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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개봉할 영화 ‘더 배트맨’에서 주인공 브루스 웨인과 악당들은 양복을 여러 벌 바꿔 입는다. 지난주 개막한 제78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스펜서’에서도 찰스 왕세자 역을 맡은 배우 잭 파딩은 영국 정통 방식으로 제작된 정장들을 입는다. 이들 영화에 나오는 양복을 만든 사람이라면 으레 나이가 지긋한 백인 재단사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를 만든 이는 젊은 한국인이다. 영국 런던에서 테일러로 일하다 최근 귀국한 김동현 씨(32)가 주인공. 그는 ‘더 배트맨’ 의상 다섯 벌과 ‘스펜서’ 의상 세 벌을 만들었다. 김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인이 만든 영국 정통 양복을 세계인들이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한국인로서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 씨는 런던 새빌로 거리에서 올 3월까지 만 3년간 테일러로 일했다. 이곳은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양복점이 자리 잡은 곳으로 영국 왕족 등 상류층이 주로 찾는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도 이곳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김 씨는 ‘맞춤 양복의 성지’로 불리는 새빌로 거리에서 유일한 한국인 테일러였다. 그는 새빌로 맞춤 협회(Savile Row bespoke association) 소속 양복점에서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 손바느질 기준을 깐깐히 적용하는 영국 정통 양복 제작법을 고수하는 양복점만이 이 협회에 가입할 수 있다. 김 씨는 ‘스펜서’에서 찰스 왕세자가 입는 슈트 2벌과 코트 1벌을 만들었다. 앞서 지난해 11월 영화 제작사는 왕족의 품격과 영국 양복의 정통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정장을 2개월 안에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씨는 “왕가의 복장을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 왕족 사진집 등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왕족들의 옷을 자주 제작한 원로들을 취재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2014년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 대학 의류디자인학과에 다니던 그는 여성복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업과 유행에 민감한 한국 패션계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는 옷은 없을까 고민하다 그것이 바로 영국 양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양복의 고향에서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런던예술대에서 맞춤 양복(bespoke tailoring)을 전공하며 양복 기술과 문화를 폭넓게 공부했다. 2017년 새빌로 맞춤 협회가 2년에 한 번 양복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는 ‘황금 가위 경연’에서 최종 25인에 올랐다. 졸업 후 3년간 새빌로 거리 양복점에서 일하다 올 3월 귀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늘어 영국 양복 시장이 침체된 탓도 있지만 한국에서 펼치고 싶은 꿈이 있어서였다. 그는 최근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조만간 영화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옷을 편집숍 등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 올해 말에는 자신의 가게를 연다. 김 씨는 “좋은 옷이란 입을수록 빛나고 몸에 잘 들어맞는 옷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래돼도 촌스럽지 않고 더 우아하게 느껴지는 영국 정통 양복 기술을 적용한 옷을 국내에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실력을 더 쌓은 뒤 영국으로 돌아가 김동현이라는 한국인이 만든 양복을 영국인들에게 입히는 게 최종 꿈입니다. 누구나 제 옷 한 벌을 갖는 게 꿈이 될 때까지 정진하려고 합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과학 연구라고 해서 머나먼 정글이나 깊은 해저를 탐사해야만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학 박사이자 공상과학(SF) 소설가인 저자는 말한다. 평범하게 지나던 바로 내 곁, 내 집에서도 신기한 현상은 일어나고 있다고. 저자가 과학 연구 중에서도 생물학 연구를 위해 돌아볼 것을 권유하는 곳은 아파트와 그 주변이다. 그곳엔 소나무와 철쭉이 있다. 주차장 차 밑에는 길고양이가 살고 단지 내엔 황조롱이가 오간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보면 곰팡이와 집먼지 진드기가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아파트엔 탐구해 볼 만한 생물들이 널려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흔한 철쭉에는 ‘로도덴드론 슐리펜바키 막심’이라는 러시아어 학명이 붙어 있다. 러시아 해군장교 바론 슐리펜바흐는 1854년 조선에서 발견한 철쭉을 러시아 식물학자 카를 막시모비치에게 보낸다. ‘붉은 나무’를 뜻하는 ‘로도덴드론’에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탄생한 이름이 철쭉의 학명이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길고양이에 주목하며 ‘고양이 지식 보따리’도 풀어낸다. 조선의 숙종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 금손을 아꼈고, 효종의 딸 숙명공주도 고양이를 좋아했다. 조상들이 고양이를 꺼림칙한 존재로 여긴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 한반도에 고양이가 전해진 건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한반도에 불교를 전하려 배를 타고 오던 사람들이 배에 실은 불경을 쥐가 파먹지 못하도록 고양이를 태우고 온 것으로 전해진다. 저자는 이렇듯 내 주변의 흔한 것들에서 생물학 여행을 시작할 것을 권한다.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던 생물학과의 거리를 좁혀 보자는 취지다. 저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아파트도 연결시킨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엘리베이터 등 공용 공간에서 마스크를 철저히 쓰게 되는 등 아파트 풍경이 바뀌었다는 것. 코로나19처럼 시의성 높은 주제나 아메바 등 저자의 기존 관심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이들 주제와 아파트의 연결 고리를 무리하게 만들어낸 부분은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다. 더 좋은 군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디피)를 쓴 김보통 작가가 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최근 온·오프라인상에서는 온통 ‘D.P.’ 얘기다. 올해 공개된 국내 영상물을 통틀어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드라마 속 군 부대 내 가혹행위 장면을 두고는 예비역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군대에 폐쇄회로(CC)TV를 달고 촬영한 것 같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 드라마 작가이자 원작 웹툰 ‘D.P 개의 날’ 작가이기도 한 김 작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병영 내 가혹행위를 날것 그대로 다룬 데다 예비역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정도로 실감나게 살려내서다. 김 작가는 “많은 남성이 군 생활을 하며 직접 보거나 경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리얼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D.P.’는 육군 헌병대(현 군사경찰대)의 군무이탈자 체포전담조를 뜻하는 DP(Deserter Pursuit) 조원들의 활약을 다루는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그려낸다. 코를 곤다는 이유로 방독면을 씌우는 건 약한 수준. 선임병은 후임병 뒤통수가 벽에 박힌 대못에 찔려 피가 날 때까지 폭행한다. 방독면에 물을 붓고, 침을 먹이는가 하면 각종 방법으로 성적 수치심을 준다. 드라마 속 군대는 분노를 참다 미치거나 탈영하지 않기 위해 온힘을 짜내 버텨내야 하는 지옥처럼 묘사된다. 민감한 주제를 다룬 탓에 군을 소재로 한 영상물로는 이례적으로 군 협조 없이 촬영이 진행됐다. 한 제작진은 “군 당국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드라마 속 생활관(내무반)은 실내 세트다. 연병장 등 주요 군 시설물이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은 경기 부천시의 폐쇄된 군부대에서 진행했다.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은 현실 세계에서 군 사건사고 역사상 가장 심각한 해로 꼽히는 2014년.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해다. 