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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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3-03~2026-04-02
문화 일반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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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일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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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필라델피아부터 뉴욕까지… 미국 역사를 세운 도시 이야기

    미국 필라델피아는 건국 초기 수도이자 독립전쟁을 알리는 ‘자유의 종’이 주조되고 독립선언서가 채택, 낭독된 미국의 대표적 도시였다. 직물과 의류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의 중심지로 ‘세계의 작업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19세기 후반에는 신흥 산업도시에 밀리고 있었고, 이민 증가에 직면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는 187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한 만국 박람회를 개최해 전기를 만들려 했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필라델피아를 ‘국가의 영광을 투영한 도시’로 인식시키는 게 목표였지만, 오히려 박람회는 잠재된 분열이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계획됐던 여성관이 외국 전시관에 밀려나자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독립선언서 낭독 행사에서 ‘여성 독립선언서’를 뿌리고 낭독했다. 백인으로 구성된 준비위원회는 박람회장 내에 흑인 교육자였던 성공회 주교의 동상을 건립하려던 흑인들의 요구를 거부한다. 전시물에서 흑인은 대부분 노예로 표현됐다. 박람회 뒤 필라델피아는 도시를 재정비하는 대규모 건설 사업을 벌였지만 저소득층의 주거권은 무시됐다. 원주민사를 제외하면 유럽인의 이주로 시작되는 미국사는 기본적으로 도시의 건설에서 출발한다. 1607년 미 대륙 최초의 영국 식민지를 건설한 버지니아 컴퍼니도 요새화된 상업거점 건설을 제일 먼저 했다. 책은 영토가 넓어 지역별 차이가 큰 미국의 역사를 도시사를 통해 다양하게 보여준다. 시카고의 인종 갈등, 로스앤젤레스의 아시아 이민과 도시공간의 변화를 비롯해 미국 남부의 발전과 흑백 분리 문제(애틀랜타), 도시 재생의 역사(세인트루이스), 미국 원주민의 공간(앨커트래즈 섬) 등을 다룬다. 자연스럽게 도시 내 공간과 인종 분리 및 차별의 문제가 화두가 된다. 우리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마주칠 문제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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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술 이책]러브 모노레일

    미래의 한때, 사람들은 시간을 넘어 ‘이주’해 반강제로 일을 한다. 물려받은 빚을 사채업자에게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과 1000년 이상 떨어진 시대의 공장에 배치돼 남편을 다시 만날 기약이 없다. 이 시간대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대부분 공동보육원으로 보내지만 ‘나’는 공장에서 자신의 아이를 직접 키우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자신도 임신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데…. 출판사가 시간여행을 소재로 연 ‘제2회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작 ‘어느 시대의 초상’(차태훈)이다. 가난한 이들이 시간을 떠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책은 1, 2회 공모전 수상작 6편을 묶었다. 1만20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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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문스님 “임우재, 월간조선 기자와 인터뷰한 적 없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본명 김영준) 대표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임우재 씨와 함께 점심을 했는데 임 씨는 월간조선 기자와 인터뷰한 사실이 없다. 우연히 월간 조선 기자를 비롯해 7명이 함께한 자리였는데, 거기서 있던 대화가 어느새 인터뷰로 둔갑돼 기사화된 것에 분노한다”고 썼다. 혜문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자기가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과 월간조선 기자와의 점심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그는 “언론 보도 방향에 대해 가볍게 점심을 같이 하면서 기자들의 조언을 듣고 인사를 나누면 어떻겠느냐고 임 고문에게 제안했다”며 “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에게 연락해 만들어진 자리”라고 말했다. 혜문은 비(非) 보도를 전제로 하고 마련된 자리에서 임 고문이 가볍게 하소연으로 했던 말이 마치 삼성가에 대해 뭔가 폭로를 한 것처럼 보도돼 매우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는 “나도 여러 번 ‘오프더레코드’라고 말을 하고, 임 고문도 ‘나중에 재판 다 끝나고 이야기할 때가 있을 것’이라며 직접 여러 번 ‘비보도’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화 내용도 보도된 것과는 분위기가 꽤 달랐다고 했다. 혜문은 “임 고문이 자살 기도를 했다는 얘기는 ‘영어 공부를 하느라고 죽을 뻔 했다’는 데서 시작된 얘기다. 중간에 수면제를 먹었다는 얘기도 하기는 했지만 그 심경을 피력한 것이지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았다’에 방점이 찍힌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임 고문이 ‘수면제를 먹었는데, 체력이 좋아서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깨어났다. 일어나니 말짱했다’고 했다. 농담으로 들리는 얘기였다. ‘한 번은 수면제를 먹으려는데 이부진 사장이 찾아와서 위로하고 격려해 함께 울었다’고도 했다.” 혜문은 “영어 공부가 힘들었다는 것도 ‘이부진 사장이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서 기대에 부응하려고 열심히 공부하느라 힘들었다’는 뉘앙스였다”고 말했다. ‘아들이 어려웠다’는 것에 대해 묻자 혜문은 “진짜 어렵겠나”라고 반문했다. 혜문은 “임 고문이 이 회장 경호원 출신인데, 회장님 손자라고 생각하면 어렵게 느껴졌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정확한 뜻은 ‘(아들이) 어색했다’에 가까웠다. 그런데 임 고문이 언어를 세련되게 구사하는 편은 아니다. 아들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고, 맘대로 놀러가기 어렵고, 오래 못보고, 그래서 만나면 어색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점점 좋아져서, 지금은 어색하지 않고, 내 아들 같다’고도 했다. 그런데 보도에서는 말의 뒷부분이 잘렸다.“ 혜문은 ”임 고문이 ‘나는 아내와 이혼을 원하지 않는 입장이라서, 재판 끝날 때까지 아내에게 누가 되는 말을 하고 싶지 않고, 삼성 가(家)에 대해서도 속에 있는 말을 다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고 말했다. 임 고문은 ”재판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 재판 끝날 때까지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을 것이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혜문은 또 ”임 고문이 전산실 직원이 아니라 경호원이었다는 얘기는 기자들이 다 아는 얘기라서 ’그렇다‘고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임 고문은 아들에 대한 애정을 피력하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못됐다‘고 했다고 한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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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파고 충격 이후… ‘인간다운 삶’ 관심 늘었다

