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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woohaha@donga.com

취재분야

2024-03-27~2024-04-26
칼럼67%
보건13%
사회일반10%
건강10%
  • [횡설수설/우경임]생활지도교사 ‘구인난’

    “야, 학주(학생주임) 떴다.” 학생주임이 막강한 권력자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등굣길 학생주임 앞을 지나는 학생들 사이에선 쫄깃한 긴장감이 흘렀다. 남고생은 스포츠형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밖으로 삐져나오면 안 됐다. 여고생은 귀밑머리 3cm, 앞가르마, 치마 길이… ‘걸면 걸리는’ 규칙들이라 그저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남고에서는 “엎드려뻗쳐”라는 고함과 함께 ‘퍽퍽’ 엉덩이 맞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과 후나 주말 극장 앞에서도 학생주임의 매서운 눈은 번득였다. 학생들은 토끼들이 하늘의 매를 살피듯 학생주임이 떴는지를 살폈다. 때로는 거친 말을 퍼붓고 출석부로 머리를 쥐어박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학생들의 앞날을 걱정해주는 학생주임 교사도 많았다. 그래서 기성세대에겐 중고교 시절 더더욱 잊기 힘든 기억의 한 단편이다. 그랬던 학생주임이 요즘은 권위주의 색채를 벗어버린 생활지도교사로 통칭되는데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지난해 5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가장 기피하는 보직으로 생활지도부장을 꼽았다. 경력교사들이 손사래를 치니 학교 내 약자인 기간제 교사나 신입 교사에게 생활지도를 맡기는 일이 빈번하다. 생활지도교사가 담당하는 업무인 학교폭력, 생활지도 등은 공문은 산더미처럼 쌓이고 학부모 민원은 폭주하는 일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라도 한번 열리면 교사들은 거의 수업을 포기해야 될 정도다. 학폭위 결과가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주다 보니 학부모들은 교사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한다. 생활지도에 열심히 나섰다가 오히려 학생·학부모 교원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 학생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교사가 생활지도를 할 수단이 마땅치 않게 됐다. 교사의 역할이라면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인데, 이제 생활지도를 학교 내 다른 직군에 맡겨 달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학생주임을 피해 다니던 시절, 학생들은 늘 학교를 탈출하는 꿈을 꿨다. 이제는 교사가 학생과 직접 부딪치는 일을 피한다. 이런 학교에서 교사가 행복할 리 없다. 학생이 행복할 리도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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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동아마라톤 90회

    1931년 3월 21일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맨 14명의 선수가 광화문과 영등포를 왕복하며 22.530km를 달렸다. ‘하프코스’로 시작된 첫 동아마라톤대회 우승자는 양정고보 재학생인 김은배. 이듬해 김 선수는 한국인 최초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해 6위를 한다. 김 선수는 당시 동아일보에 ‘올림픽촌에서’를 기고했는데, ‘선중의 뱃멀미가 아직 낫지 못해 연습 중에 뇌빈혈을 일으켰다. 운동장이 삥삥 돌아가는 것 같다’라고 썼다. 가난하고 힘없는 식민지 청년의 ‘무한도전’은 온 겨레에 희망을 줬다. ▷국제대회 가운데 보스턴 마라톤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동아마라톤은 근현대사 굽이굽이마다 ‘다시 달리자’라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제2, 3회 대회에서 입상한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썼다. 비록 일본 선수로 출전했어도 반드시 ‘손긔졍’ ‘KOREAN’이라고 사인했다. 손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을 당하는 등 언론 탄압이 심해지면서 동아마라톤은 13년간 중단됐다. 동아마라톤이 부활한 1954년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오뚝이처럼 일어서려던 때였다. ▷그 후 매년 열린 동아마라톤은 사회 발전과 더불어 계속 업그레이드됐다. 1982년부터 국제대회로 거듭났고, 1990년대에는 황영조 이봉주 선수를 배출해 ‘올림픽 영웅’의 산실이 됐다. 2000년대에는 뉴욕, 보스턴, 런던 마라톤과 겨루는 국제대회로 성장했고 지난해까지 한국 최고기록을 21번이나 갈아 치웠다. ▷마라톤은 인생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사회와 경제가 팍팍해도 달리는 이들은 줄지 않는다. 동아마라톤 참가자가 1만 명을 처음 돌파한 해는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이었다. 건강과 성취감이라는 마라톤의 매력이 알려지며 ‘2030 여풍’도 거세지고 있다. 다음 달 17일 제90회 동아마라톤에는 역대 최고인 3만8500명이 참여하는데 마스터스 참가자 중 여성이 25%다. 특히 20, 30대 여성 참여율이 지난해보다 각각 64%, 20% 늘었다. 기운 잃은 경제, 답답한 정치…. 미래를 걱정하는 한숨이 들리지만 지난 시절 그래 왔듯이, 우리는 다시 달릴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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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교권침해 보험

