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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 공무원들이 선진국 중 제일 먼저 통계를 낸다는 걸 간과한 게 화근이었다. 작년 1월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위”라고 자랑했다. 코로나19 충격이 반영된 2020년 성장률이 ―0.9%로 ‘K방역’에 힘입어 다른 나라보다 선방한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노르웨이 성장률이 예상보다 호전돼 ―0.8%로 한국을 앞섰다. 3.4%나 플러스 성장한 아일랜드도 등장했다. 이어 뉴질랜드(+1.0) 호주(―0.3) 터키(+1.8%)가 줄줄이 한국을 추월했다. 결국 한국은 OECD 38개 회원국 중 리투아니아(―0.9%)와 함께 공동 6위로 밀렸다. OECD 회원국이 아닌 중국(+2.2%) 대만(+3.1%)이 빠진 순위가 이랬다. 사정을 훤히 알아도 대통령 말실수에 소금을 뿌릴 수 없는 기획재정부는 작년 말 현 정부 4년 반 경제성과를 자평하면서 2020년 성장률을 ‘G20(주요 20개국) 중 3위’라고 슬쩍 바꿨다. 그런데 이 또한 중국, 터키, 호주에 이은 4위가 진실이다. 이달 3일 임기 중 마지막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다시 “위기와 격변 속에서 우리 경제는 더욱 강한 경제로 거듭났습니다.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라고 했다. 작년 성장률 4.0%는 미국(5.6%) 유로존(5.2%) 중국(8.0%)보다 낮지만 마이너스 폭이 작았던 재작년과 합해 평균하면 순위가 높아진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OECD, G20 등 비교 대상이 뚜렷해 꼬투리 잡힐 말 대신 ‘선진국’이란 표현을 쓴 게 묘수다. 수출 제조업이 강한 한국의 성장률은 관광 등 서비스업 비중이 큰 유럽 등 선진국보다 좋은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순위를 분식(粉飾)해서까지 “가장 높은 성장률”을 강조한 건 ‘경제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대통령의 욕심일 것이다. 성과는 작아도 부풀리고, 실패는 커도 침묵해 지지율을 지켜온 ‘문재인식 통치술’의 편린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심경이 읽혔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정색하고 “한국은 정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 이런 성취를 부정하고 폄훼한다면 그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 차원을 넘어 국민이 이룬 성취를 폄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과 기업이 인내와 노력으로 일궈낸 경제성과는 당연히 깎아내려선 안 될 일이지만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까지 끼워 넣은 건 치사한 무임승차다. 현 정부는 코로나 발생 초기 중국 입국자 차단, 백신 조달의 타이밍을 놓쳐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세계 주요국 중 1위 집값 상승률로 국민 허리를 휘게 했다. 재작년 총선 직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은 ‘한국 포퓰리즘사(史)’에 길이 남을 것이다. 국민을 ‘월급 주는 자’와 ‘월급 받는 자’로 가르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일자리를 줄인 건 이념형 정책실험의 실패 사례로 경제 교과서에 실릴 만하다. 언젠가 재정 악화로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사태가 온다면 나랏빚 폭증에 본격 시동을 건 정부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성공한 경제 대통령’은 시간이 흐른 뒤 대다수 국민이 동의해야 얻을 평가다. 지금 ‘우리 정부 경제정책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아무리 강조해봐야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임기 말에야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몫”이란 깨달음을 얻었다면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나가 외롭게 경제를 지켜온 기업들에 감사의 마음이라도 전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UAE(아랍에미리트) 쇼크.’ 한국전력이 주도하는 ‘한국형 원전 컨소시엄’이 2009년 12월 말 UAE가 발주한 바라카 원전 건설 사업자로 선정되자 일본 언론은 이런 표현을 썼다. 1978년 미국 기술로 고리 1호기 원전을 처음 가동한 한국이 31년 만에 미국 GE와 일본 히타치의 미일(美日) 컨소시엄, 프랑스 아레바를 제치고 원전 4기를 짓는 400억 달러(약 47조7000억 원)짜리 공사를 따낸 게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뜻이다. 바라카 원전은 현재 3기까지 공사가 끝났다. ▷새해 벽두인 2일 한국수력원자력이 이집트 엘다바 원전의 2차 건설사업 부문 계약 체결을 위한 단독협상 대상자가 됐다고 밝혔다. UAE 원전 수출 이후 12년 만에 한국이 해외에서 대규모 원전 건설 수주를 따낼 가능성이 커졌다. 총 300억 달러짜리 사업 중 한국 몫은 5∼10%인 2조∼3조 원 정도로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4월 말쯤 정식 계약을 맺을 전망이다. ▷아쉬운 건 엘다바 원전이 러시아가 주도하는 사업이란 점이다.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의 자회사가 2017년 이집트에서 따낸 사업 중 한국이 맡는 부분은 부속건물 등 ‘2차 계통’이다. 원전의 심장인 원자로에는 한국이 자랑하는 ‘APR 1400’이 아닌 러시아의 ‘VVER-1200’ 모델이 들어간다. 사막인 UAE에 원전을 지어본 경험 때문에 러시아 측이 먼저 파트너가 돼 달라고 요청한 점이 그나마 자존심을 세운 부분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침체됐던 세계 원전산업은 친환경·탈탄소 트렌드에 올라타고 빠르게 부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EU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한 초안을 회원국에 발송했다. 택소노미는 특정 기술, 산업 활동이 탄소중립에 도움 되는 친환경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정하는 가이드라인이다. 탈원전을 추진하는 독일 등의 반대가 있지만 바람이 약해져 풍력전력 생산에 탈이 난 EU 대다수 나라에 탄소 배출 없이 싸게 싸게 생산하는 원전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한국 환경부는 지난해 말 ‘K택소노미’를 발표하면서 원전을 뺐다. ▷택소노미에서 빠진 사업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표방하는 금융회사 등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막대한 자본이 드는 해외 원전 건설은 수주한 쪽도 30% 정도 자금을 대는 게 관행이다. K택소노미 제외로 한수원은 동유럽 등에서 원전 수주 경쟁을 벌일 때 국민연금 등의 지원을 받기 어렵게 됐다. 원전을 K택소노미에 넣어 달라고 한수원이 간청한 이유다. 임기를 4개월 남긴 정부의 오기 때문에 우리 원전산업의 미래가 발목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세무사 시험은 죽었다’ ‘5060 국세청 공무원을 위한 몰아주기다.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지난주 서울 동대문구 한국산업인력공단, 세종시에 있는 국세청과 기획재정부 앞에 이런 문구가 적힌 근조 화환들이 놓였다. 세무사 시험 출제 과정에서 공정성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생각하는 수험생들이 항의차 보낸 것이다. ▷발단은 9월 4일 치러진 올해 세무사 2차 시험 중 ‘세법학 1부’ 과목에 출제된 상속·증여세 관련 20점짜리 서술형 문제였다. 시험을 주관한 산업인력공단 측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인정할 정도로 어려워 응시자의 82%가 ‘과락’인 40점 미만의 점수를 받았다. 다른 과목 과락 비율 15∼46%보다 현저히 높다. 세무사 시험은 세법학 1, 2부, 회계학 1, 2부 등 네 과목에서 100점 만점에 평균 60점을 넘기면 합격이지만 한 과목만 과락이 돼도 탈락이다. ▷2차 시험 응시자 4597명 중 706명이 합격하고 3891명이 떨어졌는데 세법학 1부에서 과락을 받은 3200여 명 중 다수가 탈락했다. 이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 건 세법학이 세무 공무원 출신 지원자들에게는 면제되는 과목이란 점이다. 국세청, 기획재정부 세제실 등에서 20년 넘게 세무를 담당한 공무원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아 세법학 두 과목을 빼고 회계학 두 과목만 시험을 치른다. 결과적으로 5년간 한 해 8∼35명이던 20년 이상 공무원 출신 합격자가 올해 151명으로 급증하자 세법학 탓에 떨어진 청년지원자들의 분노가 세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초등교사 임용시험 응시자 22명도 지난달 치러진 1차 시험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시교육감 등을 상대로 제기했다. 