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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국 대선에서 50개 주(州) 투표 결과를 정확히 맞힌 예측 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저서 ‘신호와 소음’에서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알짜배기를 골라내는 기준을 소개했다. 미래를 예측할 때 도움이 되는 쓸 만한 정보는 ‘신호’, 시민을 현혹해 오히려 예측을 방해하는 것은 ‘소음’이라는 거다. 신호와 소음을 구별하기 위한 원칙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설마”로 대표되는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만 보라. 둘째,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예측을 계속 수정하라.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예측이 등장하면 다시 미래가 요동쳐 그 예측이 쓸모없게 되는 ‘2단계 카오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론으로 무장했다고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버는 올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다. 개표 결과 발표 후 블로그를 통해 “부동층의 내심까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어둠 속에 가려진 정보를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사실은 그 시대를 가장 모른다고 꼬집었다.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아주 희박해 보였던 가능성이 실현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측근의 개입을 경고하는 수많은 신호가 있었지만 대다수는 “설마”라며 소음으로 치부됐다.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해외 연구에 따르면 정치학자들이 어떤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0%라고 예측할 때 실제로는 그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15% 이상이었다고 한다. 최 씨의 국정 비리를 낱낱이 적은 기사들로 가득한 오늘자 신문을 불과 1년 전으로 들고 간다면 출판사도 “소설로 쓰기엔 너무 황당하다”며 출판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그 결과는 정국의 혼돈과 나라의 위기다. 미래를 모른 채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예측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다시 이런 혼란을 겪을 순 없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 대통령에게 표를 준 1570만 명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찍은 1460만 명도 장막 뒤 최 씨를 보지 못했다. 향후 국가 지도자에게 무엇보다도 투명성이라는 덕목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보다 앞서 사태 수습을 위해 지금 우리 곁에 나타난 정보 중 어느 것이 신호이고 소음인지 눈을 부릅뜨고 구별해야 한다. 자, 헌정 최초로 현직으로서 검찰 조사를 받게 될 박근혜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할지 정확히 예측하려면 다음 중 어떤 정보를 소음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체크해 보자. ①박 대통령이 15일 변호인을 통해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②그러나 변호인은 “서면 조사가 적절하고 당장 소환에 응하기는 어렵다”며 연기를 요청했다. 너무 쉬웠다면 하나 더. 박 대통령을 조사할 검찰의 행보를 예측하려면 다음 중 어느 정보를 걸러내야 할까. ①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②수사팀 규모를 검사 32명으로 확대했다. ③조사실 창문에 창호지를 발랐다. ※정답이 2개 이상이라고 느꼈어도 착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남편은 제 사랑, 한국은 제 운명이에요.” 휠체어를 탄 남편과 함께 단상에 올라간 취매이윈 씨(60)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14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賞)’에서 대상을 수상한 취매이윈 씨는 서툰 한국어로 감격을 전했다. 올해로 6회를 맞은 ‘LG-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에선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한 다문화가족, 그들을 도운 숨은 공로자들이 모여 서로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나눴다.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기쁨을 가족에게 돌렸다. 다문화가족상 우수상을 받은 라술메또바 나조카트 씨(35·여)는 “항상 옆에 있어 준 남편에게 고맙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행사엔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과 정춘숙(더불어민주당), 신용현 의원(국민의당·이상 여가위 간사)을 비롯해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이자스민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전 새누리당 의원), 양민정 한국외국어대 다문화교육원장 등 정계 관계 학계 인사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 수상자 가족 및 친구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남 위원장은 “올해 7월 국내 외국인이 처음으로 200만 명을 넘었고 우리 사회가 점차 ‘다름’이 힘이 되는 곳으로 발전하고 있다”라며 수상자들을 축하한 뒤 “특히 자라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입법 활동을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 전 의원은 “매년 ‘LG-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에 올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분들을 보며 초심을 다잡는다”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족상 대상과 우수상(3명) 수상자에게는 각 500만 원,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3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대상 수상자에겐 모국 방문 비용도 지원된다. 공헌상은 개인상(2명) 부상이 500만 원, 단체상이 1000만 원이다.● 14년간 이주민 법률상담-자립 도와다문화공헌 부문 다문화공헌상 단체 부문을 수상한 사단법인 ‘러브아시아’는 14년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법률 상담과 자립을 돕고 있는 순수 민간단체다. 2002년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러브아시아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받은 이주민은 26개국 출신 1만9000여 명에 달한다. 2010년에는 결혼이주여성이 자녀에게 모국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대전에 ‘다문화어린이도서관’을 설립했다. 이곳에는 아시아 10개국 동화책 1만여 권이 있다. 의료지원, 문화행사, 한글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러브아시아가 특히 공을 들이는 것은 이주민의 일자리 창출 사업. 현재 결혼이주여성에게 유치원, 초등학교의 동화강사로 일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문화 동화강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12년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접 음식을 조리하고 서빙하는 다문화 레스토랑 ‘아임 아시아(I'm ASIA)’의 문을 열었다. 