    올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이 한국사회의 화두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인공지능과 로봇 관련 서적(255종)은 올 1월 9400여 부가 판매됐지만 5월에는 1만6600여 부가 팔렸다. 신간도 올해 40종이 나와 지난해 같은 기간(26종)의 1.5배다. 특히 인공지능 이슈가 초기와 달리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동안 “이제 실업자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의 충격과 불안에 휩싸여 인공지능의 정체를 궁금해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을 포함해 ‘어떻게 살 것인가,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예지들은 이번 여름호에 ‘포스트 휴먼’ 시대의 철학과 윤리를 본격 조명하는 기획을 잇달아 실었다. ‘문학동네’는 특집 ‘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에서 전통적 인간관이 해체되는 가운데서 새로운 인간성의 모색 등을 다룬 글 4편을 실었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 휴먼이 되었는가’ 등을 낸 캐서린 헤일스 미국 듀크대 교수는 책에 실린 대담에서 기계와 인간의 공진화(共進化)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주변 환경과 함께 진화했는데, 최근 인간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행위가 전례 없이 활발해지며 인간의 진화와 기술의 관계도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일례로 디지털 정보 처리 기기들이 인간의 주의력을 변화시키고 있다. 장시간 특정 문제에 빠져들어 전문 지식을 만들던 데에서 문제를 개관(槪觀)하고 패턴을 발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란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는 포스트 휴먼과 관련된 여러 담론들을 개괄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육체와 기계를 결합시켜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는 ‘트랜스 휴머니즘’과 같은 긍정적 전망과 젠더(사회적 성), 계층, 인종, 민족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교차한다는 것. ‘대산문화’도 여름호에서 특집 ‘포스트 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을 실었다. 단행본 시장에서도 인공지능 이슈가 주변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다루고 있지 않더라도 인류의 미래에 관한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김영사)은 환경 인구 기후변화 불평등 등 세계적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한 책인데 4월 말 발간 이후 한 달 반 만에 출판사의 5개월 판매 예상치인 1만7000부가 나갔다. 인공지능 관련 서적 중에서도 인간 본연의 삶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일에 관해 질문한 책의 반응이 좋았다. 김대식 KAIST 교수의 ‘인간 vs 기계’(동아시아)는 4월 중순 발간돼 약 1만 부가 팔렸다. 예스24에 따르면 이세돌-알파고의 대국 전후 4개월 ‘사피엔스’ 등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관련 주요 서적(13종)의 판매량은 1만3255권에서 2만452권으로 54.3% 늘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인공지능 이슈 초기엔 기존 축적된 삶의 경험이 통째로 부인된다는 두려움과 함께 ‘인공지능이 무엇인가’ 라는 데 관심이 모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로 관심이 옮겨졌다”고 말했다. 기술이 만능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환경과 자연 등에 주목하는 서적의 판매도 증가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이세돌-알파고의 대국 전후 4개월 동안 생태·환경 항목의 도서 판매량은 5421권에서 7100권으로 31% 늘었다. 동물 권익 옹호를 주장해 온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석좌교수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시대의 창)는 2014년 나왔는데 올 3, 4월 판매가 평소의 4배로 늘어나는 ‘역주행’을 했다. 이 책은 물질 소비에 기초한 사회의 폐해를 철학적 관점에서 지적한다. 서점들도 추세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오서현 경기 고양시 한양문고 마두점장은 “최근 인문 서적 진열대의 4분의 1을 ‘사라진 벌들의 경고’를 비롯해 자연과 문명 비판 관련 서적으로 채웠다”며 “최근 이처럼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책들의 판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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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조종엽]인공지능이 고전 번역?

