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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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5-07-13~2025-08-12
문학/출판64%
문화 일반15%
인사일반9%
사회일반6%
사건·범죄3%
기업3%
  • 제작 발표회 제외됐던 ‘탑’, 뒤늦게 SNS로 홍보 가세

    그룹 빅뱅 출신 탑(본명 최승현·사진)이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홍보에 뒤늦게 가세했다. 마약 전과로 논란이 된 탑은 앞서 국내외 홍보 행사에선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탑은 25일 인스타그램에 “Squid Game 2(오징어 게임 2) D-1”이라는 글과 함께 드라마 속 캐릭터 영희 피규어 등을 올렸다. 넷플릭스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다시 게임에 참여하세요. 2024. 12. 26”이라는 문구가 적힌 초대장도 공개했다. 탑은 대마 흡연 혐의로 2017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오징어 게임 2 캐스팅 사실이 알려진 이후 논란이 커졌고 제작 발표회나 공식 포스터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황동혁 감독은 8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왜 이 작품을 해야 했는지 결과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철회하지 않고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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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끝, 수목장서 만난 세명의 ‘다시 살기’

    고정적인 거처 없이 100만 원 주고 산 중고차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우중이 ‘너머 수목장’에 취업한다. 건달 생활을 하던 팀장 도현, 우중과 동갑내기인 소미의 상황도 막막하긴 매한가지다. 어울림에 서툴던 이들은 너머 수목장에서 부대끼며 점차 마음을 열어간다.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잊고 살기 쉬운 진리를 매순간 되새기게 되는 이곳에서. 수목장 업체에서 일하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길 너머의 세계’(은행나무)를 펴낸 소설가 전민식(59·사진)은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 번이라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작가는 2018년 경기 안산시 대부도의 한 수목장 업체에서 8개월간 일했다. 수목장 업체를 운영하는 지인 제안으로 인근에 머물며 일하고 소설 쓰기를 병행했다. 어떤 날은 찾아오는 이가 한 명도 없고 많아야 서너 팀이 방문하는 외진 곳이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이 있는 젊은이들조차 분말이 된 유골을 맨손으로 만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손사래를 치고 떠났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100명의 유골을 수습했다. 그는 “나라고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이 특별한 건 아닌데 특별히 죽음을 삶과 분리해서 바라보지 않아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작가에게 골분은 단순한 물질 이상이었다. 만질 때면 사람의 숨결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그가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70kg 몸을 화장했다면 그 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물질로 변환이 됐다고 보는 거죠. 연기든 뭐든. 우주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섭리 같아요. 화장한 나머지 것들이 어딘가로 흩어지거나 전달됐을 거라고 봐요.” 작가의 실제 경험은 소설 속 디테일로 살아났다. 30분에 걸친 수목장 절차를 상세히 묘사한다. 지름 30cm가량의 잔디를 떼어내고 땅속으로 한쪽 팔길이까지 파 내려간 다음 벽을 다듬는다. 원기둥의 꼴이 갖추어지면 한지를 넣어 흙과 벽을 가린다. 그 안에 유골을 붓고 모래와 섞는다. 유골을 모래와 섞는 건 뼛가루가 돌덩이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소설 속 너머 수목장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파도를 건너온 노을이 반송에 매달린 명패들을 흔들었다” “잡다한 세상을 깨끗하게 지워버린 끝모를 바다” 등에서처럼 산다는 것의 막막함과 유한한 존재로서 느끼는 서글픔, 무한한 자연이라는 테마는 소설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장례식장에 가면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없어지는 게 아니고 어딘가에 무엇으로든 존재할 거라는 생각. 그러니까 ‘그때 보자’는 생각. 울면서 보내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요. 이 생각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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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년간 387개 도서관 조성… “12월엔 책 읽어주는 산타버스 출동”