    제주 A초교에선 학부모 1명이 지난 한 해 동안 100여 건의 민원과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처리 결과에 불복해 교육청, 국민신문고 등 행정기관마다 민원을 제기했다. 학교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반복했고 교장, 교감, 담임·보건교사뿐 아니라 동문회장까지 직권남용, 아동학대 등으로 고소했다. 학교 업무는 마비될 지경이었고, 해당 교사는 줄줄이 병가를 가거나 전보를 신청했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지만 교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결코 드물지 않다. ▷학생 지도 중에 발생한 사고로 인해 소송을 당한 교사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는다. 교사보험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전국 시도교육청 17곳 중 11곳은 단체로 교사보험에 가입했고, 나머지 교육청도 예산 확보에 나섰다. 지난해 4월에는 기존 법률비용보험에 교권침해 피해 특약을 추가한 보험까지 출시됐다. 변호사 비용만 지원하는 기존 보험과 달리 교권침해로 판명되면 최대 300만 원까지 정신적 신체적 피해 보상을 해준다. 지난달까지 1579명이 가입했다. ‘그래도 교육자인데…’라며 학생·학부모와의 갈등을 쉬쉬하던 교사들도 폭행 폭언, 성희롱이 빈발하자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자괴감을 느끼고 교단을 떠나는 교사도 늘고 있다. 이달 명예퇴직을 하는 초중고교 교사가 6039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교사들은 개학 직전 명퇴를 하는데 지난해 2월, 8월 명예퇴직 교사 수를 합친 것(6143명)만큼 많다. 서울 강남 B초교 교장은 “요즘 학부모는 교사에게 ‘자녀 맞춤형 서비스’를 기대한다. 학부모와 심한 갈등을 겪고 나면 신입 교사는 병가를, 나이 든 교사는 명퇴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비해 위험을 분산시킨 제도가 보험이다. 언제 소송에 휘말릴지 몰라 보험이 출시될 만큼 사제(師弟) 간 불신은 커졌다. 학생 지도는 위험해서 서로 기피하는 업무가 됐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노래를 부르며 자랐을 세대들은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운 소식이다. 기둥도 기울고, 서까래도 썩은 채 간신히 버티고 선 우리 교육의 단면일 터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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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존엄한 이별’

    2010년 1월 10일 세브란스병원에서 78세 김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폐암 검사를 받다 회복 불능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 상태가 된 지 거의 2년 만이었고, 대법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판결을 받은 뒤 201일 만이었다. 이를 계기로 촉발된 존엄사 논의는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리나라는 소극적 의미의 존엄사만 허용한다.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 등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약물의 도움을 받는 적극적 의미의 안락사와는 다르다. 지난 1년 동안 연명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가 3만5839명,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11만4147명이다. ‘죽을 권리’를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었으나 죽음이란 단어 자체를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끼리 이를 대놓고 이야기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죽는 게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다. 이 세상 즐겁게 살다가 이제 당신들과 작별할 때가 왔다. 그동안 날 사랑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싶다.’ 얼마 전 가까운 가족과 친구를 초대해 축제 같은 생전장례식을 연 암환자 김병국 씨(86)가 쓴 글이다. 모든 생명의 끝자락에는 소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죽음을 당당히 마주할 때 삶은 더 찬란해진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해지는 것은 덤이다. ▷네덜란드 ‘앰뷸런스 소원재단’은 죽음을 앞둔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죽음이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이들의 소원은 하나같이 소박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고향에 가 보기, 손자와 놀러가기 등….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이들의 소망, 그건 특별하고 화려한 추억의 재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가장 간절하고 그리운 순간은 우리가 무심하게 보내는 일상이었다. 명절을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소회야 모두 다를 테지만, 새삼 기억해야겠다. 가족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들이 훗날 우리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삶의 한 순간이 될 것임을.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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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홍역의 역습

    ‘여항간(閭巷間)에 어린아이가 드물었고, 외방(外方)에선 온 집안이 몰사(沒死)한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니, 실로 혹심한 재앙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숙종 33년(1707년) 평안도에 홍역이 창궐해 1만 명 하고도,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국내서 백신 접종이 시작된 1965년 이전만 해도 홍역은 고열과 함께 열꽃이 피다 때론 생명까지 앗아가는 공포의 감염병이었다. ▷우리나라는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홍역퇴치국가로 인증받았다. 1983년부터 국가예방접종으로 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백신이 보급돼 발병이 줄어들었으나 돌연 2000∼2001년 5만여 명이 걸릴 정도로 창궐했다. 정부는 초중고교생 580만 명에게 긴급 예방접종을 했고 이후 예방접종률이 98%까지 올라 ‘한국형 바이러스’는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한 달 새 전국적으로 홍역환자가 30명(21일 기준)이나 발생했다. 보건당국은 해외여행을 통해 바이러스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20대 중반∼30대가 주로 걸리는 것도 과거와 다른 양상이다. 1996년까지는 1회만 접종을 해서 항체보유율이 낮은 게 원인으로 보인다. ▷백신으로 예방 가능해 후진국형 질병으로 분류되는 홍역의 귀환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발병건수가 세계적으로 30%나 증가했다.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C)에 따르면 2017년 11월∼2018년 10월 유럽 30개국의 홍역환자는 1만3144명이고 37명이 사망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국들도 그야말로 홍역을 앓고 있다. WHO는 2000년대 백신에 대한 불신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확산돼 예방접종률이 떨어진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20년 전 의학저널 랜싯(The Lancet)에 MMR 백신이 자폐증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리면서 ‘안티 백신’ 및 자연면역 운동이 촉발됐다. 연구자가 샘플을 선별하고 뒷돈을 받은 사실이 2010년 드러나 논문이 철회됐지만 여진이 상당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간이 승기를 잡은 것은 천연두 백신 개발 이후인 220년 남짓이다. 하지만 이미 정복한 걸로 여겼던 홍역이 잠깐의 소홀함을 틈타 역습에 나섰다. 더 강해진 바이러스에 대비할 때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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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선생님과 ‘쌤’

