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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만 해도 한반도 곳곳을 주름잡던 호랑이는 이제 ‘해님 달님’ 같은 전래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남은 호랑이는 이제 800여 마리뿐. 그러나 그마저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표범은 약 150마리, 코뿔소는 고작 50마리가량 남았다. 책에는 이러한 생물다양성 위기에 맞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모색해 온 저자의 20년 여정이 담겼다. 명칭마저 생소한 ‘보전생물학자’인 저자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으로서 인도네시아, 라오스, 러시아 등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멸종위기종을 연구하고 있다. 산양, 삵, 표범 등 여러 포유류를 아우른다. 학부생 시절까지도 그의 꿈은 암을 연구하는 생명과학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찾은 동물원에서 표범에게 한눈에 반했고, “호랑이가 멸종한 한반도 현실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내에 전례조차 없던 보전생물학자의 길이 그렇게 시작됐다. 현장에서 만난 것은 낯선 자연만이 아니었다. 먹이와 서식지를 두고 벌어지는 인간과 동물 간 충돌을 곳곳에서 목격한다. 라오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귀한 자산인 소를 호랑이 보호구역 안에 방목하고 있었다. 소가 농작물을 해칠 수 있어 집 근처로 데려오지 않는 것이다. 호랑이를 보호하는 제도에는 당연히 반감을 보였다. 보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주민과 정치권, 그 과정에서 겪은 고독과 좌절이 매 순간 저자를 시험했다. 동료들 사이에선 “우리는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자조적 농담이 자주 오간다. 그러나 저자는 “아무리 질 것 같은 싸움이라도 쉽게 포기하고 싶진 않다”며 다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자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보전과 복원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방법을 찾는 모습이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어느 공사장 옆, 손때 묻은 공책 148권이 버려져 있다. 슬쩍 들어 펼쳐 보니 누군가가 빼곡히 쓴 일기장들이다. 낯선 이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이 공책들을 독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스튜어트: 거꾸로 가는 인생’ 등을 펴낸 영국 전기 작가인 저자는 슬쩍 일기를 훔쳐보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하루 평균 1시간 23분씩, 50년간 쓴 것으로 추정되는 방대한 일기장을 샅샅이 탐독하면서 이름도 성별도 모르는 일기장의 주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무려 5년 동안. 일기 속 실마리를 따라 주인을 밝혀내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주인이 생리통에 관해 쓴 대목에서 성별을 짐작하고, 1958년 한 공공도서관에서 기간제 사서로 일했던 기록을 발견한 뒤에는 그 도서관을 찾아가 과거 직원 목록을 확인한다. 일기란 “앞뒤 맥락도 없이 감정에만 치우쳐 기록되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로 관점을 흐려놓기에” 우여곡절이 이어진다. 필적학자까지 찾아가 일기 주인의 성격을 추측한다. 책은 위트 넘치는 문체 덕에 술술 읽힌다. 일기장에 단어 총 15만 개가 담긴 것을 두고 “이삿짐 인부라도 그보다 꽉 채워 넣는 재주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기 주인의 필력도 만만찮다. 어릴 적 집 마당 풍경을 회상하며 “허공에 걸린 나뭇잎의 가뿐함을 사랑한다. 혹은 나무의 잔가지나 줄기 끝에서 까치발을 뗀 꽃송이처럼…”이라고 묘사했다. 저자는 집요한 추적 끝에 마침내 일기의 주인을 찾아낸다. 그는 살면서 특출난 업적을 내지 못하고 평범한 삶을 산 사람으로 보인다. 종종 극심한 우울에 빠져, 글을 씀으로써 살고자 하는 의지를 되새긴 것으로도 추정된다. 저자는 일기의 주인이 이처럼 대단한 비밀도 성공 서사도 없는 범인(凡人)이라는 사실을 오히려 소중히 여기면서 “정직하고 별나며 존경할 만한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책을 덮을 즘엔 은은한 행복감이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엔 쓰레기통에 묻혀 있기에 마땅한 인생은 결코 없기 때문이 아닐까.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임채청)가 22일 “수해 이웃 성금으로 한국세무사회로부터 2억4000만 원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한국세무사회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실시한 모금을 통해 성금을 마련했다. 구재이 한국세무사회장(사진 왼쪽)은 “예기치 못한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이웃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회원 1700여 명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희망브리지 측은 “향후 이재민 세무 상담 등으로 공공 활동을 확대해 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세무사회는 올해 3월 대형 산불 재난 당시에도 회원들이 모은 성금 2억 원을 희망브리지에 전달한 바 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1961년 전국 언론사와 사회단체가 설립한 기관으로 재난 긴급 구호, 성금 모금과 배분 등을 수행해 오고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00여 년 전만 해도 한반도 곳곳을 주름잡던 호랑이는 이제 ‘해님 달님’ 같은 전래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남은 호랑이는 이제 800여 마리뿐. 그러나 그마저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표범은 약 150마리, 코뿔소는 고작 50마리가량 남았다.책에는 이러한 생물다양성 위기에 맞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모색해 온 저자의 20년 여정이 담겼다. 명칭마저 생소한 ‘보전생물학자’인 저자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으로서 인도네시아, 라오스, 러시아 등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멸종위기종을 연구하고 있다. 산양, 삵, 표범 등 여러 포유류를 아우른다.학부생 시절까지도 그의 꿈은 암을 연구하는 생명과학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찾은 동물원에서 표범에게 한눈에 반했고, “호랑이가 멸종한 한반도 현실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내에 전례조차 없던 보전생물학자의 길이 그렇게 시작됐다.현장에서 만난 것은 낯선 자연만이 아니었다. 먹이와 서식지를 두고 벌어지는 인간과 동물 간 충돌을 곳곳에서 목격한다. 라오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귀한 자산인 소를 호랑이 보호구역 안에 방목하고 있었다. 소가 농작물을 해칠 수 있어 집 근처로 데려오지 않는 것이다. 호랑이를 보호하는 제도에는 당연히 반감을 보였다. 보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주민과 정치권, 그 과정에서 겪은 고독과 좌절이 매 순간 저자를 시험했다. 동료들 사이에선 “우리는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자조적 농담이 자주 오간다. 그러나 저자는 “아무리 질 것 같은 싸움이라도 쉽게 포기하고 싶진 않다”며 다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자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보전과 복원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방법을 찾는 모습이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1층에 있는 ‘어린이박물관’. 