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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 고배를 마셨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당시 졌던 빚 2500만 달러(약 267억 원)를 최근에야 완전히 갚았다. 2008년 당시 '힐러리 대선캠프' 측은 22일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지난해 9월 말 7만3000달러 정도 남아있던 빚을 최근 다 청산하고도 오히려 20만5000달러가 남았다고 밝혔다. 힐러리 국무장관이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경쟁하면서 진 선거 빚 2500만 달러는 미국 경선 사상 최다 액수였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도 약 3000만 달러의 자금이 남았었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선 패했지만 정식 본선에선 자신을 적극 밀어준 힐러리 장관에게 '보은'하기 위해 빚을 대신 갚아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이 빚을 갚아주지 않았다. 오바마 지지층 내에서도 경선 때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느라 쓴 돈을 왜 갚아줘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대신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장관을 도와주라는 몇 번의 지지발언은 해주었다. 힐러리 장관은 2008년 말 2500만 달러 중 1320만 달러는 선거캠프에 떠넘기고 나머지만 떠안았다. 이후 자신의 주요 연설을 CD에 담아 장 당 50달러를 받고 파는 가하면 선거 운동 기간 중 확보한 e메일 명단을 팔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힐러리 장관의 빚을 갚기 위해 제일 수고한 사람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공직자로 모금활동을 할 수 없는 아내를 대신해 클린턴 장관은 지지자들에게 후원을 당부하는 e메일을 지속적으로 보냈다. 또 매년 5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보내준 사람 중 한명을 선정해 뉴욕에서 야구경기나 공연 등을 보면서 하루 동안 자신과 보낼 수 있는 이벤트도 꾸준히 열었다. 이들 부부의 4년 반이 넘는 각고의 노력 끝에 힐러리 장관은 국무장관직 사퇴를 앞두고 드디어 빚더미에서 해방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화교 출신 유모 씨(33)의 ‘탈북자 위장입국 및 간첩사건’은 한국 내 탈북자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경력 사기와 관계 당국의 부실한 관리 실태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다.유 씨는 서울시에 제출한 인사 서류에 함경북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고 적었다. 언론 인터뷰에선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유 씨는 경성의전에 입학은 했지만 졸업하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 씨의 말은 둘 다 거짓이었지만 탈북자들이 유 씨처럼 경력을 속였다고 불이익을 받은 전례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이런 일부 탈북자의 거짓말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내막을 아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을 뿐이다.탈북자들의 경력 사기에는 몸값을 부풀리려는 일부 탈북자의 그릇된 사고와 자극적인 증언이나 고위급 탈북자에게만 신경을 쓰는 한국 사회의 풍토,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한 정보 당국의 무책임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짓 권하는 사회“유명 예술대를 나와서 김정일 앞에서 공연한 유능한 예술인.”“북한 주요 기관에서 비밀을 많이 다뤘던 탈북자.”한국의 언론에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탈북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북한에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주장할수록 다른 행사에 초청받을 기회와 개인 수익이 늘어난다는 점이다.물론 언론을 상대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탈북자가 많지는 않다. 또 북한이 한국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그대로 다 드러낼 수 없는 탈북자들로서는 일부 자신의 과거를 가공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동정론도 없지 않다. 그러나 몸값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일부 탈북자로 인해 북한의 실상이 한국 사회에 왜곡돼 전달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두고 탈북자만 탓할 수는 없다. 자극적인 소재만 찾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이들에게 ‘생계형’ 거짓을 권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교회에 간증하러 다닌다는 한 탈북자는 “북에서부터 모태신앙을 가졌다거나 중국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적을 경험했다는 등의 소재가 없으면 다시 불러주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탈북자들에게 수십만 원의 강연비는 매우 큰돈이다.점점 자극적인 소재에만 관심이 쏠리게 되니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거짓말쟁이라는 굴레를 쓰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는 탈북자 사회 전체의 신뢰성을 동반 하락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탈북자의 경력 위조는 한국의 ‘학벌 중시 풍조’와도 연관이 있다. 적어도 북한의 그럴듯한 경력이나 학벌이 있어야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 것은 탈북자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검증되지 않는 경력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거짓 행세를 할 때 이를 적발하거나 정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한국의 정보기관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해 조사받을 때 증언했던 경력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주장하는 경력이 다르다는 것은 쉽게 비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은 신원 확인에 매우 인색하다. 경력을 과장해도 처벌받을 확률은 제로이고 오히려 이득을 취할 수 있는 확률은 큰 상황에서 탈북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한 일이다.○ 몇 번 신문으로 결정되는 북한 경력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일차적인 신문을 받는 합동조사기관 역시 인력과 전문성 부족 문제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엔 탈북자들이 한 달 평균 100명 남짓 입국하지만 과거에 많이 입국할 때는 200∼300명씩 오기도 했다. 많이 입국할 때는 조사 인력이 부족해 진짜 의심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신문 몇 번으로 대충 넘어가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가장 많이 숨기는 것이 학력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더라도 대학 졸업자라고 하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필요한 4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탈북자는 “솔직히 말하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집 근처 대학을 나왔다고 주장하면 넘어가는 사례들도 있다”고 말했다.