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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한국 콘텐츠의 황금기다. 다양한 창작 생태계와 활발한 도전이 성공 비결로 꼽히지만 핵심은 빼어난 창의성이다. 동아일보는 2022년을 맞아 세계를 뒤흔든 콘텐츠계 ‘황금손’ 3명과 창의성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51)과 ‘완전한 행복’,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소설가(56),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원작 웹툰을 그린 김보통 작가(41)가 창작의 원천을 공개했다.황 감독은 영화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도가니’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정 작가가 쓴 ‘완전한 행복’, ‘종의 기원’은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휩쓸었고 ‘7년의 밤’은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다. 한국 군대의 가혹행위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D.P.’는 국내를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이들이 신선하고도 놀라운 콘텐츠를 만든 비결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온몸으로 즐긴 놀이 황 감독은 “초등학생 때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온갖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 경험이 쌓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탄생했다”고 했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갖가지 골목 놀이를 하며 자란 기억이 대작 탄생의 비결이라는 것. 친구들과 어울리는 황 감독을 향해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멀리 가지 마라”, “밥 먹으러 와라”고 당부하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작품으로 피어났다.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우(박해수)의 애절한 대사 “어릴 때, 형이랑 이러고 놀다 보면 꼭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부르네”가 그것. 정 작가가 어린 시절 사방팔방 들판을 뛰어다닌 기억은 그의 작품에 깊이 녹아 있다. 전남 함평군이 고향인 그는 친구들과 매일 늪 주변에 있는 폐가를 찾아다니며 놀았다. ‘완전한 행복’에서 나르시시스트인 주인공이 폐가와 다름없는 시골집에 사는 풍경을 묘사한 것도 그때 경험에서 비롯됐다. 정 작가는 “작품에 도시가 아닌 시골 풍경이 자주 나오는 건 천둥벌거숭이 시절 뛰어놀던 경험 때문”이라며 “어릴 때 그렇게 놀지 않았다면 소설 속 다양한 장면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각계각층과 즐기는 수다황 감독은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영감을 얻곤 한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히면 지인을 옆에 앉혀 놓고 대화하며 글을 쓸 정도다. 영화·드라마 연출팀, 미술팀 등 다양한 스태프와 자주 대화하는 건 물론이다. 대학교수, 회사원, 금융인, 판사, 변호사 등 각종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집에서 모여 밤새 수다도 떤다. 친구들이 말해주는 각 직업의 ‘뒷담화’가 그에겐 창작의 샘. 황 감독은 “대화는 항상 내게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해당 분야 종사자들을 찾아다니며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사, 기자 등 등장인물의 특성을 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이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각종 방법을 이용한 살인 사건을 묘사하기 위해 전문의, 프로파일러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를 반드시 노트에 정리한다. ‘완전한 행복’을 쓸 땐 약리학 교수에게 자문해 약물로 등장인물을 죽이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정 작가는 “전문가와의 대화는 치명적 실수를 막을 뿐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말했다. 김 작가가 작품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비결도 군 생활 때 귀를 활짝 열어둔 덕이다. 김 작가는 육군 헌병대(현 군사경찰대)의 군무이탈자 체포전담조인 DP(Deserter Pursuit) 조원으로 근무했다. 근무이탈자의 부모, 여자친구, 친구들을 샅샅이 만날 때마다 이들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왜 그들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하게 됐고 이는 창작으로 이어졌다. 김 작가는 “근무이탈자의 지인을 만나다 보니 근무이탈자들이 마치 내 지인처럼 느껴졌다”며 “독자에게도 그때의 내 심정을 전하고 싶어 웹툰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분야 망라한 잡식성 관심 황 감독은 매체,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빨아들이는 ‘잡식 동물’이다. “게으르고 싫증을 잘 내서”라는 겸손한 표현과 달리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만화 등을 두루 섭렵한다. 한국에선 생소한 서바이벌 장르 ‘오징어게임’을 만든 것도 ‘배틀로얄’, ‘라이어 게임’ 등 서바이벌 장르 만화를 좋아한 덕이다. 황 감독은 한때 소설과 시를 짓고, 영화 평론도 공부했다. 황 감독은 “집에 혼자 있으면 TV를 틀어놓고 책을 읽는데 어느 순간 탁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며 “작품은 이 모든 종합적인 것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의외로 다른 웹툰은 잘 보지 않는다. “열등감만 생기고, 속이 터지기 때문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김 작가는 다른 분야 콘텐츠에 대해선 레이더를 켜고 다닌다.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뉴스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뉴스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다. 또 기구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나가기도 한다. 창작물에 한정하지 않고 현실을 다룬 콘텐츠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취향 덕에 그의 작품은 현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작가는 “작품을 허구로만 채우는 건 탈영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희석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실제 보도된 사건을 참고해 현실감을 살렸다”고 했다.상상력 날개 달아준 독서 황 감독은 어린 시절 계몽사 문고와 백과사전을 탐닉했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백경’(모비딕)이나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 작품에 빠진 게 대표적. 책에 나온 장면을 외우다시피 하고 자신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즐겼다. “너무 재미있어서 같은 책을 반복해서 계속 읽었다”는 황 감독은 “혼자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상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하염없이 공상에 빠져 종점까지 간 적도 있다. 정 작가는 다독가로 유명하다. 책 한 권을 쓰기 전 수십 권을 읽는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이야기를 쓸지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쏟아진다고 한다. ‘완전한 행복’을 쓰기 전엔 행복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50권이나 읽었을 정도. 정 작가는 “독서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뼛속까지 새긴 경험 김 작가는 보편적인 경험이 이야기의 힘이라는 걸 보여준 대표적 작가다. 군 생활은 한국 남성 다수가 하는 경험이기에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좋은 소재였다. ‘D.P.’ 역시 자신의 군복무 경험에 주변의 군 생활 사례를 더했다. 그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나’라는 독자를 위해 만드는 것”이라며 “내 경험에서 온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마음을 정리해야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더 이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5년간 간호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약물을 이용한 범죄를 작품에서 자주 활용한다. 그는 간호사 시절 대부분을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거쳐 간 장소에서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그의 작품이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정 작가는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까지, ‘악의 3부작’을 쓴 것도 인간 본성을 알고 싶어서였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3년쯤 전부터 이 앞 도로가 꺼진 걸 2, 3번 정도 봤거든요. 구청에서 보수했는데도 인도가 계속 다시 꺼지더니만….” 2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그랜드프라자 건물 앞에서 만난 인근 주민 이경숙 씨(57)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이 건물 지하 3층 기둥이 파열되며 입주민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게다가 건물 앞 도로 지반까지 침하한 것으로 관측돼 인근 상인과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4, 5년 전부터 이상 징후2일 본보 취재 결과 수년 전부터 이 건물 앞 도로 지반이 여러 차례 꺼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로드뷰’를 보면 2019년 10월 촬영 사진에선 비교적 평평하게 보이던 건물 앞 도로가 2020년 11월 이후 사진에는 확연하게 꺼져 있었다. 주민 안모 씨(57)는 “4, 5년 전에도 사고 지점에서 상수도관이 터져 보수공사가 이뤄졌다”며 “이후 지반이 점점 내려앉아 여러 차례 공사를 했다”고 돌이켰다. 주민들은 이번 사고 현장뿐 아니라 근방에도 지반 침하 위험이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마두동과 인접한 백석동의 신축공사 현장 인근 도로에서도 지반 침하 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난 탓이다. 고양시는 2016년 이후 이 일대에서 지반 침하와 도로 균열 현상이 8차례 일어났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에는 백석동 알미공원 앞 5개 차로 약 50m가 2.5m 깊이로 침하되기도 했다. 