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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woohaha@donga.com

취재분야

2026-02-28~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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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범죄3%
  • [인터뷰]“대형화재 줄 잇는 배터리, 렌털 정수기보다 관리 안 돼”

    《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지하 25cm, 세로 15cm 크기 배터리서 불꽃이 일었다. 정전이 돼도 데이터가 정상 가동되도록 전력을 공급하는 무정전전원장치(UPS)와 연결된 배터리였다. 단 한 개의 배터리가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 먹통 사태를 불러온 셈이다. 카카오의 모든 서비스가 복구되는 데는 나흘이나 걸렸다. 이번 사태로 2018∼2019년 빈발했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가 다시금 소환됐다. UPS는 용도는 다르지만 ESS 같은 이차전지의 일종이다. 당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조사를 주도했고, 이번 UPS 사고 조사에도 참여하는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로부터 배터리 화재의 원인과 안전 대책을 들어봤다.》 UPS와 ESS 화재 원인을 이해하려면 공통적으로 리튬이온배터리를 쓰는 장치에서 불이 났다는 점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UPS는 ESS와 같은 이차 전지이지만 그동안 납축전지를 주로 썼기 때문에 사고가 뜸했다. 그런데 데이터센터처럼 대용량의 전기를 사용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리튬이온배터리가 납축전지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판교 데이터센터 역시 납축전지를 쓰다가 2016년 리튬이온배터리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튬이온배터리 사용이 계속 늘어나는데 안전성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사실 환상적인 기술이다. 납축전지에 비해 작고 가볍다. 같은 부피당 저장되는 전기에너지 밀도가 납축전지의 3배나 된다. 자동차 배터리가 바로 납축전지인데 그 크기를 생각해 보라. 납축전지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려면 건물이 몇 개 더 필요하다. 배터리 수명은 10배 길다. 그만큼 비싼 것이 단점이다. 화재가 나면 1000∼1500도까지 올라가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난다. 리튬이온배터리 내부에서 산소가 계속 발생하므로 전소될 때까지 불을 끌 수가 없다.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추면서 불이 번지지 못하도록 막을 뿐이다. 이번 카카오 사태에서 전원을 차단한 채 8시간이나 화재를 진압한 이유다.” ―2017년 8월 전북 고창풍력발전 ESS 화재가 처음 보고되면서 리튬이온배터리의 안전성에 대한 경고음이 울렸다. 지금까지 38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다. 정부의 조사 결과 그 원인은 무엇이었나. “2019년 정부가 1차 민관합동 ESS 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 결과 네 가지 화재 원인을 밝혀냈다. 첫째, 배터리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가 부실했다. 둘째, 배터리와 배전반 등 주변 설비를 통합·제어하는 시스템이 서로 충돌했다. 셋째, ESS를 설치한 장소가 엉망이었다. 주로 산지나 해안가에 조립식 건물로 지어지는데 현장조사를 나가 보니 뱀도 기어 다니고 풀도 자라고 있더라. 이 세 가지 원인, 배터리 외부 원인은 ESS 제조·설치·운영 기준을 만들어 해결했다. 당시 ESS가 설치된 1500곳을 점검했고 새로운 기준을 충족시킬 때까지 모두 가동을 중단시켰다. 2020년 사고가 2건으로 급감했다. 마지막으로는 배터리 자체 결함이 의심됐다. 배터리를 해체해 보니 결함의 흔적은 발견했으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진 못했다. 조사 기간이 반년이라 사고 배터리와 사용 기간을 똑같이 맞춰 실험할 수 없었다. 더욱이 배터리 불량률이 ‘0’에 수렴하고 있어 예외적인 경우라고 봤다.” ―카카오 먹통 사태를 야기한 UPS 화재 원인도 ESS 화재 원인과 동일한 것인가. “UPS 사고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라 ESS 조사 결과에 근거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UPS와 ESS는 운전하는 방법이 다르다. ESS는 생산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태양광에너지를 낮에 저장했다가 밤에 쓰는 식으로 충전과 방전을 반복한다. 반면에 UPS는 100% 충전을 해 뒀다가 비상시에만 대체 전력으로 사용한다. ESS는 2차 화재사고 조사 이후 충전율을 90%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배터리 손상을 막기 위해서다. UPS는 항상 100% 전압이 걸린 상태인데 혹시 이 차이가 배터리에 가혹한 환경인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휴대전화를 오래 충전하면 뜨거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 판교 데이터센터의 경우 건물 준공 시 인가를 위한 검사 대상에 UPS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UPS는 사용한 지 60∼70년 정도로 ESS보다 훨씬 오래됐다. UPS가 전기안전법상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납축전지를 사용해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법상 특수설비로 등록해 안전기준, 성능기준을 마련했고 국무조정실 사전 규제 심사에 올라가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쓰는 UPS를 사용하는 곳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데이터센터 자동화공장 등 데이터를 쓰는 곳은 다 들어간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관리할 근거가 마련됐다.” ―리튬이온배터리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전기차 등 충전이 필요한 모든 전지에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제품 사용도 위험한 것인가. “리튬이온배터리는 상용화된 지 30년이 지나지 않았다. 기술이 완성되어 가는 단계에 있다. 그러나 일상 속 기기들은 아주 작은 용량의 배터리라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문제는 MW(메가와트·100만 W)급 대용량 전기가 필요한 곳들이다. 현재 리튬이온배터리를 쓰는 UPS가 설치된 사업장이 전국에 241곳이다. 발전소에는 거의 들어가 있다. 야외에 설치하는 ESS와 달리 UPS는 건물 안에 설치한다. 이번 화재에서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고 유독가스가 배출되면 건물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배터리 안전성을 개선할 대책이 있나. “배터리는 아는 만큼 성능이 나고 아는 만큼 안전하다. 휴대전화 배터리만 봐도, 사용자에 따라 오래 쓰기도 하고 금방 닳기도 한다. 배터리는 전기·통신·반도체·화학 분야가 융합된 기술이다. 이에 정통한 전문가가 다뤄야 한다. ESS 현장 조사를 갔더니 옷 공장을 운영하다가, 임대사업을 하다가 ESS 사업에 뛰어든 분도 있었다. 그래서 배터리 렌털 서비스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수기를 빌리면 정기적으로 필터를 갈아주는 것처럼 전문가가 유지·보수를 하도록 하는 거다. 배터리 사고가 나기 전에 반드시 징조가 있다. 하루 전날도 아니고 한두 달 전부터 가스가 배출된다거나 하는 신호를 보낸다.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채기 힘들다. 잠수함 안에도 UPS가 설치되지만 사고 난 적이 없다. 매일 전문가가 점검하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기존 소화약제로는 진압이 어렵다.” ―대책이 있는데도 실행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안전하게 유지·관리하면서 쓰는 것이 최선인데 여기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기업이 이 비용을 감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2013년 일론 머스크가 ‘ESS는 세상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이라고 했다. 전기는 생산하자마자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전력예비율을 10∼15% 둔다. 과잉 생산하고 버린다는 얘기다. 그런데 ESS가 생기면서 전기를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우리 같은 자원 빈국에선 꼭 필요한 기술이다. 세계 시장의 약 3분의 1을 점유한 성장 산업이기도 하다.”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훗카이도(北海道)대학원 전기공학 박사로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2013년부터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전기에너지저장시스템(ESS) 국제표준화회의 환경 분야 의장으로서 ESS 기술 표준 개발에 참여한 배터리 전문가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안전전문위원으로 1∼4차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조사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산학기술학회 회장과 대한전기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천안=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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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반값 아파트’

    빛이 밝으면 그늘이 짙다. 요즘 ‘빙하기’가 도래한 부동산 시장이 딱 그렇다. 최근 3, 4년간 전례 없이 폭등했던 아파트 가격이 뚝뚝 떨어지더니 급매, 급급매에 이어 반값 아파트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 염리삼성래미안 전용면적 84m²가 8억 원에 거래됐는데 1년 전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이 단지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힐 만하다. ▷강남 불패 신화도 깨졌다. 8월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자이개포 전용면적 84m²는 8개월 전보다 9억 원 떨어진 15억 원에 팔렸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m²는 지난달 13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 한 달 만에 무려 8억 원이 빠졌다. 이들 거래 중에는 직거래가 섞여 있어 집값 폭락의 전조인지, 세금을 아끼려는 증여 거래인지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집주인들은 반값 아파트를 막기 위해 똘똘 뭉쳤다. 반값 아파트 거래를 성사시킨 공인중개업소를 공개하고 보이콧하거나 매도인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압박한다. 하지만 집값 하락의 추세를 거스르긴 역부족이다.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전용면적 84m²)를 5억 원가량 낮춰 판 아파트 매도인은 유튜브에 직접 출연해 “매달 대출 이자 내줄 것도 아니면서 사유재산에 대해 왜 팔았느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싸게 팔고 싶어 싸게 팔았겠느냐는 호소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사라진 까닭에 꽁꽁 얼어붙었다. 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되면서 이자 부담이 임계점을 넘어섰다. 집을 살 엄두를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연말이면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가 8%가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거금이 필요한 전세 거래 역시 실종됐고 경매와 청약시장까지 마비됐다. 반값 경매가 유찰되고 청약에 당첨돼도 잔금을 치르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급매 위주로 거래되다 그 가격이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거래가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3.3m²당 중위가격은 이미 2년 전 아래로 내려섰다. ▷금리에 따라 집값이 움직인다 하더라도 아파트 가격의 변동성이 지나친 것은 문제다. 실수요보다 갭 투자 같은 투자 수요가 집값을 올려놓고 집값이 떨어지자 투매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팬데믹 동안 집값 버블현상이 심각했던 나라에 속한다. 거품이 사그라지는 과정에서 시장의 고통이 커질 것이다. 그래도 집값은 차츰 정상화돼야 한다. 청년들은 “내 집 마련에 따라 인생의 난이도가 달라진다”고 자조한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는 풀기를 포기하게 되듯이 인생의 난이도가 높아지면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다.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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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교육부는 왜 밉보였나