    “책 읽는 산타 버스예요. 어서오세요. 저는 책 할아버지예요.” 16일 오전 11시 경기 안성시 동신초등학교. 학교 운동장 옆 주차장에 세워진 ‘책 읽는 버스’로 4학년 학생들 10여 명이 달려왔다. 45인승 버스를 개조한 이 이동형 도서관에는 1000여 권의 책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김수연 대표(78). 김 대표는 1987년 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시작해 올해까지 전국의 문화 소외지역에 387개 도서관을 조성했다. 올 한 해에만 전남 완도군, 강원 평창군 등 9곳에 새 도서관을 짓거나 기존 노후 도서관을 리모델링했다. 2005년부터는 도서관이 없는 농어촌 마을에 이동형 도서관으로 개조한 ‘책 읽는 버스’를 타고 직접 찾아갔다. 마라도, 연평도 등을 포함해 연평균 책 읽는 버스 출동 건수만 144회에 달한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곳에 도서관을 짓거나 이동도서관을 운행한 지 벌써 37년이 된 것. 그런 ‘책 읽는 버스’는 12월이면 ‘산타 버스’로 진화한다. 운전석에 산타 복장을 전시해두고 창가와 천장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았다. 뒷자리엔 선물상자도 뒀다. 김 대표는 ‘책 할아버지’로 변신해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준다. 이날 그는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 ‘책벌레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어요!’(생명의말씀사)와 1996년 노벨상을 받은 피터 도허티 호주 멜버른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손에 책을 쥐기보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요즘 아이들. 김 대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독서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우리가 아는 길을 가면 무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잖아. 근데 모르는 길을 가면 어때? 긴장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 내가 인생을 살아본 것 같은 생각으로 여유를 갖고 살 수 있어.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게 행복이거든. 그래서 책을 봐야 해.” 아이들을 위한 독서 운동에 투신한 것은 사연이 있다. 그의 둘째 아들은 만 6세 때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떴다. “아들이 책을 좋아했는데 아직 책 읽을 나이가 안 됐다고 봐서 ‘학교 들어가면 잔뜩 사주겠다’고 미뤘었다. 그게 평생 한이 된다.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러 올 때면 그 속에서 아들을 본다.” 그는 이후 목사가 됐고, 독서 운동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책 속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와 지혜, 기술이 들어 있다”며 “책을 읽고 습득하고 내 삶에 적용하면 지혜와 여유가 생기고, 여유는 행복을 만들어 주니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김 대표는 탈무드, 명심보감, 논어, 도덕경을 손바닥 크기 포켓북으로 제작해 주요 행사마다 들고 다니며 나눠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휴대하기 좋은 책을 들고 다니며 독서 습관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대인 가정에선 잠들기 전 ‘10분 독서’를 철칙으로 여깁니다. 유대인이 전 세계 인구의 약 0.2%밖에 안 되는데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결국 어릴 때부터 익힌 독서의 힘이 아닐까요.”안성=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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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 가장 즐겨보는 웹툰 ‘화산귀환’ 1위

    우리나라 웹툰 독자들이 올해 가장 즐겨 본 작품으로 무협 웹툰 ‘화산귀환’(사진)이 꼽혔다. 15일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만화·웹툰 이용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이용자 34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즐겨 보는 웹툰 1위 자리에 ‘화산귀환’(10.4%)이 올랐다. 2021년부터 같은 조사에서 3년 연속으로 1위에 꼽혔던 ‘외모지상주의’(10.1%)는 2위로 밀렸다. ‘신혼일기’(5.5%), ‘나 혼자만 레벨업’(4.5%), ‘김부장’(4.1%), ‘전지적 독자 시점’(3.9%), ‘신의 탑’(3.6%)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화산귀환’은 화산파 고수 청명이 사망했다가 100년 뒤 다시 환생해 몰락한 자신의 문파를 재건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웹툰 이용자의 73.3%가 즐겨 보는 웹툰 작품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성이 75.6%로 여성(70.8%)보다 다소 높았고, 연령별로는 20대가 88.7%로 가장 높았다. 이어 10대(86.6%)와 30대(85.3%)가 잇따랐다. 즐겨 보는 웹툰 장르로는 ‘액션’이 응답자의 38.8%로 가장 높았고 이어 ‘판타지’(32.9%), ‘로맨스 판타지’(30.9%), ‘코믹·개그’(28.1%) 등의 순서를 보였다. 이 조사는 올해 5월 20일부터 한 달간 웹툰을 2∼3개월에 1회 이상 본 10∼69세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됐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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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쓰고 듣는 과정은 희망의 증거… 일상으로 돌아가 새 작품 쓰겠다”

    “말을 건네고 글을 쓰고 읽고, 귀를 기울여서 듣는 과정 자체가 결국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1일(현지 시간) 스웨덴의 한 출판사에서 열린 국내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소설가 한강(54)은 글쓰기에서 믿음과 희망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글을 쓰려면 최소한의 믿음은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다”면서 “아주 개인적으로 보이는 글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최소한의 언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쓰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이해하는 진입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늘 있었다. 그렇게 말씀드렸던 이유는 이 소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며 “(분량이) 얇으니까 광주를 이해하는 데 진입로 같은 것이 돼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고 했다. 다만 한강은 최근 한국의 비상계엄 후 혼란 상황에 대한 질문에는 “5일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까지 뉴스로 상황을 접했는데 여기 도착한 뒤로 일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파악이 잘 안 된 상태여서 돌아가서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앞서 한강은 6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선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 책을 읽는 순서’를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한강은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이 ‘소년이 온다’이면 좋을 것 같고, 이 책과 연결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진한 책보다 조금 성근 책을 원한다면 ‘흰’이나 ‘희랍어 시간’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채식주의자’는 처음부터 읽기보다 다른 책을 읽은 뒤에 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린이 테마파크 ‘유니바켄’을 찾은 일도 들려줬다. “(스웨덴 체류 중) 딱 세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이 있었는데, 그곳을 추천받아 갔어요. 그 얘기를 유니바켄 측에서 들으셨는지 저에게 평생 무료 이용권을 주셨어요.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물이었어요.” 한강은 12일 왕립극장에서 열리는 낭독회로 노벨상 공식 일정을 마친다. “이제 저는 일상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열심히 신작을 쓰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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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글을 쓰고 읽고 듣는 과정, 우리의 희망을 증거하는 것”