한국에 이미 정착한 가족이 있는 탈북자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탈북 단계에서부터 대학 졸업생으로 위장해서 입국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빙서류를 갖고 한국에 오는 탈북자가 드물기 때문에 진술에 의존해 경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조사관의 전문성이 높지 않으면 이를 쉽게 밝혀내기 힘들다. 정보기관의 한 전직 직원은 “탈북자 조사관은 승진이 잘 안 되는 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우수한 수사 인력들이 기피하는 자리”라고 말했다.정작 더 큰 문제는 관계 기관에서 처음 조사하는 과정에 밝힌 경력은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지더라도 수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나중에 서류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돼 정정하려고 했더니 ‘한번 작성된 서류는 고칠 수 없다’고 말해 지금도 못 고치고 있다”며 “잘못된 기록은 재조사 과정을 거쳐 고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유 씨의 사례는 앞으로 비슷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어떤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이 조사를 했다면 유 씨가 화교라는 사실을 초기에 밝혀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조사 과정을 통과한 뒤라도 유 씨가 경력을 부풀리는 것을 보고 주의를 주거나, 유 씨가 화교라는 주위 탈북자의 신고를 접한 뒤 재수사를 거쳐서 유 씨의 탈북자 자격을 박탈했다면 그가 공무원으로 취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가 기분 좋게 인사했는데 저를 보는 시선이 이상했습니다. 한 직원이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혹시 나도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닌지 신경이 쓰여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오늘 완전히 ‘멘털 붕괴’입니다.”서울시 공무원 유모 씨가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한 탈북자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최대 1만 명 이상의 신상정보가 북한으로 빼돌려져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여기에 유 씨가 성공한 탈북자로 과거 여러 차례 언론에 나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탈북자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서울 강서구 전영수(가명·53) 씨는 21일 “북한에 자식을 두고 왔고 북한 당국은 내가 한국에 온 줄도 모른다”며 “내 정보도 넘어가 북한 자식들이 큰 화를 당할 것 같아 가슴이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이번 사건으로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른 탈북자들이 사회적 편견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국내 모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김혁 씨(31)는 “최근 들어 탈북자들에게 공직 진출의 길이 확대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사건은 그 분위기를 한꺼번에 잠재울 수 있는 충격적 사건”이라며 “탈북자 전체를 잠재적 간첩으로 보는 사회적 시각이 만들어질 것 같아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탈북단체들도 큰 우려를 나타내며 현재 탈북자 정보 관리 시스템의 재정비를 촉구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홍순경 위원장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접촉한 흔적을 철저히 조사하고 탈북자 정보 관리와 관련된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요즘은 보험회사도 탈북자 명단을 갖고 있고 탈북자 관련 책자나 언론 등을 통해 탈북자들의 정보가 많이 새나가고 있다”며 “이런 부분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간첩 몇 사람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열심히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는 많은 탈북자가 고립될 수 있다”며 “탈북자들을 감싸 안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주성하·박희창 기자 zsh75@donga.com}

탈북자들의 인적 정보를 북한으로 빼돌리다 체포된 서울시청 공무원 유모 씨(33)는 탈북자로 가장해 위장 입국한 북한 화교 출신인 한족(漢族)으로 21일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탈북자 간첩사건’이 아닌 ‘화교의 탈북자 위장 입국 및 간첩활동’ 사건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대목이다.한 소식통은 “국가정보원이 약 5년 전부터 유 씨가 탈북자가 아니며 북한도 몰래 다녀온다는 신고를 받고 감시하다 이번에 증거를 잡고 체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1년경에도 경찰과 기무사가 신고를 받고 유 씨의 내사에 착수했다가 손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보당국이 주시하는 기간에도 유 씨는 탈북자 담당 공무원에 버젓이 임명돼 수천 명의 목숨과 직결될 수도 있는 민감한 탈북자 정보들을 빼돌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당국이 탈북자 정보 유출의 파장보다는 ‘실적 만들기용’ 덫을 놓는 데 집착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 탈북단체장은 “유 씨처럼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정착한 북한 출신 화교들이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안다. 이를 관계당국에 제보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 씨는 최근 여동생까지 탈북자로 위장해 북한에서 빼내 한국에 데려왔으며 이 여동생은 현재 관계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의 북한 및 한국 내 행적을 관련 소식통들의 설명을 빌려 종합해 재구성한다.유 씨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2004년 4월.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57기로 졸업한 그는 대전에 정착했다. 싹싹한 성격에 반한 담당 형사는 그를 양아들로 삼았다. 이후 서울 소재 모 명문사립대 중국어과에 입학하면서 서울 서대문구와 송파구에서 살았다. 유 씨는 서울시 공무원이 되기 전 중국에서 장뇌삼이나 그림을 가져와 북한산이라고 주장하며 팔았다. 2008년엔 환치기 수법으로 26억 원을 중국에 보내려다 적발돼 서울동부지검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환치기 업자들은 벌금형을 받았지만 유 씨는 단순 가담자라는 이유로 큰 처벌은 면했다.