현재 아임 아시아는 총 3곳. 매장 1곳당 7, 8명의 이주여성이 일하고 있다. 임제택 러브아시아 대표(58)는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일자리다. 앞으로 이주민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문화공헌상 개인 부문 수상자인 몽골 출신 멀얼게렐 씨(33·여)는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 350명이 가입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다. 2004년 12월 남편과 결혼하면서 입국한 그가 다문화 관련 활동을 시작한 건 2009년. 그는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의 도움으로 결혼 뒤 힘든 시기를 극복한 만큼 나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출입국사무소의 결혼이민자네트워크 몽골 모임 인터넷 카페 운영을 맡았다. 2010년에는 ‘주한몽골이주여성협회’를 설립했다. 정보기술(IT) 방문지도사로서 컴퓨터 사용이 서툰 이주여성을 돕고, 몽골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몽골어 신문 ‘salat’ 기자로도 활동했다. 2013년부터 10개월간 삼성서울병원 국제진료소에서 몽골어 통역사로 근무하며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몽골 환자를 도왔다. 또 다른 다문화공헌상 개인 부문 수상자인 사회복지사 권오숙 씨(62·여)는 12년간 매주 일요일마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 봉사를 해왔다. 그는 2000년대 초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소개로 경기 부천시 이주노동복지센터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틈틈이 한 봉사활동이 지금은 주말 일상이 됐다. 그는 이주민들에게 컴퓨터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어 교육도 함께 하고 있다. 이주민들과 함께 여행, 연극 등 다양한 문화 행사에도 참가하고 있다. 권 씨는 “봉사 초기 임신부였던 한 이주여성이 어느새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가 됐다”며 “그 아이가 부모의 모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능숙하게 하는 걸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병든 남편 보살피며 국적취득 꿈 키워다문화가족 부문 다문화가족상 대상을 받은 중국 출신 취매이윈 씨는 2009년 남편 정진선 씨(66)와 결혼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이듬해 시련이 닥쳤다. 갑자기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남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걷지 못하게 됐다. 병명도, 치료법도 알 수 없었다. 취 씨는 기초생활 복지급여와 기초연금 50만 원으로 살림을 꾸리고 남은 돈을 아껴 재활도구를 장만하는 등 남편을 극진히 돌봤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부부를 보며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금실이 저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며 격려했다. 5년간의 간호 덕에 정 씨는 지난해부터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됐다. 아직 이루지 못한 소망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귀화에 필요한 예금 잔액 3000만 원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취 씨는 꿋꿋하다. 최근엔 요리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더 맛좋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식당에도 취업하기 위해서다. 정 씨가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하지 않냐”고 물으니 취 씨는 얼른 “오빠(남편을 부르는 애칭)랑 결혼한 거 좋아”라고 대답했다. 다문화가족상 우수상을 받은 파키스탄 출신 카나니 무인 씨(58)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1990년대에 일자리를 찾아왔다가 2002년 아내 변은영 씨(51)를 만나 결혼했다. 처음엔 “사업 한번 같이 해보자”며 만남을 이어갔지만 그게 ‘가족 사업’이 될 줄은 몰랐다. 이듬해 자본금 20만 원으로 시작한 액세서리 노점이 현재 어엿한 중고 농기계 수출업체로 성장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일각의 편견 탓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가족이 힘이 돼줬다. 무인 씨는 “한국에선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며 웃었다.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자인 캄보디아 출신 한수연 씨(28·여)는 전북 익산시의 ‘다문화 선생님’이다. 정착 초기엔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 게 고작이었지만 점점 자신이 붙었다. 2012년부터 지역 내 초중고교와 대학교에서 다문화 이해 강사로 활동하며 캄보디아 문화를 강의하기 시작했다. 지역 내 캄보디아 출신 여성들과 무용단을 꾸려 경로당과 학교 등으로 봉사활동 공연도 다닌다. 최근엔 “두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며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응시해 연달아 합격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라술메또바 나조카트 씨(우수상)는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4명이나 낳은 다산모. 2006년 육군 부사관이었던 남편 서정완 씨와 결혼하면서 입국했고, 이듬해부턴 3년마다 가족이 한 명씩 늘었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는 형제와 자매가 많을수록 좋다는 게 나조카트 씨 부부의 지론이다. 특별상을 받은 캄보디아 출신 홈소폰 씨(35·여)도 자녀 4명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동아 다문화賞 수상자▽가족상―대상: 취매이윈 씨 가족(서울·중국 출신)―우수상: 카나니 무인 씨 가족(경기 파주시·파키스탄 출신) 한수연 씨 가족(전북 익산시·캄보디아 출신) 라술메또바 나조카트 씨 가족(경남 김해시·우즈베키스탄 출신)―특별상: 홈소폰 씨 가족(경기 부천시 ·캄보디아 출신)▽공헌상 개인 권오숙 씨(경기 안양시 요셉마리아집 사회복지사)멀얼게렐 씨(이주여성 소셜큐레이터·몽골 출신)▽공헌상 단체 러브아시아(이주민 법률 및 취업 지원 단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지난해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씨(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이권 개입 정황 외에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정보를 수집했다는 증언이 10일 새로 나왔다. 최순실 씨(60·구속)를 지원하기 위해 급조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대기업을 상대로 사실상 강제 모금을 벌이던 사실을 민정수석실이 인지했을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10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부인 이모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도 그의 직무 유기와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위해서다. 10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우 전 수석 산하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이 씨의 활동 과정을 탐문해 근무 이력과 세간의 평판, 비위 유무와 미르재단 내부 갈등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도 민정수석실이 이 씨를 비롯해 차 씨의 일감 수주 문제점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고위직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을 확인하고서 이를 방치했는지 수사하기로 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이 기업 등 여러 경로에 이 씨의 근무 이력과 비위 여부를 확인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르재단은 지난해 9월 대기업 16곳에서 486억 원을 받아내 같은 해 10월 설립됐다. K스포츠재단은 대기업 19곳에서 288억 원을 받아 올해 1월 설립됐다. 