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민동용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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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동용 기자입니다.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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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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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람 중심 경제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1992년)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언했다고 해석되지만 사실 인간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신(新)사상의 부재에 대한 막막함이 더 느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전망은 속속 나온다. 그러나 이 뉴노멀을 떠받치는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찾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대전환기 프레임 혁명’은 특기할 만하다. 저자는 사람이 자본의 숙주 도구 부품 노예가 되는 자본 중심 경제 위주의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사람 중심 경제라는 새로운 사상을 이념적 좌표로 제시한다. 거기에서는 자본이 아니라 지식과 감성에 상상력을 곱한 창조력이 생산수단이 된다. 저자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산업화, 민주화 세대 모두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주장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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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헌정사, 대통령 권력 독주에 대한 견제의 역사”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견제할 것인가가 대한민국 헌정사(憲政史)의 최대 과제였습니다.” 서희경 박사(54)는 최근 1948년 헌법 제정 이래 1987년까지 9번의 개정을 거친 한국 헌정사를 정치적, 헌법적, 제도적으로 분석한 ‘한국헌정사 1948∼1987’(도서출판 포럼)을 펴냈다. 그에게 헌정사는 더 커지려는 대통령 권력의 정상화 시도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1200쪽 넘는 역저(力著)를 쓴 서 박사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헌정사라는 장기 변동에서 중요한 쟁점인 대통령제의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서도 헌정 원칙을 위협하는 대통령제의 한 특징이 드러난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뒤 벌어진 일이나, 이승만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적산(敵産·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은 ○○에게 줘라’라고 한 일은 똑같은 거라고 봅니다.” 서울대 정치학과(현 정치외교학부) 대학원에서 헌법 탄생의 역사와 건국 시기 정부 형태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헌법사도, 정치사도 아닌 헌정사인 까닭을 물었다. “헌법사는 결과물로서의 법조항과 그 변천이 중요하지만 헌정사는 역사적 맥락을 강조합니다. 김홍우 선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의 ‘성헌론(成憲論)’처럼 헌법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점차적으로 발전하지요. 정치사는 정치세력과 권력이 키워드지만 헌정적 쟁점(대통령제)을 중심에 두지는 않아요.” 헌정이 거치는 정치적 헌법적 제도적 국면에서 헌법사는 헌법이 만들어지고 난 헌법적 국면, 정치사는 개헌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국면에 집중한다면 헌정사는 그 모두를 통시적, 공시적으로 아우른다는 것. 헌정사의 관점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직 등 국회 상임위원장 18개를 다 차지한 것은 ‘거대 여당의 폭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아주 작은 ‘상원(上院)’ 역할을 하던 법사위 위원장의 야당 몫은 1987년 이후 관행으로 형성된 정치세력 간의 협약인데 그걸 깬 거예요.” 이런 문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대등한 정치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고, 여당은 대통령 권력 유지를 위해 도구화되고, 국회와 타협하기보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수호자(메시아) 의식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87년 체제’가 30년 넘게 지속되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노태우 김영삼(YS) 김대중(DJ) 세 분이 개헌을 했는데 대통령 직선제는 성취했지만 제왕적인 대통령 권한은 그대로 뒀어요. YS DJ의 ‘원죄’입니다.” 사사오입 개헌, 5·16, 10월 유신, 긴급조치, 5·17, 광주까지 헌정사는 거칠었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헌정사의 길 위에서 배우고 반성하고 깨닫는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 박사는 개헌의 ‘끝점’을 의원내각제라고 보지만 서서히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제헌헌법에서 국무원 합의와 국무총리 승인같이 대통령제에 절충 요소를 더한 것처럼 말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자립적인 중산계급, 타협적인 정당은 제2공화국 때 제기된 민주주의의 조건이었다. 여전히 중요하지만 과거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서 박사는 “헌정의 문제는 태극기 집회같이 ‘으쌰으쌰’ 해서 풀리지 않는다”며 “헌정에 대한 국민의 지식과 성찰이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책은 읽어볼 만할지 모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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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나무를 보면 인간의 삶이 보인다

    #1. 가벼운 나무치고 보기 드물게 빳빳해 다른 나무보다 일관되고 집중된 소리를 낼 수 있어 바이올린으로 만들었을 때 낭랑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는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자라는 이 나무만을 음향목(音響木)으로 썼다. 무슨 나무일까? #2. 대서양을 횡단하는 노예선에서 노예상인들은 노예들이 마실 물에 이 열매의 가루를 섞어 썩은 물을 마시게 했다. 식욕과 갈증을 달래 준다고 알려졌던 이 열매는 어떤 나무에서 나는 것일까?(※정답은 기사 마지막에.) 어느 겨울 아침, 벼락을 맞아 줄기와 가지가 부러져 죽은, 집 근처 레바논시더 나무를 발견하고 눈물 흘리던 아버지를 본 까닭에 어렸을 때부터 식물의 아름다움을 접한 저자는 “나무를 보기만 해도 그냥 알 수 있었다”고 자신한다. 원제가 ‘Around The World in 80 Trees(나무 80종과의 세계 일주)’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국인 저자가 런던에서부터 동쪽으로 향하며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남·북·중앙아메리카 51개국의 나무 80종이 인간 생활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나무와 사람과 경관 사이에 어떻게 그 나름의 고유한 관계가 형성됐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루실 클레르는 모든 나무와 꽃, 열매 등을 매력적으로 그렸다. 유럽오리나무는 이탈리아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정말 ‘떠받치고’ 있다. 