    지난달 한국고전번역원에선 고전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특별 강연을 했다. 이명학 고전번역원장이 초청한 강사는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MBA학과 주임교수. 고전과 빅데이터는 무슨 조합일까? “한문 번역을 꼭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도 고정관념입니다.” 10일 통화에서 김 교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컴퓨터 알고리즘(인공지능)이 고전도 번역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번역된 내용과 그 원문을 컴퓨터에 학습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한문 문법을 하나하나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원문 문장이 끊어지는 지점과 앞뒤 단어 배열 등을 인식한 뒤 올바른 번역일 확률이 높은 우리말 문장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구글 번역기’와 같은 방식이라고 한다. 솔깃한 얘기다. 2억4300만 자에 이르는 승정원일기는 1994년 번역에 착수했지만 지금까지 번역률이 20%가 안 된다. 평상 시 40여 명이 번역하고 있지만 지금 속도라면 완역에 45년은 더 걸린다. 문집 1259종을 정리한 한국문집총간(500책) 번역도 그만큼 걸린다. 대부분의 현대인이 읽지 못하는 우리 유산을 빨리 번역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한문을 수십 년 익힌 이도 때로 막히는 고전 번역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구글 번역기를 써 본 이라면 우리말 자동 번역에 아직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알 것이다. “그건 구글 번역기에 입력된 외국어의 우리말 번역 자료가 많지 않아서 그래요. 빅데이터 활용도는 데이터의 양과 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구글 번역기는 유엔이 영어 프랑스어 등 6개 국어로 상호 번역해놓은 문서를 기초 자료로 활용했는데 여기에 한국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데이터가 집적될수록 정확도가 높아져 6개 언어끼리의 번역 오류는 현재 약 6% 수준이라고 한다.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놓은 디지털 자료가 적지 않으니, 이를 활용하면 번역 정확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혹시 흘려 쓴 글씨체인 초서를 정자로 바꾸는 탈초(脫草)도 컴퓨터 알고리즘이 할 수 있을까. 많은 고전 자료들이 초서로 남아 있는데 지금은 초서를 제대로 읽는 이가 국내에 100명이 안 된다. 김 교수는 “요즘 이미지 인식 기술은 사람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이 역시 가능하다고 봤다. 이 원장은 긍정적이면서도 신중한 의견이었다. “전례(典例)와 고사(故事), 즉 전고 인용 부분의 번역을 비롯해 난점이 있을 겁니다. 어쨌든 초벌 번역이 되면 사람의 번역도 수월해집니다.” 이 원장은 승정원일기 등 비슷한 문장의 반복이 많은 사서(史書)보다 개인 문집의 번역 난도가 더 높을 것이라고 봤다. 옛 사람들은 전고를 인용할 때 ‘누가 어떻게 했다’는 식으로 풀어서 쓰지 않고, 그냥 한두 글자로 압축해 썼다. 중견 번역자도 글자의 뜻 자체를 풀어야 하는지, 지칭하는 전고가 따로 있는 것인지 구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처럼 실제 활용 가능한 고전 번역 프로그램의 개발은 앞으로의 과제다. 하지만 고전과 첨단을 접목하려는 발상 자체가 반갑다. 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

    • 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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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술 이책]괜찮은 내일이 올 거야

    일본 야마가타 현 쓰루오카 시의 한 전자제품 부품 공장에서 파견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던 청년 4명은 같은 날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다. 일개 부품처럼 쓰이다 버려졌다고 느낀 이들은 도쿄까지 600km의 도보 여행을 시작하고 대중매체와 블로그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에 항의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각종 정치세력과 관청이 접근해 오면서 의미가 퇴색할 위기를 맞는다. 또 리더 격인 슈고에게 숨겨진 엄청난 비밀이 드러난다. 빛바랬지만 꿈을 잃지 않는 소설 속 청춘의 모습이 한국과도 다르지 않아 공감이 간다. 1만30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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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종말 맞을까, 외계로 나갈까? 외로운 별 지구의 생명체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고 했다.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들을 감지할 수 있을까?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 계획의 창시자인 프랭크 드레이크는 1961년 ‘드레이크 방정식’을 제안했다. 항성의 형성 속도, 행성이 있는 항성의 비율, 지적 생명체가 나타나는 행성의 비율 등 변수를 곱하면 은하계에서 우리가 탐지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의 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값이 밝혀진 변수도 있지만 ‘발전된 기술문명의 수명’ 등 애매한 변수가 많아 정답은 없다. 미국 뉴욕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드레이크를 비롯한 과학자들을 인터뷰해 외계 지적 생명체와 태양계 밖 행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역사를 생생하게 담았다. 사실 SETI 계획은 자금 부족으로 힘을 잃었다. 1993년 이후 정부 지원이 끊겼고, 민간 자금으로 샌프란시스코 북쪽 사막의 계곡에 접시 안테나를 설치하는 앨런 망원경 군(ATA) 건설을 일부 마무리했지만 역시 자금 부족으로 가동이 거의 중단됐다.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지 못했고, 앞으로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탓이다. 그 대신 ‘태양계 외행성 탐사’가 활발하다. 지적 생명체의 신호를 포착하는 대신 생명과 문명이 생길 수 있는 태양계 밖의 적당한 행성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항성은 주위를 도는 행성이 있으면 마치 체구가 다른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도는 것처럼 그 자신도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가 관측하는 빛의 파장도 미세하게 요동친다. 요동의 주기로 행성의 공전주기를 알 수 있고 요동의 강도로 행성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시선속도 분광학’이라는 이 기법으로 지구처럼 뜨겁지도 춥지도 않은 궤도에 있는 행성을 포함해 수백 개의 행성을 발견했다. 어쨌거나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수억 년 뒤 태양이 지금보다 10% 밝아지면 지구는 다세포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달궈진다. 바짝 마른 지표면 아래서 미생물이 수십억 년을 더 버텨낼 수도 있지만 50억 년 뒤에는 태양이 적색 거성으로 변해 지구를 삼켜버릴 것이다. 지구의 수명을 늘리고, 외계 문명과의 소통 가능성을 높이려는 천문학자들의 상상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거대한 규모다. 캘리포니아대 샌타크루즈캠퍼스의 그레그 래플린 교수는 카이퍼대(해왕성 궤도 바깥의, 소천체가 원반 모양으로 분포하는 곳)에 있는 대형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 옆을 스쳐 지나가도록 만들어 차를 견인하듯 지구의 궤도를 수억 년에 걸쳐 화성 정도로 넓히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드레이크는 태양의 중력 렌즈 효과를 활용해 태양에서 1500억km 떨어진 곳에서 우주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어내자고 말한다. 과학자의 말이 아니라면 가벼운 농담으로 들릴 정도다. 지구의 생명체는 50억 년 뒤 고독 속에 종말을 맞을까, 아니면 그동안 낯선 이들과 조우하거나 외계로 나갈까. 우주의 광막함을 상상하면 무엇인가 그리워진다. 수만 광년 떨어진 행성의 거주자가 수만 년 전 외계인을 그리워하면서 쏘아 보낸 신호가 지금 우리 곁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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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순원의 ‘소나기’ 그 이후가 궁금하다면…