유 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에도 북한에 3, 4번 밀입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밀입국은 2006년경으로 어머니 사망 소식을 듣고 방북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교인 유 씨는 중국 여권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엔 화교로 등록돼 있어 중국을 거쳐 남북을 오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유 씨는 이때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며 장사하는 화교 중엔 북한 보위부 첩자로 암약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북한 보위부는 이들의 통관 편의를 봐주는 대신 중국과 한국의 탈북자 정보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 역시 부친의 장사 편의를 봐주고 아무 때나 북한에 와서 가족을 만나도 된다는 회유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 유씨, 청진의대 나왔다는 말도 거짓말 ▼이후 유 씨는 한국에서 한 남북청년모임 회장을 맡는가 하면 한국의 각종 북한 인권단체에 가입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유 씨가 화교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한 탈북자는 “그는 북한인권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까지 갈 정도로 열성이었다”며 “화교가 탈북자 인권활동을 벌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 씨의 북한 생활유 씨는 모범적인 정착 사례로 한국의 여러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유 씨는 함경북도 청진시를 고향이라고 소개했고 청진의대를 나온 뒤 외과의사를 1년간 하다 탈북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의 고향은 두만강 옆 함경북도 회령시 오봉리이며 1990년대 초반 회령시내 성천동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한족인 유 씨의 할아버지 이름은 류린당이며 부모 역시 한족으로 알려졌다. 유 씨의 본명은 류광일이다. 북한에서는 유 씨의 성을 류 씨로 표기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화교들은 일반 북한 주민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가난했다. 하지만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한 뒤 화교들도 1990년대부터 급속히 부를 축적했다. 지금은 북한에서 가장 선망받는 집단으로 떠올랐다. 자유롭게 중국을 왕래할 수 있는 화교들은 중국 공산품과 북한 농수산물을 거래하는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었다.성천동에는 화교가 세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유 씨 집안은 크게 사업을 벌인 다른 두 가족보다는 사정이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높은 담장을 세우고 사나운 개를 키울 정도로 동네 주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유 씨는 청진시 포항구역 수북동의 화교 학교에서 6년간의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북한에선 중국 국적자인 화교는 일반 중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다. 또 원칙적으로 대학도 다닐 수 없다. 유 씨가 졸업했다고 거짓 증언한 청진의대는 화교 학교 바로 옆에 있다.유 씨는 중국의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한국의 발전 소식을 접한 뒤 다른 탈북자들 틈에 섞여 한국으로 왔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실정을 잘 알고 있어 관계기관을 속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모 씨가 간첩 혐의로 구속되면서 탈북자 지원과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공안당국은 유 씨가 관리하던 서울 소재 탈북자 명단과 주소가 북한에 넘겨졌을 경우 탈북자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사안으로 보고 있다. 유 씨가 관리해 온 탈북자 정보는 1만여 명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2만4000여 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다. 주소 및 신상정보가 노출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우선 위협받게 된다. 북한은 가족을 인질로 삼아 탈북자를 회유하거나 협박해 간첩활동을 지시할 가능성이 크다. 가족을 죽인다고 협박하면서 간첩활동을 강요하면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어렵다. 과거 탈북자 간첩사건들도 북한 보위부가 가족을 인질로 삼아 협박한 사례가 대다수다. 지난해 북한으로 재입국한 박인숙 씨와 김광혁 고정남 부부도 가족을 처벌한다는 압력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이 주시하는 몇몇 주요 탈북자는 1997년 이한영 씨 피살사건 같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탈북자 대다수는 임대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쉽게 이사 갈 처지도 못 된다. 이번 사건으로 말단 계약직공무원이 국가 안보에 중요한 극비 정보를 빼낼 수 있도록 방치된 관리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안유지를 위해서는 탈북자 정보를 소수의 제한된 공무원만 다루도록 해야 하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탈북자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선 지자체 단위의 행정업무가 필요해 정보가 지자체 단위에까지 공유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계약직원에게 맡겨진 탈북자 정보관리 업무를 상위 정규직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 씨가 어떤 이유로 간첩활동을 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당국은 “간첩 임무를 위해 위장 탈북했다”는 주변 탈북자들의 참고인 진술로 미뤄 유 씨가 처음부터 위장 탈북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탈북 이후 유 씨 가족이 있는 함경북도 보위부에 의해 포섭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유 씨가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기려는 목적으로 서울시 공무원에 지원했는지, 공무원이 된 뒤 포섭이 됐는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유 씨는 서울시에 취직한 뒤 야간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주말에는 ‘영한우리’라는 남북 청년모임을 만들어 탈북 대학생들의 정착을 돕기도 했다.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름을 알린 것도 탈북자 정보 수집에 도움을 준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탈북자들의 정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탈북자 간첩사건과 재입북사건은 편견과 불신에 시달리는 탈북자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궁지에 몰린 탈북자들을 간첩으로 활동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최예나·주성하 기자 yena@donga.com}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앞으로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 외부와 통화할 수 있게 된다고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지금까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세관에 휴대전화를 맡겼다 출국할 때 찾아가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과 이집트 합작 휴대전화 업체 ‘고려링크’의 한 이집트인 기술자는 “7일부터 북한 세관에 휴대전화기 식별번호를 등록하기만 하면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방식의 3세대(3G) 휴대전화 사용자는 북한에서 판매하고 있는 외국인 전용 50유로(약 7만 원)짜리 ‘고려링크 유심(USIM)카드’를 사서 끼우면 국제전화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외국인이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더라도 ‘국내 전용 유심카드’를 사용하는 북한 주민과 통화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 반입 허용은 해외의 대북 투자자들이 가장 큰 불만을 나타내는 이른바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 중 하나가 풀리게 된 것으로 매우 주목되는 조치이다. 