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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북한 미국이 4, 5월 열릴 남북, 북-미 ‘릴레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여 ‘몸 풀기 대화’에 나선다. 20일부터 1박 2일 동안 핀란드 헬싱키에서 학술회의 형식으로 열리는 반민반관(半民半官·정부도 관여하는 민간대화 채널)의 ‘1.5 트랙’ 대화다. 민간인이 대거 참석하지만 사실상 릴레이 정상회담의 사전 물밑 접촉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미 3자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비확산 국제회의’에서 회동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그동안 열렸던 ‘1.5 트랙 대화’는 북한의 연쇄 도발과 미국의 대북제재로 긴장 일변도였던 북-미 관계에서 거의 유일한 숨구멍 같은 역할을 해왔다. 유엔 북한대표부와 미 국무부 사이에 가동되던 뉴욕채널이 막혀 있을 때도 스웨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제3국에서 열리는 1.5 트랙은 북-미 간 소통창구였다. 그나마 북-미는 간헐적으로 접촉했지만, 남북 및 남-북-미 간 의미 있는 접촉은 거의 ‘0’에 가까웠다. 한국 측 패널로 참석하는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미 간에는 가끔 만나왔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평창 모멘텀 이후) 국면도 좋고 하니 북한에 (1.5 트랙 대화에 참석해도 되느냐고) 의중을 물어봤고, 북한이 수용하면서 3자 대화가 열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백지토론 해보자는 생각”이라며 “그러다 보면 한반도 비핵화 방안이나 대화에 임하는 북측 의중, 정세 관련 생각이 드러나지 않겠나 싶다”고 덧붙였다. 각국의 참여 인사만 봐도 기존 1.5 트랙 대화보다 무게감이 느껴진다. 북측을 대표할 것으로 보이는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은 1994년 제네바 협상 실무도 했던 북-미 대화 전문가다. 지난달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계기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방한한 최 부국장은 당시 미 대표단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는 최근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한 최선희 북아메리카국 국장을 대신해 북한의 대화국면용 새 협상 ‘일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한 후 북한이 이에 대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라, 최 부국장이 김정은의 또 다른 메시지를 들고 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화파로 분류되는 토머스 허버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대사가 포진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첫해 주한 미대사로 재직했던 허버드 전 대사는 미국 내 한국 관련 대표 단체 중 하나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을 맡고 있고,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비둘기파다. 로버트 칼린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객원 연구원은 북측 인사들과 접촉해 이번 대화의 실무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대표로는 신각수 전 주일대사와 신정승 전 주중대사, 백종천 세종연구소 이사장(전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 김동엽 경남대 교수, 김준형 교수가 참석한다. 신각수, 신정승 전 대사는 북-일 정상회담과 북-중 관계 개선에 대한 조언을 건네고, 노무현 정부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경험한 백 이사장은 남북대화 의제에 대한 대화를 나눌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의 다발적인 접촉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17, 18일(현지 시간)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 및 북-미 회담에 대해 논의했다. 19일 유럽연합(EU) 외교이사회 참석차 벨기에를 방문한 강경화 장관도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지난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스웨덴 방문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남북이 20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을 위한 남북실무접촉을 갖기로 했다. 우리 측 예술단 수석대표 겸 음악감독은 작곡가 겸 가수인 윤상 용인대 실용음악과 교수(사진)가 맡는다. 대중문화계 인사가 남북 접촉에서 수석대표로 나선 것은 처음이다. 18일 통일부는 우리 측 회담 대표단으로 윤 씨를 포함해 박형일 통일부 국장, 박진원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임명됐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윤 씨를 수석대표로 지명한 데 대해 “평양 공연이 대중음악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 윤 씨가 공연 준비 능력에서 검증된 인사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윤 씨 소속사인 오드아이앤씨 측은 “좋은 취지여서 수석대표직을 수락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가수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등을 작곡한 윤 씨는 미 버클리음대와 뉴욕대 대학원에서 대중음악을 전공했다. 북측에선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북측 예술단을 이끌었던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을 수석대표로 김순호 행정부단장, 안정호 무대감독이 나온다. 이번 실무접촉에선 4월 초로만 알려진 공연일자를 확정한다. 4월 초로 예정된 태권도 시범단의 평양 공연과 관련해선 따로 실무접촉 없이 문서교환으로 남북이 필요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과 만나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조기 개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은 1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한중일 정상회의 조기 개최와 관련해 실무협의를 확대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訪日)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1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가급적 빨리 개최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고노 외상은 한국 정부가 다음 달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해줄 것도 강 장관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고노 외상은 “북-일 평양선언에 기초해 납치, 핵·미사일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해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노 외상은 북한이 비핵화에 응할 경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는 입장도 거듭 전했다. 