    “말을 건네고 글을 쓰고 읽고, 귀를 기울여서 듣는 과정 자체가 결국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1일(현지 시간) 스웨덴의 한 출판사에서 열린 국내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소설가 한강(54)은 글쓰기에서 믿음과 희망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글을 쓰려면 최소한의 믿음은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다”면서 “아주 개인적으로 보이는 글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최소한의 언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쓰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이해하는 진입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늘 있었다. 그렇게 말씀드렸던 이유는 이 소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며 “(분량이) 얇으니까 광주를 이해하는 데 진입로 같은 것이 돼주지 않을까하는 바람도 있었다”고 했다. 다만 한강은 최근 한국의 비상계엄 후 혼란 상황에 대한 질문에는 “5일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까지 뉴스로 상황을 접했는데 여기 도착한 뒤로 일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하는 지 파악이 잘 안된 상태여서 돌아가서 업데이트를 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앞서 한강은 6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선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 책을 읽는 순서’를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한강은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이 ‘소년이 온다’이면 좋을 것 같고, 이 책과 연결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진한 책보다 조금 성근 책을 원한다면 ‘흰’이나 ‘희랍어 시간’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채식주의자’는 처음부터 읽기보다 다른 책을 읽은 뒤에 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린이 테마파크 ‘유니바켄’을 찾은 일도 들려줬다. “(스웨덴 체류 중)딱 세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이 있었는데, 그곳을 추천받아 갔어요. 그 얘기를 유니바켄 측에서 들으셨는지 저에게 평생 무료 이용권을 주셨어요.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물이었어요.” 한강은 12일 왕립극장에서 열리는 낭독회로 노벨상 공식 일정을 마친다. “이제 저는 일상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열심히 신작을 쓰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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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상에만 주어지는 ‘양피지 증서’ 받아… 올해 상금은 14억원

    소설가 한강(54)은 10일 ‘2024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각별한 환대와 ‘선물’도 받았다.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으로부터 직접 노벨 문학상 메달과 증서(diploma·사진)를 받은 것이다. 한강이 받은 금메달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얼굴이, 뒷면에는 한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이 증서를 받는데 문학상은 다른 증서들과 달리 특별하다. 양의 가죽을 넓게 펴서 약품 처리를 해 만든 ‘양피지(羊皮紙)’로 만들어졌기 때문. 올해 문학상 증서에는 ‘스웨덴 한림원(SVENSKA AKADEMIEN)’과 노벨의 이름 아래 한강의 영문 이름이 특별한 서체의 금색으로 새겨졌다. 간혹 수상자의 특성을 반영한 삽화가 들어가는 것도 있으나, 한강의 증서에는 별도의 삽화가 담기지는 않았다. 지난해 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증서도 삽화가 없는 양식이었다. 노벨상 상금은 노벨 재단이 운영하는 기금의 수익에 따라 약간씩 변동되는데 올해의 경우 1100만 크로나(약 14억 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약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시상식은 한 편의 잘 준비된 클래식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한강을 비롯한 수상자들이 입장할 때는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시상 사이마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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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문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

    “문학 작품을 읽고 쓰는 행위는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입니다. 이 문학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0일(현지 시간)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한강은 이렇게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유지한다”면서 생명의 중요성과 이를 파괴하는 행위를 비판한 것. 이날 연회는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노벨상 연회는 노벨상 수상자를 축하하기 위해 일주일간 열리는 노벨 주간의 하이라이트 행사로 꼽힌다. 이날 오후 7시에 시작된 연회는 국왕과 총리, 스웨덴 한림원 등 수상자 선정 기관 관계자 등 1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연이 펼쳐지며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한강은 이날 연회에 스웨덴 국왕의 사위인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연회장에 입장한 뒤 안드레아스 노를렌 국회의장,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등과 함께 중앙 메인 테이블에 앉았다. 국왕과는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자리였다. 연회의 대미는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 발표였다. 세 가지 코스요리가 마련된 만찬의 후반부에 행사 진행자가 수상자들의 소감을 청했고 한강은 네 번째 순서로 4분가량 수상 소감을 영어로 밝혔다. 그는 “여덟 살이었던 어느 날 주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어찌나 거세던지, 건물 처마 밑에 아이들 두어 명씩 몰려들어 몸을 피했다”며 “건너편 건물에도 비슷한 처마가 있었는데, 그곳에도 작은 무리가 비를 피하며 서 있었다.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강은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이 사람들 모두, 그리고 건너편의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이라며 “수많은 1인칭 시점의 존재를 경험한 놀라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글을 읽고 쓰며 보낸 시간 동안 그 순간의 경이로움을 수없이 다시 체험했다”며 “언어라는 실을 따라 다른 마음의 깊은 곳에 들어가고 다른 이의 내면과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잠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라고 묻기도 했다. 이어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구성됐는지 묻고, 이 행성에 사는 생명체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이런) 우리를 서로 연결하는 것은 언어”라면서 언어와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강은 연회에 앞서 오후 4시경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서 5분간 한강 작품을 소개했다. 그는 “한강의 글에서는 하양과 빨강, 두 색이 만난다”고 운을 뗐다. 이어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 보호막을 긋는 역할을 하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라며 “(그 대신) 빨간색은 삶을 대변한다. 그러나 고통과 피, 칼로 깊게 베인 상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죽은 자, 강탈된 자, 사라진 자들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빚지는가?’ 하양과 빨강은 한강이 그녀의 소설을 통해 되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의 작품이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시상식이 이어졌다. 구스타프 국왕이 메달 및 증서를 수여하며 악수를 건네다 메달 케이스 뚜껑이 갑자기 닫히자 한강이 놀라는 표정을 짓다 활짝 웃어 보이는 해프닝도 있었다. 탁, 소리가 홀에 퍼질 정도로 크게 나자 객석에서도 웃음이 터졌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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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빛으로 새긴 ‘한강’, 문학상에만 특별 수여된 이 증서는