북한이 외국인 휴대전화 반입 허용 방침을 개성공단에 출입하는 한국 국민들에게도 적용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가 평양에 찾아갔던 9일 북한 TV에선 ‘내가 본 나라’라는 영화가 방영됐다. 2009년 5월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한 직후 일본이 미국과 공동으로 북한을 강경 제재하려다 실패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에 바로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핵실험에 따른 제재를 천명한 미국과 일본에 맞서 김정일이 “추출한 플루토늄을 전량 핵무기로 만들겠다”고 강경대응하자 이에 굴복한 미국은 대화로 방향을 선회해 리처드슨 당시 뉴멕시코 주지사를 특사로 보내려 한다. 영화에는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의원들이 “그런 높은 급의 특사를 파견하면 안 된다. 당장 막아야 한다”고 격앙돼 소리치는 장면도 나온다. 북한이 이 영화를 방영한 속셈은 뭘까. 영화 속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2009년 핵실험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항복을 표시하기 위해 선정한 특사다. 북한은 그런 목적의 대북 특사가 지난해 12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한 직후 다시 북한에 찾아온 것처럼 선전하려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주입시키려는 메시지는 영화의 맨 마지막에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남성합창단의 노래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정일 장군님 온 세계를 이끄신다. 김정일 장군님 만만세….” 리처드슨 전 주지사 일행은 자신들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이런 영화가 방영된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에 한껏 들떠있는 북한은 마침 제 발로 찾아온 이들을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이 세계 정치를 좌우한다는 것을 선전하는 홍보모델로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이번 방북 목적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한국계 미국인 배모 씨 억류 사태로 교착상태인 북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귀국길에 오른 10일 베이징 공항에서 “배 씨의 석방과 관련한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 등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번 방북으로 거둔 한 가지 성과가 있다면 억류된 배 씨에게 그의 아들이 쓴 편지를 전달해주겠다는 약속을 북한에서 받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문은 또 방북단을 ‘쓸모 있는 바보’ ‘김정은의 정당성을 확인시키려는 북한 선전당국의 먹잇감’이라고 비난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존 볼턴 전 유엔 대사의 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도 이번 방북에 대해 “우리는 거기에 관여하지 않았다. 시점이 부적절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남쪽에도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어떻게든 평양을 찾아가 몸값을 높이려는 인사가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리처드슨 일행의 초라한 방북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김일성대 시절, 겨울방학 뒤 의례적으로 진행되던 문답식 학습경연이라는 연례행사가 있었다. 대학 내 14개 학부가 3일 동안 수업도 안 하고 강당에 모여 월드컵처럼 토너먼트를 치러 승자를 가린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각 학부는 다시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부터 학생들을 지방에서 불러올려 밤새 모범답안을 외우게 한다. 정식 경쟁이 시작되면 제비뽑기로 선택된 ‘운 없는’ 학생들이 연단에서 수천 개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땀을 빼며 상대가 낸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대답을 잘못한 학생은 ‘미제’보다 더 큰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살벌한 사상투쟁회의 대상이 되고, 졸업할 때까지 찍혀버린다. 하긴 그 학생 때문에 학급 소대장부터 학부 당비서까지 수십 명이 줄줄이 연좌제로 비판무대에 서야 한다. 문답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제 중 하나가 신년사 관련이었다. 살기 위해선 지난해 성과와 올해의 각종 과제를 열거한 신년사 분량보다 결코 적지 않은 답안을 줄줄 외워야 했다. 그렇게 혹독하게 신년사 공부를 하고 나니 6년 뒤 대학을 졸업할 때쯤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돼 한 가지 깨달음은 얻었다. “신년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헛소리다”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신년사 내용대로라면 북한은 오래전에 선진국이 돼 있어야 한다. 과장되고 거창한 문장과 추상적인 목표 제시로 가득 찬 신년사 정도는 나도 하루면 쓸 자신이 있다. 올해는 김정은이 직접 신년사를 낭독해서인지 주민들에게 한 달 기간을 주고 이를 몽땅 외울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내가 일찍 탈북한 것이 참 다행스럽다. 남쪽에도 북한 신년사가 발표되면 단어 사용 빈도까지 따지며 열심히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심지어 수십 쪽짜리 보고서도 있다. 그런데 신년사와 현실은 어떤가. 2010년 북한 신년공동사설에는 “북남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적극 실현해야 한다. 민족공동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화해를 도모하며 협력사업을 추동해야 한다”는 온갖 좋은 말이 다 있었다. 이를 보고 남쪽의 박사 8명이 “남북관계의 개선과 경제협력의 증진을 위한 의지를 강하게 표명함. 매우 유화적인 대남태도를 보임”이라는 공동 분석보고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 순간 서해 어디쯤에선 북한 특공조가 잠수함 공격 맹훈련을 벌이고 있었다. 