김 작가는 “2014년은 군도 사회도 변화해야 하는 큰 변곡점을 맞게 된 해”라고 시간 설정 배경을 설명하며 “(드라마 대본 집필에) 두 사건을 일부 참고했다”고 했다. 드라마 속 가혹행위를 두고는 반론도 나온다. A 장교는 “드라마가 그동안 전군에서 일어났던 극단적 사건을 골라 마치 한 부대에서 모조리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처럼 묘사했다”며 “가혹행위 수준만 놓고 보면 (7년 전이 아닌) 20년 전 같다”고 했다. 군 수사기관의 또 다른 장교는 “지금은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쓸 수 있는 만큼 가혹행위 발생 시 곧바로 국방헬프콜에 신고하고 있어 드라마 수준의 가혹행위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실제로 드라마 대본에는 과거 DP로 활동한 김 작가의 경험이 깔려 있는데, 그는 2002년부터 군 복무를 했다. 군 관계자들은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진 점, 이병부터 병장까지 함께 있던 생활관이 동기 생활관으로 바뀐 점, 소규모 독립부대를 제외하고 생활관이 침상형에서 사생활이 일부나마 보장되는 침대형으로 바뀐 점 등이 복무 스트레스를 줄이면서 과거 수준의 가혹행위는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 배경인 2014년은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가혹행위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다. 2014년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후임병에게 파리를 먹이고 대검으로 찌른 사건, 냉장고에 가둔 사건 등이 줄줄이 드러났다. 2019년엔 육군 일병이 동기에게 대소변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 올해 7월엔 군인권센터가 한 공군부대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용접가스보관창고에 가두고 불붙인 박스 조각을 던지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드라마 특성상 극적 효과를 위해 각종 가혹행위를 한 소대에 몰아넣은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엽기적 가혹행위가 현재 진행형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김 작가는 “(2014년 웹툰을 연재할 때부터) ‘언젯적 군대 얘기를 하느냐’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군내 부조리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폭력은 모양만 바뀌었을 뿐 어디엔가 계속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엔 이같이 썼다. “D.P.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분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기를.”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다. 더 좋은 군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지난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디피)’를 쓴 김보통 작가가 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최근 온오프라인상에서는 온통 디피 얘기다. 올해 공개된 영화나 드라마 등 국내 영상물을 통틀어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라고 확언할 수 있을 정도. 특히 드라마 속 군 부대 내 가혹행위 장면을 두고는 예비역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아니라 군대에CCTV 달고 촬영한 것 같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 드라마 작가이자 원작 웹툰 ‘D.P 개의 날’ 작가이기도 한 김보통 작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병영 내 가혹행위를 날것 그대로 다룬데다 예비역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정도로 실감나게 살려내서다. 김 작가는 “많은 남성이 군 생활을 하며 직접 경험하거나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리얼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D.P.’는 육군 헌병대(현 군사경찰대)의 군무이탈자 체포전담조를 뜻하는 DP(Deserter Pursuit) 조원들의 활약을 다루는 과정에서 병영 내 가혹행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묘사한다. 코를 곤다는 이유로 방독면을 씌우는 건 약한 수준. 선임병은 후임병 뒤통수가 벽에 박힌 대못에 찔려 피가 날 때까지 폭행한다. 방독면에 물을 붓고, 라이터를 켜 음모를 태우는가 하면 걸핏하면 성적 수치심을 준다. 드라마 속 소대는 온갖 엽기적인 가혹행위가 매일 일어나는 ‘가혹행위 종합세트’다. 분노를 참다 미치거나 탈영하지 않기 위해 온힘을 짜내 버텨내야 하는 지옥이다. 민감한 주제를 다룬 탓에 드라마는 제작 당시 군 당국 협조를 받지 못했다. 한 제작진은 “군 당국에 협조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했다. 드라마 속 가혹행위의 주무대 중 하나인 생활관(내무반)은 실내 세트다. 연병장 등 주요 군 시설물이 등장하는 촬영은 경기 부천시의 폐쇄된 군부대에서 진행했다. ‘태양의 후예’나 ‘진짜 사나이’ 등 군 관련 기존 영상물이 군의 협조를 받은 것과는 대비된다.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은 군 사건사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해로 꼽히는 2014년.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해다. 임 병장이 부대원들의 따돌림과 가혹행위를 참다못해 총기를 난사했다고 주장하면서 “가혹행위를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얘기가 회자됐다. 김 작가는 “2014년은 군도 사회도 변화해야 하는 큰 변곡점을 맞게 된 해”라고 시간 설정 배경을 설명하며 “(드라마 집필에) 두 사건을 일부 참고했다”고 했다. 드라마가 묘사하는 가혹행위를 두고는 반론도 나온다. 장교 A는 “드라마가 극적 효과를 주기 위해 전군에서 일어나는 극단적 사건을 골라 마치 한 부대에서 모조리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처럼 묘사한 것”이라며 “가혹행위 수준만 놓고 보면 20년 전 부대 같다”고 했다. 군 수사기관의 또 다른 장교는 “현재는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쓸 수 있어 가혹행위 발생 시 곧바로 국방헬프콜 등에 신고하고 있어 드라마 수준의 가혹행위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실제로 드라마 대본에는 과거 DP로 활동한 김 작가의 경험이 깔려있는데 그는 2002년부터 군 복무를 했다. 군 관계자들은 일부 독립부대를 제외하고 생활관이 침상형에서 사생활이 일부나마 보장되는 침대형으로 바뀐 점,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진 점, 이병부터 병장까지 함께 모여 있던 생활관이 동기 생활관으로 바뀐 점 등이 복무 스트레스를 줄여 가혹행위의 잦은 발생을 막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인 2014년을 전후는 물론 최근에도 가혹행위 사건은 잊을 만 하면 보도되고 있다. 2012년엔 심심하다는 이유로 선임병이 후임병의 발바닥을 20초간 지진 사건이 있었다. 2014년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후임병에게 파리를 먹이고 대검으로 찌른 사건, 냉장고에 가둔 사건 등 가혹행위가 릴레이식으로 드러났다. 2019년엔 육군 일병이 동기에게 대소변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 올해 7월엔 군인권센터가 한 공군부대에서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부대 용접가스보관창고에 가두고 불을 붙인 박스 조각을 집어던지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드라마의 특성상 극적 효과를 위해 각종 가혹행위를 한 소대 안에 집중시킨 면이 없지 않지만 엽기적 가혹행위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김 작가는 인터뷰에서 “(2014년 웹툰을 연재할 때부터) ‘언젯적 군대 얘기를 하느냐’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군내 부조리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폭력은 모양만 바뀌었을 뿐 어디엔가 계속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엔 이같이 썼다. “D.P.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분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기를.”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고3 소녀 3명이 있다. 강이(방민아)는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생각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2명의 의견이 부딪치면 “나는 상관없다”고 하는 게 그의 최선이다. 소영(한성민)은 자기애 충만한 인물로 이들 중 서열 1위다.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잔인하게 굴복시킨다. 아람(심달기)은 목장갑, 길고양이 등 버려진 것들을 주워 오며 “다 아픈 애들”이라고 말한다. 단순하게 사는 엉뚱한 소녀 같지만 사실은 아빠의 무관심과 폭력에 노출된 ‘버려진 소녀’다. 서로 다른 소녀 3명은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다.