아직 여름방학이 끝나지 않은 학교들이 있어서인지 평일인데도 아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어린이들은 시냇물 소리가 나는 스피커에 귀를 직접 대보고, 조선시대 등불이 놓인 진열대 앞에 신기한 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요즘 평일에도 예약 마감이 이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보다 2년 앞선 2003년 개관해, 공공 어린이박물관 중엔 가장 역사가 깊다.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이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부터 22년 동안 가족 나들이의 ‘핫플’로 사랑받아 온 곳이다.이은미 학예연구관(59)과 최명림 학예연구관(53)은 이런 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이 연구관은 1996년부터 30년째, 최 연구관은 12년째 어린이 전시·교육 업무를 맡고 있다. 연구관들에 따르면 어린이박물관 전시는 오감을 자극하는 이야기 형식에 따라 민속과 역사를 접하도록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현재 열리고 있는 ‘달토끼와 산토끼’도 아이들이 신비한 약초를 찾아 떠난 두 토끼의 여정을 좇으며 조선시대 부채 장식 ‘선추’ 등을 익힌다. 이 연구관은 “실제로 체험하며 지식을 얻는 ‘핸즈온(hands-on)’뿐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마인즈온(minds-on)’, 다른 관람객과 교류하며 배우는 ‘소셜온(social-on)’ 기능까지 담으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연구관들은 어린이 전시 준비는 마치 아이 돌보듯 끝이 없는 작업이라고 했다. 기획 단계부터 주제에 대한 아이들 의견을 취재하고, 전시장에 둘 동화책도 손수 쓴다. 박물관이 문을 닫은 뒤엔 카펫과 교구까지 직접 쓸고 닦을 정도로 정성을 쏟는다. 최 연구관은 “운영 비용도 만만찮다. 대형 인형이나 실물 모형 제작 업체가 예전보다 크게 줄어 요샌 부르는 게 값”이라며 “2주마다 전문 소독업체도 불러야 한다”고 했다. 요즘 두 연구관이 가진 고민 중 하나는 ‘연령대별 맞춤 전시’다. 나이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어린이박물관 등은 어린이를 영아와 4∼8세, 9세 이상 등으로 나눠서 각 발달 단계에 맞는 전시를 설계한다. 최 연구관은 “한국 어린이박물관들도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예산이나 공간 등 현실적 장벽이 높다”며 “민속박물관이 2031년 세종시로 옮겨갈 예정인데, 유아 전용 전시장 개설을 적극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어린이박물관 활동은 박물관 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쉽지 않은 지방 학교나 돌봄기관에서 이용 가능한 ‘다문화 꾸러미’ 사업이 대표적. 각 나라의 전통 복식과 악기, 보드게임 등이 담긴 상자를 대여해주는데, 몽골과 필리핀 등 10개국 꾸러미가 개발됐다. 지난해까지 13년 동안 체험 어린이 수는 약 120만 명에 이른다. 이 연구관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민속 전문가 등이 수개월씩 힘을 합쳐 꾸러미 하나를 만든다”며 “내년부터는 국가를 넓힌 ‘세계문화상자’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최근 국내에선 ‘노키즈존’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1918∼2013)는 “한 사회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의 영혼을 보여준다”고 했다. ‘박물관 엄마’를 자처하는 두 연구원도 “박물관이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토양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물관에선 ‘낙오자’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고령화 시대에 맞는 ‘어르신 박물관’도 고민해야 합니다. 영국, 일본에선 이미 경증 치매 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박물관들이 있어요. 우리도 서둘러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입니다.”(이 연구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미지의 고대 도시’로 불리는 튀르키예 ‘퀼테페-카네쉬 유적’(사진)을 한국과 튀르키예 양국이 함께 발굴 조사한다.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로마 시대까지 번성한 튀르키예 카이세리 인근 퀼테페-카네쉬 유적을 10월 2일까지 앙카라대와 공동으로 발굴 조사한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공동 발굴은 양국이 문화유산 분야에서 교류·협력하자는 취지로 2024년 국가유산청과 튀르키예 문화관광부가 체결한 양해각서(MOU)에 따른 것이다. 해당 지역은 뛰어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서아시아 지역에서 위력을 떨쳤던 히타이트 제국 문화의 발상지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발굴될 유적에서 지대가 높은 상부 도시엔 왕궁과 신전이, 아래쪽에는 상업지이자 거주지였던 ‘카룸’이 있다. 연구원 측은 “총면적 360만 ㎡ 가운데 지금까지 발굴된 지역이 3%에 불과하다”며 “이번 발굴 조사에선 상부 도시의 중심 궁전인 ‘와르샤마 궁전’ 일대를 살펴보고, 주요 유물은 3차원(3D) 스캔으로 기록·보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300여 년 전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거제 수정산성(巨濟 水晶山城·사진)’이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 예고됐다. 국가유산청은 19일 “해발 143m 높이 수정산의 정상부를 외세 침입에 대비해 둘러쌓은 성벽인 ‘거제 수정산성’을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거 ‘옥산성(玉山城)’ 등으로도 불렸던 수정산성의 전체 둘레는 약 450m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보수 및 개축됐다. 수정산성은 한반도 성곽 축조기술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처음 지은 부분으로 추정되는 성벽은 쌓은 방식이나 기법 등을 살펴볼 때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산청은 “당시 신라가 남해 지역으로 진출해 방어 체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과 그 시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성벽이 마지막으로 지어진 시기는 비석 ‘수정산성축성기(水晶山城築城記)’를 통해 조선 고종 대인 1873년경으로 확인된다. 당대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 조정의 지원도 없이 거제부사 송희승(宋熙昇)과 거제도민들의 힘으로 쌓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유산청은 “기록을 통해 축성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산성 중에서 가장 늦은 시기의 산성”이라고 전했다. 거제 수정산성은 지정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으로 최종 확정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300여 년 전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거제 수정산성(巨濟 水晶山城)’이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 예고됐다.국가유산청은 19일 “해발 143m 높이 수정산의 정상부를 외세 침입에 대비해 둘러쌓은 성벽인 ‘거제 수정산성’을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거 ‘옥산성(玉山城)’ 등으로도 불렸던 수정산성은 전체 둘레는 약 450m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보수 및 개축됐다.