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민동용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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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동용 기자입니다.

mindy@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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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순수함과 철없음, 어느 쪽이든 소중해

    ‘아이 같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아이처럼 순수하다. 아이같이 철이 없다. 어른은 때때로 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사랑에 빠졌을 때 혀 짧은 소리로 간질간질 이야기’하는 것은 순수한 것일까, 철이 없는 것일까. 스마트폰 ‘신상’이 갖고 싶을 때 ‘한정판이라고 부르면서 꼭 필요한 거라고 우기’는 것은 어느 쪽일까. 작가는 구분할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듯하다. 어느 쪽이든 다 소중하니까. 중요한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들을 아이 때 많이 만드는 일이다. 어른이 돼서 불쑥 튀어나올 그 아이를 결정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어떤 아이라도 잘 들어줘야 한다. 어른이 이 책을 봐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아이한테 읽어주다 눈물이 찔끔 나올지도 모르겠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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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아파트 숲’ 서울도 낭만이 될 수 있죠”

    서울을 고향이라 부를 수 있을까. 1960, 70년대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상경한 부모를 둔 서울 아이들에게 고향이란 대개 아빠, 혹은 엄마의 고향이었다. 1980년대 이후 서울 출생자들에게는 좀 다른 것 같다. 1982년생 싱어송라이터 검정치마는 ‘내 고향 서울엔’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동갑인 지리학자 황진태 박사(사진)는 같은 이름의 책(돌베개)을 냈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점점 남하(南下)하는 저자의 동선에 따라 종로, 신촌과 홍대, 영등포와 구로 그리고 강남에 얽힌 ‘자잘한’ 기억을 영화 노래 같은 대중문화에 버무린 글들을 모았다. 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황 박사는 “아파트 숲이 고향일 수 있겠느냐는 곳이 서울인데 (30년간 살아온 오래된 아파트를 책과 영화로 기록한) 둔촌동 주공아파트처럼 기억들이 쌓여서 (고향이라는) 지층이 되고 있다”고 했다. 기억을 이야기하는 게 ‘라떼(나 때는 말이야)’나 싸구려 낭만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저자는 낭만을 전략적으로 밀어붙였다. “틈새공간으로서 자잘한 기억을 말하고 나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 아래 세대나 위 세대도 자신의 장소에 얽힌 기억들을 얘기하는 여지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장소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의 공유가 세대 간 소통과 연대의 마중물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밤에 을지로 ‘만선호프’가 있는 골목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을 보며 영화 ‘월드 워 Z’의 몰려드는 좀비들이 떠올랐다. 그 공간의 활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들이 근대화 과정의 제조업 생산도시였던 그곳의 ‘역사’를 기억할까요.” 지금이 ‘미친 세상’일 수 있는 젊은이들이 그냥 피해자로, 종속된 것으로, 막막하게 고립되지 말고 다른 이와의 연대를 고민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서 이 책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을지로 가봤어?” 하면 세대에 따라 그곳에 대한 서로만의 기억을 갖고 있다. 다르다고 하더라도 작은 기억의 공론장이 만들어진다면 변화를 모색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글들이 마냥 사적인 옛날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서울의 지역과 지역 사이에 만들어진 정치경제적, 계층적 갈등과 애증이 문장 사이사이 배어 있다. 그래도 그의 바람은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다. “낭만이니까요, 그냥 재미있게 하하하. 서울을 얘기하는 장을 하나 만들었으니 앞으로 다양한 의제들을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다양한 버전의 ‘내 고향 서울’이 나올 것 같은데요. 정치적인 에세이일 수도 있고요.”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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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문정 디자이너, 2020년 이탈리아 ‘A’ 디자인 어워드 금상 수상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장문정 씨가 2020년 이탈리아 ‘A’ 디자인 어워드 (A‘ Design Award & Competition 2020)’의 패션·의류·의복 디자인 부분 금상(golden)을 받았다. A‘ 디자인 어워드는 이탈리아 코모의 디자인 및 디자인 컨설팅 업체 OMC 디자인 스튜디오(OMC Design Studios SRL)가 온라인으로 주최하는 디자인 시상식이다. 건축 가구 패션 등 100개 분야에서 시상한다. 뉴욕에서 ’MOON CHANG‘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한 장 씨의 수상작은 ’혼성의 미(Hybrid Beauty) 여성 의류 콜렉션(사진)‘이다. 생사를 넘나든 사고(事故)의 경험과 외상후증후군(PTSD)을 승화시켜 ’미학과 감각 사이의 긴장감과 이중성‘을 보여주는 컨셉트다. 장 씨는 세계적 디자인학교인 뉴욕 프랫(Pratt)인스티튜트와 FIT에서 각각 학·석사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다음달 일본 도쿄, 싱가포르 도버스트리트, 중국 상하이 레인크로포드백화점 등에서 두 번째 브랜드 ’VENUS IN BLACK (비너스 인 블랙)‘을 띄울 예정이다.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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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유행 따라가는 소설 만들고 싶지 않았죠”