수도권의 한 교대 모의고사에 나왔던 문제와 소재, 키워드가 비슷한 문항들이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 등 과목에서 7, 8개나 출제돼 문제 유출의 의혹이 짙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응시자들은 “특정 학교 모의고사 적중률이 높다는 의심이 이전부터 있었는데 올해는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 문항 출제오류에 이어 세무사, 교사임용 시험 등 정부나 정부 대행기관이 주관한 시험에서 잇따라 문제가 발생하면서 국가시험의 신뢰성은 크게 훼손됐다. 청년들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풍요와 성장의 시대를 살아온 부모 세대가 바로 자기 앞에서 문을 쾅 닫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공정과 형평에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감해진 청년들의 눈높이를 못 따라잡는 허술한 국가시험 관리 체계는 서둘러 손봐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요즘 문재인 대통령과 선 긋기에 바쁘다. ‘이재명의 민주당’ 선언과 “저는 윤석열도 아니고 문재인도 아니다. 이재명은 이재명이다”라는 발언에서 예고된 변신이다. 부동산, 탈원전 정책부터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 지원, ‘K방역’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버지보다 나은 자식이 되는 걸 승어부(勝於父)라 하는데 문 대통령의 정책 실패를 밟고 일어서야 대권가도가 열리는 이 후보에게 승어문(勝於文)은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선거 코앞에서 바뀌는 게 문제지만 심하게 왜곡된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를 바로잡는 건 옳은 일이다. 현 정부가 백지화한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내비친 건 탈원전의 폐해를 고려할 때 다행스럽다. “전 세계에서 방역 잘했다고 칭찬받는데 방역 그거 누가 했나”란 비판도 K방역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절대 놓지 않는 문 대통령의 귀에는 거슬리겠으나 틀린 말이 아니다. 몇몇 정책에 대한 이 후보의 급변침과 달리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경제를 보는 그만의 남다르고 위험한 시각이다. 자영업자에 대한 소극적 지원을 비판하면서 “평범한 나라들은 국가채무비율이 평균적으로 11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45%에 불과하다. 100% 넘는다고 특별히 문제가 생기나”라고 한 데서 이런 점이 드러난다. 그가 ‘평범하다’고 한 곳들은 모두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축통화국이거나 재정건전성 악화로 경제위기를 겪은 나라들이다. 달러, 유로, 엔화를 찍는 나라와 한국 같은 비기축통화국 부채비율은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기축통화국은 국가채무 100%를 넘겨도 국채를 사줄 나라가 있지만 비기축통화국은 빚이 급증해 부도위험이 커지면 국채가 안 팔리거나 훨씬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기축통화국의 평균 부채비율이 50.5%이고 60%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보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현 정부 5년간 36%에서 50%로 급등한 한국의 부채비율은 차기정부 말기인 2026년 66.7%로 높아진다. 경제학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이 후보의 주장은 ‘독자적 통화를 가진 나라의 정부는 무한정 돈을 찍어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현대화폐이론(MMT)’을 빼닮았다. 이 후보 주변엔 MMT와 흡사한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미국 민주당 소수 급진파 의원들이 주장하지만 정통 경제학계는 이단 취급하는 이론이다. 섣불리 실행하면 국가부도를 맞기 십상이다. “가난한 사람은 이자를 많이 낸다, 그러나 부자는 원하는 만큼 저리로, 장기로 빌려준다. 정의롭지 않다”는 발언도 그의 경제상식이 일반 국민과 많이 다르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문 대통령이 3월에 “신용이 높으면 낮은 이율, 신용이 낮으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가 “대통령이 신용 시스템의 기본조차 이해 못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대변인 실수로 묻고 적당히 넘어간 일이 없었으면 이 후보의 말이 훨씬 그럴듯하게 들릴 뻔했다. ‘소득주도 성장’이 마차가 말을 끄는 것만큼 황당한 주장이란 걸 국민 모두가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다행히 국가경제를 모르모트 삼아 실험을 감행한 문 정부에서 독한 백신을 맞은 덕에 우리 사회는 포장만 그럴듯하고 작동하지 않거나 부작용이 더 심한 경제정책에 면역력이 생겼다. 이 후보가 일부 정책에서 ‘문 정부 넘어서기’에 성공하더라도 국민의 높은 경제 이해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만 계속한다면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심긴 어려울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지난달 서울 2분위(하위 20∼40%)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KB부동산 기준 8억7104만 원으로 전달보다 0.92% 떨어졌다. 2019년 10월 이후 2년 1개월 만의 하락이다. 한 단계 위인 3분위(하위 40∼60%) 아파트 값도 11억70만 원으로 0.05% 내렸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팔겠다’는 사람이 ‘사겠다’는 사람보다 많은 상황도 2주 연속 이어지고 있다. ‘집값 정점론’이 점차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구)’에 몰려 있는 서울 중저가 아파트값 하락은 시장 흐름이 바뀐다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집값은 오를 때 서울 강남지역 등의 고가 아파트가 가격을 이끌고, 내릴 때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아파트가 먼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수도권 전체 아파트를 가격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중위 아파트’ 매매가가 지난달 7억7387만 원으로 10월보다 2.3% 내린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지난달 서울 최하위 20% 아파트 매매가는 5억7094만 원으로 전달보다 1.35% 올랐다. 매매가 6억 원 이하로 제한된 서민용 고정금리 대출상품인 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있어서 청년, 서민층의 막판 매수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4분위(상위 20∼40%), 5분위(최상위 20%) 고가 아파트값이 여전히 오르는 건 매물이 부족한 영향이 크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의 ‘하우스 푸어(집만 가진 가난한 사람)’ 발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말 노 장관은 “집값이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일부 강남지역 아파트값이 최대 40%까지 떨어졌던 2012, 2013년의 집값 폭락을 상기시켰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간 가격이 떨어져 손해 볼 수 있으니 추격 매수를 자제하라는 경고였다.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 다르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당시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25%까지 올렸지만 이번엔 1%대 후반에서 멈출 공산이 크다. 또 그때는 아파트 공급이 몰리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했고 이명박 정부가 강남·서초구에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한 ‘반값 아파트’ 때문에 “집 살 필요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됐다. ▷결국 아파트값 하락을 추세로 굳히려면 서두르지 않아도 내 집 마련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믿음을 실수요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정부가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 확대를 서두르고 있지만 실제 공급은 일러야 2024∼2025년에나 이뤄진다. 차기 정부가 초기부터 민간 주택공급을 확대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간신히 시작된 집값 안정의 기회마저 놓칠 수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높은 성과를 낸 사람에겐 돈으로 보상(Pay by Performance)하고, 잠재적 성장역량이 높은 사람에겐 승진으로 보상(Promotion by Potential)하라.’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이 저서 ‘초격차’에서 강조하는 인사 원칙이다. 