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민동용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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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동용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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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8~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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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리학 배우던 그녀, 세계 최초 ‘티무르 역사’ 완역자 되다

    최근 충북 청주의 이슬람교 행사에 참석한 우즈베키스탄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주연 박사(37)의 어머니는 이 뉴스를 접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즈베크에 무슬림이 있어?” 티무르 제국의 시조(始祖), 아미르 티무르(1336∼1405)의 생을 다룬 역사서 ‘勝戰記(Bafar-n ̄ama·승전기)’를 이슬람권 밖 언어로는 세계 최초로 완역한 딸을 둔 어머니로서는 ‘의외’의 반응일 수 있겠다. 티무르 제국의 시작은 우즈베크였다. “우리는 중앙아시아를 잘 모르죠. 지정학적으로 한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만 알아도 세계를 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다른 넓은 세계인 무슬림 세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9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이 박사는 올 2월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논문 ‘티무르朝의 史書, 야즈디 撰 ‘勝戰記(Bafar-n ̄ama)’의 譯註’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달 은퇴한 중앙아시아 연구 석학 김호동 교수의 제자다. 논문 분량은 1140쪽. 보통 박사학위 논문의 2배가량이다. “김호동 선생님께서 국내 연구가 많지 않은 분야인데 연구서보다 번역서를 내는 게 괜찮겠다고 조언해주셨어요. 사료를 통독해야 공부가 잘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사료를 번역하면 연구거리가 많을 것 같았죠.” 샤라프 알리 앗딘 야즈디가 1424년 페르시아어로 쓴 승전기는 아미르 티무르의 일대기다. 티무르는 14세기 말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조지아 등 캅카스 산맥 일대 및 소아시아, 북인도, 중국 서부 등을 정복해 대제국을 세웠다. “정복 지역 지배층은 튀르크 유목민, 피지배층은 무슬림 정주민(定住民)이었죠. 유목민에게는 몽골제국 후예의 딸들을 부인으로 둔 (몽골제국의) 부마(駙馬)라며 정통성을 주장한 반면에 피지배층에게는 자신을 투철한 무슬림으로 보이게 해서 정통성을 얻었죠.” 승전기에서는 티무르를 ‘사힙키란’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페르시아 문화에서 기원한 칭호로 목성과 토성의 합일(合一) 때 태어나 세계 정복이 예정된 인물을 말한다. 승전기가 1722년 프랑스어로, 1723년 영어로 완역은 아니지만 상세히 번역될 정도로 유럽의 티무르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영원한 적’ 오스만 제국 너머에서 나타난 티무르를 ‘절름발이 이미지’로 보면서도 두려워하며 칭기즈칸을 떠올리기도 했다. 승전기는 무엇보다 안에 담긴 페르시안 시 때문에 어렵다. 운율을 예쁘게 하려고 어순을 바꾸거나 발음도 바꾼다. 이 박사도 2016년 이란에서 6개월간 시 읽는 법을 배웠다. 물리교육과에 입학했다가 역사교육을 복수 전공하며 중앙아시아사에 빠져든 이 박사의 논문은 이르면 올 하반기 책으로 나온다. 이 박사는 “무력을 휘두르며 원하면 사람을 죽이던 일반적인 유목민 군주가 아니라 전략에 능하고 지역조사에 밝으며 정확한 루트에 따라 이동하던 다른 모습의 군주를 독자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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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심정 더 절실히 알게 돼”… 자기 책 내는 출판사 대표들

    출판사는 책으로 말한다. 내는 책이 늘어나며 정체성이 쌓여 간다. 그럼에도 ‘최고편집자’인 대표가 책을 쓴다는 건 어지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일 터다. 올해 그런 책이 좀 나왔다. 2000년 세운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58)는 10일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을 냈다. 창립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만든 420여 종의 문학 예술 인문서 저자 가운데 문학 쪽 20명을 정 대표가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만나 나눈 이야기를 모았다. 이들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는데 또 한 번의 도약, ‘폴짝’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기 출판사 저자들과 대화한 내용을 정리하는 일은 드물죠. 책을 받아 보고서는 ‘충격이다’라고 반응한 출판사 대표도 계셨어요. 20년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게 과분하기도 하고, 책 출간을 동의해주고 도와준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고맙지요.” 인터뷰이 가운데 교수인 권혁웅(시인) 이기호(소설가) 신형철(평론가)을 만나서는 안정된 제도권 안에 있으면서도 젊은이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모습에 ‘편견’이 깨졌고, 지난 20년간 “10년은 독자, 10년은 작가였다”는 소설가 김금희 백수린 손보미의 말에 새삼 시대의 변화를 깨달았다. 1992년에 등단해 90년대 시집을 2권 낸 정 대표는 “책을 만들면서 마음속에 시어(詩語)가 덜그럭거려 420여 편의 시도 썼다”고 했다. 자신의 책을 스스로 만들어 보면서 저자의 심정을 더 절실히 알게 됐다는 대표도 있다. 올 초 우연한 기회에 주변의 권유로 에세이집 ‘다행히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을 낸 출판사 황소자리 지평님 대표(54)는 “30년 가까이 편집자로서 저자를 바라본 것과 실제 저자가 된 것을 비교해 보니 서로의 간극이 컸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번에 책을 낼 때 표지 디자인이 제 느낌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끝내 아쉬웠죠. ‘모든 저자가 이렇게 속으로 삭였겠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독자 반응에 대한 ‘민감도’도 달랐다. 예전에는 출간한 책에 대한 인터넷 서평을 볼 때 코웃음을 치기도 했었단다. 하지만 자신의 책에 대해서는 코웃음은커녕 매우 소심해졌다. “오타라도 날까 봐 마음 졸이는 수준을 넘어서 굉장히 떨리더라. 결국 32쪽 분량이 페이지 번호가 뒤바뀌는 제본 사고를 냈다. ‘초짜’처럼 허둥대는 모습에 송구하고 창피하고 그랬다.” 국내 굴지의 단행본 출판사 문학동네를 1993년 설립하고 대표를 지낸 강태형 씨(63)도 올 초 자신의 첫 장편소설 ‘온전한 고독’을 펴냈다. 198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한 강 전 대표는 사임한 뒤 ‘길을 떠돌면서 이야기를 찾고’ 있다. 당시 그는 주위에 “견딜 수 없이 쓰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고 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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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해양 과학자의 남극 심해 탐사기

    “땅만 바라봐서는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인 저자가 지난 25년간 25차례 배를 타고 남극권의 심해를 탐구, 조사한 까닭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하다 우연한 계기로 온누리호에 올라탄 후 지금까지 해양 탐사를 이어가고 있는 저자가 그동안 남극권에서 경험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2015년 남극권 중앙 해령(海嶺) 최초의 열수(熱水) 분출구와 신종 열수 생물을 최초로 발견하고 빙하기와 간빙기가 순환하는 증거를 찾아내는 등 저자가 그의 연구팀과 이뤄낸 성과들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이 열수 분출구 이름을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따온 ‘무진’으로 붙이고, 열수 생물인 키와속(屬) 게는 아라온호 이름을 따 ‘키와 아라오나’로 지은 것에서 지은이의 문학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약간 과장되게 말하자면, 책을 읽다 보면 ‘원피스’의 루피가 종종 떠오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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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타향에서 ‘경부고속도로 밑거름’이 된 그들