이 나무 목재가 물속에 잠겨 있어도 멀쩡하다는 것을 12세기 주민들이 알게 된 것. 세포벽에 들어 있는 특별한 화학물질이 부패의 원인이 되는 세균의 번식을 막아 수백 년이 지나도 물속에서 본래의 압축 강도를 유지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고향)을 지킨다’는 속담대로 비틀어지고 거대한 케이폭나무와 반얀(바니안)나무는 경외의 대상이면서 마을 주민들의 회합 장소다. 반얀나무의 반얀(banyan)은 상인을 뜻하는 ‘banian’에서 왔는데 이 거대한 나무 아래가 북적거리는 장터도 됐음을 엿볼 수 있다. 17세기에 처음으로 병에 코르크참나무 껍질로 만든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 사람은 돔 페리뇽(돔 페리뇽 샴페인의) 수사였고, 소말리아의 유향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 나는 가장 가치 있는 물자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유향을 ‘땅에 떨어진 신들의 땀’이라고 불렀다. 나무 80종에 대한 백과사전 같은 지식과 언뜻 비치는 경구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저자의 권유대로 ‘가까운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 나만의 나무여행’을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시아에서는 9종의 나무가 소개되는데 아쉽게도 한국 나무는 없다.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아무튼, 식물’ 같은 책을 쓴 임이랑 작가에게 하나 꼽아 달라고 했더니 한라산 등 고산지대에서 나는 구상나무를 알려줬다. ‘한국에서만 사는 소나뭇과의 나무. 키는 20m까지 자라며 단단하고 우아한 외형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심벌 나무로 지정됐다. 슬프게도 지구온난화로 고산지대 구상나무들이 죽고 있다.’ (정답 #1=독일가문비나무, #2=콜라나무)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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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프라인 두드리는 온라인 콘텐츠 “보는 것만으론 안돼, 만지고 싶어”

    온라인 콘텐츠를 활용하는 방식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주로 웹툰, 드라마, 게임 같은 2차 저작물로 만들어지는 웹소설을 단행본으로 내고, 유튜브 채널을 통째로 무크지로 옮겨온다. 웹소설 서비스 플랫폼은 웹소설을 책으로 낼 계획이다. 다산북스는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를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지난해 네이버 시리즈에 연재돼 누적 다운로드 1000만 회를 넘긴 히트작이다. 몇몇 군소 출판사가 웹소설을 책으로 낸 적은 있지만 단행본 출판사 매출 10위 안에 드는 업체가 뛰어든 것은 처음이다. 이호빈 다산북스 국내문학팀장은 “네이버나 카카오 웹소설 중 반응이 좋으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팬덤이 형성된 것을 주로 골랐다”고 말했다. ‘중증외상센터…’는 ‘한산이가’라는 필명의 현직 의사 이낙준 씨가 썼다. 이 씨가 동료 의사 2명과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는 63만 명이 구독한다. 포털사이트를 빼고 국내 최대 웹소설 플랫폼인 문피아도 단행본 출판에 나선다. 자사 히트작 중에서 선정해 하반기에 낼 계획이다. 김환철 문피아 대표는 “독자가 원하는 형태의 책을 원하는 수량만 공급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축적된 독자의 기호나 반응 등 방대한 1차 데이터를 토대로 책을 골라 히트할 조짐이 보이는 책은 대량으로 찍어내겠다는 복안이다. 김 대표는 “문피아의 목표는 콘텐츠 기업이다. 글을 쓰는 것은 원천 콘텐츠 확보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무크지를 표방하는 ‘유크’(아르테)는 주로 유튜브 채널 운영자의 에세이를 내거나, 운영자를 캐릭터로 내세운 만화 등을 펴내던 기존 ‘유튜브 활용법’과는 다르다. 지난달 나온 유크 1호는 구독자 18만 명이 넘는 ‘캠핑한끼’ 채널을 해부했다. 캠핑하며 스스로 한 끼를 해결하는 콘셉트의 이 채널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크리에이터는 누구인지, 기획부터 제작까지 어떻게 진행하는지, 요리는 어떻게 만드는지, 각 분야 전문가가 본 소감은 어떤지 등등을 담았다. 유크를 담당하는 이정미 아르테 문학팀장은 “사내 유튜브 콘텐츠 개발 아이디어 공모에서 뽑힌 것”이라며 “좋은 유튜브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보자는 취지로,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격월간이 목표다. 이처럼 새로운 온라인 콘텐츠 활용법은 충성도 높은 독자(구독자)가 있기에 가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호빈 팀장은 “(팬덤이 형성된 웹소설) 팬들이 종이책을 만들어 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한다. 관련 상품(굿즈)까지 기획해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정미 팀장도 “유튜브 채널의 로열티 있는 구독자를 대략 3∼5%로 추정하는데 이들을 유크의 잠재적 독자로 본다”고 했다. 모바일로 본 것을 책이라는 물성으로 소장하고 싶어 하는 웹소설 독자가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돈을 내고 보기는 하지만 그 웹소설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스스로는 디지털 세대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사고는 아날로그적으로 하는’ 독자가 있다는 얘기다. 독자 타깃층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만큼 판매량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다산북스 측은 웹소설 분량이 방대해 대략 한 책을 5부작으로 생각하는데 권당 1만∼1만5000부를 예상하고 있다. 굳이 단행본 출간을 바라지 않는 웹소설 작가의 성향상 출판 계약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후문도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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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부모님을 위해 사는 90년생 삶이 짠해서

    지난해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는 난데없이 나타난 1990년대생의 ‘언행독해법’을 소개했다. 90년생은 외계인 같은 탐구 대상이다. 그런데 1994년생 이묵돌 작가(26·사진)는 최근 낸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메가스터디북스)에서 이들의 슬픔을 본다. “‘90년생이 온다’는 1980년대생 저자가 중간관리자로서 90년생을 어떻게 이해할지 분석하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특정하기 쉽지 않은 90년생의 공통분모는 감수성, 슬픔에 있지 않을까 했어요.” 18일 서울 종로구 이마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는 그 슬픔이 부모 세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짚었다. “부모에게 나약한 모습, 패배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안정적인 길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서 1차적으로 슬픔이 느껴져요. 자신이 왜 슬픈지도 몰라요. 인정을 받지 못해서? 취직하지 못해서? 취직할 이유를 알지 못해서? 계속 (회사를) 다닐 이유를 알지 못해서? 복합적이죠.” 슬프게도 이 책에서 90년생은 1970년대생도 학창 시절 느꼈을 중압감을 똑같이 느낀다. 공부다. “다른 건 필요 없고 공부만 잘해.” 부모는 변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이 작가가 사는 동네 근처 서울대에서 열린 축제 포스터 문구는 이랬다. ‘엄마, 서울대 오면 여자친구 생긴다고 했잖아.’ “(90년생은) 대학 졸업할 때쯤 돌아보면 그동안 부모에게서 투자받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이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고 증명해야 하는 강박이 있어요. 