    5권짜리 ‘국수(國手)’에 이어 10권짜리 ‘금강’(김홍정 지음)이다. 국내 작가의 장편소설 내기도 쉽지 않은 문학출판계에서 총 3292쪽의 대하소설이라니…. “호흡이 짧고 유행을 따라가는 소설은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올 1월 역사소설 ‘금강’을 펴낸 도서출판 솔의 임우기 대표(64·주편집자·사진)는 문학편집 35년 경력의 문학평론가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도 그의 손을 거쳤고 구수한 사투리가 넘쳐 나는 이문구 전집도 펴냈다. 임 대표는 “중앙에 종속된 지역이 아니라 서로 독립적이고 평등한 유역(流域·강물이 흐르는 언저리)이 네트워크를 이루며 문학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유역문학론’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충청도 금강(錦江) 유역을 중심으로 중종반정부터 임진왜란, 후금(後金) 건국에 따른 파장, 허균의 죽음까지 조선의 16∼17세기를 민중사적 시각으로 조망한 이 책이 와 닿지 않을 리 없다. 대부분 역사소설이 남성 중심인 것과 달리 작가의 고향인 충남 공주를 기반으로 한 상단(商團) 행수 등 여성 5명이 100년 넘는 유장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김홍정 작가와 15년간 작업한 셈입니다. 김 작가는 세계관이 건강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합니다. 특히 반항과 도전, 저항을 담은 문장의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원래 금강은 3권짜리 장편소설로 처음 나왔다. 김 작가의 ‘천재성’과 내용의 확장 가능성을 본 임 대표가 더 늘리자고 제안해 2017년 6권으로 출간됐다. 그리고 다시 2년여의 ‘엄청난 고생’ 끝에 10권으로 완성했다. 지역의 방언을 살리고 향토사를 계승해야 한다는 유역문학론에 ‘금강’은 딱 들어맞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는 금강 유역의 역사와 전통이 풍부하게 배어 있다. 예를 들면 객주의 국밥을 비롯해 젓갈, 생선탕, 잔치 음식 등 당대 금강 주변에서 먹었던 음식 이야기가 집요하리만치 생생하고 감칠맛 나게 재현된다. 술 먹는 장면은 임 대표가 줄이기까지 했을 정도다. 또한 이 유역 민초는 당연히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현재 한국 소설이 감각적이고 사소설적인 문장을 쓰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모든 소설이 그렇게 몰아갈 이유는 없지 않나요. ‘영어 번역을 전제로 해서 글을 쓴다’는 소설가가 있던데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국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바로서의 세계문학은 허구라고 생각하는 그는 금강 같은 소설을 통해 한국어의 고유한 언어 체계와 정서, 사상을 지켜내야 한다고 믿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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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노르망디 공작에서 잉글랜드 국왕으로

    브렉시트의 혼란을 거치며 유럽 정치의 주도국 자리마저 흔들려 보이는 작금의 영국이다. 유럽 대륙에서 동떨어진 잉글랜드라는 섬나라에서 서양은 물론 세계를 이끈 제국이 되는 역사의 시초가 바로 정복왕 윌리엄이다. 프랑스 유명 중세학자 및 언어학자이던 저자(1915∼1995)는 프랑스 공국이던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이 도버해협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영국이 바이킹 세계와 절연하고 대륙의 본류에 합류하게 되는 과정을 공시적, 통시적으로 흥미롭게 정리했다. 정복왕 윌리엄을 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인물들과 비교하며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웨스테로스 7왕국을 정복하고 타르가르옌 왕조를 세운 아에곤이 윌리엄을 모델로 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또 다른 아에곤인 ‘존 스노우’는 서자(庶子)로 불렸다는 점에서 정복왕이 되기 전의 윌리엄과 흡사하다. 윌리엄 역시 서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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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돌아온 ‘스파이소설의 거장’

    스파이소설을 문학의 경지에 올려놓은 존 르카레는 ‘개인이 사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관념’을 작품에서 보여주려 한다. 냉전 시기 암투와 음모가 횡행하는 스파이 세계를 다루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얘기다. 그의 2017년 작 ‘스파이의 유산’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저자의 걸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1963년)의 후속편이자 뒷이야기다. 당시 동독 비밀경찰(슈타지)에 영국 정보부가 심어둔 고위 정보원 보호를 위한 ‘윈드폴 작전’에 이용됐다가 숨진 요원과 여성의 자녀들이 복수를 꾀한다. 소설은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조지 스마일리 대신 그의 부하였던 피터 길럼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피터는 진실을 얘기하면 서커스(정보부의 옛 별칭)를 배신하게 되고 거짓으로 버티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윈드폴 작전의 대의명분은 냉전 이후 ‘세상이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일 뿐. 고뇌하는 피터는 ‘자유의 이름으로 우리가 인간적인 감정을 얼마나 깎아 내면 스스로 인간이라거나 자유롭다는 생각을 더 이상 안 하게 되는 겁니까’ 하고 마음속으로 절규한다. 취조와 비밀보고서 내용, 잦은 회상으로 구성돼 자칫 지루할 것 같지만 거장의 솜씨는 86세에도 빛을 발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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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글쓰기, 60년 걸었는데 지름길은 없더라”