불과 석 달도 안 돼 천안함이 공격당했고 연말엔 연평도 포격으로 한반도가 전쟁 직전까지 갔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2006년에도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대결구도나 관망보다는 실용적인 접근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전망됨”이란 공동사설 분석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올해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2013년을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거창한 창조와 변혁의 해’라고 규정했다. 이런, 신년사마저 꼭 빼닮은 3대 세습이라니. 그러니 오래전에 내가 얻은 깨달음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다. 그냥 안들은 셈 치는 거다.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향한 북한의 화해 제스처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2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2013년 신년사는 동족대결로 초래될 것은 전쟁뿐이라고 경종을 울렸고 이는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강조한 (박근혜) 당선자에게 대담한 정책전환을 촉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 달간 북한이 대남기조에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 왔으나 박 당선인을 향해 대북정책 전환을 직접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1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대결인가 대화인가, 전쟁인가 평화인가, 제2의 이명박인가 아닌가 선택하라”는 공개질문장을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실명 비난을 자제해 왔다. 대선 이튿날인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은 이례적으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결과를 보도했다. 같은 달 27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국방백서 발간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차기 정부는 이명박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며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 사이에 선을 그었다. 1일 신년사에서 북한은 남한 정부에 대한 비난 내용을 아예 담지 않았다. 노동신문도 2일 “김정은 동지의 신년사를 높이 받들자”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여 나가야 한다”고 선동했으나 대남 비방 내용은 없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담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전날 북방한계선(NLL) 사수 발언 등을 언급하며 “반역의 무리들은 그대로 숨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북남관계는 지난 5년처럼 또다시 대결과 전쟁이냐, 대화와 평화냐 하는 엄숙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말해 대북정책 기조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떠보기’ 성격이 큰 것 같다”며 “북한은 대화 공세를 펼치다가도 언제든 도발과 대남 위협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신들도 북한 신년사와 최근의 변화 기조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그동안 박근혜 당선인을 ‘광적인 대립주의자’나 ‘파시스트’로 불렀지만 대선 이후 박 당선인에 대한 공격을 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신년사의 대부분을 경제발전에 할애했다”고 보도했다. 조숭호·주성하 기자 shcho@donga.com}

한국의 전문가들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중국 일본의 분쟁과 마찰이 심화될수록 한반도의 긴장 역시 고조돼 경제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여건은 결국 현명한 외교와 리더십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는 한국 정부가 특정 이슈에 경직된 태도를 보이지 말고 주변국과의 협력과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미중일은 물론 북한까지 포함한 다양한 대화 외교를 복원시켜 신뢰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안보의 초석인 한미동맹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대화를 더욱 강화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확대시키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동북아 다자안보질서 구축에 힘을 쓰고 예방외교를 벌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외교안보는 미국에 크게 의지하지만 경제적으론 중국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한국은 미중 간 갈등 시 어느 한편을 택하기보다는 갈등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과 주변국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 강화를 주문했다. 윤 교수는 “동북아 국가들 간의 인적네트워크 강화와 경제 문화적 협력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며 세계 3대 경제권의 지위를 굳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양보하기 힘든 영토분쟁이 계속되면 동북아의 미래는 없다”면서 “미래를 위해 민감한 이슈는 잠시 접어두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소장은 철저한 계산에 기초한 틈새 외교를 주문했다. 이 교수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현실을 직시하고 틈새를 치고 들어가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철저히 계산된 외교가 필요하다”며 “너무 공세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위축되는 외교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실력에 맞는 균형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982년 1월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사진)의 아들인 마크 대처는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아프리카 사막에서 6일간 실종됐다. 그를 찾기 위해 알제리와 프랑스의 비행기 8대가 동원됐고 마크는 무사히 구조됐다. 2월 12일 대처 총리는 외교부에 “아들 구출에 소요된 비용은 내가 개인적으로 지불하겠다. 그래야 영국 납세자들에게 (개인적 필요 때문에) 한 푼의 세금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청구서를 내민단 말인가.” 외교부는 전체 구출 비용 2359파운드 중 국민 보호를 위한 공식적인 활동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비용을 뺀 1789파운드만 대처 총리에게 청구했다. 이 같은 내용은 28일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30년 만에 공개한 비밀기록에서 확인됐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1982년 영국의 가장 큰 사건은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전쟁이었다. 공개된 비밀문서는 대처 총리가 전쟁 승리에 대한 확신이 거의 없음에도 군을 포클랜드로 파병했음을 보여줬다. 