생존을 위해서도,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도 아닌데 빨리 취직하고는 ‘내가 생각한 일이 아닌데’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하면서 늘 퇴사를 생각해요. 방향성은 없는데 어른은 돼 버린 거죠.” 90년생이 성인이 될 무렵 한국 사회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도드라졌다. 이 작가는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사실은 실패할까봐, 실패감에서 헤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워서라는 것. “(그래서) 직장에서 ‘일을 왜 이렇게 했느냐’는 피드백을 받으면 ‘나는 무능력한 인간이야’ 실망하거나 ‘나는 완벽한데 회사가, 시스템이 잘못이야’라고 감정적인 대처를 해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금이 가면 안 되니까, 그러면 견딜 수 없으니까.” 땀 흘려서 뭔가 이루기는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행복한 삶처럼 ‘남들한테’는 보여야 하니 짠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어’ 그런 것을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개수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슬픔을 저희 세대가 많이 느낍니다.” 소설에 나올 법한 어려운 환경에서 큰 이 작가는 “중고교 때 몇 번 백일장 상 탄 것을 살려서 인터넷에 취미 삼아 썼다가 정말 잘 얻어 걸렸다”면서 책을 10권 쓴 경력을 겸손해했지만 문장은 결코 녹록지 않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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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국가 번영의 뒤안길서 신음하는 일본인들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뒤 일본에서는 ‘1억총참회(1億總懺悔)’라는 말이 득세했다. 무모한 전쟁도, 무참한 패배도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일본 국민이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는 취지였다.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국민, 이 책의 표현을 빌리면 ‘헐벗은 백성’에게 돌아간다. 재일 한국인 진보 지식인인 저자가 2016년 1월∼2017년 9월 교도통신 주관으로 일본 약 30개 일간지에 연재한 기행문 ‘강상중 사색의 여행 1868년부터’를 묶은 책이다. 오키나와에서 조선인 강제징용과 비참한 탄광 생활의 나가사키현 군함도, 최악의 공해병이던 미나마타병의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 1995년 한신대지진의 최대 피해지 효고현 고베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진앙’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 홋카이도 노쓰케반도까지 일본 열도를 종단하며 국가 번영의 뒤안길에서 신음하는 국민의 자취를 좇았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열강과 어깨를 견주는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고, 패전 후 고도성장으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강대국이 되는 등 일본이라는 국가는 떠올랐다. 그러나 실패와 과오로 비극이 되풀이될 때마다 국가는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며 ‘망각의 안전지대로 도망’간다. 저자는 이 같은 ‘희극적 일상의 반복이 일본 근대의 패턴’이라고 꼬집으며 그 근원을 19세기 서구에 맞선 메이지 일본의 국가 전략이던 화혼양재(和魂洋才)에서 찾는다. 일본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 지식의 조화를 뜻하는 이 말은 정신과 기술의 분리를 뜻한다. 따라서 패전도, 재앙도 기술의 실패일 뿐 정신, 화혼 즉 국가의 문제는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화혼은 ‘무오류의 천황’에서 ‘국민 없는 국가주의’로 양태를 바꿨을 뿐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국가와 사회가 함께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국은 분명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국가의 핵심으로 들어가 정권을 대변하는 현재 양상을 모르고 하는 말인 것 같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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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주제, 다른 시선… 짧은글이 뜬다

    하나의 소재나 테마로 다양한 작가들이 짧은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펴내는 앤솔러지가 몇 년 새 은근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문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교양 분야에서도 시의성 있는 이슈를 다루는 앤솔러지가 눈에 띈다. 과거 앤솔러지가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같이 순수문학 위주로 간간이 보였다면 최근에는 SF를 중심으로 장르문학에서 활발하다. 장강명 듀나 김보영 등 8명의 작가가 슈퍼 히어로를 주제로 펴낸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2018년·민음인), 올해 ‘일상을 살아가는 내 안의, 우리 안의 괴물’을 테마로 김동식 윤이형 곽재식 등 10명의 단편을 묶은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 ‘몬스터: 한밤의 목소리’(이상 한겨레출판), 현역 천문학자와 물리학자 등 비소설가 4명과 SF 작가 1명이 SF를 주제로 쓴 소설을 묶은 ‘떨리는 손’(사계절) 등이 대표적이다. 순수문학에서도 반향 있는 소재의 앤솔러지가 나오고 있다. 윤성희 손보미 백수린 등 여성 작가 6명이 할머니를 테마로 쓴 단편을 모은 ‘나의 할머니에게’(다산책방)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주요 단행본 출판사들도 앤솔러지 흐름을 따라가는 분위기다. 민음사는 이달 말 ‘시스터후드’ ‘모바일 리얼리티’ ‘괴담’을 주제로 하는 앤솔러지 ‘더(the) 짧은 소설’(전 3권)을 펴낸다. 문학과지성사도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3편 선정해 모은 ‘소설보다’ 앤솔러지를 내고 있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주간은 “짧은 글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주 독자층인 20, 30대가 읽기 원하는 당대 이슈를 그때그때 풀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과 기획에서 출판까지 빠른 호흡으로 진행시키며 단행본 필자를 타진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특정한 소재나 모티브에 맞춰 짧은 글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점도 앤솔러지 붐의 한 요인이다. 인문교양 분야에서는 페미니즘, 반려동물같이 최근 몇 년간의 주요 사회 이슈를 다루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전망하는 앤솔러지가 대거 등장했다. 지난주 출간된 ‘나는 반려동물과 산다’(다산에듀)는 인문학자, 수의사, 문학평론가 등 필자 9명이 개와 고양이를 사랑할 때 마주하는 인문학적 질문들을 풀어냈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글항아리)는 의사, 종교학자, 철학자, 사회복지학자 등 12명이 AD(After Disease) 시대 각 영역의 변화를 예측했다. 앤솔러지가 깊이 있고 긴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세태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학편집자는 “기획성이 도드라지는 앤솔러지는 단행본 한 권의 가치를 갖지만, 신진 작가에게는 긴 호흡의 완성도 높은 장편을 쓸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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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현 수필집 2억2000만원에 日수출… 역대 최고가 계약