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영화 ‘최선의 삶’이 1일 개봉했다. ‘체급 자체가 다른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2015년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임솔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은 2019년 가수 아이유가 한 방송에서 ‘인생 책’이라며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시작부터 눈길을 끈다. 소설을 읽으며 떠올린 머릿속 장면들을 그대로 빼내 영상화한 듯하다.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학교, 동네 등 주요 장소까지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원작 속 “우리는 자꾸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등의 주요 문장은 토씨까지 그대로 살려 강이의 내레이션으로 옮겼다. 여성 관객에게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도 선물한다. 그 시절 어설프고 불안한 선택이 낳은 결과를 후회하며 살지만 돌이켜보면 당시로선 그게 최선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우정 감독은 1일 전화 인터뷰에서 “10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묻어두었던 그 시절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강이로 분한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 방민아의 연기력도 관람 포인트다. 강이가 엄마 앞에서 무서움과 분노, 후회 등 온갖 감정을 그러모아 오열하는 장면을 보고 나면 아이돌 출신에게 갖기 쉬운 선입견이 사라진다. 방민아는 강이 역으로 7월 뉴욕 아시안영화제에서 국제라이징스타상을 받기도 했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원작 속 주요 서사 일부가 생략돼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함축이 거듭된 시를 읽는 것처럼 스토리를 이해하기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가출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주인공들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소영은 강이를 따돌리고 괴롭힘을 주도한다. 원작은 소영과의 몸싸움 끝에 강이가 ‘최선의 선택’이라며 소영에게 무릎을 꿇는 장면, 이런 강이에게 소영이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상당 부분 나온다. 결말 부분 소영에 대한 ‘강이의 선택’을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런데 영화는 강이가 상처를 입은 채 공터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장면으로 훌쩍 건너뛴다. 감독은 “해당 장면은 촬영은 했지만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폭력 장면을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편집 과정에서 덜어냈다”며 “사건 자체보다는 10대 주인공 각자가 맞닥뜨리는 감정과 세밀한 변화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TH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새로운선택상’ 등을 수상했다. 15세 관람가.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옥상을 밝히던 백열등이 꺼지자 200인치 대형 스크린이 빛을 쏟아냈다. 스크린 뒤편에선 경희궁 주위의 키 큰 나무들이 밤바람에 살랑였다. 8월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의 주택가 언덕에 위치한 에무시네마 옥상. 30여 명이 빈백에 기대거나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영화 ‘시네마 천국’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승을 부리던 열대야가 물러간 덕에 관객들은 초가을 밤공기를 느끼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서계원 씨(34·회사원)는 “옥상에서 영화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며 “실내 영화관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외에서 영화를 보려면 열대야와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8월 말부터 밤 기온이 20도 안팎(서울 기준)에 머물면서 야외, 특히 옥상에서 영화 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접어들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에 있는 에무시네마는 8월 19일 ‘라라랜드’ 상영을 시작으로 매주 목·금·토요일 저녁 옥상에서 ‘별빛영화제 시즌2’를 진행하고 있다. 월요일 오후 8시에 다음 주 티켓 예매가 시작되는데, 보통 5분도 되지 않아 32개 좌석 표가 매진된다. 날씨가 선선해진 데다 팬데믹으로 꽉 막힌 실내에서의 영화 관람을 꺼리는 이들이 늘면서 옥상 관람의 인기가 높아진 것. 양인모 에무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캠핑 의자와 테이블 등을 제공해 관객들이 캠핑장에 온 기분을 느끼며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 관람료는 1만2000원, 10월 말까지 옥상 상영을 진행한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대한극장도 9월 중순부터 옥상 영화 상영을 시작한다. 대한극장이 젊은 관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2019년 봄부터 시작한 옥상 상영관 ‘시네가든’에서의 영화 상영은 봄과 가을에만 진행된다. 올가을엔 영화 ‘호우시절’ ‘윤희에게’ ‘우리의 20세기’ 등 재개봉작들을 다음 달 말까지 상영할 예정이다. 배도현 대한극장 기획실 팀장은 “유명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의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다 옥상 상영을 기획하게 됐다”며 “주로 젊은 연인들이 찾고 있어 로맨스물 위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했다. 관람료는 음료와 영화 관련 굿즈, 영화 티켓을 묶어 1만4000원이다.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의 예술영화관 아트나인도 8월 26일 영화 ‘이도공간’을 시작으로 ‘반옥상’ 격인 12층 ‘시네마 테라스’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무더위와 사회적 거리 두기 탓에 테라스 상영을 잠정 중단했다가 재개한 것. 아트나인은 카페를 겸한 레스토랑 중 일부 공간을 테라스 영화 상영에 활용하고 있다. 과거 50석을 운영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20석으로 줄였다. 소규모 인원이 모여 스크린 뒤 큰 창에 그림처럼 펼쳐진 하늘을 보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9월엔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9일),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16일) 등 ‘장국영 스페셜’을 진행할 예정이다. 음료를 묶어 1만6000원에 영화 티켓을 판매한다. 박혜진 아트나인 극장사업부 팀장은 “코로나19 탓에 일정을 장담할 순 없지만 난로를 틀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한겨울 직전까지는 테라스 영화 상영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 안 곳곳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막상 정리하자니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수납용품을 사는 데 드는 돈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시간과 비용을 덜 들이면서도 집을 깨끗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오전의 살림 탐구’(라이프앤페이지)를 펴낸 17년 차 살림 전문가 정이숙 작가(43·사진)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약간의 아이디어만 더하면 놀이처럼 즐기면서 집을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180가지 살림 아이디어가 담긴 그의 책은 교보문고의 취미·스포츠 분야 책 판매 순위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살림 책이 이 분야 1위를 차지한 건 이례적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집 정리에 대한 독자들의 높은 관심이 반영된 것. ‘살림 천재’로 통하는 그에게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집 정리 노하우를 들어봤다. 개는 게 귀찮아 빨래를 미루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는 “개지 않는 빨래 종류를 늘리라”는 근원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수건은 펴서, 양말은 같은 종류로 사서 모양만 맞춰 켜켜이 쌓아두는 식. 속옷도 편 채로 쌓으면 끝이다. 그날 쓸 개인수건은 개인별 수건걸이를 욕실 문밖에 달아 걸어두면 된다. “수건을 펴서 보관할 만한 공간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 집은 안방 서랍 한 칸을 비워 수건 보관용으로 쓴다. 쓸데없는 물건을 비우면 어느 집이든 보관 장소는 충분하다”고 답했다. 