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박중현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구독 50

추천

안녕하세요. 박중현 논설위원입니다.

sanjuck@donga.com

취재분야

2026-01-10~2026-02-09
칼럼100%
  • 소비냐, 기부냐[횡설수설/박중현]

    “특히 한우와 삼겹살 매출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26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비 진작 효과가 나타났다며 반색했다. 그러면서 “기부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들께도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했다. 하루 전 춘천시 중앙시장 내 약국을 찾은 최문순 강원지사는 재난지원금으로 받은 강원상품권으로 탈모치료제를 샀다. ‘기부하지 말고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주장대로 실천에 나선 것이다. ▷25일까지 12조9640억 원이 풀린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평소 못 먹던 한우로 ‘플렉스(flex·과시적 소비를 일컫는 신조어)’했다”는 이들이 늘면서 한우 도매가가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고 돼지고기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공짜면 황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현실이 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심리지수도 석 달 만에 반등했다. ▷다만 기부는 정부 여당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급 대상 2171만 가구 중 94.7%인 2056만 가구가 총지급 예상액 14조2448억 원의 91%를 이미 타갔다. 지급 시작 전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20%의 국민이 기부 의사가 있고 10% 부가가치세를 고려하면 푸는 돈의 30%는 환수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현실은 차이가 있다. ▷물론 이미 사회적 혜택을 많이 받았다며 자발적으로 기부하거나 신청하지 않은 이들이 주변에 꽤 있다. 반면 공식 기부처를 고용보험기금으로 고정한 것이나, 자발성을 강조하면서도 심리적 부담을 준 여권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굳이 받아썼다는 이들도 있다. 고소득층 가운데는 ‘어차피 내가 갚을 돈’이라며 당당히 받아 소비하는 이들도 있다. 나랏빚이 쌓이면 어차피 고소득층에게 증세(增稅) 부담이 주로 돌아올 것인 만큼 기부할 생각이 없다는 주장이다. 2018년 기준 전체 근로자의 상위 30%(560만 명)가 근로소득세수의 94.9%를 부담했다. ▷공무원들은 고심하는 분위기다. 고위 공무원 가운데는 혹시라도 승진이나 인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이들도 있다. “가족의 선택은 강제할 수 없다”며 가족 전체 수령액 중 자기 몫만 부분 기부했다는 공무원도 있다. ▷“정부가 보유한 정책 수단의 숫자가 정책 목표보다 많거나 같을 때에만 경제정책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틴베르헌의 법칙’은 정책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국민이 재난지원금을 소비해 자영업자, 소상공인 매출이 늘고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정책 목표 달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기부 문화 확산 같은 다른 목표에 너무 많은 미련을 남길 필요는 없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5-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양손잡이 리더를 보고 싶다[오늘과 내일/박중현]

    3월 말 당정청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 모였을 때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들고 온 소득 하위 50% 가구 지원 구상에 유일하게 편들어준 인물이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이다. 더불어민주당 기세에 밀려 지급대상이 하위 70%로 늘고 총선 후 다시 전 국민 지급으로 결론 나는 과정에서 부총리가 재정 악화를 우려하며 버티는 모습을 보였던 데에도 김 실장의 심정적 조력이 있었다고 한다. 진보성향 학자로 현 정부의 첫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청와대에 들어간 김 실장이 총선을 전후해 보인 모습이 의외여서 기억에 남았다. 김 실장은 작년 10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양손잡이 경제학자’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트루먼 미 대통령 일화를 빗댄 표현이다.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이렇지만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저렇다”식으로 정책 장단점을 함께 거론하는 경제학자들을 보고 트루먼이 짜증내며 “손이 하나만 있는 경제학자를 데려오라”고 했다. 김 실장은 또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나처럼 양손잡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란 말이 익숙해질 정도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 정부는 ‘한쪽 손’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위기에 빠졌다. 국민 안전을 위해 격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경제활동을 재개해 무너진 가계·기업을 살려야 하는 게 모든 정부가 처한 딜레마다. 저소득층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풀어야 하지만 재정적자 확대로 국가신용도 하락, 외국자본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건 기축통화국이 아닌 개도국의 딜레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최고경영자(CEO)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경영학이 오래 고민해온 주제다. 최고의 경영전문가들 중에 위기 속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프로블럼(problem)’과 ‘딜레마(dilemma)’를 구별하는 능력을 꼽는 이들이 있다. 말 그대로 ‘문제’를 만나면 해법(solution)을 찾아 실천에 옮기는 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딜레마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에 대응 방식이 달라야 한다. 현명한 대처법은 한쪽을 대뜸 선택하지 말고 상황을 관리(manage)하면서 이를 극복할 창조적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것이다. 현 정부 경제정책은 ‘한손잡이’란 비판을 받을 만했다. 소득 양극화를 ‘문제’로 인식한 정부는 2년 만에 30% 가까이 최저임금을 올리는 해법을 썼다. 긴 근로시간도 ‘문제’로 보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답으로 내놨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급등하자 편의점주, 음식점 주인들이 직원을 해고해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잃었다. 탄력근로제 보완 없이 근로시간 감축을 강행하자 근로자는 수입이 줄고, 기업은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딜레마를 정답이 있는 문제로 인식하다 보니 속도 조절 등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와 총선 압승 이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해외로 나갔다가 유턴하려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 수도권 규제,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20년간 진척 없는 원격의료 등의 사안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기류가 달라졌다. 섣불리 다루면 지지층이나 여당의 강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코로나 사태가 금기에 가까운 딜레마를 뛰어넘을 기회를 제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10일 취임 3주년 연설의 대부분을 경제 문제에 할애했다. 정권 초부터 수많은 논쟁을 부른 ‘소득주도 성장’은 빠졌다. 오너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나라의 전문경영인으로 일할 시간이 이제 2년 남았다. 그 안에 최대한 많은 딜레마를 극복하고 성공한 국가 경영자로 기억되려면 대통령이 제일 먼저 능수능란한 양손잡이 리더가 돼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5-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HUG 독점 논란[횡설수설/박중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외에 주택 보증 기관을 추가해 경쟁시켜야 한다.” 건설업체와 재건축 조합들 사이에서 최근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주택법이 30채 이상 주택을 선(先)분양할 때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보증을 내주는 기관은 HUG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라 설립된 HUG는 주택 분양, 임대보증금, 전세보증금 등의 보증 업무를 도맡는 공기업이다. HUG 독점 문제가 최근 도드라진 건 여러 재건축·재개발 사업들이 HUG와 마찰을 빚으면서다. HUG는 ‘보증 리스크 관리’라는 이유로 서울, 경기 과천시 등을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보증 전에 분양가를 심사하고 있다. 높은 분양가로 주변 아파트 값을 자극하지 못하게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는 셈이다. ▷HUG가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사업 진행이 불가능해진다.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조합은 1만2000가구의 대단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HUG와 분양가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사업이 지체되고 있다. 수수료 수입으로 지난해에만 4850억 원의 영업이익을 챙기면서도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상전 노릇’을 한다는 게 건설업체와 재건축 조합들의 불만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HUG 요구에 맞춰 분양가를 낮춘 아파트는 당첨만 되면 수억 원대 차익을 올릴 수 있는 ‘로또 청약’이 된다. ▷주택 보증 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은 2008년부터 제기됐다. 2017년에는 시장경쟁 촉진이 주 업무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복수 주택 보증 기관 체제를 도입하라”고 국토교통부에 권고했고 그 시한이 올해까지다. 당시 국토부는 HUG 외에 ‘장관이 지정하는 보험회사’가 보증을 해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고쳤지만 아직까지 업체를 지정하지 않고 있다. 다른 보증업체가 들어와 HUG를 피할 길이 생기면 아파트 분양가를 잡을 강력한 수단이 약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게 건설업계의 생각이다. ▷HUG로선 억울한 면이 있다. 정부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경쟁체제 도입으로 시장에 새로 들어오는 민간업체가 높은 수수료를 챙기려고 고가 아파트 분양에 집중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업체의 수수료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보증 독점’이란 수단으로 아파트 값을 언제까지나 억누를 수 없다는 건 정부나 HUG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다. 정부와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시장의 문을 여는 쪽으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5-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억대 연봉 직장인[횡설수설/박중현]

