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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입국한 탈북민은 19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상반기엔 36명, 2021년 전체로 63명밖에 입국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그보다도 더 줄어들 것이다. 지난해 입국자 중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입국하는 통상 경로인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온 탈북민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입국자 대다수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근로자로 일하다가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올해 역시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거쳐 탈북민이 오지 않는 이유는 우선 탈북이 막혔기 때문이다. 북한은 코로나가 시작되자 국경 1∼2km 구간을 접근금지 구간으로 정하고 밤에 접근하면 사살하도록 국경경비대에 지시했다. 철조망도 새로 세웠고 지뢰까지 매설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걸 넘어 중국 땅에 도착해도 이번에는 더 넘기 어려운 철조망이 기다린다. 땅을 파지 못하게 콘크리트로 기초를 만들고 굵은 철사로 촘촘히 엮은 높은 울타리를 세운 뒤 그 위에 다시 원형 철조망을 쳤다. 차로 일산 자유로를 따라 달리다가 한강 옆에서 보게 되는 군 경계용 철조망과 똑같다. 폐쇄회로(CC)TV도 1∼2km 간격으로 달아 철조망 앞에서 조금만 시간을 지체하면 바로 중국 변방대가 출동한다. 그렇게 잡혀 끌려가면, 코로나 기간에 탈북했다는 죄로 살아남기 어렵다. 목숨을 여분으로 몇 개 가지고 있지 않는 한 탈북할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 코로나 이전에 탈북해 중국에 숨어 살고 있던 탈북민이라도 한국에 와야 하는데 이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지금까지도 한국에 오는 길이 없어 중국에 사는 탈북민 수가 많지 않다. 고작해야 수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또한 코로나 통제로 지역 간 이동이 철저히 차단됐거나 검문이 엄격해져 신분증이 없는 탈북민은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걸 뚫고 기존의 탈북 통로인 동남아 국경까지 와도 또다시 높은 장벽이 막아선다.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남부와 동남아 국경 사이에 길이가 4800km에 이르는 철조망을 쳤다고 한다. 사실상 남부의 ‘만리장성’이 된 이 철조망 역시 북중 국경의 철조망과 비슷하게 최대 3.6m의 높이로 설치됐고, 감시카메라와 센서로 주야간 감시된다. 2000년대 초반 탈북민들이 사용하던 몽골행 루트에도 철조망이 대거 보강됐다. 결국 탈북해 한국까지 오려면 북중 국경을 넘을 때 목숨을 두 번 걸면서 철조망을 넘고, 검문을 피해 그 넓은 중국을 가로질러야 하며, 다시 남부에서 목숨 걸고 또 철조망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엔 이 어려운 미션에 성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알려졌다. 올해에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실상 북한이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으로 알려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앨커트래즈처럼 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토록 원하던 탈북 제로를 달성했다고 기뻐할진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사실 최근 20일째 자취를 감춘 김정은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닥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 북중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탈북했다. 당시엔 국경에 철조망도 없었고, 경비대 숫자도 훨씬 적었다. 김정일 시대엔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돼도 정말 굶어 죽을 형편에서 탈북한 것이라는 것이 인정되면 이를 감안해 강제노동 몇 달 시키고 풀어주었다. 지금처럼 탈북을 곧 반역이라고 간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약 20만 명이 중국으로 탈북한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이 보내준 돈으로 북한에 남은 많은 가족들도 살았다. 그러나 이젠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돼도 도망 갈 길조차 없어 앉아서 굶어 죽어야 한다. 쌓여가는 그 수많은 시체와 원망을 김정은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북한 내부 경제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코로나 봉쇄로 2년 반 동안 수출입이 차단된 데다 비상용 창고도 다 바닥이 난 지 오래다. 이렇게 버틸 여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올해 들어 연이어 닥친 극심한 가뭄과 홍수로 흉작이 오면 대량 아사는 현실이 된다. 벌써 황해도에선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사람이 죽어 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얼마 전 수해로 떠내려 온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시신 4구가 임진강 하구에서 발견됐다. 슬픈 비극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죽어서라도 그 땅을 벗어나면 다행인 걸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난달 중순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가정 상비약품을 본부 당위원회에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이틀 뒤 김정은을 따라 김여정과 현송월 등 노동당 간부들도 가정의약품을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퍼진 황해남도에 보내는 사진들이 노동신문에 나왔다. 북한 매체들은 사랑의 불사약이라고 선전했지만 이면을 보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북한의 사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창궐했던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등을 말하는데, 약이 없으면 코로나보다 치사율이 훨씬 더 높다. 둘째, 통치자의 가정 상비약품까지 털어야 할 정도로 북한 창고들이 텅텅 비었다. 4월 말부터 퍼진 코로나로 약품은 물론이고 격리된 주민에게 공급할 식량까지 바닥났을 것이다. 셋째, 북한 식량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곡창지대 황해남도가 지금 큰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와 콜레라 등 전염병도 문제지만 이에 못지않은 위기는 자연 재해다. 북한은 올봄 황해남도에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꼽히는 극심한 가뭄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가뭄에 코로나까지 겹쳐 노력 동원에 의존하는 모내기가 큰 차질을 빚었다. 올봄 극심한 가뭄은 북한 식량 생산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황해도, 평안도 지역이 똑같이 겪었다. 봄 농사를 망쳐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말이 들려올 즈음 황해남도에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북한이 발표했다. 하늘도 올해는 북한을 전혀 봐주지 않기로 한 듯하다. 극심한 가뭄에 이어 6월 말∼7월 초에 폭우가 황해도와 평안도에 쏟아졌다. 단 며칠 동안 300mm 이상 폭우가 내려 겨우 모내기를 마친 논밭들이 침수됐다. 3년째 비료도 제대로 수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연 재해까지 겹쳤으니 올가을 북한의 작황은 안 봐도 뻔하다. 흉작이 들면 식량을 수입이라도 해야 하는데, 중국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지금 북-중 무역을 완전히 차단했다. 예비 식량마저 없으니 이제 굶주리는 일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각종 전염병까지 돌게 되면 고난의 행군의 재현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최악의 위기에 맞닥뜨렸다. 문제는 지금이 7월 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농사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태풍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올해는 이상 기후로 세계 곳곳이 고온 현상에 시달리는데, 이러면 태풍의 위력이 커진다. 만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에 올여름 강력한 태풍이라도 덮치면 치명타를 입게 된다. 태풍이 아니라 극심한 가뭄이나 고온 현상이 올 수도 있다. 이는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지는 오롯이 하늘에 달렸다는 의미다. 북한에서 대량 아사가 발생해도 국제사회가 도와줄 여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식량 부족에 직면했고, 원유를 비롯한 모든 물가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위의 상황을 김정은 시점에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나라 창고가 텅텅 비었다. 비었으면 채워야 하는데, 자연재해로 불가능해 보인다. 전염병까지 창궐하고 있다. 