    초등 5학년인 아이는 국어 ‘언어 예절과 됨됨이’ 단원 수업에서 ‘샘(쌤)’ ‘헐’ 등을 예절에 어긋난 말로 배웠다. 그런데 ‘쌤’이 선생님을 대체할 호칭이 될지도 모르겠다. 8일 서울시교육청이 조직문화 혁신방안으로 직급이나 직위로 부르는 대신 ‘쌤’ ‘님’으로 호칭을 통일하겠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조희연 쌤’, 김철수 교장선생님은 ‘김철수 님’으로 부르는 식이다. 교권 추락을 우려한 교사들의 반발이 확산됐고 조 교육감은 “교직원들끼리만 적용하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선생님을 부르는 말인 ‘쌤’은 ‘선생님’에서 각각 한 글자씩(ㅅ, ㅐ, ㅁ) 따서 축약한 ‘샘’의 된소리쯤 된다. 2000년대 인터넷서 은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생활 속에서 준말처럼 널리 쓰인다. ‘쌤예∼’ 하던 대구 사투리에서 비롯된 것이란 주장도 있으나 국립국어원은 ‘쌤’을 표준어로도, 방언으로도, 신조어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선생님을 낮춰 부르는 호칭으로 알려져서다.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선생님은 제자가 스승에게 쓸 수 있는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존경의 말”이라며 “교사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교육당국이 무너뜨리고 있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는 “교권침해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선생님이란 호칭에 마지막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스승이란 말은 희귀해졌고, 다른 많은 직업 종사자들에게도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쓰니 본래 뜻이 희석됐다. 이제는 아예 ‘쌤’이라 부르라니 교사들이 교권 추락을 실감할 만도 하다. ▷학생이 ‘쌤∼’ 부르며 달려와 인사를 하고, 이를 친근함의 표현으로 보는 선생님도 있다. 다만 서로 돈독한 신뢰가 쌓였을 때라는 전제 아래서다. 더욱이 교사가 절대 권위를 갖고 군림하던 1970, 80년대처럼 사제 관계가 위계적인 시대도 아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부르게 해 달라’는 청원 글이 여럿 올라왔다. 그중 ‘교실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기간제쌈(ssam)이라 합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교실은 이미 이렇게 바뀌었다. 현장과 괴리된 혁신으로 교실을 실험해선 안 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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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바르게 살다 가서 고맙다”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희생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아들아, 바르게 살다 가 줘서 고맙다.” 납골(봉안)공원에 함께 있던 가족과 동료들은 오열했다. 단장(斷腸)의 고통에 빗대는 자식 잃은 슬픔을 삼키면서도 어머니는 누구를 원망하는 대신 아들의 삶에 감사했다. ▷어머니는 ‘남보다 잘 살아라’가 아닌 ‘바르게 살아라’라고 가르쳤다. 아들은 삶으로, 또 죽음으로 이를 실천했다.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은 임 교수가 평소 환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던 ‘좋은 의사’였다고 했다. 예약 없이 불쑥 찾아온 환자를 진료시간이 지났는데도 거절하지 않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장례식장에는 그를 추모하는 환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동료 의사들은 “이렇게 환자가 많이 찾는 의사 장례식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생명이 위급한 순간에도 두 번이나 멈칫한 채 뒤를 돌아보며 “도망쳐” “신고해”를 외쳐 주변 사람들을 구했다. ▷유족들의 의연한 태도에도 숙연해진다. 임 교수의 죽음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정신적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이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유족의 뜻’이라고 밝혔다. 하마터면 정신질환자의 일탈로 귀결될 뻔한 사회적 논의의 방향이 발전적으로 바뀌었다. 조의금은 병원과 학회에 기부해 이들의 치료를 돕는 데 쓰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사회적 의미로 확장시킨 것이다. ▷유족들은 6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감사의 글’을 보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없는 치료와 사회적 지원을 재차 당부했다. 참척(慘慽)의 고통 속에서도 ‘감사’를 말할 수 있는 유족들로 인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유족들은 고인에게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주위를 살펴봐 줘서 고마워요. 그 덕분에 우리가 살았어요.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뜻 잊지 않을게요”라며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가 고인의 유지(遺志)였다. 내 자식만 바라보는 부모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버둥대는 우리에게 고인과 유족이 남긴 울림이 메아리처럼 퍼져 나간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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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美 공무원 임금 동결