    소설가 한강(54)은 10일 ‘2024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각별한 환대와 ‘선물’도 받았다.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으로 직접 노벨 문학상 메달과 증서(diploma)를 받은 것이다. 한강이 받은 금메달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얼굴이, 뒷면에는 한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이 증서를 받는데 문학상은 다른 증서들과 달리 특별하다. 양의 가죽을 넓게 펴서 약품 처리를 해 만든 ‘양피지(羊皮紙)’로 만들어졌기 때문. 올해 문학상 증서에는 ‘스웨덴 한림원‘(SVENSKA AKADEMIEN)’과 노벨의 이름 아래 한강의 영문 이름이 특별한 서체의 금색으로 새겨졌다. 간혹 수상자의 특성을 반영한 삽화가 들어가는 것도 있으나, 한강의 증서에는 별도의 삽화가 담기지는 않았다 지난해 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증서도 삽화가 없는 양식이었다. 노벨상 상금은 노벨 재단이 운영하는 기금의 수익에 따라 약간씩 변동되는데 올해의 경우 1100만 크로나(약 14억 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약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시상식은 한편의 잘 준비된 클래식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한강을 비롯한 수상자들이 입장할 때는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시상 사이마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대 뒤편 2층에는 스톡홀름 왕립 필하모닉 관현악단이 자리했으며, 요한네스 구스타브손이 지휘했다. 스웨덴의 소프라노 잉엘라 브림베리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수록된 ‘그대, 고귀한 전당이여’(Dich, teure halle)를 노래했다. 한강이 메달을 받은 직후에는 영국의 여성 오보에 연주자 겸 작곡가 루스 깁스(1921∼1999)가 작곡한 ‘암바르발리아’(Ambarvalia)가 연주됐다. 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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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노벨상 수상소감 “문학은 생명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

    한강이 10일(현지시간)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고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한강은 이날 노벨상 시상식이 끝난 직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연회에서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 이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품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연회에는 스웨덴 국왕과 수상자들, 노벨 재단과 한림원 주요 인사 등 13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강은 이 자리에서 영어로 4분가량 수상 소감을 밝혔다.그는 지난 7일 노벨상 강연에서처럼 여덟 살 때 기억을 회상하며 소감을 시작했다. 강연에서는 여덟 살 때 쓴 시를 회상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 전반을 돌아봤다.한강은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다”며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이어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다”며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그 깨달음이란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며,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고 내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며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다”고 말했다.그는 문학을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 만나는 것,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빗댔다.한강은 연회에 앞서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시상식에서 노벨상 증서와 메달을 받았다. 그는 시상식 내내 의자에서 허리를 떼고 두 손을 다리 위에 가지런히 놓은 모습이었다. 무대 뒤 2층에 자리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꼿꼿한 자세를 시상식 내내 유지했다. 한강은 국왕과 한림원 회원들, 객석을 향해 차례로 인사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다음은 수상 소감 전문.폐하, 왕실 전하, 신사 숙녀 여러분.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러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문학을 위한 이 상이 주는 의미를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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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블랙 드레스 입고 들어서자…스웨덴 국왕 일어나 경의

    10일(현지 시간) 오후 기자가 찾은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노벨상 시상식을 상징하는 ‘블루 카펫’이 깔린 무대 가운데 바닥에는 ‘THE NOBEL PRIZE’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식장 안에는 무대를 가득 채운 생화들이 내뿜는 은은한 꽃향기가 가득했다.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말년을 보낸 이탈리아 북서부 산레모에서 해마다 시상식을 위해 보내오는 꽃들이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식장으로 들어왔다. 앞서 스웨덴에서 열린 기자회견, 강연 등에서 검은색 옷을 입었던 한강은 이날도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식장에 들어왔다. 한강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입장하자,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 등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수상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다. 수상자들은 노벨의 정신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무대 한가운데 놓인 노벨 동상 앞을 지나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이날 한강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상에 이어 네 번째로 문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이자 소설가인 엘렌 맛손이 한강의 작품세계를 간략히 소개한 뒤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이 직접 한강에게 메달과 상장을 수여했다. 한강이 받은 메달은 금으로 제작됐으며 무게는 175g, 지름은 6.6cm. 메달 앞면에는 노벨의 상반신 초상과 더불어 라틴어로 출생 및 사망 연도가 새겨져 있다. 노벨의 뜻을 기린 ‘발명은 예술로 아름다워진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뜻의 라틴어 문구가 있는 메달이다. 한강은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4억4000만 원·비과세)도 받는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아시아 여성 최초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도 됐다. 앞서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수상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이날 시상식장 앞에는 수상을 축하하는 전라남도와 장흥군의 현수막이 내걸린 가운데, 태극기를 든 한국인들이 여럿 보였다. 한강은 시상식이 끝난 뒤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오후 7시부터 열린 축하 연회에 참석했다. 이날 연회에는 올해 노벨상 수상자 11명과 왕실 관계자 등 1300명이 참여했다. 한강은 시상식에 앞서 8일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생전 자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6일 기자회견에서 “오늘 이후로 스톡홀름을 더 즐기고 싶다”며 린드그렌의 아파트와 스웨덴 국립도서관을 가 보고 싶은 곳으로 꼽았는데, 그중 린드그렌의 자택을 실제 찾은 것.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협회에 따르면 한강은 린드그렌의 아파트를 둘러보고, 린드그렌의 증손자를 만났다. 린드그렌은 ‘말괄량이 삐삐’와 ‘엄지 소년 닐스’, ‘미오, 나의 미오’ 등을 쓴 세계적인 작가다. 아동인권 개선에도 힘써 스웨덴 아동체벌 금지법 제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아파트는 린드그렌이 살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린드그렌은 1941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이곳에서 살며 집필 작업을 이어갔다. 한강이 매일 2, 3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바쁜 일정에도 이곳을 찾은 건 어린 시절 린드그렌의 작품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0월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한강은 스웨덴 한림원과의 통화에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좋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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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검은 드레스 입고 들어서자… 스웨덴 국왕 일어나며 경의

