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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맨발로 무대에 섰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그가 무대의 진동으로 소리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는 40분 가까이 무대 앞쪽의 타악기 세트와 뒤쪽의 드럼 팀파니 실로폰 사이를 누비며 강렬한 연주를 들려줬다. 청각 장애를 극복한 세계적 타악기 주자 에벌린 글레니가 들려준 슈반트너의 ‘퍼커션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었다. 24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35개 그룹사 대표이사, 임직원, 가족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개관 전 첫 공연을 펼쳤다. 1부 글레니의 힘찬 퍼모먼스에 이어 2부엔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연주했다. 잠실 롯데월드몰 8∼10층에 위치한 롯데콘서트홀은 사기업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연장으로 약 1500억 원을 투자해 건립되었다. 좌석 수는 총 2036석. 국내 최초로 객석이 무대를 에워싸는 비니어드(Vineyard) 스타일로 설계됐다. 또 대규모 클래식홀로는 처음으로 5000여 개의 파이프로 이뤄진 파이프오르간도 설치된다. 8월 18일 개관 공연은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작곡가 5명 중 한명으로 꼽히는 진은숙의 창작곡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를 서울시향이 세계 초연한다. 이어 지휘자 임헌정이 이끄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말러의 ‘천인 교향곡’을 들려주고,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과 합창단이 함께 내한해 베르디와 로시니의 작품을 선보인다. 고음악과 현대음악의 시리즈 연주도 귀 기울여볼 만하다. 고음악의 경우 파이프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바흐 해석에 정통한 톤 코프만이 그의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내한하고 프랑스 고음악의 거장 윌리엄 크리스티는 23년 만에 레자르 플로리상과 한국을 찾아 특별 프로그램인 ‘목소리의 정원’을 공연한다. 현대음악의 경우 1월 타계한 프랑스의 거장 피에르 불레즈가 창단한 현대음악 단체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 처음으로 내한해 불레즈의 작품인 ‘메모리알레(M´emoriale)’ 등을 들려준다. ‘윌리엄 켄트리지 & 마티아스 괴르네의 겨울 나그네’는 독일 가곡에 정통한 괴르네(바리톤)가 슈베르트의 가곡을 노래하는 가운데 켄트리지의 비디오 영상이 펼쳐지는 이색 무대. 롯데그룹은 콘서트홀 운영을 위해 지난해 9월 롯데문화재단을 출범시켰고 신동빈 회장이 사재 100억 원을 출연했다. ▼공연 Tip! 합창석 앉는 재미 꽤나 쏠쏠하답니다▼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매년 가장 많은 공연이 열리는 곳 중 하나다. 홀의 합창석은 가장 가격이 저렴한 편에 속한다. 합창석은 음악 감상에 좋지 않다는 말이 많다. 물론 악기배치도 뒤집혀 있고, 악기 음량의 균형도 문제지만 좋은 점도 많다. 1층 앞자리에서 보다 악단을 더 가까이 볼 수 있고 지휘자의 정면을 볼 수도 있다. 색다른 음악 감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합창석은 한 번쯤 앉아 볼만한 자리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흑은 ●로 이어 패도 이기고 중앙 백 진도 뚫었다. 이로써 흑이 2, 3집 우세한 상황. 큰 끝내기가 사라진 현 시점에서 이 정도 우세는 프로기사 바둑에선 뒤집기 힘든 차이다. 백 98은 놓쳐서는 안 되는 곳. 만약 백이 손을 빼면 흑이 99의 곳을 먼저 둘 때 응수가 괴롭다. 102부터 110까지는 백의 권리. 백 112가 역끝내기로 최선의 곳. 백은 불리하지만 끝까지 따라붙고 있다. 흑 119는 보기보다 큰 곳. 5집 크기로 반상 최대의 끝내기다. 그런데 이게 국면을 어지럽게 만든 수였다. 중요한 수순 하나를 빠뜨린 것. 참고도 흑 1과 백 2를 먼저 교환한 뒤 흑 119를 뒀으면 완벽했다. 백 2를 두지 않으면 우상 백이 위태로워진다. 흑이 참고도 교환을 생략하자 백 120으로 잇는 수가 성립한다. 백 122가 선수여서 흑 125로 둘 때 백이 손을 빼도 된다. 흑이 끊어도 백이 안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즉, 선수였어야 하는 흑 125가 후수가 되면서 형세는 눈 터지는 반집 승부로 변했다. 백 128도 역끝내기 1집 반 정도 되는 곳. 이제 여유가 전혀 없는 박정환 9단은 백이 130으로 따내자 남은 시간을 쏟아붓는다. 과연 패를 할 것인가, 아니 해야만 하는가.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81로 단수 치고 83으로 쏙 나오는 것이 살짝 욕심을 낸 백 ○를 응징하는 수순이다. 조한승 9단의 수읽기 착오가 있었다. 백 84로 참고 1도 백 1로 두는 수가 있다고 본 것. 하지만 흑 8로 먹여치는 수가 있어 흑 10까지 패가 되는데 좌하 귀에 흑이 절대 팻감을 갖고 있어 백이 곤란하다. 어려운 수읽기가 아닌데 조 9단의 착각이었다. 백 84로 패를 따내 진로를 바꿨지만 흑 85로 뚫어 백이 10집 정도 낼 수 있었던 중앙이 공배가 됐다. 그렇다고 흑은 패를 이길 수도 없다. 흑 87로 팻감을 쓰고 우변 패를 따내자 역시 백은 팻감 부족이다. 백 92로 참고 2도 백 1처럼 끊을 수도 없다. 흑 2, 4로 백은 지리멸렬한 상황에 빠진다. 흑 8까지 우변 백이 그대로 잡힌다. 결국 백 92로 따내고 흑 93으로 연결해 일단락됐다. 백이 패도 지고 중앙 집도 못 지은 최악의 결과. 간단한 수읽기 착오로 흑 우세가 확실해졌다. 89=●, 91=●, 94=84, 95=86.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2006년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된 정진석 추기경(85·사진)의 서임 1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식이 24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렸다. 축하식은 세 번째 추기경인 염수정 서울대교구장 등이 집전한 가운데 사제와 신도 1200여 명이 참석했다. 정 추기경은 “80세가 지나면서 세속에 있는 모든 것의 애착을 끊게 되고 하느님의 길만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이 자유로운 삶을 사는 길임을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추기경은 1961년 사제품을 받고 39세 때인 1970년 최연소로 주교가 됐다. 청주교구장,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서울대교구장 등을 지냈으며 2012년 은퇴했다. 지금까지 저서와 역서 59권을 펴냈고 교회법의 권위자로 꼽힌다. 이날 사제 수품 60주년을 맞은 김희선 신부, 50주년(금경축)을 맞은 심용섭 김형식 김수길 안상인 차인현 김성태 신부의 축하식도 함께 진행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이 2014년 현대자동차그룹에 매각된 한국전력 부지(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환수를 주장하며 시위에 나섰다. 