    “급여를 안 주더니 이번엔 약간 오른 (2019년) 급여를 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2019년도 연방공무원 임금을 동결시킨 데 대해 전미재무공무원노조(NTEU) 회장이 울분을 토했다. 미 공무원들은 현재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폐쇄)으로 급여를 받지 못해 월세와 카드 값을 걱정하는 처지다. 그런데 예고됐던 임금 인상조차 취소됐으니 분통이 터질 만하다. ▷게다가 미 인사관리처(OPM)는 공식 트위터에 ‘나는 급여가 깎인 연방공무원이다. 페인트칠이나 목공수리를 할 테니 임대료를 내려 달라’ 등 집주인과 월세 인하를 상의할 수 있는 샘플 서한을 올렸다. ‘만약 법적인 조언이 필요하면 개인 변호사와 상의하라’는 조언을 덧붙였는데 “월급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변호사 비용을 대느냐”는 비판 트윗이 줄줄이 달렸다. ▷이번 행정명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가로막은 민주당을 압박하기 위해 꺼내든 ‘패’다. 공무원 임금을 인상하려면 민주당이 이를 반영한 예산안 협상에 나서야 한다. 취임 이후 ‘효율적인 정부’를 강조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신념과도 맞닿은 조치다. 기업인 출신인 그는 재정 적자에도 임금이 올라가고, 성과에 따른 배분도 아닌 공무원 임금 체계를 납득할 수 없었을 터다. 지난해 1월 연두교서에서 “장관이 성과를 낸 공무원은 보상하고 공공이익을 해친 공무원은 해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한 적도 있다. ▷미국 공무원에 비해 한국 공무원은 사정이 조금 낫다. 어제 인사혁신처는 올해 공무원 보수가 1.8% 오른다면서 2014년(1.7%)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라고 강조했다. 근로자는 회사가 어려우면 월급이 깎이거나 심지어 일자리를 잃는다. ‘5년 새 가장 낮은 인상률’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인 국민은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고용대란과 자영업 위기에 처한 국민 가운데 공무원 임금을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다.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2급 이상 공무원은 인상분을 반납한다”고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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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타미플루

    2009년 5월 우리나라에 신종인플루엔자(H1N1)가 상륙했다. 멕시코를 방문했던 수녀가 첫 확진 환자였다. 치료약은 스위스 로슈사의 타미플루. 신종플루 공포가 커지면서 병원마다 처방 요구가 빗발쳤고 귀하디귀한 약이 됐다. 인구 5%가 투약할 양밖에 비축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비상이 걸렸다. 바이러스 활동이 활발해지는 추운 계절을 앞둔 그해 8월, 다급한 정부가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을 백신과 치료약을 구매하기 위해 유럽 다국적 제약사에 급파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신종플루 창궐은 타미플루가 연간 2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가 되는 계기가 됐다. 1996년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시스가 개발한 타미플루는 스위스 로슈사가 특허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와 제약회사의 결탁설이 돌기도 했다. 여느 계절독감보다 사망률이 낮았던 신종플루에 대해 2009년 WHO가 대유행(Pandemic)을 선언하면서 제약사는 세계적으로 대박이 터졌다. ▷22일 독감에 걸려 타미플루를 복용한 여자 중학생이 아파트 12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환각 증세를 보였다는데 타미플루는 연간 200건 안팎의 부작용이 신고된다. 이 가운데 섬망, 환각 같은 신경정신적 이상반응은 2014년부터 12건이 보고됐다. 앞서 추락사고가 2건 더 있었다. 2009년 남자 중학생이 “환청이 들렸다”며 아파트 6층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쳤고 2011년에도 열한 살짜리 남자 초등생이 추락사했다. ▷신경정신계 이상 반응은 아직 뇌 발달이 끝나지 않은 아동·청소년에게 주로 나타난다. 뇌를 보호하는 세포막인 혈뇌장벽이 독감 염증으로 손상되면 약 성분이 침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이 제기됐으나 과학적인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10대에게 타미플루 처방을 금지했던 일본도 8월부터 처방을 재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부작용은 드물고 일시적이므로 약을 먹인 뒤 아이를 혼자 두지 말고 유심히 관찰하라고 권고했다. 면역력 약한 아이들이 독감 치료를 중단하면 자칫 치명적인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부모들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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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남녀 평등 115위

    요즘엔 “딸을 고대했는데 아들”이라며 서운함을 비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뜻하는 출생성비는 1990년 116.5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2000년 110.1명을 찍고는 줄곧 떨어져 지난해 106.3명이었다. 뿌리 깊던 남아선호사상이 이처럼 빠르게 바뀔 줄이야. 아들이 부모를 봉양하는 시대가 끝나서겠지만 그래도 부모가 딸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는다면 낳기를 주저할 것이다. 여아 선호에는 딸이 엄마보다는 차별받지 않을 것이고, 아들만큼 행복할 것이란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어긋나는 성평등 지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하위권을 맴도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별격차지수(GGI)다. 올해 149개국 중 115위. 1에 가까울수록 남녀 간 사회·경제적 격차가 적은데 우리나라는 0.657로 중국(0.673·103위), 일본(0.662·110위)보다 낮다. 뒤로는 아프리카, 아랍 국가들뿐이다. 석 달 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성불평등지수(GII) 10위와도 격차가 크다. ▷두 지수 간 차이는 구성하는 지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성불평등지수는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모성 사망비율, 중고교 진학률 등에 주목했고, 성별격차지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전제로 남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여성 고위직 비율, 남녀 임금 격차 등을 살핀 선진국형 지수다. 우리나라 성평등 상황은 개발도상국 단계를 졸업한 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고, 형식적인 평등은 이뤘지만 실질적인 평등이 필요하다고 해석하면 정확할 것 같다. ▷일상에서 이런 괴리를 겪는 여성들이 더는 못 참고 올해 미투(#MeToo) 운동을 분출시켰다. 미투 운동은 미처 자각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모른 척했던 성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깨우면서 우리 사회를 한발 더 전진시켰다. 이처럼 실질적인 평등으로 나아갈 시기에 남성혐오, 여성혐오 같은 성대결로 사회적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 안타깝다. 남녀가 번지수를 잘못 알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어서다. 혐오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희생양을 찾을 때 널리 퍼진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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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오전 9시 늦은 등교