외부에 손을 내밀려니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봉쇄했다. 러시아도 전쟁을 치르느라 제 코가 석 자다. 게다가 오랜 대북제재로 돈도 없는 데다 세계 물가가 너무 뛰었다. 집권 첫 일성으로 더 이상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고난의 행군에 직면해 주민이 무리로 굶어죽게 되면 체제의 내구성에 큰 균열이 생긴다.” 더욱 허탈한 일은 위의 위기가 김정은의 노력으로 극복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노력을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서쪽, 북쪽 국경이 막혔으면 남쪽을 활용해 대책을 찾아도 모자랄 처지에서 북한은 여전히 한국 정부에 악담을 퍼붓고 있다. 북한이 고작 찾은 위기 극복 대책은 케케묵은 정신력 타령을 다시 꺼낸 것이다. 노동신문은 1일 “상반년 기간 우리가 건국 이래 일찍이 없었던 시련과 난관을 겪었다고 하지만 하반 년에 들어선 지금 형편은 더 어렵다. 최우선 중시해야 할 사업은 대중의 정신력을 총 폭발시키기 위한 사상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정신력의 한계는 북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안다. 영양실조 환자가 정신력을 총 폭발하면 죽을 날이 더 빨라질 뿐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가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국내외 청소년들이 지구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국제교류 프로그램 ‘글로벌 유스 네트워크’를 열었다. 나이,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기획된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그동안 국제사회 무대에서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기후위기에 대해 논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특히 개발도상국 아동은 소외되기 쉬웠다. 굿네이버스의 글로벌 유스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통해 기후위기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생겨난 셈이다. 이달 17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글로벌 유스 네트워크 발대식에는 아시아 9개국(한국 몽골 방글라데시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키르기스공화국 필리핀 타지키스탄)과 아프리카 7개국(르완다 말라위 모잠비크 에티오피아 우간다 잠비아 케냐)의 50여 개 학교 청소년 약 360명이 한데 모였다. 국내외 참여 청소년들은 상호 다양성을 존중하며 지속가능한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제주 탐라중학교 채수민 학생(15)은 아시아, 아프리카 청소년 360여 명 앞에서 “기후위기는 전 세계가 당면한 공동의 과제이며 모두가 함께 실천하면 어떤 문제라도 하나씩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의 로렐린 학생(16)은 “나이, 성별, 인종, 언어, 국적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며 “누군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린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잠비아의 루스 학생(16)도 “다른 나라와 기후위기 상황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비록 작은 행동일지라도 우리의 실천이 지역사회와 지구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발대식을 시작으로 16개국 청소년들은 7월까지 총 6회의 모임을 통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나선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기후위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상 속 환경보호 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할 예정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실시간 교류 활동을 통해 국가별 기후변화 상황과 실천 활동의 성과도 공유한다. 프로그램 마지막 순서인 클로징 세리머니에서는 360여 명의 청소년이 한자리에 모여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다. 지난해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벨기에 브뤼셀자유대(VUB) 연구에 따르면 2020년에 태어난 아동은 조부모 세대인 1960년생보다 평생 6.8배 더 많은 폭염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뭄은 2.6배, 홍수는 2.8배가량 더 경험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아동이다. 이상기후로 미래세대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있으며, 각종 환경성 질환은 아동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김중곤 굿네이버스 사무총장은 “작년부터 글로벌 유스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외 청소년들이 지구 반대편 나라 친구들과 국제사회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함께 실천하며 책임감 있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진행된 글로벌 유스 네트워크 1기에는 한국 말라위 케냐의 13개 학교 청소년 총 104명이 참여했다. ‘We Connect, We Change’라는 슬로건 아래 쓰레기 청소, 가두 캠페인 등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다양한 실천 활동에 도전하고 실시간 교류를 통해 성과를 공유했다. 올해 10월에는 글로벌 유스 네트워크 3기 활동이 진행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2012년 4월 김일성광장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첫 연설이자 인민을 향한 첫 약속이었다. 10년이 지나 돌아보니 북에선 김정은만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연설 당시 90kg으로 추정되던 몸무게는 140kg으로까지 늘었다. 작년에 20∼30kg 정도 뺀 것으로 보였지만 최근 요요 현상이 온 듯 다시 살이 부쩍 쪘다. 북한 인민들은 김정은과 정반대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2017년 이후 강력한 유엔 대북제재로 북한 외화소득의 90% 이상이 줄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자발적 셀프 봉쇄로 남았던 10%도 벌지 못하게 됐다. 북한은 농경 왕조 사회로 회귀했다. 시간이 갈수록 외화와 예비물자 창고는 고갈되고 인민의 영양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4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대량 확산은 북한에 또다시 결정타를 안겼다. 격리 조치로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약이 가득 진열된 북한 선전매체들의 평양 약국 사진과 달리 지방 사람들은 약이 없어 고열을 그대로 견뎌야 한다. 장마당에서 그나마 팔리던 해열제는 코로나가 퍼지자마자 씨가 말랐다. 나라 곳곳에서 죽어간다는 아우성밖에 없다. 올해 김정은은 삼재(三災)를 만났다. 코로나가 갑자기 휩쓸면서 민심이 흔들리고, 나라 곳간이 텅텅 비었다. 방역에 실패한 김에 무역을 재개하려니 이번엔 중국이 문을 닫았다. 중국이 단둥 주민들에게 “남풍이 불면 창문을 닫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외신 보도가 현재 북-중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교역이 막히면 농사라도 잘돼야 하는데 올봄 심각한 가뭄과 고온이 북한을 덮쳤다. 비료 생산과 수입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작황이 좋을 수가 없다. 여기에 또 다른 무서운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6월 발행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2.9%로 대폭 하향 수정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 만에 최악의 경제 침체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북한과 어떻게 연관이 될까. 에너지 시장의 가격 급등 및 불안정성 심화, 농산물 가격 상승이 이뤄지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이 가난한 나라들이다. 이미 ‘인도양의 진주’로 불리던 스리랑카는 지난달 19일 부채 510억 달러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스리랑카의 인구는 2157만 명으로 북한과 비슷하다. 이렇게 국가가 부도날 정도가 되면 부패한 지도층을 향한 대중의 분노가 커지게 된다. 스리랑카에서도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오랜 기간 족벌정치를 해온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의 관저에 난입해 불을 질렀다. 결국 라자팍사 총리는 지난달 사임을 발표한 뒤 헬기를 타고 가족과 함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해군기지로 도피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2010년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 혁명도 경제난과 물가 인상을 견디지 못한 민중들이 폭발한 것이다. 철옹성 같던 장기집권 독재 국가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2003년부터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휩쓸어 독재 정권들을 줄줄이 무너뜨린 ‘색깔혁명’도 같은 이유로 촉발됐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가난한 독재 국가들엔 독약이다. 