    “단단히 (대통령실에) 밉보인 것 같다.” 국립대 사무국장 파견 금지로 발칵 뒤집어진 교육부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해석이다. 지난달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파견됐던 교육부 공무원 10명이 일제히 대기 발령이 났다. 공석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은 국정감사가 끝나면 교육부로 복귀한다고 한다. 국·과장급인 사무국장 자리 21곳이 순식간에 증발한 것인데 이들의 자리를 찾아주고 나면 수년간 인사 적체를 피할 수 없다. 해고가 없는 공무원 조직에선 그야말로 재앙이다. 그동안 교육부는 국립대서 재정·인사 등 살림을 총괄하는 사무국장 자리를 독점해왔다. 이를 통해 국립대를 통제하는 한편, 인사에 숨통을 틔워 왔다. 국립대의 민원 창구로도 기능했다. 교육부와 국립대의 가교를 단번에 끊어낸 것.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이슈지만 교육부 개혁이 맞다. 다만 장관이 공석인 상태에서 단행됐다는 점에서 대통령실의 결정이 아니고는 설명이 어렵다. 교육부 안에서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교육부는 왜 이렇게 밉보였나.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던 교육계 인사들은 “현행 교육제도와 교육부에 대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비판적”이라고 전했다. “사학비리가 터졌던 그 학교를 다녔던 이야기, 사학재단을 수사한 이야기를 주로 하더라”거나 “후보자 시절 교육계 인사가 들고 온 교육 공약은 대개 퇴짜를 놓았다”고도 했다. 사실 윤 대통령의 공식 발언만 봐도 교육부를 개혁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드러난다. 6월 윤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주문한 국무회의 발언을 복기해 보자. 수도권 대학 증원이 어렵다는 장상윤 차관에 대해 “웬 규제 타령이냐”고 면박을 줬다. “교육부도 경제부처처럼 해야 한다” “시대에 뒤처진 일을 내세운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교육부는 폐지해야 한다”는 질책이 이어졌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도 교육부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이 후보자는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K-정책플랫폼 보고서에서 대학을 교육부 산하에서 떼어내어 총리실로 편제(編制)할 것을 주장했다. 교육부 등 정부 관료의 국립대 파견을 금지하는 방안 역시 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 이 후보자는 “교육부 산하에 대학을 그대로 둔 채 교육부가 대학 규제 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꼴”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 후보자 지명 이전 20여 명의 인사를 검토했으나 스스로 고사하거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교육계 내에서 경제학자 출신인 이 후보자만큼 대통령 생각에 근접한 인사는 찾기 어렵다. 대다수 교육계 인사는 국정과제인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을 두고도 기업 이익이 반영된 경제 논리라고 볼 것이다. 교육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부처로 거론된다. 하지만 교육부는 ‘학생의 학력과 안전을 위한 규제’라는 명분을 방패 삼아 용케 개혁의 칼날을 피해 왔다. 교육부가 교실 크기부터 강사 수업 시수까지 획일적인 규제를 하는 동안 공교육은 붕괴했고 대학 경쟁력은 추락했다. 타성에 젖은 교육 행정의 틀 안에 학생들을 구겨 넣은 결과, 교실은 잠을 자는 곳이 됐다. 대학은 교육부의 재정 지원에 길들여진 나머지 어떤 혁신도 시도하지 않는다. 이러느니 교육부 폐지가 낫다는 인식이 과연 대통령만의 인식일까. 교육부가 지금처럼 낡은 규제를 움켜쥔 채 군림만 한다면, 그 누구도 교육부의 우군이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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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 파고드는 마약, 성폭력 강도 살인 강력범죄 온상 된다”[인터뷰]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 투약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과거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의 일탈로 여겨지던 마약이 직장인 학생 주부 등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했다. ‘마약의 일상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하수처리장 27곳에서 잔류 마약류의 종류와 양을 분석했더니, 한 곳도 빠짐없이 필로폰(메트암페타민)이 검출됐다. 엑스터시(MDMA)는 21곳에서 검출됐다. 농도로 추정한 마약 사용량은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지만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6일 마약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를 만나 우리나라의 마약 실태와 대책을 물었다.》 ―우리나라 마약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가. “유엔은 마약 사범이 인구 10만 명당 20명을 넘으면 급격한 확산 위험이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2015년 이를 넘어섰다. 그해부터 단속된 마약류 사범이 정확히 1만 명을 넘었고 매년 급증해 지난해 1만6000여 명에 달했다. 최근 마약 사건을 보면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하다. 첫째, 젊은 마약 중독자가 많아지고 있다. 다크웹을 통해 마약을 사고 비트코인으로 지불한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마약에 접근하기 쉽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 사범 중 35%가량이 10, 20대이다. 30대를 포함하면 60%에 달한다. 특히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류 사범이 450명인데 이는 5년 새 3.8배가 늘어난 것이다. 둘째, 상습 투약자가 늘고 있다. 최근 검거된 돈 스파이크의 차에서 필로폰이 30g 발견됐다. 1회 용량이 쌀 한 톨만큼인 30mg 정도라 1000명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많은 양을 구해 싣고 다니는 것도 놀랍고, 평소 상습적으로 투약해 왔음을 보여준다.” ―마약이 급속히 퍼지게 된 이유가 있나. “디지털화, 글로벌화의 영향이 크다. 다크웹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개인이 소량으로 사는 게 가능해졌다. 집 앞에 택배로 마약을 배달해 준다. 외국으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소량의 마약은 세관이 일일이 걸러내기 어렵다. 국내에서 유학·취업하는 외국인이 많아졌고, 그 반대로 외국에 유학·취업하는 한국인이 많아진 것도 원인이다. 나라마다 마약류로 지정된 것이 다르기 때문에 왕래하면서 들여오곤 한다. 미국, 캐나다에서 합법화된 대마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어떤 종류인가. “현재 우리나라 마약류는 △마약(146종) △향정신성의약품(291종) △대마(3종) △임시마약(97종)으로 규정돼 있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은 습관성, 중독성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마약 사범이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하는 필로폰에 70% 집중돼 있다. 각성 효과가 있어서 과거에는 집중력을 높이거나 잠을 안 자야 하는 경우에 약으로 쓰인 적이 있다. 이른바 2019년 ‘버닝썬’ 사건에서 성범죄에 이용된 물뽕(GHB)도, 강력한 환각 작용이 나타나는 LSD도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한다. 2017년 멀쩡하던 고3 학생이 이모와 어머니가 스파이로 보인다며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 5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아주 소량의 LSD를 복용했을 뿐인데 가족을 살해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신종 마약이 얼마나 자주 생겨나나. “아직까지 신종 마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하지만 종류가 많고 화학구조를 살짝 바꾸고 바꾸고 해서 변종이 계속 나온다. 유엔에 보고된 신종 마약이 무려 1145종이다. 1971년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에 관한 단일협약으로 규제된 물질이 200여 종이었고, 50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가 근래 들어 5배가 넘게 늘어났다. 이를 관리하는 법적인 틀은 마련돼 있다. 어떤 약물을 임시 마약으로 정한 뒤 3년 동안 남용 여부를 살펴본 뒤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해 관리 체계에 편입시킨다. 다만 매년 신종 마약 수십 개가 등장하고 수십 개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불법 합성·제조되므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미국에선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중독으로 5분마다 1명씩 사망한다. 펜타닐은 비슷한 구조의 유사체가 40가지나 된다. 그러다 보니 변종 펜타닐이 쉽게 제조돼 빠르게 유통된다. 순도도 일정치 않아 부작용이 크다. 특히 다른 약물과 섞일 경우 낮은 농도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어 ‘죽음의 약물’이라고 불린다.” ―사회 전반적으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진 것 같다. “마약 범죄는 제조, 유통, 소지와 사용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마약 범죄의 80%는 마약 소지나 사용이다.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아예 시도할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한다. 마약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마약김밥’ ‘마약떡볶이’를 전수 조사해야 한다. 최근 구속된 돈 스파이크는 ‘마약스테이크’를 팔았다. 마약 성분이 나오면 판매를 금지하고, 안 나오면 이름을 못 쓰게 해야 한다. 마약에 얼마나 관대해졌으면 맛있는 음식과 연결될까 싶다. 더욱이 이런 간판은 어린이,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마약이 주는 순간의 쾌락이 지나가면 시공간 개념을 잃고 환각에 시달린다.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금단 증상으로 엄청난 육체적 고통이 찾아온다. 최선의 대책은 예방이다.” ―마약 중독은 자신을 파괴할 뿐,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마약이 유도하는 범죄가 심각하다. 최근 골프장에서 마약 음료를 먹인 뒤 내기 골프를 치고 돈을 뺏거나, 마약에 취해 환각 상태에서 강도나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많이 발생했다.” ―현재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국제과학수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 마약 검사 수준은 어떠한가. “UNODC는 특정 마약을 전 세계 300개 실험실에 보내고 테스트 결과를 수집한다. 그 결과를 보고 검사를 잘하는 나라가 못하는 나라에 분석기술을 알려주는 식으로 각국의 검사 역량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UNODC 국제과학수사 자문위원은 각국 마약 실험실이 검사 역량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980년대 후반 소변으로 마약을 검출하는 검사법을 개발했다. 불과 15년도 지나지 않은 2001년에 마약 검사의 기준이 되는 국제 기준 실험실로 정해졌다. 1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 단위의 신종 마약까지 잡아낸다. 국과수 인적 파워는 최고다.” ―최고 수준의 검사 역량이 마약 수사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 “경찰청 의뢰를 받아 일반 국민용과 경찰용으로 마약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버닝썬’ 사건이 계기였다. 일반인이 음료에 마약을 탔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가방에 부착 가능한 스티커형 진단키트를 만들었다. 현장 출동한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기 쉽게 리트머스형 진단키트도 개발하고 있다. 곧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일반인이 진단키트를 이용하면 마약 범죄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 사범 검거 외에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국내 유통되는 마약을 모니터링하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은 경찰 세관 대검찰청 국과수 식품의약품안전처 병원 등에 정보가 흩어져 있다. 각 기관이 정보를 공유하고 실시간으로 전파하게 해야 한다. 조기경보 시스템을 통해 마약 유통을 막을 수 있고 남용 정도를 판단해 법적 규제를 할 수 있다. 그다음은 담배나 술처럼 중독 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마약 사범의 출소 3년 이내 재복역률(40%)은 일반 형사 사범 재복역률의 2배에 달한다. 마약 사범의 치료·재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약 중독을 범죄로 보느냐, 질병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라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마약 사범의 처벌에만 집중돼 있다. 사실 마약 사범이 한 명 나오면 집이 망한다고 한다. 치료할 병원도 없고 취직도 안 된다. 전국에 운영되는 마약 중독 치료 병상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고, 지정병원인데도 환자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마약 투약 연령이 낮아지고 있어 치료와 재활이 더욱 중요해졌다.”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前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197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들어가 약독물과장, 마약분석과장, 법과학부장을 거쳐 11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을 지냈다.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2014년 아시아인, 여성 최초로 국제법독성학회(TIAFT) 13대 회장에 당선됐고 현재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국제과학수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국제법독성학회가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 수여하는 앨런 커리상(Alan Curry Award)을 수상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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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칠곡 할매 글꼴