    20여 년 전에 이 소설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1946년생인 작가가 40대 초반까지 자신의 삶을 형상화한 듯한 이 작품은 1권은 고향의 삶, 2권은 타향의 삶으로 나뉜다. 그 시기는 정확히 한국의 근대화와 겹친다. 이른바 후일담과 사소설로 한국 소설이 빠져들게 된 1990년대 이전에는 이 같은 배경을 가진 작품이 적잖았다. 토속적, 향토적이라는 수식어로 표현되던 시골의 서정 또는 누추함. 냉정한, 비열한 등으로 꾸며지던 도시의 비참 또는 잔인함. ‘은골로 가는 길’은 이것들이 한데 합쳐져 드러난다. 이 소설 1권은 충남 산골마을 은골에서 몇백 년 살아온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 세혁의 유년부터 고교 졸업 후 결혼까지를 담았다. 2부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한 세혁의 서울 생활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같지만 1권과 2권은 각기 다른 소설 같다. 1부는 보릿고개와 가난의 참혹함을 갈 데까지 보여주면서도 생생한 충청도 사투리와 시 같은 문장이 버무려져 찰지게 읽힌다. ‘나는 산에 갈 때 숲을 보고 들어갔다가 나무를 보고 나왔다. 나무도 사람처럼 똑같이 생긴 나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곧고, 뒤틀리고, 살찌고, 마르고, 다보록하고, 엉성하고, 꼬이고, 꺾이고, 벌레 먹고, 병들고, 상처 없이 자란 나무는 없었다.’ 반면 2부는 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를 중심으로 1권에 비해 딱딱한 문장으로 다소 건조하게 구성된다. 시대 배경은 영화 ‘국제시장’과도 겹치지만 무조건적인 ‘아,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다. 근대화의 초석을 놓았다는 객관적 평가를 받는 경부고속도로지만 세혁에게는 ‘경부고속도로는 독일 아우토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잉태하여 경북 구미에서 사산(死産)되었구나!’일 뿐이다. 산업화와 ‘잘살아보세’의 그 시대를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살았다. 어떤 모습이 옳은지, 그른지 딱 잘라서 볼 수도, 볼 필요도 없다. 누군가 말했다. “사소한 사람도, 사소한 역사도 없다”고.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향수(鄕愁)라는 말을 이 소설을 통해 한번 느껴볼 만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조금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작품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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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화 “동네책방 한다는 건 돈 없는 정우성이랑 산다는 것”

    ‘서점(동네책방)을 한다는 것은 돈 없는 정우성이랑 산다는 것과 같다.’ 동네책방 주인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는 글이다. 겉으로는 ‘폼 나’ 보이지만 한 달에 100만 원 손에 쥘까 하는 곳, 동네책방. 동네의 핫 플레이스라는 낭만적 이미지나, 책방 주인의 일상 에세이 정도로만 알려진 동네책방의 실상은 사실 생계를 걱정할 정도다. 책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책은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주로 사는 시대, 동네책방의 의미와 살길을 모색하는 ‘동네책방 생존탐구’(혜화1117)를 지난달 말 펴낸 출판평론가 한미화 씨(52)를 만났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동네책방은 약 550개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책의 초고를 완성한 올 5월 이후에도 글에 등장하는 동네책방 몇 개가 문을 닫았다. “처음에는 ‘동네책방 전성기 탐구’라는 주제로 서점이 멋지게 변화한 모습을 쓰고 싶었는데 (취재할수록) 먹고살기 힘든 게 명약관화했어요. 그렇다고 네거티브하게 끌고 가자니 마음은 안 좋고…. 그럼 같이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자는 의도에서 썼어요.” 국내 동네책방은 2015년 무렵부터 붐이 일었다. 과거 서점과는 다르게 개성 있는 인테리어, 사람이 모이는 공간, 맛있는 커피 또는 맥주 등 나름의 분명한 콘셉트와 정체성을 드러냈다. 동네책방을 찾아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여기 어디야?’ 하고 반응할 수 있는 30대 전후가 책방의 주인이자 독자가 됐다. “대부분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시작해요. 책만 말고 다른 것도 같이 팔면 밸런스를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동네책방 여는 법을 가르치는 곳에서도 부가가치를 만들 것을 모색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만만치 않다. 동네책방은 1만 원짜리 책을 팔면 2500원이 남아야 대략 수지를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를 비롯한 유통구조와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동네책방 생태계가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출판 서점 독자 모두가 마음을 열고 고민해 보자는 것이 한 씨의 생각이다. “알아서 책을 찾아보는 사람에게는 동네책방이 없어도 되죠. 하지만 책하고 담을 쌓았거나 무슨 책을 읽을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실합니다. 가까운 곳에서 책을 만나고, 이들에게 맞춰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동네책방이 필요한 거죠. 콘텐츠를 담는 그릇으로 책만 한 것은 없으니까요.” 독자가 자발적으로 책방을 찾아오지 않는 시대에 동네책방은 ‘누구에게나 책이 재미있다는 걸 경험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한 씨는 말한다. “읽기는 습관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책방에 가서 책 읽는 환경 속으로 이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죠.” 하지만 독자가 찾아오기 위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동네책방이 고군분투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독자를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책방은 분명 사적인 비즈니스지만 더 많은 사람을 책의 시민으로 이끄는 ‘공공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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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으로 읽을땐 못본 것 들으니까 보인대요”