북한은 가난한 독재국가 순위에선 선두를 달린다. 스스로 세계 왕따를 자처하며 자력갱생으로 살겠다고 하지만 원유와 부족한 식량까지 자체 해결할 순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얼마나 도와줄지는 몰라도 세계적인 물가 상승은 북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은 정보 유통을 철저히 차단하고 연좌제라는 21세기 유일무이한 극악한 반(反)인륜적 공포 독재를 펴고 있기에 수십만, 수백만 명이 죽어도 시위가 벌어질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치솟는 물가와 대량 아사자는 북한의 내구성에 심각한 균열을 만들어내고 수십 년의 상처를 만들 수 있다. 화려한 쇼에 집착하고 인민의 주머니를 털어 대규모 공사판을 벌여 놓고 있는 김정은이 올해의 삼재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월드비전(회장 조명환)이 우간다 북부 지역에서 2025년까지 80만 명의 난민과 수용 공동체 주민을 지원한다는 목표로 현지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월드비전은 보호 및 교육 서비스 개선, 지속 가능한 생계 및 회복력 강화, 포용적 식수 위생 서비스 접근성 강화를 위해 현재 9개 난민 수용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년 7월부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인도적 지원 민관협력 사업을 통해 우간다 나일강 서부 지역에 위치한 임베피 난민정착촌에서 사회경제적 회복력 강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난민정착촌에서 사는 남수단 난민들이 생계 기반을 마련하고 생계 역량을 강화하도록 돕고, 이 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난민들과 수용 공동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간다. 월드비전이 우간다 북부에 역점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지역이 우간다 내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간다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현재 150만 명의 난민 및 망명 신청자가 거주하고 있다. 특히 2013년 발생한 남수단 내전으로 우간다 북부에 95만 명의 난민이 유입되면서 이곳에 대규모 난민정착촌들이 만들어졌다. 난민의 대량 유입으로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원주민들과 갈등도 생겨나고 있다. 근래에는 코로나19와 물가 상승이 주민들의 생계 활동에 지장을 초래해 사회경제적 취약성이 더욱 높아졌다. 현지 월드비전의 코이카 프로젝트를 통해 도움을 받고 있는 지역 주민과 난민으로 구성된 농민그룹은 200개에 이른다. 각 그룹은 지방정부와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무상으로 토지를 임차하고 지역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작물을 선정해 공동 경작하고 수익을 함께 나누는 협약을 올해 초 맺었다. 이를 통해 한정된 자원과 서비스를 둘러싸고 갈등하던 현지 주민들과 난민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돼 지속 가능한 생계 역량 강화를 위해 협동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우간다 임베피 마을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노경후 프로젝트 매니저는 “현장에서 난민들과 주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필요와 어려움을 파악해 가고 있다”며 “앞으로 계속해서 농업 생산량을 늘려 나가 갈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고 난민과 지역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우간다 현지인 6명, 정착촌 남수단 난민 19명으로 구성된 그룹을 만들고 책임자로 있는 사이먼 씨는 “한마음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서로를 더욱 이해해 가고 있다”며 “이제는 한 마을 이웃인 만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사이먼 씨의 그룹은 작물 선정, 경작 방법, 수확 관리 등의 교육을 받고 올해 첫 파종 시기에 전문가의 지도 아래 고구마와 비슷한 작물인 카사바를 선정해 공동 경작지에 심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이 7월부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학교 밖 위기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경제적 상황과 가정 상황 등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가정형위(Wee)센터에 입소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발견하고 꿈을 향해 노력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월드비전은 지난달 30일 전국가정형위(Wee)센터협의회와 협약을 맺고 2024년까지 3년간 꿈 지원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월드비전은 2019년부터 학교 밖 청소년 꿈 지원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지만 올해부터는 전국가정형위(Wee)센터협의회에서 이끌어 나가고 월드비전에서는 사업비를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아동 꿈 지원 사업인 ‘드림윙(Dream-W-ing)’은 전국 13개 기관에서 169명이 참여하며 그중 44명은 개별 꿈 지원 집중 대상자로 선정한다. 사업은 크게 참여자들 개별 맞춤형 진로 지원과 전체 입소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나눠 진행된다. 참여자들에게 각각 100만 원의 꿈 지원금을 전달해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영역에 해당하는 모든 활동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기준 꿈 지원 사업을 받았던 청소년의 경우 100% 학업을 유지하고 있는 등 참가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전국가정형위(Wee)센터협의회 신세균 회장은 “가정폭력, 가정불화, 학대와 방임 등으로 일반적인 청소년에 비해 절대적으로 긍정적 경험과 그 기회가 적은 위기 청소년들은 삶의 동기를 찾지 못하고 학교를 등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위기 청소년들에게는 기존의 돌봄 상담 교육을 넘어 학생별로 개별 맞춤형 진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지난 3년간의 지원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원을 이어가서 복합적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사업 이름처럼 청소년들의 꿈에 날개가 되어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 김순이 본부장은 “학교로부터 배제되고 공교육 체계의 최후의 안전망인 가정형위(Wee)센터에 입소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그들도 꿈꿀 권리가 있다는 배경에서 월드비전은 2019년부터 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공교육 체계 안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각지대이고 열악한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꿈 지원 사업을 제공해 학교에 재적응할 수 있도록, 또 스스로 원하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997년 남파 간첩에게 피살된 이한영은 생전 ‘김정일 로열패밀리’라는 수기를 남겼다. 수기는 김일성의 사생아 김현의 존재를 처음 밝혔다. 이에 따르면 김현은 1971년에 김일성과 제갈 성씨의 전담 안마사 사이에 태어났다. 같은 해 5월 10일 성혜림도 김정남을 출산했으니 환갑인 김일성과 갓 서른에 접어든 아들 김정일이 거의 동시에 아들을 얻은 것이다. 김현은 이후 ‘장현’이라는 이름으로 장성택의 호적에 올랐다. 1979년 김현은 생모와 함께 모스크바로 가 동갑내기이자 조카인 김정남과 함께 살았다. 김현은 생모를 이모라고 불렀다.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은 김정일의 저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상당히 신뢰가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의 증언에서 거짓은 없다. 이한영이 1982년 한국에 망명했기 때문에 김현에 대한 증언은 모스크바 생활에서 끝난다. 지난해 5월 기자는 미출간된 김정일 회고록을 입수했다. 김일성 90주년 생일을 맞아 김정일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내용이 위주였는데, 여기에 김일성이 아주 허물없이 대했다는 마사지 담당 간호사가 두 차례나 상당한 분량으로 언급돼 있다. 일개 간호사를 김정일이 자세하게 소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회고록에 나오는 김일성 담당 간호사의 이름은 순복이였고, 1962년부터 등장한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면 으레 담당 간호원을 친딸처럼 정답게 찾으며 다리를 주무르게 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수령님의 건강은 동무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무하자 간호사가 열심히 손을 단련해 남자 이상으로 손아귀 힘을 키웠다고 한다. 김일성은 늘 “네가 제일이다. 네 덕에 잠을 잘 잔다. 네가 나라의 복을 만든다”고 치하하곤 했다는데, 이 간호사가 김현의 생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신뢰할 수 있는 한 소식통으로부터 김현의 이후 운명에 대해 들었다. 김현은 북한에 돌아와 평양 중심부 서재동초대소에서 살았다. 보통강 인근의 초대소는 1988년 9월 건설됐는데 경치가 매우 좋다. 2000년경 방북했던 한국의 일부 인사들과 기자들도 이 초대소에 머물렀다. 