대처 총리는 종전 뒤 “전쟁은 나에게 최악의 순간이었고 영국군이 (실패해) 돌아왔을 경우 ‘영국에 최악의 모욕이 됐을 것’”이라고 두려움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그는 영국이 영토도 지키지 못하는 종이호랑이 신세로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록 속에는 대처 총리의 ‘철의 여인’다운 강단도 나타났다. 전쟁 중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국제기구를 통한 협상을 제언하자 “알래스카가 침략을 당해 전쟁을 벌인다면 그땐 나도 이를 국제기구에 넘기겠다”고 되받았다. 또 아르헨티나군이 발사한 것으로 영국 군함을 침몰시킨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을 당장 훔쳐오라고 지시했던 일도 이번에 공개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올해 고등학교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광복을 맞은 해 또는 6·25전쟁 발발 연도 등 기초적인 역사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남북 해상경계선인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학생은 불과 12%에 불과한 반면 전혀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는 학생은 44%에 이르러 통일안보 교육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6·25전쟁 종전 60주년(2013년)을 앞두고 지난달 15∼30일 서울 경기 지역 12개 고교 3학년생 1168명을 대상으로 통일안보관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광복을 맞은 해와 6·25전쟁 발발 연도를 아는 학생은 49%에 불과했다. 31%는 ‘하나만 안다’고 답했고 20%는 ‘둘 다 모른다’고 응답했다. NLL에 대해 ‘잘 안다’가 12%, ‘조금 안다’가 44%였다. ‘전혀 모른다’와 ‘관심 없다’는 대답도 각각 28%와 16%였다. 6·25전쟁에서 한국을 도운 유엔 16개 참전국을 모두 아는 학생은 6%에 그친 반면 ‘전혀 모른다’거나 ‘관심 없다’는 대답은 30%나 됐다. 통일과 관련해 ‘통일을 원한다’는 학생은 48%였으며 ‘통일이 안됐으면 좋겠다’는 대답은 34%였다. ‘통일이 되든 안 되든 별 관심이 없다’는 응답도 18%나 됐다. 애국가를 4절까지 다 아는 학생은 43%였지만 ‘1절만 안다’는 학생이나 ‘1절 일부만 안다’는 학생도 각각 20%와 3%로 조사됐다. 외국 언론도 이에 관심을 나타냈다. 미국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최신호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지만 전쟁은 젊은이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잊혀진 전쟁’을 보여주는 사례로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군 복무기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들었다.주성하·백연상 기자 zsh75@donga.com}

탈북자인 기자는 북한에서 두 번의 선거를 겪었다. 북한의 선거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뿐이다. 두 선거가 무슨 선거였는지, 대의원이 누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결과는 100% 참가, 100% 찬성이었을 것이다. 참, 요즘엔 멋쩍은지 참가율을 99.97%로 발표하던데, 어쨌든 찬성률은 100%이다. 투표장에서 표 하나를 주고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투표함에 넣게 하니 반대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두 선거의 추억은 완전히 상반된다. 김일성대 시절의 첫 번째 선거는 괜찮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나는 공사에 동원됐는데, 선거날 모처럼 휴식을 할 수 있었고 기숙사 식당에선 맛있는 특식이 세 끼 나왔다. 무엇보다 가장 신 났던 건 오후부터 저녁까지 광장 무도회에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클럽 문화가 없는 북한에서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이 몸을 풀 수 있는 때는 몇몇 명절에 무도회를 할 때뿐이다. 잘하면 여자친구도 생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젊은 남녀 누구나 제일 좋은 옷에 반짝반짝 광을 낸 구두를 신고 무도회장에 나타났다. 투표 결과 같은 것은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 두 번째 선거는 대학 졸업 후 어느 겨울 독감으로 40도의 고열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불참 이유 같은 것은 따지지 않기에 하늘땅이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 무슨 정신으로 투표장에 갔다 왔는지 모른다. 비틀거리며 투표장에 갔다고 충성심을 높이 평가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죽지 않는 한 참가해야 하는 것이 투표니까. 그 바람에 일주일은 더 앓았던 것 같다. 한국에 와서 맞은 첫 대통령 선거 때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으며 매우 감격했다. “아, 내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나라에 왔구나.” 그런데 지금은?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서 살다 남쪽에 와서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된 나 같은 사람은 투표 때마다 항상 감개무량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감격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멋모르고 했던 첫 투표를 제외하면 이후부턴 선거 때마다 몇 달 동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 선택의 자유가 만든 선택의 스트레스라니. 그냥 노동당이 정해 준 사람 찍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마치 내 손에 국운(國運)이라도 달린 것 같은 의무감을 느낀다. 아무리 따져 봐도 이 후보는 이게 마음에 들고, 저게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쨌든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별것 아닌 개인적 선택에도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늘 고민하고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을 골라야 하니 너무 어렵다. 더구나 내가 믿어야 할 사람은 정치인이다. 공약을 꼼꼼히 따져 보고 선택하고 싶지만 항상 게도 가재도 다 잡겠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뜬구름뿐이다. 공약을 일목요연하게 한꺼번에 정리한 표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언론은 후보들이 툭툭 던지는 말과 돌발사건을 쫓기에 정신없다. 나보고 다 챙기라고? 찍은 후보가 낙선했을 때의 실망감, 찍은 후보가 당선돼 기대에 어긋날 때 느껴야 할 실망감까지 다 내가 투표의 대가로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다. 그래도 기권하고 싶지는 않다. 목숨을 내건 대가로 얻은 정말 정말 소중한 투표권이니까. 내가 찍은 후보는 이것만큼은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당신을 찍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했다는 것을. 당신의 공약이 아주 마음에 들어 찍어 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단지 상대보다 아주 조금 나았을 뿐이다(혹 당신이 나를 착각시켰을 수도 있다). 당신이 당선됐다 해도 내가 싫은 정책은 다음 날부터 비판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오늘 투표장에 간다. 몇 달 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오늘 때문이 아닌가.