박 당선인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해 9월부터다. 당시 대선기획단은 선거대책위원회에 영입할 인물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김 후보자를 떠올렸다. 대선기획단 관계자는 “그는 사회 통합과 소수자 배려 차원에서 영입 최우선 순위 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이주영 정책기획단장은 김 후보자가 포함된 영입 리스트를 박 당선인에게 보고했다. 당선인은 리스트를 검토한 뒤 김 후보자를 선대위원장 후보로 지명하고 접촉을 지시했다. 그를 공동 중앙선대위원장에 임명할 때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며 “새누리당이 지향하는 소중한 가치인 법과 원칙을 잘 구현하고 향후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말씀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선대위원장이었지만 전면에 나서거나 직접 유세를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선대위 회의를 주재하면서도 거의 말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한 선대위 관계자는 “김 후보자에게 주기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해도 ‘나는 정치를 잘 모르니 여러분이 잘 좀 해 달라’며 별말씀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정치인생 15년 동안 각종 인연을 맺었지만 짧은 4개월을 함께한 그를 인수위원장에 이어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박 당선인 측 관계자는 “법질서와 사회 안전을 중시하는 당선인의 국정철학과 맞고 ‘큰어른’의 모습으로 인수위를 잘 이끄는 모습에 총리로 적격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29일 총리 후보자에서 사퇴하면서 인수위 내 ‘큰어른’으로서의 역할도 기로에 서게 됐다.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은 “박 당선인이 곧 김 후보자의 인수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8일 기초연금 공약에 대해 “어르신에 대한 국가의 도리와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며 실행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박 당선인은 이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 업무보고에서 현재의 노년층을 “못 먹고 헐벗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새마을운동을 하고, 열사의 나라에 가서 고생한 분들”로 표현하며 이같이 말했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현재 기초노령연금의 최대 2배(약 20만 원)를 주면서 국민연금과 통합·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형평성 시비에는 “20만 원이 안 되는 부분만큼 재정으로 채워 주면 국민연금의 장기 안정성에도 변함이 없고, 추가적인 보험료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① “지하경제 양성화로 가능하다”=박 당선인은 기초연금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는 없다’고 재차 못 박았다. 그는 “새로운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불필요한 씀씀이를 줄이고 비과세·감면 조정,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재정을 확보해 그 안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 안에서 가능하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4%라 의지만 갖고 정부에서 노력한다면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해선 “조세 정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야 될 일이고, 부처 간 정보를 공유해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정 과소추계 논란을 불러온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보장’ 공약에 대해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단계적으로 확대해 가는 계획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② “양질의 일자리여야 중산층 된다”=박 당선인은 ‘고용률 70%, 중산층 70%’ 목표 달성과 관련해 “소득에 별 도움 안 되는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중산층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단순하게 ‘일자리 몇 개 만들었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질 높은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구직자 특성에 맞는 맞춤형 고용서비스’ 제공을 강조했다. 방법론으로는 “정부와 민간이 서로 협력해서 함께 이끌어가는 협치시대”라며 민관 연계를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취업정보회사 리크루트를 찾은 경험을 언급하며 민간업체가 가진 구인-구직 정보를 정부가 적극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차별 해소 △고용 불안 제거 △사회안전망 보호 등 세 측면의 개선책을 당부하며 “정부가 솔선수범하면 자연히 민간으로 퍼지게 된다”고 말했다. ③ “깔때기 현상 아시지요?”=박 당선인은 복지 전달체계 개선을 당부하며 ‘깔때기 현상’을 거론했다. “복지 정책을 쏟아내도 사회복지사가 부족해 복지 혜택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복지”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해법의 하나로 “복지는 ‘정부가 다 하겠다’가 아니라 ‘민간과 같이 하겠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한 비효율도 지적했다. 박 당선인은 “‘희망리본사업’(보건복지부)과 ‘취업성공패키지’(고용노동부) 두 사업과 관련해 작년에 총리실에서 조정하려다가 못했다”면서 고용·복지서비스의 유사·중복 문제 해소를 당부했다. 