이때 대기업 주변에서는 최 씨를 배후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앞세워 대기업에 자금 지원을 압박했다며 전경련과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민정수석실이 이 씨의 동향까지 파악했다는 것은 사정(司正)과 동향 정보를 총괄하는 민정수석실이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구속), 비선 실세 최 씨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점을 인지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말이다. 민정수석실이 파악한 동향을 우 전 수석이 보고받고도 묵인했는지 등은 앞으로 검찰 수사에서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 특별수사본부 내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우 전 수석을 강도 높게 수사하려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특수본은 기존에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이 확보하지 않았던 우 전 수석과 부인 이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2상자 분량의 압수물을 10일 확보했다. 우 전 수석이 사용한 휴대전화가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특수본은 차 씨가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과 공모해 옛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 지분을 빼앗으려 한 사건에 안 전 수석도 관여된 정황을 포착하고 11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한다. 안 전 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차 씨를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해 “최순실 씨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소개로 만났다”고 진술했다. 장관석 jks@donga.com·조건희·배석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60·구속)가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를 좌지우지한 사실이 8일 체포된 차은택 씨(47)의 검찰 진술로 10일 확인됐다. 그동안 최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 보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주요 회의 개최에 관여하는 등 국정을 농단한 사실은 일부 드러났지만, 그가 정부 핵심 인사에까지 직접 관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차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2014년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56)를 대통령교육문화수석에, 홍익대 대학원 지도교수인 김종덕 씨(59)를 문체부 장관에 임명해 달라고 최 씨에게 청탁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차 씨는 그의 측근인 송성각 씨(58·구속)를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앉혀 달라고 최 씨에게 청탁했다고도 진술했다. 김 전 수석 등 3명은 차 씨가 최 씨에게 청탁을 한 그대로 박 대통령이 실제로 임명했다. 최 씨가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을 움직여 이들의 인사를 관철시킨 것이다. 이 3명이 임명된 시기는 김 전 수석과 송 전 원장이 각각 2014년 12월, 김 전 장관은 그해 8월이다. 차 씨가 2014년 8월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직후다. 이들은 차 씨의 도움으로 정부 고위직에 오른 뒤 반대급부로 차 씨를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취임 후 문체부 예산을 차 씨와 그 측근들이 추진한 문화콘텐츠융합 사업 등에 밀어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 전 수석은 최 씨가 실소유한 더블루케이의 사업과 관련해 이 회사 조모 전 대표를 만나 사업을 논의하는 등 최 씨 관련 사업을 도와줬다는 증언이 나온 바 있다. 또 송 전 원장은 차 씨와 관련이 있는 회사들이 콘텐츠진흥원의 예산을 받도록 힘써 준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최 씨를 상대로 박 대통령에게 차 씨의 인사 청탁을 전달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김 전 수석과 김 전 장관을 곧 소환해 차 씨와 인사 문제를 논의했는지, 최 씨와 차 씨의 각종 사업을 부당하게 비호했는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한편 검찰은 10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관련해 직무유기와 공무상비밀누설 의혹으로 우 전 수석과 부인의 휴대전화 2대를 압수하고 자택도 압수수색했다.김준일 jikim@donga.com·조건희 기자}
최순실 씨(60)를 진료해온 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도 없이 중국 고위인사의 피부 리프팅 시술 담당으로 내정돼 서울대병원에 외래교수로 뽑혔던 것으로 9일 확인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과 최 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날 의료계에 따르면 최 씨와 딸 정유라 씨(20)가 자주 찾은 곳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김○○의원’(진료과목 성형외과)의 김모 원장(56)은 7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외래교수로 위촉됐다. 건강검진을 전문으로 하는 강남센터엔 원래 성형외과가 없지만 당시 방한한 중국의 고위 인사가 “건강검진을 받는 김에 피부 리프팅 시술도 받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병원 측이 김 원장을 뽑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의료계 인사는 “해당 인사가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최고지도자의 가족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안팎에선 전문의 자격조차 없는 비전문의를 외래교수로 앉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같은 특급 VIP의 진료를 맡기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피부과 등에서 외래교수를 뽑는 일은 종종 있지만 전문의가 아닌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이에 서 원장은 본보에 “해당 VIP의 진료 예약을 대행한 업체가 리프팅 업계에서 유명한 김 원장을 추천해와 성사된 것”이라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탓에 시술이 무산된 뒤 김 원장을 곧장 해촉했고, 이 과정에서 압력이나 부당한 절차는 개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5월 박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는 등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입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당시 김 원장은 가족이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진 화장품 업체 Y사의 기술이사 자격으로 박 대통령과 동행했는데 업계에선 자본금이 5000만 원에 불과한 Y사가 사절단에 포함된 것이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Y사의 본사인 J사는 2월 청와대에 설 선물세트를 팔았고 최근 면세점에도 입점했다. 