    ‘억대 연봉’은 한국 직장인 100명 중 3명만 도달하는 최고 수준의 급여다. 임원도 아닌 직원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넘는다면 월급쟁이에게 ‘꿈의 직장’이다. 지난해 한국에 이런 억대 연봉 직장은 33곳이었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500대 기업 연봉을 분석한 결과 임원을 제외한 직원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KB금융그룹 지주사인 KB금융(1억3340만 원)이었다. 하나금융지주도 1억2280만 원으로 4위를 차지했다. 시중은행과 달리 금융지주사는 직원 수가 적고 간부의 비중이 커 평균 연봉이 높다. 업종별로 봤을 때 증권사(1억430만 원), 은행(9200만 원)도 대기업 평균(7920만 원)보다 연봉이 각각 32%, 16% 높았다. 한국에서 연봉 1억 원 이상인 직장인은 2018년 기준 49만 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2%다. ▷문제는 이처럼 ‘높은 연봉 일자리’인 금융권이 정보기술(IT)과 핀테크 발전으로 대면업무가 줄어듦에 따라 일자리도 감소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6개 시중은행의 직원 수는 6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0.9%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된 ‘언택트(비대면) 트렌드’는 금융권 일자리를 더 줄일 수 있다.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등이 공채를 진행 중이지만 다른 시중은행들은 하반기로 일정을 미루고 있다. ▷2017년 연봉 1∼5위를 휩쓸었던 정유업계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SK에너지는 1위에서 지난해 2위로 물러났고 에쓰오일은 4위에서 18위로, GS칼텍스는 5위에서 19위로 내려앉았다. 대형 장치산업인 정유업체는 전문 엔지니어의 연봉이 월등히 높아 ‘제조업 분야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실적 악화로 정유업계 연봉은 8760만 원으로 전년보다 4.7% 줄었다. 명예퇴직을 고려하는 업체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여섯 자릿수 연봉(six-figure income)’, 즉 10만 달러(약 1억2260만 원)는 고연봉자를 구분하는 전통적 기준이다. 미국 정부가 ‘경기부양 수표(stimulus check)’를 연봉 9만9000달러 이하 직장인에게만 지급하는 것도 10만 달러 이상을 고소득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93.6%가 수표를 받았다. ▷갈수록 높은 연봉의 일자리가 많아져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연봉 업종들의 실적이 나빠지고 들어가는 문도 좁아지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과 원화 가치 하락이 겹치면 작년 3만2047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3만 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월급쟁이에겐 기운 빠지는 현실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5-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99개월 만의 무역적자[횡설수설/박중현]

    “99개월 만에 4월 무역수지가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획재정부 김용범 1차관은 29일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무역수지 100개월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 달성이 불과 한 달을 남기고 무산될 것이란 소식이다. 3월 무역수지 확정치는 다음 달 1일 발표된다. ▷상품 수출액과 수입액을 비교한 무역수지의 적자는 코로나19 탓이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교역국의 국경이 막히면서 수출이 크게 감소한 반면 수입은 그만큼 줄지 않았다. 4월 1∼20일 무역수지가 34억5500만 달러(약 4조2000억 원) 적자여서 남은 기간 만회하기가 어렵다. 수출, 수입을 합한 금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무역의존도가 한국은 68.8%로 미국(20.4%)의 3.4배, 일본(28.1%)의 2.4배다. 그만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무역 축소가 전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이 월 기준 마지막 무역 적자를 냈던 2012년 1월은 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던 때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지나치게 돈을 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몇 년이 지나 재정적자로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휴대전화, 선박 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6.6% 감소한 데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수입액이 크게 늘어 19억6000만 달러 무역적자를 냈다. ▷그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은 2012년 3월 15일 한국과 미국 사이에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돼 이명박 대통령 때 발효된 한미 FTA를 계기로 수출이 활성화되면서 이후 8년 넘게 월간 무역수지 흑자 릴레이를 이어왔다. 광복 이후 한국이 연간 무역수지 흑자를 낸 것은 1986년이 처음이었다. 이후 4년간 흑자를 내다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그러다 1998년 원-달러 환율 상승 덕분에 높아진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이 급증해 흑자로 전환했다. ▷무역수지가 적자를 내면 국내 외환이 줄어들고 국가신용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무역적자는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정부가 설명하지만 국제질서는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불리한 반(反)세계화와 보호무역 강화 쪽으로 급격히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수출이 1분기에 선방했지만 코로나 영향이 본격화된 2분기에는 큰 폭의 감소가 불가피하다. 8년 전 한미 FTA처럼 앞뒤가 꽉 막힌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반전 카드가 필요한 때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4-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마이너스 유가[횡설수설/박중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20일 전날보다 305% 폭락해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원유 1배럴(159L)을 사가는 사람에게 생산자가 4만6000원을 얹어준다는 뜻이다. 세계가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유가다. WTI는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 중동산 두바이유와 함께 세계 3대 유종으로 국제유가의 표준이 되는 고급 기름이다. ▷생산지가 텍사스, 오클라호마주 등 미 내륙이란 점이 마이너스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다음 달까지 미국 내 코로나19 종식과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현지 저장시설은 2주면 꽉 찰 것이란 전망 때문에 아무도 5월 생산될 원유를 미리 구매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유정 특성상 수도꼭지 잠그듯 생산을 멈추기도 어렵다. 바다까지 옮겨 해외로 수출하려면 추가 비용이 든다. 차라리 가져가는 사람에게 웃돈을 얹어주는 게 낫게 된 것이다. 같은 날 해상유전에서 생산돼 유조선으로 실어 나르기 편한 북해산 브렌트유는 25.57달러에 거래됐다. WTI도 코로나 영향이 적어질 6월 인도분은 21달러 선을 유지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독려 끝에 23개 산유국 모임인 ‘오펙플러스(OPEC+)’는 하루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하루 3000만 배럴 줄어든 세계 원유 수요를 고려하면 너무 적어 가격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다. 유가를 끌어내려 세계 1위 산유국이 된 미국의 셰일가스 산업을 고사시키는 게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의 속마음이란 분석도 나온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지만 석유화학제품은 반도체(17.3%), 자동차(7.9%)에 이은 3위(7.5%) 수출품이다. 정유업체 매출의 60%가 나프타 등 수출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전 비싸게 산 원유는 유조선에 실려 속속 항구에 도착하고 국내 저장시설은 꽉 차서 재고 비용만 늘고 있다. 항공유 판매는 작년 동월 대비 80%, 휘발유도 15% 감소했다. 수출품 가격은 빠르게 하락해 ‘정제 마진’은 마이너스다. 돌릴수록 손해여서 일부 업체는 공장을 세웠다. ▷원유 값이 떨어져도 판매가의 60% 이상이 세금인 휘발유 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위기에 빠진 정유업계는 유류세 부담을 줄여달라고 요청하지만 세수의 10% 정도인 에너지세를 깎아줬다가 재정에 구멍이 뚫릴까 봐 정부는 소극적이다. 원유 값이 떨어지면 대형 LNG선을 생산하는 조선업, 중동에 진출한 건설업체들도 큰 타격을 받는다. 마이너스 유가가 경제에 희소식만은 아닌 이유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4-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코로나 리쇼어링[횡설수설/박중현]