    “남학생은 여학생의 손을 잡고 더 깊은 수수밭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눈앞을 가로막는 수숫대 때문인지, 진한 풀 향 때문인지, 맞잡은 여학생의 손 때문인지 남학생은 현기증이 났다. … 서툴게 포갠 입술을 떼었을 때 남학생은 발바닥 근처에서 시작되어 몸을 통과해온 오래된 숨이 비로소 몸 밖으로 뱉어졌다.” 소설가 김형경이 황순원(1915∼2000) 소설 ‘소나기’의 이후 이야기를 쓴 ‘농담’ 중 일부다. 주인공 소년은 죽은 소녀와 함께 비를 피했던 수수밭에서 정신을 잃고, 고등학생이 된 뒤 다시 그 수수밭에서 한 여학생과 키스를 한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지난해 시작된 ‘소나기 이어쓰기’의 결과물이 책 ‘소년, 소녀를 만나다’(문학과 지성사·사진)로 출간됐다. 지난해 계간지 ‘대산문화’ 여름호에 실린 전상국 박덕규 서하진 이혜경 구병모의 소설에 김형경 노희준 조수경 손보미의 작품 4편을 보태 모두 9편이다. 소설을 헌정한 이들은 황순원이 23년간 교수로 재직한 경희대 출신 작가와 제자, 후배들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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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史臣曰…’ 조선 사관들의 솔직한 논평 엿본다

    “요행을 바라면서 떠나지 말고 지키라는 경고를 준수하지 못했으니, 오늘날 임금이 피란을 다닌 것은 정말 위태로운 행동이었다.” 선조실록 26년(1593년) 1월 14일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고, 요동으로 망명하려고도 했다. 그러다 전세가 호전되자 선조는 도성을 버린 일을 합리화하는 말을 한다. 이 말을 기록한 사관은 선조의 행동을 비판하는 사론(史論)을 남겼다. 한국고전번역원 조선왕조실록번역팀은 실록 중 사관의 주관적인 의견, 즉 사론을 엮은 ‘사필(史筆)’을 최근 냈다. 실록에는 ‘사신(史臣) 왈(曰)’처럼 ‘사신은 말한다’로 시작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이것이 사론이다. 조선 전기 실록에만 3400여 건이 실려 있는데 인물평이 약 57%이고, 임금과 신료의 잘잘못, 사건, 제도, 재이(災異) 등을 평가했다. 당대의 생생한 논평이어서 의미가 크다. 당대에는 임금을 포함해 누구도 함부로 실록과 사초(史草)를 열람할 수 없도록 했던 덕에 사관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필(直筆)을 남겼다. 왕실, 신하, 사건, 제도 등으로 나눠 사론을 소개한 1부와 사관의 업무를 다룬 2부로 구성됐다. 396쪽, 1만3000원.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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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70년대 광부-간호사 서독 취업은 개발원조 아닌 외국인 노동력 필요 때문”

    한국은 2012년 기준 176개국에 701만 명의 재외동포가 있어 해외로 이주한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노무자부터 북한의 외화벌이 근로자까지 한국인의 노동 이주에 주목한 학술대회 ‘동아시아 지역의 노동 이주’를 최근 열었다. 이 대회에서 윤용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는 ‘1960∼70년대 광부·간호사의 서독 취업: 신화에서 역사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들의 취업은 보통 선진국 서독이 가난한 우방 한국에 베푼 한국의 냉전하의 개발원조 차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윤 교수는 서독이 탄광과 병원, 요양시설의 노동력 부족과 내국인 기피 등으로 외국인 노동력을 받아들여야 할 경제적인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에 원조가 아니었다고 봤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경제적 기여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었다. 윤 교수에 따르면 1965∼75년 이들의 국내 송금 액수는 1억 달러를 약간 넘었다. 적은 액수가 아니었지만 정부의 기대와 어긋나는 점도 있었다. 체류 기간이 길수록 송금 규모가 줄어든 것.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절반 이상이 미국 등 제3국이나 서독 잔류를 희망하면서 국내 송금을 줄이거나 중단했다. 윤 교수는 “서독 취업은 가난한 고국을 떠나 선진국에서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사적인 선택이었고, 경제 개발 기여는 관심사가 아니었다”며 “근거 없이 영웅이나 희생자로 만들기보다 원하는 이들의 귀국을 도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노무라 마사루 일본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조선인 노무 동원의 강제성과 차별성에 주목했다. 일제는 1939년부터 탄광이나 항만 하역노동, 토목건축 현장 등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노무 관리가 전근대적인 곳에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을 동원했다. 도노무라 교수에 따르면 1944년 9월 전까지는 징용 형식은 아니지만 총독부 관리나 경찰 등 행정당국이 강제 명령 형식으로 조선인을 동원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 동원임에도 노무자들의 생활을 보장하지 않았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은 약 5만, 6만 명으로 추산되는 북한 해외 파견 근로자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용 국가는 고용 기업의 노동법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주변국과 국제 비정부기구(NGO)는 인권 침해 실태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윤해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노동 이주의 성격 변화는 식민지배와 냉전,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며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 동포, 탈북 이주민을 함께 수용해야 하는 한국은 상생을 위한 이주 정책의 시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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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구글의 ‘문 샷’ 정신,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