이러한 의혹이 불거지자 9일 해당 성형외과는 김 원장의 건강을 이유로 휴업했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8일부터 세 자녀 이상 맞벌이 가정은 어린이집을 최우선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세 자녀 이상 가구의 입소 순위 점수를 현행 100점에서 200점으로 올리고, 맞벌이(200점)인 상황이 겹치면 추가 가점 300점을 줘 총 700점으로 책정하는 개편 안을 이날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특정 어린이집에 입소 대기자가 몰리면 △기초생활 및 차상위 복지급여 수급자, △한부모, △장애부모, △다문화가족에 각각 가점 100점을, △조손가족, △입양아에게 각 50점을 중복 부여해 우선순위를 정해왔다. 여기에 맞벌이이면서 세 자녀 이상인 가정의 가점이 상향 조정되면서 이들은 국공립, 민간 어린이집 등에 최우선 입소를 보장받게 됐다. 다자녀 가구는 이번 개편안을 반기고 있지만 일각에선 "형편이 어려운 일부 계층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초생활, 장애부모에게 주어지는 가점은 100점인데, 장애 탓에 직장을 구하지 못한 홑벌이 가정(100점)은 오히려 비장애인 맞벌이 가정(200점)보다 점수가 낮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출산 장려 대책의 일환이다 보니 다자녀 가정에게 우선적으로 가점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가점 입력 절차가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선 입소 혜택을 받으려면 이날 오후 9시 오픈되는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http://www.childcare.go.kr)에 접속해 자녀 수 등을 집적 입력해야 하는데, 가점이 같을 경우 신청일이 빠른 가정에 입소 우선권을 주기 때문에 부모들이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얘기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20대 여성 절반만 성관계 시 항상 피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 골다공증 골절 위험은 남성의 3배이지만 치료제 복용 비율은 낮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8일 국민건강영양조사와 건강보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주요 여성 건강지표를 분석한 결과를 이같이 밝혔다. 연구원이 서울 강남역과 홍익대 등 5개 지역에서 20대 미혼 여성 1000명을 설문한 결과 최근 1년 내 성관계를 경험한 여성은 674명이었다. 이 중 "항상 경구용 피임약 혹은 콘돔으로 피임했다"는 응답은 315명(46.7%)에 그쳤다. 연구원 측은 "임신을 피하는 것뿐 아니라 성 전파성 질환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피임은 여성의 건강과 밀접하다"며 "올바른 피임법을 조기에 교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여성 골다공증 골절 환자는 2013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2072명으로 남성(636명)의 3.3배였다. 주로 척추, 고관절 골절 환자 중 여성이 많다. 하지만 골다공증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50대 여성 환자 중 21.6%, 60대 35.2%, 70대 이상 31.7%에 불과했다. 이는 골다공증이 별다른 증상 없이 서서히 진행돼 약을 처음부터 복용하지 않거나 중간에 끊는 비율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성의 심장병 위험은 폐경 전까지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 폐경기인 45~65세에 위험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폐경 이후에는 급격히 높아졌다. 또, 여성 급성심근경색 환자 중 한 달 내 사망하는 비율은 10.7%로 남성(4.9%)의 2배였다. 이는 남성보다 신체 활동이 적고 질병 발생 시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일주일에 2시간 반 이상 운동하고 염분, 지방이 많이 든 음식을 피하는 게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여성의 기대여명은 85.5년으로 남성(79년)보다 6.5년 길었지만 고용률은 49.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7.9%)보다 낮고 국민연금 가입률도 62.9%에 그쳤다.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가정 선생님이 될 거라고 하면 주변에서 ‘남자가 바느질 배우느냐’고 해요.”(배성주 씨·25·동국대 가정교육과 4학년) “모르는 소리! 콘돔을 풍선처럼 갖고 놀면서 남학생들에게 피임 방법을 가르치는 건 남자 교사니까 가능하죠.”(정세호 씨·42·고려대사범대부속고 가정과 교사) 5일 오후 1시, 한국가정과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가 열린 서울 서초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관은 전국에서 모인 가정과 여교사 수백 명으로 북적였지만 한구석에선 이 같은 ‘남자들만의 대화’가 오갔다. 이 자리는 대학에서 ‘희귀 생물’ 취급을 받는 가정교육과 남학생을 위해 학회가 처음으로 마련한 ‘가정과 남교사와의 멘토링’ 세션이었다. 이날 멘토링에 참석한 남교사 4명은 “남자 중고교생에게 좋은 남편, 훌륭한 아빠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데엔 남교사가 제격”이라고 강조했다. 맞벌이와 ‘맞돌봄’의 확산으로 가사와 육아에서 남편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지만, 정작 학교에서 이를 가르치는 교사는 여성에게 편중돼 있다는 것. 충남 서산중의 진영롱 교사(29)는 “남학생들이 여교사에게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직업인으로서의 가정과 교사에 대한 조언도 오갔다. 남학생들은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주요 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정과를 기피하는데, 오히려 바리스타, 조리사 자격증 준비 등 실생활과 구직에 도움이 되는 수업 과정을 교사가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장래가 밝다는 얘기다. 학생 조모 씨(24)는 “평소 ‘가정과 교사는 여자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남자만의 역할도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눈을 떠 보니 오전 7시. 또 늦잠이다. 오늘도 아침 먹긴 걸렀다. 중견기업 과장 김한국 씨(가상인물·45)는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김 씨처럼 아침식사를 거르는 비율은 2005년 19.9%에서 지난해 26.1%로 크게 높아졌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전국 1만여 명의 건강 행태와 영양 섭취 등 600개 항목을 조사해 6일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김 씨의 하루로 분석했다. # 낮 12시. 김 씨는 중국 음식점에서 짬뽕을 주문했다. ‘나트륨 과다 섭취의 주범’이라는 얘기에 피해왔지만 엊그제 본 ‘짬뽕 먹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2005년 5392mg에서 점차 줄어 2014년 3836mg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4002mg으로 다시 증가해 목표섭취량(2000mg)의 2배를 넘겼다. 반면 칼슘은 권장량 대비 섭취율이 10년 새 75.9%에서 69.6%로 떨어졌다. 칼슘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나트륨은 섭취가 늘었는데 반대로 칼슘은 제대로 보충되지 않아 뼈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 오후 1시. 