조계종 한전부지환수위원회(환수위)는 23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스님과 신도 등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전부지 환수 기원법회’를 열고 “한전 부지를 원래 소유주인 봉은사로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한전 부지는 1970년 조계종 총무원이 당시 상공부에 매각한 봉은사 토지 약 33만 m²(약 10만 평) 중 7만9200m²(약 2만4000평)로 한전은 이를 2014년 10조5500억 원에 현대자동차에 매각했다. 환수위는 이날 “정부가 공공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워 강제로 매매 계약을 맺은 것은 원인 무효”라고 주장했다. 당시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르면 주지가 사찰 재산 매매의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데 당시 매매 계약서에는 주지 서운 스님 대신 조계종 총무원장인 청담 스님이 계약 주체로 나와 원인 무효라는 것이다. 환수위는 집회에 앞서 본보에 ‘공공용지 수용 시 협의 취득이 권리가 없는 자로부터 이루어진 경우 진정한 권리자가 권리를 상실하지 않는다’는 2001년 11월 대법원 판결을 원인 무효의 법적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민법에선 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평온하고 과실 없이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조항이 있어 법적 논란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1984년 소유권 등기를 했으며 조계종은 2007년부터 한전에 땅을 되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계종 측은 또 본보에 해당 부지를 강제 수용 당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최근 발견한 7건의 문서를 제시했다. 1969년 12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후락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서명한 총무원 부지 매각 동의서, 1970년 9월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청담 스님과 서영철 상공부 차관 간의 매매계약서 등 1970년을 전후해 작성된 것들이다. 환수위 공동위원장인 혜일 스님(총무원 기획실장)은 서울시에 대해 “시가 한전 부지를 산 현대로부터 1조7400억 원의 공공기여금을 받기로 하고 전례 없이 빨리 인허가를 진행하고 있다”며 “즉시 인허가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환수위는 이후 소송 제기와 함께 서명운동에 돌입하고 4월에 기원법회를 다시 열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조계종과 한전 사이의 문제인 만큼 서울시에서 따로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한전 관계자는 “조계종 측에서 한전을 상대로 소송을 낸다는 얘기도 있는데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서정보 suhchoi@donga.com·박성진 기자}

흑 ○의 승부수에 백도 물러설 순 없는 노릇이다. 백 62를 선수하고 64로 끊어 패를 결행한다. 흑은 지면 타격이 크지만 다행히 팻감이 많다. 백은 패를 져도 결정적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에 적정한 팻감 이득을 보고 물러나면 된다. 이런 서로의 계산 속에 패싸움이 이어진다. 지금은 당연히 손해 없는 팻감만 골라 쓴다. 역시 팻감이 부족한 백이 78로 먼저 타협책을 제시한다. 백은 중앙 흑 한 점을 잡고 흑은 패를 이기는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흑도 이 팻감을 한번 받아주면 추가 팻감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흑 79로 일단 패를 해소했다. 그러자 조한승 9단은 흑 한 점을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백 80으로 죽 늘었다. 하지만 백 80은 패착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백 80이야말로 저절로 손이 나가는 곳인데 왜 패착일까. 검토실은 조 9단이 참고도 백 1로 잇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백 1은 얼핏 둔탁한 행마 같지만 지금 상황에선 흑 한 점의 준동을 막는 최선의 수였다. 흑 2로 둬도 백 3이면 그만이다. 이랬으면 중앙에 10집 가까운 백 집이 통통하게 생겼을 것. 당연해 보이는 백 80의 허점을 다음 보에서 살펴보자. 68 74=◎, 71 77=65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 바둑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다양한 인생의 교훈을 전한다. 위기를 만나면 불필요한 것은 버려라,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 등 바둑의 교훈은 삶의 지침으로도 유용하다. 바둑을 즐기는 사회 각계 명사와 최고경영자(CEO)를 통해 바둑과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바둑판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기자가 아마 5단임을 밝히자 석 점을 놓는다. ‘무조건 끊고 싸우는 전투형’이란 말과 달리 착실하게 집을 지었으나 중반 실족으로 한 판을 놓치더니 넉 점을 놓고 ‘다시 한판’을 요청한다. 그 대국마저 상수(上手)의 무리수를 남발한 기자의 승리였다. 적절한 치수는 넉 점에서 다섯 점 사이일 듯싶었다. 한국자산신탁과 MDM의 대표인 문주현 회장(58). 두 업체는 부동산 금융과 개발 분야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제 사업이 집을 지어 파는 건데 바둑도 결국 집을 짓는 거죠. 일과 취미가 똑같습니다.” 바둑이 끝난 뒤 그는 영화 ‘신세계’의 배우 황정민처럼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농을 던졌다. 어릴 적 형과 삼촌이 바둑 두는 걸 보고 어깨너머로 기리(棋理)를 익힌 그는 소위 책보다는 실전을 통해 실력을 키운 야전형 스타일이다. 그의 인생 역정도 비슷했다.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농사를 짓다가 검정고시를 통해 26세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들어갔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해 7번 특진하며 30대 최연소 임원이 됐으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부른 외환위기 때 나산그룹이 부도 나는 바람에 실직자가 됐다. 그러다 1998년 분양 대행업체인 MDM을 세운 뒤 지금까지 4만여 채를 분양시키며 성공 신화를 썼다. “제 바둑도 그렇게 두지만 ‘분투 중에 쓰러질지언정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안고 삽니다. 