또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을 예로 들어 “흩어져 있는 기술을 딱 모아 완전히 다른 게 됐다”며 연계·조정을 통한 시너지를 강조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이 단행하려는 특별사면과 그 대상을 놓고 그동안 ‘화합 모드’를 보였던 신구 권력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됐던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첫 파열음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르면 29일 국무회의에서 그동안 검토해 온 임기 중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특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법무부 사면심의위원회가 최근 특사안에 대한 심의를 마친 것으로 안다. 이 대통령이 이르면 29일 국무회의에서 특사안에 서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사 대상에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고려대 동기동창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구속 중인 최측근 인사들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측근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거론된다. 그러나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전 KT&G 복지재단 이사장과 김희중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은 특사에서 제외될 개연성이 높다. 청와대는 이번 특사에서 대통령 친인척,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인 재벌 회장 등은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고 그러한 사면을 단행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라며 이 대통령 측근에 대한 특사를 정면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마지막 특사 추진에 대해 인수위가 처음으로 공개 비판한 것이다. 윤 대변인은 “임기 말에 이뤄졌던 특사 관행은 그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대변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충분히 상의했다”라고 말해 ‘특사 반대’는 박 당선인의 의중임을 강조했다. 청와대는 박 당선인 측의 비판에 대해 공식 논평은 자제하면서도 불편한 심기마저 감추지는 못했다. 청와대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욕 먹더라도 사면하겠다는 MB… 朴과 ‘허니문’ 깨지나 ▼청와대는 전직 대통령들이 대부분 임기 말에 마지막 특사를 단행한 것을 거론하며 박 당선인이 반대하더라도 특사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07년 12월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을 특별사면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2년 12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정치적 부채’를 갚으려는 이 대통령 이 대통령은 왜 야당은 물론이고 박 당선인 측의 비판까지 감수하면서 최측근 인사에 대한 특사를 추진하는 것일까. 정치권에선 그 이유로 이 대통령의 ‘정치적 부채의식’을 자주 거론한다. 특히 고령의 최시중 전 위원장(76), 천 회장(70)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심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둘의 구치소 생활도 종종 보고받고 인간적인 연민을 자주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명은 ‘MB 대통령’을 만든 핵심 창업 공신이다.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친구이기도 한 최 전 위원장은 여의도 정치를 잘 몰랐던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기법으로 정국 대처 방안을 가르친 ‘정치 스승’이다. 대선 과정에서 비공식 최고의사결정기구였던 ‘6인 회의’의 핵심이기도 했다.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 사업권 인허가 알선과 관련해 받은 8억 원 때문에 구속되면서 한동안 대선자금 관련성을 공개 거론한 것은 이 대통령과의 이런 정치적 인연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천 회장은 사석에서 이 대통령을 ‘명박이’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친구이다. 각종 정치자금 관련 업무를 도맡았다.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선후보 자격으로 내야 할 특별 당비 30억 원을 대납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천 회장은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로부터 워크아웃 조기종료 등의 청탁과 함께 46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MB가 최 전 위원장과 천 회장에 대한 특사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번이 아니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에선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 전 위원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한국갤럽이 유독 박 당선인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자주 발표했다는 이유로 일부 친박계 의원의 대표적 표적이었다. 이 대통령의 특사 강행 배경에는 본인의 경험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미국 연수를 떠났다가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단행한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그 덕분에 2002년 서울시장에 도전해 당선되면서 정치적 재기가 가능했다. 여권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이 ‘내가 그때 사면받지 못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느냐’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주변에 한 적이 있다”라고 전했다.