최근 금연한 김 씨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꾹 참고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지난해 성인 흡연율은 22.6%로 1998년(35.1%)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았다. 교육부가 13∼18세 중고교생 7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남학생 흡연율도 2005년 14.3%에서 지난해 11.9%로 줄어든 뒤 올해 9.6%로 처음으로 한 자릿수에 진입했다. 지난해 1월 담뱃값을 올린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흡연 문화도 개선돼 회사 내 간접 흡연율은 전년(40.1%)보다 크게 떨어진 26.8%로 집계됐다. 반면 커피 탄산음료 등 음료의 하루 평균 섭취량은 10년 새 61.5g에서 192.3g으로 3.1배로 급속히 증가했다. # 오후 7시. 처리할 잔무가 남은 김 씨는 퇴근 가방을 싸는 대신 구내식당에 들렀다. 야근이 일상이 된 지 오래고, 가족과 저녁 식탁에 마주 앉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하는 비율은 2005년 76%에서 지난해 64.7%로 줄었다. 당국은 이 같은 양상이 야근이 늘어난 팍팍한 일상 외에도 1인 가구 확대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하루 한 차례 이상 외식하는 비율도 조사가 시작된 2008년(24.2%)보다 8.9%포인트 증가했다. # 오후 10시. 긴 하루를 마친 김 씨와 회사 동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잔을 들었다. 평소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낀다는 응답은 2013년 24.4%에서 지난해 31%로 늘었고, 2주 이상 연속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했다는 ‘우울감 경험률’도 10.3%에서 13%로 증가했다. 음주 습관도 거칠어졌다. 한자리에서 소주 7잔(여성은 5잔) 이상 마시는 날이 한 달에 하루 이상인 ‘월간 폭음률’은 37.3%에서 38.7%로 늘었고, 일주일에 이틀 이상인 ‘고위험 음주율’도 12.5%에서 13.3%로 높아졌다. 다만 청소년의 음주율은 2006년(28.6%)부터 조금씩 줄어 올해 15%였다. 강재헌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10년 새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환자는 대체로 줄었지만 나트륨 과다 섭취와 폭음 등 건강 위험 행태가 다시 심각해지고 있다”며 “나쁜 식습관이 질병으로 번지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232만 원 vs 86만 원.’ 지난해 전북 부안군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주민 1명이 각각 쓴 평균 병원비로, 격차가 146만 원에 이른다. 2009년 두 지역의 1인당 의료비는 각각 168만 원과 68만 원으로 차이가 100만 원이었다.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지역별 의료비 격차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일 시군구별 건강보험 진료비를 분석한 결과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높은 농촌 지역의 1인당 진료비가 도시 지역보다 훨씬 많았다고 밝혔다. 1인당 진료비 지출이 컸던 지역은 전남 고흥군(229만 원), 전북 고창군(222만 원) 등으로, 고령자의 비율이 30% 안팎인 농촌에 몰려 있었다. 반면 경기 화성시(95만 원), 충남 계룡시(91만 원) 등 고령자 비율이 10% 미만인 곳은 1인당 진료비 지출도 적었다. 인구 10만 명당 환자가 가장 많은 암은 위암(303명)으로, 경남 함양군(756명), 충북 보은군(713명), 전남 보성군(697명) 등 고령화가 진행된 곳에서 환자 비율이 높았다. 이는 간암 환자 비율이 가장 높은 전남 신안군(516명)과 폐암 환자가 많은 전남 고흥군(407명), 대장암이 빈발하는 충북 괴산군(630명) 등에서도 같았다. 다만 유방암 환자의 비율은 서울 용산구(376명), 강남구(374명), 경기 성남시 분당구(376명) 등 도시 지역에서 높았다. 이는 유방암의 원인이 서구화된 식습관과 여성의 음주·흡연, 스트레스라는 의료계의 통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풀이된다. 환자가 거주지를 떠나 다른 지역의 병·의원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은 지역은 부산 강서구로, 이 지역 주민의 타 지역 병·의원 이용률은 75%에 달했다. 타 지역 병·의원 이용률이 낮은 지역은 대체로 제주(8.3%), 강원 강릉시(12.9%) 등 다른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었다. 서울 접근이 용이해진 강원 춘천시 주민들은 진료의 87.9%를 해당 지역 내에서 해결했다. 2009년 서울∼춘천고속도로와 2012년 ITX-청춘이 개통될 당시 제기됐던 ‘원정 진료 가속화’ 우려가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심리 전문가들은 1일 박근혜 대통령이 큰 충격을 받아 사안을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 심리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극소수의 측근에게 의사결정을 의지하는 성향이 바뀔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명, 심리학과 교수 2명, 문화평론가 1명과 함께 박 대통령의 현재 심리를 짚어봤다.○ “판단조차 어려운 상태일 것” 전문가 대다수는 박 대통령이 현재 자신을 둘러싼 체계가 송두리째 부정당한 상황에 처해 불안정한 상태일 것으로 분석했다.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이 차례로 숨진 트라우마가 ‘주변인의 배신’을 극도로 경계하는 성향으로 자리 잡았고 최태민, 최순실 씨 부녀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극소수의 측근에게 의사결정 과정을 의지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의 두뇌는 주변의 현상을 어떤 논리로든 납득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박 대통령은 익숙했던 인간관계가 전부 무너진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판단력이 크게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을 시인하는 기자회견에서 평소와 달리 눈시울이 붉어지고 손이 떨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을 근거로 들었다.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권 초기에 청와대 측 인사가 ‘박 대통령에게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며 간접적으로 진료를 의뢰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 현상”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하나둘씩 사실로 드러나자 정신분석 전문가 사이에선 박 대통령이 최 씨와 지나치게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의들은 의존 성향을 보이는 사람은 주로 △어린 시절 부모와 제대로 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함 △어떤 옷을 입을지 등 사소한 판단도 타인에게 의존 △의존 상대가 사라지면 또 다른 상대를 찾음 △의존 대상은 보통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침해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존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우유부단하고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높은 직위에 오르려 하지 않는 게 보통이라는 설명이다.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단호한 어조와 강한 눈빛을 보여 왔는데, 이는 의존성 인격장애 환자와의 가장 큰 차이”라며 “특정 성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조건희 becom@donga.com·김윤종 기자}
