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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이 10일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거행됐다. 법요식은 이날 오전 10시 조계사에서 삼귀의와 반야심경 독송,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봉축사,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 남북 공동발원문 낭독 등의 순서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자승 스님은 봉축사에서 “부처님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이웃이며 동반자”라며 “조계종은 수행 문화 생명 나눔 평화의 5대 결사의 실천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국민들과 함께 더욱 밝은 광명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법전 스님은 법어를 통해 “모든 중생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법신(法身)을 갖추고 있고 아름다운 불성(佛性)을 지닌 미완의 여래(如來)”라며 “여러분 곁에 있는 분이 여래의 덕성을 갖춘 미륵의 현신”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남북 불교계의 공동발원문 낭독에 이어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패션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 김상기 육군참모총장, 방송인 이수근, 배우 김혜옥 씨에 대한 불자대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이 행사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 천주교 주교회의 이기락 사무처장,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주화 이맘 등 국내 종단 지도자들과 다문화가정 대표, 불교 신도 등 각계 인사 1만 여 명이 참석했다. 이슬람교 지도자가 법요식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천태종 태고종 등 불교 20여 개 종단의 1만여 사찰도 같은 시간 봉축 법요식을 거행하고 부처님이 오신 뜻을 기렸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9일 서울 명동대성당을 찾은 단기출가 동자승들이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있다. 정 추기경은 다큐영화 ‘법정 스님의 의자’ 상영에 앞서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인 현장 스님 등을 만나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교류와 종교 간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사진)가 7일 열린 순복음선교회 임시 이사회를 통해 사임 의사를 재확인했다. 순복음교회가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 원로목사는 이사회에서 “이제 이 사업을 여러분에게 맡기고 떠나겠다. 사회와 약속한 것을 지키고 싶다”고 밝혔다. 조 원로목사는 “53년 전 빈손으로 시작한 교회는 하나님이 창대한 복을 내려 주셨다. 모든 것에 감사한다”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순복음선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20개 산하 교회가 출연한 기금을 관리하는 교회 내 핵심 기구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조 원로목사의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차남인 조민제 국민일보 사장, 이종근 장로가 제출한 이사직 사표가 수리됐다. 김 총장을 대변하는 이인재 한세대 법인국장은 “김 총장이 원로목사의 뜻에 따라 사임을 결정했다”며 “당초 김 총장이 선교회 이사직을 맡은 것은 원로목사의 권유였고 이사 한두 명이 교회를 사유화한다는 것은 내부 사정을 볼 때 말이 되지 않는 비판이었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수행을 위해 손가락을 태우는 소지공양(燒指供養)과 2년 7개월간 잠을 자지 않고 참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죽음을 넘나드는 수행 과정에서 얽힌 종정 성철 스님(1912∼1993)과의 인연…. 혜국(慧國·63) 스님은 수좌(首座·참선하는 스님)들에게 ‘사표(師表)’로 꼽힌다. 13세 때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를 지냈고 수행지침서 간화선의 편찬위원장이기도 했다.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10일)을 앞두고 4일 충북 충주시 석종사에서 금봉선원장인 혜국 스님을 만났다. ―성급한 질문 같지만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허공에 침을 뱉어 보세요. 무엇이 남습니까? 깨달음은 허공처럼, 그릇에 담긴 무언가를 비우는 겁니다. 마음을 비우면 물들지 않습니다.” ―그럼 스님은 깨달았습니까. “아직 멀었죠. 눈 뜨고 있을 때는 빈 그릇의 즐거움을 알지만 깊은 잠 속에서는 그 즐거움을 못 누리고 있습니다.” ―오매일여(寤寐一如·깊은 잠에 들더라도 깨어있을 때처럼 수행의 자세를 유지하는 경지)인데 너무 멀어 보입니다. “그렇게 멀지만은 않습니다. 하물며 박사학위 따려고 해도 한 분야를 몇십 년간 공부합니다. 인생사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만큼 투자 안 해서 되겠습니까.(웃음)” 물이 흐르듯 유장하게 말을 이어가는 스님의 손에 어쩔 수 없이 눈이 간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무명지의 반이 없다. ―소지공양은 지나친 고행처럼 느껴집니다. “40여 년 전 소지나 장좌불와는 깨달음의 길을 떠나기 위한 마음의 준비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난 부처님 길을 가야겠는데 부모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행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때는 공(空)의 즐거움에 눈을 뜨지 못했기에 즐거움은 아니었습니다.” ―오사마 빈라덴이 최근 사살됐는데…. “9·11테러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반대쪽도 자신의 허물을 살펴야 합니다. 