    “코로나19 위기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공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다.” 기획재정부 김용범 1차관은 며칠 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간 마스크를 확보하느라 뛰어다니며 느낀 소회였다. 이어 “우리나라에 공장이 100여 개 있어서 마스크도 이 정도로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가적 위기 때 제조업 기반이 국내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절감한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이달 초 포드, GM 등 자동차기업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강제하려고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까지 동원해야 했다. 설계·개발 기술이 넘쳐나도 정작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미국 땅 안에 없었던 것이다. 먼저 위기를 넘어선 중국 인공호흡기 업체들은 각국에서 쏟아지는 주문에 24시간 공장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리쇼어링(reshoring)’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됐다. 낮은 비용, 넓은 시장을 쫓아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말로 떠났던 기업이 모국에 복귀하는 게 리쇼어링이다. 한국에선 ‘기업유턴’이란 말을 같은 뜻으로 써 왔다.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고, 일본 아베 정부도 법인세 실효세율 인하와 입지규제 완화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생산시설을 해외로 내보낸 선진국들은 제조설비를 특정국에 몰아둘 때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주식시장 금언이 국제 산업 체계에서도 작동하는 셈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발 팬데믹은 20년 이상 지탱해온 ‘글로벌 공급망’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8일 “‘안전한 한국’을 부각해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리쇼어링 경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경쟁국들이 만만찮다. 미국은 리쇼어링을 ‘안보사안’으로 인식해 밀어붙일 태세다.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국들도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반면 한국은 선진국들이 인하경쟁을 벌일 때 드물게 법인세 최고세율을 25%까지 높인 나라다. 3년간 32.8% 올린 최저임금 탓에 인건비 경쟁력도 낮다. ▷“나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일자리 자석(employment magnet)’이 되길 원한다. 기업들이 떠나는 걸 훨씬 어렵게 만들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직후 말했듯 리쇼어링의 본질은 ‘자국민을 위한 일자리 확보’다. 한국이 이번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까. 기업은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숫자로 드러나는 혜택에 반응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4-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배달앱 딜레마[횡설수설/박중현]

    배달의민족(배민)은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등 스치다 봐도 머리에 콕 박히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배달앱 브랜드다.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8년 말 한국의 네 번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벤처기업)에 올랐다. 이 업체가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자영업자, 소비자, 정치권의 뭇매를 맞았다. ▷논란의 시작은 우아한형제들이 이달 1일 발표한 수수료 체계 개편이다. 부과 방식을 회원 업체당 월 8만8000원씩 받던 정액제에서 주문액의 5.8%를 떼는 정률제로 바꾼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음식점주들이 당장 “수수료가 몇 배로 뛴다”며 반발했다. 배민 측이 “돈 많이 쓰는 업체의 광고 독점을 막기 위한 조치로 업체의 52.8%는 이득”이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시장점유율 1위 배민(55.7%)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2, 3위 업체 요기요(33.5%), 배달통(10.8%) 대주주인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에 4조7000억 원에 인수돼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를 받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7일 “국민 무시에 영세 상인 착취하는 독점기업 말로는 어떻게 될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배민과 경쟁할 배달전문 공공앱 개발 방침을 밝히면서 “앱 개발 전까지 전화로 주문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별도로 소상공인연합회도 수수료 없는 배달앱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10일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은 “전면 백지화하고 이전 체제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며칠 사이 배민에 실망해 전화로 주문하는 소비자가 늘자 일부 자영업자는 또 다른 애로를 겪었다. “전화 받다 보면 닭 튀길 시간이 부족하다. 앱으로 주문해 달라”고 응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저임금이 급등해 종업원을 내보낸 가게가 많은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월 고용원 없는 나 홀로 자영업자는 작년 동월 대비 14만9000명 늘었다. 수수료가 아깝지만 이미 배달앱 없이 운영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지자체들의 공공 배달앱 실험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전문가들 사이에선 14만 명의 음식점 회원을 10년 걸려 확보해 운영 노하우를 쌓은 플랫폼 사업자와 단기간에 만든 앱으로 지자체가 경쟁하는 건 무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제액이 목표의 1%에도 못 미친 서울시 제로페이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소상공인에겐 무료라고 선심 쓰지만 시스템 구입, 운영, 업그레이드에 들어갈 인력, 투자에 막대한 세금이 들어갈 수 있다. 독점 여부는 엄중히 판단하되 공공의 역할은 시장경쟁 촉진에서 멈춰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4-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확진자 0명’ 북한[횡설수설/박중현]