주말 전국을 덮친 추위는 이번 주 중반까지 더 심해지겠다. 30일 오전 전국 곳곳은 올가을 들어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 이날 오전 8시 기준 서울은 올가을 가장 낮은 1.6도를 기록했고 파주(―3.7도), 철원(―4도), 춘천(―1.6도) 등에선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졌다. 서울, 수원, 북춘천, 청주, 서산에선 이날 올가을 첫 얼음과 함께 첫서리가 관측됐다. 31일 아침 최저 기온은 3∼12도로 전날(영하 3도∼영상 12도)보다는 조금 오르겠다. 하지만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낮 최고 기온이 10∼17도로 전날(13∼18도)보다 떨어지고, 11월 1일엔 서울의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2도로 내려간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온은 3일경부터 평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은 북한을 지나는 약한 기압골의 영향을 받다가 중국 북부지방에서 확장하는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면서 대체로 흐리겠다. 서울 인천 수원 등 중부지방엔 오전 한때 비(강수확률 60%)가 5mm 미만으로 내리고, 제주는 남쪽 해상을 지나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대체로 흐리다 밤에 비가 오겠다. 미세먼지 농도는 대기 흐름이 원활하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대기오염 물질이 적어 ‘보통’ 단계일 것으로 보인다. 자외선지수와 오존농도도 ‘보통’ 정도로 나타나겠다. 31일 낮부터 11월 1일 사이 해상에선 바람이 강하게 불어 풍랑특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내륙에도 바람이 약간 강하게 부는 곳이 있겠으니 시설물 관리에 유의하라고 기상청은 당부했다. 바다의 물결은 모든 해상에서 0.5∼3.0m로 일다가 서해 먼바다는 2.0∼4.0m로 차차 매우 높게 일 것으로 전망된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원두가루를 에스프레소 머신에 넣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이모 군(17)은 26일 경기 용인시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 바리스타 실습실에서 자신이 뽑은 커피를 권하며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분노조절장애를 지닌 이 군은 8월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디딤센터에 입소했다. 선생님에게 말대답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교실 한가운데서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 이 군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디딤센터는 정서·행동장애를 가졌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이 모여 생활하는 국내 유일의 기숙형 청소년 치료재활시설이자 대안학교다. 현재 이곳에서 4개월짜리 장기 프로그램 과정을 밟고 있는 9∼18세 아이 60명에겐 이 군처럼 ‘마음의 딱지’가 붙어 있다. 가출 소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2012년 디딤센터가 문을 연 뒤 이곳을 거쳐 간 청소년은 장기 프로그램이 606명, 4박 5일짜리 단기 프로그램이 3081명이다. 오전엔 여느 학교와 다름없이 국영수 과목을 가르치지만 오후 1시부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목공예소, 댄스교습소, 미술치료실, 원예실, 명상관, 풋살경기장이 완비돼 있고 원하면 컴퓨터나 조리 관련 자격증도 준비할 수 있다. 교사와 상담사 38명은 이곳에 상주하며 아이들이 원할 땐 언제든 상담을 해주고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해준다. 디딤센터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교육청, 학교 등 유관기관에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입교할 수 있다. 이용료는 월 30만 원이지만 저소득층은 무료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치료를 받고 싶어도 경쟁에서 탈락하는 청소년이 생기지 않도록 3년 내로 경상 지역에 분원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불길 속 이웃을 구하다 숨진 고 안치범 씨(28)와 ‘세월호 구명조끼 천사’ 고 정차웅 군(당시 17세)이 27일 의사자로 인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의사상자 심사위원회를 열고 안 씨와 정 군 등 3명을 의사자로, 2명을 의상자로 각각 인정했다고 밝혔다. 안 씨는 지난달 9일 오전 4시경 자신이 살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원룸에서 불이 나자 119에 신고한 뒤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이웃집 문을 두드리는 등 주민들을 깨워 대피할 수 있도록 하다가 연기에 질식해 20일 세상을 떠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준 뒤 숨진 채 발견된 단원고 학생 정차웅 군도 이날 의사자로 인정됐다. 올해 4월 광주 광산구의 한 저수지에 뛰어드는 선배를 말리다 사망한 고 김용 군(16)은 의사자로, 홀몸노인을 화재에서 구조하다가 화상을 입은 황영구 씨(52) 등 2명은 의상자로 결정됐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불길 속 이웃을 구하다 숨진 고 안치범 씨(28)와 '세월호 구명조끼 천사' 고 정차웅 군(17)이 27일 의사자로 인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의사상자 심사위원회를 열고 안 씨와 정 군 등 3명을 의사자로, 2명을 의상자로 각각 인정했다고 밝혔다. 안 씨는 지난달 9일 오전 4시경 자신이 살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원룸에서 불이 나자 119에 신고한 뒤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이웃집 문을 두드리는 등 주민들을 깨워 대피할 수 있도록 하다가 연기에 질식해 20일 세상을 떠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준 뒤 숨진 채 발견된 단원고 학생 정차웅 군도 이날 의사자로 인정됐다. 올해 4월 광주 광산구의 한 저수지에 뛰어드는 선배를 말리다 사망한 고 김용 군(16)은 의사자로, 홀몸 노인을 화재에서 구조하다가 화상을 입은 황영구 씨(52) 등 2명은 의상자로 결정됐다. 정부는 자신의 직무와 상관없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다 다치거나 숨진 이들을 1971년부터 '의사상자'로 인정해 유족 또는 가족에게 예우와 지원을 하고 있다. 올해 의사자 보상금은 2억291만 원(일시금)이고 의상자는 등급에 따라 1014만~2억291만 원이다. 의사자 가족에겐 의료급여, 교육보호, 공직진출도 지원된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난해 노인 건강보험 진료비가 처음으로 20조 원을 돌파했다. 노인 1명당 362만 원꼴로, 전 연령 평균(113만 원)의 3배가 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 같은 내용의 ‘2015년 건강보험 통계연보’를 26일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적용 인구 5049만 명이 쓴 건보 진료비는 57조9546억 원으로 전년보다 6.5% 증가했다. 이 중 전체 인구의 12.3%인 65세 이상 고령자 622만 명이 쓴 진료비는 22조2361억 원으로 38.4%를 차지했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노인 진료비 지출은 2008년 10조7371억 원, 2014년 19조9687억 원 등으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건보 재정을 소모시킨 질환은 단연 암(4조9362억 원)이다. 암을 비롯해 정신·행동장애(3조839억 원), 고혈압(2조6622억 원), 만성콩팥병(1조5671억 원), 당뇨병(1조4500억 원) 등 주요 만성질환 11개로 인한 환자는 1439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8.5%이고, 진료비는 21조2994억 원으로 36.8%를 차지했다. 2년 뒤부터 건보 재정이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만성질환 관리의 효율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는 전년보다 1.7% 늘어 3622만 명을 기록했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3.1% 줄어든 1426만 명이었다.