그랜드프라자 건물에서 약 200m 떨어진 아파트에 사는 주민 김모 씨(53)는 “혹여나 이 근방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고양시는 2일 그랜드프라자 건물의 정밀 진단검사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일산신도시 전체의 지반이 취약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백석역, 마두역 일대의 경우 자갈과 모래층 위에 흙을 매립해 조성했는데, 지하수가 흙과 함께 흘러가면서 빈 공간이 생겨 침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도 “일산 일대는 한강과 가까운 데다 미세 모래 지반이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양시도 2019년 12월 “지하 3층 아래는 토질이 모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건물 신축 시 지하 3층 이하 터파기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이봉직 한국교통대 건설환경도시교통공학부 교수는 “일대가 매립 지역이어서 침하가 발생했다면 인접 건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어야 한다”고 했다. “지반 조사 범위 확대해야”국토교통부 지하안전관리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최근까지 고양시에서 발생한 지반 침하 사고는 총 23건이었다. 2019년 이전의 사고 18건은 노후 하수관 손상(17건)과 굴착공사(1건)가 원인으로 나타났지만 2020년 이후 사고 5건은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해당 건물과 주변만 포함된 지반조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은 지질조사국(USGS)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토질과 지하수 흐름을 조사한다”며 “건물 주변 지하수 흐름을 알면 미리 취약 지대를 보강해 지반 침하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는 터키 에페소스는 숲을 훼손한 결과 사라진 도시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에페소스에서는 농업이 번성하자 숲을 농경지대로 바꿨다. 숲이 축소되자 물이 줄었고 토양 침식도 가속화되며 도시는 사라졌다. 나무를 우주 만물의 기본 요소로 여긴 동양과 달리, 문명 발전을 중시한 서양은 자연을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35종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특히 나무에 얽힌 신화와 전설, 역사, 민속에 대한 설명은 유럽 문명도 자연에서 출발했으며 숲과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그리스 아테네, 마라톤 등 지역을 아우르는 아티카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아테네 초대 왕 케크롭스는 도시에 더 이로운 선물을 주는 신을 수호신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포세이돈은 소금물과 항구를 선물했지만, 아테나는 도시에 올리브나무를 싹틔웠다. 케크롭스는 식량이자 약재인 올리브나무의 가치를 알아보고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정한다. 이후 올리브나무를 훼손한 자는 재산을 뺏기고 추방당했다. 14세기 독일에선 흑사병에 맞서고자 나무에 의지하기도 했다. 특히 노간주나무 열매는 죽어가던 새들도 살려낼 만큼 약효가 좋다고 알려졌고, 어떤 사람은 그 열매를 먹고 흑사병을 이겨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사람들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광장에 모여 노간주나무를 쌓아 불을 피웠다. 나무가 탄 연기가 공기를 정화하고 감염을 예방한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노간주나무가 사악한 것을 쫓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자 독일에서는 19세기까지 노간주나무 가지를 가축 우리에 걸어놓으면 다산과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가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은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는 말을 남겼다. 나무와 인간이 맺어온 관계를 들려주는 이 책은 문명 발전으로 숲이 사라져가는 오늘날에 경종을 울린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지난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조선 천문과학기술을 실증할 유물들이 출토됐다. 앙부일구, 자격루 등 세종 대에 많은 과학 기기가 만들어졌지만 당대 실물은 전해진 게 거의 없었다. 이번 출토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들여다봤다.》피맛골 유물로 본 조선의 과학기술 “처음에 임금이 주야측후기(晝夜測候器·밤낮으로 기상 상태를 알기 위해 천체를 관측하는 기기)를 만들기를 명해 이름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라 했는데, 이를 완성해 보고했다.” 세종실록 1437년 4월 15일 기록이다. 당시 조선에는 앙부일구, 자격루 등 해를 관측하거나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물의 양을 측정해 시각을 알려주는 기기는 있었지만 해시계는 밤에 사용할 수 없었다. 물시계는 수온이나 압력에 따라 물의 속도가 변해 측정 결과에 오차가 생길 수 있었다. 실록에 따르면 중국 주나라 관직 제도와 전국(戰國)시대 각 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 원나라 역사서 원사(元史)에 별을 이용해 시각을 측정했다고 적혀 있다. 세종은 밤에도 별을 보고 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라고 명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실록에 기록된 일성정시의다.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별시계가 되는 복합시계인 일성정시의는 당시 총 4개를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전해지는 실물은 없었다.○ 500여 년이 지나 발견된 일성정시의 지난해 6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 피맛골 입구. 현재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으로 불리는 이곳은 조선시대 사법기관인 의금부(義禁府) 등 중앙관청을 비롯해 상설 시장인 시전행랑(市廛行廊)이 있었던 한양의 중심지였다. 수도문물연구원 발굴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발굴 조사를 하고 있었다. 2020년 3월부터 진행된 조사였다. 이날 발굴팀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유물들을 발견했다. 절단된 채로 묻혀 있던 16세기 승자총통 1점과 소승자총통 7점을 시작으로 조선 15, 16세기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총통 조각들 아래로 세 개의 환(環·둥근 고리)이 잘게 잘린 채 가지런히 포개진 상태로 발견됐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처음에는 어떤 유물인지 전혀 몰랐다”며 “조각들에 눈금이 새겨져 있는 것만 확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눈금에서 천체 관측 기기인 혼천의(渾天儀)를 떠올린 발굴팀은 혼천의를 복원한 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명예교수에게 사진을 보내 자문했다. 사진을 본 뒤 연구원 수장고로 달려온 이 명예교수는 “이 실물을 확인하게 될 줄 몰랐다. 이건 세종 때 제작된 일성정시의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종실록은 “바퀴 윗면에 세 고리를 놓았는데, 이름을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별의 이동을 측정하는 고리),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해시계용 고리),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별시계용 고리)이라 한다”며 일성정시의 형태를 전하고 있다. 이번에 출토된 일성정시의 부품이 바로 세종실록에 나오는 세 고리다. 특히 바깥쪽에 있는 주천도분환과 가장 안쪽에 있는 성구백각환은 두 귀(耳)가 있다고 묘사돼 있는데 출토 유물의 모양도 이와 동일하다. 또한 성구백각환에 새겨진 100개의 눈금은 “100각(刻)으로 때를 정해 밤낮을 나눴다”는 실록의 기록과 일치했다.○ 현대 과학 기술 수준 보유 일성정시의는 당시 천문과학기술의 집약체다. 농업이 국가 경제의 기본이던 사회에서 해와 달의 움직임, 계절에 따른 별자리 변화 등을 살펴 시간과 절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였다. 또 왕의 권력이 하늘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던 유교에서도 천문학을 제왕의 학문이라고 일컬었다. 이런 배경에서 일성정시의가 제작되기 전 조선은 중국에서 전래된 천체 관측 기기인 혼천의와 간의(簡儀)를 변형해 이용하고 있었다. 혼천의와 간의는 윤일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윤일은 우리가 세는 1년의 길이와 실제 1년의 길이가 달라 발생하는 오차다. 지구의 공전주기는 약 365.25일로 우리가 아는 1년의 길이인 365일보다 0.25일이 길다. 일성정시의는 주천도분환을 이용해 이를 해결했다. 주천도분환에는 4분의 1도를 기본 단위로 1461개의 눈금이 새겨져 있다. 이를 모두 더하면 365와 4분의 1도인데, 이는 당시에 정확한 1년의 길이를 측정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일성정시의는 매년 동지 자정에 주천도분환을 한 눈금씩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해 0.25일을 보정함으로써 지금과 같이 4년에 한 번씩 1일을 추가하지 않고도 윤일 오차를 방지했다. 이 명예교수는 “당시 조선에서 정밀하게 365와 4분의 1도만큼 정밀하게 눈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며 “세종 때 독립적으로 창제한 일성정시의를 보고 영국의 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 교수는 서양에도 이런 것은 없다며 극찬했다”고 말했다.○ 천문 읽기, 국왕의 의무일성정시의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이전까지 꾸준히 천문학을 연구하며 발전한 조선 과학기술이 있었다. 그 첫 시작이 1395년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하늘과 땅의 모습을 그린 천문도를 새긴 돌)이다. 1247년 중국 남송 시기에 만들어진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다. 1만 원권 지폐 뒷면에 새겨진 별자리 그림이다.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를 세운 조선 태조는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을 이용하고자 했다. 천문을 읽는 것이 하늘의 뜻을 받아 통치하는 국왕의 의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문도가 필요했다. 각석 아랫부분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고구려 수도였던 평양성에 천문도가 새겨진 돌 비석이 있었다고 전해졌지만 세월이 흘러 복사본조차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신원 미상의 인물이 태조에게 천문도 복사본을 바쳤다. 