    북한 보건성이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했다. 에드윈 살바도르 WHO 평양소장은 “북한이 ‘이달 2일 현재 2만8000명을 격리 조치했다가 509명만 남기고 해제했으며, 자국민 698명과 외국인 11명 등 총 709명을 대상으로 진단검사를 실시한 결과 확진자는 없었다’고 보고해 왔다”고 7일 전했다. ▷세계 확진자가 214개국, 144만 명 이상으로 늘어난 8일 현재 공식 확진자가 없는 나라는 유엔 193개 회원국 중 예멘, 레소토, 투발루 등 16개국이며, 중국과 국경을 맞댄 14개국 중엔 북한과 타지키스탄뿐이다. 노동신문은 최근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보건제도 덕”이라고 자랑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 의료 수준이 크게 낙후된 데다 중국 접경지역에서 밀무역이 성행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코로나 청정국’이라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지시를 어기고 중국인과 접촉한 접경지역 의심 환자를 감염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고 총살했다는 주장이 탈북민을 통해 전해졌다. 폐렴으로 사망하면 유족 동의 없이 화장 처리해 유골만 전달한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달 초 “모든 정보를 근거로 할 때 (확진자가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앞서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북한 군부대에서 100명 이상 사망자가 생겼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통제사회답게 일찌감치 강력한 봉쇄 조치를 취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1월 말 북-중 국경을 봉쇄하는 등 육상 항공 해상 통로를 꽁꽁 걸어 잠갔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병한 게 2019년 12월,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중국 정부가 공식 확인한 것이 1월 21일이었으니 초기에 문을 닫아건 것이다. 서민 경제활동의 중심인 장마당도 폐쇄해 주민 간 접촉을 막았다. 이달 10일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할 전국 대의원 687명도 3월 말부터 2주 이상 격리를 거친 뒤 평양에 도착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한다. ▷식량, 생활필수품의 유일한 공급 채널인 접경무역 중단이 장기화되면서 주민 생활고는 깊어지고 있다. 데일리NK에 따르면 3월 초 평양 쌀값은 국경 폐쇄 전보다 60% 이상, 밀가루 식용유 설탕 휘발유 등은 20∼60%나 폭등했다. 중국 관광객이 뿌리던 달러가 끊어져 환율도 치솟았다. 코로나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다 보니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을 명분도 부족해졌다. 확진자 0명 기록에 북한 정권이 자존심을 거는 바람에 병보다 영양 결핍으로 쓰러지는 북한 주민이 더 많지 않길 바랄 뿐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4-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I자 폭락-V자 반등[횡설수설/박중현]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와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가장 유명해진 경제 전문가들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향후 경제에 미칠 영향을 놓고 최근 두 석학은 정반대 전망을 내놓았다.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던 루비니는 ‘닥터 둠’이란 별명처럼 세계 챔피언급 경제 비관론자다. 평소 시장의 환영을 못 받다가도 큰 경제위기가 터지면 ‘용한 점쟁이’ 찾듯 언론이 그의 발언에 주목한다. 루비니는 한 인터뷰에서 현 상황을 “대공황보다 심한 특대급 대공황(Greater Depression)”으로 진단했다. 또 “V자, U자, L자도 아닌 I자형으로 수직 추락할 것”이라며 특유의 비관론을 펼쳤다. ▷그러자 다음 날 버냉키가 나섰다. 그는 “전형적 경제 불황보다 대형 눈폭풍(snowstorm)에 가깝다. 매우 가파른 침체가 있겠지만 꽤 빠른 회복을 보일 것”이라며 V자 또는 U자형 회복에 무게를 뒀다. 버냉키는 ‘대공황의 시사점’이란 논문으로 박사를 딴 ‘공황 감별사’이자 최근 연준이 내놓고 있는 무제한 양적 완화의 원조다. ▷이처럼 상반된 시각은 이번 사태를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 변화를 촉발할 구조적 위기로 보느냐, 전쟁·허리케인 같은 일시적 사건 사고로 보느냐에 따라 갈린다. 루비니가 맞는다면 소비 위축과 생산 차질에서 시작된 충격은 기업 줄도산, 금융위기에 이어 자산 가격 폭락과 디플레이션으로 귀결된다. 버냉키가 옳다면 감염병 확산이 멈추고 치료제, 백신 개발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억눌린 소비와 생산은 되살아난다. 각국 정부가 그간 쏟아낸 막대한 유동성에 힘입어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상승과 인플레이션도 나타날 수 있다. ▷루비니와 버냉키의 분석은 역대 최저 수준의 실업률 등 건강 체질을 자랑하던 미국 경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핵심 산업 경쟁력 저하,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 등 심한 기저질환을 앓아온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파와 회복 양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 무역 의존도가 70%인 한국은 국내에서 코로나19가 종식돼도 미국, 유럽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뒤에야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다. ▷2008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국제유가 200달러를 전망할 때 정반대로 폭락을 예상한 것이 적중해 유명해진 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의 전망은 이렇다. “체질 개선을 위한 근본적 해법을 찾지 못하면 추락하던 한국 경제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 바닥을 치고 반짝 상승한 뒤 Ⅹ축을 따라 옆걸음질치는 ‘하키스틱+일(一)자형’으로 움직일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0-03-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신동빈 회장 “죄송하다” 허리 숙여 인사…신격호 문병 질문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해외출장을 떠난 지 27일 만에 귀국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오후 2시 38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신 회장은 취재진들에게 “성실히 검찰 수사에 협조하도록 하겠다”면서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신 회장은 앞서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롯데케미칼 공장 기공식에 참석했을 때에도 “전 계열사에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주문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을 출발하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탄 신 회장은 오후 2시 38분에 김포공항 입국장에 나타났다. 어두운 표정의 신 회장은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게 생각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자신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하는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주총을 계속 열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큰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경영권 방어에 자신감을 보였다. 폐렴 증상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문병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생각해 보겠다”라고 짧게 답했다. 앞서 신 회장은 검찰이 롯데그룹을 압수수색하기 3일 전인 지난달 7일 대한스키협회장 자격으로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국제스키연맹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후 14일 미 루이지애나주 롯데케미칼 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뒤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16일부터 일본 도쿄에 머물러왔다. 25일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이후에는 일본 롯데 금융 관계자 등과의 면담 등을 이유로 귀국 시기를 늦춰 왔다.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 2016-07-03
    • 좋아요
    • 코멘트
  • [광화문에서/박중현]희생어(魚), 희생육(肉)

    희생양이란 말은 구약성서에서 비롯됐다. 정확히 말하면 양(羊)이 아니라 ‘희생염소(scapegoat)’다. 고대 유대인들은 속죄의 날 의식을 치르기에 앞서 염소 두 마리를 골랐다.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도살해 피를 뿌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황무지로 내쫓았다. 산 채 광야로 내몰린 희생염소는 사회 구성원들의 허물을 대신 뒤집어쓰고 떠난 것으로 간주됐고 남은 이들은 죄의 사함을 받는다고 믿었다. 요컨대 내 안의 죄를 외부화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 희생염소 의식의 요체다. 세계적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그의 저서 ‘내 안의 유인원’에서 “잘못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우리의 특기가 아니다. 희생양 찾기는 인류가 지닌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하면서 잘 의식하지 못하는 심리적 반사작용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썼다. 희생양 만들기는 인간뿐 아니라 침팬지 등 유인원에게 내재된 본성이며 책임 회피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인류가 진화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런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다. 이미 익숙해진 겨울철의 황사, 미세먼지가 올해엔 유독 초여름까지 이어지고 정부 당국의 예보까지 수시로 틀려 국민들의 짜증이 폭발했다. 이런 와중에 미세먼지의 상당 부분은 중국이 아니라 국내에서 배출된 것이란 분석들이 속속 나오면서 사태가 복잡해졌다. 미세먼지는 바다 건너 온 것이라 믿을 때 기관지는 답답해도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모두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는 일이 된 것이다. 첫 타깃은 디젤차였다. 이어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들도 손가락질을 받았다. 급기야 삼겹살과 고등어까지 표적이 됐다. 애먼 삼겹살과 고등어가 희생육(肉), 희생어(魚)가 된 건 환경부가 진행한 밀폐공간 미세먼지 발생 실험의 대상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즐겨 먹고, 기름기가 많다는 이유였다. 시계를 되돌려 1970, 80년대 서울을 생각해 보자.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매캐한 공기를 호흡하며 살던 당시엔 지금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너나없이 집집마다 난방을 위해 연탄가스를 배출했고, 검은 매연을 내뿜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게 분명한 잘못에 인간은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요즘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들은 하나같이 억울해한다. ‘클린 디젤차’를 사면서 환경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한 경유차 주인은 없다. 삼겹살, 고등어를 구워 먹으며 죄책감을 느낀 국민이 몇이나 될까. 석탄화력발전소 허가를 내줬다고 비판받는 정부 관계자들은 먼지 배출이 적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극력 반대해 온 환경단체 등에 불만이 크다. 불확실한 자료에 근거해 벌이는 미세먼지 주범 찾기 게임은 심리적 안정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사회적 실익은 없다. 그보다 나은 선택은 이런 사안을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정부 대책에 일부 포함된 것처럼 수소전지차, 전기차 등의 판매를 지원해 친환경차 개발 경쟁에서 한국 기업이 앞서가도록 돕는 게 그런 방법이다. 발전소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기술을 고도화해 중국 등에 수출할 수도 있다. 고등어, 삼겹살이 정말 문제라면 집진 시설을 갖추고 생선을 구워 파는 생선가게, 친환경 삼겹살집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3월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복지, 환경, 개인정보보호와 같이 꼭 필요한 규제도 있다. 좋은 규제는 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좋은 규제는 미래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만든다. 지금이 그런 규제가 꼭 필요한 때다. 박중현 소비자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6-06-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박중현]양적완화, 누구 부담이 맞나