양국 장관은 또 북한 비핵화를 위해 단계적으로 실현할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북한의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선 미국 본토를 사정권으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뿐만 아니라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에 대해서도 한미일의 협력 방침을 확인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이번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는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도쿄=서영아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 정부에 북-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중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한중일, 한일 등 릴레이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가운데 14년 만에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높아지면서 한반도 대화 국면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18일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아베 총리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만남을 중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4월 미일 정상회담도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아베 총리는 1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남북 및 북-미 회담을 계기로 북-일 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특히 아베 총리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방북 당시 발표한 ‘평양선언’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선언은 북-일 관계 정상화,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등을 담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 추진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현실화된 만큼, 대북 강경노선을 고수하다 한반도 대화 정국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아베 총리의 우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논평에서 “일본이 대세를 바로 보고 대북정책을 숙고해야 할 때”라며 “우리는 이미 일본 반동들이 분별을 잃고 계속 못되게 놀아대다가는 영원히 평양행 차표를 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데 대하여 경고했다”고 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진우 기자}

남북·북-미 정상회담 사이에 한국과 북한, 미중일 등이 교차로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북핵 외교의 핵심 당사국인 중국과 일본까지 가세하면서 한반도 대화의 판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북핵 대화가 외교관들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던 과거 6자회담과 달리 정상들이 직접 나서는 ‘정상급 다자외교’ 형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숨 가쁜 북핵 릴레이 정상회담 4, 5월에 열릴 북핵 정상외교는 다음 달 말 남북 정상회담이 출발선이다. 종착역은 5월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 백악관은 16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5월 말(by the end of May)’까지 김정은과 만날 계획임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국무장관 교체로 제기된 북-미 정상회담 연기 가능성을 일축한 것. 여기에 백악관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설에 대해서도 일단 선을 그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6일 “맥매스터 보좌관의 경질이 임박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사이 최대 한 달에 걸쳐 추진되고 있는 회담은 현재 한미, 한일 및 한중일 정상회담에 미일 및 북-일 정상회담 등이 거론된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회담 전 가급적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에서 비핵화 문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인 만큼 남북 정상회담을 북-미 간 비핵화와 평화협정 등 핵심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마중물로 삼겠다는 것.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회담 테이블에 앉기 전 문 대통령이 먼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비핵화를 위한 한미 간 공조 전략을 가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구상이다. 청와대는 한일 및 한중일 회담도 가능하면 추진할 방침이다. 이런 식이라면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 한일 및 한중일 회담 순으로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잡는 게 최우선이다. 이게 확정되면 그 전에 한미 정상회담을 넣을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한일 또는 한중일 회담을 어떻게 배치할 것이냐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中日도 뒤늦게 북핵 외교 시동 중국과 일본도 본격적으로 북핵 외교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일본은 4월 중 아베 신조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미일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나선 데 이어 한국 정부에 김정은과의 북-일 정상회담 중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북한이 핵 포기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대북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과 미국을 통해 북한에 일본 납북자 문제를 언급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북-일 간 현안도 부각하고 있다. 일각에선 아베 총리가 사학스캔들 관련 재무성 문건 조작 파문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북핵 외교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아직 북한은 일본에 선뜻 호의적이지는 않다. 대북제재를 누구보다 강조하는 일본을 흔들어 한미일 공조를 느슨하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일본은 갈 데 없는 미국의 삽살개”라며 “미국의 비호 아래 군사 대국화에 박차를 가하며 전쟁 국가를 조작하려고 날뛰는 한편 재침의 통로를 계속 열어 나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가 폐막하는 20일 전후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에 대표단을 파견해 북-중 관계 개선에 나서는 한편 28일에는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한국에 파견할 계획이다. 