    에세이스트 김수현의 신작 에세이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다산북스·사진)가 한국 출판 사상 최고가로 일본에 수출됐다. 그의 전작 에세이집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국내에서 100만 부 넘게 팔렸다. 14일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는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가 일본의 한 출판사와 약 2억2000만 원에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에 수출된 국내 서적 계약액으로는 최고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한국 서적이 일본에 1억 원 이상의 선인세를 받고 계약한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국내에서 출간된 김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타인과의 관계를 주제로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국내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에세이집을 내기 위해 주요 출판사를 비롯해 20곳 이상에서 번역 출판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을 따낸 일본 출판사는 지난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도 번역해 일본에서만 24만 부 넘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책을 읽었다는 입소문까지 더해져 경쟁이 더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자기를 존중하면서도 남에 대해 싫을 때는 싫다고 하면서 편안하게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처방을 제시하는 등 일상 속의 통찰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조금씩 바꿔주는 내용이 일본의 20, 30대 감성과 교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히트하는 등 최근 몇 년 새 에세이를 비롯한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잇달아 선전하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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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러브크래프트의 공포, 다시 써보고 싶었죠”

    “공포라는 장르는 언제나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속 가장 취약한 것을 건드려요. 서로 많은 것이 오가며 다른 것들이 섞이는 혼란한 시기인 지금, 더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잖아요. 러브크래프트는 100년 전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어요.” ‘내 소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스티븐 킹이 고백한 미국 공포소설의 거장 H P 러브크래프트(1890∼1937)는 국내에도 마니아가 적지 않다. 작가를 넘어 장르가 된 듯한 그의 작품세계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영화 ‘헬보이’ ‘아쿠아맨’을 비롯해 음악 만화 등 각종 대중문화에 은근슬쩍 침투해 있다. 이수현 작가(44·사진)가 다른 작가들을 불러 그의 세계관을 오마주하는 연작 ‘Project LC·RC(프로젝트 러브크래프트·리크리에이트)’를 기획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일 테다. 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는 “러브크래프트는 자신 이외의 모든 걸 무서워하던 사람이라서 현대화, 아니면 한국화라고 해야 하나, 그걸 잡고 써보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작가에게 연락해서 써보자고 할 때는 ‘이분이 이걸 쓰면 뭐가 나올까’ 같은 궁금함도 있었다. 이 작가의 머릿속에 있던 작가들, 이들이 추천한 다른 작가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책으로 펴낸 안지미 알마 대표가 러브크래프트의 팬인 최재훈 작가를 끌어들였다. 이 작가와 김보영 김성일 박성환 송경아 은림 이서영 홍지운 작가가 러브크래프트의 세계를 화두로 7편의 경장편을 썼고 최 작가가 이 작품들을 종합하는 그래픽노블 1편을 더했다. 모든 책표지 일러스트레이션도 최 작가 작품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호러이기도, SF이기도 한데 이상한 구석이 적잖아 ‘위어드(weird·기묘한) 소설’이나 ‘코스믹(cosmic) 호러’라고도 부른다. “코스믹 호러는 본질적으로 ‘우주는 나에게 관심이 없고, 되게 크고 막막한데 인간의 운명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거기서 느끼는 공포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는 아예 인간에게 악의를 갖고 괴롭히기도 하지요.” 지난 세기 전반 러브크래프트가 읽혔을 때 미국인이 느꼈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허무함 비슷한 감각을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종교가 해체되는 시기인데도 종교에 더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고 이 작가는 생각한다. 공대를 1년 다니다 인류학으로 전공을 옮긴 이 작가는 전국의 굿판을 돌아다니며 석사 논문을 썼다. 자신이 종교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종교적인 의례, 의식이 굉장히 인간적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두려움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러브크래프트의 말이 조금 이해되는 듯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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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유통공룡 흔든 비결은 하루 혁신, 또 하루 혁신…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사진)는 이듬해의 주요 소비 트렌드를 예측하는 ‘트렌드 코리아’를 12년째 펴내면서 한 스타트업에 주목했다. 신세계 롯데 등이 장악한 레드오션인 유통업에서 어렵다는 신선식품을 새벽 배송하는 마켓컬리였다. 창업한 2015년부터 해마다 트렌드 코리아에 언급된 터였다. 지난해 말 출판사가 이 회사 김슬아 대표와의 대담집을 제안했을 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담집으로는 성에 안 찬 김 교수는 창업 첫해 회원 5만 명, 매출 29억 원에서 지난해 회원 389만 명, 매출 4289억 원의 성장신화를 분석한 이 책을 썼다.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성공의 화두로 고객을 꼽았다. “아이나 남편에게 비싸지만 좋은 식품을 먹이고 싶은 워킹맘이 언제 택배를 받는 게 제일 확실하고 편할까. 받아서 냉장고에 넣고 출근할 수 있는 오전 7시다. 이 시간까지 배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역순으로 모든 비즈니스 모델을 맞춰 나갔다. 다른 유통업체가 빠른 배송에 골몰할 때 마켓컬리는 고객 입장에서 생각했다.” 김 교수는 책을 쓰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김 대표가 대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VOC(고객의 소리) 읽는 일이라고 한 것과 직원 승진의 기준인 KPI(Key Performance Index)가 실적이 아니라 ‘(부정적) VOC를 얼마나 줄이느냐’인 것. 모든 것을 고객에게 맞춘다는 말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고객 불만은 당장 해결해 시스템 전환으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 대표는 ‘불만을 말해주는 고객이 고맙다’고 했다. 뭘 바꿔야 하는지 알려주는 고객이야말로 중요하다.” 김 교수는 지난달 27일 김 대표, 출판사 사람들과 출간 기념 저녁을 하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두어 시간 앞두고 물류센터 직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자 판정을 받았다. 몇 시간 뒤인 이날 밤 마켓컬리 홈페이지에는 김 대표 명의의 사과와 함께 해당 물류센터 물품 전량 폐기, 향후 방역 계획 등을 소상히 밝힌 공지가 떴다. 선제적이고 빠른 사과였다. 이 같은 고객 지향의 배경에는 김 대표의 열정이 있다. 회사를 만들고 5년간 하루 쉬었다. 이 회사에 초기 투자한 한 벤처캐피털리스트 대표는 ‘창업자는 차가운 머리(기발한 아이디어)가 있거나 뜨거운 실행력이 있는데 김 대표는 둘 다 가졌다’고 했다. “빛나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뜨거운 열정의 모범적 사례”다. 김 교수는 마켓컬리의 성공이 고객 반응을 읽어가며 하루하루 조금씩 고치고 성장한 결과라며 이를 ‘하루치의 혁신’이라고 표현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만 더 잘하고, 그것을 오래할 수 있다면 어느 날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다. 트렌디하다는 것은 상황의 변화를 이해하고 어제의 성공 체험을 부인할 줄 아는 것이다. 5년밖에 안 된 마켓컬리가 그렇게 축적한 힘은 인상적이다.” 하루치의 혁신이 꼭 기업인에게만 필요한 덕목은 아닐 것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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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 속 한국문학 지켜낸 ‘탄생 100주년 문인’을 기리다