○ ‘정치적 부담’을 거부하는 박 당선인 박 당선인 처지에선 새 정부 출범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른바 비리 의혹 관련 여권 인사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박 당선인의 사실상 첫 인사라고 할 수도 있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민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26일 브리핑에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란 강한 표현을 쓴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더 높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법으로 보장된 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구 권력 간 갈등이 길어지면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력형 비리 척결에 대한 박 당선인의 의지를 강조하면서 MB 정부와 자연스럽게 차별화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 당선인은 ‘사면=MB의 단독 작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자신은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야 ‘신뢰와 원칙’이라는 박 당선인의 정치 브랜드도 훼손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 “대통령의 사면권을 분명하게 제한해 무분별하게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꾸준히 밝혀 왔다.이승헌·홍수영 기자 ddr@donga.com}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사진)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없는 ‘책임총리’ 실현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총리 후보자 발표 전날인 23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사무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책임총리제 구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헌법에 총리의 권한이 별로 없는데 무슨 얼어 죽을 책임총리냐”라는 말도 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국무총리에게 헌법에 따른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겠다’라고 공약했다. 헌법에는 국무총리의 역할에 관해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86조 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대통령수석비서관을 지낸 김 전 위원장은 “장관은 대통령과 직결돼 있고, 총리는 헌법상 상징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헌법상 총리의 장관 제청권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실제 데리고 일할 사람이 장관들인데 대통령이 ‘이 사람 좀 제청해 달라’라고 하면 어느 총리가 거부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형식적인 제청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책임총리는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많아 ‘황제적 대통령’이라고 하니까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나온 말”이라면서 “(책임총리 공약은)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의 신설에 대해선 “인사위를 뒀다는 자체가 청와대에서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얘기 아니냐”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이 총리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실제 ‘일할 수 있는 자리’로 운용할 것이라 보지 않는 듯했다. 경제부총리 부활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권을 가지고 있어 힘이 센 거지 부총리라는 타이틀을 단다고 힘이 세지는 게 아니다”라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어 “대통령제하에서는 경제정책도, 정부의 모든 의사결정도 총책임자는 대통령”이라면서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착각을 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왼손에는 항상 지팡이가 들려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들어설 땐 비서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팡이를 오른손에 옮긴 뒤 왼손으로 난간을 짚어야 계단을 오를 수 있다. 양복에도 운동화를 신는다. 24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그는 장애인들에게 ‘살아 있는 신화’다. ○ 50여 년 ‘법과 원칙’ 법조계 원로김 후보자는 22세이던 1960년 대구지법에서 최연소 판사로 법복을 입었다. 이후 서울가정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등 40년 동안 법관 생활을 한 원로 법조인이다. 그는 한화그룹의 전신인 조선총포화약주식회사 대표를 지낸 김봉수 씨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납북되는 바람에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학창 시절엔 어머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했다. 하지만 ‘신동’이라는 소리가 따라다녔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경기고 진학이 좌절되기도 했으나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대학 3학년 19세 때 고등고시(현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김 후보자는 변호사 생활 12년을 포함해 50여 년 동안 법조인으로 지내면서 일상생활에서의 법치 확립을 강조했다. 2010년 인터뷰에선 “법을 안 지키면 손해를 보는 사회가 올바른 정의사회”라고 말했다. 청소년이나 장애인을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서울가정법원장 시절 비행청소년과 사회지도자를 연결하는 소년 자원보호자 제도를 만들었고, 헌법재판소장 퇴임 후 경기 양주시 ‘나사로 청소년의 집’에서 비행청소년 선도 활동을 했다. 김 후보자는 24일 지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면에서 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니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법률 이론에 해박한 ‘사법적극주의자’김 후보자는 ‘사법적극주의자’로 통한다. 