이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5월 열릴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한중일 회담을 추진해 왔으나 중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회담이 계속 미뤄져 왔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지명하는 등 중국 내부 권력 정리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는 만큼 회담 성사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많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시 주석에게 국빈 방한을 제안한 만큼 상황에 따라선 한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 신진우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된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축전을 보냈다. 1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시 주석에게 전날 축전을 보내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다시 선거(출)된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또 “조중(朝中)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두 나라 인민들의 공동의 이익에 맞게 발전되리라고 확신하면서 당신의 책임적인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가 있을 것을 축원한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도 이날 김정은이 축전을 보낸 사실을 보도하며 “(김정은이) 중국 인민이 시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의 영도 아래 신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 건설에 큰 성취를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10월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연임됐을 때도 축전을 보냈다. 김정은의 이번 메시지는 남북, 북-미 연쇄 정상회담 국면에서 북-중이 최근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전달된 것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 주석은 빠르면 이달 말 북한에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한국의 국회 격)가 20일 끝나면 며칠 안에 북한에 고위급 대표단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대표단 파견의 명분은 전국인대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속내는 북-중 관계 개선에 집중돼 결국 미국에 대한 견제에 나설 것이란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당장 남북, 북-미 간 정상회담을 앞둔 사전 접촉이 본격화되는 만큼 중국도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구체적인 사전 언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내부에서도 스스로 한반도에서의 역할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아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시 주석은 12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 대화 결정 과정은 물론이고 김정은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물었다고 한다”며 “얼마 전까지 북한을 쥐고 흔들던 중국이 지금은 얼마나 답답한 상황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중국 지도부는 전통적으로 북한이 중국을 배제한 채 미국이나 한국에 집중하는 상황을 경계해왔다. 특히 최근 대북 제재 이행 등을 이유로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중국 입장에선 북한이 한국, 미국과 연쇄 정상회담을 가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시 주석의 이번 대북 대표단 파견은 경색된 북-중 관계를 풀고 향후 북핵 논의 국면에서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도 이번 중국 대표단 방문에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대북 제재에 참여한다는 이유 등으로 중국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여왔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은 중국을 향해 다가설 전략적 타이밍이기도 하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최근 중국 정부의 공식 행사 등에 자주 나타나는 것도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 나선 장면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평창 교류로 한국과의 거리를 좁혔던 것처럼 중국과도 다양한 문화, 스포츠 교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빠르면 이달 말 북한에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정치국 상무위원급 인사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조만간 평양으로 보내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은의 의견을 청취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한정(韓正)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이 북한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방한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대표단의 북한 파견 문제를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김정은이 전격적으로 대북 특사를 만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한반도 상황이 급변하면서 대표단의 평양 파견 일정을 더 당기려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 주석의 대표단 파견이 확정되면 가장 큰 관심사는 김정은을 만날지 여부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특사로 평양에 보냈지만 김정은이 면담을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상무위원급 인사의 면담은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5일 오전 평양발 고려항공 편으로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공항에 도착한 뒤 이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스웨덴으로 향했다. 대미 외교를 담당하는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이 리 외무상과 동행했다. 5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과 모두 수교하고 있는 스웨덴 정부가 북-미 회담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스웨덴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위원에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참여한다. 준비위는 16일 첫 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실무 준비에 나선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두뇌’(정보력)에 ‘발’(외교 라인)까지 얻었다.” 14일 정부 핵심 관계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신임 미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것을 이렇게 평가했다. 남북, 북-미 대화 국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브레인 역할을 했던 폼페이오가 외교 라인 수장으로 올라서면서 그동안 물밑에서 운용하던 정보를 더욱 과감하게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주축으로 한 우리 측 정보 라인과의 채널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폼페이오, “서훈은 조용하지만 믿을 만하다” 폼페이오가 장관으로 취임하면 우리 측 ‘공식’ 카운터파트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5월로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폼페이오가 강 장관에게 손을 내밀지는 의문이다. 