    10일(현지 시간) 오후 기자가 찾은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노벨상 시상식을 상징하는 ‘블루 카펫’이 깔린 무대 가운데 바닥에는 ‘THE NOBEL PRIZE’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식장 안에는 무대를 가득 채운 생화들이 내뿜는 은은한 꽃향기가 가득했다.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말년을 보낸 이탈리아 북서부 산레모에서 해마다 시상식을 위해 보내오는 꽃들이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식장으로 들어왔다. 앞서 스웨덴에서 열린 기자회견, 강연 등에서 검은색 옷을 입었던 한강은 이날도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식장에 들어왔다.한강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입장하자,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 등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수상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다. 수상자들은 노벨의 정신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무대 한가운데 놓인 노벨 동상 앞을 지나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이날 한강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상에 이어 네 번째로 문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이자 소설가인 엘렌 맛손이 한강의 작품세계를 간략히 소개한 뒤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이 직접 한강에게 메달과 상장을 수여했다. 맛손 위원은 “한강의 글에서는 흰색과 빨간색이 만난다. 흰색은 슬픔과 죽음의 색이며, 빨간색은 생명을 뜻하지만 고통과 상처를 의미하기도 한다”며 두 가지 색으로 한강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흰색과 빨간색은 한강의 소설에서 회귀하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한강이 받은 메달은 금으로 제작됐으며 무게는 175g, 지름은 6.6cm. 메달 앞면에는 노벨의 상반신 초상과 더불어 라틴어로 출생 및 사망 연도가 새겨져 있다. 노벨의 뜻을 기린 ‘발명은 예술로 아름다워진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뜻의 라틴어 문구가 있는 메달이다. 한강은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4억4000만 원·비과세)도 받는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아시아 여성 최초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도 됐다. 앞서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수상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이날 시상식장 앞에는 수상을 축하하는 전라남도와 장흥군의 현수막이 내걸린 가운데, 태극기를 든 한국인들이 여럿 보였다. 한강은 시상식이 끝난 뒤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오후 7시부터 열린 축하 연회에 참석했다. 이날 연회에는 올해 노벨상 수상자 11명과 왕실 관계자 등 1300명이 참여했다. 한강은 시상식에 앞서 8일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생전 자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6일 기자회견에서 “오늘 이후로 스톡홀름을 더 즐기고 싶다”며 린드그렌의 아파트와 스웨덴 국립도서관을 가 보고 싶은 곳으로 꼽았는데, 그중 린드그렌의 자택을 실제 찾은 것.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협회에 따르면 한강은 린드그렌의 아파트를 둘러보고, 린드그렌의 증손자를 만났다. 린드그렌은 ‘말괄량이 삐삐’와 ‘엄지 소년 닐스’, ‘미오, 나의 미오’ 등을 쓴 세계적인 작가다. 아동인권 개선에도 힘써 스웨덴 아동체벌 금지법 제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아파트는 린드그렌이 살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린드그렌은 1941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이곳에서 살며 집필 작업을 이어갔다. 한강이 매일 2, 3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바쁜 일정에도 이곳을 찾은 건 어린 시절 린드그렌의 작품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0월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한강은 스웨덴 한림원과의 통화에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좋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작품은 형 ‘요나탄’과 동생 ‘칼’이 죽음 이후의 세계인 낭기열라에서 온갖 모험을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한강은 2017년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르웨이 문학의 집’ 강연에서 “나의 내면에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1980년 광주와 연결돼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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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괄량이 삐삐’ 작가 집 찾은 한강…린드그렌의 아파트 방문한 이유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 주간 행사를 치르고 있는 한강이 8일(현지시간)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이 생전 살던 집을 찾았다. 린드그렌은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 등을 남긴 세계적인 작가다. 한강은 앞서 6일 기자회견에서 “오늘 이후로 스톡홀름을 더 즐기고 싶다”며 린드그렌의 아파트와 스웨덴 국립도서관을 가 보고 싶은 곳으로 꼽았다.노벨 재단은 이날 한강이 린드그렌의 집을 방문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한강은 린드그렌의 집에 걸린 액자 속 스케치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스톡홀름 달라가탄 지역에 있는 린드그렌의 집은 그가 1941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살며 ‘말괄량이 삐삐’를 비롯해 수많은 대표작을 썼던 곳이다. 아파트는 린드그렌이 살던 때의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한강이 매일 두세 개씩 공식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이곳을 찾은 건 그가 어린 시절 린드그렌의 작품에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강은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좋아했다고 밝혔다. 린드그렌은 스웨덴 아동 체벌 금지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상도 제정됐다. 한강은 린드그렌의 증손자인 요한 팔름베리도 만났다고 한다.9일 오후 찾은 린드그렌의 집은 가이드투어가 예정돼 있지 않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의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바사파르켄 공원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큰 공원 중 한 곳이다. 공원에 맞닿은 한 어린이집에선 스키복과 털모자로 중무장한 어린이 스무 명이 흙장난을 하며 야외수업을 받고 있었다. 공원 중심부엔 대형 아이스링크가 조성돼있고 젊은 아빠, 엄마가 유모차를 끌며 공원을 산책했다. 한 시민은 “린드그렌이 창밖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동화책을 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한강은 노벨 주간의 하이라이트인 시상식(10일)을 하루 앞둔 9일에는 일정을 최소화했다. 원래 방문 예정이었던 국립도서관 방문을 취소했고,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해 마련된 리셉션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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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 즐기지 않는 한강, 와인으로 편집자들과 자축