저는 흙수저도 아닌 손수저로 태어났어요. 흙수저도 없었던 셈이죠. 비관도 많이 했지만 ‘사람과 사람의 승부에서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둑과 사업은 참 비슷한 대목이 많다”고 했다. 바둑도 맥점 하나로 상황이 역전되듯이 사업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최근 성공작으로 꼽히는 경기 고양시 삼송지구 분양도 쇼핑몰 입주라는 맥점이 놓이면서 미분양의 무덤이라고 하던 곳이 분양 ‘대박’ 장소로 변했다.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비해 몇 수를 내다보고 둘 수 있다면 바둑도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사업성이 없다고 여겨질 때, 바둑으로 치면 상대의 세력이 강해 자신의 말이 매우 곤궁할 때는 아깝다고 계속 손대지 말고 포기할 줄 아는 과감성도 똑같이 요구된다고 했다. MDM은 지난해 출범한 여성 바둑리그의 스폰서로 나섰다. 올해는 후원 금액도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증액했다. 그는 “양궁 쇼트트랙 탁구처럼 바둑도 한국 여성들의 활약이 뛰어난 종목인데 여성 바둑기사를 위한 무대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후원했다”며 “여성 리그가 중국을 뛰어넘는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기원 이사로도 선임되는 등 바둑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바둑은 체력 부담이 없어 인생 끝까지 갈 수 있는 취미 같아요. 게임과 달리 폭력적이지 않아 가족끼리 함께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저희 형제들은 명절 때 만나면 바둑 한판으로 회포를 풉니다. 조그만 내기를 하며 서로 ‘이기네, 지네’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최근 끝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통해 그는 “이 9단이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 부족만 얘기하는 걸 보고 겸손한 자세가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감과 창의력으로 한 판을 이겨낸 정신력을 높이 사고 싶어요. 이 9단을 예전에도 알고 지냈지만 팬이 됐어요.”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흑 ●는 ‘까시’(바둑계 은어로 생선가시처럼 껄끄러운 수라는 의미)가 있는 수. 참고 1도 백 1이면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흑 8까지 진행되면 ‘가’로 패를 거는 수가 생겨 백이 곤란하다. 조한승 9단은 흑 ●에 아예 응수하지 않고 백 44로 흑 ●를 단속한다. 이때 흑 45가 제2의 ‘까시’다. 별생각 없이 참고 2도 백 1로 막았다간 흑 8까지 백 진 속에서 패가 난다. 백 46으로 때려낸 뒤에야 백 48로 막았다. 조 9단이 두 번의 ‘까시’를 잘 피한 것. 흑 59로 막은 건 역끝내기 5집(후수 10집의 가치)에 해당하는 반상 최대의 끝내기. 여기서 조 9단이 승부를 건 응수 타진을 한다. 백 60. 흑이 패를 꺼려 물러서면 2집 이득이다. 박정환 9단도 물러서면 미세하게 불리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흑 61로 막는다. ‘A’의 패는 버티겠다는 뜻이다. 팻감 자체는 흑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패를 둘러싼 공방이 승부를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4국 승리는 5국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현재 수준의 알파고는 프로 정상급 기사들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원래 최종국인 5국에선 흑백을 다시 정하는 돌가리기를 하지만 4국을 마치고 흑을 잡겠다고 했다. 백이 받는 덤이 7집 반인 중국 룰은 흑이 약간 불리하다는 게 정설이지만 흑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5국 때 다시 딸과 함께 대국장에 갔다. 3, 4국 때는 부담이 커서 그러지 못했는데 그만큼 마음이 가벼웠다. 초반은 내 예상대로였다. 알파고가 꺼리는 수(실전 흑 17)가 분명히 있었고, 알파고는 예상대로 아예 손을 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덕에 초반 우하에서 40집이나 되는 실리를 마련했다. 더욱이 우하에서 수를 내려고 한 알파고의 수순 중 악수가 있어 확실히 우세를 잡았다고 봤다. 그런데 우변과 상변에 걸친 백 세력을 삭감하는 것이 초점인 장면에서 내 마음속에 조그만 욕심의 씨앗이 하나 생겼다. 참고 1도 흑 1(실전 흑 69)이 그것이었다. 알파고가 ‘가’로 받아주기만 한다면 이득이었다. 안전 지향인 알파고의 습성상 받아줄 것 같았다. 그러나 알파고는 백 2의 승부수를 던졌다. 불리할 때 확실한 승부수를 던지는 걸 보면 알파고를 정상급 기사 수준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도 백 2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과 뒀다면 참고 2도 흑 1, 3으로 뒀을 것이다. 이랬으면 흑의 우세는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알파고의 습성을 알고 대응할 필요는 있지만 그 습성을 짐작해 욕심을 내는 건 옳지 않았다. 결국 패배로 끝난 5국이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아쉬웠다. 이젠 이길 수 있는 상대를 한순간의 욕심으로 놓쳤다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알파고와 함께한 일주일은 ‘죽비’와도 같았다. ‘이세돌 바둑’의 문제점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프로바둑계의 오랜 고정관념도 여지없이 깨졌다. 앞으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대한 수읽기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결과는 1승 4패였지만 이제는 5 대 5의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한시간이 3시간이 된다면 승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또 박정환 9단이나 커제 9단이 알파고와 한 달 이내 5번기를 한다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알파고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어쨌든 알파고와의 다섯 판이 나와 바둑계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패장에게 환호를 보내주는 분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패했지만 여전히 바둑엔 승패만으로 재단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새 희망이 솟는 것일까. 3연패를 당했지만 4국에 임할 때는 이전보다 훨씬 자신 있었다. 1∼3국을 통해 알파고가 어떤 상황을 싫어하는지, 어떤 모양에서 수읽기를 실수할 가능성이 높은지 ‘감’을 잡았다. 