    《“내 이름은 요나스 요나손이고 내 입장을 설명드리고자 한다. 나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속편을 쓸 뜻이 전혀 없었다.” 성우 구자형 씨(55)가 낮고 포근한 목소리로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의 머리말을 읽기 시작하자 주변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이어 성우 조경아 씨(44)가 박완서 선생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중 남성과 여성의 대화를 읽어 내려가자 분명 남성의 음성은 아닌데도 두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각각 30년 차, 9년 차 성우이면서 현재 오디오북 녹음을 하는 두 사람을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세계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올해 35억 달러(약 4조 원)로 전망된다.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추정에 따르면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200억 원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성장세다. 두 성우는 국내 오디오북 플랫폼 업체 중 스웨덴계 스토리텔과 작업하고 있다. ‘텔레토비’ ‘뽀로로’의 내레이션 등으로 유명한 구 씨나 ‘다큐프라임’ 같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등을 해온 조 씨 같은 베테랑 성우들에게도 오디오북 녹음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업과 준비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520쪽 분량의 ‘핵을 들고 도망친…’ 오디오북 플레이타임은 9시간 20분인데 완독에 13시간 40분 걸렸습니다. 준비시간까지 약 60시간 소요됐습니다. 가성비가 좋은 분야는 아니지요. 하하.”(구 씨) “책 한 권을 평균 세 번 읽지만 초기에는 여섯 번 읽었어요. 전체 내용 파악, 묶음으로 큰 흐름 숙지, 세밀하게 분석, 캐릭터 특성 파악, 다시 전체 분석, 낭독하기 전 읽을 분량만큼 다시 읽었어요.”(조 씨) 오디오북은 전체적인 맥락을 중요시하며 서술형 문장을 장시간 편안하게 읽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강조하는 평소 ‘습관’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더빙할 때는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특정 부분에 강세를 주는 등 ‘힘’을 줘야 했지요. 그래서 오디오북 낭독 초기에는 ‘힘을 좀 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조 씨) “쓸데없이 조사(어미)를 강조하는 버릇을 지적받았어요. 읽을 때 ‘…다’ ‘…다’를 세게 읽는 거예요. 좀 심하면 ‘따따체’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체질을 바꾸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구 씨) 오디오북은 예전에는 내레이션 따로, 남녀 캐릭터 따로 식의 ‘오디오 드라마’처럼 제작했지만 요즘은 성우 한 명이 남녀 캐릭터를 다 표현하는 1인 낭독이 주류다. “낭독의 큰 기둥은 화자, 내레이터 같아요. 목소리를 변조해 남성 캐릭터를 표현하지 않고 할머니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들려주듯 캐릭터의 특징과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면 남성으로 들으시더라고요.”(조 씨)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이 실사 영화 ‘라이언킹’보다 감정 표현을 더 잘한 것처럼 소리도 오토튠을 써서 제가 여자 목소리로 ‘피치업’한다고 해서 그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캐릭터 안의 알맹이(정서)라는 뼈대에 제 상상력을 붙여 만들어낸 소리가 중요한 거죠.”(구 씨) 두 사람은 오디오북 업계에서 ‘수요’가 많은 성우다. 팬덤도 형성돼 ‘성우계의 마법제야’ ‘글이 아니라 사람이 들린다’ ‘책을 온몸으로 상상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흡입력이 대단하네요’ 같은 독자 반응이 줄을 잇는다. “오디오북은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해석해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청자 혹은 독자의 감정과 정서를 건드려 마음이 따뜻해지게 하죠.”(구 씨) “북적대는 지하철에서도 ‘나만의 시공간’에서 책을 들을 수 있고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책 한 권을 들을 수 있어요. 눈으로 읽었을 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들으니까 보인다는 독자도 있지요. 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어요.”(조 씨)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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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으로 못본 것 들으니깐 보여”…귀로 읽는 오디오북 ‘낭독의 세계’

    “내 이름은 요나스 요나손이고 내 입장을 설명드리고자 한다. 나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속편을 쓸 뜻이 전혀 없었다.” 성우 구자형 씨(55)가 낮고 포근한 목소리로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의 머리말을 읽기 시작하자 주변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이어 성우 조경아 씨(44)가 박완서 선생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중 남성과 여성의 대화를 읽어 내려가자 분명 남성의 음성은 아닌데도 두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각각 30년 차, 9년 차 성우이면서 현재 오디오북 녹음을 하는 두 사람을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은 올해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를 200억 원대로 보지만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성장세다. 두 성우는 국내 오디오북 플랫폼 업체 중 스웨덴계 스토리텔과 작업하고 있다. ‘텔레토비’ ‘뽀로로’의 내레이션 등으로 유명한 구 씨나 ‘다큐프라임’ 같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등을 해온 조 씨 같은 베테랑 성우들에게도 오디오북 녹음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업과 준비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520쪽 분량의 ‘핵을 들고 도망친…’ 오디오북 플레이타임은 9시간 20분인데 완독에 13시간 40분 걸렸습니다. 준비 시간까지 약 60시간 걸렸습니다. 가성비가 좋은 분야는 아니지요. 하하.”(구 씨) “책 한 권을 평균 세 번 읽지만 초기에는 여섯 번 읽었어요. 전체 내용 파악, 묶음으로 큰 흐름 숙지, 세밀하게 분석, 캐릭터 특성 파악, 다시 전체 분석, 낭독하기 전 읽을 분량만큼 다시 읽었어요.”(조 씨) 오디오북은 전체적인 맥락을 중요시하며 서술형 문장을 장시간 편안하게 읽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강조하는 평소 ‘습관’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더빙할 때는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특정 부분에 강세를 주는 등 ‘힘’을 줘야 했지요. 그래서 오디오북 낭독 초기에는 ‘힘을 좀 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조 씨) “쓸데없이 조사(어미)를 강조하는 버릇을 지적 받았어요. 읽을 때 ‘~다’ ‘~다’를 세게 읽는 거예요. 좀 심하면 ‘따따체’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체질을 바꾸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구 씨) 오디오북은 예전에는 내레이션 따로, 남녀 캐릭터 따로 식의 ‘오디오 드라마’처럼 제작했지만 요즘은 성우 한 명이 남녀 캐릭터를 다 표현하는 1인 낭독이 주류다. “낭독의 큰 기둥은 화자, 내레이터 같아요. 목소리를 변조해 남성 캐릭터를 표현하지 않고 할머니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들려주듯 캐릭터의 특징과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면 남성으로 들으시더라고요.”(조 씨)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이 실사 영화 ‘라이언킹’보다 감정 표현을 더 잘한 것처럼 소리도 오토튠을 써서 제가 여자 목소리로 ‘피치업’한다고 해서 그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캐릭터 안의 알맹이(정서)라는 뼈대에 제 상상력을 붙여 만들어낸 소리가 중요한 거죠.”(구 씨) 두 사람은 오디오북 업계에서 ‘수요’가 많은 성우다. 팬덤도 형성돼 ‘성우계의 마법제야’ ‘글이 아니라 사람이 들린다’ ‘책을 온몸으로 상상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흡입력이 대단하네요’ 같은 독자 반응이 줄을 잇는다. “오디오북은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해석해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청자 혹은 독자의 감정과 정서를 건드려 마음이 따뜻해지게 하죠.”(구 씨) “북적대는 지하철에서도 ‘나만의 시공간’에서 책을 들을 수 있고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책 한 권을 들을 수 있어요. 눈으로 읽었을 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들으니까 보인다는 독자도 있지요. 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어요.”(조 씨)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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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격변기 등판한 세이브 투수였다”