책상 정리를 위한 수납용품으로는 플라스틱 우유통이 제격이다. 수납할 물건 높이에 맞게 우유통을 자른 뒤 책상이나 싱크대 서랍에 넣고 쓰면 된다. 그는 “잘 자른 우유통은 유명 브랜드 잡화점에서 파는 반투명 수납용품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검은색 도시락 용기는 볼펜이나 메모지 등을 크기별로 나눠 보관하기에 좋다. 텀블러의 경우 싱크대 상부 장에 여러 개를 세워 놓으면 꺼내다 쓰러뜨리기 일쑤. 이럴 땐 1000mL짜리 우유팩이 답이다. 윗부분을 제거한 우유팩 여러 개를 양면 테이프로 결합한 뒤 텀블러를 눕혀 넣는 방법. 그는 “우유팩 수납함은 상부 장에 밀어 넣어 쓰는 만큼 기존 상표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갑 티슈는 아래로 숨기자. 우선 티슈만 꺼내 과일 플라스틱 용기에 넣은 뒤 벨크로 테이프로 책상이나 식탁 아래에 거꾸로 붙인다. 이어 티슈가 나오는 갑 티슈 입구 부분은 오린 뒤 플라스틱 용기에 붙여 사용하면 된다. 그는 “티슈를 뽑을 때 먼지도 덜 나고 책상과 식탁도 넓게 쓸 수 있다. 티슈 커버도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바닥 곳곳에 놓인 물건들은 청소를 포기하게 만드는 원흉이다. 정 작가의 해법은 ‘물건 공중부양’으로 청소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 멀티탭은 벨크로 테이프로 책상 주변의 켜고 끄기 편한 위치에 부착해 바닥으로부터 떼어 놓는다. 전선은 정리 클립을 이용해 책상이나 벽에 고정시킨다. 욕실도 마찬가지. 다용도 걸이와 집게, 끈을 활용해 치약, 샴푸 등을 최대한 매달아 놓는다. 욕실 청소는 극세사 수건 2장과 5분의 시간만 있으면 된다. 젖은 수건으로 거울, 세면대 등을 닦은 후 마른수건으로 한 번 더 닦으면 끝이다. 이렇게 하면 물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만 해도 충분하다. 그는 “집은 화가 쌓이지 않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처음부터 깨끗하게 만들기 쉬운 집을 목표를 하면 정리하기가 편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8일 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삼각지역 일대. 인도 쪽 외벽 전체가 통유리로 된 1층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부에선 사람들이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와인 가게로 짐작은 되지만 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외벽인 통유리에 붙어있는 건 ‘@hariseoul’이라는 글귀가 전부. 이마저도 하얀색인 데다 출입문 손잡이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의 정체는 올해 1월 문을 연 내추럴 와인바 ‘하리’. 하리를 운영하는 정종혁 씨(31)는 “캄캄한 거리를 밝히는 가게 내부 불빛 자체가 간판이라고 생각해 외벽을 통유리로 만드는 대신 간판을 달지 않았다”며 “간판이 없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 더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일자리 잃은 영업사원 ‘간판’ 지금까지 간판은 가게의 얼굴이자 ‘무언의 영업사원’으로 불렸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가게의 정체를 알리고 이들을 가게로 이끄는 판촉물이었던 것. 간판 활용은 장사의 기본이었다. 몇 년 사이 ‘간판 없는 가게’가 늘고 있다. ‘K간판’으로 불리며 도시 미관을 해치는 원흉으로 꼽히던 평면 간판이 줄고 가게명만 표시하는 입체 글자 간판이 늘더니 이마저도 달지 않게 된 것. 이 같은 추세는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가게 주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삼각지역 일대 또 다른 내추럴 와인바 ‘음(Mmm)’의 경우 간판이 없는 것에 더해 꽃가게 위 2층에 정체를 숨기고 있다. 1층 출입문에도 안내문이 전혀 없다. ‘음’을 운영하는 권은지 씨(34·여)는 “우리 가게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만 찾아와 와인을 즐겼으면 하는 생각에 간판을 달지 않았다”며 “손님들에게 ‘나만 아는 공간’의 매력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MZ세대 “간판 없어도 괜찮아” 이들이 간판을 달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은둔에 가까운 기이한 모습을 하고도 장사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MZ세대의 특성을 간판 없는 가게의 전성시대를 여는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하리’의 경우 예약의 95% 이상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받고 있다. 손님도 대부분 SNS를 잘 활용하는 MZ세대다. ‘음’ 주인 권 씨는 “개업 초기 출입문에 인스타그램 주소를 잠깐 붙여 놨다 뗐는데 이때 홍보가 되면서 소문이 났다”며 “간판이 없어도 장사하는 데 문제는 없다”고 했다. 숨은 맛집을 SNS 검색을 통해 어렵게 발견한 뒤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어 하는 MZ세대의 특성도 간판 없는 가게의 확산을 부추긴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디지털문화심리학자)는 “MZ세대 고객들과 SNS를 영업에 활용하는 MZ세대 주인들이 결합하면서 간판을 달지 않는 추세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맛 자신감-워라밸 중시도 한몫 간판 없이도 맛과 분위기로 승부를 낼 수 있다는 MZ세대의 자신감도 간판을 떼게 하는 원인이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 없는 가게’는 간판이 없는 데다 가게 이름까지 ‘간판 없는 가게’다. 호텔 셰프 출신 등 1988년생 친구 3명이 뜻을 모아 2017년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익선동 대표 맛집으로 소문 나 늘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이 가게 주인 정종욱 씨는 “음식이 맛있으면 그 가게가 산골짜기에 있어도 손님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며 “음식과 맛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고 싶어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했다. ‘대박’이 나 큰돈을 벌며 바쁘게 사는 것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 특성도 간판 없는 가게를 확산시키는 배경이다. 대구 중구에서 ‘코러스커피’를 운영하는 최진영 씨(29)가 그렇다. 그의 가게는 1층에 구제품 가게와 보청기 가게가 있는 건물의 2층에 간판 없이 숨겨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이 우연히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가게인 것. 최 씨는 “내 가게와 취향이 맞다고 생각해 애써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집중하고 싶었다”며 “대박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 주인 권 씨는 대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하다 퇴사한 뒤 내추럴 와인바를 열었다. 그는 “가게가 너무 잘되는 건 싫다”며 “적당히 돈 벌고 적당히 일하며 내가 좋아하는 내추럴 와인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은용 경희사이버대 호텔·레스토랑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 주인들도 간판이 없으면 개업 초창기 고객 확보가 어렵다는 걸 잘 알 것”이라며 “그럼에도 간판을 걸지 않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면서 워라밸을 지키겠다는 MZ세대의 명확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8일 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삼각지역 일대. 인도 쪽 외벽 전체가 통유리로 된 1층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부에선 사람들이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와인 가게로 짐작은 되지만 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외벽인 통유리에 붙어있는 건 ‘@hariseoul’이라는 글귀가 전부. 이마저도 하얀색인데다 출입문 손잡이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의 정체는 올해 1월 문을 연 내추럴와인바 ‘하리’. 하리를 운영하는 정종혁 씨(31)는 “캄캄한 거리를 밝히는 가게 내부 불빛 자체가 간판이라고 생각해 외벽을 통유리로 만드는 대신 간판을 달지 않았다”며 “간판이 없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 더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일자리 잃은 영업사원 ‘간판’ 지금까지 간판은 가게의 얼굴이자 ‘무언의 영업사원’으로 불렸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가게의 정체를 알리고 이들을 가게로 이끄는 판촉물이었던 것. 간판 활용은 장사의 기본이었다. 몇 년 사이 ‘간판 없는 가게’가 늘고 있다. ‘K간판’으로 불리며 도시 미관을 해치는 원흉으로 꼽히던 평면 간판이 줄고 가게명만 표시하는 입체 글자 간판이 늘더니 이마저도 달지 않게 된 것. 이 같은 추세는 특히 MZ세대 가게 주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삼각지역 일대 또 다른 내추럴와인바 ‘음(Mmm)’의 경우 간판이 없는 것에 더해 꽃가게 위 2층에 정체를 숨기고 있다. 1층 출입문에도 안내문이 전혀 없다. 