    “계획한 모든 인터뷰를 했다. 읽으려던 모든 책과 과학논문과 박사논문을 읽었다. 사일로 한 채를 거뜬히 채울 만한 자료를 모았는데 이제 이걸 가지고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국 논픽션의 거장 존 맥피의 책 ‘네 번째 원고’에 나오는 저자의 하소연이다. 60년 넘게 잡지 ‘타임’과 ‘뉴요커’에 글을 써왔고, 지질학 동식물 인물 환경 역사 등을 주제로 30여 권 책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도 글을 쓸 때는 ‘타불라 라사(백지 상태)’가 된다. 89세가 된 올 1월 뉴요커에 쓴 기사 제목도 ‘타불라 라사’다. 뉴요커에 실린, 글쓰기 과정을 담은 에세이 8편을 모은 이 책은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이 같은 대가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위안을 건넨다. 그렇다고 “글쓰기의 지름길”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글감을 찾은 뒤 글의 구조를 짜고, 도입부에 머리를 싸매고, 결론을 써서 초고와 퇴고를 마치는 지난한 과정을 찬찬히 짚어준다. 글감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아이디어는 내가 찾는 그곳에 있다”고 격려한다. 글의 구조를 짤 때는 “구조에 글감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면 독자들이 구조를 뻔히 눈치 채게 된다”고 힌트를 준다. 초고에 애먹는 친딸에게 “첫 번째 원고에는 뭐든 괜찮으니 그냥 내뱉고 토해내고 지껄이렴” 응원하지만 정작 자신은 도입부를 쓰지 못해 끙끙댄다. 디테일에 충실하면서도 정갈한 문장에 인정미와 유머를 가미한 그의 글은 모든 형태의 작가를 따뜻하게 감싼다. “…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 내 글이 실패작이 될 게 빤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제목 네 번째 원고는 저자 자신도 글을 완성시키는 데 적어도 4번은 쓰고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단 한 줄도 북북 그어서 지우지 않는 완벽한 작가의 눈부신 초상이란 환상의 나라에서 온 속달우편일 뿐이다.” 네 번째 원고가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느 노언론인의 작문노트’는 문장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 아사히신문 1면 덴세이진고(天聲人語) 칼럼을 1975년부터 13년간 집필한 저자(2017년 작고)는 살아있다면 90세다. 저자는 좋은 문장에는 ‘이것만은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다’는 글쓴이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일은 작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서로 칼로 찌르는 일과 다름이 없다”(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혼신의 마음이다. 문장은 어깨에 힘을 빼고 쓰라고 권한다. 동시대를 살며 글을 써온 저자들이어서인지 두 책에는 호응하는 충고가 적지 않다. “글쓰기는 선별(選別)”(…원고)이고 “‘빼다’는 동사와 함께하는 노동”(…작문노트)이다. “‘틀에 박힌 표현’과의 격투를 벌인다는 뜻”(…작문노트)은 “빌려온 생동감 위에는 절대 순조롭게 착륙할 수 없다”(…원고)는 것이다. 두 저자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가장 적절한 한 단어(le mot juste)’를 찾는 일이 글쓰기라고 ‘합의’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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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응급실에서 마주한 인간군상의 맨얼굴

    책의 향기는 개성 강한 저자를 인터뷰한 ‘이 사람이 쓰는 법’, 놓치고 지나친 책의 리뷰 ‘이 사람이 읽는 법’,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책을 소개하는 ‘이 사람이 만드는 법’을 번갈아 게재합니다. 새로운 각도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신선하게 조명한 책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훅 하고 짧은 숨을 들이마시게 되는 첫인상은 진짜 웃음 많이 짓는 사람 특유의 눈가 주름에 슬슬 바뀐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원더박스)의 저자 곽경훈 씨(42·사진)를 15일 만났다. 울산병원 응급의학과 의사인 곽 씨가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서 보낸 레지던트 4년간의 얘기를 담았다. 응급 처치 후 추가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각 과 레지던트들이 “우리 과 담당 아니다”라며 받기를 꺼리고, 전문분야 경력이 일천한 교수들은 호언장담하다 환자를 위기에 빠뜨린다. ―당시 교수들이 좋아하지 않겠다. “심히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가 97학번인데 선배들은 ‘이런 얘기까지 적으면 문제 아이가’라는 반응이고, 레지던트들은 낄낄대며 ‘맞잖아’ 한단다.” ‘동물의 왕국’ 짐승 무리 관찰하듯 인간의 말과 행동의 이유를 분석하는 ‘시니컬한’ 학문, 인류학에 매료됐었다는 그의 말대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둘러싼 군상들의 이야기가 민족지(民族誌)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응급 치료 후 각 과에서 입원 환자 받기를 미룬다. “사람이 신체 손상을 10점 입으면 죽는다고 볼 때 5점짜리 손상 2개나 10점짜리 1개면 산다. 임상과가 명확하니까 치료를 잘 받는다. 하지만 1점짜리 손상 10개면 목숨이 흔들린다. 걸쳐 있는 임상과 모두 ‘우리 환자 아니다’라고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실력인가. “전혀. 평균이나 평균 약간 아래 수준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복싱도 하고 사진 찍기도 좋아하고 수업 빠지고 영화 보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고는 유연하다. 간호사가 ‘이런 상태 아닐까요’라고 살짝 하는 말도 진단에 참고한다. 그럼 도움이 된다.” ―교수들을 들이받기도 한다. “큰 조직에 있으면 부조리한 일이 생기는데 적당히 반항해도 괜찮다. 레지던트 때 좀 불합리한 거 있으면 교수님한테 대들어도 죽지 않는다. ‘하얀 거탑’ 속 꼬붕 짓 하는 의사들처럼 비굴하게 살 거면 나와서 돈 많이 벌고 살면 된다. DNA 규명한 왓슨처럼 똑똑한 것도 아니고, 또 그만큼 똑똑하면 윗사람 엿 먹여도 교수 된다. 쫄지 말고 살자는 얘기다.” ―응급실의 영웅처럼 비치는 대목이 있다.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도, 정의로운 슈퍼맨도 아니다. 돈을 많이 받으니 그 값을 하는 사람이다. 이 일을 존경하는 만큼 명예를 지키려고 한다. 환자가 ‘갑질’ 하면 까칠하게 꺼지라고 한다. 나쁜 평판이 가끔씩 있어야 명예를 지킬 수 있다.” ―글이 드라마 보듯 술술 읽힌다. “작가를 꿈꿨기에 글쓰기는 진정한 자아실현이다. 그렇다고 나이 들어 의사 잡지에 수필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세미프로는 돼야 한다. 글 쓰는 의사들이 많은데 다들 착하고 감성적으로 쓴다. 후발주자로서 그런 캐릭터로는 성공 못 한다. 남궁인 씨는 잘생기고 좋은 학교 나왔지만 나는 못생기고 지잡대 출신이다. 그렇게 멋지고 온화한 역할 하면 망한다. 하하.”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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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더이상 이념문제로만 보지 말라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선출은 많은 학자에게 숙제를 안겨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와 진보, 백인과 유색인, 부유와 빈곤 같은 분석틀로는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담론을 다듬었고, 저자는 집단 정체성이라는 더 작은 단위의 현실에 천착했다. 그 결과물이 정치적 부족주의다. 과거에는 다양한 집단의 의사결정도 거시적 분석틀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들의 차이를 진보는 포용이라는 실천으로, 보수는 보편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오늘날 분노의 시대’에는 선택과 행동의 스펙트럼이 일치하는 이들끼리 똘똘 뭉치며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규정한다. 부족에서 동일시(同一視)는 알파요 오메가며, 배제는 본능이다. 지난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던 도시·연안지역 백인 엘리트는 농촌·중서부·노동자 계급 백인의 ‘반(反)기득권 정체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면서 이들의 트럼프 지지에는 분노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하지 않다는 확신이 진보주의자의 분노와 충돌하면, 엘리트 진보주의자와 그들이 도우려 하는 대상인 노동자 계급 사이에 분열이 생긴다.” 4·15총선의 의미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다만 이를 보수니 진보니, 산업화세력이니 민주화세력이니 하는 ‘한물간’ 개념으로 해석하려 든다면 곧 울분에 찬 부족 간의 거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빠질 것이라고 이 책은 경고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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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30분 만에 결정된 ‘한반도의 미래’