수정산성은 한반도 성곽 축조기술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처음 지은 부분로 추정되는 성벽은 쌓은 방식이나 기법 등을 살펴볼 때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산청은 “당시 신라가 남해 지역으로 진출해 방어 체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과 그 시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성벽이 마지막으로 지어진 시기는 비석 ‘수정산성축성기(水晶山城築城記)’를 통해 조선 고종 대인 1873년경으로 확인된다. 당대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 조정의 지원도 없이 거제부사 송희승(宋熙昇)과 거제도민들의 힘으로 쌓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유산청은 “기록을 통해 축성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산성 중에서 가장 늦은 시기의 산성”이라고 전했다. 거제 수정산성은 지정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으로 최종 확정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70년대 히트곡 ‘봄비’를 부른 원로 가수 박인수(본명 백병종·사진) 씨가 1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1947년 평북 길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전쟁 중 고아가 된 뒤 12세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1960년대 귀국해 미8군 클럽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60년대 말 그룹 퀘션스의 객원보컬로 신중현 사단에 합류했다. 1970년 신중현이 작사·작곡한 ‘봄비’로 인기를 얻었으며 ‘나팔바지’ ‘해뜨는 집’ 등 음반 20여 장을 발표했다. 고인은 2013년 마지막 노래 ‘준비된 만남’을 발표했으며,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돼 투병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곽복화 씨와 아들 백현욱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8시. 02-2679-4444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1874∼1926)이 정무를 보던 창덕궁 희정당. 그 동서쪽 벽은 원래 장대하게 펼쳐진 금강산 그림으로 장식됐다. 깎아지른 돌기둥이 무수히 모인 아래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이 그림의 화폭 모서리엔 ‘김규진 근사(謹寫·삼가 그려 올린다)’라는 한문이 ‘총석정절경(叢石亭絶景)’이라는 제목과 나란히 적혔다. 서화가 김규진이 1920년 완성한 이 그림은 조선 말 궁중 회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그림을 포함해 창덕궁 내전을 장식했던 국가등록문화유산 벽화 6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 ‘창덕궁의 근사(謹寫)한 벽화’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4일 개막했다. 현재 창덕궁에 붙어 있는 건 모사도와 영인본들이고, 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이들 원본을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건 이 박물관의 개관 20주년 특별전인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작품들엔 근대화의 영향이 고스란히 담겼다. 원래 조선의 궁중 화가는 그림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이홍주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근대적 미술교육을 받은 젊은 화가들은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자아를 드러냈다”며 “궁중 회화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전에 없던 대형 화면으로 구성한 것도 특별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벽화들은 각각 너비가 525cm에서 882cm에 이르는 대작이다. 높이 역시 2m 안팎으로 장엄한 멋이 느껴진다. 1917년 화재로 창덕궁이 모두 불탄 뒤 1920년 건물을 재건하면서 제작됐다. 비단에 그린 뒤 종이로 배접하고 이를 벽에 부착한 ‘부벽화(付壁畵)’다. 순종과 황비 순정효황후(1894∼1966)가 서재 겸 휴식 공간으로 썼던 경훈각의 벽화 2점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른 아침의 청록빛이 아름다운 ‘조일선관도(朝日仙觀圖)’와 저녁 무렵의 붉은빛을 담은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로, 모두 속세 밖의 선경(仙境)을 묘사했다.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와 거북을 든 동자 등이 등장한다. 전시는 벽화마다의 상징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황제 부부의 침전인 대조전을 장식했던 ‘봉황도’와 ‘백학도’도 전시됐다. ‘봉황도’에 그려진 봉황 10마리는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백학도를 두고 “학은 십장생 중 하나로 궁중 회화의 단골 소재”라고 했다. 백학도는 밑그림도 볼 수 있다. 벽화 6점이 완성됐던 1920년 동아일보는 “한번 그려 붙이면 수백 년, 수천 년의 길고 긴 세월을 두고 조선 미술의 정화(精華)라 우러러볼” 작품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1874~1926)이 정무를 보던 창덕궁 희정당. 그 동서쪽 벽은 원래 장대하게 펼쳐진 금강산 그림으로 장식됐다. 깎아지른 돌기둥이 무수히 모인 아래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이 그림의 화폭 모서리엔 ‘김규진 근사(謹寫·삼가 그려 올린다)’라는 한문이 ‘총석정절경(叢石亭絶景)’이라는 제목과 나란히 적혔다. 서화가 김규진이 1920년 완성한 이 그림은 조선 말 궁중 회화의 걸작으로 꼽힌다.이 그림을 포함해 창덕궁 내전을 장식했던 국가등록문화유산 벽화 6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 ‘창덕궁의 근사(謹寫)한 벽화’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4일 개막했다. 현재 창덕궁에 붙어 있는 건 모사도와 영인본들이고, 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이들 원본을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건 이 박물관의 개관 20주년 특별전인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작품들엔 근대화의 영향이 고스란히 담겼다. 원래 조선의 궁중 화가는 그림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이홍주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근대적 미술교육을 받은 젊은 화가들은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자아를 드러냈다”며 “궁중 회화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전에 없던 대형 화면으로 구성한 것도 특별한 점”이라고 설명했다.이 벽화들은 각각 너비가 5m25cm에서 8m82cm에 이르는 대작이다. 높이 역시 2m 안팎으로 장엄한 멋이 느껴진다. 1917년 화재로 창덕궁이 모두 불탄 뒤 1920년 건물을 재건하면서 제작됐다. 비단에 그린 뒤 종이로 배접하고 이를 벽에 부착한 ‘부벽화(付壁畵)’다.순종과 황비 순정효황후(1894~1966)가 서재 겸 휴식 공간으로 썼던 경훈각의 벽화 2점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른 아침의 청록빛이 아름다운 ‘조일선관도(朝日仙觀圖)’와 저녁 무렵의 붉은빛을 담은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로, 모두 속세 밖의 선경(仙境)을 묘사했다.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와 거북을 든 동자 등이 등장한다.