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큰 현행 부과체계 탓으로 보인다. 가구당 월평균 보험료는 직장가입자가 10만510원으로 처음으로 10만 원이 넘었고, 지역가입자는 8만876원이었다. 1인당 연간 보험료(86만4428원) 대비 수혜 금액(89만2320원)의 비율은 1.03배였다. 1인당 병·의원 외래 방문 일수는 17일로 전년보다 0.1일 줄었다. 외래 진료가 줄어든 것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경기 침체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탓에 경증 환자가 병원을 덜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입원 일수는 평균 2.6일로 변동이 없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이곳엔 지역 주민 수십 명이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그린 뒤 치료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과 함께 마련한 지역 주민 대상 미술치료 및 상담 행사인 ‘내 마음이 보이니?’의 한 장면이다. 상담은 가족들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화지 한 장을 돌려가며 그림을 그리는 ‘가족 미술 평가’ 방식으로 진행됐다. 치료사는 참가자가 어떤 사물을 소재로 삼았는지, 색상과 선의 모양은 어떻게 선택했는지,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릴 때 다른 가족 구성원은 어떤 행동과 표정을 하는지 등을 종합해 해당 가족 내의 의사소통 방식을 파악하고 애착 수준을 평가했다. 평소 집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비언어적 소통을 전문가의 눈으로 짚어주기 때문에 대화, 양육 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날 미술치료에 참가한 부모들은 “몰랐던 내 의사소통 방식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놀라워했다. 김모 씨(42)는 초등학교 1학년생 아들이 떨리는 손으로 그린 사과와 굴뚝 등을 반듯하게 다시 그리는 데에 집중했다. 그럴수록 아들은 김 씨의 눈치를 보며 점점 그림을 더 작게 그렸다. 김 씨 부자를 지켜본 김태은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 교수가 “서툰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부모의 노력이 아이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조언하자 김 씨는 눈물을 흘렸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를 자신도 모르게 배우게 됐고, 직장 내에서도 부하 직원의 일을 무리하게 고치려다 문제가 생긴 일이 잦다는 것. 하지만 모든 참가자가 자신의 의사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도화지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크기의 나무를 그린 한 40대 주부는 자녀가 그릴 공간이 부족해 작은 사물만 몇 개 그리자 오히려 “그렇게 적극성이 없어서 어쩌냐”며 다그쳤다. 김 교수는 “간혹 가벼운 마음으로 온 가족 중에 본격적인 상담이 필요해 지역 내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안내해 주는 경우도 있다”며 “다만 참가자가 ‘내 양육 방식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면 끝내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2012년부터 재단금으로 건립해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한 생명숲어린이집 7곳과 서울 종로구, 경기 광명시 육아종합지원센터 2곳에서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어린이집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동은 3864명, 지역 주민 대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은 7485명이다. 이시형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이것이 가정 내에서 왜곡된 방식으로 분출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술심리치료는 부모가 놓칠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알아보고 양육과 소통 방식을 개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자녀와 친구도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개원 기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카나 에노모토 미국 약물남용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 국장(47·여)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SAMHSA는 미국 보건부 산하 정신건강서비스 기관. 직제상 식품의약국(FDA)과 동급이다. 에노모토 국장의 말엔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찰이 담겨 있다. 그의 가족은 의사와 변호사, 금융인 등을 배출한 명망가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아픔도 있다. 아버지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았고, 어머니는 치매, 형제는 섭식장애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에노모토 국장 본인도 어렸을 적 가정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남아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특히 조울증에 시달리던 20대 초반인 올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싶다’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누구도 우리 가족의 속사정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게 바로 지금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SAMHSA는 최근 일선 학교와 보건소에 정신건강 전문가를 배치해 정신질환을 초기에 치료·예방하는 ‘첫 사건(First Episode)’ 프로그램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난 뒤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단축하는 게 목표다. 그는 이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민간보험 가입이 제한된다는 말에 그는 “끔찍하다”고 논평한 뒤 “미국에선 장애로 인한 보험 가입 제한이 2010년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 이후 금지됐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꺼리는 한국 내 분위기를 전하자 그는 “한국의 학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성적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라”는 뼈 있는 농담을 했다. 미국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은 청소년들을 인종별로 비교 연구한 결과 한국계와 일본계 학생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고, 이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 신체질환이 공부에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정신질환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학업 성취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학부모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에노모토 국장은 특히 ‘누구나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나아질 테니 힘내라”고 하는 건 다리뼈에 금이 간 사람에게 “괜찮아질 테니 계속 달리라”고 하는 거랑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웰다잉법)에 따라 내년 8월부터 ‘말기’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가, 2018년 2월부터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해진다. 