    4·13총선의 새누리당 공약으로 등장한 ‘한국형 양적완화’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국책은행 자본을 늘리고 이를 산업 구조조정 재원으로 쓰자는 아이디어다. 이 공약을 내걸고 선거에 승리하면 국민 동의를 얻은 것으로 치고 한은법을 고쳐 조선, 해운산업 구조조정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여당이 선거에서 지면서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던 이 방안은 지난달 말 박근혜 대통령이 필요성을 강조하자 되살아났다. 곧바로 한은은 “국책은행 자본 확충은 재정의 역할”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특히 한은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까지 주장하자 선거 참패로 신경이 곤두선 정부, 여당은 “여소야대를 틈타 한은이 ‘독립운동’을 한다”며 발끈했다. 이어 구조조정 재원을 한은과 정부 어느 쪽이 부담해야 할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어느 쪽이든 국민 부담이라 무의미한 ‘주머닛돈이 쌈짓돈’ 논쟁 같지만 꼼꼼히 따져 보면 차이가 적지 않다. 가장 큰 차이는 국가부채 문제다. 한은이 찍어내는 돈은 국가부채에 잡히지 않는다. 반면 정부가 돈을 대면 국가부채 증가가 불가피하다. 재정적자가 계속 커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한은 부담이 맞아 보인다. 돈 낼 사람도 다르다. 한은이 돈을 찍어 통화량이 늘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생기고, 화폐 가치 하락만큼 현금 등을 보유한 전 국민이 나눠서 부담하게 된다. 이른바 ‘인플레이션 택스(Inflation Tax)’다. 이와 달리 재정 부담은 세금 내는 사람에게만 돌아간다. 지난해 소득세를 낸 근로소득자는 2명 중 1명(51.9%)뿐이다. 그렇다면 부담 정도가 관건이다. 올해 3월 현재 시중통화량(M2)은 2296조 원. 10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 자금이 물가를 올릴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인플레이션 택스가 발생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수준에 머물러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이 걱정되는 지금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역시 한은 부담이 국민에게 유리한 셈이다. 부담하는 세대도 다르다. 한은이 돈을 찍어내면 돈이 많은 기성세대가 더 큰 부담을 진다. 반면 재정을 써 국가부채가 늘면 미래 세대에 부담이 전가된다. 제조업 호황기의 과실을 누린 기성세대가 구조조정의 부담을 지는 게 옳은 일이다. 환율 조작과 관련해 미국이 한국을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한 상황에서 돈을 풀어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는 데에도 한은이 돈 대는 쪽이 유리하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이미 자국 경제구조 문제 해결에 발권력을 동원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양측의 의견 차는 좁혀졌다. 다만 ‘단기 대출’ 형식으로 하고,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야 한다고 한은이 고집해 막판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 지급보증은 국가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단기 대출도 양적완화 효과를 반감시킨다. 늑장 구조조정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정부, 국책은행 등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돈을 어디서 낼지는 철저히 국가경제의 득실을 따져 결정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 닥친 문제가 수십 년에 한 번 생길 산업 시스템 개편이란 점을 고려할 때 한번 허용하면 정부, 여당이 수시로 발권력을 동원할 것이란 한은의 우려는 과해 보인다. 사상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세계 금융 시스템을 지킨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당시를 회고한 자서전에 ‘행동하는 용기’란 제목을 붙였다. 지금 한은에 필요한 건 가본 적 없는 길에 나설 용기다.박중현 소비자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6-05-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박중현]성장 해법, 라면시장에서 배워라

    라면은 한국인의 솔 푸드(soul food)다. ‘눈물 젖은 빵’을 우리말로 의역하면 ‘눈물 섞인 라면’쯤 되지 않을까. TV 채널마다 ‘먹방’들이 온갖 맛있는 음식을 보여줘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라면 관련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 라면 판매량이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줄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작년에 한국에서 팔린 봉지라면 및 컵라면은 총 25억1700만 개. 2014년보다 1.8% 감소했다. 앞서 2013년에는 1.6%, 2014년에는 3.2%나 줄었다. 역성장의 가장 큰 이유는 인구 정체에 따른 시장 포화였다. 아무리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하루 세끼 라면을 먹진 않는다. 건강에 대한 높아진 관심도 영향을 미쳤다. 침체 일로에 있던 라면시장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큰 변화가 시작됐다. 농심 오뚜기 팔도 등이 프리미엄 짜장, 짬뽕 등의 신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 ‘럭셔리 라면’들은 일반 라면의 갑절 값인데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 덕에 지난해 라면 판매 개수가 줄었지만 총 판매액은 오히려 2.4% 증가했다. 급기야 올해 1분기(1∼3월)에는 라면 판매 개수까지 작년 동기 대비 6.8% 상승세로 돌아섰다. 매출은 이보다 훨씬 높은 20.4%나 급증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라면업계는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소비자단체들이 ‘변칙 가격 인상’이라 비판하지만 싼 라면이 여전히 팔리고 있고,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고급 라면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싼 라면을 팔아 수익성이 개선된 라면업계는 설비 투자, 신규 채용을 늘리고 있다. 라면시장의 ‘굵은 면발 효과’는 우리 경제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출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비중은 지난해에 23.1%로 전년보다 9.5%포인트나 떨어졌다. 또 올해 1분기 수출은 1년 전보다 겨우 0.1% 늘었다. 세계적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조선, 철강 등 주력 수출 분야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상황에서 조만간 수출이 다시 성장을 견인하긴 어렵다. 답은 결국 내수에서 찾아야 한다. 성장의 벽에 부딪힌 라면업계가 찾은 해법은 ‘고(高)부가가치화’였다. 차별화된 맛의 고급 제품을 내놓자 소비자들은 기꺼이 두 배 값을 지불했다. 소비 침체 속에서도 더 나은 제품, 서비스에 지갑을 열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돈이 없어 못 쓴다’면서 해외여행 지출을 아끼지 않는 중산층 덕에 호황을 누리는 여행업계를 보라. 이미 장기 저성장 단계에 진입했고, 인구 증가가 멈춘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가능한 성장은 라면시장과 같은 방식일 공산이 크다. 부자라고 하루 네댓 끼를 먹진 않지만 이들이 더 고급한 세끼 식사에 훨씬 많은 돈을 쓰면 관련 시장은 커지고 일자리는 늘어난다. 4·13총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민주화’와 국민의당 ‘공정성장론’은 형평성의 관점에서 경제를 본다는 게 공통점이다. 양극화 해소, 복지 확대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이런 정책이 성장의 해법이 될 것으로 믿는 경제 전문가는 많지 않다. 고급화,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이뤄진 라면시장의 성장이 이들에게는 불평등을 야기하고, 서민의 피해만 키운 부도덕한 사례로 보일지도 모른다. 총선 직후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의 경제 브레인인 최운열 비례대표 당선자가 “고용을 실제로 늘리는 방법은 서비스산업 활성화에서 찾아야 한다”며 금융, 교육, 관광, 물류 분야와 함께 의료산업 활성화를 거론했을 때 이런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당내 강경파와 국민의당은 당장 ‘영리병원 불가’를 주장하며 반발했다. 이런 발상으로는 산업 구조조정으로 쏟아져 나올 실업자나 청년 구직자들에게 새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없다. 야권이 ‘성장담론 부재’란 오랜 비판에서 벗어나 수권세력이 되고 싶다면 먼저 라면시장 성장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박중현 소비자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6-04-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박중현]문혁 50주년에 돌아본 한국 경제사