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바코드 발명으로 세계 유통업계에 혁신을 가져온 노먼 조지프 우드랜드 씨(사진)가 9일 별세했다고 13일 가족들이 발표했다. 향년 91세. 우드랜드 씨는 미국 뉴저지 에지워터에 있는 자택에서 알츠하이머 합병증으로 운명했다. 필라델피아 드렉설 공과대 대학원생이었던 우드랜드 씨는 학교 친구인 버나드 실버와 1940년대 말 바코드를 발명했고 1952년 특허를 인정받았다. 바코드 스캐너 개발 등 우드랜드 씨의 활약으로 IBM사는 경쟁사인 RCA를 누르고 오늘날 50억 개 이상의 상품에 탑재된 바코드 기술을 선점할 수 있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 뉴욕 월가에서 활동하는 유명 한국계 펀드매니저가 내부자 거래 혐의로 거액의 벌금을 내게 됐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헤지펀드 타이거아시아 매니지먼트의 빌 황(황성국·47·사진) 대표가 유죄를 인정하고 총 6030만 달러(약 647억 원)를 내는 조건으로 민형사상 사건에 합의했다고 12일 전했다. 황 대표는 12일 뉴저지 주 뉴어크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1630만 달러(약 175억 원)를 내기로 뉴저지 연방검찰과 합의했다. 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자신과 타이거아시아, 이 펀드의 수석 트레이더인 레이먼드 박을 상대로 낸 민사 소송에 대해서 총 4400만 달러(약 472억 원)를 내기로 합의했다. 황 대표는 2008년과 2009년 중국은행과 중국건설은행의 주식을 부당 거래해 거액의 불법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타이거아시아는 이들 은행의 주식 발행을 앞두고 거래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합의하에 주식 발행 주관사로부터 건네받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해당 주식을 공매도해 막대한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는 월가에서 활약하는 한인 금융인 250여 명 중 성공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중국 경제가 2030년 이전에 미국을 추월하면서 ‘팍스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평화)’ 시대가 저물 것이다. 아시아의 힘은 미국과 유럽을 합친 것보다 더 커질 것이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국들이 세계의 패권을 나눠 가질 것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10일 발간한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 2030’에서 20년 뒤의 지구촌 모습을 이같이 예측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등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NIC는 4년마다 미래 세계 질서를 전망하는 보고서를 내고 있다. 보고서는 2030년에 아시아가 경제규모 인구 군비지출 기술투자 등 주요 지표 모두에서 북미와 유럽을 합친 것보다 앞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 옛 소련 붕괴 이후 형성된 미국 중심의 ‘유일 강국’ 시대는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중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되더라도 리더십을 갖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동급 최강’으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미국과 유럽, 일본 경제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의 56%에서 2030년에는 절반에 한참 못 미칠 정도로 위축되는 대신 각 대륙 중간급 국가의 부상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세계적인 금융회사 골드만삭스가 한국을 포함해 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멕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필리핀 터키 베트남을 지칭해 이름을 붙인 ‘넥스트 일레븐’의 전체 경제력은 2030년에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경제모델로 전환하는 데 실패하면 아시아의 ‘1등급 국가’로는 남겠지만 영향력은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중국은 5년 뒤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1인당 소득 1만5000달러(약 1614만 원)에 도달하겠지만 이 순간에 민주화 운동이 촉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민주화된 중국은 더욱 국수주의적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고서는 인도의 경제성장 가능성에도 크게 주목했다. 노동가능 인구 성장률이 중국에 크게 앞서는 인도는 2048년경 미국을 따라잡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다고 분석했다. 2030년이면 세계 중산층의 절대 다수를 중국과 인도의 중산층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71억 명인 세계 인구는 2030년 83억 명으로 증가하며 중산층 규모도 현재의 10억∼20억 명에서 30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향후 15∼20년 내에 유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 대다수 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나며 대다수 국가에서 중산층이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계급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산층의 부상으로 개인 시민단체 국제기구의 힘과 역할 또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2030년에 인류가 맞닥뜨릴 과제는 EU와 유로화의 붕괴, 전염병 창궐, 중국의 경제 붕괴, 핵전쟁과 사이버 공격이라고 제시했다. 특히 보고서는 북한과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해 보유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붕괴되는 최악의 상황이 닥쳐온다고 밝혔다. 한편 보고서는 통일이 되면 한국은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면서 한반도 통일은 동북아 질서 재편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년 전 NIC가 작성한 보고서는 2025년에 한반도에 하나의 통일국가는 아니라고 해도 모종의 남북연합 형태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번에는 통일국가를 염두에 둔 분석을 내놨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바이러스로서의 기능을 잃게 한 비활성화된(disabled)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이용해 어린이 백혈병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성공을 거뒀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9일 보도했다.2년 전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은 에마 화이트헤드(7)는 올봄까지 두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의사들은 더이상 치료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이트헤드의 부모는 올 4월 딸을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의 실험적 치료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연구팀이 환자의 몸에 비활성화된 HIV를 투입한 지 7개월여가 지난 최근 그는 암세포가 없어졌으며 완전한 회복세를 보였다고 NYT는 전했다. 