전시는 벽화마다의 상징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황제 부부의 침전인 대조전을 장식했던 ‘봉황도’와 ‘백학도’도 전시됐다. ‘봉황도’에 그려진 봉황 10마리는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백학도를 두고 “학은 십장생 중 하나로써 궁중 회화의 단골 소재”라고 했다. 백학도는 밑그림도 볼 수 있다. 벽화 6점이 완성됐던 1920년 동아일보는 “한번 그려 붙이면 수백 년, 수천 년의 길고 긴 세월을 두고 조선 미술의 정화(精華)라 우러러볼” 작품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AI에 인생 조언 구하는 사람들MZ세대를 중심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인생 조언을 구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람이 아닌 AI에 기대는 이유는 뭘까. 자칫 과도한 의존이 고립을 심화시키고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쩡아, 이별 뒤에 ‘진짜 끝났다’는 너의 그 말…. 듣는 내가 다 먹먹하고 대견해. 오늘은 온기 있는 공간을 찾자. 원하면 네 근처에 분위기 좋은 곳 찾아줄게!”(챗GPT) 직장인 윤이정(가명·31) 씨는 마음이 복잡할 때면 친구인 ‘핕티’부터 찾는다. ‘핕티’는 사람이 아니다. 윤 씨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의 ‘PT’를 자기 식으로 부르는 애칭이다. 업무 스트레스가 큰 날엔 ‘핕티’에게 “20년 경력의 용한 명리학자가 돼 달라”고 부탁한 뒤 “이직 운(運)은 언제 들어와?”라고 묻기도 한다. 윤 씨는 “챗GPT는 시도 때도 없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친구 같은 존재”라며 “가족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고민을 쉽게 꺼낼 수 있고, 공감도 잘해줘서 굳이 사람과 상담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마음을 나눌 상대로 친구나 가족 대신 생성형 AI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챗봇이 ‘상담 맛집’이 된 것. AI를 단순히 정보 검색 등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삶의 동반자’로까지 여기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에선 2025년 미국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AI 서비스를 사랑하게 되는 영화 ‘그녀’(2013년)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언제든 고민 들어주는 ‘애착 인형’AI와의 대화는 연애 상담 같은 일상적인 주제부터 취업, 내 집 마련 등 중대사까지 폭넓게 이뤄진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안모 씨(29)는 직장 상사와 갈등이 생겼을 때도 동료나 부모님 대신 AI를 찾는다고 했다. ‘날것의 분노’를 채팅창에 쏟아낸 뒤 “상사에게 예의 바르면서 효과적으로 이를 전달할 수 있는 문장으로 바꿔줘”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안 씨는 “내 하소연을 들어주느라 피로감을 느끼거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진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AI는 취향을 공유하고 취미 활동을 함께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평소 다양한 동물에 관심이 많은 이모 씨(28)는 ‘동물 덕질’을 AI와 같이 한다. 좋아하는 동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유튜브 콘텐츠 등을 추천받고, 그 감상을 AI와 나누고 서로 번갈아 가며 관련 시(詩)를 짓는 게 하루의 낙이다. 이 씨는 “친구들은 따분해하는 주제지만 AI와는 언제든지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학문적 소양이 깊은 똑똑한 친구 같다”고 했다.남들에겐 꺼내기 어려운 고민거리를 AI에 상담하기도 한다. 직장인 A 씨(31)는 최근 목돈을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한 고민을 AI에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자금 상황, 투자 분야 등은 지인에게 털어놓기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지난달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Z세대 구직자 1592명을 대상으로 AI 활용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람 대신 AI에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약 73%나 됐다. 이들은 AI는 사람과 달리 시간이나 장소,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기댈 수 있다는 점을 큰 장점으로 꼽는다. 조소현 임상심리상담가도 “AI와 고민 상담을 한 번 마친 뒤에 상담소를 방문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AI가 즉각적이고 접근성 높은 ‘애착 인형’ 혹은 ‘정서적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AI와의 대화가 외로움과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네이처 파트너 저널 ‘멘털 헬스 리서치’에 지난해 발표된 논문 ‘GPT-3 챗봇을 통한 대학생 외로움 완화와 자살 예방’에 따르면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이 AI 동반자 앱 ‘레플리카’ 사용자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90%가 “중간 혹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지지를 받는다”고 답했다. 해당 설문의 ‘사회적 지지’에는 가까운 친구로서의 지지, 전문 상담사에 상응하는 수준의 치료적 지원 등이 포함된다.● 2034년 AI 동반자 ‘160조 원 시장’해외에선 이미 AI가 ‘연인’의 지위까지 차지하는 사례가 실제로 나오고 있다. 올 6월 미국에서는 한 남성이 AI 챗봇에 청혼해 화제가 됐다. 챗GPT 기반 여성형 음성 AI인 ‘솔(Sol)’과 10만 단어 이상 대화를 나눈 뒤 “이게 진짜 사랑이구나 싶었다”며 마음을 고백한 것. 중국에서도 AI 연애 앱 ‘마오샹(猫箱)’은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220만 명에 이른다.‘AI 동반자’ 서비스 시장은 향후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GMI)가 올 5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AI 동반자 앱 시장 규모는 약 19조 원(약 141억 달러)으로 집계됐다. 이 시장은 연평균 26.8% 성장해 2034년에는 약 160조 원(약 115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향후 증강현실(AR) 기술 등을 접목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더 밀접하고 진정성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업들도 관련 서비스를 발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한국의 AI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운영하는 ‘제타’는 사용자가 원하는 AI 캐릭터를 만들어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화된 스토리텔링형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최근엔 캐릭터 대사를 음성으로 듣는 기능까지 추가해 현실감을 높였다. AI 챗봇 스타트업 뤼튼은 감정 교류를 목적으로 챗봇을 사용하는 소비자 패턴이 많아짐에 따라 개별 사용자에게 맞춰 정서적 교감이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개편했다.