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CCTV 달고 촬영했나”…예비역들이 열광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일 14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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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디피)’ 화제

“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다. 더 좋은 군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지난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디피)’를 쓴 김보통 작가가 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최근 온오프라인상에서는 온통 디피 얘기다. 올해 공개된 영화나 드라마 등 국내 영상물을 통틀어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라고 확언할 수 있을 정도. 특히 드라마 속 군 부대 내 가혹행위 장면을 두고는 예비역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아니라 군대에CCTV 달고 촬영한 것 같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 드라마 작가이자 원작 웹툰 ‘D.P 개의 날’ 작가이기도 한 김보통 작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병영 내 가혹행위를 날것 그대로 다룬데다 예비역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정도로 실감나게 살려내서다. 김 작가는 “많은 남성이 군 생활을 하며 직접 경험하거나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리얼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D.P.’는 육군 헌병대(현 군사경찰대)의 군무이탈자 체포전담조를 뜻하는 DP(Deserter Pursuit) 조원들의 활약을 다루는 과정에서 병영 내 가혹행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묘사한다. 코를 곤다는 이유로 방독면을 씌우는 건 약한 수준. 선임병은 후임병 뒤통수가 벽에 박힌 대못에 찔려 피가 날 때까지 폭행한다. 방독면에 물을 붓고, 라이터를 켜 음모를 태우는가 하면 걸핏하면 성적 수치심을 준다. 드라마 속 소대는 온갖 엽기적인 가혹행위가 매일 일어나는 ‘가혹행위 종합세트’다. 분노를 참다 미치거나 탈영하지 않기 위해 온힘을 짜내 버텨내야 하는 지옥이다.

민감한 주제를 다룬 탓에 드라마는 제작 당시 군 당국 협조를 받지 못했다. 한 제작진은 “군 당국에 협조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했다. 드라마 속 가혹행위의 주무대 중 하나인 생활관(내무반)은 실내 세트다. 연병장 등 주요 군 시설물이 등장하는 촬영은 경기 부천시의 폐쇄된 군부대에서 진행했다. ‘태양의 후예’나 ‘진짜 사나이’ 등 군 관련 기존 영상물이 군의 협조를 받은 것과는 대비된다.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은 군 사건사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해로 꼽히는 2014년.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해다. 임 병장이 부대원들의 따돌림과 가혹행위를 참다못해 총기를 난사했다고 주장하면서 “가혹행위를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얘기가 회자됐다.

김 작가는 “2014년은 군도 사회도 변화해야 하는 큰 변곡점을 맞게 된 해”라고 시간 설정 배경을 설명하며 “(드라마 집필에) 두 사건을 일부 참고했다”고 했다.

드라마가 묘사하는 가혹행위를 두고는 반론도 나온다. 장교 A는 “드라마가 극적 효과를 주기 위해 전군에서 일어나는 극단적 사건을 골라 마치 한 부대에서 모조리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처럼 묘사한 것”이라며 “가혹행위 수준만 놓고 보면 20년 전 부대 같다”고 했다. 군 수사기관의 또 다른 장교는 “현재는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쓸 수 있어 가혹행위 발생 시 곧바로 국방헬프콜 등에 신고하고 있어 드라마 수준의 가혹행위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실제로 드라마 대본에는 과거 DP로 활동한 김 작가의 경험이 깔려있는데 그는 2002년부터 군 복무를 했다.

군 관계자들은 일부 독립부대를 제외하고 생활관이 침상형에서 사생활이 일부나마 보장되는 침대형으로 바뀐 점,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진 점, 이병부터 병장까지 함께 모여 있던 생활관이 동기 생활관으로 바뀐 점 등이 복무 스트레스를 줄여 가혹행위의 잦은 발생을 막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인 2014년을 전후는 물론 최근에도 가혹행위 사건은 잊을 만 하면 보도되고 있다. 2012년엔 심심하다는 이유로 선임병이 후임병의 발바닥을 20초간 지진 사건이 있었다. 2014년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후임병에게 파리를 먹이고 대검으로 찌른 사건, 냉장고에 가둔 사건 등 가혹행위가 릴레이식으로 드러났다. 2019년엔 육군 일병이 동기에게 대소변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 올해 7월엔 군인권센터가 한 공군부대에서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부대 용접가스보관창고에 가두고 불을 붙인 박스 조각을 집어던지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드라마의 특성상 극적 효과를 위해 각종 가혹행위를 한 소대 안에 집중시킨 면이 없지 않지만 엽기적 가혹행위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김 작가는 인터뷰에서 “(2014년 웹툰을 연재할 때부터) ‘언젯적 군대 얘기를 하느냐’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군내 부조리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폭력은 모양만 바뀌었을 뿐 어디엔가 계속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엔 이같이 썼다. “D.P.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분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기를.”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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