    “폰트가 뭐꼬?” “비누 뭐 이런 거 만드는 거라예?” 폰트가 뭔지도 몰랐던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문서 작성용 글꼴로 만든 칠곡 할매 글꼴 5종이 MS오피스에 탑재된다. 지난해 먼저 탑재된 한컴오피스에 이어 MS워드와 파워포인트에서도 곧 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칠곡 할매 글꼴은 경북 칠곡군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깨친 김영분 권안자 이원순 이종희 추유을 할머니가 각각 필사를 한 1만 장의 손글씨를 바탕으로 2년 전에 개발됐다. ▷칠곡 할매 글꼴은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의 글씨처럼 손으로 꾹꾹 눌러 또박또박 쓴 글씨체다.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정겹게 느껴진다. 요즘 동영상 자막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에 종종 등장하고, 전자책 텍스트를 칠곡 할매 글꼴로 바꿔 읽기도 한다. 할머니 글씨가 주는 투박하고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디지털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옛것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복고 열풍과도 결을 같이한다. ▷폰트에 담긴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칠순, 팔순이 넘은 칠곡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을 겪고 고도성장의 시기를 헤쳐 왔다. 시대가 주는 아픔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묵묵히 견뎌 왔을 터다. 어린 시절 학업을 묻는 질문에 권안자 할머니는 “학교 댕겼으면 좀 낫지. 근데 다 어렵게 살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원순 할머니는 “집에서 아들 공부시키고 (나는) 들에 밭 매러 다니고, 공부가 뭐라”고 했다. 그런 할머니들이 글자 한 자, 한 자를 쓰면서 깔깔깔 웃는다. 억울할 법도 한데 “내 인생 참말로 괜찮네”라고 한다.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공부시간이라고/일도 놓고 헛둥지둥 왔는데/시를 쓰라 하네/시가 뭐고/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소화자 할머니의 ‘시가 뭐고’). 2015년부터 칠곡군 성인문해교실의 할머니들은 자작시를 모아 시집을 내고 있다. 할머니들의 간결하고 솔직한 시는 짧은 글이 대부분인 SNS 감성과도 맞아떨어진다. ‘칼의 노래’ 김훈 작가는 할머니들의 시에 대해 “우리같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도저히 쓸 수가 없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의 무게와 질감이 실려 있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시처럼, 할머니들의 글씨 역시 삶의 무게와 질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난해 국립한글박물관은 “정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새 역사를 쓴 것”이라며 칠곡 할매 글꼴을 휴대용저장장치(USB)에 담아 유물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자칫 잊힐 수도 있었던 할머니들의 역사를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유하게 됐다. 디지털 기술이 주는 선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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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저 진입한 韓 무기… “성능은 같은데 유지비는 절반” [인터뷰]