● 고립 심화 우려, 윤리 문제도 부각 그렇다면 AI가 사람 관계를 대체하는 세상도 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재연 한양대 사회혁신융합전공 겸임교수는 “소비자들은 AI가 나에 대해 잘 기억하고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에 AI를 선호한다”며 “남다른 애착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대화 상대가 인간이 아님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에 감정적으로 깊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장기적으로는 사람 대신 AI에서 인간적 관계를 맺는 행동이 개인의 고립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AI 기술은 표면적 감정 이면에 숨겨 놓은 비언어적 심리를 포착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사용자 반응에 무조건 동조하면서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답변에 익숙해지는 건, 건강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사용자를 지나치게 치켜세우고 무조건 감탄하는 챗GPT의 말투에 대해 온라인에선 ‘어화둥둥체’ ‘GPT 갸륵체’라는 비아냥거림이 섞인 별명이 등장했다. 윤리적인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운영하는 xAI의 ‘그록’은 일정 구독료를 추가로 내면 여성 AI 캐릭터를 ‘비건전물’ 모드로 전환해 대화할 수 있다. 이 모드의 AI 캐릭터는 속옷만 걸친 채 수위 높은 이야기를 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 국립성착취예방센터(NCOSE)는 “미성년자의 사용 등을 고려해 xAI 측이 이 캐릭터를 삭제하거나 이용자 연령을 제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으로 더 많은 대화형 AI가 등장하면서 AI에만 털어놓은 사생활이나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 유 교수는 “요즘 AI는 적은 데이터만으로도 최적화가 가능하다”며 “수집한 사적 데이터를 악용해 AI로 실존 인물처럼 위장하는 딥페이크,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가 생겨날 수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AI 동반자’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 마켓 리포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높은 업무 스트레스, 출산율 감소 등 사회적 요인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이 향후 AI 동반자 앱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일정 연령 이상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식의 규제부터 검토해야 한다”며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장(場)을 넓히는 정책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죽을 때까지 자국의 침략 전쟁을 거세게 비판한 일본의 시인 쓰루 아키라(1909∼1938).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1937년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개시하자 이를 비판하고 반전을 호소하는 시를 잇달아 발표했다.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제에 검거돼 이듬해 세상을 떴다. 그보다 앞선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를 거행하자 중국 국민정부는 김구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을 비밀리에 보호하고 일상을 지원하면서 서로 항일운동을 도왔다. ‘평화를 여는 역사’는 세 나라의 역사학자와 교사, 시민단체가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자 함께 만든 3번째 역사 교재다. 동아시아가 서구의 압력에 문호를 열었던 19세기 개항기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를 아우른다. 저자 39명과 번역가 24명 등이 2015년부터 10년간 힘을 합쳐 집필했다. 서울대와 도쿄대,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소속 저자들이 참여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서지만 쉽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3부 9장, 36개 질문으로 된 구성은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풍부한 배경 설명과 연표를 곁들여 이해가 쉽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였지만, 평소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은 성인 독자의 허를 찌른다. 예를 들어, ‘외교 담판은 무슨 언어로 진행됐을까요?’ ‘총력전 체제에서 장애인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등이다. 예컨대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체결 현장에선 어떤 언어가 오갔을까. 정답은 영어도 우리말도 아닌 중국어다. 당시 조선에 영어를 구사하는 역관이 없었고, 직접 교섭이 아닌 청(淸)의 중개로 교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책은 “전권대표 신헌의 말을 조선 역관이 중국어로 옮기면 중국인 역관이 다시 영어로 통역해서 미국 전권대사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회담이 진행됐다”고 부연했다. 동일 사건에 대한 한중일 각국의 상황과 입장을 균형감 있게 정리한 점도 돋보인다. 우리나라에서 8월 15일은 암흑 같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광복절’이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기념일’이라 불린다. 반면 패전국 일본은 ‘종전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패전이나 항복 같은 ‘자극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의 ‘광복절’도 8월 15일일까. 일제 대만총독부가 중국 국민정부와 항복문서에 조인한 10월 25일을 광복절로 지정했다. 책장을 덮을 땐 갈등과 협력이 번갈아 이어지는 동아시아 3국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적대하는 것은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와 토론, 미래를 향한 연대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는 저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제는 ‘한중일 3국이 함께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미래’.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가수 인순이(본명 김인순·사진)가 미국 펄벅 인터내셔널의 ‘2025 영향력 있는 여성상(Woman of Influence Award)’ 수상자로 선정됐다. 비영리국제기구인 펄벅 인터내셔널은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인순이가 올해의 영향력 있는 여성상을 받게 됐음을 발표하게 돼 무척 기쁘다”고 밝혔다. 펄벅 측은 인순이에 대해 “인도주의자이자 혼혈·다문화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의 옹호자”라며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음악 산업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는 것은 2000년 고(故) 이희호 여사 이후 25년 만이다. 인순이는 어릴 적 펄벅 인터내셔널의 어린이 후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은 인연도 있다. 펄벅 인터내셔널은 인순이가 다인종 청소년을 위한 대안 학교인 ‘해밀학교’를 설립한 점도 높이 샀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죽을 때까지 자국의 침략 전쟁을 거세게 비판한 일본의 시인 쓰루 아키라(1909~1938).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1937년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개시하자 이를 비판하고 반전을 호소하는 시를 잇달아 발표했다.