왜 상대방이 목숨까지 버리는 행동을 저지르는지…. 그가 죽었다지만 미국과 이슬람권의 근본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빈라덴이 나올 겁니다. 감정에서는 패자(敗者)가 되고, 이성에서는 승자가 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근 국내 종교 간 갈등도 심각합니다. “한국이 세계 10대 교역국이지만 종교전쟁이 났다면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부처님, 예수님이 동시대에 살았다면 두 분만큼 사이좋은 분도 없었을 겁니다. 우주자연은 세계일화(世界一花), 한 송이 꽃이라 했죠. 허공에 어찌 내 것, 네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 ―정치권력과 종교의 밀착 또는 갈등도 문제입니다. “서로가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종교까지 정치화되면 그것은 우리 정신문화의 큰 손실입니다.” ―정우성 이지아 씨를 만나셨다면서요. “최근 일이 불거지기 전, 둘이 ‘이곳에 와서 좋은 마음 얻어갔다’는 배용준 씨의 말을 들었다면서 왔습니다. 그때 이런 말을 했죠. ‘두 분은 자가용 아니라 공용 버스다. 자가용이라면 서고 가고 맘대로 하겠지만 공용 버스는 그렇지 않다. 손님이 원하면 싫은 곳에서도 내리고 쉬어 가기도 해야 한다’고. (둘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바랍니다.” ―소지공양 뒤 태백산 도솔암서 장좌불와 수행을 했습니다. “난리는 쳤는데 얻은 게 없어 창피해서 세상에 나갈 수가 있어야죠. 허허. 그래서 다시 독하게 맘먹고 들어간 거죠. 하하.” ―어땠습니까. “잠을 참아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해인사 백련암으로 성철 스님을 찾아갔죠. ‘정말 안 조셨느냐’고 물었더니 노장 왈 ‘이놈아, 내가 목석이냐. 안 졸게’ 하더군요.(웃음)” ―공부법을 들으셨나요. “노장이 쓰던 쇠발우를 주면서 물을 담아 머리에 얹고 참선하라더군요. 단 하루 성공했습니다. 쇠발우가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 밭을 키워준 겁니다.” ―10일이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내야 합니다. 올해는 자신과 가족을 위한 등불이 아니라 자신과 갈등이 있는 다른 이를 위해 등불을 켜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혜국 스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석종사 길목에는 색색의 연등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스님이 스스로를 다잡을 때마다 되새긴다는 말이 귓전에 생생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르는 곳마다 참주인이 되고, 우리가 서있는 곳 모두가 참진리다.’(임제 선사의 임제록)충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사진)가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10일)을 앞두고 한국 국민에게 보낸 봉축 메시지가 6일 공개됐다. 이 메시지는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위한 특별법회에 앞서 BTN불교TV가 촬영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메시지를 통해 “중국 불자든, 한국 불자든, 티베트 불자든, 상좌부(남방불교) 전통을 따르는 불자든 21세기 불자가 되어야 한다”며 현대 과학에 기반해 부처의 가르침을 온전하게 이해할 것을 당부했다. 이어 그는 “창조주가 있든, 아니면 인과의 법칙이 있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라며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마음 안에 있는 만큼 부디 내면의 세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10일)을 맞아 2일 발표한 봉축사에서 “부처님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이웃이며 동반자”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평화가 찾아온다. 조계종은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고 남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허물을 겸허히 성찰하여 종교적 가르침을 사회에 회향하며 국민과 함께하고자 한다”면서 “수행 문화 생명 나눔 평화 등 5대 결사의 실천을 통해 한국 불교가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도 이날 조계종 총무원에 전달한 축하 메시지를 통해 “우리 민족이 유구한 역사에 걸쳐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불교의 위대한 가르침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며 “나라 안팎에서는 계속되는 경제위기와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다. 이럴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나눔과 자비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이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인 김희중 대주교도 전북 고창군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을 찾아 교황청 종교대화평의회의 경축 메시지와 성경, ‘최후의 만찬’ 성화를 전달했다. 김 대주교는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교 사찰을 찾아 교황청의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깨달음이 있는 곳은 그 어디인가? 지금 생사가 있는 이 자리이다).’해인사 법보전의 주련(柱聯)이다.주련이란 사찰 기둥이나 벽 따위에 쓰여 있는 글귀를 가리킨다. 그런데 대부분 한자로 쓰인 데다 흘려 쓴 경우가 많아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다.조계종 중앙 종회의장과 호계원장을 지낸 원로 월서 스님(75)이 최근 전국 사찰의 주련과 불가에 얽힌 사연을 담은 책 ‘깨달음이 있는 산사’(아침단청)를 출간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스님은 대뜸 “깨달음은 피안(彼岸), 저쪽이 아닌 바로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인데, 짧지만 얼마나 놀라운 말이냐”고 물음을 던졌다.》 “젊은 시절 참선 공부한다며 해인사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렸는데 주련에는 신경도 안 썼어. 눈 뜬 장님이 따로 없었지. 출가한 지 50년쯤 되니 눈에 불이 나듯 그 글씨들이 들어와. 허허” 책에는 팔공산 동화사, 태화산 마곡사, 영축산 통도사, 백암산 백양사, 희양산 봉암사 등 전국 30개 사찰의 주련과 이에 얽힌 선가 이야기, 역사 등을 담았다. 주련의 내용은 참선과 관음기도, 비구니 도량 등 사찰의 살림살이에 따라, 또 어떤 부처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일주문의 주련은 의미심장하다. ‘이심전심시하법(以心傳心是何法·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이 법 무엇인가?) 불불조조유차전(佛佛祖祖唯此傳·부처님과 조사께서 오직 이 법 전했다네)….’ 간화선을 근본 수행법으로 여기는 조계종의 정신을 담고 있다. 주로 불경의 내용이 주련에 사용되지만 큰 스님들의 자취가 담겨 있는 경우도 있다. 금정산 범어사 불이문은 대표적인 선승 동산 스님(1890∼1966)이 써서 걸었다.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徽猷·신기로운 광명 끊이지 않아 오랜 세월 아름답네)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이 문을 들어오거든 망상을 피우지 마라).’ 세상의 모든 망상을 놓으라는 스님의 경구다. 능가산 내소사 대웅전 주련은 특이하게 이곳에서 출가해 입적한 해안 스님(1901∼1974)의 오도송(悟道頌)을 서예가 김충현이 써서 옮긴 것이다. ‘…약인문아희소식(若人問我喜消息·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기쁜 소식을 묻는다면) 회승당리만발공(會僧堂裏滿鉢供·회승당 안에서 만발공양이라 하리라).’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고 잠자고 밥 먹는 일에 있다 했으니 기막히지 않나.”(월서 스님) 최근에는 한글 주련도 등장하고 있다. 경기 안성시 석남사 주련은 ‘효심천심불심 언제나 이 마음, 수행도 봉사도 나날이 즐거워’라고 돼 있다. 현재 서울 성북구 정릉동 봉국사 주지를 맡고 있는 스님은 은사 금오 스님(1896∼1968)에 대한 재조명과 다문화가정 부부를 돕는 일에 힘쓰고 있다. 스님은 “배움과 수행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며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종회 의장 임기를 마친 스님은 1990년 ‘시심마(是甚摩·이 뭐꼬)’ 화두를 풀기 위해 당시 종정으로 안면이 있던 성철 스님을 찾아갔다. 하지만 노장은 적지 않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없다. 당장 나가라”고 했다. 가르침을 구하려면 관례대로 3000배를 먼저 올리라는 것. “그때 내 나이가 50대 중반이었는데 3000배 하느라 초여름 날씨에 가사가 물 먹은 듯 땀에 젖었어. 그런 뒤 종이 한 장만 달랑 주시더군. 하하. 지나고 보니 나이나 감투에 관계없는 3000배 자체가 마음 공부였다는 생각이 들어.”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사진)가 국민일보 회장직을 사임한 데 이어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직에서도 물러난다. 순복음교회에 따르면 1일 장로들로 구성된 교회 내 최고 의결기구인 당회는 운영위원회를 열고 조 원로목사의 순복음선교회 이사장직 사임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선교회는 순복음교회 본 교회와 20개 관련 교회가 출연한 기금을 관리하는 교회 내 핵심 기구다. 조 원로목사는 지난달 29일에는 국민문화재단 임시이사회에 서면으로 국민일보 회장과 발행인, 국민문화재단 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달 22일 순복음교회의 특별새벽기도회에서 신자들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며 모든 직책에서 물러날 뜻을 밝힌 바 있다. 순복음교회 측은 “담임목사인 이영훈 목사 등이 (조 원로목사의) 사임을 만류하고 있지만 워낙 의지가 강하다”며 “앞으로 다른 직책 없이 봉사단체인 사랑과 행복나눔 재단 일에만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미국인들이 (원불교의) 법을 몰라서 그렇지, 알게 되면 솜이 바닷물을 빨아들이듯 받아들일 겁니다.” 2016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 원불교의 교무 행정 책임자인 김주원 교정원장(63·사진)은 대각개교절(28일)을 하루 앞둔 간담회에서 원불교의 세계화를 선언했다. 대각개교절은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큰 깨달음(대각·大覺)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원불교 최대 축일이다. 원불교는 적극적인 해외 포교를 위해 10월 2일 미국 뉴욕 주 컬럼비아 카운티에 426에이커(약 52만 평) 규모의 ‘원 달마센터’를 개원한다. 김 교정원장은 “미국인들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데 원불교의 정신이 바로 합리주의와 실용주의, 사실주의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잘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불교는 현재 해외 21개국에 60개 교당과 12개 부설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100주년은 결실(結實)의 시대를 마감하고 결복(結福)의 시대가 열리는 첫해인데, 결복의 시대라는 것이 바로 원불교의 세계화”라고 말했다. 원불교는 28일 오전 10시 전북 익산시 중앙총부를 비롯한 국내외 교당에서 대각기념절 기념식을 봉행한다. 이 행사에서는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경산 장응철 종법사의 법문과 경축 공연이 진행된다. 경산 종법사는 미리 배포한 ‘이 마음이 나의 조물주이다’라는 법문에서 “내가 상대에게 지은 대로 상대로부터 행복이나 불행의 결과를 받게 되는 자작자수(自作自受)의 진리를 깨달아 세세생생 마르지 않는 복록의 주인공이 되자”고 당부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박휘섭 전 삼성물산 수출개발사업부 이사 기섭 에프빈 대표 부친상=26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28일 오전 9시 062-250-4407}