태조는 사라진 고구려 천문도 등장을 고구려 계승자가 고려가 아닌 조선임을 하늘이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천문도를 돌에 새기라는 태조의 명을 받은 천문학자 권근(1352∼1409)은 별의 이동에 따른 오차를 고려해 기준이 되는 별 28수를 새로 관측한 후 돌에 새겼다.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북반구의 거의 모든 별자리가 표시돼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천문학 발전의 근간이 됐다. 이후 세종 대에 이르러 조선의 과학기술이 꽃피우기 시작했다. 세종실록 1437년 4월 15일 기록에 따르면, 세종은 1432년 7월 독자적 역법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예문관 대제학 정초(?∼1434), 예문관 제학 정인지(1396∼1478), 중추원사 이천(1376∼1451) 등을 중심으로 조선만의 천체 관측 기기를 만들 것을 명했다. 그 결과 1433년 이천과 장영실 등은 혼천의 제작에 성공한다. 1434년 7월엔 자격루(自擊漏·스스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를 만들어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 설치했다. 자격루는 세 개의 항아리를 높이가 다르게 배치해 일정한 속도로 물이 수수호(受水壺·원기둥 모양의 물통)로 흐르도록 했다. 수수호에 물이 차오르면 부력을 이용해 그 안에 들어 있는 나무 막대가 떠오르면서 수수호 위쪽에 설치된 구슬방출장치를 건드려 구슬을 방출한다. 방출된 구슬은 자동으로 종, 북, 징을 쳐 시각을 알려준다. 피맛골 유적에서는 이러한 물시계의 구슬 방출장치인 주전(籌箭)도 발견됐다. 지금까지 물시계나 그 부품의 실물이 확인된 적은 없었다. 주전은 구멍이 엇갈려 뚫려 있는 형태였으며, 구슬이 방출되지 않도록 막는 원통 모양의 걸쇠도 함께 출토됐다. 오 원장은 “주전에 일전(一箭·화살)이라고 적혀 있어 신기전이나 화포 구멍이라고 생각했지만, 전(箭)의 용례를 찾아보니 물시계 눈금이 있었다”고 말했다. 학계 전문가들 역시 “주전 실물이 출토됐으니 여태까지 문헌을 바탕으로 복원된 물시계도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도 제작됐다. 안쪽 바닥 면에는 세로선 7개를 새겨 해가 떠 있는 시간인 묘시에서 유시까지(오전 6시부터 오후 6시)를 2시간 간격으로 표시했다. 세로선과 세로선 사이에 8개의 세로선을 그어 15분 간격으로 시간을 알 수 있게 했다. 가로선 13개로는 동지에서 하지까지 절기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시계 안쪽에 끝이 뾰족한 막대를 설치해 햇빛을 받은 막대 그림자가 가리키는 선을 읽으면 시간을 알 수 있다. 세종은 앙부일구를 현재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부근과 종묘에 설치했다. 세종실록에는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12지신을 이용한 시각 표시)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앙부일구를 보물로 지정 예고한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천문과학기술의 발전과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과학문화재”라고 평가했다.○ 후대 과학 발전 이끈 세종 시대세종 때 만들어진 천체 관측 기기들은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종 집권 시기인 1486년에는 일성정시의에서 해시계 기능만 분리한 소일영(小日影)을 만들었다. 창덕궁 어수당 앞 소일영이 그려진 그림 무신친정계첩(戊申親政契帖·1728년 제작)을 보면 영조 때에도 소일영이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과학기술은 서양 과학이 조선에 전래되자 변화를 맞았다. 18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법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는 앙부일구와 달리 평평한 모양으로 만든 해시계다. 하루를 100각으로 나눴던 기존 방식을 96각으로 나눈 서양 역법을 받아들인 명나라에서 1636년 제작한 신법지평일구가 조선으로 전해졌고, 1713년 한양의 위도를 측정해 조선에 맞는 해시계를 다시 제작했다. 19세기에는 혼천의를 간소화한 평혼의(平渾儀)를 만들어 사용했다. 둥근 황동판 앞뒤에 각각 북반구와 남반구의 별자리를 새겼다. 하늘에서 보이는 별자리와 동판의 별자리를 일치시켜 시각을 읽을 수 있었다. 조선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던 세종 시기 과학기술은 문헌으로만 전해질 뿐 현존하는 실물이 거의 없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들은 조선 과학사를 실증할 수 있는 주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을 기획한 이상백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는 “일성정시의 손잡이가 구름 모양이라는 사실도 출토 유물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며 “후속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과학문명사 강의’(책과함께)를 발간한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옛날에도 과학기술이 한국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었다”며 “우리 과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 전통 과학의 창조성, 우리 과학자들의 집념과 열정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000000000.}

문화재청은 조선 천문학을 대표하는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사진)’를 30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솥이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한 해시계라는 뜻의 앙부일구는 조선 천문과학기술의 발전을 엿볼 수 있고 숙련된 기술자가 만들어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1434년 세종 대에 제작된 앙부일구는 그해 10월 종묘와 혜정교(현 종로1가)에 설치돼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줬다. 당시 제작된 앙부일구는 전해지는 실물이 없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되는 앙부일구는 지난해 미국에서 환수된 1점과 국립경주박물관, 성신여대박물관에 있는 2점이다. 3점 모두 시계 표면에 1713년 처음 사용된 위도 값이 새겨져 있어 18세기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앙부일구와 함께 송나라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66∼270,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길이 9.8cm, 높이 2.7cm, 무게 50g에 불과한 작은 크기의 공예품에 국화와 넝쿨무늬 장식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영롱한 빛깔의 조개껍질 조각과 구리 등 금속선을 이용해 만든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표면에는 옅은 검은색의 광택이 나는 투명한 막이 덧씌워져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환수해온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 합’(사진)이다. 고려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칠기는 전 세계에 3점만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3월 20일까지 특별전시실에서 ‘칠, 아시아를 칠하다’ 특별전을 연다. 전시에서는 아시아 각지의 다양한 칠공예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칠기 263점을 선보인다. 옻칠은 옻나무 수액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해온 천연도료다. 방수, 방충 등 물건의 내구성을 높일 뿐 아니라 특유의 광택으로 공예품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국내 칠기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칠기도 전시된다. ‘칠 새와 구름무늬 접시’를 통해 옻칠을 여러 겹으로 덧바른 뒤 그 위에 조각칼로 무늬를 새기는 중국의 ‘조칠(彫漆)’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옻나무에서 옻칠을 채취하고 정제하여 도료로 만드는 데는 수개월이 소요되는 칠공예를 통해 단단하고 다채로운 아시아 칠공예의 세계를 만나보길 바란다”고 전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당당한 체구의 잘생긴 사람들이 상점 앞에서 긴 담뱃대로 흡연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우아한 루저’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1913년 4월 조선에 온 독일 예술사학자 페테르 예센(1858∼1926)이 쓴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 중 일부다. 그는 당시 독일 문화부 후원으로 문화정책 구상차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조선을 답사했다. 일제에 의해 서양 복식이 확산된 상황에도 상의부터 신발까지 온통 흰색 한복을 갖춰 입은 조선인들을 그는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우아한 루저의 나라’(정은문고)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3명의 여행기를 번역한 것이다. 당시 독일인의 눈에 비친 구한말 조선인의 모습을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 예센과 지리학자 헤르만 라우텐자흐(1886∼1971)의 조선 여행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다. 이 책 저자 고혜련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60·한국학)는 독립기념관의 3·1운동 기념사업 일환으로 독일 내 한국 자료를 수집하다 이를 발견했다. 1898, 1899년 조선을 방문한 독일 산림청 공무원 브루노 크노헨하우어(1861∼1942)는 독일의 조선금광 채굴 과정을 담은 강연문을 썼다. 강원 철원군 당고개 금광을 캐던 그는 1898년 12월 조선인 광부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돌을 던지는 광부들에게 그는 권총을 쏘며 맞섰다. 고 교수는 “반외세를 내세운 동학농민운동 여파로 19세기 말 조선인들은 외국인들이 광물을 빼앗아간다고 여겼다”고 분석했다. 지리학자 라우텐자흐는 1933년 7∼10월 한반도 지형을 연구하기 위해 조선을 찾았다. 그의 백두산 탐사기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 여행’에는 독립군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을 목격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벨기에식 권총을 소지하고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났다”고 썼다. 고 교수는 “당시 백두산에는 항일무장단체였던 동북항일연군의 주둔지가 있었다. 라우텐자흐가 본 사냥꾼은 독립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바르고 당당한 체구와 잘생긴 모습의 사람들은 수많은 상점 앞에서 기다란 담뱃대로 흡연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우아한 루저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1913년 4월 조선에 온 독일 예술사학자 페테르 예쎈(1858~1926)이 쓴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 일부다. 