최근 대화 정국에서 외교부는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있기 때문. 여기에 폼페이오의 장관 인사청문 절차를 고려하면 공식 취임은 다음 달에나 가능하다. 이 때문에 다음 달 말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한미 조율이나 북-미 사전 접촉은 국정원-CIA 라인을 통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 역할을 오래했고 대북특사로 김정은을 만났다. 폼페이오도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사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대화 파트너를 볼 때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이 상대가 ‘오너’의 신임을 얼마나 받느냐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훈과 폼페이오는 닮았다”고 했다. 특히 올해 초부터 이어진 대북 대화 국면에서 ‘국정원-CIA’ 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폼페이오와 서 원장은 비교적 양호한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폼페이오는 최근 국정원 관계자에게 서 원장을 지칭해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난해 CIA 한국임무센터(KMC)의 창설을 주도했던 폼페이오는 KMC를 이끄는 앤드루 김(김성현)을 통해 평창 올림픽 기간 남북 교류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센터장은 최근 수차례 방한해 국회의원 등 한국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대북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한미 간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물밑 접촉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폼페이오가 외교 라인에 발을 들인 만큼 조직에 맞춰 옷을 바꿔 입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정보 라인을 중용했던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선 각종 실무 준비를 위해서라도 ‘폼페이오의 국무부’에 본연의 임무를 요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폼페이오, 북핵 ‘단칼 해결’ 추구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매파인 폼페이오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결국 대화 국면에서도 한편으론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며, 북핵 문제를 일괄 타결하려는 의도다. 외교 소식통은 “폼페이오는 ‘대화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식으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며 포괄적, 일괄적 타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4일 “보통으로는 제재 완화를 하고, 점층법으로 대화를 해 왔다면 지금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며 “여러 가지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생각하면 (북핵 이슈를) 하나하나 푸는 게 아니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버리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매듭을 단칼에 잘랐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로, 한꺼번에 풀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한다. 다시 말해 대북 제재, 핵 동결 및 폐기 등 북핵 관련 문제들을 ‘원샷 타결’ 해보겠다는 의미다.신진우 niceshin@donga.com·한상준 기자}
정부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사퇴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전면에 내세워 두 달 남짓 남은 북-미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 정상 간 타결 사안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각국의 외교라인이 키를 잡아야 한다. 폼페이오의 선임은 바로 앞의 북-미 회담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북핵 타결이라는 먼 과정까지를 고려한 인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폼페이오는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이어진 남북의 평창 교류, 대북특사단의 평양 파견과 남북 정상회담 합의,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 추진까지 전반적인 골격을 짜는 데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틸러슨 장관의 낙마 가능성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앞둔 가운데 갑작스러운 경질에 당황하는 모습도 보였다. 외교부 핵심 당국자는 이날 “오늘 오후까지도 미 국무부 측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방미와 관련해 얘기를 주고받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5일 워싱턴을 방문해 16일 틸러슨 장관과 회담을 가지려던 강 장관의 방미 계획도 불투명해졌다.황인찬 hic@donga.com·신진우 기자}

13일 일본 도쿄 총리공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회동에 앞서 관심사 중 하나는 아베 총리가 서 원장에게 어떤 의자를 내줄지였다. 아베 총리는 만나는 인사에 따라 의자의 급을 달리해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이 ‘자리 굴욕’의 피해자가 됐다. 당시 아베 총리는 자신은 금색 꽃무늬가 들어간 높은 의자에 앉고 상대방에겐 낮은 의자를 내줘 ‘외교 결례’ 논란을 일으켰다. 이날 아베 총리는 서 원장에겐 자신과 같은 높이의 꽃무늬 의자를 내줬다. 정부 당국자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전 격(格)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팬 패싱’ 우려가 나오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의중 등 북한 정보가 필요한 일본이 서 원장을 ‘모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8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면담을 가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을 사실상 정상급으로 대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벽난로를 배경으로 정 실장을 자신의 오른쪽에 앉혀 면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의 노변정담(爐邊情談·Fireside chats)의 배경이 되는 벽난로를 사이에 둔 자리 배치는 해외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주로 연출되는 장면이다. 지난해 6월 백악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반면 이번 ‘양회(兩會)’를 통해 장기 집권을 굳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 자리 배치는 사뭇 달랐다. 시 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가진 면담에서 자신은 테이블 중앙 상석에 앉은 채 정 실장을 옆줄에 앉혀 고의로 하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 실장의 정면에는 정 실장의 중국 카운터파트인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앉았다.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이 남북 대화 국면에서 중국이 끌려가는 입장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니냐”고 했다. 