법률 조문에 나와 있는 자구(字句) 하나하나를 엄밀히 따지기보다 법률 해석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두루 살핀다는 뜻이다. 자칫 ‘정치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후배 법관들은 “대법관 시절 국민의 권리 보호를 강조하는 소수 의견을 많이 냈고 법률 이론에도 매우 해박했다”고 입을 모은다. 김 후보자가 서울지법 판사로 일하던 1963년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한 일은 큰 화제가 됐다. 송 전 총장은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선거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써 구속됐는데 25세였던 3년차 법관이 서슬 퍼런 군부정권에 반기를 든 일대 ‘사건’이었다.대법관(1988∼1994년)으로 일할 때도 김 후보자의 판결은 주목을 받았다. 1994년 생수판매업체가 보건사회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그는 “내국인에게 생수 판매를 제한한 고시는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10년간의 법적 분쟁이 끝나고 국내에서도 생수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판결을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로 꼽았다. 국가보안법이나 노동법 관련 사건에선 다소 보수적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도 있다. 밀입북 혐의로 기소된 고 문익환 목사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확정했고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로맹)’을 반국가단체로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결을 내렸다. 또 노동조합법의 제3자 개입금지 규정에서 제3자의 범위를 가장 폭넓게 인정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헌법재판소장 시절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결정들을 이끌어 냈다. 이 시기 △과외교습 금지 △제대군인 가산점 부여 △동성동본 금혼제 등이 모두 위헌 결정이 났다.○ 두 아들 병역 면제김 후보자가 1994년 헌법재판소장 첫해 자신과 부인, 두 아들을 포함해 공개한 재산이 29억3348만 원이었다. 1975년 할머니가 물려준 유산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674m² 규모의 대지도 포함됐다. 2000년 퇴임 당시에는 재산이 30억 원대 초반으로 추정되며 이후 고문변호사 수입 등으로 재산이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지체장애로 군 면제를 받았다. 장남과 차남도 각각 신장·체중, 질병(통풍)으로 면제를 받아 검증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3일 대선 이후 처음으로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나 “우리는 공동운명체”라며 새 정부와 여당의 협력을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황우여 대표 등 최고위원, 당 소속 상임위원장, 당·원내 대변인단 등과 오찬 회동을 했다. 그는 “늘 국회 의견을 존중하며 일을 해나갈 것”이라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와 총리·장관 인사청문회에 대해 “국회에서 원만히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저의) 청와대 경험, 상임위 활동을 비롯한 국회의원으로서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께 한 약속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갖고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이 전했다. 특히 “창조경제로 미래 먹거리를 찾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며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한다. 대선 공약에 대해선 “공약은 후보의 약속일 뿐 아니라 당의 약속”이라며 “입법, 예산으로 하나하나 지켜나가면서 기본적으로 국민에 대한 도리를 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도 더욱 쌓여가는 만큼 각별히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당 일각에서 제기된 공약 속도조절론을 염두에 두고 당의 공동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군 복무기간 18개월 단축’ 공약과 관련해 “무리가 있다. 부사관 확충 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으나 박 당선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자리에선 총리 후보자 인선이나 ‘택시법’, 4대강 사업 감사,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문제 등 현안은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박 당선인은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시라”는 덕담을 듣고는 “제가 일을 해서 국민들이 행복하면 그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라며 ‘박근혜 스타일’로 답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박 당선인은 이어 인수위에서 열린 ‘사랑의 열매’ 전달식에 참석해 성금을 기부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고 육영수 여사가 1966년 처음으로 ‘사랑의 열매’ 배지를 달았다는 설명을 듣고 “기억이 난다”고 답했다. 모금회는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육 여사의 사진도 선보였다. 홍수영·고성호 기자 gaea@donga.com}