권 고문은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성과와 승진을 기계적으로 연동시켜 매출 증가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승진시킨다. 무조건 승진시켜 보상한다면 나중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조만간 발표할 새 인사제도도 ‘성과’와 ‘업적’이 좋은 임직원에겐 금전 보상을, ‘능력’과 ‘역량’이 탁월한 인재에 대해선 발탁 인사를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5년간 권력을 맡길 대통령을 고르는 일은 대기업 오너가 그룹 주력사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일과 비슷하다. 과거의 성과나 현란한 개인기에 현혹돼 CEO를 잘못 뽑았다가 추락한 국내외 기업이 적지 않다. 한국의 대내외 ‘사업 환경’이 나쁜 쪽으로 급변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나라의 CEO를 잘 고르는 일이 중요해졌다. 어떤 경쟁에서든 최상위 2인에 들 정도면 자랑할 만한 업적이 많은 법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 경기지사를 지내며 청년기본소득 등 복지정책으로 민심을 얻었다. 계곡정비사업 등 눈에 보이는 업적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26년간 검사로 일하며 전직 대통령 등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철저히 수사했다. 검찰총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한 것이 대선 후보로 이어지는 결정적 성과가 됐다. 다만 인물을 업적으로 평가할 땐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 후보의 현금복지는 재정자립도 최고 지자체의 장이 아니면 내기 어려운 실적이었다. 대장동 개발은 공익환수 규모가 뻥튀기됐다는 비판, 측근 비리 의혹이 가시지 않았다. 윤 후보는 고발사주 의혹 수사가 진행 중이고 자신을 발탁한 정권과 갈등을 통해 생긴 ‘네거티브성 업적’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인의 성과를 ‘대통령 승진’으로 보상하려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게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이다. 교육학자이자 경영학자인 로런스 피터는 수직형 조직에서 실적 좋은 임직원을 계속 승진시킬 경우 조직의 정점에는 그 자리에 필요한 역량을 전혀 갖추지 못한 인물이 오르기 쉽다는 점을 발견했다. 치르는 선거마다 승리한 성과를 토대로 대통령에 올랐지만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소통능력, 포용적 리더십을 못 갖췄던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예다. 역량 면에서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상반된 캐릭터다. 이 후보가 두뇌회전이 빠르고 순발력 있는 ‘제너럴리스트’라면, 윤 후보는 우직하게 외길을 걸어온 ‘스페셜리스트’다. 자질로 볼 때 이 후보는 형수 욕설에서 나타난 공격성, 윤 후보는 손바닥 왕(王)자로 드러난 허당 기질이 약점이다. 리더십 스타일도 이 후보가 정책 하나하나를 챙기고 수백만 원 결재까지 직접 사인하는 ‘만기친람형’, 윤 후보는 부하들에게 권한을 넘겨주고 책임은 떠안는 ‘형님형’으로 많이 다르다. 이 시대의 대통령에 적합한 역량, 자질이 어느 쪽인지 판단은 유권자들 몫이다. 과거 삼성에선 CEO로 키워야 할 인재에게 가끔 의도적으로 ‘물 먹이기 인사’를 했다고 한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란 억울함, 회의 속에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런 상황에서도 의연히 대처할 깜냥이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대통령 가도에 놓인 높은 장애물들을 두 후보가 어떤 표정으로 극복해 가는지도 남은 100여 일간 꼼꼼히 살필 관전 포인트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영장류(primates)에 대한 영상을 계속 보시겠습니까?” 올여름 미국의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이런 페이스북 알림을 받았다. 어쩌다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추적해본 그는 경악했다. 열어본 영상 중 백인 경찰과 말다툼하는 흑인 남성을 페이스북의 안면인식 인공지능(AI)이 고릴라, 침팬지 등과 같은 영장류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올해 9월 공개되자 페이스북은 “분명히 용납할 수 없는 AI 오류”라며 사과했지만 인종차별 논란에 곤욕을 치렀다. ▷최근 내부자 폭로 등 각종 악재를 맞아 회사명을 ‘메타’로 바꾼 페이스북이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이달 안에 종료하기로 했다. 축적된 10억 명분의 관련 자료도 삭제한다. 메타 측은 “지속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기술의 사용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전 동의 없는 생체정보의 수집, 저장을 금지한 미 일리노이주의 법을 위반했다가 올해 3월 6억5000만 달러(약 7680억 원)의 합의금을 물게 된 게 직접적 계기다. ▷2010년 말 시작된 페이스북 안면인식 기술은 AI를 활용해 영상,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기술이다. AI는 사용자의 사진들을 분석해 식별하고 아는 사람이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을 때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10년이 넘는 데이터 축적과 학습으로 페이스북 사진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인물 이름이 뜰 만큼 정교해졌다. 친구끼리 추억을 쉽게 공유하게 해준다고 페이스북은 홍보했지만 영장류 사건 같은 착오와 사생활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에선 안면인식 기술의 무차별적 사용이 큰 사회 문제다. 작년 11월엔 중국 산둥성의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방문한 남성이 화제가 됐다. 부동산 개발업체가 첫 방문에 계약하면 할인 혜택을 준다며 안면정보를 모으자 이를 피하려고 헬멧을 쓴 것이다. 중국 정부의 청소년 이용시간 제한조치 때문에 게임업체들이 안면인식 기능을 강화한 뒤 일부 청소년이 심야에 잠자는 부모 얼굴에 스마트폰을 몰래 들이대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한국에선 올해 초 안면인식 폐쇄회로(CC)TV와 AI를 연계한 코로나19 확진자 추적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던 경기 부천시가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다. 방역이 아무리 중요해도 AI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소수민족 감시 등에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는 중국은 올해 7월 최고인민법원이 사전 동의 없는 안면인식 기술의 이용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 한국도 안면인식 기술로 인한 인권 침해를 방지할 법체계 정비를 서두를 때가 됐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직장, 학교에 다니거나 단체게임을 할 때 같은 부서, 같은 팀에 있는 게 득이 되는 사람이 있다. 이해타산에 밝고 잘잘못 따지길 주저하지 않으며 때로 유능하기까지 한 ‘빅 마우스(Big Mouth)’들이다. 다른 팀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우리 편에 손해나는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목소리를 높인다. 실적이나 성과가 타 팀과 비교될 경우 이런 사람이 리더면 가만히 앉아서도 떡고물이 생긴다. 다만 이런 사람이 남의 편이 되면 생각이 확 바뀔 수 있다. 그가 자기편의 작은 손해를 과하게 문제 삼거나 이익을 더 챙기려고 다투는 걸 보면서 중요한 삶의 교훈을 얻게 된다. ‘내 편일 때만 좋은 사람도 있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수장을 맡았던 성남시, 경기도 주민들은 목소리 큰 지자체장 덕을 많이 봤다. 그가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임대주택 부지 대신 받은 1822억 원 중 942억5000만 원은 지난해 성남시민에게 10만 원씩 돌아갔다. 올해 9월 이 후보가 경기지사로서 내린 공익처분 때문에 고양 김포 파주 시민들은 지난달 말부터 일산대교를 건널 때 1200원의 통행료를 절약하고 있다. 경기도민은 ‘지역화폐’란 이름의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생필품 구매비 등을 5∼10% 아낄 기회도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 같은 사안을 이 후보 상대편에서 불이익을 당한 이들 눈으로 보면 사정이 많이 달라진다. 대장동 ‘민관 개발’로 땅을 강제 수용당한 원주민들은 시세의 절반에 땅을 넘겨 손해를 봤다. 성남시가 임대아파트를 짓는 대신 수익을 챙기면서 이 지역 서민들은 저렴한 새 아파트에 거주할 기회를 잃었다. 일산대교 무료화로 국민연금이 잃을 최소 2000억 원, 많게는 7000억 원의 기대수익은 다리를 이용할 일이 없는 다른 지역 경기도민들까지 두고두고 세금으로 물어줘야 한다. 