방북 과정에서 드러난 김정은식 의전도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은 5일 대북특사단을 노동당 본관 로비까지 나와 맞이했다. 면담과 만찬을 합쳐 4시간 넘게 대북 특사를 만난 김정은은 만찬에서 바로 왼쪽에 정 실장, 우측에는 부인인 리설주를 앉혔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이 연일 국제사회의 초강경 대북제재를 겨냥해 맹비난을 쏟아붓고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이 연쇄 회담의 목표 중 하나로 경제적 위기 돌파를 설정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12일 1면 사설에서 “혁명 앞에 가로놓인 난국은 엄혹하며, 조국은 사상 최악의 역경을 단독으로 강행 돌파해나가고 있다”며 “미제와 그 추종세력은 제재압살책동을 극대화하고 무모한 핵전쟁도발책동에 매달리며 최후 발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10일에도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를 두고 “국제법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며 주권침해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반면 북한 매체들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9일 북-미 정상이 회담 개최에 합의한 뒤 북 대내 매체는 나흘째 관련 보도를 싣지 않고 있다. 다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10일 “평화 담판이 시작되려 한다”고 첫 언급했지만 하루 뒤 삭제됐다. 일각에선 북 매체들이 최근 비판의 주파수를 대북제재에 맞추는 게 역설적으로 북한이 연쇄 회담을 통해 노리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수십 년 동안 업그레이드시킨 핵이란 무기까지 경제적 지원을 얻어낼 협상 카드로 이번에 던질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협상 직전까지 최대한 패를 감추는 ‘깜깜이 전술’에 나설 것이란 말도 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도 12일 “북한이 여러 가지 입장을 정리하는 데 나름대로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만큼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이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과 대표단 등 24명의 명단을 통보했다. 통일부는 5일 “북측이 4일 판문점 연락 채널을 통해 정현을 단장으로 하는 선수단 20명과 김문철을 단장으로 하는 장애자올림픽위원회 대표단 4명의 명단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김문철과 정현은 각각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의 위원장, 부위원장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7일 경의선 육로로 방남한다. 북한 장애인체육의 행정 실무책임자인 리분희 서기장은 이번 방남 명단에 없어 관심을 모았던 현정화 렛츠런 여자탁구팀 감독과의 재회는 이뤄지지 않는다. 리 서기장은 현 감독과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당시 최강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여동생 김여정을 평창에 깜짝 내려보냈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 교류’에서는 직접 파격 행보에 나섰다. 우리 대북 특사단이 5일 오후 평양에 도착한 지 3시간 10분 만에 면담에 이어 만찬을 전격 진행한 것. 당초 “첫날 우리 제안을 들어본 뒤 이튿날 만남 여부를 정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만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이다. 김정은의 스타일이 아버지 김정일 못지않게 돌발적이고 파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김정은, 북핵 외교 첫 등판서 ‘화끈한 행보’ 우리 특사단을 평양으로 불러들인 김정은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평양 순안공항에 우리 공군 2호기가 도착하자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영접을 나왔고, 특사단 숙소인 고방산 초대소에서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영접한 것. 장관과 부총리급을 연달아 영접 인사로 투입시키며 우리 대표단을 환대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하이라이트는 나중에 있었다. 세부 일정을 조정하러 나온 김 통전부장이 이날 오후 6시 시작되는 만남과 만찬에 김정은이 참석한다고 알려온 것. 만남 시작 2시간여 전에 김정은과의 만남을 깜짝 통보한 것이다. 2007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말미에 “하루 더 머물다 가시라”고 돌발 발언했지만 김정은은 시작부터 적극적인 행보를 펼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일이라면 시간을 끌다가 한국으로의 귀국 시간이 임박해서야 특사단을 만났을 텐데 김정은은 도착 즉시 만났다. 아버지보다 더 저돌적이고 호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이번은 김정은의 북핵외교 무대 ‘데뷔전’이다. 한국 측 인사와 만난 것도 2011년 12월 27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의 금수산기념궁전(현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조문단을 맞은 이후 처음이다. 당시 김정은과 악수를 했던 김홍업 전 의원은 “(김정은이) ‘와줘서 감사하다’고 말했고 딴 얘기는 안 했다.(김정은의) 살집이 두툼한데 손이 좋더라”라고 말한 바 있다. 다른 참석자는 “흰 피부에 앳된 표정이었다. 딱 부잣집 도련님 같았다”고 인상을 전했다. 5일 드러난 김정은의 모습은 6여 년 전과는 딴판이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은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 처형 이후 사람이 싹 바뀌었다. 발언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행보에도 거침이 없어졌다”고 전했다. ○ 아버지와 닮은 ‘기분파’, 돌발 제안할 수도 집권 이후 북한 땅을 떠난 적이 없는 김정은은 외교사절의 접견도 7차례에 그칠 만큼 외교 협상 스타일이 거의 공개돼 있지 않다. 매년 조선중앙방송의 카메라 앞에 서서 신년사를 읽지만 원고 내용은 한 달 전부터 각 기관의 엘리트들이 작성한 메모들을 짜깁기하고 수차례 감수를 거쳐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점차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이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내 능력이 안 따라가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보다 더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받들겠다”는 문구는 김정은이 직접 집어넣지 않고서야 들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정성장 실장은 “김정일은 틀에 박힌 스타일로 교조적인 언어밖에 구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보다 직설적이고 감정적”이라면서 “이번 대북 특사단에 김정은이 돌발 제안을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김정은의 대미 발언은 관련 실무자들이 철저히 조율한 뒤 공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정은이 지난해 9월 22일 낸 본인 명의의 첫 성명은 실제 언행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한 정부 소식통은 “당시 성명 내용을 분석해 보면 구어체 문장이 여럿 눈에 띈다. 즉, 김정은이 말하고 누군가가 받아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시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파괴’ 발언 후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에게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비난했다. 