    100년 전 태어나 한국 문학 개척과 부흥에 힘쓴 문인들을 위한 문학제가 열린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상국)와 공동으로 올해 탄생 100년이 되는 문인 11명을 기리는 ‘2020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18일 연다고 밝혔다. 대상 문인은 곽하신 김상옥 김준성 김태길 김형석 안병욱 이동주 이범선 조연현 조지훈 한하운이다. 방현석 기획위원장(소설가·중앙대 교수)은 “각급 학교의 한글 사용이 금지된 일제강점기 말 작품 활동으로 한글을 ‘사수’하고 광복 이후 한국 문학의 개척과 재건에 역동적인 역할을 한 분들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생존자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유일하다. 문학제 주제는 ‘인간 탐구, 전통과 실존을 가로질러’다. 이 11인은 식민지와 광복, 6·25전쟁이라는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이념이라는 거대담론에 매몰되지 않고 민족 정서와 한국적 서정의 전통을 천착했고, 참화를 겪은 뒤에도 다양한 의미의 실존적 고민을 문학으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시 ‘승무’의 조지훈, ‘강강술래’의 이동주, 시조 ‘백자부’의 김상옥 등이 전통이라는 창으로 인간을 바라봤다면, 모더니즘 계열 소설 ‘오발탄’으로 충격을 던진 이범선과 1960년대 문학이 채우지 못한 욕망을 수필로 충족시킨 김태길 김형석 안병욱 등은 6·25전쟁 이후 무너진 우리의 정신세계를 어루만지며 일으켜 세웠다. 193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여성성을 강조한 소설을 쓴 곽하신, 한센병을 앓는 자신의 처지를 시로 승화시킨 한하운 등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선도적으로 드러냈다. 김준성은 기업그룹을 설립한 경제인이면서도 소설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평론가 조연현은 전후의 황폐함 속에서 문학이 품은 삶의 내면을 탐색했다. 문학제 당일인 18일에는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이들 문인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리며 19일에는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에서 20, 30대 시인들이 11인의 작품을 낭독하는 ‘문학의 밤―100년 동안의 낭독’이 이어진다.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심포지엄은 사전 신청자 30명만 현장에서 참관할 수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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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실리콘밸리는 지금, 디지털 노동착취 중”

    애플 아마존 우버 테슬라…. 시대의 총아(寵兒)인 굴지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이제는 온라인으로 쪼그라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IT 전문기자였던 저자는 ‘가장 힙(hip)한 회사의 멋진 일자리’는 허상이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멋진 건물과 안락한 소파, 풍부한 여가 공간과 간식의 이면에는 ‘디지털 노동 착취’가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옛날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일대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이 활약하던 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시대를 구가하고 모바일이 대세가 되면서 변했다. 기술보다 돈에 집착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스타트업을 키워 시장공개로 수익을 챙기는 구조로 바뀌면서 사달이 났다는 것. 그 결과 애플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사기에 가까운’ 세금 회피를 저지르고, 아마존의 물류창고 노동자는 혹사를 당하며, 우버는 열악한 업무 환경으로 운전자를 착취하고, 테슬라는 직원 대우가 형편없으면서도 창업자나 최고경영자는 수백억∼수천억 자산가로 살고 있다고 책은 꼬집는다. 그 와중에 직원들은 애자일(agile)이니 ‘린 스타트업’이니 하는, 결국 현실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기업 트레이닝 방법의 희생양이 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거대한 조직행동 실험실의 쥐 신세로 전락한 노동자들은 ‘자기 계발과 변화에 관한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질리며 높은 스트레스와 불안정한 고용, 반(反)노동자 기업철학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50을 훌쩍 넘긴 저자는 미국의 치부에 거침없이, 때로 균형감을 잃은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카메라를 들이대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를 떠올리게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쫓아가지 못하는 장년의 비애가 몇몇 문장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현란하게 성장하다 손실을 보고 흐지부지되는 유니콘(시장가치 1억 달러를 돌파한 스타트업)보다 지속가능한 번영을 사용자와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가 같이 누리는 ‘얼룩말’을 지향해야 한다는 결론은 다소 뻔하지만 경청할 만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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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마키아벨리 군주론, 에도시대 일본서도 통했다