국민연금이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지금 30대가 노인이 됐을 때 찾아올 연금 고갈 시기가 손해 규모만큼 앞당겨져 더 불안한 노후를 맞을 수도 있다. 지역화폐에 관해선 작년 10월 국책연구기관과 이 후보 간에 한바탕 논쟁까지 벌어졌다. 지역화폐의 경제 효과를 낮게 평가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를 두고 이 후보는 “얼빠졌다”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비난했다. 지역경제 활성화의 특효약처럼 홍보해온 지역화폐에 대한 비판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액면가 8%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지역화폐는 지자체가 주민, 지역상인에게 생색내기에는 좋지만 전체 국가경제엔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이 ‘예산 따먹기’ 경쟁에 나서면서 올해 지원 예산은 1조522억 원으로 급증했다. 3분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손해보상에 썼으면 44%를 덧붙여 나눠줄 수 있는 큰돈이다. 이런 ‘내 편 챙기기’ 정책을 통해 이 후보는 많은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그런 그가 이젠 전 국민에게 연 100만 원, 청년 200만 원씩 나눠준다는 ‘기본소득’을 내걸고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전 국민이 자기편이 돼주길 바라는 것일 게다. 전초전으로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으로 짜는 내년 예산안에 이재명표 재난지원금 15조∼25조 원을 반영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국가부채 비율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정부에 훈수까지 뒀다. 그런데 돈을 호주머니에 꽂아준다는데도 이 후보의 청년층 지지율이 영 신통치 않다. 나눠주는 돈이 자신들이 평생 일해 세금으로 갚아야 할 부채라는 걸 눈치챈 게 아닐까. 하긴 나랏빚 1000조 원을 넘기면서 초단시간 알바만 늘린 정부를 경험했다면 어떤 게 진짜 내 편이어서 하는 정책인지, 아니면 결국 내게 불이익으로 돌아올 정책인지 깨달을 때도 됐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일본의 가전양판점 노지마는 지난해 7월 직원들이 65세 정년 이후에 1년 단위로 재계약하며 80세까지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정년 제도를 바꿨다. 하지만 “더 오래 일하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지자 이번 달부터 아예 80세 상한을 없앴다. 환갑은 물론이고 칠순, 팔순, 구순 잔치를 사무실에서 회사 동료들과 함께 여는 일이 많아지게 됐다. ▷100세 이상 인구만 8만6000명이나 되는 초고령사회 일본은 100세 시대를 넘어 ‘100세 정년 시대’를 향하고 있다. 노지마 직원 3000여 명은 건강만 받쳐 준다면 100세가 돼도 하루 5시간, 주 4일 일하고 월 12만 엔(약 124만5000원)을 받는 비정규직 시니어 직원으로 매장에서 전자제품을 팔 수 있다. 올해 4월 세계 최대 지퍼 제조업체 YKK그룹이 65세 정년을 없애는 등 ‘정년 70세’를 권장하는 일본 정부의 정책에 호응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50대까지 일하는 것도 과하다고 생각하는 파이어(FIRE)족들에게 100세 정년은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을 달성해 30, 40대에 퇴직하고 여생을 즐기기만 하면서 보내기에 ‘인생 100세’는 너무 길다는 게 문제다. 취업플랫폼 사람인의 여론조사에서 ‘정년 후에도 일하고 싶다’는 비율은 50대 이상(94.8%)에서 제일 높았지만 40대(89%), 30대(86%), 20대(78%) 등 모든 연령층이 정년 후에도 더 일하길 원했고 선호하는 은퇴 연령은 평균 72.5세였다. ▷퇴직 후 한국인의 주요 선택지 중 하나였던 자영업 사장님의 길도 점점 험난해지고 있다. 자영업은 망하거나 본인이 스스로 사업을 접기 전에는 은퇴가 없다는 게 최대 장점이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란 정책 리스크, 코로나19 사태라는 대형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최저로 떨어진 근로자 중 자영업 취업자 비율도 당분간 늘어나기 어렵다. ▷한국은 일본보다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은퇴자의 고용 연장, 현재 60세인 법정 정년 연장 등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을 겪는 청년층 표심을 자극할까 봐 정부와 정치권이 본격적인 공론화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 중 고용연장은 은퇴와 국민연금 수령 개시 시점 사이에 끼어 있는 소득절벽의 충격을 줄이고,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늦춰 미래세대 부담을 덜어줄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다. 내년 3월 선출될 차기 대통령에게 취임 초부터 맞닥뜨릴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하나의 주장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교묘하게 다른 주장으로 넘어갔다.” “그는 언제든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비전을 믿도록 많은 사람을 기만할 수 있었다.” 최근 10주기를 맞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옛 동료들은 독선적 성격의 잡스와 대화할 때 현실이 묘하게 뒤틀리는 경험을 했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공상과학 영화 ‘스타트렉’에서 외계인이 정신력으로 만든 가상공간에 빗대 이 현상을 ‘현실 왜곡장’이라 불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한국 정치판에서 드물게 자신의 ‘치적’과 고유 브랜드 정책을 세일즈하는 정치인이다. 국민 세금에서 지원금을 나눠줘도 꼭 ‘경기도 기본소득’으로 이름 붙이고, 국민은 별 관심도 없는 계곡 정비사업 ‘원조’ 자리를 놓고 같은 당 소속 하위 지자체장과 신경전을 벌이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성과, 정책 마케팅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그이기에 최대 치적으로 자랑하던 대장동 개발에서 터진 비리 의혹은 참기 힘든 일일 것이다. 곧바로 “단군 이래 최대규모 공익환수 사업” “사과할 일이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라고 맞받아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본인 입에서 나온 “(대장동 사업은) 내가 설계한 것”이란 말 때문에 공격받자 “노벨이 화약 발명 설계를 했다고 해서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설계한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이상야릇한 논리도 폈다. 납치한 항공기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들이받아 무너뜨린 9·11테러 비유를 굳이 들어야 한다면 노벨이 아니라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가 맞겠지만 열혈 지지자들로 둘러싸인 이재명식 현실왜곡장 안에서 그런 건 별문제가 안 된다. 그렇다 해도 10여 년간 손발을 맞춘 ‘측근 아닌 측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가 70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등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다만 지난 주말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 후보와 관련한 국민의 관심이 온통 대장동에만 쏠리는 건 문제가 있다. 그는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다른 나라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하지 못할 이유는 될 수 없다”며 ‘기본소득’ 공약 추진 의지를 확인했다. 기본소득은 천문학적 비용이 들지만 효과가 불투명해 세계 어느 나라도 도입하지 않은 정책이다. 1000조 원 넘는 나랏빚을 물려받을 차기 정부가 한국을 초유의 기본소득 실험장으로 만드는 건 국가적 경제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위 10%에게 국토보유세를 걷어 재원을 만들면 된다면서 조세저항은 염두에도 없다. 과일가게에서 주인이 권한 수박을 사왔는데 속이 곯았다면 같이 사온 복숭아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게 정상이다. 대장동 개발이 불량품으로 판명 난다면 기본소득 등 이재명 브랜드 공약들에 문제가 없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서민을 살린다는 ‘소득주도 성장’이 저소득층 일자리를 없애고,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는 정부에서 집값이 갑절로 뛰고, 세계가 칭찬한다는 ‘K방역’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쓰러지는 뒤틀린 현실을 우리는 4년 반 가까이 경험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란 한 명의 공직자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드리겠다”고 힘줘 강조하지 않아도 한 명의 대통령이 얼마든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국민은 너무 잘 안다. 