    미국 학교는 카운티마다 등교시간이 다르다. 미국에서 1년간 머문 적이 있는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오전 8시면 수업을 시작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오전 7시 10분 스쿨버스를 태웠다. 너무 이르다 싶었지만 맞벌이 부모가 아이를 혼자 두고 출근해선 안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중고교의 평균 등교시간은 오전 8시 7분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청소년의 생체리듬을 고려해 학교 등교시간을 8시 30분 이후로 권고하고 있다. 10대 청소년의 뇌는 호르몬 영향으로 ‘올빼미형’으로 변한다. 그래서 등교시간을 늦추자는 움직임이 활발한 모양이다. 시애틀은 지난해 중고교생 등교시간을 오전 8시 45분으로 1시간가량 늦춘 사례다. 최근 미 공영라디오 NPR는 시애틀 고교생의 수면시간이 35분 늘어났고 출석률도, 생물 성적도 올라갔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2014년 취임 직후, 경기도 초중고교 오전 9시 등교 정책을 들고나왔다. 갑작스러운 시행으로 사회적 논란이 컸지만 현재 경기 초중고교는 거의 100% 오전 9시 등교를 한다. 그런데 9시 등교의 효과가 미국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9시 등교 시행 전과 후의 중1 학생을 비교한 지난해 ‘교육행정학연구’에 실린 논문을 보면 긍정적, 부정적 효과가 병존했다. 9시 등교 시행 이후 학생이 시행 이전의 학생보다 자기효능감은 높고, 자살충동은 줄었다. 반면 아침식사는 더 거르고, 영어와 수학 성적은 떨어졌다. ▷나라마다 사회적 여건에 맞춰 등교시간이 정해진다. 영국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 등도 등교시간은 대체로 오전 8시∼8시 30분이다. 그 대신 초등생은 시간표에 낮잠시간을 넣고, 스스로 과목을 선택해 듣는 고교생의 등교시간은 들쑥날쑥하다. 미국 역시 스쿨버스 재원 문제, 부모들의 출근시간 조정 때문에 오전 9시 등교 정착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도 초교와 달리 중고교 9시 등교는 경기도 밖으로 좀처럼 확산되지 않는다. 아침밥도 먹이고, 잠도 재우고 싶지만 등교시간만 달랑 바꿔서는 될 일이 아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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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非婚족

    9월 혼인건수 1만4300건. 1981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산파업에 이어 결혼파업이라 부를 만하다. 육아 부담에 출산을 꺼리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은 옛말이고 아예 결혼조차 하지 않는 ‘비혼족(非婚族)’이 크게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출산율이 미미하므로 이대로라면 올해 0명대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이 반등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혼을 안 한 상태인 미혼(未婚)과 달리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990년대 후반 비혼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여성에게 불합리한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자발적인 선택의 의미가 강했다. 결혼하지 않는 남녀가 늘어난 요즘에는 비혼이 미혼을 대체한 보편적인 용어로 쓰인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 변화가 기저에 깔려 있을 테지만, 각종 조사에서 비혼인 이유로 경제적인 부담이 첫손에 꼽힌다.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부부는 저서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에서 전통적인 규범이 무너진 근대사회에서 파편으로 남겨진 개인이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기 위해 공동체를 꾸리게 되는데, 그것이 낭만적 사랑을 통해 결합한 부부라고 봤다. 그런데 울리히 벡이 “특별한 위험사회”라고 했던 우리나라에서 청년들이 결혼이라는 안식처 마련을 포기하고 있다. ▷‘비혼족’ 증가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 청년들의 집단 파업에 가깝다. 취업 주거 육아 등 결혼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호소다. 이런 얽히고설킨 구조적인 문제들은 당장 해결이 어렵다. 먼저 결혼과 출산을 한 쌍이 아닌 각각 별개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건 우리 사회가 그 아이들을 귀하게 길러내야 한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서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는 비율은 56.4%,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출산할 수 있다’는 비율은 30.3%에 달할 만큼 사회는 변화했다. 비혼과 동거 커플, 그리고 그 자녀들을 차별하는 제도들을 손볼 때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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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삼한사미