승부는 ‘실력+자신감’이다. 3국이 심리전에서 이미 지고 시작한 승부였다면 4국은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초반은 2국과 똑같이 시작했다. 알파고가 초반에 참고 1도 ‘흑 1(실전 흑23)’을 들고나왔다. 여기서 나는 인간적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냥 밑으로 받아주면 좌하에 14집의 실리를 확보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알파고를 더 응징하고 싶어 백 2로 젖힌 것이 과했다. 흑 3에 백 4로 받을 수밖에 없어 약간의 실점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승부는 멀었다고 생각했다. 초반 약간의 실수에 초조해지지 않게 된 것이 이전 대국과 4국의 차이였다. 또 참고 2도 ‘흑 1(실전 흑 51)’ 때 내가 끊지 않고 백 2로 젖힌 것이 너무 나약하지 않으냐는 얘기도 들었다. 물론 나도 끊는 수를 생각했으나 백 2는 알파고가 싫어하는 수라고 봤다. 그런 감은 굉장히 중요했다. 백 78은 워낙 언론에서 많이 다뤘다. 물론 백 78이 100% 수가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백 78을 이미 보고 있었다. 초읽기에 몰리기 시작한 당시 완벽하게 수읽기를 못했지만 이게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강했다. 그게 승부의 핵심이다. 만약 알파고가 제대로 둬 수가 안 될 수 있다는 걸 미리 걱정했다면 승부수를 던질 수 없었다.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갈 때 승리는 따라온다. 확신을 갖고 뒀는데 상대의 정확한 응수에 좌절된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주저하는 건 승부사의 덕목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내 확신이 통했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알파고가 생각보다 일찍 오류를 드러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알파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4국 승리는 감격스러웠다. 이제부턴 알파고를 이길 자신감이 더 붙었다. 그래서 흑이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5국에서 흑을 자청했다. 흑으로도 이기면 인간이 알파고를 이미 파악했고, 아직은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4국이 끝나고 하루를 쉬었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나는 가족과 함께 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상대에 대한 연구만큼이나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흑 ○가 느슨한 수여서 백에게 30의 곳을 둘 여유가 생겼다. 원래 흑이 둘 곳을 백이 차지했으니 차이가 크다. 박정환 9단이 안경을 살짝 올리더니 자세를 고쳐 앉는다. 백 30으로 단수를 당했으니 이어야 하지만 흑 ○를 둔 체면을 살리기 위해 흑 31로 백 한 점을 잡는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기세. 하지만 알파고 충격 이후 이런 기세는 모두 재점검을 받아야 한다. 기세 대신 계산을 해서 흑 31로 잡는 것과 백 32의 곳에 지키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은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 물론 이 바둑은 알파고 대결이 있기 전이니까 흑 31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어쨌든 백 32로 때려낸 것은 선수로 큰 이득. 형세의 추가 백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백 36으로 밀어간 수도 좋았다. 흑 37로 저항했으나 백 38로 끊는 수가 있어 다음 행마가 어렵다. 결국 흑 39로 멀찌감치 삭감하는 수를 택할 수밖에 없다. 만약 흑 39 대신 참고도 흑 1로 끊으면 흑 5까지 돌파할 수는 있으나 백 6으로 반대쪽 백 집이 어마어마하게 부푼다. 흑 39가 왔으니 참고도 수순을 봉쇄하기 위해 백 40은 반드시 필요하다. 흑 41이 박 9단의 승부수. 그냥 집짓기로 가면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알파고와의 1, 2국을 지고 나서 인공지능에 지는 인간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원래 큰 승부를 앞두고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덜 긴장한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큰 경기 전날에는 ‘무조건 이긴다’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 자신을 믿고 상대가 어떻게 받을지 두려워하지 않는 게 정상급 기사들의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기고 ‘마인드 컨트롤’에 노력했다. 10여 년간 마인드 컨트롤은 그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바둑계에선 나를 최고의 강심장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3국을 앞둔 부담감은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1, 2국 때와는 달리 대국장에 들어갈 때 딸과 함께 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내 표정에 힘든 기색이 드러나는 걸 딸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문제는 역시 부담감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초반부터 잘못된 길을 걸어갔다. 좌상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알파고의 수순은 숨이 막힐 정도로 정확했다. 특히 참고 1도처럼 백 ○를 기준으로 볼 때 밭전자 행마인 백 1(실전 백 32)은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좋은 수였다. 초반에 크게 망해 이후 수순은 더 살펴볼 것도 없다. 참고 2도 흑 1(실전 흑 99) 대신 먼저 ‘가’의 자리에 둬 백 대마 공격에 나서야 했지만 이땐 이미 어려운 상황이었다. 알파고가 백 6을 둬 백 대마를 사실상 살리면서 승부는 끝났다. 하변에 침입해 억지로 패를 냈지만 그건 아쉬움 때문이지 승부를 뒤집자는 건 아니었다. 3국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알파고와 초반부터 치고받는 것은 금물이라는 점이었다. 다른 곳과 연계되지 않은 전투에서 알파고의 수읽기는 치밀하고 정확했다. 3국은 평소 내 바둑이 아니었다. 심리적 압박감에 실력 발휘도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서 인터뷰 때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파고와 세 판을 두면서 특유의 습성을 상당 부분 파악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또 이번 대결이 내 패배로 끝났다는 점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더구나 4국은 내가 유리한 백번이었다. 