    《“한국이 폴란드와의 대규모 무기수출 계약으로 ‘방산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지난달 미국 CNN 방송은 한국 방위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올해 7월 폴란드는 한국으로부터 K2 전차(980대), K9 자주포(670문), FA-50경공격기(48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순차적으로 본계약을 체결해왔다. 1971년 국방과학연구소가 박격포 등 화기(火器) 개발을 시작으로 자주 국방에 시동을 건 지 50여 년 만에 한국의 방위산업은 초음속 항공기를 만들어 수출할 만큼 성장한 것이다. 이번에 폴란드가 구매한 FA-50 경공격기는 2006년 개발이 완료된 한국 최초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계열이다. T-50 개발 과정에 엔지니어로 참여했고, 그로부터 개량된 FA-50의 수출을 담당한 이봉근 한국항공우주산업㈜ 수출혁신센터장을 23일 만나봤다. 》 ―초음속 항공기 개발부터 수출까지 그 역사를 같이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2003년 2월 사천 비행장을 이륙한 T-50 고등훈련기가 4만 피트 상공에서 초음속 비행으로 진입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시험 비행에서 약 20만 개 부품이 한 치의 오류 없이 착착 작동한 건 기적과 다름없었다. 각각 부품이 잘 작동되더라도 항공기로 통합·운영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밤샘 연구를 같이했던 엔지니어끼리 부둥켜안고 벅찬 감동을 나눴다.” ―T-50 개발을 왜 기적이라고 하나. “록히드마틴으로부터 F-16을 구매하는 대가로 초음속 항공기 설계·제작 기술을 전수받기로 했다. 1992∼1996년 국방과학연구소 황매팀과 삼성항공 설계팀이 미국 텍사스로 가 기술을 배웠다. 당시 록히드마틴과의 공동 탐색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들이 밀알이 되어 1997년부터 개발이 시작됐고 9년 만에 성공했다. 단 한 번의 사고 없이 양산에 이른 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거나 추락해 항공기 체계 사업이 엎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T-50 고등훈련기를 플랫폼으로 TA-50 전술입문훈련기, T-50B 블랙이글, FA-50 경공격기가 차례로 양산돼 우리 영공을 지키고 있다.” ―당시 록히드마틴은 우리의 자체 개발·양산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던데…. “한국인의 도전 정신과 창의 DNA가 맞물려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02년 8월 첫 시험 비행 이후 3년 반 동안 1411회의 시험 비행을 했다. 속도 고도 하중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성능과 안전성을 점검하는데 매일 문제가 발견되고 매일 고치는 일이 반복됐다. 설계 도면에서 보이지 않는 원인을 찾아내 고치는 건 순전히 엔지니어의 역량인데, 한국 엔지니어들 정말 뛰어나다. 예를 들어, 우리 항공기가 어느 속도를 넘어서면 조종사가 느낄 정도로 진동과 소음이 심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원인을 찾아보니 주착륙 바퀴가 접히고 덮개가 닫히면 안과 밖 기압 차가 커져서 덮개가 떨리는 거다. 덮개에 바늘구멍을 내는 디자인으로 기압 차를 줄여 이를 해결했다.” ―감사원 감사를 받는 등 개발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원래 T-50 개발 과정에서 록히드마틴이 항공전자, 비행제어, 주익(主翼·중심날개) 3개 분야에 파트너로 참여했다. 그런데 양산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록히드마틴이 주익의 납품단가를 대당 360만 달러로 올려 요구했다. 이를 우리가 자체 생산할 경우 반값으로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1억1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생산권리를 사 왔는데 여기에 세금이 지원됐다고 감사를 받는 등 어려운 시간이 있었다. 나중에 검찰은 오히려 국가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인정해 무혐의 처분했다. 만약 그때 이 기술을 사지 않았다면 폴란드 수출 물량의 단가까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항공우주산업 후발국인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할 수 있었나. “항공기는 기계 전자 소재 반도체 정보기술(IT) 등 융복합 기술의 결정체이다.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부터 IT 산업까지 선도하면서 그동안 축적된 기술력이 FA-50을 탄생시켰다고 봐야 한다. 안보와 직결되는 항공우주산업은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FA-50의 국산화율은 현재 65%까지 올라왔다. 여러 나라가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도전했지만 실질적으로 개발에 성공하고 수출까지 한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오래전부터 FA-50의 폴란드 수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되곤 했다. 2010년 T-50 고등훈련기 구매를 검토하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그 내각을 태운 전용기가 ‘카틴숲 학살’ 70돌 추모식 참석차 이동하던 중 추락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카틴숲 학살’은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 비밀경찰이 포로가 된 폴란드군 장교와 지식인을 집단학살한 사건이다. 2013년 폴란드 정부가 사업을 재개했지만 FA-50은 이탈리아의 M346에 패하고 말았다.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확전 가능성을 우려한 폴란드는 다시 FA-50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보통 수년이 걸리는 무기 도입 계약이 반년 만에 이뤄졌다. “올해 2월 폴란드 국방부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해 F-50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고,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한국-폴란드 양자회담이 성사되며 급진전됐다. 폴란드에 진출한 기업들이 쌓아 둔 신뢰도 큰 역할을 했다. 16일 FA-50 본계약 서명식에 참석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기업이 폴란드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서로를 존경하고 있다’고 했다. ‘카틴숲의 학살’이 보여주듯 폴란드와 한국은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역사를 공유한다. 한국의 첨단 무기 도입으로 자주 국방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폴란드는 왜 FA-50을 선택했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폴란드가 느끼는 위기의 정도는 여느 나라와는 다르다. 언제 전쟁이 닥칠지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FA-50 경공격기를 선택한 것이다. 한국은 안보환경의 특수성상 무기 체계가 실전에서 검증됐다. 생산이 중단될 일도 없다. 폴란드가 원하는 신속한 공급과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약속할 수 있었다. 초음속 항공기인 FA-50은 동급 경쟁기에 비해 월등히 기동성이 뛰어나다. 공대공(空對空)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기동성이다. 또한 2028년까지 폴란드는 소련제 전투기를 퇴역시키고 미국의 초음속 전투기인 F-15, F-16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와 호환성이 높은 것도 장점이다. FA-50 조종사들은 짧은 훈련만으로도 F-15, F-16에 적응할 수 있어 바로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 ―한국 무기에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가성비가 좋다고들 하는데 이 말은 제품이 우수한데 운용비용이 낮다는 뜻이다. FA-50을 예로 들면, 항공기 체계에서 초기 개발비용이 30%라면, 30∼40년 운용되는 동안 70%의 비용이 든다. 무기를 사 왔는데 운용비용이 많이 들면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된다. 한국 무기는 보통 동급 경쟁기 유지비의 절반 수준이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안보 상황상 한국은 운용비용을 낮추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지속적으로 성능 개량에 대한 투자도 이뤄진다. 무기 체계도 전장 환경이 바뀜에 따라,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기술 발전에 따라 꾸준히 진화해야지 전력이 유지된다.” 올해는 K방산이 새 역사를 쓴 해다. 폴란드와의 대규모 계약 외에도 한화디펜스가 이집트에 K9 자주포를, LIG넥스원이 아랍에미리트에 천궁-Ⅱ 지대공 요격무기를 수출했다. 한국 무기 수출 규모가 올해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K방산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중학생이었던 1977년, 한국 경제 전체 수출 규모가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K방산만 100억 달러라니 상전벽해다. 한국의 경제 성장, 축적된 기술, 한류의 영향력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K방산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본다. 다만 민수산업과 군수산업은 차이가 난다. 수요가 지속적이기도 어렵고 인류 역사에서 바람직한 현상도 아니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K방산의 매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수출산업이라는 인식에서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항공기는 내수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힘들다. 군이 무기 성능 요구도를 설정하는 단계부터 해외 수출을 감안해야 향후 개발비용이 낮아진다. 수출된 방산 품목이 다양해지고 있어 조종사·정비사 교육 훈련, 부속품 지원 등 운용을 돕는 사후관리도 중요하다.”이봉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수출혁신센터장1987년 삼성항공산업에 입사했다. 1999년부터 국내 항공기업 3곳이 통합된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비행운영팀장, 수출지원실장, 미주법인장 등을 지냈다. T-50 엔지니어에서 마케터로 변신해 FA-50 수출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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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조 넘은 MRI 진료비[횡설수설/우경임]

    ‘효도검진 자기공명영상(MRI) 이벤트’ ‘추석맞이 MRI 검사 20% 할인’ 동네 정형외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고다. 뇌·뇌혈관과 복부·흉부에 이어 올해 척추 MRI 검사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되자 병·의원들이 환자 유치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지난해 건강보험이 부담한 MRI 검사비는 1조145억 원으로 건강보험 적용 이전인 2017년에 비해 3.3배나 늘어났다. ▷2018년 도입된 ‘문재인 케어’는 MRI를 비롯해 로봇수술, 초음파 등 건강보험 적용 항목을 확대해 지난 20년 동안 60%대에 머문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는 내용이다. 보장률이 높아진다는 건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의료비가 늘고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평균 60만 원이었던 MRI 검사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 평균 15만∼20만 원만 내면 받을 수 있게 됐다. ▷MRI 촬영 건수는 ‘문재인 케어’ 도입 이후 매년 두 배씩 폭증했다. 그동안 비용 부담에 검사를 망설였던 환자들이 쉽게 검사를 받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머리가 아프다’ ‘허리가 뻐근하다’고만 해도 MRI를 마구 촬영하는 지경이 됐다. 고가 MRI 장비를 구비한 병·의원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MRI 검사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공유지의 비극’이 벌어진다. 백내장 수술이 필수가 되거나 도수 치료로 정형외과 병상이 꽉 차는 것처럼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될 때마다 반복되던 현상이다. ▷2020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로 매년 상승했음에도 ‘문재인 케어’의 당초 목표에는 못 미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의료 행위의 가격이 통제된다. MRI 검사비만 해도 큰 병원으로 갈수록, 기기가 비쌀수록 가격이 달라졌는데 이제는 일정한 수준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된 급여 진료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병원들은 비급여 진료를 계속 늘려 왔다. 새로운 기기나 시술을 도입하는 풍선효과로 비급여 진료가 줄기는커녕 5년간 200개 이상 늘어났다. ▷건강보험 덕분에 한국 의료의 ‘가성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술 한 번 받았다가 재난적 의료비에 시달리는 미국이나, 수술은 공짜인데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영국 등에 비하면 한국만큼 의료 접근성이 좋은 나라는 없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이라고 마르지 않는 우물일 리 없다. 보험료도 가파르게 올라 이미 그 부담이 만만치 않다. 정말 아픈 환자들이 병원비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으려면 건강보험 지출 우선순위부터 조정해야 한다. 과잉 진료나 의료 쇼핑으로 곶감 빼 먹듯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일도 자랑이 돼선 안 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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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 N번방, L번방 막으려면 디지털 수사 장벽 낮춰야”[인터뷰]