서재동초대소는 150∼170평 규모의 독립식 빌라 21채로 구성됐고, 각 빌라엔 침실이 3개 있다. 김현은 초대소 구내의 한 빌라가 아니라 입구에서 갈라져 들어간 단독 빌라에서 살았다. 2014년 북한은 서재동초대소 옆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지었는데, 소식통은 그 자리가 김현이 살던 빌라 자리였을 것이라고 했다. 지휘소 옆은 김정일의 본처 김영숙이 살던 서장동초대소다. 김현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김정일의 지시였을 것이다. 김일성의 서자인 것이 드러날까 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배다른 동생이니 위협 인물이라 생각해서 무식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컸을 것 같다. 심지어 결혼도 못 하게 했다. 씨를 더 잇지 못하게 한 것이다. 김현은 키가 175cm 정도로 북한에선 큰 키였고, 김일성의 젊은 모습을 빼닮았다고 한다. 김현은 대신 왕족의 대우는 받았다. 최고급 초대소에서 풍족하게 살았고, 차량 번호가 216으로 시작되는 벤츠도 갖고 있었다. 216 번호판은 북한 최고위 간부만 받는 특혜다. 운전수도 있었고, 요리사도 있었다. 물론 감시원들이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김현을 한두 번쯤 현지시찰에도 데리고 다녔다. 위협이 될 존재인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이다. 백수 신세가 된 김현은 난봉꾼으로 변해 벤츠를 끌고 나가 여성 교통안전원들을 유혹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김일성을 닮은 젊은 남자가 216 벤츠를 타고 다니는 데다 경비가 삼엄한 최고급 저택에서 사니 여성들도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김일성이 죽은 뒤 김현은 김정일에겐 짐이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쿠데타라도 일어나 김일성의 핏줄이라며 김현을 옹위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로 한 김정일은 결국 2007년 김현을 조용히 죽였다고 한다. 김현은 김일성의 사생아로 태어나 36년을 잘 살고 죽은 것이다. 이렇게 핏줄 정리, 북한말로 ‘곁가지 정리’에 들어가니 김현과 모스크바에서 함께 큰 김정남이 가장 공포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남 역시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됐다. 외국을 전전하며 동생의 마수를 피하려 했지만, 김씨 왕조에는 자비가 없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5월 25일 세계 실종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아동권리보장원이 주관한 ‘유전자 검사로 만드는 만남의 기적’ 행사가 오늘 진행된다. 행사에 참석하는 장기실종 아동의 가족들은 “길게는 몇십 년간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아이가 우리를 찾아오는 길뿐”이라며 실종 아동 유전자 등록에 대한 관심을 촉구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폐쇄회로(CC)TV 설치, 지문사전등록제도 등이 잘 구축돼 장기 실종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과거 미아, 유괴 등의 사유로 장기 실종된 사례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1년 이상 장기 실종된 아동은 871명, 이 가운데 장애인은 180명이다. 아동의 95%, 장애인의 69%가 10년 이상 실종된 상태다. 실종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어린 나이에 실종됐다면 성인이 된 지금의 모습을 예측하기 어렵다. 게다가 실종 당시 장소와 환경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장기 실종 아동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04년부터 가족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제도가 실종 아동 찾기에 도입됐다. 유전자 검사 제도는 ‘실종 아동’과 ‘실종 아동 등을 찾는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실종 신고, 구강세포 등 검체 채취, 유전자 정보 검사 및 대조의 과정을 거친다. 아동권리보장원의 실종아동 업무 시스템에는 작년 한 해 동안 740건의 유전자 검체가 접수됐다. 4월 말 기준 유전자 검체 접수의 누적 건수 중 실종 아동과 장애인은 3만4370건, 실종 아동 등을 찾는 보호자가 4008건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해마다 30∼40건의 가족 상봉이 이뤄지고 있으며, 4월 말 기준 총 675건의 가족 상봉이 성사됐다. 현재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무연고자는 실종아동법에 따라 유전자를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 전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고 시설에서의 보호가 종료된 무연고 아동(현재는 성인)의 경우 본인이 실종 아동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아직까지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가족 상봉이 이뤄진 사례를 보면 본인이 실종 아동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가족을 찾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한 사례로 본인이 실종 아동인지 모른 채 아동보호 시설에서 생활했던 A 씨는 2020년 추석에 CU 편의점을 찾았다가 포스(POS)기에 송출되고 있는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에서 본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발견하고 캠페인 주관 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에 연락해 본인은 실종아동이 아니라며 정보 정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담당자의 설득에 따라 A 씨는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가 진짜 가족을 찾게 됐다. 유전자는 외모나 기억, 환경과는 달리 변하지 않는 정보로 장기실종 아동 찾기에 필수불가결한 정보이다. 그러나 실종 아동과 보호자 모두 유전자를 등록해야 상봉이 가능한 구조여서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아울러 유전자 등록 제도에 대한 홍보 활동과 국민적인 관심도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필요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노동신문이 1일 노동절 기념 1면 사설에서 “오직 사회주의만이 온갖 형태의 지배와 예속, 사회적 불평등을 없애고 인민들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북한 매체의 특성이긴 하지만, 이런 철면피한 선전을 접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계급 제도가 철저하게 고착된 곳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계급 제도 하면 인도 카스트 제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인도의 계급 제도는 현대에 점점 소멸되고 있다. 반면 북한은 1960년대 만든 계급 제도가 여전히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 북한의 출신성분 제도는 많이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태어나면 기본군중, 복잡한 군중, 적대계급 잔여분자라는 3대 계층으로 구분되고, 이 3대 계층은 상위 혁명가 성분부터 하위 지주, 자본가, 일제관리 자손까지 56개로 자세히 분류된다. 이 출신성분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출신성분만 알면 북한을 절반만 아는 것이다. 출신성분이 가로의 씨실이라면, 세로의 날실에 해당하는 사회성분이라는 것이 또 존재한다. 북한을 좀 안다는 사람들도 사회성분에 대해선 모른다. 워낙 철저히 비밀리에 가동되기 때문이다. 사회성분은 노동자, 군인, 사무원, 농민이라는 4개 계급으로 구성된다. 태어날 당시 부친의 직업으로 자녀의 사회성분이 결정된다. 사회성분은 직업상의 신분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성분은 수평적이지 않다. 우대 순서로 따지면 첫 번째가 노동자, 이와 비슷한 레벨의 두 번째가 군인, 세 번째가 사무원, 네 번째가 농민이다. 농민은 상위로 올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농민의 자식은 90% 이상 농민이 된다. 10년 군 복무를 마치고도 다시 농민으로 보낸다. 대학도 주로 사범대학에 보내 졸업 후 농촌학교 교사로 보내는 등 이 굴레는 철저하게 작용한다. 수재인 경우 아주 희박한 확률로 굴레를 벗어날 수는 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 도시 대학 교원이나 연구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자신의 사회성분은 여전히 농민이며, 과오 없이 은퇴해야 자식이 사무원의 사회성분을 얻는다. 군 장교로 발탁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식부터 군인으로 바뀐다. 농촌에서 태어난 남성이 자녀의 사회성분을 바꿀 확률은 5%도 안 된다. 특히 농민은 노동자 성분으로 바뀌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녀가 아버지의 농민 직업을 물려받기 때문에 농촌 여성은 다른 사회성분의 남성과 결혼하려 애쓴다. 농민 중 출신성분이 좋으면 농촌 간부가 된다. 지금 노동당엔 사회성분이 농민인 간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무원은 외교관, 학자, 의사 등이 될 수 있어 농민보다는 훨씬 좋은 성분이다. 군인 역시 세습이다. 현재 북한군 장성의 대다수가 사회성분상 군인이라고 한다. 충성도를 검증받은 장성의 아들이 대를 이어 장성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노동자는 상위 계급이지만, 분포도가 매우 넓기도 하다. 