김정은이 한국 특사단에 입을 연다면 이렇게 직접적이고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 파급력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있다. ○ 김정은, 건강이상설 확인될 듯 스위스 유학파인 30대 김정은은 그동안 북한에서도 적지 않은 파격 행보를 보여줬다. 핵과 미사일 개발자들과 포옹을 하거나 그들을 업어주는 모습도 자주 비쳤다. 김일성 김정일 시절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북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애연가로 알려진 김정은은 현장 시찰뿐만 아니라 집무실과 공연장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노출됐다. 간부들과 맞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자주 공개된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할 것이고, 더 자기 주도로 대화를 이끌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특사단 앞에서 일장연설을 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상균 국정원 2차장이 특사단에 포함되면서 그동안 김정은 신상을 둘러싼 각종 의혹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고모부 장성택 등 위협적인 인물들을 대규모 숙청한 이후 김정은이 술과 담배를 지나치게 가까이 한다는 관측까지 돌았다. 또 취임 전에 비해 몸무게가 40kg 증가해 130kg까지 나간 것으로 파악돼 끊이지 않았던 건강이상설도 일부분 사실 여부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hic@donga.com·신진우 기자}

5일 오후 평양에 도착한 대북특사단의 방북과 함께 ‘북핵 슈퍼위크’의 막이 올랐다. 지난달 강원 평창에서 시작된 대화 분위기는 평양으로 옮겨져 주말쯤 미국 워싱턴을 거쳐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석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행 특별기에 오르며 “북한과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와의 다양한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이목이 평양에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 평화 구축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한 문재인 정부는 흥행 면에선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방북 첫날 특사단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만찬까지 하면서 분위기도 한껏 달아올랐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우는 ‘중매외교’가 빛을 발하려면 북-미 양측이 만족할 만한 여건에서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 ‘무조건 비핵화 대화’를 고수하는 미국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또는 연기나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북한 사이에서 한국이 접점을 얻어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특사단이 미국보다 더 강하게 비핵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북-미 대화를 견인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으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사가 일단 확인된 다음에 이야기를 진행해야 한다”며 “핵 위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가 우리 아닌가? 북한이 비핵화 얘기를 못 꺼내게 하면 (특사단이) 빈손으로 돌아올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도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계속 내놓는 게 우리로선 나쁘진 않다. 정 수석특사가 ‘미국에 가서 설명해야 하는데 당신들이 묘안을 내놓지 않으면 할 말이 없다’고 말할 각오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북한에 비핵화 대화를 촉구한 것은 정부의 스탠스를 엿볼 수 있다. 강 장관은 이날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세계기자대회’ 오찬사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ID)는 타협 대상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가운데, 이 같은 발언으로 비핵화만큼은 한미가 물샐틈없이 공조하고 있으니 김정은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미국은 일단 대북 특사단 행보를 관망하는 모습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나서주는 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협상이 자칫 어그러지거나 북한이 도발하면 책임을 북한에 돌리고 압박하기에도 좋다”고 전했다. 미국은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내세워도 대화의 진짜 목적은 결국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제재 완화라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숨통을 조인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하고 싶은 미국을 설득해 북한과 적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서울대 교수는 “특사단의 방북 이후 방미 기간 사이 정치적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핵 슈퍼위크의 파장은 한반도 주변국에도 고루 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달 안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도 추진하고 있다. 5일 중국 외교부는 특사단 방북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반면 일본은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완전하게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핵·미사일 폐기를 한다고 동의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손효주 기자}

“지난 10년 동안 수집한 대북 정보보다 훨씬 다양하고 ‘살아 있는’ 정보가 최근 며칠 새 오가지 않았겠나. 미국이 들여다보고 싶을 수밖에 없다.” 1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방남했던 북한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서 최근 외교 채널로 문의가 잦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확보하게 된 대북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중 일부를 공유하기 위해 위성 등 최첨단 장비로 확보한 이민트(IMINT·영상 정보), 코민트(COMINT·통신 정보)까지 적극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 등 북 고위급 일거수일투족 궁금한 미국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달 중순 미국을 방문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다. 한국 정부는 북-미 대화 관련 중재안 등을 설명하려고 방미 일정을 조율했는데, 미국 측이 더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는 자신들이 우리에게 알아보려는 내용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리해 먼저 제시했다는 것이다. 