    “과도적 상황을 조화롭게 수습하면서 발전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늘 나의 몫이었다.” 올 5월 별세한 춘재(春齋) 현승종 전 국무총리(1919∼2020)는 최근 나온 유고(遺稿) 회고록 ‘인생 회상’(여백)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고려대 학생처장으로 1960년 4·19혁명 전야의 4·18의거부터 1965년 한일협정반대운동까지의 격변기에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한 일이나, 1974∼1980년 성균관대 총장으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제2캠퍼스를 연 일이나, 1992년 10월부터 4개월여의 중립내각 국무총리로 그해 12월 대선을 공정하게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은 일 등을 볼 때 고인이 스스로를 “야구 경기에서 실점 위기에 등판하는 ‘소방수’라는 투수 역할이 나의 처지와 비슷했다”고 한 것은 겸양지덕이면서 적절한 표현으로 보인다. 이 같은 겸양지덕과 훌륭한 세이브 투수 역할의 바탕에는 ‘진(眞·진실함)’ ‘성(誠·정성스러움)’ ‘노(努·힘씀)’라는 그의 인생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 사례들이 그렇다. 1960년 4·19혁명 하루 전날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고 자칫 폐교 당할 염려도 없지 않다는 생각에 가두 진출을 만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국회의사당(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연좌 시위하던 3000여 학생이 격앙되는 것을 막으려 애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느 한 학생도 자신에게 불손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것을 흐뭇하게 생각했다. 1962년 시위를 하다 연행된 학생 280여 명을 데리러 부평 경찰전문학교 강당에 도착해 “여러분 얼마나 고생했어요. 이 자리가 학교 교실이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라며 눈물을 흘리자 학생들도 울어 눈물바다를 이뤘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하던 학생들과 경찰들이 투석전을 벌이자 그는 ‘돌멩이를 맞더라도 내가 혼자서 맞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돌멩이가 날아드는 한복판으로 나가 섰다. 그러자 양방 모두 돌팔매를 그만뒀다. 그를 모셨던 김옥조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다른 사람이 했다면 ‘정치적 수사(修辭)’ 정도로 치부할 말도 이분이 했다면 진정이 담긴 말로 받아들여졌다”고 회고한다. 책에서는 그의 양심과 솔직함 또한 두드러진다.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일제의 학병 모집을 피해 다니다 최종 마감일인 1943년 11월 20일 결국 지원한 뒤 그는 자책한다. “죽음의 확률이 높은 징용을 면하기 위해 생명에 미련을 가지고 ‘지원’의 욕됨을 자초한 나 자신에 대한 죄”라고 토로한다. ‘또 다른’ 솔직함도 있다. 집에서 혼담이 오가자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아 배필이 될 사람을 보고 와서는 “다행히도 코는 비뚤어지지 않아 안심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군자인 양하지 않는다. ‘평안도 울뚝밸이(화를 벌컥 내며 말이나 행동을 우악스럽게 하는 사람)’ 성격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6·25전쟁 중 공군에 입대해 인사행정과장으로 있을 때 일이다. 미국 훈련을 보낼 조종사의 여권 발급 문제로 외무부에서 입씨름하다 거절되자 홧김에 현관문을 쾅 닫아 대형 유리를 깨뜨린 것. 잘 몰랐던 소소한 역사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사각모에 망토를 두르고 다닌 것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던 대학생은 없었다. 경성제대 예과생들이 둥근 모자를 쓰고 망토를 둘렀다. 이들은 스톰(storm)이라는 특유의 춤을 전찻길을 막고 추기도 했다. 고인의 101년 삶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부터의 한국 근현대사와 일치한다. 지금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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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진짜 민중의 삶, 역사책엔 없죠”

    길이 1m 남짓한 한지에 써 내려간 가사체(歌辭體) 글귀. ‘이 하늘에 비가 올까/저 하늘에 비가 올까∼’로 시작하는 이 글의 제목은 ‘애타는 한여름의 가뭄’. 맨 끝에 ‘병자년(丙子年)’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검색해 보니 병자년인 1876년, 엄청난 한발로 왕이 숱하게 기우제를 올렸다. 그런데 역사책은 이해를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해로 기술한다. 하지만 당대 조선 사람의 진정한 관심은 가뭄이었을 게다. “그걸 알고는 ‘내가 배운 역사는 반쪽짜리였다’고 생각했어요. 공식 역사가 말하지 않은 것을 자료를 통해 보충해주고 싶었습니다.”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휴머니스트)의 저자 박건호 씨(51·사진)가 수집에 새롭고 큰 의미를 부여한 순간이었다. 대학에서 국사를 전공하고 고교와 재수학원에서 27년째 역사를 가르치는 박 씨는 당초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보여줄 만한 조선시대와 근현대 자료를 수집했다. 주로 그 시대를 살던 필부필부의 자료였다. 그런데 자료에서 스토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식 사진을 무심코 수집했는데 모으다 보니 주례 뒤편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게 스무 장쯤 돼요. 국가주의가 심했던 1970년대 찍은 거라고 봤는데 사진들 뒤를 보니 1950년대예요. 뿌리를 찾으니까 일제강점기, 집이 아닌 식장에서의 ‘사회결혼’이 유행할 때 일장기를 걸었던 것이 광복 후 태극기로 바뀐 거였어요. 수집하다 이야기가 보이게 된 거죠.” 책은 1920년대 경성자동차학교에 다니던 청년 김남두가 고향 집에 보낸 편지, 1907년 정미의병 때 충북 제천에서 실종된 통역관 조용익을 찾는 훈령, 1941년 육군특별지원병으로 전장에 나가기 직전 찍은 조선인 청년 9명의 사진, 1952년 7월 강원도 육상대회에서 우승한 삼척공고 기념사진 등 당대 서민 민중 민초가 남긴 미시사다. 역사책은 알려주지 않던 그 시대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의 11장 ‘전쟁도 지우지 못하는 민중의 삶’은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6·25전쟁 때 군인들이 꽃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전쟁 통에 꽃은 무슨…’ 하겠지만 그 와중에도 꽃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삶이 있습니다. 삶이란 ‘독립운동’이냐 ‘친일’이냐같이 획일화, 규격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다기합니다. 150mm 박격포 탄피로 재떨이를 만들어 쓰고, 미국 원조품 포대로 바지를 지어 입었습니다. 민중은 역사에서 둥둥 떠다닌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삶과 대면했습니다.” 종이로 된 자료 중심으로 약 1만 건을 수집했다는 박 씨는 60세가 될 때까지 4권의 책을 더 낼 생각이다. 그것이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온 자료들에 예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께서 하나만은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소한 자료는 있어도 사소한 사람, 사소한 역사는 없습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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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값보다 근본적 문제 있는건 아닐까?…강남은 어떻게 ‘버그’를 낳았나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겁니다.’ ‘강남 부동산 불패!’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정점엔 서울 강남이 있다. 온갖 정쟁 속에서도 모두가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강남 부동산 가치의 향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팀 ‘강남버그’는 제3의 방향에서 강남을 분석한다. 건축가와 미술가, 기획자가 협업한 이 그룹은 그 결과물을 지난달 24일 개막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전에 선보이고 있다. 강남의 속살이 드러난 이곳에서 강남버그는 이렇게 묻는다. ‘정책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집값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사교육 1번지’의 천태만상 영상 설치작품 ‘강남버스’는 반포 둔치를 시작으로 압구정동 대치동 구룡마을을 돌아 강남역에 도착한다. 배우 노래강사 워킹맘 등 가이드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홍색 가이드북은 ‘강남어’를 소개한다. 화려한 겉모습 속 학벌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 ‘레테(레벨테스트) 돼지엄마(학원과 팀 수업을 결정하는 엄마) 참새아빠(부인, 자녀를 대치동에 유학 보낸 아빠) 과떠리 외떠리 민떠리(과학고, 외고, 민사고에 떨어져 일반고 다니는 학생)….’ 이런 관점의 배경에는 강남버그의 실제 경험이 있다. 멤버인 이정우 박재영(미술가) 김나연(기획자) 이경택(건축가)은 모두 ‘강남8학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강남의 버그(벌레)’라는 우스갯소리로 출발했다. “대기업 취직을 통해 사회 주류가 되길 바랐던 부모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강남의 교육 시스템이 전혀 다른 결과 값을 낳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버그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경택) 버그들의 자조 섞인 냉소는 ‘천하제일뎃생대회’로 이어졌다. 사전 신청자들이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주어진 시간에 석고상을 그리는 참여 이벤트였다. 행사의 이면엔 ‘대학에 가고 나니 아무 쓸모가 없던 입시교육’에 대한 풍자가 깔려 있다. “대치동에서 선릉역 일대 미술학원 거리는 홍대 입구와 함께 198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미대 입시를 담당했다. 그때는 석고 소묘가 필수였는데 대학에 가니 ‘이제 석고 소묘는 잊어라’고 했다. 그 뒤 입시에서 석고 소묘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박재영) 당시 미술교육이 예술의 본질보다는 ‘대학에 들어가는 기술’에 치중했다는 이야기다. 강남의 ‘상징’인 사교육도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따져 묻는다. 이때 ‘강남버스’에서는 연극배우가 가이드로 나선다. 잠실에 살지만 ‘뺑뺑이’로 압구정동 현대고를 졸업했다는 그는 말한다. “현대고 출신이라면 다들 제가 여유롭다고 착각해요. 그런데 저도 가끔 그걸 우쭐해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내가 지금 강남 출신을 연기하고 있나?”●깨어나지 못한 ‘마취 강남’ ‘강남버스’ 뒤편엔 건축 도면이 둘러싼 공간이 펼쳐진다. 도시건축의 시선에서 강남을 바라보는 설치작품 ‘마취 강남’이다. 강남 쏠림을 억제한다고 하는 부동산 정책이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듯 강남은 이미 정책들에 ‘무감각해졌다’고 진단한다. 이렇게 ‘깨어나지 못한 도시’ 강남을 의학용어로 해석한다. 1972년 서울 도심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 발표와 이를 전후로 한 인구 분산 정책은 ‘이식(移植)’이라고 본다. 은마아파트의 재개발 움직임에 자극받은 ‘우성-선경-미도 아파트’(우선미) 조합은 ‘유착’이다. 1980년대 강남의 유일한 대형 호텔이던 르네상스호텔의 철거는 ‘절제’다. 이런 끊임없는 증상과 시술의 후유증으로 등장한 것이 구룡마을이다. 전시장 벽면에는 없어졌거나 실현되지 못한 강남의 건축물 도면이 걸려 있다. 단기적 시야에 국한된 개발, 맹목적 사교육, 그 가운데 밀려난 인간적 가치와 본질을 이들은 결국 버그라고 본다. 버그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버그의 수정에 미래가 있다고 강남버그는 제안한다. “권력이나 힘에 의해 억지로 개발된 지역, 유흥과 부동산의 도시. 이런 과거 이야기보다 현재의 강남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다. 강남은 그 지역만이 아닌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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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겁진 않지만 꾸준히 사랑받는 ‘총서의 세계’