진짜 노동자도 있고, 중앙당 간부도 있다. 이는 출신성분에서 갈렸기 때문이다. 즉, 날실은 좋은데 씨실이 안 좋아서 출세를 못 한 것이다. 북에서 살면 내가 가로와 세로의 어디쯤에 놓여있는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성분 서류는 간부부와 노동부 담당자 몇몇만 볼 수 있는 최상위 기밀서류이기 때문이다. 농민은 대를 잇는 노비인데, 왜 이런 신세가 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일설에 따르면 토지개혁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김일성이 광복 후 토지개혁 한다면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 주었다가 1950년대 후반 협동농장을 만든다며 다시 뺏었는데 농민들이 격렬히 저항했다. 그래서 김일성이 농민들은 이기주의자라며 치를 떨어 노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노동자들에겐 줬다 뺏은 일이 없어 반항할 이유가 없었다. 농민이 노비라면 사무원은 흔들리는 갈대로 취급한다. 북한에서 사회성분을 거슬러 올라가긴 매우 어렵지만, 위에 있다가 김씨 일가의 눈 밖에 나서 노비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예속과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3대를 이어 혁명을 한다는 북한의 진실은 바로 이렇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내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운명이 정해진 바둑판 위 어느 지점에 서있을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한 번쯤 상상해 봤으면 좋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전기차, 우주·항공 등 첨단 기술의 핵심 재료인 탄소 소재가 우리 일상과 마주하는 모습을 그린 전시가 프랑스 파리에서 3일 열린 세계 최대 복합소재 박람회인 ‘JEC World 2022’에서 선보였다. 한국탄소산업진흥원은 탄소 소재의 활용 저변을 넓히고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선보이기 위해 사흘간 진행된 박람회에서 ‘카본라이프홀’을 운영했다. 지난해 전주문화재단과 한국탄소산업진흥원이 최초로 시도한 ‘탄소예술기획전’에서 ‘Portraits of us’라는 작품으로 함께 했던 장영애 작가가 아트디렉터로 전시 총괄을 맡았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국내 산업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탄소 소재를 재해석하고, 우리 일상 속에서 고기능성 소재인 탄소 소재의 활용 가능성을 선보임으로써 탄소 소재의 무한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기획됐다. 장 작가는 탄소 섬유의 유연함과 강한 소재적 특성을 부드러운 한지에 담아내 서로 소통하며 연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을 선보여 대한민국 카본아트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 탄소섬유 가구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중소기업 ‘밥스’는 박람회에 모던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카본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보조 보행 장치를 선보였다. 탄소발열제품 전문 기업인 ‘피치케이블’은 탄소발열 신발장과 옷장을 전시했다. 이 제품들은 세라믹 소재인 탄소를 이용해 원적외선과 열을 발생시켜 의류와 신발의 습기와 악취를 제거하는 동시에 사계절 가구 내부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장 작가는 “전시부스 디자인을 기획하는 과정에 ‘한국 탄소산업의 즐거운 혁신’을 한글 캘리그래피로 써내려가면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담아내고자 했다”며 “이번 기획은 한국 탄소산업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하나금융투자는 일찌감치 자산관리 시장에 뛰어들어 입지를 굳히고 있다. 하나금융투자가 최근 역점을 기울이는 사업은 투 트랙 자산관리(WM) 체제 구축이다. 여기에는 하나금융그룹 차원에서 브랜드화해 고액 자산가들을 위해 내놓은 ‘Club1’과 하나금융투자 고유의 WM이 포함된다.하나금융투자 WM은 우수 역량을 가진 프라이빗뱅커(PB)를 통한 마케팅이 강점으로 꼽힌다. 우수 PB들을 선발해 모든 영업점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도록 하고 있다.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투자자 성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체계적 자산관리 솔루션을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고액 자산가를 위한 Club1은 삼성동에 소재한 Club1WM센터를 시작으로 지난해 한남동에 Club1한남WM센터를 오픈하면서 두 곳으로 확대됐다. 6조5000억 원의 예탁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Club1은 슈퍼리치들의 금융 공간을 넘어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뿐 아니라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상품을 통해 자산시장을 선도하고 있다.영업 조직들은 업계 1위인 리서치센터와 협업해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맞춤형 금융상품을 적재적소에 선보이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손님들 편의에 착안해 원 스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하나은행과 하나금융그룹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산관리 전반을 책임지고 있으며, 다양한 세미나와 문화 행사들로 손님들을 맞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하나금융투자는 ‘증여’를 키워드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증여랩’은 3개월 만에 누적 가입금액 1000억 원을 넘어섰다. 중요성이 커지는 퇴직연금 부문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투자유망 자산으로 꼽히는 리츠와 상장지수펀드(ETF) 매매 시스템을 개발해 퇴직연금에 도입하고, 운용상품 라인업을 넓혀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하나카드는 올해 ‘손님 가치 중심 혁신 문화’를 기반으로 그룹 내 디지털 페이먼트와 데이터 사업을 선도하는 계열사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선진 기업하나카드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마이데이터 사업을 통해 축적된 고객 정보를 활용해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혁신기술을 도입한 ‘미래형 컨택 센터’는 새로운 손님 경험을 제공하는 ‘마케팅 허브’로 전환된다.또 하나금융그룹 내 다양한 관계사와 제휴사, 협력사 등 잠재적 손님에게 맞춤형 복합 영업도 강화하고 있다. 은행 주거래 기업의 여신과 카드를 연계하고, 지역 화폐 등 정부 사업 추진 때 협업을 추진하며, 젊은층에 특화된 최적의 경험을 선보일 예정이다.본업 이외에 수익 다변화를 위한 사업도 빠뜨릴 수 없다. 대표적으로 토스(Toss)뱅크 카드 업무 대행을 기존 체크 카드에서 신용 카드까지 확대하는 사업은 고객들의 호평을 받았다.하나카드는 조직문화 향상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손님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도전하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직원들 스스로 ‘하나카드 일하는 원칙’을 도입했다. 올해는 원격 근무와 사무실 근무가 유연하게 결합된 ‘하이브리드 워크(Hybrid Work)’로 동료들 간 유기적인 소통과 업무효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ESG(환경, 사회공헌, 지배구조) 경영에도 노력하고 있다. 2021년부터 환경부가 주도하는 ‘녹색소비-ESG 얼라이언스’에 참여해 금융· 유통·판매사 및 소비자단체와 환경표지 인증제도 활성화를 위한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카드론 청구 유예,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한 ‘하나 햇살론 카드’ 등 금융 서비스도 제공하며, ESG 채권 발행과 투자를 2022년까지 누적으로 4000억 원 규모로 진행할 예정이다.종합금융 플랫폼 ‘하나 원큐페이’하나카드는 기존 결제 서비스 중심의 ‘원큐페이’를 △결제 △송금 △자산관리 △그룹멤버십 기능까지 갖춘 종합금융플랫폼으로 개편하기 위한 작업을 최근 끝냈다.지난해 말 1단계에서는 하나금융그룹 고객 멤버십인 하나머니의 주요 기능을 얹어 고객의 멤버십 포인트인 ‘하나머니’를 전국 모든 하나카드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오픈뱅킹을 활용한 계좌와 하나머니 잔액에 기반 한 송금서비스,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활용한 자산관리, 가맹점주를 위한 상권 분석 등 특화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종합금융플랫폼으로의 전환에 시동을 걸었다. 올해 4월 2단계 최종 개편에서는 고객의 앱 이용 패턴 분석을 통해 시의성과 편의성을 높였고, 앱명을 ‘원큐페이’에서 ‘하나카드’로 바꿨다. 기존에 하나카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결제 전용 앱과 서비스 앱 등 두 개의 앱을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통합된 ‘하나카드 앱’을 통해 결제, 조회, 신청 등 하나카드 핵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하나카드 관계자는 “하나카드 앱 통합과 확대 개편은 기존 전통적인 신용카드업을 넘어 결제 기반 종합금융 플랫폼사로의 전환을 위한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며 “앞으로 고객이 사랑하는 앱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몇 년 전 유튜브에서 북한군 열병식 풍자 영상이 화제가 됐다. 