수천억 원이 아이들 용돈처럼 오간 대형 비리 사건을 눈앞에 두고도 ‘성공한 민관개발’이라고 계속 우기는 정치인을 국민은 신뢰하기 어렵다. 대장동 사건은 이 후보의 성과와 공약들의 겉포장을 뜯어내고 냉정하게 내용물을 살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올해 3월 ‘꼬북칩 초코츄러스 맛’을 중국 시장에 내놓고 초코파이의 뒤를 이을 히트상품으로 키우고 있는 오리온은 중국 국경절 연휴(10월 1∼7일)를 앞두고 복병을 만났다. 랴오닝성 선양에 있는 과자 공장이 현지 당국으로부터 ‘전기 사용 제한’ 통보를 받고 30일까지 생산이 중단된 것이다. 오리온 측은 베이징 등 다른 지역 공장의 생산을 늘려 대응할 계획이다. ▷중국 23개 성 중 10여 개 성의 전력공급 사태가 특히 심각하다. 포스코의 장쑤성 스테인리스공장 생산라인 일부가 17일부터 멈춰 서는 등 현지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장쑤성 정부는 철강, 시멘트 등 전력 사용량이 많은 기업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전력공급을 제한했는데 국경절 연휴가 끝날 때까지 제한조치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작년 10월 중국 정부가 내린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가 전력난의 직접적 원인이다. 호주가 3년 전 5세대 이동통신망 장비 입찰에서 화웨이 등 중국 업체 참여를 배제하며 시작된 양국 갈등이 작년 코로나19 발원지 국제조사의 필요성을 호주 정부가 주장하면서 격화됐고 호주산 석탄, 와인 등의 수입 금지로 이어졌다. 중국의 전력소비는 작년보다 15% 늘었는데 발전용 석탄의 60%를 의존하던 호주산 수입이 끊기자 석탄 값은 50% 폭등했다. 전력의 49%를 공급하는 중국의 화력발전소들은 비싼 석탄 값 때문에 전력생산 확대를 꺼리고 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광둥·저장·장쑤성 등 남동부 산업벨트의 충격이 제일 크다. 장쑤성에 진출한 대만 반도체 공장 일부가 멈춰 서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더 줄고 세계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차질도 심해지게 됐다. 미국의 애플, 테슬라도 부품 공급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동북 3성에선 거리의 신호등이 꺼졌고 잦은 정전 때문에 양초 사재기에 나서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전력난으로 중국의 올해 성장률이 당초 예상됐던 8%대 초반에서 7%대 후반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바람이 약해져 랴오닝성 풍력 발전기들이 제 역할을 못 하고, 남서지역의 가뭄으로 쓰촨성 수력발전소 전기생산량이 감소한 것도 전력난의 원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표한 ‘206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중국 정부가 전력공급을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 파란 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는 추측까지 나온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무역보복과 친환경정책의 조급한 추진으로 ‘세계의 공장’에서 생산시설들이 멈춰 서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과로사하는 자영업자가 나오겠다.’ 정부 경제정책이 시차를 두고 어떤 사회적 사건으로 이어질지 예상하는 건 경제기자를 오래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이듬해 최저임금 10.9% 인상이 결정된 2018년 7월 떠오른 섬뜩한 예감은 이런 거였다. 전년 16.4%에 이은 2년 연속 10%대 인상. 편의점주들 사이에선 이미 “아르바이트생 해고하고 부부 맞교대로 24시간 가게를 지키느라 생활이 파괴됐다”는 비명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는 ‘월급 주는 자’가 아닌 ‘월급 받는 자’의 편에 섰다. 악화한 여론을 의식해 청와대는 2019년 2월 자영업자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부산 영도에서 연탄가게를 했던 부모 얘기를 꺼내며 “저는 골목 상인의 아들이다. 여러분의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은 “길게 보면 결국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되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편의점주들 얼굴엔 피로가 쌓여갔다. 직원이 줄어든 음식점의 서빙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자영업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주범’으로 높은 수수료와 가맹료를 받는 신용카드 회사와 편의점 본사, 임대료를 올리는 상가 주인들을 돌아가며 표적 삼아 공격했다. 그래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주 15시간 이상 일 시킬 때 줘야 하는 주휴수당을 아끼려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져 ‘초단시간 알바’가 저소득층 일자리의 표준이 됐다.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을 쓰러뜨린 건 코로나19 사태였다. 작년 여름 정부의 영업시간, 모임인원 제한이 본격화하면서 손님 끊긴 노래방, PC방의 폐업이 줄을 이었다. 매출이 뚝 떨어진 음식점, 주점 주인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마다 음식배달, 대리운전에 나섰다. 이렇게 버틴 지 1년. 23년간 장사해온 마포 맥줏집 여사장은 최근 원룸 보증금을 빼서 직원들 월급으로 나눠 주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선택을 하는 주점, 치킨집 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직원들까지 최대 다수 국민에게 현금 쥐여줄 방법을 고민하는 정부, 여당이 자영업자들에게 할애한 지원금은 이들에게 계속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한쪽에선 자영업자인 택배노조 기사들로부터 집단괴롭힘을 받던 40대 자영업자 택배대리점주가 목숨을 끊었다. 현 정부 들어 합법 노조로 인정받고 목소리가 커진 민노총 가입 자영업자와 제 몸 하나 챙기기도 힘겨운 보통 자영업자 사이에 벌어진 ‘자-자(自-自) 갈등’의 결과였다.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카카오, 네이버 등 플랫폼업체들의 행태엔 문제가 있지만 최근 정부, 여당의 일사불란한 플랫폼업체 공격에서 자영업자 고통의 책임을 카드사, 편의점 본사로 돌리던 때의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올해 8월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1990년 이후 31년 만에 최저로 줄었다.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0% 선으로 낮아졌고, 10명 중 4명이 폐업을 고민하고 있어 ‘선진국 수준’ 자영업자 비중인 10%대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한국 경제가 언젠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던 ‘자영업 구조조정’에 유일하게 성공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길한 예감은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현실이 돼가고 있다. 이 모든 게 자영업자들에게 늘 미안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너무 커서 무너질 수가 없다.” 작년 10월 홍콩의 한 경제지는 중국 최대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그룹 관련 기사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디폴트(채무불이행)가 현실화할 경우 파장이 너무 커서 정부가 손놓고 볼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하지만 11개월이 지난 지금 헝다가 ‘중국판 리먼 위기’의 도화선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실 부동산 채권에 투자했다가 2008년 무너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미국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에서 따온 말이다. ▷작년 말 헝다그룹 부채는 1조9700억 위안(약 350조 원)으로 올해 7월 한국 국가채무(914조2000억 원)의 38%나 된다. 중국 280개 도시에 870여 개 아파트 단지를 짓고 전기차, 리조트, 스포츠 사업에 진출하는 자금을 금융권 차입에 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내년 가을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결정을 앞두고 국민 불만이 큰 부동산 시장 과열을 통제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돈줄을 조이자 자금난이 심화돼 파산설이 돌고 있다. ▷쉬자인(許家印·63) 헝다그룹 회장은 재작년 가을 ‘신중국 건국 70주년 행사’ 때 시 주석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 오른 대표적 ‘홍색 자본가’다. 