    흔히 실패한 유화정책, 비굴과 배신 외교의 상징으로 통하는 뮌헨회담 못지않게 숱한 논란을 낳은 정상회담이 1945년 2월 크림반도에서 열린 얄타회담이다. 미국과 영국이 동유럽을 소련에 팔아먹고 극동의 운명마저 소련 손아귀에 던져줬으며, 결국 냉전 시기 많은 문제의 기원이 된 실패한 회담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얄타에서 이미 한반도 분할이 결정됐고 38선이란 분단선까지 그어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저자는 말 많고 탈 많은 얄타회담을 각종 공식, 비공식 자료와 기밀문서, 참석자들의 일기, 회고록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복원했다. 옛 소련에서 나고 자라 캐나다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로 있는 그야말로 적임자일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윈스턴 처칠, 이오시프 스탈린 등 ‘3거두’의 밀고 당기는 대화를 녹취라도 풀어내듯 긴장감 있게 재구성했다. 학자로서 냉정한 역사적 평가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얄타회담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은 냉전시대의 ‘신화’에서 얻은 부정확한 정보 탓이었다고 지적한다. 얄타회담은 실패한 정치적 거래가 아니었으며 당시로선 불가피한 선택과 결정이었다는 것. 스탈린은 세 정상 가운데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상대를 잘못 판단하고 착오를 저질렀으며, 루스벨트와 처칠의 선택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실제적인 대안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약소국은 강대국 간 거래로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뀌는 신세일 수밖에 없다. 한국 얘기는 루스벨트와 스탈린 둘만의 30분 회동에서 잠깐 거론됐는데 다음이 전부였다. 1943년 11월 테헤란회담에서 한국에 대해 40년 신탁통치를 제안했던 루스벨트는 이번엔 20∼30년을 얘기했다. “기간은 짧을수록 더 좋겠죠”라고 말한 스탈린은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킬 필요가 있는지 물었다. 루스벨트는 그럴 필요 없다고 답했다. 그는 신탁통치 관리국가로 미국 소련 중국을 제안하며 “영국을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영국은 반발할 겁니다”라고 했다. 스탈린은 “영국은 모욕감을 느끼겠죠. 아마도 처칠 총리는 우리를 죽이려 할 거요”라고 농담했다. 루스벨트는 타협안으로 처음엔 세 국가가 맡되 영국이 반발하면 포함시켜 주자고 했다. 스탈린도 동의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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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코로나 사태에도 잊지 말자 北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모든 이야기를 삼켜 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북핵(北核)은 지구적 이슈였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화정평화재단이 2017년 7월부터 올 1월까지 북핵을 주제로 국내외 정상급 외교안보 전문가 30명을 초빙해 매달 개최한 강좌의 기록인 이 책은 정독의 가치가 있다. 북한이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위기를 고조시키고 이듬해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명분으로 남북 화해 모드 조성에 적극 나선 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지만 이후 ‘하노이 노딜’로 핵 폐기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과 그 이후를 조목조목 분석하고 전망했다. 회고적이 아니라 동시대성을 갖췄기에 내용이 살아 숨쉰다. 반기문 한승주 윤영관 문정인 이종석을 아우르는 연사 구성은 압권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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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내가 누른 ‘좋아요’가 선거자료로?