다리를 75도 이상 올리며 껑충껑충 뛰어가듯 행진하는 북한군 영상에 팝 음악 밴드인 ‘비지스’의 노래를 입혔을 뿐인데 조회수가 4200만 회가 넘었다. 여기엔 10만 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 110주년인 내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이 또 열린다. 이젠 하도 많이 봐서 대략적인 흐름이 머리에 훤하다. 선두가 기마병이든 노병이든 약간의 차별화는 있겠지만 보병 행진 후 기계화 부대가 따르고, 공군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륙간탄도미사일이 피날레를 장식한다는 순서는 변함이 없다. 화려한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든 평양 시민들이 광장에서 ‘김일성, 김정은’과 같은 글씨를 만들며 우렁찬 만세를 부르는 가운데 김정은이 손을 흔들며 퇴장할 것이다. 1990년대에 김일성광장에서 직접 열병식 행사에 참가했던 나는 지금은 서울에서 열병식을 수없이 지켜보지만 이젠 열병식에 별 감흥이 없다. 그러나 내일 열병식은 느낌이 완전히 다를 것 같다.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전쟁이 마치 게임 생중계처럼 세계에 실시간 송출되고, 러시아 전차가 휴대용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폭발하고, 전투기와 헬기가 불덩이가 돼 떨어지는 영상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 휴대용 미사일에 속절없이 파괴되는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는 알고 보면 북한에겐 ‘꿈의 전차’들이다. 돈 없어 사올 수도 없고, 기술이 모자라 베끼지도 못하는 T72, T80, T90 전차들이다. 북한군은 아직도 1960년 초반 개발된 T62 계열 전차가 주력이다. 1991년 걸프전쟁 때 이라크군은 소련의 최신형 T72 전차를 포함해 3500여 대의 전차부대를 운용했다. 그러나 미군 에이브럼스 탱크 단 1대도 격파하지 못했고, 전차병 3명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이다. 31년 전에 그랬다. 지금은 남북의 전차 전력이 반세기 이상 차이 난다. 중동전쟁과 걸프전에서 소련제 전차가 전혀 힘을 못 쓰자 일부 전문가들은 “소련이 보급형을 수출했기 때문, 전차병들의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 등으로 설명하며 “진짜 러시아 기갑부대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진짜 러시아 최정예 기계화 부대가 군사력 순위에서 20위나 차이가 나는 우크라이나군에 힘을 못 쓰고 당하고 있는 장면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제 무기의 허상 역시 생생하게 드러났다. 김정은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볼 것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구소련의 무기 시스템과 군사 교리에 기초해 군이 운용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런데 북한의 우상인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가 북한이 그렇게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최신 장비를 총동원하고도 창피를 당하고 있다. 전차부대만 힘을 못 쓰는 게 아니다. 러시아 공군도 북한에 없는 SU30, SU34 신형 공군기에 강력한 Mi24, Mi28 공격헬기로 무장했지만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겨우 10여 대를 보유한, 1980년대에 생산된, 미그29는 이번 전쟁에서 고물 취급 받는 낡은 전투기다. 북한의 주력 전투기는 여전히 1950, 60년대 생산된 미그21, 미그23이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김일성광장에서 지나가는 기계화 부대를 보면서 이것도 군대라고 유지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진 않을까. 난 내일 열병식에서 북한군 기계화 부대가 지나갈 때마다 우크라이나 거리와 마을에 뒹구는 포탑이 날아가 녹이 쓴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되뇔 것이다. “고물이 온다, 고물이 간다.” 김일성광장 상공을 나는 비행기들을 보면서도 되뇔 것이다. “고물이 온다, 고물이 간다.” 이는 재래식 전쟁에서도 세계 군사력 평가 6위인 한국이 28위인 북한에 진다고 주장하는 일부 한국군 장성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지금은 남북이 재래식 전쟁을 하면 그냥 고물 청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위성과 무인기로 손금 보듯 전장을 보는 세상에선 고물을 숨길 곳도 없다. 장군님이 명령만 내리면 당장 남으로 진격해 적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믿으며 껑충껑충 행진하는 북한 군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영상을 보여주고 싶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론 북한군이 얼마나 허약한지도 생생히 방증하고 있다. 고물의 퍼레이드가 뭐가 자랑스럽다고 매년 꼬박꼬박 열어 온 세계에 보여줄까. 창피하지도 않을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KT&G장학재단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고교생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도 중고교 상상장학생’을 모집한다. ‘상상장학생’은 교육 소외계층 지원과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해 KT&G장학재단이 2011년부터 해마다 펼쳐온 장학사업이다. 올해는 중학생 200명에게 100만 원씩, 고등학생 250명에게 200만 원씩 모두 450명에게 7억 원의 장학금이 주어진다. 선정된 학생들에게는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된다. 장학금 지원이 필요한 학생의 담당 교사 등이 신청하는 방식으로 25일까지 KT&G장학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서류 접수 후 심사를 거쳐 합격자를 결정하며 결과는 5월 11일 발표한다. 장학생으로 선정되면 최대 재학 3년 동안 지원이 이어지는데, 매년 계속 지원 여부를 검토해 결정한다. 장학재단은 매년 상상장학캠프를 개최해 고교, 대학 상상장학생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캠프를 통해 문화 체험, 명사 특강 및 자기주도적 학습 지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선배와 후배 장학생이 멘토와 멘티가 되어 서로의 꿈과 진로에 대해 공유할 수 있게 된다. KT&G장학재단 관계자는 “KT&G는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 교육 소외계층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학사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사랑한 버거로 유명한 일명 ‘오바마버거’가 국내에 선보인다. 대우산업개발 자회사인 이안지티는 다음 달 고급 셰프버거 브랜드 GSE(Good Stuff Eatery) 첫 매장을 서울 강남에 연다고 밝혔다. GSE는 미국 서니사이드 레스토랑그룹의 고급 수제버거 브랜드로 ‘톱 셰프’,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등 미국 유명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 셰프가 맛을 책임진다. 2008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 미국 주요 도시는 물론이고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GSE는 ‘농장은 가까이에 있다’는 가치를 내걸고 좋은 품질의 재료를 사용한다. 한국에서 여는 GSE 매장은 국내 처음으로 도심에서 만나는 농장인 ‘지티팜’을 매장 내에 선보인다. 고객들은 GSE 매장의 벽면을 따라 들어선 지티팜에서 본인이 먹을 햄버거, 샐러드에 들어갈 방울토마토와 파프리카, 로메인 등의 다양한 채소가 자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모든 메뉴는 현지 셰프가 만든 레시피를 가져와 미국 원조 버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며 150g의 두꺼운 쇠고기 패티를 사용한다. 신설되는 GSE 매장은 서울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5번 출구 인근에 자리 잡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해외에서 상품을 판매해 이익을 벌어들이는 유일한 국내 자산운용사로 40여 개국에서 1800여 개 상품을 팔고 있다. 작년 이 회사의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순자산은 66조 원에서 102조 원으로 55%나 성장했다. 대표 상품인 TIGER ETF, Global X의 수탁액도 각각 2배 이상 늘었다.미래에셋자산운용이 해외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비결은 인지도보다는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 투자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래에셋의 해외 설정 펀드 30여 개가 글로벌 평가사인 모닝스타에서 5성 등급을 받았다. 이 등급은 펀드에서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며 3년 이상 운용 펀드 중 상위 10% 우량 펀드에 포함돼야 받을 수 있다.미래에셋의 상품 경쟁력은 크게 4가지를 꼽을 수 있다.무엇보다도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해 각사의 경쟁력을 높였다. 운용, 증권, 생명, 캐피탈 등의 계열사 모두 각자 독립성을 띠고 있다. 둘째는 상품 경쟁력을 위한 토론 문화다. 미래에셋에는 창업주 박현주 회장을 포함한 수평적인 토론 문화가 정착돼 있다. 정기적인 부문별 주간, 월간 미팅 및 리서치 회의 외에도 온라인 투자전략 미팅 등 비대면으로 임직원들이 상품과 투자 전략을 논의한다.