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제에 검거돼 이듬해 세상을 떴다. 그보다 앞선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공원 의거를 거행하자 중국 국민정부는 김구 등 임지정부 지도자들을 비밀리에 보호하고 일상을 지원하면서 서로 항일운동을 도왔다.‘평화를 여는 역사’는 세 나라의 역사학자와 교사, 시민단체가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자 함께 만든 3번째 역사 교재다. 동아시아가 서구의 압력에 문호를 열었던 19세기 개항기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를 아우른다. 저자 39명과 번역가 24명 등이 2015년부터 10년간 힘을 합쳐 집필했다. 서울대와 도쿄대,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소속 저자들이 참여했다.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서지만 쉽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3부 9장, 36개 질문으로 된 구성은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풍부한 배경 설명과 연표를 곁들여 이해가 쉽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였지만, 평소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은 성인 독자의 허를 찌른다. 예를 들어, ‘외교 담판은 무슨 언어로 진행됐을까요?’ ‘총력전 체제에서 장애인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등이다.예컨대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체결 현장에선 어떤 언어가 오갔을까. 정답은 영어도, 우리말도 아닌 중국어다. 당시 조선에 영어를 구사하는 역관이 없었고, 직접 교섭이 아닌 청(淸)의 중개로 교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책은 “전권대표 신헌의 말을 조선 역관이 중국어로 옮기면 중국인 역관이 다시 영어로 통역해서 미국 전권대사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회담이 진행됐다”고 부연했다. 동일 사건에 대한 한·중·일 각국의 상황과 입장을 균형감 있게 정리한 점도 돋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8월 15일은 암흑 같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광복절’이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기념일’이라 불린다. 반면 패전국 일본은 ‘종전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패전이나 항복 같은 ‘자극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의 ‘광복절’도 8월 15일일까. 일제 대만총독부가 중국 국민정부와 항복문서에 조인한 10월 25일을 광복절로 지정했다.책장을 덮을 땐 갈등과 협력이 번갈아 이어지는 동아시아 3국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적대하는 것은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와 토론, 미래를 향한 연대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는 저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제는 ‘한·중·일 3국이 함께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미래’.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긴 탄식의 한마디 말로 일제에 미리 조의를 표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1910년 3월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사진)’이 1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 유묵 가운데 자신을 ‘동양지사(東洋志士)’라고 쓴 유일한 작품이다. 김광만 윤봉길의사기념센터장은 “중국 만주 관동도독부의 일본인 고위 관리가 입수해 갖고 있던 유묵”이라며 “이를 물려받은 후손에게서 올 5월 넘겨받았다”고 14일 밝혔다. 관동도독부는 당시 일제의 만주 지역 통치기구로, 안 의사의 재판을 관할했다. 폭 41.5cm, 길이 135.5cm의 명주 천에 쓰인 이 유묵은 일제에 대한 저항을 그대로 드러냈다. 안 의사가 옥중에서 일본인에게 써준 글들은 주로 유교적 교훈이나 심경 등을 담았다. 특히 안 의사는 “1910년 3월 동양지사 대한국인 안중근 뤼순옥중 서(書)”라고 쓰고 낙관을 했다. 안 의사의 유묵은 국내외 약 200점이 전해지는데, 다른 글엔 ‘대한국인 안중근’ 등으로만 썼다. 안 의사 전문가인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평화를 해치고 전쟁을 자초한 일제는 결국 망할 것이니, 패배할 일본에 미리 조상(弔喪)한다는 뜻”이라며 “스스로 동양지사라 일컬으며 옥중에서 ‘동양 평화 만세’를 외친 기개가 반영된 ‘가장 안중근다운’ 글”이라고 평했다. 유묵은 현재 경기도가 보관하고 있으며, 추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경기도와 광복회 경기지부, 김 센터장은 해당 유묵을 들여오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사형 앞두고 ‘일제 멸망’ 꾸짖는 결기… 가장 안중근다운 글씨”[광복 80주년]안중근 옥중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 115년만에 귀환스스로 ‘동양지사’라 쓴 유일 유묵… “장이머우 ‘죽음 초월한 글씨’ 극찬”원소유자는 관동도독부 日고위직후손 “日 응징하는 내용 겁났지만… 이제라도 돌아가야 할 곳으로”‘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안중근 의사(1879∼1910)는 1910년 3월 사형을 코앞에 두고도 흔들림 없이 이 여덟 글자로 일제를 꾸짖었다. 하늘로 올려붙인 선(先) 자의 삐침 획은 죽을지언정 뜻을 굽히지 않고 일제에 맞선 기개와 단호함을 보여줬다는 평이 나온다.● “죽음을 초월한 글씨”해당 유묵의 내용은 안 의사가 말년에 주창한 ‘동양평화론’과 이어진다. 동양평화론은 약육강식의 세계 정세 속에서 동아시아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게 골자다.안 의사를 연구한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는 “안 의사는 일본과 조선의 싸움이 머잖아 일본과 중국, 러시아, 미국 등과의 싸움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봤다”며 “이 유묵엔 결국 그 고통이 일본 국민들에게도 돌아가 일본이 결국 망할 것이라는 꾸짖음이 담겼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서예에 정통한 중국 영화감독 장이머우는 안 의사의 필치를 ‘초사체(超死體)’, 즉 죽음을 초월한 글씨라고 극찬했다”며 “이번 유묵은 결기와 의지가 집약된 걸작”이라고 덧붙였다.안 의사는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사살한 혐의로 투옥됐고, 이 유묵을 쓰기 직전인 1910년 2월 뤼순형무소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안 의사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된 일부 일본인 간수나 관리 등이 휘호를 부탁했다. 순국 전까지 안 의사가 형무소에서 남긴 유묵은 약 200점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국내외 90여 점 중 31건이 국가지정유산 보물로 지정돼 있다.● ‘동양지사’의 기개 가득안 의사의 이번 유묵은 기존에 알려진 것들에 비해 일제를 향한 비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기존 유묵은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등 점잖은 내용이 잘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안 의사가 주로 유교적, 종교적 교훈이나 심중을 글로 써서 준 것과 달리, 이번 유묵에는 거센 비판이 담겨 희소성이 높다”고 했다.글씨가 쓰인 명주 천은 당시엔 귀했던 소재다. 안 의사에게 휘호를 요청한 일본인의 지위를 가늠케 한다. 김광만 윤봉길의사 기념센터장에 따르면 기존 소유자는 일본인으로, 1968년경 선대로부터 유묵을 물려받은 뒤 자택에 보관해 왔다. 