    일본 에도시대 사상가이자 유학자인 오규 소라이(荻生徂徠·1666∼1728)를 마키아벨리에 견준 사람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1996)다. 일본 ‘정치학계의 천황’으로 군림했던 마루야마가 1952년 펴낸 ‘일본정치사상사연구’(김석근 옮김·통나무·1995년)에서다. 마루야마는 이 책에서 소라이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목한다. “… 군주 된 이는 설령 도리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만한 일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마루야마에 따르면 이 대목은 ‘백성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정치 목적을 위해서는 도리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유교도덕의 가치 전환이다.’ 그리고 이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떠올리게 한다. “… (군주는) 그러나 또 악덕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통치를 할 수 없는 그런 경우에는 비방을 감수하는 것을 주저해서도 안 된다.” 즉 소라이는 주자학이 개인 도덕을 정치적 결정에까지 확장하는 것을 단호하게 부인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와 상통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도덕의 분리가 근대정치를 상징한다고 볼 때 소라이는 이미 현실정치(Realpolitik)에 한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조선은 예송(禮訟)논쟁이 한창이었다. 소라이가 1727년 지은 ‘정담’은 당시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자문에 응한 정견을 묶었다. 주자학의 공리공담(空理空談)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관리의 등용과 처우, 사회질서 등 4가지 주제의 여러 사안을 윤리가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두고 풀어냈다. 마루야마가 “일본의 근대를 배태(胚胎)”하고 “정치를 발견”했다며 소라이를 극찬한 대목을 낳은 사례 중 하나도 실려 있다. 가난과 기근에 시달리며 유랑하다 끝내 홀어머니를 버린 승려 ‘도입(道入)’ 이야기다. 그에 대한 처벌을 놓고 다른 가신들은 ‘어머니를 버릴 마음은 없었다. 유교적 윤리에 어긋나지 않았다’며 선처를 주장한다. 그러나 소라이는 도입 같은 사례를 만든 그 지역의 행정관리자와 고위 관리의 책임을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답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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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恨 맺힌 한국 요괴는 그다지 무섭지 않죠”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御宅·특정 분야에 심하게 매료된 사람)의 출현을 리스트 작업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TV 만화영화의 제목과 작화가 등을 꼼꼼하게 모아놓은 것이다. 다른 말로 아카이빙(archiving)이다. 혼자 놀기, 은폐와 엄폐를 일삼던 덕후(오타쿠를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우리말 조어)가 세상에 나선다. ‘동양요괴도감(東洋妖怪圖鑑)’(비에이블)의 저자 고성배 씨(36·사진)가 그렇다. 책 제목은 오래전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대백과’류를 연상시키지만 내용은 탄탄하다. 고 씨를 28일 서울 광화문 이마카페에서 만났다. ―당신은 덕후인가. “아니다. 다만 어렸을 때 ‘덕후 같다’는 말은 들었다. 뭔가 꽂히면 갑자기 은연중에 ‘로봇대백과’ 같은 옛날 아동서적이나 장난감 등을 모았다. B급 감성이라고나 할까.” ―왜 요괴에 관심을 갖게 됐나. “1980년대 ‘요괴대백과’라고 일본책을 무단 복제해 번역도 엉망인 책이 있었는데 재미있었다. 지난해 ‘한국요괴도감’을 냈는데 초판 3000부 등 3쇄를 찍었다. 동양으로 넓혔다. 이런저런 요괴를 뭉쳐놓고 보니 새로운 규칙성을 찾게 돼 재미있었다. 아카이빙의 매력이다.” 동양요괴도감에는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이란 이라크 등의 요괴 278종이 소개돼 있다. 요괴 일러스트레이션은 고 씨가 직접 그렸다. ―나라마다 요괴는 어떻게 다른가. “중국은 뱀 사슴 호랑이같이 있을 법한 생물이 많다. 일본은 혼이나 영(靈)이 사물과 합쳐져 잔혹한 것이 많다. 한(恨)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요괴는 별로 무섭지 않다.” ―독자 반응은 어떤가. “평소에 만나지 못하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바람이 있다. 비현실적인 것을 통해 현실감을 채운다고나 할까. ‘요새같이 머리 아플 때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보면 환기가 된다’는 피드백도 있다.” ―요괴는 정말 서브컬처 장르 아닌가.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신비아파트’에는 한국적 요괴가 많이 나오는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서브컬처가 더 이상 서브(sub)가 아닌 것 같다.” ―이 책이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나. “창작자에게는 디테일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일반 독자는 ‘실제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력을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 ―원래부터 작가를 꿈꿨나. “건축학을 전공해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만두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2014년 독립출판을 시작했다. 지금은 창작자, 편집자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괴물이 아니더라도 아카이빙은 하고 싶다. 잊혀져 가는 것을 꾸준히 모아 이야기하다 보면 생명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저에게는 그리움인데 요즘 세대에게는 새로움이지 않나.”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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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평균 나이 71세 언니들의 유쾌한 이웃사랑 실천기

    ‘선한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귀중한 요즘, 책 ‘전진상에는 유쾌한 언니들이 산다’(김지연 지음·오르골)는 선한 사람들 이야기다. 1975년 서울 시흥동 산동네에 터를 잡고 의료봉사와 복지활동을 시작한 전진상 의원·복지관 ‘할머니들’이 주인공이다. 45년째 한결같은 의사(겸 간호사) 배현정, 약사 최소희, 사회복지사 유송자 씨를 중심으로 속속 합류한 임덕균(남) 김영자 최혜영 강귀엽 씨의 솔직하고 유쾌한 이웃 사랑을 담았다. 평균 연령 71세인 이들은 국제가톨릭형제회(AFI·아피) 소속의 천주교 평신도다. 지난해 초 이곳의 한 의료봉사자가 박혜련 오르골 대표(54·사진)에게 “‘진짜’인 분들이 있는데 기록이 없다”며 책을 써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박 대표는 ‘이런 책을 누가 사보겠어’ 하는 생각도 있었다. 박 대표는 처음에 벨기에 출신(본명 마리헬렌 브라쇠르)으로 26세 때인 1972년 한국에 온 배 할머니에게 주목했다. 그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해 가정의학 전문의가 됐고 귀화했다. 그러나 의원 복지관 약국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가 굴비 엮듯 연결된 이곳에는 ‘대장’도 없이 모두 평등했다. “시니어 세대의 공감을 불렀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처럼 ‘또 하나의 가족’ 콘셉트로 가고 싶었죠. 그런데 이분들이 ‘아니라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더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고 김 추기경은 1974년 이들에게 도시빈민 속으로 들어가서 하는 봉사를 제안했다. 그리고 도움이 시급한 곳 리스트를 내줬다. 시흥동도 그중 하나였다. “성소(聖召)라는 표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분들은 느낀 거죠.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를 돕는 게 좋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나도 그런 일을 해야지’ 하신 거예요.” 전진상은 ‘온전한(全) 자아 봉헌, 참다운(眞) 사랑, 끊임없는(常) 기쁨’이라는 아피의 정신을 뜻한다. 처음 생겼을 때 배 할머니 남편이냐고 묻는 주민도 있었다. 이제는 각종 봉사자가 1000명이나 된다. “45년간 이곳은 유기체처럼 산 것 같아요. ‘그 시대의 사람이 돼라’는 아피의 정신에 맞춰서 물도, 화장실도 없어 결핵이 만연했을 때는 결핵 치료가 시급했죠.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데 뭘 할 수 있을까. 그럼 호스피스를 하자. 이렇게 그때그때 변한 거죠.” 이들은 의원과 약국 수입으로 먹고살고 직원들 급여 주고 이웃을 돕는다. 후원금이 들어오지만 ‘후원금은 모두 환자와 빈민에게’라는 초심과 원칙을 지켜냈다. 후원자들은 자신이 내는 돈이 좋게 쓰인다고 믿었고, 알았다. 박 대표는 책을 낸 것이 “긴 피정(避靜)을 끝낸 것 같다”고 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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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5·18, 이제 새로운 응답이 필요해