셋째,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협업이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15개 네트워크를 통해 상품을 운용한다. 현지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전략회의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 우량 종목을 발굴해 장기 투자하게 되면 매매회전율과 운용에 필요한 간접 비용을 낮추게 되며 이렇게 절감한 비용은 투자자들 이익으로 귀속된다.마지막으로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운영된다. 대형 판매사들의 무분별한 해외상품 판매로 인한 환매 중단 및 사모펀드 사태로 최근 3년간 금융권이 혼탁했지만 미래에셋 펀드는 언급된 적이 없다. 2001년 설정된 미래에셋인디펜던스펀드는 수익률이 1100%나 된다. 500% 넘는 해외 주식형펀드 10개 중 6개가 미래에셋 상품으로 장기펀드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설정된 지 10년이 넘는 상품을 투자자가 꾸준히 찾는 이유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함께 투자 원칙을 지켜냈기 때문이다.이 같은 경쟁력을 기반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2021년 연결기준 영업수익은 국내 운용사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다. 당기순이익은 연결기준 3991억 원으로 2020년의 2565억 원 대비 56% 늘었다. 이는 미래에셋을 제외한 상위 10개 자산운용사의 순이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실적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래에셋생명이 보험업계의 디지털 혁신을 선도하며 ‘종이 없는 보험사’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은 3월 보험사 최초로 모든 보험 상품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기반의 ‘완전판매 모니터링(해피콜)’ 서비스 운영을 시작했다. 종신보험이나 암보험 같은 일반 상품은 물론 투자성 변액보험까지 AI 완전 판매 모니터링을 도입한 것은 처음이다. 완전판매 모니터링을 상담사의 감정 노동 없이 AI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진행함에 따라 불완전 판매가 줄어들고 고객의 알 권리도 강화될 전망이다. 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야간에도 상담할 수 있어 낮에 통화가 어려운 고객도 원하는 시간에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속도 및 음량 조절도 가능하고 희망할 경우 고객센터 직원과 연결해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미래에셋생명의 이런 혁신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올 1월 자사 보험 가입자 업무 처리 플랫폼인 ‘미래에셋생명 사이버창구’ 앱을 확대 개편해 전체 업무의 98%까지 모바일 처리 비율을 높였다. 거의 모든 업무를 스마트폰에서 원 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특히 법인 고객 서비스를 확대해 종전 펀드 변경만 가능했던 업무 범위를 대폭 늘려 △지급 △가상계좌 신청 △증명서 발급 등의 제반 업무도 사이버 창구에서 손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12월에는 고객프라자 등 고객이 내방해 업무를 보는 창구에 종이가 필요 없는 페이퍼리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보험과 대출 등 업무 문서를 모두 전자문서로 전환하고, 전자증명서 및 전자위임장을 통해 모바일에서 서류를 주고받게 되면서 미래에셋생명은 종이 없는 보험회사로 탈바꿈했다.이런 성과는 2014년 4월 업계 최초의 온라인 변액보험 출시, 2019년 10월 업계 최초로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완성형 원격지 청약시스템 오픈 등 디지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투자해 온 것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미래에셋생명 관계자는 “앞으로 고객 서비스 전반에 모바일 기반의 인슈어테크를 도입해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뉴노멀 시대를 선도하는 디지털 보험사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2005년 6월 미래에셋그룹이 SK생명을 인수하면서 탄생한 미래에셋생명은 초기에는 ‘은퇴설계의 명가(名家)’를 목표로 퇴직연금 시장에 뛰어들어 이미 경쟁이 치열한 국내 생명보험시장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출범 당시 4조7000억 원대의 총자산은 5년 만인 2010년에 12조 원대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 말엔 42조 원을 달성했다. 2018년 3월 변액보험의 강점을 가진 PCA생명을 인수합병하며 변액보험 규모에 있어 ‘빅3’(삼성·한화·교보) 생보사와 함께 10조 원 클럽을 형성하기도 했다. 꾸준한 성장과 더불어 미래에셋생명은 2021년 2회 연속 소비자중심경영(CCM) 인증을 획득했다.미래에셋생명은 임직원들이 CCM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고객 가치를 최우선으로 실현하는 ‘고객동맹’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소비자 중심 경영 강화 △차별화된 금융상품 제공 △완전판매 강화 △고객 서비스 혁신의 4대 핵심 전략을 추진하며 소비자를 보호의 대상을 넘어 동반자, 파트너로 바라보는 경영 철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995년 6월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북한에서 노동신문을 통해 접했다. 썩고 병든 남조선에선 이런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고 비난했다. 그 전해 10월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소식도 노동신문에 사진과 함께 큼직하게 실렸다. 남조선은 잘사는 사회라고 알고 있던 내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대다수 북한 사람들도 한강 다리 상판이 떨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사진을 보면서 남조선은 사람 못 살 사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532명이 사망·실종되고 940여 명이 부상당한 이 참사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한국에 와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2004년 6월 삼풍백화점 자리에 주상복합아파트가 건설돼 입주가 시작됐다는 기사를 보고 “저기에 왜 하필 주거시설을 지어야 했을까. 나라면 왠지 께름칙해서 못 살 것 같은데 저기 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배우자 역시 결혼 전에 거기에 거주했다. 풍수가들의 논리에 따르면 대통령이 나온 자리는 길지(吉地)가 되겠는데, 길지라고 하기엔 또 대형 참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10일 새벽 당선이 확정된 윤석열 후보가 아크로비스타를 나올 때 나는 평양 평천구역 은정아파트를 떠올렸다. 불과 8년 전인 2014년 5월 13일 오후 4시 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붕괴 참사가 일어난 그 23층 아파트이다. 남쪽에는 평천 아파트 붕괴 사고로 알려져 있다. 이 아파트의 붕괴 역시 부실시공 때문이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붕괴 이후 현장은 아파트 잔해인지, 흙더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고 한다. 아파트 건축을 담당한 군인들이 철근과 시멘트를 빼돌려 팔아먹고, 그 대신 저강도 시멘트를 섞어 건설했기 때문이다. 사망자 수는 북한이 공개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사고 3년 뒤 평양에서 나온 한 북한 간부에게 물어봤더니 300명 정도로 알려졌다고 했다. 북한에서 개별적 회사가 건설해 파는 아파트는 내부 미장까지만 해주기 때문에 골조만 세워지면 그 이후엔 집을 산 사람들이 벽지도 바르고 인테리어도 한다. 평천 아파트 역시 완공도 되기 전에 입주 예정자들이 들어가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남편이 출근한 뒤 집에 남아 작업을 하던 가정주부와 노인들, 건설 후속 작업을 하던 군인 수십 명, 개별 가정의 청부를 받은 건설 전문 인력들, 아파트 주변에서 놀던 어린이들, 밖에서 한담을 하던 다른 아파트의 노인 일부 등이 사망했다. 아파트 붕괴 현장에선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사망자 시신도 제대로 수습되지 않았다. 김정은의 지시로 굴착기와 덤프트럭을 총동원해 불과 이틀 만에 붕괴 잔해를 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피해자 가족 수백 명을 모아 놓고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직접 나와 사과했다. 북한은 보험이 없어 피해자들은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했다. 붕괴 현장엔 불과 몇 달 만에 똑같은 아파트가 건설됐다. 김정은의 배려로 건설된 아파트란 의미로 은정아파트란 이름이 붙었고, 붕괴 전에 아파트를 샀던 사람들에게 다시 분양됐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그 자리에서 살 리가 만무했다. 북한 당국은 유가족들이 김정은의 ‘은정’을 거부하고 아파트를 팔고 떠나도 이를 눈감아 주었다고 한다. 문제는 은정아파트가 매물로 나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사겠다고 줄을 섰다는 것이다. 