여기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북측 인사들의 발언이나 동선 등 사실 관계는 물론이고 이에 대한 우리 측의 평가까지 들어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외교 라인이 물꼬를 트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의 회동 등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그럴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더 상세한 정보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대미 정보 교류를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징후가 자주 포착되는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역시 우리가 가진 대북 정보에 갈증을 느껴 서훈 국정원장 등 우리 측 정보 라인과 교류가 잦아졌다는 것. 최근 비공개 방한 일정을 소화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앤드루 김 미국 CIA 한국임무센터(Korea Mission Center·KMC) 센터장 역시 한국에서 대북 휴민트를 집중적으로 알아봤을 가능성이 높다. ○ “영상 정보 줄테니, 인적 정보 달라” 미국 측은 특히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게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나눈 얘기뿐만 아니라 말투는 어땠는지, 아파 보이진 않았는지, 김정은과의 친밀도를 짐작하게 하는 어떤 표현이나 행동은 없었는지 등까지 확인했다는 것. 북측이 김여정이 돌아가면서 투숙했던 호텔의 침대보에 떨어진 김여정의 머리카락까지 모두 수거해가는 등 철저하게 노출을 차단했음에도, 김정은과 김여정의 신체 정보의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소식통은 “언론이 제기한 김여정의 임신설 등까지 미 측이 우리 판단을 들어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남북 대화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확보한 대북 정보가 늘어나자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자주 접근하지 못했던 높은 수준의 이민트, 코민트 등 다른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민트의 경우 미국은 현재 매년 3000∼4000장가량 제공하는 북한 지역 사진을 1000장가량 더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 미측 최신 정찰위성이 전자광학카메라로 촬영한 사진까지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지름 10∼20cm 안팎의 물체까지 식별 가능한 이 정찰위성은 북 고위급 인사들의 동향 파악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미국이 지난달에만 대북 무역과 관계된 아시아권 ‘의심 선박’ 10여 척이 앙골라 우간다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 기착한 것을 확인하고 입항 기록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초강경 대북제재를 피하려고 김정은이 우회로 찾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중동 및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 북한과의 관계 단절을 압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대북제재 그물망이 촘촘해진 이후 이들 국가와의 불법 교역 규모를 늘리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지난해 9월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아프리카 11개 국가와 긴밀한 군사협력 관계를 맺으며 이들 국가에 무기 수출, 군사훈련 지원, 석탄 등 광물 자원 거래 등을 통해 연간 2억 달러(약 2160억 원)까지 벌어들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아프리카 등에 기항한 선박들은 선박 간 이동 방식으로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으로부터 물건을 전달받아 아프리카 국가에 건네주고, 아프리카에 있는 북한 공작원들이 현금을 수금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공작원들은 이렇게 받은 달러를 어선 등 소형 선박으로 아프리카로 입항한 북한 선박에 전달하거나, 외교 행낭을 통해 직접 평양에 송금한다고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은 시리아, 이란 등 중동 라인을 통해서도 화학무기, 탄도미사일 기술을 수출해 외화벌이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유엔 기밀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화학무기 공장을 짓는 데 쓰이는 50t의 재료를 시리아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어 “평양을 위해 일하는 중국 무역회사가 2016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내열(耐熱), 내산성(耐酸性) 타일과 스테인리스 파이프, 밸브를 선박에 실어 5차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보냈다”며 “시리아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화학무기 생산을 도운 북한에 대가를 지불한 정황도 있다”고 덧붙였다. 내열, 내산성 타일은 화학공장 내부 벽면에서 사용되는 핵심 재료다. 또 시리아의 화학무기 및 미사일 시설에서 북한 기술자가 작업을 해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도 유엔 대북제재위 보고서를 인용해 2012∼2017년 북한에서 시리아로 선박을 통해 탄도미사일 부품 등 최소 40건의 금수품목이 이전됐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정보국(DIA) 출신인 브루스 벡톨 미 텍사스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내전은 북한에 특히 요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김정은의 중동, 아프리카 루트를 추가로 막기 위해 고심 중이다. 이와 관련해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과 시리아의 화학무기 커넥션과 관련해 “절박한 상황의 북한이 범죄정권의 자금줄을 얻기 위해 창의적이고 끔찍한 방식을 찾는다”고 비난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아프리카를 드나든 선박들을 조사한 뒤 국적에 관계없이 곧 다수 선박들에 ‘제재 딱지’를 추가로 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 북한이 아프리카, 중동 국가들과의 무역 과정에서 석탄 등 원산지를 숨기기 위해 위조문서를 수시로 작성한 사실이 있는 만큼, 국제사회가 대대적인 문서 위조 차단 절차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3박 4일간 한국에 머물렀던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26일 출국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는 따뜻한 미소와 적극적인 제스처로 시선을 모으는 동시에 북한을 겨냥해선 차가운 메신저였다.○ 이방카 “아이들 교육비로 보통 얼마 쓰느냐” 26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방카는 방한 기간 내내 겸손하고 소탈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방카는 식사, 잠자리 등과 관련해 까다로운 요구사항 없이 한국 정부의 환대에 “생큐” “원더풀” 등을 연발하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이방카가 먼저 다가와 우리 수행 직원의 안부를 물어볼 때도 있었다”며 “내가 봤던 VIP 중 가장 편했던 인사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세 자녀를 둔 이방카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자주 표현했다. 이방카는 이날 출국길에 국산 애니메이션 ‘뽀로로’의 캐릭터 장난감을 챙겨 간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아이들 사이에 ‘뽀통령’으로 통하는 뽀로로 장난감을 사전 주문해 공항에서 받아갔다는 것. 뽀로로는 북한의 삼천리총회사가 제작에 참여해 한때 미국의 대북제재 리스트에 오를 뻔했으나, 미 정부가 “뽀로로처럼 대중에 널리 보급된 제품은 예외 조항”이라며 제재에서 풀어 미국에서 더 유명해졌다. 이방카는 전날 평창 올림픽 폐회식에선 케이팝 공연을 펼친 그룹 엑소 멤버들을 만나 “우리 애들이 당신들 팬이다. 