    2018년 3월, 영국 정치 컨설팅 및 데이터 분석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가 불법 유출된 페이스북 사용자 5000만 명의 개인정보를 2016년 미국 대선에 활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CA는 당시 미 공화당 테드 크루즈 후보의 당내 경선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선 선거운동에 이 자료를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저자인 브리태니 카이저는 그때 CA에서 사업개발 이사로 일했으며 2018년 크리스토퍼 와일리에 이어 두 번째 내부고발자로 언론에 사실을 폭로했다. 이 책은 저자가 CA에서 3년간 일하며 경험한 ‘어두운 선거공학’의 단면이자, 21세기의 석유로 불리는 빅데이터가 통제되지 않고 쓰일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엿볼 수 있는 창(窓)이기도 하다. CA는 페이스북 사용자의 신상뿐만 아니라 이들이 어떤 내용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클릭 성향까지 담긴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유권자 그룹의 성격을 분석했다. 그리고 이들이 공감할 확률이 높은 정치 광고 등 다양한 메시지를 페이스북 스냅챗 판도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뿌렸다. 약간 과장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 타깃으로 하는 개인 맞춤형 메시지를 제작해 그 사람의 SNS에 집어넣은 셈이다. 이것이 완전히 새롭지만은 않다.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도 2012년 재선 과정에서 페이스북 개인정보를 활용해 흡사한 전략을 구사했다. 차이가 있다면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는 동의를 사전에 얻었다는 것뿐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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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작정 좋아요”… 도마뱀에 빠진 남자들

    1997년 PC통신 천리안에는 ‘애완동물’ 카테고리가 있었다. 그 밑에 여러 소모임이 있었는데 ‘파충류방’도 그중 하나였다. 1975년생 동갑내기인 한국양서파충류협회 이태원 회장과 문대승 박성준 이사는 여기서 알게 돼 절친한 친구가 됐다. 서로 다른 대학에서 한문학, 디자인, 법학을 전공하던 이들은 종종 주말이면 서울 동묘 인근 수족관 거리에서 만났다. 양서파충류라고 해봤자 물거북이와 이구아나가 전부였던 때, 이곳에서는 낯설고 신기한 거북이와 도마뱀을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전국 어디서 누가 무엇을 키운다고 다 알려질 정도였어요. 애완용 뱀인 ‘볼 파이선’ 신종을 입수했다는 얘기를 듣고 기차를 타고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이 회장) 2000년대 들어 인터넷으로 해외 파충류 애호가 사이트에서 찾은 진기하고 희귀한 거북이 등의 사진을 들고 수족관 거리에 가면 몇 주 지나지 않아 실물이 등장했다. 파충류 시장이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디자인 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하다 애완동물 용품 업체에서 일하던 문 이사는 아예 파충류 가게를 차렸다. 당시 전국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파충류를 수입해 파는 가게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두 친구가 부추겨서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근처에 차렸는데 금세 사랑방이 돼버렸어요. 동호인들이 찾아와서 거북이 도마뱀 뱀 이야기하고 같이 저녁 먹고 그랬지요.”(문 이사)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박 이사도 시간만 나면 찾아왔다. 차문석 이사와 출판사 박영사의 안상준 대표도 당시 ‘동생’처럼 이 아지트에서 뒹굴었다. “고시촌 원룸 한쪽 벽에 사육장을 놓고 거북이 5마리를 키웠어요. 아침마다 야채를 썰어서 먹였죠. 저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지요.”(박 이사) 파충류 가게는 6년 만에 자본금을 까먹고 문을 닫았지만 이들의 파충류 사랑은 더 맹렬해졌다. 거북이 도마뱀 뱀에 관한 책을 썼고 문 이사와 차 이사는 직업전문학교에서 파충류 사육법을 가르치게 됐고, 이 회장은 생명과학박물관의 수석실장이 됐다. 2017년 11월 협회를 창설한 이들은 최근 ‘양서파충류사육학’(박영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양서류와 파충류 사육에 대한 사실상 최초의 교재다. 합치면 사육 경력 100년이 넘는 4명의 실전 경험과 공부한 것들을 집대성했다. 전국에 파충류 숍이 250곳이나 되고 10만 명이 넘는 파충류 애호가들에게 올바른 사육문화를 알려주자는 뜻에서였다. 부주의로 ‘탈출시켜’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도록 하자는 뜻도 담았다. 이를 토대로 협회의 양서파충류자격증 시험도 치를 수 있도록 했다. “거북이는 실내에서 키우면 일찍 죽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비만 때문이에요. 받아먹는 모습이 예쁘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이를 주다 보니 당뇨 콜레스테롤이 오죠.”(박 이사) 개나 고양이같이 사람과 교감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 보면 징그럽고 혐오감마저 드는 파충류에 이들은 왜 빠지게 됐을까. “그냥 무작정 좋았어요. 양서파충류는 바쁜 일상에서 많은 시간과 관심을 들이지 않아도 되지요.”(이 회장) “이들의 색에 매료됐어요.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아름다움을 알아챘다고나 할까요.”(문 이사) “반려동물이 아닌 관상동물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 있지’ 하는 감탄을 느끼게 해주죠. 털이 없어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건 덤이고요.”(박 이사)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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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적 거리 두기’ 시간에 ‘책과의 거리 좁히기’ 어때요?