    《2019년 9월 N번방 사건이 처음 알려진 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와 함께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3년, 한층 진화한 수법으로 L번방(가칭) 사건이 발생했다. 법적 대응이 어려운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한 뒤 피해자 지원단체를 사칭해 안심시키고 성착취물을 찍도록 강요한 것이다.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된 디지털 성범죄는 1만1568건. 지금도 창궐하는 수많은 N번방을 수사하려면 어떤 기술적 지원이 필요하며, 일상이 파괴된 피해자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N번방 사건 당시 기술 자문을 했던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와 한국여성변호사회 법률지원단에서 활동했던 김수현 변호사에게 8일 각각 물었다.》디지털 수사 전문가 김승주 교수 ―N번방 수사 경험이 있었는데도 경찰의 초동 수사가 미진했다는 지적이 있다. “N번방은 추적단 불꽃이 많은 자료를 확보해 넘긴 데다 워낙 사회적 이슈가 돼 많은 인력이 투입됐다. L번방 사건이 처음에는 여성청소년과에 배당됐다고 한다. 디지털 수사 인력 투입이 적었던 반면, L번방 가해자들은 학습 효과를 통해 진화했다. 조주빈 문형욱 등의 공범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수사 기법을 공유하며 학습한 것 같다.” ―경찰의 기술적 전문성이 이들을 따라가지 못해서인가. “경찰의 전문성보다 성착취물 유통 과정에서 그 흔적을 추적하기가 너무 어려워진 것이 문제다. 판매자는 기록이 남지 않는 다크웹을 통해 구매자를 모집한다. 텔레그램은 일반 메신저와 달리 서버에도 암호로 저장된다. 압수수색해 이를 확보해도 별 의미가 없다. 돈 거래도 쫓기 힘들다. 계좌나 카드가 아닌 가상화폐를 쓴다. N번방만 해도 비트코인보다 더 익명성이 보장되는 모네로를 썼다.”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등 N번방 대책이 발표됐었는데…. “AI 기술이 아직 그만큼 성숙되지 않았다. 사전 차단을 우회할 기술도 있고 다크웹, 텔레그램에선 먹통이다. 네이버, 다음 같은 플랫폼과 협력해 운용해 볼 수 있었는데 사전검열 논란이 불거졌다. 실효성이 떨어지고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기술을 도입할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이는 칼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고 만들지 말자는 것과 같다. 공공의 이익과 프라이버시 보호가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지 공감대가 없으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항할 기술이 발전하기 어렵다.” ―지난해 경찰의 위장 수사도 도입됐다. “AI와 같은 문제가 있다. 가상 신분증을 통한 위장 수사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다. N번방이나 L번방이나 소수만 선별한 최상위방으로 입장하려면 신원을 밝혀야 한다. 현재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만 가상 신분증 생성이 합법이다. 영상을 보고 확인해야 가상 신분증을 만들 수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된다. 기술이 있어도 활용할 환경이 안 된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에 있어서 어떤 기술의 개발이 필요한가. “도깨비방망이 같은 기술은 없다. 우리는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기술 개발에 끈기 있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디지털 성범죄로 돈을 벌고자 하는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익히고 수사망을 피해 다닌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다크웹의 기술적 빈틈은 없는지, 텔레그램 암호를 해독할 방법이 없는지 연구한다.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술이 축적된다. 우리는 중·장기적 기술 개발이 어려운 환경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디지털 성범죄는 여성 대상 범죄나 형사 사건으로만 다룰 수 없다. 수사 기법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정부 회의를 가면 이런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은 똑같은 자원을 투자할 경우 빨리 해결되는 범죄를 수사하지, 수사를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한국은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디지털 기기 보급률이 높다. 피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정부 내 컨트롤타워를 정해 디지털 성범죄, 아니면 이를 사이버 범죄로 확대시켜 수사권이나 예산권 같은 칼을 쥐여줘야 한다.” N번방 피해 지원 김수현 변호사 ―일반 성범죄와 다른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은 무엇인가. “가해자의 익명성과 피해의 영속성이다. 보통 성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면 재기하려는 의지가 생긴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디지털 성범죄는 동영상 유포자를 찾아 처벌해도 일상 회복이 어렵다. 한번 유포가 되면 아무리 지워도 계속 퍼져 나간다. 피해자가 동영상 삭제를 확인하고도 “기억에 남잖아요. 기억을 어떻게 삭제해요”라며 운 적도 있다. ―경찰의 L번방 수사가 지연돼 논란이 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경찰의 초동 수사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자친구의 요구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했는데 그 동영상이 유포됐다. 경찰 수사가 미지근한 사이 가해자는 한강에 휴대전화를 버리고 되레 피해자를 협박했다. 게다가 경찰은 피해자가 동의했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재수사를 해도 기억 안 난다, 물증이 없다 하면 처벌할 수 없어 항고를 포기했다. 가해자를 응징할 수 없게 되면 피해자는 절망과 분노에 빠진다. 도울 길이 없어 너무 괴로웠던 사건이다. L을 놓치면 L번방의 피해자는 같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경찰이 L번방 영상이 유포된 정황이 없다고 하는데…. “L번방은 위장 수사를 막기 위해 가해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추려 회원방을 만들었다. 그 회원방의 최상위방에 L이 있다. 서로 공범이 된 것이다. 금전적 이익 없이, 단지 성욕 충족이 목적이라 보기에는 너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유포는 시간문제라고 본다.” ―L번방에서 드러난 피해자가 7명인데 대부분 미성년자다. “미성년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알리겠다’는 한마디면 굴복한다. 쉽게 범죄 대상이 되는 이유다. 그런데 미성년자의 성범죄 피해 수사의 경우, 이 사실을 반드시 부모에게 알리도록 돼 있다. 합성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던 학생이 수사를 하게 되면 부모님이 알게 될까 봐 신고를 포기했다. 경찰 지침이 바뀌어야 신고가 활발해질 것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미성년 피해자는 부모 동의가 없더라도 영상 삭제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와 상담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무엇인가.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응만 해도 피해자의 고통을 덜 수 있다. 당장 수사 개시가 어렵더라도 피해자 응대 매뉴얼을 만들어 즉각적인 지원체계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 지원단체를 소개해 영상 삭제를 돕거나 심리 상담을 연계할 수 있다. 수사 과정에서 ‘왜 성관계 영상을 촬영했나’ ‘왜 비키니 사진을 공개했나’ 등 피해자 탓을 하는 2차 가해도 없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미비한 것은 아닌가. “법은 충분하다. 형법, 아동복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법, 성폭력범죄처벌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법 등이 혼재된 것이 문제다. 법이 중구난방이면 오히려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생긴다. 비동의 유포죄 해석이 그 예다. 차라리 하나의 법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피해자 지원 시스템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경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전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부교수△마퀴스 후스후(2007∼2008년) 등재△한국정보보호학회 이사△대검찰청 디지털수사 자문위원△방송통신위원회 정보통신망 침해사고민관합동조사단 위원김수현 변호사△사법연수원 45기△법무법인 한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사업이사△n번방 피해자 법률지원단 변호사△경기 디지털성범죄 법률지원단 변호사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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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차례상에 전 안 올려도 돼요”

    ‘추석 차례상은 송편과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이 기본이고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성균관이 추석을 앞두고 차례 음식을 최대 9가지만 올리도록 간소화한 차례상 새 표준안을 발표했다. 차례 음식 가운데 며느리들의 원성이 자자한 전은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동그랑땡 생선전 녹두전 등은 기름 냄새 맡으며 온종일 부쳐야 한다. 허리라도 펼라치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는 고역이다. 심지어 ‘명절 때 조상 덕 보면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없으면 전 부친다’는 시쳇말이 있을 정도다. ▷전 없는 차례상의 근거는 조선시대 예학 사상가인 김장생이 사계전서(沙溪全書)에서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고 쓴 데 있다. 차례상은 조선 후기 양반 경쟁으로 인해 본래 예법과 다르게 호화스럽게 변질됐다는 게 정설이다. 석주 이상룡, 명재 윤증,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제사상은 간소히 차리라’는 지침이 전해 내려온다. 제사상 크기는 가로 99cm, 세로 68cm로 정하고 유과나 전은 올리지 않도록 했다. ▷새 차례상을 반길 법도 한 며느리들이 되레 “그동안 전 부친 게 억울하다”며 성균관을 성토하고 있다. “왜 이제야 발표하나. 지난 명절에 이혼했다” “TV 보며 노는 남자들 밥상 차리는 게 더 열 받는다” “이미 차례 안 지내는 집이 많다”. 가족의 해체와 성평등 문화의 확산 등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비해 성균관의 인식이 뒤처진다는 지적이다. 가족 간 거리 두기가 강제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추석, 설 명절 문화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바뀐 탓도 있다. ▷이제라도 유교 전통문화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성균관의 노력을 폄훼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영갑 성균관 의례정립위원장은 새 차례상 발표에 앞서 “유교가 현대화 과정에서 옛 영화만을 생각하며 선구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명절증후군’ ‘시가와 처가 차별’ 등이 잘못된 의례에서 비롯됐음을 알고서도 관행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차례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의식인데 이로 인해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 불화가 초래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고 나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것, 명절의 본질이다. 고루한 형식에 매몰돼 가족끼리 싸움이 나고 따스한 밥상조차 나누지 못한다면, 그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유서 깊은 종가에선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불합리한 예법은 손질해 집안별로 가가례(家家禮·각 집안의 예법)를 세워 따르면 될 일”이라고 한다. 예법은 시대에 맞게 다시 쓰여야만 그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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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20년 퇴보한 코로나 학력’

    “4학년 학생들의 성적이 2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전역에서 올해 실시된 4학년 대상 전국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이렇게 한마디로 평가했다. 올해 평균 수학 점수(234점)는 1999년 점수, 읽기 점수(215점)는 2004년 점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입이던 2020년에 비해 점수가 수직 하락한 탓이다. 교사와 학생이 차곡차곡 쌓아 온 성취가 팬데믹 기간 동안 사라진 셈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 교실은 파행을 겪어 왔다. 초기에는 아예 학교 문을 닫았다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됐다. 학생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해 가을에야 학교가 문을 열었는데 그동안 누적된 학습 손실이 이번에 수치로 입증된 것이다.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이를 지켜본 부모라면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이기도 하다. 온라인 수업의 집중력은 대면수업에 비할 수 없었고 책읽기와 멀어지니 독해력 자체도 떨어졌다. 교사, 또래와의 상호작용 없는 학습은 그 효과가 현저히 떨어졌다. ▷초등 4학년의 기본 학력은 진학률과 취업률을 예측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한다. 이 시기 학습 손실이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초학력 양극화가 팬데믹 기간을 지나며 더 심각해졌다. 읽기 점수의 경우, 성적이 상위 10%인 학생 점수(2점)보다 성적 하위 10% 학생의 점수(10점)가 5배나 더 떨어졌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이나 경제적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낮은데 이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성적이 높을수록 개인 노트북을 가진 비율, 초고속 인터넷 접속 비율이 높았다는 점도 성적이 온전히 개인적 성취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21년과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고2 학생의 학업성취도평가를 보면 국어 영어 수학 전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일제히 증가했다. 영어는 10명 중 1명, 수학은 6명 중 1명이 기초학력조차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세대’의 학력 저하를 회복하는 데 다시 한 세대가 필요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더욱이 학력 저하는 코로나 세대가 경험한 상실의 일부일 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스크를 쓴 아이들은 언어 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뛰어놀지 못한 아이들은 비만 등에 시달린다. 사회적 단절은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대로 ‘코로나 세대’를 잃어버린 세대로 남겨둘 수는 없다. 이번 평가를 주도한 베벌리 퍼듀 미 국가평가관리위원장은 “4학년 학생들의 학력 저하는 그들의 미래를 위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코로나19만 비난할 수 없다. 더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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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환자 살리려면 의사 쓰러지는 구조… 모두 영웅 될 순 없어”