소아혈액암 환자에게서 비활성화된 HIV 투입 치료가 시행되고 효과가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현재까지 11명의 환자에게 이 같은 임상실험 치료를 해 화이트헤드 등 4명을 완치시키고 4명은 호전됐다. 하지만 2명은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1명은 호전된 뒤 재발했다. 만성백혈병을 앓아온 성인 환자에 대한 치료에서는 2명이 치료 후 2년 이상 재발하지 않았으며 4명은 호전은 됐으나 완전히 치료되지는 않았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비활성화된 HIV는 환자의 몸에 들어간 후 암세포를 죽일 수 있도록 면역체계를 유전적으로 바꿔 암을 퇴치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우리 기자가 목숨 걸고 유경호텔 안에 잠입한 최초의 외국인이 됐습니다.”최근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가 몰래 유경호텔에까지 잠입해 내부를 둘러본 영국 데일리메일 사이먼 패리 기자의 ‘모험담’이 눈길을 끌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호텔 내부에 들어갔던 패리 기자가 총을 든 북한 군인에게 쫓겨나기까지의 과정을 8일 자세히 전했다.언론인의 방문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패리 기자는 사업가로 위장해 4일간의 관광 비자를 받았다. 가이드인 ‘정 동무’에게 유경호텔 관광을 요청했지만 멀리서 구경시켜줄 뿐이었다. 패리 기자는 절대 호텔을 벗어나지 말라는 정 동무의 경고를 무시하고 조깅하는 척하면서 오전 5시 45분 숙소인 양각도호텔을 ‘탈출’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평양 거리에서 그가 마주친 평양 주민들은 석탄과 땔나무가 든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는 30분 이상 달려 유경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의 관심사는 몇 년 전 ‘가장 흉물스러운 세계 10대 건축물’ 1위에 꼽혔다가 최근 1억1100만 파운드(약 1927억 원)짜리 유리외관 공사를 마친 유경호텔의 내부 모습이었다.패리 기자는 진입도로에 있는 3개의 단속 초소와 군인들 사이를 쏜살같이 달려 무사히 호텔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그를 도와주었다.하지만 내부에서 패리 기자가 본 것은 시멘트벽과 공사하느라 여기저기 방치된 자재 전선뿐이었다. 그는 무슨 용도의 방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시멘트 동굴 같은 미로를 한참 헤맸다. ‘서방인 최초의 호텔 방문’은 약 5m 앞에 자동소총을 든 북한군 병사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끝났다. 병사의 손이 총에 가는 순간 두 손을 올리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 패리 기자는 뒤로 돌아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다행히 추격은 없었다.그가 양각도호텔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날이 밝아 거리에 출근행렬이 이어질 때였다. 어떤 아이들은 혼자 거리를 뛰어가는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수백 m를 따라오기도 했다. 총을 메고 지나가던 군인 30여 명도 멍하니 바라만 볼 뿐 제지하진 않았다.그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화가 난 정 동무가 나타났다. 패리 기자를 한쪽으로 끌고 간 정 동무는 “오늘 아침 카메라를 들고 호텔을 나선 것을 확인했다”며 다른 동료들과 함께 카메라를 뺏어 하나하나 확인했다. 패리 기자는 호텔 주변을 돌았을 뿐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설명해 가이드를 납득시켰다. 이후 패리 기자는 비무장지대와 묘향산 등 다른 관광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패리 기자는 음악 감상용 아이팟 하나가 신의주 세관을 통과하는 데 몇 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아빠가 너희를 꼭 찾아갈게.” 미국 로스앤젤레스 불법체류자 수용시설에 오렌지색 옷을 입고 억류되어 있던 엘살바도르 출신의 루이스 로드리게스 씨(43). 그는 면회장 투명유리창 너머에서 자신을 보며 울고 있는 여섯 살과 다섯 살 난 딸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가 지난해 5월 엘살바도르로 송환되기 직전의 일이다. 미국에 불법 체류하던 사람들이 적발돼 본국에 강제 송환될 때 자녀를 함께 데려갈 수 없어 또 다른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미 언론이 전했다. 10대에 미국에 와 살아온 로드리게스 씨는 2008년 11월 로스앤젤레스의 한 마트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됐다. 금반지 3개를 약탈한 총기강도라는 혐의였다. 수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에 2009년 1월에 1차 추방됐다. 역시 밀입국자였던 부인은 2년 전인 2007년 추방됐다. 로드리게스 씨 부부가 모두 추방돼 두 딸은 불법체류자 자녀 보호시설에 보내졌다. 미국 법에 따르면 불법체류자로 송환되는 부모들은 본국에서 자녀를 안정적으로 양육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다. 로드리게스 씨는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집도 없고 고향은 갱단이 득실거리는 위험지역이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미국 땅에 두 딸을 남겨둔 로드리게스 씨는 아이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엘살바도르에서 과테말라와 멕시코의 약 3200km를 종단해 미국과의 국경까지 와 밀입국을 시도했다. 그는 멕시코 경찰에 두 차례 체포돼 본국에 송환됐으나 지난해 2월 9일 세 번째 시도 끝에 밀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 경비대에 체포됐다. 체포되고 한 달 뒤 그는 로스앤젤레스 밀입국자 수용시설에서 두 딸과 면회를 할 수 있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보며 눈물만 흘려야 했다. 그는 미 당국에 망명 신청도 했지만 기각돼 지난해 5월 다시 본국으로 추방됐다. 더욱이 한 달 뒤에는 미국 법원에서 열린 결석 재판에서 자신의 양육권도 박탈당했다. 로드리게스 씨는 그 사실도 몰랐다. 얼마 뒤 두 딸은 어느 부유한 가정에 입양됐고 그 후 소식이 끊겼다. 그는 올 2월 다시 미국으로 밀입국하다 체포돼 몇 달간 수감생활 끝에 또 추방됐다. 그가 4년 가까이 네번의 밀입국을 시도하며 헤맨 거리는 2만5000km가 넘는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일 그의 사연을 전하며 자녀와 강제로 헤어진 불법체류자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보도했다. 2008년 이래 미국에서 추방된 불법체류자는 100만 명 이상. 로드리게스 씨의 두 딸처럼 추방된 부모와 헤어져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는 5000여 명이나 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 캘리포니아 주 치노힐스 시 주민 수십 명이 1일 중국인 임신부들의 원정 출산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주거지역에 있는 한 주택이 ‘앵커 베이비(anchor baby)’를 낳으려는 중국인 임신부들의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다며 ‘원정 출산은 그만’ ‘미국에선 사절’ 등의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앵커 베이비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취득한 자녀가 이후 가족들도 시민권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닻(anchor)’ 역할을 한다고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