26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 날(5월 10일) 연등 점등식에 참석한 스님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다. 이 등은 18m 크기로 국보 제21호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을 본뜬 것이다. 이 행사에는 조계종 등 불교종단협의회 소속 스님과 신도 13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정치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5월 1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의 시복(諡福)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교황청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시복식은 30일 전야 기도회를 시작으로 5월 1일 시복미사, 2일 감사미사 순으로 진행된다. 시복미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주례로 봉헌된다. 교황청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피가 시복식에서 앰풀에 담긴 채 공개된다고 밝혔다. 이 혈액은 자가 수혈에 대비해 채혈된 것으로 항응고제 덕분에 액체 상태를 유지해 왔다. 이에 앞서 교황청은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직후 시복시성 절차를 시작했으며 올 1월 요한 바오로 2세의 복자 추대를 승인했다. 선종 6년 만의 시복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가장 빠른 사례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가톨릭에서 시복과 이후 성인으로 추대하는 시성(諡聖)을 위해서는 선종 후 대개 5년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지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를 면제했다.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재임 중 테레사 수녀의 시복 절차를 단기간에 진행시켜 사후 6년 만인 2003년 시복식이 거행됐다. 복자로 추대되기 위해서는 생애에 대한 조사 외에도 기적 심사가 필요한데 그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프랑스 수녀를 치료한 행위를 기적으로 인정받았다. 가톨릭에서 복자로 추대되면 지역의 제한이 없는 성인과 달리 그가 활동했던 지역에서 축일을 지낼 수 있고 공식 기도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그의 축일은 교황 즉위 기념일인 10월 22일로 정해졌다. 이번 시복식에는 국내에서 한국 순례단이 참석하는 것을 비롯해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로마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모국인 폴란드에서는 자국에서만 수십만 명의 신자가 시복식에 참석할 것으로 보고 있다. 1978년 455년 만에 처음으로 비(非)이탈리아계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는 유일하게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거행했고 1989년에는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위해 방한했다. 이번 시복식은 평화방송 TV가 한국 시간으로 1일 오후 5시부터 생중계할 예정이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시복시성(諡福諡聖)::가톨릭에서 성덕이 높은 이가 선종한 뒤 공적인 공경을 바칠 수 있도록 복자(福者)나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 대개 5년의 유예 기간 뒤 생애와 저술, 연설에 대한 검토, 기적 심사 등을 거쳐 복자로 추대한 뒤 추가 심사를 통해 성인으로 추대한다. 순교자는 목숨을 버리는 순교를 기적으로 여겨 기적 요건이 면제된다. 후보자가 복자나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조사하는 이른바 ‘악마의 변호인’이 등장할 정도로 심사가 까다롭다.}

“한나라당이 전통문화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통령께서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불교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일단 가시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사진)은 부처님 오신 날(5월 10일)을 앞두고 26일 개최한 간담회에서 “최근 정부 조치의 책임성과 진실성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정치인의 봉축행사 참여 허용과 관련해 “자비 문중에서 출입 자체를 막는 것은 적당하지 않아 개인 자격의 출입을 허용하게 됐다”며 “그동안 교구 본사별로 진행 중인 민족문화유산 수호결의대회는 해인사를 끝으로 마무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은 ‘함께하는 나눔, 실천하는 수행’이라는 봉축 표어에 맞춰 다문화가정 등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2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점등식에 이어 5월 7일 봉축행사의 최대 이벤트인 연등축제가 개최된다. 연등행렬은 이날 오후 6시 동국대에서 출발해 동대문과 종묘 등을 거쳐 조계사에 도착한다. 8일에는 조계사 앞길에서 60여 개 단체가 참여하는 ‘불교문화마당’, 10일 오전 9시에는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봉축법요식이 이어진다. 자승 스님은 “법요식에서 정치권 인사는 식순에서 빠지는 대신 다문화가정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날(5월 10일)을 앞두고 조계종과 천태종, 태고종, 진각종이 잇달아 봉축 법어를 25일 발표했다. 조계종 법전 종정(사진)은 법어를 통해 “모든 중생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법신(法身)을 갖추어 있고 아름다운 불성(佛性)을 지닌 미완의 여래(如來)”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여러분 곁에 있는 분이 여래 덕성을 갖춘 미륵(彌勒)의 현신이요, 날마다 만나는 사람이 자비와 나눔을 지닌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라며 이웃과 함께 정진하기를 당부했다. 