밖에서는 0-5의 패배를 점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나는 이제야말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알파고와의 대결을 마치고 16일 휴식차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간 이세돌 9단은 현지에서도 인기 만점이었다. “대국 잘 봤다” “존경스럽다”며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했고, 일부 팬은 인증 사진을 찍기도 했다. 승부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듯 이 9단은 웃는 낯으로 인사를 일일이 받아주고 사진 찍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흑 ● 에 대해 고심하던 조한승 9단은 결국 백 8로 물러섰다. 강력하게 받고 싶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부턴 본격적인 중반전. 큰 전투가 벌어질 곳이 없어 영토의 경계를 대략 확정짓는 진행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미 변과 귀는 대부분 정리됐고 상중앙 쪽만 여전히 미정. 여기서 백이 얼마나 집을 가져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흑 13∼백 16은 맞보기의 곳. 조 9단이 백 18, 20으로 중앙 경영에 나서자 박정환 9단은 흑 23으로 붙여 백 두 점을 공략하면서 중앙 백의 경계선을 축소시키려고 한다. 조 9단은 백 28까지 강력하게 버텼을 때 흑 29가 좀 안일했다. 참고도 흑 1로 먼저 끊어야 했다. 이어 흑 3을 선수하고 5로 뻗으면 흑이 좀 더 앞서갈 수 있었다. 흑이 이 수순을 놓치자 백은 손을 빼고….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국내 프로기전의 효시인 국수전(國手戰)이 올해 60년을 맞는다. 1956년 4월 15일 ‘국수 제1위전’이란 이름으로 1회 대회를 시작한 국수전은 현대바둑 70년사에서 수많은 기전이 명멸했지만 가장 역사와 전통이 깊은 기전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특히 국수전은 당대 1인자의 계보를 이어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 바둑의 개척자인 고 조남철 9단(1∼9기)을 비롯해 김인 9단(10∼15기), 조훈현 9단(20∼29기 등 16회 우승), 이창호 9단(37∼41기 등 10회 우승), 이세돌 9단(51, 52기)이 우승했다. 현재 28개월째 국내 랭킹 1위인 박정환 9단(58, 59기)이 국수에 올라 있다. 또 윤기현, 고 하찬석 9단은 1970년대 중반 두 번씩 국수를 차지했다. 서봉수 9단은 조훈현 9단에게 6번 도전했다 실패한 뒤 1987년 7번 만에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 방어까지 성공했다. 2000년 43기 국수전에서 외국인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루이나이웨이 9단이 국수에 올라 화제가 됐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1국을 놓친 뒤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프로 기사의 대국에선 볼 수 없는 이상한 수와 프로 정상급의 수를 번갈아 두는 알파고의 습성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수를 나쁜 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파고가 수마다 승리 확률을 계산해 착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봤다. 1국 때와 마찬가지로 딸 혜림이와 같이 대국장에 들어섰다. 딸과 있는 동안은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대국이 진행될 때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내가 백번인 2국에서도 초반 흑의 이상한 수(○)와 좋은 감각으로 칭찬받은 수(○)가 나왔다. 나는 1국 때의 경험을 살려가면서 알파고의 수법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했다. 흑 ○를 보면서 어렴풋이 알파고가 복잡해질 수 있는 모양을 꺼린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흑을 든 알파고가 포석 끝 무렵 좌하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왔다. 알파고가 흑일 경우 48%의 승률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알파고의 작전이 무리해 우세를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봤다. 그런데 기분이 좋은 나머지 내 바둑이 느슨해졌다. 백 1로 그냥 나가서 끊은 게 실전인데 이것이 문제였다. 먼저 ‘가’로 단수치고 나가야 했다. 내가 ‘가’의 단수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충분한 수읽기를 하지 않고 실전 모양이 좋다고 쉽게 단정했던 게 경솔했다. 개인적으론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고 본다. 다른 프로 기사들은 아직도 백이 유리하다고 했지만 나는 확실히 유리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거의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흐름이 상대에게 넘어갔다고 본다. 이후 중반과 종반에 더욱 정교해지는 알파고의 수읽기는 대단했다. 마지막에 우상에서 왜 패를 안 했느냐고 밖에서는 의혹을 제기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얘기다. 패를 해도 승부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링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링 위의 상황을 모른다. 문제는 2국마저 진 뒤 내가 너무 큰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 바둑 용어불계패(不計敗·resign) 한쪽이 불리해 끝까지 두지 않고 도중에 패배를 선언하는 것. 상대편은 불계승을 거두게 된다. 알파고가 4국에서 크게 불리해지자 화면에 ‘resigns’라는 표시를 올리며 돌을 던졌다. 돌가리기(choosing color) 덤을 주는 바둑일 때 누가 흑과 백을 잡을지 결정하는 것. 보통 한 기사가 백돌 여러 개를 손에 쥐고 다른 선수가 흑 돌 하나를 바둑판에 올려놓는다. 백돌이 홀수면 흑 돌을 올려놓은 선수가, 짝수면 백돌을 쥔 선수가 돌 색깔을 선택할 수 있다. 패(覇·pae) 흑백이 서로 단수된 상태에서 동형반복을 거듭하는 것. 알파고가 복잡한 패를 잘하지 못한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3국에서 알파고는 프로 수준의 패싸움을 보여줬다. 화점(花點·flower point) 바둑판 맨 모퉁이에서 각각 4번째 선이 만나는 곳으로 점이 찍혀 있다. 알파고는 첫 수로 늘 화점만 뒀다. 덤(compensation) 먼저 두는 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백에게 일정한 집을 주는 것. 