예쎈은 당시 독일 문화부 후원으로 문화정책을 구상하고자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조선을 답사했다. 예쎈은 일제에 의해 서양식 복식이 전파되던 와중에도 상의부터 신발까지 온통 흰색 한복을 입는 등 전통문화를 유지하던 조선인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최근 발간한 ‘우아한 루저의 나라’(정은문고)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3명의 여행기를 번역해 당시 모습과 조선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살펴본다. 예쎈과 지리학자 라우텐자흐 헤르만(1886~1971)의 여행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다. 저자 고혜련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60·한국학)는 2019년 독립기념관의 3·1운동 기념사업 일환으로 독일 내 한국자료를 수집하다 이 자료들을 발견했다. 1898년 2월부터 1899년 6월까지 조선을 방문한 독일 산림청 공무원 브루노 크노헨하우어(1861~1942)가 한국에 대해 강연한 강연문 ‘Korea’에는 당시 독일의 조선 금광 채굴 과정이 그려져 있다. 강원 철원군 당고개 금광에서 채굴작업을 하던 그는 1898년 12월 조선인 광부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돌을 던지는 조선인들에게 그는 권총을 쏘며 대항했다. 고 교수는 “반외세를 내세운 동학농민운동 흔적이 남아있던 당시 조선인은 외국인들이 광물을 탈취한다고 여겼다”고 분석했다. 지리학자로 지구 동쪽 끝 조선 반도 지형을 연구하고자 1933년 7월부터 10월 조선에 온 헤르만의 백두산 탐사기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여행’에는 독립군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목격담이 제시된다. 그는 “벨기에식 권총을 소지하고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말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고 전한다. 고 교수는 “당시 백두산은 항일무장단체 동북항일연군 주둔지가 있던 지역으로 독립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의 실체와 가치를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코로나에 부동산 급등까지 모두의 어려움이 큰 한 해였습니다. 그래선지 출판인, 학자, 의료인 등 35명이 꼽은 ‘2021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은 유독 공동체나 연대를 다룬 양서들이 많습니다. 선정위원별로 3권씩 추천을 받은 결과, 1표 이상 얻은 책은 총 92권. 이 중 상위 10권을 추려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등 지음·이민아 옮김·396쪽·디플롯각계 전문가들은 올해 ‘최고의 책’으로 소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2권을 택했다. 각 4표로 공동 1위.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혐오를 넘어 연대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집단 무의식이 책 선정에도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진화인류학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육체, 정신적 힘이 아닌 친화력이 인류 생존과 진화의 열쇠라고 강조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자신들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셌던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살아남은 게 대표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100명 이상이 함께 모여 산 호모사피엔스와 달리 네안데르탈인은 기껏해야 10∼15명이 한 무리를 이뤄 수적 열세를 보였다. 이는 호모사피엔스가 같은 집단의 동료들과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 사이가 막힌 지금, 소통과 연대의 능력은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추천한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북방고고학)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논리와 이성 대신 감성과 친화력으로 향한다. 이 책은 나의 ‘논리’가 아닌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평했다. “최악의 상황에도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꿈꾼다. 이 책은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 기꺼이 다정한 마음 품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북돋운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평도 있었다.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지음·332쪽·문학동네 2016년 영국 맨부커상 수상 작가이자 2019년 인촌상 수상자인 한강이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연대와 사랑을 말한다. 주인공 경하가 제주도에서 태어난 친구를 환영처럼 만나 1948년 4·3사건의 고통을 공유하는 이야기다. 한강은 올 9월 출간 후 인터뷰에서 “사랑이든 애도든 끝까지 끌어안고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제목에 담았다”고 말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소설 속 세 여성은 역사 속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을 잊지 말자고 말한다. ‘내가 올해 잊고 산 것은 무엇일까. 작별할 수 없는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는 평을 남겼다. 작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악몽에 시달리는 경하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실제로 한강은 5·18 소재의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2014년)를 쓰고 악몽을 꿨다고 밝혔다. 비극적 현대사가 남긴 상처는 작가 자신을 뛰어넘어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어둠에 묻힌 상처를 기억하는 자는 폭력에 길들지 않는다. 그들처럼 우리 또한 한순간 어이없이 거기 누울 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장은수 출판평론가)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 지음·노정태 옮김·664쪽·부키 “지구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뒤엎는다. 책을 읽고 나면 환경 문제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환경운동에 30년간 투신한 저자가 기술과 경제발전이 오히려 환경을 지켜줄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환경운동이 오히려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것. 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은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자연보호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집는다. 환경을 위한다고 생각한 재생에너지와 생활 속 실천이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평했다. ■일본의 굴레태가트 머피 지음·윤영수 등 옮김·660쪽·글항아리“일본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이 책을 읽으며 해체되고 재조립됐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40년간 일본에서 산 미국인 저자가 외부자로서의 시각과 내부자로서의 이해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며 일본 사회를 연구한다. 굴욕적일 만큼 친절한 서비스, 불평할 만한 일이 생겨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본인의 모습 뒤에 숨겨진 참모습을 깊게 파고들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포괄적이면서도 전문적인 내용의 충실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너무도 유사해 책 속에서 우리 사회의 거울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앤드루 H 놀 지음·이한음 옮김·304쪽·다산사이언스“지구 역사를 짧고 쉽게 압축해 설명하는 훌륭한 입문서다. 현재의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남긴다.”(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미국 하버드대 자연사 교수가 장구한 지구 역사를 보기 쉽게 압축한 교양 과학서. 최신 연구 성과를 담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개념을 유머로 쉽게 풀어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구과학자들이 어떻게 조사, 연구하는지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올해 이보다 읽기 쉬운 자연사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지음·344쪽·이데아“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능력주의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 정치, 경제, 젠더 등 양극화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 능력주의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파고든 사회과학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시험에 합격하지 않거나 일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 보상을 받는 데 대해 유독 분개한다.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심층 보고서다. ■전국축제자랑김혼비 등 지음·320쪽·민음사충남 예산부터 경남 산청까지 전국 방방곡곡 지역축제들의 이모저모를 한 권에 담았다. “아무도 관심 없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지자체 축제들임에도 하루 빨리 일상이 회복돼 가보고 싶게 만든다.”(조재은 양철북 대표) 전작들을 통해 독자층이 탄탄한 저자들인 만큼 말맛이 좋다. 황혜숙 창비 출판1본부장은 “쏟아져 나오는 에세이 중 절반 이상 읽지 못하는 책이 적지 않은데 이 책만큼 공들여 낄낄대며 읽은 경험이 드물다”고 했다. 현장을 답사한 뒤 쓴 여행기라 생생하다. “유쾌하고 정감 넘치며, 때로 우악스럽기도 했던 축제의 현장으로 우리를 옮겨 놓는 책”(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이라는 평이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52쪽·책읽는곰이례적으로 그림책이 선정됐다. 캐나다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말을 더듬는 아이가 쉼 없이 흐르는 강물과 마주하며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다. 