    8일(현지 시간) 오후 1시경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의 한 프랑스 레스토랑. 아담한 식당 앞에 검은 밴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 경호원들의 수행을 받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간 이는 소설가 한강(54). 그의 대표작 ‘작별하지 않는다’, ‘흰’,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를 펴낸 스웨덴 출판사 나튀르 오크 쿨튀르가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한강과 각국 편집자들을 초대한 비공개 오찬 자리였다. 복수 참석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오후 4시에 개점하는 식당을 통째로 빌려 다른 외부 손님 없이 약 2시간 동안 식사가 진행됐다. 이날 오찬에는 스웨덴을 비롯해 한국, 노르웨이,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온 편집자 10여 명이 모여 한강과 자리를 함께했다. 국내에선 한강의 책을 주로 펴낸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창비 편집자들이 참석했다. 한강 작품의 해외 출간을 맡은 에이전시 RCW 관계자도 참가했다. 마치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반영한 듯 이날 오찬 메뉴는 채식으로 꾸려졌다. 콩이 들어간 야채 수프와 가지를 두부처럼 튀긴 비건용 스테이크, 초콜릿 무스가 코스로 나왔다. ‘채식주의자’는 현재 스웨덴 대형 서점에서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강은 평소 채식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올 10월 수상자 선정 직후 노벨재단 관계자에게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날은 와인을 가볍게 한 잔 정도 마셨다고 한다. 중앙 헤드 테이블에 앉은 한강은 외국인 편집자들에게 둘러싸여 이들과 영어로 대화했다. 오찬에 참석한 국내 편집자는 “한강이 하루에 공식 일정만 2, 3개씩 소화하고 있지만 별로 피곤한 기색이 보이진 않았다”며 “외국 편집자들에게 둘러싸여 국내 편집자들과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한강 작가가 중간에 ‘얘기도 잘 못해서 어떡해요’라는 말을 건넸다”고 했다. 한강은 오찬을 마친 뒤 오후 7시부터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콘서트’에 참석했다. 노벨상 콘서트는 매해 노벨상 수상자를 기념하는 노벨 주간 공식 프로그램. 이날 한강은 2층의 스웨덴 왕실 좌석의 왼쪽에 앉았다. 긴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그는 주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공연을 기다렸다.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가 입장하자 객석에 앉은 이들이 모두 일어섰다. 한강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국왕 부부를 맞았다. 이날 공연은 체코 지휘자 페트르 포펠카 지휘로 왕립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 등을 연주했다. 이어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아리아를 열창했다. 콘서트가 열린 스톡홀름 콘서트홀은 10일 노벨 문학상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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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시상식 후엔 1300명 축하 연회 열려