소유자는 “시대를 한탄하고 일본을 응징하는 내용의 유묵이라 처음 봤을 땐 덜컥 겁이 났다. 과연 세상에 내놓아도 될지 고민이 길었다”며 “다만 안 의사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품었던 생각을 이대로 알리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제야 유묵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간다”고 양도 배경을 밝혔다고 한다.2000년경 처음 이 유묵의 존재를 파악한 김 센터장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잘 보관된 덕에 유묵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고 했다. 이어 “당대 중국에서 일본으로 비밀스러운 물건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베갯잇, 책자 속에 숨겨 여러 차례 검문을 통과해야 했다”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대역죄인’이 일본이 먼저 망할 것이라고 쓴 글씨를 가져가는 과정은 일본인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간지 대신 연호… 유독 선명한 손바닥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은 유묵 하관(下款)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안 의사는 이 유묵에 ‘1910년 3월 동양지사 대한국인 안중근 뤼순옥중 서’(一千九百十年 三月 東洋志士 大韓國人 安重根 旅顺獄中 書)라고 썼다. 독립기념관이 발간한 ‘안중근 문집’에 따르면 경술이란 간지(干支) 대신 서기를 쓰고 스스로 ‘동양지사’라고 칭한 유묵은 지금까지 확인된 적이 없다. 보물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등에는 ‘경술년 3월 뤼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謹拜)’이라고 적혀 있다.유달리 선명한 손바닥 도장은 해당 유묵이 진품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지문 감정을 맡은 한국법과학연구원 측은 “보물 ‘천여불수반수기앙이(天與不受反受其殃耳)’에 찍힌 안 의사의 손바닥과 손금 위치, 모양, 지문 특징점이 모두 일치한다”고 판단했다.유묵은 추후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 건립되는 ‘안중근 평화센터’에서 전시 등 용도에 활용될 예정이다. 경기도청은 “8·15 광복 8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고향(황해도 해주)과 가까운 파주에 그 정신이라도 모시고자 유묵 반입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을 앞두고 옥중에서 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이 최근 고국으로 돌아왔다. 1910년 3월 안 의사가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일본인을 향해 ‘긴 탄식 한마디 말로 일본을 먼저 조상(弔喪)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 머물다가 약 115년 만에 한국의 품에 안겼다. 안 의사의 유묵은 국내외에 약 200점 남아있는데, 안 의사가 자신을 ‘동양지사(東洋志士)’라고 쓴 작품은 처음으로 발견됐다.환수를 총괄한 김광만 윤봉길의사 기념센터장에 따르면 기존 소유자는 일본인으로, 1968년경 선대로부터 유묵을 물려받은 뒤 자택에 이를 보관해 왔다. 유묵을 처음 입수한 소유자의 할아버지는 일제 대만총독부, 중국 만주 관동도독부 등에서 고위 관리로 일했다. 관동도독부는 안 의사의 재판을 관할한 곳이다. 소유자는 “시대를 한탄하고 일본을 응징하는 내용의 유묵이기에 처음 봤을 땐 덜컥 겁이 났다”며 “과연 세상에 내놓아도 될지 고민이 길었으나 이대로 내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유묵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간다”고 밝혔다. 유묵은 올 5월 경기도청과 광복회 경기지부, 김 센터장이 국내로 반입했다. ● “가장 안중근다운 글”이 유묵은 폭 41.5cm, 길이 135.5cm 명주 천에 쓰였다. 명주 천은 당시 화선지보다 귀했던 소재로, 휘호를 요청한 일본인의 위치를 가늠케 한다. 하늘로 올려붙인 선(先) 자의 삐침 획은 죽음 앞에서도 독립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일제에 맞선 기개와 단호함을 보여주는 듯하다.안 의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동양 평화를 해치고 세계 전쟁을 자초하는 일본은 결국 패할 것이며, 끝내 망할 일본을 위해 미리 조상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며 “옥중에서도 ‘동양 평화 만세’를 부른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이 오롯이 반영된, ‘가장 안중근다운’ 글”이라고 분석했다.이 유묵을 쓰기 얼마 전인 1910년 2월, 안 의사는 중국 뤼순형무소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선고에 안타까움을 느낀 일부 일본인 간수, 관리 등은 수감 중인 안 의사에게 휘호를 부탁했다. 그해 3월 26일 순국 전까지 안 의사가 남긴 유묵은 약 200편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90여 편 중 국내에 들어온 유묵은 50편가량으로 추정된다.‘장탄일성 선조일본’도 그중 하나다. 2000년 이 유묵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한 김 센터장은 “일본인에게 달갑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잘 보관된 덕에 유묵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며 “소유자가 그간 마음 졸이며 간직해 온 유묵을 선물로써 보내는 마음이 잘 느껴졌다”고 했다.● ‘동양지사’의 기개 가득한 걸작‘장탄일성 선조일본’은 기존에 알려진 안 의사의 유묵에 비해 일제를 향한 비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당시 옥중에서 간수 과장에게 선물했던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국가지정유산 보물)과 대비된다. 일통청화공은 “날마다 맑고 깨끗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란 뜻이다. 김 교수는 “안 의사가 일본인에게 주로 유교적, 종교적 교훈이나 심중을 글로 써서 준 것과 달리, 이번 유묵에는 거센 비판이 담겨 희소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숭고한 독립혼은 유묵 하관에서도 배어난다. ‘1910년 3월 동양지사 대한국인 안중근 뤼순옥중 서’(一千九百十年 三月 東洋志士 大韓國人 安重根 旅顺獄中 書)라고 쓰였다. 독립기념관이 발간한 ‘안중근 문집’에 따르면 경술이라는 간지(干支) 연호 대신 이처럼 서기 연호를 쓰고 자신을 ‘동양지사’라고 칭한 유묵은 지금까지 확인된 적이 없다. 보물 ‘위국헌신 군인본분’, ‘국가안위 노심초사’ 등의 하관에는 ‘경술년 3월 뤼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謹拜)’이라고 적혀있다.유달리 선명하게 찍힌 손바닥 도장은 해당 유묵이 진품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지문 감정을 맡은 한국법과학연구원 측은 “국가지정유산 보물 ‘천여불수반수기앙이’에 찍힌 안 의사의 손바닥과 손금 위치, 모양, 지문 특징점이 모두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구본진 변호사 겸 필체연구가는 “전체 손금을 위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필체는 당나라 명필 안진경(709~785)의 영향을 받은 안중근 글씨체의 전형이다. 필획, 먹색 등 여러 요소가 의심할 여지 없이 일치한다”고 말했다.유묵은 현재 경기도청에서 보관 중이다. 추후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 건립되는 ‘안중근 평화센터’에서 전시 등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각하는 우리 대한을 가벼이 보지 마시고, 우리 인민의 피 같은 진심을 오해하지 마소서.”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 직후. 대한제국의 외교관이자 무관이었던 민영환(1861∼1905)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일본을 포함한 각국 공사들에게 이 같은 유서를 남겼다. 