선정위원들은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고 평했다. “타인과의 다름이 틀림이나 나쁨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함이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는 책”(최은영 소설가)이기 때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나는 무엇에 갇혀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자신만의 숨겨진 단단한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 호평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임지현 지음·640쪽·휴머니스트거의 모든 민족들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규정하는 시대다. 예컨대 폴란드인들이 2차대전 당시 예드바브네에서 벌어진 자국민들의 유대인 학살을 외면한 채 자신들이 나치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식. 박윤우 부키 대표는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하는 피해자 간 기억의 전쟁은 21세기 민족주의가 어떤 리스크를 짊어지게 할지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론과 실례를 잘 버무린 책을 요즘 만나기 힘든 탓에 더 귀한 책”(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이라는 평이다.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지음·268쪽·나무옆의자서울 용산구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을 무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희로애락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았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남자가 70대 할머니의 지갑을 주워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남자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뛴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애환을 다정한 시선으로 다룬 작품이다. 팬데믹으로 힘겨운 나날을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일상… 아픔이 새로운 길이 되길팬데믹 시대, 마음을 위로하는 한 권의 책 장기화된 팬데믹에 대처할 혜안과 위로를 책에서 구할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는 감염병 전문의를 포함한 전문가들로부터 유용한 책들을 별도로 추천받았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병원의 밥’(세미콜론)을 추천했다. 흉부외과 의사인 저자가 의사와 환자들이 먹는 밥을 소재로 긴박한 의료현장을 생생히 그린 에세이다. 이 이사장은 “미음에서 죽으로, 죽에서 밥으로 회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팬데믹 속에서 고통 받는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고 평했다. ‘바이러스를 이기는 새로운 습관’(프리뷰)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코로나 시대의 대처법을 담았다. 미국 의학전문기자인 저자는 감염병에 대해 불필요한 공포를 가져오는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방법과 운동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당분과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식습관을 전한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식이, 운동, 수면 등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담았다”고 말했다. 인간 본성의 따뜻함을 통해 팬데믹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책도 선정됐다. 네덜란드 언론인이 쓴 ‘휴먼카인드’(인플루엔셜)는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건 오해라고 주장하며 타이타닉 침몰, 9·11테러 등 과거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서로 도운 증거들을 제시한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저자의 믿음을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뒷받침한 이 책은 독자에게 희망을 준다”고 평했다. 팬데믹 이후 바뀔 일상공간에 대한 예측을 담은 책도 포함됐다. 건축가 유현준이 쓴 ‘공간의 미래’(을유문화사)는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등으로 공간의 의미가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나 회사로 나가지 않고도 업무를 볼 수 있는 ‘거점 오피스’ 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책은 “미래 우리 사회가 시민 다수를 행복하게 할 공간을 어떻게 기획해야 할 것인지 새로운 담론거리를 제시했다”(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평을 받았다.선정위원(35명·가나다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민정(난다 대표) 김영민(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정재(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설혜심(연세대 사학과 교수) 심채경(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병현(교보문고 대표)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왕준(명지병원 이사장) 이종화(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임형주(팝페라 테너) 장강명(소설가) 장은수(출판평론가) 정기석(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조재은(양철북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최은영(소설가) 표정훈(출판평론가)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황서현(휴머니스트 주간) 황혜숙(창비 출판1본부장)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동아일보는 16일 ‘2021년 동아 황금대상’ 수상자 8명을 선정했다. 지역별로 공헌도가 높은 우수 독자센터 사장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자는 송은임(서울 원효), 이성수(서울 잠원), 이형걸(인천 간석), 최광비(경기 하남), 최재윤(경북 포항), 이승곤(울산 남울산), 김건호(강원 신원주), 서대진(광주 봉선) 독자센터 사장이다. 스포츠동아는 올해 스포츠동아 대상 수상자로 김정률(서울 길동명일), 김석환(경기 원미도당), 서명길(부산 전포부전), 홍성욱(충남 천안북부) 독자센터 사장을 선정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고려청자 등 유물 200여 점이 나왔다. 아직 선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닻, 노 등이 확인돼 물건을 실은 옛 선박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에서 고려청자 125점,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등이 발견됐다고 14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해 말 해당 수역에 문화재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올 1, 5, 6월 세 차례에 걸쳐 해저면 탐사를 실시했다. 출수된 도자기들의 양식을 조사한 결과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로 분석됐다. 목재 유물을 대상으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정황상 인근 해역에 옛 난파선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청자 중 그릇과 접시 81점이 서로 포개져 선박에 싣는 형태로 확인됐고, 배에서 사용하는 목재 닻과 노, 닻돌 등이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123년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선유도에 고려에 온 외국 사신이 묵었던 군산정(群山亭)이 있었다. 선유도는 고려시대에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선박의 중간 기착지였다. 연구소는 “내년에 정밀 발굴에 들어가 선체를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라. 정신이 보존돼 멸망치 아니하면 형상은 자연히 다시 살아남을지라.”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박은식(1859∼1925)이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경술국치 직후인 1911년까지 한국 근대사를 다룬 ‘한국통사(韓國痛史·사진)’ 서문 일부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고 믿었던 그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던 1915년 한문본으로 이 책을 냈다. 초판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1917년 미국 하와이에서 발행된 이 책의 한글본이 100여 년이 지나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동아시아도서관에서 발견됐다. 14일 발간된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유유)은 워싱턴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20여 년을 일한 저자 이효경 씨(50)가 도서관 소장 한국 자료 중 1900∼1945년 출간된 책 44권을 소개한 책이다. 동아시아도서관은 북미 지역 14개 한국학 도서관 중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약 20만 종) 다음으로 많은 한국 자료를 소장(약 15만 종)하고 있다. 44권 중 5권은 출판의 자유를 박탈한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를 피해 미국에서 발행된 책이다. 36권은 한국에서, 3권은 일본에서 각각 발행됐다. 이 씨는 “오랜 기간 도서관 서고에서 누군가 찾아 주기만을 묵묵히 기다린 책들이 드디어 독자를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도서관은 독립운동가였지만 친일파로 돌아선 윤치호(1866∼1945)의 ‘우순소리’도 소장하고 있다. 제목이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인 이 책은 윤치호가 71편의 우화를 재창작해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우화를 전하며 “백성을 죽여 가며 재산을 한 번에 빼앗다가 필경 재물과 백성과 나라를 다 잃어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며 국민을 수탈하는 일제와 매국노를 비판했다. 이 책은 1908년 국내에 출간됐다 금서 처분을 받았고, 1910년 하와이에서 재출간됐다. 이 씨는 “일제 무단통치기 해외에서 출간된 책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 문화의 명맥을 잇고자 안간힘을 쓴 증거”라며 “광복 이후에 나온 책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고려청자 등 유물 200여 점이 나왔다. 