유명 축구클럽 ‘광저우 헝다 구단’을 2010년 인수한 게 축구를 좋아하는 시 주석 때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최고 권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허난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마오쩌둥 사후 문화혁명이 끝나자 국가보조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1997년 광저우에 헝다부동산을 열어 부동산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헝다 사태는 전형적인 ‘회색 코뿔소 현상’이란 분석이 나온다. 권력의 지원을 받으며 차입을 통해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사업의 위험성을 누구나 알지만 ‘별일 있겠어’ 하는 식으로 넘어가다가 현실로 닥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돈을 빌려준 중국과 해외의 금융회사들은 헝다의 자금난이 심화하는데도 ‘설마’ 하다가 지난달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투기단계로 떨어뜨리자 비상이 걸렸다. ▷2017년 중국 1위 부호에 올랐고 작년에도 알리바바의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에 이어 3위 부자 자리를 지킨 쉬 회장의 운명 역시 풍전등화다. 쉬 회장은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 정책이 없었다면 헝다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덩의 실용주의 노선이 급속히 힘을 잃고 공산당 통제를 강화하는 시 주석의 ‘중국식 시장경제’로 급속히 전환하면서 문혁 이후 성장한 개혁개방 세대가 중국의 경제무대에서 빠르게 퇴장하고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공기업 취업준비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가 연 행사 때문에 ‘소셜테이너’ 또는 ‘폴리테이너’로 불리는 김제동 씨가 최근 곤욕을 치렀다.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대담 내용을 담은 책의 출판 이벤트로 카페 회원 100명에게 인생 상담을 해주겠다고 했더니 “이 사람이 취업에 대해 뭘 아냐”는 신경질적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비대면으로 지난달 19일 열린 이벤트는 주최 측이 우려한 정치, 이념 갈등 없이 진행됐다고 한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 ‘공감’과 ‘힐링’의 아이콘이었던 그로선 청년들의 급변한 시선에 격세지감을 느꼈을 것이다. “목수의 망치와 판사의 망치는 가치가 같아야 한다”는 발언에 환호하던 청년들이 무료로 상담해 주겠다는데도 “입에 발린 소리로 위로하는 걸 고민상담이라고 할 거면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청년들의 속으로부터 뭔가가 크게 달라졌다. 김제동 하면 역시 ‘헌법 강의’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입니다. 행복하십니까? (아니라면) 헌법 10조 위반입니다”면서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제 강의도 많이 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는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거 만 원 정도 돼야 사람이 좀 살 것 아닙니까. 우리 동네 아르바이트하는 ○○(여성 이름)라는 애가 있어가지고 ‘최저임금 만 원 되면 어떨 것 같아?’라고 했더니 행복할 것 같대요. 그거 못 해줄 이유 없지 않습니까. (중략) 지들끼리만 해 처먹어서 그렇습니다.” 낮은 최저임금을 재벌과 결탁한 부패 정부 탓으로 돌리는 그의 발언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 정부는 임기 초 그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2018, 2019년 2년간 30% 가까이 최저임금을 올렸다. 하지만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이 직원을 줄이고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지자 당황해 2020년 2.9%, 2021년 1.5%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대선이 있는 내년 인상률은 5.1%로 다시 올라 시급은 9160원이 됐고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1만1003원으로 1만 원을 넘긴다. 올해 6월 광주 카페 주인이 “진짜 서민의 삶을 1도 모르는 패션좌파들이 ‘시급 만 원도 못 줄 것 같으면 장사 접으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김제동 씨에겐 해당되지 않는 비판이다. 그는 일찍이 자영업자 부담을 걱정하며 친절하게 대책까지 제시했다. “최순실 일가 10조 원 저거 뺏어오고, 대기업들 세금 좀 높이고, 고소득자들 세금 50% 정도로 조정하고, 국민 1% 정도만 세금 더 내서 우리 말고,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이 내는 구조, 그게 조세(租稅) 아닙니까. (중략) 그들에게 세금 더 걷으면 돼요. (최저임금과 1만 원의 차이) 3000원 정도 국가에서 지급하면 되잖아요.” 10조 원은 어디 갔는지 몰라도 현 정부는 고소득층의 소득세, 법인세, 종부세율을 높였고 청년 ‘세금알바’를 수십만 개 만들었는데 만족하는 청년은 별로 없다. 각종 지원금을 주는데도 자영업자·중소기업주들은 청년 채용을 꺼린다. 내년 인상률 결정 전 나온 설문조사에서 청년을 포함한 구직자 10명 중 6명은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내려야 한다고 답했다. 높은 최저임금이 ‘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걸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청년들이 빠르게 경제에 눈을 뜨면서 김제동 씨는 ‘선택적 분노’와 ‘선택적 침묵’에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래도 이것만은 그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그때 그 동네 알바생은 원하는 직장에 취직했는지, 혹시 그 알바 자리마저 잃은 건 아닌지, 현 정부 4년 3개월은 그에게 행복추구권을 돌려줬는지, 그 알바생은 지금 행복한지 말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1차 소득격차 축소, 2차 세금 및 사회보장제도, 3차 부유층과 기업의 자발적 기부.’ 17일 중국 공산당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다 같이 잘살자’는 뜻의 ‘공동부유(公同富裕)’를 새 화두로 제시하면서 내놓은 실천 계획이다. 눈치 빠른 중국 기업인들은 ‘부유층, 기업의 기부’란 말을 듣자마자 회사 재무책임자를 호출했을 것이다. ▷중국의 매출 3위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는 24일 농촌 문제 해결을 위해 100억 위안(약 1조8000억 원)을 내기로 했다. 창업 후 줄곧 적자였고 흑자 전환된 올해 2분기 순이익도 24억1500만 위안이어서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기부다. 하지만 시 주석 발언 다음 날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가 500억 위안을 헌납한 뒤 핀둬둬 같은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에선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주도하면서 시작된 ‘선부론(先富論·일부가 먼저 부자가 돼 부를 확산시킨다는 이론)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10월 3연임 결정을 앞둔 시 주석으로선 빅테크들의 기부를 받아 국민에게 나눠주면 정의로운 이미지를 세우면서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도 잠재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중국식 기부는 미국식 기부와 차이가 크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자기 힘으로 창업해 세계적 기업을 키운 뒤 은퇴를 전후해 기부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분야에 재산의 절반 이상을 쾌척한다. 반면 보조금, 정치적 후원을 통해 기업의 성장 과정에 깊이 개입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대놓고 ‘사회에 대한 보답’을 요구하고 있다. 거부했다간 알리바바의 마윈 창업자처럼 집에서 그림만 그리게 될 수 있다.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부를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기업 옆구리 찔러 기부 받기’ 행태는 낯설지 않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기업에 정부와 정치권은 응분의 책임을 요구했고, 오너 일가가 사재(私財)를 출연해 기부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곤 했다. 