    인내와 배려의 시간이다. 마음을 살찌우기에 적절하다. 책과의 거리 좁히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편집 경력 20년 안팎의 1인 출판사 대표 9명이 500쪽 넘는 ‘벽돌책’을 권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 스티븐 핑커 지음·김명남 옮김·1408쪽 인류는 문명화의 과정에서 평화를 얻기 위해, 인간의 권리를 얻기 위해, 인간의 폭력성 복수심 가학성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인해 폭력의 역사를 거듭했다. 하지만 전쟁과 야만의 역사 안에서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내면의 악마를 제압해왔다.(조연주 레제 대표)밀크맨(창비) 애나 번스 지음·홍한별 옮김·500쪽 타인과의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며, 사회 안에서 굴러가는지를 경이로운 문체에 담아낸 소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치밀하고 묘사 또한 신선해 곱씹어 읽을 만하다. 사회적, 물리적 거리 두기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많은 사람에게 권한다.(박래선 에이도스 출판사 대표)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전 2권·가톨릭출판사) 박승찬 지음·716쪽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때 종교 문제가 화두였다. 기독교의 정체가 궁금한 이에게 추천한다. 서양의 문화 역사 철학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기독교를 중세철학 전문가가 예화와 사진 등을 곁들여 흥미롭게 풀어냈다. 십자군전쟁과 흑사병 등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박혜련 오르골 대표)빅 픽쳐(글루온) 션 캐럴 지음·최가영 옮김·648쪽 장대하고 명쾌하다. 입자부터 생명, 우주까지 아우르는 거창한 주제의 논픽션임에도 서술이 단 한 번 비틀거리지 않는다. 명쾌한 비유와 담백한 유머로 페이지가 팔랑팔랑 넘어간다. ‘사피엔스’급의 압도적인 책을 찾는다면 결코 지나칠 수 없다.(성기승 프시케의숲 대표)  신들의 봉우리(리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이기웅 옮김·824쪽  만화 ‘신들의 봉우리’의 원작 소설. 일본에서 720만 부 판매된 ‘음양사’ 시리즈의 유메마쿠라 바쿠가 구상부터 집필까지 20여 년 들여 완성했다. 극한의 리얼리즘 소설이자 산악문학의 정수. 어지러운 정국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길 바란다.(천경호 루아크 대표)마일스 데이비스(집사재) 마일즈 데이비스 지음·성기완 옮김·640쪽 ‘음성 지원’ 되는 듯한 구어체 문장이 매력적이다. 엄청난 음악적 성취를 이뤘지만 인간적으로는 좀 ‘재수 없는’ 남자가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좇다 보면 푹 빠져든다. 레전드들이 총출동해 재즈의 역사를 훑은 기분이다. 마일스의 눈으로 본 야사에 가깝지만….(전은정 목수책방 대표)자기배려의 책읽기(북드라망) 강민혁 지음·800쪽 자기배려란 개인주의나 자기본위가 아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서양철학이 비로소 찾아낸 철학적 출구다. 자기를 넘어서는 ‘자기’ 되기! 철학과 책읽기를 자기배려의 연장 삼아 연구한 ‘은행원 철학자’의 진중한 사색과 유려한 문장이, 어려운 책들을 음미하도록 이끈다.(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향모를 땋으며(에이도스) 로빈 월 키머러 지음·노승영 옮김·572쪽 페이지 넘어가는 게 아깝다. 생의 뿌리인 자연과 거기서 얻은 삶의 지혜를 사유한 책이라고 설명을 달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문장을 읽는 그 맛을 음미하며 읽다 보면 딛고 선 땅과 주변에 흐르는 공기를 바라보는 ‘나’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이현화 혜화1117 대표)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구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전 2권·황소걸음) 도널드 서순 지음·강주헌 외 옮김·1792쪽 ‘유럽문화사’ 저자 도널드 서순의 또 다른 대작. 제2인터내셔널이 탄생한 1889년부터 100년간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를 담았다.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서구 좌파의 노력과 한계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냉정하지만 따뜻하게 바라본다.(도진호 지노출판 대표) 정리=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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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AI, 인간의 일을 어디까지 빼앗을 거니