    1966년 8월 18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는 흥분한 수백만 명의 중국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단상 위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인민복에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개월 전인 5월 16일 중국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당정군 및 문화계의 자산계급 대표 인물에 대한 공격 등을 지시한 그의 통지문을 통과시킨 여파였다. 중국을 광기로 들끓게 한 문화대혁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수천만 명의 아사(餓死)를 부른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 때문에 비판받으며 뒷전으로 밀려 있던 마오쩌둥은 문혁을 통해 권력을 회복했다. 공산당 내 반대파와 지식인, 지주 등 수백만 명이 홍위병들에게 끌려다니며 모욕, 구타를 당하고 목숨을 잃거나 구금됐다. 중국의 농업, 공업 생산은 급감했다. 훗날 중국의 개혁,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현재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지방으로 쫓겨났다. 문혁이 발발 50주년을 맞았다. 마오쩌둥이 타계한 1976년까지 10년간 지속된 문혁은 중국 현대사의 암흑기다. 이 사건은 나비효과처럼 한국 경제에 놀라운 영향을 미쳤다. 바로 세계사에서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고속성장이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마오쩌둥을 한국 경제발전의 최고 공신 중 하나로 꼽는다. “마오쩌둥이 문혁으로 중국의 개혁, 개방을 늦추지 않았으면 한국은 경제성장의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한국의 경제개발사를 들여다보면 문혁의 영향이 더욱 뚜렷해진다.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2년에 군사정부가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내놨지만 첫 5년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본격적 경제개발은 문혁 발발 이듬해인 1967년부터 5년간 진행된 2차 계획 때부터였다. 이때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경부고속도로가 뚫렸으며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착공됐다. 3차 계획(1972∼76년) 중엔 중화학공업이 집중 육성됐고, 4차 계획 첫해이자 문혁 종료 다음 해인 1977년에 수출 100억 달러 목표를 달성했다. 문혁 발생부터 종료까지 10여 년 동안 한국 경제의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이 완성된 것이다. 문혁 후 재집권한 덩샤오핑 등은 조금씩 경제개혁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속성장의 궤도에 올라탄 한국은 빠르게 달아났다. 1980년대에 우리 경제는 연평균 10%씩 성장했다. 1990년대 초 중국의 본격 개방은 한국에 또 한 번의 기회가 됐다. 기술 격차를 벌린 상태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이 한국산 부품, 중간재의 최대 수출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경제규모 세계 2위에 올라선 2010년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중국은 기술 격차를 바짝 좁혔고,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금방이라도 한국을 추월할 기세다. 올해 3월 세계 선박 수주량의 69%를 중국이 싹쓸이할 때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의 조선업계는 6% 수주하는 데 그쳤다. 어쩌면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한국 경제는 ‘중국의 지체(遲滯)’란 특수 조건이 만든 우연의 산물일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경제에 눈뜨기 전 수출 중심으로 이뤄진 한국 대기업들의 투자가 한순간에 과잉투자가 돼버렸다는 점이다. 첨단 제조업, 고급 서비스업을 집중 육성하며 부실 부문을 털어내는 과감한 산업 구조조정 외에 미래세대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은 있을 수 없다. 정부와 함께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닷새 남았다. 새누리당의 한국형 양적완화 방안 정도를 빼면 온통 청년, 고령자, 지역 유권자에게 ‘뭘 더 준다’는 선심성 공약들뿐이다. 문혁 같은 일이 다시 터지길 바랄 수도 없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박중현 소비자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6-04-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박중현]비혼시대의 축의금

    책상 한 귀퉁이에 청첩장이 쌓이기 시작했다. 결혼 시즌이 왔다는 뜻이다. 한 장 한 장이 청구서다. 5만 원권이 처음 나온 2009년에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7년 새 축의금 최저 금액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5만 원짜리를 두고 굳이 1만 원짜리 3장을 봉투에 넣는 건 “당신과 안 친해”라고 대놓고 내색하는 일 같아 마음이 켕겨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인들이 5만 원권을 보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조금 용도였다. 지출 증가가 걱정되긴 하지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 세대’면서 결혼에 골인하는 청년들이 기특하단 생각도 든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겐 부모 세대부터 투자해온 결혼 축의금을 회수하는 것조차 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비혼 선언’을 하고 친구들로부터 축의금을 돌려받으려는 젊은이들까지 나온다.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며 그동안 낸 축의금을 내놓으란 요구다. 경조금은 폐쇄적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진 상호부조 시스템이다. 이탈이 적고 이웃의 숟가락 수까지 꿰고 사는 마을 공동체 내에서 쌀, 포목 등 현물로 낸 축의금은 시간이 지나도 손실 없이 고스란히 돌아올 공산이 컸다. 하지만 6·25전쟁, 급격한 도시화로 이동성이 커지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이런 틀이 깨졌다. 화폐로 내는 축의금에는 인플레이션 문제도 생긴다. 시대가 변해도 축의금은 면피성, 보통, 적극적 축의금의 3개 등급이 유지된다. ‘1-2-3’ ‘2-3-5’ ‘3-5-10’ ‘5-10-20’ 비율이 반복되는 게 특징이다. 1990년대 초반 1만, 2만, 3만 원,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2만, 3만, 5만 원, 2000년대 중반 이후 3만, 5만, 10만 원이던 축의금은 현재 5만, 10만, 20만 원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10여 년 만에 최저 등급의 면피성 축의금이 66.7%나 올랐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시대에 보기 힘든 인상률이다. 호텔 결혼식 등으로 일반 물가보다 가파르게 오른 결혼 비용이 반영된 탓이다. 대상이 한정된 부의와 달리 축의금은 계산이 어렵다. 집집마다 자녀 수가 달라서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 어른들은 다른 집 ‘개혼(開婚)’, 즉 형제 중 첫 번째 결혼 때 축의금을 제일 많이 냈다. 두 번째에는 개혼의 70∼80%, 세 번째에는 50% 정도로 금액을 낮추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혼, 재혼이 빠르게 늘면서 셈법이 난해해졌다. 다른 집 자녀가 재혼할 때 초혼 때와 같은 축의금을 내야 할지, 줄인다면 얼마나 적게 내야 할지 마땅한 기준이 없다. 반대로 자녀의 결혼이 늦어지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는 자녀가 있을 경우 부모들은 축의금을 회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 장기간 축의금 손익을 맞추려면 알파고의 계산 능력이 필요할 지경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몇몇 선진국들처럼 동성결혼까지 허용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최근 외신에는 일본IBM이 동성 파트너가 있다고 신고한 사원에게 회사 차원의 결혼 축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년들의 비혼 선언을 두고 “결혼이 장난이냐”며 눈살 찌푸릴 어르신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높아진 결혼의 허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장기간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청년들의 선택은 그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그래서 내 주위에 비혼을 선언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불평 없이 축의금을 낼 생각이다. 결혼조차 힘겨운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로서 책임지기 위해서라도.박중현 소비자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6-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박중현]고깃국의 추억