코로나19 이후 정치권에서 제기된 ‘기업이익 공유’ 주장들은 그 잔재인 셈이다. ▷한국의 기부 문화는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재산 절반 이상 기부를 약속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 등은 맨바닥에서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이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산을 물려받은 삼성 일가는 1조 원의 기부금과 함께 국보급 미술품 수만 점을 기부해 한국의 문화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기업 손목 비틀기를 진짜 기부와 헷갈리는 지금의 중국 수준에 한국이 머물렀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모습들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극심한 가뭄과 한파로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브라질의 작황이 악화하면서 국제 커피콩 시세가 급등하고 있다. 세계적 기상이변이 부른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상승) 현상인데 성인 1인당 연간 350잔 넘는 커피를 마시는 한국인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머잖아 기후변화 걱정 없이 품질 좋은 ‘한국산 커피’를 마시게 될지 모른다. 지구 반대편과 생육조건을 똑같이 만들어주는 스마트 팜 기술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2019년부터 경북 포항에서 커피 재배에 도전해온 김일곤 씨(54)는 조만간 1000평짜리 스마트 팜 시설을 지어 커피나무 2000그루를 심기로 했다. 토질만 맞으면 커피 생장에 필요한 열대고원 기후는 자동온실 등 농업기술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강원도 일부 지역에선 커피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경북 김천시에서 멕시코 고추 할라페뇨를, 전남 영광군에선 열대과일 애플망고를 키우는 등 기후, 계절의 한계를 뛰어넘는 첨단 농업이 확대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 창업하는 창농(創農)에 미래를 건 청년들도 많아지고 있다. 작년에만 20, 30대 1362가구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재광 일산쌀농업회사법인 대표(33) 같은 청년농부들은 사람 없이 움직이는 자율주행 트랙터로 경기 고양시 논에 모내기를 하고, 드론을 조종해 농약을 친다. 고령화와 농촌인구 감소로 외국인 근로자 없이 농사짓기 힘든 현실을 스마트 농법으로 극복한 것이다. 스마트 팜 농장을 모바일 기술로 연결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스마트폰을 조작해 갑작스러운 날씨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 청년 농민은 땅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서울 서초구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 옛 지하상가는 올해 ‘메트로 농장’으로 탈바꿈했다. 스마트 팜 솔루션업체 넥스트온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밑에서 3, 4주간 키운 샐러드 채소들을 백화점 식품관, 프랜차이즈 카페에 공급하고 있다. 교육, 문화시설이 부족해 농촌에 가서 살기 꺼리는 사람들 대신 농업이 도심으로 찾아온 셈이다. 올여름 뜨거운 날씨로 야채 수급에 차질이 빚어진 뒤 유통업체들은 스마트 팜 농장을 신선한 채소 공급원으로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도시의 삶이 팍팍해질수록 목가적 농촌생활을 꿈꾸는 이들은 늘어난다. 하지만 첨단기술로 업그레이드된 농업은 이미 이런 전원생활 수준을 크게 뛰어넘었다. 컨테이너 안에 딸기 재배시설을 집약한 ‘딸기 컨테이너 팜’ 기술을 동남아시아에 수출한 스마트팜 업체 퍼밋엔 대기업, 벤처캐피털의 투자가 몰린다. 매년 5%씩 커가는 스마트 팜 산업은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성장하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몽중인(夢中人)’은 1994년 개봉한 영화 ‘중경삼림’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에 실려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진 노래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은 특유의 몽환적 연출과 ‘꿈’을 소재로 한 노래들로 1997년 반환을 앞둔 홍콩 청년들의 불안감을 표현했다. 이 노래들이 중국의 노래방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중국 정부가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방해하는 노래의 ‘블랙리스트’를 10월 1일부터 도입하기 때문이다. ▷노래방 금지곡 지정의 계기는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에서 발생한 접대 술자리 성추행 사건이다. 회식 문화를 바꾼다며 중국 정부는 ‘음주를 동반한 회식’을 금지하는 한편 중국의 통일과 주권, 영토 보전, 민족 단결을 해치는 노래, 미신을 퍼뜨리는 노래, 음란 도박 폭력 마약과 관련된 노래를 퇴출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청소년의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던 ‘아이돌 숭배 문화’도 당국의 표적이 돼 팬클럽 계정 4000여 개가 폐쇄됐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은 7월 1일 이후 중국에선 ‘홍색규제’ 도입이 일상이 됐다. 기념일 전날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미국의 뉴욕증시에 상장해 ‘괘씸죄’에 걸린 디디추싱이 신호탄이었다. 점유율 80%로 ‘중국의 우버’로 불리던 디디추싱의 앱은 당국의 지시로 중국 내 모든 앱 장터에서 삭제됐고 주가는 폭락했다. 중국판 ‘배달의 민족’ 메이퇀뎬핑은 모든 배달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지시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됐다.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란 당국의 비판에 1위 게임업체 텐센트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축소했다. ▷지난달 23일엔 ‘사교육과의 전쟁’이 선포됐다. 정규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육기업의 설립이 금지됐고 기존 업체는 비영리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140조 원 규모의 중국 사교육 시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국만큼 교육열이 높은 중국 중산층 학부모들은 불법 고액 가정교사를 구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사립학교의 비싼 교육비가 사회적 위화감, 출산율 저하 등 부작용을 낳는다는 이유로 베이징시는 14개 사립 초중고교 운영권을 강제로 거둬들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 연장 여부가 결정될 내년 10월 20차 당 대회까지 공산당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방위 규제로 중국 기업들의 가치는 1조 달러(약 1180조 원) 이상 증발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중국 당국의 규제 리스크가 명확해질 때까지 중국에 대한 투자를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빽빽이 쌓인 나무 블록을 허물지 않고 하나씩 제거하는 ‘젠가 게임’처럼 서서히, 요령껏 위험을 줄이며 중국에서 발을 빼는 방법을 우리도 고민해야 할 때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여야 어느 대선주자와 맞붙어도 지지 않을 언쟁(言爭)능력을 갖췄다. 잇따른 ‘기본 시리즈’ 공약 발표나 대선주자 간 토론에서도 이런 능력이 드러난다. 특히 전문가들도 잘 사용하지 않는 경제용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특징이다. “뭔가 이상한데…” 하는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적지 않은데 바로 콕 집어 평하기가 쉽지 않다. 보편적 어의(語義)와 다르거나 다른 사실, 분석에 근거한 ‘이재명식 경제용어’여서 본뜻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용어들인데 사실관계, 전후맥락을 이해하려면 별도의 해설이 필요하다. ▽승수효과=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이 지사는 작년 5월 전 국민 재난지원금 효과를 예로 들면서 “승수효과가 통계학적으로 증명됐다”고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푼 재정이 돌고 돌면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총효과, 즉 ‘재정승수’가 높다는 의미다. 이 지사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이 재난지원금 100만 원으로 그 1.85배인 185만 원의 소비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한 게 근거로 보인다. 반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분석한 소비효과는 0.26∼0.36배로 효과는 26만∼36만 원이었다. 