천태종 도용 종정도 ‘우리 곁에 오신 좋은 임’이라는 법어에서 “하루 종일 남의 돈만 세고 있으니 자신에게 돌아올 몫 반 푼도 없네. 자신에게 갖춰 있는 보물을 찾아 거지 노릇 그만하고 주인으로 살아보라”며 깨달음의 등불을 밝히라고 강조했다. 태고종 혜초 종정은 “우리 모두 아집과 편견과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 혁신을 통해 인류의 화평과 행복을 위해 공헌해야 한다”고, 진각종의 최고 스승인 도흔 총인(總印)은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자성(自性)의 등불을 밝히라”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개신교계 원로 김장환 목사(77). 현재 그의 직함은 극동방송 이사장이자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다. 하지만 ‘MB(이명박 대통령)의 멘터’라는 표현만큼 요즘 그의 위치를 잘 말해주는 단어는 없다. 그는 2007년 대선에서 조용기(여의도 순복음교회) 김진홍(두레교회) 김선도(광림교회) 김삼환(명성교회) 목사 등과 개신교 지지층 결집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이후 MB와 소원한 관계가 된 일부 다른 원로와 달리 그는 사심 없는 조언으로 MB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한 김 목사는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통역에 이어 세계침례교 총회장을 지내는 등 미국 개신교계와 정계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MB까지 최고 권력자를 수시로 독대했고 미국 정계와 연결하는 채널이 됐다. 이상득 의원과는 30년 지기이고,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도 친분이 두텁다. 부활절(24일)을 앞둔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극동방송 사무실에서 1시간 반 동안 인터뷰했다. ―김진홍 목사는 대통령의 ‘절친’, 목사님은 멘터로 알려져 있다. “그거 아네요. 알려진 것보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웃음)” ―요즘 어떤 조언을 했나. “첫째, 갈등이 있는 최근 현안에 대해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잘 결단했다고 했다. 또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원로들의 힘이 모자라 죄송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불교는 템플스테이 때문에 껄끄럽고, 천주교 일부 사제들은 4대강을 반대하고 있다. 믿는 구석이 있다면 교회 장로니까 개신교인데 저 모양이니 맘이 굉장히 언짢았겠죠.” ―어떤 식으로 조언하나. “정치나 인사에 개입하면 절 멀리하겠죠. 그냥 조언하고 기도한다.” ―곧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인류에게 소망을 주는 날이다. 북한에 비하면 남한은 종교의 천국인데 그걸 망각하고 내 교회, 내 교단만 따져서는 희망이 없다. 부끄럽다. 개신교, 이 위기를 통해 반드시 정화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한기총이 금권선거 시비로 내분에 휩싸였다. 해만 끼친다, 아예 해체하라는 소리도 나오는데…. “한기총은 20여 년 전 한경직 목사님이 계실 때 남북 대치 상황에서 (이념적으로) 치우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를 막고 개신교 세력이 뭉친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최근에 한기총 회장 하려고, 또 각 교단 회장 한다면서 금권이 오가니 사회에 면목이 없다.” ―개신교 원로들이 한기총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2월에) 조용기 목사님과 내가 대립하는 양측(길자연 이광선 목사)을 모셔 화해를 시도했는데 우리 힘만 갖고 어려웠다. 서로 다투다 변호사 집사님의 직무대행 체제로 갔으니 안타깝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면.” ―한기총 주축인 예장 합동과 통합 교단의 오랜 반목, 길자연(합동) 김삼환 이광선(이상 통합) 목사의 개인적 갈등도 원인 아닌가. “잘 봤다. 그런데 정부나 청와대에서 누구를 편든다는 것은 오해다. 그렇게 졸렬한 청와대가 아니다.” ―결국 한기총을 해체해야 하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싸우면 다른 단체가 생길 거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 내가 늘 하는 얘기가 교계에 회장, 총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화제를 바꿔 건강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골프를 즐긴다면서 자연스럽게 조용기 원로목사 얘기를 꺼냈다. 그는 “조 목사님하고 가끔 골프를 쳤는데…. 최근 내가 한국 나이와 같은 78타를 쳤어. 조 목사님, 화가 날 만하지. 옛날에는 나보다 거리가 좋았는데 이제 두 번 쳐야 내 거리에 오니”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느 시골교회 목사님이 동일본 대지진은 하나님 징계를 받아서 그랬다면 보도가 됐겠어요? 조 목사님이니 문제가 된 거죠”라며 최근 순복음교회를 둘러싼 갈등을 대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과 관련한 e메일은 직접 보낸 건지….(김 목사는 수쿠크법과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입장을 전달한 적이 없다는 e메일을 기자에게 보냈었다) “그래요. e메일 자주 이용해요. 전도를 위해 고 노무현 대통령께도 편지나 e메일을 보냈었다. 그분 자살했을 때 가까운 편은 아니었지만 일국의 대통령이기에 마음으로라도 보태고 싶었다. 지금도 영부인(권양숙 여사) 만나면 교회 나가라고 한다.” ―수쿠크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 등이 그런 게 있으니 사람 좀 모아 달라기에 목회자들과 강연 듣고 얘기했다. 지금도 자세히는 모른다. 어쨌든 이슬람은 일본과 대만, 중국 선교에 모두 실패했는데 한국을 선교할 수 있는 지상낙원으로 여기고 있다. 종교, 사회적 면에서 부작용이 크다.” ―지난달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이 무릎을 꿇는 통성기도를 했다. “문제 있는 인물들이 (기도회) 순서에 들어간 것이 문제다. 이 기도회는 개별 교회 행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다. 