    출판인에게 ‘팔릴 책’과 ‘내야 할 책’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내야 할 책의 타깃이 대중이 아니라 소수라면 더욱 그렇다. 그것도 단행본이 아니라 총서(叢書)라면 어지간한 고집과 어느 정도 담대함이 필요하다. 민음사, 문학동네, 북21 같은 대형 단행본 출판사가 아닌 중소 출판사라면 고민은 깊어진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누가 찾을까’ 싶은 총서를 꾸역꾸역 내는 곳들이 있다. ‘독자는 좀 있냐고? 제법 된다.’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은 2018년 8월부터 새로 펴내는 평전(評傳) 시리즈다. 위대한 사람도 약점투성이에 상처가 많으며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2004년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를 시작으로 소개했던 국내외 예술가 26명 중 일부를 추리고 새 인물들을 추가해 구스타프 말러부터 짐 모리슨까지 10권을 냈다. 작은 국내 논픽션 시장 가운데서도 더 좁은 평전 시장인 데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열광하지만 그를 다룬 책에는 ‘인색한’ 독자를 고려한다면 ‘마니아 독자를 위한 마니악(미친)한 기획’이다. 초판을 소화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편처럼 7쇄를 찍기도 했다. 정상준 주간은 “최소한 30권을 낸 뒤 전체 숲(손익)을 봐야 한다”면서 “소수의 독자를 위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있다”고 말했다. 평전은 아니지만 작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저명인사 인터뷰를 다룬 마음산책의 ‘말’ 총서도 있다. 2015년 수전 손태그가 처음이었다. 시리즈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는데 이 책이 8쇄가 나갔다. “책은 저작물에 국한한다는 생각은 지났다. 독자는 작가와 직접 부딪쳐서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시대가 변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마음산책 정은숙 대표) 보르헤스, 박완서, 해나 아렌트, 미국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등 14명의 ‘말’을 펴냈다. 모두 초판을 소진했고 1만 부 넘게 팔린 것도 있다. 총서는 하나씩 덧붙여 가며 풍성해질 수 있고 한 권 판매가 저조해도 실망이 크게 되지 않으며 독자와의 소통이 잘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음에는 ○○○의 말을 내달라’고 제안하는 독자도 있다. 정 대표는 “‘내가 안 사주면 누가 사줄까’ 하는 독자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사명감은 됐고요’ 하는 총서도 있다. 워크룸프레스의 ‘실용총서’는 “재미있으니까” 낸다. 그동안 ‘워크룸 문학총서 제안들’ ‘입장들’ 같은 총서를 내왔다. 현재 ‘생활 공작’ ‘헤비듀티’ ‘히트곡 제조법’ 등 3권을 낸 실용총서는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 발굴이 목표다. ‘생활 공작’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적지에 침입한 공작원을 교육할 때 사용한 ‘단순 방해 공작 야전교범’을 번역한 것. 그 내용이 기업 등 각종 조직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들로 꽉 차 있다. 민구홍 편집자는 “과거 콘텐츠이지만 현재에 좀 더 재미있는 맥락이 드러나고, 시치미 뚝 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을 담았다”고 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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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지구온난화 해결에 철도가 꼭 필요하죠”

    “굉장히 무모한 책이기도 한데요….” 박활성 워크룸 프레스 편집장(사진)은 ‘거대도시 서울 철도’(전현우 지음·워크룸 프레스)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원래 철도에 대한 좀 더 정밀한 기계비평서로 기획했으나 엄청난 데이터와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국 철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기후변화의 위기를 맞아 철도가 해야 할 일까지 전망하는 550쪽의 두꺼운 책이 될지는 몰랐다. “출간하기 전에 ‘철덕’(철도에 푹 빠진 오타쿠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철도 덕후’의 줄임말) 몇 분에게 보여드렸더니 감동을 받으시더라고요. 하지만 솔직히 일반 독자에게는 (이 책이) 벽이 좀 있어요. 하하.”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종이를 실로 꿰맨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누드사철(絲綴) 제본한 책의 표지는 요령부득의 빨간색 우하향(右下向) 사선 수십 개가 그어진 그래프다. 책을 펼치면 수백 개의 도표와 지도가 지면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전문용어 설명만 열네 쪽에 이른다. 죽 훑어보기만 해도 정보의 밀도가 대단해 설렁설렁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2017년 원고를 청탁하고 첫 번째 장(章)을 받았는데 원고지 1000장이 왔어요.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음부터 제 역할은 원고를 쳐내는 일이었어요. 철덕의 세계가 넓고도 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서론을 읽어보면 흥미가 솔솔 인다. 서울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한국 철도망에 각종 자료를 덧입혀 철도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생명력을 갖는지 촘촘히 설명한다.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의 철도 기술, 경영, 정책을 누비고 결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결정적인 수단이 철도라는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입증해낸다. 결국 항공기와 자동차가 득세하고 자율주행차까지 등장하는 미래 교통의 세계에서도, 철도가 여전히 그리고 더 많이 필요한지를 논증하는 책이다. “국제에너지기구가 기후변화 억제를 위해 지구 평균 상승기온을 섭씨 2도 미만으로 하려면 철도수송량을 늘려야 한다고 전망했는데 저자는 ‘페르미 추정’을 통해 따져봤어요. 대략 계산했더니 경부고속철도 700개나 서울지하철 4호선 2500개 짓는 정도라는 거죠. 이를 위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철도 개발을 지원하자는 건데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죠.” 박 편집장이 생각하는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철도 현업 종사자, 정책입안자, 연구자들이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이 이들보다 덜 중요한 독자라고는 보지 않는다. 도시철도 노선을 신설한다고 하면 집값 오를까만 생각하지 말고 철도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 가면 선거철마다 개발 논리에 부화뇌동하는 정치인 등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거 뭐지’ 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2장까지는 한번 마음을 열고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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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50년이 지나도 여전한 ‘공장식 축산’의 폐해