평양 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은정아파트가 엄청난 인기를 끈 이유는 표면적으론 김정은의 지시로 건설돼 튼튼할 것이기 때문이라 했지만, 실은 수백 명이 사망해 액막이가 잘된 아파트라고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양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에 이 증언을 2018년에 쓴 저서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에도 실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터에서 남조선 대통령이 나왔다는 소식이 북에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시 액막이가 된 아파트가 최고라며 은정아파트 가격이 치솟을 것 같다. 물론 남쪽 소식을 대다수 북한 사람들이 알 수 없겠지만, 통전부 간부들을 포함한 일부 고위층들은 한국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게다가 삼풍백화점 붕괴는 많은 북한 사람들도 기억하고 있는 참사이다. 머잖아 북한에 “남조선에 아크로비스타가 있다면 우리에겐 은정아파트가 있다”는 소문이 퍼질지 모르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가 아프리카 식수 시설 개선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르완다는 ‘데이터를 활용한 식수 접근성 강화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 냐마가베 지역 내 식수 시설을 모니터링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역 내 설치된 식수 시설 중 보수가 필요한 곳이 40%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해 식수대, 핸드 펌프 등 지역 내 식수 시설부터 점검했다. 주민들은 굿네이버스가 지원한 태블릿PC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식수 시설이 설치된 970곳 위치와 작동 여부, 수질 등을 ‘엠워터(mWATER)’ 앱에 업로드했다. ‘엠워터’는 세계 180개국과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이렇게 업데이트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수 시설 지도 ‘워터포인트맵(Water Point Map)’을 만들었다. 지역 주민 4만여 명은 식수 시설 지도를 통해 가장 가깝고 안전한 곳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 지도상에 표시된 노후화되거나 고장 난 시설은 신속하게 수리해 깨끗한 물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냐마가베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식수위원회를 조직하고 206명 회원을 대상으로 식수 시설 관리 역량 교육도 진행했다. 굿네이버스는 모잠비크 가자(Gaza)주에서도 열악한 식수 공급 환경과 위생 인식 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부터 3년간 국제질병퇴치기금 사업으로 주민들이 식수대와 가축급수대, 빨래터를 구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태양광 급수 시스템 8기와 38개 공공기관 내 화장실을 설치했다. 또 지역 주민이 주축이 돼 안전한 위생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주민주도형 화장실 개선 활동’을 지원했다. 직접 마을을 돌아보며 위생 환경 실태를 파악한 주민들은 오물 처리를 위한 화장실의 필요성에 공감해 집집마다 화장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결과 개선된 화장실을 보유하게 된 가구 비율이 8.4%에서 81.8%로 껑충 뛰었다. 모잠비크 가자주의 한 보건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는 네우사 씨는 “주민들은 새로 건립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깨끗하게 손을 씻으며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며 “잦은 복통과 설사로 병원을 찾던 아동과 지역 주민들이 유해균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은 “굿네이버스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기반으로 개발도상국 지역 주민이 안전한 식수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식수 시설 설치 및 관리, 위생 인식 고취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 주도로 식수 시설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데이터를 활용한 식수 접근성 강화 프로젝트’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굿네이버스는 2011년부터 매년 식수위생지원 캠페인 ‘굿워터 프로젝트’를 진행해 개발도상국 아동과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캠페인 주제는 ‘물지킴이’로 더 많은 물을 지키고 아이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굿네이버스 홈페이지를 통해 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어제, 3월 16일은 내가 탈북해 한국에 도착한 지 20년째 되는 날이다. 중국의 한 지방공항에서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 속에 출국 심사를 통과하던 일, 하늘에서 내려다본 첫 한국 땅, 인천공항에서 탈북자라 신고하던 순간 등이 여전히 생생하다. 반년 전까지 북한 감옥에서 운신이 어려운 폐인이 되던 내가 새 삶을 선물 받은 날이다. 3개월의 조사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먼지가 가득 쌓인 실평수 7평 남짓한 영구임대아파트를 밤늦게까지 청소한 뒤, 이불도 없어 맨바닥에 누워 “이제 뭐하고 살까” 막막해하던 첫날 밤도 잊혀지지 않는다. 벼룩시장을 뒤져 찾은 첫 일은 8월 삼복에 군포화물터미널에서 컨테이너 속 와인 박스를 하루 종일 메고 나르는 일용직이었다. 첫날 일당은 4만5000원. 인력사무소에 10% 주고, 밥값과 교통비를 떼고 남은 3만5000원을 만지작거리며 “이제는 일만 하면 굶어죽진 않겠다”며 행복했던 기억도 난다. 중고 컴퓨터를 사서 구직 사이트를 뒤져 20개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3곳에서 회답이 왔다. 가장 조건이 좋아 보이는 가리봉의 한 무역회사부터 찾아갔더니 “김일성대 수준이 여기서 통하겠냐”며 대놓고 무시했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2002년 10월 한 주간지 기자로 입사했고 이듬해 여름 어느 저녁 퇴근길 지하철 가판에서 동아일보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동아일보 합격 통지를 받던 때와 거의 동시에 6개월이나 걸린 국정원 입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양지와 음지 중 어느 쪽에 갈까 고민하다가 양지를 선택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한국에서 내린 가장 훌륭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 있을 때 라디오에서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1300여 명이라는 말을 들었다. “빨리 가서 1500명 안에는 들어가자”고 결심했는데, 이후 체포돼 중국과 북한의 6개 감옥을 전전하다가 겨우 살아오고 보니 2000여 번째였다. “너무 늦게 와서 내가 갈 만한 자리는 없겠다” 싶었는데 이후 3만4000명이나 탈북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뒤늦게 온 탈북민을 만나면 “내가 참 빨리 와서 다행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착 초기 몇 년을 돌아보면 산에서 살다가 도시로 내려온 타잔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20년을 살다 보니 아스팔트 위에서 구두를 신고도 맨발로 숲속을 달리던 만큼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한국에서 탈북 기자로 불린다. 해외에서 태어나 현지 대학까지 마치고 한국에서 기자가 돼도 미국 출신 기자, 중국 출신 기자라고 부르진 않는다. 하지만 내게 붙은 출신의 꼬리표는 죽을 때까지 떨어질 것 같지 않다. 한국 생활 20년째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살아보니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을 것 같다. 이 질문엔 밤새 말할 것 같기도 하고, 또 할 말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나는 혁명가의 꿈이 심장에서 펄펄 끓는 청년이었다. “내 생애엔 북한이 반드시 붕괴될 것이고, 그때면 다시 돌아가 고향 사람들을 선진국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한목숨 바칠 것이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언론인의 길을 선택할 때 북한이 가장 암살하고 싶은 사람으로 살겠다는 비장한 다짐도 했다. 지금은 후배들과 술자리에서 “20년이나 살 줄 알았으면 일찍 아파트나 사 놓았을 걸 그랬다”는 농담을 자주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망명가로 생을 마무리할까 봐 가끔 겁도 난다. 북에서 산 세월이 아직은 더 많지만 사회생활은 전부 서울에서 했다. 이젠 서울 지리에 훤한 완벽한 서울시민이 됐다. 당장 내일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면 20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북에 돌아가 살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북에 가서 몇 달 정도 살 수는 있겠지만, 다시 북한 사람으로 살아갈 자신은 점점 사라진다. 북한에서 “뉘기요? 어째 왔소?”라는 억센 사투리에 둘러싸인다면 이젠 몹시 이질감을 느낄 것 같고, 북한 사람들도 나를 한국 사람이라 받아들일 것 같다. 서울에선 탈북 기자, 평양에선 한국 기자로 불릴 삶이 내키지는 않다. 그러나 “왜 목숨 걸고 여기에 왔는지 잊지 말라”며 불쑥불쑥 심장을 두드리는 무엇인가가 내 몸에 남아 있는 한 기꺼이 경계선에 서 있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바뀔 수 없는 내 운명인 듯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