가게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 애쓴 듯한 모습. ‘음’을 운영하는 권은지 씨(34·여)는 “우리 가게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만 찾아와 와인을 즐겼으면 하는 생각에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손님들에게 ‘나만 아는 공간’의 매력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MZ세대 “간판 없어도 괜찮아”이들이 간판을 달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은둔에 가까운 기이한 모습을 하고도 장사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MZ세대의 특성을 간판 없는 가게의 전성시대를 여는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하리’의 경우 예약의 95% 이상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받고 있다. 손님도 대부분 SNS를 잘 활용하는 MZ세대다. ‘음’ 주인 권 씨는 “개업 초기 출입문에 인스타그램 주소를 잠깐 붙여 놨다 뗐는데 이때 홍보가 되면서 소문이 났다”며 “간판이 없어도 장사하는데 문제는 없다”고 했다. 숨은 맛집을 SNS 검색을 통해 어렵게 발견한 뒤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어 하는 MZ세대의 특성도 간판 없는 가게의 확산을 부추긴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디지털 심리학자)는 “MZ세대 고객들과 SNS를 영업에 활용하는 MZ세대 주인들이 결합하면서 간판을 달지 않는 추세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맛 자신감-워라밸 중시도 한몫간판 없이도 맛과 분위기로 승부를 낼 수 있다는 MZ세대의 자신감도 간판을 떼게 하는 원인이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 없는 가게’는 간판이 없는데다 가게 이름까지 ‘간판 없는 가게’다. 호텔 셰프 출신 등 1988년생 친구 3명이 뜻을 모아 2017년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익선동 대표 맛집으로 소문 나 늘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이 가게 주인 정종욱 씨는 “음식이 맛있으면 그 가게가 산골짜기에 있어도 손님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며 “음식과 맛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고 싶어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했다. ‘대박’이 나 큰돈을 벌며 바쁘게 사는 것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 특성도 간판 없는 가게를 확산시키는 배경이다. 대구 중구에서 코러스커피를 운영하는 최진영 씨(29)가 그렇다. 그의 가게는 1층에 구제품 가게와 보청기 가게가 있는 건물의 2층에 간판 없이 숨겨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이 우연히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가게인 것. 최 씨는 “내 가게와 취향이 맞다고 생각해 애써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집중하고 싶었다”며 “대박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 주인 권 씨는 대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하다 퇴사한 뒤 내추럴와인바를 열었다. 그는 “가게가 너무 잘되는 건 싫다”며 “적당히 돈 벌고 적당히 일하며 내가 좋아하는 내추럴와인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은용 경희사이버대 호텔·레스토랑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 주인들도 간판이 없으면 개업 초창기 고객 확보가 어렵다는 걸 잘 알 것”이라며 “그럼에도 간판을 걸지 않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면서도 워라밸을 지키겠다는 MZ세대의 명확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숨겨둔 보석 같은 해변이 있다. ‘사람 반 물 반’인 휴가철 여느 해변과 달리 인적이 드물다. 천혜의 자연 경관까지 더해지니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근심이 있는 듯하지만 해변에 도착한 순간만큼은 최고의 휴가를 보낼 생각에 들떠 있다. 그런데 이 낙원은 순식간에 지옥이 된다. 30분에 1년씩 시간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흐른다. 6세 남자아이 트렌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성인이 된다. 탁 트인 해변 어디에도 탈출할 곳이 없다. 18일 개봉한 스릴러 영화 ‘올드(OLD)’ 이야기다. ‘올드’는 독창적인 스토리와 반전의 대가인 M 나이트 시아말란 감독의 신작. 시간이 초고속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아름답기만 했던 기암절벽과 바다는 그들을 고립시키는 ‘자연 감옥’으로 바뀐다.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친 이는 집채만 한 파도에 휩쓸리는 등 죽음을 맞는다. 2011년 출간된 그래픽 노블 ‘샌드 캐슬’이 원작인 이 영화는 ‘관객의 시간’ 역시 빨리 가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 넘친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들을 해변에 가뒀을까. 리조트 직원은 왜 하필 이들에게만 이 해변을 소개했을까. 꼬리를 무는 호기심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작곡가 트레버 거레키스가 만든 영화 음악은 의도된 불협화음으로 관객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면서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은 공포지만 정반대로 ‘시간이 약’이라는 점도 보여준다. 노인이 돼버린 인물들은 젊은 시절의 갈등이 사실 별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노화로 눈이 침침해지면서 아내를 더 자세히 보게 되고 귀가 어두워지면서 남편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스릴러물이지만 인생과 시간에 대한 고찰도 곳곳에 담겨 있다. 영화 속 해변은 도미니카공화국의 ‘플라야 엘 바예’. 공포의 해변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국내에 갇힌 관객들에게 멋진 해변에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영화 후반부 악역을 맡은 배우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뱉는 대사가 너무 직접적인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삼켜버린 현재 상황과 맞물리는 부분도 있다. 영화는 지난달 북미에서 먼저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12세 이상 관람가.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어떤 시는 시라기보다 신세 한탄에 가깝다. 시작과 동시에 끝나 버리는 한 문장짜리 시도 있다. 집안일을 시키면서 ‘아르바이트비’를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투정을 다루기도 한다. 최근 발간된 어린이 시집 ‘내 마음에 들어온 시’(그루) 이야기다. 김현희 교사(38·여·사진)가 엮은 이 시집은 경북 칠곡군 약목초등학교 전교생 166명 중 143명의 시를 모아 발간됐다. “내 이름을 단 시가 외부로 공개되는 것이 껄끄럽다”는 의견을 내비친 고학년 몇 명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교생의 시가 담긴 것. 김 교사는 이 학교에 부임한 2018년부터 시 동아리 지도를 해왔다. 그러다 올해 1학기엔 전교생을 대상으로 시 수업을 했다. 그는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가 약목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여서 모두에게 시를 가르친 뒤 ‘전교생 시집’을 내고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1학기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3편 이상 시를 써오라”며 숙제를 내줬다. “시 쓸 내용이 없다” “시가 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겐 일상의 모든 일이 시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이들이 다투면 화해시키며 “싸운 내용으로 시 써 온나. 니가 경험하고 느낀 게 다 시다”라고 가르치는 식. 한 학생은 이 같은 가르침에 ‘시 쓰기 싫은 심정’을 소재로 시로 쓰기도 했다. ‘선생님이/시를 10편 이상 쓰라고/협박하셨다.//정말 자퇴하고 싶다.’(6학년 최태영 ‘시’) 한 달 뒤 이 학생의 심정은 좀 달라졌다. ‘(전략) 아무래도 김현희 선생님 때문에/시에 중독된 것 같다’(‘주말’) “학생들에게 ‘좋은 시 나쁜 시는 없지만 진짜 시 가짜 시는 있다’고 늘 강조해요. 감정이 묻어나지 않거나 어설픈 말재주를 부리는 시는 ‘가짜 시’라고요. 시를 써오면 무조건 칭찬해줬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시를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시집은 숙제 중 학생 각자가 ‘가장 마음에 든다’며 선택한 시로 구성했다. 자유롭고 재기발랄하게 써내려가 개성 넘치는 일상과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시의성을 반영한 ‘삼행시’(6학년 박현준)라는 시도 있다. ‘집으로 가는 길/우리 가족은 삼행시 삼매경.