    1998년 8월 실리콘밸리의 투자자인 앤디 벡톨샤임은 스탠퍼드대 학생 2명에게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내준다. 자동 온라인 검색 사업자인 ‘구글’에 대한 첫 투자였다. 17년이 지난 지난해 구글의 기업가치는 4700억 달러에 이르렀다. 구글은 초고속 인터넷, 지도, 광고, 영상, 모바일, 검색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운영하고 미래 기술과 인류 도약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을 거느린 회사로 거듭났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미국 실리콘밸리지사 편집장인 저자는 구글의 핵심 관계자 40여 명을 인터뷰했다. 책은 구글의 설립, 주식 상장 등 성장 과정을 소개하고 자율주행 자동차, 가상현실 등 구글이 추진하는 미래 사업을 개괄한다. 구글의 정신은 ‘문 샷(moon shot)’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이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만큼의 용기와 독창성, 위대한 도약을 위한 탐색’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연간 10% 성장에 만족하지만 구글은 “10배 더 뛰어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라”고 독려한다. 그런 목표가 기존 기술을 넘는 새로운 관련 체계를 개발하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구글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2004년 개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오르쿠트’는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였지만 페이스북의 글로벌 확장에 대응하지 않아 묻혔다. 구글의 정보 수집도 계속 논란이 될 것이다. 편리를 위해 제공한 개인정보가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래를 이해하려면 구글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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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好통/조종엽]문화재 지정번호, 꼭 있어야 하나

    문화재에 서열이 있을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국보와 보물을 보자. 유형문화재 중에서 역사 학술 예술 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보물로 지정한다. 보물 중에서 가치가 높은 것을 국보로 지정한다. 더 희귀하고, 아름답고, 오래되고, 대표적이거나 특이하고, 역사적 의미와 관련된 것 등을 기준으로 보물과 국보의 가치는 엄연히 차등을 둔다. 문화재 서열이 없다는 건 두 가지 의미다. 국보의 지정 번호는 말 그대로 지정한 순서지 서열이 아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70호라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1호로 바꾼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문화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의 한계다. 우리가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재를 후손들은 달리 볼 수 있고, 별로라고 여겼던 것도 후대에는 문화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서구적 근대화를 우선시했던 시대에는 전통적 농기구나 어구가 낙후나 저발전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나 최근 생태적, 순환적 생산방식을 보여 주는 문화재로 존중받고 있는 것이 그렇다. 문화재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평가 기준 자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동아일보가 2일 “‘국보 1호 바꾸자’ 주장에 ‘문화재에 서열 있나’ 반론” 기사를 보도하자 인터넷 기사에 8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국보 1호 교체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1호’의 상징성이 있으므로 교체를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해가 간다. 2008년 수습기자 시절 숭례문 현판이 불길에 휩싸인 채 땅에 떨어지는 것을 현장에서 봤다. 이후 복원도 부실 논란이 일었다. 조선총독부가 숭례문을 ‘고적 1호’로 정했다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국보 1호 교체 주장에 대한 동의는 문화재에 평소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역사다. 숭례문을 국보 70호로 바꾸거나 국보에서 빼 버린다고 한들 역사는 변함없다. 소모적인 논쟁을 되풀이하느니 차제에 문화재 지정 번호를 내부 관리용 번호로만 사용하고 외부적으로는 밝히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교과서와 안내판, 홍보 책자 등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돈이 적지 않게 든다. 그러나 당장 다 고치려 들 게 아니라 교체할 시기가 왔을 때 번호만 지워 비용을 최소화하면 된다. 문화재청은 ‘국보 1호 교체 입법청원으로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고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 기회에 자체 방침을 빨리 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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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신라 청동 정병, 천년만에 빛보다