한국은 6집 반, 중국은 7집 반이다. 이번 대결에선 중국 덤을 썼다. 복기(復棋·replay) 바둑이 끝난 뒤 어떤 수가 좋고 나빴는지 검토해보는 것. 이세돌 9단은 대국 상대와 복기를 열심히 하는 기사인데 알파고와는 복기를 할 수 없었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프로기사인 손근기 5단(29)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한창일 때 어머니에게서 깜짝 놀랄 만한 부탁을 받았다. 바둑을 가르쳐줄 수 없느냐는 얘기였다. “제가 바둑 배운 지 20년이 넘었고 입단한 지 13년이 됐는데 그동안 바둑 두는 아들에겐 정성을 쏟으셔도 바둑 자체에는 한 번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그런 말씀을 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세돌이 형과 알파고 대결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덕에 바야흐로 바둑 붐이 일고 있다. 바둑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은 바둑을 알고 싶어 하고, 바둑을 조금이라도 알던 사람들은 다시 바둑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대결 5국은 지상파 3사를 비롯해 방송사 10곳이 생중계를 했으며 승부의 고비였던 오후 4시 반경 한 포털사이트의 동시접속자 수는 45만 명을 넘었다. 이쯤 되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못지않은 열기다. 바둑 책과 사이트, 학원 등 모든 분야에서 폭발적인 관심 증가가 피부로 느껴진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9∼16일 바둑 책 판매량은 전주보다 97% 상승했고 특히 이 9단의 자서전 ‘판을 엎어라’는 대결 초기엔 하루 200∼300권 나가다가 최근엔 1000권씩 팔리고 있다. ▼ “바둑의 매력 재발견!”… 학원 강습문의 10배로 늘어 ▼바둑 붐이 인 것은 70년 한국 현대바둑사에서 두 차례 있었다. 1980년 일본에서 조치훈 9단이 명인을 쟁취했을 때와 1989년 조훈현 9단이 녜웨이핑 9단을 3-2로 물리치고 응씨배에서 우승함과 동시에 이창호 9단이 혜성같이 등장했을 때였다. 조훈현 9단이 응씨배에서 우승한 뒤 귀국했을 때는 김포공항부터 한국기원(당시 서울 종로구 관철동)까지 카퍼레이드를 하기도 했다. 바둑계는 이번이 앞선 두 번보다 더 강한 ‘세 번째 바둑 열풍’이라고 반기고 있다. 이세돌 9단-알파고의 최종 대국이 끝난 다음 날인 16일 찾은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에 있는 ‘이세돌 바둑연구소’(연구소)는 바둑 열기로 뜨거웠다. “학원 강습 문의가 평소보다 10배는 많은 것 같아요.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연구소 김정열 대표(53)는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그는 이번 대국으로 바둑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연구소에는 이 9단과 형 이상훈 9단이 이사로 있다. 형제는 바둑도장을 오래 꾸려온 김 대표와 함께 2014년 12월 문을 열었다. 연구소 원생은 50여 명으로 대부분 프로기사 지망생들이다. 이세돌 9단은 경기가 없을 때면 주 1∼3번 예고 없이 연구소에 온다. 연구소 사범인 류동완 3단(27)은 “이 9단이 바둑판 앞에 앉을 때면 원생 수십 명이 몰려들어 그를 둘러싸고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한다”고 말했다. 형 이상훈 9단은 보통 오후 1시부터 연구소에 나와 끝날 때까지 원생들을 지도한다. 그는 “어린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고 걱정하는 부모가 많은데, 바둑은 3개월만 배우면 게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재미있어 한다”고 했다. 일반인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학원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꽃보다 바둑’은 여성 프로기사인 이다혜 4단, 문도원 배윤진 김미리 3단, 김혜림 2단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문을 연 바둑 학원이다. 이 4단은 “최근 전화와 블로그를 통해 바둑을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10배쯤 늘었다고 보면 된다”며 “특히 젊은 여성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바둑은 보통 남성들의 오락으로 알려졌지만 ‘꽃보다 바둑’이 최근 새로 만들 예정인 입문반엔 정원 12명 중 11명이 여성이다. 이 4단은 “지난해 드라마 ‘미생’과 올해 극중 바둑 천재 최택(박보검)이 나온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젊은 여성들의 바둑 관심도가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는데 이번 대결로 폭발한 것 같다”며 “인터넷에서 ‘수읽기에 집중하는 이 9단의 표정이 섹시하다’ 등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바둑 사이트도 접속자가 폭주하고 있다. ‘사이버오로’의 경우 하루 평균 동시접속자 수가 대결 전보다 40% 가까이 늘었고 회원 가입도 3배 이상 늘었다. 타이젬의 경우도 동시접속자와 회원 가입이 큰 폭으로 늘었을 뿐 아니라 추가 서비스인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은별’의 이용자도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열풍에 한국 바둑의 핵심 축인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고무된 상태다. 대한바둑협회 박장우 사무처장은 “유치원 바둑 강의 지원 사업,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의 바둑 수업 개설, 바둑 특성화고 추가 설립 등 지원책을 실행하고 있으며 바둑 인구 확충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둑 관계자들은 바둑 중흥을 위한 인프라가 현재 너무 부족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우선 이번 대결 이후 바둑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딱히 적절한 대답을 해주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최근 일부 프로기사들이 세운 학원 외에는 성인이 바둑을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 요즘 세대에 맞는 바둑용 교재나 전문적인 바둑 강사도 부족하다. 김만수 8단은 “바둑은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어서 초반에 잘 이끌어주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재미있는 동영상이나 게임 등을 통해 바둑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교재, 강의 등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원이 그동안 프로 기전과 아마 고수 대회 위주의 행정을 펼치다 보니 아마 바둑계 전반의 진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바둑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한때 1000만 명까지 헤아리던 바둑 인구는 현재 5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바둑계 내부에선 실제 바둑에 관심 있는 인구를 200만 명 정도로 본다. 특히 1997년 체스에서 딥블루가 세계 1인자 가리 카스파로프에게 이긴 뒤 잠시 체스 붐이 불었지만 이후 체스 인기가 크게 떨어진 점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한국기원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바둑 붐을 타고 바둑 인구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며 “바둑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높아진 만큼 바둑을 한류 상품으로 키우는 것도 생각해볼 때”라고 말했다.서정보 suhchoi@donga.com·조종엽 기자}