진통 끝에 나온 결과물이지만 말기와 임종기의 구체적인 지침이 확정되지 않아 시행령·규칙 마련 등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우선 말기와 임종기의 기준은 의료계가 잡은 초안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가 세부 지침을 작성 중이다. 말기는 △항암치료를 받아도 암이 계속 진행돼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암 환자 △소변이 나오지 않는 간신증후군을 동반한 만성 간경화 환자 △숨이 차 의자에 앉아 있기 어려운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환자 △뇌병변을 동반한 에이즈 환자 등이 해당된다. 임종기 대상은 급성 질환, 만성 질환, 만성 중증질환, 에크모(체외막산소화장치) 시술 환자 등 4가지로 각각 기준을 달리했다. 임종기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엔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등 2명이 판단하도록 규정했다. 의료계에선 사전적 의미대로 해당 전문 분야에서 3∼4년 레지던트 훈련을 마친 뒤 진료 과목별 자격시험을 통과한 의사만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게 하면 환자가 대형병원을 전전해야 하고 의료 전달체계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에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은 최근 “병원장이 지정한 의사도 전문의로 인정해 임종기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제언이 담긴 보고서를 당국에 전달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법에 명시된 전문의의 자격을 완화하면 공신력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다만 대형병원에서 요양병원 등 중소형 병원으로 옮긴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경우 이전 병원 전문의의 임종기 판단을 인용하는 것은 허용할 방침이다. 일반 국민과 환자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19세 이상은 건강할 때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해 등록기관에 보관해 둘 수 있다. 이 의향서의 내용은 향후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회복하지 못할 경우 의사 표현으로 간주된다. 말기·임종기 환자는 담당 의사를 통해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다만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한 병의원에선 이 같은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관계자는 “법 시행까지 1년 반이 채 남지 않은 만큼 서둘러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영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렵게 통과한 법을 다시 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신속히 상세한 시행령과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뻔하지만 이렇게 가정해 보자. 20××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내전이 발생한 한반도를 탈출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이곳에서 김국민 씨는 난민 심사를 받는다. 적게는 1년 반, 길게는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심사 인력이 부족해서다. 동양인이 테러를 일으킨 전례가 있어 심사도 까다롭다. 이 나라에선 난민 신청자에게도 최소한의 의무 교육이 보장되지만 김 씨의 자녀는 예외다. 학교들이 우크라이나어를 할 줄 모르는 학생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현재 한국에서 무적(無籍)으로 난민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7∼18세 어린이와 청소년 474명이 겪는 일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난민 보호율이 14%로 우크라이나(21.8%)보다 낮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난민 신청자를 보는 시각에 불안이 섞이는 현실은 안다. 고용 허가 기간이 끝난 외국인이 조금이라도 더 국내에 남아 있으려 난민 신청을 하고, 거부당하면 행정소송을 남발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외국인 범죄와 무장테러집단도 공포를 키운다. “너희 나라로 가라” “단일민족을 잡종으로 만들 셈이냐” “자국민보다 ○○○ 촌놈 챙기기에 바쁘네” 등등 난민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미 ‘반(反)난민’ 정서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린이, 청소년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에 자의로 오지 않았고, 불법 취업을 목적으로 남으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올해 초 시리아에서 한국으로 탈출한 라바니에 라미 군(15)이 그렇다.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뒤 강제 징집될 처지인 그에게 형이 살고 있는 한국은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는 지난달 가까스로 서울의 한 중학교에 입학해 한국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하지만 모든 난민이 라미 군처럼 운이 좋은 건 아니다. 8∼10세짜리 시리아 난민 신청자 7명은 지난해 9월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했다. 한국말이 서툰 아이를 가르칠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시리아인 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처벌받는데 정작 아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며 낙담했다. 난민 지원 단체가 교무실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 설득한 끝에 간신히 입학 허가를 받은 게 올해 3월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정한 ‘교육받을 권리’가 국내 난민에겐 싸워야 얻을 수 있는 대상인 셈이다. 지난해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코트디부아르 아이 A 군(5)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A 군은 검은 피부색 말고는 한국 어린이와 다를 게 없다. 뽀로로를 좋아하고 프랑스어는 할 줄 모른다. A 군이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적발을 겁내 A 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숨어 사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학적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유령’처럼 성장한 A 군은 ‘선량한 시민’이 될 수 있을까. 쇼팽과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가 난민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한국에서 자란 난민 아이들이 아인슈타인처럼 위대해질 수 있겠냐고 콧방귀를 뀌고 무시한다면 최소한 이렇게라도 생각해 보자. 20××년 우크라이나에서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김국민 씨가 “내 아이도 차별 없이 키워 달라”고 떳떳하게 요구하려면 지금 그가 할 일은 무엇일지.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