    강원 삼척시 도계탄광에서 차량 바퀴가 헛돌 정도로 급경사를 5분 정도 올라가면 들꽃이 지천으로 핀 산길이 나온다. 다시 잠시 걸으면 717m 고지 아래 ‘깊은 산속에 이렇게 너른 평지가 다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이 나온다. 2014년부터 발굴 조사 중인 흥전리(興田里) 사지(寺址)다. “여기 뭔가 이상한 게 있다!” 지난달 18일 1호 건물지 구들 자리에서 호미로 흙 제거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현장에 있던 박승현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사를 불렀다. 급히 달려간 박 연구사의 눈에 구들 속에 있는 청동 소재의 물건 2개가 들어왔다. 흙 속에 파묻혀 있었지만 와인잔 같은 굴곡이다. 1000여 년 만에 햇빛을 본 청동 정병(淨甁)이다. 정병은 조심스레 흙을 털어내자 오랜 세월에도 훼손이 없는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병은 스님들이 정수(淨水)를 담아 부처님에게 바치는 공양 도구다. 이번에 출토된 정병은 국내에 단 3점밖에 없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출토된 2점은 일부 훼손됐고, 충남 부여 부소산 것은 일제강점기 공사 중 수습돼 가치가 명확하지 않다. 흥전리 정병은 중국에는 없고, 고려시대에도 사라진 양식인 8각의 첨대(꼭지 위 긴 부분)를 갖고 있다. 첨대 길이는 8세기 후반 만들어진 인각사 정병보다 짧고, 높이는 약 35cm로 고려 정병보다 작다. 문양은 없고 정병 몸체의 어깨 위에 장식으로 선이 음각돼 있다. 2일 현장 설명회에서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재위원)는 “이번 정병은 9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돼 인각사 정병 이후 11세기 고려 정병까지의 약 200년 공백을 메우는 연결 고리”라며 “형태가 국보 92호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당나라 제작설이 있는 일본 나라박물관 소장의 정병도 이번에 출토된 정병과 형태가 매우 유사해 통일신라에서 만든 정병인 게 확실해졌다고 봤다. 흥전리 정병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 처리와 정밀 분석을 거쳐 문화재 지정이 추진될 예정이다. 흥전리 사지에서는 금당지(金堂址) 탑지(塔址) 등 주요 가람 시설이 확인됐고, 특히 신라 시대 왕이 임명하는 승단의 최고 통솔자인 ‘국통(國統)’이 새겨진 비석 조각을 비롯해 섬세하고 화려한 금동번(깃발) 등이 출토돼 당대 주요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건물지도 확인됐지만 사찰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유물도 거의 없어 고려 초 폐사된 뒤 묻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의 사찰명은 확인되지 않았다. 흥전리에 있던 사찰은 경주에서 월악산 진전사와 강원 양양 선림원 등 선종 사찰로 이어지는 중간 다리로 평가된다. 박찬문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은 “이곳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분기되는 한편 한강과 낙동강, 동해 수계가 나뉘는 요충지”라며 “사찰이 교통로를 지키고 나그네들의 숙소 역할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굴 조사는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13년부터 진행 중인 ‘폐사지 종합학술조사’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실장은 “전국 옛 절터 5400여 곳은 겉으론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지하에 각종 문화재가 묻힌 보고(寶庫)”라며 “일부에서 축대가 무너지고 유물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하는 일이 생겨 종합 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삼척=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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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1호 바꾸자” 주장에 “문화재에 서열 있나” 반론

    국보 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꾸자는 입법 청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붙여진 문화재 지정번호가 문화재의 서열로 오해되는 만큼 지정번호를 없애자는 의견도 나온다.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 등은 지난달 31일 “현재 문화재 지정번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정한 것이고, 숭례문은 부실 복원 논란이 있기 때문에 새로 바꿔야 한다”며 청원을 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화재는 작아도 고유한 가치가 있고, 상대적으로 서열화할 수 없다”며 “국보 1호를 바꾸자는 주장은 문화재를 서열화하자는 또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주요 박물관 관장도 “주민등록번호나 군번에 가치 서열이 있느냐”며 “문화재 지정번호도 그와 같은데 1호가 가장 가치가 높다는 인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도 2014년부터 여러 차례 “문화재 번호는 중요도 순서가 아니다”라며 국보 1호 교체에 반대 의견을 밝혀 왔다. 이런 논란 속에 이번 기회에 문화재 지정번호를 아예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배 교수는 “일본 등 다른 나라들처럼 내부적으로만 관리를 위해 번호를 사용하고, 대외적으로는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우림 전 울산박물관장은 “번호가 있는 이상 학교에서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뭐냐’는 별 의미 없는 시험 문제가 나오는 등 번호가 상대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 같은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번호는 없애는 게 낫다”고 했다. 실제 문화재 지정번호를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북한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 지정번호를 폐지할 경우 혼란이 올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국보 78호와 83호, 118호는 명칭이 모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관련 공청회에서 “홍보책자나 교과서 등에서 번호를 빼면 어느 것을 지칭하는지 모호해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출토지나 소장처를 붙여 구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문화재청의 지난해 ‘지정번호 제도 개선 연구’ 용역에서는 대외적으로는 번호를 폐지하는 한편 내부적 관리번호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문화재와 관련이 있는 시기와 지역, 종류 등을 반영한 코드로 관리하는 방안이다. 현행 번호는 문화재 지정 순서의 의미만 담고 있다. 지정번호 폐지 여부와는 별개로 문화재 분류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문화재청은 2월 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에 ‘문화재 지정 분류체계 개선 기초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현행 문화재 분류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으로 나뉘는데 같은 성격의 문화재도 다른 항목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안동 하회마을의 양진당은 보물이지만 북촌댁은 중요 민속문화재다. 현행 체계가 문화재 성격별 분류가 잘 되지 않고 유럽 등 해외의 문화재 분류 동향과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행 분류체계가 마련된 지 50여 년이 지나 환경 변화 등을 반영해 분류체계를 기초부터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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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툰의 옷 입은 고전, 스마트폰 속에 쏙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을 통해 다양한 우리 고전을 보여주고 읽어주는 애플리케이션이 나왔다.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은 “어린이와 청소년 등이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웹툰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앱 ‘고구마’(고전에서 구하는 마법 같은 지혜)를 만들었다”고 최근 밝혔다. 앱의 ‘보여주는 고전’ 코너는 고전 속 이야기를 시각 자료로 만들어 보여준다. 소년 어사가 왕명을 받고 전국을 다니며 예와 의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이야기인 ‘효 애니메이션’, 모래로 그림을 그린 샌드 애니메이션, 역사 이야기와 선인들의 일화로 만든 웹툰, 사색적인 그림과 고전 명구를 감상할 수 있는 ‘그림엽서’ 등을 볼 수 있다. ‘읽어주는 고전’ 코너는 고전번역원이 낸 ‘율곡집’ ‘생각 세 번’ ‘추강집’의 주요 내용을 눈이 어두운 노인 등을 위해 음악과 함께 읽어준다. 이 밖에 고전번역원 연구원들이 매주 고전 명구를 해설한 칼럼을 소개하는 ‘함께 읽는 고전’ 코너와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발간한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e북으로 보여주는 코너도 마련됐다. 고구마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한국고전번역원’을 검색하면 내려받을 수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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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이승휴 문화상’ 후보자 추천 6월 말까지