1국을 놓친 뒤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프로기사의 대국에선 볼 수 없는 이상한 수와 프로 정상급만이 두는 수를 번갈아 두는 알파고의 습성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수를 나쁜 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파고가 매 수마다 승리 확률을 계산해 착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봤다. 1국 때와 마찬가지로 딸 혜림이와 같이 대국장에 들어섰다. 딸과 있는 동안은 마음이 안정됐다. 그러나 대국이 진행될 때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내가 백번인 2국에서도 초반 흑의 이상한 수(△)와 최고의 감각(◎)으로 칭찬받은 수가 나왔다. 나는 1국 때의 경험을 살려가면서 알파고의 수법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했다. 흑 (△)를 보면서 어렴풋이 알파고가 모양을 결정짓고 가는 걸 좋아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흑을 든 알파고가 포석 끝 무렵 좌하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왔다. 알파고가 흑일 경우 48%의 승률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작전이 무리하다고 봤다. 여기서 나는 우세를 차지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내 바둑이 느슨해졌다. 백 1로 그냥 나가서 끊은 게 실전인데 이것이 경솔했다. 먼저 ‘가’로 단수치고 나가야 했다. 바둑을 잘 모르는 분들은 그게 뭐 대단한 차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미세한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프로 세계에선 다르다. 내가 ‘가’로 단수하는 수를 보지 못한 것도 아닌데 충분한 수읽기를 하지 않고 실전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 게 경솔했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론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고 본다. 다른 프로기사들은 여기서도 아직 유리하다고 했지만 나는 확실히 유리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거의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흐름이 상대로 넘어갔다고 본다. 이후 종반이 가까워질수록 정교해지는 알파고의 수읽기는 무서웠다. 마지막에 우상에서 왜 패를 안했냐고 밖에서는 의혹을 제기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얘기다. 패를 해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알파고의 패싸움 솜씨는 판후이 2단과의 대결에서 보듯 프로 정상급이었다. 링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링 위의 상황을 모른다.▒ 바둑 용어불계패(不計·resign) 한 쪽이 불리해 끝까지 두지 않고 도중에 패배를 선언하는 것. 상대 편은 불계승을 거두게 된다. 알파고가 4국에서 크게 불리해지자 화면에 ‘resigns’라는 표시를 올리며 돌을 던졌다. 패(覇·pae) 흑백이 서로 단수된 상태에서 동형반복을 거듭하는 것. 알파고가 복잡한 패를 잘하지 못한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3국에서 알파고는 프로 수준의 패싸움을 보여줬다. 화점(花點·flower point) 바둑판 맨 모퉁이에서 각각 4번째 선이 만나는 곳으로 점이 찍혀 있다. 알파고는 첫 수로 늘 화점만 뒀다. 덤(compensation) 먼저 두는 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백에게 일정한 집을 주는 것. 한국은 6집반, 중국은 7집반이다. 이번 대결에선 중국 덤을 썼다.돌가리기(choosing color) 덤을 주는 바둑일 때 누가 흑과 백을 잡을지 결정하는 것. 보통 한 기사가 백돌 여러 개를 손에 쥐고 다른 선수가 흑 돌 하나를 올려놓는다. 백돌이 홀수면 흑 돌을 올려놓은 선수가, 짝수면 백돌을 쥔 선수가 돌 색깔을 선택할 수 있다. 초읽기(overtime counting) 제한시간을 다 쓴 뒤 주는 시간. 이번 대결에선 각자 제한시간 2시간에 1분씩 3회였다. 이 의미는 2시간이 지난 뒤 1분 안에 수를 두면 1분 3회가 그대로 남고 1분 안에 못 두면 2회, 다시 1분이 지나면 마지막 1회 남는다. 마지막 초읽기가 되면 1분 내에 꼭 한 수를 둬야한다. 두지 않으면 반칙패를 당한다. 복기(復棋·replay) 바둑이 끝난 뒤 어떤 수가 좋고 나빴는지 검토해보는 것. 이세돌 9단은 대국 상대와 복기를 열심히 하는 기사인데 알파고와는 복기를 할 수 없었다.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정리=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통해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바둑은 구글이 도전 과제로 삼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바둑에 대한 의문이나 궁금증을 문답 풀이로 알아본다.Q. 바둑을 어디서 배울 수 있나.A. 어린이들은 전국 1000개 가까이 있는 어린이 바둑교실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성인들은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으나 최근 프로기사들이 성인 대상으로 운영하는 동작바둑교실, 꽃보다바둑 등 학원이 생겼다. 바둑 입문 서적을 통해 기본을 익힐 수도 있다. 사이버오로, 타이젬, 한게임바둑, 넷마블바둑 등 바둑 사이트에서 초보자 강의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과의 대국 등을 통해서 기초를 다질 수 있다. Q. 바둑에서 아마와 프로의 급수와 단수 체계는?A. 아마 급은 최하급 18급(級)에서 1급까지 있고, 초단부터 7단까지 단(段)이 있다. 급은 낮을수록 단은 높을수록 고수(高手). 6단까지는 한국기원이 인정해준다. 7단은 아마 전국대회에서 3회 우승(1회 우승하면 6단)을 해야 받을 수 있다. 