그런 장소에서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듣는 것도 아닌데….” ―오해를 피하려면 대통령이 개신교와 거리를 두는 게 맞지 않나. “불교 대통령이 나와 누굴 데려다 밥을 먹든지 초연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특정 종교에 편향하고 싶어도 눈이 많아서 못한다.” ―사심이 없는 게 네트워크 비결 아닌가. “난 6·25 전쟁 시절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하다 미군의 눈에 띄어 유학했다. 아무 연관 없는 그분이 연필과 옷 사주고 9년간 공부시켰다. 그런 분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으니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생각한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김장환 목사△1934년 경기 수원 출생 △1958년 미국 밥 존스 신학대 졸업 △1959년 2월 미국 단테 제일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 △1960∼2004년 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 △1973년 한국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통역 △1975년 미국 트리니티대 명예신학박사 △1977∼2008년 극동방송 사장 △1992∼97년 아시아침례교연맹 회장 △2000∼2005년 세계침례교 총회장 △2011년 현재 극동방송 회장(이사장),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 }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75·사진)가 22일 교회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조 원로목사는 이날 오전 5시 시작된 특별새벽기도회를 진행하다 “근래 우리 교회가 저로 말미암아 많은 시련과 환난이 있은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자백한다”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잘못했다”며 바닥에 엎드려 사죄의 큰절을 했다. 그는 “이 목사님(이영훈 담임목사)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다. 남은 생 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순복음교회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원로목사님이 이영훈 목사에게 은퇴 후 사역인 ‘사랑과 행복 나눔 재단’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이를 만류해 왔다”고 말했다. 조 원로목사는 앞으로 순복음선교회 이사장과 국민일보 회장직에서 물러나 사랑과 행복 나눔 재단 업무에만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순복음선교회는 순복음교회 본교회 등이 출연한 기금을 관리하는 교회 내 핵심 기구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법정 스님이 출가한 1955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사촌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마음하는 아우야!’(녹야원)가 출간됐다. 스님이 출가하고 1년 뒤 사촌동생 박성직 씨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미안하다. 죄스럽다.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할머니, 작은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너희들을 배반하였다. 출가가 나로서는 어떤 연유에서일지라도 집안에 대해서는 배반이 아닐 수 없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박 씨는 유년 시절부터 법정 스님과 한집에서 같은 방을 쓰며 친형제처럼 자랐고 스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스님은 편지에서 자신을 ‘죽일 놈의 형 제철’로 표현하기도 했다. 박 씨에 따르면 스님의 출가 전 속명(俗名)은 ‘재철’이지만 곧잘 이름을 바꿔 ‘제철’로 썼다는 것. 이 책에는 법정 스님이 펜으로 쓴 원본 편지를 실었으며, 스님의 젊은 시절 사진도 실려 있다. 248쪽. 1만8500원.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39)가 탤런트 이지아(본명 김지아·33)와 미국에서 결혼한 뒤 이혼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에서는 둘 사이에 아이가 둘 있다는 설도 있었지만 이지아는 21일 오후 11시 50분 소속사 키이스트를 통해 서태지와의 관계를 인정하면서 “자녀는 없었다”고 밝혔다. 서태지가 데뷔 때부터 철저히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해온 터라 그가 10년이 넘게 결혼생활을 하다 이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태지 은퇴 후 미국서 가까워져 결혼21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이지아는 1월 19일 서태지를 상대로 5억 원의 위자료와 50억 원의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냈다. 이미 지난달 14일과 이달 18일에는 1, 2차 변론준비기일이 열렸고 다음 달 23일에는 3차 변론준비기일이 예정돼 있다.이지아는 서태지를 상대로 이혼 청구소송은 내지 않았다.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한 이후 1997년부터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지아 소속사에 따르면 이지아는 1993년 미국 유학 중 같은 해 미국 현지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한인 공연에서 지인의 소개로 서태지를 처음 만나 이후 전화와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1996년 초 서태지가 은퇴한 후 미국으로 건너오자 이지아가 현지 적응에 도움을 주며 더욱 가까워져 1997년 단둘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결혼 뒤에는 미국 애틀랜타 주와 애리조나 주에서 결혼생활을 했다.