22일 오전 9시 34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 30대 초반의 남성이 불쑥 단상에 섰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옷깃에는 사회지도층이 즐겨 다는 ‘사랑의 열매’ 배지가 달려 있었다. 브리핑 예고가 없었고 낯선 인사가 마이크도 없이 말을 꺼내자 기자들의 의아해하는 시선이 쏠렸다. 그는 자신을 ‘경기 안양시에 사는 31세 이OO’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 자리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높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모든 악재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우산이 되겠다”라는 두서없는 말을 쏟아냈다. 어리둥절해하던 취재진은 곧 무단 침입한 괴한임을 알아채고는 뒤따라갔다. 그는 자신이 청년특위 위원장이라며 여전히 횡설수설했다. 인수위 측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이 남성을 끌어내 경찰에 인계했다. 인수위는 주요 정부기관에 준해 정문 앞에 경찰을 배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취재진은 발급받은 출입증을, 방문객은 신분증을 제출해야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냥 통과시켜 줬다”라며 유유히 들어온 이 남성으로 인해 인수위의 철통 보안이 무색해졌다. 사실 인수위의 보안을 뚫는 방법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인수위가 사용 중인 한국금융연수원이 은행권의 직원 교육이 계속 진행되는 곳이라서 교육생이라고 말한다거나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연수원의 통근 버스를 타면 무사통과였다. 민간 건물을 임차해 공용으로 쓰는 만큼 일반인들이 드나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임종훈 인수위 행정실장은 이런 해프닝들에 대해 “별도의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잘못됐다. 경위를 파악하겠다”라고 말했다. 곧바로 인수위의 경계도 삼엄해졌다. 경비인력이 평소의 2배로 배치됐고 차량까지 일일이 검문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애꿎게 출입증 신청을 하고도 아직 발급받지 못한 일부 기자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새로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인수위의 철통 보안 원칙은 정체불명의 출입자들에게는 ‘보안 불감증’, 국민의 눈과 귀인 언론에는 ‘보안 강박증’으로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21일 대통령비서실 개편안 발표도 어김없이 오후 4시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4일 인수위원 명단, 15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비롯해 지금까지 3차례의 중대 발표를 모두 이 시각으로 공지했다. 이에 인수위 내에서는 ‘오후 4시 발표의 법칙’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날 청와대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인수위 행정실의 공지는 오후 1시 40분경에야 이뤄졌다. 정부조직개편안 발표 때보다 한 시간여 더 늦었다. 대통령비서실 개편은 박 당선인이 직접 챙겨 온 만큼 발표 시점은 전적으로 당선인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발표가 갑작스럽게 결정됐다는 흔적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국정기획조정분과 강석훈 위원은 오전 9시 간사회의 시작 전 “발표가 오늘 이뤄지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르겠다. 지금까지 (박 당선인 측에서) 말씀이 없는 것 보니까…”라고 말했다. 오전 10시 브리핑에서 “현재로선 (발표) 움직임이 없다”라고 했던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저도 밥 먹다가 들어왔다”라고 해명했다. ‘오후 4시 발표의 법칙’은 보안을 중시하는 박 당선인의 스타일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개편 작업에 참여한 최소한의 인사를 제외하곤 당일 오전에야 박 당선인의 발표 지침을 받게 된다. 전날 공지하면 밤사이 내용이 새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후 정오를 지나 기자들에게 발표 계획을 통보하고, 발표문을 다듬다 보면 오후 4시경이 되는 식이다. 발표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다 보니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발표문 낭독에 이어 질의응답에 나선 윤 대변인은 개편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박 당선인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기회균등위원회와 비서실에 신설되는 인사위원회의 기능 차이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 윤 대변인은 “국민대통합위와 청년위를 신설하고 기존의 지역발전위는 개선, 발전시키며 기타 위원회는 폐지를 원칙으로 한다”라고 엉뚱한 답변을 하더니 “위원장께서 충분히 설명했는데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신설되는 국가안보실과 기존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의 지위에 대해서도 “국가안보실장 밑에 수석이 있다”라고 잘못 답했다. 한 시간 뒤인 오후 5시 20분경 정부조직개편안 발표 당시 명쾌한 설명으로 ‘인수위 스타’로 떠오른 국정기획조정분과 유민봉 간사가 다시 기자들 앞에 섰다. 유 간사는 “설명이 미흡하다는 피드백이 있었다”라면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윤 대변인이 “업무 특성상 밝히지 않겠다”라고 답한 인사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도 그 나름대로의 대답을 내놨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4일부터 현장 방문에 나선다. 첫날 일정은 외교국방통일분과의 경기 연천군 내 전방 사단 방문으로, 국가안보에 대한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다음 달 5일까지 전통시장, 서민금융(경제1), 중견기업(경제2), 국민·기업 불편 해소(정무), 고용서비스(고용복지) 등 분과별 키워드를 상징하는 현장을 찾는다. 윤창중 대변인은 “현장의 민심을 낮은 자세로 경청, 참석 인원 최소화로 불필요한 불편 줄이기, 현장 민원의 체계적 관리 등을 현장 방문 원칙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최근 감사원으로부터 부실 지적을 받은 4대강 사업 현장에는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1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22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에 특사단장으로 파견되는 김무성 전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