아직 선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닻, 노 등이 확인돼 물건을 실은 옛 선박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에서 고려청자 125점,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등이 발견됐다고 14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해 말 해당 수역에 문화재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올 1, 5, 6월 세 차례에 걸쳐 해저면 탐사를 실시했다. 출수된 도자기들의 양식을 조사한 결과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로 분석됐다. 목재 유물을 대상으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정황상 인근 해역에 옛 난파선이 묻혀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청자 중 그릇과 접시 81점이 서로 포개져 선박에 싣는 형태로 확인됐고, 배에서 사용하는 목재 닻과 노, 닻돌 등이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선유도에 고려에 온 외국사신이 묵었던 군산정(群山亭)이 있었다. 선유도는 고려시대에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선박의 중간 기착지였다. 연구소는 “내년에 정밀발굴에 들어가 선체를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미래가 궁금할 때 점집을 찾는 이들이 있다. 실패의 두려움, 미래의 불확실성을 미신에라도 기대어 해소하려는 시도다.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일제강점기 신문기사와 경찰·재판 기록을 들춰 당시 대중 사이에 퍼져 있던 미신의 실태를 살펴본다. 절망적인 식민 지배기 사람들이 의지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극단의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 미신을 만든다고 말한다. 1935년 7월 광주에서는 가뭄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마을 여성들이 무등산 정상에 올라가 단체로 소변을 보는 독특한 ‘기우제’를 지냈다. 대개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산 정상을 방뇨로 더럽히면 오염물을 씻어내기 위한 신성한 힘이 작동해 비가 내릴 거라고 믿은 것. 미신은 절망의 감정과 결합돼 더 강해졌다. 당시 치료법이 없던 나병은 ‘걸리면 끝’이라는 공포감을 안겨줬다. 이에 인육을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미신이 퍼졌다. 실제로 1930년 3월 10일 전남 나주군에서 한 여자가 나병을 앓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왼쪽 허벅지살 450g을 잘라 구워 먹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망국에 이어 전염병까지 확산된 20세기 초 미신은 조직화된 종교 형태로 확대됐다. 1900년경 만들어진 백백교가 대표적인 사례. 백백교는 동학사상과 조선시대 민간 예언서 정감록을 버무린 사이비 종교였다. 백백교 교주와 간부들은 세상은 망하지만 신도들은 살아남을 거라고 현혹한 뒤 재산을 빼앗고 성폭행을 일삼았다. 이들은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신도 346명을 살해했다. 이 같은 미신들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미신이 조선인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 총독부가 미신 퇴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 믿음을 지우고 탄생한 세계인지 알기 바란다”고 썼다. 전근대 시대의 유물로 간주돼 온 미신을 통해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복원한 저자의 시도가 신선하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피아니스트 이혁(21·사진)이 프랑스 파리에서 7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17회 아니마토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혁의 매니지먼트사 에투알클래식은 이혁이 아니마토 콩쿠르 우승과 마주르카 특별상을 차지했다고 10일 밝혔다. 아니마토 콩쿠르는 프랑스 예술법인 아니마토협회가 저명한 피아니스트와 교육자에게 추천받은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주요 피아노 대회 입상자들을 모아 독주회 방식으로 개최한다. 이를 통해 촉망받는 신인 연주자들을 프랑스 음악계에 소개해왔다. 이 씨는 우승 상금 3만 유로(약 4000만 원)와 마주르카 특별상금 2000유로(약 270만 원)를 받는다. 프랑스 주요 공연장 기획공연에도 초청된다. 과제곡이 쇼팽 곡만으로 지정된 이번 콩쿠르에서 이혁은 환상곡 Op.49를 연주해 우승했다. 이혁은 곡에 대해 독자적인 해석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1명이 준결승에 올랐고 6명이 결승에 진출했다. 이혁은 올해 10월 열린 제18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결승에 오르기도 했다. 아니마토 콩쿠르의 역대 한국인 수상자로는 김태형, 정한빈이 있다. 올해 쇼팽 콩쿠르 우승자 브루스 류를 비롯해 데니스 마추예프, 올가 케른, 알렉산더 코브린 등 세계 주요 콩쿠르 우승자들도 이 대회에서 수상했다. 이혁은 한국에서 이양숙 선화음악영재아카데미 원장,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를 사사했다. 2014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현재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블라디미르 옵친니코프 교수에게 지도받고 있다. 2012년 모스크바 쇼팽 청소년 콩쿠르, 2016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했고, 2018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 3위에 입상했다. 이혁은 내년 3월 1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솔로 리사이틀을 열 예정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과서로 서구에 성경이 있다면 동양에는 사서(四書)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맹자의 꿈’(21세기북스)을 펴낸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56·유학대학장·사진)는 “한자가 가득한 사서를 쉽게 전달하고자 시작한 저술이 벌써 10년이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 교수는 2011년 출간돼 20만 부가 팔린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을 시작으로 중용, 대학 등 동양고전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들을 지난 10년간 내놓았다. 동양고전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신간으로 ‘내 인생의 사서’ 시리즈를 완간한 그를 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를 살아간 맹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예부터 동아시아의 ‘제왕학 교과서’로 꼽힌다. 신 교수는 7편의 맹자에서 77개의 표제어를 뽑아 그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신 교수가 꼽은 맹자 사상의 핵심은 인의(仁義). 전쟁 같은 폭력적 방식이 아니라 인심을 베풀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부국강병을 추구한 양(梁)나라 혜왕을 만난 맹자는 “마구간에 살찐 말이 있지만 백성들은 먹지 못해 굶주린다.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라고 일침한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정치가 아니라 백성이 낸 세금으로 일군 성과를 함께 즐기는 이른바 여민해락(與民偕樂)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많은 이에게 조언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맹자는 “잘 자라는 생물도 하루만 햇볕을 쪼이고 열흘 동안 추우면 잘 자라지 못한다(일포십한·一暴十寒)”고 토로한다. 좋은 조언을 해도 이후 신하들이 반대하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였다. 맹자는 모름지기 지도자는 “주변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가 세운 주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왕학의 고전을 다룬 이번 신간이 마침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기에 나와 더 눈길을 끈다. 맹자를 연구하는 전문학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지도자상은 무얼까. 신 교수는 “자신의 비전만 제시할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여민해락으로 나아가는 길인지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가 빼어난 지도자”라고 했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마치며 동양철학자로서 책임을 다한 것 같아 홀가분하다”면서도 “사서가 끝났으니 오경(五經)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됐다”고 덧붙였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과서로 서구에 성경이 있다면, 동양에선 사서(四書)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자가 가득한 사서를 쉽게 전달하고자 시작했던 게 10년이 됐습니다.” 2011년 출간돼 2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을 시작으로 10년 간 사서에 해당하는 논어와 중용, 대학 등 고전 명저들을 쉽게 풀어 소개해 온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56·유학대학 학장)가 최근 ‘맹자의 꿈’(21세기북스)을 출간했다. 이번 책으로 ‘내 인생의 사서’ 시리즈를 완간한 신 교수를 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실에서 만났다. ‘맹자’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제왕학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기원전 403년부터 200여 년간 각지의 제후들이 패권을 차지하고자 전쟁한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기원전 372~기원전 289)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줄 지도자를 찾아다녔다. 지도자들과 나눈 대화와 맹자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 바로 ‘맹자’다. 신 교수는 책에서 7편의 ‘맹자’ 각 편에서 11개씩 총 77개의 표제어를 뽑아 맹자 사상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맹자 사상의 핵심은 인의(仁義)다. 전쟁과 같은 억압적 방식이 아니라 인심을 베풀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양(梁)나라 혜왕을 만난 맹자는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지만 백성들은 먹지 못해 굶주린다. 이는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셈이다’라고 일침한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 지도자냐고 따졌던 것. 맹자는 백성의 고혈을 짜는 정치가 아니라 백성이 낸 세금으로 일군 성과를 백성과 함께 즐기는(與民偕樂·여민해락)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지도자가 펼쳐야 할 정책에 대해 조언과 상담을 아끼지 않았던 맹자였지만, 그 성과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맹자는 이에 ‘잘 자라는 생물도 하루 햇볕 쪼이고 열흘 추우면 잘 자라지 못한다’(一暴十寒·일포십한)고 결론짓는다. 