중산층 이상이 원래 하려던 소비를 재난지원금으로 대신 쓰고, 자기 돈은 저축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국민에게 정부가 돈을 바로 쏴주는 ‘이전지출’의 경우 한국은행이 추산한 재정승수는 0.22배 수준으로 KDI 분석에 가깝다. ‘효과가 증명됐다’는 이 지사 주장은 정설이 아니다. ▽수요주도성장=이 지사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대비해 자신의 경제정책을 ‘수요주도성장’이라고 설명한다. 현금 나눠 주기의 수요창출효과가 뿌린 돈보다 크다고 봐서 기본소득을 ‘분배정책인 동시에 경제, 성장정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KDI 등의 분석대로 재정승수가 1.0배에 크게 못 미치면 기본소득을 성장정책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반대로 이 지사 생각이 맞는다면 다른 경제정책은 필요가 없다. 세금을 걷었다가 나눠주기만 해도 경제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적 없는 성장방식이다. 미래 세대가 나랏빚 갚느라 소비를 줄여 발생할 장래의 부작용도 고려에서 빠져 있다. ▽교정과세=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이 지사는 ‘교정과세’인 국토보유세를 도입하고 걷은 돈은 기본소득으로 전 국민에게 나눠 준다고 했다. 교정과세는 전문가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담배 술 도박같이 사회에 해악이 있는 소비에 물리는 ‘죄악세(Sin Tax)’나 환경오염을 억제하기 위해 물리는 휘발유세 등 ‘피구세(稅)’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과도한 부동산 보유를 징벌적 세금을 물려 교정(矯正)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 밖에 기본주택 100만 채 재원으로 제시한 ‘현대 금융기법’, 기본소득 지불수단으로 강조하는 ‘소멸성 지역화폐’ 등 이재명식 용어가 계속 늘어나는데 하나하나가 논란거리다. 최근엔 ‘오리너구리’가 추가됐다. “복지와 성장이 양립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며 오리와 너구리 양쪽 속성을 가진 오리너구리에 기본소득을 비유한 것이다. 날개 달린 박쥐가 조류가 아니듯 오리너구리도 포유류일 뿐이지만 정치 수사(修辭)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지사가 ‘네거티브 휴전’을 선언하고 정책대결에 집중하기로 했다면 “앞으로도 그냥 포퓰리즘을 하겠다”며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대신 국민과 전문가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정책들을 상식에 기초한 보편언어로 설명하고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1896년 9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내러갠셋파크 경마장 출발선에 전기차 2대, 가솔린차 5대가 나란히 섰다. 총성과 함께 차들은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결승선에 먼저 도착한 차는 리커(Riker) 전기차 회사의 삼륜차였다. 무거운 납축전지와 모터로 움직이는 전기차가 초기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앞섰던 것이다. 125년 전 이 경주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꺾은 가장 오래된 레이스로 기록됐다. ▷이달 5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제너럴모터스,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다. 되돌릴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2030년부터 미국에서 팔리는 신차의 절반을 친환경차로 채우도록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20세기 초입에 반짝 인기를 끌다가 1908년 선보인 포드 ‘T모델’ 등 싸고 성능 좋은 가솔린차에 밀려 사라졌던 전기차가 확실한 대세로 떠올랐다. ▷지구 전역에서 나타나는 이상기후가 내연기관차 시대의 종언을 재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1990년보다 55% 줄이는 계획을 6월 말 발표하면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메르세데스벤츠는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바꾸기로 했고, 폭스바겐그룹과 BMW도 2030년까지 신차 중 전기차를 절반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연일 이런 소식을 듣다 보니 차를 바꾸거나, 처음 장만하는 사람이라면 전기차, 가솔린·디젤차, 하이브리드차 등을 놓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연기관차를 샀다가 머잖아 바꿔야 하거나,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다. 하지만 국내 전기차 구매자 중 40, 50대 고소득층이 많은 걸 보면 아직 청년 등에게 전기차 가격은 다소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최소 15∼20년 정도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가 공존할 것으로 예상되고, 전기차 가격을 좌우하는 배터리 가격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주요국에 친환경차만 수출하는 시점을 2040년으로 잡아둔 현대차·기아는 다소 급해졌다. 올해 1∼7월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판 친환경차가 작년 동기의 약 3배로 늘어나는 등 흐름은 좋다. 연내에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 내년엔 기아 ‘EV6’가 수출되기 시작하면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것이다. 그보다는 전기차가 불러올 산업구조 변화가 문제다. 엔진차에 비해 전기차는 부품 수, 생산 인력이 30% 이상 줄고 자율주행 기능 등에 대한 투자는 훨씬 많이 필요하다. 내연기관차 시대의 향수에 빠져 있다간 닥쳐오는 전기차 시대의 파도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시간을 드리겠다. 사는 집이 아닌 건 파시라.”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8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방침을 밝히는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그 후 집값이 계속 오르자 정부는 매년 양도세제를 뜯어고쳤다. 지난해 초부터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양도세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 즉 ‘양포세’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징벌적 양도세제’의 결정판이다. 지금까지 다주택자가 여분의 집을 처분하고 남긴 한 채는 집을 산 시점부터 장기 보유·거주 특별공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2023년 1월 1일부터는 다 팔고 1주택자가 된 시점부터 기간을 계산한다. 이번에도 남은 1년 5개월 동안 “사는 집 아닌 건 팔라”는 뜻이다. ▷양도세 개편의 불똥은 ‘1가구 1주택자’에게도 튀었다. 법 개정 이후 집을 사는 1주택자는 나중에 집을 팔 때 차익 규모에 따라 장기보유특별공제 폭이 달라진다. 5억 원 이하, 5억∼10억 원, 10억∼15억 원, 15억 원 초과 등 시세차익이 커지면 최대 공제 폭이 40∼10%로 차등 적용된다. ‘똘똘한 한 채’로 올린 높은 시세차익도 환수할 불로소득으로 본 것이다. ▷4년 내내 다주택자를 표적 삼던 양도세가 1주택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건 여당 내 ‘부동산 정치’의 산물이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양도세 과세 대상을 실거래가 ‘9억 원 초과’에서 ‘12억 원 초과’로 완화하려던 민주당 지도부가 ‘부자 감세’에 반대하는 당내 강경파를 달래기 위해 다주택자와 ‘고가 1주택자’의 양도세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타협했다. 부동산 거래세 완화란 취지는 실종되고 세금폭탄만 남았다. ▷양도세제는 더 난해해졌다. 1주택자만 봐도 거주·보유 기간에 따라 2019년 8가지였던 양도세율 경우의 수가 급증해 이번에 법이 개정되면 189가지로 늘어난다. 다주택자는 보유 주택 채수 및 지역, 처분 시기 등이 추가돼 경우의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효율성, 명확성, 적은 납세자 협력비용 등 좋은 세금의 원칙과도 거리가 멀어졌다. 양포세만 더 늘어나게 생겼다. ▷어느 나라건 청년층과 서민, 취업·교육 등의 이유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빌릴 집이 필요하고, 그 대부분을 다주택자, 부동산 업체가 공급한다. 모두가 1주택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된다 해도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이미 높은 양도세에도 집을 안 판 사람 다수는 양도세가 더 강화돼도 집을 내놓기보다 버티거나 증여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다주택자=악, 1가구 1주택=선’이란 여권의 인식이 초유의 ‘복잡계 세금’을 만들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