    1983년에 나온 황지우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는 ‘5월 그 하루 무덥던 날’이라는 시가 있다. ‘… /“광주일고는 져야 해! 그게 포에틱 자스티스야.”/“POETIC JUSTICE요?”/“그래.”/李선배는 나의 몰지각과 무식이 재밌다는 듯이 씩 웃는다./그의 물기 젖은, 싼뿌라찌 가짜 이빨에 햇빛이 반짝거렸다./나는 3루에서 홈으로 生還하지 못한, 배번 18번 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5·18’에 대한 시적(詩的) 정의(正義)는 이뤄졌을까. 40주년의 5월, 5·18은 ‘헬기 사격은 있었느냐’ ‘암매장은 있었느냐’ ‘발포 명령은 있었느냐’는 사실의 차원에서 맴돌고 있다. 여전히 나(我)와 적(敵)을 나누는 현실 정치의 담론에 의탁하고 있다. ‘5·18’ 하면 ‘전두환’이 대구(對句)처럼 언급되는 상황은 여러 모로 비정상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5·18은 이제 사실의 영역을 넘어 인문학적 질문과 응답이 대상이 되었으며, 하나의 이념과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하고 개별적인 ‘진실’의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며 엮어낸 이 책은 비록 2010년 이후 발표된 글들을 다시 모은 것이지만 일독의 가치가 있다. 책은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이자 어떤 의미화-제도화에 대해서도 저항하는 무한텍스트로서의 5·18’을 조명하기 위해 정치학 철학 역사학 인류학 국문학 문학평론 등이 교차하며 더 큰 의미와 이해를 만들어내도록 했다. 특히 40년 전 5월 21일 계엄군이 퇴각하기까지 사흘간의 시공간을 ‘위대한 인간끼리 형성한 절대공동체’로 규정한 최정운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의 글 ‘저항의 논리’는 울림이 크다. 필자는 “광주 시민들이 항쟁에 목숨을 걸고 참가한 것은 일차적으로 어떤 명분을 의식하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의식의 수준에서 무엇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였다.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으로서의 투쟁, 이념이 결여된 순수한 항쟁이었기에 5·18은 우리의 위대한 역사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그 뜨거운 투쟁이 그토록 소중한 기억이었던 이유는 그 핵심이 사랑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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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염-중풍-치매 연관 있다” 재활 한의사 ‘통뇌법 혁명’ 출간

    큰 교통사고를 당해 정상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이겨내고 재활에 성공해 27년째 한의사로 일하는 이태훈 씨가 비염과 중풍, 치매의 연관관계를 파악해 이를 막아내는 방법을 소개한 책 ‘통뇌법 혁명: 중풍·비염 꼭 걸려야 하나요?’(동아일보사·사진)를 펴냈다. 몸이 가장 좋게 기능하려면 몸의 구조가 가장 좋아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친 그는 코의 구조와 다른 장기의 연관성을 알아냈다. 코의 숨길과 목뼈 속의 물길(뇌척수관)을 열어줘서 중추신경계와 자율신경계를 정상화시키자 비염 축농증 같은 콧병, 중풍 치매 같은 머리 병은 물론이고 중이염 이명 같은 귓병, 안구건조증 등의 눈병, 편도선염 같은 목병이 한꺼번에 해결됐다는 것. 저자는 이를 ‘통뇌법(通腦法)’이라 부른다. 사례 중심으로 쉽게 써내려갔다. 1만5000원.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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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늦은 나이는 없다, ‘관심의 폭’이 넓다면

    영국 맨체스터대 물리학 교수 안드레 가임은 2000년 터무니없어 보이는 연구에 주어지는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수상 연구는 반자성(反磁性)을 띠는 용액에 든 개구리를 자석으로 공중 부양하는 실험이었다. 그는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던 다른 연구실의 박사과정 학생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두께가 머리카락 두께의 10만분의 1이면서 강철보다 200배 튼튼한 물질 그래핀을 개발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서른세 살 무렵 미술학원에 등록해 10년 어린 학생들과 배우던 이 사람은 드로잉 대회에 나갔지만 “초급반에서 열 살 아이들과 함께 배우라”는 말을 들었다. 그 전까지 학생, 미술상(商), 교사, 서점 점원, 목사, 순회 전도사를 유망하게 시작했다 실패했다. 그림도 인물화를 그렸다가 풍경화로, 사실주의에 몰두하다 순수 표현주의로 빠졌다. 그러나 37세에 숨지기까지 4년간 길이 남을 걸작들을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다. 이 책에는 밖에서 보면 뒤처진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모두가 ‘일찍 선택해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그 일에만 집중하며 결코 흔들리지 말라’는 조기(早期) 전문화와 ‘1만 시간의 법칙’을 장려하는 현실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조기교육과 1만 시간의 법칙’은 익숙한 패턴의 문제와 해법이 반복되고, 특정한 기교를 정확히 갈고닦는 것이 목표이며, 반복 경험만으로도 개선이 이뤄지는 ‘친절한 환경’에서만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세상은 대부분 코트에서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는 선수들을 볼 수 있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규칙을 모르는 ‘화성테니스’같이 기존 경험의 테두리 너머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사악한 환경’이다. 그럼 이 지독한 환경의 지배자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조기교육과 전문화에 한참 늦은 것 같은 이 ‘뒤처진’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통계와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들의 핵심 특징은 폭(레인지·range, 이 책의 원제다)이 넓다는 것이다. 경험과 관심의 폭, 훈련의 폭, 적용하고 종합하는 폭이 넓다. 사전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 사이를 신나게 오갈 수 있는 마음과 사고의 폭이 넓다. 안토니오 비발디가 협주곡 수백 편을 써준 17∼18세기 천재 음악가 집단 ‘필리에 델 코로(합창의 딸들)’는 고아들이었고 병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개개인은 성악은 물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새로운 음악을 빨리 흡수해 바로크 음악과 고전 음악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20세기 대표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나 ‘Take 5’ 같은 명곡을 지은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루벡은 악보를 읽지도 못했다. 그러나 독학이라는 더 다양한 맥락에서 행한 훈련의 폭은 그들의 창의성에 날개를 달아줬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000년간 지탱하던 천체의 운행 방식을 깨뜨리기 위해 빛 냄새 향 등 동떨어진 분야에서 유추(類推)했다. 찰스 다윈은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폭넓은 분야 학자들의 지식을 게걸스럽게 그러모았다. ‘어떤 도구도 만능이 아니다. 모든 문을 여는 마스터키 같은 것은 없다’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저자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무용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학원은 전형적인 1만 시간 법칙의 신봉자다. 물리학자 다이슨의 말처럼 ‘눈앞에 집중하는 개구리’다. 그렇다면 학교는 ‘멀리 보는 새’가 되면 어떨까. 