//“개미집으로 삼행시 해볼게.”/개 미들이 단체로/미 쳤나보다 이 시국에/집 단생활이라니 (중략) 그 말을 들은 막내는/자기도 하겠다며/‘소름’으로 이행시를 한단다.//소 가 운다./름 매.’ 한 문장짜리 시 ‘구구단 외우기’(2학년 이시우)의 내용은 이렇다. ‘2단에서 7단까지는 외울 수 있는데/8단에서 끊긴다.’ ‘치킨의 수명’(4학년 심형준)을 보면 치킨을 진지하게 관찰한 뒤 ‘치킨의 수명은 하루’라는 결론에 도달한 초등학생의 엉뚱함에 웃음이 터진다. 일상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평소와 다른 느낌’(6학년 조율)이란 작품도 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온 날./평소에는 보지 못한 것들.//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빛을 즐기는 식물들./그리고 차분한 분위기.//같은 집이지만/평소와는 다른 느낌.’ 조율 군(12)은 “시를 배우며 사소한 것도 자세히 보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엄마와 전망대에 놀러간 경험을 녹여 ‘전망대’라는 시를 쓴 전예닮 양(9)은 “시를 쓰면 좋았던 일이 생각나서 행복하다”고 했다. 경북도교육청과 칠곡교육지원청의 지원을 받아 발간된 시집은 약목초등학교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김 교사는 남은 한 학기도 전교생 대상 시 지도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함, 불만 등 내면의 감정을 시를 통해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세계화를 향해 질주하던 인류가 장애물을 만났다. 정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코로나19가 초고속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원인으로 세계화가 지목됐다. 국가 간 장벽은 전례 없이 높아졌다. 세계화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거시경제·국제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에 따르면 세계화는 구석기시대부터 크게 7개 시대에 걸쳐 진행된 역행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 세계화 과정에서 인류는 코로나19 외에도 빈곤, 전쟁, 환경오염 등 각종 장애물을 숱하게 만나 왔다. 그렇다고 세계화를 끝내지 않았다. 저자는 “세계화를 멈출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속 가능한 세계화’를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국제사회가 머리를 맞댄 것도 이 같은 노력의 하나였다. 저자는 전 세계가 연구개발 분야에서 협력하고 결과물을 전 세계로 신속하게 보급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역내 협력 기구를 만들고 세계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유럽 국가들이 적용 중인 보편적 의료 혜택 제공 등 ‘사회적 민주주의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한다. 아쉬운 점은 제시된 해법들이 “지역적·국제적 협력이 중요하다”는 등의 교과서적 제언 수준에 그친다는 것. 인류가 걸어온 ‘세계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사진 속 주인공은 사라지려는 찰나에 포착된 듯 반투명하다. 뒷배경인 벽이나 의자는 이런 인물에 투영돼 훤히 보인다. 김동우 사진가(43·사진)가 독립운동가 후손의 사진을 찍으며 의도한 공통된 특징이다. “독립운동가나 후손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들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지거나 아예 지워졌죠. 역설적으로 흐릿해져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10일 만난 김 사진가는 2017∼2019년 멕시코, 쿠바, 미국 등 10개국을 돌며 촬영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진과 최근까지 국내에서 담아낸 후손들 사진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사진가의 직전 직업은 여행작가였다. 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하다 2012년 퇴사한 뒤 꿈꾸던 세계일주를 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책도 냈다. 여행에 맞춰져 있던 렌즈 초점이 독립운동으로 옮겨간 건 2017년 봄. 당시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보자’는 큰 그림만 그린 채 출국했다. “인도 여행 중에 문득 과거 지인에게서 ‘카자흐스탄에 홍범도 장군 묘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델리에도 뭔가 있는지 찾아봤죠. 있더라고요. 충격이었죠.” 그를 놀라게 한 건 1943년 한국광복군 9인이 영국군 요청으로 ‘인면전구공작대’를 조직해 인도로 건너간 뒤 훈련했던 델리 레드포트였다. 역사적 장소였지만 표지판 하나 없었다. 이를 계기로 여행 주제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서’로 정해졌다. 그는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자취가 있다는 것도, 이것이 방치돼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고 했다. 2018년 멕시코로 간 그는 대사관과 한인회 등을 수소문한 끝에 김익주 선생(1873∼1955)의 묘소와 손자의 사진을 찍었다. 김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멕시코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낸 한인 중 한 명. 그는 “저도 그때 김 선생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이처럼 기억되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현재를 담아 미래에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사명감으로 그가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작업 비용은 개인 경비로 충당했다. 김 사진가는 그간 국외 독립운동에 대해 취재한 내용과 사진을 묶어 지난달 ‘뭉우리돌의 바다’를 출간했다. 3일부터는 부산 사상구에 있는 부산도서관에서 ‘관심없는 풍경, 뭉우리돌을 찾아서 부산경남편’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올해 1∼7월 부산 경남 일대를 돌며 촬영한 독립운동가 후손 및 사적 사진 80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마지막 사진으로는 안중근 의사 여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성녀 선생의 묘 사진이 걸렸다. 부산 남구 용호동 천주교공원묘지 내에 있는 묘다. 김 사진가는 “안 선생의 묘가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풍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분명한 건 과거를 제대로 봐야 현재를 직시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겁니다. 역사는 미래로 나가는 열쇠라는 것, 그러니 기억에서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네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지난달 26일 ‘한국의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자 문화재계에선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반응이 나왔다. 앞서 올해 5월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등재 반려’ 권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통상 자문기구의 반려 권고를 받으면 해당국은 세계유산위원회 총회 전 등재 신청을 철회한 후 다음 기회를 노린다. 우리 정부는 2015년 1월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신청서를 냈지만 반려 권고를 받고 중간에 신청을 철회한 전례가 있다. 당시 미비점을 보완한 뒤 재신청을 거쳐 2019년 7월 등재에 성공했다. 정부가 이번에 신청을 철회하지 않고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할 수 있었던 건 짧은 기간 속도전으로 진행한 외교전에 힘입은 바가 컸다. IUCN이 반려를 권고한 이유 중 하나는 등재 신청 구역이 좁다는 것. 정부는 서천, 고창, 신안, 보성-순천 갯벌 등 5개 지방자치단체에 걸친 4개 갯벌에 한해 등재를 신청했다. 이에 정부는 올 5월 말부터 갯벌이 있는 전국 지자체를 돌며 유산 구역 확대에 나섰다. 일부 지자체는 “세계자연유산 구역으로 묶이면 지역개발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참여를 주저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관광객 유치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협조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인천 영종도 갯벌, 무안 갯벌 등 9개 갯벌을 관리하는 8개 지자체로부터 받은 협조 공문을 앞세워 세계유산위원회의 21개 위원국 설득에 나섰다. 주유네스코 한국대표부를 중심으로 “2025년까지 9개 갯벌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등 갯벌 보호체계를 갖출 테니 먼저 신청한 5개 갯벌이 우선 등재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것. 위원국 중 하나인 키르기스스탄을 설득해 세계유산위원회에 수정 결정문을 발의하도록 했다. 