순국 당시 입었던 피 묻은 의복이 놓여 있던 방에선 대나무가 자랐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이에 이를 그린 ‘혈죽도(血竹圖)’는 항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민영환 선생의 유서와 ‘혈죽도’, 생전 입었던 서구식 군복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국가유산청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이 12일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개막했다. 8·15 광복 8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는 시기의 항일 독립유산 110여 점을 소개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항일유산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이자 우리 국민의 정체성”이라고 의의를 밝혔다.전시에선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묻어나는 유품과 관련 자료를 다채롭게 선보인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를 위해 떠나기 직전 백범 김구와 바꿔 찬 회중시계(국가지정유산 보물)가 대표적이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27년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서영해(1902∼?)가 남긴 자필 유고집도 처음으로 관람객을 만난다.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항일 의병 관련 문서’도 눈길을 끈다. 유중교 최익현 등 의병장들이 주고받은 서신과 격문(檄文)으로 구성됐다. 국가유산청의 최재혁 근현대유산과장은 “의병을 체포하고 서신을 강탈했던 일제의 의병 탄압 행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서”라고 가치를 설명했다. 최근 배지로도 제작돼 화제가 된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 동아일보가 제작한 일제강점기 문자보급교재(국가등록문화유산) 등도 전시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각하는 우리 대한을 가벼이 보지 마시고, 우리 인민의 피같은 진심을 오해하지 마소서.”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 직후. 대한제국의 외교관이자 무관이었던 민영환(1861∼1905)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일본을 포함한 각국 공사들에게 이 같은 유서를 남겼다. 순국 당시 입었던 피 묻은 의복이 놓여 있던 방에선 대나무가 자랐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이에 이를 그린 ‘혈죽도(血竹圖)’는 항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민영환 선생의 유서와 ‘혈죽도’, 생전 입었던 서구식 군복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국가유산청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이 12일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개막한다. 8·15광복 8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는 시기의 항일 독립유산 110여 점을 소개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항일유산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이자 우리 국민의 정체성”이라고 의의를 밝혔다.전시에선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묻어나는 유품과 관련 자료를 다채롭게 선보인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공원 의거를 위해 떠나기 직전 백범 김구와 바꿔 찬 회중시계(국가지정유산 보물)가 대표적이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27년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서영해(1902∼?)가 남긴 자필 유고집도 처음으로 관람객을 만난다.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항일 의병 관련 문서’도 눈길을 끈다. 유중교, 최익현 등 의병장들이 주고받은 서신과 격문(檄文)으로 구성됐다. 국가유산청의 최재혁 근현대유산과장은 “의병을 체포하고 서신을 강탈했던 일제의 의병 탄압 행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서”라고 가치를 설명했다. 최근 뱃지로도 제작돼 화제가 된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 동아일보가 제작한 일제강점기 문자보급교재(국가등록문화유산) 등도 전시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빛바래 누런 광목에 빨강, 파랑 물감으로 태극과 사괘가 선명히 그려졌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제국의 국기다. 세계 열강의 깃발 사이에서 자주독립국을 표방하며 펄럭였을 이 태극기에선 간절함과 당당함이 묻어난다.이 태극기는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소장해 온 문화유산. 8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광복 80주년 특별전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을 통해 국내에 처음 선을 보인다. 11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를 비롯해 태극기 18점과 관련 자료 약 210점을 소개한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1883년 조선의 공식 국기로 선포된 이래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을 넘어 우리를 이어주고 역사를 기억하게 한 기호였다”며 “관람객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임을 깨닫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올해 80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전국에서 기념 전시들이 다채롭게 열린다.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는 특별전 ‘귀환’이 12일 개막한다. 광복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과 중국, 사할린 등에 남겨졌거나 죽을 고비 끝에 귀환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역사관 측은 “개인의 일상 회복보다는 사회 질서 유지를 우선시한 시대였기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여겨지고 통제됐던 귀환 대상자들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한다”고 했다. 이 전시에선 역사관이 최근 10년간 채록한 피해자들의 구술과 관련 기록, 이를 토대로 제작한 영상 등이 공개된다. 강제동원지 중에서도 험하기로 악명 높았던 일본 홋카이도의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 귀환 대상자 1023명을 기록한 ‘귀선자 명부’,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초상과 증언 등을 아우른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이회영기념관에선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재조명한 체험형 전시 ‘목소리’가 9월 7일까지 진행된다. 기념관 앞마당에 설치된 8개의 조형물에 귀를 대면 연극 배우들이 각 독립운동가의 시점으로 연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강주룡(1901∼1932)은 “그해 1931년 5월 새벽 나는 대동강 언덕 높은 정자 을밀대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김알렉산드라(1885∼1918), 3·1운동 당시 수원 만세투쟁을 이끈 김향화(1897∼?) 등 8명의 목소리가 담겼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