지도자를 식물에 비유해 자신이 하루 조언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신하들이 가당치 않는 말이라고 한다면 그 조언은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 이에 맹자는 주변 상황이나 남의 의견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관을 세우고 그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先立其大·선립기대)고 말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왕학을 다룬 신간이 출간됐다. 신 교수가 생각하는 올바른 지도자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비전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여민해락으로 나아가는 길인지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빼어난 지도자”라고 말했다. 지도자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왜 그 비전이 실현가능한지 소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을 쉽게 전달하는 그의 여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 교수는 “이번 시리즈를 마치며 동양철학자로서 책임을 다한 것 같아 홀가분하다”면서도 “사서가 끝났으니 오경(五經)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15주년에 인터뷰를 또 할 수 있다면, 그땐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남북 관계가 개선돼 프로그램 제목이 ‘이제 만나러 왔어요’가 됐으면 좋겠어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의 MC 남희석(50)은 방송 10주년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남 씨는 첫 방송인 2011년 12월 4일부터 쭉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 일요일 오후 11시에 방송되는 이만갑은 종합편성채널의 최장수 예능이자 탈북민과 함께하는 방송의 원조다.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에서 6일 남 씨와 김군래 PD(45), 장주연 작가(46)를 만났다. 이만갑은 출연한 탈북민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려왔다. 지금까지 600여 명의 탈북민이 출연했다. 탈북민에게 직접 북한 이야기를 듣고, 전문가의 관점에서 남북 관계를 분석해 재미와 감동, 교훈을 두루 갖춘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만갑은 올해 7월 25일 전국 3.2%(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올리는 등 2%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해외 여러 언론사들이 북한 관련 보도를 할 때 이만갑의 내용을 분석해 반영하거나 출연진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만갑의 장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김 PD는 “10년간 자리를 지켜온 남 MC와 장 작가 덕분”이라고 답했다. 남 씨는 방송 후에도 친오빠처럼 탈북민 출연진의 개인적인 고민을 들어주고 필요할 경우 때론 따끔하게 말하기도 한다. 장 작가는 방송 초창기부터 발품을 팔아 탈북민을 섭외하며 그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가족처럼 탈북민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에 탈북민도 믿고 출연한다는 것. 남 씨는 “난 대한민국에서 여동생이 제일 많은 사람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10년간 이어온 프로그램은 제작진에게 성장의 기회가 됐다. 장 작가는 기억에 남는 회차로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꼽았다. 당시 일부 출연진이 하노이를 찾았다. 신은하 씨(34)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차가 지나가자 “저희 고향 좀 가게 해주세요”라고 외쳤다. 장 작가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그때 탈북민의 진심을 전하는 방송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만갑은 올해 6월 13일 방송부터 형식을 바꿨다. 기존에는 탈북민의 북한 생활 이야기와 남한 적응기 등을 주로 다뤘는데 이제는 북한의 대남공작,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북한 관련 역사적 사건들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탈북민이 특정 사건에 대한 북한 내 분위기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게 되자 일부 시청자들은 기존 형식이 그립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개편과 함께 프로그램을 맡게 된 김 PD는 “10년을 앞둔 프로그램을 맡아 부담감이 컸다”면서도 “이만갑이 지금까지 탈북민과 함께 울고 웃었다면, 이제는 남북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여전히 탈북민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이만갑의 변하지 않는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탈북민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고,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남 씨) “어느 시점에서는 또 개편될 수 있겠죠. 언제든 이만갑은 항상 탈북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김 PD) “이런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요. 앞으로도 따뜻한 시선으로 탈북민의 이야기를 전할게요.”(장 작가)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지옥’부터 ‘Dr. 브레인’ ‘유미의 세포들’ ‘D.P.’에 이르기까지 웹툰 원작의 국내 드라마들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공략할 원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이들의 인기 비결을 알아봤다. 》K콘텐츠의 힘 ‘K웹툰’프랑스,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필리핀, 폴란드, 태국, 베트남, 대만…. 지난달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이 1위를 차지한 36개국(지난달 23일 기준) 중 일부다. 지옥은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 지난달 28일까지 총 시청 시간만 1억1100만 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옥은 10년 이상 회자될 만큼 진심으로 예외적인 드라마”라고 극찬했다. 미국 CNN은 “올해 한국 드라마들은 끝내 준다. 지옥은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고 호평했다. ‘지옥’의 세계적인 성공 요인 중 하나는 탄탄한 원작 웹툰이다. 2019∼2020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데, 드라마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직접 스토리를 짰다. 드라마의 서사가 대부분 웹툰에 바탕을 두고 있어 드라마 못지않게 웹툰의 작품성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웹툰을 만든 감독이 직접 연출한 만큼 웹툰의 기획의도와 주제의식이 드라마에 잘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세계적으로 유행한 웹툰 원작 드라마는 지옥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4일 공개된 드라마 ‘Dr.브레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를 통해 100개국 이상에 선보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충격적 반전과 더불어 고급스러우면서도 흡인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올 9월 티빙을 통해 공개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해외 플랫폼사와의 콘텐츠 유통 계약을 통해 유럽, 북미, 동남아시아 등 세계 160여 개국에 방영됐다. 올 8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국내에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태국, 베트남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그간 축적된 웹툰, 웹소설 기반의 지식재산권(IP)이 뛰어난 드라마로 재탄생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웹툰, 웹소설이 ‘원소스 멀티유스(OSMU)’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 맞물려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OTT와 함께 세계로웹툰 원작의 영상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게 최근 일은 아니다. 2014년 웹툰 원작의 tvN 드라마 ‘미생’이 최고 시청률 8.2%를 달성하면서 국내에 웹툰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카오TV ‘며느라기’(2020년)도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화제가 된 드라마다. 1, 2편을 합쳐 국내에서 관객 2700만 명 가까이를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2017년)도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최근 웹툰 원작 드라마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흥행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OTT의 성장세가 자리 잡고 있다.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플러스 등 세계 각국에 서비스되는 OTT를 통해 작품이 동시에 공개돼 해외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비즈니스팀 리더는 “과거에는 웹툰 원작 영상 작품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해외 제작사나 투자사와 협의하는 게 필수였지만 이제는 복수의 글로벌 OTT들이 있어 상황이 달라졌다”며 “국내에서 영상 작품을 제작한 뒤 곧바로 해외를 공략할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세계적 흥행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들의 성공은 웹툰의 세계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옥’의 원작 웹툰이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웹툰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 10개 언어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웹툰을 종이 만화책으로 만들 수 있는 판권이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 11개국으로 팔려 나가기도 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시청한 후 웹툰 등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전체의 42%에 달한다”며 “영상 콘텐츠의 인기는 연계된 콘텐츠 산업에까지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왜 웹툰 원작인가드라마 시장에서 웹툰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얼까. 