    ‘동안 이승휴(動安 李承休) 사상 선양회’(이사장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는 ‘제3회 이승휴 문화상’ 후보자 추천을 이달 30일까지 받는다. 문학, 학술, 예술, 사회봉사 4개 부문으로 부문별 상금은 3000만 원이다. 이 상은 고려 시대 대표적 학자이자 외교관인 이승휴(1224∼1300)를 기리기 위해 2014년 제정됐다. 강원 삼척에서 태어난 이승휴는 몽골의 침략과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을 겪으며 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지어 단군을 시조로 하는 일원적인 역사 인식 체계를 제시했다. 후보자 추천은 각 대학 총장 및 학장, 학술단체장, 문화·예술단체장, 관계 전문기관과 단체장 등이 할 수 있다. 추천받은 후보자는 선양회가 자체 선정한 후보자들과 함께 심사를 받는다. 선양회 홈페이지(www.jwuk.kr)에서 제출 서류를 내려받아 우편 접수하면 된다. 문화상 수상자 발표는 9월 12일. 시상식은 10월 3일 개천절에 강원 삼척시 죽서루 경내에서 열린다. 문의 033-576-0520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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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복을 빕니다]최기산 천주교 인천교구장, 대북 인도적 지원-새터민 정착에 힘써

    대북지원 활동에 힘쓰고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천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사진)가 30일 오전 11시 40분 선종(善終)했다. 향년 68세. 경기 김포 태생인 고인은 1975년 가톨릭대 신학대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은 뒤 부평1동본당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 인천가톨릭대 교수를 지냈고 1999년 인천교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돼 주교품을 받았다. 2002년부터 제2대 인천교구장으로 일하며 북한에 기초 의약품과 쌀, 옥수수 등을 보내는 인도적 지원 사업에 앞장섰다. 새터민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의사, 한의사의 탄생을 돕는 등 이들의 정착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재임 중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와 간호대를 설립했다. 2004년부터 6년 동안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으로 일했다. 당시 위원회 총무로 함께 일한 박정우 신부는 “최 주교님은 온화하고, 합리적이고, 따뜻했던 분이었지만 용산 참사나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비롯해 교회의 입장에서 정의와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메시지가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소임을 다하셨다”고 회고했다. 2002∼2007년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을 지냈으며 주교회의 교육위원장과 성직주교위원장, 상임위원, 서기로도 일했다. 주교가 되기 전 김포·해안·심곡1동·산곡3동 성당 주임, 인천교구 사목국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강론 잘하는 신부’로 이름이 났다. ‘보다 나은 주일 설교를 위한 제언’ ‘효과적인 어린이 설교를 위한 제언’ 등의 논문과 ‘말 잘하는 신부이야기’ ‘하느님을 향하여’ ‘설교준비법’ ‘어린이 강론집’ 등의 저서를 남겼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애도 메시지에서 “최 주교님은 사목 활동에 열정을 다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신자들에 지극한 사랑을 전하던 착한 목자이셨다”며 “주님께서 최 주교님을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받아주시도록 기도한다”고 밝혔다. 빈소는 인천 중구 주교좌 답동성당(032-762-7613), 장례미사는 6월 2일 오전 10시 반 천주교주교단과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열린다. 장지는 교구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문의는 인천교구 사무처(032-765-6961).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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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사회 소외계층 향한 봉사 손길… “배려를 배웁니다”