막바지에는 국무총리 명의의 서한을 위원국들에 보냈다. 한국은 갯벌 이전에 석굴암·불국사 등 14개의 세계유산을 등재시켰지만 총리 서한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결국 한국의 갯벌은 이례적으로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등재됐다. 여성희 문화재청 세계유산정책과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원국 관계자들을 만날 수 없어 등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들 했지만 화상회의 등을 통해 설득을 이끌어내 기쁘다”며 “올 1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가야고분군도 내년에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치솟는 거예요. 20층짜리 아파트인데 100층 넘게 마구 올라가는 거죠.” 인터넷 카페에서 이런 게시글을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기자만 그런 꿈을 꾼 게 아니었던 것이다.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백화점’ 시리즈는 온갖 꿈을 판매하는 달러구트 꿈백화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엘리베이터 꿈이나 하늘을 나는 꿈처럼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착안한 듯한 설정을 보여준다. 렘수면에 빠져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꿈백화점을 찾아 꿈을 구매한다. 인기 꿈상품은 금방 동난다. 같은 꿈을 매일 사는 사람도 있다. 서른 살이 다 돼 재입대하는 악몽을 구매하는 특이한 이들도 있다. 지난해 7월 출간된 1편은 주인공 페니가 갓 입사한 꿈백화점과 백화점 사람들, 꿈 제작자들, 꿈을 사는 이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두루 담았다. 지난달 출간된 2편은 1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백화점 단골손님 몇몇의 에피소드에 깊게 파고든다. 그중 한 단골손님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꿈속 일에 관여하는 ‘루시드 드리머’다. 그는 잠에서 깨면 모든 걸 잊는 일반인들과 다른 능력자 같다. 그러나 한편으론 꿈속 환상 세계를 좇는 현실 도피자이기도 하다. 현실을 사는 것보다 꿈꾸는 일이 더 행복했던 날을 보내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다. 1편은 지난해 7월 출간된 이후 지난달까지 종이책으로만 57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2편도 5일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꿈을 파는 백화점’ 이야기라 하면 아동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책을 펴는 순간 ‘어른들을 위한 힐링 동화’라는 세간의 평가가 와닿는다. 어떤 꿈이든 꿈을 꾸는 이들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꿈백화점을 헤매며 ‘오늘의 꿈’을 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문화재 분야에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전통건축과 관련된 연구 등을 실시하는 건축문화재연구 분야와 문화재 수리 정책을 총괄하는 수리기술 분야에 여성이 드물다는 것. 이 때문에 이 분야의 책임자 자리는 ‘금녀의 영역’처럼 여겨져 왔다. 이런 불문율을 깨고 금녀의 영역에 들어선 여성들이 있다. 조은경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장(48)과 이명선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 소속) 건축문화재연구실장(50)이 그 주인공. 1일 수리기술과장직에 임명된 조 과장은 4일 전화 인터뷰에서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수리기술과는 기술직 남성 직원 중심인데 저는 연구직인 데다 여자여서 기회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 내 수리기술과는 2008년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수리 정책을 전문적으로 수립·집행할 부서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2009년 신설됐다. 여성이 과장을 맡은 적은 없었다. 건축학 박사인 조 과장은 2002년 문화재청에 들어온 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하며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미륵사 복원고증 연구를 담당하는 등 문화재 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다. 2018년부터는 남북 문화재 교류협력 업무를 맡아 최근까지 비무장지대(DMZ) 내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분야를 확장했다. 조 과장은 “문화재 연구로 쌓은 역량을 문화재 보존의 핵심인 수리 현장에 적용해 그 수준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며 “현장에 인생을 바치다시피 하고 있는 문화재 수리기술자들에게 섬세하게 다가가 적극 소통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1일에는 이명선 실장이 임명됐다. 2003년 신설된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에서 여성 실장은 처음이다. 건축문화재연구실은 전국의 전통건축 관련 중요문화재에 대한 학술조사와 연구를 실시하는 곳. 문화재 안전점검과 보수정비 사업 및 복원고증 연구, 수리기술 개발도 한다. 건축공학 박사인 이 실장은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현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센터 초빙교수로 있던 그는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다 문화재 현장을 바꿔보고 싶다고 결심했다. 2010년 문화재청에 특채로 들어온 후 안전기준과에서 문화재 재난안전정책 관련 기획 업무를 하며 현장에서 내공을 다졌다. 이 실장은 “현장에서 쌓은 역량을 연구 분야에 접목해 시너지를 내겠다. 첫 여성 실장은 맞지만 여성이어서 주목받고 싶진 않다. 성별을 떠나 일로 평가받겠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문화재 분야에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전통건축과 관련된 연구 등을 실시하는 건축문화재연구 분야와 문화재 수리 정책을 총괄하는 수리기술 분야에 여성이 드물다는 것. 이 때문에 이 분야의 책임자 자리는 ‘금녀의 영역’처럼 여겨져 왔다. 이런 불문율을 깨고 금녀의 영역에 들어선 여성들이 있다. 조은경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장(48)과 이명선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 소속) 건축문화재연구실장(50)이 그 주인공. 1일 수리기술과장직에 임명된 조 과장은 4일 전화인터뷰에서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수리기술과는 기술직 남성 직원 중심인데 저는 연구직인데다 여자여서 기회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 내 수리기술과는 2008년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수리 정책을 전문적으로 수립·집행할 부서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2009년 신설됐다. 여성이 과장을 맡은 적은 없었다. 건축학 박사인 조 과장은 2002년 문화재청에 들어온 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하며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미륵사 복원고증 연구를 담당하는 등 문화재 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다. 2018년부터는 남북문화재교류 협력 업무를 맡아 최근까지 비무장지대(DMZ) 내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분야를 확장했다. 조 과장은 “문화재 연구로 쌓은 역량을 문화재 보존의 핵심인 수리 현장에 적용해 그 수준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며 “현장에 인생을 바치다시피 하고 있는 문화재 수리 기술자들에게 섬세하게 다가가 적극 소통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1일에는 이명선 실장이 임명됐다. 2003년 신설된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에서 여성 실장은 처음이다. 건축문화재연구실은 전국의 전통건축 관련 중요문화재에 대한 학술조사와 연구를 실시하는 곳. 문화재 안전점검과 보수정비 사업 및 복원고증 연구, 수리 기술 개발도 한다. 건축공학박사인 이 실장은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현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리츠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센터 초빙교수로 있던 그는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다 문화재 현장을 바꿔보고 싶다고 결심했다. 2010년 문화재청에 특채로 들어온 후 안전기준과에서 문화재 재난 안전 정책 관련 기획 업무를 하며 현장에서 내공을 다졌다. 이 실장은 “현장에서 쌓은 역량을 연구 분야에 접목해 시너지를 내겠다. 첫 여성 실장은 맞지만 여성이어서 주목받고 싶진 않다. 성별을 떠나 일로 평가받겠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우리 종(호모사피엔스)이 번성한 것은 우리가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호모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같은 다른 ‘사람 종’은 멸종했다. 