    10일(현지 시간) 열릴 노벨상 시상식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스톡홀름 신청사 블루홀에서 열리는 대규모 연회다. 올해는 한강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 11명과 왕실 관계자, 각계 귀빈 등 1300명이 모여 만찬을 갖는다. 노벨상 연회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전통과 예술이 어우러진 고유한 문화적 행사로 여겨지는 만큼 각국의 이목이 쏠린다. 한국 수상자가 이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상을 받았다. 노벨재단에 따르면 노벨상 시상식은 현지에서 10일 오후 4시(한국 시간 11일 0시)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시상식이 끝나면 참석자들은 차로 5∼10분 거리에 있는 시청사로 이동해 오후 7시부터 연회를 갖는다. 노벨상 연회는 스웨덴에서 국민적 관심을 받는 행사다. 방송으로 생중계될 뿐 아니라 연회장 메뉴는 만찬 다음 날부터 스웨덴과 유럽 각지 유명 식당 인기 메뉴로 판매된다. 노벨위원회는 노벨 주간을 앞두고 매년 연회를 책임지는 ‘올해의 셰프’를 먼저 발표한다. 올해도 노벨 주간(6∼12일) 하루 전인 5일 에피타이저와 메인 코스를 맡을 ‘올해의 셰프’로 제시 소마르스트룀과 파티시에 프리다 베케를 선정했다. ‘올해의 셰프’는 매년 9월 유명 셰프들이 세 가지 메뉴를 준비해 노벨재단에 제출한 뒤 테스트와 시식을 거쳐 최종 선발된다. 구체적인 만찬 메뉴는 당일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노벨재단은 올해 노벨상 연회의 핵심 테마를 ‘지속가능성과 창의성’으로 꼽았다. 비트와 사과, 통곡물 등 스웨덴의 건강한 식재료가 사용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다국적 셰프 40여 명이 메뉴를 준비한다.한강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은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 등 왕실 관계자들과 함께 중앙 메인 테이블에 자리할 예정이다. 좌석 배치도는 연회 하루 전인 9일 공개된다. 한강은 만찬에서 짧은 소감을 밝힐 예정이다. 서빙은 8분 이내에 전체 1300여 명에게 일사불란하게 이뤄진다. 만찬 가격은 1인당 3600크로나(약 47만 원)다. 노벨재단은 홈페이지에 1901년 첫 시상식부터 지난해까지 노벨상 연회에서 제공된 메뉴를 공개하고 있다. 만찬은 클래식 음악과 수상자 연설 등을 포함해 4∼5시간가량 걸린다.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쯤 만찬이 끝난 후에는 바로 옆 골든홀에서 무도회가 열린다. 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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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한강, 국내외 출판사 관계자들과 비공개 채식 오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 주간 행사를 소화하고 있는 한강이 8일(현지시간) 그의 책을 출간한 국내외 출판사 관계자들과 비공개 오찬을 했다. 스웨덴은 물론 노르웨이,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온 편집자 10여 명이 한자리에 처음 모였다. 국내에선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창비 출판사 관계자가 참석했다. 한강이 속한 국제 문학 에이전시인 RCW 관계자도 동석했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오찬은 스웨덴 출판사 나뛰르 오크 쿨튀르 주최로 스톡홀름 시내의 한 프랑스 식당에서 이뤄졌다. 나뛰르 오크 쿨튀르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흰’,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를 낸 출판사다. 오후 4시에 문 여는 식당을 대관해 외부인 없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한강과 각국 편집자들이 허심탄회하게 축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한강은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외국 편집자들과 통역 없이 영어로 편하게 대화했다고 한다. 노벨 주간 내내 하루에 공식 일정만 두세 개씩 이어지는 와중에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 편집자들에 둘러싸여 낯익은 국내 편집자들과 이야기할 틈이 나지 않자 “얘기도 못 해서 어떡해요”라고 말을 건네며 챙겼다고 한다.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쓴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모임의 점심 메뉴는 채식이었다. 한강은 평소에도 채식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3코스 메뉴는 콩이 들어간 야채수프, 가지를 두부처럼 튀긴 비건용 스테이크, 초콜릿 무스 등이었다. 한강은 오후 3시쯤 식당 밖에 대기하고 있던 노벨 재단 측 차량을 타고 떠났다. 오후 7부터는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콘서트에 참석했다. 노벨상 콘서트는 그해 노벨상 수상자를 기념하는 노벨 주간 공식 프로그램의 일부인 연례 콘서트다. 노벨 재단은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12월 10일 전후 일주일을 노벨 주간으로 정하고 수상자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한강은 2층 스웨덴 왕가가 앉은 곳 좌측에 앉았다. 검은색 긴 원피스를 입은 한강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은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실비아 왕비가 입장하면서 시작했다. 관객석에 앉은 모든 사람이 일어나 두 사람을 맞이했다. 한강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국왕과 왕비를 맞았다. 스웨덴의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롬과 체코의 지휘자 페트르 포펠카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마지막 장면과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을 포함한 프로그램을 연주했다. 콘서트가 열린 스톡홀름 콘서트홀은 이틀 뒤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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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톡홀름 밝힌 한강… ‘흰’ 구절과 시청 외벽 장식