    ‘하루 저녁은 바람이 몹시 불고 그 이튿날 새벽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려 쌓였다. … 그 다음 날부터는 며칠 동안 날이 풀려 꽤 따뜻했다.’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에는 우리나라 겨울 날씨 특징인 삼한사온(三寒四溫)이 가난한 화수분 가족의 비극을 묘사하는 장치로 여러 번 등장한다. 추위가 풀렸는데도 행랑아범 화수분이 돌아오지 않자 행랑어멈이 찾으러 떠나는 식으로다. ▷미세먼지가 극성인 요즘엔 삼한사온에 빗대서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 불청객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고기압 발달로 바람이 세게 불면 미세먼지가 밀려갔다가 바람이 약해지면 한반도 상공에 정체돼 나타난다. 지난겨울 초미세먼지(PM2.5)가 ‘나쁨’(m³당 36μg 이상)일 때 일평균 기온은 1.3도였다. 미세먼지에 중국 내몽골 부근에서 발원한 황사까지 겹친 그제도 전국은 하루 종일 영상이었다. 추우면 추워서 걱정, 포근하면 포근한 대로 걱정거리가 생겼다. ▷한반도 대기오염에 중국발 요인이 큰 몫을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에서도 23∼26일 수도권과 중부 지역에서 스모그와 황사가 덮쳐 올겨울 최악의 대기오염을 기록했다. 중국판 삼한사미일까. 잠시 주춤했던 스모그가 30일부터 또 기승을 부린다니 우리 역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2015년 중국중앙(CC)TV 출신 여성 앵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돔 지붕 아래서’에 따르면 베이징은 1년 중 175일이 오염된 날. 즉 한 해 가운데 절반은 마음 놓고 밖에 나갈 수 없다. 이 다큐에는 한 어린이가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을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하는 장면도 나온다. ▷창문을 여는 것이 위험하고 숨쉬는 것도 겁나는 세상, 이제 깨끗한 공기를 누리는 일은 사치가 된 것인가. 화수분과 아내가 껴안은 채 동사(凍死)한 삼한사온 겨울처럼 삼한사미 겨울 역시 취약계층에 한층 가혹하다. 하루 일당을 포기할 수 없거나, 공장 주변에 살거나, 마스크 살 돈도 아쉬운 사람들이 있다. 대기오염, 환경재해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바라봐야 할 이유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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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쓰러진 워킹맘 판사

    “엄마는 나쁜 사람을 벌주기 위해 늦는 거란다.” 최근 주말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새벽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고등법원 이모 판사(42)는 초등생 아들 둘을 둔 워킹맘이다. 이 판사는 워킹맘 법조인들의 인터넷 카페에 “아이가 엄마,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적다고 한다”고 고민하며 아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한 달 전엔 ‘이제 새벽 3시가 넘어가면 몸이 힘들다. 내가 쓰러지면 누가 발견할까’라는 글도 남겼다. ▷딸 아내 엄마를 잃었을 가족들이 겪는 상실의 아픔에 감히 비할 순 없겠지만, 이 판사의 사연에 눈물이 고이지 않은 워킹맘은 없을 것이다. 그의 일상이 그림 그리듯 눈에 선해서다. 보통 판사 1명이 연간 60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데 매일 수천 쪽의 기록을 봐야 가능하다. 과중한 재판 업무 속에 아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뛰어다녔을까. 누군가 육아를 도왔겠지만 아이는 아프거나, 슬프거나 하는 결정적인 순간엔 엄마를 찾는다. ▷과거 과로사는 주로 40, 50대 남성들의 사망 원인이었다. 스트레스로 상승한 혈압이 심근경색, 뇌출혈의 원인이 된다. 워킹맘 과로사는 ‘금녀의 벽’을 넘은 여성 증가와 관련이 있다. 전문직, 고위직일수록 업무 강도가 높을 텐데 육아 부담을 안고 생존해야 한다. 최근 아세안 정상회의 담당이었던 외교부 김모 국장(48)도 싱가포르 호텔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현지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는 올 3월 첫 여성 지역국 담당 국장에 올랐다. 역시 초등생 아들을 둔 워킹맘인데 거의 한 달간 야근을 했던 모양이다. ▷이들과 함께 일한 동료들은 한결같이 “일이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아 몰랐다”고 했다. 시험 취업 승진 등 허들을 차례로 뛰어넘으며 ‘여자라서 안 돼’라는 말을 듣지 않고자 부단히 애썼을 것이다. 그렇게 달려왔어도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성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허들을 만난다. 자꾸 뒤돌아보면서 워킹맘 스스로 뛰어넘기를 망설이게 되는 높은 허들이다. 양성평등 제도든 문화든 어서 정착돼 워킹맘에게 ‘함께 뛰어넘자’고 손을 내밀어 줬으면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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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제일병원의 경영난

    2011년 2월 배우 이영애 씨의 출산은 고령산모 사이에서 크게 회자됐다.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들딸 쌍둥이를, 그것도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출산 이틀 뒤 퇴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부기 하나 없이 날씬했다. 당시 이 씨가 아이를 낳았던 제일병원은 정·재계 인사, 연예인들이 많이 찾을 만큼 분만으로 명성을 쌓았던 곳이다. 그런데 현재 매각을 추진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다. 이달 들어 300병상을 폐쇄했고, 의사 월급도 주지 못했다. ▷1963년 연세대 의대 교수였던 이동희 박사가 세운 제일병원은 한동안 연간 출생아 50명 중 1명이 태어날 정도로 산모들이 몰려들었다. 1981년 병원장이었던 이 박사가 국세청에 신고한 소득은 1억6100만 원으로 전국 의사 중 1위였다. 같은 해 10억 원 이상 번 사람은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6명뿐이었다. 출산율이 높아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가 걸리던 시기라 산부인과는 호황을 누렸다. ▷55년 역사를 가진 제일병원의 쇠락은 우리나라 출산율 그래프와 일치한다. 2002년 ‘저출산 쇼크’(합계출산율 1.17명)는 산부인과부터 강타한다. 제일병원 분만 건수는 2000년 9380건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데 2009년 7000건, 2013년 6000건, 2016년 5000건 선이 와르르 무너졌다. 산부인과의 쇠락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분만을 1건이라도 한 병·의원은 전국 582곳으로 2006년(1119곳)의 절반 수준이다. 진통이 와도 한두 시간을 가야 분만이 가능해 ‘출산원정’이란 말도 등장했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통계청장이 최근 공식적으로 밝혔다. 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나라도, 한 세대 만에 출생아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나라도 한국이 유일하다. 산부인과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됐지만 앞으로 유치원·어린이집→초중고교→대학 순으로 위기를 맞을 것이다. 당초 예상한 2028년보다 앞서 인구가 줄어든다고 한다.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위기가 고작 10년 안에 닥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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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다음 세대를 위한 기부’