호모사피엔스는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호모사피엔스가 생존투쟁에서 승리한 비결은 뭘까. 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과 교수와 연구원인 저자들은 호모사피엔스가 신체적으로 월등했거나 도구 사용에 가장 능한 종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들에겐 타인과 협력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친화력이 있었다. 개가 인간 곁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도 친화력이었다. 저자의 개는 주인의 손짓을 보고 그 의미를 이해한 뒤 먹이가 숨겨진 컵을 찾아낸다. 사람과 사이가 좋은 개들 사이에서 더 많은 번식이 일어나면서 개는 한층 더 사람과 잘 지내는 동물로 변하게 된다. 친화력이 없는 늑대가 멸종 위기에 놓인 것과 대조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다정하게 행동할수록 생존에 유리해진다. 저자들은 친화력을 상승시킨 호모사피엔스가 더 큰 무리를 만들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이룬 다른 종을 이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친화력의 이면에는 공격성이 존재한다. 저자들은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라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갖춘 자신의 집단과 구성원들에 대한 강한 친화력이 타 집단 및 구성원들에 대한 강한 적대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타 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문자폭탄 테러를 하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고.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인종·지역·이성 혐오 등 도처에 혐오가 도사리는 시대에 인류가 멸종하지 않을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해법’이 담겨 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일병합조약이 발효된 1910년 8월 29일. 일본 정부와 출판사 등은 기다렸다는 듯 각종 기념엽서를 발행했다. 그중엔 ‘파노라마 엽서’도 다수 있었다. 여러 장이 세트로 발행돼 나란히 이으면 그림이 완성되는 형태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엽서를 수집해 온 신동규 동아대 일본학과 교수는 파노라마 엽서를 포함해 일제가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발행한 사진·그림엽서 6943장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성과포털을 통해 20일부터 공개하고 있다. 40여 년간 모은 엽서 5만여 장 중 학술적 가치가 높고 희귀한 엽서들을 선별한 뒤 데이터베이스화한 결과물이다. 파노라마 엽서 중에서 2장짜리 엽서는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 엽서엔 일왕과 일본이 날조한 ‘신라정벌설’의 주인공인 신공황후,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실제 한반도를 침략했거나, 정벌한 것으로 날조된 주인공의 초상화나 사진이 오른쪽부터 시대순으로 나열돼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다. 신 교수는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일제는 당시 가공의 역사까지 총동원해 한일병합은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진행된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며 “한일병합은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선동하기 위해 이완용을 등장시켰다”라고 해석했다. ‘조선인이 원한 지배’라는 프로파간다는 조선총독부가 1910년 10월 1일부터 발행한 시정(始政) 기념엽서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과 일본 아이들이 강강술래를 하며 일장기를 들고 평화롭게 놀고 있는 그림을 담은 엽서가 대표적이다. 조선의 아이들까지 자발적으로 나서 일제를 환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파노라마 엽서 하단에는 들판에 닭 두 마리가 있고 어둠이 내려앉은 그림이 배치됐다. 신 교수는 “닭은 조선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제가 병합을 통해 어둡고 미개한 조선을 근대국가로 만들어 놓겠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했다. 공개된 엽서 중에는 중국 하얼빈역 승장강을 배경으로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사진이 담긴 것도 있다. 저격 현장은 ‘+’로 표시했다. 이토 히로부미 사진은 오른쪽 상단에 크게 부각시킨 반면 안 의사 사진은 왼쪽 하단에 조그맣게 배치했다. 사진 아래에는 안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자객’이라고 썼다. 이토 히로부미는 억울하게 희생된 의로운 지도자처럼, 안 의사는 범죄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설정한 것. 신 교수는 “나라를 빼앗긴 특수한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음에도 일제는 이를 평화로운 시기에 자객이 일으킨 살인사건으로 규정해 대내외에 알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위해 사진을 전략적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했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에 참패한 일본군이 같은 해 10월 간도 등지에서 독립군 토벌 작전을 벌여 생포한 독립군과 찍은 사진이 담긴 엽서도 처음 공개됐다. 사진 양측엔 일본군이, 가운데에는 독립군 4명이 서 있다. 독립군 중 한 명의 다리 부분이 하얗게 흐려져 있는 게 눈에 띈다. 신 교수는 “다른 사진들을 분석해 보면 이 독립군은 다리를 심하게 다쳐 걷지 못하는 상태”라며 “부상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면서까지 작전에 성공했음을 선전하기 위해 사진에 손을 댄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이번에 공개한 엽서 일부와 소장한 엽서 가운데 500여 장을 추려 다음 달 13일부터 부산 남구에 있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뼈아픈 역사적 사료인 엽서를 누구나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 신 교수는 지난달 이 역사관에 일제강점기 관련 희귀 사진첩 등 자료 343건을 기증했다. 그는 “일제가 조선인은 물론 일본인들에게까지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얼마나 교묘한 프로파간다를 행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도 소장한 자료를 최대한 많이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방탄소년단(BTS)을 누를 자는 방탄소년단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BTS가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로 자신들의 곡 ‘버터(Butter)’를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1위에서 밀어낸 지 일주일 만에 또다시 두 곡이 1위 자리를 주고받았다. 빌보드는 26일(현지 시간) ‘버터’가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9일 발표된 ‘퍼미션 투 댄스’에 지난주 1위 자리를 내주고 7위로 내려간 ‘버터’가 한 주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 ‘퍼미션 투 댄스’는 7위로 ‘버터’와 자리를 맞바꾼 셈이 됐다. 빌보드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버터가 1위로 되돌아왔다”며 “자신의 신곡으로 1위를 탈환한 직후 이전 1위 곡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보낸 경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버터’는 핫100에서 8주간 1위에 올라 올 들어 최장기간 1위를 유지한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드라이버스 라이선스’와 같은 기록을 냈다. 버터와 퍼미션 두 댄스 두 곡을 합치면 BTS는 9주 연속 빌보드 1위를 지키고 있다. 핫100 차트는 음원 다운로드와 실물 음반 판매량, 공식 오디오 및 비디오 스트리밍 수치, 라디오 방송 횟수를 합산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의 순위를 매긴다. ‘버터’가 정상을 재탈환한 데는 음원 발매 9주 차인 16∼22일 미국 내 음반 판매량이 11만5600건에 이른 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빌보드는 분석했다. 이는 전주(4만9800건)보다 132% 급증한 수치다. 버터의 미국 내 라디오 청취자 수도 3070만 명으로 발매 후 처음으로 3000만 명을 넘겼다. BTS 멤버 슈가는 팬 커뮤니티인 위버스에 남긴 글에서 “이게 말이…”라며 감격했다. 이어 “아미(BTS 팬클럽) 여러분 감사하고 고마워요”라고 덧붙였다. 로드리고의 ‘굿 포 유(Good 4 U)’는 BTS의 신곡 두 곡에 밀려 9주째 2위에 머물러 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