    “옆 공장은 어제 고깃국을 줬다는데 우리는 왜 계속 된장국입네까?”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첫 번째 상품인 리빙아트 냄비가 서울의 롯데백화점에서 팔리기 시작한 지 7개월여 만인 2005년 7월. 초기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한 15개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점심때 제공하는 국의 종류와 내용물을 놓고 눈치작전이 벌어졌다. 당시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는 3800여 명. 북한 근로자들이 점심때 먹을 밥과 반찬을 싸왔지만 국물 없이 밥 못 먹는 한민족의 식습관은 남북이 같았다. 한두 기업이 국을 끓여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런 관행은 금세 다른 공장으로 퍼졌다. 급기야 한 공장의 북한 근로자 대표가 옆 공장이 전날 제공한 국에 고기가 들었다는 첩보를 입수해, ‘차별 없는 국물’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 얘기를 해준 기업인은 “남북의 생활 격차가 드러나는 걸 북한 당국이 싫어한다. 기사화는 자제해 달라”라고 각별히 요청하기도 했다. 21세기에도 행복의 척도가 ‘이밥에 고깃국’ 수준에서 멈춰버린 북한의 현실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최근까지 북한 당국은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초코파이에 얽힌 사연도 많았다. 한국 기업들이 2007년부터 간식으로 제공한 남쪽의 초코파이는 북한 근로자에게 달콤한 자본주의의 맛, 그 자체였다. 북한 당국에 달러로 지불된 임금 중 실제로 근로자에게 얼마가 전달되는지 알 수 없던 한국 기업인들은 근로 의욕을 높일 인센티브로 초코파이를 활용했고 한때 개성공단에는 월 600만 개의 남쪽 초코파이가 반입됐다. 초코파이와 치약, 칫솔, 비누, 수건, 화장지, 면도기 등 근로자에게 제공된 남쪽 물품들은 장마당으로 흘러들어 자본주의의 씨앗이 됐다. 이에 불만을 느낀 북한 당국은 짝퉁 초코파이인 북한산 ‘겹단설기’를 대신 제공하라고 기업들에 요구해, 남쪽 초코파이 반입은 작년 1월 중단됐다. 이달 10일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직전 북한 근로자의 수는 5만4000여 명. 삼성전자 임직원 수(2015년 3분기 현재 9만8557명)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숙련된 기술자인 이들은 평양의 특권층을 제외하고 북한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생활을 영위해 왔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20만 명 이상이 자본주의를 간접 체험했다. 공단 폐쇄로 이들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동 중단에 반대하는 야권 관계자들은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근로자를 해외에 보내면 돈을 더 번다”며 경제 제재로서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 해외근로자 중 다수는 시베리아 벌목장, 동남아 건설 현장 등 가혹한 근로 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한 탈북 지식인은 “자본주의의 물이 들었다는 이유로 이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라며 걱정했다. 가져본 게 없는 사람은 가졌던 걸 뺏기는 고통을 모른다. 이미 고깃국, 초코파이를 경험한 북한 근로자들은 큰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관련해 국회에서 연설할 때 “북한 근로자들에게 닥칠 어려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들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라는 내용을 넣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 개발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개성공단 폐쇄는 불가피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계속 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과 13일 전 폐쇄된 개성공단은 다른 현안에 밀려 관심권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북한 근로자들의 고통은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 그들의 뇌리에 새겨진 고깃국의 추억이 통일의 싹을 틔울 때까지.박중현 소비자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6-02-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박중현]낡은 세차장 같은 한국경제

    ‘실내 세차만 하는 차량 이용 금지.’ 우리 동네 셀프세차장 입구에는 몇 해 전부터 이런 푯말이 세워져 있다. 세차시설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차 바깥까지 세차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세차장 주인의 속내가 짐작된다. 셀프세차장의 주력시설은 고압 살수기, 비누거품 솔이 설치된 칸막이식 세차시설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할 뿐 아니라 수입도 주로 여기서 나온다. 500원짜리 동전을 잔뜩 바꿔 시작해도 금세 시간이 다 됐다는 ‘삐삐’ 소리에 쫓겨 서둘러 세차를 끝낸 경험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식 자동세차기를 설치한 주유소들이 늘면서 셀프세차장에서 차 외부를 닦는 고객이 크게 줄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받은 무료 세차 티켓, 세차 할인권으로 세차하는 운전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시간과 품이 덜 든다는 게 자동세차의 장점이다. 그렇다 보니 실내에 먼지가 많이 쌓이거나, 발판이 더러워졌을 때에만 셀프세차장을 찾는다. 주력시설 이용자가 줄고 돈 안 되는 진공청소기, 발판청소기만 쓰는 고객이 많아지다 보니 세차장 주인이 고민 끝에 이런 푯말을 세운 것이다. 그의 판단은 현명했을까. 내 경우 내부청소를 꼭 해야 할 때 한두 번 필요치 않은 외부 세차까지 하며 이 세차장을 이용했다. 하지만 머잖아 주유소에서 자동세차하고 실내청소는 휴대용 진공청소기를 구입해 쓰는 쪽을 택했다. 세차장 주인의 의도와 상반된 결과다. 요즘 이 세차장을 지날 때마다 점점 더 쇠락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일찌감치 변화를 받아들여 외부세차 공간을 줄이고 대신 진공청소기를 늘려 내부 청소만 원하는 고객을 더 유치했으면 어땠을까. 또는 아예 다른 업종으로 전환했다면. 요즘 한국 산업계의 상황이 이 셀프세차장 같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대기업집단의 백화점식 업종 확대는 벽에 부닥쳤다. ‘빅딜’ 등 김대중 정부의 경제 관료들이 강압적, 자의적으로 추진한 산업 구조조정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구조조정을 안 했으면 이후 한국 경제가 10년 후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요즘 들어 20년 가까이 유지된 노후 산업구조가 우리 경제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포스코는 1968년 창립 이후 47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적자를 냈다. 지난해 4분기(10∼12월)에 삼성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 1위를 지켰지만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는 화웨이, 샤오미 등에 뒤처지며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대형 마트 1위 업체 이마트는 소비침체에 일요일 의무휴무 규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이 겹쳐 작년에 2년 연속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는 법이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다. 기업이 생존을 위해 선제적, 자율적으로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에 나서면 정부가 사업 재편 절차, 규제를 줄여주는 내용이다. 재벌의 편법 승계를 조장한다는 우려에 이를 예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지난달 말 이 법을 통과시키기로 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의 합의는 허무하게 파기됐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박영선 비대위원이 이른바 ‘경제 민주화’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선거법 우선 처리를 주장한 탓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미래세대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산업구조를 뜯어고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낡은 세차장 주인 같은 정치인들의 판단 탓에 나중에 민주화할 경제나 남아날까 걱정이다.박중현 소비자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6-02-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박중현]혼밥남 엘레지