    “우리는 이상주의를 현실주의로 누그러뜨려야 한다.” 5년 전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전문직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기술 혁신이 20세기 내내 굳건했던 전문직의 종말을 부를 것이라 예측했던 저자. 그가 이번 책에서는 기술 발전이 경제적 파이를 키워 인간 노동의 새로운 수요, 즉 새 일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은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무도가(武道家)가 ‘도장(道場) 깨기’ 하듯 기술 발전과 노동 수요 발생의 연관성을 낙관한 경제학설을 하나씩 논파하면서.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네 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은행 창구 직원은 20% 증가했다. 계좌에 돈을 넣고 빼는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자 고객이 늘었고, 기술 혁신이 경제를 끌어올려 소득이 늘어나자 은행을 찾는 수요가 증가했으며, 더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게 된 결과다. 책은 이런 과정을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인간을 보완하는 유익한 힘의 싸움에서 언제나 후자가 이겼다.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충분히 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래 기술이 인간을 보완하던 힘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책은 말한다. 당초 ‘틀에 박힌 업무’만 대신하리라던 기술 발전은 인간만의 것으로 여겼던 공감 판단 창의성의 영역까지 넘어왔다. 그것도 인간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기술이 인간의 업무를 끊임없이 잠식해 절대적으로 일이 줄어드는 세상이 수십 년 내에 오리라 장담한다. 그 세상은 지독한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영향력까지 키운 ‘기술 대기업’, 찾기 힘든 삶의 의미로 구성된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조건적 기본소득과 삶의 의미를 만드는 ‘큰 정부’를 제시한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탄탄하고 무엇보다 현실적이던 논지가 정부에 대한 ‘무한 신뢰’로 귀결되는 것은 아쉽다. 저자는 정부가 살아야 하는 의미까지 제공하는 유토피아와 정부가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일까.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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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언제쯤 우주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1939년 미국 뉴욕 세계박람회 개막식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한 이 말을 이 책의 저자 앤 드루얀과 그의 남편 칼 세이건(1934∼1996)만큼 실천한 과학자는 드물 것이다. 칼 세이건은 1980년 독보적인 과학서적 ‘코스모스’와 동명의 TV 다큐멘터리로 과학과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당시 그의 곁에서 천문학자 스티븐 소터와 함께 다큐멘터리의 시나리오를 썼던 앤 드루얀은 2014년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라는 속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코스모스 출간 40주년을 맞는 올해 이 책을 펴냈다. 코스모스가 ‘우주를 이해하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칼 세이건의 큰 메시지를 서사시처럼 내보였다면, 앤 드루얀의 이 책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소속된 더 큰 자연을 이해하는 일은 끝을 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겸손을 바탕으로 지난 40년간의 과학적 성과를 포개어 우주와 생명, 과거와 미래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인류가 미래를 위해 농업을 발명한 이야기’에서부터 ‘생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고난들을 이겨낸 이야기’, ‘과학 덕분에 스스로 중심이고 싶어 했던 유치한 희망을 덜어낸 이야기’, ‘다른 생명체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야기’, ‘마침내 우주의 망망대해로 진출한 이야기’ 등이 13개 장에 담겼다. 유리 콘드라튜크, 카를 폰 프리슈, 니콜라이 바빌로프같이 잘 모르던 과학자의 이야기가 가미돼 논픽션 같은 흥미를 준다. 저자는 ‘수조 개의 다른 세계 중 하나에 불과한 창백한 푸른 점’ 위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인류가 지금은 그 지구에 대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과학의 선의(善意)를 하나의 신념 체계로 내면화해 후세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다면 희망은 있다고 강조한다. 정확한 설명과 함께 적재적소에 배치된 200장에 이르는 사진 그림 상상도를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충만감을 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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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쪽 팔 잃고도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1919년 1월 동제사의 밀명이 각 지역 요원들에게 전달된다. “우리 동포는 각지에서 독립을 선언하여 운동을 개시할 예정이다.” 중국 상하이에 기반을 둔 동제사는 국내외에 연결된 조직망을 중심으로 해외 정보를 수집하고 고국에 유포하면서 세력을 규합하는 독립운동을 해온 터였다. 밀명에 적힌 ‘운동’의 시기는 구체적이었다. “도쿄에서의 운동은 2월 초순에, 경성에서의 운동은 3월 초순에 실행하기로 돼 있으니….” 전국을 뒤흔든 만세운동이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은 3·1운동을 예고한 동제사의 지령으로 시작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신문에 연재한 독립만세운동의 대장정을 엮었다. 3년여에 걸쳐 국내외 80여 곳의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고 지역 자료들을 찾아봤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채록해 100년 전 만세운동의 현장을 생생히 살려냈다. 한시준 단국대 명예교수는 연재에 대해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평했다. 1권에서는 일본 도쿄 유학생 대표들의 2·8선언, 북만주 대한독립의군부의 독립선언서 선포 등 3·1운동 직전 해외 단체들의 활동 현장을 찾고, 중앙학교가 중심이 되고 각계각층이 참여한 국내 독립선언운동의 준비 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이후 남쪽 제주도에서 북쪽 함경도까지 전국 곳곳에서 울려 퍼진 독립만세의 함성을 전한다.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의협심이 강했던’ 주민 박영묵이 규합한 경남 하동의 비밀결사 ‘일신단’, 석유램프에 숨겨온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벌인 충남 당진 도호의숙의 유생들, 일본군의 추격에도 굴하지 않고 배를 띄워 선상 만세시위를 벌인 경기 고양의 어부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평범한 주민들이 앞장서서 전개한 시위 현장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독자적인 만세운동을 벌인 경기 수원의 기생들, 헌병의 칼에 한쪽 팔을 잃고도 만세의 외침을 그치지 않은 광주의 윤형숙 등 그동안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도 비중 있게 다뤘다. 당시 전국 13도 220개 군 가운데 만세운동에 참여한 곳은 211개 군(95.9%)으로 거의 대부분이다. 일제의 진압 과정에서 살해된 사람은 7500여 명, 부상한 사람은 1만6000여 명이다. 책에서는 숫자로만 알려졌던 사람들의 주도면밀한 시위 계획 장면, 태극기와 만세의 함성으로 분출된 독립의 열망과 죽음을 불사하고 일제에 맞선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3·1운동은 그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무저항운동 등 세계 각국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 창간 100주년을 맞는 동아일보 역시 3·1운동의 결과물이다. 취재팀은 “책을 통해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들려지는 동시에, 갈등의 골이 메워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 통합의 3·1운동 정신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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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중국엔 국가만이 존재… 코로나 정보통제가 증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등의 소설로 중국 사회의 ‘은폐된 진실’을 다뤄온 작가 옌롄커(閻連科·62)가 중국 고도성장의 이면을 이야기한 ‘작렬지(炸裂誌)’(자음과모음·사진)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작품이 과거의 ‘희미한’ 기억에 상상력을 더해 문학적 진실에 도달했다면 이 소설은 ‘익숙한’ 현실을 투시하고 분석해 현재를 뚜렷하게 보는 데 집중했다. 13일 ‘딩씨 마을의 꿈’의 옮긴이 김태성 씨의 번역으로 e메일로 만난 옌롄커는 “작렬지가 현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1949년(중국 건국) 이후 모든 과거는 현재가 되고 있고, 모든 현재는 과거의 번역”이라고 말했다. 대기근과 문화대혁명, 공산당 1당 체제, 마오사상 등을 다룬 이전 작품들이 드러낸 ‘어둡고 잊혀진’ 진실은 번영을 구가하는 현재에도 반복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작렬지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책력(冊曆)이 “숙명을 상징한다”며 “중국 역사는 항상 숙명과 윤회 속에 있다”고도 했다. 작렬지는 1980년 개혁개방정책 이후 중국의 ‘자례’(작렬·炸裂의 중국식 발음)라는 마을이 촌(村)→진(鎭)→현(縣)→시(市)→성(省)으로 커가는 과정을 쿵씨, 주씨 집안의 대립, 두 집안 남녀의 갈등, 쿵씨 4형제 간의 혼란으로 엮어냈다. 그 성장의 그늘에서 인간의 사랑, 욕망과 음란함, 사악함이 배금주의 집단주의 관료주의 군국주의와 적나라하게 교차한다. 그러나 결론에서는 ‘허망함’이 짙게 배어난다. “그 허망함이 오늘날 중국과 중국인의 정신적 상태이자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현대의 땅과 미래의 도로 위를 날아다니는 껍데기가 되어 있어요. 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몽유의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몽유 상태의 중국인을 상징하듯 소설에서 주인공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우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중국에는 개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사람은 반드시 집단과 국가 안에 존재해야 합니다. 개인의 생명과 운명은 집단과 국가의 의지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최대한 사상, 언론, 행동을 통일해야 하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퇴치의 과정에서 보듯 개인(人)은 인민이 되고, 인민은 추상적 개념이 됩니다. 개인의 생명이 이탈하고 은폐돼 인간의 의미와 가치가 없어지게 됩니다.” 중국 일부 독자가 “현대 사회 발전 과정에서의 도둑과 창녀들을 썼다”고 우스갯소리를 할만큼 이 작품에서 여성은 성(性)을 무기로 삼는 전형성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여성은 팜파탈도 요부도 아니다. 인간의 소외와 소외됨, 왜곡과 왜곡됨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소설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왜곡되거나 소외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인식하는 (중국의) 삶의 현실, 삶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능청스러운 허풍과 극도의 과장, 반어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교감한다. 이는 글쓰기에 대한 문학적 실험이자 문학적 사유(思惟)인 ‘신실(神實)주의’에서 기인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리얼리즘을 포함한 기존의 어떤 문학적 관념도 진정으로 중국인과 중국의 현실을 표현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많고 깊고 부조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진실 밑에 감춰진 진실’ ‘미처 발생하지 않은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실주의는 쉽게 체감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면적 진실보다는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내재적 진실’을 더 중시하지요. 생활의 현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정신 혹은 영혼의 진실입니다.” 현실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진 이 세 가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신실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달 초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과 정보 통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글을 국내 계간지에 실었던 옌롄커는 10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우한을 방문해 사실상 ‘승리’를 선언한 것에 대해 “승리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재난 앞에서 인류는 영원히 승리를 얘기할 수 없어요. 역병이 물러간 뒤에는 어떻게 해야 거대한 재난이 중국과 인류를 또다시 습격하지 못하게 할지 반성하고 성찰하고, 고민하고 사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중국의 번영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깨어 있어 뭔가를 냉철하게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문학의 의무”라고 강조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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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집콕’에 지친 당신, 햇빛 쬐러 가세요

