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지명[횡설수설/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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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중앙은행은 수많은 호황과 불황을 겪은 자본주의 체제가 경기 급등락을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발명품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흔히 낮은 금리를 통해 경기를 더 띄우고 싶어 하지만 ‘파티의 흥을 깨는 사람’에 비유되는 중앙은행은 물가 인상 가능성이 보이면 금리를 올릴 준비부터 하기 때문에 긴장관계가 불가피하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임명한 ‘비둘기파’지만 조 바이든 정부에선 인플레이션에 맞서 긴축을 추진하는 ‘매파’로 변신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70) 임기가 이달 31일 끝난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사태 발생 직후인 재작년 3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내려 경기 하강 속도를 늦추고, 미국 금리 인상에 앞서 작년 8월부터 금리를 올려 상황에 대처해 왔다. 한은 설립 이후 최장기(43년) 근속자, 박근혜 정부 때 취임해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된 44년 만의 8년 연임 총재 기록도 세웠다. 다만 급등한 집값을 잡는 데 금리라는 ‘소 잡는 칼’을 지원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 총재는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가 1.75∼2.00%로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에 무게를 실으며 향후 2, 3번 정도 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하지만 차기 총재가 임명된 뒤 이 같은 예고가 그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고유가 고환율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겹친 복합 위기를 감안하면 통화당국은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정권 교체와 맞물려 통화정책 수장 자리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차기 한은 총재 4년 임기 대부분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겹친다. 문 정부가 지명권을 고집할 경우 마찰이 발생해 차기 총재 인선과 취임이 크게 늦어질 수 있다. 다행히 윤 당선인이 후보를 제안하고, 현 청와대가 인사 검증과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대행해 문 대통령이 지명하는 식으로 공백을 최대한 줄이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긴박한 경제 안팎 사정을 고려할 때 차기 한은 총재에겐 어느 때보다 탁월한 식견과 실력이 요구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무역수지, 성장률 전망이 흔들리고,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대외 환경과 국내 경제가 긴밀히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작년 말 종료된 한미 통화스와프를 재개하려면 탄탄한 국제 네트워크도 필요하고, 정부의 포퓰리즘 요구를 견제할 강단도 필요하다. 현 정부든, 차기 정부든 ‘자기 사람 챙기기’ 같은 사심(私心)을 끼워 넣으면 곤란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중앙은행#경기 급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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