도전 과제들을 다양화하며 ‘한 발을 자기 세계 바깥에 딛고’ 서게 해줄 마음의 습관을 길러주는 곳 말이다. 세상은 깊은 동시에 넓으니까.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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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기 교육이 만능열쇠? 한참 뒤처진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영국 맨체스터대 물리학 교수 안드레 가임은 2000년 터무니없어 보이는 연구에 주어지는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수상 연구는 반자성(反磁性)을 띠는 용액에 든 개구리를 자석으로 공중 부양하는 실험이었다. 그는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던 다른 연구실의 박사과정 학생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두께가 머리카락 두께의 10만 분의 1이면서 강철보다 200배 튼튼한 물질 그래핀을 개발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서른세 살 무렵 미술학원에 등록해 10년 어린 학생들과 배우던 그는 드로잉 대회에 나갔지만 “초급반에서 열 살 아이들과 함께 배우라”는 말을 들었다. 그전까지 학생, 미술상(商), 교사, 서점 점원, 목사, 순회 전도사를 유망하게 시작했다 실패했다. 그림도 인물화를 그렸다가 풍경화로, 사실주의에 몰두하다 순수 표현주의로 빠졌다. 그러나 37세에 숨지기까지 4년간 길이 남을 걸작들을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다. 이 책에는 밖에서 보면 뒤처진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모두가 ‘일찍 선택해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그 일에만 집중하며 결코 흔들리지 말라’는 조기(早期) 전문화와 ‘1만 시간의 법칙’을 장려하는 현실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조기교육과 1만 시간의 법칙’은 익숙한 패턴의 문제와 해법이 반복되고, 특정한 기교를 정확히 갈고닦는 것이 목표이며, 반복 경험만으로도 개선이 이뤄지는 ‘친절한 환경’에서만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세상은 대부분 코트에서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는 선수들을 볼 수 있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규칙을 모르는 ‘화성테니스’ 같이 기존 경험의 테두리 너머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사악한 환경’이다. 그럼 이 지독한 환경의 지배자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조기교육과 전문화에 한참 늦은 것 같은 이 ‘뒤처진’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통계와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들의 핵심 특징은 폭(레인지·range, 이 책의 원제다)이 넓다는 것이다. 경험과 관심의 폭, 훈련의 폭, 적용하고 종합하는 폭이 넓다. 사전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 사이를 신나게 오갈 수 있는 마음과 사고의 폭이 넓다. 안토니오 비발디가 이들을 위해 협주곡 수백 편을 쓴 17~18세기 천재 음악가 집단 ‘피글리에 델 코로(합창의 딸들)’는 고아였고 병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개개인은 성악은 물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새로운 음악을 빨리 흡수해 바로크 음악과 고전 음악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20세기 대표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나 ‘Take 5’ 같은 명곡을 지은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루벡은 악보를 읽지도 못했다. 그러나 독학이라는 더 다양한 맥락에서 행한 훈련의 폭은 그들의 창의성에 날개를 달아줬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000년간 지탱하던 천체의 운행방식을 깨트리기 위해 빛 냄새 향 등 동떨어진 분야에서 유추(類推)했다. 찰스 다윈은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폭넓은 분야 학자들의 지식을 게걸스럽게 그러모았다. ‘어떤 도구도 만능이 아니다. 모든 문을 여는 마스터키 같은 것은 없다’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저자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무용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학원은 전형적인 1만 시간 법칙의 신봉자다. 물리학자 다이슨의 말처럼 ‘눈앞에 집중하는 개구리’다. 그렇다면 학교는 ‘멀리 보는 새’가 되면 어떨까. 도전 과제들을 다양화하며 ‘한 발을 자기 세계 바깥에 딛고’ 서게 해줄 마음의 습관을 길러주는 곳 말이다. 세상은 깊은 동시에 넓으니까.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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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꺼운 책, 나눠야 산다

    그야말로 ‘나눠야 산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무거운 책을 나누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99그램 에디션’(이하 99그램)과 발췌본이다. 독자가 책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과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처럼 만드는 세태를 강화한다는 약점을 다 갖고 있다. 99그램은 두꺼운 책을 분철해 각 권의 무게가 100g을 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출판사나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이 아니라 오픈마켓인 G마켓에서 기획했다. 인터넷 쇼핑몰 소비자라는 틈새시장을 노리고 책을 상품의 바다에 빠뜨린 셈이다. 기획 의도는 ‘여성 핸드백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지하철에서 읽도록 하자’였다고 한다. 인문학 책의 분량에 주눅 든 독자를 겨냥했는데 에세이나 여행, 자녀교육 같은 분야로도 번졌다. G마켓과 옥션뿐 아니라 예스24 같은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되는데 2018년부터 16개 출판사에서 20종이 나왔다. 보통 서너 권으로 나누지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같이 6권짜리를 10권으로 나눈 것도 있다. 가장 최근 것은 올 3월 나온 3권짜리 ‘팩트풀니스’(김영사·사진)다. 김윤경 김영사 편집주간은 “처음 99그램을 제안받았을 때 거부감은 없었다”며 “물성(物性)에 집중해 표지 디자인을 바꾼 리커버가 소장 가치에 중점을 뒀다면 99그램은 어디서건 편하게 꺼내 읽을 수 있는 독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신간보다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대상으로 한정판(1000∼3000부)을 찍고 제작비가 단권 기준 1.5∼2배 더 들어 중소출판사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도 있다. 발췌본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등 동서양 고전의 중요 대목을 그대로 따온 책으로 원전을 요약해 다시 쓴 축약본과는 다르다. 최근 출간된 ‘토인비의 전쟁과 운명’(까치)처럼 서구에서는 발췌본이 드물지 않지만 국내에서는 출판사 ‘지식을 만드는 지식’(지만지)이 주도하고 있다. 지만지는 2018년부터 원전 분량의 10% 이내를 전문성 있는 필자가 발췌해 ‘원서 발췌’라는 시리즈로 내놓고 있다. 그만큼 읽으려고 들면 숨부터 막히는 어려운 책들이 대상이다. 현재 20종을 내놨다. 최정엽 지만지 주간은 “고전 읽기는 ‘원전의 문장을 그대로 읽는다’는 의미도 있다”며 “발췌는 원전의 훼손이라는 생각도 있지만, 읽을 시간이 모자라는 독자들이 발췌본을 읽은 뒤 ‘완역본을 읽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발췌본만 읽고서 그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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