    《지난달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개두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를 기다리다 사망했다. 이 사건은 한국의료의 민낯을 보여줬다. 누구나 병원에 쉽게 갈 수 있는 의료 강국이지만 정작 위·중증환자는 수술을 받지 못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가 만성적인 전공의(인턴·레지던트)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올해 필수의료과목 전공의 확보율을 보면 소아청소년과가 28.1%로 가장 낮았고 흉부외과 47.9%, 외과 76.1% 순이었다. 최근 끝난 전공의 모집에서는 이른바 서울 빅5 병원도 충원에 실패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수가 인상을 포함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젊은 의사들은 정부가 쉬운 처방만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26, 29일 4명의 전공의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필수의료 기피 해법을 들어봤다.》 ―왜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과목을 기피하는 것인가. 이혜주=수술 받은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할 때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흉부외과를 선택한 이유다. 그런데 레지던트 3년차에 그만두고 1년 정도 쉬고 있다. 각오하고 갔는데도 번아웃(소진)이 왔다. 2박3일 동안 응급상황이 반복돼 라면 한 끼 먹으면서 수술하는 교수님도 봤다. 전공의를 마쳐도 내 삶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없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문제다. 사명감만으로 버티기 힘들다. 여한솔=2019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추석연휴에 당직을 서다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송주한 세브란스병원 중증환자전담의가 과로로 쓰러졌고 최근 가족과 이별했다. 밤을 새우다 죽을 수 있다는 걸 보면 그 분야로는 안 가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의사는 다른 직업보다 도덕성과 사명감이 투철해야 한다. 알지만 모든 의사가 영웅이 될 수는 없다. 강민구=보상체계가 기형적이다. 생명과 직결된 어려운 수술은 할수록 손해가 나고, 미용 같은 쉬운 진료는 보상이 크다. 전반적으로 의료수가가 낮으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할수록 이익이 난다. 누가 수술실을 지키려 하겠나. 이들은 수련 과정의 전반적인 개선 없이 수가 인상만으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의 수익 구조와 전공의를 싼 인력으로 보는 관행, MZ세대(밀레니엄+Z세대)의 가치관 등이 맞물린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련 과정의 어떤 문제가 필수의료 공백을 불러오나. 강민구=수가 인상은 누구나 찬성한다. 보건의료계 전체가 혜택을 보니까. 이보다 앞서 젊은 의사들을 ‘갈아 넣는’ 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술기(術技·수술방법)를 익혀야 하는 전공의들이 교수진의 업무 보조로 바쁘다. 병원은 사실상 최저임금에 이들을 쓰고 있어 추가로 의사를 고용할 동기가 없다. 미국 캐나다 영국처럼 전공의들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병원이 마구 부리지 못하게 하는 거다. 여한솔=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없다. 그런데 병원은 전공의를 교육생이 아니라 싼 의료 인력으로만 본다. 수술을 참관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업무에 시달린다. 진료과목이 지나치게 세분되는 것도 수련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다. 신경외과만 해도 뇌혈관·척추·종양 등으로 세분된다. 수련 과정 동안 이를 다 익힐 수 없다 보니 인턴·레지던트를 마치고 세부 분야를 정해 더 배운다. 서울아산병원만 해도 신경외과 의사가 25명인데 개두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뿐인 것이 비극의 발단이 됐다. ―MZ세대 의사의 등장도 필수의료 기피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데…. 강민구=인턴 경험하고 나면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전공의는 24시간 당직을 서고 다음 날 정상 근무한다.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거다. 정말 1분도 자지 못하는 날이 있다. 이번에 전공의협의회장 선거에서 36시간 연속 근무 개선이 가장 호응이 컸던 공약이다.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과목을 보면 수련을 마쳐도 당직을 계속해야 하는 과들이다. ‘워라밸’은 MZ세대에게 민감한 이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변화하는데 20, 30대 의사만 예외일 수 없다. 그럼에도 업의 본질에 헌신하는 의사가 있다. 이들이 못 버티고 포기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이혜주=신경외과, 흉부외과 같은 바이털과를 지원하는 전공의가 9시 출근, 6시 퇴근까지 바라지 않는다. 이런 바이털과는 수련을 마치면 오히려 근무시간이 늘어난다. 개인의 삶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데 우리 세대에서는 심각한 문제다. 여한솔=요즘 인턴들은 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시키거나, 맡은 일이 아니면 항의를 한다. 환자 돌보는 일이 시간과 업무가 무 자르듯 하기 어려워 우리끼리는 ‘그레이존’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그러니 시스템을 갖추고 야근수당도 챙겨주는 대형병원을 선호한다. 직장 구할 때 대기업 가고 중소기업 안 가는 것과 똑같다. ―정부 정책이 정답이 아니라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여한솔=서울아산병원 사건을 조사한 복지부는 의사들이 휴가와 출장 순번을 잘 조정하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럼 의사가 아파서 비우면 어떻게 되나.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 대형병원 환자 쏠림을 막고 의사 부담을 덜어야 한다. 맹장수술은 어느 병원이든 할 수 있는데 무조건 KTX 타고 대학병원으로 온다. 대학병원은 수가가 낮으니 환자수를 늘려 손해를 벌충하므로 환자를 모두 받는다. 응급실 근무하며 모기 물렸다고 오는 것도 봤다. 사회적 낭비다. 이지후=병원도, 환자도 전공의를 수련 받는 의사라는 인식이 없다. 정부가 수련 과정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병원이 전공의를 업무보조를 하는 인건비 싼 인력으로 대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환자 역시 의사의 서툼과 배움을 용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남자 의대생이 분만을 참관하면 항의를 한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혜주=지금 요양병원에 일한다. 흉부외과 근무할 적보다 근무 시간은 절반, 월급은 3배가 됐다. 형평성에 어긋난 보상체계는 바로잡아야 한다. 환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의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위급 상황에서 심폐소생술(CPR)을 했다가 소송당한 의사도 봤다. 살려놓은 환자가 후유증이 있다고 고소한 건데 그런 일을 당하면 소신껏 진료할 수가 없다.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무너지는 선배들을 보면서 소송에 휘말리기 쉬운 과목은 피하고 싶어지는 거다. ―의사 수를 늘리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여한솔=동네에 병원이 즐비하다. 총량이 문제가 아니라 배분이 왜곡돼 있다. 수도권 큰 병원에는 몰리고, 지방에는 가지 않는다.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으로 몰리고 내·외·산·소는 외면한다. 의사가 늘어나도 이런 구조는 그대로일 거다. 오히려 의사의 과잉 진료로 환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강민구=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의대 증원해도 전문의 배출되는 데 10년 걸린다. 그동안은 이를 방치하겠다는 건지…. 신경외과 전문의 수를 보면 외국과 비교해 적지 않다. 모두 척추치료만 하는 게 문제다. 젊은 의사들의 용기 있는 선택을 돕는 유인 구조를 먼저 만들어 달라. 이들은 10년 뒤를 걱정했다. 앞으로 뇌출혈, 심장병 같은 응급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없고 어린이는 병원을 찾아 원정을 가야 할지 모른다. 정부가 정확한 진단 없는 쉬운 처방만 계속한다면 그 대가는 건강을 위협받는 국민이 치르게 된다는 얘기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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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세입자 구합니다”

    ‘에어컨 무료 설치’ ‘도배 새로 해드림’. 전세 만기가 임박해도 세입자를 찾지 못하는 요즘, 마음을 졸이던 집주인들이 이런 혜택을 내걸고 세입자 모시기에 나섰다. 갱신 계약 시 보증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등장했다. 금리 상승으로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목돈이 필요한 전세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보통 이사는 아이 학교를 옮기거나, 평수를 늘리거나, 교통이 편리한 곳처럼 지금보다 나은 주거 환경을 누리기 위해 한다. 이에 맞춰 전세금을 올려줘야 하기 마련인데 대출 이자가 부담스러워 살고 있는 집에 눌러앉는 현상이 나타났다. ▷신학기면 학군 수요로 북적이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방학 내내 이사하는 집이 뜸했다. 이 단지는 인근 학교와 학원가 프리미엄을 누리려는 세입자가 많다. 그래서 전·월세가 전체 가구의 60%가 넘는데 최근 전·월세 거래가 감소했다. 특히 전세는 6월에 42건이 거래된 후 7월(27건), 8월(15건)뿐이었다. 1억∼2억 원 가격을 낮춘 전세 매물들이 나오고 있고 최근 전용 84m² 전세를 계약하려던 세입자가 계약금 1000만 원을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8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모두 3만4496건으로 2년 전(1만5828건)에 비해 118%나 증가했다. 계약갱신요구권,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법 시행 2년이 되는 이달이면 전셋값 폭등 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깡통전세’ ‘역(逆)전세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전세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 기존 세입자들이 이사를 하고 싶어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건수가 421건, 그 액수가 872억 원으로 역대 최고인 것으로 집계됐다. ▷월세가 전세대출 금리보다 유리해지고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세가 빠르게 반전세·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 중 월세 거래 비중이 51.6%를 차지했다. 월세 거래가 전세 거래를 앞지른 것이다. 두 달 넘게 전세금은 하락하는데 월셋값은 상승하는 전·월세 시장의 디커플링도 계속되고 있다. ▷세입자 품귀 현상은 주택 매매 가격이 하락한 데 따른 당연한 귀결로 전셋값이 정상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세금이 올라도 너무 오른 것이 사실이다. 올해 5월 서울 아파트 전세 평균 가격이 6억3339만 원으로 약 4년 동안 무려 46%나 상승했다. 알뜰살뜰 월급 모으고, 살림한다고 모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세입자로선 전셋값이 오르면 올라서, 전셋값이 내리면 내려서 집 구하기가 어려우니 그게 문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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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해력과 리터러시 [횡설수설/우경임]