    미국 존스홉킨스대에는 블룸버그 공중보건대가 있다. 이 대학 출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기부를 기념해 2001년 바꾼 이름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65년 5달러를 시작으로 이미 15억 달러(약 1조6929억 원)를 기부한 블룸버그가 다시 18억 달러(약 2조276억 원)를 더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1876년 대학 설립자인 존스 홉킨스가 기부한 700만 달러가 이번 기부금 가치와 비슷하다니 존스 홉킨스 블룸버그대라 불러도 될 듯하다. ▷이번 기부금은 장학금으로만 쓰인다. 그의 삶이 증명하듯 가난한 학생들도 대학 공부를 할 기회를 가지면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는 18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대학 졸업장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게 했다. 하마터면 닫힐 뻔한 기회의 문을 내게 열어줬다”고 했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 연 6000달러의 박봉을 받는 아버지 아래서도 학자금 대출을 받고, 주차요원으로 일해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그 덕분에 굴지의 투자은행에 취업했고 1981년엔 블룸버그뉴스를 차려 500억 달러 자산가로 성공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유독 교육에 과감한 기부를 했다. ▷교육열이 경제성장을 이끈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농부의 아들, 홀어머니의 딸들이 블룸버그 같은 성공 신화를 일궈냈다. 이제는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사다리’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서울대 학생 10명 중 7명은 월평균 소득 상위 20% 가정에 속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가정환경이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이 ‘할아버지를 잘 만나야 성공한다’는 말로 바뀐 지 오래다. ▷최근 김영석 할아버지, 양영애 할머니는 과일장사로 평생 모은 400억 원을 고려대를 운영하는 고려중앙학원에 쾌척했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의 연간 기부금을 합하면 4000억 원 수준이니 그야말로 거액이다. 이처럼 배우지 못한 설움을 기부로 승화시킨 소식은 종종 들리는데, 배워서 성공한 이들의 교육 기부는 인색한 듯하다. “다음, 그 다음 세대에도 능력 있는 학생들에게 나와 같은 기회를 주고 싶다.” 블룸버그의 기부가 주는 울림이 크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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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中日 평화조약 40년

    1978년 10월 23일 일본 도쿄의 아카사카 영빈관. 덩샤오핑 중국 부총리와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가 ‘중일 평화우호조약’ 비준서를 교환했다. “일본이 이처럼 가난한 사람(중국)과 친구가 되려고 하니 대단하군요.” 후쿠다가 양국 관계 강화를 강조하자 덩샤오핑이 웃으며 건넨 말이다. 그로부터 40년 지난 이달 25∼27일, 이번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다. ▷청일전쟁 이후 거의 100년 동안 적대적인 역사를 써 왔던 중국과 일본이 1972년 중일 수교에 이어 평화조약까지 체결한 것은 국제정세의 급변과 이에 따른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닉슨독트린과 미중 관계 진전에 충격 받은 일본이 휘두른 ‘소련 위협 카드’는 효과적이었다. 개혁개방을 앞두고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던 덩샤오핑은 1978년 방일 당시 일본 닛산자동차 공장부터 찾았다. 중국은 일본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했다. 일본은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탐냈다. 중일 평화조약 덕분에 일본은 미국과의 군사동맹도 원하는 대로 개정할 수 있었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양국 관계는 2012년 위기를 맞았다. 일본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선언하면서부터다. 덩샤오핑이 센카쿠 영유권을 두고 “이 문제를 후세에 넘기는 것이 좋겠다. 지금의 우리들보다 총명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 깊숙이 묻어둔 갈등이었다. 군사적 충돌을 우려할 정도로 양국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2011년 12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방중 이후 일본 총리는 지금껏 중국 땅을 밟지 못했다. ▷올해 초부터 무르익은 중일 간 해빙 분위기 역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은 일본에서 출구를 찾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로 중국과의 대결이 부담스럽다. 아베가 방중 때 경제사절단 500명을 이끌고 가는 이유다. 각국이 생존을 위한 짝짓기를 벌이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 동맹도, 적도 구별하지 않는 ‘트럼프 변수’가 국제 질서의 판을 흔들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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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올리브 가지