    인류의 여명기서부터 괜히 태양을 숭배한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도 절대자 같은 존재였지만 실제 삶에서도 태양은 매일 되풀이되는 빛과 어둠의 24시간 주기를 통해 우리의 몸과 세계에 대한 경험을 통제해왔다. 우리 대다수는 본능적으로 햇빛에 끌리는 것이다. 과학전문지 기자 출신의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태양이, 햇빛이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의학과 심리학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햇빛이 만들어낸 몸의 하루 주기 리듬을 통해 인간은 시간을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는 능력을 갖게 됐다. 그런 리듬이 깨질 때, 빛을 스마트폰의 청색광이 대신할 때, 쬐어야 할 아침 햇빛을 덜 받게 될 때 초래되는 몸의 불균형은 무엇이며 이를 치유할 방법은 무엇인지 책은 상세히 알려준다. 자의보다는 타의로 홀로 실내에 머물 시간이 많아진 요즘 집 주변 공원 벤치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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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타이거 맘’이 되고 싶진 않은데…

    ‘우리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초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공부 문제를 놓고 아마도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일 것이다. 자녀교육에 대한 선택의 종류는 부모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아졌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기에 이렇게 됐을까. 독일과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두 저자는 ‘아이가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바랄 뿐인 부모가 ‘타이거 맘’이나 ‘헬리콥터 부모’가 되는 이유를 경제적 요인으로 설명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득불평등이 증가하고 승자독식(獨食)의 문화가 퍼지며 계층이동성에 제약이 생긴다. 그럴수록 학업 성취가 장래 아이의 삶에서 갖는 중요성은 커지고 자녀교육에 투자할수록 고수익(좋은 직장, 사회적 지위 등)이 보장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사회에서 돈과 능력과 시간이 있는 부모라면 자녀 일상에 시시콜콜 개입하는 양육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에 대한 욕망과 애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얘기다. 두 저자는 사회적, 경제적 계층 간의 양육 격차가 개미지옥처럼 헤어나지 못할 지경에 처하지 않으려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외부성을 해소하는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슷한 복지국가로 보이는 스웨덴과 스위스의 양육 방식이 다르고, 같은 사회라도 1970년대와 1980년대가 다른 이유 등 흥미로운 내용을 딱딱하지 않게 풀어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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