    식용으로 길러지는 동물의 처참한 환경을 고발해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은 적지 않다. 언뜻 생각만 해도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1992년),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2009년), 티머시 패키릿의 ‘육식제국’(2011년)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제일가는 고전으로 대다수가 꼽는 책이 ‘동물기계’다. 영국의 동물복지 활동가였던 저자(1920∼2000)가 1964년 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증하는 육식에 대한 수요를 맞추려고 동물을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처음으로 파헤쳐 고발한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사육방식이던 공장식 축산은 그야말로 동물을 공산품처럼 생산하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사료를 빠르게 고기로 전환시켜 최대한의 이윤을 빨리 얻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물을 통째로 지배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 방식은 빛도 없는 좁은 곳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송아지 상자’, 달걀을 더 빨리 더 자주 낳게 하려는 ‘배터리 케이지’, 임신한 돼지를 가두는 ‘모돈 스톨’ 등을 사용해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이 책이 사회에 던진 충격은 컸다. 이듬해인 1965년 영국 정부는 ‘브람벨 위원회’를 꾸려 ‘모든 동물은 서고, 눕고, 돌고, 스스로를 핥고, 가슴을 쭉 펼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5대 동물 자유’를 선포하고 송아지 상자 등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 도살장의 더럽고 처참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결국 식품의약국(FDA) 설립을 이끌어낸 업턴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1906년)과 비견되기도 한다. 루스 해리슨이 이 책을 쓴 지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 식탁에 오르는 동물의 99%는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된다고 한다. 사육방식이 과거처럼 소름끼칠 만큼 비참하지는 않다고 해도 대부분 식용동물은 성장촉진제 안정제 호르몬 같은 다양한 약품으로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자란다. 이 책은 육식을 하면서도 사람이 동물과의 일체감을 좀 더 갖고 사육하는 방식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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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보 칼럼 ‘오늘 뭐 먹지’ 음식 128종 모아 책 출간

    점심시간,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의 머릿속은 온통 하나다. ‘오늘 뭐 먹지?’ 평일이건 주말이건 휴일이건 휴가건 끼니마다 마찬가지다. 이런 고민을 단번에 씻어낼 책이 나왔다. ‘오늘 뭐 먹지?’(다이어리알·사진). 2017년 2월 9일부터 동아일보 문화면에 매주 한 번씩 연재하고 있는 동명(同名)의 음식칼럼을 모았다. 필진이 화려하다. ‘치과 원장으로 식도락의 인문학을 개척하는 석창인 박사’ ‘맛깔스러운 얘기꾼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맛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는 임선영 작가’ ‘맛의 엄격한 세계를 전하는 정신우 셰프’ ‘손맛과 글을 모두 갖춘 홍지윤 요리쌤’ 등이다. 이들은 가정식 백반부터 텐동(덴돈) 훠궈 똠얌꿍 라비올리 파테드캉파뉴까지, 한식 중식 일식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 베트남 요리 등 128종의 음식을 맛깔스럽고 웅숭깊게 펼쳐낸다. 이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전국 359곳(현재 폐업 또는 휴점인 17곳 포함)의 목록은 메인디시에 이은 ‘디저트’로 손색이 없다. ‘칼국수 집들의 상호엔 왜 이모, 할매, 아지매 등의 이름이 많고 또 그래야 맛이 더 나는 걸까요?’같이 정감 어린 문장과 ‘갖고 싶은 명품 가방은 없지만 밥 한 끼보다 비싼 디저트와 잘 내린 균형감 있는 커피 한 잔에 가끔은 지갑을 열고 싶다’처럼 도회적인 글이 미각을 더 자극한다. 1만6000원.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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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이 웹툰과 영화로… ‘작가 매니지먼트 시장’ 커진다

    작가 매니지먼트 시장이 본격화하고 있다. 2016년 블러썸크리에이티브(이하 블러썸)가 첫발을 내디딘 지 4년. 네이버웹툰이 지난달 소설가 장강명과 계약을 맺고 이 시장에 들어섰다. 2013년 웹툰, 웹소설 작가 매니지먼트를 시작한 네이버웹툰이 기성 작가와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다. 자본력과 기획력이 있는 네이버웹툰의 등장으로 작가 매니지먼트 시장의 확장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작가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책을 낸다. 책의 마케팅과 홍보, 저자 인터뷰 등은 보통 출판사가 담당한다. 그러나 출간되고 두세 달이 지나면 책이나 저자 ‘관리’는 허술해지기 쉽다. 특히 여러 곳에서 다양한 책을 낸 경우 작가가 이 저서들을 도맡아 관리하기는 역부족이다. 책이 영상, 애니메이션, 각종 디지털 콘텐츠 같은 2차 저작물로 만들어질 기회가 커지면서 더욱 그렇다. 작가 매니지먼트 사업은 출판·콘텐츠 산업의 이 같은 변화를 파고들어 저자의 강연, 방송 출연부터 출판 이외의 모든 영역을 관리한다. 2011년 등단 이후 출판사 예닐곱 곳에서 10종이 넘는 책을 낸 장 작가도 작품 관리에 힘겨움을 느끼고 네이버웹툰과 손을 잡았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지식재산권)비즈니스 팀장은 “장 작가가 영상 판권을 계약하는 도중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우리에게 매니지먼트를 요청하기도 했다”며 “아직은 매니지먼트 영역이 순문학 작가로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기성 작가들과도 계약하는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네이버웹툰은 장 작가의 작품으로 영상콘텐츠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영상물의 성공이 책 매출에도 도움을 주는 선순환이 이뤄지면 이를 바탕으로 다른 작가들에게 매니지먼트 계약을 제안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팀장은 “웹에서 젊은 구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웹툰, 웹소설 시장과 더 높은 연령대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출판사가 1차 관문인 소설시장은 서로 다르지만 콘텐츠 소비의 다양성 추구라는 관점에서는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네이버웹툰의 등장에 블러썸 측은 반기는 분위기다.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의 약 70%가 대형 에이전시에 소속된 미국, 유럽처럼 시장 자체가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김진희 본부장은 “대기업이 들어와서 매니지먼트 시장의 파이를 키워주면 작가도 좋고, 우리에게도 자극이 돼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블러썸에는 김금희 김영하 김중혁 김초엽 배명훈 장류진 편혜영 작가가 소속돼 있다. 블러썸 측은 작가에 대한 섭외 요청을 거절하는 간단한 일부터 이들의 작품이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하도록 제안하고 환기시키는 일까지 맡고 있다. 책이 출판되기 전 수익 창출의 일환으로 e북 구독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와 함께 소속 작가의 책을 먼저 e북으로 내고 있다. 김중혁 작가와는 책을 영상으로 보는 ‘The 본다’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김 작가가 글, 그림을 맡아 ‘소설을 읽는 202가지 이유’라는 연재를 하고 있다. 소설 시장의 축소로 글 실을 곳이 부족한 작가들에게 새 연재처(處)를 찾아주는 것도 주요 업무다. 김 본부장은 “아직은 수익이 많이 나는 구조는 아니지만 영화계에서는 원천 콘텐츠로 소설을 다시 검토하고 있고, 해외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케이팝뿐만 아니라 ‘케이노블’로 오는 순간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해 찬찬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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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같은 藥인데 여성이 복용땐 잘 듣지 않는 까닭은