무엇보다 웹툰의 어마어마한 성장세가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교보증권이 올 2월 발간한 ‘웹툰이 곧 글로벌 흥행 IP’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210억 원에 불과했던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원으로 급성장했다. 6년 만에 50배 가까이 성장한 덕에 많은 콘텐츠 창작자가 웹툰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그만큼 탄탄한 이야기가 웹툰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한송이 카카오웹툰스튜디오 센터장은 “웹툰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돈을 주고 웹툰을 봤다는 건 작품성과 흥행성이 보장된 작품이라는 뜻”이라며 “인기 웹툰이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면 원작 팬을 시청자로 확보할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웹툰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드라마 시청자를 만족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예를 들어 ‘유미의 세포들’의 원작 웹툰은 주인공 유미의 감정을 세포들로 표현하는 참신한 발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제작진도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에 도전해 호평을 받았다. 황혜정 티빙 콘텐츠사업국장은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세포의 모습을 실사와 결합해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했다”며 “처음 시도하는 형식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게 성공 원인”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상 제작 기술이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올 2월 공개된 웹툰 원작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처럼 만화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2092년 우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컴퓨터그래픽(CG) 역량을 확보했다는 것.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국내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제작비와 인력이 확충되고 CG 수준도 향상됐다”며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대작에 밀리지 않을 정도의 영상 수준 덕에 해외 시청자들도 한국 영상 작품에 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웹툰이 지닌 시의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오늘날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희윤 리더는 “우리가 지금 고민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가장 잘 반영한 콘텐츠가 웹툰”이라며 “트렌드가 잘 반영돼 있어 웹툰이 영상 작품의 원작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 IP 전쟁에 웹소설도 가세 웹툰 원작의 영상 작품이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콘텐츠 업계에서는 웹툰의 IP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드라마의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다. 웹툰 IP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드라마나 영화 제작사들. 스튜디오드래곤은 올 3월 웹툰 스튜디오 와이랩과 협력계약을 체결했다. 와이랩이 보유한 웹툰 IP를 이용할 수 있는 우선 협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 스튜디오드래곤은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발굴하기 위해 콘텐츠전략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기혁 스튜디오드래곤 사업전략담당 및 기획개발 담당은 “내년에 공개되는 웹툰 원작 드라마 ‘아일랜드’도 다양한 웹툰 IP를 발굴하려는 노력의 성과”라며 “원작 웹툰의 매력을 살리면서 영상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야 영상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영상화에 나서기도 한다. 네이버웹툰은 자회사인 스튜디오N을 통해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고르고, 다른 영상 제작사에 이를 소개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자체 웹툰 플랫폼인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작품들을 카카오TV를 통해 영상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웹소설도 영상화에 적합한 IP로 주목받고 있다. 웹툰만큼 참신하고 작품성이 탄탄한 웹소설이 잇달아 발굴되고 있기 때문.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커질 만큼 이야기꾼들이 웹소설에 몰리고 있다. 글로만 구성된 웹소설은 그림까지 그려야 하는 웹툰보다 제작 속도가 평균 20배 정도 빠른 만큼 시의성을 갖춘 작품이 많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시를 인수한 데 이어 네이버웹툰이 세계 1위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사들이며 웹소설 IP 사냥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올 4월 공개된 웹소설 원작 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는 아마존 프라임 저팬 등 해외 OTT를 통해 세계 190개국에 소개됐다. 누적 조회수 1억5000만 회를 달성한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 역시 영상화가 진행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웹소설 창작 전공)는 “웹툰이 영상 작품으로 많이 만들어지면서 이미 IP를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 산업 기반이 갖춰진 상태”라며 “최근 웹소설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하고 있어 영상화를 통한 성공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갓 만든 음식이 집까지 배달된다. 오후 9시에 택배를 주문해도 다음 날 문 앞에 물건이 와 있다. 주문할 때 도착지 주소만 제대로 적는다면 말이다. 주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택시를 타는 것도 힘들어진다. 목적지를 제대로 얘기할 수 없어서다. 택배 주문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주소는 이처럼 우리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이자 변호사인 저자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탐구했다. 주소에 얽힌 역사를 들여다보면 주소가 행정적 목적뿐 아니라 권력 작용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국가가 세금을 매기고 치안을 유지하며 범죄자를 찾아 투옥하기 위해 주소를 만든 게 대표적이다. 영국 런던에서는 중세시대부터 근처 나무의 종류나 강, 건물 이름 등에서 착안해 도로명을 지었다. 런던에 ‘처치 스트리트’나 ‘스테이션 로드’ 같은 도로 이름이 흔한 이유다. 주변 지형을 이용하다 보니 주소 속에는 자연스레 지역 역사가 녹아 있다. 1310년 영국은 공식적으로 매춘부들을 도시 성곽 밖으로 추방했다. 현재 영국 슈루즈베리 지역에는 그로프 레인(Grope Lane)이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다. 그로프는 몸을 더듬는다는 뜻으로, 매매춘이 이뤄진 지역에 이런 도로명이 붙었다. 특히 도시 한복판이나 대형 시장 근처에 이런 이름의 거리가 많았다. 정부가 금지했지만 암암리에 도시 한가운데에서 매매춘이 행해진 사실을 주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주소는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13세기부터 650여 년간 오스트리아 왕실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18세기 프로이센, 영국, 포르투갈 등의 도전을 받았다. 당시 왕가를 이끈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는 현 폴란드 영토인 슐레지엔 땅을 숙적 프로이센으로부터 되찾고자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전장에 나갈 젊은 남성을 징집했지만 봉건지주들이 힘세고 성실한 농노들을 숨기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테레지아는 모든 가구에 번호를 매겨 거주자 명단을 작성하는 묘안을 낸다. 그 결과 110만이라는 총 가구 수와 더불어 700만 명의 전투 가능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는 누구나 주소를 갖는 게 당연한 세상 같지만 21세기에도 주소가 없는 이들이 있다. 인도 콜카타의 오랜 빈민촌인 체틀라 주민들은 주소가 없어 은행 계좌를 못 만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계좌가 없으면 저축을 할 수 없고 대출도 못 받는다. 심지어 신원증명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다. 정부의 각종 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주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빈민촌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다. 그런데 지역 사회복지사의 ‘주소 만들어주기’ 운동을 계기로 이들도 주소를 갖게 됐다. 이후 이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소속감을 갖게 됐다. 주소를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됐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시민으로서 정체성도 생긴 것이다. 동시에 세금을 납부하며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됐다. 저자는 주소를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짓는다. 특정 지역이 변화해온 역사가 주소에 담겼고, 그곳에 사는 이들의 성격을 규정해서다. 때로는 주소가 집값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책 독자들은 책장을 덮는 순간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몹시 궁금해질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