    “뭘 그렇게 많이 담아? 집에 잔뜩 쌓였는데.” “아니야, 거의 다 떨어졌다니까….” 대형마트 식품매장의 라면 코너에서 자주 듣는 중년 아내와 남편 간의 대화다. 과일, 채소, 육류 코너에서 아내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카트 뒤를 따르던 남편은 간편식품 코너에 이르러 눈빛이 반짝이고 손발이 바빠진다. 레토르트 카레, 즐겨 먹는 라면, 캔 참치와 햄 등을 카트에 최대한 싣기 위해서다. 아내의 감시망을 벗어났을 때 카트를 돌려 즉석식품 코너로 단독 질주하는 남편들도 있다. 그러다 반대편에서 달려온 다른 집 남편과 눈이 마주치면 따뜻한 무언의 교감이 둘 사이에 오간다. “그래, 너도…. 다 이해한다.” 뒤늦게 만행을 발견한 아내의 타박에 떠밀려 골랐던 상품을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는 남편들의 손길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대가 주말이면 그나마 낫다. 평일 낮 점퍼 차림으로 나온 남편들의 눈빛 대화에는 더 복잡하고 슬픈 감정이 담긴다. 한 온라인 쇼핑사이트가 지난해 이곳을 통해 50대 이상 남성이 산 라면, 반찬, 참치, 햇반 등 4가지 품목의 매출액이 같은 연령대 여성을 넘어섰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혼자 밥 먹는 남자, 혼자 밥 먹는 남편이란 뜻의 ‘혼밥남’이 최근 주목을 받았다. 2013년 50대 이상 여성의 4분의 1이던 50대 남성의 구입액은 2014년에 4분의 3으로 급속히 상승한 데 이어 지난해 드디어 동년배 여성을 뛰어넘었다. 대형마트에서 카트 좀 밀어본 중년 남성이라면 놀랄 것 없는 결과다. 어떤 간편식이 더 맛있는가는 은퇴한 남성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라면 광고 모델이 대부분 중년 남성인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인터넷, 모바일 쇼핑 경험이 없는 50대 이상 남성들이 기술적 한계까지 극복하고 즉석식품, 간편식을 사들였다는 점에서 생존 본능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자녀가 대학에 가자마자 갈라서는 ‘대입이혼’, 자녀를 결혼시키고 난 뒤 헤어지는 ‘황혼이혼’ 등으로 홀로 된 남자가 많은 탓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아들딸을 위해 오밤중이라도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들이 자녀들이 장성해 외식을 하면서 더이상 남편을 위해 따로 밥상을 차려주지 않기 때문이란 설명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수십 년간 자녀, 남편의 식사를 챙긴 중년 주부들에겐 당연히 남편 밥 바라지를 중단할 만한 권리가 있다. 문제는 스스로를 위해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는 남편들 쪽에 있다. 2007년 개봉한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가족을 해외에 보내 놓고 홀로 라면을 먹다 눈물 흘리는 송강호처럼 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이런 어려움을 견뎌 왔다. 60세로 늘어난 정년을 앞두고 지난해 말 희망 퇴직한 많은 남성들이 이런 현실에 직면해 있다. 다행히 눈 빠른 식품·유통업체들이 이런 움직임에 반응하고 있다. 1인용 보쌈, 1인용 떡볶이·튀김·순대 세트 등 1인용 메뉴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 유통업체는 채소 등을 썰어 넣어 불에 볶아야 완성되는 간편식을 새해 승부수로 내걸었다. 혼밥남들에게 요리한 듯한 만족감까지 제공한다는 취지다. 간단한 계란요리와 토스트, 커피를 곁들인 브런치 세트를 내놓은 커피전문점도 있다. 경제적 여유만 뒷받침된다면 집 주변 카페에서 할리우드 영화 속 꽃중년처럼 신문을 읽으며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혼자 밥 먹는 남자라는 걸 슬퍼해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 적응의 문제일 뿐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 밥을 챙겨 먹은 뒤에는 곧바로 설거지를 시작하는 게 좋다. 외출했다 돌아온 마나님이 싱크대에 쌓인 식기를 보고 짜증 내지 않도록….박중현 소비자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6-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박중현]선착순 시대의 종언

    새해 만 50세가 되는 고등학교 동기동창 몇 명이 열흘 전 모였다. 고교 때 이과였다는 이유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가 많다. 그중 한 명은 졸업 후 꼭 30년 만에 다시 얼굴을 봤다. 명문 국립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 뒤 8년 전에 한국 대기업의 상무로 스카우트된 최우수 인재다. 그는 연말 인사를 앞두고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경기침체와 저성장의 장기화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대기업 인력 구조조정 탓인 것 같았다. 다른 한 친구는 이미 5년 전쯤 국내 최대 전자업체의 연구소에서 나와 중견 벤처기업으로 옮겼다. 30대엔 쪼들렸지만 40대에 명문 사립대 교수가 돼 정년이 15년 남은 또 한 명의 친구를 보며 “역시 한국에선 교수가 최고”란 결론으로 대화는 끝났다. 한국 사회의 중장년층이 살아온 방식은 군대의 ‘선착순’과 비슷하다. 남보다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먼저 취업해 동기 중 앞장서 승진하는 게 성공의 공식이었다. 남보다 먼저 결혼해 집 장만하고 자식 낳아 일찍 결혼시키면 금상첨화. 요는 뭐든지 남보다 먼저 하는 게 제일이었다는 뜻이다. 선착순에서 이기는 데에 달리기 실력이 결정적일 것 같지만 경험상 속도보다 중요한 게 눈치와 순발력이다. 대입 체력장 오래달리기에서 만점을 못 받았을 정도로 달리기에 젬병이던 나는 연병장에서 훈련할 때마다 분대장, 중대장의 심기를 살펴야 했다. “골대 돌아 선착순 1명!” 호령이 떨어지는 순간 제일 먼저 스타트해야 첫 바퀴에 1등을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바퀴 이상 중장기전에 돌입하면 실력이 드러나고 더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선착순 세대인 중장년층이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60세 정년 시대’를 앞두고 퇴직하는 이들의 충격이 더 큰 것도 이 때문이다. 남보다 더 빨리, 열심히 달려 먼저 부장, 임원이 됐다는 이유로 희망하지 않는 희망퇴직, 명예롭지 않은 명예퇴직까지 먼저 하란 건 억울한 일일 수밖에 없다. 20년 이상 전력 질주한 뒤라 다시 달릴 기력도 얼마 안 남았다. 한참 어린 20, 30대까지 퇴직 대상에 낀 마당에 불편한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지도 못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는 이미 정년연장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별’이라고 불릴 만큼 혜택이 많지만 언제라도 잘릴 수 있는 ‘임시직원’이라며 임원 승진을 부정적으로 보는 대기업의 40대가 적지 않다. 역시 언제든 옷을 벗어야 하는 1급 자리에 늦게 도달하기 위해 승진 속도를 늦추겠다는 공무원도 많이 봤다. 인사혁신처가 최근 공개한 올해 7급 국가공무원 민간경력자 채용시험 합격자 중에는 20, 30대 대기업 연구원, 회계사, 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다수 포함됐다. 이들 세대에게 인생은 더이상 선착순이 아니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벌인 설문조사 결과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한국 경제의 나이는 50.8세. 한국인의 평균 연령 40.3세보다 10세나 많다. 그만큼 경제가 조로(早老)했다는 뜻이다. 선진국의 선례를 봐도 한번 나이 먹은 국가 경제의 흐름이 벤저민 버튼의 시계처럼 거꾸로 가는 일은 거의 없다. 노동개혁 등 구조적 개혁을 통해 노화를 늦출 순 있지만 1970, 80년대 같은 경제의 청춘기를 되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저성장 시대의 도래와 함께 선착순의 시대는 끝났다. 남보다 먼저 골대 한 바퀴 돈다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길어진 정년이나 퇴직 후 인생을 충실히 살기 위해 다시 뛸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할 때다.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 2015-12-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