    ‘금일 심심한 사과를 드리면서 사흘간 무운을 빈다.’ 인터넷상에선 최근 문해력 논란을 불러일으킨 단어를 조합한 글짓기 놀이가 한창이다. 금일(今日)은 이 단어가 오늘이 아닌 금요일을 뜻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과제를 늦게 제출한 대학생의 사연에서 따온 것이다. 최근에는 ‘마음이 깊고 간절한’을 뜻하는 ‘심심(甚深)한’ 사과가 화제가 됐다. 한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사이트서 오류가 발생하자 이에 대해 주최 측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심심’을 맛이 밋밋하다거나 지루하다는 뜻으로 오독해 다시 항의가 빗발쳤다. ▷지난 광복절 ‘사흘 연휴’를 다룬 기사에는 일부 독자가 기사의 사실이 틀렸다며 비난하는 댓글을 줄줄이 달았다. 3일을 뜻하는 우리말 ‘사흘’을 4일로 이해한 것이다. ‘무운을 빈다’는 지난해 11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에 의해 소환된 단어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의 대선 출마선언을 두고 이 전 대표가 ‘무운을 빈다’고 했더니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인 ‘무운(武運)’을 운이 없다는 ‘무운(無運)’으로 해석한 기사가 보도됐다. ▷표음문자인 한글은 한자를 모르면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더욱이 요즘은 책을 읽지 않으니 문맥상으로 의미를 추론해 익히지도 못한다. 실제 교사들이 문해력이 낮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수학 문제가 길어지면 이해하지 못하고, 영어를 한글로 바꿔 줘도 뜻을 모른다.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일까. 성인 880여 명을 대상으로 복약지도서 임대차계약서 등을 제시한 문해력 테스트를 했더니 평균 점수가 54점이었다는 조사도 있다. ▷청소년은 한자어가, 어르신들은 외국어가 낯설다. 남발되는 외국어는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최근 ‘Pick up’(가져가는 곳) ‘Counter’(계산대) 등 한글 안내 없이 온통 영어만 쓰인 햄버거 매장이 ‘노(NO) 노인존’이라며 논란이 됐다. 번역 없이 영어를 그대로 옮긴 신기술 용어와 ‘최애템’(최고로 아끼는 아이템) ‘킹받네’(열받네)같이 영어와 한글을 섞은 신조어가 많이 쓰이는 것도 어르신들의 문해력을 떨어뜨린다. ▷젊은 세대는 말 그대로 문해력이, 노인 세대는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 같은 이른바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고 이용하는 문해력이 문제다. 고도의 압축 성장에 따른 세대 간 단절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문해력 수준이 높을수록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뿐 아니라 건강 상태가 좋고, 지역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한다. 문해력은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는 자산인 셈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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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주목받는 ‘애그테크’ 일자리

    여름꽃 달리아. 꽃도 화려하고, 꽃말도 예뻐 관상용으로 인기가 있다. 그런데 질병에 취약해 키우기가 쉽지 않다. 경기 고양시 ‘단비농장’ 송준호 대표(42)는 1년 반 넘게 해외논문을 참고로 실험을 반복해 무균주 달리아를 개발했다. 올해는 4000m²까지 농장 규모를 확대해 대량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송 대표는 원래 미술학도였다. 석·박사까지 미술을 전공했지만 교수 임용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과감히 애그테크(AgTech)로 길을 틀었다. ▷애그테크는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을 일컫는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햇빛을, 영양분이 가득한 물이 흙을 대체한다. 더 이상 땅을 일군 자리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 ‘농사짓다’의 정의도 바꾼 셈이다. 4차산업을 만난 농업이 농촌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벗어난 혁신과 성장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온·습도를 자동 조절해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 스마트 장독을 설계한 충북 충주시 ‘금봉산농원’ 조연순 대표(39). 그도 전통 장 사업을 애그테크로 확대하고 있다. 자연 바람과 할머니의 손맛에 기대던 발효 과정을 첨단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전북 익산시에서 농업회사법인 ‘별곡’을 운영 중인 한정민 대표(27)는 연구소에서나 볼 법한 원심분리기를 가동해 쌀겨(미강)에서 단백질을 추출한다. 이를 단백질 보충제나 화장품 원료로 판매한다. 애그테크라는 새로운 기회에 올라탄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성공 스토리다. ▷첨단산업으로서의 농업의 가치도 재평가되고 있다. 2020년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30대 이하 귀농 이유의 첫 번째는 농업의 비전·발전 가능성(39.1%)이었다. 무엇보다도 애그테크 일자리는 MZ세대의 가치관에 부합한다. 제주 서귀포시 귤 농장 ‘귤메달’ 양제현 대표(29)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아버지의 병환 이후 일을 돕다가 ‘뿌린 대로 거두는’ 이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기로 했다. 그는 생산부터 판매까지 책임지는 1인 기업으로 자율성을 갖고 일한다는 점, 직장에 매인 것보다 ‘워라밸’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의 내년 기조연설은 그 역사상 처음으로 농기계 제조사 대표인 존 메이 디어&컴퍼니 최고경영자(CEO)가 맡았다. 미래산업으로 떠오른 애그테크의 성장성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애그테크를 육성하려는 각국의 의지도 강하다. 애그테크에 승부를 거는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그 미래도 밝을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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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왜’가 없는 연금개혁

    윤석열 대통령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던 연금 노동 교육 등 3대 개혁 가운데 연금개혁에 먼저 시동이 걸렸다. 안상훈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이 “지난 정부에서 하지 않고 떠넘겨진 과제가 국민연금 모수개혁”이라며 그 개혁 방향을 언급한 데 이어 보건복지부가 내년 3월까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 재정추계 결과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국회 연금특위의 논의를 토대로 도출한 개혁안이 내년 10월 국회를 통과하면 연금개혁이 마무리된다.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의 숫자를 조정하는 모수개혁을 내년 안에 완수하는 것, 정부가 제시한 연금개혁 방향과 시간표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이 개혁 당사자이자 대상자이다. 그만큼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최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87%)는 데 공감하지만 ‘보험료가 부담 된다’는 응답(66%) 역시 많았다. 연금개혁안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내 연금은 빼고 개혁하라는 저항이 거셀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로드맵만 보면 그 어려운 연금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와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안 수석은 노후에 적절한 소득을 보장하면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지역 간, 세대 간 공정한 시스템을 확립하겠다는 서로 상충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청년 1명이 노인 5명을 부양해야 할지도 모르는 고령사회가 임박했다. 노후 소득 보장과 세대 간 형평성을 양립시킬 묘수는 없다. 그것도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면서 말이다. 기초·퇴직·주택 연금과의 다층 구조 설계나 직역연금과의 통합 같은 구조개혁이라면 모를까, 모수개혁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다. 연금특위는 국회에 설치됐다. 당초 대통령 직속 설치가 공약이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고, 여소야대 국회를 감안해도 이는 개혁 후퇴로 비친다. 대통령이 뒤로 물러서는데 앞장설 관료는 없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과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은 대통령이 직접 고통 분담을 호소하며 국회를 압박했기에 성공했다. 총선을 일 년 앞둔 내년 4월이면 국회 연금특위 활동이 종료된다. 표심을 거스르는 개혁에 국회가 계속 총대를 메겠나. 정부, 경제계, 노동계가 모여 사회적 합의를 한다며 숫자 싸움을 벌이다가 자칫 기초연금 확대나 정년 연장 같은 전리품만 챙기고 헤어질 수도 있다. 지난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편안 4개를 발표했다가 여론이 들끓자 이를 황급히 거둬들였다. 당시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했고 연금개혁은 아예 실종됐다.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정부는 ‘왜’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한지 국민을 설득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살살 개혁할 테니 따라와 달라는 식이나 몇 년 후 기금 소진 같은 숫자로 공포를 부추기는 식으로는 동력을 얻을 수 없다. 국민연금은 산업화로 날로 성장하던 시대에 설계됐다. 기술 발달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하고 합계출산율 0.8명이라는 인구절벽이 닥친 축소사회에는 맞지 않는다. 다음 세대에 홀로 다섯 노인을 부양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를 키우는 데 투자하라고 할 것인가. 평생 안정적인 일자리를 누린 공무원의 노후를 민간이 책임질 것인가, 아니면 공공과 민간의 연금 벽을 허물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인가. 알쏭달쏭한 수사(修辭)를 목표로 제시하는 대신에 당장 욕을 먹더라도 왜 개혁이 필요하고, 왜 고통을 나눠야 하는지 정부가 이야기해야 한다. 모두를 기쁘게 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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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대한제국공사관