    천재 과학자 하면 우스꽝스럽게 혀를 빼문 백발의 남성이 떠오르지 않는가. 교과서를 비롯한 과학 서적에 단골로 등장하는 아인슈타인 이미지다. 퍼뜩 생각나는 과학자는 대개 남자다. 뉴턴 케플러 테슬라 오펜하이머 세이건 호킹…. 그럼 여성 천재 과학자는 없었던 걸까. 천만에. DNA가 2개의 사슬과 인산 뼈대로 이뤄진 사실을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로절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여자였다. 그 노벨상은 남자들이 탔지만.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여성 천재 과학자는 역사에서 지워졌을 뿐이라고. 아이폰 액정의 평균 크기는 5.5인치(139.7mm)다. 평균적 여자의 손으로는 겨우 쥘 정도다. 핸드백에 맞도록 만들어진 것일까. 천만에. 평균적 남자의 손 크기를 기준으로 해서 그렇다. 미국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여성에게서 두 번째로 많이 보이는 약의 부작용은 아무 약효도 없다는 것이다. 남성에게는 효과가 있는 약인데 그렇다. 여성의 신체가 복잡해서 그런가. 천만에. 약의 임상시험 대상이 남체(男體)이기 때문이다. 우울증같이 여자가 남자에 비해 훨씬 많이 걸리는 병에서조차 동물시험에 암컷을 쓰지 않는다. 저자는 무의식적인 듯 또는 의도적인 듯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아이폰 등에서처럼 디폴트(기본, 표준)는 언제나 남성인 현상을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고 표현한다. 사적 영역이든 공공 영역이든, 제설 작업 순서든 남녀 화장실 배치든, 알고리즘 구성이든 음성인식 ‘시리’든 대다수 분야의 설계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은 투명인간처럼 배제된다는 것이다. ‘별도 지표가 없는 이상 남성’이라는 이 같은 접근 방식이 낳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결과는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소수자 위치로 끌어내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사무실 표준 온도는 1960년대 40세의 몸무게 70kg인 남성을 기준으로 정해지고, 미 사관학교의 교복은 여성 입학을 허용한 지 35년 만인 2011년에야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에 맞게 제작된다. 이를 시정하려는 요구에 대해 불만에 찬 남성들은 말한다. “요즘은 여자들이 어디에나 나오잖아요.” ‘어디든 남자 것’,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디든 중산층 백인 남성 것’이라는 ‘신화’에 금이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자 목소리와 남자 얼굴로 가득한 문화 속에서 자란 어떤 남자들은 그들이 당연히 남자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이나 공간을 여자들이 빼앗아갈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공포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인 ‘여걸’ 셰릴 샌드버그의 말처럼 ‘이 악물고 밀고 나가야’ 하는 걸까. 그것도 필요하지만 저자는 ‘남자아이들이 더 이상 공공 영역을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지 않게 될 때까지 젠더 데이터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에게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다. 데이터 공백을 메우려면 설계나 의사결정 단계에서부터 여성의 의견이 제시되고 받아들여지도록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을 늘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권력과 영향력 있는 지위에 오르는 여자가 늘어날수록 명백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남자들처럼 쉽게 잊지 않는다.’ 다만 할당제에 따른 여성 정치 참여의 좋은 사례로 이 책에서 인용하는 한국 여성 의원들이 최근 성추행 피해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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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딘 “멋진 신세계, 21년간 가장 많이 팔린 SF소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지난 21년간 자체 SF(과학소설)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사진)가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알라딘에 따르면 1999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판매한 SF 중 디스토피아를 다룬 ‘멋진 신세계’가 판매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3위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순으로 나타났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6위를 차지해 국내 SF로는 상위 20위 안에 유일하게 들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10만 부 넘게 팔리며 올 상반기 가장 많이 나간 SF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잠’ ‘제3인류’ ‘고양이’ ‘죽음’ ‘타나토노트’ 등 5권을 상위 20위 안에 올렸다. 이 밖에 아서 C 클라크, 필립 K 딕, 어슐러 K 르귄, 커트 보니것 같은 SF 거장을 비롯해 ‘마션’(5위)의 앤디 위어 등 신예 작가 작품도 선정됐다. 알라딘 자체 SF 시장도 2011년 상반기 대비 올 상반기에 5.5배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라딘 측은 “20대의 SF 구매 비율이 1999∼2009년은 전체의 3.5%에 불과했으나 2010∼2019년 19.3%로 증가했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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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노예의 아들도 왕이 될 수 있었던 나라

    절대 강자를 만들지 않는 세력균형이 국가 간 관계의 철칙으로 자리 잡아가던 근대 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은 공포 그 자체였다. 16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자 칼리프를 자처한 지도자들이 빈을 세 차례 포위하는 원정(遠征)을 감행했을 때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이 힘을 합친 것도 세력균형의 파탄은 곧 유럽의 붕괴라는 우려에서였다. 이런 연유 등으로 유럽 중심의 역사 서술은 오스만 제국을 단순히 객체화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발칸전쟁과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 국가들에 의해 맥없이 해체된 오스만 제국 말년의 실상은 이런 관점을 더욱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5세기 동로마 제국이 종언을 고한 이후 서구 열강의 지구적 식민지 확장 이전까지 400년 넘게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영토를 보유했던 오스만 제국은 그런 역사적 ‘박대’를 받을 대상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스만 제국을 주체적 행위자 위치에 놓고 바라보며 이 제국이 어떻게 600년을 존속할 수 있었는지 개괄한 이 책은 오스만 제국뿐만 아니라 이슬람 역사까지 객관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오스만 제국 600년의 번영과 쇠퇴를 왕위계승, 권력구조, 통치이념이라는 3가지 틀로 본다. 왕권 다툼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계승자 이외의 왕자를 죽이는 ‘형제살해’ 방식, 시대의 변화에 맞춰 중앙집권과 분권을 오간 권력구조, 그리고 비(非)무슬림의 신앙과 가치에 관대한 이슬람 통치이념이 조화를 이루며 제국을 지탱했다는 것이다. 특히 노예의 아들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고, 기독교도 소년들을 등용해 술탄을 수행하게 하는 데브쉬르메와 이들이 커서 대(大)재상 등 요직에서 국정 운영을 맡는 카프쿨루 제도를 두며, 기독교도 노예들로 이스탄불 중심의 군사 세력인 예니체리 군단을 구성하는 등 이질적인 것의 혼융이야말로 오스만 제국 역사의 백미로 보인다. 19세기 들어 단일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와 국민국가체제의 등장을 오스만 제국이 견뎌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600년 역사를 350쪽 이내에 소화하기란 버거운 작업인데 일본 연구자 특유의 꼼꼼함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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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는 책을 싫어한다고요? 어떤 책 읽을지 몰랐을 뿐이죠”