현재 양측은 이혼 시점과 관련해 서로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지아 측은 ‘2009년 이혼한 뒤 아직 위자료와 재산 분할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서태지는 2009년이 아니라 2006년에 이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법원에 보낸 답변서에서 “2006년 이혼하면서 이지아가 요구하는 대로 위자료도 주고 재산 분할도 해줬다. 그런데 이지아가 2009년에 이혼한 것처럼 속여 재산 분할과 위자료를 다시 청구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법에 따르면 위자료는 이혼 후 3년 안에, 재산 분할은 2년 안에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이혼 시점은 이번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이다.이와 관련해 이지아 소속사는 “서태지가 2000년 6월 한국에서 활동을 위한 컴백을 한 뒤 이지아는 미국에서 홀로 지냈으며 2006년 단독으로 이혼 신청을 제출해 2009년 이혼 효력이 발효됐다. 이혼 사유는 일반인에 비해 평범하지 않은 상대방의 직업과 생활 방식, 성격 차이였다”고 밝혔다.양측은 가사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이지아는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 4명을, 서태지는 법무법인 수 소속 변호사 3명을 선임했다. 이지아의 변호인단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도 포함됐다. ○ 문화 대통령과 혜성 신인의 만남서태지는 1989년 록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데뷔한 뒤 1990년대 입시 위주의 획일적 교육 시스템을 비판한 ‘교실이데아’, 가출 청소년을 주제로 한 ‘컴 백 홈’ 등 사회성 짙은 노래들을 발표하면서 10대들에게 ‘문화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이지아는 누리꾼 사이에서 ‘외계인’ ‘뱀파이어’라고 불릴 정도로 사생활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데뷔 전 사진이 한 장도 발견되지 않은 데다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 아트스쿨을 중퇴했다고 밝힌 것 외에는 지인관계나 이력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지아는 2004년 배우 배용준과 한 통신사 광고에 출연하며 처음 얼굴을 알린 뒤 MBC ‘태왕사신기’에도 배용준과 함께 주연급으로 출연해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한편 이지아와 연인 관계를 공식화한 영화배우 정우성(38)은 팬미팅에서 “(이지아와) 대화가 잘 통해 좋다. 예쁘게 봐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지아의 소송에 대해 정우성의 소속사 토러스필름 측은 “우성 씨가 무척 당황하고 있다. 기사를 보고서야 모든 걸 알았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했다.이지아는 보도자료를 통해 “상대방이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데뷔 후 개인사를 숨길 수밖에 없었고,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없었다”며 “어린 나이였지만 진심으로 사랑했었고 마지막까지 원만하게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려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교회는 자성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가 주목을 받는 것은 개신교를 향한 사랑의 채찍입니다. (이를 계기로)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회장이자 부활절연합예배 대회장 자격으로 20일 간담회에 참석한 이영훈 여의도 순복음교회 담임목사(사진)의 말이다. 그는 최근 금권 선거를 둘러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안팎의 갈등과 조용기 원로목사 가족을 둘러싼 순복음교회 문제와 관련해 “교회 밖 뉴스가 많았다. 사회가 교회에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진 만큼 이를 충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4일 오전 5시 순복음교회에서 열리는 ‘2011 부활절 연합예배’는 교회협과 한기총 공동 주최로 개최된다. 2006년부터 공동으로 개최된 이 행사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등 옥외장소가 아닌 개별 교회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연합예배의 주제는 ‘부활, 새로운 시작’이며 모임과 말씀, 성만찬, 파송 예식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죄의 단절과 새로 태어남을 상징하는 ‘물의 예전’을 순서에 넣어 부활절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신웅 서울 신길성결교회 목사가 관심을 모았던 설교를, 101세로 최고령 목회자인 방지일 목사가 축도를 맡았다. 교회협과 북측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공동으로 마련한 남북교회 공동기도문도 낭독된다. 이 목사는 최근 순복음교회 당회가 조 원로목사 가족의 교회 내 역할을 제한한 것에 대해 “당회의 결정에 모든 분이 따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39)가 탤런트 이지아(본명 김지아·33세)와 미국에서 결혼한 뒤 이혼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에서는 둘 사이에 아이 둘이 있다는 설도 있었지만 이지아는 21일 오후 11시 50분 소속사 키이스트를 통해 서태지와의 관계를 인정하면서 "자녀는 없었다"고 밝혔다. 서태지가 데뷔 때부터 철저히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해온 터라 그가 10년이 넘게 결혼생활을 하다 이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태지 은퇴 후 미국서 가까워져 결혼 21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이지아는 1월 19일 서태지를 상대로 5억 원의 위자료와 50억 원의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을 냈다. 이미 지난달 14일과 이달 18일에는 1, 2차 변론준비기일이 열렸고 다음 달 23일에는 3차 변론준비기일이 예정돼 있다. 이지아는 서태지를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은 내지 않았다.