    미국 워싱턴 로건서클, 백악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붉은색 건물이 있다. 옛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이다. 이 건물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에서 열강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던 1891년. 고종은 특명을 내려 미 국무부 차관의 소유였던 이 건물을 2만5000달러를 들여 매입했다. 1910년 강제병합 직후 일제는 이 건물을 5달러에 빼앗았다. 되찾아오기까지는 102년이 걸렸다. 2012년에야 민관이 힘을 합쳐 이 건물을 다시 사들였고, 6년 뒤 원형대로 복원해서 개관했다. ▷1888년 1월 박정양 주미 공사는 백악관서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국서를 전달했다. 이때 박 공사는 청나라가 요구했던 영약삼단((령,영)約三端·세 가지 별도 약정이라는 뜻)을 어기고 청나라 공사를 배석시키지 않았다. 자주독립 국가로서 당당히 외교권을 행사한 것이다. 박 공사는 미행일기(美行日記)에서 “미국은 민주국으로 예절이 퍽 간편하다”며 세 번의 절 대신 악수로 인사를 나눴던 미 대통령과의 만남을 기록했다. ▷자주외교의 길을 모색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대한제국공사관 6곳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과 함께 일제히 폐쇄됐다. 주미 공사관을 제외하고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청) 일본 등 해외에 설치됐던 공사관들은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905년 5월 런던의 주영 공사관에서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외교관이었던 이한응 열사가 일제의 주권 침탈에 항거하며 31세 나이로 자결했다. 이 사실이 고국에 보도돼 항일운동에 불을 댕겼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자리에는 임대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1905년 12월 주청 공사관의 마지막 보고는 “한국의 일체 외교 교섭 사무는 일본 외무성이 담당한다고 한다”며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훈시를 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베이징 톈안먼 동쪽 둥자오민샹(東交民巷)에 있던 주청 공사관 건물은 1915년 철거됐다. 설치 기간이 가장 오랜 주일 공사관 터는 옛 주소와 과거 사진이 남아 있지만 그 위치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 재외공관은 대사관 116곳을 포함해 모두 167곳이다. 청나라 허락을 받아 공사를 파견하고 일제에 의해 재외공관이 한순간에 폐쇄됐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대한제국공사관의 실태를 조사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조선이 자주국가임을 널리 알리고 근대화를 모색하는 한편으로 외교활동의 거점이 됐던 곳”이라며 “기초 고증연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망국의 위기에도 주권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던 역사를 기억 속에 남겨야 한다는 제안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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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광장 재개장[횡설수설/우경임]

    도로 한가운데 텅 빈 섬 같았던 광화문광장이 나무가 늘어선 공원으로 단장하고 내일 재개장한다.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옮기는 대신 면적이 두 배(4만300m²)로 늘어났다. 212m 길이 역사물길과 분수를 만들고 그 주변에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자리를 배치했다. 역사성을 되살리는 데도 공을 들였다. 조선시대 사헌부 터와 배수로 등 발굴된 유구, 궁궐 앞 넓은 단을 뜻하는 월대를 원형대로 복원한다. ▷광화문 앞길은 조선시대에 육조(六曹)가 도열해 있던 거리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들이 광화문으로 뛰쳐나와 거리를 가득 메우기 전까지는 광화문의 주인은 시민이라 할 수 없었다. 월드컵 응원을 계기로 시민들은 광화문에 모여 응집된 에너지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2008년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까지 광화문에서는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이때 광장민주주의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2009년 서울시는 세종로 차선을 줄여 광화문광장을 조성했다. 시민들의 공간으로 돌려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이 평온하게 일상을 누리는 곳이 아니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집회의 장소였고, 광화문 일대는 1인 시위부터 트럭, 천막시위까지 잦은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서울시는 이번에 광화문광장을 재개장하면서 소음이 발생하거나 통행을 방해할 수 있는 집회·시위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앞으로 광장 북측 육조마당과 세종대왕 앞 놀이마당 등 2곳 광장의 사용 신청을 받게 되는데 엄격한 심사로 집회나 시위로 변질될 행사는 애초부터 걸러낸다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도시일수록 자연을 불러와 시민들이 쉴 공간을 만든다. 프랑스 파리시는 2024년까지 드골광장에서 시작되는 샹젤리제 거리를 광화문광장처럼 나무가 울창한 산책로로 재조성하고 있다. 걷기 쉽게 거리도 다시 포장하고 횡단보도도 재배치한다. 명품 브랜드 상점이 즐비한 상업화된 공간이 되자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마찬가지로 경복궁∼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역사적·지리적 중심 거리도 시민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개선돼야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광화문이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순간만이 광화문의 의미는 아니다. 매일 출퇴근하는 시민, 손을 잡고 거닐던 연인, 아이와 나들이로 즐거웠던 부모…. 서울시민 중 광화문과 연결된 이런 추억 하나쯤 갖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광화문이 정말 시민의 공간이라면 소리치고 투쟁하는 공간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모두의 공간이어야 한다. 광화문광장이 공원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그래서 반갑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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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남남끼리 가족

    결혼과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더라도 함께 산다면 가족일까, 아닐까. 남남이지만 함께 주거를 하면서 경제 단위로 기능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친족이 아닌 가족을 꾸린 인구가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가족의 정의가 도전받고 있다. ▷1인 가구는 지난해 전체 가구의 33%를 돌파해 20년 만에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비(非)친족 가족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 1인 가구는 학업과 직장, 이혼과 사별 등 선택의 여지없이 혼자 살게 된 비율이 높다. ‘혼자 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1인 가구를 택한 비율은 1인 가구가 된 전체 원인 중 16.2%에 불과하다(통계청, 2021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외로움도 덜 수 있고, 규모의 경제도 가능하니 1인 가구로서는 동거가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비혼 남녀나 동성 친구끼리 같이 살거나, 어르신끼리 서로 돌보며 노후를 보낸다. 공유주택같이 공간만 합쳐 사는 경우도 있다. ▷동거인이 결혼한 배우자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실태조사 결과도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동거인에게 만족한다는 비율은 63%였는데, 이는 배우자 만족도(57%)보다 6%포인트 높은 것이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 현실이란 얘기다. 아무래도 가족 관계에서 오는 책임이나 의무에서 비켜나 있고, 남남이다 보니 개인을 보다 존중하게 돼 갈등이 덜하다고 한다. ▷우리 사회 인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국민 10명 중 7명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데 동의했다(여성가족부, 2020년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그러나 법으로 정한 가족의 정의가 협소하다 보니 비친족 가족은 청년대출, 신혼부부청약, 아동수당 등 각종 제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1인 가구가 소득은 낮고 의료비 지출은 많은데도 소외돼 있는 것이다. 누구를 가족으로 볼 것인가를 합의하는 데 진통이 따르겠지만 언제까지 이들을 제도권 밖에 둘 수는 없다. ▷40대 들어 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경험담을 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작가 김하나, 황선우 씨.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보통의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빨래 개기 같은 가사 분담으로 티격태격하고, 집값 대출을 갚기 위해 고민한다. 이들은 결혼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전제 아래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시절을 서로 보살피며 의지가 된다면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러고는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어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세태를 생각하면 더욱 귀담아들을 말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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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제안 톱10’ 논란 [횡설수설/우경임]

    ‘가요 톱10도 아니고….’ 국민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대통령실이 공개한 국민제안 톱10. 그런데 열흘간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국민투표를 당장 중단하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국민제안 톱10은 대통령실이 지난달 신설한 소통 창구인 국민제안에 올라온 약 1만2000건의 청원 중에 10개를 추려 온라인 국민투표에 부친 것이다. 현재 ‘대형마트 의무 휴업 폐지’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고 있다. 이어 ‘9900원 K-교통패스 도입’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등의 순서다. ▷문제는 국민제안 톱10이 이른바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기투표라는 데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배너를 예로 들면, ‘현재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지역·업종별로 차등 적용’, 달랑 이 한 줄의 설명과 함께 ‘본 제안이 마음에 드시면 하단의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라고 되어 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지역과 업종은 어떻게 분류되는지 같은 기본적인 판단의 근거는 제공되지 않는다. 물론 ‘싫어요’를 선택할 수도 없다. 댓글 같은 공론의 장도 열려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지난 정부의 국민청원이 오히려 세대·이념·젠더 갈등을 촉발했다는 문제의식 아래 국민제안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청원 내용과 청원자를 공개하면 국민청원이고, 이를 비공개하면 국민제안이라는 설명이다. 사실상 같은 제도다. 국민청원 당시에도 정부와 국회의 갈등 조정 과정이 생략된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한 줄짜리 설명과 인기투표로 진행되는 국민제안도 이런 우려를 피해 갈 수 없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관련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 참여합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소상공인들이 모인 카페마다 국민제안 순위를 올리자는 독려 글이 올라오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집단행동에 맞서 아르바이트생들은 “지금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제안이 오히려 양측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인기투표로 정책을 결정하면 갈등이 조정되기보다 증폭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계가 달리거나 건강이 달린, 누군가에게는 삶이 송두리째 바뀔지도 모를 정책들을 온라인 인기투표로 결정한다는 그 발상에도 한숨이 나오지만, 온라인 투표 과정 자체도 허술하다. 이해관계로 뭉친 단체들이 조작 투표를 해도, 한 사람이 기기를 바꿔 여러 차례 투표를 해도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렇게 수렴된 국민 의견이 어떤 대표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바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하니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비판이 나온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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