    ‘하얀 것은 본래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7일(현지 시간)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건물 외벽에 소설가 한강의 사진과 더불어 그의 작품 ‘흰’의 한 구절이 한글과 영어로 투영됐다. 노벨상 주간을 맞아 한강을 비롯한 역대 여성 수상자들을 담은 영상을 레이저 조명(미디어 파사드)으로 쏜 것. 노벨재단은 7∼15일 매일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스톡홀름 시내 16곳에서 ‘노벨 주간 조명(Nobel Week Light)’을 선보인다. 스톡홀름은 위도가 북위 59도로 높아 12월에는 오후 3시쯤 해가 진다. 한강은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펼쳐지는 영상 ‘리딩 라이트(Leading Lights·선구자들)’와 시청 맞은편 부두 ‘돔 아데톤(de Aderton·18명)’에 각각 등장한다. 리딩 라이트는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퀴리를 시작으로 역대 여성 수상자 65명을 조명하는 9분 길이 영상으로, 디자인 스튜디오인 ‘레 아틀리에 BK’가 제작했다. 수상자들의 얼굴과 업적을 담은 영상에서 한강은 두 차례 나온다. ‘돔 아데톤’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18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까지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18명 배출된 데서 착안한 스테인드글라스 형태의 조명 작품. 1909년 수상자 셀마 라겔뢰프부터 올해 한강까지 여성 문학가들의 초상을 담아 스웨덴 왕립공과대 건축학과가 제작했다. 1901년부터 총 121명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 중 여성은 18명(14.9%)에 불과하다. 노벨 주간 조명은 올해로 5회째를 맞았으며 무료 야외 행사로 열린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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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8세때 쓴 시 낭독하며 “내 모든 질문은 언제나 사랑… 가슴과 가슴 연결하는 금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소설가 한강은 7일(현지 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1979년 자신이 여덟 살 때 쓴 시의 일부를 소개했다. 지난해 1월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에 담긴 유년 시절의 일기장 사이에서 이 시를 발견했다고. 한강은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돼 있다”며 “1979년 4월의 아이는 사랑은 ‘나의 심장’이란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썼고,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선 ‘우리의 가슴과 가슴을 연결하는 금실’이라고 대답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자신의 모든 질문이 언제나 ‘사랑’을 향해 있었다고 돌아봤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란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하지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고,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낭독할 때 뒤에서 들려주는 음향)이었다”고 했다. 한강은 이날 자신의 지난 삶과 맞물려 과거 작품들의 탄생 배경을 들려줬다.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집필 과정을 설명하면서는 광주 망월동 묘지를 다녀온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 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그는 900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한 달에 걸쳐 매일 9시간씩 읽으며 완독했다. 또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전 세계에서 긴 역사에 걸쳐 반복돼 온 학살들에 대한 책을 읽어 내려갔다.한강은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며 “이따금 망월동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고 했다. 이어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차기작 발언도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은 “내가 느끼는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면서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그 실에 연결돼 주었고, 연결돼 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학적 성취를 잊고 다시 길을 묵묵히 가겠다고 했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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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느낀 감각들 문장에 불어넣어…언어, 우리를 잇는 실이라 실감”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고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합니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에.”소설가 한강(54)이 7일(현지시간) 31년간의 집필 인생을 회고했다.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문을 낭독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은 노벨 주간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사실상 수상소감으로 여겨진다. 한강의 강연에는 스웨덴 현지 교민, 국내 출판사 관계자를 비롯해 200여 명이 참석했다.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삶과 죽음, 폭력과 사랑 등에 대한 고뇌를 청중들과 나눴다. 그는 “세계는 어째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그의 글쓰기를 이끌어 온 힘이었다고 밝혔다. 한강은 특히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중략)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습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습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겠다는 다짐도 밝혔다.“‘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입니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입니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강연이 끝난 뒤 청중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지면서 한강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가량 늦게 자리를 떠났다. ‘작별하지 않는다’, ‘흰’을 스웨덴어로 번역하고, 이날 강연문도 스웨덴어로 번역한 안데쉬 칼손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교수는 “번역하면서 강연문을 이미 읽었는데도 막상 이렇게 한강 작가가 본인 목소리로 읽는 걸 들으니까 감동적이었다”며 “한강 작가도 감정이 올라왔는지 두 번 정도 뜸을 들이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이날 강연장 입구에는 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한강 작가의 강연을 들으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한림원 입구에 이날 강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어 관광객들이 지나가다 발길을 멈춰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림원이 위치한 감라스탄은 평소에도 크리스마스 마켓과 구시가지를 구경하려는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오후 6시 반 한강이 강연을 마치고 나올 땐 출입구 앞에 둥글게 반원으로 서서 기다리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강연 전문.빛과 실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그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사랑이란 어디 있을까?사랑은 무얼까?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스톡홀롬=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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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2024년 계엄에 충격… 과거로 돌아가지 않길”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소설가 한강(54)은 6일 오후(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3일 밤 긴박했던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10일 열리는 노벨 문학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스웨덴을 찾은 한강은 기자회견에서 첫 질문으로 계엄 관련 내용이 나오자 미리 준비한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 상황을 공부했다”라면서 “2024년 겨울이 그때와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다 생중계 돼서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 멈추려고 애쓴 분도 보았고,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도 보았다.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때 잘 가라고 아들한테 하듯 소리치는 모습도 보았다”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강은 “(국회 봉쇄에 투입된) 젊은 경찰분들, 젊은 군인분들의 태도도 인상이 깊었다”라면서 “많은 분들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경찰과 군인들이) 뭔가 판단을 하려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들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1979년 10·26사태 이후 내려진 비상계엄으로 혼란해진 한국사회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강은 또 다른 대표작 ‘채식주의자’가 외설성 논란 등으로 ‘청소년 유해 도서’로 지정된 것에 대해선 “소설에 유해 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일이 책을 쓴 사람으로선 가슴 아픈 일이었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중고교생들이) 낭독회를 할 때 ‘채식주의자’를 갖고 와서 사인해 달라고 하면, 이건 나중에 읽고, ‘소년이 온다’ 먼저 읽으라고 하기도 한다”며 웃으면서 말했다.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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