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타향에서 ‘경부고속도로 밑거름’이 된 그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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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골로 가는 길1·2/정장화 지음/각 390쪽 386쪽·각 1만4800원·나남

20여 년 전에 이 소설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1946년생인 작가가 40대 초반까지 자신의 삶을 형상화한 듯한 이 작품은 1권은 고향의 삶, 2권은 타향의 삶으로 나뉜다. 그 시기는 정확히 한국의 근대화와 겹친다.

이른바 후일담과 사소설로 한국 소설이 빠져들게 된 1990년대 이전에는 이 같은 배경을 가진 작품이 적잖았다. 토속적, 향토적이라는 수식어로 표현되던 시골의 서정 또는 누추함. 냉정한, 비열한 등으로 꾸며지던 도시의 비참 또는 잔인함. ‘은골로 가는 길’은 이것들이 한데 합쳐져 드러난다.

이 소설 1권은 충남 산골마을 은골에서 몇백 년 살아온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 세혁의 유년부터 고교 졸업 후 결혼까지를 담았다. 2부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한 세혁의 서울 생활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같지만 1권과 2권은 각기 다른 소설 같다. 1부는 보릿고개와 가난의 참혹함을 갈 데까지 보여주면서도 생생한 충청도 사투리와 시 같은 문장이 버무려져 찰지게 읽힌다. ‘나는 산에 갈 때 숲을 보고 들어갔다가 나무를 보고 나왔다. 나무도 사람처럼 똑같이 생긴 나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곧고, 뒤틀리고, 살찌고, 마르고, 다보록하고, 엉성하고, 꼬이고, 꺾이고, 벌레 먹고, 병들고, 상처 없이 자란 나무는 없었다.’

반면 2부는 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를 중심으로 1권에 비해 딱딱한 문장으로 다소 건조하게 구성된다. 시대 배경은 영화 ‘국제시장’과도 겹치지만 무조건적인 ‘아,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다. 근대화의 초석을 놓았다는 객관적 평가를 받는 경부고속도로지만 세혁에게는 ‘경부고속도로는 독일 아우토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잉태하여 경북 구미에서 사산(死産)되었구나!’일 뿐이다.

산업화와 ‘잘살아보세’의 그 시대를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살았다. 어떤 모습이 옳은지, 그른지 딱 잘라서 볼 수도, 볼 필요도 없다. 누군가 말했다. “사소한 사람도, 사소한 역사도 없다”고.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향수(鄕愁)라는 말을 이 소설을 통해 한번 느껴볼 만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조금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작품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은골로 가는 길#정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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