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한 1996년 이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아 소속사에 따르면 이지아는 1993년 미국 유학 중 같은 해 미국 현지에서 열린 로스엔젤리스 한인 공연에서 지인의 소개로 서태지를 처음 만나 이후 전화와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1996년 초 서태지가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오자 이지아가 현지 적응에 도움을 주며 더욱 가까워져 1997년 단 둘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결혼 뒤에는 미국 애틀랜타 주와 애리조나 주에서 결혼생활을 했다. 현재 양 측은 이혼 시점과 관련해 서로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지아 측은 '2009년 이혼한 뒤 아직 위자료와 재산 분할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서태지는 2009년이 아니라 2006년에 이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법원에 보낸 답변서에서 "2006년 이혼하면서 이지아가 요구하는 대로 위자료도 주고 재산 분할도 해줬다. 그런데 이지아가 2009년에 이혼한 것처럼 속여 재산 분할과 위자료를 다시 청구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법에 따르면 위자료는 이혼 후 3년 안에, 재산 분할은 2년 안에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이혼 시점은 이번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이다. 이와 관련 이지아 소속사는 "서태지가 2000년 6월 한국으로 활동을 위한 컴백을 한 뒤 이지아는 미국에서 홀로 지냈으며 2006년 단독으로 이혼 신청을 제출, 2009년 이혼 효력이 발효됐다. 이혼 사유는 일반인에 비해 평범하지 않은 상대방의 직업과 생활 방식, 성격 차이였다"고 밝혔다. 양측은 가사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이지아는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 4명을, 서태지는 법무법인 수 소속 변호사 3명을 선임했다. 이지아의 변호인단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도 포함됐다.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양현석은 "2, 3년 간 서태지와 연락을 안했지만 결혼은 물론 이혼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다. 그런 사실이 지금껏 비밀에 붙여졌다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 문화 대통령과 혜성 신인의 만남 서태지는 1989년 록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데뷔했다. 1992년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댄스 트리오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해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그는 발라드와 트로트로 양분됐던 가요계에 랩 댄스 음악을 들고 나와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얼터너티브 록, 갱스터랩 등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1990년대 미국 주류 장르 음악을 만들어 국내에 소개했다. 특히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을 비판한 '교실이데아', 가출 청소년을 주제로 한 '컴 백 홈' 등 사회성 짙은 노래들을 발표하면서 10대들에게 '문화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지아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외계인' '뱀파이어'라고 불릴 정도로 사생활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데뷔 전 사진이 한 장도 발견되지 않은 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 아트스쿨을 중퇴했다고 밝힌 것 외에는 지인관계나 이력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와 학력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며 베이스기타를 잘 쳐 록그룹과 협연한 영상이 떠돌 정도로 다재다능하다는 점이 더욱 의혹을 키우기도 했다. 이지아는 2004년 배우 배용준과 한 통신사 광고에 출연하며 처음 얼굴을 알린 뒤 MBC '태왕사신기'에도 배용준과 함께 주연급으로 출연해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후 드라마에서 잇달아 주연을 맡아온 그는 2008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2009년 3월에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서태지 웜홀 콘서트'에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영화배우 정우성(38)이 최근 이지아와의 교제 사실을 공개한 바 있어 이번 소송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은 SBS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 함께 출연하며 연인 관계가 됐다. 정우성은 팬미팅에서 "(이지아와) 대화가 잘 통해서 좋다. 예쁘게 봐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지아의 소송에 대해 정우성의 소속사 토러스필름 측은 "우성 씨가 무척 당황해하고 있다. 기사를 보고서야 모든 걸 알았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했다. 이지아는 보도자료를 통해 "상대방이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데뷔 후 개인사를 숨길 수밖에 없었고,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없었다"며 "어린 나이였지만 진심으로 사랑했었고 마지막까지 원만하게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모습 보여드려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