    ▷‘Dono di Papa Francisco(프란치스코 교황의 선물)’이라고 적힌 하얀 상자 안에 올리브 가지를 본뜬 작품이 담겼다. 18일(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 “로마 예술가가 평화의 염원을 담았다”며 선물했다. 올리브 가지는 화해, 평화의 상징이다. 구약성서에서 방주를 타고 표류하던 노아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 돌아온 비둘기를 보고 육지가 가까웠음을 알게 된다. 인간을 벌한 하느님이 내민 화해의 메시지가 올리브 가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줄곧 분쟁지역을 누비며 평화를 설파했다. 2014년 5월 중동 방문 때는 전례를 깨고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을 먼저 찾았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분리장벽’에선 이마를 대고 침묵의 기도를 올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로했다. 같은 해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을 초대해 바티칸 교황청에서 합동기도회를 열었다. 그리고 셋이서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한반도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다. 199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주교 시절부터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신부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신부가 첫 한국인 이민자 출신 주교인 문한림 주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즉위 직후인 부활대축일 미사 메시지에서 “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빈다. 그곳에서 평화가 회복되고 화해의 정신이 자라나기를 빈다”고 했다. ▷북핵을 여전히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에게 올리브 가지의 은유는 가볍지 않다. 1월 북한 김정은이 ‘핵단추’ 운운하며 “평창 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했을 때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진짜 올리브 가지인지 잘 모르겠다”고 경계했다. 작년 6월 북한 노동신문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여’를 강조한 발언에 대해 “미국이 외교적 해결이라는 감람(올리브)나무 가지를 내흔드는 것은 기만”이라고 비난한 적도 있다. 불신이 쌓인 북한 문제에도 교황의 올리브 가지가 화해의 기운을 불러오기를.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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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가사노동 시간당 1만569원

    퇴근은커녕 주말도, 휴가도 없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아이를 보느니 콩밭 맨다’는 옛말처럼 회사를 나가는 게 낫겠다 싶다. 틈틈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장을 봐서 식사 준비까지 하다 보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출산휴가 때를 돌이켜 보면 집안일이 고되다는 것보다 대가가 없다는 점에서 낙담이 컸다. 월급 얘기가 아니다. 인정(認定) 같은 보상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사노동의 사회학’을 펴낸 영국의 사회학자 앤 오클리는 “가사노동은 자아실현을 억압한다”고 했다. ▷통계청이 처음으로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해 8일 발표했다. 아이돌봄, 세탁, 청소 등 59개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했더니 2014년 기준으로 연간 361조 원, 국내총생산(GDP)의 24.3%를 차지했다. 동아일보가 이 자료를 토대로 추정한 결과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는 월급 190만 원. 가사노동 평가액(시간당 1만569원)을 받고 하루 6시간 일한다고 가정했다. 그 정도로는 가사도우미나 아이돌보미를 구하기 어렵지만 가사노동의 생산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그동안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여성의 집안일은 남성의 바깥일에 비해 가치 없는 일로 치부됐다. 1960년대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가사노동의 가치가 재평가됐고 1990년대 들어 세계여성대회를 중심으로 무급 가사노동을 정부 공식 통계에 반영하라는 권고가 나왔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이 통계를 작성하고 있고 한국이 올해 처음 발표했다. ▷15세 이상 여성이 1년간 창출하는 가사노동 가치는 평균 1077만 원으로 남성(347만 원)의 3.1배다. 여성이 남성보다 그만큼 더 가사노동을 한다는 뜻이다. ‘아내 가뭄’의 저자 애너벨 크랩은 성공한 남성에게는 아내가 있지만 성공한 여성에겐 아내(전업남편)가 드물다는 통계를 들어 “아내는 경제적 특혜”라고 주장했다. 여성들, 특히 일하는 엄마들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까닭이다. 결국 부부가 서로 ‘아내’가 되어 주고, 감사와 존중을 표현할 때 가사노동이 제값을 받고 평등한 교환이 일어나는 것일 게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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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오후 3시 하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초등교사와 초등 3, 4학년 9868명에게 놀이시간을 늘려 오후 3시에 하교하는 ‘더 놀이 학교’에 대해 찬반을 물었더니 교사 95.2%, 어린이 71.2%가 반대했다. ‘더 놀이 학교’는 지난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안한 돌봄 공백 해소 방안이다. 초등 1·2학년은 오후 1시, 3·4학년은 오후 2시면 하교하는 탓에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30대가 가장 낮다. 지난해 초등 1∼3학년 자녀를 둔 건강보험 가입 여성 직장인 1만5841명이 신학기를 전후해 회사를 그만뒀다.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82.3%)이 중고교생보다 높은 까닭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반대 이유로 “쉬고 싶다” “학교에 오래 있으면 피곤하다” “학원만 늦게 간다”고 주로 답했다. 교사들 역시 ‘학생의 정서적 피로’(50.5%)를 1위로 꼽았고 학생 안전·분쟁에 대한 교사의 책임 증가(21.7%)가 뒤를 이었다. 설문조사에서 ‘하루 10분 수학문제를 풀래?’ ‘급식에 나온 김치를 먹을래?’같이 부정하는 답이 나올 법한 질문을 던진 것도 의아했지만 대다수 아이들이 학교는 피곤한 곳이라고 보는 것도 놀랍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초등학생들이 대체로 오후 3시 넘어 집에 온다. 집에서 아이들을 맞을 수 없는 엄마들을 위해서는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한다. 유독 한국의 하교시간이 이른 것은 과거 학교와 교사가 부족해 2, 3부제를 하던 영향이다. 2015년 기준 초등 1, 2학년 연간 수업시수를 비교해도 미국(845.5시간), 프랑스(864시간)에 비해 한국(560시간)은 훨씬 적다.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춰도 엄마가 집에 올 때까지 어차피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교사들은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보육기관이 아니다”라고 한다. 책걸상만 가득한 교실에서 놀다가 안전사고나 학교폭력이라도 발생하면 행정과 민원에 시달리니 손사래를 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저출산위는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과전담교사를 두는 등 부담을 줄이겠다고 한다. 사회가 변하는데 학교와 교사만 그대로일 순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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