이렇게 만나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방카는 또 한국의 교육열을 언급하며 정부 관계자들에게 “아이들 교육비로 보통 얼마나 쓰느냐”고 묻는 등 ‘엄마 이방카’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고교 총기 참사를 의식한 듯 한국의 치안 환경이 어떤지를 묻기도 했다. 수행하던 한국 정부 관계자가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안전 국가”라고 답하자 이방카는 “북한의 안보 위협보다 당장 밤에 안전한 게 더 중요하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방카는 출국길에 취재진을 만나선 “멋진 첫 (한국) 방문이었다. 다시 방문할 날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외신들도 이방카의 첫 방한 행보에 후한 점수를 줬다. CNN은 “이방카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북한 대표단에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남북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할 때 기립해 박수를 쳤다”고 보도했다. USA투데이도 이방카에 대해 “줄곧 앉아 있던 펜스와 대조된다”고 평가했다. ○ 북한에는 시종일관 압박 메시지 하지만 이방카는 북한과 관련한 이슈에는 냉정하고 침착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방카는 23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사전 접견에서도 주로 문 대통령의 얘기를 경청했다고 한다. 한 당국자는 “이방카의 대북 메시지는 간단했다.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제재 및 압박, 이 세 가지”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내놓는 초강경 대북 메시지 외에 대화와 접촉에 대한 다른 어떤 언급이나 제스처도 없었다는 것이다.신진우 niceshin@donga.com·한기재 기자}
백악관이 21일 전격적으로 평창 올림픽 기간의 북-미 대화 무산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제 관심은 성사 직전까지 갔던 북-미 대화가 무산된 진짜 이유에 쏠리고 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북한과 미국이 원하는 대화 주제가 완전히 달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측은 워싱턴포스트에 “북한은 펜스 부통령이 북한 인권과 관련된 언급을 자제하고 미국은 대북 압박과 관여를 해제하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은 북-미 대화를 통해 제재 완화 논의를 기대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8일 방한한 펜스 부통령은 예정됐던 10일 오후 청와대 회동 전까지 북한이 민감해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내세웠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김정은 입장에선 지금 만나봐야 미국의 쓴소리를 듣고 이미지만 구길 거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여정이 나선 상황에서 펜스 부통령의 강경 행보가 북한의 결정적 철회 사유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김일성 직계인 김여정이 미국 대통령도 아닌 부통령으로부터 면박 당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두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가 무산된 뒤 청와대에서는 “평화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펜스 부통령이 꼭 북한을 자극하는 행보를 해야 했나”라는 불만이 여러 차례 감지되기도 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단 우리부터 확실히 잡아둬야 향후 북-미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게 북한의 일관된 인식”이라며 “김정은은 우리의 북-미 협상 지렛대 역할에 아직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한상준 기자}

“평창에서 ‘진짜 이방카’가 한국인을 사로잡을 것이다.” 20일 정부 고위 당국자는 23일 방한할 것으로 알려진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사진)의 방한 효과를 이렇게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방남 활동을 두고 “북한의 이방카가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인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 것을 빗댄 것이다. 3박 4일간 한국에 머물 것으로 알려진 이방카의 일정은 스포츠와 인권 이슈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방카는 방한 첫날 평창에서 미국 선수단을 방문해 응원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김여정이 고위급 대표단으로서 북측 선수단을 응원하고 예술단을 격려 방문했던 것과 비슷한 행보다. 다만 김여정이 옅은 미소와 도도한 표정으로 공개적인 발언을 아낀 것과 달리 이방카는 적극적인 발언과 제스처로 시선을 끌어모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악관은 이방카의 방한 기간에 평창 겨울올림픽 스키 종목 경기를 직접 관전하는 일정을 정부와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포츠광’인 이방카는 스키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체코 스키 선수 출신인 친모 이바나 트럼프의 영향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한 소식통은 “이방카가 슬로프에서 직접 스키를 즐길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방카가 탈북 여성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북한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 김정은 정권 압박에 나설지도 관심이다. 아버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취임 첫 국정연설에 탈북자를 초청한 데 이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방한해 탈북자를 면담한 것과 같은 기조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박상학 북한인권단체총연합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 정부 인사로부터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10, 20대 여성들을 (이방카 방한 시) 연결시켜 달라는 부탁을 최근 받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이어 “미국 정부 관계자가 ‘이방카는 (탈북자에) 관심이 많다. 자신의 재단을 움직여 탈북 여성들을 도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만남이 성사되면 이방카는 방한 첫날인 23일이나 24일 4, 5명의 탈북 여성을 만나 북한 인권 실태를 듣고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회식에 참석했던 펜스 부통령이 천안함을 찾아 북한을 ‘감옥 국가’라고 쏘아붙인 것과 같은 직접적인 대북 압박 발언은 자제할 듯하다. 정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이 북한에 대해 ‘배드 캅(나쁜 경찰)’ 역할을 했다면 이방카는 상대적으로 ‘굿 캅(좋은 경찰)’ 역할을 맡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림픽 경기 관전과 폐막식 등 4일간의 일정 중 이방카에게 대북 정책과 통상 문제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방카 방한 시 유력한 카운터파트로 꼽혔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방카 접대’엔 한발 비켜설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열릴 올림픽 폐회식에 불참하기 때문이다.신진우 niceshin@donga.com·신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