프로는 초단부터 9단까지 있고 입단대회 등을 통해 매년 15명 씩 뽑는다. 과거에는 별도 승단대회가 있었으나 최근엔 각종 대회 성적으로 점수를 매겨 승단시킨다. Q. 프로기사는 어떻게 될 수 있나. A. 한국기원의 입단대회를 거친다. 보통 10세 이전에 재능이 있으면 프로기사들이 운영하는 바둑도장에서 실력을 다진다. 이세돌 최철한 9단 등이 나온 권갑룡 바둑도장을 비롯해 유창혁 바둑도장, 양천대일도장 등이 있다. 이어 한국기원 연구생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 짧게는 6, 7년 길게는 10년 이상 공부해야 입단할 수 있고 실패하는 경우도 많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Q. 바둑 해설을 보고 이해할 수준이 되려면?A. 해설을 듣고 이해하려면 최소 7, 8급은 돼야 하는데 1년 이상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그 정도가 되면 바둑 해설을 보면서 ‘알파고가 더 유리하다’ ‘지금이 승부수를 날릴 때’라는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다.Q. 입신(入神)으로 불리는 프로 9단이 왜 이렇게 많은지?A. 현재 한국의 프로기사는 316명이다. 그 중 9단은 71명으로 22% 정도 된다. 과거엔 승단 규정이 까다로워 조훈현 9단이 입단 20년 만에 국내 최초로 9단에 승단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단이 낮은 10대 기사들이 성적을 내면서 단의 권위가 없어지자 승단 규정을 쉽게 만들었고 이후 9단이 크게 늘었다. 국내외 대회 우승에 따른 특별승단제도를 도입해 현재 국내 랭킹 1위 박정환 9단은 입단 4년 만인 17세 때 9단이 됐다.Q. 바둑의 장점은 무엇인가? A. 집중력 향상이다. 이세돌 9단은 어릴 적 잠시도 가만있질 못하는 개구쟁이였으나 바둑을 배운 뒤에는 한번에 3~4시간 씩 앉아서 몰두했으며 계가를 하면서 자연스레 곱셈 등 산수를 6세 때 이미 깨우쳤다고 한다. 바둑을 통해 얻은 집중력은 학업에 큰 도움이 된다. 윤재웅 4단은 프로기사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다시 학업을 시작해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입학한 뒤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김배중기자 wanted@donga.com}

《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1주일간의 혈투는 꿈과 같았다. 인간이 기계에 졌다는 좌절감, 그리고 기계가 너무 강하다는 두려움이 세상을 휩쓸 때 오직 1명만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승부사 이 9단은 4국에서 투혼의 승리를 보여주며 온 국민을 감동시키는 대반전을 만들었다. 이 9단은 그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가 생각하는 1∼5국의 승부처와 승패에 얽힌 뒷얘기를 다섯 번에 걸쳐 싣는다. 》 알파고와의 대국 이틀 전인 7일 명인전 우승 시상식에서 나는 “한 판이라도 지면 나의 패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만큼 알파고를 몰랐다. 내가 1국에서 패한 뒤 밖에서는 ‘정보 비대칭에 따른 불공정’ 얘기가 나왔다. 내 기보는 모두 알파고가 알고 있는데 알파고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기보는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 대회에서도 전혀 몰랐던 신예 기사와 맞붙을 때는 그 기사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둔다. 그래서 뜻밖에 강한 신예를 만나면 질 때도 있는 법이다. 지난해 10월 알파고가 판후이 2단과 둔 기보는 봤다. 여러 번 얘기했듯 그때 알파고는 분명 나의 적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기보만으로는 상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지론이다. 실제 대국을 두면서 느끼는 수많은 무형의 정보는 기보로는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인공지능, 기계이지만 나름대로 두는 방식이 있었다. 1국에서 알파고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를 몇 번 뒀다. 대국 전 그런 수들을 기보에서 봤다면 아마 알파고의 실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정보 비대칭은 변명밖에 안 된다. 모름지기 승부사는 그런 걸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1국에선 초반에 실패해 내가 유리한 순간이 없었다. 하지만 많이 쫓아가 격차를 좁힌 적은 있었다. 좌하에서 큰 집을 만들었을 때이다.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대국이 끝난 뒤 구글 측에 좌하 쪽에서 알파고의 행마는 ‘버그’ 수준이었다고 얘기해줬다. 흔히 알파고의 승착이라고 하는 우변 백 1(실전 102)은 대국이 만만치 않은 승부로 바뀌었다는 점을 입증한다. 알파고가 이런 식의 과감한 수를 던지는 것은 온건한 방식으로는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 1이 오기 전에 ‘가’로 먼저 들여다봤으면 백 1의 파괴력이 줄었다는 게 나중 검토였지만 당시 알파고가 이런 수를 둘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 수를 당해선 이기기 힘들었다. 마지막 우하귀 처리에서 실리를 빼앗긴 것도 실수지만 그땐 제대로 뒀어도 한 집 반 또는 반집 정도 불리했다. 알파고는 이상한 수를 두다가도 정확한 타이밍에 승부수를 던지는 힘이 있었다. 1국은 졌어도 큰 아쉬움은 없었다. 몰라서 졌고, 오판해서 졌고, 초반 근접전에서 실패해서 졌다. 예상 밖으로 진 것 자체는 충격이었지만 인간끼리의 승부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오히려 2국을 정신 차리고 둘 수 있는 보약이 됐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예측하지 못한 흑 ●의 맥으로 선수 이득을 본 박정환 9단은 흑 97로 여유 있게 좌측 흑 대마를 보강한다. 백 98은 포석에서 유일하게 남은 큰 곳. 이제부턴 중반으로 넘어간다. 흑 99에 백 100은 시급하다. 귀의 백 한 점이 잡히는 수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한승 9단은 약간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차이는 미세하다. 서로 순리대로 필요한 곳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백 102, 104는 두터운 곳. 조 9단이 좋아하는 수법이다. 흑 105와 백 106은 맞보기의 곳. 흑 105에 참고 1도 백 1로 손 따라 두면 낭패다. 흑 2를 선수하고 흑 4로 따내는 것이 백에 아픈 곳. 흑 6까지 백은 아직도 미생이다. 흑 107은 일종의 응수 타진. 좌변을 백이 넘어간 후에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물어보는 것이다. 여기서 참고 2도 백 1로 두는 건 좌변을 선수로 막혀 백이 손해. 백 5로 버티는 것은 흑 8부터 16까지 패가 발생해 백이 비상사태를 맞는다. 그렇다고 물러서는 건 내키지 않는데….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