    ‘이웃과 함께한 40년.’ 대학 구조 개혁이 화두로 떠오르고 학령 인구가 줄어 전국 대학들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웃과 함께하는 대학’을 지표로 삼고 있는 대학이 있다. 장종현 목사가 1976년 세운 대한복음신학교, 대한복음선교회를 뿌리로 올해 건학 40년을 맞는 백석대(총장 최갑종)다. 백석대는 평소 학생들에게 각종 봉사활동을 기회를 제공하고 장려해 인성 교육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명절이면 어려운 이웃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볕이 따가워질 때면 농촌 어르신들을 찾아가 의료봉사를 펼친다.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전국의 여러 시설에 있는 아동 청소년을 초청해 캠프를 열고, 찬바람이 불면 형편이 어려운 이웃의 집에 연탄을 나르고, 직접 담근 김치를 전한다.“내가 받은 사랑, 다시 전해요” “어린 시절 ‘쿰 캠프’에서 누군가의 사랑받고 있다는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었어요.” 백석대와 백석문화대 인성개발원이 전국의 아동복지시설과 지역아동센터, 다문화가정, 장애 아동·청소년을 초청해 여는 ‘백석 쿰 캠프’에 중학생 시절 참여했던 김영석 씨(23)의 말이다. 김 씨는 이후 백석대에 입학했고, 올 1월 자원봉사자로 캠프에 참여했다. 그는 “내게 사랑의 감정을 알려준 당시 캠프 선생님들처럼 저도 받은 사랑을 나누고자 한다”며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쿰 캠프’는 설립자 장 목사가 총장 재임 시절 시작해 올 여름이면 20주년, 횟수로는 제40회를 맞는다. 준비부터 철저하다. 캠프가 열리기 전 재학생들은 15주간 ‘백석인성교육론’을 들으며 훈련을 받고, 합숙 캠프를 거친 뒤에야 전국에서 모인 아동과 청소년을 만날 수 있다. 캠프 자원 봉사를 마치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인증한 ‘인성개발지도사 자격증’을 받는 것은 덤이다.지역사회로 나아가는 대학 백석대는 사회봉사센터를 두고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년 5월이면 ‘지역 어르신을 위한 의료봉사’를 연다. 보건학부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작업치료학과와 스포츠과학부 학생 등이 참여한다. 김장철에는 총장 교직원 학생이 ‘사랑의 김장 나누기’를 한다. 지역사회 저소득층 가정과 조손가정 등을 돕는데 지난해에는 다문화가정도 포함됐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며느리들을 초청해 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했고, 김치 6000kg을 충남 천안의 어려운 이웃에게 전했다. 사범학부 특수체육교육과의 ‘지역사회 장애학생과 함께하는 멤버십트레이닝(MT)’은 11년째 열리고 있다. 15일 열린 MT에서 강유석 교수는 “대학 생활 시작부터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면서 전공 지식도 기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농번기 일손이 부족한 주변 마을의 포도농장에서 하는 봉사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건학 40년에 새겨진 감사’ 백석대가 학생들에게 사회봉사활동을 제안하는 것은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을 배우면 학업 뿐 아니라 미래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백석대는 1992년 지금의 천안 캠퍼스 자리인 천안 안서동에 자리를 잡았다. 1996년 기독대에서 천안대로, 2006년 다시 지금의 백석대로 교명을 바꿨다. 올해 현재 12개 학부, 49개 전공, 대학원(서울) 7개에 학생 약 2만 명이 재학 중이다. ‘기독교 대학의 글로벌 리더’라는 슬로건을 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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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조종엽]한강과 진눈깨비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받은 다음 날인 18일 후속 기사를 쓰기 위해 서점에서 그의 책을 급히 찾았다. 다른 책은 동이 났고, 첫 소설집인 ‘여수의 사랑’만 남아 있기에 얼른 집어 들었다. 책에는 작가의 1994년 신춘문예 당선작을 포함해 1995년까지 발표된 작품이 담겨 있었다. 한강의 소설은 지금도 대중적인 편은 아니지만 작가로서 첫발을 떼던 당시에도 유행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나 보다.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당시 대표)이 쓴 초판 해설은 “한강의 상상력은 한 세대 전의 세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거기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감각적인 글쓰기가 유행했다고 들었다. 정치적으로는 장군 출신 대통령들이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앞둔 경제는 야심만만하게 세계화를 외쳤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문화 대통령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아마 많은 이들이 한없이 가벼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건국 이래 유일한 시절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의 소설집 ‘여수의…’는 일관되게 극도로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주인공은 고아 또는 고아나 다름없는 이들. 가족의 죽음이나 상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가난하고, 몸은 아프거나 지난날 아팠다. 자신과 닮은 이를 만나 때로 보듬고 자주 상처 준다. 좁은 방, 가까운 이들과의 불편한 관계, 밤과 막막한 어둠의 이미지들…. 책 어디를 둘러봐도 고통이 가득하다. 한강이 집필과 병행하던 직장생활을 그만둔 게 1995년 겨울이니 작가는 주말과 밤에 이런 주인공들을 부여안고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때 한강은 한동안 진눈깨비에 ‘꽂혔던’ 것 같다. 여러 소설에서 이야기가 전환되는 마디마다 진눈깨비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표제작의 주인공 정선은 방에 날리는 먼지를 보며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는 여수의 진눈깨비를 떠올린다. ‘질주’에서 인규의 어머니는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흩날리던 날 수십 년 전 잃은 둘째 아들과 인규를 착각하는 치매 증상을 드러낸다. ‘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영진이 나중에 믿음을 저버릴 고향 언니에게 깊은 동정을 느낀다. 진눈깨비,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눈처럼 맞았다가는 금세 축축해져 기분이 나빠지는, 봄을 순식간에 우울한 겨울로 되돌리는 스산한 것. 다시 생각해 보면 한강이 ‘여수의…’를 쓰던 시절도 가벼운 시대가 아니었다. 잇따른 대형 참사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민주주의 확대의 열망이 때로 좌절했다. ‘여수의…’ 주인공이 아홉 시 뉴스를 볼 때면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던 것처럼, 당시 20대에게는 진눈깨비의 이미지에 썩 어울리는 시대였을 거다. 창작은 흔히 산고에 비유된다. 아기는 자라지만, 작가들이 낳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다. 오래전 작품을 읽는 작가의 기분은 어떨까. 여수까지 고속철도(KTX)가 개통된 지 오래지만 소설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통일호를 타고, 공중전화를 걸었다가 3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전화를 끊는다. ‘여수의…’ 첫 문장처럼, 여수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 대고 있을까.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

    • 201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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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술 이책]죽기 위해 산다

    기드온 크루는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변장술, 사격·무술 실력에 재빠른 두뇌 회전까지 갖춘 천재 첩보원. 뇌혈관 이상으로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에게 ‘실온 초전도체’를 찾아오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이것은 세계에서 소실되는 전력량의 99%를 절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물건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기드온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살인 청부업자, 재계의 거물 등을 혼자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폭우 속의 불도저 대결, 휘청거리며 무너지는 탑 등은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007 제임스 본드에게 필적할 수 있을까. 1만30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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