    “내가 난독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처음으로 책을 완독해 봤다.” 작가 이묵돌(26)이 운영하는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한 일부 20대 회원의 소감이다. 이 작가는 올 초부터 유료 회원 50명을 모집해 한 달에 4회,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회원 50명 중 20대가 약 80%다. 10대 시절을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포획돼 ‘책이라고는 교과서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보낸’ 20대가 독서모임에 성큼 발을 내딛고 있다. 30대 직장인을 겨냥한 독서모임 중심의 유료 회원제 소셜 살롱인 ‘아그레아블’ ‘트레바리’ ‘문토’ 등에도 20대 회원이 점차 늘고 있다. 회원 800명가량인 아그레아블은 20대가 20∼30%를 차지한다. 월간지 ‘신동아’가 지난해 꾸려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는 무료 독서모임 ‘지식커뮤니티 북치고’ 역시 예상 밖으로 회원 60여 명 중 20대가 80%를 넘었다. 종이책하고는 벽을 쌓은 것 같고, 독서 문화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자인하는 20대가 돈을 내면서까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박기수 씨(24)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 드라마 등은 SNS에서 공감대가 넓지만 책 이야기를 하면 “아는 척하냐”는 또래의 반응에 숨이 막혔다는 뜻이다. 경찰 공무원인 박 씨는 “살아온 세계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평소 듣지 못하던 얘기를 들으면 내 외연이 넓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지만 주위에 내용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해서 독서모임에 발을 들여놓는 20대도 적지 않다. 대학에 와서 우연한 계기로 책의 세계에 빠져 문예창작으로 전공을 바꿨다는 정혜성 씨(24)가 그렇다. 아그레아블 모임에 나가는 정 씨는 “이 모임에서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고 말했다. SNS 친화적인 데다 대학 동아리 활동도 폭이 좁아지고 취업 준비에 매몰되면서 다른 자극을 바라는 마음도 한몫한다. 독서모임이 ‘삶의 환풍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작가는 “SNS에 떠도는 가벼운 콘텐츠의 공허함을 채우고 싶고, 유튜브 넷플릭스의 콘텐츠로는 채워지지 않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찾는 것도 같다”고 풀이했다. 중고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나온 정소라 씨(26)는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독서모임의 플랫폼 역할에 주목한다. 정 씨는 “독서모임은 소설이나 고전 한 권을 다 읽도록 시키는 미국 영어 수업과 유사하다”며 “책에 대해 생각을 나누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독서모임 회원인 윤현수(가명·26) 씨는 “활자 속에서 얻는 위로와 모르는 사람이 전해주는 공감이 새삼 고맙다. 묘하게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 독서모임에서는 국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접수한 에세이류보다는 국내외 고전이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다룬다. 20대가 평소 많이 접하지 않는 새로운 ‘장르’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정답을 찾는 공부 습관과 누군가 핵심을 정리해주는 데 익숙한 20대에게 독서모임은 ‘책읽기에 정답은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윤 씨는 “20대는 책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 책을 접한 적이 없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라며 “좋아하는 것을 깊게 파고드는 우리 세대의 속성상 독서에도 깊게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서모임은 이들에게 새로운 식습관을 들게 하는 것처럼 자신만의 독서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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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700페이지 요리책에 왜 사진 한장 없냐고요?”

    2001년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 시즌2 17편에서 70대 상원의원이 건강보험법안 처리를 막으려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한다. 이 의원이 8시간째 단상에서 읽는 것은 두꺼운 요리책이다. 새우튀김 요리법을 읊는 장면이 잠시 비친다. 요리책은 독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실용서다. 완성된 음식을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담은 사진이 있고, 조리 순서별 사진을 곁들인 것도 있다. 그런데 요리 사진은 아예 없고 700쪽 분량에 450여 가지 요리법을 담은 책이 있다. ‘정통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마르첼라 하잔 지음·박혜인 옮김·마티)다. 서성진 편집자(35·사진)를 비롯해 인문예술 서적을 주로 내온 출판사 마티 사람들은 이 책대로 하면 집에서도 매끄럽게 만들 수 있는지 직접 몇 가지를 요리해봤다. “대표 요리법이 양파 토마토 버터만 넣는 토마토소스, 몸통에 레몬만 넣고 굽는 로스트치킨, 우유에 조린 돼지고기 등심인데 이 중 토마토소스, 로스트치킨하고 파스타, 시금치 수프 등을 만들어 먹어보고는 ‘괜찮다, 이거’ 했지요.” 완성품 사진이 없으니 스스로 만들고서 ‘이 비주얼이면 괜찮은 건가’ 의구심도 들지만 먹어봤을 때 “괜찮잖아!”라며 만족할 수 있단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서 편집자는 “기존 요리책에는 조명도 환하고 더 번지르르하게 나오게 기름을 발라 찍는 요리 사진이 있지만 집에서 하면 절대 그런 비주얼이 안 나와 좌절감만 느낀다”고 말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요리의 성경으로 불리는 ‘실버스푼’이 이탈리아에 사는 이탈리아인을 위한 책이라면 ‘정통 이탈리아…’는 비(非)이탈리아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책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미국에 살던 저자가 이탈리아말로 쓴 요리법을 미국인 남편이 영어로 옮겨 적었대요. 요리 초보인 배우자가 기초적인 것까지 물어봐서 그런지 내용이 자세해요.” 저자(1924∼2013)는 이탈리아에서 이 요리를 언제 왜 먹는지, 고향 또는 아버지 등 함께 먹었던 사람과 공간의 추억을 군데군데 넣어 읽는 맛도 난다. 밑줄을 쳐가며 읽을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밤은 겨울에 구하면 좋다’가 아니라 ‘밤을 구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는 낮이 짧고 밤은 길며 차가울 때’라는 식이다. 저자는 책에서 “창조적이며 놀라운 맛을 내려고 쓴 것이 아니다. 읽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썼다”고 말한다. 그만큼 서민적이고 보편적이라는 뜻일 게다. 서 편집자는 “완벽한 맛은 아니지만 내 입맛에 간이 맞고 ‘한 끼, 잘 해먹었다’ 정도로 요리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는 말이 딱 맞는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이 책의 모든 요리를 해먹어보겠다며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모를 일이다. 이 책의 요리법을 유튜브에서 누가 실연해 보일는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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